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유난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네요. 더군다나 원자폭탄과 인터넷이 등장하고, 수많은 종들이 지구상에서 급속도로 사라지는 시대에 말이지요. 그렇지만 작가들이 쓰는 글이 ‘문학‘이라는 높은 담장 안 정원에만 갇혀 있지 않고 세상 밖으로 나가 영향을 미치고 결과를 낳는다고 가정해보세요. 그러면 상상력의 사제가 자신의 특권이라고 주장하며 무시해왔던 윤리, 책임, 그 비슷한 귀찮은 것들에 대해 논의를 시작해야 하지 않을까요?
그런데 ‘사제‘라는 단어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볼까요. 사제가 단순히 의식을 거행하는 숭배자는 아니지 않나요? 백성의 목자이자 신과 인간의 중재자 아닌가요? 제임스 조이스의 스티븐디덜러스젊은 예술가의 초상>의 주인공-옮긴이)는 "내 영혼의 대장간에서 내 민족이 아직 창조하지 않은 양심을 버리기 위해 나아갑니다. "양심", 도덕적 의미로 충만한 단어지요. 만약 작가에게 정말 그런 힘이 있다면, 그 힘을 휘두르는 사람(작가)과 당하는 사람(나머지 사람들)이란 측면에서 이 문제를 살펴보는 게 어떨까요? - P147

누구도 작가만큼 작가를 미워하지 않습니다. 개인으로든 직업군으로든 가장 악랄하고 경멸스러운 작가의 초상을 만날 수 있는곳은 작가들이 직접 쓴 책이지요. 하지만 누구도 작가만큼 작가를사랑하지도 않아요. 과대망상증과 편집증은 작가와 한 거울을 공유하지요. 파우스트로서의 작가는 거울을 보며 거만하고 사악하 - P147

고 초인적인 메피스토펠레스이자, 마술의 대가이자, 운명의 지배자를 마주합니다. 그들에게 다른 인간들은 끈으로 조종할 수 있는인형이거나 자신들의 마음과 내밀한 비밀을 그의 손바닥에 맡긴바보 같은 존재들이에요. 하지만 메피스토펠레스로서의 작가는같은 거울 속에서 떨고 있는 한심한 파우스트를 발견합니다. 영원한 젊음과 끝내주는 잠자리, 엄청난 부를 갈구하는 동시에 자신이 보잘것없는 끼적임과 유치한 말장난(그래놓고 뻔뻔하게 "예술"이라부르지요)으로 이런 바람을 짠하고 현실로 만들 수 있다는 한심한망상을 필사적으로 움켜쥔 파우스트 말이에요. - P148

아래는 A. M. 클라인이 현대 시인의 수치스런 존재감 상실에대해 노래한 시입니다.


우리가 현실 사회에서 알 수 있는 건
그가 사라졌다는 것, 중요하지 않다는 것뿐.
흔적이 남아 있다면 고작 통계자료,
이를테면 누군가의 투표, 아마도 갤럽 여론조사에서
누군가 던진 비웃음, 정부 위원회의 점 하나.
하지만 소리치는 군중, 누군가의 한숨에서 그는
느껴지지도, 눈에 띄지도 않는다. - P150

오, 자신의 두루마리에서, 왕자의 인용문에서연단에 퍼지는 큰 울림에서 우리의 문화를 펼쳐냈던 그,
한 이름으로는 천국을,
다른 이름으로는 일곱 고리의 연옥을 노래하던 그그가 지금도 존재한다면, 숫자이고, 미지수일 것이다.
익명의 길 잃은, 누락된호텔 장부의 어떤 스미스 씨일 것이다.  - P151

참고로, 이런 정신적 상처는 주로 남성들이 입었지요. 여성 작가들은 낭만주의 시대에 있으나 마나 한 존재였으며, ‘천재‘라는메달을 별로 걸어본 적도 없습니다. 사실 ‘천재‘라는 단어와 여성‘이라는 단어는 영어에서 보통 어울려 다니지 않아요. 남성 ‘천재들이 하는 기이한 행동을 여성이 하면 보통 ‘미쳤다‘는 꼬리표가 붙거든요. 심지어 ‘재능 있는‘ ‘대단한‘ 같은 단어들도 마찬가지예요. 하지만 사회에 실제로 영향을 끼쳐놓고도 수많은 여성 예술가들이 자신의 야심을 시인하지 않았지요. 그러다 보니 오늘날여성 작가들은 그들의 힘이 감소했다거나 세계 무대에서 위신이낮아졌다고 느끼지 않습니다. 오히려 과거보다 더 잘하고 있다고생각하는 것 같아요. 그렇기에 걸출했던 여자 선배들과 비교해 자신들이 아주 허약하다고 여기지 않지요. - P151

지금부터는 고상하게 예술지상주의를 추구하는 정체성을 대체할 또 다른 정체성들과 그것들을 둘러싼 자기 인식의 위기에 대해 논하려 합니다. 그중 하나는 예술과 돈과 권력이 엇갈리는 독특한 교차점과 관련이 있고, 나머지 하나(이것도 앞의 것과 무관하지 않지요)는 ‘도덕적 책임‘ 아니면 ‘사회적 책임‘이라 불리는 것과 관련이 있지요. 사람들이 예술 활동을 통제하며 예술가에게 간섭하는지점은 ‘돈과 힘‘이라고, 예술가가 예술 활동으로 사람들에게 간섭하는 지점은 ‘도덕 및 사회적 책임‘이라 이름 붙일 수 있습니다.
돈과 권력에 대한 질문은 아주 짧게 압축할 수 있습니다. 시장에 영혼을 팔았는가? 만약 그랬다면 얼마에 팔았고, 누가 샀는가?
영혼을 팔지 않았다면 누가 예술가를 껍질 무른 게처럼 짓밟는가? 영혼을 판 대가로 예술가가 얻고자 하는 건 무엇인가? - P152

작가는 도덕적 법 위에 있을까요? 그러니까, 지루하고 우둔하고 재능 없는 지극히 평범한 대중은 지켜야만 하는 평범한 규칙을 작가는 전혀 적용받지 않는, 니체가 말하는 초인인 걸까요? 한편 글쓰기가 예술 작품으로서 그 자체가 아니라 실은 작가 자신을 표현한 것이라면, 살인을 창조해낸 작가가 드러낸 건 어떤 자아일까요? 별로 훌륭한 자아는 아니라고 생각할 겁니다. 기껏해야 부도덕한 자아, 최악의 경우엔 타인의 고통을 즐거워하는 괴물이라고 여기겠지요.
하이 모더니즘과 하이 포스트모더니즘을 섬기는 최고 사제인수전 손택은 초기에 쓴 자신의 반전통적 에세이에 대해 훗날 다음과 같이 고백했습니다. - P154

나는 강렬한 자기 모독을 저질렀다. (...) 그 에세이들은 근엄했을뿐 아니라, 확실히 금욕적이었다. 마치 내가 내 상상력의 관능성을 믿지 않기라도 한 것처럼, 길을 잃을까봐 두려웠던 것 같다. 나는 그저 선한 것들, 사람들을 바로잡는 것들을 지지하고 싶었을뿐이었고, 그건 내게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내 사고의 틀은 언제나 도덕적이었기 때문이다! - P155

"사람들을 바로잡는 것" 아 그렇습니다. 모든 부모가 예술의 그런 유익한 기능을 간절히 원하고, 북미의 모든 교내이사회가 그기능에 동의하고, 그중 일부는 그런 합의를 검열의 구실로 사용하지요. 하지만 어떻게 "사람을 바로잡는다"는 걸까요? 그리고 어떤사람을, 어떤 방식으로 바로잡아야 한다는 걸까요? 그러니까 사람을 바로잡고, 또 일부 사람들이 유해하다고 여기는 것으로부터 그들을 보호한다는 걸까요? - P155

하지만 예술가의 눈이 차가운 데는 다른 이유도 있습니다. 에이드리언 리치의 시 <감옥에서>의 마지막 부분을 볼까요.


이 눈은
울기 위한 것이 아니다
그 시선은
얼굴 위로 눈물이 흘러내려도
절대 흐려져선 안 된다

그것의 목적은 명징함이다
어떤 것도
잊어선 안 된다  - P176

작가는 보편적 인류와의 관계에서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할까요?정말로 권력이 주어진다면, 권력의 사다리 어디쯤에 자리 잡아야할까요? 선택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말했다시피 나도 모릅니다.
하지만 몇몇 가능성과 언제 튀어나올지 모르는 잠재적 위험들, 그리고 난제들은 짚어보았습니다. 그래도 젊은 작가에게 꼭 조언을하라면, 앨리스 먼로의 말처럼 "원하는 대로 하고 결과는 스스로 감수하라"고 말하겠어요. 아니면 "이야기가 이끄는 대로 따라가라"고, 혹은 "공들여 쓰다 보면 사회라는 문제는 절로 해결된다"고말입니다.
그런데 그게 사실이에요. 비밀을 말하자면 (아무 토론회에나 가서 써먹어도 상관없습니다), 작품이 사회적 의미를 지니는지 아닌지를 정하는 것은 작가가 아니기 때문이지요. 그걸 정하는 건 작가가 아니라 독자예요. 그리고 바로 그 독자가 다음 장에서 다룰 주제입니다. - P177

그러니 만약 독자들께서 이 작품이 현 시대, 아니 어쩌면 헬리오가발루스 시대에 만들어진 최고의 요리 원칙을 엄격히 고수했다는 걸 알게 되시면 얼마나 기뻐하실까. (…) 그 말인즉, 앞서 언급한 위대한요리사가 나리들의 식욕을 돋우어주었던 것처럼 독자들께서도 이 책을 영원히 읽고 싶다는 욕망을 가지게 될 것임을 의심치 않는다.

- 헨리 필딩, <톰 존스

이야기를 듣는 사람은 이야기를 하는 사람 곁에 있다. 심지어 이야기를 읽는 사람도 이런 동료애를 나눈다. 하지만 소설을 읽는 독자는다른 어떤 독자보다도 고립되어 있다. (..) 이런 고독 속에서 소설의독자는 누구보다 악착같이 책을 붙든다. 그것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준비가, 이를테면 걸신들린 듯 집어삼킬 준비가 되어 있는 것이다.

- 발터 벤야민, <이야기꾼>

데틀레프 폰 릴리엔크론의 운율에는 빈정거림이 뚝뚝 떨어졌다. 그는 말했다. 시인은 명성을 얻지 못하기가 힘들다. 살아생전 대중의환심을 사지 못하면, 후대가 굶어 죽어간 그의 영웅적 행적을 칭송할테니, 한 마디로, 판다는 것은 영혼까지 전부 팔아치운다는 것을 뜻했다.

- 피터 게이 <쾌락 전쟁>

우리는 우리 시대의 위대한 진술이다. 그렇기에 적은 관객을 기대할수 있다.

-그웬돌린 매큐언, <선택>>

그는 형편없는 대형 신문사의 눈에 띄면서 칭송받고, 성유 부음을 받고, 왕관을 쓰게 됐다. 마치 뚱뚱한 안내원이 지팡이로 꼭대기 의자를 가리키기라도 한 것처럼 공개적으로 왕좌에 배정받았다. (...) 어쩌다 보니 순식간에 모든 것이 달라졌다. 엄청난 파도가 무언가를 휩쓸어버렸다. 그 파도가 내 작은 관습의 제단과 그 위에 놓인 반짝이는 양초와 꽃을 쓰러뜨리고 텅빈 거대한 사원을 세워 올려버렸다.
닐 패러데이가 세상으로 나온다면 그건 그가 살아 있는 동안일 터였다. 그리고 실제 그런 일이 일어났다. 그 불쌍한 남자는 끔찍한 시대속으로 쑤셔 넣어질 운명이었다.

- 헨리 제임스, <유명인의 죽음

나는 봉투를 찢는다. 나 지금 방콕이야
(...) 너는 네모난 봉투에서 이 푸른 사절들을 쏟아낸다.
널 세상에 잃었다는 느낌이 들 때,
계속 따라가기 힘들 때,
너의 엽서가 이렇게 말한다
"날 기다려줘."

- 앤 마이클스, <마사에게 온 편지

시인이었던 나의 한 대학 은사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어떤 작품에나 공통으로 던질 수 있는 진짜 질문이 딱 하나 있는데,
바로 그 작품이 살아 있는가, 아니면 죽어 있는가‘라고요. 어쩌다보니 그 말에 동의하긴 했는데 시가 살아 있는지, 죽어 있는지는어떻게 결정될까요? 생물학적 정의를 보면 살아 있는 것들은 성장하고 변화하며 자손을 낳을 수 있는 반면, 죽은 것들은 아무 활동성도 띠지 않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텍스트가 성장하고 변화하고 자손을 낳을 수 있다는 걸까요? 독자가 작가와 시공간상으로얼마나 떨어져 있든 상관없이, 오직 작가와 독자의 상호작용을 통해서만 가능합니다. "시는 시인의 것이 아닙니다." 영화 〈일 포스티노>에서 야한 시를 베끼는 한 우체부가 시인 파블로 네루다에게 하는 말입니다. "시는 시를 필요로 하는 사람의 것이에요." 그게 정답입니다. - P200

그보단 녹사에게 친근하게 관심을 표하지요. 아래는 러시아 시인 푸시킨 <예브게니오네긴>이라는 시의 말미에서 독자에게 멋지게 작별인사를 고하는 부분입니다.


독자여, 당신이 누구든,
친구든 적이든 간에,
정답게 헤어지고 싶다네.
잘 가시게, 이제 끝이 났으니.
이 조잡한 글에서 무엇을 찾아냈든,
격정적인 추억이든,
고생 끝의 휴식이든,
그냥 문법적 오류든, - P204

생생한 묘사들, 떠들썩한 재담이든.
당신이 이 작은 책에서
감동이나, 재미나,
꿈이나, 잡지의 논쟁에 필요한 것이나,
조금이라도 얻어가기를 바라네.
이쯤에서 헤어지세. 그럼 안녕. - P205

하지만 그는 중요한 사실을 모릅니다. 꿈속의 그 인간들이 바로이라는 것을요. 그들이 책의 인간적인 요소라는 것을요. 그의카에 신의 음성이 들립니다. "여기에 책은 없다." 하지만 그는 그말뜻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후반부가 되면 그가 수집한 모든 책이생명을 얻고 그에게서 등을 돌리지요. 지금까진 그로 인해 죄수처럼 개인 서재에 갇혀 있었으나 이젠 자신들의 메시지를 자유롭게퍼트리고자 하는 거예요. 앞서 말했듯 책은 독자로부터 독자에게로 이동해야 살 수 있으니까요. 이윽고 그는 책에, 그리고 자신의몸에 불을 지릅니다. 화형, 그것이 이단자의 운명이지요. 책이 불타기 시작하자 책 속의 글자들이 그가 창조한 ‘데드 레터 오피스를 탈출해 다시 세상 밖으로 나오는 소리가 들립니다. - P208

때로 책은 작가의 개입 없이 스스로 목소리를 내기도 합니다.
아래는 제이 맥퍼슨이 쓴 <책>이라는 간단명료한 제목의 시입니다. 여기서의 책은 말하는 책인 동시에 수수께끼이지요. 물론 답은 제목에 있습니다.


친애하는 독자여, 당신 같은 인간이 아니기에나는 그대처럼 사랑할 수 없고, 그대도 나처럼 사랑할 수 없다 - P208

하지만 그대처럼 큰물로 나가서
보잘것없는 배로 사나운 바다를 이기려 하나니.

개울 수면을 젖지 않고 덧없이 떠가는 물방개도
나보다는 가냘프지 않고
흥분된 눈으로 심해를 살피는 고대의 고래도
나보다는 대단하지 않도다.

비록 창조자의 의지로
공기, 불, 물, 땅을 가로지르지만
내 부피가 그대의 손에 짐이 되지는 않는다.

나는 꽃피운다. 그대가 보는 데서, 그리고 그대를 위해서.
그를 섬기지만 나는 인간과 씨름하길 주저하지 않으니
붙잡히고 삼켜져도 그를 축복한다. 독자여, 받아주기를  - P209

이 작은 책은 배이며, 고래이며, 야곱과 씨름하다가 그에게 축복을 내린 천사입니다. 아울러 성찬식에서 섭취되는 대상으로서,
삼켜지지만 파괴되지는 않는 음식입니다. 또한 축제에 온 손님의영적인 부분은 물론이고 스스로도 새로이 거듭나게 하는 축제이지요. 천사는 드잡이만 하는 것이 아니라 독자에게 동화되고 결국그의 일부가 됩니다. - P209

오 위대한 신이여, 밤의 왕자들이여,
빛나는 존재여, 불의 신 기발이여,
지하세계의 장군이라이여 (...)
점을 칠 때 제 곁에 계시길.
제가 바치는 이 양이
진리를 드러내기를 비옵니다!

ㅡ메소포타미아 기도

그런 뒤 죽음의 배를 지어라,
망각으로 가는 가장 긴 여행을 떠나야 하니.
그리고 죽음을 죽어라, 길고 고통스러운 죽음을
과거의 나와 새로운 나 사이에 놓인 (...)

오 죽음의 배를 지어라, 너의 작은 방주에
음식과 작은 케이크와 포도주를 채워 넣어라
망각으로 내려가는 어두운 항해를 위해

- D. H. 로런스, <죽음의 배>

겨울은 컴컴한 우물 위에 걸려 있고,
내 등은 하늘을 향해 있으니,
그 암흑 속에서 무언가 움직이는지,
반짝이는지, 눈을 깜박이는지 보기 위해서다

아니, 나는 바닥으로부터
잃어버린 모든 것, 빛나는 모든 것과 누워서
하늘의 흰 빛을, 내 눈동자를 올려다본다
나의 겨울은 죽은 자들과 함께다

진리의, 이미지의, 말의 우물.
저 아래 오리온이 놓인 자리극점의 웅덩이가 계단이 되는 게 보인다.
성좌가 뜬다.

-제이 맥퍼슨, 〈우물〉

같은 공간을 차지하고서
움직이고 살아 있는 것
그들을 건드린 것을 만지는 것은
그들 덕분이니 (…)

영이 된 뼈들과 하나가 된 흙에
무릎까지 박고 서서
고고학의 태양을 받는다 (...)

해질녘 마을,
교차하는 어둠의 강물에
가슴까지 담그고 서 있으니,
말 없는 사냥꾼들과
어두운 불 위로 몸을 숙인 여자들,
나는 그들의 낡은 자음을 듣는다 (...)

- 알 퍼디, <인디언 마을의 유적 > 

내양 손바닥에서 기쁨을 취하라
약간의 꿀과 햇빛을,
페르세포네의 벌이 우리에게 명한 것처럼.

- 오시프 만델슈탐, <내 양 손바닥에서 기쁨을 취하라> 

죽은 자의 땅으로 가서 저세상 사람을 산 자의 땅으로 데려오는것. 이것은 인간의 아주 깊숙한 욕망이자, 아주 엄격히 금지된 행동입니다. 하지만 글을 씀으로써 죽은 자에게 일종의 생명을 부여할 수 있어요.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는 <단테에 관한 아홉 편의에세이"에서 흥미로운 이론을 제시합니다. 단테가 《신곡》, 그러니까 ‘지옥 편‘ ‘연옥 편‘ ‘천국 편‘ 세 편 전부를, 그 모든 방대하고복잡한 세계를 만들어낸 까닭은 죽은 베아트리체를 어렴풋하게나마 보기 위해서, 그녀를 자신의 시 속으로 불러내기 위해서라는거지요. 그가 그녀에 대해 글을 쓰고 있기에, 그녀에 대해 글을 쓴다는 그 이유만으로, 베아트리체는 작가와 독자의 마음속에 다시살아 숨 쉴 수 있습니다.  - P238

죽은 자들은 피를 구합니다. 앞서 말했듯 그들은 허기와 갈증에시달리지요. 그들에게 피를 제공한 대가로 시인은 천리안을 얻고시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완성합니다. 오래된 합의 방식대로지요.
모든 작가들은 죽은 자들로부터 가르침을 얻습니다. 계속 글을 쓰는 한, 작가는 앞서 글을 썼던 작가들의 작품을 끊임없이 탐구하게 됩니다. 동시에 그들에게 평가받고 질책당한다고 느끼지요. 하지만 작가는 작가로부터만이 아니라, 모든 형태의 조상으로부터 배울 수 있습니다. 죽은 자들은 과거도, 이야기도, 특정한 진실(지하세계로의 여정을 다룬 윌프레드 오언의 시 <이상한 만남>에서 "감춰진 진실"이라 부르는 것도 모두 통제할 수 있으니까요. 그러므로 이야기를 마음껏 탐닉하려면 결국 지나간 시간에서 온 사람들과 거래를해야 합니다. 그 지나간 시간이 겨우 어제라 하더라도 과거는 과거이지요. 글을 쓰고 있는 ‘지금‘이 아니라. - P246

가장 믿을 만한 출처들에서도 알 수 있듯이, 그곳에 가는 건 쉽지만 돌아오는 건 어렵습니다. 그리고 돌아오면 모든 이야기를 돌에 새겨야만 합니다. 운이 좋아 올바른 독자를 만나면 돌이 말을할 겁니다. 돌이 혼자 세상에 남아 이야기를 들려줄 겁니다.
마지막 말은 시인 오비디우스에게 넘기겠습니다. 그는 쿠마에의 무녀 시빌에게 발언을 허락해주었죠. 그녀를 위해서뿐만 아니라, 추측컨대 오비디우스 자신을 위해서, 그리고 모든 작가들의 희망과 운명을 위해서.


하지만 운명이 내게 목소리를 남겨놓아,
사람들이 그 목소리로 나를 알아보게 될 겁니다. - P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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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다.
참, 좋. 다.
잘 만들었다.
잘 만든 책을 만나서... 책장을 넘기는 내내
행복해졌다.
오래, 자주 볼 책을 만났다.

사울 레이터 재단은 하나의 진실과 마주하게 되었다. 그 진실이란, 사울이 슬라이드 하나하나의 존재가치를 믿었다는 것이다. 그는 종이 위에 형태와 선이인화되어야만 가치가 생긴다고 보지 않았다. 사울은언제나 모든 슬라이드를 신중히 살폈으므로, 우리도그렇게 했다. 사울이 원했을 방향을 고민하며 편집작업에 몰두했다. ‘레이터 스타일‘의 상징이 된 사진들을떠올리며 사울의 고유한 미감이 드러나는 사진들을주로 선별했지만, 특이하고 급진적이며 위트 넘치는그의 실험 정신을 따라 의외의 사진들도 추렸다.
우리는 몇몇 특별 손님을 스튜디오로 초대해사울의 사진을 영사해 보여주었다. 이 일을 계기로 우리는 그의 사진을 체험하는 새로운 방식에 눈을 떴다.
환등기를 통해 보는 사진은 인화된 사진을 감상하는것과는 사뭇 다른 색다르고 짜릿한 경험이었다. 이책에 실린 76장의 사진은 사울의 시적인 감각을 여실히 증명하며 우리에게 다가왔다. 우리는 그저 그 사진들을 발견했을 뿐이다 - P16

레이터는 뉴욕 로몽 에디션스의 대표 필리프
‘로봇에게 인화를 의뢰했다. 로몽은 2014년 레이터추모 행사에서 이렇게 회고했다. "몸이 살짝 굽은 사람하나가 어깨에 카메라를 둘러 메고 얼굴에는 장난기어린 웃음을 띤 채 조용히 스튜디오를 찾아왔습니다.
그리고는 시바크롬 필름을 인화하겠다고 했지요. 그는 별것 아닌 일처럼 말했지만, 거장의 필름을 인화지에 옮기게 되었기에 나는 커다란 희열을 느꼈습니다.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가라앉은 색채와 그윽함을지닌 사진들이었어요. 강렬한 독창성, 추상과 구상의 상호작용, 여운과 반향, 뉴욕 거리의 일상적 분위기와 날씨에 나는 완전히 매료되었습니다. 파편적이고 기발한 구성 속에서 색들이 서로 대화하고, 면과 면이 교차하고, 그러면서도 슬라이드 하나하나가 애쓰지않는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었죠. 이 모든 것은 분명히화가의 시선으로 포착한 것이었지만, 동시에 그의 의지와는 무관한 것처럼 보이기도 했습니다. 말하자면 관찰력이 유달리 뛰어난 산책자가 느긋하게 돌아다니던 와중에 즉흥적으로 발견한 것처럼 보였습니다."
- P71

얼리 컬러의 성공은 레이터의 삶을 단숨에 바꿔놓았다. 수십 년간 불안정했던 수입도 안정을 찾았다. 하워드 그린버그 갤러리에서는 레이터의 작품이 불티나게 팔렸다. 1996년부터 2013년까지 이 갤러리에서 레이터를 담당했던 사울레이터 재단 대표 마깃 어브는 이렇게 말한다. "내가 사울과 함께 일했던 시절에 그는 대체로 주목받지 못했습니다. 일년에 팔리는 작품 수도 한 손으로 꼽을 정도였으니, 정말로 미미한 수준이었죠. 전시회가 열리면 신문에 기사가 실렸고 호평이들려왔지만, 장기적으로 이렇다 할 보상은 없었습니다. 그런데 책이 나오고 사람들이 인터넷에서 그의 정보를 접하게 되면서 폭발적인 관심이 쏟아졌어요. 그때부터 사람들은 컬러 사진에 마음을 열기 시작했습니다. 함께 일하던 작가가 크게 주목받지 못하다가 한순간에 인정받는 모습을 보는 건 행복한 경험이었어요." - P74

그의 사진에는 ‘불일치‘한 매력이 도사리고 있다. 클래식 영화에 나올 것 같은 옛날 자동차, 미드센추리패션 뿌연 색감은 지나간 시대를 떠올리게 한다. 그러나세상을 바라보는 그의 시선은 시간을 초월한 어떤 순간, 먼 미래의 한순간을 상상하게 한다. 2002년 유대인 박물관 강연에서 레이터는 말했다. "세월이 흐르면 지금 우리를 둘러싼 것들이 머나먼 곳에서 온 것처럼 낯설어 보일 겁니다. 따라서, 참 재미있게도, 시간은 사진작가의 편입니다." - P74

마킷과 나는 2020년 1월 9일 도쿄 분카무라미술관에서 열린 <영원히 사울 레이터> 전시회 개막전에 참석해 전시를 감상했다. 관람객들이 슬라이드를 보는 모습 또한 지켜보았다. 마깃이 책 도입부에서 고백했듯이, 사울의 사후에 그의 사진을 발굴해 세상에 선보인다는 것에 대해 조금 불안하기도 했다. 하지만 우리는 새로운 사진들이 모든 의심을 잠재울 만큼 강력하며, 앞서 발표된 초기 작품과 궤를 같이한다고 믿었다. 아울러 레이터 아카이브의 관리인으로서 그의 작품을 세상에 선보이는 것이 특권이자 임무라고 생각했다. 사울은 무언가를 미리 계획하는 성격이 아니었다. 그러나 자신에 유산에 대해서는 넌지시 언급하기도 했는데, 2008년 슈타이들에서 출간한 책 사울 레이터에서 이렇게 말했다. "언젠가는 내 아카이브 탐사를 후원하고, 최고의 사진들을 마저 편집해줄 사람이 필요할 겁니다."
- P122

코로나19 팬데믹 때문에 회고전 <영원히 사울레이터는 계획보다 훨씬 이른 2020년 2월에 막을내렸다. 마킷과 나는 고향인 미국 북동부에서 전 세계와마찬가지로 길고도 당혹스러운 휴지기를 견뎌야 했다.
마침내 우울에서 벗어나게 되었을 때, 우리에게 손을건넨 것은 슬라이드 프로젝트였다. 지금 여러분이 들고있는 이 책을 위해 열심히 작업에 매진하면서, 우리는충만하고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사울의 작품을 아끼는 열렬한 팬으로서 그의 사진을 실컷, 느긋하게 감상했다.
일상의 평범함을 포착한 그의 사진을 통해 아름다움은다른 곳이 아닌 바로 여기에 있다는 새삼스러운 깨달음을얻기도 했다.
자신이 살던 뉴욕 시내를 돌아다니며 최고의 작품을남긴 사울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하는 듯하다. "집에 틀어박혀 있는 게 그리 나쁜 일은 아니에요. 아무 데도 안 가고도 내가 해낸 일을 봐요!" 달라진 세상에서 마깃과 나는 더는 새로운 영감을 찾아다니지 않는다. 이제 - P122

우리는 카메라를 들고 거리를 거닐던 사울을 추억하며 기쁨에 잠긴다. 그의 사진 속에서 영원한 세상의 한조각으로 남은 익명의 영혼들과 그를 스쳐 지나간 수많은 이들이 미처 몰랐을 사울의 모습을 상상하며.
다른 사람은 좀처럼 보지 못하는 초월적이고 어쩌면 덧없는 일상의 순간을 포착해준 사울에게 커다란 감사를 느낀다. 이 책을 통해 수십 년간 깊이 묻혀 있던 76장의 보물 같은 사진을 세상과 나누게 되어 무척이나 기쁘다.
- P122

사울레이터

1923년 피츠버그의 독실한 유대교 집안에서 태어났다. 랍비가 되기 위한 교육을받았지만 1946년 화가가 되기 위해 학교를 중퇴하고 뉴욕에 정착했다. 이후 30년가까이 패션 포토그래퍼로 활동하며 <하퍼스 바자》, 《엘르》, 《에스콰이어》 등에사진을 게재했다. 1940년대 말부터 컬러 사진을 찍었으며, 그가 살던 맨해튼 거리와그곳을 오가는 사람들을 필름에 담았다. 2006년 첫 사진집 「얼리 컬러 (Steidl)』가출간되며 그의 사진이 뒤늦게 세상에 알려졌다. 다채로운 색감을 지닌 그의 사진들은현재 ‘컬러 사진의 시초‘라는 평가를 받는다. 2013년 뉴욕에서 세상을 떠났다.

마깃 어브


사울 레이터 재단의 설립자이자 대표, 1996년부터 사울 레이터가 사망한 2013년까지 하워드 그린버그 갤러리에서 그를 담당했고 레이터를 도와 아카이브를정리했다. 슈타이들에서 출간된 「얼리 컬러와 사울레이터: 나의 방에서Saul Leiter: Inmy room』 등 레이터의 사진집을 도맡아 작업하기도 했다. 2013년 발표된 다큐멘터리<사울 레이터: 인 노 그레이트 허리>를 공동 제작했다. 2020년 도쿄 분카무라미술관에서 열린 <영원히 사울 레이터> 전시회 기획을 도왔다. 남편 마이클 파릴로와함께 레이터의 방대한 아카이브를 관리하고 있다. 아카이브는 레이터가 생전에머물렀던 뉴욕 이스트빌리지 스튜디오에 마련되었다.

마이클 파릴로


사울 레이터 재단의 부이사장, 2015년 재단에 합류했으며, 20년 넘게 편집자이자음악 및 라이프스타일 저널리스트로 활동했다. 영원히 사울레이터(小学館), 사울레이터의 모든 것(靑舍), 『여행하는 눈 뉴욕Travel Eye: New York』(Louis Vuitton), 사울레이터: 나의 방에서」 등 레이터의 책들을 작업했다. 2016년 발표된 단편영화 <보는것은 등한시된 노력이다. 사울 레이터 재단Seeing Is a Neglected Enterprisez The Saul LeiterFoundation>의 총제작자이기도 하다. 현재는 마깃 어브와 함께 레이터 작품의 디지털 카탈로그를 만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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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 최초로 기억의 기술을 고안한 사람은 그리스의 시인 시모니데스다. 그는 한 연회에 참석했다가 두 소년이 찾는다는 소식에 밖으로 나갔고, 그 직후 땅이 흔들려 저택이 무너졌을 때홀로 목숨을 건졌다. 이미 자취를 감춘 두 소년이 그가 시에서종종 예찬한 쌍둥이 정령임을 그는 알아보았다. 유일한 생존자가 된 시모니데스에게 파도처럼 사람들이 밀려왔다. 죽은자의 흩어진 몸을 찾을 수 있게 도와달라고 혹은 적어도, 그가있었음을 확인해달라고. 그가 있었어야만, 그를 애도할 수 있기 때문에. - P47

무너진 저택의 폐허에 서서, 시모니데스는 죽은자들이 있었던자리를 손으로 가리켰다. 저기, 저 자리에 연회의 주최자가 앉아 있었고, 그 옆에는 그의 사랑하는 이가, 저기 맞은편 술잔이깨어진 자리에는 호탕한 웃음을 웃던 이가, 뭉개진 빵 앞에 조용했던 이가, 포크가 나뒹구는 곳에 대화를 이끌던 이가, 꽃잎떨어진 자리에 고개 끄덕이던 이가, 저기 저기 있었던 이가,
있었노라고. 사람들은 그의 말에 따라 흩어진 조각들을 주워들었고, 있었던 이가 없어진 것을 마침내 받아들이고 울었다. - P47

우리가이 되는 순간이야그날 시모니데스는 공간에많은 순간을 장면으로 기억하는과제 장면이 되지 못하는 순간들이 있어 허다한미해져도 장면 당신이 어디에 앉아 있었는데왼쪽 뺨으로 겨울 한낮의 햇살이 쏟아지던 것을 나는 잊을 수가 없는 것처럼, 그러므로 언제고 보다 많은 것을 기억하게 된했던 가련한 인류는 가능한 한 많은 순간을 장면으로 만들어야 했고, 존재의 관념을 도울 반한 공간씩 제품들을 받아에게가야 했다. 그것이 시인의 기억술이다. - P48

그리고 이때 기억은 애도를 위한것이다. 장례에 영정 사진이 필요한 까닭이다. 다른 누구도 아닌 그 사람이 죽었기 때문이다.
그 사실을 우리는 사진 속 얼굴을 마주할 때 실감한다. 당신이없어졌다는 것을 사진에 대고 절한 뒤 몇 개의 음식을 앞에 두고 우리는 길어낸다. 저마다의 삶 속에서 당신이 있었던 장면들을 당신이 있었던 날들이 얼마나 아름다웠는지를 폐허가 된 연회장의 흩어진 잔해를 밟고, 그것이나마 남기려 최초의 정물화를 그렸을 먼 옛날의 화가처럼. 첫 번째 사진가처럼. - P48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진이 확증하는 것은 그 숲이 있었다는 사실이다. 눈앞에 사물이 없더라도 정물화를 그릴 순 있지만 당신이 없었다면 이 사진이 남아있을리 없다. 나는 디지털 시대의 허다한 조작 가능성을 외면하고, 거기 틈입할폭력의 위험만은 잊지 않은 채, 다만 바르트를 따라 조금은 옛날에 서서, 경외하듯이 말을 쓴다. 사진의 근본은 그 대상이 존재했음을 증명하는 데 있다. 사진기의 전신인 카메라 옵스큐라-어두운방 - 의 어둠을 선회하여, 너무도 명백한 것, 그리하여 환하고아픈 것에 대해 이야기하며 바르트가 밝은방』을 쓴 이유다. - P65

사진 속에서는 무언가 작은 구멍 앞에 포즈를 취했고 거기 영원히 머물러 있었다.


사진 앞에서 우리는 이 사실을 믿는다. 어떤 그림 앞에서, 어떤문장 앞에서도 믿지 않는 것을 그리고 이 믿음에 슬픔이 스민다. 있었다. 라는 저 판명한 사실은 과거형이기 때문이다. 마치영원히 있을 것처럼 그때 당신이 있었다는 사실을 확인하는것은 더 이상 그렇지 않음을 확인하는 일과 너무도 가깝기 때문에, 지금 당신이 살아 있더라도, 우리가 손을 잡고 있더라도이는 마찬가지다. 당신의 사진을 볼 때, 나는 당신이 죽을것을동시에 본다. 어느 미래에, 당신이 죽어 없을 것이라고, 사진은끝없이 말하고 있다. - P66

제라르 와이즈먼의 책 『세기의 오브제』는 한 질문으로 시작된다. 지나간 20세기를 상징할 만한 단 하나의 오브제를 꼽는다면 무엇일까. 먼 미래와 교신하며 오늘 모더니티의 끝자락에선 우리가 봉투에 찍을 인장은 뭘까. 로켓, 원자력, 코카콜라병, 피카소가 그린 아이의 초상, 실타래 모양의 염색체, 페니실린정, 풍선껌, 텔레비전, 달에서 본 지구, 아니, 무언가를 헛되어 칭송하는 프로파간다를 제외한다면, 마침내 와이즈먼이채택하는 답변은 이것이다. 20세기, 모든 곳에서 모든 것이 무너진 시대의 오브제, 폐허. - P157

지난 세기는 우리에게 폐허를 남겼다. 그러나 이는 단연코 아무것도 남지 않았음을 뜻하지 않는다. 당신이 없어진 자리가남았다는 것은, 당신이 있었다는 사실을 그 자리에 서서 확인할 수 있음을 뜻한다. 시모니데스가 기억을 길어내기 위해서는 단 하나의 조건이 필요했다. 조각난 그릇일지라도 제자리에 놓인, 잘린 손가락일지라도 제자리에 남은, 장소가 있어야했다. 폐허가 없다면 기억의 기술도 작동할 수 없다. 연회도 사람들도 지진조차도 없었던 일이 되는 것을 시인은 막을 수 없다. 그것이 바로 나치의 마지막 전략이었다. 홀로코스트의 흔적을 지우는 것. - P157

그리하여 다시, 폐허마저 사라진 자리에서 와이즈먼은 묻는다. 지난 세기를 대표하는 단 하나의 오브제로 무엇이 남아 있나, 그것은 어쩌면 "결코 기억될 수 없으나 스스로를 잊히게 두지도 않는 10 무언가가 아닐까. 과거의 사물이 아닌, 기억의 말이 아닌, 폐허의 일이 아닌 무언가 가스실이 스민 잔영, 우리를 둘러싼 죽음의 풍경들, 지금 모두의 몸에 침투해 잔존하는그 허다한 홀로코스트, 어떤 예술 속에서 이따금 현재적으로반짝이고 있는 무언가 지워졌으나 지워지지 않는 폐허보다 덜 남은. 침묵하는. - P158

프랑스어로 ‘당신이 집에 도착하면 눈이 그쳤을 것‘이라고 할 때 ‘그치다‘라는동사는 전미래 시제로 쓰입니다. 전미래. 미래보다 하나 앞선 미래.
도착한 미래에서 이미 되바꿀 수 없는 과거.


저는 지금 당신이 죽은 미래에 있습니다. 언제나 과거형인 가혹한 그 소식을이미 들었습니다. 심장이 내려앉고 침묵하고 울고 무너지고 울지 않고 웃지 않고이제는 근근이 살아가지만 도리 없이 영영 없어진 채로, 미래에서 당신에게이 편지를 씁니다. 당신이 죽고 난 뒤에 이렇게 씁니다.


삶이란 피차 사라지는 것들을 떠나보내며 살아가는 것이겠지만, 당신이 떠난 후에저는 비로소 그것을 견딜 수 없어졌습니다. 사라지는 것들이 사라진 다음,
사람은 어떻게 계속 살아가는가 비로소 아득하게 물었습니다.


그러나 당신이 사라져 제가 슬픈 것은 차마 생을 지속하기가 이토록버거운 것은, 당신이 있었다는 증거겠지요.

예고도 없이 떠오르는 고통들이 있지요. 한때의 선연한 아픔, 그때 그 추위,
너무도 육체적인 공포, 절망으로 멈춘 심장 길을 걷다 문득 되살아나는 그것들을당신도 느끼셨습니까. 당신의 몸에게도 그 고통이 언제나 거듭 현재적이었습니까.
그럼에도 그것을 형언할 수 없었습니까. 그 깊은 구멍을 아셨습니까.


그러나 당신, 그 구멍 안에, 우리의 사랑도 있었습니까. 오늘 저의 슬픔이증명하고 있는, 그리하여 분명 존재했던 우리의 사랑이 지금도 현재적으로되돌아옵니까. 당신에게도.


이 책은 그러니까 감히 영원한 사랑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여기 실린 사진들을 저는 어느 과거에 누군가의 전미래에 찍었습니다.
삶의 모양을 알 수 없던 시절이었습니다. 그저 떠돌다 장면을 발견하면 그에항복하듯, 실패하듯 셔터를 눌렀습니다. 두고 오고 싶지 않았습니다.
갖고 오고 싶었습니다. 미래로 없는 당신에게로, 이 답장은 아직 늦지 않았습니까.


당신이 집에 도착하면 눈이 그쳤을 것입니다. 이 문장에서 지금 눈이오고 있는지 아닌지는 밝혀지지 않습니다. 다만 당신은 집에 도착할 것이고,
그 전에 눈이 왔다가 그칠 것입니다. 눈이 왔을 것입니다. 눈이 올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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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에도 쓰일 수 없어야 진정으로 아름답다. 쓸모 있는 모든 것은 욕망의 표현이라 추하며, 인간의 욕망은 그 비루하고 나약한 본성처럼 비열하고 역겹다.

- 테오필 고티에, 《모팽 양》

뮤즈가 오기를 기다리는 오늘 밤
내 모든 것이 한 가닥 실에 걸려 있다.
내가 아끼는 젊음, 자유, 영광, 이 모든 것이
플루트를 든 그녀 앞에서 사라지니.

보라! 그녀가 온다 (...) 베일을 뒤로 젖히고,
나를 고요하고 야멸차게 내려다보면서.
내가 묻는다. ‘당신인가요, 단테가 《신곡》의 ‘지옥편‘을
받아쓰게 한 이가? 그녀가 답한다. ‘맞아요.‘

- 안나 아흐마토바, <뮤즈>>

마침내 그들이 한껏 격앙되어 그대를 찢어발겼을 때
너의 소리는 사자들과 암벽들 속에서, 나무들과 새들 속에서
오래도록 머물렀다. 그대는 거기서 지금도 노래하고 있노라.

오, 그대 잃어버린 신이여! 그대 영원한 흔적이여!
증오가 그대를 찢어발기고 산산조각 내버렸기에
우리는 이제 듣는 자이자 자연의 입이 되었노라.

– 릴케, 〈오르페우스에게 바치는 소네트 제1부, 26

그래서 어리석은 얼간이들이 이빨을 쑤시고 여자들 위를 올라타는동안 이 시인은 자신의 슬픔을 그토록 황홀하게 노래하는 걸까? 불쌍한 광대여! 이보다 더 터무니없고, 아이러니하고, 괴상한 일이 있을까? (…) 시인도 성직자, 전사, 영웅, 성자들처럼 만국의 저속한 사업가들의 기분을 돋우는 우울한 박물관 전시품 대열에 합류하게 될까?

- 어빙 레이턴, 《태양을 위해 붉은 원단을) 서문

‘내가 문학의 제단에 데려온 돈의 뮤즈를 말하는 걸세. 이보게, 그 굴레에 코를 꿰이면 안 되네! 그 끔찍한 옥빛 굴레가 자네 인생을 끌고다닐 거야!‘

-헨리제임스, 《대가의 교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예수님이 하신 말씀이지요.
"아름다움은 진리이고, 진리는 아름다움이다. 존 키츠의 말입니다. 여기에 삼단논법을 적용하면 이렇습니다. 진리가 아름다움이고,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할 수 있다면, 아름다움이 너희를 자유케 할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자유를 지지한다, 아니 낭만주의 시대를 정점으로 간헐적으로 지지해왔다. 그러니 온 몸을 바쳐서 미를 숭상해야 한다. 예술보다 아름다움(넓게 해석했을 때)을 더 잘 보여주는 것이 어디에 있겠는가? 이렇게 꼬리에 꼬리를 물고 따라가다 보면 심지어 도덕적 차원을 외면하는 미학에도 그만의 도덕적 차원이 있다는 결론으로까지 이어집니다. 완벽한 예술 표현의추구가 예술가의 유일한 목표가 아니라면 대체 어떤 목표를 추구해야 하느냐는 것이죠." - P114

이 전통에 자신을 자리매김하쇼.
내가 작가가 되었을 무렵엔 여성 작가, 특히 여성 시인이 되면얼마나 고약한 일을 겪는지 모르는 사람이 없었어요. 저메인 그리어도 정성을 들여 집필한 자신의 저서 《단정치 못한 시빌들》을통해 18세기 후반부터 20세기 중반까지 활동한 여성 시인들의 슬픈 인생사와 암울한 죽음에 대해 설명했지요. 에밀리 디킨슨의 은둔 생활, 크리스티나 로세티의 고립된 삶, 엘리자베스 배럿 브라우닝의 마약 중독과 거식증, 샬롯 뮤의 자살, 실비아 플라스의 이어진 자살, 앤 섹스턴의 또 이어진 자살 솟구치는 피는 시다." 실비아 플라스는 목숨을 끊기 10일 전에 이렇게 썼습니다. "그것을 멈출 수 있는 건 없다." 상상력의 여사제는 결국 바닥의 붉은 웅덩이에서 생을 마감할 운명인 걸까요?
- P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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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 식탁에 앉자 한 손님이 돌아가며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보자고 제안했다. 그러자 신랑이 신부에게 말했다. "이봐요, 내 사랑, 아는 이야기 없어요? 다른 사람들처럼 뭐라도 들려줘요." 그녀가 말했다.
"그러면 꿈 얘기를 하나 해드릴게요"

- 그림형제 수집 <강도 신랑>

좋든 나쁘든 모든 이야기를 그대로 옮겨놓고자 한다.
아니면 이야기의 일부를 조작하는 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니 이 이야기를 읽고 싶지 않으면,
건너뛰어 다른 이야기를 택하기 바란다.

- 제프리 초서, <캔터베리 이야기>>

그리고 이제 그는 상상 속에서또 다른 행성을 오른다
이 세상을 카메라의 시점으로 한눈에 하나도 빠짐없이 더 잘 보기 위해 매번 울리는 영감어린 찰칵 소리,
이곳의 이야기, 이곳의 속임수, 이곳의 흔적 없음,
이것을, 이것을 그는 책에 쓰고 싶어 한다!

- A. M. 클라인, <풍경으로서의 시인의 초상>

이름을 짓는 행위는 인류가 할 수 있는 위대하고 엄숙한 위로다.

- 엘리아스 카네티 (파리의 교통

나는 무엇 때문에 제정신인 사람이 허구에 매달려 존재하지도 않는 사람들을 묘사하는 데 일생을 바치는지 여전히 모르겠다. 만약 그것이 글쓰기에 대해 글을 쓰는 사람들이 때로 하는 말처럼 애들 장난같은 공상의 연장이라면 그들의 행동을 어떻게 설명하겠는가. 그것을, 그것만을, 오직 그것만을 간절히 소망하고, 그 일을 자전거로 알프스 산맥을 넘는 것만큼이나 이성적이라 여기는 것을 말이다.

- 메이비스 갤런트, <선집> 서문

굴 속에 깊숙한 굴 속에, 거의 완벽한 고독 속에 자리하기. 그리고 오직 글쓰기만이 구원해주리라는 것을 깨닫기. 책에 대해 손톱만큼의 주제도 생각도 없이 있는 것, 이는 다시 한 번 책 앞에서 스스로를 발견하는 일이다. 광활한 백지. 잠재적 상태의 책, 무 앞에 자리 잡기, 살아 있는 알몸의 글쓰기 같은 무언가, 너무나 끔찍해 이겨내기 힘든 무언가 앞에 있기.

- 마르그리트 뒤라스, <마르그리트 뒤라스의 글》

먼저 특별할 것 없는 고백부터 해야겠다. 나는 작가이자 독자다. 그리고 그게 전부다. 학자도 아니고 문학 이론가도 아니다. 이책에 그런 개념들이 조금이라도 돌아다닌다면 그것은 보통 작가들이 취하는 방식으로 인해 그곳에 자리하게 된 것이다. 그 방식이란, 갈까마귀가 하는 짓을 떠올리면 된다. 반짝거리는 물건들을훔쳐서 둥지를 마구잡이로 쌓아올리는 것 말이다. - P18

식민지는 진부한 틀을 초월할 정신적 에너지가 부족한데(…) 이런에너지가 부족한 건 자신을 충분히 믿지 못해서다. (...) 이들은 아주근사한 장소를 자국의 현재도, 과거도, 미래도 아닌, 국경 너머 어딘가 발전 가능성을 넘어서는 어딘가로 설정한다. (…) 위대한 예술은예술가와 관객이 자신들이 살고 있는 나라에서의 삶에 대해 열렬하고 유별나게 공통의 관심을 보일 때 자라난다.

- E. K. 브라운, 《캐나다 문학의 문제》(1943)‘

시인 5백 명이 몰려들 만큼 거액의 상금이 걸린 시 쓰기 대회를 개최해야 한다고 가정해보자. (…) 그들을 한데 모으면 전형적인 캐나다시인을 발견하게 될 거라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시 5백 편을 모두읽고 나서 깨닫게 되는 사실은 한 세 사람 정도가 뭘 좀 할 줄 안다는것, 그러니까 시를 전문적으로 쓸 줄 안다는 것이다. (...) 이 세 사람이 지나가고 나면, 운율은 그럴 듯하나 핵심적인 은유 하나 없는 2백편의 시와, 운율이 있다 해도 절뚝거리는 3백 편의 시를 만나게 된다. (...) 이 수많은 시들 사이에 광인이 쓴, 재치 있고 기묘하나 모골이 송연해지는 서너 편의 시들도 끼여 있다. (...) 5백 편의 캐나다 시인에 대한 이런 분석은 나를 우울감에 빠뜨린다. 왜냐하면 이들이 이나라의 풀뿌리 시인, 시를 애호하는 독자, 감수성 풍부한 보통 시민을 대표하는데, 그 누구도 전혀 문학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 제임스 리니, <캐나다 시인의 곤경》(1957) 

캐나다 시인은 언어 (다른 언어들은 말할 것도 없고)의 모든 양식을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지만, 자신이 그 언어 양식들과 경쟁하고 있다는치명적인 인식이 부족하다.

- 밀턴 윌슨, 《기타 캐나다인들과 그 후》(1958)‘

나는 독자이면서 작가도 되어야 할 것 같았다. 그래서 공책을 사서글을 쓰려고 애를 썼다. 실제로 쓰기도 했는데, 시작은 호기로웠으나금세 글에 맥이 빠지자 엄벌이라도 처하는 양 종이를 찢어내 구겨서 쓰레기통에 던져버렸다. 나는 공책 표지만 남을 때까지 찢고 쓰기를반복했다. 그런 뒤 공책을 또 사서 전체 과정을 처음부터 다시 시작했다. 같은 주기가 꼬리를 물고 되풀이되었다. 흥분했다가 좌절했다가, 흥분했다가 좌절했다가.

- 앨리스 먼로, <코테스 섬>(1999) 

너는 불쌍한 사람을 도울 때 오른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여너의 착한 행실이 남의 눈에 띄지 않게 하라. 그러면 은밀히 보시는네 아버지께서 갚아주실 것이다.

- 마태복음 6장 3~4절

정열과 환희의 시인들이여,
지상에 영혼을 남겨두었구나!
새로운 곳에서 이중으로 살면서,
천상에도 영혼을 가지고 있는 것인가?

- 존 키츠, <정열과 환희의 시인들이여>

너는 지킬의 손을, 너는 하이드의 손을 가졌구나.

- 그웬돌린 매큐언〈손과 히로시마

비정상적으로 관찰을 강조하는 것은 관계를 몹시회피한다는 것을의미한다. 더 정확히 말해, 타인의 삶에 과도하게 집착하고 동일시하는 동시에, 말도 안 될 정도로 거리를 두는 것을 뜻한다. (...) 멀찍이떨어져 있는 것과 완전히 연루돼 있는 것 사이의 긴장, 그것이 작가를 만든다.

- 네이딘 고디머, <선집> 중 서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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