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비스트로스의 이론은 그의 실증적 현지 조사 경험에서 직접 유래했다고 볼 수 없다. 야콥슨이 없었다면, 레비스트로스가 브라질에서 조사하고 수집한 자료는 그를 인류학자로 만들어 주지 못했을 것이다. 바꿔 말하면, 그의 인류학 연구는 비록 영미 인류학자들처럼 현지 조사와 자료 수집에서 시작되었지만, 그가 얻은 연구 결과는 현지 경험과 수집된 자료에서 나온 것이 아니었다. 구조주의 언어학에서 얻은 이론적 틀이 있었기에 선행 이론을 통해 어지럽게 흩어진 민족지 내용을 정리하고 해석할 수 있었던 것이다.
선행 이론, 선행 이념이 존재했기 때문에, 적어도 레비스트로스에게 있어 그가 얻은 자료나 다른 이들의 보고서에서 얻은 자료에는 중대하고 결정적인 차이점이 없었다. 그가 찾아 헤맨 것은 구조주의 이론에 부합하는 기록이었다. 그는 그것을 통해 인류 사회에 보편적이고 선험적인 구조가 존재하는지 증명하고자 했다. - <슬픈 열대를 읽다>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459508
레비스트로스가 말하는 보편적 사회구조나 문법이 프로이트 이론의 무의식처럼 행위자가 깨닫지 못할 만큼 근본적이고 핵심적이었다는 사실이 영미 구조기능학파를 불안케 했다. 사람들은 딸을 시집보내고 며느리를 맞이한다고만 생각한다. 또 자신이 일정한 기준에 따라 사위나 며느리 또는 사돈댁을 선택한다고만 여긴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이 근본적인 사회 교역 구조에 따라 그러한 일을 행한다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한다.
말하자면 레비스트로스의 구조는 순수하게 에틱(외재)적 해석으로, 에믹(내재)적 관점이나 증거를 필요로 하지 않고 그것의 지지를 받을 필요도 없다. 그런 까닭에 사회문화 안에 존재하는 주관적 해석과 신념으로는 레비스트로스가 인정하는 구조에 대항할 수도, 그것을 뒤집을 수도 없다.
프로이트에 의하면, 어떤 사람이 꿈에서 본 거대한 기둥은 현실 속 남근의 대체물이다. 그러나 꿈을 꾼 사람은 꿈과 성性 사이의 관계를 부인하면서 프로이트의 말에는 아랑곳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의 이론은 본래 성이 사람들이 인식하지 못하는 무의식 속에 잠재해 있다고 말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그의 주장을 부인하는 것이 무슨 쓸모가 있겠는가? - <슬픈 열대를 읽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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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비스트로스의 이론은 검증이 가능할까? 검증이 불가능한 이론도 정당한 과학적 연구 성과라 할 수 있을까? 레비스트로스의 이론은 진정 훌륭하고 매력적이며, 때때로 화려하기도 해서 사람들은 쉽게 무시하거나 부정해 버리지 못한다. 그러나 동시에 그의 이론은 실증적 연구 논리로부터 벗어나 있어, 마찬가지로 사회 조사 분석에 종사하는 전문가들을 곤혹스럽게 만든다.
이러한 문제는 줄곧 레비스트로스와 그의 학술적 성취를 둘러싸고 불거져 왔다. 어쩌면 레비스트로스가 수행한 것은 애초부터 과학이라기보다는 그것과 다른 성질의 것일지도 모른다. 이를테면 시 말이다. - <슬픈 열대를 읽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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