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대체로 자신의 욕망과 감정을 의식한다. 내가 언급했고 다시 언급할 예외들이 있지만, 대체로 이런 동기화는 완전히 투명하고 완전히자각적인 상태에서 작동한다. 이와 대조적으로 내가 (정신적) 욕구 needs라고 지칭하는 동기화는 행위자의 배후에서 작동한다. 그는 그것을자각하지 못하고, 자각하게 되면 그것의 작동에 대해 개탄하거나 저항한다.  - P313

욕구는 인과적 효력을 가진다. 욕구가 충족되지 않으면, 정신적 연금술에 의해서만 완화될 수 있는 모종의 심적 불편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 P314

나는 허영 때문에 살을 빼고 싶지만, 등급이 높은 동기화를 따르는 듯이 보이고 싶은 욕구 때문에 건강을 위해서 살을 빼는 것이라고 믿게 되었다고 해보자. 하지만 인지 조화 욕구 때문에, 금연 같은 추가 조치를 하지 않는 한, 자신의 행동 동기가 건강이었다고 주장하기 어려워진다. (내게 허영심이있다는 것을 인정하면, 담배를 끊을 이유는 없다. 오히려 흡연은 감량에 도움이 되기 때문에 계속 필 이유가 있는 셈이다.)  - P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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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인의 동질화. 그와 대조되는 영국인의 내적 이질성.








귀족층의 이러한 점진적 빈곤화는 프랑스에서뿐만 아니라, 프랑스와 마찬가지로 봉건 체제가 새로운 형태의 귀족정으로 대체되지 못하고 소멸되어버린 대륙의 모든 지역에서 나타난다. 라인 강 유역의 독일민족의 경우 이러한 쇠퇴 현상이 특히 현저하게 눈에 띈다. 영국만이 이와 반대 방향으로 나아갔다. 영국에서는 여전히 존속하는 옛 귀족 가문들이 자신들의 부를 보존했을 뿐만 아니라 크게 증대시켰다. 영국의 귀족들은 부와 권력 양면에서 줄곧 일류급에 해당했다. 이들 주변에서 성장한신흥 가문들은 이들을 따라잡지 못하고 그저 이들의 풍요를 흉내 낼 뿐이었다.
- P97

18세기 말에, 귀족층의 생활양식과 부르주아지의 생활양식 사이에는 여전히 일정한 차이점이 있었음은 의심할 나위가 없다. 왜냐하면 우리가 생활양식이라고 칭하는 이 습속이라는 지표는 가장 늦게야 동화되는 요소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결국은 인민의 상부에 위치한 모든 사람들은 서로 닮게 되었다 그들은 같은 생각과 같은 습성을 지녔으며, 같은 취향을 따르고, 같은 쾌락에 몸을 내맡겼으며, 같은 책을 읽고, 같은 언어를말했다. 그들 사이에는 권리를 제외하고 다른 어떤 차이도 없었다.
- P98

이와 마찬가지의 평준화 현상이 다른 곳에서, 하물며 영국에서도찾아볼 수 있는지 의문이다. 영국에서는 여러 계급들이 비록 공동의 이해관계로 서로 견고하게 결합되어 있었지만, 대개는 여전히 정신과 습속에서는 서로 구별되었다. 그도 그럴 것이 정치적 자유는, 비록 모든 시민들사이에 필연적인 관계와 상호의존의 유대를 창출해내는 놀라운 힘을 발휘하기는 하지만, 시민들을 반드시 서로 닮게 만드는 것은 아니니 말이다. 요컨대 사람들을 서로 닮게 하며 서로의 운명에 무관심하게 만드는불가피한 결과를 낳게 되는 것은 바로 한 사람에 의한 통치인 것이다.
- P98

실제로 그때부터 영국을 유럽의 다른 지역과 그토록 다르게 만든것은 영국의 의회, 영국의 언론 자유, 영국의 배심원 제도가 아니라 더 특이하고 더 효과적인 그 무엇이었다. 영국은 카스트 제도가 단순히 변질된것이 아니라 완전히 파괴되어버린 유일한 나라였다. 영국에서는 귀족들과 평민들이 같은 업무에 함께 종사했으며, 같은 직업을 선택했고,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서로 통혼했다. 영국에서는 대영주의 딸이 이미아무 거리낌 없이 신출내기와 결혼할 수 있었다.
- P100

프랑스에 특유한 점은 신분으로서의 귀족이 이렇게 자신의 정치권력을 상실한 바로 그 시기에, 문벌귀족들 개개인은 지금까지 누리지 못했던 여러 특권들을 획득하거나 이미 누리고 있던 특권들을 강화시켰다는사실이다. 이는 마치 집단의 유품으로 그 구성원들이 부유해지는 것과 같았다. 귀족신분은 갈수록 통치권을 잃어갔지만, 개개 귀족은 군주의 첫번째 종복이 되는 배타적 특전을 더욱더 누렸다.  - P104

이 모든 특권들 중 가장 가증스러운 것, 곧 면세 특권에 대해 살펴보자. 5세기부터 프랑스혁명에 이르기까지 면세 특권은 줄곧 증가하였음을 쉽게 알 수 있는데, 이러한 면세 특권의 증가는 일반 대중이 짊어지는 조세 부담의 급속한 증가와 짝을 이룬다.  - P104

공공 업무란 거의 모두가 세금 문제에서 연유하는 것이거나 아니면 세금 문제에 귀착되는 것이기 때문에, 부르주아 계급과 귀족 계급 증어느 한 쪽만 조세 부담을 질 경우에는 더 이상 함께 논의할 이유가 없게되며 공동의 욕구나 감정을 느낄 필요가 없게 된다. 이제 그들을 서로 분리시켜 놓으려고 애쓸 필요가 없다. 이미 그들에게는 함께 일하고자 하는욕구도 기회도 어느 정도 사라져버렸으니 말이다.
- P105

영국의 중간 계급들이 귀족집단aristocratie과 싸우기는커녕 그들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면, 그것은 무엇보다도 영국 귀족집단의 개방성에서 연유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흔히 말해지듯이 영국 귀족집단은그 형태가 불분명하고 그 경계가 애매했다는 사실에서 연유하는 것이다.

요컨대, 귀족집단에 소속될 수 있느냐가 문제였던 것이 아니라 귀족집단에의 소속 여부를 알 수 없는 것이 문제였다. - P106

그러나 프랑스의 귀족을 다른 계급들과 나누는 장벽은, 비록 쉽게넘나들 수 있는 것이긴 했지만, 언제나 눈앞에 드러나고 요지부동이었으며, 그 현란하고 가증스러운 표시에 의해 언제나 외부 사람들 앞에 노출되었다. 누구든지 일단 그 장벽을 넘어서게 되면, 그는 자신이 이제 막 벗어난 환경에 머물러 있는 사람들에게는 매우 모욕적이고 가증스러운 특권들을 갖게 됨으로써 그들과 구별되었다.
- P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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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서 앙시앵 레짐의 전모가 드러난다. 엄격한 법규, 허술한 시행 - 이것이 바로 앙시앵 레짐의 특징이다.
- P82

18세기 프랑스의 중앙 권력은 우리가 그 이후에 보아온 것과 같은건전하고 활기찬 구조를 갖지 못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은이미 모든 중간 권력체들을 제거해 버렸으며 따라서 중앙 권력과 개인들사이에는 막막하고 텅 빈 공간만이 남았다. 이리하여 사람들은 중앙 권력을 사회적 기제의 유일한 원동력이자 공공 생활의 유일하고 긴요한 행위자로 여기게 되었다.
중앙 권력을 중상하는 자들의 글이야말로 이러한 사실을 가장 잘보여준다. 대혁명을 앞두고 고질적인 병폐가 불거지기 시작했을 때, 사람들은 사회와 정부에 관한 온갖 종류의 새로운 체계들을 내놓았다. 이 개혁자들이 정한 목표들은 다양했지만 그 수단은 항상 동일했다. 이들은 모 - P83

든 것을 무너뜨리기 위해 그리고 자신들이 품고 있는 새로운 계획에 따라모든 것을 다시 세우기 위해 중앙 권력의 힘을 빌리길 원했다. 중앙 권력만이 이와 같은 과업을 해낼 수 있으리라 여겼던 것이다. 국가의 권능은국가의 권리만큼 무한한 것이어야 한다고 이들은 말했다. 따라서 문제는국가로 하여금 그 권능을 적절히 구사하도록 촉구하는 것뿐이었다. 미라보 영감, 즉 귀족으로서의 특권에 집착하여 지사들을 거침없이 ‘침입자들intrus‘ 이라 부르고, 행정관들의 선발권을 정부 측에 넘겨준다면 법원들은 즉시로 ‘위임관리들의 무리des bands de commissaires‘ 에 지나지않게 될 것이라고 선언했던 이 귀족 양반조차도 중앙권력의 행동만이 자신의 꿈을 실현해줄 수 있을 것으로 믿었다.
이러한 관념들은 결코 책에는 들어 있지 않았지만 모든 사람들의영혼에 스며들고, 습속과 뒤섞이고, 습성과 결합했으며, 삶의 모든 일상적 부면에까지 침투해 들어갔다.
- P84

프랑스에서와 같이 정부가 신Providence 의 지위를 얻게 되면, 사람들은 누구나 어려울 때마다 당연히 정부에 도움을 간청하게 된다. 따라서 우리는 공공 이익에 항상 토대를 두고 있는 듯이 보이면서도 사소한 사적 이익에만 관련된 수많은 청원서들을 볼 수 있다. 이 청원서들이담겨 있는 서류함들은 아마도 앙시앵 레짐의 사회를 이루는 모든 계급들이 뒤섞여 있는 유일한 장소일 것이다. 청원서들을 읽어보노라면 우울해진다. 농민들은 자신들의 잃어버린 가축이나 가옥을 보상해줄 것을, 그리고 유복한 지주들은 자신들의 토지를 더 비싼 값으로 매겨줄 것을 요구한다. 장인들은 거북스러운 경쟁으로부터 자신들을 보호해줄 특권을지사에게 간청한다. 제조업자들이 비밀리에 지사에게 경영상태 악화에대해 털어놓고 재무총감에게서 원조금이나 대부를 얻어달라고 청원하는 경우도 흔히 눈에 띈다. 이러한 목적을 위해 자금이 유출된 경우가 많았던 듯하다.
- P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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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사관구 intendance의 기록보관소에서 앙시앵 레짐 하의 교구의 모습이 과연 어떠했는가를 처음으로 조사해 보았을 때, 나는 크게 놀란 적이 있다. 왜냐하면 나는 그토록 헐벗고 예속된 공동체 안에서, 내가 한때 아메리카의 농촌 공동체들에서 발견하였으며 따라서 신세계에서나 찾아볼 수 있는 것으로 섣불리 생각했던 몇 가지 특징들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양쪽 모두 상임 대표단체, 곧 고유한 의미의 시 기구가 없었으며, 양쪽 모두 공동체 전체의 지시에 따라 독자적으로 활동하는 관리들에 의해 다스려졌다. 양쪽 모두 때때로, 단일한 기구로 통합된 전체 주민들이 자신들의 행정관을 선출하고 주요 업무를 관장하는 총회를 두었다. 한 마디로 말해서, 양자는 산 자가 죽은 자를 빼닮을 수 있는 정도까지 서로 닮아있었다. - P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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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혁명과 유사했던 프랑스혁명.

프랑스혁명이 현세에 대해 취한 방도는 종교혁명들이 내세에 대해 취한 그것과 매우 유사하다. 종교가 시대와 지역에 관계없는 인간 일반을 취급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프랑스혁명은 시민을 그가 속한 특정 사회로부터 독립된 추상적인 존재로 취급했다. 프랑스혁명은 프랑스 시민의 특별한 권리뿐만 아니라 정치에 있어서의 인간 일반의 권리와 의무도 규명하려 했던 것이다.

프랑스혁명이 모두에게 받아들여지고 어디에서나 모방될 수 있었던 것은 그것이 항상 특별하지 않은 어떤 것, 달리 말하자면 사회 상태나 통치 면에서 가장 ‘자연스러운‘ 어떤 것에 호소했기 때문이다.

프랑스혁명은 프랑스의 개혁보다는 인류의 갱생을 지향하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에, 지금까지 가장 격렬했던 어떤 정치혁명들도 보여주지 못한 열정을 불러 일으켰다. 프랑스혁명은 개종을 설교했으며 포교를 수반했다. 이렇게 해서 프랑스혁명은 당시 사람들을 놀라게 하기에 충분한 종교혁명의 양태를 띨 수 있었다. 아니 차라리 그것은 일종의 신흥종교가 되어 버렸다. 신도 제식도 영생도 없는 불완전한 종교이긴 하지만 말이다. 그러나 그것은 마치 이슬람교처럼 지구상을 병사와 사도와 순교자들로 가득 채운 종교였다. - P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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