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대체로 이기적이면서 조금은 이집단적이다. 비유적으로 말하자면, 우리의 본성은 90%의 침팬지와 10%의 벌의 조합같다. 정확한 비율은 향후 연구의 과제다.


˝인간 본성 대부분은 자연선택이 개인 차원에서 작동한 결과 형성되었다. 그러나 대부분이 그렇지, 전부 그렇지는 않다. 9·11 사태 이후 숱한 미국인이 발견할 수 있었던 것처럼, 우리 인간은 집단과 관련된 적응의 특성도 몇 가지 지니고 있다. 우리 인간은 이중적인 본성을 가지고 있다. 우리는 이기적인 영장류이지만, 그와 동시에 자신보다 크고 고결한 무엇의 일부가 되려는 열망도 갖고 있다. 우리의 본성은 90퍼센트가 침팬지와 같고, 나머지 10퍼센트는 벌과 같다.93 만일 이 주장에 담긴 상징적 의미를 받아들인다면, 사람들이 이집단적으로, 또 군집으로 행동하는 까닭을 훨씬 잘 이해하게 될 것이다˝ - <바른 마음>, 조너선 하이트 - 밀리의 서재
https://millie.page.link/RTU5VjeFUavixgTM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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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단선택의 성공과 개체선택의 실패
- Muir의 연구 결과는 놀랍다.
- 그런데 이를 인간에 적용할 수 있을까?


- 다산의 닭은 공격적이다. 다산의 닭만 개체 선택하면 서로 공격하여 다산의 결과를 얻지 못한다.

˝우리가 양계장을 경영하는데, 그곳의 달걀 생산량을 늘리고 싶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알을 제일 많이 낳는 암탉들만 데려다 교배시키면 될 것 같다. 그러나 양계 사업의 현실은 그렇지가 않다. 우리 안에 암탉들이 빽빽이 모여 있다 보니, 알을 가장 많이 낳는 암탉은 더 공격적이고 위압적인 경향이 있다. 따라서 양계장에서 개체 선택의 방법을 활용하게 되면(즉, 생산성이 가장 좋은 암탉들만 데려다 교배시키다 보면), 양계장의 총생산성은 오히려 떨어진다. 자기들끼리 서로 죽이거나 잡아먹는 등 공격적 행동이 더 늘어나기 때문이다.˝ - <바른 마음>, 조너선 하이트 - 밀리의 서재
https://millie.page.link/1WZWGQVhUnju6dqE7

- 닭 우리를 기준으로 선택 과정을 계속하면 성과가 더 좋다.

˝유전학자 윌리엄 뮤어(William Muir)는 1980년대에 이 문제를 풀려고 고민하다가 집단선택의 방법을 활용해보기로 했다.80 우선 그는 우리를 여러 개 가져다 암탉을 열두 마리씩 집어넣은 후, 다른 것은 볼 것 없이 각 세대마다 알을 제일 많이 낳은 우리를 하나 골랐다. 그런 다음 그는 그 우리에 있던 암탉을 모두 교배시켜 다음 세대 종자를 얻었다. 그러자 불과 3세대 만에 암탉들의 공격성은 뚝 떨어지는 모습을 보였다. 그리고 6대째에 이르러서는 67퍼센트에 이르던 끔찍한 수준의 사망률이 단 8퍼센트에 그치게 되었다. 암탉 한 마리당 낳은 알의 총개수도 91개에서 237개로 훌쩍 늘었는데, 대체로 암탉들의 수명이 더 길어진 것이 주효했지만 암탉들이 하루에 낳는 알의 개수가 늘어난 데에도 원인이 있었다. 결국 집단선택이 작동한 암탉들이 개체 차원의 선택에 들어갔던 암탉들보다 생산성이 더 좋았던 셈이다.˝ - <바른 마음>, 조너선 하이트 - 밀리의 서재
https://millie.page.link/e8rHT5HWZiuNfScc8

W.M. MUIR,
Group Selection for Adaptation to Multiple-Hen Cages: Selection Program and Direct Responses1,2,
Poultry Science,
Volume 75, Issue 4,
1996,
Pages 447-458,
ISSN 0032-5791,
https://doi.org/10.3382/ps.0750447.
(https://www.sciencedirect.com/science/article/pii/S00325791195604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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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단선택론의 부침

무임승차자 문제에 대한 다윈의 설명을 독자들은 거의 100년에 가까운 시간 동안 만족스럽게 받아들였고, 그러면서 집단선택도 진화론적 사고의 기본 내용으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그러나 다윈이 인간이라는 특정 종이 무임승차자 문제를 어떻게 해결했는지를 조목조목 다 따졌던 데 반해, 인간 이외의 종이 무임승차자 문제를 어떻게 해결했는지를 일일이 다 따져본 학자는 안타깝게도 그 이후에는 거의 없었다. 그저 동물들이 “집단의 이익을 위해” 이러저러한 행동을 한다는 주장만 우후죽순 늘어났을 뿐이었다. - <바른 마음>, 조너선 하이트 - 밀리의 서재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c330c87314a34bff

그 외의 경우에는 남을 위해 죽는다는 것이 아주 특별한 상황에서나 일어난다. 이에 윌리엄스는 엉성하기 짝이 없는 그런 생물학을 자신이 완전히 몰아내겠다고 작정하고 책을 한 권 집필하기 시작했다.20 그렇게 해서 나온 《적응과 자연선택 (Adaptation and Natural Selection)》(1966년)에서 윌리엄스는 적응에 대한 사고를 명확히 전개하는 법이 무엇인지를 생물학자들에게 일러주고 있다 - <바른 마음>, 조너선 하이트 - 밀리의 서재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c330c87314a34bff

윌리엄스는 이론상으로는 집단선택이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곧이어 “현실에서는 집단 관련 적응이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다”라며, 책 전반을 할애해 그 논지를 증명해나간다.24 그는 동물의 왕국 도처에서 벌어지는 일을 예로 들면서, 순진한 생물학자에게는(그 흰개미 전문 연구가처럼) 이타주의자나 자기희생으로 비치는 일이 사실은 모두 개인의 이기심 혹은 혈연선택에 의한 것(친족 사이에서 개체들의 희생이 의미 있는 까닭은, 그 희생으로 인해 친족 사이의 똑같은 유전자가 다시 복제될 수 있기 때문이다)임을 입증해 보인다. 1976년 리처드 도킨스(Richard Dawkins)가 베스트셀러 《이기적 유전자(Selfish Gene)》에서 한 작업도 이와 똑같은 것이었다. 그 역시 집단선택이 가능함을 인정하면서도, 곧이어 겉보기에 집단 관련 적응처럼 보이는 것들이 왜 집단 관련 적응이 아닌지를 밝혔다. 그리하여 1970년대 말에 이르자 학계에는 집단선택에 대한 강력한 합의가 이루어졌고, 따라서 누구라도 “집단의 이익을 위해” 어떤 행동이 일어난다고 주장했다간 바보라며 무시당하기 십상이었다. - <바른 마음>, 조너선 하이트 - 밀리의 서재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c330c87314a34bf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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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트의 이타주의적 행동에 대한 대안적 설명
- 이집단적(利集團的, groupish) 마음
- 트리버스가 내놓은 호혜적 이타주의가 설명할 수 있는 것은 적다
- 하라리의 내러티브 가설과 잘 결합한다. 하이트는 언어와 연결시킨다.



사람들이 이기적인(selfish) 것은 물론 사실이며, 도덕·정치·종교와 관련된 우리 행동도 한 꺼풀만 벗겨내면 사리사욕을 좇는 것과 다르지 않을 때가 수없이 많다(정치인이나 종교계 지도자가 추악한 위선을 저지른 경우를 우리는 얼마나 많이 보던가). 그러나 그와 동시에 사람들은 곧잘 이집단적(利集團的, groupish)이 되는 것 역시 사실이다. 우리는 팀이니 클럽이니 연맹이니 조합이니 하는 단체에 들어가는 것을 무엇보다 좋아한다. 그 집단의 일원이 되어 낯선 이들과 함께 어깨동무를 하고 공동의 목표를 위해 열심히 땀을 흘리는 것에 인간은 얼마나 열의를 보이는지, 마치 우리 마음은 애초에 팀워크를 하도록 설계라도 된 듯하다. 내가 보기에 이러한 인간의 집단성과 그 기원을 제대로 그려내지 못하는 한, 우리가 도덕·정치·종교를 제대로 이해하는 일은 없을 듯하다. 보수파의 도덕성을 비롯해 앞서7장에 설명한 뒤르켐식의 사회도 이해할 수 없고 말이다. 그뿐이랴, 사회주의, 공산주의, 좌파의 공동체주의 역시 제대로 이해하기란 불가능할 것이다. - <바른 마음>, 조너선 하이트 - 밀리의 서재
https://millie.page.link/UnTfR5DvkSjAz4TS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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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권위)을 쥔 채 그것을 남용하고 있으나 그럼에도 어떻게든(때로는 강제력까지 동원해) 타인으로부터 ‘존경’을 받으려는 자, 이런 자들이 진보주의자에게는 사회의 적입니다. ······진보주의에서 말하는 진정한 권위자 혹은 권위는 따로 있습니다. 바로 사회를 하나로 단결시키고 사회를 해하는 적을 억누르는 일을 실질적으로 함으로써 사람들로부터 존경을 얻어내는 것입니다[강조 표시는 필자가 넣은 것임].38 - <바른 마음>, 조너선 하이트 - 밀리의 서재
https://millie.page.link/pU3wP3LacH7nUGXU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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