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범 김구 암살사건은 노투사의 피를 거꾸로 솟구치게 만들었다. 그는 주변 지인들에게 “이것은 분명히 이승만의 짓이다. 함께 고생하며 독립운동을 한 처지에 정적이라고 죽이다니 그냥 놔두지 않겠다”며 ‘이승만 응징’을 선언했다. 김시현은 그때 이미 나이 일흔을 바라보고 있었지만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는 성정만큼은 젊은 시절 그대로였다.

1952년 6월 25일 김시현은 의열단 후배 유시태와 함께 임시수도 부산에서 열린 ‘6・25 2주년 기념 및 북진촉구 시민대회’에 참석, 연단에 있던 이승만 대통령을 암살하려다가 실패해 채포됐다. 당시 이승만 대통령은 김시현 일행의 권총이 불발되는 바람에 겨우 죽음을 면했다.

김시현은 이 사건으로 사형선고를 받았다가 나중에 무기형으로 감형돼 복역하던 중 4・19혁명으로 풀려났다. 이후에도 그는 친일파로 구성된 장면 정부의 국무위원회에 들어가 폭탄을 터뜨리겠다는 계획을 세웠지만 실행에 옮기지는 못한 채 1966년 파란만장한 삶을 마감했다. 그는 이승만 암살미수 사건 때문에 지금도 독립유공자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 < 1923 경성을 뒤흔든 사람들, 김동진 지음 >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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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사회의 참여와 기부

카붐이 2000년 워싱턴 DC의 한 저소득층 주택단지에 놀이터를 지울때의 일이다. 그곳에서 1995년 두 아이가 자동차 속에서 놀다 질식사한 비극이 일어나 미국을 떠들썩하게 만든 바 있다. 카붐은 여기에 놀이터 두 곳을 지었는데, 짓고 난 뒤 놀이터 두 곳의 운명이 확연하게 갈렸다.

한 곳은 카붐의 원칙대로 진행되었지만, 다른 한 곳은 계획에 차질이 생기면서 주민과의 협력이 부족한 채 강행되었다. 주민이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못한 채 지어진 놀이터는 이내 무관심 속에 황폐해지고 말았다.

이후 카붐은 공동체를 활성화하겠다는 열정이 없는 곳엔 놀이터를 짓지않는다는 원칙을 분명히 하게 되었다. 놀이터 프로젝트의 계획 단계부터 참여함으로써 주민들은 몰랐던 마을의 역량을 자각하고 놀이터에 대한 애착과 자부심을 느끼며 이러한 경험은 다른 공동체 프로젝트의 밑거름이 된다는 것이다. - P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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압록강의 물빛이 오리머리의 빛과 같이 푸른 색깔을 하고 있다 하여 ‘수색여압록水色如鴨綠’ 즉 압록이란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 < 단재 신채호 평전, 김삼웅 지음 >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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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연휘발유, 무연휘발유와 범죄율
- 괴짜경제의 레빗은 낙태의 합법화가 범죄율을 낮췄다고 진단했음.
- 레빗은 가설은 범죄율을 감소는 설명하지만 범죄율의 증가은 설명하지 못함.

여러 연구자들의 지적에 따르면, 2차 세계대전 후 전 세계 대다수 지역에서 나타난 범죄율의 엄청난 급증은 납 오염의 증가 추세를 거의 비슷하게 따르고 있다.

지금까지도 많은 사람들의 뇌리에 비행 청소년, 도심 우범지대, 90년대 유행어인 ‘초포식자 (super-predators, 90년대 초 미국의 충동적이고 흉악한 10대 강력 범죄자들을 가리키던 말─옮긴이)’ 등의 이미지로 선명하게 남아 있는 과거의 높은 범죄율은, 사실 역사적으로 이례적인 현상이었다. 전 세계적으로 반짝한 후 이제는(아마도) 지나간 듯한, 설명하기 어려운 현상이다.

그런데 사회적·정치적 상황이 각기 다른 수많은 나라에서, 범죄율이 치솟기 시작한 시점이 어째 다 유연 휘발유가 그곳에 도입되고 약 20년 후부터다. 다시 말해 최초로 유연 휘발유에 다량 노출된 아이들이 10대에서 20대 초반에 이르렀을 무렵이다. 그리고 상관관계는 반대 방향으로도 나타난다. 최근 수십 년간은 전 세계 대부분 지역에서 그 나라의 사회 정책에 관계 없이 강력 범죄가 꾸준히 줄어들었다. 그런데 각 지역마다 범죄율이 하락세로 접어든 시점은, 그 지역에서 유연 휘발유를 금지하고 나서 하나같이 약 20년 후인 듯하다. 더 일찍 금지한 곳일수록 더 일찍 범죄율이 하락했고, 갑작스럽게 금지한 곳은 서서히 퇴출한 곳보다 더 급속히 하락했다.

거듭 말하지만 상관관계가 곧 인과관계는 결코 아니며, 이 이야기는 아직 정보에 근거한 추측에 불과하다. 아마 인과관계 유무는 앞으로도 증명이 불가능할지 모른다. 수많은 아이들에게 납을 주사하고 20년 후에 범죄를 얼마나 저질렀나 보는 실험을 할 수는 없으니까. 그렇지만 아마도 수백만 명이 사망했고, 확실히 지구 구석구석이 남김없이 오염되었고, 분명히 수세대의 아이들이 혈중 독소로 지능이 저하된 것도 모자라(참고로 그 수세대의 아이들이 바로 최근 40년간 세상을 주도했던 사람들이다), 어쩌면 수십 년간 세계적으로 범죄가 기승을 부리며 그 결과 사회적 편견이 더 강하게 고착된 ..... - < 인간의 흑역사, 톰필립스 지음, 홍한결 옮김 >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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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연휘발유의 전사 : 돈의 부작용

사실 미즐리의 연구팀은 엔진 노킹 문제의 완벽한 해결책으로 에탄올을 수년 동안 밀기도 했다. 그런데 왜 에탄올을 버리고 엄청나게 유독하다는 걸 누구나 아는 물질을 택했느냐고? 너무 충격받지 말길 바란다. 돈 때문이었다.

에탄올의 문제는 생산하기가 너무 쉽고 저렴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특허를 낼 수 없었다. 찰스 케터링의 회사 델코는 거대기업 제너럴모터스에 1918년에 인수된 상태였고, 그의 연구팀은 자기들이 돈 안 되는 연구만 하고 있는 게 아니라 실제로 돈을 벌 수 있음을 보여주어야 한다는 압박감을 받고 있었다. 제조가 너무 쉬워 집에서도 만들 수 있는, 그래서 전매 상품화할 수 없는 에탄올은 그런 면에서 쓸모가 없었다. 연구팀은 납으로 가기로 했다.

혹시라도 토머스 미즐리가 ‘비열한 기업 논리에 악용당한 착한 발명가’였다고 생각한다면, 그렇지 않다. 납을 사용하는 방안을 제안하고 강하게 주장했던 것은 미즐리였다. 자기가 직접 계산까지 해봤다. TEL 연료는 갤런당 3센트를 더 붙여 팔 수 있으리라는 계산 결과를 얻었고, 광고 캠페인을 공격적으로 벌이면 휘발유 시장의 20퍼센트를 점유할 수 있으리라고 내다봤다 - < 인간의 흑역사, 톰필립스 지음, 홍한결 옮김 >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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