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리성의 조건
- 적절한 이유를 댈 수 있어야 한다
- 진술이 모순되지 않아야 한다 = 일관성
- 증거에 부합하고, 부합성에 맞춰 수정할 수 있어야 한다 = 인식적 합리성







최소한 합리성 문제는 어느 진술이 참인지 거짓인지하는 인식론적 질문을 훨씬 뛰어넘는다. 합리성이라는 개념은,
확신은 인간의 정신적 활동 혹은 정신적 상태와 관련된 것으로보며, 누군가가 진술하는 내용의 진실성뿐 아니라, 그 진술과 관련한 그 사람의 상태를 조명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한 인간의 확신을 어느 때 합리적이라고 칭할까? 확신에 적절한 이유가 뒷받침될 때, 그것이 합리적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적절한 이유는 확신을 이해하고 수긍하게 만드는 이유다. 

그런데 여기서 또 한 가지 중요한 측면이 있으니, 한 사람의 확신이 서로 얼마나 일관성이 있는가 하는 것이다. 한 이론 안에서진술이 서로 모순되지 않아야 한다는 진리 정합론과 비슷하게, ‘합리성의 일관성 원칙‘은 한 사람의 확신이 그의 다른 확신 혹은 신념과 들어맞아야 함을 말한다.12 누군가 신이 지난 1만 년 사이에 인간을 창조했다고 굳게 확신하는 동시에 진화의 신기한 지식을 열정적으로 전파한다면 확신에 대한 근거 면에서 신뢰성에 문제가 생기게 된다. - P68

 환자는 확실한 증거 앞에서도 자신의 확신을 굽히지 않을 것이다. 주어진 증거에 확신을 맞추는 대신 자신이 지은 망상 건물의 가장 구석에서 증거에 반하는 논지를 끄집어낼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이 환자의 확신이 내적 일관성이 있다해도, 그것을 명백히 비합리적인 것으로 본다. 주어진 증거와 부합하지 않고, 증거를 통해 그가 확신을 수정할 여지도 없기 때문이다.

이로써 우리는 사실에 근거한 ‘인식적 합리성‘이라는 기준에 도달한다. 즉 확신은 주어진 증거에 부합해야 하며, 이런 부합성에 맞춰 확신을 수정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15 

인식적 합리성은 진리 대응론에 가깝다. 대응론은 이론이나 진술이 활용 가능한 증거에 얼마나 부합하는지 묻는다. 인식적 합리성은 한 인간의 확신이 주어진 증거에 어느 정도로 근거하며, 이런 증거에 어느 정도 스스로를 맞추는가 하는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인식적 합리성이 확신(내지 그 진술)이 참이라는 것 외에도, 그 확신이 어떤 근거를 바탕으로 하는지 묻는다는 것이다. - P70

일관성과 인식적 합리성 원칙은 서로를 배제하지 않는다. 확신의 합리성을 평가하는 데서 (1) 이 두 원칙 중 어느 쪽에 어느 정도 비중을 둘지는 (2) 어떤 증거를 활용할 수 있는지, (3) 이런 증거가 얼마나 믿을만한지에 따라 달라진다. 

검증 가능한 증거가 거의 없는 경우에는 일관성의 원칙이 더 강하게 부각된다. (검증 가능한 증거가 많은 경우 인식적 합리성 원칙이 더 강하게 부각된다)

그러나 인식적 합리성 원칙은 기본적으로 늘 앞에서 잠시 살펴본 인식론의 본질적 문제와 싸워야 한다. 즉 우리의 인식 능력이 제한되어 있어 절대적 진실을 진술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 말이다. - P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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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식합리적 학자 vs. 우리의 뇌
- 우리 뇌는 진실에 관심 없다.
- 뇌는 자연선택에 관심 있다

예측의 정확성을 헤아릴 때 기준이 되는 것이 늘 확률뿐이라면, 뇌의 작동 방식은 최대로 인식적-합리적으로 행동하는 학자의 연구 방식과 같을 것이다. 

자, 이런 학자가 특정 상황에 대한 가설(예측)을 가지고 있다고 해보자. 그의 가설은 학술 연구 등 예전의 관찰에서 비롯된 이론이나 모델에 근거한다. 이 학자가 예전 연구들을 믿을 만한 양질의 연구라고 평가하는 경우, 그는 자신의 가설을 크게 신뢰할 것이다(높은 정확성을 띠는 예측에 해당). 그리고 그가 시행한 새로운 실험에서 가설에 위배되는 결과가 나와도 (예측의 오류!) 경험에 근거한 신뢰로 단박에 가설을 폐기하지 않고, 우선은 새로운 실험 결과가 맞는지 의심할 것이다. 실험 방법을 점검하고, 정말로 이 가설을 폐기해야 할지 알아보기 위해 후속 실험을 할 것이다. 

반면 자신의 가설이 예전의 연구 결과와 그다지 일치하지 않았던 경우(정확성이 낮은 예측에 해당) 그 가설에 그리 비중을 많이 두지 않았을 것이고, 새로운 실험에서 그 가설에 위배되는 결과가 나올 경우, 가설을 더 쉽게 폐기해버리고 이론을 수정할 것이다. - P213

반면 뇌에는 진실을 찾는 것(만)이 중요하지 않다. 또는 스티븐 P. 스티치의 말마따나 자연선택은 진실에 관심이 없다.26 그래서 자연선택을 통해 배출된 예측 기계 역시 최대로 높은 예측률에 주력하지 않고, 자신의 예측이 생존과 재생산 가능성을 최대화할 수 있게끔 한다.

4장 마지막에 우리는 확신의 진실성에 대한 선택의 압력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동시에 가령 비용이 많이 들지도 모르는 실수를 피하기 위한, 다른 쪽의 선택적 압력도 있다. 

이를 예측 처리 이론에 적용하면, 뇌의 예측도 마찬가지다. 진실된 예측이 생존과 번식에 도움이 된다면, 뭐 좋다. 그러면 우리의 뇌는 그런 진실된 예측을 하는 내적 세계 모델을 유지할 것이다. 그러나 생존과 번식에 장기적으로 유리하지 않으면 진실성이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우리는 세상을 (…) 있는 그대로 지각하지 않고, 우리에게 유익한 대로 지각한다. 그러다 보면 주변을 체계적으로 ‘오지각‘할 수 있다. 적어도 진실성이라는 기준에서 보면 그렇게 말할 수 있다."27 - P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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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리 대응설과 진리 정합설


흄이나 칸트 같은 학자들 말처럼 우리가 현실을 결코 인식할 수 없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어떻게 해야 진실에 최소한 근접이라도 할 수 있을까?

이를 위해서는 우리의 경험 세계가 제한돼 있음을 받아들이면서도 가능한 한 어떤 이론이나 진술이 우리의 경험 세계와 어느 정도로 일치하는지 점검해야 할 것이다. 우리의 이론이나 진술이 지각, 즉 감각으로 경험할 수 있는 것에 들어맞는가? 그런 경험이나 자료가 우리에게 주어진 증거다. 우리의 이론이 증거와 부합하지 않으면, 이론을 그에 맞게 조정해야 한다. 철학에서는 이런 접근을 대응설  correspondence theory 혹은 ‘진리 대응론‘이라 부른다. 이론이 주어진 증거와 대응하는가, 즉 증거와 일치하느냐를 묻기 때문이다. - P63

또 다른 시각에 따르면 우리가 경험하는 외부 현실은 고작 우리 스스로가 만들어내는 산물이기에 대응설은 맞지 않다. 우리의 경험 세계는 순수 주관적인 것이기에 이론이나 진술의 진실성을 점검하는 데는 기본적으로 적합하지 않다. 그리하여 이론의 진실성을 판단하기 위해 우리에게 남은 유일한 방법은 이론이 그 자체로 모순이 없느냐 하는 것이다. 이런 접근을 바로 정합설 coherence theory, 혹은 ‘진리 정합론‘이라 부른다. 정합설에서는 어떤 이론의 진술이 그 자체로 모순 없이 서로 들어맞는지 따진다. 정합론적 접근은 어려움을 초래할 수 있는데, 정합성만 기준으로 하면 비슷한 정도로 모순이 없어 진실된 것이라고 볼 수 있을 만한 현실에 대한 상이 다수 존재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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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측기계로서의 뇌


정말로 중요한 것은 두 가지다.  첫째, 학습된 지식으로 뇌가 ‘내적 세계 모델‘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뇌는 이런 모델을 도구로 가설을 만들어, 들어오는 감각 데이터를 예측한다. 

둘째, 뇌는 예측에서 벗어나는 것, 소위 예측 오류를 활용해 ‘내적 세계 모델‘을 지속적으로 최적화하고 업데이트, 즉 학습한다.

이런 시각에 따르면 우리 뇌는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에 늘 한발 앞서간다. 영국 철학자 앤디 클라크Andy Clark는 이를 다음과같이 표현했다. "불확실한 세상에서 빠르고 무난하게 살아가기위해 우리 뇌는 예측의 달인이 됐다. 뇌는 신뢰할 수 없고 모호한 감각 데이터의 물결 위에서 서핑한다. 최종 결과에서 데이터보다 늘 한발 앞서기 위해서다. 뛰어난 서퍼는 파도가 부서지기 직전 ‘주머니 안에 in the pocket‘ 머무르는 식으로 서핑한다. 이것은 그에게 힘을 선사해 부서지는 파도에 휩쓸리지 않게 해준다."5 - P190

뇌는 자신의 예측과 종종 주어지는 불확실한 감각 데이터를 종합해 세상에 대한 지각을 만들어낸다. 따라서 지각은 수동적인 과정이 아니라 능동적이고 생산적인 과정이다. 뇌를 능동적인 예측 기계로 보는 생각은 앞에서 제시한 거꾸로 된 블랙박스 문제를 설명해줄 수 있다. 즉 뇌는 자신의 블랙박스 바깥세상에 직접적으로 접근할 수 없기 때문에 가설적 모델을 사용해 세상에서 일어나는 사건을 예측하는 것이다. 이를 ‘생성 모델 generative model‘이라고도 부른다. 이 모델을 토대로 예측에 맞아 떨어지는 데이터가 ‘생성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뇌는 자신의 세상을 만드는 것이다.

그러나 이 세상이 뇌가 스스로 만들어낸 세상이라 하더라도 결코 바깥에서 실제로 일어나는 일과 무관하지 않다. 감각기관이 감지하는 신호가 가설적 세계 모델의 예측에서 벗어나면, 이 모델은 오류 신호를 통해 수정된다. 이런 계속적인 학습 과정을 통해 세상에 대한 내적 모델은 점점 최적화되고, 주변 조건에 유연하게 맞춰진다. 그래서 오류 신호가 나타나는 것이 장기적으로 최소화된다. 내적 세계 모델이 좋을수록 오류가 적어지고, 뇌는 우리가 외부 세계에서 안전하게 생활하도록 적절히 인도해준다. - P1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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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신의 적응적 가치
- 말싸움에서 이기는 것은 재생산에 유리하다
- 확증편향은 생래적이고 확신을 고수하게 해준다.
- 확신이 없으면 말싸움에서 이기기 어렵다. 스스로 믿어야 남도 설득한다.




확신과 우리가 그것을 표방하는 설득력 역시 사회적 역할을 한다. (자장가 <달이 떴다 Der Mond ist Aufgegangen〉를 지은) 마티아스 클라디우스 Matthias Claudius의 말을 빌리자면 "당신도 잘 알고 있듯 말씨름에서 이기는 사람은 대부분의 사람에게 칭찬을 받고, 마치 그가 또한 옳은 것처럼 여겨지는 것이다". 38

확신을 만들어내고 동료 앞에서 자신의 확신을 표방하고 주장하는 능력은 사회적 지위를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됨으로써 높은 적응적 가치를 지닌다. 사회적 지위는 파트너 찾기의 성공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그래서 합리적이든 비합리적이든, 확신은 의사소통 기능을 지닌다.  - P163

(수많은 단점에도 불구하고) 확증 편향은 가장 많이 연구되고 경험적으로 확인된 인지 편향으로서  매우 만연해 있다. 이것은 이것이 단점임에도 인간 뇌의 진화에서 어떤 식으로든 이에 대한 선택적 압력이 있었음을 말해준다. 즉 우리 뇌가 기존 세계상을 확인하게끔 하는 선택의 압력이 작용했던 것이다. 

메르시에와 스페르베르는 확증 편향이 고립적으로 행동하는 인간에게는 단점이 될것이라고 말한다. 확증 편향이 이런 개인이 현실을 최적으로 평가하는 것을 방해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메르시에와 스페르베르는 확증 편향에 대한 선택의 압력은 확증 편향이 발휘하는 사회적 기능, 무엇보다 확신의 의사소통적 기능에서 찾을 수 있다고 본다 - P165

메르시에와 스페르베르에 따르면 확증 편향은 흔들림 없이 자신의 확신을 고수해 다른 사람도 자신처럼 생각하도록 설득하고, 자신의 행동을 변호하기에 진화적으로 적응적이다. 

이런 생각은 실험으로 뒷받침된다. 실험 결과, 사람들은 기본적으로는 어떤 이론의 반대 증거나 논지를 받아들이는 걸 어려워하지 않았지만, 자신이 대변하는 이론에 관한 한 반대 논지를 받아들이는 걸 힘들어했다. 41 우리의 확증 편향은 다른 사람들을 상대로 자신의 의견을 논증하고 대변하도록 해준다. 스스로가 자신의 의견을 정말로 확신해야 다른 사람도 설득할 수 있기 때문이다.

확신의 이런 의사소통적 기능이 진실된 내용을 검증하고 경우에 따라 수정하는 능력보다 사회적 존재로서 진화하는 데 더 중요했던 듯하다.

확증편향은 지능과는 별 관계가 없어 보인다. ‘똑똑하거나고학력인 사람은 확증 편향 경향이 덜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드는가? 그들은 사고의 함정을 더 잘 간파할 테니까? 하지만 사실은 정반대다. 똑똑한 사람들은 확증 편향이 더 강한데,42 이는 그들이 자신의 명제를 더 그럴듯한 논지로 뒷받침할 수 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그들은 다른 사람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도 설득할 수 있다.

- P166

이런 논지로 보자면 (나 자신의) 합리성에 대한 환상, 즉 스스로가 인식적으로 불합리하다는 걸 보지 못하는 현상은 우리로 하여금 스스로의 확신을 더 흔들림 없이 고수함으로써 적응적으로 작용한다고 할 수 있다. 

합리성에 대한 환상은 자신과 세상에 대한 일관적인 상을 갖도록 한다. 그도 그럴 것이 계속해서 자신의 비합리성과 사고나 세계상에서의 모순을 의식한다면, 확신이 중요한 의사소통적 기능을 발휘하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즉 자신이 확신하는 바를 다른 사람에게 관철시킬 수 없는 것이다. - P1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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