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의 축적 2 지만지(지식을만드는지식) 사상선집
로자 룩셈부르크 지음, 황선길 옮김 / 지식을만드는지식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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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론 국민경제학에서 사회적 총자본의 재생산 문제에 대한 입장은 마르크스 불후의 공헌 중 하나다."  1,2권으로 출간된 [자본의 축적]의 첫 문장입니다. 


책 내용보다도 지은이를 먼저 소개해야겠습니다. 로자 룩셈부르크(이하 룩셈부르크)는 1871년 3월 러시아가 지배하던 폴란드의 작은 마을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녀는 유대인 상인가정에서 유복한 성장을 하며, 고등학교 시절부터 혁명에 헌신하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러시아의 정치적 압제에서 벗어나고 더 많은 지식을 얻기 위해 스위스로 건너가 법학과 경제학을 연구합니다. 학위를 받은 후 당시 국제 사회주의 운동이론의 중심지였던 독일로 이주하게 됩니다. 


1913년 간행된 [자본의 축적]의 서문을 통해 이 책을 쓰는 목적을 '제국주의의 현실 정치와 그 경제적 뿌리를 설명하는 것'에 두고 있습니다. 1, 2권 합해서 3부로 편집되어 있습니다. 1) 재생산문제, 2) 문제의 역사적 서술,  3) 축적의 역사적 조건들  그리고 2권 말미에는 [자본의 축적] 또는 아류들이 마르크스 이론으로 무엇을 만들었는가? 를 비판하는 것에 대한 반비판입니다. 


룩셈부르크는 국민경제학의 역사에서 단 두 명의 학자만이 사회적 총자본의 재생산 문제를 정확하게 설명했다고 합니다. 그 두 사람은 프랑스의 중농주의 경제학자 프랑수아 케네, 그리고 카를 마르크스입니다.  '재생산'은 룩셈부르크의 표현을 빌리면 문자 그대로 '생산 과정의 반복과 갱신'입니다. 생산의 규칙적인 반복은 인간사회에서 문화의 존재, 인간사회의 역사적 구성체(Form)의 전제 조건이라고 합니다. 


룩셈부르크는 앞서 언급한 케네와 애덤 스미스의 이론을 집중 분석하고 있습니다. 비록 케네의 설명이 불충분하고 한편 유치한 면까지 보이지만, 마르크스 이전 경제학의 역사에서 중농학파의 아버지로 불리우는 케네만이 유일하게 마르크스와 같이 사회적 총자본의 재상산 문제를 정확하게 파악하고자 시도했다는 평가를 내리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스미스는? 중농주의학파의 대략적인 윤곽을 통한 명확한 설명과 비교하면 혼동이 시작된다고 합니다. 


스미스는 자신 이후 오랫동안 부르주아지 경제학을 지배한 이론, 즉 상품의 가치는 상품의 생산에 소모된 노동의 양으로 표현되지만 동시에 가격은 단지 노동 임금, 자본 이윤, 그리고 지대라는 세 가지 요소로 구성된다는 잘못된 가격 분석을 내놓음으로써 자본주의 총과정을 과학적으로 논증하기 위한 토대를 완전히 뒤집었다는 이야깁니다. 따라서 스미스의 후계자들에 의해 계승되고 발전된 총자본의 재생산 문제는 근본적으로 혼란에 빠질 수 밖에 없다는 것이지요. 이 어려움의 뿌리를 스미스의 가격 이론에 두고 있군요.


마르크스는 고정자본의 형태와 단순 재생산 사이의 모순을 직접적으로 다루진 않았지만,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지속적인 '과잉 생산'에 초점을 맞춥니다. 즉 마르크스는, 단순 재생산이 엄격하게 유지된다면 주기적으로 재생산에 손실을 야기할 수 있는, 어떤 해에는 더 크고 다른 해에는 더 작은 고정자본의 불규칙한 마모율과의 관계에서 확대 재생산을 부각시킨 것입니다. 따라서 마르크스는 확대 재생산을 고정자본의 생산 자체가 아니라 고정자본을 위한 예비 기금의 관점에서 주시한 것입니다.


부르주아지 국민경제학에서 자본주의적 질서의 거룩함에 대한 첫 번째 강력한 의혹은 1815년과 1818~1819년 영국에서 있었던 첫 번째 공황의 직접적인 충격에서 싹틉니다. 룩셈부르크는 이러한 문제점에 대해 영국을 인위적으로 유럽 판매 시장으로부터 얼마 동안 차단하고, 짧은 기간에 대륙 국가 몇몇 지역에서 산업의 의미심장한 발전을 유리하게 한 나폴레옹의 대륙 봉쇄가 이러한 영국의 공황에 부분적인 책임이 있었다고 표현합니다.


영국에서 노동자들의 신음 소리가 점점 커질 무렵, 영국의 오언과 프랑스의 시스몽드는 자본주의적 질서에 반대하는 자신들의 성난 소리를 높입니다. 오언은 효과가 큰 실천적 활동을 통해 직접적으로 프롤레타리아트에 주의를 돌린 반면에, 시스몽드는 바로 이러한 폭넓은 비난을 통해 부르주아지 경제학에 더욱 어려운 문제를 제기하게 됩니다.


유럽에서 자본 지배의 무분별한 확산에 대한 시스몽드의 불길한 예언은, 세 가지 방향에서 그에 첨예하게 대항하는 반대파를 출현시킵니다. 영국에서의 리카도학파, 프랑스에서 스미스와 장 바티스트 세의 추종자들 그리고 생시몽주의자들이 그들입니다. 그 외에도 수없이 많은 인물들이 등장합니다. 


마르크스에 의하면, 새로 고용된 노동자들이 새로운 생산 수단을 가지고 일하게 하려면 이전에 이미 자본주의적인 생산의 확대를 위한 목표, 즉 새로운 생산물에 대한 수요가 있어야 한다고 합니다. 자본주의 생산에서 현물 형태로 존재하는 잉여가치가 실현되어 순수한 가치 형태인 화폐 형태를 취하지 않는 한, 축적은 지속될 수 없다는 것이지요. 룩셈부르크는 고전학파의 재생산 문제에 대한 마르크스의 비판은 정당하다고 인정되는 부분이 있지만, 마르크스의 재생산 공식 자체가 논리적인 모순에 빠져 있다는 입장을 밝히기도 합니다. 


방대하면서도 깊은 내용이기에 리뷰로 정리하는 것이 쉽지 않군요.  이 책의 엮은이 황선길님의 글로 마무리 하겠습니다. 

"룩셈부르크는 이 책에서 팽창해야 축적이 가능한 자본의 본질을 경제적으로 분석하고, 자본 팽창의 역사적 과정을 통해 이를 증명하면서, 그 종착지가 전 세계 차원의 사회주의라고 명확하게 주장하고 있다. 이는 고전학파의 조화론과 마르크스의 경제학 이론이 집대성된 자본론, 특히 폐쇄된 일정한 지역에서 축적의 가능성을 증명하고자 한 마르크스의 확대 재생산 공식에 대한 비판적 극복을 통해 가능하며, 이는 마르크스 경제학 이론을 교조적으로 수용해 '일국 차원'이나 '지역적 차원'에서 자본주의 이후 사회를 완성하려고 한 소위 구사회주의 체제 이론의 허구성에 대한 비판으로 확대 해석할 수 있다. 따라서 이 책은 마르크스가 시도만 하고 분석하지 않은 '자본주의 세계 시장'의 형성을 구체적인 역사적 사실을 통해 분석하면서 마르크스의 자본론을 비판하고 보완해 우리에게 새로운 시각을 주고 있다. 따라서 이 책은 [자본론] 4권으로 불러도 무리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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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의 귀환 - 희망을 부르면, 희망은 내게 온다
차동엽 지음 / 위즈앤비즈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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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을 생각해봅니다. 좀 더 욕심을 내어 희망을 가슴에 품어 봅니다.  

"아무리 눈앞이 칠흙이어도, 희망은 기어코 귀환한다. [희망의 귀환]은 철석같은 약속이다." 로 시작합니다.  ‘철석(鐵石)’은 ‘쇠(鐵)와 돌(石)’을 아울러 일컫는 말입니다. ‘철석같다’는 표현은 쇠와 돌처럼 마음 · 의지 · 약속 따위가 매우 굳고 단단함을 이르는 형용사이지요.


지은이 차동엽 신부님은 [잊혀진 질문], [무지개 원리]를 통해 대중과 친숙한 이미지로 다가섰지요. 지은이는 이 책의 프롤로그에서 독일의 사상가인 에른스트 블로흐의 말을 인용합니다. 

"인간은 끊임없이 희망을 품는 존재다."

희망이 인간 고유의 원초적 생명력이라는 것을 표현하는 말입니다. 라틴어 격언도 덧붙입니다. 

"나도 희망한다, 너도 희망하라." (스페로 스페라 : Spero, spera)


책의 4 파트의 제목만 마음에 두어도 좋을 듯 합니다.

"포옹하라, 춤추라, 심기일전하라, 즐겨라."


"포옹하라"

지은이는 극한의 상황에서도 희망놀이는 생존의 탈출구가 될 수 있다고 합니다. 희망 + 놀이입니다.  성공회대 신영복 석좌교수의 말을 인용합니다. "교도소에서 자살하는 사람들이 참 많아요. 보도가 안 될 뿐이지요. 20년 감옥 생활에서, 추운 독방에서 내가 자살하지 않은 이유는 '햇빛'때문이었습니다. 독방안으로 하루 2시간 정도 햇빛이 들어오는데, 가장 햇빛이 클 때가 신문지 펼쳤을 때 정도구요. 좀 시간이 지나 햇빛을 무릎에 올려 놓고 앉아 있을 때 정말 행복했어요. 내일 햇빛을 기다리고 싶어 안 죽었어요"


망 3형제가 있습니다. 희망이 떠나면 절망이 그 자리를 차지합니다. 그러나 한 구석에서 있는 듯 없는 듯 존재하는 또 하나의 '망'이 있습니다. '관망'입니다. 지은이는 이 셋을 이렇게 소개합니다. 

"관망은 딱 중간입니다. 관망의 자세를 견지하는 것만으로도, 기회는 여전히 살아있습니다. 

절망은 최악의 선택입니다. 희망은 최선의 선택입니다."


"춤추라"

'희망'과 '꿈'을 이야기해봅시다. 같은 말 같지만, 좀 다르지요. 지은이는 이 둘을 이렇게 설명합니다. '희망'은 미래에 대한 긍정. 추상적이고 막연한 낙관론. 확신어린 기대라고 합니다. 반면에 '꿈'은 보다 구체적인 바람을 가리킵니다. 현실적인 희망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꿈'을 극대화하고 실현 시키기 위해 시각화(Visualization)을 권유합니다. 


자주 바라보라!  선명하게 바라보라!  계속 바라보라!


'춤추라'는 타이틀은 내 안의 에너지를 활성화시키기 위한 움직임으로 해석됩니다.


"심기일전하라"

지은이가 대학 재학 시절을 돌아보며 독서에 대해 코멘트한 부분은 나와 같은 마음입니다. 

"나의 경우, 소설에서는 인간 존재의 다양한 스펙트럼과 풍부한 문제의식을 접했고, 철학 서적에서는 빈틈없이 사유하는 법을 배웠고, 시에서는 인간 본질의 핵심 인자들을 건졌다." 내가 다양한 분야의 책을 읽는 목적이 되기도 합니다.  나 역시 좋아하는 에리히 프롬의 글을 인용하고 있군요.

"사람의 한 생애는 그 어느 것과도 바꿀 수 없는 선물이며, 뜻있는 도전이다. 따라서 그것은 다른 무엇으로도 측정 될 수 없는 고유한 것이다."


"즐겨라"

우보만리(牛步萬里). '소 걸음으로 만 리 간다'. 

황소걸음은 인내심과 추진력입니다. 느리더라도 뚜벅뚜벅 자신의 걸음을 걸은 한편 '바보스런' 사람들이 결국은 승자가 됩니다. 지은이는 희망을 품은 사람에겐 우보만리의 뚝심이 있다고 합니다. 결과보다는 그 과정을 즐기라는 조언도 붙입니다. 약삭빠름이 당장은 성과를 내는 것 같지만 시간의 흐름속에서는 바보걸음이 더 큰 결실을 가져오는 법이지요. 

내가 좋아하는 말을 덧 붙입니다.  '항심(恒心)이 있는 곳에 항산(恒産)'이 있습니다.


지은이는 이 책에서 많은 예화와 시(詩) 인용해서 희망과 절망 사이에서 스스로를 관망하고, 때로는 차분하게 때를 기다리는 삶의 지혜를 전해주고 있습니다. 희망은 분명히 있군요. 이 책을 통해 희망이 사라진 것이 아니라, 내가 희망을 외면하고 살아오고 피해다닌 것은 아닌지 돌아보는 시간이 되리라 생각듭니다. 


마하트마 간디의 詩를 인용하면서 리뷰를 마무리 합니다.


오, 인간이여. 그대가 약하든 강하든 쉬지마라.

혼자만의 고투를 멈추지 마라. 계속 하라, 쉬지 말고.

세상은 어두워질 것이고 그대는 불을 밝혀야 하리라.

그대는 어둠을 몰아내야 하리라.

오, 인간이여. 생이 그대를 저버려도 멈추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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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국
나카무라 후미노리 지음, 양윤옥 옮김 / 자음과모음(이룸) /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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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볍게 읽을 만한 범죄소설입니다. 알고 계시는 분도 많겠지만, 우선 이 책의 저자인 나카무라 후미노리라는 작가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해볼까 합니다.

 

'21세기 문학계의 새로운 별'이라는 칭호를 받고 있는 일본의 젊은 작가입니다. 이미 국내에도 독자층이 늘어나고 있다고 하네요. 2005년 [흙속의 아이]로 아쿠타가와 상을 수상하며 국내에 알려지기 시작했고, 2009년에 [모든게 다 우울한 밤에]로 한국 독자들의 사랑을 받았다고 합니다. 데뷔 이래로 인간의 내면에 굼실거리는 어둠에 대해 이야기했던 작가가 새 장편소설 [쓰리](자음과 모음)는 순문학적 깊이를 남기면서도 이야기의 즐거움에 주목하며 쓴 걸작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쓰리]는 '오에 겐자부로 문학상'을 받았지요. 일본의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오에 겐자부로가 혼자서 직접 그해 출간된 도서의 성과와 문학적 가능성을 평가해서 수상작을 선별하는 상입니다. 그 외에도 '노마 문예상'도 받고, 상복이 많군요.

 

"순수문학 서적이라도 책은 재미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서스펜스나 미스터리 요소를 더해서 페이지를 넘길수록 점점 더 이야기에 몰입하게 되는 작품을 쓰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이 책 [왕국]은 작가의 열번째 소설입니다. 작가는 [쓰리]라는 소설을 집필 할 때, 그 이야기의 속편이라기보다 자매편을 쓰고 싶다고 생각했답니다. 어느 쪽을 먼저 읽어도, 혹은 어느 한쪽만 읽어도 재미있게 즐길 수 있는 그런 작품. [쓰리]는 아직 못 읽어봤고, [왕국]을 먼저 보게 되는군요.

 

"가장 갖고 싶은 것은 내 손에 들어오지 않는다는 걸 깨달은게 언제쯤이었을까." 로 첫 문장이 시작됩니다.  처음부터 '창녀'라는 단어가 나오는군요. 유리카라는 이름을 갖고 있는 주인공은 창녀라기 보다는 누군가의 대가성 지시를 받고 타겟(남성)을 약물로 기절시킨 후 타겟 당사자가 돈으로 메꿀수밖에 없는 약점을 만드는 것입니다. 조작된 사진이나 동영상이 지시자에게 전달됩니다.

 

달. 이 작가도 [1Q84]를 쓴 무라카미 하루키 만큼이나 '달'을 좋아하는군요. "머리 위에는 네온 불빛까지 비춰주는 달의 광채가 있었다. 해가 저문 뒤에도 그 불빛을 훔쳐내고 우리 같은 존재를 비춰주는.....달" 

 

이러한 장르의 소설이 지니고 있는 특성 그대로 템포가 빠릅니다. 주인공 유리카라는 여인이 미션을 매끈하게 잘 수행하는군요. 유리카에겐 가족이 없습니다. 아동 시설에서 성장했지요. 왜 여성 킬러가 주인공인 영화를 봐도 주변에 가족이 없잖습니까? 그 분위기 그대로 입니다.

 

중반을 넘어서며 대립되는 두 암흑세력의 중간에 핑퐁처럼 오가게 됩니다. 일단 위험한 상황을 나름대로 지혜롭게 잘 넘기고 있군요. 암흑가의 보스 하나의 입을 통해 작가는 소크라테스를 등장시킵니다. 그렇고 그런 스토리로만 전개하기엔 뭔가 허전했던 모양입니다.

 

뭐라고 하나 들어보시렵니까?  "그(소크라테스)는 머릿속에서 어떤 소리가 들리는 사람이었어. 그에게 예언자의 기질이 있었다는 얘기야. (....) 그는 뛰어난 사변(思辯)능력 때문에 주위로부터 소외되어 재판에 부쳐졌어. 거기서 감형을 청하면 죽지 않을 수도 있었는데 그는 자신의 주장을 소리 높여 부르짖는 바람에 빈축을 사고 결국 사형에 처해졌지...흥미로운 것은 그런 그에게 들렸다는 목소리의 성질이야. 그 목소리가 그를 채근하는 일은 없었지만 그의 행동을 제지하는 목소리였던 모양이야. 그는 그 목소리를 신적인 것으로서 감사하게 여기고 목소리가 이르는 대로 살았어."

 

작가가 소설의 중량을 올리기 위해 등장시킨 소크라테스. 덕분에 그를 잠시 생각하고 지나갑니다. 물론 소설의 전체적인 흐름에선 스치듯 지나갑니다만, 후반부에 덧붙인 '내면의 소리'는 한 번 생각해보고 지나갈 부분이긴 합니다. 우리가 삶에서 중차대한 무언가를 결정해야 할 때 직관이나 내면의 소리에 마음을 기울이게 되지요. 이 소설의 컬러에는 어울리지 않는 이야기지만, 소크라테스의 변론 중에서 기억에 남는 부분을 옮기면서 리뷰를 마무리합니다. 아, 일단 이 소설 [왕국]은 재밋게 봤습니다.

 

"왜 더 많은 재산과 명예를 얻는 데는 마음을 쓰면서 지혜를 사랑하고 영혼을 완성하는데는 생각도 않은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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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음사

안녕하세요 민음사입니다.


어린이날, 어버이날, 스승의날, 성년의날이 있는

사랑과 감사의 달 5월에

화사한 봄의 기운을 담아 지인분들께 안부인사를 전해보는 건 어떨까요?


민음사에서는 이번 신간 『공부와 열정』서평단을 모집하고자 합니다.


이 책은 <갈매기의 꿈>을 쓴 리처드 바크의 둘째 아들이자 16살에 학교를 그만두고 스스로 공부해 20살에 애플의 최연소 매니저가 된 제임스 마커스 바크의 신작입니다.


 

“이 세상 누구도 배울지 말지를 선택하지 못한다. 그렇지만 어떤 식으로 배울지는 선택 가능하다. 이는 살면서 평생 하는 고민이다.

이 책은 내가 어떻게 나름의 학습법을 고안했는지, 비정통식 학습으로 어떻게 성공했는지, 그리고 어떻게 하면 당신들도 나름의 방식으로 성공할 수 있는지를 소개한다.”




이 책을 

자기 계발을 위한 학습 욕구가 높은 분들이나

중고등학생을 자녀로 둔 학부모님들께 추천합니다. 많이 응모해주세요^^


서평단 모집 상세내용

 

- 응모 방법 : 리뷰 페이지를 자신의 블로그에 스크랩 한 뒤 읽고 싶은 이유를

간단하고 성실하게 댓글로 작성하여 스크랩 링크와 함께 남겨주면 응모 완료.

- 응모 기간: 2013.05.07 - 2013.05.19 

- 추첨 인원: 30명

- 서평단 발표: 2013.05.20 오후

- 서평 기간: 2013.05.23-2013.0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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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로 중용을 풀다 이한우의 사서삼경 2
이한우 지음 / 해냄 / 201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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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고전(東洋古典)을 생각하면 떠오르는 것이 사서오경(四書五經) 또는 사서삼경(四書三經)입니다. 이는 유교의 경전으로, 경전 중에 가장 핵심적인 책이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사서(四書)는 "논어(論語)", "맹자(孟子)", "대학(大學)", "중용(中庸)"을 말하고, 삼경(三經)은 "시경(詩經)", "서경(書經)", "역경(易經)"을 말합니다.  삼경(三經)에 "춘추(春秋)"와 "예기(禮記)"를 합해 오경(五經)이라 부르고, 합해서 사서오경((四書五經)이라 부릅니다.

 

사서삼경 또는 사서오경은 여전히 먼 그대입니다. 멀리 하기엔 너무 가까운 존재(서가에  몇 권이 자리잡고 있기에)임에도 불구하고, 가까이 하기엔 먼 존재(선뜻 손이 잘 안 갑니다)로 자리잡는 이유는 한 마디로 어렵기 때문입니다. 간간히 책을 읽으면서도 이해되는 부분보다 안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 책 [논어로 중용을 풀다]의 저자인 이한우는 프로필을 통해 대학에서 영문학을, 대학원에서 철학을 공부한 것으로 소개됩니다. 10여 년에 걸쳐 [조선왕조실록]을 탐독하며 조선 군주의 리더십 연구에 몰두해 온 저자는 인문적 깊이와 감각적 필치가 돋보이는 [이한우의 군주열전] 시리즈로 태종, 세종, 성종, 선조, 숙종, 정조에 대한 저서를 펴내면서 역사학계뿐 아니라 정치학자들에게까지 통시적 사회 읽기의 새로운 방향을 제시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중용(中庸)"은 사서(四書)중에서 가장 추상적이고 난해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책의 지은이에 의하면 "중용"이 그렇게 난해한 책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그런 인식이 든것은 바로 번역과정에 있다는군요. 글자 한 자 한 자까지 깨치고 들어가는 번역을 하지 않는 한 이해불가라는 것입니다.  그 예를 듭니다.

 

唯天下至聖 爲能聰明睿知 足以有臨也 

"오직 천하의 지극한 성인(聖人)이어야 총명예지(聰明睿知)가 족히 임할 수 있다." 

이렇게 번역이 되어 있기때문에 그 뜻을 헤아리기가 더욱 힘들다는 이야깁니다. 지은이가 이를 다시 번역해보았답니다.

"오직 천하제일의 성스러운 임금만이 능히 귀 밝고(聰) 눈 밝고(明) 사리에 밝고(睿) 사람에 밝아(知) 족히 '제대로 된 다스림(臨)이 있을 수 있다."

 

이를 비교해보니, 수긍이 갑니다. 마치 위의 번역은 한글과 영어가 뒤섞여있는 느낌을 받게 되는군요. 지은이는 얼마 전 우리 사회에 "중용"붐을 일으킨 도올 김용옥의 번역도 지적하고 있습니다.  "중용"이 읽기 어려웠던 이유 두 번째로 사서(四書)읽기의 순서와도 상관이 있다고 합니다.

"중용"에는 추상적이고 모호한 말들이 많기 때문에 맥락과 단어를 함께 잡아내는 훈련이 되어 있지 않고는 제대로 읽어나가기 어렵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열쇠가 "논어"에 있다는 것이지요.

물론 "논어"를 체계적으로 치밀하게 읽는 과정이 선행되어야 합니다. 이래저래 갈길이 멀어지는군요.

 

그러면 이제 왜 21세기에 우리는 "중용"이라는 책을 읽어야 하는가. 지은이는 "중용"만큼 간결하면서도 핵심을 찌르는 책을 찾아보기 힘들다고 합니다. "논어"역시 인간 관계론의 보고(寶庫)라고 알려져 있지요. 그렇지만, "논어"에는 수기(修己)와 치인(治人)이 한데 어우려져 있는 반면 "중용"은 수기(修己), "대학(大學)"은 치인(治人)에 집중하여 공자(孔子)의 생각을 일목요연한 체계로 보여주는 특징이 있다는 것입니다.

 

원래 고대 중국에는 "중용"이나 "대학'이라는 경서가 없었답니다. 송나라 때의 학자 주희(朱熹)가 "예기(禮記)" 49편 중 제31편을 따로 빼내 집주를 달고서 "중용"이라 붙이고, 제42편을 끄집어내어 집주를 달고서 "대학"이라 이름을 붙여 경서의 지위를 부여한 것이라고 합니다. 따라서 "중용"이나 "대학"을 그 자체만으로 소화시키는데는 무리가 있다는 이야깁니다. "논어"가 그 땅을 일구는 보습이 되어야한다는 것이지요.

 

지은이는 독자가 스승의 도움 없이 혼자의 힘으로 사서(四書)를 읽을 경우 "논어", "중용", "대학", "맹자"순으로 읽을 것을 권고합니다. 이는 조선시대 때 사서(四書)를 읽어 나가던 순서와는 차이가 있습니다. 전통적으로는 먼저 "대학"을 읽고 이어 "논어"와 "맹자"를 읽은 다음 "중용"으로 마무리를 했습니다. 그러나 지은이는 난이도를 감안해서 중간 정도의 난이도를 갖고 있는 "논어"를 먼저 읽고 보다 깊은 "중용"과 "대학"을 읽고 추상도 면에서나 시기적으로 사상적으로 처지는 "맹자"를 읽어 나가는 것이 좋겠다고 합니다. 앞으로 이러한 점을 감안해서 사서오경의 들과 산에서 호흡해보렵니다.

 

책을 읽으면서 느끼는 단상을 함께 옮겨봅니다.
"사람들이 자신을 알아주지 않는 것을 걱정하지 말고 오히려 자신이 다른 사람들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것, 혹은 남을 제대로 알아주지 못하는 것을 걱정하라."  ('學而 16')

나부터 그러하지만, 사람들은 받는 것에 익숙해있고 기대를 하면서도 막상 주는 것에는 매우 인색합니다. 내가 어디에가서 대접을 잘 못 해준다고 화를 내면서 나는 다른 사람들에게 그렇게 마음의 배려를 해주었는지 돌아보게 됩니다. 그런 경우 종종 겪어보시지요? 목에 잔뜩 힘을 주면서 "내가 누군데?"
나원참..내가 당신을 어찌 알겠오. 그리고, 설령 내가 당신이 그 위치에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할지라도, 힘을 쓸데에서 써야지. 아무데서나 그리하면 어쩌오. 일상에서 가끔 부딪는 상황입니다.

지은이는 앞서 밝힌데로 "논어"를 통해 "중용"의 문구들을 이해하도록 돕고 있습니다.

 

공자가 말했다. "사람들은 하나같이 '나는 다 아는 사람이다'고 말하지만 (정작 그들은) 그물이나 덫, 혹은 함정의 한가운데로 몰아넣어도 그것을 피할 줄을 모른다. 또 사람들은 하나같이 '나는 다 아는 사람이다'고 말하지만 (정작 그들은)중하고 용하는 것(中庸) 을 택하여 제대로 한 달을 버텨내지도 못한다."

 

이 말은 "논어" '옹야(雍也)5'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고 합니다. 오랫동안 중하고 용한다면(中庸) 그 사람은 어진 사람(仁者)이기 때문이라는 것이지요.
공자는 말했다. "안회는 그 마음이 삼 개월 동안 인(仁)을 떠나지 않았고, 그 나머지 제자들은 하루나 한 달에 한 번 인(仁)에 이를 뿐이다."

 

동양고전의 멘토 신영복 교수님은 동양고전을 대함에 독자들이 현독(賢讀)을 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먼저 텍스트를 읽고 다음으로 그 텍스트의 필자를 읽고 마지막으로 자기 자신을 읽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나의 독서생활을 돌아 볼 때 여전히 텍스트에서 헤매고 있는 모습을 바라보게 됩니다. 천천히라도 꾸준히 가다보면 나 자신을 읽을 경지까지 가겠지요. 아뭏든 이 책을 통해서 사서(四書)읽기에 대한 밑그림이 그려지고 있습니다. 지은이가 "논어'와 "중용"에서 나오는 내용들을 어떻게든 보다 쉽게 전달하기 위해 애쓰고 있는 모습이 이곳 저곳에서 느껴집니다. 이 책을 읽고 "논어"와 "중용"을 따로 다시 읽어보는 방법도 좋겠습니다. 단, 지은이가 우려하는 것처럼 제대로 성실하게 번역이 된 책을 만나는 것이 관건인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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