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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영어교실에 영어는 있는가
박준언 지음 / 한국문화사 / 2001년 2월
평점 :
품절
이 책의 장점은 여러 가지다. 우선 영어교육의 전문가가 직접 썼다는 점에서 신뢰감 있게 읽을 수 있다. 저자 스스로 밝히고 있듯이 영어교육학 박사학위를 미국에서 취득하였고 10년 이상 교수로서 영어교육을 연구하고 가르쳤다. 그리고 영어교육과 관련한 여러 논점에 대해 저자의 입장이 명쾌하기에 읽기에 거침이 없다. 또한 대안이 확실하다는 점에서 전혀 답답하지 않다. 게다가 솔직하게 자신의 허물까지 드러내고 있다는 점에서 반성을 겸비한 진지함에 찬사를 보낸다.
조기영어교육과 관련한 저자의 견해를 읽는 것은 매우 흥미진진하고 즐거웠으며 생각할 거리를 많이 주었다. 저자는 조기영어교육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전제에서 출발한다. 조기영어교육이란 3세 이상부터 시작하는 교육이다. 너무 이른 것 아닌가? 그렇지 않다는 것이 저자의 생각이다. 이중언어환경이 어린이의 언어능력에 대해 가져올 수 있는 부작용은 단일언어환경이 막강한 우리나라에서는 걱정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책 본문의 상당부분이 이 문제에 대해 할애되고 있다.) 그렇다면 비싼 어학연수나 고급영어학원을 보내야하나? 이에 대해 저자는 부모 힘으로 아이를 가르칠 수 있는 대안을 제시한다. 저자는 부모가 일상생활에서 영어단어를 문장 속에서 섞어서 사용할 것을 권한다. 어휘능력이 언어습득의 기초이므로 3세에 50개, 4세에 100개, 5세에 150개, 6세에 200개, 7세에 250개를 가르치면 초등학교에 들어갈 때는 750개의 단어를 배울 수 있고 이렇게 쌓인 눈덩이는 점점 가속도를 내며 커진다는 것이다. 과연 이것만으로 될까 하는 의구심이 드는 이에게 저자는 말한다. “어린 자녀들을 두고 있는 이 땅의 젊은 부모들이여, 한번 속는 셈 치고 내 말대로 실시해 보라. 여러분의 어린 자녀들이 초등학교에 입학할 즈음에는 어느덧 깊어진 영어단어의 물 속에서 어느 정도 자유롭게 수영하는 모습을 틀림없이 보게 될 것이다.”(151쪽)
이 책은 조기영어교육 문제와 함께 현재 한국 공교육의 영어교육의 대안도 담고 있다. 통치자와 교육부가 해야할 일, 각급 학교의 영어교사 및 다른 교과목 교사가 해야할 일, 대학교의 영어관련 교수가 해야할 일을 제안하고 있다. 한마디로 말하면 영어공용화정책 없는 영어교육은 영어교육학적 관점에서 볼 때 실패를 전제로 한 교육에 불과하므로 통치자와 교육부는 영어공용화 정책(English as a second language, not as a foreign language)을 채택해야 하고, 각급 학교에서는 영어 뿐만 아니라 모든 수업을 영어로 가르쳐야 하고 대학교수는 영어로 교과목을 가르칠 수 있는 교사를 길러내야 한다는 것이다.
복거일의 “국제어 시대의 민족어”와 고종석의 “감염된 언어”가 영어공용화를 둘러싼 사회적, 문화적, 언어학적, 이데올로기적 논점을 검토할 수 있게 했다면, 이 책은 영어공용화정책의 당위성과 실행방안을 영어교육학적 관점에서 살펴볼 수 있게 한다. 이런 점에서 복거일과 고종석을 읽은 이들에게도 일독을 권하고 싶다. 그런데 영어공용화정책에 대해 복거일과 이 책의 저자 모두 찬성하지만 이 책의 뒷끝은 말할 수 없이 애매모호다. 앞서 말했듯이 저자는 솔직하게 글을 쓴다. 책 중에는 웬만큼 해서는 영어 잘하기 힘들다는 얘기가 계속 튀어나온다. 공교육의 대안을 읽으면서는 현재의 우리의 인적 인프라로 공교육을 바꾸는 것이 가능할까라는 의문이 내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결국 책을 다 읽고 난 후 저자의 솔직함 때문에 내 입가에는 쓴 미소가 오래도록 머물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