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마르크와 다윈의 가장 큰 차이점은 한 사람은 ‘용불용설’을 주장하고 다른 한 사람은 ‘진화론’을 주장했다는 데에 있지 않다. 예전 교과서에 나오는 잘못된 개념을 꼭 버리길 바란다. 둘 사이의 진정한 차이는 라마르크가 가장 먼저 종이 변화한다는 사실을 증명하려고 시도했지만 그의 이론에서 종의 변화는 명확한 방향성을 가지고 있었다는 점이다. - < 종의 기원을 읽다, 양자오 지음, 류방승 옮김 > 중에서
. 그러나 라마르크는 한 가지 중요한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다. 생물이 정말 가장 하등한 것에서 가장 고등한 것으로 진화했다면 이 세상에는 왜 가장 고등한 생물만이 사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생물들이 이렇게 많이 존재하는 것일까?
이 문제를 진지하게 고민한 이가 다윈이다. 그는 라마르크의 이론을 대부분 계승하여 이 문제의 중요성을 알고 있었다. 이에 그는 『종의 기원』 5장에서 왜 하등한 생물이 지금까지 존재하는지를 분명히 설명했다. 라마르크는 종이 끊임없이 우수하고 완벽한 쪽으로 변화 발전한다고 여겼지만, 다윈은 동의하지 않았다. 다윈은 종이 보편적이고 평균적인 기준에서 갈수록 완벽해지는 것이 아니라, 다만 특정한 환경에 점점 더 잘 적응하게 되는 것이고 생존 환경에 맞춰서 완벽해진다고 주장했다. 결코 종이 절대적인 기준을 가지고 앞으로만 죽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 < 종의 기원을 읽다, 양자오 지음, 류방승 옮김 > 중에서
다윈이 원래 『종의 기원』에서 말한 자연선택은 동일한 종 사이의 경쟁이었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런 개념을 라마르크의 진화표 및 라마르크가 주장한 진화 방향과 결합시켜 서로 다른 종 사이의 경쟁으로 바꿔 놓았다. 이는 19세기 후반부터 오늘날까지 인간의 사회 관념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 하등 생물일수록 쉽게 도태되고, 고등 생물은 하등 생물을 도태시키는 경향이 있을 뿐 아니라 심지어 하등 생물을 도태시킬 권리를 가진다는 것이다. - < 종의 기원을 읽다, 양자오 지음, 류방승 옮김 > 중에서
헉슬리 등이 라마르크의 목적론적 진화표와 다윈의 자연선택을 같이 엮으면서 불변의 진리로 간주되는 새로운 존재론 이 탄생했다 - < 종의 기원을 읽다, 양자오 지음, 류방승 옮김 >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