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치심, 수오지심의 의의와 한계
- 수치심은 권력자를 제어한다
- 권력자는 수치심을 느끼지 않는다
- 뻔뻔한 사람이 살아남는다

우리는 더 나은 지도자를 계속해서 원하지만 이런 희망은 너무 자주 좌절된다. 켈트너 교수는 그 이유에 대해 사람들은 친절하고 겸손한 덕분에 당선되더라도 권력은 이런 자질을 잃게 만들거나 애초에 그런 훌륭한 자질을 갖추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계층적으로 조직된 사회에서 마키아벨리안은 한발 앞서 있다. 그들은 경쟁에서 이기는 궁극적인 비장의 무기를 가지고 있다. 그 무기는 뻔뻔함이다.
우리는 앞에서 호모 퍼피가 수치심을 느끼도록 진화했다는 것을 살펴보았다. 우리가 동물계의 모든 종 중에서 얼굴이 붉어지는 몇 안 되는 부류에 속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수천 년 동안 수치심은 지도자를 길들일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었으며, 오늘날에도 여전히 효과적인 장치일수 있다. 수치심은 규칙이나 규정, 비난이나 강압보다 더 효과적이다. 수치심을 느끼는 사람들이 스스로를 제어하기 때문이다. 기대에 어긋났다고 느낄 때 또 자신이 가십의 대상이라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사람들은 말에 자신이 없어지고 역력히 얼굴을 붉힌다" 수치심에는 분명히 어두운면(예를 들어 빈곤으로 인한 수치심)도 있지만 만약 수치심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사회가 어떤 모습일지 상상해보라. 지옥이 열릴 것이다.
불행하게도 권력에 중독되었든 반사회병리학적 특성을 타고난 소수든수치심을 느낄 수 없는 사람은 항상 존재하기 마련이다. - P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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