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장의 시작은 첫 단어이고, 리듬은 시간의 음계다. 시간과 마찬가지로 리듬은 선형적인 것으로 보일 수 있다. 각각의 사건이 줄 하나에 간격을 두고 구슬처럼 꿰어져있는 모습을 상상하면 된다. 그 줄이 둥근 원으로 변하면 구슬 목걸이가 된다. 만약 사건이 하나뿐이라면, 거기에 표시된간격은 항상 원래 자리로 돌아오는 원처럼 보일 수 있다. 예를 들어, 1년 간격으로 생일이라는 사건이 반복되는...... 간격이 같으면 규칙적인 리듬이 만들어진다. 간격이 불규칙할수록 사건들이 비슷해야만 리듬의 식별이 가능해진다. 리듬은 물리적이고 물질적이고 신체적인 것이다. 드럼을 때리는 스틱, 발을 구르는 무용수, 리듬은 영적인 것이다. 드러머가 느끼는 황홀경, 무용수가 느끼는 즐거움. - P123
글쓰기의 리듬을 생각하기 시작하면서 내 머리는 세상의 학자들 사이를 방황했다. 시계, 심장, 끼니와 끼니 사이의간격, 밤과 낮의 변화, 글쓰기가 어떻게, 왜 리듬을 갖게 되는지 이해하기 위해 나는 기계적 리듬, 생물학적인 리듬, 사회적인 리듬, 우주적인 리듬을 생각했다. 신체적 리듬과 사회적 규칙성의 상호작용을 생각했다. 리듬과 질서, 리듬과 혼돈의관계를 생각했다. 이런 일들에 대한 생각을 시작하는 방법 중 하나는 자신의 몸이 만들어내는 박자에 귀를 기울여보는 것이다. - P123
리듬은 박동이다. 생명도 그렇다. 상대가 아직 살아 있는지 알고 싶을 때 사람들은 그 사람의 맥박을 찾아본다. 맥박을 쉽게 느낄 수 있는 곳을 찾아 주의를 집중한다. 고른 리듬과 불규칙한 리듬에 심장박동은 자주 바뀐다. 오랫동안 메트로놈처럼 일정한 박자로 움직이는 일은 좀처럼 없다. 박동과 박동 사이의 간격에도 주의를 기울이며, 박동을간격 사이의 경계선으로 생각해본다. 박동과 간격은 도형과배경이 쉽게 혼동되는 그림에서처럼 역전될 수 있다. 걷기는 아름다운 박자다. 그냥 걷기, 달리기를 하는 사람들은 빠르게 땅을 두드리는 박자를 좋아한다. 강세가 강한 방식이다. 그것도 좋지만, 걷기도 기분 좋다. 미묘하게 계속 바뀌는 걷기의 꾸준한 리듬을 의식하면서 그냥 걷는 것. 태극권식 걷기의 리듬은 흥미롭다. 나는 이 걷기를 다음 - P124
과 같이 배웠다. 맨발로 한동안 가만히 서 있다가 들숨에 한발을 들어 앞으로 내밀고, 날숨에 발을 내려놓는다. 다른 쪽발이 자연스레 들리겠지만, 그 발을 완전히 들어 앞으로 내밀려면 들숨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그 발이 날숨 때 부드럽게바닥에 닿는다. 이번에는 처음 움직였던 발이 들숨을 기다리며 준비를 갖춘다…… 이런 식으로 걸으면 그리 멀리까지 갈수 없다. 처음 이 걸음을 시도했을 때 나는 많이 넘어졌다. 균형을 유지하려면 발 전체를 단번에 가볍게 바닥에 내려놓는방법이 도움이 된다. 발꿈치부터 먼저 바닥에 대는 방식이 아니다. 또한 발이 바닥에 닿는 느낌, 바닥이발에 닿는 느낌을의식하고 있어야 한다. 이것은 강세가 아주 약한 걷기다. 일종의 명상이기도 하다. 이 걸음을 걸을 때는 걷기 외에 다른것을 생각할 수 없기 때문이다. 명상이라는 단어는 흔히 ‘생각‘이라는 뜻으로 사용되지만, 내가 알기로 이 단어는 생각하지 않기를 뜻한다. 이건 여러분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힘든 일이다. 어쨌든 내가아는 모든 명상 방법은 신체의 리듬과 기타 리듬을 즉시 인식하게 해준다. - P125
다시 말해서 운문에서는 간격이 짧다. 또 다른 말로 표현하면, 산문에서는 간격이 길다. 강세가 없는 음절 다섯 개 이상을 연달아서 말하면, 중얼거리는 것처럼 들릴 가능성이 크다. 애당초 그런 것이 바로중얼거림이다. 이것이 아SYLLables in a ROW. 여기서는 강세 사이의 음절이 네개다. SYLLables in an unexPECted ROW. 여기서는 여섯 개인데, 이걸 소리 내서 읽다 보면 정말로 중얼거리는 것처럼 들리기 때문에 중간에 약한 강세를 넣어 박자를 줄 때가 많다. 아마도 ‘unexpected‘의 ‘un‘이 그 지점이 될 것이다. 그러면 말하기가 더 쉬워진다. 글을 읽을 때도 말을 할 때도 우리는 강세가 상당히 자주나오기를 바란다. 긴 간격에는 저항감이 느껴진다. 중얼거리는 것이 정말로 싫기 때문이다. - P127
현대 시에서 행은 다루기 힘든 주제다. 시를 소리 내어읽을 때는 행이 끝날 때에도 전혀 멈추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시인이 많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 행은 시의 패턴, 리듬의 일부다. 자유시를 읽을 때 행이 어디서 끝나는지 목소리로 아주 어렴풋하게라도 알려주지 않는다면, 시를 듣는 사람은 행의 끝이 어디인지 알 수 없다. 그렇다면 행은 그저 인쇄를 위한 편의에 지나지 않는다. 운을 맞춘 정형시에는 규칙성이 있어서 듣는 사람에게 행이 끝나는 지점을 신호해줄 수도있지만, 그래도 시를 읽는 사람의 목소리가 어느 정도 지원을해줘야 한다. 셰익스피어를 읽을 때는 대사에서 자연스럽게이어지는 목소리의 흐름과 그 저변에 깔려 있는 오보격 박자사이에서 계속 타협을 해야 한다. 만약 셰익스피어 배우가 자연스러운 어조를 위해 행을 완전히 무시한다면, 시를 산문처럼 읽는 결과가 나올 것이다. - P133
허구든 사실이든 이야기 속에서 인물들이 ‘생생히 살아나서 ‘진짜처럼 보이는‘ 것은 당연히 그들의 언행에 대한 단순한 서술 때문이 아니다. 그들의 언행이라는 소재를 취사선택하고 재배치하고 해석할 필요가 있다. 앞에서 인용한 디 피에로 씨의 말 "기억은 상상이다"가 바로 이런 뜻이지 싶다. (내 소설 『어둠의 왼손』에서겐리아이가 "진실은 상상의 문제"임을 고향 행성에서 배웠다고 말했을 때도 같은 뜻이었는지 모른다. 그러나 겐리는 물론 실존 인물이 아니다.)그렇다면 논픽션에 창작을 섞는 데 찬성하는 사람들의주장 중 가장 설득력 있는 것은 바로 이것이다. 픽션에 창작한 내용의 배열, 조작, 해석이 필요하듯이, 창작 논픽션에는실제 사건의 배열, 조작, 해석이 필요하다. 단편소설은 창작물이고, 회고록은 재창작물이다. 둘 사이의 차이는 무시해도될 만큼 사소하다. - P225
어쩌면 작가들이 현재 약속의 내용을 고쳐 쓰고 있는 것같기도 하다. 어쩌면 약속이라는 개념 자체가 어떻게 손쓸 수없을 만큼 전前포스트모던적이어서 독자들은 픽션 속의 사실적인 정보를 받아들일 때처럼 논픽션 속의 거짓 데이터도 점점 차분히 받아들이는 쪽으로 변해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확인할 수 없는 정보가 워낙 많이 쏟아지는 탓에 아주 무감각해진 우리는 유사 사실도 그럭저럭 사실과 동등한 것으로 받아들인다. 그 무감각 때문에 모든 종류의 과장(광고, 유명 연예인들에 대한 이야기, 정치적인 ‘비밀 정보,‘ 애국적이고 도전적인 선언 등등) 또한 대체로 받아들이는 편이다. 그내용이 믿을 만한지 아니면 그런 글들이 우리를 조종하려고드는지 별로 개의치 않고 그냥 읽는다는 뜻이다. - P233
‘창의력‘의 의미가 무엇이든, 데이터와 기억의 위조에 이단어를 적용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의도적인 위조든 ‘불가피한 위조는 상관없다. 사실을 관찰하고, 조직하고, 서술하고, 해석하는 작가의능력에서 훌륭한 논픽션이 나온다. 이 능력은 전적으로 상상력에 기대고 있지만, 이때의 상상력은 창작이 아니라 관찰한것을 서로 연결해서 설명하는 데 사용된다. 미학적인 편의, 자신의 희망사항, 영적인 위안, 정신적치유, 복수, 이득 등 여러 이유로 사실을 ‘창조‘해 작품에 집어넣는 논픽션 작가들은 상상력을 이용하는 것이 아니라 배신하는 중이다. - P234
예전에 문학상은 기본적으로 문학적인 행사였다. 퓰리처 같은 상은 확실히 책의 판매에 영향을 미쳤지만, 그것만이그 상의 가치는 아니었다. 그러나 대부분의 출판사가 회계 부서에 점령당한 뒤로, 문학상의 경제적 측면이 점점 더 중요해졌다. 요즘은 문학상이 명성, 돈, 서점 진열대 전시 기간과 관련해서 엄청난 무게를 지닌다. 하지만 그것도 일부 문학상만 그럴 뿐이다. 뉴스로 보도될 가치를 인정받고 성공을 보장해주는 상이 있는 것은 맞지만, 대부분의 상은 그렇지 않다. 수상작이 확실히 헤드라인을장식하는 상과 무시당하는 상은 거의 임의적으로 결정되는것처럼 보인다. 언론은 아무런 의문 없이 습관을 따른다. - P236
부커상은 확실히 열광적인 반응을 일으킨다. 그러나 PEN 웨스턴 스테이츠상에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무심하다. 문학상 심사위원으로 활동한 경험이 있는 작가들은 최종 후보작들이 질적으로 똑같이 우수할 때가 아주 많아서 그중 한 편을 수상작으로 고르는 것은 기본적으로 임의적인 결정이라는 말에 대부분 고개를 끄덕인다. 최종 후보로 선정된작품들의 성격과 의도가 워낙 다양해서 그중 한 편을 수상작으로 고르는 것이 기본적으로 임의적인 결정이라는 말에도많은 사람이 고개를 끄덕인다. 그러나 한 편의 수상작을 고르는 것이 심사위원들의 의무이므로, 그들은 그렇게 한다. 그러면 출판사가 그것을 이용해 돈을 벌고, 서점들이 아첨을 떨고, 도서관들은 서가를 그 책으로 채운다. 그 와중에 최종 후보에 올랐던 다른 책들은 잊힌다. - P237
경쟁을 통해 우승자 한 명을 고르는 방식은 문학이 아니라스포츠 경기에 적합한 것 같다. ‘대형‘ 문학상들이 점점 지나치게 문단을 지배하는 현상은 유해하고, 이런 시스템은 필면적으로 친분, 지연, 특정 젠더, 거물을 편파적으로 우선하는 분위기를 고착시킨다. 나는 이 중에서 특히 특정 젠더를 편애하는 분위기가 질색이다. 그러나 이런 분위기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열렬히 부정하는 사람이 워낙 많기 때문에, 혹시 내가 아무것도 아닌일로 진저리를 치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 P237
그것은 성애적인 매혹이 아니라 신체적인 매혹이다. 신체적이고, 사회적이고, 윤리적이다. 고통스럽다. 그래서 신경에거슬린다. 그 불편한 마음이 사라지지 않는다. 그것이 신경에 거슬린다는 사실을 나의 사회가 부정하기 때문이다. 나의 사회는그것이 괜찮다고, 아무 문제 없다고 말한다. 여자의 발은 원래 패션과 관습을 위해, 에로티시즘을 위해, 결혼 가능성을위해, 돈을 위해 고통받고 일그러지는 존재라고 말한다. 그리고 우리는 모두 맞습니다. 물론이죠, 문제없어요, 라고 말한다. 오로지 내 안에 있는 어떤 것만이, 옛날 젊었을 때 신었던 황당한 신발 때문에 비틀어진 내 발가락 속의 작은 신경만이, 발등의 근육만이, 발꿈치의 인대만이, 내 몸의 그 모든 조각들만이 아냐 아냐 아냐아냐라고 말한다. 그건 괜찮지 않다고, 완전히 잘못된 일이라고. - P268
나의 외모는 나라는 사람의 일부다. 그 반대도 마찬가지다. 나는 내 몸이 어떤 모양인지, 크기가 얼마나 되는지, 무엇이 내게 어울리는지 알고 싶다. 몸이 중요하지 않다고 말하는사람을 보면 말문이 막힌다.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할 수 있지? 사이언스픽션 영화에서 유리병 안에 둥둥 떠 있는 뇌 같은 꼴이 되고 싶은 생각은 없다. 내가 몸과 분리되어 정신만 둥둥떠다니는 존재가 되는 날은 오지 않을 것이다. 나는 이 몸 ‘속‘에 사는 존재가 아니라 이 몸 자체다. 허리가 있든 없든. 하지만 내 몸이 지난 세월 놀랍고 짜릿하고 걱정스럽고실망스러운 갖가지 변화를 겪는 와중에도 전혀 변하지 않은것이 있다. 단순히 외모만으로 결정되지 않는 나라는 사람. - P278
그 사람을 찾아내서 어떤 존재인지 알아내기 위해 나는 깊게꿰뚫어 보아야 한다. 공간뿐만이 아니라 시간까지도내게 기억이 있는 한 나는 길을 잃지 않는다. - P279
젊음과 건강함이라는 아름다움의 이상이 있다. 이 이상은 결코 변하지 않으며 항상 진실이다. 영화배우나 광고 모델로 대표되는 아름다움의 이상도 있다. 아름다움의 게임이 내세우는 이 이상은 항상 경우에 따라 규칙을 바꾼다. 그리고언제나 진실이 아닌 부분이 섞여 있다. 이보다 더 정의하기어렵고 이해하기 어려운 이상적인 아름다움도 있다. 이 아름다움은 몸과 정신이 만나 서로를 정의하는 지점에서 생겨난다. 이 아름다움에 무슨 규칙이 있기는 한지도 잘 모르겠다. 내가 이 아름다움을 설명하기 위해 시도해볼 수 있는 방법중 하나는 천국에 있는 사람들을 상상해보는 것이다. 종교가 믿음의 규약 중 하나로 약속하는 천국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고인이 된 소중한 사람들을 나중에 만날 수 있기를 바라며 꾸는 꿈을 천국으로 지칭했을 뿐이다. 우리가 아름다운 천국에서 그들을 다시 만난다면, 그들은 어떤 모습일까? - P279
내 어머니는 여든세 살 때 암으로 고통스럽게 돌아가셨다. 비장이 너무 비대해져서 겉으로도 드러날 정도였다. 내가 어머니를 생각할 때 떠올리는 모습이 그것인가? 가끔은 그렇다. 그렇지 않으면 좋겠는데. 그 모습에는 확실히 진실이 담기 있지만, 그로 인해 더 많은 진실이 담긴 모습이 흐릿하게 가려진다. 그 모습은 50년 동안 내 머릿속에 쌓인 어머니의 기억 중 하나일 뿐이다. 시간적으로는 가장 마지막 기억이다. 그 뒤에는, 그 너머에는 더 깊고 복잡하고 항상 변화하는 이미지가 있다. 상상, 풍문, 사진, 기억이 만들어낸 이미지다. 콜로라도의 산악지대에 살던 작은 빨간 머리 아이, 슬픈 얼굴을 한 섬세한 대학생, 상냥한 미소를 짓는 젊은 엄마, 눈부시게 똑똑한 여자, 비할 데 없이 유혹적인 사람, 진지한 예술가, 뛰어난 요리사....… 어머니가 요람을 흔드는 모습. 잡초를 뽑는모습, 글을 쓰는 모습, 웃는 모습이 보인다. 주근깨가 난 우아 - P280
한 팔에 찬 터키석 팔찌가 보인다. 한순간 이 모든 모습이 한꺼번에 보인다. 어떤 거울도 보여주지 못하는 것, 세월을 건너뛰어 번쩍 빛을 내는 영혼이 언뜻 보인다. 아름답다. 위대한 예술가들은 바로 이것을 보고 그림으로 그리는것이 분명하다. 렘브란트가 그린 초상화 속의 지치고 늙은 얼굴들이 우리에게 큰 기쁨을 주는 이유가 바로 이것임이 분명하다. 그 얼굴들은 겉으로 드러난 아름다움이 아니라, 깊이가 담긴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브라이언 랭커의 사진 앨범 ‘나는 세상을 꿈꾼다』에 실린 주름진 얼굴들은 고생해가며 나이를 먹을 가치가 있을지도 모른다고 우리에게 말한다. 그 세월 동안 자신의 영혼을 다듬을 수 있다면. 우리가 항상 몸으로만 춤을 추는 것은 아니다. - P281
위대한 무용수들은 아는 사실이다. 그래서 그들이 뛰어오를 때 우리 영혼도 그들과 함께뛰어오른다. 공중을 날며 우리는 자유롭다. 시인들도 이런 춤을 알고 있다. 예이츠의 입을 빌려보자.
오 밤나무여, 커다란 뿌리의 꽃나무여, 너는 이파리인가, 꽃인가, 줄기인가? 오 음악에 맞춰 흔들리는 몸, 오 반짝이는 시선 춤과 춤꾼을 어찌 구분해서 볼 수 있을까? - P2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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