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과 축제 그리고 민족적 정신
취미 부족을 나타내는 또 하나의 사실은 명절이 없어져감이다. 물론 거기는 여러 가지 원인이 있을 것이다. 그 명절이란 본래 대개 종교적 의미를 가지는 것인데 지금은 그 옛날의 그 유치했던 종교가 없어지니 그 행사도 자연히 없어지는 것이다. 또 근래 신구 문화의 바뀜으로 옛것이 모두 깨지니 그것도 원인 가운데 하나일 것이다. 그러나 다른 나라에서 보면 본래의 종교적 의미가 없어져도 차차 예술화되어 남게도 되고 신구 풍속이 갈려도 새 형식으로 계속하게 된다. 원래 민족은 신화 없어서는 못 살고 명절 없으면 안 된다.
명절은 일종의 정신적 소성(蘇盛)이다. 묵은 시름, 묵은 찌끼, 묵은 빚, 묵은 때를 확 떨어버리고, 한번 남녀노소·빈부귀천·재둔선악(才鈍善惡)의 모든 구별, 모든 차별을 다 없애고 맨사람으로 돌아가 ‘한’이 되어, 펼 대로 펴고, 놀 대로 놀고, 즐길 대로 즐기고, 흥분할 대로 기껏 흥분해보자는 것이다. 사람은 이것이 없이는 못 산다. 그래서 5월 수리요, 8월 가위요, 크리스마스 저녁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그것이 차차 없어지는 편이다. 여기도 물론 가난이 큰 원인이기는 하나, 생각해보면 그보다 더 깊은 원인이 있다. 따져 말하기는 어려우나 민족적 생명의 썰물 때인가? 옛 기록에 나타난 것으로 보면 우리 민족이 결코 바탕이 비관적이거나 몰취미가 되어서 그런 것은 아니다. 다만 생활이 밑금에까지 내려갔기 때문이다. - < 뜻으로 본 한국역사, 함석헌 지음 >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