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남희

여행가 유목하듯 살아오고 있다. 언젠가는앉아서 유목하는 경지에 오르기를 바라며.
스무 해 넘게 여행으로 삶을 이어오며 수많은 길을 걷었다. 길 위에서 그는 아무것도아닌 동시에 무엇이든 될 수 있었다.
여행은 언제나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게끔했다. 더 선한 사람, 지구와 타인에게 해를덜 끼치는 존재가 되기를 갈망하게 했다.
그 간절함이 지금도 그를 여행으로 이끈다.
‘여행이란 결국 낯선 세계 속으로 뛰어들어 자신의 편협한 세계를 부수는 행위‘라고 믿는 그는 오늘도 기꺼이 길을 나선다. 언제까지 여행할 수 있을까 하는 조금은 무거운마음으로.
지은 책으로는 소심하고 겁 많고 까탈스러운 여자 혼자 떠나는 걷기 여행>, <외로움이 외로움에게>, <삶의 속도, 행복의 방향>공저, <라틴아메리카 춤추듯 걷다>, <이별의 모든 것은 여기서 시작되었다>, <길 위에서 읽는 시>, <여행할 땐, 책>, <호의는 거절하지 않습니다》 등이 있다.

넓디넓은 세상을 걷고 보고 듣고맛보고 느끼며 사는 그녀를 나는‘남희쌤‘이라 부른다.
가볼 꿈조차 꿀 수 없는 곳의 풀과 나무, 동물, 오래된 도시의 색과 냄새,
그네들의 순박한 웃음과 친절⋯⋯여행 끝에 가슴에 남는 사람들이그녀를 다시 길 위에 서게 할 것이다.
마치 끝 모를 바람처럼,
"누가 보았을까 부는 바람을
아무도 보지 못했지 저 부는 바람을"
‘남희쌤‘에게선 바람 냄새가 난다.
나도 한바탕 떠났다 돌아온 기분이다.

양희은, 가수

훼손되고 싶지 않은 마음이 있다.
잃어버리고 싶지 않은 가치가 있다.
길위에 선 그의 단단한 내면에 동화되다가 수직이 아닌수평의 시선으로 사유하는 그를 보며 경외심마저 느낀다.
행간과 틈새 사이에 끊임없이 내가, 우리가 고개를 내민다.
여행이 몸에 새겨져 어느새 삶이 된 작가를 바라보면서그와 닮은 시선으로 사유하며 살아갈 수 있다면 어떨까 상상해본다.
여행을 일상의 탈출이나 삶의 여백이라 여겼던 내 한계까지 돌아보면서,
이 책은 훼손되고 싶지 않은,
잃어버리지 말아야 할 마음이 무엇이었는지 떠오르게 한다.
여행을 마치고 나를 찾아 돌아온 기분이다.
일단 떠나는 수밖에, 그 결심이 나를 지킨다.

박미옥, <형사 박미옥> 저자

미처 예상치 못했다. 집을 짓지 않고 떠도는 삶이 이렇게 길어지리라고는. 찬바람 부는 1월의 인천항에서 중국행배에 오를 때 나는 서른셋이었다. 서른셋은 지닌 재산이 적어 탕진하는 부담도 적은 나이였다. 3년 정도면 전 재산이 사라질 테고, 그 무렵이면 여행도 끝이 나리라 믿었다. 먼지 묻은 배낭을 앞뒤로 메고 낯선 도시에 들어서면 제일 먼저 관광안내소로 향했다. 그곳의 직원은 지도에 가볼 만한곳을 표시하고, 예산에 맞는 숙소를 골라줬다. 전화를 걸어 빈방을 확인하고, 예약을 해주기도 했다. 시리아나 레바논처럼 정보가 부족한 나라를 여행할 때면, 먼저 다녀간 여행자들이 방명록에 남긴 정보를 얻기 위해 여행자 사이에서 전설처럼 전해지던 특정 숙소를 찾아가고는 했다. 하루를 보내기 위해서는 거리의 사람들에게 수십 번씩 길을 물어야 했다. 여행은 온전히 타인의 친절에 기대는 행위였고, 타인과 소통하는 과정이었다. 그 시절에는 한 번의 여행을 - P8

마치면 한 명의 사람이 남았다.
여행하는 삶을 살아온 지도 어느새 23년 차. 이제 여행은 타인의 친절이 아니라 스마트폰 검색에 기대는 일이 되었다. 쉽고 편리해졌다. 가격 비교 사이트에서 비행기표를고르고, 클릭 몇 번으로 숙소를 예약하고, 구글 리뷰가 좋은 식당을 찾아가면 된다. 큰 용기가 없어도, 외국어를 하지 못해도, 누구나 실패 없는 여행을 하고 돌아온다. 어디서나 쉽게 여행자를 만날 수 있지만 친구를 사귀기는 더 어려워졌다. 쌀독의 낱알만큼 흔해진 여행자는 이제 환영받는 존재도 아니다. 소음과 쓰레기 문제와 주거난을 일으켜 현지인의 삶의 질을 떨어뜨리는 주범이 되었을 뿐, 여행을 마치고 돌아올 때면 그곳에서 사귄 친구의 연락처 대신 수백 장의 사진만 남는다.
"여행은 단순한 장소의 이동이 아니라 자신이 쌓아온 생각의 성을 벗어나는 일이다." -신영복 - P9

여전히 내가 가장 좋아하는 여행의 정의다. 여행을 하면 할수록 내가 알던 상식과 진리가 무너진다. 걸으면 걸을수록 질문이 생겨나고, 내가 배워온 것들을 의심하게 된다. 거리에서 보내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나와 타인이, 나와지구가 깊이 연결되어 있음을 깨닫는다. 여행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올 때면 나를 둘러싼 모든 것을 조금 더 사랑하고아끼게 된다. 여행은 언제나 더 나은 내가 되고 싶게끔 했다. 정말이지 조금 더 선한 사람이 되고 싶고, 지구와 타인에게 해를 덜 끼치는 존재가 되기를 갈망한다. 그 간절함이나를 여행으로 이끈다.


코비드 역병의 시대는 내 삶의 많은 것을 바꿔놓았다. 강연과 글쓰기뿐이던 생계 활동에 에어비앤비 호스트, 방과후 글쓰기단, 방과후 산책단이 끼어들었다. 한마디로 ‘N잡러‘로 살기 시작했다. 그렇게 살아보니 그 어느 것도 절 - P10

대적인 수입이 되지 못하는 대신에, 그 어느 것에도 절대적으로 메이지 않아도 되었다. ‘원하지 않으면 때려치울 수있어. 아니면 말지 뭐‘ 하는 가벼운 마음이랄까. 이제야 나는 ‘빠꾸의 힘‘을 알게 되었다. 그 모든 일 중 끝까지 놓고싶지 않은 일은 가장 어려운 글쓰기다. 마지막 순간까지 쓰는 사람으로 남고 싶다는, 읽어주는 사람이 있는 글쓰기를하고 싶다는 욕망. 결국은 타인과 소통하고 싶다는 바람이었다. 쉽지 않은 방과후 산책단을 계속 꾸려가는 이유도 결국은 그 열망 때문이다.
꼭 5년 전 봄, 혼자 여행하던 내가 방과후 산책단이라는이름으로 함께하는 여행을 시작했다. 먹고살 길이 막막해진 코비드 초기에 지인이 조언했다.
"네가 산책하는 걸 프로그램으로 만들어봐."
단체 여행이라니! 비명을 지르고 싶었다. 가족과 여행하는 일도 고난의 행군인데, 처음 보는 사람들을 데리고 여행 - P11

한다고? 수명을 자발적으로 단축하다니! 흰머리 늘어나는 소리가 실시간으로 들릴 것 같았다.
역시나 방과후 산책단과 함께하는 여행은 만만치 않았다. 혼자서 처음부터 끝까지 모두를 책임져야 하니 어려울수밖에. ‘책임감 제로‘의 삶을 살기 위해 고양이도 입양하지 못하는 사람인데 열 명을 책임지는 일을 하게 되었다. 피를 나눈 남자가 내게 "뭐야, 여행도 하고 돈도 버는 거야? 세상 ‘꿀잡‘이네"라고 했을 때 등짝을 후려치고 싶었다. 산책단은 나에게 여행이 아닌 일이었으니. 그것도 노동 강도가엄청나게 센 해외 출장. 성격도 까칠하고, 고집도 세고, 융통성도 부족한 내가 체력과 취향과 성격이 다 다른 사람들을 이끌고 다니려니 매일 시험을 치르는 기분이었다.
그 좌충우돌의 시간 동안 방과후 산책단을 구상했을 때품었던 소망은 더 간절해졌다. 다른 방식으로 여행하고 싶다는 바람, 짧은 시간에 많은 곳을 다니는 게 아니라, 조금 - P12

느슨하고 느리게 하는 여행. 유명한 곳만 찾는 게 아닌, 덜알려진 곳도 찾아가는 여행. 인간만이 아니라 동물과 식물, 자연을 존중하는 여행, 한 나라에 최소 열흘 이상 머물며, 여섯 명에서 열 명 미만의 소규모로 다니는 여행. 현지 음식을 먹으며, 현지인이 운영하는 작은 숙소에 머물고, 현지인의 삶의 방식을 존중하는 여행. 에코백, 도시락통, 수저, 텀블러를 가지고 다니며 제로웨이스트를 지향하는 여행, 조금 귀찮고 불편해도 지구를 위하는 여행. 어디에 가든 최소한의 흔적만 남기고 돌아오는 조심스러운 여행을 만들고싶었다. 그런 바람으로 꾸린 방과후 산책단은 첫 조지아 트레킹을 시작으로 어느새 열아홉 번의 해외 일정을 마쳤다.
생계를 위해 방과후 산책단을 시작했지만, 보람과 재미를 느끼지 못했다면 지속하지 못했을 것이다. 아름다운 것과 마주칠 때 마음 깊이 번져오는 감동을 나눌 수 있는 이가 곁에 있다는 충만함. 내가 준비한 프로그램에 몰입하는 - P13

이들을 실시간으로 지켜보는 즐거움. 내가 지키고픈 원칙을 존중해주는 이들에 대한 고마움. 오래도록 인연을 이어가고픈, 결이 맞는 사람을 만나는 기쁨. 여행으로 인한 공감과 만남이 방과후 산책단 안에 있었다. 산책단을 마치고나면 늘 사람이 남았다.

여행하는 삶에 대한 갈망은 여전하지만, 짐을 꾸릴 때마다 묻게 된다. 언제까지 여행할 수 있을까. 갱년기를 맞아삐그덕거리는 몸도 문제지만, 무엇보다 앓고 있는 지구를어디서나 체감하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나는 여행을 포기하지 못하고 있다. 여행을 하지 않았다면 내가 지금보다 훨씬 못난 인간이 되었을 거라는 믿음 때문이다. 불편함을 견디지 못하고, 이해심은 바닥이고, 무지하면서 편협하기까지한 꼰대가 되지 않았을까. 지금처럼 반성하는 꼰대도 아닌, 구제불능의 꼰대 말이다. 여행을 통해서야 나는 더불어 - P14

살아가는 일의 의미를 깨닫게 되었고, 말을 할 수 없는 존재들에게 눈길이 갔고, 지구를 위해 해야 하는 일의 목록을늘려갔다. 여행을 함으로써 나는 조금씩 더 다정해졌다. 나자신에게도, 타인에게도, 지구에게도.
낯선 이의 호의에 기대어 새로운 세상으로 나아갈 때마다 중얼거린다. 여행하는 삶을 살아오길 잘했어. 포기하지않고 여기까지 오기를 정말 잘했다. 그러니 아직은, 일단떠나는 수밖에.
대만 타이난에서
2025년 봄날에 - P15

생명을 귀히 여겼지만 그 생명을 취해 자신의 생명을유지하는 일에 망설임이 없었다. 지닌 것을 이웃과 나누는일에도 인색하지 않았다. 그들에게는 손님을 환대하는 풍습이 살아 있어 누가 와도 차와 간식을 내놓고는 했다. 큰죄를 짓는 일도 없이, 허망한 욕망에 좌절하는 일도 없이, 어제와 다름없는 삶을 이어가는 사람들이었다. 그 땅에서삶은 단순했다. 때에 맞춰 양을 몰고 나가 풀어놓고, 온 가족이 모여 꼴을 벴다. 들판에 살구나 버찌가 여무는 계절이오면 따서 잼을 만들었다. 술 한잔이 생각나면 양동이를 들고 나가 말의 젖을 짜 크므스를 만들고, 매일 먹는 치즈와 요거트는 염소와 양의 젖을 발효시켜 만들었다. 겨울이 오면 쌓아둔 건초를 가축에게 먹이며 봄을 기다렸다. 가축에게 먹일 물과 풀이 있는 한 삶은 풍족하다고 여겼다. 이 삶의 양식을 1년에 석 달만이라도 이어가며 사는 한, 성정이 모질고 강퍅해질 일은 없을 것 같았다. 이 삶조차 머지않아박물관의 유물로나 남게 될까. 아마도 그렇게 될 것이다. 유목민의 아이들 중 장래 희망이 목동이나 양치기인 아이는 없다고 했으니. 피할 수 없는 신탁처럼 예고된 그 변화를 상상하면 괜히 목이 메었다.  - P25

고도가 높은 초원은 8월인데도 밤이 되면 기온이 떨어졌다. 저녁을 먹고 나면 유르트의 주인은 난로에 소똥을 넣고 불을 지폈다. 잘 마른 소똥은 냄새도 없이 유르트를 따뜻하게 데웠다. 유목민들의 텐트에서는 모르는 사람들과함께 자야 했다. 낯선 이들과 뒤섞인 채 1년에 한 번 빨요위에 침낭을 덮고 누워 있으면, 새삼 너무 많은 것을 지니고 살아간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이 끌어안은 양과 말, 내가 놓지 못하는 떠도는 삶에 대한 욕망. 결국 우리는 각자에게 절실한 것을 붙잡고 생을 건너가는 중이라는 생각을 하다가 꿈도 없는 잠에 빠져들고는 했다.
지금쯤 그 땅에도 봄이 찾아와 초원을 덮었던 눈이 녹기시작했을까. 곧 새 풀이 돋아나고, 그 풀이 자라 초원을 뒤덮고, 바람이 순해지는 6월이 오리라. 여리던 풀빛이 진해지면 유목민들은 다시 양과 말을 끌고 초원으로 나가 유르트를 칠 것이다. 강과 초원에 기대어 목숨을 맡길 것이다. 먼 조상들이 그랬듯이, 아직은 끝나지 않은 삶을 이어갈 것이다. - P26

키르기스스탄과 타지키스탄은 풍경이 달랐다. 푸른 초원이 사라지고, 풀 한 포기 자라지 않는 불모의 땅이 이어졌다. 도로의 왼편으로는 회색의 판지 강이 흐르고, 강 너머는 아프가니스탄이었다. 강물조차 잿빛이라 온통 무채색이었다. 도무지 사람이 살 수 없을 것 같은 풍경 사이로 장식도 색채도 없는 사각형의 흰 집이 띄엄띄엄 보였다. 그 너머로 빛나는 설산이 아니었다면 더없이 삭막했을 터였다. 타지키스탄은 국토의 93퍼센트가 산이고, 국토 절반 가까이가고도 3천 미터를 넘는다. 거기에 더해 7천 미터급 봉우리가 네 개. 그냥 ‘세계의 지붕‘이 된 게 아니었다. 저 산맥에깃들어 산다는 눈표범과 마주칠까 싶어 매서운 눈으로 산들을 훑어보고는 했지만, 당연하게도 눈표범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파미르 하이웨이에서 가장 높은 악바이탈 패스는 ‘악‘소리가 날 것 같은 4,655미터의 고도, 고갯마루에 올라서니 쏟아지는 눈발에 산들이 하얗게 묻히고 있었다. 기념사진을 찍는 이들이 8월의 눈을 맞으며 추위에 떨고 있었다. 그고개를 자전거로 올라오는 청춘들이 보였다. 제 몸으로 세상을 열어가는 그들이 누릴 고통 가득한 환희가 부럽기도했다. 삶은 저지르는 자의 것이라는데 패기 없는 나는 기껏 - P30

다음 생으로 미룰 뿐이었다. 경주에서 이스탄불까지 걸어서 실크로드를 가로지르겠다는 원대한 꿈을 품은 시절이내게도 있었는데... 겁 많고 소심한 나는 여기까지도 겨우겨우 넘어왔을 뿐이다.
수도 두샨베의 대통령궁 앞에 대형 사진으로 걸고 싶은소녀 마디나를 만난 곳은 무르가브였다. 무르가브에는 컨테이너 상자로 만들어진 시장이 있었다. 파미르를 넘다가사고가 난 화물차들이 버리고 간 컨테이너의 재활용이었다. 옷가게, 채소 가게, 전기용품 가게, 기념품 가게, 핸드폰 가게가 된 컨테이너가 길게 늘어서 있었다. 삭막하면서도 활기가 느껴지는 기묘한 풍경이었다. 시장 끝 우물가로물을 길어 온 아이들 사진을 찍다가 노란 원피스를 입은 마디나와 눈이 마주쳤다. 한 손에는 물이 든 양동이를, 다른손에는 세 살 남동생 누르블롯의 손을 잡고 걷던 그녀가 서투른 영어로 말했다.
"우리 집에 갈래요?"
그녀를 따라가니 할머니와 어머니, 삼촌까지 달려 나와 우리를 맞았다. 거실로 쓰는 큰방에는 다른 집처럼 이불이 산처럼 쌓여 있었다. - P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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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니까 스트레스를 받고, 낫지 않으니까 스트레스를 받고, 병명을 모르니까 스트레스를 받았다. 치료법을 알 수 없어서 힘들었다. 모든 의사들이 다 괜찮다고 해서 화가 났다. 스트레스를 많이 받으면 뭘 어떻게 해야 하는데? 마음을 편하게 먹으라고? 이렇게 아픈데? 어떻게 해야 마음이 편해지지? 언제쓰러질지 모르고 언제 소리를 지르게 될지 모르는데 어떻게?
그 방법을 당신들이 말해줘야지. 그래서 찾아온 게 아닌가. 원인을 알고 싶어서, 병명을 찾고 싶어서. 무엇이 문제인지 알아내고 싶어서! - P172

그런데 다들 왜 내게 묻는가. 어디가 문제냐고. 왜 스트레스를 받느냐고. 그게 지금 의사가 할 소리야? 그러나 나는 병원을 박차고 나가지 않았다. 그들에게 매달렸다. 네, 선생님 스트레스가 심해요. 제 날개뼈 아래에 괴물이 살거든요. 그 괴물이매일매일 무럭무럭 자라나고 있어요. 형체도 없고 냄새도 없고 소리도 내지 않아요. 하지만 있답니다. 선생님은 저를 믿어주셔야 해요. 그놈은 제 살점을 찢고 고개를 쳐들어 밖으로 나오려고 하고 있어요. 제 몸속을 쪽쪽 빨아먹고, 제 비명에 즐거워하며 몸집을 키우죠, 선생님, 잠재워주세요. 나오지 못하게해주세요. 아니면 차라리 나오게 해주세요. 끄집어내주세요.
나는 또 병원을 바꿨다. 대학병원으로 갔다.
간신히 섬유근육통 진단을 받았다. 정말로 간신히. 왜냐하면 섬유근육통의 전형적인 증상이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 P172

내가 호소하는 통증의 강도와 느낌은 어느 정도 일치한다고했다. 그러니 통증을 줄이는 약을 복용해보자고 했다. 그래 결국은 또 진통제였다. 그러나 안심이 됐다. 섬유근육통이라. 신경통보다 훨씬 구체적인 병명이지 않은가. 희망이 생겼고, 기운이 났다. 뭐든 해보자 싶었다. 진짜 끝까지 노력해보자. 그래서 정갈한 식사를 했다. 깨끗한 음식. 엄마가 말하던 그런 음식들. 푸른 잎사귀와 과일, 잡곡밥, 콩, 두부, 등푸른생선과 버섯. 하루에 만 보 이상 걸었고, 명상도 했다. 나비 약도 완전히끊었다. 폭식과 절식을 그만뒀다. 7시간 이상 잤고, 새벽에 일어나 일기를 썼다. 감사한 일에 대해 썼다. 어제 충분히 잤습니다. 감사합니다. 제게 하루가 주어졌습니다. 감사합니다. 통중이 많이 가라앉았습니다. 감사합니다. 정말이었다. - P173

나아졌다. 하루 수십 번 찾아오던 통증이 두어 번으로 줄었고, 8 정도의 강도가 2로 낮아졌다. 내 모습이 보기 좋았는지, 그래서 안심이 되었는지 태인도 적극적으로 나섰다. 나와 함께 있으면그는 술을 마시지 않았고, 고기나 기름진 음식도 먹지 않았다. 평화로웠다. 화목했다. 사는 것 같았다. 그렇게 반년. 아니 8개월? 의사가 말했다. "이제 약을 끊어봅시다. 그동안 고생하셨어요." 완치였다. 그래! 완전한 회복! 내가 드디어 해낸 것이다.
그리고 어느 새벽, 나는 눈을 떴다. 아팠다. 8 정도의 통증. 아니, 9 정도의 통증. 아니, 10!
나는 소리를 질렀다. - P173

이후로는 똑같은 이야기의 반복이다. 약의 복용량을 늘리고 횟수를 늘리고, 부작용을 겪는다. 심장이 두근거리고 잠을잘 수 없다. 병원을 바꾼다. 다시 검사를 받는다. 결과는 정상이다. 내게는 어떤 문제도 없다. 새로운 약을 시도해본다. 정신과 약이 추가된다. 새로운 의심들도 추가된다. 계속 추가된다. 디스크, 자가면역질환, 과민성대장증후군, 불안장애로 인한 신체화 증상. 운동 부족. 과긴장성 골반저기능장애, 나중에는 꼭 통증만이 문제가 아니게 된다. 잠을 자지 못하자 면역력이 떨어지며 온갖 질병이 따라붙은 것이다. 감기, 몸살, 만성피로, 방광염, 구내염, 질염, 안구건조, 먹는 약이 계속 늘어난다.
20알, 30알, 단약과 재복용을 반복한다.
부작용과 금단 현상을 오간다. 소화불량, 오한, 설사, 두통, 구역감, 탈모, 현기증, 섬망, 심계항진, 근육긴장, 불면증, 과호흡. 환각, 이중 무엇이 부작용이고 무엇이 단약 증상인지 알 수 없어진다. 그래도 딱 하나. 뚜렷하게 구분할 수 있는 증상이 있다.
폭식.
통증이 올 때마다 함께 밀려오는 역겨운 충동. 식욕. - P174

그래서였다. 그들은 자신들의 세계를 지키기 위해서, 사랑을 보존하기 위해서, 두 사람이 영원히 잊지 못할 잔혹한 기억하나를 봉인했다. 그들이 함께하기 위해서는 그래야 했다. 연인을 보며 그때 일을 떠올려서는 안 되었다. 연인이, 그때 일을 떠올리게 하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되었다. 때문에 그들은그 기억 위에 다른 기억들을 덧씌웠다. 대화, 섹스, 다툼, 여행,
입맞춤, 포옹, 다툼, 화해, 동거....... 사랑에 사랑을 덧씌우며그들은 그렇게 서로를 지켰다. 앞으로도 그럴 터였다. 절대로10월 26일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았다. 그리하여, 지연과 이영은 서로의 약점을 모르게 됐다. 그러니까 아무리 노력하고 애를 써도, 불가항력으로 끌려들어가게 되는 찰나. 어느 순간, 함부로 떠오르는 기억. 아니, 기억을 불러들이는 어떤 것들. - P270

돼지 같은 년.

그 순간, 수영장의 모든 아이들이 함께 수치심을 느꼈던 것같다. 아이들은 모두 자신이 가장 볼품없다고 생각하니까. 그래서 아이들은 다 함께 박지수에게 수치심을 떠넘겼다. 그래.
분명하다. 그래서 박지수가 떠난 것이다. ‘우리‘를 떠나 먼 곳으로 걸어갔다. 25미터 레일 끝으로, 그리고 다시는 ‘우리‘ 안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그래. 그날 그 사건 이후, 박지수의 등에 붙어 있던 수많은 말들은 결국 지연이 불러들인 악마들이었다. 친구가 죽든 말든 가만히 서 있던 년. 움직이지도 않던 년, 친구도 아닌 년,
...... 생각하기 시작하니 걷잡을 수가 없다.
지연은 단숨에 녹차를 들이켰다.
나는 언제쯤 참을 줄 알게 될까. 소리를 지르지 않는 사람이되고 싶다.
지연은 해가 저무는 풍경을, 도시의 풍경을 응시했다. 기억 - P276

은 계속 떠올랐다. 사고를 당한 후, 전교 1등은 학교로 돌아오지 않았다. 수술을 많이 받았다고 들었다. 그게 지연이 아는 전부였다. 졸업 후 부모님과 함께 다른 지역으로 이사 가게 되었으니까. 안진의 소식은 전혀 듣지 못했다. 알고 싶지도 않았다. 하지만 종종 화를 참을 수 없을 때, 자신도 모르게 누군가에게소리를 지르게 될 때, 지연은 계속 그 수영장으로 되돌아갔다.
전교 1등. 친구가 많던 아이. 이영이 예뻐하던 아이, 지수도 그아이를 좋아했지. 마치 공주처럼 대했지. 지켜줘야 하는 사람처럼. 그래. 분명히 그랬다. 심지어 이름도 다르게 불렀다. 어떤 글자 하나를 더 붙여서, 소중하게 불렀어. 그래.
지수는 박해리의 이름을 꼭 이렇게 불렀다. - P2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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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작별하지 않는다』를 출간한 2021년 가을까지, 나는 줄곧 다음의 두 질문이 나의 핵심이라고 생각해왔었다.

세계는 왜 이토록 폭력적이고 고통스러운가?
동시에 세계는 어떻게 이렇게 아름다운가?

이 두 질문 사이의 긴장과 내적 투쟁이 내 글쓰기를 밀고 온 동력이었다고 오랫동안 믿어왔다. 첫 장편소설부터 최근의 장편소설까지 내 질문들의 국면은 계속해서 변하며 앞으로 나아갔지만, 이 질문들만은 변하지 않은 일관된 것이었다고. 그러나 이삼 년 전부터 그 생각을 의심하게 되었다. 정말 나는 2014년 봄 『소년이 온다』를 출간하고 난 뒤에야 처음으로 사랑에 대해ㅡ 우리를 연결하는고통에 대해 ㅡ질문했던 것일까? 첫 소설부터 최근의 소설까지, 어쩌면 내 모든 질문들의 가장 깊은 겹은 언제나 사랑을 향하고 있었던 것 아닐까? 그것이 내 삶의 가장 오 - P28

래고 근원적인 배음이었던 것은 아닐까?
사랑은 ‘나의 심장‘이라는 개인적인 장소에 위치한다고 1979년 4월의 아이는 썼다. (팔딱팔딱 뛰는 나의 가슴 속에 있지.) 그 사랑의 정체에 대해서는 이렇게 대답했다.
(우리의 가슴과 가슴 사이를 연결해주는 금실이지.)
소설을 쓸 때 나는 신체를 사용한다. 보고 듣고 냄새 맡고 맛보고 부드러움과 온기와 차가움과 통증을 느끼는, 심장이 뛰고 갈증과 허기를 느끼고 걷고 달리고 바람과 눈비를 맞고 손을 맞잡는 모든 감각의 세부들을 사용한다. 필멸하는 존재로서 따뜻한 피가 흐르는 몸을 가진 내가 느끼는 그 생생한 감각들을 전류처럼 문장들에 불어넣으려 하고, 그 전류가 읽는 사람들에게 전달되는 것을 느낄 때면 놀라고 감동한다. 언어가 우리를 잇는 실이라는것을, 생명의 빛과 전류가 흐르는 그 실에 나의 질문들이 접속하고 있다는 사실을 실감하는 순간에 그 실에 연결되어주었고, 연결되어줄 모든 분들에게 마음 깊은 감사의 인사를 드린다. - P29

「작별하지 않는다』를 쓰던 과정에서 내가 구해졌다면,
그건 목적이 아니라) 부수적인 결과였을 뿐이었다.

글쓰기가 나를 밀고 생명 쪽으로 갔을 뿐이다.

날마다 정심의 마음으로 눈을 뜨던 아침들이.
고통과 사랑이 같은 밀도로 끓던 그의 하루하루가.

날개처럼, 불꽃처럼 펼쳐지던 순간들의 맥박이.
촛불을 넘겨주고 다시 넘겨받기를 반복하던 인선과 경 - P57

하의 손들이.


그렇게 덤으로 내가 생명을 넘겨받았다면, 이제 그 생명의 힘으로 나아가야 하는 것 아닐까?
생명을 말하는 것들을, 생명을 가진 동안 써야 하는 것아닐까?

허락된다면 다음 소설은 이 마음에서 출발하고 싶다. - P58

「작별하지 않는다』를 쓰는 동안 몇 개의 루틴을 지키려고 노력했다. (늘 성공했던 것은 아니다.)

1. 아침 5시 30분에 일어나 가장 맑은 정신으로 전날까지 쓴 소설의 다음을 이어 쓰기.
2. 당시 살던 집 근처의 천변을 하루 한 번 이상 걷기.
3. 보통 녹차 잎을 우리는 찻주전자에 홍차 잎을 넣어우린 다음 책상으로 돌아갈 때마다 한 잔씩만 마시기.

그렇게 하루에 예닐곱 번, 이 작은 잔의 푸르스름한 안쪽을 들여다보는 일이 당시 내 생활의 중심이었다.


스톡홀름 노벨박물관에 기증한 찻잔과 메시지 [2024] - P61

이제 나는 햇빛에 대해 조금 안다고 말할 수 있다.

작은 ㄷ자 형태로 지어진 이 집은 바깥으로는 동쪽 창이 없다. 하지만 안쪽 마당을 바라보는 조그만 서고에는있다. 햇빛은 가장 먼저 그 작은 동창을 비춘 뒤 성큼성큼 대문 안쪽을, 그다음엔 부엌 창을 비춘다. 남중한 태양이 비스듬히 쏘아내는 빛이 이윽고 마루에 가득 찰 때, 그 단호한 속력에 나는 매번 놀란다.


나무들에게 햇빛을 주는 날이면, 그 속력에 맞추기 위해 꽤 바쁘게 하루를 보내야 한다.
모든 나무들에게 고루 빛을 쬐여주려면 여덟 개 거울의 각도와 위치를 약 십오 분에 한 번씩 옮겨주어야 한다. 지 - P94

구가 자전하는 속도의 감각을 그렇게 익히게 되었다.
마찬가지로 지구가 공전하는 속도의 감각도 자연스럽게 배우게 되었다. 계절에 따라 햇빛의 각도가 달라지기때문에, 거울을 배치하는 위치를 약 사흘마다 조금씩 바꾸어야 한다.


거울로 햇빛을 붙잡아 나무들에게 비춰주면 흰 북쪽 벽에 빛의 창문이 생긴다. 잎과 가지 들의 그림자가 그 안에서 음각화 같은 형상을 만든다.

햇빛이 잎사귀들을 통과할 때 생겨나는 투명한 연둣빛이 있다. 그걸 볼 때마다 내가 느끼는 특유의 감각이 있다. 식물과 공생해온 인간의 유전자에 새겨진 것이리라 짐작되는, 거의 근원적이라고 느껴지는 기쁨의 감각이다. 그 기쁨에 홀려 십오 분마다 쓰기를 중지하고 마당으로 - P95

나와 거울들의 위치를 바꾼다. 더 이상 포집할 빛이 없어질 때까지 그 일을 반복한다.


남쪽으로 비치는 햇빛을 주는 거예요. 거울로 반사시켜서.


그렇게 내 정원에는 빛이 있다.

그 빛을 먹고 자라는 나무들이 있다.
잎들이 투명하게 반짝이고 꽃들이 서서히 열린다. - P96


이 일이 나의 형질을 근본적으로 바꾸고 있다는 것을지난 삼 년 동안 서서히 감각해왔다. 이 작은 장소의 온화함이 침묵하며 나를 안아주는 동안, 매일, 매 순간, 매 계절 변화하는 빛의 리듬으로. - P97

3월 22일


미스김라일락에 연둣빛 잎이 돋았다. 6.25 때 파병되었던 미국 군인이 이 관목을 한국에서 가져가, (아마도) 인연이 있는 여인이었을 ‘미스 김‘이라는 이름으로 학명을 붙였다고 한다. 그러니까 한국의 토종 라일락은 나무가 아니라 관목인 거다.

지난주에는 앵두나무 분재와 블루베리를 화분으로 들였는데, 앵두꽃은 이제 피고 있고 블루베리꽃은 봉오리를머금었다.

호스타는 용맹하게 자라고 있다. 겨울 내내 마치 말라죽은 것 같았는데, 부활하듯 땅을 뚫고 나와 힘차게 솟니 이제 그만 경기를 풀듯 잎사귀를 천천히 펼치고 있다. - P102

4월 18일

불두화 가지들은 새 같다. 날아오르는 것 
같다.

라일락은…… 왜 계속 하얀 채로 피어 있는 걸까. 작년에는 분명히 연보랏빛이었는데. 햇빛이 부족했을까.

옥잠은 무성해졌다. 잎이 둥글고 아름답다. 열한 살부터 스물일곱 살까지 살았던 집에서 8월과 9월에 꽃 피던 기억이 나서 심은 것이다. 작년에는 꽃을 피우지 않았는데 올해는 어떨까?

정원을 키울 수는 없으니 내가 레고 인형처럼 작아졌다고 상상했다. 그럼 울창한 숲이겠지, 압도하는. - P116

5월 3일

불두화 꽃대가 아직도 올라오지 않았다. 다른 곳의 불두화들은 꽃 피었는데, 개화 시기를 검색해보니 꽃대는 진작 올라왔어야 한다. (부처님오신날 즈음 가장 활짝 피어 ‘불두화‘라고 이름 붙여진 것이다.) 올해에는 꽃을 피울 예정이 없는 것일 수도 있고, 그저 많이 늦어지는 것일 수도 있다. 어느 쪽이든 건강하고 무성하니 그걸로 됐다고, 원하는 대로 하라고 속으로 말해주었다. (나무에게 내 말은 아무 의미 없겠지만.) - P121

6월 12일


호스타꽃 한 송이가 완전히 피었다.

참새 두 마리가 지붕에 있다가 마당으로 들어와 단풍나무에 앉아 있다 갔다. 블루베리 화분 옆으로도 몇 발짝 걸어 다녔다. 들어올 만한 곳이라고 새들이 생각했다니 어쩐지 으쓱해졌다. 지붕에서 처음 무슨 소리가 났을 때는소리가 날 수 없는 방향이라서 놀라 올려다봤다. 우박일까, 무슨 돌가루 같은 건가 생각했는데 예쁜 새 머리가 함석 빗물받이에서 쏙 나타났다. 소리를 내면 안 될 것 같아서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지켜봤다. - P131

11월 15일

10월부터는 어떻게 해도 햇빛의 각도가 거울들에 닿지않아 내내 나무들이 그늘에 있었다. 햇빛은 점점 더 낮고 길게 누워서 들어오다가, 11월이 되자 마루 유리창에 반사되어 나무들의 아래쪽에 닿기 시작했다. 지난 2월을 생각해보면, 햇빛이 더 깊게 누워 마루 안쪽 끝까지 볕이 들어왔고, 유리창에 반사된 빛이 화단을 온전히 비췄었다. - P143

12월 18일

내 작은 집의 풍경에는 바깥 세계가 없다. 중정이 주는평화, 내면의 풍경 같은 마당.

행인도 거리도 우연의 순간도 없다.
그걸 잊지 않으려면 자주 대문 밖으로 나가야 한다.

하지만 이 내향적인 집에도 외부로 열려 있는 방향이있다. 마당의 하늘, 그 하늘에서 떨어지는 눈을 오래 보고있었다. - P144

더 살아낸 뒤
죽기 전의 순간 이런 생각을 할 수 있을까?

나는 인생을 꽉 껴안아보았어.
(글쓰기로.)

사람들을 만났어.
아주 깊게, 진하게.
(글쓰기로)

충분히 살아냈어.
(글쓰기로.)

햇빛.
햇빛을 오래 바라봤어. - P1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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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길의 소설은 핏줄 속에서 보내온 초대장 같다. 초대를 받으면 핏줄을 타고 한 인물의 몸속을 샅샅이 돌아다니게 된다. 핏줄속으로의 여행이 나는 꼭 연서 같았다. 여성의 몸과 그 몸에 파고드는 고통에 대하여. 그 고통의 발원지인 타인의 시선에 대하여. 여성이 여성을 향해 품어온 동경과 질투, 애정과 증오, 해방되고 싶음과 소유하고 싶음에 대하여. 강화길은 더 끈질겨지고더 간절해졌다. 더 적나라하고 더 무섭다. 강화길의 이 작정은 마침내 연서가 되었다. 우리는 핏줄을 따라 정신없이 떠돌다가 소설의 심장을 만지게 될 것이다.
_임솔아 (소설가·시인)

강화길

2012년 경향신문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방>이 당선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장편소설 <다른 사람> <대불호텔의유령>, 
중편소설 <다정한 유전>, 
소설집 <괜찮은 사람> <화이트 호스> <안진 : 세 번의 봄> 등이 있다. 
한겨레문학상,구상문학상 젊은작가상, 문학동네 젊은작가상, 백신애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교복 이야기부터 하고 싶다.

열다섯 가을, 살이 찌기 시작했다. 그리고 20센티미터 넘게자랐다. 지금 생각해도 꽤나 황당한 일인데, 정말로 단 몇 달만에 그렇게 됐다. 조짐이 없었던 건 아니다. 그래. 분명히 있었다. 언제부터인가 가슴에 멍울이 지며 통증이 일었고, 밤마다 종아리가 저렸다. 무릎과 허리가 아팠다. 그러더니 어느날갑자기 눈높이가 달라졌다. 어른들을 볼 때 더 이상 고개를 들어올릴 필요가 없었다. 그들은 그냥 내 앞에 있었다. 처음부터그렇게 작았던 것처럼.
가장 큰 변화는 식욕이었다. 나는 시시때때로 배가 고팠다.
조금만 걸어도 배가 고프고, 잠을 자다가도 배가 고파서 깼다. 늘 뭔가를 먹어야 했다. 그냥, 하루 종일 먹는 생각밖에 안났 - P11

다. 마요네즈를 듬뿍 바른 식빵. 노란색 치즈를 얹은 뜨거운 라면, 문방구에서 파는 컵 떡볶이. 기름이 뚝뚝 흐르는 닭꼬치.갓 튀겨낸 핫도그. 지렁이 모양의 젤리, 악어 모양의 레몬 맛사탕. 파인애플 향이 나는 쿠키, 밥, 김치, 김, 두부조림, 닭볶음탕. 사과, 딸기, 땅콩버터. 그러나 부족했다. 항상 부족했다. 그래서 나는 한밤중에 수시로 부엌에 들어가 밥솥을 열고 참기름과 간장을 부었다. 정신없이 아주 게걸스럽게 먹었다. 그렇게 밥 한 솥을 먹어치우고 나면, 허망한 수치심과 함께 어떤 불길한 예감이 찾아오곤 했다. 그러니까 내가 감당할 수도, 견딜수도 없는 어떤 미래가 다가오고 있다는 불안한 확신.
첫눈이 왔다. 나는 초경을 했다. - P12

그날부터였다. 급속도로 살이 찌기 시작했다. 몸의 부피 자체가 달라졌다. 두툼하고 풍만하게, 길고 거대하게. 이전까지나는 149센티미터 언저리를 겨우 웃돌던 빼빼 마른 여자아이였다. 그래서인지 보는 사람마다 걱정 아닌 걱정을 내비치며 부모님에게 이런저런 잔소리를 했다. "저렇게 작아서 어쩌려고 그래? 한약이라도 먹여야 하는 거 아냐?" 그 말들이 신경쓰였던 건지, 아니면 본인들도 걱정이 되기는 했던 건지, 초등학교 6학년이 되자마자 부모님은 갑자기 나를 수영 강습에 보냈다. 성장판을 자극하는 데는 수영만 한 운동이 없다는 조언을 들은 모양이었다. 우리 집 형편치고는 꽤 큰 투자였는데, 불행히도 효과가 없었다. 나는 1센티미터도 자라지 않았다. 나의 - P12

몸이 원하는 때 원하는 방식으로, 그리하여 모두가 사랑할 수밖에 없는 형태로 만들어진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내 성장판은 움직일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어느 날, 느닷없이 거대해진 것이다. 가슴과 엉덩이가 몇 배로 커지고, 허벅지와 종아리가 굵어지다 못해 발목까지 두툼해지더니 두 사람을 똑바로 마주보고 섰다. 아니, 내려다보았나?
갑자기 이런 말을 하는 게 좀 그렇지만, 사실 내 부모님, 이수지와 박이환은 마음이 잘 맞는 부부가 아니었다. 그들은 자주 싸웠고, 무슨 일이 생기면 아주 쉽게 서로를 탓했다. 나를수영장에 보낼 때도 그랬다. 엄마는 돈을 더 들여서 개인강습을 시켜보자고 말했고, 아빠는 운동은 단체로 함께 배우는 거라며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말라고 했다. 두 사람은 옥신각신거리다 짜증을 내며 거의 동시에 서로에게 이렇게 외쳤다. - P13

"그래서 쟤 키 안 크면 누가 책임질 거야. 
네가?"
하지만 그해 어느 주말 아침, 내가 곰처럼 거대한 몸을 이끌고 거실로 나갔을 때, 나는 이수지와 박이환에게서 처음으로 똑같은 표정을 봤다. 그래. 단 한 번도 마음이 일치해본 적 없는 두 사람에게서 같은 얼굴을 봤다. 질린다는 표정. 조금 무섭다는 얼굴.

이렇게. - P13

굳이 이렇게까지?

그리고 다른 사람들의 얼굴도 보게 됐다. 거리에서 우연히만난 친구들의 표정. 명절 때 마주친 친척들의 시선. 사촌들의입 모양. 키득거림. 목소리들. 덕분에 나는 알 수 있었다. 비대해진 내 몸은, 무지막지한 내 식욕은, 내 부모가 외동딸을 키우면서 기대한 어떤 것과는 아주 거리가 멀다는 것을. 그리고 사람들이 어린 여자아이에게 바라는 그 무엇과도 아주 멀리 떨어져 있다는 것을. 그럼 나는 무엇이었나. 어떤 존재였나. 공포였나? 파괴였나? 그 모든 것이었나? 그래, 그랬던 것 같다. 나는 덩어리였다. 주변 모두를 겁먹게 하고, 실망시키는 무지막지한 몸 덩어리, 덩어리 그 자체.

그래도 새 교복이 생긴 건 좋았다. - P14

열여섯, 중학교 3학년 봄.

나는 그렇게 자라는 중이었다.

신상 교복. 꽉 끼는 체육복. 커다란 가슴을 동여맨 브래지어. 불룩한 뱃살과 두툼한 허벅지. 끝없는 허기와 무시무시한 식탐.

언제 어디서든 눈에 띄는 거대한 덩치, 
덩어리.

그런데, 사실 이것이야말로 가장 큰 변화였다.

시선을 끄는 존재가 되었다는 것.

몸이 커진 후, 사람들은 이전보다 훨씬 더 자주 나를 불렀다. 지수야, 옆으로 좀 비켜줄래? 지수야, 조용히 좀 해줄래? 지수야, 혹시 이거 네가 먹었어?

"얘, 지수야."

바로 내 몸 때문이었다. 내가 거대해졌기 때문에, 모두의 눈 - P21

에 너무나도 잘 띄게 되었기 때문에, 그날 해리아도 나를 알아볼 수 있었던 것이라고.

내 이름을 부를 수 있게 된 것이라고,
나는 지금도 확신하고 있다.

그래, 사실은 이 이야기가 하고 싶었다. - P22

그리고 이번에는 5년 전 이야기다.

서른두 살 가을, 나는 176센티미터에 50킬로그램이었다. 감기몸살에 걸렸다. 두통과 근육통은 물론 소화불량과 설사에 시달렸다. 불면증도 찾아왔다. 아니, 일종의 발작이라고 해야 하나. 잠이 스륵 밀려온다 싶으면 갑자기 정신이 확 깨어나며 눈이 번쩍 떠졌다. 피곤해 죽을 것 같은데 몸은 나를 재워줄생각이 없는 듯했다. 그 증상이 밤새도록 반복됐다. 잠에 들다깨고, 들다 깨고, 아주 미칠 노릇이었다. 의사에게 하소연했더니 수면제와 신경안정제를 처방해줬다. 좀 나았다. 그래. 약간나았을 뿐이다. 얕은 잠에 잠긴 채 꿈속을 어지러이 떠다니다2시간만에 깼고, 5시간 만에 깨어나곤 했으니까.
다행히 추석 즈음이었다. 주말도 겹쳐 있었다. 좀 쉬면 나아 - P25

지지 않을까 싶어 안진 본가로 내려갔다. 그러나 일주일이 다되도록 별 차도는 없었다. 소화제에 지사제, 해열제, 근육이완제, 수면제, 신경안정제, 안 먹는 약이 없는데도 그랬다. 짜증이 났다. 어서 회복해 서울로 돌아가고 싶었다. 태인과 시간을 보내거나 밀린 일을 처리하며 남은 연휴를 보내고 싶었다. 하지만 몸은 전혀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았고, 나는 바랐던 것들중 그 어느 것도 시도하지 못했다. 긴 연휴가 허무하게 끝나가고 있었다. - P26

반면에 엄마는 무척 바빴다. 은퇴한 지 반년이 조금 넘은 해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녀는 요가원, 이탈리아어 회화 교실등산 모임, 프랑스 자수 클래스, 볼링 동호회에 나갔고, 수영을배웠으며 특히 자연요리 연구회-채수회守會에 열성적으로 참여했다. 갑작스레 주어진 많은 시간을 활용하는 엄마만의 방식이었다. 명절 연휴라고 예외는 아니었다. 친척들과의교류가 끊어진 지는 오래였고, 새 친구들을 사귄 지는 얼마 안된 때였다. 엄마는 매일매일 밖으로 나가 그들과 함께 뭔가를배우고, 만들고, 놀라워하고, 조금은 실망하고, 그러나 다시 시도하며 시간을 보냈다. 때문에 추석 당일 점심에 묵은지를 잔뜩 넣은 수제비를 끓여 먹은 걸 제외하면, 엄마와 나는 연휴 내내 거의 함께 있지 않았다. 서운하지는 않았다. 엄마가 곁에 있•어주지 않는다고 섭섭해할 나이는 진작 지났고, 어차피 예고없이 내려온 사람은 나였으니까. 명절은 각자 내키는 대로 보 - P26

댈 것. 서로에 대한 의무에 지나치게 얽매이지 말 것. 그게 엄마와 내가 연휴를 보내는 방식이었다.
아빠가 돌아가신 후 그렇게 됐다.
그때도 마찬가지였다. 엄마는 일정대로 밖에 나갔고, 나는텅 빈 집에서, 그러니까 그로부터 7년 전 부모님이 기적적으로 마련한 신시가지 주상복합아파트 15층 거실 소파에 누워 멍하니 하루를 보냈다. 밖에 나갈 기운도 없었고, 딱히 가보고 싶은곳도 없었으며, 보고 싶은 사람도 없었다. 나는 소파에 누워 끙끙대며 앓고, 그때그때 필요한 약을 삼키고, 까무룩 낮잠에 빠져들었다가 헉 소리를 내며 화들짝 깨어났다. 빠르게 뛰는 심장 부근을 손바닥으로 쓸어내리며 바깥을 바라봤다. 언제나 낙엽이 지고 있었다. - P27

어쩌면 이 남자에게는 들키지 않을 수도 있겠네.
그러니까, 이 사람은 나의 일상, 습관, 취향, 강박, 애써 숨기는 어떤 것들을 눈치채지 못할 것이다. 내가 동굴 안에 들어가기 위해 어떤 짓을 하는지 절대 모를 것이다. 왜냐하면 그는 나보다. 나를 사랑하는 자기 자신에게 더 관심이 많을 테니까. 그런 자신을 사랑할 테니까. 그럴까. 정말 그럴까. 그래서 나는그를 한 번 더 만났다. 다음에 또 만났다. 계속 만났다. 그렇게사귀는 내내 그는 정말로 나에 대해 거의 알지 못했다. 가끔 식욕이 없냐고 물어봤고, 일에 지나치게 몰두하는 거 아니냐며서운함을 드러냈지만, 그게 전부였다. 그는 나를 몰랐다. 그렇다고 해서 그가 나를 사랑하지 않았다는 뜻은 아니다. 그는 나를 아꼈고 우리의 관계를 소중히 여겼다. 나는 그게 고마웠다.
그래. 고마웠다. - P43

서로에게 무엇도 숨길 수 없는 삶으로 들어가는 것. 다이어트에 대해서는 솔직히, 들켜도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가끔은궁금하기도 했다. 독하게 굶고 운동하는 나를 보며 그는 어떤표정을 지을까. 그가 나를 얼마나 견딜 수 있는지 시험해보고싶기도 했다.
그래.
정말로 내게 그 문제만 있었다면, 나의 의미가 오직 그것뿐이었다면, 태인의 삶 위에 내 인생을 겹쳐놓는 걸 그렇게까지망설이지는 않았을 것이다.
내게는 다른 문제가 있었다.
내가 절대 통제하지 못하는 것. - P44

여학생이 눈을 깜빡였다. 흥미로워하는 것 같았다. 수업의 그런 부분이 재미있긴 했다. 누군가의 이야기에 세밀하게 관심을갖는 것. 어떤 의미가 있는지 알아내려 하고,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며 진지하게 고민하는 것. 나는 단 한 번도 내 이야기에 어떤 의미가 있을 거라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아니, 나의 이야기라는 게 있을 거라는 생각조차 해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그 수업의 첫날, 강사는 사람들은 모두 자신만의 이야기를 갖고 있다고 말했다. 슬픈 일, 기쁜 일, 잊을 수 없는 일. 그냥 스쳐지나간일. 모두 고유한 이야기다. 몇 발자국 떨어진 곳에서 그 순간을바라보는 일. 이야기는 거기에서 시작된다. 나에게서 나를 떼어놓으면 자유로워진다. 그 말 때문에 나는 그 수업에 남았다. 그리고 로퍼를 신은 여학생은 내게 또 묻고 있었다. - P85

하지만 놀랍게도 나는 그 사람 덕분에 고시 준비를 깨끗이 포기하게 됐다. 학과 성적에 연연하지 않게 됐다. 진로를 바꿨다. 사람들에게 새로운 걸 소개하는 일을 찾았다. 홍보와 마케팅이 내게는 그런 일이었다. 낡고 비루한 것을 치우고 새로운 것으로 채우고 싶은 마음. 새것을 갖고 싶은 마음, 다시 시작하고 싶은 욕망, 그걸 함께 나누는 일. 하지만 그건 그로부터 몇년 뒤의 일이다. 그날 그 강의실에서 나는 그저 그와 몇 마디더 나누었고, 조금 웃었다. 고맙다고 대꾸했다. 진심이었다. 그리고 함께 학교 건물 밖으로 걸어 나왔다. - P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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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의 장편소설을 쓸 때마다 나는 질문들을 견디며 그안에 산다. 그 질문들의 끝에 다다를 때 대답을 찾아낼때가 아니라 그 소설을 완성하게 된다. 그 소설을 시작하던 시점과 같은 사람일 수 없는, 그 소설을 쓰는 과정에서 변형된 나는 그 상태에서 다시 출발한다. 다음의 질문들이 사슬처럼, 또는 도미노처럼 포개어지고 이어지며 새로운 소설을 시작하게 된다.
세번째 장편소설인 『채식주의자』를 쓰던 2003년부터2005년까지 나는 그렇게 몇 개의 고통스러운 질문들 안에서 머물고 있었다. 한 인간이 완전하게 결백한 존재가되는 것은 가능한가? 우리는 얼마나 깊게 폭력을 거부할수 있는가? 그걸 위해 더 이상 인간이라는 종에 속하기를 - P12

거부하는 이에게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
폭력을 거부하기 위해 육식을 거부하고, 종내에는 스스로 식물이 되었다고 믿으며 물 외의 어떤 것도 먹으려 하지 않는 주인공 영혜는 자신을 구원하기 위해 매 순간 죽음에 가까워지는 아이러니 안에 있다. 사실상 두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는 영혜와 인혜 자매는 소리 없이 비명을지르며, 악몽과 부서짐의 순간들을 통과해 마침내 함께있다. 이 소설의 세계 속에서 영혜가 끝까지 살아 있기를바랐으므로 마지막 장면은 앰뷸런스 안이다. 타오르는 초록의 불꽃 같은 나무들 사이로 구급차는 달리고, 깨어 있는 언니는 뚫어지게 창밖을 쏘아본다. 대답을 기다리듯, 무엇인가에 항의하듯, 이 소설 전체가 그렇게 질문의 상태에 놓여 있다. 응시하고 저항하며, 대답을 기다리며.
그다음의 소설 『바람이 분다, 가라』는 이 질문들에서 더 나아간다. 폭력을 거부하기 위해 삶과 세계를 거부할수는 없다. 우리는 결국 식물이 될 수 없다. 그렇다면 어떻게 나아갈 것인가? 정체와 이탤릭체의 문장들이 충돌 - P13

하며 흔들리는 미스터리 형식의 이 소설에서, 오랫동안죽음의 그림자와 싸워왔던 주인공은 친구의 돌연한 죽음이 자살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목숨을 걸고 분투한다. 마지막 장면에서 죽음과 폭력으로부터 온 힘을다해 배로 기어 나오는 그녀의 모습을 쓰며 나는 질문하고 있었다. 마침내 우리는 살아남아야 하지 않는가? 생명으로 진실을 증거해야 하는 것 아닌가?
다섯번째 장편소설인 『희랍어 시간』은 그 질문에서 다시 더 나아간다. 우리가 정말로 이 세계에서 살아나가야한다면, 어떤 지점에서 그것이 가능한가? 말을 잃은 여자와 서서히 시력을 잃어가는 남자는 각자의 침묵과 어둠속에서 고독하게 나아가다가 서로를 발견한다. 이 소설을쓰는 동안 나는 촉각적 순간들에 집중하고 싶었다. 침묵과 어둠 속에서, 손톱을 바싹 깎은 여자의 손이 남자의 손바닥에 몇 개의 단어를 쓰는 장면을 향해 이 소설은 느린속력으로 전진한다. 영원처럼 부풀어 오르는 순간의 빛속에서 두 사람은 서로에게 자신의 연한 부분을 보여준 - P14

다. 이 소설을 쓰며 나는 묻고 싶었다. 인간의 가장 연한부분을 들여다보는 것-그 부인할 수 없는 온기를 어루만지는 것 그것으로 우리는 마침내 살아갈 수 있는 것아닐까, 이 덧없고 폭력적인 세계 가운데에서?
그 질문의 끝에서 나는 다음의 소설을 상상했다. 「희랍어 시간』을 출간한 후 찾아온 2012년의 봄이었다. 빛과따스함의 방향으로 한 걸음 더 나아가는 소설을 쓰겠다고 나는 생각했다. 마침내 삶을, 세계를 끌어안는 그 소설을 눈부시게 투명한 감각들로 충전하겠다고. 제목을 짓고앞의 20페이지 정도까지 쓰다 멈춘 것은, 그 소설을 쓸 수없게 하는 무엇인가가 내 안에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 P15

그렇게 자료 작업을 하던 시기에 내가 떠올리곤 했던 두 개의 질문이 있다. 이십대 중반에 일기장을 바꿀 때마다 맨 앞 페이지에 적었던 문장들이다.

현재가 과거를 도울 수 있는가?
산 자가 죽은 자를 구할 수 있는가?

자료를 읽을수록 이 질문들은 불가능한 것으로 판명되는 듯했다. 인간성의 가장 어두운 부분들을 지속적으로 접하며, 오래전에 금이 갔다고 생각했던 인간성에 대한 믿음이 마저 깨어지고 부서지는 경험을 했기 때문이다. 이소설을 쓰는 일을 더 이상 진척할 수 없겠다고 거의 체념했을 때 한 젊은 야학 교사의 일기를 읽었다. 1980년 5월당시 광주에서 군인들이 잠시 물러간 뒤 열흘 동안 이루어졌던 시민자치의 절대공동체에 참여했으며, 군인들이 - P18

되돌아오기로 예고된 새벽까지 도청 옆 YWCA에 남아있다 살해되었던, 수줍은 성격의 조용한 사람이었다는 박용준은 마지막 밤에 이렇게 썼다. "하느님, 왜 저에게는 양심이 있어 이렇게 저를 찌르고 아프게 하는 것입니까?
저는 살고 싶습니다."
그 문장들을 읽은 순간, 이 소설이 어느 쪽으로 가야 하는지 벼락처럼 알게 되었다. 두 개의 질문을 이렇게 거꾸로 뒤집어야 한다는 것도 깨닫게 되었다.

과거가 현재를 도울 수 있는가?
죽은 자가 산자를 구할 수 있는가?

이후 이 소설을 쓰는 동안, 실제로 과거가 현재를 돕고있다고, 죽은 자들이 산 자를 구하고 있다고 느낀 순간들이 있었다. 이따금 그 묘지에 다시 찾아갔는데, 이상하게도 갈 때마다 날이 맑았다. 눈을 감으면 태양의 주황빛이눈꺼풀 안쪽에 가득 찼다. 그것이 생명의 빛이라고 나는 - P19

느꼈다. 말할 수 없이 따스한 빛과 공기가 내 몸을 에워싸고 있다고.
열두 살에 그 사진첩을 본 이후 품게 된 나의 의문들은이런 것이었다. 인간은 어떻게 이토록 폭력적인가? 동시에 인간은 어떻게 그토록 압도적인 폭력의 반대편에 설수 있는가? 우리가 인간이라는 종에 속한다는 사실은 대체 무엇을 의미하는가? 인간의 참혹과 존엄 사이에서, 두벼랑 사이를 잇는 불가능한 허공의 길을 건너려면 죽은자들의 도움이 필요했다. 이 소설의 주인공인 어린 동호가 어머니의 손을 힘껏 끌고 햇빛이 비치는 쪽으로 걸었던 것처럼.
당연하게도 나는 그 망자들에게, 유족들과 생존자들에게 일어난 어떤 일도 돌이킬 수 없었다. 할 수 있는 것은 내 몸의 감각과 감정과 생명을 빌려드리는 것뿐이었다. 소설의 처음과 끝에 촛불을 밝히고 싶었기에, 당시 시신을 수습하고 장례식을 치르는 곳이었던 상무관에서 첫장면을 시작했다. 그곳에서 열다섯 살의 소년 동호가 시신 - P20

들 위로 흰 천을 덮고 촛불을 밝힌다. 파르스름한 심장 같은 불꽃의 중심을 응시한다.
이 소설의 한국어 제목은 소년이 온다』이다. ‘온다‘는 ‘오다‘라는 동사의 현재형이다. 너라고, 혹은 당신이라고 2인칭으로 불리는 순간 희끄무레한 어둠 속에서 깨어난 소년이 혼의 걸음걸이로 현재를 향해 다가온다. 점점 더 가까이 걸어와 현재가 된다. 인간의 잔혹성과 존엄함이 극한의 형태로 동시에 존재했던 시공간을 광주라고 부를때, 광주는 더 이상 한 도시를 가리키는 고유명사가 아니라 보통명사가 된다는 것을 나는 이 책을 쓰는 동안 알게되었다. 시간과 공간을 건너 계속해서 우리에게 되돌아오는 현재형이라는 것을. 바로 지금 이 순간에도. - P21

내가 이 소설을 쓰는 과정에서 느낀 고통과, 그 책을 읽은 사람들이 느꼈다고 말하는고통이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에 대해 나는 생각해야만 했다. 그 고통의 이유는 무엇일까? 우리는 인간성을 믿고자하기에, 그 믿음이 흔들릴 때 자신이 파괴되는 것을 느끼는 것일까? 우리는 인간을 사랑하고자 하기에, 그 사랑이부서질 때 고통을 느끼는 것일까? 사랑에서 고통이 생겨나고, 어떤 고통은 사랑의 증거인 것일까?
같은 해 6월에 꿈을 꾸었다. 성근 눈이 내리는 벌판을걷는 꿈이었다. 벌판 가득 수천수만 그루의 검은 통나무들이 심겨 있고, 하나하나의 나무 뒤쪽마다 무덤의 봉분들이 있었다. 어느 순간부터 운동화 아래에 물이 밟혀 뒤를 돌아보자, 지평선인 줄 알았던 벌판의 끝에서부터 바다가 밀려 들어오고 있었다. 왜 이런 곳에다 이 무덤들을썼을까, 나는 스스로에게 물었다. 아래쪽 무덤들의 뼈들은 모두 쓸려가버린 것 아닐까. 위쪽 무덤들의 뼈들이라도 옮겨야 하는 것 아닐까, 더 늦기 전에 지금. 하지만 어 - P22

떻게 그게 가능할까? 나에게는 삽도 없는데, 벌써 발목까지 물이 차오르고 있는데, 꿈에서 깨어나 아직 어두운 창문을 보면서, 이 꿈이 무엇인가 중요한 것을 말하고 있다고 느꼈다. 꿈을 기록한 뒤에는 이것이 다음 소설의 시작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그것이 어떤 소설일지 아직 알지 못한 채 그 꿈에서 뻔어 나갈 법한 몇 개의 이야기를 앞머리만 썼다 지우기를반복하다가, 2017년 12월부터 이 년여 동안 제주도에 월세방을 얻어 서울을 오가는 생활을 했다. 바람과 빛과 눈비가 매 순간 강렬한 제주의 날씨를 느끼며 숲과 바닷가와 마을 길을 걷는 동안 소설의 윤곽이 차츰 또렷해지는것을 느꼈다. 『소년이 온다』를 쓸 때와 비슷한 방식으로학살 생존자들의 증언들을 읽고 자료를 공부하며, 언어로치환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게 느껴지는 잔혹한 세부들을 응시하며 최대한 절제하여 써간 『작별하지 않는다』를출간한 것은, 검은 나무들과 밀려오는 바다의 꿈을 꾼 아침으로부터 약 칠 년이 지났을 때였다. - P23

소설을 쓰는 동안 사용했던 몇 권의 공책들에 나는 이런 메모를 했다.

생명은 살고자 한다. 생명은 따뜻하다.
죽는다는 건 차가워지는 것. 얼굴에 쌓인 눈이 녹지 않는 것.
죽인다는 것은 차갑게 만드는 것.

역사 속에서의 인간과 우주 속에서의 인간.

바람과 해류. 전 세계를 잇는 물과 바람의 
순환. 우리는 연결되어 있다. 연결되어 있다. 부디.


이 소설은 모두 3부로 이루어져 있다. 1부의 여정이 화자인 경하가 서울에서부터 제주 중산간에 있는 인선의집까지 한 마리 새를 구하기 위해 폭설을 뚫고 가는 횡의길이라면, 2부는 그녀와 인선이 함께 인간의 밤 아래로 - P24

1948년 겨울 제주도에서 벌어졌던 민간인 학살의 시간으로, 심해 아래로 내려가는 수직의 길이다. 마지막 3부에서 두 사람이 그 바다 아래에서 촛불을 밝힌다.
친구인 경하와 인선이 촛불을 넘겼다가 다시 건네받듯함께 끌고 가는 소설이지만, 그들과 연결되어 있는 진짜주인공은 인선의 어머니인 정심이다. 학살에서 살아남은뒤, 사랑하는 사람의 뼈 한 조각이라도 찾아내 장례를 치르고자 싸워온 사람, 애도를 종결하지 않는 사람, 고통을품고 망각에 맞서는 사람, 작별하지 않는 사람, 평생에 걸쳐 고통과 사랑이 같은 밀도와 온도로 끓고 있던 그녀의•삶을 들여다보며 나는 묻고 있었던 것 같다. 우리는 얼마나 사랑할 수 있는가? 어디까지가 우리의 한계인가? 얼마나 사랑해야 우리는 끝내 인간으로 남는 것인가? - P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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