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 부모님 이야기를 『빨치산의 딸』이라는 실록으로쓰고 수배를 당했다. 책을 출판한 사장은 실형을 선고받았다. 이적표현물 제작만이었으면 굳이 도망 다니지 않았을것이다. 그 전에 사노맹(남한사회주의노동자동맹의 약칭)이라는 조직의 기관지 <노동해방문학> 기자로 2년정도 일했는데,
그 조직이 반국가단체로 몰려 전 조직원에게 수배령이 내렸다. 함께 일하던 친구 대부분이 붙잡혀 7년 이상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 P11

나는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는 모습을 보면서 더 이상 사회주의가 더 나은 미래를 위한 대안이 될 수 없다는사실을 뼈저리게 깨달았다. 그런데도 나는 감옥 대신 도피생활을 선택했다. 내 나이 스물여섯, 감옥에 가서 7년 형을 선고받는다면(그 이상의 형량을 받을 확률도 농후했다) 서른네다섯에나 사회로 복귀하게 될 터였다. 서른네다섯이라니! 스물여섯의 나는 상상도 할 수 없는 나이였다. 허세쩔었던 문학소녀 시절, 나는 서른셋에 스스로 목숨을 끊겠노라 결심했다. 서른셋, 하나님의 아들 예수가 인간의 육신을 버린 나이, 보잘것없는 내가 그 이상 살아있는 건 오만이라 믿었던 것이다. 실소를 금치 못할 유치한 생각이지만, 아무튼 그때의 나는 그랬고, 서른네다섯에 출소하느니 숨죽여 숨어 사는 편이 나을 것 같았다. - P12

‘홀로 가는 저 등산객 간첩인가 다시 보자‘
여자 혼자 산에, 그것도 지리산에 혼자 갔다가는 수많은 등산객이 나를 간첩으로 신고할 판이었다. 산이 그리워 몸살을 앓다 에라 모르겠다. 무작정 용산에서 밤 기차를 탔다. 새벽 다섯 시쯤 구례구역에 내렸다. 부모님을 뵈러 노상 다니던 길이었다. 그러나 수배 중이라 부모님을 뵐 수는 없었다. 어려서부터 내 집같이 드나들던 구례구역은 손님 하나 없이 적막했고, 문을 열고 나가자 운무에 쌓인 섬진강이 나를 반겼다. 바람조차 잠잠한데 코끝이 쨍한 겨울날이었다.
지금은 성삼재까지 버스가 다니고 거기서 걸으면 노고단이 지척이지만 그때는 지리산 종주를 하려면 무조건 화엄사 뒷길로 9킬로미터를 하염없이 올라야 했다. 한겨울에는 잠시만 걸음을 멈춰도 뼛속까지 추위가 스민다. 그러니 걸음을 멈출 수도 없어 하염없이 걷기에 딱 좋다.  - P14

사실 패스포트는 내가 마신 최초의 위스키다. 그날, 지리산에서 위스키를 처음 마셨다. 물론 대학 시절 위스키인줄 알고 캡틴큐를 마시기는 했었다. 캡틴큐는 마시는 누구라도 거의 혼절에 이르게 하는 기적의 술이다. 종일 지끈거리는 두통은 덤이다. 그게 자본주의 종주국 영국의 술, 위스키의 위력인 줄 알았다. 알고 보니 캡틴큐는 기타재제주, 한마디로 화학약품이나 진배없었다. 돈도 없는 수배자주제에 먹어보지도 않은 패스포트를 지리산행의 동반자로 삼은 이유는 간단하다. 맥주는 한겨울에 먹기에는 너무차가울 뿐만 아니라 무겁기도 하고, 소주 또한 3박 4일의 일정을 버티려면 그 양과 무게가 만만치 않았다. 독한 위스키라면 두 병으로 3박 4일을 견딜 수 있을 것 같았다. - P16

영하 20도가 넘는 지리산의 겨울밤, 내 부모는 이런 날에도 투명옷 한 벌만 입은 채 눈밭에서 잠들었다고 했다. 나에게는 이천 원 주고 빌린 침낭이 네 개나 있었고, 옷 사이에 넣은 뜨거운 수통도 있었고, 밤새도록 혈관을 돌며내 체온을 높여준 위스키도 있었다. 패스포트에 취해 다들추운 줄도 모르고 기나긴 겨울밤을 따시게 보냈다.
다음 날, 우리는 모르는 사람으로 만났듯 모르는 사람으로 헤어졌다. 흐린 램프 아래 보았던 그들의 얼굴은 지금전혀 기억나지 않는다. 그들의 코펠 잔에 위스키를 따르던순간의 안타까움, 나의 정체를 발각당한 순간의 당혹감, 모두가 같은 편, 모두가 위스키에 취했다는 기이한 연대의식만이 아직도 생생하게 떠오를 뿐이다. 인생 최초의 위스키 패스포트는 내게 지리산의 겨울밤이다. 낯선 이들과 따스히 함께했던. - P20

다들 앉은걸음으로 문을 향했다. 찬 공기에 몸서리를 치며 목만 길게 빼고 내다본 바깥은 온통 새하얀 눈밭이었다. 발자국 하나 나지 않은 백색의 순수였다. 누가 먼저랄것도 없이 우르르 마당으로 달려 나갔다. 매화나무에도 감나무에도 눈이 한 뼘씩 쌓여 있었다. 뒤란의 대나무는 눈의 무게를 이기지 못해 땅 끝까지 휘어진 채였다. 자연의 장관 앞에서 다들 입을 다물었다. 누군가 전등을 하늘로 비췄다. 빛기둥 안에서 주먹만 한 눈송이들이 수직으로낙하하고 있었다. 순수에 압도당한 최초이자 마지막 경험이었다. 그날 나는 그런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이토록 순수하게, 이토록 압도적으로 살고 싶다고, 누구도 감히 입을 - P28

열지 못했던 걸 보면 친구들 역시 비슷한 마음이지 않았을까? 열아홉, 그때는 믿었다. 우리 앞에 기다리고 있을 순백의 시간을 순백으로 살아낼 수 있을 거라고.
그로부터 40년의 시간이 흘렀다. 그날 함께했던 친구 중누군가는 먼저 세상을 버렸고, 누군가는 사고를 당해 장애인이 되었고, 누군가는 교수가, 작가가, 회사원이 되었다.
회사원이 된 친구는 머나먼 미국에서 산다. 그 친구를 본지 참으로 오래되었다. 한 친구는 아예 연락이 끊겼다.
눈이 퍼붓는 날이면 그날이 떠오른다. 고요히 내리는 눈처럼 고요했던 내 인생의 첫 술자리. 다음의 40년을 우리는 어떻게 살아내고 있는 걸까. - P29

이름을 잊어버린 신촌의 어느 바에서 그가 주문한 것은시바스리갈 12년산 더블샷이었다. 대학 시절, 가난한 문학청년들이 양주인 줄 알고 간혹 마시던 캡틴큐와는 이름부터 격이 달랐다. 캡틴큐 끝에는 크가 따라붙어야 제격이고, 시바스리갈 끝에는 말줄임표(…)가 따라붙어야 제격일 것 같았다. 한 모금을 머금은 순간 내 눈이 휘둥그레졌다. 지리산에서 처음으로 마셨던 위스키 패스포트보다 더부드럽게 혀에 감기는 천상의 맛이었다. 맛에 취해 있는데느닷없이 그가 외쳤다.
"시바스! 너어어! 어디 있다 인제 왔어어!" - P34

내 눈이 더 똥그래졌다. 그가 숨죽여 웃으며 한마디 덧붙였다.
"눈이 그렇게 말하는 중이라고."
나는 입 안에 든 시바스리갈, 그러니까 위스키 한 모금을 오래도록 머금었다가 천천히 삼켰다. 그날 처음으로 30년간 나의 일부였던 식도와 위의 위치와 모양을 구체적으로 체감했다. 위스키가 훑고 간 자리마다 짜릿한 쾌감으로 부르르 떨렸다. 나는 젖 먹는 송아지처럼 자꾸만 입술을 핥았다. 보다 못한 그가 700 밀리 한 병을 주문했다. 그것이 나와 시바스의 첫 만남이었다.
어쩌면 그날의 시바스리갈은 가난과 슬픔과 좌절로 점철된 나의 지난 시간과의 작별이었다. 짜릿하고 달콤했던 건 위스키의 맛이 아니라 고통스러웠던 지난날의 작별의 맛이었을지 모른다. 그날로부터 나의 변절과 타락이 시작되었다. 참으로 감사한 날이지 아니한가! - P35

옆방에서 무슨 일이 벌어질지 상상하고도 남았으니까. 차마 우리의 술자리를 위해 옆방까지 환해지도록 형광등을 켤 엄두는 누구도 내지 않았다.
옆방의 투숙객은 젊은 장병과 연인이었다. 그때는 면회도 휴가도 요즘처럼 쉽지 않았다. 교통도 불편했다. 아마 두 연인은 참으로 오랜만에 그리움을 달래는 중일 터였다.
숨죽인 여성의 신음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그 소리가 어쩐지 서글픈 노랫가락처럼 들렸다. 어둠 속에서 옆방의 청춘은 숨죽여 사랑을 나누고, 우리는 소리 죽여 술을 나누었다. 서글픈 노래는 장병의 짧은 비명과 함께 허무하게 빨라도 끝났다. 그 순간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뜻밖에 우리의 청춘도 저토록 짧을지 모르겠다는.
옆방의 남자가 무슨 일인지 흐느끼기 시작했다. 그의 연 - P40

인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작별이라도 고한 것일까. 우리는 각자의 생각에 잠겨, 취기에 잠겨, 그 순간에 젖어 들었다. 달콤하도록 우울한 포천의 밤이었다.
내 예감이 옳았다. 영원할 것 같던 청춘은 참으로 짧았다. 우울하다. 빨리 지나갔으면 좋겠다. 한탄하다 보니 어느새 나는 청춘이 아니었다. 청춘을 함께했던 친구 중 둘은 미국에 있어 얼굴 보기 어렵고, 국내에 있는 친구들도각자의 일이 바빠 얼굴 보기 어렵다. 드문드문 안부전화나 주고받는 정도다. 그래도 환갑을 목전에 둔 나이가 믿기지 않거나 어색한 날이면 포천에서의 그날 밤이 떠오른다. 쓸쓸하고 불안하고 우울한 것, 그게 청춘이었구나, 그때는 정작 그걸 몰랐구나, 무릎을 치면서. - P41

초승달 달빛 아래 신비로운 어둠의 정령 같았던 나무들이 짙푸른 제 모습을 드러냈다. 푸르다 못해 시커먼 호두 한 알이 눈에 띄었다. 어쩐지 여기서 끝내야 할 것 같았다. 논리적인 이유 같은 건 없었다. 그냥 시커먼 호두 한 알이 내 눈에 들어왔을때 우리들의 축제의 밤이 끝났다는 것을 직관적으로 깨달았을 뿐이다. 호기심 어린 독자들께서 뻔한 상상을 하지는않을 테지. 내가 말술임을 확인했을 뿐 그날 밤, 아무 일도일어나지 않았다. 초승달과 밤바람, 그리고 나뭇잎이 사각거리는 소리, 풀숲 어딘가 존재를 숨긴 채 울어대는 풀벌레 소리, 그리고 우리가 앉아 있는 바닥이 몸을 움직일 때마다 삐걱거렸을 뿐이고,  - P49

그때마다 어쩐지 나의 존재를 상대에게 온전히 들킨 듯 부끄러웠을 뿐이다.
첫차 핑계를 대고는 서둘러 그 집을 빠져나왔다. 신데렐라처럼 구두 한 짝을 남기진 않았지만 마음의 한 자락은어느 나뭇가지에 슬쩍 걸쳐두고 나온게 아니었을까? 두고두고 그날이 가슴 시리게 그리웠던 것을 보면 그 집을빠져나올 때 밤에는 보이지 않던 새가 목청 높여 울었다.
축제의 밤이 끝났음을 알리는 신호라도 되는 양. - P49

나는 아직도 말하지 않은, 혹은 돌려 말한 A의 말을 정확히 알지 못한다. 여자로 보일까 봐 젊은 저의 혈기를 가라앉히려는 말이었다는 건가, 어리석은 나는 그리 짐작할뿐이다. 그런들 저런들 무슨 상관이랴. 환갑 앞두고.
나는 아직도 A가 겪고 있는 불행의 긴 터널을 A처럼 담담하게 직시할 수가 없다. 그래서 A와 술 마시는 게 즐겁지 않다. 가슴이 먹먹하고, 알 수 없는 무엇엔가 화가 치민다. 그 여름밤, A가 직접 만든 밤나무 위 오두막에서의 그하룻밤이 사무치게 그립다. 그때의 싱그럽던, 똑똑하던, 깔끔하던, 능청스럽던 스물두엇의 A도 눈물겹게 그립다. - P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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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이 된 지금, 길을 걷다 교복을 입고 지나가는 여자아이들을 보면 놀라운 마음이 들어. 어떻게 저렇게 어린 아이들을 이용할 수 있지? 그저 지켜줘야 할 아이들일 뿐이잖아. 하지만 어렸을때의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어. 대체 얼마나 까졌으면 자기선생이랑 놀아? 미쳤어? 더러워 난 그게 다 여자애들의 잘못이라고 생각했지. 얼빠지고 정신이 나가고 멍청해서 그런 짓을 하고다닌다고 믿었어. 언니는 그런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됐어. 아닐 거야 언니는 그런 사람이 아닐 거야. 나 자신을 열심히 설득하려 했지만 언니는 자신을 숨기는 일에 서툴렀고 나는 그런 언니에게 분노를 느꼈어. 이럴 거면 제대로 숨기기라도 해. 마음속으로 소리쳤지. - P135

나는 웬만한 일에는 감정을 완벽하게 숨길 수 있을 정도로 잘 참고 견디며 살아왔었어. 참는 건 내 생존 방식이었지. 맞서 싸웠다가 결국 곤란해지는 사람은 내가 될 거라는 걸 알아서이기도 했고, 나를 어떻게 건드리든 반응하지 않고 마치 그런 일이 없었다는 듯이 무시하는 것이 자존심을 지키는 방법이라고 생각해서였던 것 같아. 그건 내가 언니를 보고 배운 것이기도 했지. 그저 참는 것. - P139

교도소에서 노트에 써내려간 글은 남겨두는 글과 찢어버리는 글로 나뉘었어. 도무지 견딜 수 없을 때, 내가 나를 수습할 수 없을 때 나는 내 마음을 있는 그대로 노트에 적은 후에 바로 찢어서없애버렸어. 글은 글일 뿐이라고, 예전의 나는 그렇게 생각했었지. 하지만 어떤 글을 남기기로 선택하는 것은 결국 그 마음을 전달하고 싶은 바람을 담는 거라고 생각해. 그리고 그 마음은 실제로 전해지지. 상대가 그 글을 읽는 읽지 않든 말이야.
내가 교도소에서 쓴 자주색 커버의 유선 노트는 그래서 군데군데 찢겨 있어. 나는 페이지가 찢긴 흔적을 보면서 그때 내가 어떤마음이었는지를 떠올려봐. 그때의 내 마음은 찢긴 자국으로 거기에 기록되어 있어.
그렇다고 해서 노트에 남겨둔 글이 내 마음을 속이거나 정직하지 않은 글이라는 건 아니야. 나는 너에게 편지를 쓰듯 노트에 내이야기를 채워넣었지. 스물둘의 내가 기억하는 너의 모든 것을 적어내려가기도 했어. - P172

내가 지내던 감방의 창으로는 운동장이 보였어. 정해진 시간이되면 수감자들이 시계 방향으로 천천히 걷는 곳이었지. 나는 쇠창살이 달린 창가에 서서 운동장을 오래 바라보곤 했다. 아주 가끔교도관 몇이 오갈 뿐인, 높은 콘크리트 벽으로 둘러싸인 아무도없는 운동장에 햇빛이 내리고 구름의 그림자가 지고 비가 내리는모습을 말이야.
스물세 살 생일이었어. 그날은 기상시간보다 한참 일찍 잠에서깼지, 눈을 뜨니 창밖으로 눈이 내리는 모습이 보였어.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창가 앞에 섰어. 아직 어두운 하늘에서 떨어진 가느다란 눈발이 조명등의 흰빛을 받아서 반짝이며 땅으로 내려오고있었지. 조명등의 빛이 닿은 눈발이 내 눈에는 꼭 하늘로 이어지는 길처럼 보였고, 어쩐지 그 빛나는 눈이 내리는 그곳에 나는 영원히 가닿을 수 없으리라는 생각이 들었어. - P178

내가 너를 더는 만날 수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인 건 그 순간이었어. 내가 영원히 너에게 다다를 수 없는 타인이 되었다는 사실받아들인 건. 나는 소리를 내지 않으려고 애쓰며 울었지. 그 순간에도 너의 세계에서 나는 빠른 속도로 지워지고 있다는 걸 알아서 그래도 그래도.……나는 영원히 널 사랑할 거야. 네가 나를 기억하지 못한다고 해도.
결국 찢어버릴 편지를 쓰는 마음이라는 것도 세상에는 존재하는구나. 마지막 문장을 쓰고 나는 이 편지를 없애려 해.
나는 너를 보며 나를, 언니를 바라봤었지. 그리고 사랑했어. 네가 내 언니의 자식이기 때문에, 내가 마음껏 좋아할 수 없었지만 마음 깊은 곳에서는 그토록 사랑했던 언니의 아이이기 때문에 나는 네가 항상 안전하기를, 너에게 맞는 행복을 누리기를 바랐어.
비록 우리가 서로의 얼굴조차 알아보지 못한 채로 스쳐지나갈 수밖에 없다고 하더라도, 나는 너와 함께했던 시간을, 그리고 함께할 수 없었던 시간조차도 마음 아프지만 고마워할 수 있었어.
오늘은 5월의 따뜻하고 맑은 날, 너의 생일이야. 너의 스물세번째 생일을 축하해.

너의 이모가 - P179

소리는 파상풍 주사를 맞을 때도 벌어진 상처를 꿰맬 때도 눈을 꼭 감고 통증을 참았다. 처치를 마치고 주차장으로 간 그녀는 그곳에서 기다리고 있던 그를 투명 인간 보듯 대했다. 그가 질문하면 짧게 답하고 침묵했다. 한동안 그녀는 그에게 냉정하게 대했고, 소리의 흉터에 관한 이야기가 나올 때면 자신에게 그럴 권리가 있는 것처럼 그에게 잔인하게 말했다.
그가 언제나 자신에게 져주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서, 자신이 아무리 잔인하게 대해도 참고 견뎌줄 사람이라고 생각해서,
그를 그토록 애틋하게 여겼으면서도 동시에 그렇게 대했다. 이제와 후회해도 소용없는 일이었다. 이제는 어떤 식으로도 지난 일을만회할 수 없으니까. - P195

그때는 그런 균형이 있었다고 그녀는 생각했다. 그가 소리의 역성을 들어주고, 그녀가 훈육하는 식의 균형. 올바른 육아는 아니있겠지만 그래도 그녀와 그는 소리에게 최선을 다했다. 적어도 그들의 아버지 같은 사람이 되지 않기 위해서 애썼다.
부모가 함부로 뱉는 말이 어린 자식에게 얼마나 파괴적으로 다가왔는지 아버지는 알았을까. 폭언으로 물들던 유년의 밤을 그녀는 떠올렸다. 나가 죽으라고 너 같은 게 살아서 뭐하느냐고 그냥죽어서 없어져버리라고. 아버지의 말은 내면의 목소리가 되어서마흔이 넘은 지금까지도 그녀를 따라다녔다. 아버지는 그녀를 물리적으로 때리지 않았다는 사실을 늘 자랑스럽게 이야기하곤 했다. 하지만 아버지에게 가혹한 구타를 당하는 그의 모습을 볼 때면, 차라리 맞는 사람이 자신이었으면 좋겠다는 소망이 일었다. - P197

"희진이 네가 다른 사람들을 기쁘게 하려는 사람이 아니었으면좋겠는데, 넌 여자애야. 사람들을 기쁘게 하기보다는 사람들이 널두려워하게 하는 편이 훨씬 좋은 거야."
그게 무슨 뜻인지 그때는 이해하지 못했다. 어른이 된 지금 나는 그 말을 종종 떠올리곤 한다. 이모는 그런 식으로 자신의 바람을 나에게 흘리듯 말하곤 했다. 나는 이모가 나를 자랑스러워한다는 것도 알았다. 내가 월말고사에서 좋은 성적을 받아오면 이모는내 손을 잡고 시장에 데리고 가서 괜히 내 이야기를 했다.
"희진이가 반에서 혼자 백 점을 맞아서요. 네, 얘혼자요. 얘가보통 애가 아니거든요."
그런 날이면 이모는 내게 먹고 싶은 주전부리를 고르게 했다.
평소에 이모는 사탕이나 초콜릿 같은 달콤한 주전부리를 철저하게 금지했다. 그런 싸구려를 먹으면 건강이 상한다면서. 하지만좋은 일이 있으면 이모는 내게 그 ‘싸구려‘를 허락했다. - P219

그즈음 아빠와 함께 상가 앞을 지나가다 계단 청소를 하는 사람을 봤다. 이모 또래의 여성이었는데 허리를 구부린 채 솔로 계단을 하나하나 문질러 닦고 있었다.
"저건 건물주 문제야. 계단이 뭐라고 어르신이 일일이 닦게 하나."
아빠는 혀를 차며 말했다. 집안에서는 숟가락 하나도 자기 손으로 챙기지 않으면서, 엄마나 이모가 집에 없으면 밥통에 밥이 있어도 상을 차리지 않으면서, 늘 누군가 닦아놓은 변기를 사용하면서 아빠는 그렇게 말했다. 쪼그리고 앉아 바닥을 걸레질하는 이모를 멀뚱히 바라보던 아빠의 얼굴이 떠올라서 나는 마음이 차가워졌다. - P239

그즈음 엄마는 내게 핸드폰을 사줬다. 엄마는 야근하는 날이면아빠 밥상을 차리라고 문자를 보냈다. 나는 엉성한 솜씨로나마 계란말이를 하고 엄마가 끓여놓은 국을 데우고 반찬을 꺼내서 밥상을 차렸다. 아빠는 밥을 먹는 내내 한마디도 하지 않았고 다 먹고나서는 아무것도 치우지 않고 방으로 들어갔다. 그런 일들에 나는점점 지쳐갔다.
나는 더는 돌봄을 받아야 할 존재도 아니었지만, 온전히 자기힘으로 설 수 있는 능력도 없었다. 아무도, 나를 포함한 누구도 나를 좋아한다는 느낌을 받지 못했다. 지금과는 달라져야 한다고, 달라지고 싶다고 생각하면서도 어떻게 달라져야 하는지 알지 못했고, 무엇을 하든 어설프고 우스꽝스러울 거라는 확신만 들었다.
나는 일평생 이모의 짐이자 장애물이었다. 그런 생각을 하면 나도모르게 눈물이 고였다.
이모는 어려서부터 내가 뭐든 할 수 있고 뭐든 될 수 있다고 말 - P244

하곤 했다. 이모는 그 말을 과학적이고 객관적인 사실을 말하는것처럼 얘기했다. 그 말이 얼마나 큰 부담으로 다가왔는지 이모는 끝까지 알지 못했을 것이다. 이모가 내게서 봤던 무한한 가능성이라는 것이 내게는 무엇보다도 큰 공포였다는 사실을. 이모는 종종 ‘내가 너라면……‘ 이라고 말을 꺼내고는 끝까지 잇지 못했다. 그 목소리에는 옅은 분노와 함께 어떤 질투가 담겨 있었다.
이모가 떠나고 일 년도 지나지 않아 우리는 십삼 평짜리 아파트로 이사했다. 삼십이 평짜리 아파트를 팔아서 메워야 할 구멍이 생긴 것이다. 이모 방에 있던 커다란 장롱은 우리의 새집으로 들어오지 못했다. 내 침대도 김치냉장고도, 거실 소파도, 마호가니식탁도 모두 마찬가지였다. 나는 현관 앞 작은방을 썼고, 엄마와 아빠는 거실과 현관 복도 사이의 미닫이문을 닫아 거실을 방처럼 사용했다. 엄마의 인내심이 무너져내린 시점도 그때였던 것 같다.
엄마와 아빠는 그 무렵부터 제대로 된 대화를 하지 않았고 아빠는자주 집을 비웠다. 나는 엄마와 아빠가 차라리 헤어지기를 바랐지만 두 사람은 이혼을 상상하지 못했다. 그렇다면 내가 떠나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 P245

돌아보면 그 시절 내가 가장 두려워했던건 나의공포와 분노를마주하는 일이었다. 그러지 않기 위해 나는 쉽게 겁내지 않고, 사소한 일에는 동요하지 않는 모습을 연출했다.
이모와 만나지 않고 지냈던 그 시절에 나는 자주 이모를 떠올렸다. 처음으로 비행기를 조종한 날, 높은 고도의 비행에 성공한 날,
근무지 부대로 이사를 간 날, 깊은 잠에서 문득 깨어나는 순간들마다 나는 이모의 시선으로 나를 바라봤다. ‘이모, 이 정도면 만족해?‘ 세수한 뒤 수건으로 얼굴의 물기를 닦고 거울을 보면 그곳에 이모와 닮은 내가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 P248

이모도 조종해볼래? 내가 물으면 이모는 망설임 없이 조종간을잡고 높은 곳으로 끊임없이 올라간다. 성층권을 통과하고 중간권과 열권을 지나 마침내 대기권을 벗어난 우리는 그곳에서 지구의 궤도를 빙빙 돌며 별들을 구경한다. 그리고 이모는 내게 손을 흔든다. 구경 한번 잘했네. 이제 갈게. 너는 다시 내려가 가서 나보란듯이 잘 살아.
옛날 사람들은 하늘 위에 하늘나라가 있다고 생각했다. 밤하늘의 별빛들을 보고 하늘에 구멍을 뚫어 지상의 인간들을 바라보는저 너머 누군가의 눈빛이라고 믿기도 했다. 그들에게 별빛은 신의눈빛이거나 더는 만날 수 없는 사랑하는 존재들의 시선이었다.
밤 비행을 할 때면, 검은 하늘을 날아가고 있을 때면 나는 종종멀리서 나를 바라보는 이모를 느낀다. 이모의 시선은 조종실 너머에, 비행기 너머에, 밤하늘과 대기 너머에 있다. 희박한 공기와 낮은 온도, 여러 층을 올라가면 결국 사라지는 대기와 우주공간의시작. 내가 아는 하늘은 그런 것이지만, 그런 순간에 나는 문득 옛날 사람들의 믿음을 떠올린다. 환한 낮이 아니라 어두운 밤에만지상에 닿는 저 너머의 눈빛이 있다는 믿음을 말이다. - P2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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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로라는 말이 거짓인 것만은 아니었다. 그대로라고 말하는것은 그 많은 변화 속에서도 여전히 예전의 당신이 존재한다고, 그사실이 내 눈에 보인다고 서로에게 일러주는 일에 가까웠다. 정윤은 또래보다 나이가 더 들어 보였다. 새치를 염색하지 않은데다얼굴에 화장기가 없어서 그렇게 느껴지는 것인지도 몰랐지만, 얼물에 밴 피로가 그런 인상을 강하게 하는 것 같았다. 그런데도 당신의 눈에는 그때의 정윤이 보였다. 당신이 학생회관 쪽으로 걸어가고 있으면 편집실 창문에서 ‘이해진이!‘ 부르며 유난스럽게 손을 흔들던 스물하나 정윤의 모습이 술을 마시고 나면 막대 아이스크림을 꼭 두 개씩 사다가 크게 베어 물고는 맛있게 씹어 삼키던 모습이 언닌 이도 안 시리나 눈도 안 시리나, 보는 내가 눈이시리네, 그렇게 매번 잔소리하던 그때의 자기 모습도 기억났다. - P51

당신의 학교 학생들이 정확히 어떤 행동을 했고, 어떤 피해가 발생했으며, 이런 집단 폭력히 비해 반복되는 이유가 무엇인지 정윤은 건조한 문장으로 진술했다. 그들의 행동이 왜 치기 어린 ‘놀이‘나 ‘장난‘이 아닌지에 대해서 정윤의 논리에는 막힘이 없었고 차근차근한 설명은 집요했다.
그 글을 읽고 당신은 과거의 자신을 바라봤다. 남자 선배들이 사건을 영웅담으로 농담으로 이야기할 때 그저 미친놈들의 헛소리라고 생각했던 과거의 자신을 그저 듣기 싫고, 피하고만 싶어서 못 들은 척했던 그때의 자신을. 정윤의 글을 읽은 당신은 그글을 읽기 전의 당신이 아니었다.
당신은 그런 글을 쓰고 싶었다. 한번 읽고 나면 읽기 전의 자신으로는 되돌아갈 수 없는 글을, 그 누구도 논리로 반박할 수 없는단단하고 강한 글을, 첫번째 문장이라는 벽을 부수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글을, 그래서 이미 쓴 문장이 앞으로 올 문장의 벽이될 수 없는 글을, 언제나 마음 깊은 곳에 잠겨 있는 당신의 느낌과생각을 언어로 변화시켜 누군가와 이어질 수 있는 글을. - P52

셋은 세미나를 끝내고 같이 밥을 먹기도 하고 술을 마시기도 했다. 당신은 부모와 함께 살았고, 정윤은 학교 앞에서 자취를 했고,
희영은 고향인 J시에서 지원하는 기숙사에 살았다. 늦은 밤이면당신은 막차를 타기 위해 일어섰지만, 희영은 외박계를 쓰고 정윤과 시간을 더 보내다 정윤의 집에서 자곤 했다.
정윤은 자기감정을 철저하게 숨기지 못했다. 희영에 대한 호감,
그녀가 쓴 글에 대한 애정, 희영에게 잘 보이고 싶은 마음, 희영과함께할 때의 기쁨 같은 것들을 제대로 감추지 못해서 당신을 외롭게 했다. 정윤은 공평하고 사려 깊은 사람이었기에 그런 감정을노골적으로 드러낸 적은 없었다. 그러나 당신 눈에 보였으므로,
당신은 언제나 그런 공기를 읽는 사람이었으므로, 당신은 느낄 수있었다. - P55

그렇게 말한 건 용욱이었다. 용욱은 예비역 복학생으로 사회학과 2학년이었다. 그는 세계가 급변하고 있는데 개인의 윤리 문제를 다툴 지면은 없다고 했다. 타락한 개인의 윤리는 개인의 문제일 뿐, 그것을 정치와 사회의 흐름을 읽어야 하는 지면에서 굳이다를 필요는 없다는 요지의 말이었다.
이건 일개 여성 문제가 아니라 대학원 사회의 기형적인 권력구조에 관한 문제입니다.
"정윤은 용욱의 말에 그렇게 답했다.
지금의 당신은 생각한다. 그런 말에는 언제나 힘이 있었다고.
이건 여성 문제가 아니다, 더 큰 억압의 문제다, 라는 식의 논리는언제나 강했고 다수를 설복할 수 있었다. 정윤이 자신의 말을 진심으로 믿었는지는 알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그렇게라도 하지않으면 논의조차 될 수 없었던 이야기들을 정윤은 수면으로 올려놓고자 노력했다. 정윤이 그렇게 주장하지 않았더라면 희영의 주제는 회의를 통과하지 못했을 것이다. - P57

당신은 아직도 그날 밤을 기억한다. 희영이 써온 긴 글을 처음읽고 받았던 충격을, 담요를 뒤집어쓰고 앉아 차갑게 언 발의 감각을 느끼며 그녀의 글을 읽던 스물에서 스물하나가 되어가던 당신의 모습을 기억한다.
희영이 글의 마지막 문장을 읽었을 때, 편집실은 고요했다. 낭독이 끝났는데도 편집실을 채운 팽팽한 분위기가 흐트러지지 않았다. 아마 다른 사람 모두 알고 있었으리라고 지금의 당신은 생각한다. 희영에게는 타고난 관찰력과 자기 생각을 끝까지 끌어가는 용기, 그리고 그것을 뒷받침해주는 지력이 있었다.
희영이 가진 장점들의 상당수는 노력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이었지만, 몇 가지는 그렇지 않았다. 그녀는 타인의 상처에 대해 깊이공감했고, 상처의 조건에 대한 직관을 지니고 있었다. 글쓰기에서는 빛날 수 있으나 삶에서는 쓸모없고 도리어 해가 되는 재능이었다. - P59

간 당신의 초라함이 더 분명해지리라는 두려움 때문이었을까.
그러나 돌이켜보면, 희영은 언제나 당신의 인정을 바랐는지도모른다. 함께 글쓰기를 시작한 친구의 인정을 모두가 느끼고 있었던 희영의 재능에 대해서 희영 자신은 한 번도 확신한 적이 없었다. 분명한 논리로 자기 의견을 관철시켜가던 희영의 강한 얼굴뒤로 자신은 글을 쓸 자격도 재주도 없다는 괴로움이 자리하고 있는 줄 그때의 당신은 알지 못했다. 나는 말했어야했어. 당신은 그생각으로부터 벗어날 수가 없다. 조금의 의심도 없이 자기 확신으로 가득찬 인터뷰이들을 만날 때마다 당신은 희영을 생각했다. - P64

당신은 정원대해 무슨더 가까운이년 가까이 편집부 일을 하면서 당신은 예전처럼 더디게 글을 쓰지 않았다. 덩어리 같은 막연한 생각을 언어로 풀어낼 때, 어렴풋하게 떠오른 문장들을 당신의 목소리로 종이위에 적어나갈때, 당신은 더이상 사람들 앞에서 우물쭈물하는 겁쟁이가 아니었다. 골똘히 한 생각을 써내려간 글 속에서 당신은 당신 나름의 힘을 느낄 수 있었다. 당신은 그런 순간들이 당신에게 준 경이와 행복을 계속해서 경험하고 싶었다. 그토록 나약해 보이는 당신 안에도 누군가의 마음을 건드리고 흔들 수 있는 힘이 있다는 것을 글로 보여주고 싶었다. 당신도, 아무것도 아닌 사람처럼 보이는 당신도, 감정이 있고 생각이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그런 식으로라도증명하고 싶었다.
글쓰는 일이 쉬웠다면, 타고난 재주가 있어 공들이지 않고도 잘할 수 있는 일이었다면 당신은 쉽게 흥미를 잃어버렸을지도 모른다. 어렵고, 괴롭고, 지치고, 부끄러워 때때로 스스로에 대한 모멸감밖에 느낄 수 없는 일, 그러나 그것을 극복하게 하는 것 또한 글쓰기라는 사실에 당신은 마음을 빼앗겼다. 글쓰기로 자기 한계를인지하면서도 다시 글을 써 그 한계를 조금이나마 넘을 수 있다는행복, 당신은 그것을 알기 전의 사람으로 돌아갈 수 없었다. - P75

정윤은 마치 그 자리가 보이는 것처럼 앞을 가리켰다.
너. 졸업하고 활동한다고? 물었더니 그렇다고 말하면서 나를보는데 편안해 보였어. 내가 희영이를 봤던 어떤 때보다도, 그 얼굳이 잊히질 않아. 희영이를 생각하면 그때 얼굴이 가장 먼저 떠올라5월의 정오가 지나가고 있었다. 당신은 정윤의 흔들리는 어깨를한 손으로 잡고 그녀 쪽으로 다가가 앉았다. 무엇이 지나가고, 무엇이 그대로인지 아직은 알 수 없다고 생각하면서 그녀가 당신의품에 기댈 수 있도록, 당신은 정윤에게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갔다. - P83

사람들은 그녀가 곧 나으리라고, 회복되리라고 이야기해주었다. 괜찮아질 거라고, 다 지나갈 거라고 이야기했다. 그녀 자신도
스스로에게 그렇게 이야기했다. 조금만 참아 의사 말대로 해. 다끝날 거야. 어느 누구도 자신에게 아프냐고 물어보지 않아서였을까. 그래서 자기 자신에게도 아프냐고 묻지 못한 것이었을까.
많이 아팠나요. 다희가 다시 물었다.
그녀는 다희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다희는 자리에서 일어나 그녀의 팔에 가만히 자기 손을 올려놓았다. 그런 다희를 보며, 그녀는 왜 자신이 팔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때의 일들을 떠올리곤 하는지 어렴풋이 이해할 수 있었다.
다희와 주고받던 이야기들 속에서만 제 모습을 드러내던 마음이있었으니까. 아무리 누추한 마음이라 하더라도 서로를 마주볼 때면 더는 누추한 채로만 남지 않았으니까. 그때, 둘의 이야기들은서로를 비췄다. 다희에게도 그 시간이 조금이나마 빛이 되어주었기를 그녀는 잠잠히 바랐다. - P123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보다 다른 사람들이 내게 무엇을 원하는지 신경썼던 것 같네. 내가 뭘 좋아하는지도 잘 알지 못하면서 다른사람들이 좋아하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 애썼지. 어린 시절부터 오래도록 나에 대한 부정적인 반응을 느끼며 자라서인지 나에게는내가 결코 타인에게 호감을 살 수 없는 사람, 멸시받을 만한 사람이라는 이상한 믿음이 있었거든. 그럴수록 나는 남들에게 더 맞춰줬고 남들이 나를 좋아하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매번 고민했어. 그렇게 내가 뭘 좋아하는지, 뭘 싫어하는지도 모르는 채로 남들이 하자는 대로 끌려다니고 남들의 욕구를 충족시키느라 나의 욕구를 무시했지. 그때 내가 느꼈던 가장 큰 두려움은 다른 사람들이 내게 실망하는 거였어. 나는 절대로, 절대로, 누군가의 짐이 되고 싶지 않았어. - P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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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수업은 금요일 오후 세시 삼십분에 시작했다.
짧은 커트 머리에 갈색 뿔테안경을 쓴 그녀의 얼굴은 얼핏 보면강사로 여겨지지 않을 정도로 어려 보였다. 목소리는 낮고 허스키한 편이었다. 영문과 전공수업은 전부 영어 강의여서 그녀는 영어로 수업을 소개했다.
"이 수업의 목표는 영어로 에세이를 작성하는 것입니다."
그녀는 한국어 억양이 강하게 드러나는 영어로 그렇게 말했다.
나는 원어민처럼 영어로 말할 수 있는 학생들이 섞인 강의실에서한국어 억양이 강한 영어로 수업하는 것이 얼마나 부담스러운 일일지 어림하면서 그 자리에 앉아 있었다. 그녀는 분명하게 말하려고 노력했고, 자신이 강조하고 싶은 부분은 조금 크게 말했다. - P9

수업은 매시간 그녀가 선정한 영문 에세이를 읽고, A4 용지한장 분량의 에세이를 제출하는 식으로 진행된다고 했다. 읽어야 할책의 양이 많은 탓에 수강신청 정정 기간 동안 많은 학생들이 빠져나갔고, 결국 수강생은 열댓 명 정도로 줄어들었다.
첫번째 수업시간에 우리는 조지 오웰이 버마에서 경찰관으로 일했을 때 쓴 에세이를 읽었다. 그녀는 에세이를 한 줄 한 줄 따라읽어내려가며 강독했다.
어떻게 말해야 할까. 나는 그 수업의 모든 부분이 마음에 들었다. 시멘트에 밴 습기가 오래도록 머물던 지하 강의실의 서늘한 냄새, 천원짜리 무선 스프링 노트 위에 까만 플러스펜으로 글자를 쓸때의 느낌, 그녀의 낮은 목소리가 작은 강의실에 퍼져나가던 울림도 모두 마음에 들었다. 그녀가 고른 에세이들도 좋았고, 혼자 읽 - P10

을 때는 별 뜻 없이 지나갔던 문장들을 그녀가 그녀만의 관점으로해석할 때, 머릿속에서 불이 켜지는 순간도 좋았다. 나도 마음 깊은 곳에서는 알고 있었지만 언어로 표현할 수 없었던 것이 언어화될 때 행복했고, 그 행복이야말로 내가 오랫동안 찾던 종류의 감정이라는 걸 가만히 그곳에 앉아 깨닫곤 했다. 가끔은 뜻도 없이눈물이 나기도 했다. 너무 오래 헤매었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2009년 2학기, 구 년 전 그때 나는 스물일곱의 대학교 3학년 학사 편입생이었다. - P11

자신이 번역한 책과 작가에 대한 감상으로 시작한 에세이는 자연스럽게 그녀의 자전적 이야기로 이어졌다. 그녀는 별다른 과장없이 자신의 어린 시절과 그때 겪었던 일들을 서술했다.
감정을 최대한 누르며 쓴 글이었지만 자신이 살았던 장소를 이야기할 때만은 목소리에서 나름의 애정이 묻어나왔다. 자신이 나고 자란 손가락으로 셀 수 없을 정도로 자주 이사 다녔던 용산에대해 쓸 때 그랬다. 그제야 나는 그녀가 내게 이촌에 언제부터 살았는지 물었던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우리는 용산의 어디에선가서로 스쳐지나갔었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자 그녀의 글이 더 가깝게 다가오는 기분이었다. 책의 사분의 일을 차지하는 긴 에세이에서 그녀는 그녀가 용산에서 머물렀던 장소들에 대한 기억을 이야기했다. 그 글은 그녀가 지나온 장소의 세부가 낱낱이 묘사목탄으로 그린 큰 그림 같았다. - P17

오락실 주인이 돈을 쥐어주면서 그만하라고 할 때까지 그녀는 ‘죽지 않고‘  게임을 이어나갔다. ‘나는 홀로 몰두할 수 있는 모든 일을 잘했다. 몰두하면 시간이 가고, 시간이 가면 그곳으로더 빨리 벗어날 수 있으리라는 걸 알았으니까‘ 라고 그녀는 썼다. 도서대여점과 상가 건물 삼층에 있던 교회, 용산역사와 철길, 기차와 전철이 오갈 때의 소리와 한강, 밤에 보던 한강철교, 남자 여럿이 자동차를 타고 ‘어린애들은 가면 안 된다‘던 골목으로 들어가던 모습, 웃으며 지나가던 그 남자들을 골목 입구에 서서 쏘아보던 일, 장마가 지나가고 난 뒤에 거리에서 나던 냄새, 극장 앞에서 암표를 팔던 상인의 모습, 그녀는 장소에 대해 한참이나 묘사하고 나서 ‘나는 그곳을 떠나고 싶었다‘라고 썼다. 그 문장은 같은 에세이 안에서 여러 번 반복되었다. - P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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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가 어머니를 죽일지 모른다는 불안에 시달린 게 몇살 때부터일까. 어머니의 뱃속에서부터가 아닐까.
나는 차라리 아버지가 어머니를 죽이기를 바랐다. 아버지가 절대로 자신의 손으로 어머니를 죽이지 않으리라는 걸 깨달은 뒤로는 아버지는 금치산자처럼 어머니 없이는 하루도제대로 살지 못했다. 의식주를 온전히 어머니에게 의지했

어머니의 임종을 지킨 사람이 아버지였다는 생각을 하면나는 고통스러웠다. 어머니가 대구에 있는 대학 병원 응급실에서 숨을 거둘 때, 형과 나는 경부고속도로 위에 있었다. 나는 시속 백삼십 킬로로 차를 몰며 어머니가 제발 살아 있기를 기도했다. 그것은 내 처음이자 마지막 기도였지만 내가 도착했을 때 어머니의 숨은 끊어져 있었다. 여섯 살이나 나 - P141

이 차이 나는 형을 만날 때마다 나는 궁금했다. 폭력이 장남인 그에게도 공평하게 대물림되었는지.

나는 어깨를 앞으로 쑥 내밀고 그의 얼굴 가까이 내 얼굴을 들이댔다. 종업원이 볼 때 우리가 마치 키스를 나누는 것처럼 보일 만큼,
"폭력도 대물림된다는 말을 들어본 적 있습니까?" - P142

첫 폭력은 그녀가 자취를 하던 집 근처 초등학교 운동장미끄럼틀 옆에서였다. 연애를 시작한 지구 개월쯤 되었을때였다. 마산이 본가인 그녀는 서울에서 혼자 자취를 하고있었다. 어둠 속에서 희끄무레 빛나는 교실 유리창들이 내가그녀에게 하는 짓을 조용히 지켜보고 있었다. 바람이 불지않아 운동장 둘레에 심어진 플라타너스들은 굳은 유화 물감덩어리 같았다.
그녀가 전화를 받지 않은 것이 화근이었다. 회식이 있었고, 회식 장소인 고깃집이 시장통처럼 시끄러워 전화가 걸려온 것을 몰랐다는 그녀의 항변은 내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경비원이 플래시를 흔들며 다가왔다. 울고 있는 그녀의 얼굴을 비추었다. - P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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