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목해야 할 것은 독일의 비유대인 지식인들 가운데 적지 않은 숫자가 이런 비관적이고 결정론적인 입장에 대해 반론을 제기했다는 검이다. 이 책 1장에서 지적한 바와 같이, 게르만 민족주의 지지자들 모두가키쉬‘한 신념을 가졌거나 반유대주의자라고 가정하는 것은 잘못이다. 사회민주주의자들 대다수뿐 아니라 자유주의자들 다수도, 독일 유대인들을 필요불가결한 일부로 포함하는 포괄적인 공화주의적 정체성에 대한 믿음을 품고 있었다. 마찬가지로 독일 내 유대인 식자층도 트라이치케의 적의에 당연히 질겁했지만, 그에 못지않게 그레츠의 민족적 종족주의 입장에 대해서도 강하게 반대했다. 베를린대학교 철학교수였던 모리즈 라자루스(Moritz Lazarus)에서부터 같은 대학교 역사학과의 해리 브레슬라우 (Harry Bresslau), 그리고 그레츠의 제자였으며 나중에 마르부르크대학교에서 저명한 신칸트주의 철학자가 된 헤르만 코헨(Hermann Cohen)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그레츠를 강력하게 비판했다. 그들 모두 단일 국가 내에 두 개의 민족성‘이 있을 수 없다는 데 동의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이렇게 통합된 민족 안에도 다양성은 있어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게르만적‘이라는 것 자체부터가 다양한 문화 요소들이 만들어낸 역사적 산물이기에, 그런 문화 요소들을 계속 흡수할수 있는 탄력성을 충분히 가지고 있다고 그들은 주장했다. 독일제국의다른 백성들 즉 프로테스탄트 및 가톨릭교도들과 마찬가지로 유대인들도 무엇보다 먼저 독일인이며, 그들이 유대인이라는 것은 부차적인 문제였다. - P17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