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화길의 소설은 핏줄 속에서 보내온 초대장 같다. 초대를 받으면 핏줄을 타고 한 인물의 몸속을 샅샅이 돌아다니게 된다. 핏줄속으로의 여행이 나는 꼭 연서 같았다. 여성의 몸과 그 몸에 파고드는 고통에 대하여. 그 고통의 발원지인 타인의 시선에 대하여. 여성이 여성을 향해 품어온 동경과 질투, 애정과 증오, 해방되고 싶음과 소유하고 싶음에 대하여. 강화길은 더 끈질겨지고더 간절해졌다. 더 적나라하고 더 무섭다. 강화길의 이 작정은 마침내 연서가 되었다. 우리는 핏줄을 따라 정신없이 떠돌다가 소설의 심장을 만지게 될 것이다. _임솔아 (소설가·시인)
강화길
2012년 경향신문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방>이 당선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장편소설 <다른 사람> <대불호텔의유령>, 중편소설 <다정한 유전>, 소설집 <괜찮은 사람> <화이트 호스> <안진 : 세 번의 봄> 등이 있다. 한겨레문학상,구상문학상 젊은작가상, 문학동네 젊은작가상, 백신애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교복 이야기부터 하고 싶다.
열다섯 가을, 살이 찌기 시작했다. 그리고 20센티미터 넘게자랐다. 지금 생각해도 꽤나 황당한 일인데, 정말로 단 몇 달만에 그렇게 됐다. 조짐이 없었던 건 아니다. 그래. 분명히 있었다. 언제부터인가 가슴에 멍울이 지며 통증이 일었고, 밤마다 종아리가 저렸다. 무릎과 허리가 아팠다. 그러더니 어느날갑자기 눈높이가 달라졌다. 어른들을 볼 때 더 이상 고개를 들어올릴 필요가 없었다. 그들은 그냥 내 앞에 있었다. 처음부터그렇게 작았던 것처럼. 가장 큰 변화는 식욕이었다. 나는 시시때때로 배가 고팠다. 조금만 걸어도 배가 고프고, 잠을 자다가도 배가 고파서 깼다. 늘 뭔가를 먹어야 했다. 그냥, 하루 종일 먹는 생각밖에 안났 - P11
다. 마요네즈를 듬뿍 바른 식빵. 노란색 치즈를 얹은 뜨거운 라면, 문방구에서 파는 컵 떡볶이. 기름이 뚝뚝 흐르는 닭꼬치.갓 튀겨낸 핫도그. 지렁이 모양의 젤리, 악어 모양의 레몬 맛사탕. 파인애플 향이 나는 쿠키, 밥, 김치, 김, 두부조림, 닭볶음탕. 사과, 딸기, 땅콩버터. 그러나 부족했다. 항상 부족했다. 그래서 나는 한밤중에 수시로 부엌에 들어가 밥솥을 열고 참기름과 간장을 부었다. 정신없이 아주 게걸스럽게 먹었다. 그렇게 밥 한 솥을 먹어치우고 나면, 허망한 수치심과 함께 어떤 불길한 예감이 찾아오곤 했다. 그러니까 내가 감당할 수도, 견딜수도 없는 어떤 미래가 다가오고 있다는 불안한 확신. 첫눈이 왔다. 나는 초경을 했다. - P12
그날부터였다. 급속도로 살이 찌기 시작했다. 몸의 부피 자체가 달라졌다. 두툼하고 풍만하게, 길고 거대하게. 이전까지나는 149센티미터 언저리를 겨우 웃돌던 빼빼 마른 여자아이였다. 그래서인지 보는 사람마다 걱정 아닌 걱정을 내비치며 부모님에게 이런저런 잔소리를 했다. "저렇게 작아서 어쩌려고 그래? 한약이라도 먹여야 하는 거 아냐?" 그 말들이 신경쓰였던 건지, 아니면 본인들도 걱정이 되기는 했던 건지, 초등학교 6학년이 되자마자 부모님은 갑자기 나를 수영 강습에 보냈다. 성장판을 자극하는 데는 수영만 한 운동이 없다는 조언을 들은 모양이었다. 우리 집 형편치고는 꽤 큰 투자였는데, 불행히도 효과가 없었다. 나는 1센티미터도 자라지 않았다. 나의 - P12
몸이 원하는 때 원하는 방식으로, 그리하여 모두가 사랑할 수밖에 없는 형태로 만들어진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내 성장판은 움직일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어느 날, 느닷없이 거대해진 것이다. 가슴과 엉덩이가 몇 배로 커지고, 허벅지와 종아리가 굵어지다 못해 발목까지 두툼해지더니 두 사람을 똑바로 마주보고 섰다. 아니, 내려다보았나? 갑자기 이런 말을 하는 게 좀 그렇지만, 사실 내 부모님, 이수지와 박이환은 마음이 잘 맞는 부부가 아니었다. 그들은 자주 싸웠고, 무슨 일이 생기면 아주 쉽게 서로를 탓했다. 나를수영장에 보낼 때도 그랬다. 엄마는 돈을 더 들여서 개인강습을 시켜보자고 말했고, 아빠는 운동은 단체로 함께 배우는 거라며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말라고 했다. 두 사람은 옥신각신거리다 짜증을 내며 거의 동시에 서로에게 이렇게 외쳤다. - P13
"그래서 쟤 키 안 크면 누가 책임질 거야. 네가?" 하지만 그해 어느 주말 아침, 내가 곰처럼 거대한 몸을 이끌고 거실로 나갔을 때, 나는 이수지와 박이환에게서 처음으로 똑같은 표정을 봤다. 그래. 단 한 번도 마음이 일치해본 적 없는 두 사람에게서 같은 얼굴을 봤다. 질린다는 표정. 조금 무섭다는 얼굴.
이렇게. - P13
굳이 이렇게까지?
그리고 다른 사람들의 얼굴도 보게 됐다. 거리에서 우연히만난 친구들의 표정. 명절 때 마주친 친척들의 시선. 사촌들의입 모양. 키득거림. 목소리들. 덕분에 나는 알 수 있었다. 비대해진 내 몸은, 무지막지한 내 식욕은, 내 부모가 외동딸을 키우면서 기대한 어떤 것과는 아주 거리가 멀다는 것을. 그리고 사람들이 어린 여자아이에게 바라는 그 무엇과도 아주 멀리 떨어져 있다는 것을. 그럼 나는 무엇이었나. 어떤 존재였나. 공포였나? 파괴였나? 그 모든 것이었나? 그래, 그랬던 것 같다. 나는 덩어리였다. 주변 모두를 겁먹게 하고, 실망시키는 무지막지한 몸 덩어리, 덩어리 그 자체.
그래도 새 교복이 생긴 건 좋았다. - P14
열여섯, 중학교 3학년 봄.
나는 그렇게 자라는 중이었다.
신상 교복. 꽉 끼는 체육복. 커다란 가슴을 동여맨 브래지어. 불룩한 뱃살과 두툼한 허벅지. 끝없는 허기와 무시무시한 식탐.
언제 어디서든 눈에 띄는 거대한 덩치, 덩어리.
그런데, 사실 이것이야말로 가장 큰 변화였다.
시선을 끄는 존재가 되었다는 것.
몸이 커진 후, 사람들은 이전보다 훨씬 더 자주 나를 불렀다. 지수야, 옆으로 좀 비켜줄래? 지수야, 조용히 좀 해줄래? 지수야, 혹시 이거 네가 먹었어?
"얘, 지수야."
바로 내 몸 때문이었다. 내가 거대해졌기 때문에, 모두의 눈 - P21
에 너무나도 잘 띄게 되었기 때문에, 그날 해리아도 나를 알아볼 수 있었던 것이라고.
내 이름을 부를 수 있게 된 것이라고, 나는 지금도 확신하고 있다.
그래, 사실은 이 이야기가 하고 싶었다. - P22
그리고 이번에는 5년 전 이야기다.
서른두 살 가을, 나는 176센티미터에 50킬로그램이었다. 감기몸살에 걸렸다. 두통과 근육통은 물론 소화불량과 설사에 시달렸다. 불면증도 찾아왔다. 아니, 일종의 발작이라고 해야 하나. 잠이 스륵 밀려온다 싶으면 갑자기 정신이 확 깨어나며 눈이 번쩍 떠졌다. 피곤해 죽을 것 같은데 몸은 나를 재워줄생각이 없는 듯했다. 그 증상이 밤새도록 반복됐다. 잠에 들다깨고, 들다 깨고, 아주 미칠 노릇이었다. 의사에게 하소연했더니 수면제와 신경안정제를 처방해줬다. 좀 나았다. 그래. 약간나았을 뿐이다. 얕은 잠에 잠긴 채 꿈속을 어지러이 떠다니다2시간만에 깼고, 5시간 만에 깨어나곤 했으니까. 다행히 추석 즈음이었다. 주말도 겹쳐 있었다. 좀 쉬면 나아 - P25
지지 않을까 싶어 안진 본가로 내려갔다. 그러나 일주일이 다되도록 별 차도는 없었다. 소화제에 지사제, 해열제, 근육이완제, 수면제, 신경안정제, 안 먹는 약이 없는데도 그랬다. 짜증이 났다. 어서 회복해 서울로 돌아가고 싶었다. 태인과 시간을 보내거나 밀린 일을 처리하며 남은 연휴를 보내고 싶었다. 하지만 몸은 전혀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았고, 나는 바랐던 것들중 그 어느 것도 시도하지 못했다. 긴 연휴가 허무하게 끝나가고 있었다. - P26
반면에 엄마는 무척 바빴다. 은퇴한 지 반년이 조금 넘은 해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녀는 요가원, 이탈리아어 회화 교실등산 모임, 프랑스 자수 클래스, 볼링 동호회에 나갔고, 수영을배웠으며 특히 자연요리 연구회-채수회守會에 열성적으로 참여했다. 갑작스레 주어진 많은 시간을 활용하는 엄마만의 방식이었다. 명절 연휴라고 예외는 아니었다. 친척들과의교류가 끊어진 지는 오래였고, 새 친구들을 사귄 지는 얼마 안된 때였다. 엄마는 매일매일 밖으로 나가 그들과 함께 뭔가를배우고, 만들고, 놀라워하고, 조금은 실망하고, 그러나 다시 시도하며 시간을 보냈다. 때문에 추석 당일 점심에 묵은지를 잔뜩 넣은 수제비를 끓여 먹은 걸 제외하면, 엄마와 나는 연휴 내내 거의 함께 있지 않았다. 서운하지는 않았다. 엄마가 곁에 있•어주지 않는다고 섭섭해할 나이는 진작 지났고, 어차피 예고없이 내려온 사람은 나였으니까. 명절은 각자 내키는 대로 보 - P26
댈 것. 서로에 대한 의무에 지나치게 얽매이지 말 것. 그게 엄마와 내가 연휴를 보내는 방식이었다. 아빠가 돌아가신 후 그렇게 됐다. 그때도 마찬가지였다. 엄마는 일정대로 밖에 나갔고, 나는텅 빈 집에서, 그러니까 그로부터 7년 전 부모님이 기적적으로 마련한 신시가지 주상복합아파트 15층 거실 소파에 누워 멍하니 하루를 보냈다. 밖에 나갈 기운도 없었고, 딱히 가보고 싶은곳도 없었으며, 보고 싶은 사람도 없었다. 나는 소파에 누워 끙끙대며 앓고, 그때그때 필요한 약을 삼키고, 까무룩 낮잠에 빠져들었다가 헉 소리를 내며 화들짝 깨어났다. 빠르게 뛰는 심장 부근을 손바닥으로 쓸어내리며 바깥을 바라봤다. 언제나 낙엽이 지고 있었다. - P27
어쩌면 이 남자에게는 들키지 않을 수도 있겠네. 그러니까, 이 사람은 나의 일상, 습관, 취향, 강박, 애써 숨기는 어떤 것들을 눈치채지 못할 것이다. 내가 동굴 안에 들어가기 위해 어떤 짓을 하는지 절대 모를 것이다. 왜냐하면 그는 나보다. 나를 사랑하는 자기 자신에게 더 관심이 많을 테니까. 그런 자신을 사랑할 테니까. 그럴까. 정말 그럴까. 그래서 나는그를 한 번 더 만났다. 다음에 또 만났다. 계속 만났다. 그렇게사귀는 내내 그는 정말로 나에 대해 거의 알지 못했다. 가끔 식욕이 없냐고 물어봤고, 일에 지나치게 몰두하는 거 아니냐며서운함을 드러냈지만, 그게 전부였다. 그는 나를 몰랐다. 그렇다고 해서 그가 나를 사랑하지 않았다는 뜻은 아니다. 그는 나를 아꼈고 우리의 관계를 소중히 여겼다. 나는 그게 고마웠다. 그래. 고마웠다. - P43
서로에게 무엇도 숨길 수 없는 삶으로 들어가는 것. 다이어트에 대해서는 솔직히, 들켜도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가끔은궁금하기도 했다. 독하게 굶고 운동하는 나를 보며 그는 어떤표정을 지을까. 그가 나를 얼마나 견딜 수 있는지 시험해보고싶기도 했다. 그래. 정말로 내게 그 문제만 있었다면, 나의 의미가 오직 그것뿐이었다면, 태인의 삶 위에 내 인생을 겹쳐놓는 걸 그렇게까지망설이지는 않았을 것이다. 내게는 다른 문제가 있었다. 내가 절대 통제하지 못하는 것. - P44
여학생이 눈을 깜빡였다. 흥미로워하는 것 같았다. 수업의 그런 부분이 재미있긴 했다. 누군가의 이야기에 세밀하게 관심을갖는 것. 어떤 의미가 있는지 알아내려 하고,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며 진지하게 고민하는 것. 나는 단 한 번도 내 이야기에 어떤 의미가 있을 거라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아니, 나의 이야기라는 게 있을 거라는 생각조차 해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그 수업의 첫날, 강사는 사람들은 모두 자신만의 이야기를 갖고 있다고 말했다. 슬픈 일, 기쁜 일, 잊을 수 없는 일. 그냥 스쳐지나간일. 모두 고유한 이야기다. 몇 발자국 떨어진 곳에서 그 순간을바라보는 일. 이야기는 거기에서 시작된다. 나에게서 나를 떼어놓으면 자유로워진다. 그 말 때문에 나는 그 수업에 남았다. 그리고 로퍼를 신은 여학생은 내게 또 묻고 있었다. - P85
하지만 놀랍게도 나는 그 사람 덕분에 고시 준비를 깨끗이 포기하게 됐다. 학과 성적에 연연하지 않게 됐다. 진로를 바꿨다. 사람들에게 새로운 걸 소개하는 일을 찾았다. 홍보와 마케팅이 내게는 그런 일이었다. 낡고 비루한 것을 치우고 새로운 것으로 채우고 싶은 마음. 새것을 갖고 싶은 마음, 다시 시작하고 싶은 욕망, 그걸 함께 나누는 일. 하지만 그건 그로부터 몇년 뒤의 일이다. 그날 그 강의실에서 나는 그저 그와 몇 마디더 나누었고, 조금 웃었다. 고맙다고 대꾸했다. 진심이었다. 그리고 함께 학교 건물 밖으로 걸어 나왔다. - P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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