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여에,
백제에,
신동엽에,
가보지 못했다.
부여에게
백제에게
신동엽시인께
미안하다.
지난번 읽을 때도 같은 생각을 했던 것 같다.ㅠ,ㅠ

부여 답사에서 하이라이트는 아무래도 정림사 오층석탑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정림사탑은 멀리서 보면 아주 왜소해 보이지만 앞으로 다가갈수록 자못 웅장한 스케일도 느껴지고 저절로 멋지다는 탄성을 지르게 한다. 본래 회랑 안에 세워진 것이니 우리는 중문(中門)을 열고 들어온 위치에서 이 탑을 논해야 한다. 이 탑의 설계자가 요구하는 바로 그자리에서 볼 때 정림사탑은 우아한 아름다움의 한 표본이 되는 것이다.
완만한 체감률과 높직한 1층 탑신부는 우리에게 준수한 자태를 탐미케하며 부드러운 마감새는 그 고운 인상을 말하게 하는 것이다. 헌칠한 키에 늘씬한 몸매 그러나 단정한 몸가짐에 어딘지 지적인 분위기, 절대로완력이나 난폭한 언행을 할 리 없는 착한 품성과 어진 눈빛, 조용한 걸음걸이에 따뜻한 눈인사를 보낼 것 같은 그런 인상의 석탑이다. 특히 아침 안개 속의 정림사탑은 엘리건트(elegant)하고, 노블(noble)하며, 그레이스풀(graceful)한 우아미의 화신이다.
만약에 안목 있는 미술사가에게 가장 백제적인 유물을 꼽으라고 주문한다면 서산 마애불, 금동미륵반가사유상, 산수문전(山水文塼) 등과 - P328

함께 이 정림사 오층석탑이 반드시 꼽힐 것이며, 나에게 말하라고 한다면 정림사 오층석탑이야말로 검소하지만 누추하지 않았다는 백제 미학의 상징적 유물이라고 답할 것이다. 극단적으로 말해서 100개의 유물과도 바꿀 수 없는 위대한 명작인 것이다. 이런 것을 일컬어 세속에서는
‘백고가 불여(不如)일부‘라고 했다. 풀이하면 ‘고고춤 백 번보다 부루스(블루스) 한 번이 더 낫다‘는 뜻인데, 정림사탑은 폐허의 왕도 부여의 ‘부루스‘이다.
정림사 오층석탑의 구조를 정확히 실측한 사람은 불국사와 석굴암을측량한 요네다 미요지이고, 그 구조의 미학과 양식적 전후관계를 밝힌분은 ‘조선탑파의 연구를 저술한 우현 고유섭 선생이다.
우현 선생은 우리나라 석탑의 시원 양식인 익산 미륵사탑은 목조탑파를 충실히 모방한 것으로 다만 재료를 돌로 한 목탑이라고 할 수 있다고 했다. 이에 반하여 정림사탑은 이제 목조탑파의 모습에서 멀어져 석탑이라는 독자적인 양식을 획득하는 단계로 들어선 기념비적 유물로 평가하면서 이 탑의 특색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였다. - P329

이 탑에 있어서 소재의 취급은 저 미륵사탑과는 판이하여 외용(外㈜)의 미는 소재 정리의 규율성과 더불어 율동의 미를 나타내고 (…)각층의 수축성과 더불어 아주 운문적인 미를 갖고 있는 것이다. 소재조합의 정제미뿐만 아니라 소재 자체의 세련미도 갖고 있어서 온갖능각(角)이 삭제되어 (・・・) 매우 온화한 평탄면을 갖고 있다. 더욱이지붕돌은 낙수면의 경사가 거의 완만하여 수평으로 뻗다가 전체 길이 10분의 1 되는 곳에서 약간의 반전을 나타내어 강력한 장력(張力)을 보이고 있다. 또 각 지붕돌 끝을 연결하는 이등변삼각형의 사선은약 81도를 이루어 일본 법륭사 오층탑과 거의 같다. 곧 안정도의 미 - P329

를 볼 수 있다.


우현 선생의 이런 분석은 결국 정림사탑에서 느끼는 그 미감의 동인(動因)을 잡아내는 작업으로서 한국미술사 연구에서 최초로, 모범적으로 보여준 양식사적 해석이었다.
석굴암을 측량하면서 통일신라 때 사용한 자가 곡척(尺, 30.3센티미터)이 아니라 당척(唐尺, 29.7센티미터)이었음을 밝힌 요네다는 백제 때 사용한 자는 곡이 아니라 고려척임을 또 밝혀냈다. 고려척은 고구려 척의 준말로 동위척(東魏尺)이라고도 하는데, 일본 법륭사(호류지)등 아스카 시대의 여러 건축에 사용되었고 신라의 황룡사, 익산의 미륵사 등도 고려척을 사용한 결과다. 1고려척은 약 1.158척(35.15센티미터)이다. - P331

고려적으로 측량한 결과, 요네다는 이 탑의 설계에서 기본 단위는7척에 있었음을 알아낼 수 있었다. 1층 탑신 폭은 7척, 1층 총높이는7척, 기단의 높이는 7척의 반인 3.5척이고 기단 지대석(臺石) 폭은 7척의 1.5배인 10.5척이다. 그런 식으로 연관되는 수치를 요네다는 기하학적 도면으로 제시하기에 이르렀다. 그리고 요네다는 정림사탑의 아름다움의 요체가 체감률(遞減率)에 있는데 그것은 등비(等比) 급수 또는 등차( 체감이 아니라 기저부 크기의 기본 되는 길이에서 발전급수적하는 등적(割的) 구성으로 되어 있음을 밝혀냈다. - P331

나는 부여 답사에서 국립부여박물관을 들르지 않으면 백제 답사가아니라 부여 지방 풍광 기행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부여 답사의 핵심은어쩌면 이 박물관 관람에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국립부여박물관은종합박물관이 아니라 부여를 중심으로 한 백제 문화권 지방 박물관으로서 아주 특색 있게 꾸며져 있다. 그러니까 지상에서 사라져버린 백제의유산을 땅속에서 찾아 다시 지상에 복원한 것이 국립부여박물관이다.
선사실에 들어가면 이 지역 청동기 문화의 큰 특징인 ‘송국리형 문화‘
가 출토지별, 종류별로 세심하게 전시되어 있다. 여기에 전시된 청동유물들은 서울의 국립중앙박물관 못지않은 양과 질을 보여준다.
역사실에 들어가면 고분 출토 유물들이 전시되어 있는데 그중에서백제의 큰 항아리를 보는 것은 정말로 큰 기쁨이다. 그렇게 부드러운 질감과 우아한 곡선의 항아리를 만든 사람은 백제인밖에 없다. 그리고 산수문전에 나타난 그 세련된 조형미는 여기서 말로 다 설명하지 못한다.
산봉우리를 살짝 둥글리면서 윤곽선을 슬쩍 집어넣은 기교와 구름과 소나무를 문양으로 처리하면서도 생동감을 부여한 것은 거의 마술에 가 - P333

깝다. 사실상 화려하지만 사치스럽지 않았다는 백제의 미학을 단 하나의 유물로 표현해보라고 할 때 여기에 표를 던지는 분이 많다.
불교미술실에서 우리는 백제 불상만이 갖는 여러 표정을 만나게 된다. 삼불 선생이 주장한 백제의 미소를 여기서 다시 만나게 된다. 군수리절터에서 나온 석조여래좌상을 보면 고개를 6시 5분으로 갸우뚱하게기울임으로써 그 친숙감이 절묘하게 살아나고 있다. 본래 좌상은 입상보다 권위적이기 쉽다. 그러나 약간 고개를 기울임으로써 근엄한 자세가 아니라 인간적 자태로 환원된 것이다. 이는 절대자의 친절성을 극대화하면서 그 인자한 모습을 담아내려는 조형 의지의 발로라 할 것이다.
또 규암리에서 출토된 금동보살입상을 보면 그 수려한 몸매와 맵시있는 몸가짐, 귀엽고 복스러운 얼굴에서 당대의 미인, 말하자면 ‘미스 백제‘를 보는 듯한 착각조차 일어난다. 뒷모습이 유난히 예쁜 이 보살상은 - P334

한때 일본에 약탈될 뻔했다가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았는데(이구열 한국문화재 수난사) 보물로 지정되었다가 그 중요성을 인정받아 1997년 국보로승격되었다.
그리고 나는 구아리 유적에서 나온 나한상(羅漢像)의 강렬한 인상을잊지 못한다. 광대뼈와 골격이 또렷하여 그 표정이 확연히 살아 있는데이 나한의 얼굴에 서린 고뇌의 빛깔은 모든 인간이 이따금 드러내고 마는 인간 실존의 비극적 표정의 하나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우리가 지금 만나고 있는 불, 보살, 나한상이 모두소품인지라 그 감동의 폭이 작다고 불만을 토로하는 이가 적지 않다. 그런 분들의 아쉬움을 한번에 달래주는 유물이 청양 본의리에서 출토된 테 - P335

라코타 불상 좌대다. 저 큰 좌대에 앉아 있을 불상은 어떤 모습이겠으며, 저 맵시 있게 반전된 연꽃에 어울릴 옷주름은 어떤 것일까를 생각하노라면 금세 보았던 백제의 불, 보살, 나한상들이 열 배, 스무 배 크기의영상으로 다가온다. 그런 가운데 백제의 숨결은 살아나고 백제의 미학은 고양된다.
그러나 꼭 크고 웅장해야 위대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된 가치관이 - P336

뿐만 아니라 거의 병적인 현상이다. ‘작은 것이 위대하다‘는 격언도 있다. 그것을 소중현대(小中現大)라 한다. 즉 ‘작은것 속에 큰 것이 다 들어가있다‘는 뜻이다. 이는 명나라의 문인화가인 동기창(昌)이 작은 화첩에 역대 명화대작들을 축소하여 복사하듯그려보고는 그 표장에 ‘소중현대‘라고 적어서 유명한 말이 되었는데, 나는 지금 우리야말로 소중현대의 철학을배워야 할 시점이라고 생각하며, 그것을 백제의 유물들이 시범적으로 보여주고 있음에 감사하고 싶다. 요컨대 백제의 미학은 ‘검이불루 화이불치‘에 ‘소중현대‘를 합치면 제격을 갖추게 된다고 믿는다. - P337

나는 처음엔 신동엽 시 중에서 역사의식이 넘치는 껍데기는 가라」와「금강」을 좋아했고, 나중에는 현실성이 극대화된 「향아」 「종로 5가」를좋아했다. 그리고 지금은 「산에 언덕에」 같은 맑은 서정의 노래를 더 좋아한다. 신동엽의 「산에 언덕에」에는 짙은 그리움이 있다. 어쩌면 우리들 모두가 찾고 찾아야 할 그런 대상에 대한 그리움이 넘쳐흐른다.
나는 우리나라 예술 속에서 그리움을 노래한 몇몇 대가를 알고 있다.
한 분은 김소월(金素月)이다. 그분의 시는 거의 다 그리움으로 가득하다는 느낌이다. 「초혼」 같은 시는 그리움에 지쳐 쓰러지는 모습까지 보여준다. 소월이 보여준 그리움이란 항시 이루어보지 못한 어떤 대상에 대한 애절한 동경의 그리움이었다.
이에 반하여 이중섭(李仲燮)의 그림은 잃어버린 행복에 대한 그리움으로 가득하다. 그는 멀리 떨어져 있는 아내와 아들을 만나고 싶은 그리움의 감정을 황혼녘에 울부짖는 「소」 「달과 까마귀」 「손」에 실었다. 그는 개인적으로 겪는 그리움의 고통을 보편적 가치로 전환하는 데 성공했고, 그래서 그의 그리움에서는 살점이 떨어지는 듯한 애절함이 느껴진다.
그러나 김소월과 이중섭의 그리움에는 치열한 현실의식이나 역사인식이 들어 있지 않다. 역사의 아픔과 그 아픔을 넘어서는 희망까지를 말 - P338

하는 역사 앞에서의 그리움은 신동엽의 차지였다. 그의 <산에 언덕에>에는 그런 그리움의 감정이 남김없이 서려 있다. 지금도 백마강변 나성에 세워져 있는 신동엽 시비에는 이 <산에 언덕에>가 조용한 글씨체로잔잔하게 새겨져 있다.

그리운 그의 얼굴 다시 찾을 수 없어도
화사한 그의 꽃
산에 언덕에 피어날지어이.

그리운 그의 노래 다시 들을 수 없어도
맑은 그 숨결
들에 숲속에 살아갈지어이. - P339

(....)


그리운 그의 모습 다시 찾을 수 없어도
울고 간 그의 영혼
들에 언덕에 피어날지어이.


그런 그리움의 시인 신동엽, 부여에서 태어나서 숙명적으로 백제를 사랑하며 백제의 마음으로 살고 싶어했던 신동엽이 마음속에 그린 백제는 과연 어떤 것일까? 만약 그런 것이 있다면 우리는 그것을 ‘회상의백제행‘의 마지막 여운으로 삼아도 좋지 않겠는가. 그의 장시 「금강」 제23장은 다음과 같이 끝맺는다.
- P340

백제,
옛부터 이곳은 모여
썩는 곳,
망하고, 대신
거름을 남기는 곳,

금강,
옛부터 이곳은 모여
썩는 곳,
망하고, 대신
정신을 남기는 곳 - P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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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
짜증~!
막 탄력이 붙어가는데 페이지가 막 섞여서 내용이 엉켜있다. ㅠ.ㅠ
요즘 왜 이러지. 책들이~! 쩝 ~!
귀찮아서 미뤄왔는데 소장용으로 마련한 책들, 반품각이다.
읽기 싫어졌다ㅠ

나는 아홉 개의 세계를 기억한다.
- 스노리 스털러슨이 쓴 아이슬란드 고대 신화집 에다, 1200년경


나는 죽음, 세상을 깨뜨리는 자가 되었노라.
-바가바드기타』


천국과 지옥으로 가는 갈림길에는 똑같이 생긴 두 개의 문이나란히 서 있다.
- 니코스 카잔차키스, 그리스도 최후의 유혹』 - P163

지구는 사랑스러울 정도로 아름다울 뿐 아니라, 특별한 사건이없는 한 우리에게 마음의 고요를 허락하는 곳이기도 하다. 변화가 있되 아주 천천히 일어난다. 한 개인이 평생 동안 겪게 되는 자연재해災害도 대단한 것이라고 해야 태풍 정도가 고작이니, 우리는 지구에서 크게 걱정하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긴 자연의 역사를 살펴보면 자연 재해에 관한 흔적들이 여기저기에 남아 있다. 세상이 온통 풍비박산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어디 그뿐인가. 의도적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지만, 최근에는 자기 파멸적인 재앙을 불러올지도 모르는 기술적 ‘발전‘이 파괴의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과거의 기록이 잘 보존되어 있는 다른 행성들의 지형을 살펴봐도 그곳에서대규모의 자연 재해들이 많이 일어났음을 알 수 있다. 결국 얼마나 긴시간 척도로 변화를 보느냐에 따라 ‘평온과 고요의 지구‘가 ‘격동과 소란의 행성‘이 될 수도 있다. 인생 100년에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사건이라도 100만 년이라는 긴 세월에는 필연적으로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구상에서도, 그리고 심지어 20세기에도 아주 기이한 자연 현상이몇 건 일어났다. - P164

그중의 하나가 1908년 6월 30일 이른 아침 중앙시베리아의 한 오지에서 일어난 사건이다. 그날 거대한 불덩어리 하나가 하늘을 가로지르는 것이 목격됐다. 그것이 지평선에 닿는 순간, 엄청난 폭발음과 함께 약 2,000제곱킬로미터의 숲이 모두 납작하게 밀렸고, 낙하 지점 가까이에 있던 수천 그루의 나무가 순식간에 재로 변했다. 그때 대기에서 발생한 충격파가 지구를 두 바퀴나 돌았다고 한다. 그때부터 이틀동안은 미세한 고체 티끌 입자들이 대기 중에 하도 많이 떠돌아 다녀 - P164

서 폭발 지점에서 무려 1만 킬로미터나 떨어진 런던에서도 한밤중에신문을 읽을 수 있을 정도로 온 하늘이 산란광으로 가득했다고 한다.
당시의 제정 러시아 정부는 그런 사소한 일을 한가하게 조사할 여력이 없었다. 멀고 먼 시베리아의 오지, 미개한 퉁구스 족Tungus이 사는곳에서 일어난 사건이었으니 더더욱 그랬다. 현지의 상황을 조사하고현장의 증언을 청취하기 위해서 파견된 정부 조사단이 도착한 것은 러시아 혁명이 일어나고 10년이 지난 후였다.  - P165

만일 이와 같은 규모의 충돌이 오늘 다시 발생한다면 정신적 공황상태에 빠진 사람들은 그것을 핵폭발로 오인할 소지가 다분하다. 혜성충돌의 결과가 메가톤 급의 핵폭탄이 폭발할 때 볼 수 있는 상황과 아주 흡사하기 때문이다. 치솟는 불덩이의 규모며 버섯구름의 출현은 물론이고 그 모양까지 똑같다. 단 한 가지 차이가 있다면, 그것은 혜성의경우 감마선의 방출과 방사능 낙진이 없다는 점이다. 큼직한 혜성 조각과 지구가 충돌할 확률이 희박하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러한사건이 전혀 안 일어난다는 보장은 없다. 자연에서 반드시 일어날 수있는 현상이라는 말이다. 그렇다면 자연 현상이 핵전쟁을 유발할 수도 있지 않을까? - P169

맑게 갠 밤, 하늘을 참을성 있게 올려다보고 있노라면 외로운 별똥별 하나가 우리 머리 위로 빛을 내며 지나가는 것을 볼 수 있다. 때로는 유성이 비 오듯이 쏟아지는 경우가 있다. 이러한 현상을 우리는유성우라고 부른다. 유성우는 하늘이 선사하는 자연의 불꽃놀이인 셈이다. 일반적으로 불꽃놀이는 연중 특별히 정해진 날에만 거행된다. 그런데 유성우도 매년 같은 시기에 며칠 동안 계속해서 나타나므로 ‘자연의 불꽃놀이‘ 라는 이름도 그럴듯하다. 유성하나하나는 겨자씨보다 작은 미세한 고체 알갱이다. 흐르는 별이 아니라 나풀나풀 떨어지는 먼지라는 표현이 제격이다. 이렇게 작은 고체 알갱이는 지구 - P171

대기에 들어오자마자 대기와의 마찰로 인하여 고온으로 가열돼 빛을방출하지만, 지상에서 약 100킬로미터 상공에 이르기 전에 완전히 소멸되고 만다. 유성들은 혜성이 남기고 간 부스러기들이다.‘ 태양 근처를 통과하는 일이 반복되면 혜성은 태양의 중력과 열의 영향으로 여러덩어리로 쪼개지고 증발하여 점차 분해된다. 이렇게 떨어져 나온 부스러기들이 그 혜성의 원래 궤도에 흩어진다. 따라서 혜성과 지구의 궤도가 서로 만나게 되는 지점에 유성의 무리가 있게 마련이다. 이 무리와 지구가 만날 때 유성우 현상이 일어나는 것이다. 지구는 매년 같은시기에 그 지역을 지나게 되므로 유성우는 해마다 같은 시기에 반복해서 나타나는 것이다. 매년 6월 30일을 전후로 하여 황소자리 베타별 방향에서 유성우를 보게 된다. 바로 이 시기에 지구가 엥케Encke 혜성의 궤도를지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1908년 6월 30일 퉁구스카의 대폭발은 엥케혜성에서 떨어져 나온 혜성 한 조각이 지구와 충돌했기 때문에 생긴 사건으로 추정할 수 있다. 퉁구스카에 떨어진 유성은 반짝반짝 빛을 내며 인간에게 무해한 유성우를 일으키는 자잘한 부스러기가 아니라, 엥케 혜성에서 떨어져 나온 상당히 큰 조각이었을 것이다. - P172

아리스토텔레스를 필두로 한 고대 과학자들은 혜성이 지구 대기 내부의 현상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뉴턴은 튀코 브라헤와 케플러의 견해를 받아들여 혜성이달보다는 먼 곳에서, 토성보다는 가까이에서 일어나는 현상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혜성이 밝게 보이는 까닭은 행성과 마찬가지로 태양의빛을 반사하기 때문이라고 그는 제대로 알고 있었다. 그의 논지를 좀더 따라가 보자. "누가 혜성을 붙박이별들과 같이 아주 먼 거리에서 일.
어나는 현상이라고 주장한다면, 그는 큰 오류를 범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태양계 행성들이 붙박이별들로부터 받아 다시 반사시킬 수 있는빛이 거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혜성도 우리 태양으로부터 거의 빛을 받을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뉴턴은 혜성도 행성들과 마찬가지로 타원 궤도를 그리며 태양 주위를 돈다고 증명해 보였다.  - P177

"혜성은 매우 찌그러진 타원 궤도를 그리는 일종의 행성이다." 이렇게 뉴턴이 혜성을 둘러싼 미신들을 모두 제거하고 혜성 운동의 규칙성을 예측하자, 드디어 1707년에 이르러서 그의 친구 에드먼드 핼리 Edmund Halley가 1531년, 1607년, 1682년에 출현했던 혜성들이 모두 같은 혜성으로서76년마다 되돌아온다는 사실을 계산으로 밝혀냈다. 동시에 이 혜성이1758년에 다시 올 것이라고 예측했다. 혜성은 때맞춰 나타났고 그래서 핼리 사후에 이 혜성은 "핼리 혜성" 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됐다. 헬리혜성은 긴 인간사에서 여러 가지 재미있는 역할을 수행해 왔다. 1986년에 다시 돌아오게 되면 최초의 혜성 탐사선의 표적이 될 것이다. - P177

작은 얼음 덩어리가 행성이나 달과 충돌할 경우, 행성에는 이렇다할 상처가 남지 않는다. 그러나 충돌하는 물체가 더 크거나 주성분이얼음이 아니라 암석이라면 충돌 지점에서 대규모의 폭발이 발생하여충돌 구덩이 또는 운석공이라 불리는 반구형 또는 사발 모양의 거대한구덩이가 파인다. 지구의 경우 운석공은 풍화 작용이나 강수에 따른침식작용으로 사라지거나 다시 메워지게 마련이다. 그러나 달과 같이기상 현상이 전혀 없는 천체에서는 새로 만들어진 운석공이 수백만 년또는 그 이상 건재할 수 있다. 그래서 달 표면은 온통 충돌 구덩이들로뒤덮여 있는데, 오늘날 태양계에서 발견되는 혜성이나 소행성 파편 조각의 희박한 밀도로 설명하기에는 그 수효가 너무나 많다. 그러므로달 표면의 운석공들은 오늘날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지난 수십억 년의세월에 걸친 수많은 충돌이 누적된 결과라고 하겠다. 그러므로 오늘의달 표면은 과거의 충돌과 파괴의 역사를 생생하게 증언하고 있다. - P1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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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화의 비밀은 죽음과 시간에 있다. 환경에 불완전하게 적응한 수많은 생물들의 죽음과 우연히 적응하게 된 조그마한 돌연변이를 유지하기 위한 충분한 시간 말이다. 유리한 돌연변이 형태들이 서서히 축적되기 위한 긴 시간이 바로 진화의 비밀이다. 다윈과 월리스에게 퍼부어졌던 그 엄청난 반대의 목소리도 적어도 일정 부분은, 억겁의 영원은 고사하고 수천 년조차 상상하기 힘들어 하는 인간의 속성에서 비롯된 것이다. 단지 70년밖에 살지 못하는 생물에게 7000만 년이 도대체 무슨 의미를 갖겠는가? 그것은 100만분의 1에 불과한 찰나일 뿐이다. 하루 종일 날갯짓을 하다 가는 나비가 하루를 영원으로 알듯이, 우리 인간도 그런 식으로 살다 가는 것이다. - P79

생명의 탄생 이후 40억 년의 거의 대부분 기간 동안, 지구의 생명계는 바다를 가득 채우고 있던 청록색의 조류들이 지배했다. 대략6억 년 전부터 조류의 독과점 체제에 금이 가기 시작했고 이때부터 새로운 형태의 생물들이 폭발적으로 지구에 나타났다. 이것이 바로 캄브리아기 대폭발 Cambrian Great Explosion이라고 불리는 사건이다. 지구가 만들어지자마자 생명이 탄생했다고 해도 크게 잘못된 표현은 아니다. 그러므로 생명의 출현은 지구와 같은 행성의 환경에서 쉽게 일어날 수있는 화학 반응들의 필연적 결과일 것이다. 그러나 생물은 30억 년이나되는 긴긴 세월을 녹조류 수준에 그대로 머물러 있어야만 했다. 지구 생명이 특화된 기관들을 갖추고 체구가 큰 유기체로 진화하기가 생명의 출현 그 자체보다 훨씬 더 어려웠던 모양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외계 행성들을 탐사하다 보면 동물이나 식물이 서식하는 곳보다 미생물의 세상을 더 흔하게 발견하게 될 것이다. - P84

인류의 조상이 숲에서 성장했기 때문인지 우리는 자연스럽게 숲에친근감을 느낀다. 하늘을 향해 우뚝 서 있는 저 나무들이 얼마나 사랑스러운가? 나뭇잎들은 광합성을 하기 위해서 햇빛을 받아야 한다. 그래서 나무는 주위에 그늘을 드리움으로써 자기 주위의 식물들과 생존경쟁을 한다. 나무들이 성장하는 모습을 자세히 관찰하면 나무들이 나른한 은총(햇빛을 차지하기 위해 서로 밀고 밀치며 씨름하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나무는 햇빛을 생존의 동력으로 삼는 아름답고 위대한 기계이다. 땅에서 물을 길어 올리고 공기 중에서 이산화탄소를 빨아들여자신에게 필요한 음식물을 합성할 줄 안다. 그 음식의 일부는 물론 우리 인간이 탐내는 것이기도 하다. 합성한 탄수화물은 식물 자신의 일들을 수행하는 데 필요한 에너지의 원천이 된다. - P87

궁극적으로 식물에기생해서 사는 우리 같은 동물은 식물이 합성해 놓은 탄수화물을 훔쳐서 자기 일을 수행하는 데 이용한다. 우리는 식물을 먹음으로써 탄수화물을 섭취한 다음 호흡으로 혈액 속에 불러들인 산소와 결합시켜 움직이는 데 필요한 에너지를 뽑아낸다. 그리고 우리가 호흡 과정에서뱉은 이산화탄소는 다시 식물에게 흡수돼탄수화물 합성에 재활용된다. 동물과 식물이 각각 상대가 토해 내는 것을 다시 들이마신다니, 이것이야말로 환상적인 협력이 아니고 또 무엇이겠는가? 이것은 지구차원에서 실현되는 일종의 구강대 기공의 인공 호흡인 것이다.
그리고 이 위대한 순환 작용의 원동력이 무려 1억 5000만 킬로미터나떨어진 태양에서 오는 빛이라니! 자연이 이루는 협력이 그저 놀랍기만하다. - P87

달하는 엄청난 크기의 ‘찌‘를 상상
‘찌‘는 로켓처럼 기체를 강하게 분출하여 행성 대기권의 여기저기로 이동할 수도 있다. 우리는 또한 굼뜬 ‘찌‘들이 한눈에 다 들어오지도 않을 정도로 거대한 무리를 지어 떠다니는 것을 상상했다. 피부가위장색인 것으로 보아 그들 역시 삶의 고통과 마주하고 있음을 알 수있다. 왜냐면 그들과 다른 생태학적 지위ecological niche를 가진 존재를 그런 환경에서도 상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바로 ‘사냥꾼‘들이다. ‘사냥꾼‘은 빠른 기동성을 무기로 ‘찌‘들을 잡아먹는 포식자이다. 그들은
‘찌‘를 잡아먹어 필요한 유기 물질과 순수 수소를 얻는다. ‘추‘들 중에서 비교적 텅 빈 구조를 하는 것들이 먼저 ‘찌‘로 진화하고, 그중에서또 스스로 움직일 수 있는 것들이 최초의 ‘사냥꾼‘들로 진화했을지도 모른다. ‘사냥꾼‘의 수는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이들이 ‘찌‘를 다 먹어 버린다면 ‘사냥꾼‘ 도 멸종하기 때문이다.
- P102

생물학은 물리학보다 역사학에 더 가깝다. 현재를 이해하려면 과거를 잘 알아야 하고, 그것도 아주 세세한 부분까지 알아야만 한다. 역사학에 예견론이 없는 것처럼 생물학에도 확립된 예견론이 없다. 이유는 양쪽 모두 같다. 연구 대상들이 너무 복잡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생물학과 역사학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에는 공통점이 있다. 그것은 타자他者를 이해함으로써 자신을 더 잘 이해하게 된다는 것이다.
외계 생명에 관한 단 하나의 예만 연구할 수 있게 된다고 하더라도, 그리고 그 하나가 아무리 미미한 수준의 것이라고 하더라도 우리의 생물학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확장될 것이다. 적어도 우리와 다른 생물이 가능하다는 사실은 확인할 수 있지 않겠는가? 외계 생물에 대한 탐구가 중요하다고 누구나 말하지만, 우리는 외계 생명을 찾는 일이 결코 쉽지 않다는 현실적 어려움도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외계의 생명은 우리가 추구할 궁극의 목표이다. 왜냐하면 그것이 우리자신을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해 줄 것임에 틀림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제껏 지구라는 작은 세상이 들려주는 생명의 음악만 들어 왔다. 이것은 우주를 가득 채운 생명들이 연주하는 푸가의 한 성부만을 들어 온 셈이다. 자 이제 저 웅장한 우주 생명의 푸가의 남은 성부들에 귀를 기울여 보자. - P103

네가 천상의 운행 법칙을 결정하고 지상의 자연 법칙을 만들었느냐? - 「욥기」

사람과 다른 피조물이 맞게 되는 안녕과 재앙은 하나같이 일곱과 열둘의 조화에서 오는 것이다. 황도12궁은 종교에서이야기하듯 광명의 편에 서서 세상을 다스리는 열두 명의 장군을 일컫는다. 그리고 일곱 행성은 암흑의 편에 있는 일곱명의 장수라고 한다. 일곱 행성은 모든 피조물을 박해하고그들을 죽음과 죄악의 구렁으로 몰아넣는다. 황도대의 열두별자리와 일곱 행성의 조화가 세상의 모든 운명을 결정하는것이다. - 조로아스터, 메노크 이 크라트』

"세상 모든 것들은 자기 나름의 신비한 본성을 갖고 있다. 밖으로 드러나는 각자의 고유한 행동 양식은 바로 그 본성에서비롯하는 것이다."라고 누가 내게 이야기한다면, 나는 그것이 세상에 관한 설명이 전혀 되지 못한다고 말할 것이다. 온갖 현상들에서 두세 가지의 일반 원리를 먼저 찾아내고, 모든 물체들의 성질과 그들의 상호 작용이 앞에서 찾아낸 원리들에서 어떻게 비롯되는지를 설명할 수 있을 때, 우리는 비로소 세상을 향한 위대한 이해의 첫발을 내디뎠다고 할 수 있다. - 아이작 뉴턴, 「광학」

새가 왜 노래하는지 궁금해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왜냐면 새들은 노래하도록 만들어진 피조물이라, 노래함이 새들에게 곧 기쁨이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왜 인간이하늘의 비밀을 헤아려 보려고 골머리를 썩이는지 궁금해 할 필요가 없다. 자연의 현상은 다채롭게 이루 말할 수 없고, 하늘은 숨겨진 보물로 가득하다. 이는 오로지 인간의 정신이 새로운 양분을 취하는 데 모자람이 없게 하기 위해서일 뿐이다.
- 요하네스 케플러, 「우주 형상의 신비」

인간은 세상을 파악할 줄 아는 지혜를 갖고 있다. 애초부터 인간은주위에서 일어나는 모든 현상의 배후를 의식하며 살아왔다. 인류가 사냥을 하고 불을 피울 수 있었던 것도 무언가를 생각해 보고 알아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류에게는 텔레비전, 영화, 라디오, 하다못해 책마저 없었던 시절이 있었다. 인류는 지난날의 거의 대부분을 이런 상태로 보냈다. 우리 조상들은 달 없는 밤, 활활 타오르던 모닥불이 사그라져 깜부기불이 되면 그 주위에 앉아서 하늘의 별들을 바라보았을 것이다. - P107

불이 되면 그밤하늘을 본 적이 있는가? 밤하늘은 장관을 연출한다. 별들이 몇개 모여서 하나의 모양을 이룬다. 그래서 아무 생각 없이 올려다보아도, 별들은 저절로 그림이 되어 우리에게 다가온다. 예를 들어 북쪽 하늘에 놓인 별들의 무리는 어떻게 보면 곰비슷하게 보인다. 그래서 그런 모양의 별자리를 큰곰자리라고 부르는 문화권이 지구상에 있다. 같은 별들의 배열이지만 문화권에 따라 아주 다른 모양의 물체를 상상하고는 한다. 물론 하늘에 그림이 ‘정말로 그려져 있는 것은 아니다. 그그림들은 우리가 상상해 낸 것들이다. 인류가 수렴으로 신산한 삶을 살아갈 때 그들은 하늘에서 사냥꾼과 사냥개를 보았고, 하늘에 곰과 젊은 여자를 그렸다. 그밖에 사냥꾼의 관심을 끌 만한 온갖 것들이하늘에서 그들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17세기 유럽인들이 배를 타고가다 처음으로 남반구의 하늘을 보았을 때, 그들도 자신들이 관심을가지고 있던 것들을 하늘에서 찾아냈다.  - P107

성술은지배한다고 주장한다. 프톨레마이오스의 시대에는 천문학과 점성술이딱히 구별되지 않았다. 그러나 오늘날 둘은 확실하게 서로 갈라섰다.
천문학자로서 프톨레마이오스가 이룩한 업적을 열거하면 다음과같다. 별들에게 이름을 붙여 줬고 그들의 밝기를 기록하여 목록을 만들었고 지구가 왜 구형인지 그럴듯한 이유를 제시했으며 일식이나 월식을 예측하는 공식을 확립했다. 그리고 그의 가장 중요한 업적은 아마도 행성들의 이상한 운동을 설명하기 위해 우주의 모형을 제시한 것이리라. 그는 행성 운동의 모형을 개발하여 하늘의 신호를 해독하고자했다. 프톨레마이오스는 하늘을 연구하면서 일종의 희열을 느꼈음에틀림없다. 그는 그것을 "나는 한갓 인간으로서 하루 살고 곧 죽을 목숨임을 잘 안다. 그러나 빽빽이 들어찬 저 무수한 별들의 둥근 궤도를 즐겁게 따라 가노라면, 어느새 나의 두 발은 땅을 딛지 않게 된다."라는기록으로 표현해 놓았다. - P119

프톨레마이오스는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며, 태양과 달과 별들이 지구 주위를 돈다고 믿었다. 지구 중심의 우주관은 세상에서 가장 자연스러운 생각이었다. 땅은 안정되어 있고 단단하고 고정적인 데 반하여그 외의 천체들은 매일같이 뜨고 지기를 반복하기 때문이다. 어느 문화권에서나 지구 중심 우주관이 하나의 보편타당한 자연 진리로 서슴없이 받아들여졌다. 이 시점에서 요하네스 케플러 Johannes Kepler가 남겼다 - P119

케플러가 행성 운동의 세 번째 법칙을 발견한 지 정확히 8일째 되던 날, 30년 전쟁의 도화선이 된 사건이 프라하에서 일어났다. 전쟁의격동 속에서 수만 명의 삶이 산산조각 났는데 케플러도 그 피해자들중의 한 명이었다. 군사들이 옮긴 전염병에 부인과 아들을 잃었고, 그를 후원하던 황제는 폐위당했으며 케플러 본인은 교리 문제에 관해 너무 강경하게 개인의 주장을 폈다는 이유로 루터파로부터 파문당했다.
케플러는 다시 난민의 신세로 떨어졌다. 구교도와 신교도 양편 모두입으로는 성스러운 전쟁이라고 떠들어댔지만, 실은 영토와 권력에 주렸던 이들이 종교의 광신적 측면을 자신들의 목적에 이용했을 뿐이다.
과거에는 호전적 성격의 군주들이 갖고 있던 전쟁 자원이 바닥나기 시작하면 전쟁도 끝을 보았다. 그러나 당시에는 군대 유지를 위해 조직적 약탈이 자행되었다. 빼앗기는 쪽에 설 수밖에 없었던 유럽의 일반대중은 쟁기와 낫이 창과 검으로 변하는 꼴을 바라보는 수밖에 없었다." - P147

요하네스 케플러가 자신의 일생을 바쳐 추구한 목표는, 행성의 움직임을 이해하고 천상 세계의 조화를 밝히는 것이었다. 이러한 목표는그가 죽고 36년이 지난 후에 결국 결실을 맺게 된다. 그것은 아이작 뉴턴 Isaac Newton의 연구를 통해서였다. 뉴턴은 체중 미달의 미숙아로 1642년크리스마스에 태어났다. 훗날 그의 모친이 뉴턴에게 들려준 이야기에따르면 출생 당시의 뉴턴은 쿼트(약 1리터)들이 컵에 넣어도 될 정도로 작았다고 한다. 일생 동안 병약했고 스스로를 부모로부터 버림받은 자식이라 생각했고 걸핏하면 남과 다투었으며 성격이 비사교적인 데다가죽는 날까지 독신으로 살았던 아이작 뉴턴이지만, 그는 아마도 인류 역사상 제일가는 과학의 천재였을 것이다.
뉴턴은 이미 젊은 시절부터 비현실적인 문제를 고민하지 않고는못 참아 했다. 예를 들어, 빛이 "물질인가, 아니면 현상인가?", 또는
"인력이 어떻게 진공을 가로질러 작용할 수 있는가?" 같은 문제를 가지고 고민했다. 진작부터 뉴턴은 삼위일체라는 기독교의 통상적가르침이 성경의 오독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단정했다. 그의 전기작가 존 메이너드 케인스 John Maynard Keynes는 이렇게 썼다. - P153

뉴턴은 마이모니데스 Maimonides 학파의 유대교적 유일신론자라고 할 수 있다. 그가 이와 같은 신념에 도달한 것은, 이른바 합리주의적 또는 회의주의적 사고를 거쳐서가 아니라, 전부 권위 있다는 고대문헌들의 해석을 통해서였다. 뉴턴이 살펴본 바에 따르면 밝혀진 사료중에서 삼위일체설을 뒷받침하는 것이 단 하나도 없었다. 그래서 그는삼위일체설을 후세 사람들이 거짓으로 덧붙여 만든 것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에게는 계시로 밝혀진 신이 세 가지 위격으로 존재하는삼위일체의 신이 아니라 온전히 하나이신 유일신이었다. 그러나 이것은 감히 입 밖에 내지 못할 생각이었기에, 뉴턴은 평생토록 이 비밀을지키느라 무진 애를 써야 했다. - P154

케플러와 뉴턴은 인류 역사의 중대한 전환을 대표하는 인물이다.
이 두 사람은 비교적 단순한 수학 법칙이 자연 전체에 두루 영향을 미치고, 지상에서 적용되는 법칙이 천상에서도 똑같이 적용되며, 인간의사고방식과 세계가 돌아가는 방식이 서로 공명함을 밝혔다. 그들은관측 자료의 정확성을 인정하고 두려움 없이 받아들였다. 그리고 그들은 행성들의 움직임을 정확하게 예측함으로써 인간이 코스모스를 대단히 깊은 수준까지 이해할 수 있다는 확고한 증거를 제시했다. 오늘날 세계화된 우리의 문명, 우리의 세계관 그리고 현대의 우주 탐험은 - P160

전적으로 그들의 예지에 힘입은 것이다.
뉴턴은 자신이 발견한 것을 남에게 빼앗길까 늘 전전긍긍했고 동료 과학자들과 무서울 정도로 경쟁적이었다고 한다. 역제곱의 법칙을발견하고도 10년, 20년이 다 지나서야 발표하는 일은 뉴턴에게 아주당연한 것이었다. 그러나 자연의 장대함과 복잡 미묘함 앞에서 뉴턴은 프톨레마이오스와 케플러와 마찬가지로 명랑하면서 또 정감 어린 겸손을 보일 줄도 알았다. 죽기 바로 전 뉴턴은 이렇게 썼다. "세상이 나를 어떤 눈으로 볼지 모른다. 그러나 내 눈에 비친 나는 어린아이와 같다. 나는 바닷가 모래밭에서 더 매끈하게 닦인 조약돌이나 더 예쁜 조개껍데기를 찾아 주우며 놀지만 거대한 진리의 바다는 온전한 미지로내 앞에 그대로 펼쳐져 있다." - P1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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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리를하다가 어떤 경로로 내게 닿은 평론집을 ‘재활용쓰레기‘로 버리기로 했다. 기억도 없는 메모들이... 잠깐, 다시 책을 펴보게한다. 그렇지만 역시나 박스에 넣는다.
여러 사념들로 씁쓸하다.

두말할 나위 없이 작가나 시인도 한 개인으로서는 현실을 살아가는하나의 생활인이다. 국민이요 시민이며 한 가정의 남편이거나 아버지이거나 아들이다. 당연히 문학인도 이러한 자연인으로서의 책임과 의무를 지고 있다. 따라서 문학인도 다른 모든 종류의 인간과 마찬가지로 언제나 현실 속에 파묻혀 있고 현실적 제사건과 연루되어 있으며,
오직 생물적 죽음에 의해서만 이 일상적 현실을 벗어날 수 있다.
그러면 문학자를 다른 종류의 인간들과 구별짓는 것은 무엇인가?
마치 정치가가 밥 먹고 변소에 가고 자식을 낳는 일상생활의 영위에의해서가 아니라 그 특유의 정치적 활동으로 해서 정치가이듯이, 문학자는 그 특유의 예술적 세계를 창조하는 행위로 인해서 문학자이다.
여기서 우리는 다시 진실한 예술적 창조자가 무엇이냐 하는 문학의 본질론으로 돌아가게 된다. - P164

흔히 인간을 정치적 동물이라고 하거니와, 현대야말로 인간생활에있어서 정치가 막심한 중요성을 갖게 된 시대이다. 오늘날 정치는 인간생활의 모든 영역에 침투해 있으며, 정치적 상황은 인간의 심리적국면에까지도 심대한 영향을 끼치도록 되어 있다. 따라서 인간의 현실을 다루는 문학자로서 정치에 대한 관심을 갖는 것은 그의 의무라고도말할 수 있다. 다만 문학자는 영원하고 보편적인 인간진실을 드러내고자 하므로 한 시대의 일시적인 권력이나 계급의 이익을 위해서만 현실을 보아서는 안된다. 진리는 종교나 계급이나 재산의 여하에 따라 변동될 수 없으며, 인류의 진보와 인간의 미래에 기여하는 것이어야 한다. 이러한 원대한 이상이 때로는 어떤 종교나 정권에 의해 탄압받는수가 없지도 않았다. 중세의 종교재판은 과학적 진리를 끝내 거부하고자 안간힘을 썼고, 히틀러의 나치스 정권은 양심적인 문인 · 종교인·학자들을 무자비하게 탄압하였다. 그러나 역사는 이러한 광신적 편견이 권위있는 자리에 끝까지 남아 있도록 허락하지 않았다. - P165

먼저 노예수첩」의 프롤로그(서장)를살펴보자.


시인들아
이 땅에 읊을 것이 무엇 있느냐.
너희들이 즐거워 소리지르며
이 땅에 읊을 것이 무엇 있느냐
사람도 골목도 마당 끝까지
음침한 그늘과 한숨소리뿐,
밤마다 아침마다 짓밟히면서
너희들이 읊을 것이
무엇 있느냐
칼든 자의 잔인한 노략질 끝에
혈관까지 영혼까지
짓밟히면서
너희들이 즐거워 소리지르며
이 땅에 읊을 것이
무엇 있느냐 - P167

가령 "모든 인간은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다"라는 말을 "너는죽을 수밖에 없는 놈이다"라고 축소하여 해석한다면 그 의미가 완전히달라진다. 그것은 일반론적 진술을 특정한 대상에만 한정해서 적용하는 데서 오는 논리적 오류이다. 따라서 이 프롤로그를 "대한민국은 독재국가" 운운으로 해석한 검사의 기소장이야말로 오히려 대한민국의국가적 현실을 오해하도록 유도하는 사실왜곡이라 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더구나 이 프롤로그 전체는 시인 자신들의 자기반성에 기본적의도가 있다는 사실을 거듭 상기할 필요가 있다. 전기한 순수한 언어와 절실한 언어」라는 논문에서 양성우는 "현재 이 땅의 많은 시인들은혹시나 권력중개자나 무관심주의자, 혹은 현실기피주의자로서 개인적안락에 취하여 잠자코 있거나 또는 유치한 감상주의자로서 머물러 있기를 고집하고 있지나 않은지 궁금하며, 이 시대의 훌륭하고 절실한증인으로서 영원히 남아 있기를 거부하는지도 궁금하다"고 걱정하고있는데, 이 프롤로그의 "너희들이 즐거워 소리지르며" 운운의 구절은바로 위의 논문에 이론적으로 드러나 있듯이, 시인적 사명을 망각하고개인적 안락에 취하여 현실을 외면하는 안일주의적 시인들을 비판하는 데 주안점을 두고 있는 것이다.
장편 「노예수첩」에 대한 검사 공소장의 해석은 전면적으로 이러한 견강부회와 논리적 오류로 시종하고 있다.  - P169

시인 양성우는 1969년 문단에 등장하여 왕성한 활동으로 우리나라 시문학의 발전에 적극적으로 기여해 왔다. 길지 않은 동안에 발상법發想法』 『신하여, 신하여』 『겨울공화국』 등 세 권의 시집을 간행한 것만보아도 그의 시인적 의욕이 얼마나 왕성한지 알 수 있다. 무엇보다도시인 양성우는 시대적 현실에 대한 뜨거운 관심을 가지고 양심과 용기에 입각하여 시인적 사명에 충실하고자 하였다. 이러한 젊은 시인의작품이 문학의 본질을 외면한 순전한 법률적 관점에 의해서만 놀고되고 판결된다면 그것은 우리 나라 시문학의 발전을 위해서 비극일뿐더러 우리나라의 사법적 정의 실현을 위해서도 비극일 것이다. 시인의양심에 따른 활동을 법정에 세우는 나라, 문학적 표현의 자유를 정권의 일시적인 이해관계 때문에 억압하는 사회는 결코 건강한 나라가 아니며 결코 발전하는 사회일 수 없다. 서로 다른 의견들의 다양한 발표와 활기있는 토론만이 인간의 잠재적 가능성을 개발하여 미래의 설계를 위한 동력으로 삼을 수 있으며, 이 과정에서 생기는 약간의 잡음과 혼란은 오히려 건강체의 당연한 징표일 뿐이다.  - P172

흔히 『임꺽정』의 미덕을 말할 때 우리말 어휘의 풍부함을 지적한다.
과연 그렇다. 이 작품에는 식민지시대와 분단시대를 거치면서 왜곡되고 오염된 한국어 아닌 전통언어가 실로 다채롭고 풍요하게 구사되어있다. 그러나 우리말 어휘만 풍부한 것이 아니다. 외국어 문장에 훼손되지 않은 우리말 문장과 문체가 이처럼 자연스럽고 묘미있게 씌어진문학작품을 찾기란 어려울 것이다.
내 생각에는 고등학생들에게 임꺽정』을 두세번 읽히는 것보다 더좋은 국어교육이 없을 듯하다. 또한 이 작품은 조선 중기(명종 때의사회상을 뛰어난 실감 속에 형상화하였다. 대개의 역사소설들이 궁중비화를 흥미 본위로 각색하거나 특정 인물을 영웅화하는 데 그치고 있음에 비하여 『임꺽정』은 사회의 상층계급인 양반 선비로부터 천민계층인 백정들에 이르기까지 고루고루 소설적 조명을 비춘다. 우리는 이소설을 읽는 동안 당대의 여러 유명한 정치가와 학자들을 실감있게 만날 수 있을뿐더러 가렴주구에 시달리며 험난한 인생을 살아가는 수많은 힘없는 백성들을 또한 구체적으로 만나게 된다. 뿐만 아니라 작가의 따뜻한 눈길로 묘사된 아름다운 조국 강산의 풍경을 생생히 눈앞에 - P333

떠올리게 된다. 민족의 독립이 부정된 식민지 시대에 작가는 이러한작업을 통해 당시의 독자들에게 선조의 얼을 되새기고 조국의 숨결을 환기시키고자 의도했을 것이다.
해방 후 홍명희는 잠시 서울에서 활동하다가 월북하였고 북한에서부수상의 지위에까지 올랐다. 이런 이유로 『임꺽정』은 오랫동안 금서로 묶여 있었다. 또 그런 이유 때문에 홍명희는 으레 공산주의자려니간주되었고 ‘임꺽정도 그의 공산주의 사상을 선전하는 계급주의 작품일 것으로 예단되었다. 그러나 어떤 혁명적 사상을 기대하고 읽는사람에게 『임꺽정』은 너무 문학적이고, 반면에 요즘의 서구식 모더니즘 문학에 길들여진 사람에게 이 작품은 너무나 민족적이다. 북한에서도 이 작품이 끝내 대중적으로 출판되지 못했다는 사실, 그리고 1980년대 중반의 변혁적 출판운동의 과정에서 비로소 완간되었다는 사실이야말로 분단시대의 비극성을 증언하는 또 하나의 사례이다.
『임꺽정』은 비록 분단시대 이전에 창작되었으나 분단의 질곡을 넘어서는 민족적 지평을 함축한 문학이다. 그런 점에서 이 작품은 오히려 민족문학의 미래와 연결되어 있다. - P334

다시 말해 모든 지식은다른 한편 그것은 인류역사 전체에 걸쳐 진행되는 진리 자신의 지속적인 자기발현 운동이라고 일컬음직한 어떤 거대한 과정의 매 단계를 형성한다. 가령 플라톤, 토마스 아퀴나스, 데카르트, 갈릴레이, 뉴톤, 칸트, 헤겔, 마르크스, 아인슈타인 등의 이름을 늘어놓아 보면 이이름들의 행렬은 각 인물들이 각자 자기 시대의 특정한 관점의 제약을벗어나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더 많은 인간이 더 풍성한 자유와 더넉넉한 물질적 여건과 더 고상한 품성을 갖추어 살고자 하는 인류 공동의 이상을 실현시키기 위한 투쟁에서 마치 하나의 줄기찬 대열을 이루고 있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이다. 다시 말해 모든 지식은 언제나 보편적 가치를 지향한다. - P362

지식인은 역사 속에서 여러 가지 형태로 존재해 왔고 특히 자본주의적산업사회에서는 독특한 독립 집단을 이루어왔다.
그러나 한가지 분명한 사실은 지식인이 결코 하나의 독자적인 계급이나 계층일 수는 없다는 점이다. 물론 그들 나름의 고유한 이해관계가 있고 독특한 행동양식이 있기는 하지만, 본질적으로는 그 사회 안에서의 일정한 관점을 대변하는 존재가 지식인이다. 따라서 오늘 지식인에게는 민족사의 과업을 해결하는 일에 동참하느냐 민족을 망각하고 배신하느냐 혹은 민중의 이익을 옹호하는 편에 서느냐 민중을 수탈하는 편에 서느냐의 양자택일이 있을 뿐이지 이 선택을 보류하거나 회피하는 길은 있을 수 없다.
사실상 모든 지식인은 의식하든 의식하지 않는 또 원하든 원하지않든 하루하루 매순간의 삶 속에서 이 선택을 하고 있는 것이다. 지식인이 역사로부터 도망치는 것은 불가능하다. 여기에 지식인의 고뇌와 영광이 함께 존재한다. - P368

오늘날 환경문제의 심각성을 모르는 사람은 실제로 드물 것이다. 이대로 가면 인류문명이 종언을 고하거나 그렇지 않은 경우에도 인류의 대부분이 앞으로 다가올 수세기 또는 수십 세기에 걸쳐 형언키 어려운 고통 속에서 참담한 삶을 영위해 나가리라는 것은 거의 확실한 전망이라고 할 수 있다. 그만큼 생명부양 체계의 손상은 우리가 몸으로 실감할 수 있을 만큼이미 심각하게 진전되었다. 사람의 생명을 지킨다는 명분으로 갈수록 비대해지는 건강 및 의료 시스템은 활인(活人)은커녕 사람을 포함한 생명체들에 대한 합법적인 살상기구로 변해 버렸고, 교육과 문화는 생명을 일상적으로 파괴하는 권력욕망과 경쟁심과 소비주의를 끝없이 부추기는 설득수단이 되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하루하루의 생계를 위해 우리가 몸을 바쳐 소득을 마련하는 오늘의 경제구조는, 그 속에서 우리 각자가 개인적으로 어떤 노력을 하든 상관없이, 그 전체로서 거대한 살상과 폭력의 메커니즘이 된 지 오래인 것이다.
- 녹색평론』 1997년 1~2월호 머리말」중에서 - P3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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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토에 바치는 시



그대는 희망
왼 나라 산기슭이란 산기슭, 걸어 돌아다니다가
결코 닿지 않는 벼랑 되어 철쭉꽃 품다가.
이마 내민 벼랑의 분홍 뺨
오솔길이다가
속눈썹 내리까는 별 몇
저희들끼리 소곤소곤대는 곳이다가
소곤소곤대며 까르르 웃음 굽이치는 곳이다가

무지개, 향내나는 날개로 오르는 하늘이다가 언제나 돌아가는
돌아가는 길 보여주는 수풀이다가
먼 수풀의 보이지 않는들꽃 머리칼이다가

결국 결국 희망이다가

그대 국토여, 님이여
수만 그 여자 허리 아래 누운
역사여, - P112

미안하다. 산하


눈 덮여 흰빛뿐인, 문경 새재 넘었네
아래로 흐르는 것이 제 본연의 의무라는 듯,
맑은 살얼음 밑으로 고요히 흐르는 물소리흰 옷자락들이 분분히 나려 대지를 덮고 길을 덮고
마른 나뭇가지와 푸른 솔잎을 덮어
무한히 흰 빛에 둘러쌓인 계곡 따라
생각도 말도 다 잊고 꿈결인 양 걸었네
다 갈아엎고 파고 들어낸다는데
버들치와 가재는 구호도 내걸 줄 몰랐네
몽땅 가르고 쌓고 막아 뱃길 낸다는데
오래 흘러온 물은 제 길이라 목청 높이지 않고
달래강은 찰랑찰랑 마애불 발목만 애무하듯 닦아주는데
나는 저 말 못하는 것들에게 왜 이리 미안한가
‘한반도 운하는 대재앙이다‘ 플래카드 따라가는
나는 왜 자꾸 고개가 떨궈지는가
제 것이라 주장할 법적 소유권도 등기도 없이빼앗고 죽이고 갈아 뭉개도 선언문 한줄은커녕
아프다 말 한마디 못하는 저 순한 산하 앞에서
나는 왜 자꾸 무릎이 꺾이는가
생명을 밟고 지나가고도 매번 뒤늦게 알아차리는
나는 왜 과오덩어리인 것만 같은가
푸른 천공을 받아안은 물은 변함없이 제 길을 가는데
마애불은 돌아앉아 말이 없는데김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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