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픈 열대를 읽다 - 레비스트로스와 인류학을 공부하는 첫걸음 유유 고전강의 13
양자오 지음, 박민호 옮김 / 유유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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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조주의적 인류학과 구조주의적 언어학

친족 관계와 언어는 서로 유사하다. 혼인의 ‘교환’은 언어의 ‘소통’과 같다. 소통에 사용되는 ‘단어’가 친족 관계에서 교환되는 ‘여성’에 대응한다. 언어와 마찬가지로 친족 관계는 일종의 집단 무의식의 규범으로서 인류 정신의 내부 운동 방식에 반영되어 있다. 여성 교환으로 형성되는 친족 관계를 통해 인류는 복잡한 권리 의무 관계를 수립했고, 상호 간의 협력을 강제해 왔다. 설령 당신이 ‘자신의 의사’를 말로 표현하고 있다고 여기더라도, 당신은 언어의 숨겨진 구조로부터 결코 벗어날 수 없다. 마찬가지로 당신이 자유롭게 혼인 대상을 결정할 수 있다 여기더라도, 밑바탕에 깔린 친족 구조의 논리가 당신이 알아채지 못하는, 심지어 알아채기 원치 않는 방식으로 당신의 선택을 결정한다. - < 슬픈 열대를 읽다, 양자오 지음, 박민호 옮김 >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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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조주의적 인류학과 구조주의적 언어학

친족 관계와 언어는 서로 유사하다. 혼인의 ‘교환’은 언어의 ‘소통’과 같다. 소통에 사용되는 ‘단어’가 친족 관계에서 교환되는 ‘여성’에 대응한다. 언어와 마찬가지로 친족 관계는 일종의 집단 무의식의 규범으로서 인류 정신의 내부 운동 방식에 반영되어 있다. 여성 교환으로 형성되는 친족 관계를 통해 인류는 복잡한 권리 의무 관계를 수립했고, 상호 간의 협력을 강제해 왔다. 설령 당신이 ‘자신의 의사’를 말로 표현하고 있다고 여기더라도, 당신은 언어의 숨겨진 구조로부터 결코 벗어날 수 없다. 마찬가지로 당신이 자유롭게 혼인 대상을 결정할 수 있다 여기더라도, 밑바탕에 깔린 친족 구조의 논리가 당신이 알아채지 못하는, 심지어 알아채기 원치 않는 방식으로 당신의 선택을 결정한다. - < 슬픈 열대를 읽다, 양자오 지음, 박민호 옮김 >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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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천적인 언어능력 = 야생적 사고

랑그와 파롤의 차이는 어린아이가 모국어를 배우는 것과 성인이 외국어를 배우는 것의 비교를 통해 가장 잘 설명할 수 있다. 아이들은 모국어를 성인보다 빠르고 효율적으로 학습한다. 왜냐하면 랑그, 즉 하나하나의 문법 모형을 직관적으로 흡수하기 때문이다. 그러고 나서 아이들은 다양한 어휘를 그 모형 안에 집어넣고, 이렇게 생성된 문장이 의미를 지니는지 시험한다. 아이들은 한 문장 한 문장씩 배우지 않는다. 먼저 한 문장을 구성하는 기본 구조를 터득한 후 서로 다른 단어의 구조적 위치와 기능을 학습하며, 이후 자유로운 결합 실험에서 점차 풍부한 표현 능력을 갖게 된다. 반면 성인은 랑그를 학습하는 본능을 상실했으므로 파롤에 기대어 외국어를 배워야 한다. - < 슬픈 열대를 읽다, 양자오 지음, 박민호 옮김 >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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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픈 열대를 읽다 - 레비스트로스와 인류학을 공부하는 첫걸음 유유 고전강의 13
양자오 지음, 박민호 옮김 / 유유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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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리노프스키 혁명 : (서구적) 보편에서 특수로

과거 인류학자가 모든 문화를 하나의 거대한 체계 속에 포섭하여 그것들 사이의 공통성을 찾으려고 안간힘을 썼다면, 새로운 문화인류학은 문화에 대한 보편적 해석을 완전히 포기하지 않으면서도 각 문화 내부의 서로 다른 에믹의 의미를 중시하고 강조함으로써 문화의 공통성보다는 특수성을 더욱 드러내고자 한다.

놀랍게도 불과 수십 년 사이에 인류학은 인류 집단의 공통점에 가장 주목했던 학문 분과에서 정반대로 인류 문화의 다양성과 특수성에 가장 주목하며 서로 다른 문화의 독특성을 강조하는 학문 분과로 전환되었다. - < 슬픈 열대를 읽다, 양자오 지음, 박민호 옮김 > 중에서

레비스트로스 혁명 : 특수에서 (인류적) 구조로

레비스트로스처럼 ‘보편적 인류 지식’이라는 과거의 몽상을 견지한 사람들이 등장했다. 그들은 시선을 돌려 다음과 같이 묻는다. “이렇게 쌓아 둔 표본을 가지고 우리는 무엇을 하려는가? 이런 표본을 정리해 인류에 관한 보편적 인식을 끄집어낼 수 없다면, 그토록 힘을 들여 그것을 수집하고 기록할 필요가 있는가?”

레비스트로스는 한 가지 방식을 찾아냈다. 이 방식으로 인류학자들은 다시금 인류의 공통성을 직시하게 되었다. 그는 물론 ‘안락의자의 인류학자’는 아니었다. 그가 주장한 ‘인류의 공통성’ 또한 인류학자에게 익숙했던 서구식 관념이나 가치관을 야만인에게 뒤집어씌우는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중요한 것은 레비스트로스가 인류의 공통성을 탐구하는 데 주저가 없었다는 점이다. 당시 인류학자들은 문화적 특수성을 지나치게 강조했고, 모든 보편성의 주장에 의심을 품었다. 하지만 레비스트로스는 용감하고 영리하게 ‘구조’라는 새로운 관념을 제시해 보편성에 대한 인류학자의 관심을 확장시켰다. - < 슬픈 열대를 읽다, 양자오 지음, 박민호 옮김 >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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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의 과학사는 기본적으로 성공의 서사로서, 인류(특히 유럽인)가 어떻게 몽매함을 극복하고 진리를 발견했는지 묘사했다. 그러한 서사에는 명확히 좋은 사람과 나쁜 사람이 있었다. 진리 추구에 매진하는 과학자는 좋은 사람이고, 여타 비과학—종교, 미신 등—적 태도로 과학적 지식을 거부하고 과학적 진보를 저해하는 사람은 나쁜 사람이었다. 과학사는 우리에게 좋은 사람이 어떻게 굳센 마음으로 힘을 쏟아 마침내 나쁜 사람으로부터 승리를 거두었는지 말해 준다.

하지만 새로운 세대의 과학사는 이와 같은 전제를 수정해 과학—과학적 지식, 방법, 과학자—을 역사 속에 위치시켜 해석해야 할 특수한 현상으로 본다. 과학이 인류의 수많은 지식 체계 속의 한 갈래라면, 과학과 다른 지식은 왜 그렇게 상이한가? 과학은 어째서 특정한 시공간적 맥락에서 생겨났는가? - < 슬픈 열대를 읽다, 양자오 지음, 박민호 옮김 >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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