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파리에 와서 1~2년간 나를 둘러싼 시간이 정지된 것처럼 느꼈다. 시간이 멈췄기에 나는 노화를 멈췄다. 당시 나는 사회적으로 10대 수준도 안되는 언어능력과 생활능력을 가진, 몸만 어른인 존재였으니까. 언어를 지배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지적 성숙이 지체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으나, 육체의 노화가 멈추는 느낌은 예상 밖이었다.
어린아이와 같은 호기심과 깨달음, 발견으로 채워지던 시절이었다. 세상에 저항하던 정신의 세포가 하나하나 낯선 향기에무장해제되고, 깨어나며, 왕성하게 새로움에 반응했다. - P14

거리에서 종종 마주친다. 삶의 작은 반경에 다만 자기 삶을부려놓고, 오직 그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분투한 사람들의 얼굴, 사람의 얼굴은 얼마나 적나라하게 그 속에 삶을 함축하고있는지. 그것은 축복이기도 때론 형벌이기도 하다. 나이든 아시아 여성들, 그들의 현재는 고스란히 나의 미래다. 유독 그들에게서 방어적인 눈빛을 많이 본다. 그들은 인생에서 여러 번선택의 기로에 섰고, 나를 확장하는 대신 내가 선 땅을 단단히구축하는 선택을 했을 것이다. 어찌 보면 그 눈은 나와 내 가족을 지키기 위해 스스로 쌓아 올린 둑 안에서 세상을 경계하며바라보는 눈이다. 그들에겐 최선의 선택이었겠지만, 항해를 멈추고 닫힌 세계에서 맴도는 슬픔이 배어나온다. - P17

항해의 목적은 안전하게 돌아오는 데 있지 않다. 항해의 목적은 더 멀리 항해하는 것에 있다. 육체의 생명이 다하는 날, 바로그날 나의 정신도 성장을 멈추기를 바란다. 내정신이 이미 오래전에 멈추었음에도 육체가 꾸역꾸역 삶을 영위하는 민망한사건이 가급적 일어나지 않기를 기도한다. 나의 육체와 정신이함께 손잡고 오래오래 월담하고 월담하기를. - P18

사람들이 서로의 스펙을 묻고, 진열하고, 서열화하는 것은, 사람 볼 줄 아는 능력을 상실해가기 때문이다. 사람 눈빛과 낯및 보면 대충 알고, 몇 번 말 붙여보면 더 또렷이 느낀다. 글쓰는 것, 사람 대하는 것을 보면 더 정확히 파악할 수 있다. 물론이러한 직관을 가지려면 자신과 자신의 삶에 대한 믿음이 필요하다. 내 엄마가 자신이 키운 자식이 성장하여 데려온 남자를뜯어보고 자시고 할 것도 없이 받아들였던 것처럼, 자신의 삶에대한 믿음이 있으니, 그 결과물인 자식의 선택에 대해서도 조건없는 신뢰를 보낼 수 있었던 것이다. 인간을 점수화하고 서열속에 집어넣어 보아야만 비로소 파악할 수 있다는 건 직관을 상실해가는 우리의 모습을 투영한다. - P20

프랑스 책들을 사 보면, 책날개에 저자의 얼굴은커녕 이름말고는 소개 한 줄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기껏 독자에게 친절을 베푸는 출판사가 있다면, 저자가 같은 출판사에서 낸 책들의 목록을 알려주는 정도. 이 프랑스식 불친절은 책에 대한존중이며, 결국 독자에 대한 존중이기도 하다. 어떤 편견이나선입관도 없이 책과 직접 대면하라는 주문이다. 유명인사의 추천사 한 줄 없어도 망설임 없이 책장을 열고 저자의 목소리와단도직입으로 만나라 청하는 것이다.
그 누구든 어제까지의 삶이 축적한 알몸의 주인으로 만날 수있는 세상. 그런 사치, 맘껏 누리고 싶다. - P21

난 ‘계급‘을 지극히 기계적인 마르크스의 피조물이라고 비웃어왔지만, 그 피조물에 많은 사람이 갇혀 있다는 사실을 지금은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적어도 이 땅에는 역사를 맹렬하게 직시하며 진실을 향해 나아갈 수 있는 계급과 흐릿하고 매캐한 세상에서 안개가 걷히는 걸 절대 바라지 않는 눈 부릅뜨고 하늘을 우러러볼 수 없는 계급이 있다. 그와 나는 결코 만나질 수 없는 계급에 속해 있던 사람들이고, 1980년대 대학이라는 용광로속에서 잠시 사고처럼 부딪히고 이끌렸을 뿐이다. 역사 앞에 떳떳한 계급과 역사를 계속 매장해야만 비로소 고개를 들 수 있는계급의 두 사람이 손을 맞잡는 건 불가능하다. 비루하게 왜곡된역사가 청산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청산되지 못한 역사, 거짓이 계속 거짓을 부르게 만드는이 고단한 시대의 패배자는 속죄의 길을 찾지 못하여 계속 비굴할 수밖에 없는 그들이다. 나는 당신들의 계급을 동정한다. - P26

유일한 승천 길이었던 사법고시도 당장 안전하게 목구멍에 들어갈 양식을 벌어야 하는 사람들에겐 닿을 수 없는 사치였음을작가는 알고 있었다. 가난이 사악한 것은 꿈 자체를 지우기 때문이다. 자신의 꿈뿐 아니라 아무 죄 없는 자식들의 꿈까지 지워버렸고, 그로 인해 부부는 서로에게 악을 써대며 살았다. 그기쁜 날, 발목에 매달려 있던 쇠사슬이 일순간 사라진 날, 성동일은 덩실덩실 춤추기보다 비장한 표정을 지었다. 그것은 그가명예퇴직을 당하고 온 날의 표정과도 비슷했다. 살얼음판 위를 걷던 사람이 비로소 땅 위를 걷기 시작했을 때, 그 평범한 삶에 도달한 감격은 호들갑으로 표현될 수 없었다. 감히 바랄 수도 없어 보였던 평범함을 기적처럼 얻었을 때 기쁘기보다 비장해진다는 걸, 배우는 잘 표현했다 - P36

질투하지 않는 인간관계, 그것이 얼마나 서로를 풍성하게해줄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드라마였다. 쌍문동 골목에서 피어나는 톡톡한 ‘정‘의 본류는 세 엄마 간의 돈독한 우정이었다. 그들의 우정은 아이들에게로, 그리고 가장 난이도 높은 지대인남편들에게까지 이어졌다. 질투는 결단코 인간의 본능이 아니다. 그것은 만인이 만인을 향한 경쟁을 통해 단 하나뿐인 줄에일렬종대로 서서 우열을 거둬야 한다고 믿는 이데올로기에서작동되는 자본주의에 의해 학습된 어리석은 태도일 뿐이다.
만인에게는 만인의 길이 있으며, 우린 그 길들을 서로에게, 그리고 자신에게 허락해야 한다. 싸움은 그 다양한 길을 허락하지 않는 세상과 해야 하는 것이다. 아메리칸 인디언, 중국의 모쒀족 등 자본주의와 가부장제로 인간의 본성이 침해되는 참사를 겪지 않은 인류는 경쟁과 질투를 모르고 살았다. 그들에게인생은 하나의 목적지를 향해 달려가는 경주가 아니라, 자연을누리고 이웃과 어울려 서로를 경배하고 축복하는 향연이었고 축제였다. - P39

프랑스사회에서 성대한 결혼식은 에너지 넘치는 몇몇 사람들이 벌이는 공동체를 위한 서비스로 여겨질 만큼 드문 일이 되었다. 대부분의 사람에게 결혼식은 구청에 가 구청장과 증인 앞에서 선언하고 서명하는 것일 뿐이며, 이마저도 생략하고 사는 사람들이 훨씬 많다. 그래서인지 이 결혼식은 내게 낯설고 그만큼아름다웠다. 아직도 이런 것을 정성 들여 준비하는 사람들이 있다니. 더욱이 그들이 쏟은 정성은 오로지 서로를 향한 애틋한애정만을 동기로 삼은 듯했다. 하객 중엔 파트너를 향해 진한애정표현을 하는 커플들이 많았다. 신랑 신부가 방사한 에로스의 분가루가 모두의 머리 위에 소복이 내려앉았기 때문이리라.
결혼식이야말로 한 커플의 낭만적 사랑을 결박하는 가장 찬란한 슬픔의 세리모니라는 나의 오래된 확신은 결혼과 사랑의 밀접한 상관관계를 실증적으로 보여준 이들 앞에서 전복되고 말았다. - P45

갈비뼈를 내주고 싶은 사람이 있거든, 그리하고 멀리 달아날것. 도움을 받은 사람이 자기 힘으로 일어설 수 있도록, 마지막결정적인 지점에선 묵묵히 바라만 볼 것. 자식이 맞이해야 할고난과 역경을 부모가 대신 맞아주지 말 것. 남의 인생을 결코대신 살아주려고 애쓰지 말 것. 남의 고난을 대신 짊어지는 자결국 상대의 자존을 빼앗은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다. - P71

영혼을 가지고 태어난 우리, 영혼의 문이 닫히기 전에 세상과사물을 영혼으로 보는 훈련을 시작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눈먼 자들의 세상에 갇히고 말 터이다. 영혼의 근육을 키우는 훈련의 첫 단계는 타인의 자리에 서서 그 사람의 심정을 헤아려보는 것이라고 인디언들은 말한다. 어쩜 그것만으로 충분할지모른다. 우리에게 가장 힘든 것이 바로 그것이므로, - P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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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장의 시작은 첫 단어이고, 리듬은 시간의 음계다.
시간과 마찬가지로 리듬은 선형적인 것으로 보일 수 있다. 각각의 사건이 줄 하나에 간격을 두고 구슬처럼 꿰어져있는 모습을 상상하면 된다. 그 줄이 둥근 원으로 변하면 구슬 목걸이가 된다. 만약 사건이 하나뿐이라면, 거기에 표시된간격은 항상 원래 자리로 돌아오는 원처럼 보일 수 있다. 예를 들어, 1년 간격으로 생일이라는 사건이 반복되는......
간격이 같으면 규칙적인 리듬이 만들어진다. 간격이 불규칙할수록 사건들이 비슷해야만 리듬의 식별이 가능해진다.
리듬은 물리적이고 물질적이고 신체적인 것이다. 드럼을 때리는 스틱, 발을 구르는 무용수, 리듬은 영적인 것이다.
드러머가 느끼는 황홀경, 무용수가 느끼는 즐거움. - P123

글쓰기의 리듬을 생각하기 시작하면서 내 머리는 세상의 학자들 사이를 방황했다. 시계, 심장, 끼니와 끼니 사이의간격, 밤과 낮의 변화, 글쓰기가 어떻게, 왜 리듬을 갖게 되는지 이해하기 위해 나는 기계적 리듬, 생물학적인 리듬, 사회적인 리듬, 우주적인 리듬을 생각했다. 신체적 리듬과 사회적 규칙성의 상호작용을 생각했다. 리듬과 질서, 리듬과 혼돈의관계를 생각했다.
이런 일들에 대한 생각을 시작하는 방법 중 하나는 자신의 몸이 만들어내는 박자에 귀를 기울여보는 것이다. - P123

리듬은 박동이다. 생명도 그렇다. 상대가 아직 살아 있는지 알고 싶을 때 사람들은 그 사람의 맥박을 찾아본다. 맥박을 쉽게 느낄 수 있는 곳을 찾아 주의를 집중한다. 고른 리듬과 불규칙한 리듬에 심장박동은 자주 바뀐다. 오랫동안 메트로놈처럼 일정한 박자로 움직이는 일은 좀처럼 없다.
박동과 박동 사이의 간격에도 주의를 기울이며, 박동을간격 사이의 경계선으로 생각해본다. 박동과 간격은 도형과배경이 쉽게 혼동되는 그림에서처럼 역전될 수 있다.
걷기는 아름다운 박자다. 그냥 걷기, 달리기를 하는 사람들은 빠르게 땅을 두드리는 박자를 좋아한다. 강세가 강한 방식이다. 그것도 좋지만, 걷기도 기분 좋다. 미묘하게 계속 바뀌는 걷기의 꾸준한 리듬을 의식하면서 그냥 걷는 것.
태극권식 걷기의 리듬은 흥미롭다. 나는 이 걷기를 다음 - P124

과 같이 배웠다. 맨발로 한동안 가만히 서 있다가 들숨에 한발을 들어 앞으로 내밀고, 날숨에 발을 내려놓는다. 다른 쪽발이 자연스레 들리겠지만, 그 발을 완전히 들어 앞으로 내밀려면 들숨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그 발이 날숨 때 부드럽게바닥에 닿는다. 이번에는 처음 움직였던 발이 들숨을 기다리며 준비를 갖춘다…… 이런 식으로 걸으면 그리 멀리까지 갈수 없다. 처음 이 걸음을 시도했을 때 나는 많이 넘어졌다. 균형을 유지하려면 발 전체를 단번에 가볍게 바닥에 내려놓는방법이 도움이 된다. 발꿈치부터 먼저 바닥에 대는 방식이 아니다. 또한 발이 바닥에 닿는 느낌, 바닥이발에 닿는 느낌을의식하고 있어야 한다. 이것은 강세가 아주 약한 걷기다. 일종의 명상이기도 하다. 이 걸음을 걸을 때는 걷기 외에 다른것을 생각할 수 없기 때문이다.
명상이라는 단어는 흔히 ‘생각‘이라는 뜻으로 사용되지만, 내가 알기로 이 단어는 생각하지 않기를 뜻한다. 이건 여러분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힘든 일이다. 어쨌든 내가아는 모든 명상 방법은 신체의 리듬과 기타 리듬을 즉시 인식하게 해준다. - P125

다시 말해서 운문에서는 간격이 짧다. 또 다른 말로 표현하면, 산문에서는 간격이 길다.
강세가 없는 음절 다섯 개 이상을 연달아서 말하면, 중얼거리는 것처럼 들릴 가능성이 크다. 애당초 그런 것이 바로중얼거림이다. 이것이 아SYLLables in a ROW. 여기서는 강세 사이의 음절이 네개다. SYLLables in an unexPECted ROW. 여기서는 여섯 개인데, 이걸 소리 내서 읽다 보면 정말로 중얼거리는 것처럼 들리기 때문에 중간에 약한 강세를 넣어 박자를 줄 때가 많다.
아마도 ‘unexpected‘의 ‘un‘이 그 지점이 될 것이다. 그러면 말하기가 더 쉬워진다.
글을 읽을 때도 말을 할 때도 우리는 강세가 상당히 자주나오기를 바란다. 긴 간격에는 저항감이 느껴진다. 중얼거리는 것이 정말로 싫기 때문이다. - P127

현대 시에서 행은 다루기 힘든 주제다. 시를 소리 내어읽을 때는 행이 끝날 때에도 전혀 멈추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시인이 많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 행은 시의 패턴, 리듬의 일부다. 자유시를 읽을 때 행이 어디서 끝나는지 목소리로 아주 어렴풋하게라도 알려주지 않는다면, 시를 듣는 사람은 행의 끝이 어디인지 알 수 없다. 그렇다면 행은 그저 인쇄를 위한 편의에 지나지 않는다. 운을 맞춘 정형시에는 규칙성이 있어서 듣는 사람에게 행이 끝나는 지점을 신호해줄 수도있지만, 그래도 시를 읽는 사람의 목소리가 어느 정도 지원을해줘야 한다. 셰익스피어를 읽을 때는 대사에서 자연스럽게이어지는 목소리의 흐름과 그 저변에 깔려 있는 오보격 박자사이에서 계속 타협을 해야 한다. 만약 셰익스피어 배우가 자연스러운 어조를 위해 행을 완전히 무시한다면, 시를 산문처럼 읽는 결과가 나올 것이다. - P133

허구든 사실이든 이야기 속에서 인물들이 ‘생생히 살아나서 ‘진짜처럼 보이는‘ 것은 당연히 그들의 언행에 대한 단순한 서술 때문이 아니다. 그들의 언행이라는 소재를 취사선택하고 재배치하고 해석할 필요가 있다. 앞에서 인용한 디 피에로 씨의 말 "기억은 상상이다"가 바로 이런 뜻이지 싶다.
(내 소설 『어둠의 왼손』에서겐리아이가 "진실은 상상의 문제"임을 고향 행성에서 배웠다고 말했을 때도 같은 뜻이었는지 모른다. 그러나 겐리는 물론 실존 인물이 아니다.)그렇다면 논픽션에 창작을 섞는 데 찬성하는 사람들의주장 중 가장 설득력 있는 것은 바로 이것이다. 픽션에 창작한 내용의 배열, 조작, 해석이 필요하듯이, 창작 논픽션에는실제 사건의 배열, 조작, 해석이 필요하다. 단편소설은 창작물이고, 회고록은 재창작물이다. 둘 사이의 차이는 무시해도될 만큼 사소하다. - P225

어쩌면 작가들이 현재 약속의 내용을 고쳐 쓰고 있는 것같기도 하다. 어쩌면 약속이라는 개념 자체가 어떻게 손쓸 수없을 만큼 전前포스트모던적이어서 독자들은 픽션 속의 사실적인 정보를 받아들일 때처럼 논픽션 속의 거짓 데이터도 점점 차분히 받아들이는 쪽으로 변해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확인할 수 없는 정보가 워낙 많이 쏟아지는 탓에 아주 무감각해진 우리는 유사 사실도 그럭저럭 사실과 동등한 것으로 받아들인다. 그 무감각 때문에 모든 종류의 과장(광고, 유명 연예인들에 대한 이야기, 정치적인 ‘비밀 정보,‘ 애국적이고 도전적인 선언 등등) 또한 대체로 받아들이는 편이다. 그내용이 믿을 만한지 아니면 그런 글들이 우리를 조종하려고드는지 별로 개의치 않고 그냥 읽는다는 뜻이다. - P233

‘창의력‘의 의미가 무엇이든, 데이터와 기억의 위조에 이단어를 적용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의도적인 위조든 ‘불가피한 위조는 상관없다.
사실을 관찰하고, 조직하고, 서술하고, 해석하는 작가의능력에서 훌륭한 논픽션이 나온다. 이 능력은 전적으로 상상력에 기대고 있지만, 이때의 상상력은 창작이 아니라 관찰한것을 서로 연결해서 설명하는 데 사용된다.
미학적인 편의, 자신의 희망사항, 영적인 위안, 정신적치유, 복수, 이득 등 여러 이유로 사실을 ‘창조‘해 작품에 집어넣는 논픽션 작가들은 상상력을 이용하는 것이 아니라 배신하는 중이다. - P234

예전에 문학상은 기본적으로 문학적인 행사였다. 퓰리처 같은 상은 확실히 책의 판매에 영향을 미쳤지만, 그것만이그 상의 가치는 아니었다. 그러나 대부분의 출판사가 회계 부서에 점령당한 뒤로, 문학상의 경제적 측면이 점점 더 중요해졌다.
요즘은 문학상이 명성, 돈, 서점 진열대 전시 기간과 관련해서 엄청난 무게를 지닌다.
하지만 그것도 일부 문학상만 그럴 뿐이다. 뉴스로 보도될 가치를 인정받고 성공을 보장해주는 상이 있는 것은 맞지만, 대부분의 상은 그렇지 않다. 수상작이 확실히 헤드라인을장식하는 상과 무시당하는 상은 거의 임의적으로 결정되는것처럼 보인다. 언론은 아무런 의문 없이 습관을 따른다.  - P236

부커상은 확실히 열광적인 반응을 일으킨다. 그러나 PEN 웨스턴 스테이츠상에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무심하다.
문학상 심사위원으로 활동한 경험이 있는 작가들은 최종 후보작들이 질적으로 똑같이 우수할 때가 아주 많아서 그중 한 편을 수상작으로 고르는 것은 기본적으로 임의적인 결정이라는 말에 대부분 고개를 끄덕인다. 최종 후보로 선정된작품들의 성격과 의도가 워낙 다양해서 그중 한 편을 수상작으로 고르는 것이 기본적으로 임의적인 결정이라는 말에도많은 사람이 고개를 끄덕인다. 그러나 한 편의 수상작을 고르는 것이 심사위원들의 의무이므로, 그들은 그렇게 한다. 그러면 출판사가 그것을 이용해 돈을 벌고, 서점들이 아첨을 떨고, 도서관들은 서가를 그 책으로 채운다. 그 와중에 최종 후보에 올랐던 다른 책들은 잊힌다. - P237

경쟁을 통해 우승자 한 명을 고르는 방식은 문학이 아니라스포츠 경기에 적합한 것 같다. ‘대형‘ 문학상들이 점점 지나치게 문단을 지배하는 현상은 유해하고, 이런 시스템은 필면적으로 친분, 지연, 특정 젠더, 거물을 편파적으로 우선하는 분위기를 고착시킨다.
나는 이 중에서 특히 특정 젠더를 편애하는 분위기가 질색이다. 그러나 이런 분위기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열렬히 부정하는 사람이 워낙 많기 때문에, 혹시 내가 아무것도 아닌일로 진저리를 치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 P237

그것은 성애적인 매혹이 아니라 신체적인 매혹이다. 신체적이고, 사회적이고, 윤리적이다. 고통스럽다. 그래서 신경에거슬린다.
그 불편한 마음이 사라지지 않는다. 그것이 신경에 거슬린다는 사실을 나의 사회가 부정하기 때문이다. 나의 사회는그것이 괜찮다고, 아무 문제 없다고 말한다. 여자의 발은 원래 패션과 관습을 위해, 에로티시즘을 위해, 결혼 가능성을위해, 돈을 위해 고통받고 일그러지는 존재라고 말한다. 그리고 우리는 모두 맞습니다. 물론이죠, 문제없어요, 라고 말한다. 오로지 내 안에 있는 어떤 것만이, 옛날 젊었을 때 신었던 황당한 신발 때문에 비틀어진 내 발가락 속의 작은 신경만이, 발등의 근육만이, 발꿈치의 인대만이, 내 몸의 그 모든 조각들만이 아냐 아냐 아냐아냐라고 말한다. 그건 괜찮지 않다고, 완전히 잘못된 일이라고. - P268

나의 외모는 나라는 사람의 일부다. 그 반대도 마찬가지다. 나는 내 몸이 어떤 모양인지, 크기가 얼마나 되는지, 무엇이 내게 어울리는지 알고 싶다. 몸이 중요하지 않다고 말하는사람을 보면 말문이 막힌다.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할 수 있지?
사이언스픽션 영화에서 유리병 안에 둥둥 떠 있는 뇌 같은 꼴이 되고 싶은 생각은 없다. 내가 몸과 분리되어 정신만 둥둥떠다니는 존재가 되는 날은 오지 않을 것이다. 나는 이 몸 ‘속‘에 사는 존재가 아니라 이 몸 자체다. 허리가 있든 없든.
하지만 내 몸이 지난 세월 놀랍고 짜릿하고 걱정스럽고실망스러운 갖가지 변화를 겪는 와중에도 전혀 변하지 않은것이 있다. 단순히 외모만으로 결정되지 않는 나라는 사람. - P278

그 사람을 찾아내서 어떤 존재인지 알아내기 위해 나는 깊게꿰뚫어 보아야 한다. 공간뿐만이 아니라 시간까지도내게 기억이 있는 한 나는 길을 잃지 않는다. - P279

젊음과 건강함이라는 아름다움의 이상이 있다. 이 이상은 결코 변하지 않으며 항상 진실이다. 영화배우나 광고 모델로 대표되는 아름다움의 이상도 있다. 아름다움의 게임이 내세우는 이 이상은 항상 경우에 따라 규칙을 바꾼다. 그리고언제나 진실이 아닌 부분이 섞여 있다. 이보다 더 정의하기어렵고 이해하기 어려운 이상적인 아름다움도 있다. 이 아름다움은 몸과 정신이 만나 서로를 정의하는 지점에서 생겨난다. 이 아름다움에 무슨 규칙이 있기는 한지도 잘 모르겠다.
내가 이 아름다움을 설명하기 위해 시도해볼 수 있는 방법중 하나는 천국에 있는 사람들을 상상해보는 것이다. 종교가 믿음의 규약 중 하나로 약속하는 천국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고인이 된 소중한 사람들을 나중에 만날 수 있기를 바라며 꾸는 꿈을 천국으로 지칭했을 뿐이다. 우리가 아름다운 천국에서 그들을 다시 만난다면, 그들은 어떤 모습일까?  - P279

내 어머니는 여든세 살 때 암으로 고통스럽게 돌아가셨다. 비장이 너무 비대해져서 겉으로도 드러날 정도였다. 내가 어머니를 생각할 때 떠올리는 모습이 그것인가? 가끔은 그렇다. 그렇지 않으면 좋겠는데. 그 모습에는 확실히 진실이 담기 있지만, 그로 인해 더 많은 진실이 담긴 모습이 흐릿하게 가려진다. 그 모습은 50년 동안 내 머릿속에 쌓인 어머니의 기억 중 하나일 뿐이다. 시간적으로는 가장 마지막 기억이다.
그 뒤에는, 그 너머에는 더 깊고 복잡하고 항상 변화하는 이미지가 있다. 상상, 풍문, 사진, 기억이 만들어낸 이미지다. 콜로라도의 산악지대에 살던 작은 빨간 머리 아이, 슬픈 얼굴을 한 섬세한 대학생, 상냥한 미소를 짓는 젊은 엄마, 눈부시게 똑똑한 여자, 비할 데 없이 유혹적인 사람, 진지한 예술가, 뛰어난 요리사....… 어머니가 요람을 흔드는 모습. 잡초를 뽑는모습, 글을 쓰는 모습, 웃는 모습이 보인다. 주근깨가 난 우아 - P280

한 팔에 찬 터키석 팔찌가 보인다. 한순간 이 모든 모습이 한꺼번에 보인다. 어떤 거울도 보여주지 못하는 것, 세월을 건너뛰어 번쩍 빛을 내는 영혼이 언뜻 보인다. 아름답다.
위대한 예술가들은 바로 이것을 보고 그림으로 그리는것이 분명하다. 렘브란트가 그린 초상화 속의 지치고 늙은 얼굴들이 우리에게 큰 기쁨을 주는 이유가 바로 이것임이 분명하다. 그 얼굴들은 겉으로 드러난 아름다움이 아니라, 깊이가 담긴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브라이언 랭커의 사진 앨범 ‘나는 세상을 꿈꾼다』에 실린 주름진 얼굴들은 고생해가며 나이를 먹을 가치가 있을지도 모른다고 우리에게 말한다.
그 세월 동안 자신의 영혼을 다듬을 수 있다면. 우리가 항상 몸으로만 춤을 추는 것은 아니다.  - P281

위대한 무용수들은 아는 사실이다. 그래서 그들이 뛰어오를 때 우리 영혼도 그들과 함께뛰어오른다. 공중을 날며 우리는 자유롭다. 시인들도 이런 춤을 알고 있다. 예이츠의 입을 빌려보자.


오 밤나무여, 커다란 뿌리의 꽃나무여,
너는 이파리인가, 꽃인가, 줄기인가?
오 음악에 맞춰 흔들리는 몸, 오 반짝이는 시선
춤과 춤꾼을 어찌 구분해서 볼 수 있을까? - P2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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톨스토이는 행복이 무엇인지 아는 사람이다. 행복이 얼마나 희귀한지 얼마나 위험한 지경에 처해 있는지, 행복을얻기가 얼마나 힘든지. 그뿐만 아니라 그는 행복을 묘사하는능력도 있었다. 그의 소설이 뛰어난 아름다움을 지니게 된 데에는 이 보기 드문 재능의 공이 크다. 그가 이미 아는 사실을그 유명한 문장으로 부정한 이유는 모르겠다. 그는 거짓말과부정을 아주 많이 했다. 아마 그보다 뒤처진 많은 소설가들보다 더 많이 했을 것이다. 그는 거짓말할 것이 많았다. 또한 무자비하고 이론적인 그리스도교 신앙 때문에, 소설에서는 스스로 진실임을 알고 증명한 온갖 것들을 부정했다. 그러니 어쩌면 그는 그 문장을 쓸 때 그냥 허세를 떨었던 건지도 모른다. 근사한 문장이 아닌가. 소설의 첫 문장으로도 훌륭하다.
다음 에세이에서 나는 낯선 사람을 이스마엘로 부르라는 말을 좋아하는지 아닌지에 대해 이야기할 것이다. - P70

그러니 이탈로 칼비노의 『보이지 않는 도시들』이 그 어떤 여행안내서보다 훌륭한 우리 세계의 안내서가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니 남미의 마술적 사실주의 작가들, 그리고 인도 등여러 곳의 비슷한 작가들이 자신의 나라와 동포들의 역사를전적으로 진실하게 계시적으로 묘사한 가치를 인정받는다.
그러니 변방 대륙, 변방 국가의 작가였던 호르헤 루이스보르헤스, 청소년기와 성인기에 세찬 물결이 되어 흐른 현대적 사실주의가 아니라 변방의 전통을 선택한 그가 지금도 우리 문학의 중요한 작가로 남아 있다. - P82

그의 시와 소설, 명상과 도서관과 미로와 갈림길에 대해그가 남긴 이미지, 호랑이와 강과 모래와 미스터리와 변화가등장하는 그의 책은 어디서나 존중의 대상이다. 아름답기 때문이다. 자양분을 주기 때문이다. 가장 오래되고 다급한 말의기능을 충족시키기 때문이다(『역경』이나 『옥스퍼드 영어사전』과 같다. 우리를 위해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것들의 정신적인 이미지"를 형성해주는 것. 그 덕분에 우리가 사는 세상이 어떤 곳인지, 우리가 그 세상에서 어디로 가고 있는지, 무엇을 찬양하면 되는지, 무엇을 무서워해야 하는지 판단할 수있게 된다. - P82

내가 서버의 작품을 읽으며 웃음을 터뜨린 것은 그가 말장난을 했을 때였다. 마크 트웨인의 유머를 아이도 이해할 수있다는 점은 그가 말을 가지고 노는 방식과 크게 관련되어 있음이 분명하다. 시치미를 뚝 떼고 내뱉는 엉터리 같은 말, 놀라운 단어 선택, 큰어치가 오두막에 도토리를 가득 채우려고하는 이야기를 처음 읽었을 때 나는 정말 죽는 줄 알았다. 바닥을 데굴데굴 구르며 웃다가 숨을 몰아쉬었다. 지금도 그 큰어치를 생각하면 평화로운 유쾌함이 나를 감싼다. 그런데 그모든 유머의 근원이 바로 그의 이야기 방식이다. 이야기를 좌우하는 것은 바로 이야기 방식이다.
아담의 일기도 재미있는 부분은 아주 재미있다. 아담의문체 덕분이다. - P90

그래서 그녀는 그 안에 사는 생물들, 자신이 물고기라고 부르는 생물들을 안쓰러워했다. 이름이 필요하지도않고 이름을 불렀을 때 다가오지도 않는 것들에게 그녀가 계속 이름을 묶어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들의 행동은 그녀에게 전혀 중요하지 않았다. 어차피 그녀는 엄청난 멍청이였다. 그래서 그녀는 어젯밤 그것들을 많이 가지고 들어와서 추울까 봐 내 침대에 넣어두었다. 나는 하루 종일 간간이 그것들의 존재를 알아차렸는데, 그것들 - P90

이 전보다 더 행복해진 것 같지 않다. 그냥 더 조용해졌을뿐이다.


이것이야말로 마크 트웨인 특유의 절묘한 문장이다. 그는 특정한 방향을 향하는것같지도 않은데 숨이 막힐 만큼정확히 금광에 도착하는 정처 없는 만담으로 힘들이지 않고광대한 땅을 모두 아우른다. 분별 있는 아이라면 재미있게 읽을 것이다. 어쩌면 그 구불구불한 궤적을 모두 따라가지는 못하더라도, 문장의 움직임, 멍청이라는 단어, 물고기를 침대에넣는다는 말에 즐거워할 것이다. 그 아이가 자라서 이 글을다시 읽는다면, 거기서 느끼는 보상 또한 자라날 수밖에 없다. 이제 어른이 된 그 아이가 이 글에 대해 에세이를 쓸 일이생겨서 위의 문장을 열심히 연구한다면, 여기에 사용된 어휘, 구문, 속도 조절, 감각, 리듬에 완전히 감탄하게 될 것이다.  - P91

특히 마지막 문장의 멋들어진 타이밍이 그렇다. 그리고 그 아이는 이 글을 여전히 재미있게 읽을 것이다. 그렇게 읽고 있다.
트웨인의 유머는 불멸이다. 작년에 나는 산문의 리듬을연구하기 위해 「뜀뛰는 개구리의 한 문단을 분석했다. 그 문단을 상세히 살피고, 해부하고, 박자를 헤아리고, 여러 구절을 그룹으로 묶고, 해체해서 간단한 드럼 악보 같은 것으로만들었다. 이렇게 온갖 짓을 한 뒤에도 그 문단을 읽을 때마다 나는 예전과 똑같이 아니 어쩌면 더 신선하고 생기 있고재미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산문 그 자체는 불멸이다.  - P91

그래서 우리가 그를 신뢰하는 건가 싶다. 그가 우리를 실망시킬 때가 아주 많은데도. 아담의 일기에서 나이아가라에대해 멍청한 소리를 늘어놓는 부분(나이아가라 폭포에 대한어떤 간행물과 어울리게 일부러 집어넣었음이 분명하다)처럼 문제가 있는 대목을 다른 작가의 작품에서 보았다면 나는대체로 그 작가를 불신하게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마크 트웨인의 순수성은 아주 분명하다. 쉽게 타락하지도 않는다. 그래서 문제가 있는 대목들이 유난히 눈에 띄는데도 용서받는다.
예전에 어느 훌륭한 피아니스트가 연주 중에 실수를 아주 많이 한다는 말을 들었다. 하지만 음악이 진실했기 때문에 그실수들은 전혀 중요하지 않았다. 마크 트웨인이 자신의 유머를 강요할 때가 간혹 있기는 해도, 언제나 그의 목소리가 되돌아와 우리 마음에 닿는다. 그의 목소리는 과장과 어리석음과 터무니없이 지어낸 이야기와 절대적인 정확성과 진실을갖고 있다. - P92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어른이 된 지금도 내게 그 작품은사리에 맞는 이야기지만, 그 독창성과 용기를 옛날보다 더 제대로 감상할 수 있다. 그 대담함, 그 정신의 놀라운 독립성! 경전하고, 신앙심 깊고, 검열이 자행되고, 독선적이던 1896년의 그리스도교 국가 미국, 아니 따지자면 1996년의 미국도 마찬가지지만, 그런 나라에서 이브와 아담을 하느님의 도움 하나 없이 그리고 따지자면 뱀의 도움도 없이, 에덴동산 밖으로 내던져 하느님이 불필요한 가설에 불과하다는 것을 보여준 것, 죄와 구원, 사랑과 죽음을 철저히 인간의 일로, 우리의책임으로 우리 손에 돌려준 것, 이것이야말로 자유로운 영혼, 용감한 영혼이 한 일이다.
어렸을 때 그런 영혼을 만나는 것이 얼마나 큰 행운인지한 나라가 마크 트웨인 같은 존재를 가슴에 품는 것이 얼마나큰 행운인지, - P100

소설가는 언어로 현실을 만드는 사람이다.
글쓰기라는 예술은 모두 말로 장난하고, 말 속을 뒹굴고, 말에 빠져 흥청망청 즐기고, 말에 집착하고, 그 안에서 현실을 발견하는 데서 시작된다. 말을 진흙처럼 빚어 형태를 만드는 과정에서 어떤 작가들은 멋지고 뛰어난 솜씨로 손을 더럽히는 법이 없지만, 코드웨이너 스미스는 머리부터 발끝까지전부 진흙투성이가 되었다. - P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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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의 저자 유홍준은 "문화미와 예술미는 훈련한 만큼 보인다"라고 이야기했습니다. 저도 처음피카소의 작품을 볼 때 왜 좋은지 몰랐습니다. 좋다니까 감동을 짜내며좋은가보다 했죠. 그런데 지금은 좋은 걸 알겠습니다. 언스트 곰브리치의 ‘서양미술사 같은 책들을 읽었기 때문입니다. 그런 책들을 읽고 난다음에 본 피카소의 그림은 정말 소름이 돋을 정도로 아름다웠습니다.
이젠 앙리 루소의 어떤 그림을 보고 걸작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인생이 풍요로워지기 시작한 겁니다. 이철수가, 최인훈이, 유홍준이, 김훈이, 그 외의 많은 작가와 예술가들이 나를, 내 인생을 풍요롭게 해주었고, 해주고 있습니다. - P49

시이불견 청이불문而不見 聽而不제가 좋아하는 말입니다. 시청은 흘려 보고 듣는 것이고 견문은 깊이 보고 듣는 거죠. 비발디의 <사계>를들으면서 그저 지겹다고 하는 것은 시청을 하는 것이고요, 사계의 한 대목에서 소름이 돋는 건 견문이 된 거죠. <모나리자> 앞에서 얼른 사진찍고 가자‘는 시청이 된 거고요. 휘슬러 <화가의 어머니>에 얼어붙은 건견문을 한 거죠. 어떻게 하면 흘려보지 않고 제대로 볼 수 있는가가 저에게는 풍요로운 삶이냐 아니냐를 나누는 겁니다. 존 러스킨은 "당신이보고 난 것을 말로 다 표현해보라"라고 했습니다. 나뭇잎을 봤다면, 나뭇잎의 균형감각이 어떻게 되어 있고, 앞뒷면의 촉감이 어떻게 다르고, - P49

헬렌 켈러는 또 이렇게 얘기했죠. "내가 대학교 총장이라면‘눈 사용이라는 필수과목을 만들겠다"라고요. 보지 못하는자신보다 볼 수 있는 우리들이 더 못 본다는 것이죠. 전부 다 ‘시청‘을 했니다. 아름다운 영미 에세이 50선에 드는 헬렌 켈러의에세이, ‘삼일만 앞을 볼 수 있다면」에 나오는 말입니다. 헬렌 켈러는 책 첫 부분에서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숲을 다녀온 사람에게 당신은 뭘 봤냐고 물었더니, 그가 답하길 ‘별것 없었어요Nothing special‘라고 했는데 어떻게 그릴 수 있냐는 겁니다. 자기가 숲에서 느낀 바람과, 나뭇잎과 자작나무와 떡갈나무 몸통을 만질 때의 전혀 다른 느낌과, 졸졸졸 지나가는 물소리를 왜 못 보고 못 들었냐는 거죠. 이렇게 인생이 특별할 게 없는 사람들은 생의 마지막에 떠오를 장면이 없을 겁니다. 그렇지만 거미줄에 달려 있는 물방울의 아름다움을 본 사람들은 죽을 때 떠오를 장면들이 풍성하겠죠.
- P50

 유난히 사랑하는 사람 앞에서만큼은 내가 아닌 겁니다. 내가 좋아하는게 중요하지 않고, 저 사람이 좋아해줄까가 중요해집니다. 관점이 모두 상대로 돌아서는 것이 사랑인 것입니다. 때문에 진정한 연인들의 생각은 두서가 없고, 말은 조리가 서지 않는다고 알랭 드 보통은 말합니다.
지난번 말씀드렸던 김훈도 사랑에 대해서 이야기한 게 있는데요, ‘도달하지 못하는 것‘이 사랑의 정의라는 겁니다. 우리는 사랑의 공간을 바라지만 아니라는 거죠. 누군가를 사랑해서 내 사랑을 가지고 돌진을 하고, 형성이 되면 행복한 공간이 만들어져야 하는데 그게 안 된다는 이야기입니다. 사랑이 형성되는 순간부터 싫은 점들이 보이기 시작하기 때문입니다. 안 보이는 흠이 보이기 시작하고 사랑은 결국 그렇게 소진되어가는 것이죠. 알랭 드 보통은 그래서 사랑이 방향일 뿐 공간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그러다보니 연인들은 저 사람의 사랑을 받고 싶다는 갈망과 연인이 된 후 오는 짜증 두 극단 사이를 왔다갔다하는 것밖에 할 수없다는 건데요. 결국 사랑에는 중간이 없다는 거죠. 이러한 알랭 드 보통의 사랑에 대한 정의를 뒷받침하는 문장이 이 책에도 나옵니다.

우리 모두는 불충분한 자료에 기초해서 사랑에 빠지며, 우리의 무지를 욕망으로 보충한다. - P105

말 나온 김에 <담쟁이>를 읽어드릴게요.


저것은 벽
어쩔수 없는 벽이라고 우리가 느낄 때
그때.
담쟁이는 말없이 그 벽을 오른다
물 한 방울 없고 씨앗 한 톨 살아남을수 없는 - P129

것은 절망의 벽이라고 말할 때
담쟁이는 서두르지 않고 앞으로 나간다
한번이라도 꼭 여럿이 함께 손을 잡고 올라간다
푸르게 절망을 다 덮을 때까지
바로 그 절망을 잡고 놓지 않는다
저것은 넘을 수 없는 벽이라고 고개를 떨구고 있을 때
담쟁이 잎 하나는 담쟁이 잎 수천 개를 이끌고
결국 그 벽을 넘는다 - P130

펑! 튀밥 튀기듯 벚나무들,
공중 가득 흰 꽃밥 튀겨 놓은 날
잠시 세상 그만두고
그 아래로 휴가 갈 일이다.

눈감으면
꽃잎 대신
잉잉대는 벌들이 달린,
금방 날아갈 것 같은 소리-나무 한그루
이 지상에 유감없이 출현한다

눈 뜨면, 만발한 벚꽃 아래로
유모차를 몰고 들어오는 젊은 일가족
흰블라우스에 그 꽃그늘 밟으며 지나갈때
팝콘 같은 이 세상 한 때의 웃음

그들은 더 이상이 세상 사람이 아니다
내장사 가는 벚꽃길 어쩌다 한순간
나타나는, 딴 세상 보이는 날은 - P183

우리, 여기서 찍끔만 더 머물다 가자


이 시는 김화영의 것은 아니고 황지우 시인의 <여기서 더 머물다 가고싶다>입니다. 김화영과 지중해 여행을 하면서 뼛속으로 스며드는 기이한 슬픔에 대해 생각할 때 이 시가 떠올랐습니다. 겨울이 가고 난 후 문득 눈을 감았다 뜨면 갑자기 출현한 꽃나무, 그 아래 유모차를 밀고 들어오는 가족의 꿈이 가득 차있는 순간의 모습, 그러나 시인은 잔인합니다. "그들은 더 이상이 세상 사람이 아니다." 맞아요. 세상은 그렇지 않습니다. 엄청나게 힘든 신산이에요. 말짱한 영혼은 가짜이지 않습니까? 그런데 사람들은 잠깐 동안 팝콘처럼 웃음을 터뜨리고, 그 웃음짓는 순간의 사람들은 이 세상사람들이 아니라는 이야기. 짧은 봄을 닮은 순간의 웃음 그리고 긴 신산함, 어느 시인은 꽃의 시절은 짧고 잎의 시전은 길다고 얘기했죠. 
- P184

해질녘 서편 하늘을 물들이는 장엄한 노을 앞에 섰거나, 한밤중 아득한천공에서 무수히 쏟아져내리는 별무리의 합창을 들을 때, 혹은 동틀녘세상끝까지 퍼져나가는 황금빛 햇살의 광휘를 온몸에 맞으면서, 어느누가감히 예술을 논하겠는가. 봄날 작은 꽃망울을 터뜨리는 햇가지들을가만히 들여다보자. 길고 짧고 굵고 가는 물기 오른 여린 가지들이이루는 조화와 오만가지 빛깔, 그것은 기적이다. 가을 새벽 거미줄에붙들린 조그만이슬 알갱이에 다가서 보자. 그 깜찍한 비례며 앙증맞은짜임새도 경이롭지만 알알이 비치는 방울속마다 제각기 살뜰한 우주가 숨어 있다. - P327

그럴 것이다. 인생의 저녁, 저물어가는 노을빛 속에서 작품 제작의연월일 따위가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화폭에 가득 번진 환한 봄빛이있고, 내 가슴도 훈훈한 봄빛을 머금고 있는데, 더구나 이 늙은 가슴을이해하는 또 하나의 따뜻한 가슴이 곁에 있는데 무엇을 더 바라겠는가?
그림을 그렸을 때 김홍도는 노인이었다. 화폭에 떠도는 해맑은 동심이그것을 반증한다. 노인은 젊은이보다 봄을 더 많이 생각한다. 그리고 더 - P330

소중히 여긴다. 아마 가을이 되자 봄이 더욱 그리워졌던 것인지도모른다. 그래서 우리는 <마상청앵도>가 어느 계절에 그려졌는지조차알지 못한다. 하지만 봄이, 영원한 봄이 그 안에 있다.

이 구절에서 저는 특히 "김홍도는 노인이었다. 화폭을 떠도는 해맑은 동심이 그것을 반증한다." 이 문장이 참 좋습니다. 제가 나이 드는 게좋다는 말씀을 드리면서 안 보이던 것들이 보인다고 했는데요. 이유가있어요. 젊은 사람들은 나뭇잎이나 꽃 말고 예쁜 여자도 봐야 하고 멋진남자도 봐야 하고 볼 수 있는 것들이 참 많아요. 그런데 조금 지나고 나면 자연이 눈에 들어오죠. 그리고 만약 화가라면 봄을 들여다보고 그것들을 소중히 여기는 것이 화폭에 드러난다는 겁니다. 저자는 또 다른 저서 그림 속에 노닐다에서도 비슷한 이야기를 합니다.

단순하다는 것은, 특히 그림이 단순하다는 것은 핵심적이라는 말과통한다. 사물의 핵심을 꿰뚫어보는 능력은 종종 노년에 다다라서야얻어지곤 한다. - P332

정현종의 무한 바깥이라는 시에서처럼 나는 내가 아닌 겁니다. 만물의 물결 중 하나일 뿐이죠.

방안에 있다가
숲으로 나갔을 때 듣는
새 소리와 날개 소리는 얼마나 좋으냐!
저것들과 한 공기를 마시니
속속들이 한 몸이요
저것들과 한 터에서 움직이니
그 파동 서로 만나
만물의 물결
무한 바깥을 이루니 - P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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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상장부


인간이 처음 문자를 만들면서 한 일은
하늘의 음성을 받아 적은 것도
지모신에게 올리는 기도문도
사랑의 기쁨을 노래한 시도 아니다
곡물 수확량을 조사한 세금 장부였다

사실, 글이 어두운 시대에 한 동네의 최초
기록은 주막집의 외상장부 아닌가

힘 있는 인간들 우리가 발 뻗고 사는 꼴을 못 봐
세금 뜯어낼 온갖 지혜를 다 짜내었고
주막집 주모는 외상으로 먹은 자의
용모와 금액을 그려두어야 했다
인간에게 문자가 필요했던 것은 태어나면서 우리가
이 땅에 역사에 외상을 먹었기 때문일 터이다

그러기에 모든 책은 외상 장부 같다
내게 뭔가를 전해주려는 것이 아니라
언제 갚을 거냐고 묻고 있다

사랑의 이야기도 혁명의 기록도
내게서 뭔가를 받아내려고 한다
지난 것 같지 않으면 더는 외상을 주지 않을 것 같다

그 외상장부가 말의 가락을 담아내었을 때
나는 비로소 그곳에 거주하기 시작했다

세워진 길


꼬리를 문 차량들의 질주
한걸음도 들여놓을 수 없던 난폭한 길에서

누군가 손을 들었고 누군가는 몸을 던졌고
몸과 몸의 사슬이 쳐지고

속도가 거칠게 투우처럼 피 흘리며
바닥을 긁었고
길이 엎질러졌을 때
길은 수직으로 세워져 있었음이 드러났다.

달리던 것은 실은 속도가 아니라
정지된 사슬이었다
바리케이드가 원하는 것은 길을 멈추는 것이 아니라
난폭한 선과 질주의 체제
세워진 길을 눕히는 것이었다

세워진 길 위로 달릴 수도 흘러갈 수도 없었다
그래서 눕혀진 길 위에 광장이 일어났다

그러나 힘 있는 자들의 광장은 다시 세워진 길이다

그때가 좋았지


깎은 네 머리는 누가 강제로 밀어버린 것만 같다
그 시절이 그래도 좋았지 않았느냐고
휠체어에 앉아 뒤를 올려다보는
제발 좋았다고 말 좀 해줘 애원하는 네 눈동자는
끓는 물에 데쳐버린 듯 고름이 차 있다

벌건 대낮에 거리를 걸어본 기억도 제대로 없고
외출복인 작업복에 기름때 페인트 얼룩
가셔본 일 없고 어디 따듯한 불빛 아래 여자아이들과 편한 저녁을 먹어본 적도 없었던 시절을
아련하게 그려보다니 그걸 추억이라고

그럴지도 모르지 그렇다고 해두자
그땐 아프지 않았으니까
그땐 우리 근육이 강철이었으니까
철야를 하고도 축구 풀게임을 뛰었으니까
사막으로 가는 배들이 기다리고 있었으니까고통도 자학적인 쾌락이었으니까

우리 살아온 날들 그래도 꽤 괜찮았어
맞아 그땐 분명히 그랬어
그땐 이처럼 버려지진 않았으니까
그땐 이처럼 쓰레기는 아니었으니까

소를 끌고


눈 덮인 낮은 집이 저 너머에 있다.
사방길은 지워지고 따듯한 섬 같은 집
감나무 한그루가 돛대처럼 지키고 있는 집
저녁연기가 목화솜처럼 깔리던 집

아궁이 곁불에 닭들이 졸고
아랫목에서 메주가 뜨고
설은 다가오고 까치는 마당에 내려와 놀고
들판을 달려온 바람이 몸을 녹이다 가고

장독간가는 길에 눈을 쓸고 김치를 내오고
볼이 튼 아이는 눈밭에서 뛰놀고
입김 불어 손을 녹이며 아낙은
소 없는 외양간 아궁이에 소죽을 쑤고

산 너머에서 누군가 부르는 소리 밤새 들리고길을 재촉하는 부엉이 먼 산에서 울고

나는 아직도 희미한 그 집에 가고 있다

흙과 짐승과 나무가 주인인 집에
이랴이랴소 한마리 끌고 돌아가는 중이다

갈수록 멀어지는 그 사람들 그 집에
내가 살던 집도 아닌 그 집에
이상한 일이다
수십년 동안 나는 돌아가는 중이다

겨울비


겨울비 천장에서 떨어진다
거실 바닥 흥건하다
보일러 배관은 얼어 부풀었다 그래도
바닥이 편하다 모든 바닥은 따듯하다
노동이 빠져나간 몸은 퇴적암이다
어쩌라는거냐 문자메시지는 아침부터 부고다

세면실 거울에는 오랜만에 보는 얼굴이지디피 삼백불 밤 완행열차를 타고
볼 터진 운동화 한켤레로 열여덟에 떠난 공단거울 속에는 내가 아닌 늙은 아버지가 있다

양치질할 때면 한번씩 가슴에 이는 불덩이는쌓인 쇳가루와 시너 가스와 최루탄 연기 뒤집어지나
빈손과 상처투성이 그리고 툰드라
그래도 살아남았으니 고맙고 부끄럽다

현관문을 나서는데 전화벨이 울린다
올 필요 없답니다 민주화가 되었답니다

민주화되었으니 흔들지 말랍니다
민주 정부 되었으니 전화하지 말랍니다
민주화되었으니 개소리하지 말랍니다

이렇게 한심한 시절의 아침에 겨울비 온다
어깨에 머리에 찬비 내린다 배가 고파온다
이제 나도 저기 젖은 겨울나무와 함께 가야 할 곳이 있다

무게


시내버스에 앉아 졸고 있으려니
차가 기우뚱 쏠리면서 서서 졸던
살찐 사람의 무게가 사정없이 내 가슴을 밀어붙인다
그 당황한 무게의 여운이 얼룩처럼
몸에 남는다 연민처럼 번진다

모든 절박한 것은 무게다
슬픔의 모든 것은 무게에서 배어나온다
견디기만 해왔던 무게
들어내려고만 해왔던 그 무게에서

언제나 허덕여온 무게
벗어버리고 싶던 짐짝
초월을 꿈꾸던 중력
나의 배후에 수줍게 실려 있던 그 무게

그런데 이렇게 쾌활한 무게라니
묵직하게 실리는 무게의 실감이여
긍정적인 무게라니

나를 덜어내는 무게라니

정지의 힘


기차를 세우는 힘, 그 힘으로 기차는 달린다시간을 멈추는 힘, 그 힘으로 우리는 미래로 간다
무엇을 하지 않을 자유, 그로 인해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를 안다
무엇이 되지 않을 자유, 그 힘으로 나는 내가 된다
세상을 멈추는 힘, 그 힘으로 우리는 달린다정지에 이르렀을 때, 우리가 달리는 이유를 안다
씨앗처럼 정지하라, 꽃은 멈춤의 힘으로 피어난다

평범한 일상


천마리 악어를 사육하는 우리에
제 발로 걸어들어간 여인이 있다는 것이다
먼 나라에서의 그 일은 끔찍하지만
이 지구 위에서 가난한 자들의 삶에 대한
그저 평범한 비유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불구덩이 세상을 피해 악어의 아가리로 피신한 것인지
고깃덩어리밖에 안 될 무의미를
악의 없는 저들에게 그저 던져준 것인지
나의 상상도 역시 평범한 비유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한장의 악어 껍질을 얻기 위해
많은 살아 있는 생명들을 도살해야 하고
그 먹이를 생산하기 위해 또 수많은
누군가의 껍질을 벗겨내는

누군가의 작은 기쁨을 위해
누군가를 벼랑으로 밀어붙여야 하고
또 누군가는 피를 뒤집어쓰는 노동을 해야 하는

그저 매일 반복되는 일일 뿐인 것에 대한

그 잔혹한 일상에 의미가 달아난 육신에 대한삶의 껍질이 벗겨진 육신에 대한
그 무의미한 고깃덩어리를 아가리에 던져
우두둑 뼈째 씹히는 순간에야 깨어났을 의미에 대한
하나의 사소한 비유일지도 모른다

이 나라에서만 매일
마흔명이나 걸어들어가는 그곳에 대한




주유소마다 불이 꺼져 있었다.
오일 게이지는 이미 바닥이었지만
그녀는 위독했고 돌아오는 길은 멀었다
마지막일지도 모를 한마디 말을 늦도록 찾지 못했다

캄캄한산자락에 걸린 지방도는 텅 비어 있었다
언제 차가 멈출지 몰랐다 여기가 어디쯤인지도

그녀는 도시를 버리고 숲으로 갔다
숲으로 가서 깊은 병이 드러났다
우리는 모든 걸 길에서 찾고 길에서 잃어버린다

어딘가에서 이 길도 멈출 것이다
기를 쓰고 달려온 길도 멈추고 보면 길이 아니거나
길 위에 길은 사라지고 언제나 속도만 깔려 있었다

캄캄한 갓길에서 시동을 끄고 기다렸다
미등마저 끄고 나니 뚜렷한 산 그림자 묽다
잿빛 하늘 비친 뿌연 개울이

산자락을 몇굽이나 돌아가고 있었다
내가 탄 차는 통째 참선에 들었다

잠에서 깨어났지만 캄캄한 어둠이다
영영 깨어날 것 같지 않은 어둠이다
흥건한 어둠이 내 안에 고여 있었다
희미한 빛을 만들고 있었다

우리는 모든 걸 길에서 찾고 길에서 잃어버린다
멈추지 않으면 길을 갈 수 없다

나에게 이르는 길


몇해 전 살구나무 한그루 심어놓고
나는 믿기지 않았다
주위에 살구나무가 한그루도 없어서인데
다음 해에 탐스러운 열매를 보고 또 믿기지 않았다
자가수분을 할 거면 열매로 시작하지 꽃은 왜

힘들여 피우나 속살 벌겋게 드러내고
천지사방 분을 날리고 향기로 어지럽히고
소음에 귀를 열고 온갖 것 불러 모으고
머리를 헤치고 밤바람에 싸돌아다니고
열린 몸은 거친 부리에 노출되면서

꽃에서 시작해서 꽃으로 돌아올 일을
왜 저리 요란을 떠나
나에게 건너가는 길이 내 안에는 없다는 건가저 바람 속에 햇살 속에 거친 눈보라 속에
저 인간들의 아비규환 속에 저 고단한 길 위에나 있어

바람이 나보다 한걸음 앞에 있어서길

길이 언제나 나보다 한발 먼저 있어서
말이 언제나 나보다 반걸음 앞에 있어서

밤이 끓는 동안


밤이 끊는다 현재는 끓는 밥이다
배부르지 않다 맛볼 수도 없다
뚜껑을 열어볼 수도 없다

현자들은 현재만을 살라고 충고하지만
현재를 살아볼 도리가 없다
지금은 끓고 있을 뿐이다

끓고 있는 지금 내가 먹는 것은
언제나 과거와 미래의 허공이다
허공만이 실재라는 듯이

현재는 허기다 주린 배로 사냥에 나선
피에 젖은 발톱이다
둥지로 돌아가지 못한 부러진 날개다

지금을 먹을 수 없다 죽을 지경이다
현재는 끓고 있는 창세기다

내가 어디까지인지


산길 모퉁이를 돌았을 때 그곳에서
숲이 시작되고 있었다
갈수록 그늘은 짙어지고
넓은 잎들이 하늘을 가리고 공기와 바위는 서로를 껴안고
그 그늘의 끝에서 생각은 허둥대고 문장을 잃고
한순간 내가 아니라 그늘이 나를 보는 것 같았다

그늘 하나가 내게 걸어오고 있었다
무섬증이 밀려오고 가슴이 뛰었다
점점 낯이 익었다
나는 몸을 떨어야 했다
그뿐이었다 숲을 걸어나왔지만
그 그늘은 내게 묻어 지워지지 않았다

밝은 곳으로 나와보니 그것은 그늘이 아니라한 기억이었다
잃어버리지도 않았는데 내 것이 그곳에 있었다
지워지지도 않았는데 갑자기
기억이 복원되어 밀려왔다

어디까지가 나인지 너는 알 수 없다고 했다

설산의 바람


마지막 기차를 기다리는 이십여분
나는 대합실 짙은 연무 같은
빽빽한 웅성거림에 담겨 있었지

저 혼자 떠드는 티브이 앞을 지나자
애타게 길게 뭔가를 호명하는 소리가 들렸어히말라야 설산이 화면에 가득 비치고

마방들의 구음인지 늑대 소리인지
바람에 찢겨 늘어지고 휘어지며
새처럼 가파르게 거친 산을 넘는 소리

기차는 설산의 바람을 뚫고 달려가네
눈보라 차창을 때리고 졸음을 흔들고
기억에서 깨어난 듯 나는 머리를 흔드네

깨어보니 낯선 곳에 와 있네 나는 설산을
언제 떠난 걸까 소음의 짙은 연무에
싸인 저 불빛 거리는 나의 설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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