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가 사막에서 돌아왔다. 아버지는 푸른 줄무늬 양복을 입고 있었다. 아버지는 50억 년의 시간 동안 사막을 건너온 사람 같았다. 50억 년은 지구의 나이와 비슷한 시간이었다. 50억 년의 어느 순간에 암석들이 깨지고 깨져 자갈들이 되었을 것이며, 그 자갈들이 깨지고 또 깨져 직경 1.6~2밀리미터의 모래가 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 모래들은 바람을 따라 한 지점으로 이동해 광활한 사막을 이루었을 것이다. 푸른 줄무늬들은 흡사 광속의 시간이 칼날처럼 긋고 지나간 자국들 같았다. - P4
아버지의 이마가 창백하게 빛났다. 소중한 두 귀는 덥수룩하게 자란 머리카락에 뒤덮여 있었다. 나는 아버지가 사막을 건너오는 50억 년 동안 몸 한구석쯤은 퇴화했을 것이라는 막연한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것이 어쩌면 귀일지도 모른다고 중얼거렸다. 누군가 가르쳐준 것도 아닌데 나는 어릴 적부터 그 모든 두려움의 근원지가 귀일 것이라고믿고 있었다. 가도 가도 끝이 없는 사막을 묵묵히 건너려면두려움을 극복해야만 하며, 두려움의 발생지인 귀부터 둔해져야 하지 않았을까. - P7
나는 아버지와 일정한 거리를 유지했다. 그리고 그 거리는 서너 발짝 정도였다. 거리는 내 의지로 만들어진 것이 결코 아니었다. 투명한 얼음 덩어리를 사이에 두고 있듯 ‘거리‘는 저 스스로 형성되었다. 운동장 같은 장소에서라면 서너 발짝은 그리 먼 거리라고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기껏해야 네 평도 안 되는 공간인 방(房)에서라면 서너 발짝은 꽤나 멀고 심각한 거리가 아닐 수 없었다. 두 사람이 서너 발짝의 거리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서로 맞은편 벽에 등을 기대고 앉아 서로를 무심히 경계하며 바라봐야 하는 것이다. 어머니와 오빠와 동생도 저마다 아버지와 일정한 거리를 유지했다. - P11
가령 다섯 발짝이 1미터라고 가정해보자. 지구의 둘레는46,286,000미터다. 다섯 발짝은 지구의 둘레에서 1미터를뺀 만큼의 거리일 수도 있었다. 아버지와 오빠는 1미터가아니라 46,285,999미터의 거리를 두고 무심을 가장하며 서로를 지극히 멀리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다섯 발짝의 거리, 즉 46,285,999 미터의 거리는 좀처럼좁혀질 것 같지 않았다. 만약에 오빠와 아버지, 둘 중에 누군가가 앞으로 한 발짝을 내딛는다면 거리는 더 멀어지는것이 되었다. 나는 46,285,999미터의 거리가 팽팽히 당겨진 활시위처럼 긴장을 잃지 않기를 바랐다. - P12
국경아저씨, 만우아저씨, 희야아저씨, 소진아저씨, 순진외삼촌, 당숙어른...... 그들도 백치였다. 나는 그들이 백치인 것을 몰랐다. 그들은 한 동네에 살고있는 친척이거나, 어쩌다가 골목에서 마주치는 지극히 평범한 어른들이었다. 구장동 15번지에 살고 있는 적당히 어수룩하고 적당히 온순해 보이는 어른들 말이다. 순진외삼촌과당숙어른을 뺀 그들 누구에게도 나는 알은체를 하지 않았다. 그것은 그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에게 나는 골목 끝양옥집에 살고 있는, 아버지가 사막으로 돈을 벌기 위해 떠난평범한 여자아이였을 뿐이었다. - P13
아버지는 살기 위해 사막으로 갔고, 역시 살기 위해 사막에서 돌아왔다. 사막은 아버지에게 기회의 땅이자 형벌의땅이었다. 아버지가 사막으로 떠난 것이 전적으로 아버지의의지만은 아니었듯이 아버지가 사막에서 돌아온 것 역시 전적으로 아버지의 의지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인생에서 큰결정들이 단순히 당사자의 의지에 의해서 선택되는 것만은아님을 나는 아버지와 백치들의 생애를 통해 배웠다. - P16
아버지에 대해서 더 많은 것들을 이야기하기 전에 나는 먼저 아버지에 대해 내가 그다지 알고 있는 것들이 없음을 고백해야겠다. 아버지는 내게 사막이자 사막의 모래이며, 사막의 뜨거운 열기였다. 나는 간혹 내가 아버지의 생애를 너무도 깊이 이해하고 있다는 착각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내가아버지의 생애 중에서 온전히 이해하고 있는 것은, 어쩌면 한알의 모래만큼이나 지극히 작은 부분일지도 모르겠다. 정말이지 한 알의 모래만큼이나. - P16
단봉낙타의 넓적하고 두툼한 발바닥들이내 이마를 꾸욱 누르고 갔다. 베르베르인처럼 보이는 한 무리의 사람들이 천막을 쳐놓고 그 앞에 둥그렇게 모여 앉아장작불을 지피고 있었다. 백치들이었다. 국경아저씨, 희야아저씨, 만우아저씨, 소진아저씨, 도식아저씨, 순진외삼촌, 당숙어른, 그리고 아버지……. 비쩍 마른 양 두 마리가 백치들 곁을 서성이고 있었다. 백치들의 낯들이 호두빛으로 그을려 있었다. 찬 모래바람이 백치들의 광대뼈를 거칠게 긁고 지나갔다. 백치들이 나를 향해 손을 흔들어주었다. 나도아버지를 향해 손을 흔들어주려고 했지만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 없었다. 내가 잠에서 깨어나는 순간 나를 뒤덮고 있던모래가 저만치 달아나버렸다. 어금니가 쩌그적쩌그적 부딪칠 만큼 혹독한 한기가 찾아왔다. 어머니는 동생이 아니라나를 등에 들쳐 업고 비탈길을 넘어갔다. 한기는 사흘이 지나서야 가라앉았다. 나는 한기를 약과주사로 겨우 극복한 뒤에야 진심으로 모래를 두려워하게 되었다. - P90
아버지가 밥을 먹고 있었다. 아버지가 씹고 있는 것이 밥알이 아니라 모래인 것만 같았다. 밥을 한 공기 다 비우는 동안 아버지의 남은 인생이 전광석화처럼 흘러갔다. 아버지는한없이 늙고 늙어 구석기인으로 퇴화해 있었다. 허리가 굽고, 손등과 귓불 아래로 고불거리는 털이 부숭하게 자라나있었다. 백치들이 아버지를 찾아왔다. 백치들마저도 구석기인으로 퇴화해 있었다. 아버지가 백치들을 이끌고 옥상 철제 계단을 올라갔다. 달과 별들이 구름 속에 가려 옥상은 동굴 속처럼 어두웠다. 백치들은 옥상에서 돌멩이를 갈고다가 날이 환하게 밝아서야 철제 계단을 내려왔다. 백치들의 손에는 도끼처럼 갈린 돌멩이가 한 개씩 쥐어져 있었다. - P106
1986년 4월 15일, 미군이 리비아의 수도 트리폴리를 공격했다. 미사일이 붉은 불을 뿜으며 트리폴리의 하늘을 날아가고 등화관제령이 내려졌다. 미군이 트리폴리를 공격하기 10일 전 서베를린의 한 디스코장에서 강력한 폭발물 테러가 발생했다. 미군 1명과 미국인 1명을 포함한 230여명이 부상을 입었다. 사건의 배후로 사회주의 국가인 리비아가 의심을 받았다. 미국은 트리폴리뿐만 아니라 벵가지 근처의 테러리스트 센터, 항공기지 등 5개 주요 군사 시설물을 선정하고 집중적인 공격을 퍼부었다. 아버지는 티브이를 보다가 전쟁 소식을 전해 들었다. 아버지는 티브이에서 눈과 귀를 떼지 않고 있다가, 뉴스가 끝나자마자 옥상으로 올라갔다. - P112
정말이지 벽돌공장밖에는 그를 받아주는 곳이 없었을 것이다. 그는 부역을 나온 수인처럼 푸른빛이 도는 잠바와 바지를 입고 벽돌을 찍었다. 벽돌 한 장을 찍어낼 때마다 한살이라는 나이가 그에게 더 보태지는 것만 같았다. 그의 어깨는 급격히 무너져 내렸으며 광대뼈가 바위처럼 불거져 나왔다. 머리칼은 백설기 부스러기를 버무려놓은 듯했다. 손가락들은 시멘트 독이 올라 노란 농물을 줄줄 흘렸다. 그는어느 벽돌공보다도 왜소했고, 어느 벽돌공보다도 숫기가 없었다. 벽돌공들이 술에 취해 소주병을 깨뜨릴 때도 그는 고개를 깊숙이 파묻고 침묵을 지켰다. - P165
나는 푸른 줄무늬들이 단말마의 빛을 발하다가, 완전히소멸하는 것을 지켜보았다. 생각해보니 그날은, 동생 인영이 한 줌의 모래로 사라진 날이기도 했다. 아버지는 희야아저씨를 따라 도배 일을 나가고 집에 없었다. - P208
오빠는 여태도 사막에서 돌아오지 않고 있었다. 사하라사막에서도, 고비 사막에서도 마라톤 대회가 열리고 있었다. 세계 곳곳에서 사막을 달리려는 사람들이 사하라 사막이나 고비 사막으로 모여들고 있었다. 나는 언젠가 오빠가사막에서 돌아오리라는 것을 의심하지 않았다. 동경과 기대와 경이가 사라진, 고단하고 쓸쓸한 모습으로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내 앞에 나타날지도 모른다고. 아비가 그랬듯 오빠는 사막에서 모래를 한 삽 가지고 올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사막에서 돌아오자마자 백치가 되어버릴지도..... - P211
어느 날, 당숙어른의 아들은 소리 소문 없이 집에 돌아와있었다. 그는 낮게 가라앉은 집을 누더기처럼 덮고, 나막신 신은발을 대문 밖으로 삐죽이 내밀고 있었다. 당숙어른이 생전에 마지막으로 만들고 간 나막신이었다. 집은 한층 더 가라앉아 그의 등짝에 껍질처럼 가라앉았다. - P213
작가의 말
내가 쓸 수 없는 것, 내가 부득불 쓰고자 하는 것. 내가 쓰고는 싶지만 남들이 이미 써버린 것, 내가 쓰고자 하면 잘 쓸 수도 있을 같지만 써서는 안 된다고 짐작되는 것, 내가 단 한 편이라도 쓰고 싶은 것, 시詩를 쓰고자 했던 내 욕망에 조금이라도 가 닿는 것, 그런 것들을 고민하는 동안 백치들‘은 완성되었다. 대부분을 연필로 쓴 소설이기에 애착이 가고 또 그만큼 부끄럽다. 그러나 부끄러움을 견디는 것은 전적으로, ‘백치들‘을 불러낸 내 몫일 것이다. 한때는 꿈속에서조차 증오했지만, 내 슬픔과 독을 키운 이들이 백치들인 것만은 틀림없다. 여태도 백치들의 허술한 구두를 똑바로 바라보는 것이 말할 수 없이 불편한 것 또한.
세상의 모든 백치들에게 한 줌의 소금 같은 축복을!
2006년 9월 김숨
우연히 김숨이 쓴 칼럼을 읽은 적이 있다. 아버지의 노동과 소설 쓰기에 관한 짧은 글이었다. 김숨은 "소설을 쓰는 행위가 노동처럼 느껴지지않을 때 벼락처럼 죄악이라는 말을 떠올린다"고 썼던 것 같다. 식물성의 세계, 혹은 간질발작과 수면제로 대표되는 그로테스크한 소녀들의 세계를 주조했던 김숨, 그녀의 노동량은 엄청나다. 게다가 그소설들이 다 좋다. 이번에 김숙이 발표하는 첫 장편소설인 ‘백치들』에는 산업 역군이 되어 중동의 사막으로 떠났던 아버지들이 등장한다. 그들은 우리 옆집 아저씨가 그랬던 것처럼 커다란 돈 가방을 들고 사막에서 돌아왔다. 우리 사회가 압축 성장을 이루고, 어렵게 민주주의의 틀을 만들어가고, 동서 냉전의 담들이 허물어지고 새롭게 주의의 틀을 "구축되는 사이, 소위 문화와 정보의 시대에 이르러 제법 먹고 살만해진 시점에 이 산업 역군들은 한순간 ‘백치들‘로 전락한다. 이들은 왜 "하루아침에 구석기인으로 퇴화해 옥상으로 올라가 술이나 마시는걸까." 김숨은 밀도 높은 상징을 활용한 시적인 문체로 백치들의 내면을 향해 흘러드는 사막의 모래와 자줏빛 양탄자로 가려졌던 소외의 시간을 살려낸다. 인간의 삶이란 사실 노동의 역사가 아니던가. 선명한 주제의식으로 무장한 이 소설로 인해 독자들은 이제 작가 김숨을 향해 새로운 명명을 하게 될 것이라는 확신이 든다. - 강영숙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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