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를 구할 여자들 - 유쾌한 페미니스트의 과학기술사 뒤집어 보기
카트리네 마르살 지음, 김하현 옮김 / 부키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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젠더의 눈으로 본 제1의 기계시대
- 잭과 엥겔스 그리고 메리

한 남자가 일자리를 잃고 난롯가에 앉아 우는 장면에 대한엥겔스의 묘사에서 흥미로운 점은 그가 물질에 주목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 대신 엥겔스는 다른 무엇보다 잭이 느끼는 무력함에 초점을 맞춘다. 잭은 남자로서의 자부심과 인생의 방향을 잃었다. 이것이 바로 엥겔스가 독자들이 분개하길 바란 지점이다.
실제로 많은 독자가 이 지점에서 분개했다.

을 앗아 갔다. 잭은 나가서 일을 하고 가족을 부양해야 하며 그럴 수 없다면 진정한 남자가 아니라는 말을 일평생 들어 왔다.
그리고 그 말을 믿었다. 그는 그 명령대로 살았다. 그러다 진정한 남자가 될 기회를 기계에게 빼앗겼고, ‘진정한‘ 남자가 될 수없다면 그는 하찮은 존재일 뿐이었다.
적어도 사회가 그렇게 믿게 만들었다.
잭이 기계를 부수고 싶어 한 것은, 축축한 지하실에서 무릎 위에 메리의 양말을 올려놓고 앉아 기계를 악랄하게 저주한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엥겔스가 묻지 않은 질문이 있다. 꽤 단순한 질문이다. 잭에 대해서는 들은 바가 많지만, 과연 메리는 무슨 생각을했을까?
우리는 알지 못한다.
메리는 잭이 집에서 자기 양말을 꿰매는 동안 공장에서 고되게 일해야 하는 상황이 싫었을까? 아니면 전부 타협하고 받아들였을까? 저녁에 눈웃음을 치며 남편의 상처 입은 남성성을 다시 세워 줄 힘이 남아 있었을까? 남편을 깔봤을까? 만약그랬다면, 남편의 등 뒤에서 그랬을까, 아니면 면전에서 그랬을까?
또는 이 새로운 가족 질서에 만족했을까? 돈이 좀 더 많았다면, 아니면 잭이 좀 더 명랑했다면?
우리는 전혀 알지 못한다.
엥겔스는 메리에게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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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라니의 역설

헝가리의 철학자이자 경제학자인 마이클 폴라니 Michael Polary는 "우리는 말할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알 수 있다"라고 말했다. 사람들은 이를 ‘폴라니의 역설‘이라고 부른다. 

우리가 운전에 대해 알아야 할 것을 전부 안다고 해서 (책과 매뉴얼을 모조리 읽고 눈을 감고도 점화 플러그의 내부를 그릴 수 있다고해서) 자동차를 실제로 운전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운전하는사람이 꼭 핸들 앞에서 자신이 하는 행동을 전부 설명할 수 있지는 않다. 힐끗 백미러를 쳐다볼 때 당신이 보는 것은 정확히 무엇인가? 어떤 소리에 무의식적으로 귀를 기울이는가? 

기계에게 일을 시키려면 먼저 기계에게 원하는 바를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려면 업무를 작은 단계로 쪼개고, 기계가 그 단계를 하나하나 수행하도록 명령하는 프로그램을 짜야한다. 그러므로 아주 오랫동안 기계는 우리가 이런 식으로 설명할 수 없는 일은 하지 못했다.
이것이 폴라니의 역설이 낳은 결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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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와 젠더

‘화려한 노동Glamour labour‘ 10은 2010년대에 여성 인플루언서들이 개척한 노동 유형을 가리키는 용어로, 현재 점점 더 많은 산업에서 반드시 필요한 조건이 되고 있다. 화려한 노동은소셜 플랫폼에 전시하는 삶 속에서 팔로어의 관심을 끌기 위해 자기 자신과 자신의 몸을 큐레이션하는 것을 뜻한다. 화장과 스타일링, 운동, 눈썹 문신, 그 외에 신체적 자아를 가상의자아와 어울리게 만들려는 모든 노력이 이러한 노동에 속한다.
그러나 이것은 머릿속 전략의 문제이기도 하다. 다른 사람들이손에 쥔 화면 속에서 자기 삶이 특정 방식으로 보일 수 있도록머리를 써야 하는 것이다.

에밀 졸라Émile Zola는 급성장하던 파리의 백화점을 주제로고전 소설 《여인들의 행복 백화점》을 썼다. 이 저명한 프랑스작가는 파리 좌안에 있는 유명 백화점 르봉 마르셰Le Bon Marché에서 몇 주간 조사를 했다. 졸라가 이해했듯이 이 백화점은 프랑스 여성들이 교회를 떠나기 시작한 바로 그 시점에 파리에문을 열었다. 그의 눈에 이건 우연이 아니었다. 그는 쇼핑이 어느 정도는 여성의 새로운 종교가 되었다고 말했다. 18여성은 영혼을 완벽하게 가꾸는 것을 그만두고 그 대신 신체를 완벽하게 가꿀 것을 독려받았다. 패션과 신체, 아름다움에 대한 숭배가 생겨났고, 백화점은 그러한 숭배의 신전이었다.

그러나 졸라가 깊이 탐구하지 못한 사실은, 교회와 백화점에 매우 구체적인 공통점이 있다는 것, 여성이 교회와 백화점에 끌리는 이유를 설명해 줄 무언가가 있다는 것이었다. 말하자면 교회와 백화점은 여성 신체가 비교적 안전하게 돌아다닐수 있는 공공장소였다. 신식 백화점은 부유한 프랑스 여성들에게 지금껏 누리지 못한 권리, 바로 한가롭게 산책할 권리를 제공했다. 갑자기 여성들은 성적인 공격과 희롱의 위험을 저울질하지 않고도 공공장소를 하릴없이 배회할 수 있었다. 

젊은 여성들이 카일리 제너의 립스틱을 구매한 이유는 그에게서 진정성을 느꼈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제너는 로레알의최신 광고 속 모델과 달리 진짜였다. 그 모델이 제너와 똑같이생겼다 해도 젊은 여성들은 그의 인간관계 이야기를 귀 기울여듣거나, 초음파실에서 파란 젤 범벅이 된 그의 임신한 배를 관심 있게 바라보지 않았을 것이다. 사람들이 제너에게 공감한것은 그가 자기 삶을 공유했기 때문이며, 엄마됨은 그 과정에서 큰 부분을 차지했다.
물론 이러한 사실은 여러 면에서 역설적이었다. 그토록 오랫동안 진지한 시장의 정반대에 있다고 여겨진 엄마됨이, 갑자기 결코 하찮지 않은 상업적 중요성을 띠게 된 것이다.

기술 발전으로 집에서 회사를 설립하고 운영하는 것이 쉬워지면서 여성 사업가가 늘어났다. 실제로 2010년대에 사업은종종 새로운 페미니즘으로 칭송받았다. 이렇게 새로 등장한 여성 사업가들 중 사람들의 입에 가장 많이 오르내린 사람은 당연하게도 집에서 일하는 여성, 가족들의 단편적 일상을 공유하고 자신이 소비한 물건을 자랑하며 돈을 버는 여성이었다. 물론 이 방식은 젠더 역할의 연장선상으로 보이는 것까지는 아니더라도, 여성의 젠더 역할과 가장 쉽게 결합할 수 있는 종류의사업이었다. 그러나 여기에는 대가가 따랐다. 사적인 삶이 공적인 것이 되었고, 온라인에 공유하는 자잘한 정보들이 거대 테크 기업의 소유가 되었다. 여성인 제너는 어쩌면 인스타그램의가장 큰 소득원이었을지 모른다.

역사상 여성은 부모로서의 정체성과 직업적 정체성이 본래 대립한다고 여겨졌지만 남성은 그렇지 않았다. 사람들은 직업을 갖고 가족을 부양하는 것이 좋은 아버지의 핵심 요소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여성에게는 같은 논리가 적용되지 않으며,
2010년대의 수많은 여성에게 엄마로서의 정체성을 이용해 회사를 설립하는 것은 이 간극을 메우는 하나의 방법이 되었다.
제너의 회사는 부엌 식탁에서 시작되었다. 그러나 이 식탁은 끊임없이 영상과 사진의 배경이 되는 곳이었다. 사적 영역은여전히 여성의 일터였지만, 기술은 갑자기 이 사적 영역을 공적영역으로 옮겨 놓았다. 어떤 면에서는 엄청난 혁신이었다. 더많은 여성이 결코 자신을 위하지 않는 노동 시장의 대안을 직접 만들어낼 수 있었으니까.

소비는 여성적인 것으로 코드화된 행위다. 그러나 우리가여성과 관련된 다른 것들처럼 이 소비자 논리를 거부하거나 무시한다고 말하긴 힘들다. 오히려 그 반대다. 소비자는 여성적이라고 코드화된 정체성 중에서 보편성을 획득하기 시작한 몇안 되는 것 중 하나다. 이와 함께 민간소비는 우리 경제에서 점점 더 결정적인 역할을 맡게 되었다.

제너는 그동안 경제에서 여성에게 할당되어 온 소비자 역할의 극단적 버전을 보여 주며, 이 버전은 개인용 제트기처럼전통적으로 남성적인 부의 상징(비록 색깔은 다르지만)으로 여겨졌던 것과 결합되었다. 어쩌면 이건 그 자체로 격분할 일은아닐지 모른다. 우리는 여성의 소비에 분노하는 데 이미 충분한 시간을 쏟았다. 그러나 이러한 소비를 해방과 헷갈려서는안 된다.
여성 해방은 백화점의 소비자 논리를 전 세계로 확장하는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여성 해방은 여성에게 남성과 똑같은 조건에서 모든 경제 분야에 접근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이다.
이것은 규모가 훨씬 큰 프로젝트이자, 거의 모든 것을 바꾸어 놓을 프로젝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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젠더 내러티브

창 vs. 뒤지개
청동기, 철기 시대 vs. 직물, 도기 시대

우리는 창과 뒤지개 중 무엇이 먼저 발명되었는지 모른다.
흥미로운 것은 서사다. 우리는 분명히 창이 먼저 나왔을 거라고 생각한다. 인간의 혁신은 반드시 무기와 함께 시작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먹을거리를 모으던 여성이 먼저 날카로운 막대기를 발명한 뒤 나중에 그 막대기를 사냥에 사용했을 가능성도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곤봉과 창이 인간의 첫 번째 도구라고추정하는 것일까? 이렇게 추정하면 인간 발명의 추동력이 주변 세상을 지배하려는 욕구와 연결되어 있다는 생각을 믿게된다. 여성이 서사에서 지워질 때 인류는 본래와 다른 모습이된다. 그리고 이런 식으로 더 나아가면 우리는 자신의 본성을스스로 속이게 된다. 가부장제가 미치는 가장 심각한 영향 중하나는 우리의 진짜 모습을 잊게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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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명과 젠더

여행 가방이 시장의 저항에 부딪힌 것은 젠더와 밀접한관련이 있었다. 이 작은 요소 하나가 바로 여행 가방에 바퀴를 달기까지 왜 그리 오랜 시간이 걸렸는지 한참 고심한 경제학자들이 놓친 것이었다.

사람들이 바퀴 달린 여행 가방의 진가를 알아보지 못한이유는 그 가방이 남성성에 관한 지배적 견해에 들어맞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금 돌아보면 명백히 괴상한 일이다. ‘진정한남자는 가방을 직접 든다‘라는 무척이나 자의적인 개념이 이제는 누가 봐도 명백한 혁신을 방해할 만큼 강력했다니? 남성성에 관한 지배적 견해가 돈을 벌겠다는 시장의 욕망보다 더 완강한 것으로 드러나다니? 남자는 무거운 짐을 들 수 있어야 한다는 유치한 생각 때문에 전 세계 산업을 뒤집을 상품의 잠재력을 알아보지 못했다니?

바로 이 질문들이 이 책의 핵심이다. 

(전기차의실패를) 분석하는 연재 기사를 실었다. "여자 같은 것 또는 여자 같다는 평판을 얻은 것은 미국 남성의 눈에 들지 못한다." 이어서 기사는 이렇게 말한다. ‘어떤 남성이 일반적인 신체적 의미에서 혈기 왕성하고 ‘남성미가 넘치든 그렇지 않든 간에, 어쨌거나 그 남성의 이상은 그렇다." 즉 자동차든 색깔이든 여성이 좋아하는 것이라면 남성은 신념상 늘 그것에서 거리를 두려 한다. 슬프게도 바로 이것이 전기차에 발생한 일이라고, 이 잡지는 결론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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