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정투쟁에서 한국 보수까지

패터슨은 노예제도와 명예에 집착하는 문화 - 플라톤을 따라 그가 타이모크라시 timocracy라고 부른 것 - 사이에 밀접한 관계가 있음을 발견하였다. 우월해지려는 욕망, 권위에 대한 복종, 관직에 대한 야망, 군인다움에 대한 숭상, 금전에 대한 집착 등이 플라톤이 생각했던 타이모크라틱한 인간형의 특징이었다. 대규모의 노예제도가 존재하는 사회에서는 어김없이 타이모크라틱한 문화와 인간형이 발달한다.  - P61

플라톤이 이 단어어를 사용하면서 염두에 두었던 것은 스파르타였지만, 남북전쟁 이전의 미국 남부의 문화에서도 이 명칭에 부합하는 특징들이 나타난다. 명예와 자존심에 대한 날카로운 감각, 남자다움에 대한 칭송, 여성의 이상화와 격리, 한마디로 얼마간 시대착오적인 기사도 정신. 노예제 사회를 살아가는 자유인들이 명예에 과도한 의미를 부여하는 까닭을 이해하기란 어렵지 않다. 그들과 노예의 차이가 바로 거기 있기 때문이다.

몰락하고 명예를 잃은 인간은 노예와 비슷해진다. 노예의 굴욕을 날마다 지켜보는 사람들에게 노예와 비슷해지는 것만큼 큰 두려움은 없을 것이다. 다시 말해서 인정투쟁의 장 외부를 구성하는 노예의 존재는 이 투쟁을 생사를 건 싸움 life-and-death struggle의 경지로 끌어올리는 데 기여한다. - P62

4) Orlando Patterson, 같은 책, p. 386, note 14. 우월해지려는 욕망, 권위에 대한 복종, 관직에 대한 야망...... 이런 묘사를 읽다보면 나의 머릿속에는 막연하게 어떤 초상화가 떠오른다.
하지만 그 초상화는 고대 그리스인이 아니라 한국인의 얼굴을 하고 있다. 경상도 출신이고 강남에 거주하며 한나라당에 투표하는 60대 남자. 한국의 경상도는 미국 남부만큼이나 타이모크라틱한 것 같다. 사나이다움‘에 대한 자부심까지 포함해서 말이다. 

물론 우리는 그것을 역사적으로 설명할 수 있다. 경상도는 ‘양반 문화‘가 뿌리 깊은 곳이다. 한국이 노예제 사회였다는 제임스 팔레 교수의 주장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이라도, 양반 노릇을 하려면 종이 있어야하고, 양반 의식이란 ‘아랫것들‘과 자신을 구별하는 태도라는 데는 이견이 없을 것이다. 

미국 남부의 타이모크라틱한 정서는 남북전쟁이 끝난 후 KKK단의 결성으로 표출된 바 있다. 경상도가 언제나 한나라당.
지금은 새누리당으로 이름이 바뀌었고 다시 어떤 이름으로 바뀔지 모르지만, 거슬러 올라가 보면 광주학살을 주도했고 또 은폐했던 세력에 몰표를 주는 데에는 ‘지역감정‘이라는 말만으로는 부족한, 좀더 깊은 정치인류학적 이유가 있는 게 아닐까? - P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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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팬지 폴리틱스 - 권력 투쟁의 동물적 기원
프란스 드 발 지음, 장대익.황상익 옮김 / 바다출판사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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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란의 선전 대 은폐

13 침팬지 암컷의 성기 부풀어오름(sexual swelling)과 인간 여성의 은폐된 배란(concealed ovulation) 

암컷의 성기 주위가 빨갛게 부풀어오르는 현상은 침팬지뿐만아니라 다른 영장류에서도 흔히 관찰된다. 배란기에 가장 크고 선명하게 부풀어오르며 암컷의 성호르몬의 통제를 받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렇다면 침팬지 암컷은 왜 이런 식으로 수컷에게 배란기를 선전하는 것일까? 이에 대해 크게 두 가지 설명이 있다. 그중 하나는 암컷이 이런 신호를 보냄으로써 수컷들의 경쟁을 유도하고 그런 경쟁으로 말미암아 좋은 유전자를 전해줄 수컷이 자연스럽게 걸러진다는 설명이다. 반면 다른 하나는 이런 현상이 수컷들이 저지르는 영아 살해를 줄여주기 때문에 진화했다는 설명이다. 가령, 모든 수컷들이 한 암컷의 부푼 성기를 보고 그 기간에 어떻게든 교미를 했다고 치자. 나중에 그 암컷에게서 새끼가 태어나면 그놈이 어떤 수컷의 자식인지가 불분명해진다. 따라서 수컷들은 함부로 그 새끼를 살해하지못할 것이다.

하지만 흥미롭게도 유독 인간 여성만이 영장류 동물 중에 배란기를 선전하지 않는다. 이를 흔히 ‘은폐된 배란‘이라고 부르는데 많은 학자들은 이런 현상과 인간의 짝결속의 기원을 연관지으려고 한다. 

그렇다면 왜 인간만이 배란을 은폐하는 쪽으로진화했을까? 가장 유력한 설명에 따르면 배란 은폐는 부권에 대한 신뢰를 높여주었기 때문에 진화했다. 예컨대, 배란 은폐는 여성으로 하여금 자신이 원하는 남성을지속적으로 자신 곁에 묶어둠으로써 그 남성이 다른 여성을 찾아다니지 못하게 만들었다. 다른 한편으로는 다른 경쟁 남성들에게도 배란 시기를 가르쳐주지 않음으로써 그 남성이 자신의 부권을 확신할 수 있게 만들었다. 다른 영장류 동물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미숙한 상태의 아기를 낳아 기르는 인간에게는 짝 결속이 남성과 여성 모두에게 필요한 것이었다. 여성의 배란 은폐는 바로 이러한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고 여겨진다. 영장류의 성을 종합적으로 비교 · 정리해놓은 책으로는《Primate Sexuality: Comparative Studies of the Prosimians, Monkeys, Apes,
and Humans (Dixson, A, F., 1999)>가 있다. 역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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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팬지 폴리틱스 - 권력 투쟁의 동물적 기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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헐떡과시와 우쭐과시

비슷한 차이점이 침팬지들의 과시 행동에서도 나타난다. 여기서도차이점은 침팬지들이 지르는 소리의 세기이다. 하나는 귀청이 찢어질 정도지만 다른 하나는 비교적 조용하다. 침팬지가 첫 번째 유형의 과시 행동을 할 때는 처음에 상체를 흔들다가 ‘후우후우‘ 하는 소리를 점점 크게 낸다. 그런 다음 경쟁자에게 돌진하고, 땅을 구르며, 마지막에는 큰 소리를 지른다. 이 소리에 동반되는 깊고 리드미컬한 들숨과 날숨으로 인해 이런 행동을 ‘헐떡 과시(ventilating display)‘라고 부른다. 우열을 다투는 모든 과정에서 이런 종류의 과시 행위는 특히 도전자 쪽에서 보이는 특징적인 행동이다. 

일단 불안정한 시기가 끝나고 경쟁자가 굴복하면 도전자는 다른 형태의 과시 행위로 전환한다. 그것은 양 입술을 꼭 다문 채 숨을 참는 것이다. 이때 공기의 압력으로 가슴이 넓어지고 양쪽 볼이 부풀어오르는데, 이것을 ‘우쭐 과시(inflated display)‘라 부른다. 헐떡 과시가 도발적이며 야심찬 행위라면, 우쭐 과시는 승자의 자신감을 나타내는 수단이다. - P2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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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팬지 폴리틱스 - 권력 투쟁의 동물적 기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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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안관으로서의 권력자

강자의 보안관 역할과 그 강자가 위협에 직면했을 때 약자로부터 받는 지원 사이에 어떤 관련이 있을지는 뻔하다. 암놈과 그 새끼들을 지켜주지 못하는 1인자 수놈은 장차 라이벌과의 권력투쟁에서 어떠한 지원도 기대할 수 없다. 이런 의미에서 1인자 수놈의 보안관 역할은 호의라기보다 의무에 가깝다. 1인자로서의 지위는 이같은 의무에 달려 있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이에룬의 몰락은 그가 라윗이나 니키의 공격으로부터 다른 구성원들을 효과적으로 지켜내지 못했다는 사실로도 설명될 수 있다. 

라윗의 행동도 그와 같은 견지에서 해석될 수 있다. 라윗은 암놈들을 공격하거나 이에룬의 면전에서 암놈들에게 거만을 떨면서, 암놈들로 하여금 이에룬에게 지원을 요청해봤자 별 볼일이 없다는점을 시위했던 것이다. 하지만 쿠데타에 성공하고 나자 그는 완전히 태도를 바꾸어서 스스로 보호자의 역할을 자청하고 나섰던 것이다. - P1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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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적 공산주의

10대 시절 나는 이상하게 생각했다. 공산주의가 ‘실패‘했다는 근거가 피에 굶주린 정권의 행태에만 의존하고 있는 것 같았다. 공산주의는 일반시민에게 발언권이 없으며, 부패한 엘리트가 운영하는 전능한 경찰국가의 정권들의 행태 때문에 실패했다는 것이다. 그 당시 내가 깨닫지 못했던 사실이 있다. 공산주의는 적어도 공식적인 정의에 따르면 수백 년 동안 성공적인 체제였으며, 구소련과 유사하지 않다는 점이다. 사실 우리는 매일 그것을 연습한다. 우리 경제의 큰 부분은 민영화된 지 수십 년이 지났어도 여전히 공산주의 모델에 따라 운영되고 있다. 이는 너무 정상적이고 명백해서 더 이상 눈에 띄지도 않는다.


간단한 예를 들어보자. 당신은 식탁에 앉아있고 소금이 손에 닿지 않는곳에 놓여 있다. "소금 좀 건네주세요"라고 말하면 누군가 무료로 소금을 건네준다. 인류학자들은 이것을 일상적 공산주의 everyday communism라고 일컫는다. 인류는 공원과 광장, 음악과 이야기, 해변과 침대를 공유하면서 이런 종류의 공산주의에 열광한다. 아마도 이런 관대함의 가장 좋은 예는 가정일 것이다. 전 세계의 수십억 가정이 공산주의 원칙에 따라 구성되어있다. 부모는 자신의 소유물을 아이와 공유하고 능력껏 기여한다.  - P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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