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선 위에서 떨다


고운사 가는 길
산철쭉 만발한 벼랑 끝을
외나무다리 하나 건너간다
수정할 수 없는
직선이다

너무 단호하여 나를 꿰뚫었던 길
이 먼 곳까지
꼿꼿이 물러나와
물 불어 계곡 험한 날
더 먼 곳으로 사람을 건네주고 있다
잡목 숲에 긁힌 한 인생을
엎드려 받아주고 있다

문득, 발 밑의 격랑을 보면
두려움 없는 삶도
스스로 떨지 않는 직선도 없었던 것 같다
오늘 아침에도 누군가 이 길을
부들부들 떨면서 지나갔던 거다

문(門)


가지 말아야 했던 곳
범접해선 안되었던 숱한 내부들
사람의 집 사랑의집 세월의집
더럽혀진 발길이 함부로 밟고 들어가
지나보면 다 바깥이었다

날 허락하지 않는 어떤 내부가 있다는 사실,
그러므로 한번도 받아들여진 적 없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사람으로서 나는 지금
무엇보다도, 그대의 텅빈 바깥에 있다

가을바람 은행잎의 비 맞으며
더이상 들어갈 수 없는 곳에 닿아서야
그곳에 단정히 여민 문이 있었음을 안다

오늘 아침에도 누군가 이 길을
부들부들 떨면서 지나갔던 거다

지리산


강의 동쪽 하동에서 토지문학제 현수막을 봤다
악양 지나 화개 가는 길 양옆으로
감나무밭이 한창이다
보퉁이를 든 초로의 여인들이 탔다가 내렸다가 했다
제16대 대통령 선거 입후보자들도
버스도 11월도 덜덜덜 떨면서 춥다
최참판댁을 물었더니 운전사는
하동군 악양면 평사리 어디일 거라고 한다 유명하다
시절은 수상하여 당사주에나
악양의 명도에게나 역마살 묻고 싶은 날
해가 서서히 떠오르면서 섬진강은 어둠을 벗고
모래 위를 등뼈 하나로 밀고 가는 목선 한 척을 그려 낸다
용이와봉순이와 길상이를 실어 나르던 강물최서희가 한 세월 뒤 김서희가 오르던 물결
단풍져 수척해진 산굽이를 돌아간다
섬진강은 거슬러 흐르는 강
저 나룻배에 구름처럼 올라 쓴 소주에

문어 다리나 씹고 싶은데
역사 속으로도 역사 소설 속으로도 들어오지 못하고
저렇게 산으로 갔을 어둔 이름 숨죽인 발자국들이
모래밭을, 모래알을, 모래알로 부서진 꿈을
헐벗은 전신으로 다져주고 간다
시절은 하 수상하여,
제 나라의 오지로 유배 가는 자들 끊이지 않고,
구례 경계 넘어 허허한 가을 들판 지날 때
나는 문득, 토지 가라오께, 간판을 본 것 같다이곳은 토지면이며 다시 환란의 시대가 온다고
만주에서 막 돌아온 홍이 같은 표정으로 운전수가
돌아보며 말했다 이럴 수가, 나는 잠에서 깨어나
내가 너무 깊이 들어와버려 가늠조차 할 수 없게 된
대지의 저주받은 산, 지리산 생각이 났다

해설


이영광의 유비적 사고

황현산



이영광은 유비적으로 사고하는 시인이다. 그는 세상의 사물이 제 마음의 한 표정이거나 제가 지녀야 할 심정의 지표라고 생각한다. 그는 사물의 본질과 제본성을 함께보고 싶어한다. 이는 그가 견고한 삶을 처음부터 원했기때문이기도 할 것이며, 그 견고함을 쉽게 확보할 수 없었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우리 시대의 다른 여러 젊은시인들이나 인문학자들과 마찬가지로 해답이 늘 뒤로 연기되는 일을 하고 있는 그에게 삶의 단단함을 확인해줄것은 무엇일까. 그는 자신의 행동 하나하나가 확실한 근거와 연결되어 있고 제 입에서 나오는 낱말 하나하나가풍요로운 의미에 닿아 있기를 바라지만, 그의 작업과 생

존 자체가 불확실한 토대 위에 얹혀 있어, 견고한 의지를소외시킬 뿐만 아니라 자주 그 진실성을 의심하게 한다.
삶이 중간지대에서 서성이 있다는 것은 최초의 순결한 의지가 죄와 부정으로 왜곡되어 제 길을 올곧게 짚어가지 않았거나, 최소한 자신과 세상에 바쳐야 할 성의가 여전히 부족함을 어쩔 수 없이 증명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운명 의식 같은 것이 생겨나는 것도 아마 이때일 것이다.
그것은 있는 것이 당연히 있어야 할 자리에 있을 때가 아니라, 있는 것이 왜 하필 그 자리에 있는가를 묻게 되면서 시작될 터이다.

한 인간의 유비적 사고는 그에게 불확실한 것들 너머에서 확실한 것을 엿보게 하고, 그의 신산한 삶을 어떤거룩하거나 순결한 뜻에 연결시키고, 그리고 무엇보다도그의 본성을 왜곡과 부정으로부터 복성시키는 계기를 담고 있다. 그는 자신이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고 있다고굳게 믿는다. 그러나 유비적 사고가 사람을 항상 행복하게만 하는 것은 아니다. 어쩌면 그 반대일 때가 더 많다.
그는 사물의 담장 위로 올라가 사물 너머를 잠시 보았는데, 거기에서 본 것은 빛이 아니라 어둠이며, 그 자리는지금 이 자리와 다름없는 폐허일 수 있다. 그가 광휘의정원을 보았다고 해도 사정은 마찬가지이다. 찬란한 꽃

나무들은 그의 소유가 아니다. 그것들은 그와 무관하게 거기 있을 뿐만 아니라 이 비루한 삶을 조롱하기 위해거기 있다. 그가 그것들을 어쩌다 손에 쥔다 하더라도 그것은 상품과 매음의 형식으로 그것들이 벌써 타락한 다음의 일이기 십상이다. 이때 그가 본 것은 그 찬란함이아니라 그 몰락의 시작이다. 이영광의 유비적 사고에는삶의 진실에 닿으려는 열정이 짙게 배어 있지만, 그의 언어로 유비되는 것은 어떤 진실의 얼굴이 아니라 그것을향한 진행의 힘겨움이며, 바로 이점에서 그의 시는 이런저런 자연친화적 시나 지혜나 자연을 내세운 온갖 깨달음의 시와 구별된다.

음의 시와 구그의 유비는 어떤 깨달음이나 발견의 결과가 아니라유비의 노력을 유비하며 유비 그 자체를 유비할 때가 많다. 첫 시 「직선 위에서 떨다」에서 시인은 "고운사 가는같‘의 아름다운 벼랑 끝에서 외나무다리 하나를 건너간다. 이 "수정할 수 없는 직선은 한 인간의 정신을 그 예기로 관통하는 단호한 의지의 길이면서 동시에 그의 크고 작은 상처를 보상하여 위로하는 길이다. 그러나,


문득, 발 밑의 격랑을 보면
두려움 없는 삶도

스스로 떨지 않는 직선도 없었던 것 같다
오늘 아침에도 누군가 이 길을
부들부들 떨면서 지나갔던 거다


직선 위를 걸어가는 사람보다 먼저 스스로 떨고 있는 직선은 곧고 엄혹한 것에 대한 한 개념이 자연의 본질로서 거기 있는 것이 아니라 한 정신이 부단한 연습과 단호한 실천으로 얻어내야 할 것임을 말한다. 시인이 자기보다 앞서 그 외나무다리를 건너갔을 사람이 부들부들었을 것이라고 믿으려 하는 것도 어떤 소심함을 지적하기 위함이 아니라 엄숙한 길을 건너가는 자가 지불해야할 용기를 다시 확인하기 위함일 뿐이다. 

옛 사람이 갔던길이 여기 있지만 앞사람의 떨림이 뒷사람의 떨림을 면제해주지는 않는다. 또 다시 자기 책임으로 그 직선을 건널 때만 위험하고 여유없는 길을 엄정한 길로 바꿀 수 있을 것이다. 길이 건넘을 부르는 것이 아니라 건념의 용맹이 길을 길답게 한다. 숨은 진실이 유비를 요구하는 것이아니라 진실을 욕구하는 마음이 유비를 만든다. 숨은 진실 같은 것은 거기 없을지 모른다. 유비되는 것은 곧은길이 아니라 거기에 진실한 유비가 있기를 곧게 바라는 마음일 뿐이다. 이 점에서 이영광의 유비는 영감받은 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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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가 사회에서 배제되었다고 느낄 수 있는 소소한방식들은 수도 없이 많다. 나의 경우엔 이런 기억들이 있다. 학교에서 연필이 없어 항상 연필을 빌려야 했고, 하나있다고 하더라도 잘근잘근 씹은 자국이 난 5센티미터도 안되는 몽당연필이라 놀림을 받고 조롱거리가 되었던 경험.
책을 거의 가지고 다니지 않아 선생님이 시키는 대로 다른아이의 책을 같이 보거나 잠시 다른 아이의 책을 들여다봐야 해서 나라는 존재는 방해가 되며, 다른 친구들을 성가시게 한다는 죄의식과 모욕감이 같이 부대꼈던 감정들. 늘상입을 속옷이 없어 특히 학교 운동장에서 아무도 알아채지못했으면 하고 바랐던 순간들, 양말이 없어서 아버지의 양말을 신고 발목 한참 위로 올라온 큰 양말 때문에 체육 시간에 신발을 벗어야 할 때면 수치심으로 시들고, 선생님이전 학급 앞에서 가지고 있지도 않은 학교 스웨터를 1월 중순인데 왜 입고 있지 않냐고 물었던 경험, 지각할 때 모든눈이 나에게 쏠릴 창피함에 대비해 마음을 단단히 먹으려고 교실 문밖에서 10부터 거꾸로 세었던 순간들.  - P47

경험들을 통해 내가 반 친구들과는 다르고 다른 학생들과나 사이에 거리가 있다는 사실을 이해하게 됐다.
물론 그 당시에는 내 경험을 정확하게 명명할 수 없었다. 단지 명백하게 합당한 이유들로 동네 이웃과 학교에서내가 다르게 여겨진다는 사실을 알 뿐이었다. 나의 환경에문제가 있는 상황이라는 사실을 알았고 그 생각은 옳았지만, 내가 그 그릇됨의 한 부분이었다고 믿은 것은 실수였다.
성인이 되어 범죄학과 사회학을 공부했지만 그 내용들은 책을 통해 알기 오래전부터 이미 삶에서 접했던 것들이었다. 이후에 그런 상황들과 분리된 환경에서 이런 주제들을 공부하니 이상하고 초현실적이었다. - P48

나의 성배배 유입은 경제적 빈곤과 사회적 소외로 조장되었다. 경제ㆍ사회적 결핍은 보통 남성과 여성에게 약간다르게 영향을 미친다. 두 젠더 모두 범죄에 끌리지만 젠더이 따라 구체적인 범죄 형태는 달라진다. 경험상 마약의 경우 남성들은 거래를, 여성들은 운반을 하는 경향이 있다.
철도의 경우 남성은 무장 강도가 되는 경향이 좀 더 높고내가 알던 소매치기의 대부분은 여성이었다. 성매매에도젠더 차가 있는데, 남성들은 자신의 몸을 팔기보다는 포주의 역할로 이윤을 챙기고 통제를 시도하는 경향을 보인다.
사건이지만 내면에 스며드는 범죄성을 정당화할 수 있을 만큼 극빈한 상태와 경제적 궁핍 정도가 심한 사람들을 많이도 목격했다. 탈성매매한 지 몇 년 뒤 학업을 시작하고 1년쯤 되었을 때의 예를 하나 들 수 있겠다. 파넬 거리를 걸어가고 있을 때였는데, 한 노숙인이 내게 다가왔다.
꾀죄죄하고, 누더기를 입은 채 엉겨 붙은 수염이 더럽고 길었다. 그는 적어도 40세, 아니 45세 정도로 보였다. 그 사 - P48

람이 내게 말을 걸었는데 그 말이 충격적이어서 한 대 얻어맞은 것 같았다. 그가 말했다. "레이첼, 너 나 기억 못 하니?
나야, 존!" 그는 얼굴에 함박웃음을 띠면서 말을 했다. 나를만나 무척 기뻐했다. 수염과 지저분함, 거친 피부를 넘어그의 눈을 보았다. 똑같이 날카로운 푸른색이었고, 눈 뒤에숨은 활기 그대로 즐겁고 장난기 어린 빛을 뿜어냈다. 정말존이었다.
존과 나는 1990년 여름 동안 청소년을 위한 정신 질환심사 센터에 있었다. 당시 우리는 둘 다 열네 살이었다. 나는 그때 쉼터에서 유예 처분을 받고, 위탁 가정에서 쫓겨난채로 학교에서는 퇴학을 당했는데 이 모든 일이 몇 주 만에한꺼번에 일어나서 그곳에 배치되었다. 열두 명 정도 되는아이들이 수용 시설에 있었지만 존과 나는 잘 통했다. 우리는 항상 웃었다. 시설 안에 방 하나로 만든 학교가 있었는데 우리 둘은 눈만 맞았다 하면 웃어서 선생님께 혼나 수업시간에 억지로 존을 보지 않으려고 했던 적도 있었다.  - P49

결국엔 정신 질환 심사에 질려 그곳을 나와버렸다. 그날 이후로존을 보지 못했고, 파넬 거리에서 다시 만나기까지 10년이흘렀다. 10년. 존은 서른이 되었다. 열여덟 살 이후로 쭉 노숙을 했다고 말했다. 정부 보호를 받는 아동이 열여덟 살이되면 자립하리라 기대한다. 존은 가라앉거나 헤엄칠 수 있었다. 존이 그랬듯 많은 이들이 가라앉았다.
족히 몇 분간 얘기를 나눈 뒤 존이 포옹 인사를 하려고팔을 내밀었다. 존을 안자 냄새 때문에 현기증이 일었는데바로 죄책감이 들었다. 걸어오면서 나는 울었다.
우리가 만나고 헤어진 그날, 존은 그게 뭐가 됐든 이제까지 그가 살아오던 방식으로 돌아갔을 것이다. 비슷하게 - P49

절망적인 처지에서 내가 그랬듯이 살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으로 훔치고 사기 쳤으리라.
범죄 발생은 경제적 결핍이나 사회 배제와는 아무런 관련도 없으며, 단순히 악의 존재로 설명될 수 있다는 말을들은 적이 있다. 1990년대 초반 나는 존과 같은 젊은이들을 많이 만났고, 나 또한 그러한 청소년이었다. 우리를 그자리로 데려다 놓았던 일들은 악과는 거리가 멀었다. - P50

그녀는 자연적이고 치유가 되는 수많은 영향력을 피해 은둔했기에, 창조주가 지정한 순리를 모든 마음들이 거스르듯, 거슬러야만 하듯, 거스를 것처럼 음울하고 고독한 그녀의 마음은 질병으로 번졌다.
-찰스 디킨스, 『위대한 유산』

가장 눈에 띄는 어머니의 병세는 세상에 대한 두려움이었는데, 당신 자신과 아이들 모두를 염려했다. 아이 다섯의활동 영역을 집으로 제한하고, 학교와 동네 가게 외 다른곳에는 거의 가지 못하게 하는 그런 종류의 두려움이었다.
이웃집 아이들과 놀거나 사귀는 건 허락되지 않았다. 이웃에게 ‘안녕하세요‘라고 인사를 건네면 어머니 말씀을 무시하는 행동이어서 물론 당신의 말에 따르면 우리가 살던 더블린 북쪽 시내에 위치한 주거 단지를 드나들 때 조용히 해야 하는 걸로 알고 자랐다. 이런 행동들은 우리가 입고 있던 더럽고 낡은 옷들과 더불어 자연스럽게 동네 주민들의 눈에 띄어 더 구별되었다. 이웃집 아이들도 우리를 그렇게 대했는데(그 아이들이 정말로 알고 그런 행동을 했다고 생각지는 않지만), 매일 같은 놀림은 잔인했고, 소외감을 더욱 증폭시켰다. 결과적으로 이런 상황은 우리를 고립시키려는 어머니의 성향을 부채질했다. 질환의 한 현상이었을 뿐이었는데, 갈수록 더 충격적인 방식으로 드러났다. - P53

돌아보면 내 어린 시절은 마치 살아 있는 척도와도 같았다. 불안정한 마음의 진행을 재는 불가사이하게 정확한측정 방법 말이다. 여덟아홉 살 무렵 짧은 시간 안에 꽤 심각해졌던 말더듬증을 예로 들어 볼 수 있겠다. 운 좋게도오래 지속되지는 않았다. 어머니는 언어 교정 방법으로 내가 말을 더듬을 때마다 얼굴을 힘껏 때렸고 나는 아픔과 함께 전기 불빛이 크게 파열하듯 눈이 부시게 번쩍이는 빛을보며 충격과 두려움에 휩싸였다. 그래도 효과적이었다고인정해야겠다. 어머니는 그야말로 말더듬증을 놀래서 쫓아냈고 그 이후로 재발하지 않았다. 가장 잔혹한 유년 시절기억 중 하나는 부엌문을 열었을 때 엄청나게 커다란 피 웅 - P53

덩이 속에서 의식 없이 쓰러져 있는 어머니를 발견한 일이다. 당시 나는 아홉 살쯤이었다. 아주 어린 나이가 아니었는데도 피가 어머니 몸 사방으로 1미터 넘게 퍼져 있어 작은 호수같이 보였다. 그 후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어머니는 며칠 후 그때 입고 있던 코트를 그대로입고 집에 오셨는데 코트는 밤색이 된 마른 피로 범벅이었고 만성 빈혈로 피 2리터를 수혈받아야 했다는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중얼거리셨다. 가족 중 어느 누구도 어머니가 자살 시도를 했고 거의 돌아가실 뻔했다는 진실을 언급하지않았다. - P54

문제 가정의 균열은 어디서부터 시작될까? 가족이 형성되기 전부터 시작된다. 상처는 어울리지 않는 두 사람의 만남 속에 이미 도사리고 있다가 이 파괴력이 잠재된 사랑으로 창조된 아이들을 통해 존재한다. 인간이라면 그렇듯 부모님 두 분 모두 사랑이 주는 위로를 향해 손을 뻗었는데안타깝게도 그 손이 서로를 향했다. 결함이 있고 균열됐을지라도 사랑이 존재했기에 내가 이 자리에서 그 결과를 기록할 수 있고 물론 운이 좋았다고 생각한다. 때때로 인생이그렇듯 고단했고 유년 시절 감정적으로 고되었지만 내 인생이었고, 나는 언제나 인생을 사랑했다. 삶을 살아가는 일보다 그저 살아 있다는 사실을 더 사랑했던 때가 있었을지라도 삶을 떠나보내야겠다고 생각한 날은 드물었다.
문제 가정을 설명하는 말들이 우리 가족에게 꼭 들어맞지 않기도 한다. 와해, 퇴보, 악화와 같은 단어들은 한때 건강했거나 온전했음을 전제한다. 우리 가족은 와해되지 않았고, 태생부터 깨져 있었다.
아버지는 어머니를 만나기 14년 전인 열여덟 살에 처 - P54

신경쇠약을 경험했고, 어머니도 10대부터 이상하하기 시작해 아버지를 만나기 전 10년 정도의 기간계속 정신 질환을 앓던 중이었다. 심각한 정신 질환에을 받은 이 두 사람이 서로의 짝이 됐을 때 어머니는스플릿, 아버지는 서른들이었다.
아버지는 신경쇠약을 처음 겪었을 때 성 브렌든 정신병에 갔는데 그때 조울증을 진단받았다. 아버지 가족은 아버지가 인생을 함께할 여자는 안정감을 주어야 한다는 사실을 알았고, 조현증을 앓던 딱한 어머니는 더블린을 통틀이 가장 적합하지 않은 상대였다. 그러나 아버지와 어머니는 만나서 결혼했고 어머니 질환은 조금도 수그러들지 않고 지속적으로 발현되어 결혼 생활과 우리 형제들의 유년기 내내 우리 귀에 바다처럼 포효했다. - P55

어머니 질환은 또 다른 방식으로 표현되었는데, 아버지가 자살한 지 하루 이틀 후 저녁에 나와 오빠를 아버지의단칸 셋방으로 보내 소지품 중 쓸 만한 것이면 무엇이든 모아 오게 했다. 우리 나이는 그때 열셋열넷이었다. 아버지가 세 들어 살던 집은 도시 남쪽에 위치한 라스마인이라는곳이었다. 동네 중심가는 번쩍이는 스완 쇼핑센터 간판으로 뒤덮여 있었다. 그날 그 쇼핑센터 간판을 처음 봤는데, 그 이후로 그 간판만 보면 깜깜했던 11월 밤의 기억이 되돌아온다. 저녁 8시 정도밖에 되지 않았으나 하늘은 어두웠고, 이에 비해 간판 불빛이 너무 밝아 실내 상점이 밀집한 통로에 놓인 비디오 게임과 핀볼 기계가 떠올랐다.
아버지 단칸 셋방에 가보니 한쪽 구석엔 작은 싱크대를, 다른 쪽 구석엔 침대를 놓아 공간을 구분해보려고 볼품없는 시도를 했건만 예전에 봤던 원룸들과 다를 바 없이 가 - P55

축우리 같았다. 부모님이 별거할 때마다 아버지가 새로운방을 구하는 일이 자주 있어서 수년간 비슷한 원룸을 많이봐왔다. 그때가 마지막으로 부모님이 물리적으로 갈라섰던때였는데 가족 문제가 생길 때마다 아버지는 없어도 되는구성원이라고 늘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던 방식이 가족 갈등에서 내가 기억하는 잔인함이다. 그렇기에 나는 별거하는 아버지들에 대한 깊은 연민을 무거운 짐처럼 늘 짊어지고다닌다. 왜 그런 감정을 느끼는 지 알기 쉽다.
오빠와 나는 그 단칸방에 서서 둘러보았다. 여기에는와본 적이 없었다. 그곳은 유별나게 작았고 아버지가 마지막으로 머물렀던 곳이라 그런지 우울함 같은 특별한 기운이 있었다. 죽음만이 가져올 수 있는 끔찍한 최후의 느낌과밀접하게 연관된 수모와 수치스러운 가난의 냄새가 밴 애처로운 슬픔의 감정. 그곳엔 유독 아버지의 죽음과 연관된요소들 외에도 전에 경험해본 적이 없는 무겁고 암울한 최후를 품어내는 향기가 있었다. 어머니는 조금이라도 쓸모가 있거나 가치가 있는 것이면 모두 가져오라고 했지만 실제로 가져갈 것이 별로 없었다. 오빠와 나는 거기 있는 동안 거의 말을 하지 않았고 마치 우리 행동이 아버지께 모욕이 되는 양 매우 조용하게 말했는데, 어른이 된 나의 눈으로는 우리가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다는 사실에 아버지께서 더 모욕감을 느끼셨을 거라고 생각한다.  - P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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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눈


두 시간 강의하려고 세 시간 기다리는
지방 사립대학 휴게실 창 너머 첫눈 내리는 날
태화산 팔부능선을 천천히 지우고
문득, 눈발은 사라졌다가
산기슭의 페어웨이를 휩쓸어온다
달아오른 찻잔을 만지며 나는
눈발을 움직이는 힘이
보이지 않는 바람이었음을 안다
그래, 눈보라는 바람의 알몸과
알몸을 불에 덴 듯 날뛰게 하는
막무가내의 마음을 보여준다
눈앞에 죽음이 어른거리는데도
비명 지를 수 없는 병자처럼
유리창을 움켜쥐는 바람의 손바닥들
오늘은 그가 아무리 작게 두드려도
심하게 흔들릴 것만 같다
사람 기다리는 일, 정처 없어도 깊어질 것만 같다
그러나, 시간 묻는 취객처럼
깜짝 찾아왔을 뿐인 기다림
뜨거웠던 찻잔을 식히고
휴대폰 진동 신호음에 놀라는 마음의
떨림은 오후 수업 끝나면 방전되어
저 산 어딘가에 지친 눈발들을 조용히 눕히고 있으리라

단풍나무 한그루의 세상


자고 난 뒤 돌아앉아 옷 입던 사람의 뒷모습처럼
연애도 결국은,
지워지지 않는 전과로 남는다
가망 없는 뉘우침을 선사하기 위해
사랑은 내게 왔다가, 이렇게
가지 않는 거다
증명서가 나오기를 기다리며
교정의 단풍나무 아래 앉아 있는 동안
이곳이 바로 감옥이구나, 느끼게 만드는 거다사람을 스쳤던 자리마다
눈 감고 되돌아가 한번씩 갇히는 시간
언제나 11월이 가장 춥다
모든 외도를 지우고
단 한사람을 기다리는 일만으로 버거운 사람에게
이 추위는 혼자서 마쳐야 하는 형기?
출감확인서 같은 졸업증명서를 기다리며
외따로 선 나무 아래 외따로 앉아 있는

추운 날
붉고 뜨거운 손이 얼굴을 어루만진다
혼자 불타다가 사그라지고 다시 타오르는
단풍나무 한그루의 세상
무엇으로도 위로할 수 없는 순간이 있고
떨어져서도 여전히 화끈거리는 단풍잎과
멍하니, 갇힌 사람이 있고
인간의 습성을 비웃으며 서서히 아웃되는 새떼들이 있다

단풍


산들도 제 고통을 치장한다

저 단풍 빛으로 내게 왔던 것
저 단풍 빛으로 날 살려내던 것

열려버린 마음을 얼마나
들키고 싶었던가
사랑의 벗은 몸에 둘러주고 싶었던가

불난 집처럼 불난 집처럼 끓어
마침내 잿더미로 멸한다 해도




산을 보면, 들어가고 싶어진다
산에는
안이 있다

그곳에서,
돌들은 뜨겁게 달아
알이 되고
몸은 묻혀, 천년의 영혼이 된다

역사보다도 더 오래고 질긴 바람,
악써 반음 높여 노래하던 길들은
어떻게 산 속으로
사라졌을까

너무 먼 길 가다
철퍼덕
주저앉았을 때 들던 생각,

망가진 생을 견인해 가려는 듯
불끈 엎드린 길을
껴안고 싶을 때 들던 생각,

몹쓸, 인간의 바깥에도
멀고 먼 안이 있다
들어오라는 듯
들어오지 말라는 듯,
산에는
문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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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한장 읽기 어려운 오늘,
첫눈이 내렸다.


처음으로 돌아가 그 첫 번째 질문에 대한 대답으로 시작할까 한다. 어린 시절 우리 집은 전형적인 문제 가정이었다. 부모님 두 분 모두 우리가 살던 곳에서 가까운 성 브렌던 정신 병원의 환자들이었다. 그 병원은 우리가 살던 더블린 북쪽의 공영주택 부지에서 걸을 수 있는 거리에 있었다.
건강 기록에 어머니는 성 브렌던 병원 외래 진료 환자이며, ‘조현증으로 사료된다‘라고 쓰여 있다. 아버지는 조울증의 상태에 따라 외래 진료와 입원을 반복했다. 두 분모두 중독에 시달리고 있었다. 어머니는 처방 약에, 아버지는 강박적 도박 유혹에 말이다. 부모님을 원망하지는 않는다. 두 분은 나쁜 사람들이 아닌 아픈 사람들이었다. 이런단순한 사실들로 눈물을 자아내고 싶지는 않다. 성매매에유입되기 바로 전날까지도 상상조차 불가능했던, 해로우면서도 우울하고 파괴적인 생활 방식에 어떻게 유입되었는지를 이해하는 데 그 사실들이 중요하기 때문에 기록할 뿐이다. - P29

성매매로 첫 소득을 얻어 다른 직업을 경험해보지 않은나 같은 사람의 경우에는 특히나 그럴 것이다.
주변에서 매일같이 마주치는 바람직한 사회 모습 중 어떤 한 부분에 내가 속할 수 있는 곳이 있을 것이라고는 단언컨대 절대로 상상할 수조차 없었다. 이 사실에 대해서 그리고 나 자신에게도 엄청나게 분개했었다. 이른 저녁 성매매 집결지로 걸어가는 길에 동네 은행 유니폼을 입고 걸어가는 한 무리의 젊은 여성들을 보면(배곳 거리에서 흔히 그랬듯) 정당화하거나 설명할 수 없는 질투심과 분노의 큰 파도가 덮쳐오는 것을 느꼈다. 내가 배제된 세상에서 그들은 이 사회 구성원으로 용인되어 있다는 사실에 극도로 싫은 감정을 느꼈다고, 여러 해가 지나고 내 자신의 감정을 면밀히 본 후인 오늘날에야 알게 되었다. - P34

몇 년이 지난 후에는 어떤 공식적 범위 안에서 그 세월들을 설명할 수 없음을 갑자기 깨닫게 되는 순간이 온다.
예를 들어, 성매매 여성이 이력서를 작성한다면 금방 채울수 없는 빈 페이지를 들여다보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것이다. 되돌아가기 불가능한 길을 택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그 길 위 어딘가에서 심지어 보고 있지 않을 때 뒤에서 문이 탁 닫혀버렸다. 이제는 돌아갈 길이 없어 보인다. 법의 기준에서는 범법자일 뿐 아니라, 이제 공무원 같은 공직자들에게 자신에 대해 조금도 설명할 수 없게 됐음을 깨닫는다. 그래서 사회로부터 더욱더 분리되고, 항상 느껴왔던 느낌을 확인하며 조합하게 된다. 점점 더 분리되고홀로 고립돼 더욱 우울해진다. 일반 대중들로부터 갈수록멀어지고 급락은 계속된다. 계속, 계속, 그리고 계속.
- P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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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첼 모랜 Rachel Moran

아일랜드 더블린 북부에서 자란 저자는 불우한 가정 출신으로 열네 살에 정부 보호를 받게 되었다. 노숙 생활을 전전하다가 열다섯살에 성매매에 유입되었고 이후 7년간 더블린을 비롯한 여러 도시들에서 착취당했다. 1998년 22세에 성매매에서 벗어난 후 24세에 더블린시티대학에 진학하여 저널리즘 학위를 취득하였으며, 언론에 탁월한 능력을 보여준 학생에게 수여하는 하이브리드 어워드를 수상한 바 있다. 성매매와 성착취 인신매매에 대항해 국제적으로 활동하고 있다. 현재 더블린 북부에 산다.
(저자의 웹사이트: http://theprostitutionexperience.com)

옮긴이 안서진

성매매가 불법인 한국과 전면 비범죄화된 호주 시드니에서 성착취를 경험한 내담자들을 지원했다. 성매매 산업 내에서 작동하는 여러 기제들과 한 개인으로서 겪은 성매매 경험을 오가며 다층적이고 심층적으로 고찰하는 레이첼 모랜의 글이 한국의 독자들에게잘 전달될 수 있도록 저자와 지속적으로 소통하며 번역하였다. 한국의 성매매 경험 당사자들이 각기 다른 맥락에서 경험한 성매매와 치유의 과정들은 어떻게 이 텍스트와 만나고 빗겨 가는지, 그담론이 독자들의 능동적 읽기를 통해 피어나기를 희망한다.

추천사

정희진(여성학 연구자)


글쓰기의 정치학과 윤리를 생각한다.

이 책은 아일랜드의 페미니스트 레이첼 모랜이 자신의성산업 유입 경험과 사유를 다룬 소위 ‘당사자actors‘가 쓴글이다. 물론 당사자의 글이라고 해서 저절로 진실, 팩트가확보되는 것은 아니다. 문제는 세상의 모든 글과 마찬가지로, 삶과 앎에 대한 글쓴이의 해석이다. 나는 이 책에서 두가지를 배웠다. 글쓴이만이 경험한 성매매와 글쓰기 태도가 그것이다. 이 책은 좋은 글의 조건 세 가지인 당파성, 윤리성, 미학을 모두 갖추었다.
- P8

성산업, 특히 한국사회의 성산업 양태는 대단히 다양하다. 발성매매 과정에 있는 여성들을 40년 넘게 지원해온 페미니스트에게도 생소한 성매매가 매일 출현하고 있다. 유형뿐 아니라 로컬의 정치경제학이 다른 만큼 성산업에 종사하는 여성의 경험은 다양하다. 또한 남성 구매자와여성의 권력 관계도 가부장적 ‘구조를 넘는‘ 개별성이 존재할 수 있다. 이처럼 성매매의 복잡성과 다양성에도 불구하고『페이드 포』는 성매매의 본질을 정확하게 전달한다. 성매매에 대한 ‘교과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성매매만큼 여성에 대한 폭력gender based violence언설을 남성이 독점하고 있는 영역도 드물 것이다. 그들은
"(성구매를) 직접 경험해본 사람으로서 말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일부 남성 진보 세력은 계급적 관점에서 자신이 기 - P8

층 민중인 그녀들을 ‘더‘ 걱정하고 ‘잘‘ 대변한다고 주장한다. 반면, 페미니스트들은 경험이 없어서, 성산업에 종사하는 당사자들은 낙인의 위협 때문에 침묵해야 했다. 성폭력이나 가정폭력보다 성매매는 여전히 ‘피해자‘ 논쟁으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즉 피해자가 있는 범죄가 아닌 자연스러운 일상 문화로 인식되기 때문에, 아무도 제대로 모르지만모두가 안다고 생각한다.
젠더와 계급은 성별화된 자원 교환, 노동의 성애화, 섹슈얼리티의 매춘화, 성매매로 ‘수렴된다‘. 일상적 문제일수록 본질을 직면, 인식하기 어렵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즈음,
리얼돌(sex doll, 맞춤형 인형, 강간 인형)에 대한 논의가한창인데, 판매 허가를 요구하는 목소리는 우리 사회의 상황을 정확히 반영하고 있다. "대한민국 남성은 야동도 못보고, 성매매도 못 하고, 여성을 제대로 쳐다보지도 못한다. 대한민국에서 남성으로 살아가는 것이 참으로 힘든 일이 되었다. 최소한의 남성 인권을 보장해달라." 무슨 말을하겠는가. - P9

페이드 포의 저자는 7년 동안 성산업에 종사하였다.
글쓴이의 포지션, 누가 말하는가는 페미니즘의 중요한 이론적 주제이다. 모든 글쓰기는 자기 재현이지만, 경험이 저설로 글이 되는 것은 아니다. 경험은 정치적, 인식론적으로선택되고 구성된 기억이다. 체험과 글쓰기는 또 다른 영역이다. 경험과 지식, 독서량과 무관하게 글에는 소재의 제한이 ‘있다‘. 당사자이기 때문에 쓸 수 있는 글도 있지만, 실은 당사자이기 때문에 쓸 수 없는 혹은 쓰기 어려운 글이 훨씬 더 많다.
1999년 4월, 미국 콜럼바인 고등학교에서 발생한 총 - P9

기 난사 사건의 가해자이자 현장에서 자살한 학생의 엄마가 쓴 책 「엄마의 고뇌: 비극 이후를 살아낸다는 것Mother‘s Reckoning Null- Living in the Aftermathof Tragedy』의 한국어 제목은 "나는 가해자의 엄마입니다"이다. 한국 독자를 위한 의도적 오역인 듯하다. 이 책은글쓴이가 자신을 가해자의 엄마로서 정체화했다면, 세상에나오기 어려운 글이다. 피해자들에 대한 죄의식과 아들에대한 그리움을 맨정신으로 버틸 수 있는 여성은 많지 않다.
그녀는 ‘청소년 자살 예방운동가‘로서 살아가고 있고, 책도그 관점에 충실하다.
‘특별한 경험‘을 겪은 당사자의 글쓰기가 이토록 어려운 것이다. 오해와 낙인으로 가득한 고통스러운 경험에 대해서는 더욱 그렇다. 고립감, 자기 연민, 자기 방어, 자의식을 지양하는 글쓰기는 "죽었다 깨어났다"라고 말하는 환골탈태, 재탄생의 과정이다. 이 책은 이러한 문제를 ‘극복‘했을 뿐만 아니라 독자를 새로운 세계로 안내한다. 물론, 여기서 새로운 세계란 성매매 제도라기보다는, 그것을 경험한 사람의 사유이다. - P10

안드레아 드워킨은 가부장제 사회의 규범적 섹스, 삽입intercourse 자체가 폭력이라고 보았다. 섹슈얼리티는 성교가 아니다. 생리, 피임, 낙태부터 매 순간 권력관계요, 노동이다. "원 나잇 스탠드조차 깔끔하지 않다." 성폭력 피해 표현 중에 "he insides me(그가 내 몸 속으로 들어왔어요)"가 있는데, 비슷한 맥락일 것이다. 『페이드 포』의 저자는 이를 다음과 같이 표현한다. "성구매자들이 내 몸 안에서 움직인다고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견디기 어려웠다.
그 생각만으로도 몸이 아팠다(p.94)" 나 역시 느꼈던 폭력 - P10

적 상황. 적어도 내게 유리하지 않은 상황에서 몸의 이물감을 수없이 겪는다. 정말, 생각이 몸을 아프게 하는 것이다.
이 책은 이렇게 한 구절 한 구절, 나를 깨닫게 했다. 성구매자 중에서 ‘변태‘가 ‘일반적인‘ 구매자들보다 상대하기 좀더 수월하다는 사실에도 크게 공감했다. 많은 여성들 역시그럴 것이다. ‘대놓고 문제적인 남성보다 가족, 아는 사람,
동료와의 평범한 인간관계가 더 피곤하고 많은 노동을 요구한다.
이 책이 한국사회의 성매매 인식 변화에 기여하기를 소망한다. 성매매에 대한 무지와 오해 자체가 폭력이다. 성매매는 상업화이어서, 비윤리적이어서 문제가 아니다. 몸과섹슈얼리티를 연구한다는 이들조차 이러한 인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한국 사회에서 ‘상업화되고 비윤리적인‘ 문제는, 성매매 말고도 널려 있다. 성매매의 핵심은 성별성이지 상업성이 아니다. - P11

마지막으로 ‘성노동‘ ‘성노동자‘ 용어에 대한 나의 분노를 분명히 하고 싶다. 이 책에 나와 있듯이 성노동은 미화된 용어이기도 하지만, 실제로, 노동이다. 성산업에서 종사하는 일은 당연히 노동이다. 그러나 "노동이어야 한다. 노동으로 인식되어야 한다"라는 주장은 전혀 다른 논리다.
‘성노동‘은 성매매의 핵심, 즉 왜 이 노동이 여성에게만 부여되는지를 설명하지 못한다. 나는 성매매를 성폭력으로환원시키는 입장에 동의하지 않지만, 폭력을 행하는 것도당하는 것도 노동이다. 성산업에서 여성이 하는 일은 중노동이고 위험한 노동이다. 여성이 사망해도, 공권력도 가족도 나서지 않는 보이지 않는 노동이다. ‘성노동‘ 담론이 여성 혐오에 근거한 무지의 산물임에도 한국 사회에서 그럴듯하게 통용되는 이유는, ‘노동의 신성화‘라는 서구 근대이데올로기를 벗어나지 못하는 식민주의 인식 때문이다. - P11

한국 독자들


이 책은 2013년 봄에 아일랜드에서 처음 출간되었습니다. 그 후 20여개국이 넘는 나라들을 방문하며 여러 도시들에서 행사와 텔레비전 방송 등에 참여하며 공적•사적 자리에서 성매매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전 세계적으로 성매매에 유입된 여성들, 그리고 그들을 지원하는 분들과도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여러 국가들을 방문하면서 어떤 곳에서든 똑같은 일들을 보고 듣게 된다는 사실을 빠르게 깨달았습니다. 미국에서 온 흑인 여성이건 캐나다에서 온 원주민 여성이건 유럽에서 온 백인 여성이건 인도나 필리핀에서 온 동양 여성이건 여성들의 삶은 놀랄 정도로 닮아 있었습니다. - P18

성매매되는 사람들은 취약 계층 출신이라고 늘 생각해왔습니다. 제 고향인 아일랜드에서 그런 경우를 너무나 많이 봤기 때문입니다. 10대 때 저와 같이 성매매되던 다수는쉼터에서 함께 지내는 아이들이거나 다른 쉼터에 사는 아이들이었습니다. 우리는 모두 가난, 중독, 정신 질환, 성학대가 한두 가지 혹은 모두 뒤섞인 불우한 가정 출신이었습니다. 물론 어떤 경험이든지 문화의 영향을 받기 마련이지만 성매매 경험에는 보편적인 현실이 있기에 여느 나라의여성들처럼 한국의 여성들에게도 그 현실이 존재한다고 믿을 수밖에 없습니다.
인간의 경험을 설명하는데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가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언어는 상황에 대한 우리의이해를 구성하며 특히나 성매매는 아주 절실하게 이해가필요한 영역입니다. 여러가지에 대해 이야기하고, 논의하 - P18

고, 골똘히 생각하고, 궁리해보면서 다양한 상황들에 대한우리의 사고를 되짚어 보아야 합니다. 하지만 한 가지 염두해야할 점이 있습니다. 거의 4천만 명의 여성이 전 세계적으로 성매매라는 구조 안에서 학대된다고 추정됨에도 불구하고 전체 인구에 비하면 여전히 적은 수이기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성매매를 경험한 적이 없이 성매매에 대한이야기를 한다는 점입니다. 더군다나 성매매를 경험한 사람들은 수치심 때문에 이를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성매매를 벗어날 정도로 운이 좋았던 여성들 중 대부분은 그저 상처를 보듬으며 삶을 살아가고 그 경험에 대해 언급하기 꺼려하기 때문에, 공개적으로 이야기하는 경우는 더욱 드물니다. 이로 인해 성매매가 존속되고 비밀스런 상태가 유지되며, 정확하게는 바로 그 비밀스러움이 성매매를 정상적이고 그럴듯하게 채색합니다. 또한 성매매를 그렇게 보이도록 하는 이들은 주로 국제적인 성매매에 이권이 개입되어 있는 사람들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그들이 거짓말을 하게끔 두는 이유는 진실을 말하기가 두려워서입니다.  - P19

저는 그 상황에 있는 여성들과 공감할 수 있습니다. 저 또한 진실을 말하기 두려웠지만, 달라진 점이 있다면 제 자신의 두려움에 의해 조종되기를 거부했다는 점입니다.
한국 독자들에게 전하는 가장 중요한 메시지는 바로 이것입니다. 여러분 중에 성매매를 살아낸 분들은 할 수 있는범위 내에서 부디 말하십시오. 아일랜드에서 우리가 법안을 통과시킬 때 제가 조직했던 그룹의 여성들 중 몇몇은 기자에게, 방송인에게, 정치인 들에게 익명으로 제보했습니다. 그 증언들은 아주 유용하고 도움이 됐습니다. 저를 포함한 다른 몇몇 여성들은 기꺼이 공개적으로 말했습니다. - P19

엄청난 불안과 스트레스, 슬픔을 동반한 일이었고 가족, 특히 아이들을 생각할 때는 더욱 마음 아픈 일이 많았습니다.
큰 희생이었고, 심정적으로 힘들었지만 우리는 2017년 봄에 법안을 통과시켰습니다. 그 법은 인간의 몸을 성적으로접촉하고자 구매하려는 행위를 범죄화하고, 젠더와 관계없이 적용됩니다. 그래야만 하지요.
성매매 경험을 하지 않은 한국분들께는 이렇게 말하고싶습니다. 말하기 위해 앞장선 이들의 말을 주의 깊게 들어주세요. 성매매에 대해선 누구나 자기만의 의견이 있다는사실을 알게 되었지만, 앞서 언급했듯 수치심에 기인한 침묵 때문에 많은 사람들에게 애초부터 필요한 정보가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성매매 경험 당사자들이 말할 수 있도록 격려해주세요.  - P20

라디오 인터뷰든 기자의 기사든 개인적 대화든지 말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부드럽고 긴장되지 않게 환영해주세요. 듣는 이는 진심으로 열린 마음을 가지고 호기심을 표하며, 판단하지 않는 태도를 보여주어야만 합니다. 오랜 세월 동안 사회가 우리 성매매된 여성들을 비난해왔고, 이 때문에 우리가 그렇게 오래도록 침묵해왔다는 사실을 기억해주세요. 우리의 침묵 속에서 폐해는 커져만갔고, 성매매 여성에 대한 사회의 비난과 성매매의 존속은 직접적으로 연결됩니다. 성매매 여성을 향한 편견은 성매매가 살아 숨쉴 수 있는 기반을 제공하고, 실제로 살아 있게끔 기여합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어떤 사안에 대해 이론적으로 더 알게 되면 사고가 진화하여 더 깊이 생각하고 더욱더 총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됩니다. 저 또한 그렇습니다. 책의 출간 후 제 생각, 언어, 정치성이 확실히 함양되었습니다.  - P20

오늘날 다시 이 글을 쓴다면 사용하지 않을 단어들이 있습니다.
바로 ‘성매매 여성‘과 ‘손님‘ 입니다. 성매매여성이라는 용어는 사람이 실제로 자신에게 가해진 것을 체현―그들이바로 그 단어라는ㅡ했다는 의미를 내포합니다. 어떤 면에서는 ‘노예‘라는 단어와 비슷합니다. 저는 더이상 노예라는 단어를 쓰지 않고, ‘노예가 된 사람들‘이라고 지칭함으로써 다음 두 가지를 환기하고자 합니다. 첫째, 우리가 얘기하고 있는 대상은 사람들이며, 노예가 된 상태는 그들에게 가해진 상황이지 그들이 노예의 본질과 같지않다는 사실임을 강조하려 함입니다. 같은 이유로 ‘성매매된 여성‘이라는 단어를 사용합니다. ‘손님‘이라는 단어를 책에 썼다는사실에 대해서 진심으로 후회합니다. 손님이라는 말은 원래 합당한 상업적 교환을 하는 사람을 말합니다. 이 책에서건 다른 곳에서건성매매와 관련한 대화에 그 단어가 등장하면 마땅히 비웃으셔도 좋겠습니다. - P21

독자들께 개인적으로 사인해드릴 때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거의 항상 같은 문구를 씁니다. 현재 성매매에 대한 의견이 어떤지와 관계 없이 제가 말해야만 했던 사실들을 듣기 위해 시간을 들여 이 책을 읽으신 모든 분들께감사합니다. 성매매 구조를 해체할 수 있다고 믿지만 우리는 먼저 말하고 들을 준비가 되어 있어야만 합니다. 한국은2차 세계대전 중 유괴되어 학대당했던 일본군‘위안부‘ 피해자들의 고통과 고난을 인정하는 지난하고, 고되지만 꼭필요한 길을 걸어왔습니다. 이제는 지금, 그곳 한국에서 성매매되고 있는 여성들을 기억해야 할 시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용기와 회복력을 갖고 그 여정을 하기를 기원합니다.
그것이 바로 이 여성들이 여러분께 필요로 하는 것이며, 그들은 그럴만한 자격이 있습니다.

매우 감사드립니다.

2019년 9월
레이첼 모랜 - P21

궁전의 건전함을 위해서는 하수 설비가 필요하다고 교회 신부들은 말했다. 일부 여성을 희생하고 다수의 여성을 지켜 더 심각한 문제들이 생겨나지 않게 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고 말해왔다 (…) ‘창피한 줄 모르는 여성‘ 계층이 있기 때문에 ‘정숙한 여성‘
들을 더욱 신사적으로 배려하며 대할 수 있다. 성매매 여성은 희생양이다. 남성은 극악무도한 행위를 성매매여성에게 쏟아내면서도 그녀를 경멸한다. 성매매가 경찰의 관리감독 아래 합법적으로 이루어지든 은밀하게불법적으로 이루어지든 성매매 여성은 사회에서 버림받은 자로 취급된다.
-시몬 드 보부아르, 『제2의 성』

사람들 각자가 고유한 내력을 지닌다는 사실을인식하면 타인에게 수치를 주거나 책망하는 단순한 행위가 복잡해지고, 개개인의 역사를 알아갈수록 사람들이 왜 그런 행동을 하게 되었는지 이해하기가 더 수월해진다.
-리처드 홀러웨이, 『무신론적 도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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