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덕감정론과 뇌과학이 연결된다는 내 추측이 맞았다. 이 책을 도메 교수가 쓰게 된 계기 중 하나가 뇌과학자들과의 교류였음이 저자 후기에 적혀있다.

거울뉴런과 마음이론에 대해서는 리버만의 사회적 뇌에 잘 설명되어 있다.

공감에 대한 뇌과학적 성과는 아담 스미스의 도덕감정론으로 연결되기도 하지만 폴라니의 사상으로도 연결되고 마르크스의 사상으로 연결되기도 할 것이다. 반면 이기적 개인의 유토피아 사상은 공감하는 뇌와 양립하기 어려울 것이다.


 이렇게 5년에 걸쳐 애덤스미스와 격투를 벌이며, 나의 해석을 한 권의 책으로 정리해보고싶은 생각이 들었다.

이러한 구상이 구체화된 것은 2006년 12월이었다. 그때 오사카대학교 사회경제연구소 사이조 다쓰요시 교수의 권유로 ‘두뇌 활용‘ 연구회의 ‘두뇌 읽기‘ 분과연구회에 참가하여 ‘경제와 윤리-애덤 스미스의 인간관‘ 이라는 주제로 강연을 했다. 

연구회에 참여한 많은 뇌과학자들은 애덤 스미스의 ‘동감‘ 이나 ‘공평한 관찰자‘의 개념에 놀라는 듯했다. 이러한 개념은 현대의 뇌과학에서 미러뉴런(Mirror Neurons, 타인의 행동을 자신의 행동처럼 느끼게 하는 신경세포)이나 마인드 이론(Theory of Mind, 타인의 행동에서 심리를 추측하는능력) 등의 분야와도 관련이 있어 애덤 스미스의 『도덕감정론』이 뇌과학에 흥미로운 아이디어를 제공해주지 않을까 생각했다. - P2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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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미스는 일반적 규칙으로 정의와 자혜를 제시하고 사회질서는 정의에 의해 유지되므로 법으로 정해 의무적으로 따르게 하고 자혜는 사회를 쾌적하게 만드니 권장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런데 법에는 정의에서 도출되는 것만이 아니라 자혜를 기초로 도출되는 것도 있다. 사회법의 다수가 자혜를 기초로 의무적으로 따르도록 요구한다. 예를 들어 공공부조법은 세금을 거두어 빈곤층의 생명과 존엄을 지킨다. 스미스 입장에서는 공공부조법은 자혜의 문제이지 정의의 문제가 아니다. 따라서 자선으로 해결해야지 법으로 해결할 일이 아니다.

스미스의 도덕감정론이 국부론이 세상에 풀어놓은 이기심을 보완하고 제어하지만, 스미스의 자혜에 관한 이론은 현대의 법체계를 설명하기에 한참 부족하다.






애덤 스미스는 사회를 떠받치는 토대는 정의지 자혜가 아니라고생각했다. 물론 자혜로운 사회는 그렇지 않은 사회보다 쾌적한 사회다. 그러나 사회를 유지하고 존속시키기 위해 꼭 필요한 것은 자혜가 아니라 정의다. 사회구성원이 타인의 이익을 증진시키려 하지 않더라도, 타인의 생명, 신체, 재산, 명예 등을 훼손시키지만 않는다면 사회는 존속된다. 거꾸로, 가령 소수의 사람들이 매우 자혜롭다 하더라도 사회 구성원의 다수가 정의를 경시하면 사회는 붕괴될 것이다. 따라서 자혜는 바람직한 것으로 권장되면 충분하지만, 정의는 지켜야 할 것으로 강제되지 않으면 안 된다. - P72

자혜로운 행위를 일으키는 감정은 관용, 인간애, 친절, 동정심,
우정 등이다. 우리는 이러한 감정 자체를 기분 좋은 것으로 느끼며 선호한다. 그리고 이러한 감정이 표출되는 것을 보고 싶어한다. 따라서 자혜로운 행위가 오직 행위자의 의무감에 의해서가 아니라 그것을 일으키는 감정으로부터 직접 생겨나야 한다고 본다. - P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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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희생에 대해 스미스는 경외심과 의심 모두를 갖는다. 자기애가 사회질서를 파괴할 것에 대해 경계하지만 자기 희생 역시 일반인에게 요구할 성질의 것이 아님을 강조한다.


그러나 과연 애국자의 마음속 공평한 관찰자는 그에 대해 세상의견해와 동일한 견해를 갖고 있을까? 애당초 우리는 자기 자신과 가족,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들의 안전과 번영의 토대라고 생각할 때 조국을 사랑하는 것 아니었는가? 그럼에도 조국에 대한 사랑을 위해 자기 목숨, 또는 자기가 사랑하는 사람들의 목숨이 희생되어도 좋다고 생각하는 것은, 개인의 마음속에서 애착의 본말전도가 일어났다고밖에 할 수 없다. 아마도 애국자의 마음속 공평한 관찰자는 자기 자신에 대해, 자기 목숨과 자기가 사랑하는 사람들의 목숨을 가능한 한 지키도록 명령할 것이다. 적어도 국가의 허영을 위해 자기와 자기가 사랑하는 사람들의 목숨을 희생시키는 것을 시인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자기 자신과 주변 사람들에 대한 애착을 바탕으로 한 조국에 대한 사랑은 자연스럽고 또한 필요하여, 공평한 관찰자가 인정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을 넘어서는 조국에 대한 사랑은 부자연스럽고 도착증적인 편애가 될 위험성이 있다. - P124

우리는 자신의 목숨을 희생하여 남을 돕는 행위를 보았을 때 그것에 감탄한다. 그러나 우리가 감탄하는 것은, 그 행위가 타인의 이익을 증진시키도록 행동해야 한다는 사회의 일반적 규칙들에 엄밀하게 일치하기 때문이 아니다. 사회의 일반적 규칙들은 그런 엄격한 자기희생을 요구하지 않는다. 우리가 감탄하는 것은, 오히려 그 행위가 일반적 규칙들에 대한 고려를 넘어서 어떤 숭고한 감정에근거하여 행해진 것임에 틀림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 P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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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럼버스의 교환

파르망티에는 루이 16세를 설득해 감자 꽃을 옷깃 장식으로 달거나 귀족에게 나눠주게 하는 등 감자 선전에 열을 올렸고, 일부러 관심을 끌기 위해 서민에게 감자를 주는 것을 금지하는 법령을 내는 등 감자를 고급 식자재로 부각시키기도 했다.

파르망티에는 감자 요리가 맛있다는 것을 알리려고 파리 교외의 레 사블롱 들판에 50에이커(약 20만 ㎡) 정도의 감자밭을 조성하였고, 남미에서 온 진귀한 농작물이라고 소개했다. 낮에는 무장한 감시인에게 망을 보게 했고 밤에는 일부러 감시를 풀었다. 주변 농민들은 삼엄한 감시를 보면서 감자가 맛이 좋은 고가의 작물일 것이라고 믿게 되었고, 한밤중에 몰래 훔쳐가 재배하기 시작했다. 파르망티에의 눈물겨운 노력 덕분에 재배가 시작된 감자는 프랑스 혁명기부터 나폴레옹 시대까지 심각한 기근이 이어지면서 눈 깜짝할 사이에 프랑스 전역으로 확산되었다. 지금도 프랑스 요리에서 파르망티에라는 이름은 모든 감자 요리를 총칭하는 것으로 사용된다. - < 처음 읽는 음식의 세계사, 미야자키마사카츠 지음, 한세희 옮김 >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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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신료 관세와 대항해시대
- 오스만 투르크가 무역을 방해해서 유럽이 새 항로 개척을 했다는 설명은 진위에 논란이 많다. 이슬람 제국이 상업에 적극적이었음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오히려 유럽 내부의 무역 갈등이 중요했다. 베네치아, 피렌체의 무역 독점에 포르투갈이 새 무역로를 개척했다는 주장도 있다.

유럽에서는 중세 내내 후추 등의 동방 무역을 이슬람 상인과 베네치아 등 이탈리아 상인이 독점했다. 그러다가 16세기 초반에 오스만 제국이 이집트의 카이로와 알렉산드리아를 점령하면서 베네치아로 출하하는 상품에 대한 세금을 대폭 올리는 사건이 발생한다. 이 때문에 후추 가격이 폭등하여 한때 예전 가격의 8배가 되기도 하였다. 그럴 바에야 항로를 새로 개척해 직접 인도에 가서 후추를 매입하는 게 이득일 것이라는 생각이 퍼졌다. 후추의 대량 운송과 관련해 제2막이 열리던 순간이다. - < 처음 읽는 음식의 세계사, 미야자키마사카츠 지음, 한세희 옮김 >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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