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경


변경에는 두 가지 면이 있다. 변경은 인터페이스, 문턱, 경계 지점이다. 어느 쪽에도 속하지 않는 경계의 위험과 가능성을 모두 갖고 있다. 신기루처럼 변경의 앞면, 즉 자신이 바로 변경이라고 주장하는 면이야말로 누구도 가보지 않은 땅을 향해 우리가 대담하게 나아가는 방향이다. 우리는 폭풍의 전선처럼, 전장의 제1선처럼 앞으로 돌진한다. 우리 앞에 있는 것은 그 무엇도 실제가 아니다. 그곳은 텅 빈 공간이다. 나는 위대한 변경 개척자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말을 좋아한다. "브리타니아가 실제로 존재하는지 확실하지 않았다. 내가 그곳에 직접 가기 전에는." 그곳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 공간은 텅 비었다. 따라서 꿈과 희 - P56

망이 가득하다. 빛나는 일곱 개 도시가 있다. 그래서 우리는그쪽으로 간다. 황금을 찾아서, 땅을 찾아서, 앞에 있는 모든것을 자기 것으로 만들어 우리의 세상을 넓힌다.
변경의 반대 면은 음陰이다. 우리가 사는 곳이기도 하다.
우리는 항상 거기서 살았다. 사방이 그곳이다. 언제나 그랬다.
그곳은 현실 세계, 확실한 진짜 세계, 현실로 가득한 곳이다.
거기서 그들이 온다. 그들이 존재하는지는 확실하지 않았다. 그들이 오기 전에는.
다른 세상에서 온 그들은 우리에게서 우리 것을 가져가변화시키고, 고갈시키고, 쪼그라뜨려 소유물로, 상품으로 만든다. 그들이 우리 세상을 자기들 것으로 변화시킨 뒤에야 우리 세상이 그들에게 의미를 갖게 되므로 우리는 그들 사이에살며 그들의 의미를 받아들인다. 그래서 우리가 자기만의 의미를 잃어버릴 위험이 있다. - P57

우리 어머니는 아버지의 작업을 이어받아, 변경 생존자이며 캘리포니아 토박이인 이시의 이야기를 기록했다. 나는 이시만큼이나 어머니의 책에도 깊이 감탄한다. 하지만 항상 그 책의 부제가 아쉬웠다. ‘북미 마지막 야생 인디언 전기‘라니 어머니가 말하고자 하는 이야기의 의미와 정신에 어긋나는 제목이 아닌가. 이시는 야생이 아니었다. 그는 황야에서오지 않았다. 그의 부족을 학살하고 그들의 땅을 빼앗은 변경개척자들보다 훨씬 더 탄탄하고 뿌리 깊은 문화와 전통을 지니고 있었다. 그가 살던 곳은 황야가 아니라 소중하고 친숙한 세계였다. 그의 부족 사람들은 그 세계의 산 하나하나, 강 하나하나, 돌멩이 하나하나를 모두 잘 알았다. 저 황금빛 산들을 피와 슬픔과 무지의 황야로 만든 자가 누구인가?
문명과 야만 사이에 유의미와 무의미 사이에 경계선이있다 해도 그것은 지도에 그어진 선이 아니다. 지상에 실제로 존재하는 지역도 아니다. 오로지 마음속 경계선이다. - P58

북미 사람들은 서부의 땅을 보듯이 자신의 미래를 보았다. ‘정복‘하고 길들여야 할 텅 빈 땅(동물, 인디언, 외부인은안중에 없다)에 잔뜩 들어가 자신의 행동으로 가득 채운다.
무의미한 공백에 자신의 이름을 쓴다. 대부분의 사이언스픽션에도 바로 이런 미래가 나오지만, 내 소설은 다르다. 내 소설에서 미래는 이미 가득 차 있다. 우리의 현재보다 훨씬 더역사가 깊고 규모가 크다. 그곳에서 외부인은 우리들이다.
내 판타지 소설들은 힘의 사용을 예술로, 힘의 오용을 지배로 보고 탐구한다. 우리가 현실이라고 생각하는 것과 상상이라고 생각하는 것 사이의 신비한 경계선을 따라 오가며 변경을 탐험한다. - P59

제국을 계속 확장하지 않으면 존재할 수 없는 자본주의의 경계선은 계속 움직이고, 계속 앞으로 나아가는 자본주의 정복자들은 영원히 엘도라도를 추구한다. 부유하면 부유할수록 좋다고 그들은 외친다. 내사실주의 소설들은 대부분 자본주의의 음지에 사는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다. 가정주부, 웨이트리스, 사서, 작고 우울한 모텔 관리인. 누군가는 이들을가리켜 정복자가 남기고 간 망가진 세상에서 원주민 보호구역에 사는 사람들이라고 말할지도 모르겠다.
항상 팽창하고 있기 때문에 전체가 변경이며 그 자체로서는 어떤 가치도 어떤 충만함도 없는 세상, 수익만이 가치를 평가받는 세상에 사는 사람들은 스스로 생각하는 자신의 가치를 잃어버릴 위험이 있다.  - P59

나는 미국 개척자 집안의 증손녀다. 우리 외가는 이주해서 땅을 사고 농사를 짓다가 실패하면 다시 이주하는 생활을하며 미주리에서 와이오밍으로, 콜로라도로, 오리건으로, 캘리포니아로 갔다가 다시 돌아왔다. 우리는 앞으로 나아가는 양의 에너지를 따라갔지만, 발견한 것은 음이었다. 나는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캘리포니아의 산에 스페인 사람들이 씨를 뿌린 야생 귀리, 농장을 일구던 사람들이 하니 카운티와 맬리어 카운티에 남기고 간 풀인 치트그래스가 내게 전해진유산이다. 나의 일족들이 심고 내가 수확한 작물들이다. 짚으로 자아낸 내 황금이다. - P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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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런 건 다 차치하고, 지금 나는 노인이 되었다.
이 글을 쓸 때 나는 예순 살이었다. 예이츠의 말처럼 "예순 살의 미소 짓는 공인". 하기야 예이츠는 남자였다. 이제 나는일흔 살이 넘었다. 이건 모두 내 잘못이다. 사람들이 여자를만들어내기 전에 태어나 수십 년 동안 훌륭한 남자가 되려고열심히 노력한 탓에 젊음을 유지하는 법을 몽땅 잊어버렸다.
그래서 나는 젊음을 유지하지 못했다. 나의 시제가 뒤죽박죽이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젊다가 갑자기 예순 살이 되고 어쩌면 여든 살이 될지도 모른다. 그다음은?
별것 없다.
진짜 남자라면 틀림없이 어떻게든 할 수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자꾸 든다. 좋은 아니더라도, 화장품보다는 더 효과적인 어떤 것. 하지만 나는 실패했다.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젊음을 유지하는 데 완전히 실패했다. 내가 열심히 노력했던 것을 모두 되돌아본다. 나는 정말로 노력했다. - P20

가끔은 모든 걸 그냥 포기하는 게 낫겠다 싶기도 하다. 가끔은 나의 선택권을 행사해서 게이트 앞에 우뚝걸음을 멈추고 나치주의자를 머리부터떨어지게 하는 편이 낫겠다 싶다. 내가 남자인척하는 데에도젊음을 유지하는 데에도 재주가 없다면, 그냥 늙은 여자인 척하는 편이 나을지도 모른다. 누가 늙은 여자를 만들어낸 적이있는지는 아직 잘 모르겠다. 하지만 한번 시도해볼 가치는 있을 것 같다. - P21

몸을 밧줄로 묶는 사람들과 거대하고 무거운 것들은 그렇게 잘 변형돼서 불확실한 바닥에 화를 낼지도 모른다. 마음이 불안해지기 때문이다. 어쩌면 그들은 진흙 안으로 빨려 들어갈까 봐 두려워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빨아들이는 데에 관심이 없고 배가 고프지도 않다. 나는 그냥 진흙일 뿐이다. 상대에게 자리를 비워준다. 친절하게 대하려고 노력한다. 그래서 사람들과 그 거대하고 무거운 것들은 전혀 변하지 않은 모습으로 그 자리를 떠난다. 그냥 발에 진흙이 묻었을 뿐이다. 하지만 나는 달라져 있다. 여전히 이 자리에 있고 여전히 진흙이지만, 발자국과 깊고 깊은 구멍과 걸어간 자국과 흔적과 변화가 사방에 가득하다. 나는 달라졌다. 당신이 - P24

나를 변화시킨다. 나를 화강암으로 취급하지 말라. - P25

부족 안에서든 가정 안에서든 몹시 안전한 환경에서 자란 아이들은 사랑을 잘 인식하지 못한다. 물고기가 물을 의식하지 못하는 것과 비슷한 것 같다. 원래 그래야 하는것이기도 하다. 사랑은 공기 같고, 사랑은 인간적인 요소이니까. 하지만 이제는 후안이 고향에서 쫓겨나 가난하게 살아가던 온화하고 지적인 사람이었음을 알겠다. 사람들의 편협함이 그를 불한당들의 먹잇감으로 만들었다. 1940년대의 세상은 그런 사람들 천지였다. 지금도 그런 사람들 천지다. 그때내가 눈치 있게 그의 손을 잡아주었으면 좋았을걸. - P38

그때인지 그 전인지, 하여튼 후안과 로버트가 모종의 경인 것이 분명하다. 내 바위가 네 것보다 크네 마네 하는 경쟁이었다. 로버트는 우리에게 멋들어진 야외 벽난로를만들어주었다. 기술적으로도 실제로도 신성한 장소다. 유록의상의 집처럼 지어졌기 때문이다. 지을 때의 의도도 그러했다. 그러나 명상하는 사람이 앉아야 할 자리에서 불이 타올랐기 때문에, 로버트는 사람들이 불가에 둘러앉을 수 있게납작한 돌들을 반원형으로 놓아 명상의 반원을 완성했다. 우리 식구들은 70년 동안 그 자리에 앉아 식사도 하고, 서로에게 이야기도 들려주고, 여름밤의 별들도 구경하는 중이다.
아버지와 로버트를 찍은 사진에서 한 사람은 열심히 듣고 있고 다른 한 사람은 이야기를 하고 있다. 한 손을 들어 올리고 먼 곳을 바라보는 듯한 표정을 짓고 있다. 두 사람이 앉 - P42

아 있는 곳이 바로 벽난로의 그 납작한 돌이다. 로버트와 앨프리드는 이야기를 나눌 때 영어도 쓰고 유족의 말도 썼다.
뉴욕 출신 독일 이민 1세대의 딸인 내가 유록어를 말하는 아버지의 목소리를 들은 것은 아마도 이례적인 일이었을 텐데그때는 그것을 몰랐다. 아무것도 몰랐다. 모두 유록어를 쓰는줄 알았다. 그래도 세상의 중심이 어디인지는 알고 있었다. - P43

도서관은 공동체의 초점, 신성한 장소입니다. 누구나 접할수있다는 점, 공개된 장소라는 점에서 신성합니다. 모두회 장소지요. 제가 저의 도서관이라고 생생하고 즐겁게 기억하는 곳이 몇 군데 있습니다. 제 인생 최고의 요소들입니다.
제가 처음으로 친해진 도서관은 캘리포니아주 세인트헬레나에 있었습니다. 당시에는 주로 이탈리아 사람들이 사는평화로운 소도시였죠. 작은 카네기 도서관이었습니다. 하얀치장 벽토, 서늘한 공기, 어머니가 오빠와 저를 그곳에 남겨두고 장을 보러 가시던 뜨거운 8월 오후에는 졸린 곳이기도했습니다. 칼 오빠와 저는 단어를 찾아다니는 미사일처럼 어린이 방을 돌아다녔습니다.  - P44

제 생애 두 번째 도서관은 가필드 중학교 근처에 있는 버도서관 분원입니다. 그곳에서 제 친구 셜리가 저를 ‘N‘
서가로 데려가서 "여기 E. 네스빗이라는 작가가 있는데, 모래요정과 다섯 아이들』이라는 책을 너도 꼭 읽어봐야 돼"라고 말하던 소중한 추억이 있습니다. 세상에, 셜리의 말은 정짤 울았습니다. 8학년 무렵 저는 어른 방으로 슬그머니 스며들어 갔습니다. 사서들은 모른 척해주었고요. 하지만 제가 로드 던세이니‘의 두꺼운 전기를 성물처럼 들고 어른 대출 창구로 갔을 때 사서의 표정이 지금도 기억납니다. 나중에 세월이흐른 뒤 시애틀에서 세관 관리가 제 여행 가방을 열었다가 스틸턴 치즈"를 발견하고 지은 표정과 아주 흡사했습니다.  - P46

그다음 도서관은 바로 버클리 공립도서관 본관입니다.
버클리 공립고등학교에서 겨우 한두 블록 거리에 그 도서관이 있는 것이 축복이었죠. 저는 학교를 싫어하는 만큼 도서관을 좋아했습니다. 학교에서 저는 10대들의 습속이라는 시베리아 벌판으로 추방당한 사람이었지만, 도서관에서는 고향에 온 것처럼 자유로웠습니다. 도서관이 없었다면 저는 고등학교 시절을 이겨내지 못했을 겁니다. 적어도 제정신으로는하기야 10대 아이들은 모두 제정신이 아니죠.
저는 외서가 있는 3층 쪽으로는 아무도 가지 않는다는사실을 알아차리고, 그곳으로 이동했습니다. 거미줄처럼 생긴 창가에서 ‘시라노 드 베르주라크』 프랑스어판을 들고 웅크린 채 살다시피했습니다. 아직 그 책을 읽을 수 있을 만큼프랑스어를 익히지 못했는데도 그런 건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사랑이 크면 알지 못하는 언어도 읽을 수 있게 된다는걸 그때 배웠죠. 사랑이 크면 못 할 일이 없습니다.  - P47

그러고는 또 울었죠. 아, 울기에 좋은 때있습니다. 도서관은 울기에 좋은 장소고요. 조용히 울기에그다음 도서관은 래드클리프 대학의 작고 사랑스러운 도서관입니다. 그다음은...... 하버드의 와이드너 도서관이었조 제가 아직 1학년생이었는데, 그것도 여자였는데, 그 도서관 출입을 허락받았을 때의 이야기입니다.
자유에 대한 저의 개인적인 정의를 알려드리겠습니다.
자유는 와이드너 도서관의 서가에서 누리는 특권입니다.
믿을 수 없을 만큼 무한히 늘어선 그 서가들에서 처음 밖으로 나왔을 때의 기분을 지금도 기억합니다. 저는 그때 약 스물다섯 권이나 되는 책을 들고 있어서 걷기도 힘든 지경이었지만 날아갈 것 같은 기분이었습니다.  - P48

저는 뒤로 돌아서서도서관 건물의 널찍한 계단을 올려다보았습니다. 저게 바로천국이지. 나의 천국이야.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세상의모든 글이 저기에 있고, 난 그 글을 읽을 수 있어. 자유입니다, 드디어, 주님, 드디어 자유예요!"
제가 이 위대한 구절을 가벼운 마음으로 인용한 것이 아님을 알아주시기 바랍니다. 여기에는 저의 진심이 있습니다.
지식이 우리를 자유롭게 합니다. 예술이 우리를 자유롭게 합 - P48

니다. 훌륭한 도서관은 자유입니다.
그다음으로 파리에서 국립도서관과 짧지만 격렬했던 사랑을 나눈 뒤 저는 포틀랜드에 도착했습니다. 이곳에서 보낸처음 몇 년 동안 저는 아이 둘을 낳고 키우느라 집에 있었습니다. 제게 기쁨을 안겨준 일, 제가 원하던 휴일, 제가 일주일이나 한 달 내내 고대하며 기다리던 일은 바로 보모를 구해아이들을 맡긴 뒤 찰스와 함께 시내 도서관으로 가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밤에 갔지요. 낮에는 불가능했으니까요. 도서관이 문을 닫는 9시까지 두어 시간이 남아 있었습니다. 언어의바다에 풍덩 뛰어들고, 넓은 정신의 벌판을 거닐고, 상상력이라는 산을 올랐습니다. 카네기 도서관의 그 아이가, 와이드너의 학생이 그랬던 것처럼. 그것이 바로 저의 자유고 저의 기쁨이었습니다. 지금도 그렇습니다. - P49

는 그 기쁨은 절대 상품이 될 수 없습니다. 그 기쁨을 또 하나의 배타적인 특권으로 만들면 안 됩니다. 공립도서관은 공공의 것입니다.
그 자유에 누가 손을 대도 안 됩니다. 반드시 필요한 사람 누구나 그 자유를 누릴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 모두가 필요할 때, 그러니까 항상 누릴 수 있어야 합니다. - P49

그래서 그다음에 떠올린 곳은 내가 내 머릿속에서 찾아낸 섬, 어스시라고 불리는 섬이었다. 이 군도에는 마법사, 주부, 그리고 환상적인 사람들이 산다. 나는 이 섬들을 잘 알고 있다. 내가 이 섬들에 관한 책을 썼으니까. 그 섬들에 곤트와 로크와 해브너, 셀리더와 오스킬과 더핸즈라는 멋진 이름도 지어주었다. 어스시를 현실 세계에서 보게 될 거라고는 한번도 예상하지 못했는데, 그런 일이 일어났다. 한 번. 당시 나는 영국제도를 끼고 돌면서 오크니 제도와 헤브리디스제도를 지나고, 루이스해리스섬에 갔다가 스카이섬에 들른 뒤 서해안을 따라 스코틀랜드와 웨일스를 지나는 배에 타고 있었다. ...... 그때 거기 내 섬이 있었다. 황금빛 바다에 흩어진 그섬들은 이 세상의 것이 아닌 듯 환상적이었으며 틀림없이 용들이 가득했다. 실리제도. 이 이름도 아름다웠다. 왜 웃는가?
내가 실리제도를 봤다니까! - P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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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나타난 그의 손에 들린 것은 맥켈란 1926이었다. 에든버러 어느 위스키샵에서 맥켈란 30년산을 본 적이 있다. 녀석은 다른 위스키와 달리 자물쇠가 달린 투명한 상자 안에 들어 있었다. 맥켈란 1926은 30년산과는 감히 비교도 할 수 없는 고가의 위스키다. 만져본 적도 마셔본 적도 없지만 맥켈란 1926 의 명성은 나 같은 초짜도 익히 알고 있었다. 1986년, 전 세계에 40병만 출시된 술이다. 셰리 참나무통에서 60년간 숙성했다는 맥켈란 1926 40병은 병당 3,000만 원에 완판되었다고 한다. - P137

싱글몰트계의 롤스로이스라 불리는 맥켈란 1926 이내잔에도 가득 찼다. 녀석은 뜨겁고 깊고 진했다. 끈적끈적,
끝도 없는 수렁으로 끌어들이는 맛이었다. 맥켈란 1926을입에 오래 머금은 채 나는 실패한 사회주의자인 내 아버지를 떠올렸다. 세상 떠나기 전에 좋은 술, 맛이나 보라고 내 - P137

가 보내준 시바스리갈 18년산을 소주 한 박스와 바꿔 마신아버지를젊은 날에는 똑같이 민족의 통일과 평등을 주장했으나두 사람의 끝은 전혀 달랐다. 나는 실패한 사회주의자인아버지의 삶이 늘 애달프고 서글펐다. 아버지 스스로 당신의 삶을 쓸쓸해할 것이라 확신했다. 그러나 맥켈란 1926을 마시며 나는 깨달았다. 아버지의 결말이 내 취향에 더걸맞다는 것을, 아버지 역시 나와 같은 마음이리라는 것을 참으로 다행 아닌가? 성공할 기회가 없어 타락할 기회도 없었다는 것은! - P138

누가 봐도 남자 같긴 했지만 나는 생물학적 여자여서(실제로 빨치산의 딸답게 지리산을 달려서 내려올 때면 남자들이 나를 두고 내기를 하곤 했다. 여자인지 남자인지. 심지어 두 남자를지나치면서 이런 말을 들은 적도 있다. 거봐. 남자지? 천원 줘. 이런 젠장!) A와 달리 보통 여성적이라 하는 것들을 동경하지않았다. 내게 긴 머리 짧은 치마 같은 건 선택의 문제였으니까. 그러나 A에게는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금기의 영역이었다. 그래서 금기가 풀리자 미친 듯 한때 금기였던 것들을 향해 돌진한 게 아니었을까, 지금의 나는 생각한다. 그리고 미안하다. 그 마음을 알아주지 못해서. 이해하기 어려워더라도 친구라면 기다려주어야 했다. 그런 게 친구다. - P147

그날 밤 나는 A가 사 온 블루를, A는 매취순을 밤새 마셨다(그때만 해도 젊어서 밤새 마실 수 있었다). 다음날 아침 엄마 밥을 챙겨드리고 나니 우리밥 챙길 기운이 없었다. 해장할 필요도 있었다. 때마침 제자 B가 합류했고, 숙취가 가시지 않은 우리를 대신해 B가 운전을 하기로 했다. 벚꽃 흩날리는 길을 달리며 A는 흥이 났다. 벚꽃은 만개할 때가 절정이 아니다. 질 때가 가장 아름답다. 햇볕 환하고 바람 없는 날, 혹은 비 내리고 바람 부는 날, 어느 쪽이든 지는 벚꽃은 처연하게 아름답다. 아니 처연해서 아름답다. - P187

술꾼들의 내밀한 욕망인가, 어리석음인가 숙취에서 벗어나기 위해 해장을 한다. 그런데 해장은 반드시 술을 부른다. 하여 숙취에 숙취를 더한다. 우리 또한 어리석어 운전자를 제외한 A와 나는 해장을 하며 다시 술을 마셨다. 밥집이니 당연히 소주였다. 두 병을 채 마시지 못했는데 취기가 흥건히 올라왔다. 안 되겠다 싶었는지 B가 가자며 우리를 부추겼다. 실은 B도 술을 마시고 싶었던 거다. 빨리운전을 끝내고 집에서.
A의 차는 흰색 폭스바겐 골프였다. 섬진강을 건너자 이내 꽃길이 이어졌다. 우리가 술에 젖어가는 사이 바람이불기 시작해 길은 온통 흩날리는 벚꽃 천지였다. 차량이끝도 없이 이어져 좀처럼 나아가지 못했다. 멈춰 서다시피한 차 안에서 A가 지디(G-DRAGON)의 노래를 틀었다. 지디는 나의 최애 뮤지션이다. - P188

솔직히 말하면 나는 약간 내상을 입었다. 내가 뭘 잘못했는지, 내가 왜 그렇게 싫은지, 묻지도 못한 채 혼자 속을 끓였다. 이럴 때 꼭 오해하는 사람들이 있다. 상상금지! 절대사랑은 아니었고, 사랑 비슷한 감정을 느낀 적도 없다. 그저 내가 가지지 못한 것을 가진 자에 대한 동경이나 질투뭐 그 비스꾸무리한 것이었다. 청춘이 지나고 나서야 깨달았다. 나보다 깊고 넓다고 생각했던 A 또한 나와 똑같이 청춘의 허세를 부렸을 뿐이라는 걸. 청춘은 허세다. 그러니까 청춘이지, 스무 살 언저리의 A는 인생도 문학도 독고다이, 쓸쓸하게 홀로 감당해야 하는 것, 그런 찬란하게 유치한 마음으로 홀로 걷고 홀로 마셨던 것이다. - P195

오랜 세월이 지난 어느 날 다정한 제자와 술을 마시다그 이유를 깨달았다. 다정한 제자는 일행 중 누군가 깻잎을 집으면 기다렸다는 듯 잡아주고, 취한 듯 보이면 부축해서 방으로 안내하고, 누군가의 어깨에 보푸라기가 보이자 연인인 듯 다정하게 떼어주었다. 그에게는 물론 연인이있었다. 여럿이고 누구에게나 똑같이 행동해서 누구도 오해하지 않았지만 둘만 있었다면 누구라도 마음이 설렜을것이다. 그렇다. 다정한 사람은 누구에게나 다정하다. 불행히도 혹은 공평하게도 다정한 사람은 다정하지 않은 사람 - P198

‘보다 외로움을 잘 못 견디는 경우가 많다. 다정하니까. 마음이 말랑말랑하니까. 늘 아내의 곁에서 다정하게 함께했던 A의 아버지에게는 아내의 공백이 못 견디게 크지 않았을까? 그래서 그리도 빨리 새로운 다정의 대상을 찾아낸게 아닐까? 깨달은 그날 다정한 제자와 밤새 시바스리갈을마셨다. 야! 아무한테나 다정하지 마, 술꼬장을 부리면서.
"천성을 어찌할 수 있어?"
다정한 제자는 더없이 다정한 눈빛으로 빈 잔에 위스키를 따랐다. 그날 나는 다정에 대한 오랜 갈급함을 버렸다.
다정한 사람도 무심한 사람도 표현을 잘하는 사람도 못 하는 사람도 다 괜찮다. 각기 다른 한계를 끌어안고 사는 셈이니까. - P199

술이 들어가고 말은 차츰 사라졌다. 누군가는 뚫어져라모닥불을 쳐다보고, 누군가는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고,
누군가는 끝도 없이 펼쳐진 초원을 바라보았다. 그저 고요히 술을 마셨을 뿐인데 잠자러 들어갔던 사람들이 하나둘우리 곁으로 다가왔다. 그들도 우리 곁에 털썩 주저앉아말없이 술을 마셨다. 그들도 역시 우리와 다르지 않았다.
그들에게도 이런 순간에는 약간의 알코올이 필요했던 것이다.
그들과 우리는, 그러니까 그냥 우리는, 그날 알코올의힘을 빌려 자신의 내면으로 침잠하거나 잠시 우주의 일부가 되는 경이를 경험했다. 새로운 별들이 떠오르고, 달이 - P208

초원을 가로질러 달리고 술이 천천히 우리의 혈관을 매우고 모닥불은 사위고, 그렇게 초원의 밤이 깊어갔다. - P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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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이사슬로부터 해방된 초원의 단 하루, 이것이 술의 힘이다. 최초로 술을 받아들인 우리의 조상도 아프리카 초원의 저 동물들과 다를 바 없었을 것이다. 해마다 돌아오는해방의 하루 숙취의 고통을 알면서도, 술깬직후의 겸연찍음을 알면서도, 동물들은 그날의 해방감을 잊을 수 없어또다시 몰려드는 것일 테다.
술은 스트레스를 지우고 신분을 지우고 저 자신의 한계도 지워, 원숭이가 사자의 대가리를 밟고 날아오르듯, 우리를 날아오르게 한다. 깨고 나면 또다시 비루한 현실이기다리고 있을 뿐이지만 그러면 또 어떠한가. 잠시라도 해방되었는데! 잠시라도 흥겨웠는데! - P67

"지금까지 들은 술 예찬 중에 최곱니다!"
그날 그도 업무의 괴로움으로부터 해방되었다. 오후 네시도 되지 않아 시작된 술자리는 새벽 네시에야 끝났다.
술은 접대라며 괴로워하던 오사카 지부 임원이 4차까지쏘며 끝까지 자리를 지켰다. 이름도 얼굴도 잊었지만, 감사했습니다!
여담이지만, 굳이 내셔널지오그래픽 비디오를 찾지는마시라. 내 말에 혹한 사람들 몇이 찾아본 모양인데, 나더러 소설을 썼다며 실망이 이만저만 아니었다. 어쩌랴. 소설가의 기억이란 그따위인 것을! - P68

다음 날, 오후 들어 구축죽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온통안개에 잠긴 산은 아름답다 못해 신비로웠다. 어디선가 산의 정령이 나타날 것 같은 비경이었다. 그러나 초행인 일행들은 앓는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내가 주저앉은 사람을다독여 일으켜 세우고, 뒤처진 사람을 데리러 왔던 길을되짚어갈 수 있었던 것은 빨치산의 딸의 피가 흐르고 있어서있을까? 아님 강인한 촌년이어서였을까? 아무튼 탈 없이 연하천 산장에 도착했다.
온몸은 비에 젖고, 멈춰 서니 젖은 몸이 부들부들 떨리고, 누군가 가져온 석유버너는 불이 붙지 않고, 가스버너는 엉뚱하게 가스선으로 불이 번지고, 총체적 난국이었다.
일행 중 누군가 짜증을 내기 시작했다. 나는 식사 준비를끝낸 낯선 사람들에게서 버너를 빌려왔다. 빗줄기가 점점 거세져 우리가 만든 카레는 물 반, 카레 반이었다. - P82

할매는 그때마다 막걸릿값만 받고는 안줏거리를 무한리필해줬다. 할매의 푸짐한 인심 덕인지, 불쾌하게 오른 술기운 덕인지, 서로 싸늘했던 고모와 B도 다정하게 어깨를 맞댄 채 무슨 이야기를 나누었다. 막차에 올랐을 때는 누구랄 것 없이 만취 상태였다(물론 쟁반과 술잔 등등은 얌전히 반납했다. 90도 각도의 깍듯한 인사와 함께).
일행들은 젖었다 마른 등산화를 벗고 서로의 다리 위나 다리 사이에 자신의 다리를 올려놓은 채 이내 곯아떨어졌다. 얌전하고 소심한 A가 우렁차게 코를 곤다는 것을 그날 처음 알았다. 유난히 크고 밝은 만월이 기차를 따라 함께달렸다. 산은 우리의 본성을 드러나게 하고, 술도 그러하지만 때로는 누군가의 허물을 덮기도 한다.
살면서 다시는 그런 날을 만나지 못했다. 그런 날이 어찌 흔하랴. 오천 원으로 여섯 명이 만취한 밤이라니! 할매의 따스한 호의가 만든 기적과도 같은 밤이었다. - P86

술이 사람을 이리 만든다. 3박 4일 동안 우리는 쪽잠을 자며 내리 술을 마셨고, 흥건히 취했으나 누구도 필름이 끊길 정도로 취하지는 않았다. 적당한 취기 속에 시간이 쏜살같이 흘러갔다. 세상이 아득한데 감각은 100퍼센트 막힘없이 열려 창밖으로 후박나무 잎사귀가 땅에 내려앉는 소리가 들렸다. 동네의 자잘한 소음이 우리와 세상의아득한 거리를 왁작왁작 메우고 있었다. 옆집과 내 집의좁은 담 사이로 고운 햇살이 춤을 추었다. 옆집에서 숨죽인 기색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 당당한 신음 소리가 들려왔다. 옆집은 토마스 집, 뚱뚱한 아메리칸 토마스는 나를 모른다. 나는 그를 안다. 그는 어느 대기업의 통역으로 일한다. 그가 번역한 글을 내가 감수한 적이 있었는데 우연히 보게 된 서류에 그의 집 주소가 적혀 있었다. 세상이 좁기 - P95

도 하지, 내 집 바로 옆이었다. 덩치가 큰 토마스는 소리도우렁찼다. 남녀의 교성이 세상의 자잘한 소음을 누르고 당당히 온 동네에 울려 퍼졌다. 소리에 놀란 후박나무 잎사귀가 또 한 잎 고요히 내려앉았다. 이상하게 숙연해졌다.
살아 욕망을 분출하는 토마스 부부도, 죽어 고요히 떨어지는 후박나무 잎사귀도, 종말이 머나먼 태양에서 시공을 뚫고 지구, 그것도 누추한 내 집의 담 사이에 당도한 햇살도,
모든 존재가 서글펐다. 살아있는 모든 것의 슬픔을 애도하며 나는 한 방울의 눈물을 찔끔 떨궜다. 위스키든 소주는천천히 오래오래 가만히 마시면 누구나 느끼게 된다. 살아있는 모든 것에 대한 연민을. - P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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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 부모님 이야기를 『빨치산의 딸』이라는 실록으로쓰고 수배를 당했다. 책을 출판한 사장은 실형을 선고받았다. 이적표현물 제작만이었으면 굳이 도망 다니지 않았을것이다. 그 전에 사노맹(남한사회주의노동자동맹의 약칭)이라는 조직의 기관지 <노동해방문학> 기자로 2년정도 일했는데,
그 조직이 반국가단체로 몰려 전 조직원에게 수배령이 내렸다. 함께 일하던 친구 대부분이 붙잡혀 7년 이상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 P11

나는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는 모습을 보면서 더 이상 사회주의가 더 나은 미래를 위한 대안이 될 수 없다는사실을 뼈저리게 깨달았다. 그런데도 나는 감옥 대신 도피생활을 선택했다. 내 나이 스물여섯, 감옥에 가서 7년 형을 선고받는다면(그 이상의 형량을 받을 확률도 농후했다) 서른네다섯에나 사회로 복귀하게 될 터였다. 서른네다섯이라니! 스물여섯의 나는 상상도 할 수 없는 나이였다. 허세쩔었던 문학소녀 시절, 나는 서른셋에 스스로 목숨을 끊겠노라 결심했다. 서른셋, 하나님의 아들 예수가 인간의 육신을 버린 나이, 보잘것없는 내가 그 이상 살아있는 건 오만이라 믿었던 것이다. 실소를 금치 못할 유치한 생각이지만, 아무튼 그때의 나는 그랬고, 서른네다섯에 출소하느니 숨죽여 숨어 사는 편이 나을 것 같았다. - P12

‘홀로 가는 저 등산객 간첩인가 다시 보자‘
여자 혼자 산에, 그것도 지리산에 혼자 갔다가는 수많은 등산객이 나를 간첩으로 신고할 판이었다. 산이 그리워 몸살을 앓다 에라 모르겠다. 무작정 용산에서 밤 기차를 탔다. 새벽 다섯 시쯤 구례구역에 내렸다. 부모님을 뵈러 노상 다니던 길이었다. 그러나 수배 중이라 부모님을 뵐 수는 없었다. 어려서부터 내 집같이 드나들던 구례구역은 손님 하나 없이 적막했고, 문을 열고 나가자 운무에 쌓인 섬진강이 나를 반겼다. 바람조차 잠잠한데 코끝이 쨍한 겨울날이었다.
지금은 성삼재까지 버스가 다니고 거기서 걸으면 노고단이 지척이지만 그때는 지리산 종주를 하려면 무조건 화엄사 뒷길로 9킬로미터를 하염없이 올라야 했다. 한겨울에는 잠시만 걸음을 멈춰도 뼛속까지 추위가 스민다. 그러니 걸음을 멈출 수도 없어 하염없이 걷기에 딱 좋다.  - P14

사실 패스포트는 내가 마신 최초의 위스키다. 그날, 지리산에서 위스키를 처음 마셨다. 물론 대학 시절 위스키인줄 알고 캡틴큐를 마시기는 했었다. 캡틴큐는 마시는 누구라도 거의 혼절에 이르게 하는 기적의 술이다. 종일 지끈거리는 두통은 덤이다. 그게 자본주의 종주국 영국의 술, 위스키의 위력인 줄 알았다. 알고 보니 캡틴큐는 기타재제주, 한마디로 화학약품이나 진배없었다. 돈도 없는 수배자주제에 먹어보지도 않은 패스포트를 지리산행의 동반자로 삼은 이유는 간단하다. 맥주는 한겨울에 먹기에는 너무차가울 뿐만 아니라 무겁기도 하고, 소주 또한 3박 4일의 일정을 버티려면 그 양과 무게가 만만치 않았다. 독한 위스키라면 두 병으로 3박 4일을 견딜 수 있을 것 같았다. - P16

영하 20도가 넘는 지리산의 겨울밤, 내 부모는 이런 날에도 투명옷 한 벌만 입은 채 눈밭에서 잠들었다고 했다. 나에게는 이천 원 주고 빌린 침낭이 네 개나 있었고, 옷 사이에 넣은 뜨거운 수통도 있었고, 밤새도록 혈관을 돌며내 체온을 높여준 위스키도 있었다. 패스포트에 취해 다들추운 줄도 모르고 기나긴 겨울밤을 따시게 보냈다.
다음 날, 우리는 모르는 사람으로 만났듯 모르는 사람으로 헤어졌다. 흐린 램프 아래 보았던 그들의 얼굴은 지금전혀 기억나지 않는다. 그들의 코펠 잔에 위스키를 따르던순간의 안타까움, 나의 정체를 발각당한 순간의 당혹감, 모두가 같은 편, 모두가 위스키에 취했다는 기이한 연대의식만이 아직도 생생하게 떠오를 뿐이다. 인생 최초의 위스키 패스포트는 내게 지리산의 겨울밤이다. 낯선 이들과 따스히 함께했던. - P20

다들 앉은걸음으로 문을 향했다. 찬 공기에 몸서리를 치며 목만 길게 빼고 내다본 바깥은 온통 새하얀 눈밭이었다. 발자국 하나 나지 않은 백색의 순수였다. 누가 먼저랄것도 없이 우르르 마당으로 달려 나갔다. 매화나무에도 감나무에도 눈이 한 뼘씩 쌓여 있었다. 뒤란의 대나무는 눈의 무게를 이기지 못해 땅 끝까지 휘어진 채였다. 자연의 장관 앞에서 다들 입을 다물었다. 누군가 전등을 하늘로 비췄다. 빛기둥 안에서 주먹만 한 눈송이들이 수직으로낙하하고 있었다. 순수에 압도당한 최초이자 마지막 경험이었다. 그날 나는 그런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이토록 순수하게, 이토록 압도적으로 살고 싶다고, 누구도 감히 입을 - P28

열지 못했던 걸 보면 친구들 역시 비슷한 마음이지 않았을까? 열아홉, 그때는 믿었다. 우리 앞에 기다리고 있을 순백의 시간을 순백으로 살아낼 수 있을 거라고.
그로부터 40년의 시간이 흘렀다. 그날 함께했던 친구 중누군가는 먼저 세상을 버렸고, 누군가는 사고를 당해 장애인이 되었고, 누군가는 교수가, 작가가, 회사원이 되었다.
회사원이 된 친구는 머나먼 미국에서 산다. 그 친구를 본지 참으로 오래되었다. 한 친구는 아예 연락이 끊겼다.
눈이 퍼붓는 날이면 그날이 떠오른다. 고요히 내리는 눈처럼 고요했던 내 인생의 첫 술자리. 다음의 40년을 우리는 어떻게 살아내고 있는 걸까. - P29

이름을 잊어버린 신촌의 어느 바에서 그가 주문한 것은시바스리갈 12년산 더블샷이었다. 대학 시절, 가난한 문학청년들이 양주인 줄 알고 간혹 마시던 캡틴큐와는 이름부터 격이 달랐다. 캡틴큐 끝에는 크가 따라붙어야 제격이고, 시바스리갈 끝에는 말줄임표(…)가 따라붙어야 제격일 것 같았다. 한 모금을 머금은 순간 내 눈이 휘둥그레졌다. 지리산에서 처음으로 마셨던 위스키 패스포트보다 더부드럽게 혀에 감기는 천상의 맛이었다. 맛에 취해 있는데느닷없이 그가 외쳤다.
"시바스! 너어어! 어디 있다 인제 왔어어!" - P34

내 눈이 더 똥그래졌다. 그가 숨죽여 웃으며 한마디 덧붙였다.
"눈이 그렇게 말하는 중이라고."
나는 입 안에 든 시바스리갈, 그러니까 위스키 한 모금을 오래도록 머금었다가 천천히 삼켰다. 그날 처음으로 30년간 나의 일부였던 식도와 위의 위치와 모양을 구체적으로 체감했다. 위스키가 훑고 간 자리마다 짜릿한 쾌감으로 부르르 떨렸다. 나는 젖 먹는 송아지처럼 자꾸만 입술을 핥았다. 보다 못한 그가 700 밀리 한 병을 주문했다. 그것이 나와 시바스의 첫 만남이었다.
어쩌면 그날의 시바스리갈은 가난과 슬픔과 좌절로 점철된 나의 지난 시간과의 작별이었다. 짜릿하고 달콤했던 건 위스키의 맛이 아니라 고통스러웠던 지난날의 작별의 맛이었을지 모른다. 그날로부터 나의 변절과 타락이 시작되었다. 참으로 감사한 날이지 아니한가! - P35

옆방에서 무슨 일이 벌어질지 상상하고도 남았으니까. 차마 우리의 술자리를 위해 옆방까지 환해지도록 형광등을 켤 엄두는 누구도 내지 않았다.
옆방의 투숙객은 젊은 장병과 연인이었다. 그때는 면회도 휴가도 요즘처럼 쉽지 않았다. 교통도 불편했다. 아마 두 연인은 참으로 오랜만에 그리움을 달래는 중일 터였다.
숨죽인 여성의 신음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그 소리가 어쩐지 서글픈 노랫가락처럼 들렸다. 어둠 속에서 옆방의 청춘은 숨죽여 사랑을 나누고, 우리는 소리 죽여 술을 나누었다. 서글픈 노래는 장병의 짧은 비명과 함께 허무하게 빨라도 끝났다. 그 순간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뜻밖에 우리의 청춘도 저토록 짧을지 모르겠다는.
옆방의 남자가 무슨 일인지 흐느끼기 시작했다. 그의 연 - P40

인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작별이라도 고한 것일까. 우리는 각자의 생각에 잠겨, 취기에 잠겨, 그 순간에 젖어 들었다. 달콤하도록 우울한 포천의 밤이었다.
내 예감이 옳았다. 영원할 것 같던 청춘은 참으로 짧았다. 우울하다. 빨리 지나갔으면 좋겠다. 한탄하다 보니 어느새 나는 청춘이 아니었다. 청춘을 함께했던 친구 중 둘은 미국에 있어 얼굴 보기 어렵고, 국내에 있는 친구들도각자의 일이 바빠 얼굴 보기 어렵다. 드문드문 안부전화나 주고받는 정도다. 그래도 환갑을 목전에 둔 나이가 믿기지 않거나 어색한 날이면 포천에서의 그날 밤이 떠오른다. 쓸쓸하고 불안하고 우울한 것, 그게 청춘이었구나, 그때는 정작 그걸 몰랐구나, 무릎을 치면서. - P41

초승달 달빛 아래 신비로운 어둠의 정령 같았던 나무들이 짙푸른 제 모습을 드러냈다. 푸르다 못해 시커먼 호두 한 알이 눈에 띄었다. 어쩐지 여기서 끝내야 할 것 같았다. 논리적인 이유 같은 건 없었다. 그냥 시커먼 호두 한 알이 내 눈에 들어왔을때 우리들의 축제의 밤이 끝났다는 것을 직관적으로 깨달았을 뿐이다. 호기심 어린 독자들께서 뻔한 상상을 하지는않을 테지. 내가 말술임을 확인했을 뿐 그날 밤, 아무 일도일어나지 않았다. 초승달과 밤바람, 그리고 나뭇잎이 사각거리는 소리, 풀숲 어딘가 존재를 숨긴 채 울어대는 풀벌레 소리, 그리고 우리가 앉아 있는 바닥이 몸을 움직일 때마다 삐걱거렸을 뿐이고,  - P49

그때마다 어쩐지 나의 존재를 상대에게 온전히 들킨 듯 부끄러웠을 뿐이다.
첫차 핑계를 대고는 서둘러 그 집을 빠져나왔다. 신데렐라처럼 구두 한 짝을 남기진 않았지만 마음의 한 자락은어느 나뭇가지에 슬쩍 걸쳐두고 나온게 아니었을까? 두고두고 그날이 가슴 시리게 그리웠던 것을 보면 그 집을빠져나올 때 밤에는 보이지 않던 새가 목청 높여 울었다.
축제의 밤이 끝났음을 알리는 신호라도 되는 양. - P49

나는 아직도 말하지 않은, 혹은 돌려 말한 A의 말을 정확히 알지 못한다. 여자로 보일까 봐 젊은 저의 혈기를 가라앉히려는 말이었다는 건가, 어리석은 나는 그리 짐작할뿐이다. 그런들 저런들 무슨 상관이랴. 환갑 앞두고.
나는 아직도 A가 겪고 있는 불행의 긴 터널을 A처럼 담담하게 직시할 수가 없다. 그래서 A와 술 마시는 게 즐겁지 않다. 가슴이 먹먹하고, 알 수 없는 무엇엔가 화가 치민다. 그 여름밤, A가 직접 만든 밤나무 위 오두막에서의 그하룻밤이 사무치게 그립다. 그때의 싱그럽던, 똑똑하던, 깔끔하던, 능청스럽던 스물두엇의 A도 눈물겹게 그립다. - P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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