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두베오족Caduveo을 조사하면서 레비스트로스는 낙태와 영아 살해 행위에 주목했다. 그들은 자신의 아이를 기르지 않았다. 그렇다면 그들의 부족과 마을은 어떻게 대를 이을 수 있었을까? 바로 다른 이들에게서 아이를 빼앗아 길렀다!


그곳은 우리가 자연스럽게 여기는 감정을 매우 혐오하는 사회였다. (……) 그들은 아이를 낳고 기르는 일을 대단히 싫어했다. 낙태와 영아 살해는 거의 일반적인 관습이었고, 부족의 존속은 생식이 아닌 입양에 의존할 정도였다. 전사의 출정 목적 중 하나는 다른 사람의 아이를 빼앗는 것이었다. 19세기 초에는 과이쿠루족Guaycuru 가운데 본래 혈통에 해당하는 인구가 10퍼센트도 되지 않았다. - < 슬픈 열대를 읽다, 양자오 지음, 박민호 옮김 >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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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쉬르의 구조주의 언어학의 출현은 19세기에 갈수록 쇠퇴하던 언어학 연구를 해방시켰다. 레비스트로스는 소쉬르 이전 언어학이 처했던 곤경이 당시 그가 느끼던 인류학의 상황과 매우 유사하다는 점을 발견했다. 그 시절 언어학자들은 세계의 수많은 언어를 조사하고 연구하면서 풍부한 자료를 집적했다. 그러나 물밀 듯 밀어닥친 언어 자료는 점차 언어학자들을 질식하게 만들기 시작했다. 그들은 언어 자료를 어떻게 정리하고 연구를 진척시켜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했다. 그런 그들에게 소쉬르는 명확한 방향을 제시했다. 그는 현상인 파롤 안에서 헤매지 말 것을 주장했으며, 현상이 제아무리 많더라도 그것이 우리를 언어학의 핵심으로 이끌 수 없음을 강조했다. 서로 다른 언어의 구조를 정리하고 채택해 초언어적 거대 구조를 탐구하는 것, 즉 대문자적이고 궁극적인 랑그를 파악하는 것이 바로 그가 제시하는 바였다.

우리는 지구상의 2천 가지 언어를 수집하고 이해할 필요가 없다. 수많은 언어를 랑그의 상이한 구조가 파생시킨 사례로 볼 필요가 있다. 즉 수많은 언어의 복잡한 현상을 랑그로 환원하려는 고민을 수행해야 한다. 단어나 문장을 볼 것이 아니라 단어와 단어 사이, 문장과 문장 사이의 관계를 봐야 한다. 언어의 문법을 볼 것이 아니라 상이한 언어 문법 사이의 관계를 봐야 한다. 관계가 사물을 대체하는 것이 관건이다. 달리 말하자면, 사물에서 벗어나 사물과 사물의 관계에 초점을 둬야 한다. 이로써 우리는 구조를 발견할 수 있고, 진정으로 언어를 이해할 수 있다. - <슬픈 열대를 읽다>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459508



언어학적 깨달음을 얻고 나서 레비스트로스가 작성한 첫 번째 논문은 「언어학과 인류학의 구조 분석」L’analyse Structurale en Linguistique et en Anthropologie이었다. 이 짧은 글에서 레비스트로스는 친족 연구 영역에서 언어학의 구조주의적 방법론을 인류학에 적용한 첫 걸음을 내딛었다. 이어서 그는 자신의 박사 논문인 『친족의 기본 구조』Les structures Élémentaires de la parenté를 쓰기 위한 항해를 개시했다.

레비스트로스가 박사 논문을 쓰면서 인용한 문장과 저작의 수는 자그마치 7천여 개나 되었다. 정말 놀랄 만한 수치다! 이는 레비스트로스가 인류학 문헌 독해에 쏟은 엄청난 노력을 보여 주는 동시에, 당시 인류학이 처한 ‘풍요 속 빈곤’이라는 상황을 역설적으로 드러낸다. 그토록 방대한 기록과 논문은 무얼 위한 것이었을까? 어느 누가 이렇게 많은 문헌을 읽어 낼 수 있으며, 그것을 읽었다 한들 무얼 할 수 있겠는가? 그리고 그러한 문헌 속의 정보와 의미를 결합하고 파악하는 방법을 어떻게 마련할 수 있겠는가? - <슬픈 열대를 읽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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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비스트로스의 이론은 그의 실증적 현지 조사 경험에서 직접 유래했다고 볼 수 없다. 야콥슨이 없었다면, 레비스트로스가 브라질에서 조사하고 수집한 자료는 그를 인류학자로 만들어 주지 못했을 것이다. 바꿔 말하면, 그의 인류학 연구는 비록 영미 인류학자들처럼 현지 조사와 자료 수집에서 시작되었지만, 그가 얻은 연구 결과는 현지 경험과 수집된 자료에서 나온 것이 아니었다. 구조주의 언어학에서 얻은 이론적 틀이 있었기에 선행 이론을 통해 어지럽게 흩어진 민족지 내용을 정리하고 해석할 수 있었던 것이다.

선행 이론, 선행 이념이 존재했기 때문에, 적어도 레비스트로스에게 있어 그가 얻은 자료나 다른 이들의 보고서에서 얻은 자료에는 중대하고 결정적인 차이점이 없었다. 그가 찾아 헤맨 것은 구조주의 이론에 부합하는 기록이었다. 그는 그것을 통해 인류 사회에 보편적이고 선험적인 구조가 존재하는지 증명하고자 했다. - <슬픈 열대를 읽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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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비스트로스가 말하는 보편적 사회구조나 문법이 프로이트 이론의 무의식처럼 행위자가 깨닫지 못할 만큼 근본적이고 핵심적이었다는 사실이 영미 구조기능학파를 불안케 했다. 사람들은 딸을 시집보내고 며느리를 맞이한다고만 생각한다. 또 자신이 일정한 기준에 따라 사위나 며느리 또는 사돈댁을 선택한다고만 여긴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이 근본적인 사회 교역 구조에 따라 그러한 일을 행한다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한다.

말하자면 레비스트로스의 구조는 순수하게 에틱(외재)적 해석으로, 에믹(내재)적 관점이나 증거를 필요로 하지 않고 그것의 지지를 받을 필요도 없다. 그런 까닭에 사회문화 안에 존재하는 주관적 해석과 신념으로는 레비스트로스가 인정하는 구조에 대항할 수도, 그것을 뒤집을 수도 없다.

프로이트에 의하면, 어떤 사람이 꿈에서 본 거대한 기둥은 현실 속 남근의 대체물이다. 그러나 꿈을 꾼 사람은 꿈과 성性 사이의 관계를 부인하면서 프로이트의 말에는 아랑곳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의 이론은 본래 성이 사람들이 인식하지 못하는 무의식 속에 잠재해 있다고 말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그의 주장을 부인하는 것이 무슨 쓸모가 있겠는가? - <슬픈 열대를 읽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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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비스트로스의 이론은 검증이 가능할까? 검증이 불가능한 이론도 정당한 과학적 연구 성과라 할 수 있을까? 레비스트로스의 이론은 진정 훌륭하고 매력적이며, 때때로 화려하기도 해서 사람들은 쉽게 무시하거나 부정해 버리지 못한다. 그러나 동시에 그의 이론은 실증적 연구 논리로부터 벗어나 있어, 마찬가지로 사회 조사 분석에 종사하는 전문가들을 곤혹스럽게 만든다.

이러한 문제는 줄곧 레비스트로스와 그의 학술적 성취를 둘러싸고 불거져 왔다. 어쩌면 레비스트로스가 수행한 것은 애초부터 과학이라기보다는 그것과 다른 성질의 것일지도 모른다. 이를테면 시 말이다. - <슬픈 열대를 읽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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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천황의 독특한
- 이름만 있고 성이 없다
- 역성혁명이 불가하다^^

혁명은 원래 ‘역성혁명易姓革命’의 준말로 왕조를 교체한다는 뜻이다. 군주가 덕이 부족하여 세상을 제대로 다스리지 못할 때에는 천명天命이 그 왕조를 떠나 다른 가문으로 옮긴다는 천명사상이다. 임금의 성을 바꾸는 변혁, 즉 신라 김씨에서 고려 왕씨로, 고려 왕씨에서 조선 이씨로 천명이 옮겨가는 것이다. 무시무시한 사상이다. 이게 혁명이다.
그런데 일본은 어떤가. 역사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6세기 이후로는 한 번도 왕조가 바뀐 적이 없다. 법흥왕이나 진흥왕이 신라 임금이었던 시절에 일본에서 왕 노릇하던 그 집안이 지금도 왕이다. - <메이지유신을 설계한 최후의 사무라이들>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493187


천황에겐 성이 없다. 히로히토, 아키히토, 그리고 지금 천황은 나루히토로 이름만 있다. 그러니 사실 역성易姓할래야 할 수도 없다. 우리는 김수로왕, 고주몽 등 아무리 왕이라도 성이 있다. 물론 천황 빼놓고 나머지 백성에게는 모두 성이 있다. 이 성들은 다 천황이 하사한 것이(라고 간주된)다. 사성賜姓이다. 그러니까 천황과 나머지 일본인은 차원이 다른 존재다. 조선의 왕이나 고려의 왕이라는 것은 왕이긴 하지만 크게 보면 수많은 성을 가진 사람들(백성百姓) 중의 최고 우두머리에 불과하다. 사대부의 예를 왕도 따라야 한다. 그러나 일본의 천황은 구름 위의 존재다. 인간이되 인간이 아닌 존재다. 그러니 일본제국 시대에 ‘현인신現人神’이라고 해서 천황을 살아 있는 신으로 여기며 젊은이들을 가미가제로 내모는 것이 가능했던 것이다. - <메이지유신을 설계한 최후의 사무라이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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료마 대 쇼인, 국제주의와 민족주의

메이지유신 당시 청년들과는 달리 료마는 묘하게도 해외침략에 대해 적극적이지 않았다. 그는 해군육성과 무역추진 같은 바다와 관련된 주장을 주로 했지만 요시다 쇼인처럼 해외팽창론을 주장한 적은 거의 없다. 또 막부에 대해서도 ‘무조건 타도’를 외치지 않고, 지금까지 해온 막부의 공적을 인정할 건 인정한 위에서 평화적인 정권교체를 시도했다. 요시다 쇼인 일파의 막부타도론, 존왕양이론과는 사뭇 결이 달랐던 것이다.
그래서 현재 일본 사회가 국제적인 마인드를 중시하고 아시아와의 협력을 중시할 때는 료마가 곧잘 소환된다. 일본의 대표적 국제통인 소프트뱅크 손정의 회장이 료마를 추앙한 게 좋은 예다. 반대로 일본의 민족주의를 강조하고 아시아에 대해 날선 자세를 보이는 정치세력은 요시다 쇼인을 즐겨 소환한다 - < 메이지유신을 설계한 최후의 사무라이들, 박훈 지음 >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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