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읽은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가 생각난다.
종이 끊임없이 발견되면서 분류 체계는 포화 상태에 이르렀고 개별 종에 대한 정의를 내리기도 쉽지 않았다. 분류해 낸 동물들을 일일이 정의하기란 여간 귀찮은 일 아닌가! 그러자 일부 사람들은 이렇게 분류한 동물 배후에 필연적으로 이 종의 본질이 존재한다는 사실에 서서히 의심을 품기 시작했다. 기존의 분류 체계로는 점점 더 처리하기 어려워진 데다가 분류하고 기록해야 할 동물이 갈수록 많아지자, 본질과 현상의 ‘이원론’을 흔드는 이론들이 생겨났다.
이 세계를 본질과 현상으로 나눈 중요한 이유는 현상이 너무 복잡해서 본질을 통해 좀 더 쉽게 파악하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이제 분류를 거쳐 얻은 본질이 점점 더 많아지게 되었다. 15세기의 유럽인이 꼭 알아야 할 필요가 있다고 여긴 동물 종수를 80종이라고 가정해 보자. 그러면 설사 이 세계에 8천만 개의 서로 다른 생물 개체가 존재한다 해도 그 80종만 정확히 이해하면 그만이었다. 그러나 18세기 후반에서 19세기 초에 걸쳐 발견되고 기록된 본질 영역의 생물이 1만 종으로 늘어나자 기존의 분류학은 수습할 수 없는 지경까지 팽창하고 말았다. - < 종의 기원을 읽다, 양자오 지음, 류방승 옮김 > 중에서
다윈은 『종의 기원』이 출간된 이후 많은 사람들의 공격을 받았다. 그중 대표적인 집단이 기독교 복음주의자들인데, 그들은 헉슬리가 해석한 진화론을 접하고서 그것이 창조론에 위배된다고 결론 내렸다. 그러나 저자는 진화론의 최대 전복 대상이 창조론이 아니라 플라톤 이래로 절대적으로 떠받들고 있던 이데아론과 17~18세기에 린네가 수립한 분류학이라고 지적했다. 따라서 다윈의 가장 큰 공헌은 동식물 분류는 고정불변하다는 당시의 전통 관념을 깨뜨린 인식론적 단절에 있다고 할 수 있다. - < 종의 기원을 읽다, 양자오 지음, 류방승 옮김 > 중에서
일부 분류학자들이 종의 분류와 귀속을 결정하는 특징에 가장 관심을 기울이지만, 실제로 그 특징은 그 생물에게서 아무 기능도 하지 못한다는 점이었다. 이는 결국 외형적으로 보이는 현상과 유전자의 표출이 별개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말이 된다.
유전자 배열 순서에 따라 종의 분류학을 새롭게 수립하는 것은 현재 유전자 생물학의 최대 과제이다. 극도로 어려운 이 도전 가운데서도 최대 난점은 모든 종의 유전자 순서를 정하는 것이 대형 프로젝트라는 점이다. 각 종의 유전자 순서를 정해야만 비로소 ‘배열’이 가능하다. 많은 천재 유전 생물학자들이 여러 가지 가설을 제기했지만 현재까지는 기존의 분류학을 대체할 획기적인 방안이 나오지 않았다. 만약 유전자 구성과 진화를 정복하는 때가 오면 인간이 분류학적으로 개와 훨씬 더 가깝고 원숭이와는 오히려 더 멀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될지도 모른다. 이는 물론 황당한 가정이지만 현재 이 학문이 발전 중에 있으니 결과를 좀 더 지켜보기로 하자 - < 종의 기원을 읽다, 양자오 지음, 류방승 옮김 >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