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다 못한 아들이 1816년 4월, 아버지에게 편지를 썼다.
아버님, 한 번만 그들에게 고개를 숙이셔서 석방을 빌어보시지요.
다산의 답장은 이랬다. 조금 풀어서 쓴다.
세상에는 두 가지 기준이 있다. 시비是非와 이해利害가 그것이다. 옳은 것을 지켜 이롭게 되는 것이 가장 좋고, 옳은 일을 해서 손해를 보는 것이 그다음이다. 그른 일을 해서 이익을 얻는 것이 세 번째고, 그른 일을 하다가 해를 보는 것은 네 번째다. 첫 번째는 드물고, 두 번째는 싫어서, 세 번째를 하려다 네 번째가 되고 마는 것이 세상의 일이다. 너는 내게 그들에게 항복하고 애걸하라고 하는구나. 이는 세 번째를 구하려다 네 번째가 되라는 말과 같다. 내가 어찌 그런 짓을 하리. 이는 그들이 쳐놓은 덫에 내 발로 들어가라는 말이 아니냐? 나도 너희들 곁으로 돌아가고 싶다. 하지만 죽고 사는 문제에 견주면 가고 안 가고는 아무것도 아니지. 하찮은 일로 아양 떨며 동정을 애걸할 수는 없지 않느냐?
다산은 아들의 간청에도 불구하고 18년간의 유배를 견디면서 살려달라는 편지 한 장 쓰지 않았다. - < 파란 1, 정민 지음 > 중에서
관련하여 시비에 대한 좀더 세부적인 논의가 가능하다.
기본적으로 윤리학Ethics(좀 더 구체적으로는 규범윤리학Normative Ethics)은 도덕적인 관점에서 보았을 때, ‘좋은 것’은 무엇인가?What is Good?, ‘옳은 것’은 무엇인가?What is Right?에 대한 체계적인 답변을 구하려고 시도하는 철학 분야라고 할 수 있다. 우리는 이러한 질문을 두 가지 층위에서 제기하는 것이 가능하다. 하나는 한 ‘개인’의 입장에서 어떻게 행동을 하는 것이 도덕적인 관점에서 보았을 때, 좋거나 옳은지에 대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사회 전체’의 입장에서 사회적 체제 혹은 제도를 어떻게 구성하는 것이, 도덕 혹은 정의의 관점에서 보았을 때, 좋거나 옳은가 하는 것이다. 후자의 질문에 집중을 하는 철학 분야를 우리는 흔히 ‘정치철학political philosophy’이라고 부른다. 이런 점에서 정치철학은 넓게 보아서 윤리학의 한 하위 분야라고 생각할 수가 있다. - < 처음 읽는 윤리학, 서울대학교철학사상연구소 지음 >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