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외정책에서 이상주의와 현실주의

국가의 정책, 특히 대외정책 성공 여부는 상황에 따라 현실주의와 이상주의를 어떻게 조화시키느냐에 달려 있다. 공동의 가치가 없는 지나친 현실주의는 국가 사이의 갈등과 분쟁으로 귀결될 소지가 크고, 지나친 이상주의 역시 상대와의 협상과 타협을 불가능하게 하며 참극으로 끝난 것을 역사는 보여준다. - < 지정학의 포로들, 정의길 지음 > 중에서

영국 역사학자 에드워드 핼릿 카Edward Hallett Carr는 현실주의 정치학의 한 고전인 《20년의 위기The Twenty Year’s Crisis, 1919 ~1939》에서 2차대전은 이상주의가 빚어낸 참극이라고 결론 냈다. 각국의 현실적 힘에 입각하지 않고 가치에만 기댄 공허한 국제 체제가 2차대전을 불렀다는 것이다. - < 지정학의 포로들, 정의길 지음 > 중에서

한국의 보수와 진보 진영은 모두 이상주의자들이다. 특히 북한 문제에서는 거의 100% 이상주의자들이다. 북한을 기본적으로 박멸해야 한다거나, 같은 민족이니 무조건 껴안아서 통일을 이뤄야 한다는 이상주의자들이다. 각 진영 내에서도 편차는 있지만, 기본적으로 그렇다. 그런데 북한을 우리를 위협하는 적이나 같이 살아야 할 민족 어느 한쪽이 아닌, 생존과 국익을 챙기기 위해 몸부림치는 집단으로 볼 수 없을까? - < 지정학의 포로들, 정의길 지음 >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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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d war = cold peace

냉전시대는 ‘분쟁과 갈등이 관리되는’ 차가운 평화의 시대였다. 냉전이 끝나면 평화와 협력이 올 것이라는 기대 자체가 틀렸다. - < 지정학의 포로들, 정의길 지음 > 중에서

냉전 이후 국제사회는 지정학을 잊어버렸다. 국가와 세력의 위치와 힘의 관계를 논하는 지정학은 제국주의 시대의 유산으로 치부되며, 사이비과학으로 간주됐다 - < 지정학의 포로들, 정의길 지음 >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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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혁명의 신화와 실제

국왕은 점증하는 탄압의 소용돌이 속으로 국가를 몰아넣었고 그 결과 갓 태어난 민주주의의 도정은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게 되었다. 국왕은 모든 부분에서 즉각적인 반발에 부딪혔다. 보수적인 종교 단체들은 그가 비이슬람교도에게 투표권을 주자 분개했다. 또 모스크바의 지원을 받는 공산주의자들은 국왕의 기반을 약화시키려고 했다. 한편 자유주의적인 지식인들은 민주주의를 요구했고 민족주의자들은 굴욕감을 느꼈다. 그 쿠데타는 국민들로 하여금 외세의 입김을 받는 나라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를 상기시켜 주었다 - < 지리의 힘 2, 팀 마샬 / 김미선 > 중에서


현정권은 신앙심 깊은 국민들이 아야톨라(이슬람 시아파에서 고위 성직자에게 수여하는 칭호)들이 통치하는 새로운 시대를 갈망하며 거리를 뒤덮었던 일을 즐겨 거론한다. 하지만 당시 사정은 꼭 그렇지만은 않았다. 국왕 퇴위의 서곡이 된 시위들에는 세속적인 단체들, 공산주의자들, 노동조합, 그리고 아야톨라 호메이니Ayatollah Khomeini를 중심으로 한 종교 단체들까지 섞여 있었다. 호메이니는 신속하게 여타 그룹의 사람들 수천 명을 사살했다. 그렇게 해서 그 이야기를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 < 지리의 힘 2, 팀 마샬 / 김미선 >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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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 시아파와 영국 성공회

사파비 왕조의 탄생은 이란 역사에서 중대한 전환점이 된다. 1501년 이스마일 왕은 〈시아파 이슬람〉을 국교로 선포했다. 이슬람 세계에서 수니파와 시아파 분열의 기원은 서기 632년 선지자 무함마드가 세상을 뜬 뒤 누가 그의 후계자가 될 것인가를 두고 싸운 서기 680년의 카르발라 전투로 거슬러 올라간다. 사실 이스마일 왕이 시아파를 택한 데는 정치적 동기가 상당히 작용했다고 보는 역사가들이 많다. 영국 역사에서 헨리 8세가 자신의 왕국을 로마 교황청에 반기를 드는 나라로 규정하기 위해 성공회교를 주창한 것과 같은 맥락으로 보면 이해될 듯하다. 이스마일 왕은 사파비 왕조를 그들의 최대 숙적이라 할 수니파 오스만 제국과 맞서는 나라로 규정할 필요가 있었다. - < 지리의 힘 2, 팀 마샬 / 김미선 >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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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즈 마블


거짓말처럼 영국인들이 싹 떠나버렸다.
이내 희한한 광경이 벌어졌다. 수백만 명에 달하는 무슬림들이 파키스탄이 있는 서부로 가기 위해 인도의 새 국경선으로 몰려들었다. 마찬가지로 수백만 명의 힌두교도들과 시크교도들이 반대편 국경으로 몰려왔다. 공동체 하나가 이동할 때마다 족히 3만 명은 되는 인간 띠가 길 위에 펼쳐졌다. 열차 칸칸마다 대륙을 교차하는 난민들이 숨 쉴 틈도 없이 빽빽이 들어찼다. 열차들은 사람들을 도시로 토해냈다. 귀환하는 열차 또한 반대 지역으로 향하는 사람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 < 지리의 힘, 팀마샬 지음, 김미선 옮김 >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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