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 초나라는 또 다른 대국으로 방대한 무력을 보유했습니다. 또한 ‘무왕’이라는 시호를 보면 그 군주는 무예를 좋아하고 전쟁을 즐겼던 것이 분명합니다. 그리고 노나라와 제나라의 군주는 모두 칭호가 ‘공’公이었지만 초나라 군주는 ‘왕’이었습니다. 사실 주나라 시대의 봉건 작위는 공, 후侯, 백伯, 자子, 남男 이렇게 다섯 등급으로 당연히 왕은 없었습니다. 왕은 천자의 칭호였으니까요. 그런데 당시 가장 남쪽에 치우쳐 있던 초나라는 봉건 작위 제도를 무시하고 참람하게도 스스로 왕이라 칭했습니다. - < 좌전을 읽다, 양자오 지음, 김택규 옮김 > 중에서
다섯 등급인 봉건 작위 제도에 따르면 노나라와 송나라 군주는 공公, 위나라 군주는 후侯, 정나라 군주는 백伯 그리고 초나라 군주는 겨우 밑에서 두 번째인 자子였습니다. 그래서 『춘추』 경문에서는 기본적으로 정식 명칭을 사용해 송공宋公, 위후衛侯, 정백鄭伯 등으로 표기했습니다. 나중에 패업을 완성한 제나라와 진晋나라 군주조차 봉건 예의에 따르면 모두 후일 뿐이었습니다. 그래서 『춘추』에도 제후, 진후로 표기되었습니다. 하지만 『좌전』은 시대적으로 나중에 글로 정리된 탓에 그 나라들이 스스로 등급을 높여 바꾼 호칭을 무시하기가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호칭 사용이 혼란스럽습니다. 이런 현상은 봉건 질서와 약육강식의 논리가 병존했던 당시의 복잡한 상황을 더 분명하게 보여 줍니다. - <좌전을 읽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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