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와 경제성장
독재는 경제성장을 위한 필요악인가? 박정희는 독재자였지만 그의 재임기간 중에 한국경제는 눈부신 성장을 했다. 이를 근거로 경제성장을 위해 독재가 필요하다는 주장을 하는 이들이 있다. 이들은 싱가폴의 리콴유 전 수상과 말레이시아의 마하티르 전 수상, 대만의 장경국 전 총통 등을 추가적인 예로 든다.
하지만 이러한 주장은 쉽게 논박가능하다. 아래의 표는 경제성장의 성공 여부와 정치적 민주주의와 독재의 기준으로 네 개의 유형을 구분한 것이다. 독재가 경제성장의 성공을 위한 필수조건이라고 한다면 최소한 D의 유형의 나라는 없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정치적으로 독재이면서 경제성장에 실패한 나라는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실종”이라는 영화로 널리 알려진 아르헨티나의 군사독재정권은 경제성장에 실패한 사례로 유명하다. 군사독재정권이 장악한 1976년부터 1983년 사이 아르헨티나의 미국에 대비한 상대소득은 50.5에서 42.9로 급락하였다. 아프리카 우간다의 무자비한 독재자 이디 아민은 1971년 정권을 잡은 뒤 1978년 축출당하였는데 그 사이 우간다의 상대소득은 3.66에서 2.63으로 급속히 하락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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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성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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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 |
실패 |
정치 |
민주주의 |
A |
B |
독재 |
C |
D |
민주주의 연구의 대가인 정치학자 쉐보르스키(Przeworski)는 1950년부터 1990년의 41년 간의 기간 동안 135국가의 224정권을 분석하여 독재와 경제성장 사이에 통계적으로 유의한 상관관계가 없다고 결론지은 바 있다. 그는 “몇마리의 호랑이가 독재인 것은 맞지만 그렇다고 해서 독재가 호랑이를 낳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싱가폴의 리콴유 수상은 “아시아적 가치”라는 개념을 내세우며 아시아에서는 독재가 경제성장에 도움을 주었다고 주장했다. 쉽게 말해서 “독재->경제성장”은 성립하지 않지만 “독재+아시아->경제성장”은 성립한다는 것이다. 싱가폴,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한국, 대만, 중국 등의 나라는 정치적으로 민주주의라 부를 수 없지만 경제성장에는 성공한 것이 사실이다. 아래의 <표 2>에서 Ca의 사례는 풍부하고 Da의 사례는 많지 않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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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성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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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 |
실패 |
정치 |
민주주의 |
A |
B |
독재 |
비아시아 |
Cna |
Dna |
아시아 |
Ca |
Da |
리칸유의 주장은 독재를 합리화한다는 비난을 받고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동아시아에서 발견되는 많은 사례들 때문에 강력한 호소력을 가지고 있는 것 또한 부정할 수 없다. 이 때문에 많은 정치학자들과 경제학자들은 아시아가 비아시아와 다른 이유에 대해 많은 연구를 하였다.
유명한 정치학자 올슨(Mancur Olson)은 독재자와 마적단이 비슷하면서도 다른 점에 주목했다. 올슨은 문명의 시작은 마적단의 세계에서 독재자의 세계로 변화하는 것으로 특징지워진다고 말했다. 사실 독재자와 마적단은 민간인들의 재산과 소득을 훔쳐간다는 점에서 비슷하다. 그렇지만 마적단은 마을을 파괴하고 다른 마을로 옮겨간다는 점에서 파괴하는 마을의 미래에 대해 관심을 갖지 않는다. 이에 비해 독재자는 그가 착취하는 영역에 대한 포괄적 이해관계를 갖는다. 만약 착취하는 영역이 번성한다면 점점더 많은 것을 착취할 수 있다. 경제성장에 관심을 갖고 이를 촉진하는 것이 독재자의 이익에도 부합한다. 마적단도 한 곳에 정착하게 되면 이런 행동을 보일 수 있다. 이런 점에서 독재자는 정착한 마적단이다.
정치학자 에반스(Evans)는 후진국의 국가를 발전국가(developmental state)와 약탈국가(predatory state)로 구분하여 발전국가는 경제성장에 기여했지만 약탈국가는 경제성장을 저해한다고 말한 바 있다. 이런 구분은 올슨의 정착한 마적단과 떠돌아다니는 마적단의 차이와 비슷하다. 그렇다면 왜 어떤 정권은 발전국가적 행동을 하고 어떤 정권은 약탈국가적 행동을 할까? 그 차이는 정권을 잡은 이가 자신의 권력의 안정성에 대한 확신과 관련되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언제 자신이 쿠데타나 민중봉기에 의해 권좌에서 쫒겨날지 모른다고 생각하는 독재자는 장기적인 투자보다는 단기적인 착취에 관심을 갖게 된다. 이에 비해 권력 기반이 탄탄하다고 믿는 독재자는 지금 당장 착취를 극대화하기보다는 장기적인 착취량의 증가를 추구하고 이 과정에서 경제성장을 위한 투자를 하게 된다.
발전국가와 약탈국가의 차이는 권력의 미래에 대한 확신의 문제이며 이런 점에서 둘의 차이는 종이 한 장 차이에 불과하다. 발전국가적 독재자가 미래의 권력에 확신이 사라지면 약탈국가적 독재자가 될 것이다. 향후 권력의 안정성은 민중과 정치적 경쟁자에게 약속한 경제성장의 성공 여부에 영향을 받는다. 장기적인 착취를 위해 장기적 안목에서 투자했지만 본의 아니게 단기적으로 나쁜 결과가 나타날 수 있다. 이에 민중들은 동요하고 다른 권력 엘리트들은 민중의 동요를 기반으로 권력을 흔들 수 있다. 이렇게 되면 독재자는 미래에 대한 확신이 사라지고 단기적 착취를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선회하게 된다. 이것은 쿠데타와 민중봉기를 촉발하여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가졌던 독재자의 예상은 현실화된다.
독재자가 갖는 미래에 대한 확신이 단기적인 경제성장의 결과에 영향받고 장기적인 경제성장이 독재자의 확신에 의해 영향받는 구조 하에서 독재는 매우 불안정한 경제성장의 결과를 낳게 된다. 많은 독재자들은 처음에는 경제성장을 추구하고 가끔 단기적인 성공으로 미래에 대한 확신이 한껏 부풀어오르지만 단기적인 실패로 인해 약탈적 행태를 띠게 되고 새로운 독재자에 의해 교체된다. 경제성장에 성공한 독재자는 자신의 권력의 미래에 대한 확신을 계속 유지한 독재자이며 이러한 지속적 확신은 집권 기간 내에 발생한 단기적인 실패가 별로 없었거나 단기적인 실패에도 불구하고 민중봉기나 쿠데타의 가능성이 거의 없었다는 행운이 겹친 경우에 한정된다. 경제성장에 성공한 아시아의 독재자들이 예외없이 긴 집권기간을 유지한 것은 이러한 이유로 설명될 수 있다. 박정희는 1961년부터 1979년까지 18년을, 리콴유는 1990년까지 32년간 총리를 하고 이어서 아들이 총리를 하는 동안 올해까지 13년의 선임장관을, 마하티르는 1981년에 수상에 취임한 후 올해까지 22년간 수상에 재임하였다.
올슨은 민주주의를 다수(majority)에 의한 소수(minority)에 대한 착취체제로 볼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에 비해 독재는 한 사람에 의한 전체에 대한 착취체제이다. 다수는 독재자에 비해 훨씬 장기적인 안목을 가지며 따라서 훨씬 큰 포괄적 이해관계를 갖는다. 따라서 민주주의는 독재에 비해 경제성장을 위해 더 많은 투자를 하게 된다는 것이 올슨의 생각이다.
다른 한편으로 민주주의는 통치자가 약속한 정책을 함부로 변경하는 것을 어렵게 만드는 측면이 있다. 약속을 어긴 정치인이 다음 선거를 통해 낙선되는 것이 그 하나의 예이다. 이러한 약속 파기의 비용을 통치자가 부담하는 민주주의 하에서는 정책의 안정성이 보장되고 착취도는 줄어들며 민간의 경제활동은 극대화될 수 있다.
통치자는 민주주의 하에서건 독재 하에서건 늘 착취를 극대화하길 원한다고 가정하자. 민간은 과도한 착취를 예상할 경우 생산을 줄이고, 낮은 착취를 예상할 경우 생산을 늘린다고 하자. 통치자 입장에서는 우선 낮은 착취를 약속한 뒤 민간이 생산을 늘리면 이 약속을 뒤집고 높은 착취를 실행하는 것이 가장 이익이다. 그런데 독재체제에서는 통치자의 약속파기의 비용은 거의 없다. 민간 입장에서는 독재자의 약속이 실제 실행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약속을 믿지 않고 낮은 생산량을 결정한다. 결국 독재자는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한다. 하지만 민주주의에서는 약속파기로 인해 통치자가 큰 비용을 치루게 된다. 민주주의 하에서는 통치자의 약속은 이행될 가능성이 높고 이에 따라 민간은 안심하고 높은 생산을 선택하게 된다.
이처럼 민주주의는 경제의 잠재력을 해치는 의사결정권자에 의한 과도한 착취를 줄인다는 점에서 높은 점수를 받는다. 하지만 민주주의는 경제성장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 경제성장론 분야의 유명한 학자 배로(Barro)는 민주주의가 소득재분배 정책을 강화하는 경향이 있는 점에 주목하였다. 소득재분배는 고소득자의 노력과 재능 발휘의 인센티브를 꺾고 저소득자의 자활의지와 노동의욕을 약화시키는 나쁜 영향을 준다. 이에 따라 민주주의는 경제성장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고 주장한 바 있다.
올슨 역시 민주주의가 경제성장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지적한 바 있다.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이익집단의 로비가 강한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한다. 비록 1인1표의 원리로 움직인다고 하지만 실제 정책의 결정과정에는 얼마나 많은 돈(자원)을 쓰느냐가 중요하다. 예를 들어 비효율적인 선풍기산업을 계속 보호하는 것이 무의미하다고 느낀 정부가 시장개방을 추진한다고 하자. 이로 인해 현재의 선풍기산업을 운영하는 사업주들은 큰 피해를 입는다. 이 때문에 이들은 큰 돈을 퍼부을 용의가 있으며 이에 강력한 로비를 전개한다. 하지만 선풍기산업의 개방으로 이익을 얻는 소비자들은 그 수가 많지만 한사람 한사람의 이익은 시장개방의 로비를 위해 자기 돈을 내놓고 거리시위를 할 정도가 되지는 않을 수 있다. 소비자 개개인은 자기가 나서기는 부담스러우며 남들이 나서서 시장개방을 추진해주면 좋다는 의미에서 무임승차의 경향을 보인다. 고양이 목에 방울걸기의 상황과 유사하다. 결국 사회 전체적으로는 선풍기산업을 개방하는 것이 낫지만 개방운동에는 어떠한 자원도 투입되지 않고 개방반대운동에는 소수의 사람들의 많은 돈이 투입되어 시장개방은 좌절된다. 소수의 이익과 적극적인 노력이 다수의 이익과 소극적인 행동을 압도하는 것을 특수 이익 효과(special interset effect)라고 부른다.
소수 집단의 정치적 로비에 의해 경제성장을 저해하는 정책이 채택될 수 있다는 올슨의 주장은 경제성장을 촉진하는 정책으로 큰 이익을 보는 소수 집단 역시 존재할 수 있다는 반론에 직면했다. 정책의 향배를 둘러싸고 자유로운 정치적 경쟁을 할 수 있다는 것이 민주주의의 특징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러한 정치적 경쟁 과정에서 비생산적으로 자원이 낭비될 수 있고 이것은 다시 민주주의의 약점이 될 수 있다. 중요한 결정을 앞두고 독재는 짧은 시간 안에 큰 비용 없이 결정을 짓지만, 민주주의는 긴 시간 속에서 많은 비용을 들여서 결정이 이루어진다. 이러한 비용은 민주주의가 부담해야할 비용이며 이러한 비용은 결정된 정책의 장기적 효과와 독립적으로 경제성장에 부담이 된다.
독재가 경제성장에 필요하다는 주장은 논리적 근거가 박약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민주주의가 경제성장에 큰 도움이 된다는 주장 역시 그러하다. 민주주의와 경제성장은 단선적인 인과관계를 갖지 않으며 이것은 민주주의를 독자적인 가치로서 옹호하는 이들에게 결코 나쁜 소식이 아니다. 민주주의의 확대가 경제성장을 저해한다는 논리적, 실증적 근거가 없으며 민주주의의 확대가 경제와 독립적으로 사람들의 삶을 풍요롭게 하는 구실을 하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언급할 점은 경제성장이 민주주의를 촉진한다는 가설이다. 지금까지 밝혀진 연구에 따르면 경제성장이 높은 수준에 달한 나라에서 민주주의가 많이 관찰되며 고소득국가에서는 어떤 이유로건 확립된 민주주의가 독재로 회귀하는 확률이 낮다는 것이다. 하지만 고소득국가에서 확립된 민주주의가 경제성장 때문이라는 증거는 없다.
그렇다면 우리는 지금 어디에 있나? 오늘날 우리의 민주주의가 좀더 확대된다면 경제성장은 촉진될 것인가, 아니면 저해될 것인가? 오늘날 우리의 민주주의가 독재로 회귀할 가능성은 충분히 낮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