을 통해 강한 나라를 만들어야 한다고 역설했다. 하지만 메디치가는 그렇게 하지 못했다. 『로마사 논고』와 『피렌체사』에는 사적 이익을 위해 사적인 방법을 사용하는 메디치가에 대한 비판이 적혀 있다. 공화정을 옹호하는 현실주의자 마키아벨리는 피렌체가 직면한 메디치가의 군주적 권력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메디치가의 권력이 피렌체를 더 강한 나라로 만드는 데 쓰일 수 있도록 설득하는 방법으로 비판적 지지를 택했다. 바로 이것이 마키아벨리를 군주제의 옹호자로 보이게 했다. 그러나 그는 군주제를 옹호하지 않았다. 자유를 누려온 피렌체에는 공화정이 더 어울린다는 생각을 분명히 드러냈다. 그는 군주제를 지지해서가 아니라 메디치 군주 가문이 이미 장악한 권력을 제대로 사용하기를 바라서 『군주론』을 썼다. - <마키아벨리>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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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키아벨리는 메디치가의 군주화를 공화정에 해로운 것으로 파악했다. 개인적 평가와 정치적 평가는 엄연히 다르다. 뛰어난 수장들 덕에 메디치가는 성공 가도를 달렸다. 개인이나 가문이라는 사적 차원에서는 좋다. 하지만 국가 차원에서는 군주정의 대두이자 공화정의 몰락으로 나타났다. 마키아벨리는 성장하는 편이 아니라 쇠락하는 편에 섰다. 그것이 옳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 <마키아벨리>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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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어로 용병대장이 ‘콘도티에레condottiere’인데, 계약을 뜻하는 ‘콘도타condotta’에서 온 말이다. 즉 용병대장은 한 나라와 계약하고 전투를 벌이는 집단의 우두머리다. 당시 피렌체는 주변국과 벌이는 전투에 용병을 내보냈는데, 마키아벨리가 이 용병에 관해 큰 어려움을 겪었다. 용병들이 말을 잘 듣지 않고 전투를 건성으로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마키아벨리가 보기에는 용병들의 이런 태도가 당연했다. 그들은 자기 자신과 가족이 살고 있는 조국을 위해 싸우는 게 아니라 계약에 따라, 돈을 위해 한시적으로 싸웠다. 전투에서 이기는 것이 중요하지만, 목숨을 잃지 않는 것이 더 중요했다. 전투에서 죽으면 돈이 무슨 소용인가? 따라서 그들은 목숨 걸고 싸우지는 않았다. 전쟁에서 속전속결은 보기 힘들고, 승자도 패자도 없이 지루하게 이어지는 전투가 많았다. 게다가 고용국이 그들을 통제할 수단이 부족했기 때문에 그들은 대개 안하무인이었다. 대표적인 예가 전투를 앞에 두고 사보타주에 나서면서 돈을 더 요구하는 것이다. - <마키아벨리>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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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키아벨리는 1498년 사보나롤라가 죽은 다음 달부터 메디치가가 복귀하는 1512년까지 피렌체의 제2서기관과 10인위원회 위원을 맡아 일한다 - <마키아벨리>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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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드에는 대길드와 소길드가 있었다. 부유한 상층 길드 일곱 개와 중하층 길드 열네 개로 나뉜 것이다. 상층 길드의 직업군은 법률가, 모직업자, 비단 상인, 의류업자, 은행업자, 의사ㆍ약재상, 가죽ㆍ모피업자였으며 중하층 길드에는 대장장이, 석수, 건축업자, 목수, 요리사, 숙박업자, 재단사, 무기 제조업자, 제혁업자, 포도주업자, 열쇠제작자, 마구제작자, 푸주한, 기름생산자와 로프제작자 등이 속했다. 그리고 대길드가 부와 권력을 통해 소길드를 차별했다. - <마키아벨리>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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