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아 철학의 현자와 아담 스미스의 현자의 차이에 주목하라. 현실적이다.

자기통제와 자기기만의 대조도 눈여겨 봐 두자.

이처럼 제1심과 제2심의 판결이 서로 다른 경우에 지혜로운 사람과 연약한 사람이 취하는 태도는 정반대다. 그러나 둘이 일치하 - P61

는 경우가 하나 있다. 그것은 비난당할 만한 일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세상에서 비난을 받는 경우다. 전형적인 예로 누명을 들 수 있다. 이 경우, 연약한 사람은 당연히 세상의 비난을 괴로워할 것이다. 그럼 지혜로운 사람은 마음속 공평한 관찰자의 목소리, ‘당신은 무죄다‘는 목소리를 듣고 평정을 지킬 수 있느냐 하면 그렇지 않다. 애덤 스미스에 따르면, 지혜로운 사람이라 할지라도 근거 없는 비난에 대해서는 동요한다. 근거 없는 칭찬은 무시할 수 있어도, 근거 없는 비난은 무시할 수 없는 것이다. - P62

애덤 스미스가 큰 영향을 받은 것으로 여겨지는 스토아 철학에서현자(賢者)는 모든 상황에서 부동심을 유지하는 사람으로 여겨진다. 스토아학파가 생각하는 현자는 근거 없는 비난에 대해 아무런 괴로움을 느끼지 않고, 그것 역시 운명이라고 체념한다.  - P62

 우리 속의 현명함은 자기규제 (self-command)에 의해 공평한 관찰자가 인정하도록 행동하려 하는 것이다. 거꾸로, 우리 속의 연약함은 세간의 평가를 걱정할뿐더러 자기기만(self-deceit)에 의해 공평한 관찰자의 인정과 부정을 무시하려 한다. - P63

인간은 이해관계, 변덕, 열광 등 때문에 마음속 공평한 관찰자의목소리를 무시하고, 자기기만에 의해 자신의 욕망과 의향을 정당화하려 할 때가 있다. 인간은 한편으론 마음속 공평한 관찰자의 목소리에 따르려 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그것을 무시하려 하는 모순된 존재인 것이다. - P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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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자 vs. 소인

애덤 스미스는 실제의 관찰자, 즉 세상을 재판의 제1심에 비유하고, 각 개인의 마음속에 있는 공평한 관찰자를 제2심에 비유했다. 우리는 자신의 행위에 대해 먼저 제1심, 즉 세상의 평가를 바란다. 그러나 세상의 평가가 타당하지 않다고 느끼면 제2심, 즉 마음속 공평한 관찰자에게 호소하여 최종 판결을 추구한다. - P59

애덤 스미스는 제2심의 재판관(마음속 공평한 관찰자)도 때로는 제1심의 재판관(세상)의 소리에 영향을 받아 불공정한 판결을 내리는 때가 있음을 인정한다. 이때 실의와 고난에 빠진 인간은 제3심, 즉 신의 심판을 빌려 내세에서 구원 받기를 기원한다. 이처럼 애덤 스미스는 종교의 기원을 세상과 마음속 공평한 관찰자의 판결에 대한 인간의 불만으로 본다. - P60

제1심의 판결을 우선시할 것인가 아니면 제2심의 판결을 우선시할것인가는 칭찬과 비난 그 자체를 중시할 것이냐 아니면 칭찬할 만한 가치가 있느냐 또는 비난할 만한 부덕이 있느냐를 중시할 것이냐 하는 문제와 같다. 이에 대해 애덤 스미스는 행위자가 지혜로운 사람(wise man)‘ 이냐 ‘연(허)약한 사람(weak man)‘ 이냐에 따라 중시하는 판결이 다르다고 생각했다. - P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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칭찬과 비난은 뇌과학과 연관해 새롭게 읽힌다. 불규칙성에 대한 논의는 현대 경제학의 정보비대칭 논의를 연상시킨다.

어떤 행위가 칭찬할 만한지 아니면 비난할 만한지 판단하는 데는 직접적 동감과 간접적 동감 모두가 사용된다. 만약 직접적 동감에 의해 행위의 동기가 타당하다고 판단되어 - 즉, (A)와 (A‘)가 거의 일치해 - 간접적 동감에 의해 얻을 수 있는 감정 (B‘)가 감사일 경우, 우리는 그 행위를 칭찬할 만한 행위라고 판단한다. 거꾸로 직접적 동감에 의해 행위의 동기가 부적절하다고 판단되어 - 즉 (A)와 (A)가 크게 달라 - 간접적 동감에 의해 얻을 수 있는 감정 (B‘)가 분노일 경우, 우리는 그 행위를 비난할 만한 행위로 판단한다. - P52

애덤 스미스는 우리가 마음속 공평한 관찰자를 통해 인정 또는 부정의 판단을 하는 사실로부터, ‘칭찬(praise)할 만하다‘ 그리고
‘비난(blame)할 만하다‘고 느끼는 우리의 감각을 설명한다. 칭찬과 비난의 감각은 주로 인간에 의한, 인간에 대한 행위에 대해 우리가 가지는 감각이다. 그리고 칭찬과 비난은 행위의 동기와 결과 양쪽을 고려해서 이루어진다. 그림 1-5는 칭찬과 비난이 이루어지는 구조를 나타낸다. - P50

우리는 행위자의 동기가 적절하고 행위를 당하는 사람에게 이로운 결과를 초래하는 행위를 칭찬하고, 행위자의 동기가 부적절하고 행위를 당하는 사람에게 해로운 결과를 초래하는 행위를 비난한다. 이것이 기본 원칙이다. 

그렇지만 여러 가지 행위들 중에는 (1) 의도한 바가 있음에도 우연에 의해 의도한 대로 결과를 이끌지 못한 경우도 있으며, (2) 당초 아무런 의도가 없었음에도 행위자가 다른 사람에게 이로운 또는 해로운 결과를우발적으로 초래하는 경우도 있다. 애덤 스미스는 이런 두 가지 경우에서 우리의 칭찬과 비난은 기본 원칙에서 벗어나 불규칙성(irregularity)을 가진다고 생각했다. - P54

세상은, 의도했음에도 불구하고 의도한 대로 결과를 가져오지 못한 행위에 대해 기본 원칙이 나타내는 것보다 칭찬이나 비난을 약하게 하는 경향이 있는 반면, 의도하지 않았음에도 우연에 의해 이로운 또는 해로운 결과를 가져온 행위에 대해서는 기본 원칙이 나타내는 것보다 칭찬이나 비난을 강하게 하는 경향이 있다.

애덤 스미스는 세상이 이러한 불규칙성을 가진 채로 개인의 행위를 평가하는 것에는 사회적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다. 

아무리 선의에 의한 것이라 한들 실제로 이로운 결과를 가져오지 못하면 세상의 칭찬을 받지 못한다는 사실 때문에, 어쨌든 우리는 유익한 결과를 만들어내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또한 의도하지 않았음에도 해로운 결과를 가져온 경우에도 세상은 그 행위를 완전히 무죄로 봐주지 않기 때문에, 우리는 언제나 잘못을 범하지 않도록 주의 또 주의를 기울이는 것이다. - P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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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덕감정론』은 다음과 같은 문장으로 시작한다.

인간이 아무리 이기적인(selfish) 존재라 하더라도, 그 천성(principles)에는 분명히 이와 상반되는 몇 가지가 존재한다. 이 천성으로 인해 인간은 타인의 운명에 관심을 가지게 되며, 단지 그것을 바라보는 즐거움밖에는 아무것도 얻을 수 없다고 하더라도 타인의 행복을 필요로 한다. 연민(pity)과 동정심 (compassion)이 이런 종류의 천성에속한다. 이것은 타인의 고통을 보거나 또는 그것을 아주 생생하게 느낄 때 우리가 느끼는 종류의 감정이다. 우리가 타인의 슬픔을 보고 흔히 슬픔을 느끼는 것은 굳이 그것을 증명하기 위해 예를 들 필요조차 없는 명백한 사실이다. (도덕감정론』 제1부 제1편 제1장) - P39

타인의 인정은 내게 쾌감을 주고, 부정은 불쾌감을 준다. 관찰자로서 타인 역시 내 행위와 감정을 인정할 수 있는 경우에는 쾌감을 얻고, 부정할 수밖에 없는 경우에는 불쾌감을 느낄 것이다.

우리는 자신의 감정과 행위가 타인의 눈에 노출되는 것을 의식하고 타인으로부터 인정받기를, 또는 타인에게 부정당하지 않기를 바란다. 애덤 스미스는 이러한 바람이 인류 공통의 것이며, 개인에게서 무엇보다 중요한 가치를 지닌다고 생각했다. - P43

우리가 자신의 감정과 행위의 타당성을 재는 기준으로 추구하는 것은 이해관계에 얽매이지 않은 ‘공평한관찰자(impartial spectator)‘의 인정이다. 

자신의 감정 표현과 행위에 대해 부모님이나 친구 등 친한 사람들로부터 ‘네가 옳다‘고 인정받게 된다면 기쁠 것이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그렇게 말해주는 것은 그 사람이 내게 특별한 애정과 호의를 가지고 있는 탓인지도 모른다고 생각할 것이다. 

거꾸로, 자신에 대해 명백히 적의를 가진 사람들에게 ‘당신이 틀렸다‘는 말을 듣는 경우, 그 순간에는 충격을받을지도 모르지만 냉정을 되찾으면 그러한 비난은 공평함이 결여된 것이며 귀담아 들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할 것이다. 

어떤 경우도우리가 자신의 감정과 행위의 타당성에 대해 확신을 가질 수 있는 기준을 제공해주지 않는다. 그것을 제시해주는 것은 나와 이해관계가 없는, 그리고 내게 별다른 호의나 적의를 가지지 않은 공평한 관찰자뿐이다. - P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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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류 및 하류계층의 사람이 미덕과 부를 획득할 수 있는 길은, 적어도 그런 계층의 사람에게 합리적으로 기대되는 정도의 부를 획득할 수 있는 길은, 다행히도 대부분의 경우에 거의 동일하다. 모든 중류 및 하류계층의 사람들이 종사하는 직업에서 진실하고 견실한 직업적 능력을 가진 사람이 신중하고 정직하며 꿋꿋하고 절제하는 경우, 그가 성공하지 못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 P98

중류와 하류계층 사람들은 대부분 ‘재산에 이르는 길을 걸음으로써 덕에 이르는 길을 걷게 되고, 지혜와 덕, 특히 신중함, 정의,
부동심, 절제의 미덕을 익히게 된다. 따라서 상업이 발달하고 더욱 많은 사람들이 비즈니스에 종사하게 되면 이러한 미덕이 사회에 널리 퍼지게 된다. - P99

이와 비교해 상류층 사람들이 더욱 큰 부와 더 높은 지위를 추구하는 것은 ‘덕에 이르는 길‘에서 타락을 초래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상류사회의 사정은 불행히도 반드시 이와 같지는 않다. 궁정 안에서, 상류사회의 사교계에서 성공과 승진은 총명하고 해박한 지식을 가진 동료들의 평가에 의해서가 아니라 무지하고 뻔뻔하고 오만한 윗사람들의 변덕스럽고 어리석은 호감에 의해 결정된다. 그곳에서는 공로와 실력이 항상 아침과 거짓말로 윗사람의 비위를 맞추는 능력에 압도당한다. 이러한 사회에서는 아첨하는 능력이 일을 처리하는 실력보다 더욱 중시된다. (도덕감정론』 제1부 제3편 제3장)" - P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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