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리 대응설과 진리 정합설


흄이나 칸트 같은 학자들 말처럼 우리가 현실을 결코 인식할 수 없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어떻게 해야 진실에 최소한 근접이라도 할 수 있을까?

이를 위해서는 우리의 경험 세계가 제한돼 있음을 받아들이면서도 가능한 한 어떤 이론이나 진술이 우리의 경험 세계와 어느 정도로 일치하는지 점검해야 할 것이다. 우리의 이론이나 진술이 지각, 즉 감각으로 경험할 수 있는 것에 들어맞는가? 그런 경험이나 자료가 우리에게 주어진 증거다. 우리의 이론이 증거와 부합하지 않으면, 이론을 그에 맞게 조정해야 한다. 철학에서는 이런 접근을 대응설  correspondence theory 혹은 ‘진리 대응론‘이라 부른다. 이론이 주어진 증거와 대응하는가, 즉 증거와 일치하느냐를 묻기 때문이다. - P63

또 다른 시각에 따르면 우리가 경험하는 외부 현실은 고작 우리 스스로가 만들어내는 산물이기에 대응설은 맞지 않다. 우리의 경험 세계는 순수 주관적인 것이기에 이론이나 진술의 진실성을 점검하는 데는 기본적으로 적합하지 않다. 그리하여 이론의 진실성을 판단하기 위해 우리에게 남은 유일한 방법은 이론이 그 자체로 모순이 없느냐 하는 것이다. 이런 접근을 바로 정합설 coherence theory, 혹은 ‘진리 정합론‘이라 부른다. 정합설에서는 어떤 이론의 진술이 그 자체로 모순 없이 서로 들어맞는지 따진다. 정합론적 접근은 어려움을 초래할 수 있는데, 정합성만 기준으로 하면 비슷한 정도로 모순이 없어 진실된 것이라고 볼 수 있을 만한 현실에 대한 상이 다수 존재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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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측기계로서의 뇌


정말로 중요한 것은 두 가지다.  첫째, 학습된 지식으로 뇌가 ‘내적 세계 모델‘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뇌는 이런 모델을 도구로 가설을 만들어, 들어오는 감각 데이터를 예측한다. 

둘째, 뇌는 예측에서 벗어나는 것, 소위 예측 오류를 활용해 ‘내적 세계 모델‘을 지속적으로 최적화하고 업데이트, 즉 학습한다.

이런 시각에 따르면 우리 뇌는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에 늘 한발 앞서간다. 영국 철학자 앤디 클라크Andy Clark는 이를 다음과같이 표현했다. "불확실한 세상에서 빠르고 무난하게 살아가기위해 우리 뇌는 예측의 달인이 됐다. 뇌는 신뢰할 수 없고 모호한 감각 데이터의 물결 위에서 서핑한다. 최종 결과에서 데이터보다 늘 한발 앞서기 위해서다. 뛰어난 서퍼는 파도가 부서지기 직전 ‘주머니 안에 in the pocket‘ 머무르는 식으로 서핑한다. 이것은 그에게 힘을 선사해 부서지는 파도에 휩쓸리지 않게 해준다."5 - P190

뇌는 자신의 예측과 종종 주어지는 불확실한 감각 데이터를 종합해 세상에 대한 지각을 만들어낸다. 따라서 지각은 수동적인 과정이 아니라 능동적이고 생산적인 과정이다. 뇌를 능동적인 예측 기계로 보는 생각은 앞에서 제시한 거꾸로 된 블랙박스 문제를 설명해줄 수 있다. 즉 뇌는 자신의 블랙박스 바깥세상에 직접적으로 접근할 수 없기 때문에 가설적 모델을 사용해 세상에서 일어나는 사건을 예측하는 것이다. 이를 ‘생성 모델 generative model‘이라고도 부른다. 이 모델을 토대로 예측에 맞아 떨어지는 데이터가 ‘생성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뇌는 자신의 세상을 만드는 것이다.

그러나 이 세상이 뇌가 스스로 만들어낸 세상이라 하더라도 결코 바깥에서 실제로 일어나는 일과 무관하지 않다. 감각기관이 감지하는 신호가 가설적 세계 모델의 예측에서 벗어나면, 이 모델은 오류 신호를 통해 수정된다. 이런 계속적인 학습 과정을 통해 세상에 대한 내적 모델은 점점 최적화되고, 주변 조건에 유연하게 맞춰진다. 그래서 오류 신호가 나타나는 것이 장기적으로 최소화된다. 내적 세계 모델이 좋을수록 오류가 적어지고, 뇌는 우리가 외부 세계에서 안전하게 생활하도록 적절히 인도해준다. - P1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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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신의 적응적 가치
- 말싸움에서 이기는 것은 재생산에 유리하다
- 확증편향은 생래적이고 확신을 고수하게 해준다.
- 확신이 없으면 말싸움에서 이기기 어렵다. 스스로 믿어야 남도 설득한다.




확신과 우리가 그것을 표방하는 설득력 역시 사회적 역할을 한다. (자장가 <달이 떴다 Der Mond ist Aufgegangen〉를 지은) 마티아스 클라디우스 Matthias Claudius의 말을 빌리자면 "당신도 잘 알고 있듯 말씨름에서 이기는 사람은 대부분의 사람에게 칭찬을 받고, 마치 그가 또한 옳은 것처럼 여겨지는 것이다". 38

확신을 만들어내고 동료 앞에서 자신의 확신을 표방하고 주장하는 능력은 사회적 지위를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됨으로써 높은 적응적 가치를 지닌다. 사회적 지위는 파트너 찾기의 성공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그래서 합리적이든 비합리적이든, 확신은 의사소통 기능을 지닌다.  - P163

(수많은 단점에도 불구하고) 확증 편향은 가장 많이 연구되고 경험적으로 확인된 인지 편향으로서  매우 만연해 있다. 이것은 이것이 단점임에도 인간 뇌의 진화에서 어떤 식으로든 이에 대한 선택적 압력이 있었음을 말해준다. 즉 우리 뇌가 기존 세계상을 확인하게끔 하는 선택의 압력이 작용했던 것이다. 

메르시에와 스페르베르는 확증 편향이 고립적으로 행동하는 인간에게는 단점이 될것이라고 말한다. 확증 편향이 이런 개인이 현실을 최적으로 평가하는 것을 방해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메르시에와 스페르베르는 확증 편향에 대한 선택의 압력은 확증 편향이 발휘하는 사회적 기능, 무엇보다 확신의 의사소통적 기능에서 찾을 수 있다고 본다 - P165

메르시에와 스페르베르에 따르면 확증 편향은 흔들림 없이 자신의 확신을 고수해 다른 사람도 자신처럼 생각하도록 설득하고, 자신의 행동을 변호하기에 진화적으로 적응적이다. 

이런 생각은 실험으로 뒷받침된다. 실험 결과, 사람들은 기본적으로는 어떤 이론의 반대 증거나 논지를 받아들이는 걸 어려워하지 않았지만, 자신이 대변하는 이론에 관한 한 반대 논지를 받아들이는 걸 힘들어했다. 41 우리의 확증 편향은 다른 사람들을 상대로 자신의 의견을 논증하고 대변하도록 해준다. 스스로가 자신의 의견을 정말로 확신해야 다른 사람도 설득할 수 있기 때문이다.

확신의 이런 의사소통적 기능이 진실된 내용을 검증하고 경우에 따라 수정하는 능력보다 사회적 존재로서 진화하는 데 더 중요했던 듯하다.

확증편향은 지능과는 별 관계가 없어 보인다. ‘똑똑하거나고학력인 사람은 확증 편향 경향이 덜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드는가? 그들은 사고의 함정을 더 잘 간파할 테니까? 하지만 사실은 정반대다. 똑똑한 사람들은 확증 편향이 더 강한데,42 이는 그들이 자신의 명제를 더 그럴듯한 논지로 뒷받침할 수 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그들은 다른 사람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도 설득할 수 있다.

- P166

이런 논지로 보자면 (나 자신의) 합리성에 대한 환상, 즉 스스로가 인식적으로 불합리하다는 걸 보지 못하는 현상은 우리로 하여금 스스로의 확신을 더 흔들림 없이 고수함으로써 적응적으로 작용한다고 할 수 있다. 

합리성에 대한 환상은 자신과 세상에 대한 일관적인 상을 갖도록 한다. 그도 그럴 것이 계속해서 자신의 비합리성과 사고나 세계상에서의 모순을 의식한다면, 확신이 중요한 의사소통적 기능을 발휘하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즉 자신이 확신하는 바를 다른 사람에게 관철시킬 수 없는 것이다. - P1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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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신과 소속감
- 2020년 미 대선만의 얘기가 아니다




2020년 미국 대통령 선거를 부정선거로 볼 것이냐 하는문제 같은 주제는 진실에 관한 것이지만, 진실은 우리가 이미 확인했듯ㅡ 확신과 신념의 다른 중요한 기능의 뒷전으로 밀려날 때가 많다. 그 기능은 바로 사회적 소속감이다.

복잡한 사회에서 살아가는 삶에서 집단으로 한데 뭉치고 연대하는 능력은 유익을 제공한다. 그런 이유로 진화 과정에서 그런 능력을 장려하는 특징이 살아남았다. 앞서 보았듯 세상에 대한 지식을 획득하고 신념을 형성할 때 우리는 다른 사람들이 전해준 정보에 의존한다. 우리에게 정보를 전달해주는 사람들은 우선은 부모와 교사지만, 삶을 살아가면서 우리가 속한 사회집단이 점점 중요한 역할을 차지한다. 사회집단은 관심사와 세계관을 공유하므로 신념과 확신은 집단 소속감을 느끼는 데 중요할수 있다. 집단 내에서 공동의 신념으로 꽁꽁 뭉치는 힘 ㅡ 그와 더불어 많은 경우에 노선 이탈자나 다른 집단과 분리하는 힘 - 은 종교, 정치, 스포츠 등 거의 모든 삶의 영역에서 관찰된다. - P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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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리스틱의 적응적 가치
- 결정하고 논거를 찾는다
- 결정은 휴리스틱에 맡긴다

한계효용 체감의 법칙에 따르면 우리의 세계상이 부모나 교사, 다른 권위자(가령 의류 매장 판매원)가 진실이라고 전달해준 데 기초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미국의 철학자 대니얼 데닛Daniel Dennett의 말마따나 우리에게는 엄청나게 복잡한 세상에서 살아가기 위해 굉장히 방대한 지식이 필요한데, 모든 지식을 세부적으로 검증할 시간이 없다. 

가령 당신이 한 부족의 구성원이고 그부족에서는 건강한 아이를 얻기 위해 신에게 염소를 제물로 바치는 관습이 있다면, 당신이 아이를 가졌을 때 제물을 바치는 걸그만두겠는가? 그렇지 않을 것이다, 안전한 건 안전한 거니까!15

우리가 믿는 것과 관련해서는(그리고 실질적 이유에서 세부적으로는 검증할 수 없는 것에서) 그 내용이 진실이냐 아니냐보다 누가 우리에게 그 이야기를 했느냐 하는 것이 훨씬 중요하다. 따라서 사람들이 진화론을 믿지 않고 지적 설계를 믿는다면, 그건 그들이 과학자보다 자신에게 이런 ‘진실‘을 가르쳐준 사람을 더 신뢰하기 때문일 것이다. 나아가 그들이 신뢰하는 사람들이 과학은 믿을 것이 못 된다고 말했다면 더더욱 그러하다. 

리처드 도킨스에 따르면 진화적으로 볼 때 이런 식으로 확신을 형성하는 행동은 굉장히 적응적이다. "자연선택은 어린아이의 뇌가 부모와 부족의 어른들이 하는 말은 뭐든 믿고 보게끔 한다." 16

우리가 가 어떤 결정을 내렸다는 사실 자체가 이런 결정을 뒷받침하는좋은 논지를 찾게 만든다는 결론이다. 우리가 해당 결정을 정말로 스스로 내렸는지, 아닌지와도 무관하게 말이다. 우리가 어떤 결정을 했다고 ‘믿는‘ 것만으로도 이런 결정이 옳다는 논지로 스스로를 (그리고 다른 사람을) 설득하기에 충분하다. 그러므로 어떤 확신이 타당한 이유를 적극적으로 찾아 논증하는 것이 원래 정보나 결정 과정보다 확신의 형성에 훨씬 중요한 것이다. - P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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