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적으로 맹자는 지성至聖인 공자의 뒤를 이은 아성亞聖으로 불립니다. 하지만 그 역할로 보자면 맹자와 공자 사이에는 이미 지대한 차이가 있지요. 맹자는 전국 시대에 공자처럼 교육자의 신분으로 활동하지 않았습니다. 맹자가 공자로부터 계승한 부분은 공교롭게도 공자가 일생 중 가장 쓰라린 패배를 맛봤던 부분, 즉 군주에게 이념을 전달하고자 정치 유세를 펼친 부분입니다. 공자는 정신없이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며 수많은 군주에게 수많은 도리를 얘기했지만, 결국 그 어떤 군주에게서도 신임을 받아 중용되지 못했지요.
바로 이 점에서 맹자는 공자와 닮았고, 심지어 다소 비극적인 좌절이라는 결과조차도 비슷합니다. 비록 당시 최고의 논변술을 지녔고 명석한 두뇌로 굳건한 신념을 견지했지만, 평생 동안 최선을 다하고도 맹자는 앞에서 언급된 양 혜왕과 제 선왕을 포함해서 단 한 명의 군주도 진실로 자신의 가르침을 따라 인정을 베풀도록 설복하지 못했습니다.
- < 맹자를 읽다, 양자오 지음, 김결 옮김 >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