정조와 18세기 - 사로서 18세기, 서구와 동아시아의 비교사적 성찰
역사학회 엮음 / 푸른역사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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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왜 18세기에 관심을 갖는가? 이 책의 필진을 대표해서 서문을 쓴 김경현 교수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18세기는 자부의 세기"였다고 표현한다. 서양에서 18세기가 절대왕정, 계몽사상, 시민혁명의 시대라면, 그 시기 중국은 경제번영, 평화의 시대였고, 한국은 상공업 발달, 문예부흥, 영,정조 같은 탕평군주의 시대였다고 한다. 


2. 책은 10명의 필진이 참여하고 있다. 손과 손가락이라고 해야 할까? 같은 목적, 같은 주제로 모인 사람들이지만 각기 그 내면의 표현이 다르다. 오수창은 18세기 조선의 정치현실과 정치이념을 알기 위해선 앞뒤 시기인 17세기와 19세기의 맥락속에서 그 의미를 찾고 있다. 영, 정조대의 군주에 대한 이미지는 서구의 절대왕정에는 못미치지만, 지적으로 도덕적으로 우월한 존재였다. 당시 조선의 군주론은 주자학의 세계관을 배경으로 구성된 왕 개인의 제왕학 혹은 정치기술에 불과했다는 평가를 하고 있다. 그는 18세기 조선의 탕평정치나 그와 연관된 정치사상에서 진보성의 계기를 확인하기 힘들다고 한다. 


3. 박광용은 탕평정치를 '일통'이라는 단어로 표현한다. 그는 18세기 국내 정치의 양상을 백성 일반에 대한 인식과 정책의 변화에서 찾는다. 그 당시 공론의 주도권은 군사로서 군주와 향촌의 백성들에 놓여 있었다는 이야기다. 이경구의 [조선왕조실록]을 텍스트로 한다. 조사에 의하면, 18세기 이래 조선의 새로운 사조에 '실학'이라는 이름이 붙여지기 전, 이미 실학이라는 단어의 전서(前史)가 있었다. 


4. 19세기에 이르러, 실학은 서양학, 과학, 공학을 포함하는 학문으로, 주로 개화파가 지향하는 문자그대로 실용기술학의 의미로 쓰여졌다. 20세기 후반에 이르러, 실학은 조선의 근대 사상의 기원으로서 기반을 다진다. 계승범은 조선중화론을 이야기한다. 조선중화론은 망한 명을 대신해  조선이 중화문명의 정통성을 계승한다는 논리다. 이는 탈중화가 아니라 중화의 변형이었을 따름이라는 평가가 이어진다. 


5. 경제사가인 이헌창은 18세기 조선은 근대경제로 도약할 수 있는 제반 조건을  어느 정도 갖추었는가?에 관심을 갖는다. 조선의 인구밀도는 일본과 중국의 선진지대와 마찬가지로 세계적으로 높은 편에 속했다.  그 결과 농업 부문 기술 수준도 꽤 성숙한 편이었다. 그러나 도시화율은 대단히 낮아(3~6퍼센트) 18세기 전세계의 평균(9~10퍼센트)에 훨씬 못미치는 수준이었다. 따라서 18세기 조선의 경제는 농업기술과 인적 자본 등에서 성장하고 있었지만, 근대경제로 도약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6. 한승현은 18세기 중국을 동시대 서유럽 및 조선과 비교하는 방법을 사용하고 있다.  18세기 중국과 조선은 강력한 군주권을 구축하려한 점에서 흡사하다. 한승현은 조선이 국경 너머 중국의 사정에 대한 정보를 통해 답습했을 가능성을 시사한다. 벤치마킹이었다.


7. 하우봉은 18세기 일본 사상계가 유교(주자학) 전통의 대안을 찾는 역동성을 설명하고 있다. 고학, 국학, 난학의 세 사조를 주목한다. 이 중 난학(蘭學)은 국학과 달리 외래학, 특히 네덜란드어 서적을 통한 서구문물의 탐구경향을 가리킨다. 일본의 에도시대는 난학이 꽃핀 때이다. 실학 진흥정책과 더불어 난서의 수입금지가 풀렸고, 난서가 속속 일본어로 번역되었다. 그중에서도 네덜란드 해부학서[해체신서]의 번역은 난학 성장의 기폭제였다.


8. 이영림에 의하면 프랑스혁명은 종교적 갈등이 원인이었고, 계몽사상은 18세기 중엽부터 비로소 혁명의 에너지가 된다고 한다. 김기봉은 조선의 18세기가 17~18세기 프랑스처럼 근대를 향하고 있었다고 볼 수는 없지만, 비슷한 점을 두 군주의 절대왕권의 기획을 통해 참고하고 있다. 루이14세가 왕권신수설을 통해 절대왕정을 수립하려 했듯이, 정조는 천명사상(특히 군주도통론)에 입각해 왕권의 초월성을 주장했다는 것이다.


9. 역사를 바라보는 관점은 기술하는 사람에 따라, 어느 뷰포인트에 위치해서 보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특히 근대 역사에 관심을 갖는 것은 현재와 함께 같은 동선에 위치한 미래를 보는 계기도 된다.  이 책은 18세기 조선의 분위기가 주변 국가인 청, 일본 그리고 지구 반대쪽에 위치한 서양의 18세기와 어떤 차이점이 있었나? 그 이유는 무엇일까?를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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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통사 지만지 고전선집 592
박은식 지음, 최혜주 옮김 / 지식을만드는지식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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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지금 일본 사람들이 대한제국을 빼앗기 위해 전후 체결한 조약이 10여 가지나 되는데, 그 조약문을 읽어보면 대서특필할 내용이 아닌 것이 없다. 즉, '한국의 영토를 보존해 제3국의 침략으로부터 보호해 준다.', '황실의 존엄을 보존해 준다.', '한국과 일본의 우의와 동아의 평화를 오래도록 유지케한다.', '한국의 독립과 치안을 돕는다.'는 내용이다. 그러나 일본은 통감부를 설치해서 정권을 빼앗고는 얼마 지나지 않아 한국을 베트남처럼 만들었다. 심지어 한국이 일본에 합병할 때도 한국의 영토와 치안을 보전한다고까지 말했다."


2. 이 글은 이 책의 '서(序)'로 공자2465년(1915) 2월에 갱생(更生)이라는 사람이 쓴 글이다. 갱생은 강유위를 말한다. 중국 근대의 사상가, 정치가이다. 그는 서(序)말미에 '중국이 아직 희망이 있다고는 해도 분발하지 않으면 제2의 조선이 될 날도 멀지 않을 것이니 탄식할 뿐이다.'라고 했다. 갱생은 1927년 이 세상을 하직했는데, 그의 우려대로 1937년 7월 7일 일본의 침략으로 시작된 중일전쟁(지나사변)은 1945년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날 때까지 계속되었다. 


3. 이 책 [한국통사(韓國痛史)]는 지은이 박은식이 중국으로 망명한 뒤 집필해 1915년 상해(上海)의 대동편역국에서 순한문으로 간행되었다. 일제 강점기에는 불온서적으로 낙인찍혀 국내로 반입이 금지되었다. 박은식이 '나라 잃은 미친 노예(太白狂奴)라는 필명을 가지고 쓴 이 책은 범례, 목차, 서(갱생), 서언, 삽화 그리고 본문, 결론, 후서, 발(한진,韓震)으로 구성되어 있다.


4. 책 제목이 한국통사(通史)가 아닌 통사(痛史)라는 것을 주목해야한다. 통할 '통'자가 아니라, 아플 통(痛)자다. 아프기만 한 것이 아니라 수치스러운 역사이다.


5. 이 책에서 지은이가 비판하는 것을 간략히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다.

1) 대원군의 내정 계획을 가치 매길 수 있지만 그는 세계정세에 어두워 중흥의 기운을 막았다.

2) 민씨 정권이 자주적 근대화를 실현 할 수 없는 상태에서 문호를 개방해, 우리나라가 열강의 각축장이 되었다.

3) 갑신정변은 여건 미숙으로 실패했고, 일제의 술책에 말려들어 타력(他力)으로 인한 우리나라의 독립이 불가능하게 되었다. 

4) 동학농민전쟁은 신분 해방을 실현한 개혁의 선구이나, '폭동'이라는 정치혁명으로서의 한계를 지녔다.

5) 명성황후 시해라는 일본의 만행과 아관파천 때 친러파에 대한 문제가 있다.


6. 일제의 한반도 강점 과정에 대해

1) 독립협회의 활동을 높이 평가할 수 있지만 그들은 조급한 행동으로 개혁에 실패했다.

2) 을사조약은 부당하게 강제로 체결되었다.

3) 열강들은 우리나라의 이권을 쟁탈하고 일제의 환심을 사기 위해, 일본의 한국 병합을 묵인했다.

4) 일진회 회원, 을사오적 등은 일본의 한국 병합을 도와 그 공으로 작위를 받은 친일 인사들이다.


7. "옛사람들이 이르기를 나라는 멸망 할 수 있으나, 역사는 멸망할 수 없다고 했다. 대개 나라는 형체와 같고, 역사는 정신과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 한국의 형체는 허물어졌으나 정신만큼은 남아 존재하고 있으니, 이것이 통사를 저술하는 까닭이다. 정신이 존속해 멸망하지 않으면 형체는 부활 할 때가 있을 것이다."


8. 동학 혁명이 일어 날 때 지은이는 서울에 있다가 나라에서 청국에 원병을 요청했다는 소식을 듣고는 당국자에게 "동학교도는 오합지졸에 불과해 관군들이 힘써 소탕하면 진정시킬 수 있을 텐데 어찌 중국에 원병을 청했다는 말인가! 우리나라에서 구구하게 일어나는 내란을 스스로 진압하지 못하고, 외국에게 이런 위급에서 구해 달라고 하는 것은 국가의 치욕이 아닌가? 또한 갑신년(1884)의 천진조약에 명시된 바에 따라 만약 청국에서 파병하게 되면 일본 또한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다. 이로 말미암아 양국 군대를 불러들이게 되면 큰 전쟁이 일어날 것인데, 우리나라가 어찌 무사할 수 있겠는가?"라고 물으니, 그는 대답을 못했다. 결국 지은이의 말은 적중했다.


9. 책의 후반부는 일제의 만행에 대한 기록이다. 도둑 맞도록 문을 열어준 친일파 을사오적(乙巳五賊)은 외부대신 박제순, 학부대신 이완용, 내부대신 이지용, 군부대신 이근택, 농상공부대신 권중현이다. 그 외에도 수많은 매국노들. 아. 이 땅에 친일파들의 명(命)은 참 질기기도 하다. 해방 이후 그들이 권력의 변방에 자리잡은 시간은 고작 10년이란다. 그들은 '잃어버린 10년'이라고 했다던가. 그 외엔 참 잘 나갔단 이야기다. 그간 잃어버리고 망가뜨린 아픔과 치욕의 우리 역사 시간이 얼마인데 그들은 아직도 기가 막히게 당당하다. 


10. 지은이 박은식은 1924년 대한민국임시정부 제 2대 대통령에 추대되었으나 이듬해 11월  1일 서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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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스트 인 서울
방현희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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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소설가 방현희의 단편집. 7편의 작품이 실려있다. 이 작가의 작품은 처음 대하는데도 불구하고, 낯설지가 않다. 작품의 공통점은 치밀한 구성력과 생동감 있는 물고기의 은빛 비늘이 햇빛에 반사되는 느낌이다. 아울러 표현력이 뛰어나다. 


2. "당신이 겪은 일 중에서 가장 기이한 일은 무엇이었습니까?" 로 시작되는 '로스트 인 서울'은 우즈베키스탄에서 굴러온 룰렛 구슬로 묘사되는 그렉 안나가 주인공이다. 카지노의 룰렛 구슬이 굴러가는 곳은 구슬과 바라보는 사람의 의지와 상관이 없다. 그저 매번 굴러갈 때마다 새로울 뿐이다. 아마도 우리의 삶이 그럴 지도 모른다. 주어지는 자극의 강도와 각도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그렉안나는 촉망받는 인재였다. 고국의 대학에서는 물론이거니와 한국의 어느 우수한 대학 정문으로 들어가서도 높은 점수를 받으며 잘 지내고 있었다. 그렇다. 이젠 과거형이 되어버렸다. 어찌어찌하다가 방송에 출연하게 되고, 그렉 안나는 삶의 방향이 본인의 의지와 상관 없이 그 흐름에 몸을 맡기게 된다. 아무리 정신을 차리려 애를 써봐도 핑핑 돌아가는 룰렛 판처럼 한창 성장을 향해 달려가는 한국이라는 자본주의 시장에 던져진 그녀는 이제 올라가지도 내려오지도 못하는 상황에 처하고 만다. 잃어버린 것은 그녀의 꿈만이 아니다. 우리 역시 방향 감각을 상실했다. 작가는 최소한 우리가 무엇을 잃었는지를 알아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고 생각든다.


3. '세컨드 라이프'. '나'는 지금 어디에 있는지를 모르겠다. 아내와 중국의 가흥이라는 곳을 갔지만, 내 몸과 혼은 따로 노닐고 있다. 나에겐 그 거리의 구석구석이 모두 어제 일처럼 훈기가 돌지만, 아내는 힘들다. 이야기가 걷돈다. 나는 어제 일처럼 이야기하고 있는데, 아내는 도무지 이해를 못하고 있다.   - 난 여기 살았었어.   - 당신이 언제 여기에서 살아? 당신은 나하고 죽 함께 살았는데?   - 구 년이나 십년 전이야. 이제 모든 게 기억나.    - 정신 차려, 우린 한국에 살고 있고, 결혼 십육 주년 기념으로 여행 온 거야. 결혼 기념 여행이라곤 생전 처음이고, 우리가 언제 이렇게 한가하게 여행 다닐 새가 있기나 했어? 여긴 언제 왔다는 거야.  아내는 점점 '내'가 이상해지고 있다고 한다. 기가 막히다 못해 화를 낼만도 하다. 그래도 '나'는 형과의 묘한 신경전과 형의 마지막 모습을 생생히 기억한다. 독자인 '나'는 화자인 '나'의 기억을 믿기로 한다. 달리 방법이 없다. 형은 그 당시 시국사범으로 수배령이 내려져서 쫒기는 몸이었다. '나'의 혼은 분명히 형과 함께 했다. 그러니 이렇게 생생히 기억 날 수 밖에 없지.  - 기억 속의 유령인지, 지금 이 길을 걷고 있는 내가 유령인지, 당신은 알아?


4. 어떻게하든 감옥에서 빠져 나가고 싶다. 일단 내 몸 속의 내장을 하나 둘씩 먼저 내보냈다. 순조롭게 잘 될 줄 알았다. 그러나 남은 것은 빈 껍데기 뿐이다. 나가지도 못했다. '탈옥'은 완전 실패다. 그 실패의 기록이다. 치밀하게 계산했지만, 구멍 투성이다. 수인(囚人)이 되면 아마도 같은 마음이 들 것 같기도 하다. 병이 걸린다. '나'는 수감되어 있는 동안 세 번의 수술을 했다. 첫번째는 편도선을 떼어냈고, 두 번째는 위궤양으로 위를 반쯤 잘라냈고, 세번째는 맹장을 떼어 낸 것이다. 물론 그 때마다 탈옥을 꿈꿨다. 밖에 크게 한 판 벌려 놓은 것을 챙긴후 영원히 잠적 할 계획이었다. 네 번째 시도를 했다. 완전 모험이다. 그런데 역시 실패다.  간수가 나를 내려다보면서 하는 말이다.  - 나는 알고 있었어. 네가 이렇게 하나씩 하나씩 감옥을 빠져 나가고 있다는 것을. 하지만 넌 영원히 빠져나가지 못할 거야. 네 내장을 송두리째 다른 곳으로 도망시킨다 해도.

어쩌면 우린 일상의 삶에서 이렇게 나를 탈출시키려고 무언가 내게 소중한 것을 먼저 내보내고 있는지도 모른다. 느닷없이 '사운드 오브 뮤직'에서 예비역대령 루트비히 폰 트랍의 가족들이 하나 둘 ..차례로 지혜롭게 빠져나가는 모습이 오버랩 된다. 그들은 새 땅을 밟았지만, 과연 이 시대에 새 땅이 있기나 한 건지..


5. 이어지는 단편들도 생각을 하게 하는 이야기들이다. '그 남자의 손목시계'나, '후쿠오가 스토리'나..그런데 이 작가 실제로 요트를 많이 타 본 듯 용어와 분위기가 리얼하다. '로라, 네 이름은 미조'에선 작가들이 선뜻 다가서기 힘들어하는 인체 해부가 펼쳐진다. 대충 잘 묘사가 되고 있다. 사인을 밝히고자 부검대에 오른 그녀. 발레리나가 꿈이었던 그녀. 스스로 '맨발의 이사도라'라는 아이콘을 붙였지만, 발레리나로 성공하기엔 상체가 너무 두툼하고 다리가 가냘픈 신체 조건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현대 무용으로 갈아탔다. 그러나 그녀에게 정작 부족했던 것은 신체적 결점이 아니라 '신체 깊은 곳으로 감정을 농밀하게 모을 줄 모른다'는 것이었단다. 


6. 작가의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하나 같이 외롭고 힘들다. 절망적이다. 그럼에도 낯설지가 않다. 어쩌면 모양만 다소 다를 뿐 우리 모두의 모습일 수도 있다. 방현희. 주목할 만한 작가로 내 마음에 담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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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산티아고, 혼자이면서 함께 걷는 길
김희경 지음 / 푸른숲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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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 책은 지은이 김희경이 스페인의 '산티아고 가는 길'. 흔히들 '카미노'라 부르는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지은이 자신의 '발견기'라고 합니다. 물음표를 안고 길을 떠났으나 답을 가진 사람은 못 만났다고 합니다. 그 대신, 답이 없는 인생과 세상을 불안해하고 외롭다고 느끼던 이들을 만나 마음을 섞었다고 하는군요.


2. 산티아고는 예수의 열 두 제자 중 야고보 성인의 유해가 묻혀 있는 곳으로 알려진 가톨릭의 성지입니다. 이 길을 사람들이 순례한 역사는 천 년도 넘었다고 하네요. 산티아고에 이르는 길은 여러 루트가 있는데 그중 프랑스 남부 생장피에드로프에서 출발해 피레네 산맥을 넘어 산티아고에 이르는 '프랑스길'이 가장 유명하다고 합니다.


3. 셜리 맥클레인, 파울로 코엘료 등 명사들이 카미노에서 체험한 영적 깨달음, 삶의 변화를 고백하면서 이 길이 널리 알려졌습니다. 국내에서도 도보 여행가 김남희 씨의 순례기가 출간된 것을 기점으로 관심이 부쩍 늘었고 인터넷에 '카미노 카페'가 개설되어 있답니다. 순례자중 50%는 한국인과 독일인이라는 것이 흥미롭습니다.


4. 지은이는 도중에 들른 한 알베르게(순례자들을 위한 숙소)의 방명록에 어느 한국인이 적어둔 글귀를 보며 씩씩하게 한 발 한 발 내딛습니다. "혼자이면서 함께이고, 함께이면서도 혼자인 길." 비록 출발은 혼자였지만, 순례를 마치는 때는 혼자가 아니라는 뜻도 담겨있지요.


5. 여행. 그것도 도보여행 중에는 먹고 자는 일이 중요합니다. 지은이는 가는 길에 동행을 만나면서 조금씩 익숙해지고 있습니다. 사람과 환경에. 카미노가 좋은 것 중의 하나는 걷다 지칠 때면 적당한 지점에 커피나 와인, 맥주, 간단한 요깃거리를 파는 바가 있다는 것이지요. 카미노는 지나쳐가는 마을의 살림에 꽤 중요한 젖줄이라고 하네요. 순례자들 때문에 생긴 마을도 있다 합니다.


6. 지은이는 도보 여행 중에 많은 사람들을 만나지만, 그 만남 중 나의 마음이 함께 머무는곳이 있었습니다. 사람과 사람만 만나는 것이 아니라 사람과 개가 만나기도 하는군요. 이탈리아에서 온 바르바라란 여성과 개(프리다)가 만나는 과정은 마치 숙명인 듯 합니다. 바르바라가 프리다라고 이름 붙여준 커다란 검은 개는 늘 그녀의 곁을 지켜주고 있군요. 물론 도보여행길에도 함께 합니다. 바르바라는 혼자 프랑스 루르드에서 순례를 시작했습니다. 출발한 지 며칠 만에 피레네 산맥 기슭 어딘가에서 길을 잃었다고 합니다. 비가 오던 날 혼자 숲 속을 헤매던 바르바라 앞에 더럽고 큰 개가 나타났습니다. 개가 다가오는 걸 보는 순간, 바르바라는 이유를 잘 모르겠지만 이 개가 자신에게 아주 중요한 존재가 될 것을 직감했다고 합니다. 그녀는 개를 수의사에게 데려가 상태를 체크하고. 이름을 지어주고 수백 킬로미터를 함께 걷는 중이었습니다. 이탈리아로 돌아 갈 때 집까지 데려갈 생각이라고 합니다. 


7. 카미노엔 '노란 화살표'가 있어서 순례자들의 여정을 돕기도 하지만, 때로 그 화살표가 사라지는 경우도 있군요. 갈림길에 서거나 날이 어두워지면 이 말을 기억해야겠습니다. "길을 잃으면 무조건 성당을 찾아가. 원래 카톨릭 순례자들이 걷던 길이라서 늘 성당 근처에 가면 숙소가 있거든."


8. "여기서 뭔가 이상한 감정이 꿈틀대는 걸 느껴. 설명하기 어려운데...길의 끝에 가면 나도 뭔가를 만나게 되지 않을까. 아무튼 카미노가 내면의 무엇을 찾게 만들긴 하는 것 같아. 겉으로만 여행을 하는 게 아닌 거지."  카미노 노상에서 만난 사람들끼리는 평소 가까운 지인들에게도 잘 이야기하지 않는 속마음과 비밀을 쉽게 털어놓곤 한답니다. 다시 만날 가능성이 없는 낯선 사람들 앞에서 종종 치밀어 오르는 고해의 충동 때문일까요? 지은이의 입장에선 한국 순례자들보다 낯선 외국인과 낯선 언어로 이야기할 때 더 쉽게 내 이야기를 털어놓을 수 있었다고 합니다. 최소한 영어라도 그런데로 쓸 수 있어야 하겠지만 말입니다. 그래서 카미노를 '세라피 루트(Therapy Route)'라고 부르기도 한답니다.


9. 긴 여정. 순례의 길을 마치고 나면 산티아고 대성당에서 카미노 순례를 마쳤다는 '순레자 증서'를 주는군요. 물론 그것이 목적이 될 수는 없지만, 순례의 마무리는 되겠습니다. 책을 읽고 나니까 나의 '버킷 리스트'에 담아야겠다 생각이 듭니다. 순서를 앞으로 바짝 끌어올려야겠다는 욕심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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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의 두 얼굴, 사이코패스 (검정색 표지) - 내 안의 광기가 때로는 인생에 도움이 된다
케빈 더튼 지음, 차백만 옮김 / 미래의창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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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잠시 함께 근무했던 외과 의사가 있었다. 눈매도 성깔도 매우 날이 서 있는 사람이었다. 뒤늦게나마 아내 덕분에 교회를 나가면서부터 눈매가 좀 부드러워졌다는 이야길 들었지만, 간혹 잘 모르는 사람들 틈에 끼어 있다보면 경찰이나 형사가 아니냐는 이야길 듣기도 한단다. 그런데 이 사람 외과 수술 만큼은 그야말로 대단하다. 신속 정확하다. 환자중에 무속인이 있었다. 조심스럽게 그 의사의 사주를 묻더란다. 쿨한 성격인지라. 대뜸 가르쳐줬더니 그 분 하시는 말씀. 선생님은 외과 의사 안 되셨으면 칼 휘두르다가 명이 짧아졌을 것이라는 이야길 하더란다. 


2. 사이코패스. 묻지마 살인, 연쇄살인범, 살인을 저지르고도 너무 태연한 사람. 우리에게 심어진 일반적인 이미지다. 위의 그 외과의사는 사이코패스였을까? 사회심리학자인 이 책의 저자 캐빈 더튼에 논거에 의하면 그는 사이코패스 맞다. 


3. 저자는 번뜩이는 천재성과 일종의 광기 그리고 내재된 사이코패스 성향을 가진이들이 사회적으로 크게 성공한 사례를 보여 주면서 이런 이들을 '기능적 사이코패스(Functional Psychopaths)라고 따로 분류한다. 그런 사람들이 성공할 수 밖에 없는 이유로, 그는 다음과 같은 7가지 특징을 뽑아냈다.   1) 무자비함  2) 매력  3) 집중력  4) 강인한 정신  5) 겁 없음 6) 현실 직시  7) 실행력

..  몇 가지나 해당되나 카운트 해보는 그대의 모습이 그려진다.


4. 저자는 사이코패스의 예를 들면서, 제일 먼저 그의 아버지를 의심의 여지없는 사이코패스였다고 소개한다. 그(저자의 아버지)는 매력적이고, 세상에 무서울 게 없고, 무자비했다(다만 폭력적이진 않았다). 누군가를 '죽인' 적은 없었지만, 몇 차례의 거래로 '죽여줄' 만큼 한 밑천 잡은 적이 있었다. 아버지의 직업은 주식거래인이었다.


5. 사이코패스에 대한 일반적인 인식은 우리 모두의 머릿속에 부정적인 이미지로 각인되어 있다.

저자 역시 이를 염려해 서문에서 미리 밝히고 지나간다. "이 책에서 우리는 사이코패스의 속성을 자세히 살펴볼 것이다. 그리고 이런 속성을 심리적 기술로 활용해서 삶을 극적으로 변화시키는 방법을 배울 것이다. 물론 사이코패스의 행동을 미화할 의도는 전혀 없다. 특히나 파괴적인 사이코패스 성향을 칭송할 생각은 조금도 없다. 그건 과다한 햇빛 노출로 인해 생긴 피부암을 미화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하지만 적절한 햇빛을 쬐면 까무잡잡한 멋진 피부를 얻을 수 있는 것처럼, 사이코패스 성향도 소량만 활용할 경우에는 우리의 성격에 멋진 선탠을 하는 것과 같아서 놀랄 만한 혜택을 가져다 준다."


6. 여러 심리학자들과 신경과학자들의 스터디에 의하면 인간의 공감대는 냉, 온이 있다. 즉, 뜨거운 공감과 차가운 공감이 있다. 사이코패스에겐 공통적으로 타인의 감정을 냉혹하고도 면밀하게 계산적으로 관찰 할 수 있는 '차가운 공감'이 있다. 대신 '뜨거운 공감'은 부재중이다. '느낌'보다는 '이해'로 정의 될 수 있는,  개인적 동질화가 아닌 추상적이고 무신경한 차가운 공감 능력만큼은 매우 뛰어나다.  이런 차가운 공감 능력은 선사시대의 사냥꾼과 뛰어난 독심술사가 공통적으로 지닌 기술이기도 하다. 


7. 조금 방향을 바꿔서 '성격장애'를 예로 들어본다. 망가진 성격이라고도 표현되는 성격장애를 함부로 입에 올려선 안 된다고 한다. 맞는 말이다. 누구나 조금씩은 갖고 있기 때문이다. 스스로 그렇지 않다고 강력히 주장하면 할 수록 그대의 성격은 문제가 있다. 성격장애는 당신을 짜증 나게 하는 사람들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당신도 나를 짜증나게 한다. 성격장애를 다시 한 번 확인한다.

성격장애는 "성격장애를 겪는 사람이 속한 문화에서 수용되는 것과 전혀 다른 행동이나 내적인 경험이 지속적으로 반복되는 것"을 말한다. 여기서 키워드는 '지속적'이란 단어다. 


8. 자, 그럼 직장내에서 사이코패스(아직은 비폭력적인)들은 어떤 모습으로 그들의 일상을 보내고 있을까? 기업 내 사이코패스에 대한 보고서를 작성한 조직심리학자 폴 바비악의 의견은 수긍이 가는 면이 있다. "사이코패스는 빠른 변화에 따른 상황에 아주 쉽게 대처합니다. 오히려 급변하는 상황을 즐기죠. 조직 내부의 혼란은 스릴을 즐기는 사이코패스들이 원하는 자극을 제공하고, 남을 자기 뜻대로 조종하는 사이코패스의 가학적인 행위를 감춰 주는 기회가 됩니다."


9. 소설가 윌리엄 서머셋 모옴은 [인간의 굴레]에서 이렇게 썼다. "당신이 베푸는 모든 선행의 이면에는 쾌감이 자리하지. 사람은 자신에게 이득이 되기에 행동을 하네. 그리고 만약 그 행동이 공교롭게도 남에게도 도움이 되면, 선행으로 간주되는 걸세 (....) 당신이 거지에게 2펜스를 적선하는 것도 개인적 쾌감 때문이고, 내가 똑같은 2펜스로 위스키를 한 잔 사먹는 것도 개인적 쾌감 때문이야. 이처럼 나는 당신보다 더 솔직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 개인적 쾌락을 추구하는 행동에 박수를 보내지도, 당신의 존경을 요구하지도 않네."  문학속 사이코패스의 모습이다.


10. 개인적 여담으로 리뷰를 마무리한다. 70년 대 중반 군생활을 할 때 부대원 중에 심리학 전공자가 있었다. 대부분 그러하지만, 재학 중에 입대했다. 대놓고 말은 안했지만, 심리학과 졸업하면 먹고 살수나 있으려나? 복학하면서 전과를 하면 어떨까? 생각했다. 그러나 요즘 심리학 전공자들이 먹고 살만 해졌다고 한다. 세상 살이가 스트레스는 쌓이고, 피곤해지고, 더욱 복잡해지다 보니 심리학 전공자들의 활동무대가 넓어지고 깊어지고 있다는 이야기다. 사이코패스도 점점 늘어나는 추세고, 더욱 공교해지고 있다고 한다. 참, 심리학 전공자인 부대원을 얼마 전 페북에서(이렇게 만나는 것이 좋은 것인지 어떤지 아직 잘 모르겠지만)만났다. 어린아이들을 상대로 한 제법 큰 인성교육센터를 운영하는 원장으로 자리잡고 있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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