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슐로모 산드 지음, 김승완 옮김, 배철현 감수 / 사월의책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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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족적 민족주의와 시민권 민족주의 발전의 향배는 지배계급의 다양성 수준, 지식인의 출신 성분에 의존한다.

근대 이전에 피를 친족관계의척도로 삼았던 이들은 오히려 귀족 계급이었다. 오직 귀족들의 핏줄에만 선조의 값진 씨앗으로부터 물려받은 푸른 피 (blue blood, 귀족 혈통)가흐른다고 했다. 옛 농경 세계에서는 생물학적 결정론이야말로 인간 분류의 기준으로, 지배계급이 가진 가장 중요한 상징적 자산이었을 것이다. 그것이 법적 토대가 되어 토지와 영토에 대한 장기적이고 안정적인지배권의 하부구조 역할을 했다. 

알렉시스 토크빌이 자기 시대에 대해 관찰한 바에 따르면, 중세시대의 계급 상승은 오직 교회 내에서만 가능했다고 한다. 교회는 계급의 배타적 근거를 혈통에서 찾지 않는 유일한 조직이었기 때문이고, 그로 인해 근대 평등주의의 원천이 될 수 있었다는 것이다. - P125

 서유럽에서 인정하는 것처럼 영토 내 출생 여부에 따라 민족 자격을 부여하는 속지주의 (jussoli)는 동유럽 국가들에서는 전혀 채택되지 않았다.
- P126

 장차 이탈리아가될 지역 전역에서 국가기구에 참여한 최초의 지식인들 역시 전통 귀족층 출신 아니던가? 이탈리아 정체성이 공고화되는 과정에서 종족주의가 비교적 억제된 데 대해서는 정확하지는 않더라도 다음과 같은 설명이 가능할 것이다.

 우선은 교황권의 무게가 대단했다는 것, 그리고 이 교황권으로부터 가톨릭 보편주의가 모든 계층에 스며들었고, 이로부터 이탈리아 관료체제가 생겨났다는 것이다. 

어쩌면 고대 로마 공화국 및제국의 정치적 신화가 이 색다른 시민적 정체성의 면역력을 높여주었는지도 모른다. 

또한 이탈리아 북부와 남부 사이의 뚜렷한 차이점들이 수상쩍은 종족적 민족주의를 미리 막아주었는지도 모른다.
- P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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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경 세계에서 종교 엘리트들은 점차 높은 인기를 얻었고 인간 양떼에게도 여전히 헌신을 다했지만, 자신들의 권위를 유지하기 위한 작업도구들도 철저히 관리했다. 그렇게 하여 신성한 언어를 비롯한 읽기와쓰기 능력이 이들 ‘책 가진 사람들‘(book people)에 의해 보존되었다. 그렇다고는 해도 이런 전문 능력을 서민들에게 전파할 의향까지는 없었고, 또 그럴 수단도 없었다. 앤더슨이 이를 잘 설명한다. "이중 언어를 구사하는 지식인 계층은 세속언어와 라틴어 사이를 중재함으로써 땅과하늘 사이를 중재했다." 종교 엘리트들은 신성한 언어와 때로는 행정언어까지 알고 있었을 뿐 아니라, 소농들의 토박이말도 잘 알고 있었다. 이중 혹은 삼중 언어를 구사하는 지식인들의 이러한 중재 기능은 그들에게 쉽게 앗아가기 어려운 권력을 안겨 주었다.
- P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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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계급이 오래도록 통제력을 유지하려면 눈에 보이는 권력을 소유하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고, 윤리적이고 법적인 규범들을 생산할필요가 있다. 이럴 때 식자층이 나서서 계급 구조를 받쳐주는 헤게모니에 대한 옹호 논리를 제공한다면, 헤게모니 세력은 이 구조를 계속 폭력적인 수단으로 방어하지 않아도 된다.  - P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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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과 이탈리아는 유사한 민족주의화 과정을 거쳤지만 독일은 종족적 민족주의를 채택해 아우슈비츠를 낳았으나 이탈리아는 파시즘 하에서도 포용적 민족주의를 유지했다.

어떤 민족들은 비교적 빠르게 성장해 성숙한 민주주의를 이룩하는 데 성공한 반면, 왜 다른 민족들은 종족중심주의 신화를 오랫동안 지켜오면서 그 신화를 자기규정에 활용했는가의 질문에 대해 만족스런답변은 아직 나오지 않았다. 더 진전된 연구가 필요하고 실증적인 증거도 추가되어야 할 것이다.
- P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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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마이 리틀 히어로를 보면서 느낀 충격을 이 책을 읽으며 조금씩 소화시킬 수 있게 된 것 같다.

콘은 1920년대부터 민족주의 문제에 관한 글을 쓰기 시작했지만, 그의 유명한 이분법 이론은 1944년 출간된 종합적 연구서 "민족주의의 개념"에서야 확립됐다. 콘의 이론은 많은 지지자와 함께 많은 적을 만들어냈다. 그에게 민족주의라는 연구 방향을 잡아준 것이 1차 세계대전이었다면, 2차 세계대전은 정치적, 이데올로기적 감수성을 형성시켜 주었고 사실상 그의 학문적 업적을 완성시켜 주었다. 

콘은 민족주의가 두 가지 주요 범주로 구성된다고 보았다. 하나는 자발주의적 (voluntarist) 성격을 가진 서유럽형의 시민적 민족주의(civil nationalism)로, 대서양 양안과 함께 유럽 동쪽으로는 스위스까지를 경계로 한다.

다른 하나는 유기적(organic) 성격의 민족 정체성으로서, 라인강 동쪽에서 시작하여 독일, 폴란드, 우크라이나, 러시아 등을 아우른다. - P105

 독일, 폴란드, 리투아니아, 우크라이나, 러시아 등지에서는 민족 정체성을 시민권이라는 정치적 토대 위에서 정의하려는 주목할 만한 운동들이 있었음에도, 단일한 고대적 기원이라는 신화를 지속적으로 구축한 집단들이 승리를 거두었다. 종족이라는 실체를 굳게 믿는 오랜 관념들이 역사의 흐름 속에서 변함없이 이어졌고, 이런 원시적이고 독자적인 ‘민중‘의 계보학은 누군가 민족에 새로 합류하는 것을 막는가 하면, 같은 방식으로 누군가 민족에서 탈퇴하는 것을 효과적으로차단했다. 이렇게 하여 민족주의자들의 눈에는 한번 독일인이면 독일인으로, 폴란드인이면 폴란드인으로, 심지어 미국에서 태어난 후손들까지도 독일인이나 폴란드인으로 영원히 남게 되었다.

이와 달리 프랑스의 교육 현장에서 골족은 일종의 역사적 은유에 불과한 것이었다. 이주민의 자식들조차 학교에서 자신들의 선조가 골족이라고 따라 말했고, 교사들도 이 새로운 후손들을 뿌듯하게 여겼다.

유고슬라비아 해체 이후에 생겨난 민족들의 특징과 그들의 허술한 소속 기준을 보면, 종족종교가 내리는 민족의 정의와 이 집단들 상호간의 인종혐오(xenophobia)가 얼마나 긴밀히 연결된 것인지 파악할 수 있다. 

각 민족들은 자기 민족의 종족성, 한 번도 충분한 존재감을 가진 적이 없는 그것을 주장하기 위해 거의 소멸되다시피 한 ‘종교‘에 호소했다. 

가톨릭을 믿는 크로아티아인들이 정교회에 속한 세르비아인들을 배척하고, 정교회 세르비아인들이 특히나 잔인하게 이슬람교도인 보스니아인들과 코소보인들을 배척하는 일이 가능했던것은 오로지 고대의 (동시에 전적으로 허구인) 신화들을 이용했기 때문이 - P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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