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한장 읽기 어려운 오늘,
첫눈이 내렸다.


처음으로 돌아가 그 첫 번째 질문에 대한 대답으로 시작할까 한다. 어린 시절 우리 집은 전형적인 문제 가정이었다. 부모님 두 분 모두 우리가 살던 곳에서 가까운 성 브렌던 정신 병원의 환자들이었다. 그 병원은 우리가 살던 더블린 북쪽의 공영주택 부지에서 걸을 수 있는 거리에 있었다.
건강 기록에 어머니는 성 브렌던 병원 외래 진료 환자이며, ‘조현증으로 사료된다‘라고 쓰여 있다. 아버지는 조울증의 상태에 따라 외래 진료와 입원을 반복했다. 두 분모두 중독에 시달리고 있었다. 어머니는 처방 약에, 아버지는 강박적 도박 유혹에 말이다. 부모님을 원망하지는 않는다. 두 분은 나쁜 사람들이 아닌 아픈 사람들이었다. 이런단순한 사실들로 눈물을 자아내고 싶지는 않다. 성매매에유입되기 바로 전날까지도 상상조차 불가능했던, 해로우면서도 우울하고 파괴적인 생활 방식에 어떻게 유입되었는지를 이해하는 데 그 사실들이 중요하기 때문에 기록할 뿐이다. - P29

성매매로 첫 소득을 얻어 다른 직업을 경험해보지 않은나 같은 사람의 경우에는 특히나 그럴 것이다.
주변에서 매일같이 마주치는 바람직한 사회 모습 중 어떤 한 부분에 내가 속할 수 있는 곳이 있을 것이라고는 단언컨대 절대로 상상할 수조차 없었다. 이 사실에 대해서 그리고 나 자신에게도 엄청나게 분개했었다. 이른 저녁 성매매 집결지로 걸어가는 길에 동네 은행 유니폼을 입고 걸어가는 한 무리의 젊은 여성들을 보면(배곳 거리에서 흔히 그랬듯) 정당화하거나 설명할 수 없는 질투심과 분노의 큰 파도가 덮쳐오는 것을 느꼈다. 내가 배제된 세상에서 그들은 이 사회 구성원으로 용인되어 있다는 사실에 극도로 싫은 감정을 느꼈다고, 여러 해가 지나고 내 자신의 감정을 면밀히 본 후인 오늘날에야 알게 되었다. - P34

몇 년이 지난 후에는 어떤 공식적 범위 안에서 그 세월들을 설명할 수 없음을 갑자기 깨닫게 되는 순간이 온다.
예를 들어, 성매매 여성이 이력서를 작성한다면 금방 채울수 없는 빈 페이지를 들여다보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것이다. 되돌아가기 불가능한 길을 택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그 길 위 어딘가에서 심지어 보고 있지 않을 때 뒤에서 문이 탁 닫혀버렸다. 이제는 돌아갈 길이 없어 보인다. 법의 기준에서는 범법자일 뿐 아니라, 이제 공무원 같은 공직자들에게 자신에 대해 조금도 설명할 수 없게 됐음을 깨닫는다. 그래서 사회로부터 더욱더 분리되고, 항상 느껴왔던 느낌을 확인하며 조합하게 된다. 점점 더 분리되고홀로 고립돼 더욱 우울해진다. 일반 대중들로부터 갈수록멀어지고 급락은 계속된다. 계속, 계속, 그리고 계속.
- P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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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첼 모랜 Rachel Moran

아일랜드 더블린 북부에서 자란 저자는 불우한 가정 출신으로 열네 살에 정부 보호를 받게 되었다. 노숙 생활을 전전하다가 열다섯살에 성매매에 유입되었고 이후 7년간 더블린을 비롯한 여러 도시들에서 착취당했다. 1998년 22세에 성매매에서 벗어난 후 24세에 더블린시티대학에 진학하여 저널리즘 학위를 취득하였으며, 언론에 탁월한 능력을 보여준 학생에게 수여하는 하이브리드 어워드를 수상한 바 있다. 성매매와 성착취 인신매매에 대항해 국제적으로 활동하고 있다. 현재 더블린 북부에 산다.
(저자의 웹사이트: http://theprostitutionexperience.com)

옮긴이 안서진

성매매가 불법인 한국과 전면 비범죄화된 호주 시드니에서 성착취를 경험한 내담자들을 지원했다. 성매매 산업 내에서 작동하는 여러 기제들과 한 개인으로서 겪은 성매매 경험을 오가며 다층적이고 심층적으로 고찰하는 레이첼 모랜의 글이 한국의 독자들에게잘 전달될 수 있도록 저자와 지속적으로 소통하며 번역하였다. 한국의 성매매 경험 당사자들이 각기 다른 맥락에서 경험한 성매매와 치유의 과정들은 어떻게 이 텍스트와 만나고 빗겨 가는지, 그담론이 독자들의 능동적 읽기를 통해 피어나기를 희망한다.

추천사

정희진(여성학 연구자)


글쓰기의 정치학과 윤리를 생각한다.

이 책은 아일랜드의 페미니스트 레이첼 모랜이 자신의성산업 유입 경험과 사유를 다룬 소위 ‘당사자actors‘가 쓴글이다. 물론 당사자의 글이라고 해서 저절로 진실, 팩트가확보되는 것은 아니다. 문제는 세상의 모든 글과 마찬가지로, 삶과 앎에 대한 글쓴이의 해석이다. 나는 이 책에서 두가지를 배웠다. 글쓴이만이 경험한 성매매와 글쓰기 태도가 그것이다. 이 책은 좋은 글의 조건 세 가지인 당파성, 윤리성, 미학을 모두 갖추었다.
- P8

성산업, 특히 한국사회의 성산업 양태는 대단히 다양하다. 발성매매 과정에 있는 여성들을 40년 넘게 지원해온 페미니스트에게도 생소한 성매매가 매일 출현하고 있다. 유형뿐 아니라 로컬의 정치경제학이 다른 만큼 성산업에 종사하는 여성의 경험은 다양하다. 또한 남성 구매자와여성의 권력 관계도 가부장적 ‘구조를 넘는‘ 개별성이 존재할 수 있다. 이처럼 성매매의 복잡성과 다양성에도 불구하고『페이드 포』는 성매매의 본질을 정확하게 전달한다. 성매매에 대한 ‘교과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성매매만큼 여성에 대한 폭력gender based violence언설을 남성이 독점하고 있는 영역도 드물 것이다. 그들은
"(성구매를) 직접 경험해본 사람으로서 말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일부 남성 진보 세력은 계급적 관점에서 자신이 기 - P8

층 민중인 그녀들을 ‘더‘ 걱정하고 ‘잘‘ 대변한다고 주장한다. 반면, 페미니스트들은 경험이 없어서, 성산업에 종사하는 당사자들은 낙인의 위협 때문에 침묵해야 했다. 성폭력이나 가정폭력보다 성매매는 여전히 ‘피해자‘ 논쟁으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즉 피해자가 있는 범죄가 아닌 자연스러운 일상 문화로 인식되기 때문에, 아무도 제대로 모르지만모두가 안다고 생각한다.
젠더와 계급은 성별화된 자원 교환, 노동의 성애화, 섹슈얼리티의 매춘화, 성매매로 ‘수렴된다‘. 일상적 문제일수록 본질을 직면, 인식하기 어렵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즈음,
리얼돌(sex doll, 맞춤형 인형, 강간 인형)에 대한 논의가한창인데, 판매 허가를 요구하는 목소리는 우리 사회의 상황을 정확히 반영하고 있다. "대한민국 남성은 야동도 못보고, 성매매도 못 하고, 여성을 제대로 쳐다보지도 못한다. 대한민국에서 남성으로 살아가는 것이 참으로 힘든 일이 되었다. 최소한의 남성 인권을 보장해달라." 무슨 말을하겠는가. - P9

페이드 포의 저자는 7년 동안 성산업에 종사하였다.
글쓴이의 포지션, 누가 말하는가는 페미니즘의 중요한 이론적 주제이다. 모든 글쓰기는 자기 재현이지만, 경험이 저설로 글이 되는 것은 아니다. 경험은 정치적, 인식론적으로선택되고 구성된 기억이다. 체험과 글쓰기는 또 다른 영역이다. 경험과 지식, 독서량과 무관하게 글에는 소재의 제한이 ‘있다‘. 당사자이기 때문에 쓸 수 있는 글도 있지만, 실은 당사자이기 때문에 쓸 수 없는 혹은 쓰기 어려운 글이 훨씬 더 많다.
1999년 4월, 미국 콜럼바인 고등학교에서 발생한 총 - P9

기 난사 사건의 가해자이자 현장에서 자살한 학생의 엄마가 쓴 책 「엄마의 고뇌: 비극 이후를 살아낸다는 것Mother‘s Reckoning Null- Living in the Aftermathof Tragedy』의 한국어 제목은 "나는 가해자의 엄마입니다"이다. 한국 독자를 위한 의도적 오역인 듯하다. 이 책은글쓴이가 자신을 가해자의 엄마로서 정체화했다면, 세상에나오기 어려운 글이다. 피해자들에 대한 죄의식과 아들에대한 그리움을 맨정신으로 버틸 수 있는 여성은 많지 않다.
그녀는 ‘청소년 자살 예방운동가‘로서 살아가고 있고, 책도그 관점에 충실하다.
‘특별한 경험‘을 겪은 당사자의 글쓰기가 이토록 어려운 것이다. 오해와 낙인으로 가득한 고통스러운 경험에 대해서는 더욱 그렇다. 고립감, 자기 연민, 자기 방어, 자의식을 지양하는 글쓰기는 "죽었다 깨어났다"라고 말하는 환골탈태, 재탄생의 과정이다. 이 책은 이러한 문제를 ‘극복‘했을 뿐만 아니라 독자를 새로운 세계로 안내한다. 물론, 여기서 새로운 세계란 성매매 제도라기보다는, 그것을 경험한 사람의 사유이다. - P10

안드레아 드워킨은 가부장제 사회의 규범적 섹스, 삽입intercourse 자체가 폭력이라고 보았다. 섹슈얼리티는 성교가 아니다. 생리, 피임, 낙태부터 매 순간 권력관계요, 노동이다. "원 나잇 스탠드조차 깔끔하지 않다." 성폭력 피해 표현 중에 "he insides me(그가 내 몸 속으로 들어왔어요)"가 있는데, 비슷한 맥락일 것이다. 『페이드 포』의 저자는 이를 다음과 같이 표현한다. "성구매자들이 내 몸 안에서 움직인다고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견디기 어려웠다.
그 생각만으로도 몸이 아팠다(p.94)" 나 역시 느꼈던 폭력 - P10

적 상황. 적어도 내게 유리하지 않은 상황에서 몸의 이물감을 수없이 겪는다. 정말, 생각이 몸을 아프게 하는 것이다.
이 책은 이렇게 한 구절 한 구절, 나를 깨닫게 했다. 성구매자 중에서 ‘변태‘가 ‘일반적인‘ 구매자들보다 상대하기 좀더 수월하다는 사실에도 크게 공감했다. 많은 여성들 역시그럴 것이다. ‘대놓고 문제적인 남성보다 가족, 아는 사람,
동료와의 평범한 인간관계가 더 피곤하고 많은 노동을 요구한다.
이 책이 한국사회의 성매매 인식 변화에 기여하기를 소망한다. 성매매에 대한 무지와 오해 자체가 폭력이다. 성매매는 상업화이어서, 비윤리적이어서 문제가 아니다. 몸과섹슈얼리티를 연구한다는 이들조차 이러한 인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한국 사회에서 ‘상업화되고 비윤리적인‘ 문제는, 성매매 말고도 널려 있다. 성매매의 핵심은 성별성이지 상업성이 아니다. - P11

마지막으로 ‘성노동‘ ‘성노동자‘ 용어에 대한 나의 분노를 분명히 하고 싶다. 이 책에 나와 있듯이 성노동은 미화된 용어이기도 하지만, 실제로, 노동이다. 성산업에서 종사하는 일은 당연히 노동이다. 그러나 "노동이어야 한다. 노동으로 인식되어야 한다"라는 주장은 전혀 다른 논리다.
‘성노동‘은 성매매의 핵심, 즉 왜 이 노동이 여성에게만 부여되는지를 설명하지 못한다. 나는 성매매를 성폭력으로환원시키는 입장에 동의하지 않지만, 폭력을 행하는 것도당하는 것도 노동이다. 성산업에서 여성이 하는 일은 중노동이고 위험한 노동이다. 여성이 사망해도, 공권력도 가족도 나서지 않는 보이지 않는 노동이다. ‘성노동‘ 담론이 여성 혐오에 근거한 무지의 산물임에도 한국 사회에서 그럴듯하게 통용되는 이유는, ‘노동의 신성화‘라는 서구 근대이데올로기를 벗어나지 못하는 식민주의 인식 때문이다. - P11

한국 독자들


이 책은 2013년 봄에 아일랜드에서 처음 출간되었습니다. 그 후 20여개국이 넘는 나라들을 방문하며 여러 도시들에서 행사와 텔레비전 방송 등에 참여하며 공적•사적 자리에서 성매매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전 세계적으로 성매매에 유입된 여성들, 그리고 그들을 지원하는 분들과도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여러 국가들을 방문하면서 어떤 곳에서든 똑같은 일들을 보고 듣게 된다는 사실을 빠르게 깨달았습니다. 미국에서 온 흑인 여성이건 캐나다에서 온 원주민 여성이건 유럽에서 온 백인 여성이건 인도나 필리핀에서 온 동양 여성이건 여성들의 삶은 놀랄 정도로 닮아 있었습니다. - P18

성매매되는 사람들은 취약 계층 출신이라고 늘 생각해왔습니다. 제 고향인 아일랜드에서 그런 경우를 너무나 많이 봤기 때문입니다. 10대 때 저와 같이 성매매되던 다수는쉼터에서 함께 지내는 아이들이거나 다른 쉼터에 사는 아이들이었습니다. 우리는 모두 가난, 중독, 정신 질환, 성학대가 한두 가지 혹은 모두 뒤섞인 불우한 가정 출신이었습니다. 물론 어떤 경험이든지 문화의 영향을 받기 마련이지만 성매매 경험에는 보편적인 현실이 있기에 여느 나라의여성들처럼 한국의 여성들에게도 그 현실이 존재한다고 믿을 수밖에 없습니다.
인간의 경험을 설명하는데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가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언어는 상황에 대한 우리의이해를 구성하며 특히나 성매매는 아주 절실하게 이해가필요한 영역입니다. 여러가지에 대해 이야기하고, 논의하 - P18

고, 골똘히 생각하고, 궁리해보면서 다양한 상황들에 대한우리의 사고를 되짚어 보아야 합니다. 하지만 한 가지 염두해야할 점이 있습니다. 거의 4천만 명의 여성이 전 세계적으로 성매매라는 구조 안에서 학대된다고 추정됨에도 불구하고 전체 인구에 비하면 여전히 적은 수이기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성매매를 경험한 적이 없이 성매매에 대한이야기를 한다는 점입니다. 더군다나 성매매를 경험한 사람들은 수치심 때문에 이를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성매매를 벗어날 정도로 운이 좋았던 여성들 중 대부분은 그저 상처를 보듬으며 삶을 살아가고 그 경험에 대해 언급하기 꺼려하기 때문에, 공개적으로 이야기하는 경우는 더욱 드물니다. 이로 인해 성매매가 존속되고 비밀스런 상태가 유지되며, 정확하게는 바로 그 비밀스러움이 성매매를 정상적이고 그럴듯하게 채색합니다. 또한 성매매를 그렇게 보이도록 하는 이들은 주로 국제적인 성매매에 이권이 개입되어 있는 사람들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그들이 거짓말을 하게끔 두는 이유는 진실을 말하기가 두려워서입니다.  - P19

저는 그 상황에 있는 여성들과 공감할 수 있습니다. 저 또한 진실을 말하기 두려웠지만, 달라진 점이 있다면 제 자신의 두려움에 의해 조종되기를 거부했다는 점입니다.
한국 독자들에게 전하는 가장 중요한 메시지는 바로 이것입니다. 여러분 중에 성매매를 살아낸 분들은 할 수 있는범위 내에서 부디 말하십시오. 아일랜드에서 우리가 법안을 통과시킬 때 제가 조직했던 그룹의 여성들 중 몇몇은 기자에게, 방송인에게, 정치인 들에게 익명으로 제보했습니다. 그 증언들은 아주 유용하고 도움이 됐습니다. 저를 포함한 다른 몇몇 여성들은 기꺼이 공개적으로 말했습니다. - P19

엄청난 불안과 스트레스, 슬픔을 동반한 일이었고 가족, 특히 아이들을 생각할 때는 더욱 마음 아픈 일이 많았습니다.
큰 희생이었고, 심정적으로 힘들었지만 우리는 2017년 봄에 법안을 통과시켰습니다. 그 법은 인간의 몸을 성적으로접촉하고자 구매하려는 행위를 범죄화하고, 젠더와 관계없이 적용됩니다. 그래야만 하지요.
성매매 경험을 하지 않은 한국분들께는 이렇게 말하고싶습니다. 말하기 위해 앞장선 이들의 말을 주의 깊게 들어주세요. 성매매에 대해선 누구나 자기만의 의견이 있다는사실을 알게 되었지만, 앞서 언급했듯 수치심에 기인한 침묵 때문에 많은 사람들에게 애초부터 필요한 정보가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성매매 경험 당사자들이 말할 수 있도록 격려해주세요.  - P20

라디오 인터뷰든 기자의 기사든 개인적 대화든지 말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부드럽고 긴장되지 않게 환영해주세요. 듣는 이는 진심으로 열린 마음을 가지고 호기심을 표하며, 판단하지 않는 태도를 보여주어야만 합니다. 오랜 세월 동안 사회가 우리 성매매된 여성들을 비난해왔고, 이 때문에 우리가 그렇게 오래도록 침묵해왔다는 사실을 기억해주세요. 우리의 침묵 속에서 폐해는 커져만갔고, 성매매 여성에 대한 사회의 비난과 성매매의 존속은 직접적으로 연결됩니다. 성매매 여성을 향한 편견은 성매매가 살아 숨쉴 수 있는 기반을 제공하고, 실제로 살아 있게끔 기여합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어떤 사안에 대해 이론적으로 더 알게 되면 사고가 진화하여 더 깊이 생각하고 더욱더 총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됩니다. 저 또한 그렇습니다. 책의 출간 후 제 생각, 언어, 정치성이 확실히 함양되었습니다.  - P20

오늘날 다시 이 글을 쓴다면 사용하지 않을 단어들이 있습니다.
바로 ‘성매매 여성‘과 ‘손님‘ 입니다. 성매매여성이라는 용어는 사람이 실제로 자신에게 가해진 것을 체현―그들이바로 그 단어라는ㅡ했다는 의미를 내포합니다. 어떤 면에서는 ‘노예‘라는 단어와 비슷합니다. 저는 더이상 노예라는 단어를 쓰지 않고, ‘노예가 된 사람들‘이라고 지칭함으로써 다음 두 가지를 환기하고자 합니다. 첫째, 우리가 얘기하고 있는 대상은 사람들이며, 노예가 된 상태는 그들에게 가해진 상황이지 그들이 노예의 본질과 같지않다는 사실임을 강조하려 함입니다. 같은 이유로 ‘성매매된 여성‘이라는 단어를 사용합니다. ‘손님‘이라는 단어를 책에 썼다는사실에 대해서 진심으로 후회합니다. 손님이라는 말은 원래 합당한 상업적 교환을 하는 사람을 말합니다. 이 책에서건 다른 곳에서건성매매와 관련한 대화에 그 단어가 등장하면 마땅히 비웃으셔도 좋겠습니다. - P21

독자들께 개인적으로 사인해드릴 때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거의 항상 같은 문구를 씁니다. 현재 성매매에 대한 의견이 어떤지와 관계 없이 제가 말해야만 했던 사실들을 듣기 위해 시간을 들여 이 책을 읽으신 모든 분들께감사합니다. 성매매 구조를 해체할 수 있다고 믿지만 우리는 먼저 말하고 들을 준비가 되어 있어야만 합니다. 한국은2차 세계대전 중 유괴되어 학대당했던 일본군‘위안부‘ 피해자들의 고통과 고난을 인정하는 지난하고, 고되지만 꼭필요한 길을 걸어왔습니다. 이제는 지금, 그곳 한국에서 성매매되고 있는 여성들을 기억해야 할 시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용기와 회복력을 갖고 그 여정을 하기를 기원합니다.
그것이 바로 이 여성들이 여러분께 필요로 하는 것이며, 그들은 그럴만한 자격이 있습니다.

매우 감사드립니다.

2019년 9월
레이첼 모랜 - P21

궁전의 건전함을 위해서는 하수 설비가 필요하다고 교회 신부들은 말했다. 일부 여성을 희생하고 다수의 여성을 지켜 더 심각한 문제들이 생겨나지 않게 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고 말해왔다 (…) ‘창피한 줄 모르는 여성‘ 계층이 있기 때문에 ‘정숙한 여성‘
들을 더욱 신사적으로 배려하며 대할 수 있다. 성매매 여성은 희생양이다. 남성은 극악무도한 행위를 성매매여성에게 쏟아내면서도 그녀를 경멸한다. 성매매가 경찰의 관리감독 아래 합법적으로 이루어지든 은밀하게불법적으로 이루어지든 성매매 여성은 사회에서 버림받은 자로 취급된다.
-시몬 드 보부아르, 『제2의 성』

사람들 각자가 고유한 내력을 지닌다는 사실을인식하면 타인에게 수치를 주거나 책망하는 단순한 행위가 복잡해지고, 개개인의 역사를 알아갈수록 사람들이 왜 그런 행동을 하게 되었는지 이해하기가 더 수월해진다.
-리처드 홀러웨이, 『무신론적 도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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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의 몸을 다루는 일은 어머니와 나 모두에게 폭력이었다. 처음으로 어머니를 화장실에 데리고 들어간 날을 기억한다. 어머니를 변기에 앉히고, 어머니의 표현을 빌리자면, 어머니의 밑을 닦았다. 어머니의 음부를씻고, 어머니의 유방 밑살을 닦고, 어머니의 가슴을 만지는 것은 혈연 그리고 무언의 질서를 거스르는 행위였다. 마지막 선을 넘는 행위였다. 어머니는 이동식 좌변기를 사용했고, 가득 찬 변기통을 꺼내 어머니의 침실에서화장실의 좌변기로 가져가 비우는 일은 역겨웠다. 그걸할 때마다 구역질이 났다. 어머니를 돌보는 내내 그랬다. - P142

이렇듯 어머니의 몸에 대한 소소한, 선의의 침해 행위들은 기이했고, 내 마음을 불편하게 했다. 어머니는병든 노파였다. 어머니의 부드러운 피부는 티슈처럼 얇아져서 어머니의 몸을 다룰 때면 마치 피부가 분리되는것 같았다. 어머니는 내가 어머니의 몸을 다루도록 내버려두었다. 그러나 그 노파는 여전히 내 어머니였다. 내가어머니에 대해 느끼는 감정, 내 삶에서 어머니가 차지하 - P142

는 자리나 위상은 변할 수 있었고 또 변했지만, 결코 완전히 깨지지는 않았다. 그게 사람들이 늘 하는 말이다.
하지만 네 어머니잖아. 누구나 어머니는 단 한 분뿐이야.
다양한 혼종 가족이 존재하는 지금은 어머니가 두명 이상일 수 있다. 그러면 이렇게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 여자는 나를 낳아준 엄마일 뿐인걸. 그게 미래 세대에게 도움이 될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모든 사람을 더큰 혼란에 빠뜨릴지도. - P143

캐롤라이나 언니는 어머니의 몸에 엄격한 주의를기울였다. 내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는 방식으로 어머니의 몸을 구석구석 살폈다. 어머니가 침대에 더 오래 머물고 안락의자에서 휴식을 취하는 시간이 길어졌을 때,
캐롤라이나 언니가 어머니의 꼬리뼈 끝 부분에 욕창이생긴 걸 발견했다. 만약 언니가 아니었다면 염증이 번져서 어머니를 죽였을지도 모른다. 나는 비록 어머니의 목욕을 담당하기는 했지만 내가 그걸 볼펜으로 찍은 듯한작디작은 검은 점을 발견할 수 있었을 거라고 생각하지않는다.
시간이 지나면서 어머니의 이동식 좌변기의 변기통을 비우는 일을 빼면 어머니를 돌보는 일을 천연덕스럽게 해낼 수 있게 되었다. - P144

몇 개월 동안 어머니의 발작을 전혀 통제할 수가 없었으므로 어머니를 분노하고 지치게 했다. 때로는 발작이 신체적 고통을 유발하기도 했다.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이나 적어도 연민을 느끼는 사람이 고통에 시달리는모습을 지켜보는 일만큼 괴로운 것도 없다. 다만 한번은 가학 성향이 있는 사람에게 남편을 아프게 하는 걸어떻게 그냥 지켜보고 있을 수 있느냐고 물었을 때 그녀는 이렇게 답했다. 내 몸이 아니니까요.)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난 후에 어머니의 발작은 관리 가능해졌지만, 그즈음에는 어머니가 완전히 지쳐버렸고 다시는 회복하지못했다. - P169

2006년 1월 초, 나는 어머니가 죽어가고 있다는 것을 이해했다. 어머니는 기력과 체력이 약해졌고 뭔가를하려는 의욕도 떨어졌다. 어머니는 천천히 떠나가고 있었고, 나는 이를 호기심 어린, 무심한, 안도하는, 믿기지 - P169

않는다는 눈으로 지켜봤다. 캐롤라이나 언니에게 전화를 걸어 조만간 오는 게 좋겠다고 설명했다. 어머니는 죽을 거야. 나는 생각했다. 그것도 곧 언니에게 그런 예측을 전달하면서 난처한 감정이 들었던 게 떠오른다. 나는 내 예측이 맞다고 확신할 수 없었고, 나쁜 소식을 전하는 예언자, 적어도 신뢰할 수 없는 화자가 된 기분이었다. 이것은 많이 아픈 환자를 돌보는 일에 수반되는 또하나의 특수한 요소다. 충격이나 혼란을 유발할 수 있는판단을 내린다. 그러나 내가 그랬듯이 당신도 그렇게 생각할 것이다. 나는 언니에게 말해야만 했다. 언니에게 경고해야만 했다. - P170

내가 틀릴 수도 있지만, 틀려봤자 얼마나 틀렸겠는가, 어머니는 곧 아흔여덟 살이 될 터였다. 나는 그 사실을 완전히 받아들이지 못했다. 그 사실을 말하는 순간에조차도 회의적이었다. 어머니는 종종 되살아났고, 이번에도 죽음을 이겨낼지도 몰랐다. 그것은 흔한 망상이다. 그들이 결코 죽지 않으리라는 생각. 그런데 어떤 의미에서는 죽음은 쉽게 찾아오지 않는 것이기도 하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기 약 3개월 전에 식탁에 앉아 있던 어머니가 내게 물었다. "너희는 왜 나를 요양원에 보내지 않았니?" 나는 어머니가 요양원에는 절대 가고 싶지 - P170

않다고 완강하게 말했다고 답했다. 그러자 어머니는 말했다. "바보 같은 결정을 했구나. 내 응석을 받아주다니."


어머니가 돌아가시기 몇 주 전, 뉴욕 언니와 어머니는 극장에 갔다. 마지막까지 어머니는 자신이 할 수 있는 건 다 했다. 언니가 늘 어머니를 독려하기도 했다.
어머니는 여러 날을 무기력하게 침대에 축 늘어져 있었다. 아니면 못생겼지만 그럭저럭 쓸 만한 레이지보이 안락의자에서 잠이 들었다. 샹탈 애커만ChantalAkerman(1950~2015, 벨기에 출신의 영화감독)이 쇠약해지는,
죽어가는 자신의 어머니를 마지막으로 촬영한 다큐멘터리 <노 홈 무비>No Home Movie에서 애커만은 어머니가그런 안락의자 중 하나에 꼼짝하지 않고 누워 있는 장면을 롱샷으로 찍었다. 나는 생각했다. 멀리서 보면 저기에누워 있는 사람이 내 어머니라고 말해도, 다른 누군가의어머니라고 말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거라고. 거리를두고 보는 의자에 누워 있는 그 몸은 특정할 수 없는 늙은 환자, 죽어가는 사람의 몸이었다. - P171

죽어가는 것은 활동이다. 장기들이 엔트로피를 향해 각자 맡은 바 소임을 다한다. 기능을 완전히 상실하기까지는 시간이 걸린다. 몸은 마지막까지 활동한다. 너무나 이상하다. 먹고 마시지 않으면 사람은 최장 2주까지산다.
어머니의 고양이 콜레트가 어머니 곁에 누워 있다.
어머니는 말을 하거나 우리를 알아보지 않았다. 잠들어있는 것처럼 보였다. 우리가 고용한 응급병동 간호사는그녀의 표현을 빌리자면 계속 "어머니를 닦았다." 어머니 - P182

를 닦을 필요가 없었는데도, 어머니는 속에 남은 액체가없었으므로 닦을 것도 없었다. 소변도, 대변도, 구토물도없었다. 어머니는 납작해져 있었다. 판자였다. 살이 없었다. 앞뒤도 없었다. 앞과 뒤가 동일했다. 마치 이미 죽은사람처럼 굳어 있었다. 간호사는 어머니를 움직였다. 어머니의 자세를 바꿨다. 그러면 어머니는 통증을 느꼈다.
어머니가 통증을 느끼는 것처럼 보여서 내가 간호사에게 통증을 덜어줄 수는 없느냐고 물었다. 간호사가 말했다. "죽는 건 힘든 일이에요."
나는 뉴욕 언니에게 말했다. 그 간호사를 내보내야한다고, 우리는 다음 날 아침에 출근한 간호사를 해고했다. 출근 전에 그 여자에게 전화를 했지만 통화가 연결되지 않았다. 이미 출근길에 오른 뒤였다. 그 여자가 어머니 집에 도착한 뒤에야 말할 수 있었다.  - P183

임종 과정은 기본적으로 괭이밥의 이파리가 밤에닫히는 것과도 같아서 눈에 보이지 않는다. 겉으로 드러나는 징후, 죽음이 가까워졌다는 징후는 발가락이 안으로 굽는다는 것이다. 마치 뭔가를 움켜쥐듯이.
그 과정은 출산 과정과 같다고 나는 생각했다. 반대방향으로 진행되는노인정신의학과 전문의가 우리를 위해 가정 호스피스 케어를 주선했다. 실은 정말 너무 늦게 신청했지만,
노인정신의학과 전문의가 그 일을 관철시킨 것이 우리에 - P184

게는 천운이었다. 닥터 M이 서비스에 등록해준 덕분에호스피스 간호사가 아주 중요했던 두 날 밤에 방문해주었다. 호스피스 간호사는 사람이 어떻게 죽는지, 죽음에이르기까지의 단계들, 진행 과정, 어떤 징후를 눈여겨봐야 하는지를 설명하는 소책자를 두고 갔다. 또한 비상약품 꾸러미를 두고 갔다. 아티반, 모르핀, 아트로핀. 그간호사의 도움이 없었다면 정말 끔찍했을 것이다. 생각조차 하기 싫다. - P185

나는 아트로핀에 대해서는 들어본 적이 없었다. 나는 사람이 죽을 때 내는 꼴까닥 소리가 존재론적 사실정보, 삶과 죽음이 맞서 싸우는 전투의 한 조각인 줄로만 알았다. 아마도 제임스 조이스의 단편소설에서 그런얘기를 읽었던 것 같다. 그러나 실제로는 전혀 그런 게아니었다. 사람이 죽을 때 목에서 내는 소리는 반드시내야만 하는 소리가 아니었다. 그 소리는 더 이상 목구멍으로 넘어가지 않아서 입안에 고인 침이 만드는 소리다. 죽어갈 때 삼킴 기능이 멈추기 때문이다. 아트로핀은 입안의 침을 마르게 하므로 꼴까닥 소리가 나지 않게된다.
죽는 건 힘든 일이다. 여러 면에서 그렇다. 당연하다. 그러나 그 꼴까닥 소리는 필수 요소가 아니었다.  - P185

어머니가 죽는 것을 곁에서 지켜보기. 나는 움직일수도, 말을 할 수도, 뭔가를 물을 수도 없었다. 나는 붕뜬 채로 멈춰 있는 상태였다. 내 눈앞에서 벌어지는 일,
한 여자가 죽어가는 일은 일어나지 않고 있기도 했다.
나는 그 일을 관찰했다. 어머니가 느린 속도로 해체되는것을 임종은 피할 수 없는 일이지만, 당신이 아는 그 무엇과도 동떨어진 죽음의 과정을/임종 과정을 지켜보는일은 미친 짓처럼 느껴진다. 죽음은 언제나 뜻밖의 사건이다. 예상하고 있을 때조차도 그렇다. 그리고 이 너무나도 인간적인 사건은 여전히 불가피하고 이해할 수 없는사건이다. 당신이 보고 있는 것을 보고 있다는 것이 믿기지 않고, 또한 당신은 당신이 보고 있는 것을 보지 못한다. 그러다 그 일이 일어난다. - P187

어머니가 내게 물려주시겠다고 했던 석류석 반지는 사라졌다. 나는 그 반지가 갖고 싶었다. 석류석이 자줏빛 꽃밭처럼 다발을 이루고 있었는데, 사라졌다.
그래서 우리는 강제 퇴거 명령을 받을 때까지 어머니의 아파트를 붙들고 있었다. 강제 퇴거를 당하는 것은아주 불쾌한 경험이었지만, 불가피했다. 아마도 우리는놓아주어야 했다. 아파트만이 아니라 그 아파트가 상징하는 것, 그곳에서의 어머니의 삶, 그곳에 있는 어머니를 방문했던 20년이라는 시간을. - P211

갑자기 시간이 많아졌다. 시간은 공간이, 즉 자유롭게 생각하고 움직일 널찍한 공간이 되었다. 그곳에서 나는 어머니와 관련된 걱정들이 아닌 나와 관련된 걱정들을 하고, 글도 좀 쓸 수 있었다. 나는 엄청난 안도감을 느꼈다. 아마도 어렸을 때는 어머니가 보고 싶고 그리울때도 있었을 것이다. 당연히 보고 싶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여덟 살 때 8주 동안 집을 떠나 여름 캠프에 가있었는데, 그때 나는 어머니가 보고 싶지는 않았다. 갈등과 다툼이 끊이지 않는 어머니와 가족으로부터 떨어져 있으면서, 새로운 사람들과 새로운 환경에서 지내면서 앞으로 다가올 미래가 어떤 것일지 짐작할 수 있었다.
자유. 벗어날 수만 있다면. 그리고 나는, 몇 년 뒤에, 벗어났다. 어머니가 그립지 않았다. - P215

내가 그리워한 것은, 내가 결코 가질 수 없었던 것은 좋은 엄마 또는 충분히 좋은 엄마였다. 어머니의 무조건적인 사랑을 맛보는 것이었다. 흥미롭게도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 내가 그리워한 것은 내가 결코 원한 적 없는정해진 일과였다. 정해진 일과는 위안이, 위로가 될 수 - P215

있다. 자신이 뭘 하고 있는지 생각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그냥 하는 거다. 기계적으로잡지 포브스』의 교정자로 일한 적이 있다. 교대 근무를 했고, 교정실에서는 모든 일이 매번 똑같이 돌아갔다. 창문이 없는 비좁은 교정실에서는 이른바 내 진짜 - P216

삶에 영향을 미치는 일은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았다. 괜찮은 날도, 안 좋은 날도, 최악인 날도 있었다. 침울할 때도 있었다. 논쟁이 벌어지기도 했고, 불만은 넘치도록 많았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동일성이 장악하고 있었다. 그것도 나름의 이점이 있었다. 왜냐하면 나는 내 진짜 삶의 문제들을 뒤로 미뤄두고서 오직 교정실의 문제들만처리했고, 그 대다수는 지엽적인 것이어서 내게는 중요하지 않았으므로 교정실에 두고 퇴근할 수 있었다. - P217

나, 어머니, 가족의 내부 역학을 공개하는 것, 즉 이글을 쓰는 것은 내게 낯설고, 매우 불편하고, 심지어 혼란스럽기까지 하다. 내게 일어난 일을 소설의 재료로 삼을 때는 그 경험이 소설에 들어가지, 그 경험에 대한 내감정이 들어가지는 않는다. 나는 나 자신에 대해서는 쓰지 않는다. 허구의 이야기를 쓰지 않는 사람이라면 이해하기 힘들 수도 있겠지만 그게 일반적이다. 경험은 작가의 재료, 나의 재료이지만, 나는 자전적 이야기나 내가직접적으로 아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는 좀처럼 쓰지않는다. 그런 걸 쓰는 것에 대해 강한 거부감을 느끼는데, 지금 내가 그런 걸 쓰고 있다. - P217

그 세계는 생동감 넘치고 확연히 구별되고 늘 존재한다. 낙인찍힌 그 세계는 어디에나 있고, 나는 ‘그들‘을 다른 눈으로 보게 되었다. 거리에서 휠체어를 타고 다니는 사람들, 저상버스로 자신을 욱여넣는 사람들, 전동휠체어를타고 빠르게 지나가는 사람들, 다리를 저는 사람들․ 나는 그들의 문제, 난처함, 일상의 어려움을 알아봤다. 어머니의 병은 체험 장치 같은 기능을 했다. 너무나 많은결과가 예측 불가능하고 우연적이다.
누군가 미는 휠체어가 지나가면 휠체어를 탄 사람을 흘깃 보기도 한다. 그 사람은 거의 대부분 여자다. 그리고 그 휠체어를 미는 사람도 대체로 여자다. 나는 휠체어를 탄 여자를 지나치면서 미소를 짓는다.  - P227

아마도 불필요한 제스처였겠지만, 노인은 대개 내 미소를 미소로 받아준다. 그리고 그들의 간병인도 가끔은 이것은 의식적으로 수행하는 식별 행위다. 알아차리기. 못본 척하지않기. 내가 어머니의 휠체어를 밀고 갈 때면 많은 사람이 시선을 돌렸다.
이제 나는, 이를테면 누군가 힘겹게 걸음을 옮기는모습을 보면 더 너그럽게 또는 더 상냥하게 행동한다. 그렇게 행동하고 있기를 바란다. 표정이 굳거나 일그러지는 얼굴이 있는지 살피고 읽는다. 그리고 숨을 쉬기 위 - P227

해 멈추고는, 입을 크게 벌려서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내쉬는, 그래서 숨소리가 또렷하게 들리는 사람이 혹시있는지 주의를 기울인다. 나는 그런 사람들이 통증을 느끼고 있다는 것을 안다.
뉴욕에서는 그런 사람들이 시야에서 감춰져 있지않고, 눈에 잘 띄는 곳에 있다. 당신이 알아차리기만 한다면 말이다. 건강하고 기능이 정상인 노인들이 버스를타고 장을 보고 영화를 보고 산책을 하고 느릿느릿 혼자또는 친구와 식당에 간다. 그들은 우리 가운데, 우리와함께 산다. 그들은 살아간다. 그것이 핵심이다. - P228

시선을 돌리는 행위, 못 본 척하기가 내 관심을 끈다. 그런 행동은 필연적인 것을 무시하는 방법이다. 이제내 의지와는 달리 필연적인 것을 보게 된 나는, 내가 보고 싶지도, 알고 싶지도 않았던 것을 보게 된 나는 그런일이 내게는 일어나지 않을 거라고 연기하기가 매우어려워졌고, 그래서 더 주목한다. 다시 말해, 나는 지각하게 되었다.
여자들이 여자들을 돌본다. 그 일을 하는 건 거의대부분 유색인종의 여성이고, 그들은 백인 환자들의 휠체어를 밀고 그들을 돌본다. 그들은 대개 여자를 돌보는일에 고용된다. 가끔 남자도 있지만 남자들은 보통 남자 - P228

간병인을 고용한다. 게다가 휠체어를 탄 남자를 만나는일은 훨씬 드물다. 나는 항상 그런 관계의 차이를 찾아내려고 노력한다. 또한 유색인종의 여자들이 다른 여자들의, 백인 여자들의 아이들을 돌보는 것을 본다. 유모나가정부다. 이제 그들은 핸드폰으로 자신의 친구와 가족과 연결될 수 있다. 유모차에 탄 아이가 그 유모차를 미는 여자의 아이인 것처럼 보이면 나는 안도한다.


나는 꽤 오랫동안 죽음에 매료되었다. 다섯 살 나는자기 전에 아버지에게 나를 관에 넣고 묻을 때는 반드시내 베개와 담요를 넣어달라고 애원했다. 그리고 내손을담요 밑에 꼭 넣어달라고 부탁했다. 죽어서 깨어났을 때춥지 않도록 말이다. 죽어서 깨어났을 때, 아버지는 그렇게 하겠다고했다. 아버지는 불안증을 이해했고, 당신도 불안증에 시달리고 있었다. - P229

나는 호스피스 일을 하는 사람들에게 가까이 다가가고 싶었다. 그들의 일에 대해 알고 싶었다. 그들이 무슨 일을 왜 하는지 이해하고 싶었다. 그리고 그 일이 어떤 것인지를 밝혀내고 싶었다. 죽어간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밝혀내고 싶었다. 죽음과 죽어가는 과정의 생물학적 원리를 알 때조차도 그것을 완벽하게 밝혀내기가 불가능한데도 말이다. 그 후에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알지못하는 것, 다시 한 번 말하지만, 그 점이 바로 미스터리다. 죽은 어머니를 보면서 나는 어머니가 어디론가 간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 P232

나이가 들면 노쇠해진다. 노인이 움직이는 모습에서 노쇠를 관찰할 수 있다. 걸음걸이가 뻣뻣해진다. 바싹 마르고 쉽게 부서질 것처럼 보일 수 있다. 체중이 적게 나가는 노인인 경우에 특히 더 그렇다. 노인의학 전문의는 자신의 환자가 체중을 늘리기를 바랄 것이다.
대개 의학계가 노인을 취급하는 방식은 사회 전반이 노인을 취급하는 방식과 동일하다. 마치 노인이 더 이상 환영받지 않는 존재가 된 것처럼, 유효기간이 찍혀 있고 유효기간을 넘긴 존재, 판매대에서 치워야 하는 존재 자신이 쇠약해지는 모습을 상상하고 싶어 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젊은 사람은 상상하지 않는다. 상상해야할 이유도 없다. 노인의 모습은 우리를 미래의 현실 속으로 날려 보내는 불손한 탄환이다. - P244

내가 한 현실적인 행동 하나. 어머니가 돌아가시고나서 나는 장기 돌봄 서비스 제공업체에 연락해 데이비드와 나를 등록했다. 어머니와 어머니의 수많은 필요를 지켜보고, 얼마나 돈이 많이 드는지 알게 된 나는 더는 돌봄에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았다. 자녀가 있고,
그 자녀가 당신을 도와줄 것이라고 기대한다고 해도 그자녀는 짐을, 과도한 짐을 지게 될 것이다. 자녀가 당신 - P244

을 돕지 않을 가능성도 있다. 자녀는 그것이 당신 탓이라고, 당신이 준비하지 않은 게 문제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자녀들이 서로 다투게 될 수도 있다. 아니면 아이가한 명뿐이라고 가정해보자. 돈이 발에 치일 정도로 많다 할지라도 당신은 자신이 얼마나 오래 돌봄이 필요할지, 어떤 특수 치료를 받아야 할지, 얼마나 오래 살게 될지 알 수 없다. 유명한 상속녀 서니 폰 뷜로Sunny von Bülow(1932~2008)를 떠올려보라. 20년 이상을 식물인간 상태로 병원 침상에 누워 있었다. 서니는 생전 유언장을 작성하지 않았던 것으로 짐작한다. - P245

나는 어머니가 병을 얻기 한참 전에 물었다. 죽는 것이 두렵냐고. 어머니는 두렵지 않다고 했다. 어머니는 아무것도 믿지 않았으므로 사후세계도 믿지 않았고 천국에서 남편과 재회하게 될 거라고도 믿지 않았다.
나는 어머니가 아프긴 해도 정신이 맑았을 때 물었다. 인생은 고달프고 살다 보면 끔찍한 일도 일어나잖아요. 그런데도 살 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세요? 그럼,
어머니는 말했다. 삶에는 아름다운 것들도 있으니까. 어머니는 그 아름다운 것들이 무엇인지 말하지 않았다.  - P246

사랑, 우정, 도시 산책, 오페라, 아이들, 책, 하늘의 아름다움, 그중 어느 것도 언급하지 않았다. 어머니의 답은 내가 이전에 들은 어머니의 말들과는 전혀 달랐다. 나 또한 어머니에게 그와 같은 질문을 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
나는 어머니를 몰랐다. 그 모든 일을 겪었음에도, 이글을 썼음에도 나는 여전히 짐작만 할 뿐이다. 왜 어머니가 어머니 같은 사람이 되었는지 나는 모른다. 어머니에게도 영혼이 암흑에 빠진 순간이 있었는지 나는 모른다. 어떤 연유로 그랬는지도.
어머니에게 물어봤더라면 좋았을 텐데, 스스로에 대해, 소피 메릴 틸먼이라는 사람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 그런데 부모가 돌아가시고 나면 원래 후회되는 것들이 많은 법이다. - P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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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십대에 들어섰을 무렵 어머니는 인우드에 있는 지역센터에서 개설된 그림 강좌에 매주 참석하면서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언니들은 더 이상 우리와 함께살지 않았다. 대학을 다니거나 도시에서 일하느라 집에오는 일이 거의 없었다. 어머니는 자신에게 쓸 수 있는시간이 더 많아졌다. 학교가 끝나면 나는 어머니와 단둘이 있을 때가 많았다.
인우드는 이른바 파이브 타운스 Five Towns 중에서 ‘가난한 타운이었다. 그 타운 주민들은 대개 아프리카계 미국인이나 이탈리아계 미국인이었다.  - P94

하층민 내지는 중하층민들, 예컨대 내가 자란 타운에서 가정부, 배관공정원사로 일하는 사람들이었다. 동네와 학교를 통해 인종, 종교, 계급에 의한 엄격한 구획이 철저히 적용되고있었고, 나는 열 살이 될 때까지, 그해에 걸스카우트 캠프에서 2주를 보내기 전까지는 이 점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왜인지는 모르겠으나 나는 메리트 배지 merit badge(걸스카우트 활동 기간에 특정 기술의 교육 프로그램을 이수하고서그 기술을 익혔음을 검증받으면 받을 수 있는 배지가 받고 싶었다. (최근 나는 실비아 플라스Sylvia Plath(1932~1963, 미국 출 - P94

생의 시인이자 작가가 성실한 걸스카우트였고 그녀도 배지를 받고 싶어 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캠프의 인구집단 구성은 내가 사는 동네와는 달랐다. 54명의 소녀들 중에 유대인은 나 하나뿐이었다. 그 후로 나는 계급과 인종에 따른 구분을 의식하기 시작했다. 집으로 돌아간 나의 삶이 달라졌다. 그런 차이로 인해 그 삶을 다른눈으로 바라보게 되었다.
어머니가 지역센터에, 인우드에, 그림 수업을 받으러가는 것은, 즉 지역센터의 사회복지사와 사회복지 서비스를 받는 사람들과 사귀는 것은 어머니가 눈에 보이는그리고 보이지 않는 선을 넘었음을 의미했다. 그곳에서어머니와 친하게 지낸 친구 프레드는 아프리카계 미국인사회복지사였다. 프레드는 호탕한 사람이었다고 기억한다. 그리고 한쪽 다리를 절었다. - P95

어머니는 정식 교육을 받지 않았지만, 재능 있는 아마추어 화가였다. 어머니의 첫 작품은 유명한 화가의 그림, 반 고흐의 노동자 신발 그림들을 그대로 베낀 것이었다. 어머니의 작품들은 대개 사실적이고 상징적이었다.
오렌지색 고양이, 로맨스 여주인공처럼 꾸민 내 초상화.
마네 작품을 똑같이 따라 그린 것. 마네의 어느 작품이었는지는 잊었다. 그러나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난 뒤로 - P95

는 더 이상 그림을 그리지 않았다. 아버지는 어머니의 그림들에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러다 어머니는 환자가 되었다.
션트가 제대로 작동을 해서 어머니의 상태가 좋아졌을 때 어머니의 신체 기능이 돌아와서 그림을 그릴 수있게 되자 어머니는 다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이제어머니의 그림은 추상적이었다. 어머니는 "고양이를 그릴 거야"라고 말하고는 고양이와 조금도 닮지 않은 것을그렸다. 적어도 고양이는 아니었다. 눈동자였다. 안쪽은온통 하얀색, 하얀색 덩어리였다. 어머니의 마음이 보는 것이었다. 달리 말하면 어머니의 뇌가 보는 것이었다. - P96

그런 변화는 흥미로웠고, 연구할 가치가 있었다. 그래서나는 사진을 찍었다. 나는 그 사진을 닥터 A에게 보여드렸다. 그림을 그리고 뜨개를 하겠다는, 다시 배우겠다는어머니의 의지는 가히 존경받을 만했다. 어머니의 회복탄력성은 존경받을 만했다. 그리고 희망을 줬다. 어머니는 그런 면에서 독특했다. 어머니는 스스로를 돕는 사람이었다. - P97

프랜시스가 어머니와 살기 시작한 지 약 3년쯤 지났을 때 물건들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뉴욕 언니가 스웨터 한두 개, 모조 보석 장신구 하나, 귀중품은 아닌 것들이 사라졌다는 걸 눈치챘다. 프랜시스의 친구가 가져갔을 수도 있고, 제자리에 돌려놓지 않아서 못 찾았을 수도 있다. 프랜시스가 어머니와 살기 시작했을 때 프랜시스의 친구들이 많이 놀러 왔다. 사소한 물건들이 사라졌다. 나는 신경 쓰지 않았다. 어머니를 돌보는 훨씬 더 어려운 문제에 비하면 나머지 것들은 전혀 중요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게다가, 프랜시스는 어머니를 성실히 잘 돌봤다. 어머니는 그동안 어머니를 돌본 다른 여자들과는 달리 프랜시스에 대해서는 불평하지 않았다. - P97

연구원들은 무미건조하고 무심한 남자들이었다. 그들은 어머니를 연구 대상으로만 봤다. 뇌 손상은 어머니를 놀라울 정도로 순종적으로 만들었다. 어머니는 원래공격적일 때가 많았지만, 이제는 그렇지 않았다. 그들이어머니에게 해달라고 요청한 것- 일직선으로 똑바로 걷기, 제시된 단어들 기억하기 - 을 하려고 어머니가 애쓰는 모습에 가슴이 저려왔고 심지어 한숨이 나오기까지했다. 어머니가 그들의 이론을 입증하거나 부정하는 한에서만 그들에게 중요했기 때문에 더 그랬다. 그들은 어머니가 정상뇌압수두증 환자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어머니가 더 잘 걷게 되었을 때, 간병인과 극장을 찾 - P100

거나 자신의 생일파티에서 입을 정장-연한 핑크색이었다-을 사려고 버스를 타고 블루밍데일 백화점에 가거나 농담을 하거나 그림을 그리거나 책을 읽을 때, 어머니가 의학적 기대를 뛰어넘는 수준으로 기능을 회복했을 때 나는 어머니를 모시고 그 무심한 연구원들 앞에다시 나타나는 상상을 했다. 어머니는 그들이 자신들이무엇을 봤는지 전혀 몰랐다는 사실을, 누군가를 검사하는 법을 전혀 몰랐다는 사실을 확인시켜주었을 것이다.
그건 판타지로 남았다. 그 거만한 신경과 전문의 닥터 Z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고 싶다는 생각이 그러했듯이. - P101

어떤 날은 모든 사람에게 소송을 걸고 싶었다. 신이버린 욥만큼이나 불쌍한 나, 왜 이런 일이 일어나야만했을까. 인생에게 사기당한 느낌. 그렇다. 나도 불쌍하고, 모든 사람이 다 불쌍하다.


야생에서는 단 한 번도 보지 못했다
자신을 불쌍히 여기는 생명을
작은 새가 얼어 죽은 채 나뭇가지에서 떨어진다
단 한 번도 자신이 불쌍하다 여기는 일 없이.

- D. H. 로런스 - P101

내 생각에는, 삶을 지속하기 어려울 때가 매우 잦았을 것이다. 자기 연민이라는 사치를 부릴 수 없었다면 말이다.
-조지 기싱 - P102

뇌는 새로운 세포를 키운다. 척수액이 션트를 통해배출되는 상태에 따라, 대략적으로 말하자면 매시간 어머니의 신체와 정신 상태가 달라졌다. 어떤 날들은 놀라울 정도로 정신이 말짱했다. 어떤 날들은 그렇지 않았다. 어떤 날들은 더 잘 걸었다. 우리는 그런 차이가 뇌척수액의 흐름과 관련이 있다고 짐작했다. 션트가 삽입되기 전, 그리고 션트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때 받은 압력으로 인해 어머니의 뇌 일부는 영구적인 손상을 입었다. 션트가 고장 나면 어머니의 모든 증상이 돌아왔고,
교정하지 않으면 어머니의 뇌 전부가 영구적인 손상을입게 될 것이었다. - P102

거만한 신경과 전문의 닥터 Z는, 지금은 고인이 되었는데, 우리가 걱정을 표하면 웃어넘기면서 션트가 아주 잘 작동하고 있다고 말했다. 션트는 전혀 작동하지 않고 있었는데도 말이다. 의료 과실로 닥터 Z에게 소송을 걸었어야 마땅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당시에는 그런 - P102

소송이 우리의 시간을 빼앗고, 점점 약해지는 우리의 영혼과 에너지를 더 약하게 만들 거라고, 그리고 버틸 수없을 정도로 우리를 짓누를 것이라고 생각했고, 뉴욕 언니에게도 그렇게 말했다. 내가 틀렸을 수도 있다. 소송을했어야 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닥터 Z는 죽고 없다.
어머니는 신경외과 수술의가 소속된 병원과 협진관계에 있는 새 신경과 전문의 닥터 D와 진료 예약을 했다. 처음에 닥터 D는 어머니가 나아질 거라고 믿지 않는것처럼 보였다. 닥터 D의 첫인상은 침울했고 심지어 음침하기까지 했으며 딱히 어머니에게 관심을 보이는 것 같지 않았다 - P103

환자를 돌보는 사람은 의사, 간호사, 병원으로부터최선의 서비스를 받아내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반드시 저돌적으로 나가야 한다. 당신이 돌보는 환자는 스스로를 보호하거나 자신의 이익을 지킬 수 없다. 당신이직접 조사하고, 의사로 하여금 다른 치료법, 전략, 아이디어를 찾고 시도하도록 유도해야 한다. 노인 환자는 특히나 의학계에서 가망이 없는 짐짝으로 여겨진다. 모든의사가 노인 환자를 무시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런 의사들도 있다. 노인 환자는 절망적일 수 있다. 상태가 나아지지 않는 경우가 많다. 상태가 좋아져서 더 나은 여생을 사는 노인 환자도 있지만. - P104

어머니의 운명은 엄청난 구속이었지만 끝이 있는 것이었다. 나는 스스로에게 상기시켰다. 그러나 매일매일 어머니의 건강과 기분, 신입 또는 기존 피고용인에 관한 지루한 논의가 이어졌다. 가장 기이했던 것은, 내가결코 그런 일상에 완벽하게 익숙해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나는 그저 더 잘 대처하게 되었을 뿐이다. 같음과 다름, 예측 가능성은 예상할 수 없었고, 예측 불가능성은예상할 수 있었다. 어머니를 돌보는 일상은 당신이 한때당신의 삶이라고 불렀던 것과 늘 어긋나 있었다.
이 일을 전문적으로 하는 사람들은 수명이 상대적으로 더 짧다. 돌봄에 필요한 노동과 인내심, 긴 근무 시간은 사람을 지치게 한다. 시간이 천천히 흐른다. 정체된것처럼, 멈춘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시간은 사람들에게있거나 없는 것이다. - P106

내가 놓치지 않고 포착한 아이러니는 정작 어머니는 타인의 감정을 배려하지 않는 사람이었다는 것이다.
가까운 친구들은 내가 내 감정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는다고, 불평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나는 모범적인 병사였지만, 비참했다. 어머니를 돌보는 문제에 대해 얘기해도 아무런 위안을 얻지 못했다. 연민은 내게 도움이 되지않았고 오히려 스스로를 더 불쌍히 여기게 되었다.
너무나 많은 문제가 있었지만 바꿀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어머니의 상태는 좋아지거나 좋아지지 않을 것이었고, 시간이 걸릴 것이었고, 어머니는 머지않아 죽을 것이었고, 어머니의 미래는 예측 불가능했다. 모든사람의 미래가 예측 불가능하지만, 우리 가족의 미래는 어머니의 미래에 구속되어 있었다. 이런 상황이 얼마나더 오래 지속될 것인가. - P107

어머니를 요양원에 보낸다. 내 심리상담사는 계속해서 우리가 어머니를 요양원에 보내야 한다고 말했다.
나는 내면의 압력과 외부의 압력에 굴복했다. 좋은딸이 되어야 한다는, 좋은 동생이 되어야 한다는 어떤날은 기분이 괜찮았다. 어떤 날은 내 초활성화된 초자아에 절망했다. - P108

베이어머니는 늘 자신이 오페라 가수나 다름없다고 자부했다. 어머니는 자신에 대한 환상을 몇 가지 가지고있었는데 그중 하나가 자신이 완벽하다는 것이었다. 어머니는 내게 예수는 완벽하지 않다고도 말했다. 예수가
"너무 완벽하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어머니의 논리는언제나 어머니에게 유리하게 작용했다. 때로는 어머니의흔들리지 않는 나르시시즘을 부러워할 수밖에 없었다.
정확하게 노래하기 위해 정확한 호흡법을 배우는것은 어머니의 균형감각과 걷기에 도움이 되었다. 노래레슨의 예측하지 못한 긍정적인 효과였다. 호흡은 균형감각에 영향을 미친다. 당연한 얘기지만.
한번은 밴드 연주가 끝난 뒤 노라가 내게 아주 진지하게 말했다. 내 어머니를 가르치면서 나를 더 잘 이해하게 되었다고. 노라는 이유는 말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녀는 연민을 담은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 P109

어머니는 똑똑했고 자신의 신경증을 결코 인정하지 않았으며 어머니가 아주 어릴 때 일어난 일들에 의해, 내가 전혀 알지 못하는 일들에 의해 어머니의 성격은 뒤틀려 있었다. 어머니는 마치 자신에 대해 말하듯자신의 어머니에 대해 말했다. 어머니의 어머니는 완벽했다. 둘 다 완벽하지 않다는 것은 누가 봐도 자명했다.
어머니의 어머니, 즉 외할머니에 대해 내가 아는 일화는하나뿐이고 그 일화는 어머니가 쓴 이야기에 나온다. 나는 외할머니에 대한 기억이 없다. 아니, 있다. 다만 그 기먹은 오직 8밀리 영상에서 본 장면으로부터 기인한다.
어머니가 쓴 이야기, 미완성작인 그 이야기는 우리 고양이, 놀라운 그리젤다의 입양에 관한 이야기다. - P111

그 11년 동안 어머니는 변했다. 그리고 주름 한 줄없는 얼굴에 생기가 도는, 그림 속 완벽한 작은 노파 같은 모습이었다. 어머니는 나이가 들수록 더 잘 웃었다.
아마도 자신의 병에 의해 스스로 무장해제되었는지도모른다. 어머니는 사회불안장애를 완화하는 팍실 Paxil을 복용했다. 어느 정도는 도움이 되었지만 항상은 아니었다. 또한 나도 어머니를 다르게 보게 되었다. 어머니의신경적 문제로 인해 어머니는 더 이상 나를 기른 그 사람이 아니게 되었다. 좋은 엄마건 나쁜 엄마건, 그 어떤엄마 역할도 수행할 수 없게 되었다. 어머니는 대체로 순했고 나를 공격적으로 대하지는 않았다. - P114

8년째가 되었을 때, 나는 어머니를 요양원에 보내는건 불가능하다고, 그런 일은 결코 없을 거라고 체념하기에 이르렀다. 게다가 어머니가 사시면 얼마나 더 사시겠는가. 나는 이렇게 존재하는 삶에 최종적으로 묶였고 어머니는, 이렇게 존재하는 삶은, 내 삶과 불완전하게 통합되었다. 그런 통합은 어머니나 어머니를 돌보는 일을 의식해서 이루어진 것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기간 내내 어머니에게, 어머니를 돌보는 삶에 묶이게 된것이 막 일어난 일처럼 느껴졌다. 그게 가장 기이한 점이었다. 그렇게 묶인 삶은 결코 일반적인 삶이 아니었다.
일반적인 삶은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난 뒤에야 돌아올것이다.
어쨌거나 양가감정이 내 안에 살았다.  - P117

사람들은 자신이 할 수 있으리라고 상상하지 못했던 일들을 하고는 나중에 그런 자신에게 놀란다. 아드레날린, 의지, 고집, 맹목, 무지가 당신을 버티게 해줄 것이다. 나는 좋은 딸 역할을 연기했지만 거기에는 내 진심이담겨 있지 않았고 대신 내 양심은 담겨 있었다. 우리 자매들은 모두 양심에 의해 등 떠밀렸다. 그건 그렇게까지끔찍한 일은 아니다.
어머니는 사랑이 넘치는 다정한 엄마와는 거리가멀었다. 그러나 우리 부모님은 그들의 신경불안증과 해로운 행동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의 딸들에게 책임감과양심을, 그리고 그와 함께 치명적이고 적절한 죄책감을키워주는 환경을 제공했음이 틀림없다.
어머니와 관련해서는 나는 죄책감을 느낀 적이 결코 없다. 내가 어머니에게 내주는 것은 어머니가 받을 자격이 있는 것보다 많았다. 아주 매정하게 들리겠지만 말이다.  - P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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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 돌봄 컨설턴트의 회사는 휘황찬란한 이름이었는데, 어머니의 의사들과의 연락을 담당하기로 되어있었고 우리가 사람 찾는 것을 돕기로 되어 있었다. 초기에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지 막막했으며 몸과 마음이 매우 약해진 상태였다. 그 컨설턴트는 우리 앞에 놓인 너무나 많은 문제들을 대신 해결해줄 듯한 인상을 줬다. 그건 사실이 아니었고, 역설적이게도 컨설턴트가 보낸 사람들이 문제였다. 그리고 컨설턴트의 서비스는 엄청나게 비쌌다. 그녀가 어머니를 위해 고른 사람들은 무능하거나 제정신이 아니었으므로 그녀에게 그렇게 큰돈을 지급하는 것은 말이 안 됐다. 나는 어느 달엔가 컨설턴트가 청구한 비용이 1,600달러였다고 기억한다. 그녀는 모든 것에 대한 비용을 청구했고, 별걸 다 포함시켰다. 그 내역을 상세히 들여다보면 하나같이 사소하거나쓸데없는 것들이어서 아무리 계산해봐도 그녀가 청구한 비용은 과도했다. 컨설턴트는 해고되었다.
- P77

하염없이 계속되는 기운을 빼는 기다림. 병원에 있으면 기가 빨린다. 여기 갔다가 저기 갔다가 사회복지사가 나와 뉴욕 언니를 자신의 사무실로 불렀고, 그곳에서 사회복지사는 뉴욕 언니를 혼란에 빠뜨린 질문들을 했다. 사회복지사는 우리를 평가하고 있었다. 우리가 어머니를 학대하고 있는지 조사하고 있었다. 실제로, 노인은 학대를 당하곤 한다. 그 누구도 예외는 아니다. 돈이 많든 적든 거동을 못 하는 사람은 누구나 가학적 인격의 사냥감이 될 수 있다. 그런 학대자로 의심받는 일은, 당연히 불쾌했다. - P79

병원에서, 당신이 돌보는 환자가 병실에 있고 통증에 시달리고 있다. 신음소리를 내거나 울거나 뭔가 이상한 일이 일어난다. 그래서 당신은 간호사실로 달려가 당장 도와줄 사람을 찾는다. 아마 누구도 관심을 가지지않을 수 있다. 그럼 당신은 도와달라고 소리를 지른다.
관심을 끈다. 통증으로 괴로워하는 사람을 보고 있노라면 체면의 모든 규칙이 깨진다. 그 호화로운 병실에서,
의사가 어머니를 봐주기를 기다리고 또 기다렸고, 어머니는 당장 치료가 필요했으므로 걱정은 커져만 갔다.  - P79

나는 단언할 수 있다. 부모가 거동을 하지 못하게되면 그 가족은 놀랍고 당혹스럽고 지속적이고 복잡한 문제들에 휩쓸린다. 이전에는 단 한 번도 대면하지 않은 문제들이다. 이런 새로우면서도 오래된 삶에 관한 사실들의 크기와 깊이와 영향력에 충격을 받을 것이다. 예측할 수 없는 끔찍한 사고가 발생하고 진단이 내려지며, 가족들은 조사에 나서거나 충동적으로 반응할 수도 있고 심사숙고하거나 공포로 인해 마비될 수도 있다. 종종 가족들은 입장 차이로 인해 와해된다. 자녀 중 한 명이 부모 돌봄을 전담하는 일이 잦고 그 자녀가 모든 부담을 - P80

짊어진다. 반면에 두 명 이상의 어른 자녀가 돌봄을 맡으면 엄청난 불만과 갈등이 쌓여서 정작 돌봄을 제대로 수행할 수 없게 될 수 있다.
부모와 형제자매 사이에서 형성된 경험적·심리적관계는 암묵적이고 무의식적인 법칙을 만들어낸다. 이모든 역사가 개인의 태도와 선택에 영향을 미친다. 그리고 그 결과 돌봄에 관여하는 모든 사람의 의욕을 꺾고힘을 뺀다. 그동안 쌓인 감정들이 해석과 결정 속에 맴돈다. 지형은 험난하고, 이전 전쟁에서 남은 폭탄이 깊은감정의 밀도에 의해 기폭된다. 가족 또는 친구들은 환자라는 대의를 위해 협력할 것이다. 아니면 분열하다 분해될 것이다. 많은 경우 그렇게 된다. 우리 자매들은, 우리딸들은 서로를 놓지 않았고, 우리의 목표는 어머니를 가능한 한 오랫동안, 최대한 건강하게, 이 세상에 살아 있도록 하는 것이었다. - P81

때로는 버지니아 울프의 일기 글들이 떠올랐다. 하인들과 하인들의 감정, 아이들, 남편들, 요리, 능력, 그들의 실수, 임금, 요컨대 일반적으로 정의에 대해 느끼는 분노를 쏟아낸 글들, 간병인은 19세기의 하인이 아니라 서비스 제공자다. 그러나 어머니의 삶은 간병인의 삶과 단단히 얽혀 있었다. 그리고 역으로 간병인의 삶도 어머니의 삶과 단단히 얽혀 있었다. 어머니는 간병인에게 의지했다. 어머니가 간병인에게 더 많이 의지할수록 나는더 행복해졌다. 더 많은 시간을, 자유를 얻었다. 나는 내 - P82

집에 머물 수 있었고, 글을 쓰거나 탈출할 수 있었다. 어머니의 아파트에서 멀어지면서 나는 어머니의 것이 아닌 공기를 마셨다. 그것이 곧 자유처럼 느껴졌다. 이상하게 들릴 수도 있다. 이상하게 들리지 않을 수도 있다.
자신을 고용한 사람의 집에서 사는 피고용인은 다른 노동자와는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그 가족의 습관에 의해 고통을 받고 혜택을 본다. 그리고 세입자와 집주인의 관계에는 봉건적인 측면이 있고, 그런 측면은 ‘함께살기‘의 심리적인 측면에 우선한다. 우리의 마지막, 그리고 가장 오랜 기간을 함께한 간병인은 어머니를 매우 잘돌봤다. 어머니가 신체활동을 하도록 적극적으로 도왔다. 어머니를 극장, 영화관, 박물관에 모시고 다녔고, 매일 어머니와 외출했다. 매니큐어, 페디큐어, 미용실 약속을 잡고 모시고 다녔다. 어머니의 담당의와의 진료 일정과 정기 검진에 동행했고, 어머니의 모든 의사는 그녀가 어머니의 상태에 관한 상담 내용과 새로운 약의 처방사실을 우리들, 어머니의 딸들에게 정확하게 전달할 것이라고 믿었다. 그녀는 신뢰를 받았다. 우리는 그녀를 신뢰했다. - P83

정신이 돌왔을 때는 논리가 통하다가 다시 벗어났다. 가끔은 이쪽으로, 저쪽으로, 그러다 그 어디로도 통하지 않았다.
나는, 우리 모두는, 어머니에게 논리를 강요하지 않는 법을 배워야 했다. 소용이 없었기 때문이다. 어머니의 짜증이 쌓였고 내 짜증이 쌓였고 이해가 도출되지 않았다.
나는 ‘네‘라고 말하고, 듣고, 고개를 끄덕이고, 어머니를안심시키는 법을 배웠다. 그러면서 어머니가 언젠가는잊어버리고 다른 것들에 대해 생각하고 말하기를 기다렸다. 어머니는 이름을 헷갈렸지만 그건 문제라고 할 수도 없었다. 어머니는 내 남편 데이비드를 "지미"라고 불렀다. 어머니의 정신이 맑을 때 나는 물었다. 왜 데이비드를 지미라고 부르세요? 어머니는 웃으며 말했다. "나도 모르겠구나." - P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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