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67년 주종법이 폐지되어) 이제부터 심문은 치안판사의 사택이 아니라 공개 법정에서 행해지게 되었고, 치안판사 혼자 재판할 수 없게 되었다. 노동자는 자신을 위하여 증언할 수 있었다. 금고형 선고 권한은 바뀌지 않았으나 그것은 인명 내지 재산에 대한 중대한 상해를 입힐 경우에 한정되었다. 일반 사건의 경우에는 벌금 내지 손해배상이 선고되었다. 1867년의 법률은, 계약위반의 경우 여전히 가끔 형사 범죄 처벌법규가 적용되고 재판 이전에 체포될 개연성이 남아 있었기 때문에 결코 만족스럽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만큼이라도 얻어낸 것은 큰 성공이었다. - P276
잉글랜드에서는 1848년의 법률에 의하여 영장에 의한 체포 대신에 소환을 받아 출두하는 것이 허용되었으나, 이 법률은 스코틀랜드에서는 적용되지 않았다. 여기에서는 여전히 영장에 의한 체포가 유일한 방법이었다. 고용주는 자신을 변호하기 위하여 노동자에게 불리한 증언을 할 수 있었으나, 노동자는 고용주에게 불리하거나 자신을 변호하는 증언을 할 수없었다. 노동자에 관한 사건의 형벌은 오직 금고형이 있을 뿐이었다. 왜냐하면 ‘종從에 의한 계약위반은 형사 범죄로 간주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노동자와의 계약을 위반한 고용주에 대해서는 상당액의 벌금이 선고되거나 기껏해야 손해배상 명령이 내려졌다. - P274
1867년 고등법원재판소는 보일러제작공조합이 브래드포드지부의 서기를 상대로 낸 소송의 판결에서 노동조합은 우애협회법의 적용을 받을수 없을뿐더러 노동조합이 범죄성을 띠진 않았다 하더라도 산업발전을 제한하는 조직이므로 위법성이 있다는 결정을 내렸다. 이것은 누구든지 단순히 노동조합을 결성하거나 거기에 가입하는 것은 보통법에 의해 고발되지 않지만, 노동조합은 보통법상 위법성이 있기 때문에, 1824~25년의 법률에도 불구하고 법정이 노동조합 또는 기금에 대하여 승인 또는 보호를 금지할 수 있음을 의미했다. 이 판결의 직접적인 결과로 노동조합은 20년 이상에 걸쳐서 사실상 누려왔던 기금에 대한 법적 보호를 빼앗기게 되었으며, 사실상 노동조합운동 전체가 비합법화되어 다음에는 어디에 탄압이 떨어질지 모르는 상태가 되어버렸다. - P280
1867년의 주종법은 1875년 고용주와 노동자법으로 대체되었다. 이러한 명칭의 변경은 중대한 내용 변경을 의미했다. 계약위반 혐의에 의한금고형은 약간의 중요한 공무公務, 생명 또는 재산에 대한 위협 등의 경우를 제외하고는 폐지되었다. 다른 계약과 마찬가지로 고용계약도 고용주와 노동자가 법적으로 대등한 입장에서 맺는 순수한 민사상의 계약으로 변했다. 1871년의 개정 형법은 완전히 폐지되었으며, 음모죄 및 재산보호법이라는 새로운 법률로 대체되었다. 이 법률에 의해 평화적인 농성이 다시 인정되었으며, 개인의 경우에 범죄성이 없는 행위는 단결하여 벌인 경우에도 처벌될 수 없다고 규정했다. ‘박해‘ ‘방해‘ ‘강압에 관한 위협적인 단어는 사라졌으며 박해나 폭행은 일반법에 의해 취급되었다. 바꿔 말하면, 노동조합은 헌장을 보장받은 것이다. 이 헌장은 1901년 태프 베일 판결에 이르기까지 조합에 대하여 적절한 법적 지위와 노동쟁의에 대한 특권을 보장했다. 1876년의 노동조합(수정)법은 1871년의 법률에 대하여 사소한 시행규칙상의 수정을 가했을 뿐이며(정의定議 조항이 후에 1909년의 오스본 판결에서 부당하게 이용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이것으로 70년대의 노동법은 완성되었던 것이다. - P2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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