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를 점령하라 - 자본주의 넘어서기
리처드 울프 & 데이비드 버사미안 지음, 한상연 옮김 / 돌베개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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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이 책에 등장하는 몇몇 단어가 갖고 있는 의미가 무겁습니다. 신자유주의,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 점령운동 등이 키워드입니다. 이 책은 미국의 저명한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자인 리처드 울프를 상대로 인터뷰 전문작가인 데이비드 버사미언이 대화를 나눈 것입니다. 신자유주의는 1970년대부터 떠오른 경제적 자유주의 중 하나입니다. 고전적 자유주의가 국가개입의 전면적 철폐를 주장하는데 비해, 신자유주의는 강한 정부를 배후로 시장경쟁의 질서를 권력적으로 확정하는 방법을 취합니다.

 
"개인이 커피 한 잔과 샌드위치 한 조각으로 점심식사를 하면서 낸 돈은 비용으로 인정받지 않습니다. 하지만 기업 CEO나 은행가가 뉴욕의 값비싼 레스토랑 포시즌스에서 점심식사를 하면 기업의 비용으로 인정받는데요. 이에 대한 이야기를 나눠볼까요?"

 

경제적 불균형에 대해 이런 질문만큼 리얼한 것이 없을 듯 합니다. 기업과 부자가 고용한 로비스트의 압력으로 세법에 예외조항이 덧붙여져 이와 같은 상황이 만들어집니다. 이 로비스트들의 목표는 단 하나,부자와 기업의 세 부담을 줄여주는 것입니다. 반면에 소득세법에 대해 무지할 수 밖에 없는 일반인들은 속절없이 뺏기고 맙니다. 부자와 기업은 더 악착같이 절세, 감세에 대해 무섭게 파고듭니다. 이들이 고용한 세무사나 변호사가 그 역할을 대신합니다. 편법과 꼼수가 동원됩니다. 평범한 개인이 점심 때 샌드위치를 사 먹은 식비나 가족과 함께 호숫가에서 주말을 보내며 지출한 휴가지를 공제 대상 비용으로 인정해주지 않습니다. 수입에서 공제 가능한 비용 항목의 폭이 무진장 좁습니다. 기업과 부자가 공제받는 세금이 늘어날수록 정부는 중산층과 저소득층에게 더 많은 세금을 부과해야 합니다. 기업과 부자가 회피한 납세의무를 누군가에게 떠넘기지 않으면 줄어든 세수를 확보할 길이 없어서 그러합니다.

 

미국의 상황입니다. 한국과 많이 다르다고 생각하시는지요?


우리나라에서 신자유주의는 주로 노동 시장의 유연화 (해고와 감원을 더 자유롭게 하는 것), 작은 정부, 자유시장경제의 중시, 규제 완화, 자유무역협정(FTA)등의 형태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규제없는 시장은 경제 성장을 촉진시키는 최선의 방법이며, 경제 성장은 궁극적으로 모든 사람을 이롭게 할 것이다". 라고 주장합니다. 과연 그런가요? 또 한 가지 간과할 수 없는 것은 사유화(민영화, Privatization)입니다. 국가 소유의 공기업, 상품과 서비스를 사적 투자자에게 팔고 있습니다. 민영화 대상에는 주요 산업체, 철도, 유료 고속도로, 전기등 서민들이 피부로 느끼는 시설물들이 포함됩니다. 종종 요구 되는 효율성의 증대라는 미명하에 진행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민영화는 주로 몇몇의 손에 부를 집중시키며 대중들이 수요를 위해서 보다 많은 지출을 해야 하는 결과를 가지고 있을 뿐입니다.

 

점령운동은 2011년 9월 17일 뉴욕의 주코티 공원에 캠프를 설치하면서 시작된 '월스트리트 점령운동'을 통해 널리 알려졌습니다. 그러나 4개월 앞선 5월 중순 스페인의 마드리드에서 시작되어 스페인 전역과 세계로 확산되었단 사실을 추가합니다. "우리가 바로 99퍼센트다!"라며 경제 민주화를 요구하게 되는 것이 공통점입니다. 1980년대 이후 세계적으로 계속 심화된 경제적 불평등에 대한 다수 대중의 저항의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뉴욕의 점령운동을 도화선으로 삼아 한때 운동은 급속히 확산되어 불과 한 달 만에 세계 82개국의 95 도시에서 점령운동의 캠프가 설치되었습니다. 특히 미국에서는 이 기간에 600개 이상의 커뮤니티에 캠프가 설치됩니다. 행정당국은 처음에는 비교적 관용의 태도를 보였지만 운동이 계속 확산되는 양상을 보이자 두 달 만에 태도를 바꾸어 2011년 말까지 대부분의 운동캠프를 강제로 철거합니다. 전체 운동의 사령부라고 할 수 있는 미국의 워싱턴 D.C와 런던캠프도 2012년 2월에 결국 철거됩니다. 막강한 공권력의 승리입니다. 

 

점령운동이 자본주의의 정당성이라는 중차대한 쟁점을 놓고 토론을 요구하고 나서자 자본주의의 품 안에서 편히 지내온 정치인, 언론인, 학자 등은 허둥대기만 합니다. 점령 운동의 요구가 어떤 역사적 의미를 갖는지 깨닫지 못한 탓입니다. 정치인들은 그저 진행과 확산을 막기에 급급했습니다. 자진해서 악역을 맡은 자는 누구인가? 뉴욕 시장 볼룸버그입니다. 선진국에서 제일 지저분한 지하철 시스템과 허술하기 짝이 없는 쓰레기 처리 시스템을 방치한 인물, 고작해야 만화가의 영감을 불러 일으킬 뿐인 제설 시스템을 관라한 데 그친 무책임한 인물. 도시 미관을 핑계로 점령운동을 탄압합니다.

 
이 책에 실린 대담은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과 토론을 억압하는 분위기에 도전하고 저항하자는 취지에서 기획되었습니다. 소득불평등이 더욱 확대되는 것을 염려하고 있습니다. 정부의 재정 지출 삭감정책은 서민들의 생활을 더욱 힘들게 만듭니다. 직접 생산과정에 참여하지도 않는 몇몇 이사진으로 구성되는 기업이 어떤 결정을 내리는가에 따라 자본주의 기업 내부의 대다수 노동자와 그 인근 지역사회 주민의 삶은 순식간에 달라질 수 밖에 없습니다. 이 시점에서 경제 민주화 과정이 필요하다는 이야깁니다. 중병에 걸린 '자본주의'를 다시 건강한 모습으로 다시 일으켜세우기 위해 어떻게 할 것인가를 고민하고 있습니다. 아울러 점령운동이 다음 단계로 나아가기 위해 앞으로 출현할 행동주의 세대의 역량과 단결력을 강화하는데 필요한 의식과 개념, 원칙과 가치를 만들어내기 위한 방향을 제시해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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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 정석 - 일반인을 위한
배상복 지음 / 경향미디어 / 200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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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어떤 분야에 재능을 타고난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일반사람들이 재능을 타고났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알고 보면 피눈물 나는 노력에 의해 그런 경지에 도달해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저 놈은 문학에 대한 재능을 타고 났어’ 하는 표현을 쓰는 사람들을 만나면 구둣발로 엉덩이를 세차게 걷어차 주고 싶은 충동을 느낀답니다. 누가 이렇게 심한 말을 했냐구요? 감성 마을에 입성한 후 표정이 좀 더 밝아지신 이외수 선생입니다. 굳이 '글쓰기'를 '문학'이라는 장르 안에 묶어 놓고 싶은 생각은 없지만, 그래도 글을 잘 쓴다는 것은 문학적 소양이 있다는 이야기지요.

 


그러나 까짓 엉덩이 한 번 걷어차이는 셈 치고 한 마디 해야겠습니다. "선생은 '글쓰기'와 '글씨 쓰는 것'을 혼동하는것은 아니신지요. 글씨 쓰는 것이야 회초리를 맞아가면서 훈련 하다보면 악필이 명필이 될 수도 있지만, 글을 잘 쓰는 것은 틀리지요. 글 쓰는 재능까지는 못 가더라도 최소한 재미는 느껴야 하지 않겠습니까?"  제가 그렇거든요. 아직은 재미 수준입니다. 솔직히 재능까지는 자신 없습니다.

 

 

작가가 될 생각이라면 모를까 일반적인 글쓰기를 위해 피눈물 나는 노력까지는 좀 무리 인듯 하구요. 그냥 조금이라도 잘 쓸 수 있으면 다행이지요. 그래서 이 책을 읽었습니다. 저자는 1987년 중앙일보에 입사해 현재 중앙일보 어문연구소 기자로 근무하고 있습니다. 중앙일보에 장기 연재하고 있는 '우리말 바루기' 와 블로그 '우리말 산책'을 통해 어렵고 딱딱하게 여겨질 수 있는 우리말과 글을 쉽고 재미있게 풀어 씀으로써 일반인들이 우리말과 글쓰기에 관심을 갖게 하는데 크게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꾸준히 글을 쓰다보면 이전에 몰랐던 자신의 소질을 발견하기도 합니다. 이미 다 알고 있는 이야기지만, '해리포터'의 저자 로앤 롤링은 비서일과 영어 강사를 그만둔 뒤 이혼 상태에서 일자리 없이 어린 딸과 생활 보조금으로 연명하다 단칸방에서 심심풀이 겸 동화를 쓰게 됩니다. 카페에서 다 식은 커피잔과 딸을 곁에 앉혀 놓고 글을 쓰기 시작했다는 이야기도 들었습니다만, 아뭏든 쓰기 시작했습니다. 베스트셀러를 꿈꾼 것이 아니라, 처음엔 '치유의 글쓰기' 였었을것 같습니다. 이렇게 쓰인 '해리포터'는 출판사에서  여러 차례 거절 당한 끝에 힘겹게 출간이 되었지만, 결국은 초베스트셀러가 되었지요. 조앤 롤링 역시 이전에는 자신에게 글 쓰는 능력이 있는 줄 몰랐다고 합니다.

 


저자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글쓰기를 두려워하고, 마음먹은 대로 잘 써지지 않는 이유는 개인의 능력이나 자질이 부족해서 그런 것이 아니라 전적으로 우리의 교육이 잘 못 되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요즘은 그래도 조금 나아지긴 했으나 여전히 주입식, 암기식 교육이 준 문제점이지요. 독서량의 절대 부족도 한 몫 하리라고 생각듭니다.

 


저자가 제안하는 몇 가지 Tip을 공유합니다.

- 글에도 리듬이 있다 : 가능하면 긴 문장 다음에는 짧은 문장, 짧은 문장 다음에는 긴 문장이 와야    단조로움을 피할 수 있다.

- 일관성 있게 써야 한다 : 조리 있게 말을 해야 하듯이 글도 조리 있게 굴러 가야 한다. 조리가 있다는 것은 앞뒤가 잘 들어맞고 체계가 똑바로 서 있는 것을 가리킨다.

- 군더더기를 없애라 : 군더더기란 없어도 되는 말을 뜻한다. '~이다'를 '~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또는 '~라 하지 아니할 수 없다' 고 하거나  '~해'를 '~하는 과정을 통해'라고 하는 등의 군더더기를 없앤다.

- 수식어를 절제하라 : 의미를 강조하기 위해 '아주'  '상당히'  '많은'등 수식어를 마구 덧붙이는 경향이 있으나 수식어가 많으면 문장이 늘어지고 읽기 불편하다.

- 접속어를 남용하지 마라 : 예) '더는 기다릴 수없어 담당자에게 전화를 했다. 그런데 마침 그는 자리를 비우고 없었다.'  그런데를 빼니까 문장이 깔끔해집니다.  '더는 기다릴 수 없어 담당자에게 전화를 했다. 마침 그는 자리를 비우고 없었다.'

- 쉼표가 많으면 지저분해진다.

- '들'을 줄여 써라 : 복수에 꼬박꼬박 '들'을 붙여 쓰는 것은 영어식 표현이다.

- '의'를 줄여 써라 : '~의'는 일본식 표현에서 온 것으로, 불필요한 경우가 많으므로 절제하는 것이 좋다.

- '것이다'를 줄여 써라.

- 제목을 잘 달아야 한다 : 핵심 내용, 흥미를 끌 수 있는 것, 공간에 맞는 길이, 지나친 명사 나열을 피한다.

 


책에는 실용문외에 기획서, 보고서, 자기 소개서를 잘 쓰는 방법을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인기 블로거가 되는 10가지 방법에 시선이 머뭅니다.

@ 하나의 주제로 특화해야 한다.  @ 글보다 시청각적인 것이 낫다.  @ 글은 짧게 써야 한다.

@ 제목이 반이다.  @ 매일 하나씩 올려라.  @ 발품을 많이 팔아야 한다. 

@ 시선을 끌만한 편집이 필요하다  @ 퍼가기 좋은 것을 많이 올려라  @ 친구 관계를 많이 맺어라

@ 쪽지 기능을 적절히 활용하라.

 


책의 중간 중간에 "다시 듣는 국어 수업" 이란 Tip이 실려 있군요. 맞춤법 공부를 하는 계기가 됩니다.   바람 / 바램 생각대로 되기를 원한다는 뜻인 '바라다'의 명사형은 '바램'이 아니라 '바람'이다. '바램'은 볕이나 습기를 받아 색이 변한다는 뜻인 '바래다'의 명사형이다. 만약 사랑을 얘기하면서 '우리의 바램'이라고 하면 '우리의 사랑이 빛이 바랬다'는 얘기와 같다.

 

 

 

저자 배상복 기자의 블로그

http://blog.joins.com/bsb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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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언스 이즈 컬처]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사이언스 이즈 컬처 - 인문학과 과학의 새로운 르네상스
노엄 촘스키 & 에드워드 윌슨 & 스티븐 핑커 외 지음, 이창희 옮김 / 동아시아 / 201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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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인간의 삶은 여러 갈래로 서로 얽히고 설켜 있습니다. 일례로 들면 기후 문제는 전염병과 연관 됩니다. 경제하고도 관계가 있습니다. 결국은 인간의 생사문제로 귀결됩니다. 지난 50년간 과학은 인간의 삶에 많은 기여를 한 만큼, 많은 희생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발달된 과학의 힘이 프랑켄슈타인이 되어 나의 목을 죌 날이 언젠가 올것입니다. 과학이 우리의 삶을 좀 더 편하게 만든다는 객관적인 평가가 따르지만, 삶의 질까지도 근본적으로 개선 시켜 준다는 것은 그 누구도 강력하게 주장을 못할 것입니다.

 

무엇보다 진도가 빠른 것이 '과학'입니다. 밀실에서 무언가 못 된 수작을 부리고 있는 그룹들도 있지만 과학은 그 빠름으로 정치, 경제, 예술, 지성의 지표를 바꾸어놓고 있습니다. 과학은 그 동안 인간들이 궁금해 하던 것들을 하나하나 규명해주고 있지요. 아직 풀지 못한 수수께끼들이 많이 남아 있음에도 불구하고 충실히 그 역할을 해나가고 있습니다. 

 

 

생각이 모아져야하고, 대화가 필요합니다. 20세기 가장 위대한 유대인 사상가 중 하나로 알려진 마르틴 부버는 그의 책 『나와 너』를 통해 '관계'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부버에 의하면 관계에는 크게 두 가지가 있다고 합니다. 하나는 ‘나와 그것’ 이라는 독백(monologue)의 관계이고 다른 하나는 ‘나와 너’라고 하는 대화(dialogue)의 관계라는 것이지요. ‘나와 그것’의 관계는 우리가 대하는 사람들이나 사물들을 그 이용 가치로 따져보는 관계입니다.  반면 ‘나와 너’라고 하는 대화(dialogue) 관계는  서로가 아무런 전제 조건이나 이해관계를 고려함이 없이, 순수한 두 존재가 그대로 만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여 생긴 유대관계에서는 서로 북돋아주고 서로 자라게 해주는 일이 가능해집니다.


이 책을 보면 이미 오래 전 이 땅을 떠난 마르틴 부버가 흐뭇해할 것 같습니다. 책에 소개되는 2인 1조의 대화를 보면, 한 테이블에서 서로 취향이 다른 두 사람이 각기 입맛에 맞는 음식에 젓가락을 자주 움직이면서 정겹게 식사를 나누는 모습을 보는 것 같습니다. 이 책의 키워드는 '과학과 문화'입니다. 과학이니 인문학이니 구분을 둔 것은 완전히 인간의 편의상 구분이지요. 과학 속에 인문학이 있고 인문학 속에 과학이 있기 때문입니다. 단지 사람들이 과학 그룹에 속하면 과학적으로, 인문학 그룹에 들어가면 인문학적인 사고로 생활해야 한다는 부담을 갖고 사는 것이지요. 안 그러면 왕따가 될지 모르니까요.



22개의 테이블에서 44명의 사람들이 대화를 나눕니다. 생물학자와 철학자가 만나고, 심리학자와 소설가가, 저술가와 안무가, 예술가와 생물학자, 환경운동가와 기후학자, 영화감독과 심리학자, 수학자와 큐레이터, 진화 심리학자와 다큐멘타리 영화 제작가 등등. 어찌 생각하면 서로 대화의 공통점이 모아지지 않을 것 같으면서도 각기 화기애애한 테이블을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공통점은 그들이 각기 그들의 분야에서 한 가닥씩 하는 사람들이라는 것, 남의 말을 들을 수 있는 귀가 있다는 것(귀는 없고 입만 살아 있는 사람들이 많지요) 그리고 아직 모르는 것이 많다는 사실을 표현하는 '겸손'입니다. 


그 중 한 테이블만 소개해드리겠습니다. 에드워드 윌슨이라는 생물학자와 대니얼 데넷이라는 철학자가 만났습니다. 두 사람 모두 책도 많이 쓰고, 고령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현역입니다.  두 사람의 대화 테마는 [진화철학]입니다.  버트런드 러셀이 한 말을 먼저 화두로 삼고 있습니다.  "과학은 우리가 아는 것이고 철학은 우리가 모르는 것"  철학자는 우리가 철학을 제대로 하려면 '철학사'를 공부하라고 권유합니다. 왜냐하면 철학사를 공부하지 않으면 같은 소리를 또 하게 된다는 것이지요. 이 점에 대해 생물학자도 공감합니다. 과학 역시 그렇게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회과학과 인문과학이 서로 융합하는 과정을 매우 흥미롭게 표현하는군요. 마치 두 척의 배가 나란히 서서 밧줄로 서로를 묶으려 하는 것과 같다고 합니다. 서로 상대편 배에 밧줄을 던지기는 했지만 배는 아직도 서로 삐걱거리며 부딪치기도 하고, 어느 곳에서는 밧줄을 너무 심하게 잡아당기기도 하는 것이 지금의 상황이라고 합니다. 두 분야가 워낙 오랫동안 서로 독립적으로 발전해온 터라 상호간에 불안감이 존재하는 건 당연하다는 견해를 밝히고 있습니다. 일단 서로 단단히 묶이기만 하면 괜찮겠지만 거기까지 가는 동안 두 척의 배는 심하게 흔들리면서 서로 부딪힐 것이고, 지금 우리가 이 과정을 지나가고 있다고 합니다. 이 점 공감하는 부분입니다.


햄릿에 나오는 대사 하나를 옮기면서 리뷰를 마무리 합니다.

 

"이 세상에서는 자네가 배운 학문으로는 상상도 못할 일들이 벌어진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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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공학 소비시대 알 권리 선택할 권리 - 한국인 식탁에 등장하는 GMO와 복제 쇠고기를 둘러싼 쟁점
김훈기 지음 / 동아시아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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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 용어도 상당히 정치적'이라는 저자의 말을 인용하면서 GMO를 설명하겠습니다. GMO는 'Genetically Modified Organism'의 이니셜입니다. 이를 두고 우리나라 정부와 개발자는 주로 '유전자 변형 생물체' 또는 '유전자 재조합 생명체'라고 부릅니다. 이에 비해 소비자나 시민단체는 '유전자 조작 생물체'라고 칭합니다. '변형'이나 '재조합'은 다소 객관적이고 과학적으로 느껴지지만 '조작'은 어떤 음모나 나쁜 의도가 담겨있다는 의미로 다가옵니다. 그래서 같은 용어를 두고 찬성과 반대 견해에 따라 표현이 달라집니다. GMO의 주체가 농산물(동물)일 경우 GM 농산물, GMO가 원료로 사용된 식품을 GM식품이라고 칭합니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마라 목숨이 음식보다 중하지 아니하며 몸이 의복보다 중하지 아니하냐."  (마태복음 6:25)  예수님이 이 말씀을 하실 때는 우리가 굶을까봐 염려 하고, 벗고 지낼까봐 염려하지 말라는 뜻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껜 죄송스럽지만 염려를 안 할 수가 없는 세상이 오고 말았습니다. 이미 우리의 식탁엔 우리가 미처 알아채지 못하는 사이에 GMO식품을 현 시점에서 16년간 먹어오고 있었다는 사실이지요. 영화나 TV를 보면서 나도 모르게 손이 들어가는 팝콘도 그렇습니다.

 

한국인은 언제부터 GM 식품을 먹었을까?
1996년으로 추정된다고 합니다. '추정'이라는 표현을 쓴 이유는 당시 우리나라 정부가 GMO의 수입에 대해 공식 집계를 내지 않던 시기이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1996년은 미국의 다국적기업 몬산토 사가 GM 콩을, 스위스의 다국적기업 노바티스 사가 GM 옥수수를 상업적으로 재배하기 시작한 해라고 하네요. 한국은 GM 농산물이 생산된 바로 그해부터 수입을 시작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합니다. 참 생각없이 부지런한 모습을 보게 됩니다. 특히 한국에 수입되는 식용 콩의 75%가 GM콩이라고 합니다.


한국은 왜 GM 농산물을 수입해왔을까?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고 표현합니다. 2000년대 한국의 전체 식량 자급률은 매우 낮았다고 하네요. 대략 27% 수준이었다고 합니다. 국내 생산으로 식량을 자급 할 수 없었으므로 나머지 부족한 식량을 수입해야 하는 실정이었고, 한국이 주로 수입하는 대상국이 GM 농산물을 만들기 시작했기 때문에 이를 어쩔 수 없이 수입하게 되었다는 이야깁니다. 하긴 농지가 이미 아파트나 공장 부지로 바뀌기 시작한지가 벌써 꽤 되었지요. 농사를 지으시는 어르신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한마디로 재미가 없다고 하십니다. 당신들 대에서 농사 짓기가 끝날 것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계시는 분들도 있습니다. 농사를 짓는 것보다 다른 용도로 땅이 팔리면서 큰 돈이 손에 쥐어지는 유혹도 떨굴 수가 없겠지요. 그러니 멀리 갈 것도 없이 당장 우리네 현실은 수입 농산물의 의존도가 높아 질 수 밖에 없습니다.


왜 GMO가 문제가 되는가?
소비자 입장에서 GMO에 대해 가장 관심이 가는 부분은 GMO를 섭취 할 때 인간이나 동물의 건강에 해가 있는지, 그리고 GMO가 주변 농산물이나 생태계에 나쁜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한 내용일 것입니다. 그러나 이 판단 과정이 석연치 않습니다. 일단은 GMO제조 업체에선 당연히 무해하다고 주장 할 것이고, 이를 감독하는 관청이나 학자의 양심을 걸고 과학적인 분석을 해야하는 과학자나 심사위원들이나 모두가 신뢰가 가지 않는군요. 그 이유는 굳이 언급하지 않겠습니다. 이미 짐작이 가는 부분들이니까요.


"2012년 9월 프랑스 연구진은 쥐를 대상으로 2년간 생체 실험을 한 결과 GM 옥수수 NK603이 종양을 비롯한 각종 장기 기능 이상을 일으켰다고 보고했다. 그런데 NK603은 바로 한국이 2002년 식용으로 수입을 승인한 품목이다. 이미 10여 년간 한국 소비자가 섭취한 종류의 GM옥수수 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GMO의 생산량은 계속 증가하고 있는가?
GMO를 생산해야 한다는 주장의 가장 큰 근거는 식량 문제 해결이라고 합니다. 세계 인구가 급격히 증가하고 있지만 빈곤과 기아, 영양 부족 등의 문제는 여전히 심각하다고 합니다. 2011년 10월 31일 세계 인구는 70억 명에 달했다는 통계가 있습니다. 2011년 한 해에만 세계 인구가 7800만 명이 증가했다고 합니다. 현재도 세계에서 1초에 2.5명, 1분에 150명씩 새로운 생명이 태어나고 있습니다. 그리고 70억 명 중 10억 명은 굶주리고 있다고 합니다. 2050년에는 세계 인구가 100억 명에 달할 것이라는 예견도 나오고 있습니다.  그런데 식량 부족 현상에는 '불편한 진실'이 숨어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할 것 같습니다. 거대한 다국적 기업들이 자기네들의 농산물 가격을 상향 조정하기 위해서 엄청난 양의 농산물을 태워버리거나 묻어버린다는 이야기 혹시 들어보신 적 없는지요.


책의 '부록'에는 '유전자 조작 식품'이라는 문제를 가지고 시민 패널 14인이 전문가들과의 만남의 장을 만든 이야기가 나옵니다. 구분되는 점은 전문가들은 과학자 또는 과학기술 분야의 종사자들이고, 시민들은 과학과는 무관한 사람들이라는 것이지요. 시민 패널 보고서 요약문에 실린 내용 중 깊이 공감이 가는 부분이 있었습니다. 아마 제가 그 패널에 참여했어도 같은 의견을 제시 했을 것입니다.


유전자 조작 식품이란 무엇이며 그것은 필요한가? (시민 패널 보고서 요약문 중에서)
"유전자 조작 식품이 필요한가에 대해서는 우리는 합의를 이루지 못했다. 유전자 조작 식품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우리나라의 낮은 식량자급도, 특정 알레르기를 가진 사람들을 위한 식품 개발 가능성, 생명공학 산업의 국제경쟁력 대비를 통한 외국 종속 탈피를 제시 할 수 있다. 반면에 불필요성에 대해서는 유전자 조작 식품에 의한 식량문제 해결이라는 주장에 대해 의심의 여지가 있으며, 식량문제의 해결은 식량 증산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 경제적인 모순에 의한 것이라는 점을 지적 할 수 있다. 이와 함께 국제경쟁력 논리에 과도하게 의존하여 필요성을 주장하는 것을 비판한다."


전체적으로 저의 생각은 GMO에 대해 부정적입니다. 우선 발상 자체가 순수하게 인류의 먹고 사는 문제를 염려해서 막대한 자금과 긴 시간을 통해 연구가 되었다고 할지라도 이미 대량 생산, 수출 수입되는 과정 그리고 식품의 안전도, 환경 문제를 판단하는 중에 석연치 않은 부분이 많이 드러났기 때문입니다. 비근한 예로 GMO식품을 판단하는 국내 심사위원회의 정체가 노출되지 않고 있습니다. 공정한 심사를 위해서 밝힐 수가 없다고 변명하지만, 수입업자와 심사위원들이 서로 형님, 아우 하고 잘 지내고 있는 모습이 그려지는 것을 어찌하겠습니까. 제가 너무 부정적인가요?


정부 기관도 한 몫 하고 있습니다. 국내엔 수입 유통 되는 과정 중에 불법으로 유출된 GMO가 상당히 많이 분포되어 재배되고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유출된 GMO에 대한 정보 공개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점이 문제로 지적되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농림수산식품부의 농식품 안정정보서비스엔 국내 현황에 대한 조사 결과는 없고, 일본의 그것(GMO의 유출 실태와 주변 농산물에 미치는 영향)을 번역해서 소개해주고 있다고 합니다. 이건 또 무슨 시츄에이션입니까?


GMO 이야기 외에도 책에는 복제 소살코기와 우유, 슈퍼 언어, 줄기세포 그리고 별로 호감이 가는 내용이 아니지만 복제인간등에 대한 이야기가 실려 있습니다. 저자는 GMO에 비해 복제 동물 또는 그 후손을 이용해 생산한 식품은 기존의 동물 식품에 비해 품질이 향상될 가능성이 있다는 긍정적 관점을 표현하고 있습니다만, 아뭏든 GMO가 되었던 복제 된 것이던 두 눈을 크게 뜨고 관심 깊게 바라봐야겠습니다.


이번 음력설엔 카톡으로 비록 그림의 돈이지만, 돈 보따리와 함께 "소고기 사 드세요~"라는 내용이 제법 들어왔습니다. 이번 음력설 키워드는 '소고기' 였나봅니다. 그런데 GMO와 '복제'가 소고기를 다시 들여다보게 만드는군요.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은 물론, 우리의 아이들 그리고 그 아이들까지 먹거리를 놓고 먹어야 하나 말아야 하는 고민이 없어지기를 소원합니다.  먹다 죽는 한이 있더라도 먹고 배를 채울 수만 있으면 좋겠다는 사람들에겐 참으로 죄송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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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과 우주에 대해 아주 조금밖에 모르는 것들
강봉균 외 지음 / 낮은산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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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언스(Science)] 잡지는 미국과학진흥협회(AAAS)에서 발행하는 과학 전문 주간지입니다. 1880년 에디슨(Thomas Alva Edison)이 투자한 1만 달러로 창간한 뒤, 1900년 미국과학진흥협회가 인수하면서 미국을 대표하는 과학잡지로 자리잡았습니다. 영국의 과학잡지 《네이처 Nature》와 함께 세계 과학저널의 쌍두마차로 불릴 정도로 과학계에 미치는 영향력이 크며 그 내용은 물리학·화학·생물학·우주과학 등 종합과학을 다루고 있습니다. (두산백과 참조)

 

Cover image expansion

 

 

 

1980년대 초 현재 서울시청 을지로별관에 있던 옛 미문화원 2층 도서관에 가서 [사이언스]잡지를 열심히 읽었었지요. 그 문화원을 생각하면 제가 그 곳을 드나들던 그 시절 1985년 5월 삼민투위 소속 대학생들이 '미문화원 점거농성'을 했던 기억이 오버랩니다. 그 자리엔 제가 없었습니다만..


2005년에 [사이언스]가 창간 125주년을 맞아 우주와 자연, 생명과 의식에 관한 가장 중요한 125개의 질문을 선정했습니다. 과학자들 사이에서 크게 화제가 됐던 이 질문들은 질문 자체가 또 다시 수많은 질문을 양산할 정도로 범위가 큰 것이 있기도 하지만, 누구나 흥미를 느낄만큼 보편적인 물음도 많습니다.  예를 들면, 우주의 생물체는 우리만일까?  어떠한 유전적 변화가 우리를 인간일 수 있게 만들었을까? 온실 효과로 지구는 얼마나 더워지게 될까? 무엇이 사춘기를 유발시킬까? 왜 임산부는 자신의 태아에 거부 반응을 보이지 않을까?  생체시계는 어찌 이렇게 정확할까?  어떤 공룡들은 왜 그렇게 컸을까?  등등입니다.

 


그 외에도 질문 자체도 선뜻 이해하기 힘든 중요한 질문들에 대해 평생을 과학을 연구하는 내노라하는 과학자들 조차도 아직 명확한 답을 찾지 못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이 책이 태동하게 된 동기부여는 이미 과학 비전공자들에게 과학에 관한 흥미와 지적 유희를 유도하는 여러 권의 저서를 쓴 KAIST 정재승 교수의 역할이 컸던 것 같습니다. 


[사이언스]에서 제시한 이 질문들을 보면서 묘한 호기심이 발동되었다고 합니다. 과연 대한민국 최고의 석학들은 이 질문에 대해 어떤 답을 가지고 있을까? 그들에게 이런 질문들은 과연 어떤 의미일까? 이런 엉뚱한 호기심에서 시작되어 이 책이 세상에 나오게 됐다고 합니다.


 

생체시계는 어찌 이렇게 정확할까?

만약 시간생물학(Chronobiology)을 연구하는 생물학자들에게 '인류 최악의 발명품'이 무엇이라 생각하느냐고 묻는다면, 그들은 1초의 머뭇거림도 없이 '자명종'이라고 답할 것이라고 합니다. 그 이유는 지금까지 이뤄진 연구결과에 따르면, 우리가 자고 깨는 리듬, 일주기 리듬을 관장하는 생체시계는 뇌에 있다고 하며 빛에 의해 영향을 받는다는 것이지요. 그런데 자명종은, 빛에 영향을 받고 수면과 각성을 조절하는 생체시계는 제대로 깨우지 않은 채, 소리로 대뇌 피질(cerebral cortex)만 깨우기 때문에 사람의 일주기 리듬을 망가뜨리고 하루 종일 피곤하게 만들 수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모든 자명종은 자명등으로 바뀌어야 한다는 것이지요. 하긴 언젠가 저도 세미나 참석차 내려간 숙소에서 알아서 이른 아침에  일어나야 할 경우에 TV로 모닝콜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만(빛에만 의존할 수 없어서 볼륨도 올려놓고), 소리에 익숙한 분들에겐 그냥 그 방법대로 가야겠지요. 세상에 일어나는 수많은 안전사고의 원인이 생체리듬이 깨어져서 왔다는 이야기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그 생체시계는 어디에 있을까요? 그 위치를 찾기 위해 과학자들은 지난 100여 년간 많은 노력을 해왔다고 합니다. 많은 시행착오 끝에 드디어 찾아냈습니다. 아니 엄밀하게 따지면 후보를 하나 세운 셈이지요. 일단 그 위치는 뇌에 있다고 단정하고, 우리 몸의 생체시계가 빛의 영향을 받는다는 사실에 주목한 과학자들은, 빛이 눈으로 들어온 뒤 가게 되는 뇌의 좌우 신경이 교차하는 곳, 즉 시교차 위에 있는 시교차상 핵을 그럴 듯한 생체시계 후보로 지목하게 됩니다. 


시교차상 핵은 2만 여개의 신경세포로 구성 돼 있습니다. 살아 있는 쥐의 시교차상 핵에 전극을 꽂아 신경세포들의 전기 신호를 측정해 보면, 24시간을 주기로 사인(sine)파에 아주 가까운 파형을 그립니다. 그리고 이곳을 망가뜨리면 체내 대부분의 기관이 보이던 24시간 주기적 양상이 사라지게 됩니다. 그러나 간과할 수 없는 사실은 시교차상 핵의 신경세포들이 서로 다른 주기가 측정된다는 사실입니다. 그 범위는 20시간에서 28시간 사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체내에서 함께 활동할 때는 정확히 24시간에 맞춰 리듬을 만들어 낸다는 것입니다. 시교차상 핵이라는 생체시계 내의 신경세포들은 서로 다른 주기의 리듬을 갖고 있으면서 어떻게 24시간이라는 동기화된 리듬을 만들어 낼 수 있을까? 이것이 바로 [사이언스]가 꼽은 '인류가 아직 풀지 못했으나 꼭 풀어야 할 가장 중요한 난제'가운데 하나인 것입니다. 

 


물론 이 숙제를 풀기 위한 역사상 많은 연구가 있었고 현재도 진행형입니다. 벽에 걸린 진자형 추시계들이 처음에는 따로 놀다가 어느 시점에 가서 같이 움직인다던가, 서로 엄청나게 멀리 떨어져 있던 조개들을 한 자리에 모아 놓았을 때, 각기 입벌리던 시간들이 다르다가 같아진다던가, 같은 기숙사 방을 사용하는 여학생들의 생리 주기가 일치하는 현상 등이 그 예입니다. 그런데 이랗게 영향을 주는 메카니즘이 무엇이냐 하는 점이 바로 풀어야 할 숙제라는 것이지요.

 

 

호지 사이클이니 나비어-스토크스 방정식들이니 타원형 곡선의 무한 유리수 해법이니 하는 머리가 조여드는 느낌의 질문은 넘어가고 좀 달달한 것으로 하나 더 옮겨 볼까요? 


쌍둥이는 비슷한 성격을 가질까? 그렇다면 성격은 유전에 의하여 결정된다고 할 수 있을까? 

미네소타 대학교의 부차르드 교수 역시 이러한 의문을 갖고, 같은 난세포에서 태어나는 일란성 쌍둥이를 오랜 기간 관찰해 보았다고 합니다. 그 결과 일란성 쌍둥이로 태어나서 어른이 될 때가지 자기에게 쌍둥이 형제가 있는지도 모르고 자라면서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는 쌍둥이가 같은 음료를 좋아하고, 같은 담배를 피우거나, 같은 종류의 차를 몰고, 취미도 같고, 직업도 같고, 같은 상표의 술을 마시며, 농담 할 때 같은 말과 몸짓을 사용함을 알 수 있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일란선 쌍둥이가 같은 성격을 갖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 주는 다른 연구 사례들도 있습니다. 이렇듯 아직까지는 일란성 쌍둥이의 셩걱이 유전에 의해 결정된다고 쉽게 단정 짓기는 어려운 상황입니다.

 

2012년 12월 31일, 같은 날에 불과 두 시간 간격으로 아기를 출산한 미국의 쌍둥이 자매 소식이

화제가 되었지요. 현지 언론은 “자매가 출산을 축하하기 위해 찾아오는 사람들을 위해 같은 병원에서 약간의 시차를 두고 차례로 아기를 낳았다.”고 보도했습니다. 쌍둥이 자매는 평소에도 시차를 두고 동일한 일을 해 사람을 놀라게 하는 일이 많았다고 합니다. 단번에 두 명의 손자를 본 쌍둥이 자매의 엄마는 “한 명이 새벽에 전화를 걸면 5분도 안 돼 또 다른 딸이 전화를 걸곤 했다.”며 “임신기간 중에도 우연의 일치가 많았다.”고 합니다.   ”쌍둥이 딸이 종종 (계획하지 않고도) 같은 일을 해 역시 쌍둥이라는 말을 들었다.”고 덧붙였습니다. 

 이래저래 쌍둥이도 연구대상입니다.

 

 

 

책 말미엔 '위험한 좌담'이라는 제하의 통섭의 식탁이 마련되어 있습니다. 노장 사상을 전공한 강신주 그리고 역시 철학 전공의 김용석 두 사람이 이 책의 기획자인 정재승과 함께 과학과 인문학을 이야기합니다. 자리가 자리인지라 타이틀은 이렇습니다.

 

"과학, 너 누구냐?" 

 

 

P. S : 그런데 말입니다. 우리 말이 참 어렵네요. 책 제목에 '~아주 조금밖에 모르는 것들'.

         흔히 그리고 무심코 쓰는 말이기도 하지요. '나, 조금밖에 몰라' 라는 말을 연상해서 
         이와 같은 제목이 붙었겠지만, 책 제목을 이렇게 바꿨으면 좋았겠다 생각이 듭니다.
         "인간과 우주에 대해 풀지못한 수수께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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