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레즈네프가 죽고 몇 달이 지난 1983년 4월 경제학자와 사회학자 수백 명이 소련의 영속적인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시베리아의 노보시비르스크에 모였다. 이 모임에서 다룬 질문은 “누구에게 책임이 있는가”와 “어떻게 해야 하는가”였다. 세계 두 번째 강대국을 다시 움직이게 만들라는 안드로포프의 요구에 용기를 얻은 회의 참가자들은 쇠락하는 경제 성과의 원인을 분석하려고 애를 썼고 열악한 기후 환경, 숙련된 인력 부족, 근무 기강 해이 등의 상투적인 설명은 제외하고 중앙계획경제의 훨씬 폭넓은 폐단에서 문제점을 찾으려 했다. 학자들이 내린 평가에 따르면 소련 경제는 낮은 생산성, 조잡한 생산물, 천연자원의 낭비라는 스탈린 시대의 낡은 틀에 갇혀 있었다. 모르는 것이 없어 보이는 경제정책 담당자들이 만든 목표를 달성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은 개인의 진취성을 말살했다. 모든 중요한 결정을 중앙에서 내리는 중앙통제체제는 산업기반이 형성되던 시기에는 꽤 잘 작동했지만 이때의 경제 난국은 제대로 대처할 수 없었다.
노보시비르스크 회의 참가자들은 검열 문제를 회피하기 위해 자신들의 결론을 마르크스-레닌주의 용어로 포장하는 데 신경을 썼다. 결과보고서는 58부로 한정하고 번호를 매겼다. 표지에는 “기밀-대외비”라는 도장을 찍었다. 이렇게 보안에 신경 썼지만 한 부가 서방에 유출되어 하룻밤 사이에 큰 파장을 일으켰다.178 소위 노보시비르스크 보고서는 세계를 휩쓰는 기술혁명이 제기한 문제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를 놓고 벌어진 소련의 막후 논쟁을 들여다볼 수 있게 해주었다. 획일적이고 정체된 것처럼 보이는 겉모습 뒤에서 뭔가가 움직이고 있었다.
1991: 공산주의 붕괴와 소련 해체의 결정적 순간들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