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읽은 소설이다. 읽고 싶었던 소설집인데 밀리의 서재에 있는 덕분에 읽게 되었다. 세번째 수록된 ‘공생관계’가 가장 좋았다.



“류드밀라 마르코프에게는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장소에 관한 기억이 있었다.

그 기억이 언제부터 어떻게 류드밀라에게 자리 잡았는지는 불분명하다. 어린 시절 류드밀라가 자랐던 보육원의 교사는 자신의 회고록에서 이렇게 회상했다.

“그 아이는 다섯 살부터 자신이 ‘그곳’에서 왔다고 주장했어요. 우리 교사들은 별로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았지요. 어린아이들이 그런 공상을 펼치는 것은 흔한 일이고 정상적인 발달 과정의 일부이니까요. 다만, 류드밀라는 그 믿음에 집착하는 성향이 있었어요. 교사들 중 누군가가 그 세계의 존재를 조금이라도 의심하는 태도를 보이면, 류드밀라는 아주 슬퍼하고 괴로워했어요. 그래서 암묵적인 규칙이 있었답니다. 류드밀라의 앞에서 결코 그걸 의심하는 티를 내지 않는 규칙이었죠. 그러면 아무 문제가 없었어요. 우리는 다들 그 몽상이 류드밀라가 어른이 되면서 자연스럽게 없어질 현상이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러나 교사들의 예상과 달리 그곳에 관한 류드밀라의 기억은 성장한 이후에도 결코 사라지지 않았다” -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471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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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업기억에 보관된 모든 정보가 수 초 만에 날아간다면, 어떻게 우리는 책의 내용을 조금이라도 기억하는 걸까? 애초에 굳이 책을 읽는 이유가 있을까? 오늘 아침에 뭘 먹었는지, 지난주에 춤 선생님이 안무와 함께 들려준 생소한 재즈 음악이 어떤 선율이었는지, 2017년 내가 했던 TED 강연은 무슨 내용이었는지를 어떻게 기억하고 있는 걸까? 매 순간 새로운 목록을 기억하고 15~30초에 한 번씩 새로운 전화번호를 외우고 살기에는 인생이 너무 복잡하다.

도대체 작업기억은 무엇을 위한 걸까? 작업기억은 대다수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기억의 최초 관문이다. 지금 이 순간 우리가 경험할 수 있는 세세한 정보 가운데 우리의 주의를 사로잡고, 우리에게 특별한 의미를 지니거나 감정을 자극하는 것들은 시한부의 작업기억 중에서도 따로 선택되어 해마로 전송된다. 해마에서 강화된 정보들은 장기기억으로 전환되고, 장기기억은 작업기억과는 다르게 보관 기간과 용량에 제한이 없다는 것이 지금까지 알려진 바다. - <기억의 뇌과학>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564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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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달 2022-06-04 20: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맙습니다
 

기억은 신경세포 집단의 신경망 형태로 머릿속에 존재하는 물리적 실체다. 내 할머니는 2002년에 알츠하이머병으로 돌아가셨다. 할머니를 떠올리면 나의 뇌는 시각피질에 있는 할머니의 모습을, 청각피질에 있는 할머니의 웃음소리를, 후각피질에 있는, 할머니가 거의 매일 점심에 요리했던 그린페퍼 양파 볶음 향을 활성화한다. 할머니 거실의 붉은색 러그, 다락방에 있던 드럼, 부엌 테이블 위에 있던 피첼레pizzele(와플을 닮은 이탈리아식 쿠키 — 옮긴이) 캔 등도 떠오른다.

뭔가를 기억할 때마다 우리는 경험한 정보의 여러 요소들을 활성화하는데, 이 요소들은 하나의 단위를 이루도록 서로 엮여 있다. 기능적 자기공명영상functional MRI으로 뇌를 관찰하면 기억이 어떤 방식으로 인출되는지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 MRI스캐너에 들어간 사람에게 특정 기억을 떠올리게 하면 원하는 정보를 찾아 말 그대로 ‘뇌를 뒤지는’ 모습이 관찰된다. 처음에는 여기 번쩍 저기 번쩍, 뇌 여기저기가 활성화된다. 하지만 처음 해당 정보를 학습했을 때 만들어진 활성 패턴과 일치하는 형태의 패턴이 나타나면 거기서 멈춘다. 그리고 바로 그 순간 피험자는 “기억났어요!”라고 말한다. - <기억의 뇌과학>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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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덕감정론과 사회적 뇌가 만나는 지점.
- 조물주를 진화 또는 자연선택으로 바꾸면, 아담 스미스의 설명은 21세기적으로 된다.


전지전능한 조물주는 인간에게 형제들의 감정과 판단을 존중하도록 가르쳤다. 그리고 형제들이 자신의 행동을 인정해주면 기쁨을 느끼고, 자신의 행동에 반대하면 마음에 상처를 받도록 가르쳤다. 이렇게 말해도 될지 모르겠지만, 조물주는 인간에게 인류의 심판관이라는 역할을 부여했다. 형제들은 조물주가 부여한 인간의 권한과 심판권을 인정한다. 따라서 자신들의 행동에 대해 질책 받을 때는 수치심과 굴욕을 느끼고, 반대로 칭찬을 받으면 의기양양해진다. - P246

타인이 자신의 행동을 인정해주면 기쁨을 느끼고, 타인이 자신의 행동에 반대하면 마음의 상처를 받는다. 이 마음 시스템은 얼마나 잘 작동할까? 불완전할 때가 많지만, 가끔은 경찰 조직보다 훨씬 더 훌륭하게 작동하기도 한다. - P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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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가 청춘이던 50년대 후반 한국에서도 모자는 중요한 사회적 지위의 지표였다. 60년대 모자는 더이상 그 역할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아버지의 기억 역시 케네디의 영향이다.




이러한 변화가 유행을 선도하는 사람들, 즉 영향력 있는 유명인들 때문에 일어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 재미있는 일화를 하나 소개하자면, 미국 남자들이 밖에서 모자를 안 쓰게 된 계기가 존 F. 케네디 대통령 때문이라는 말이 있다. 그가 취임식에 모자를 쓰지 않으면서 미국 남자들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모자를 벗기 시작했다는 주장이다. 물론 그가 이전 대통령들보다 격식을 덜 차렸던 것은 맞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다. 실제로 케네디 대통령은 취임식에서 격식 있어 보이는 실크 모자를 썼기 때문이다. 유명인들이 일반인들의 행동이나 옷차림에 영향을 미치긴 해도, 단 한 사람이 모든 사람에게 영향을 미친다고 보기는 어렵다. - P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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