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즈 카옌 페퍼Ms. Cayenne Pepper가 내 세포를 몽땅 식민화하고 있다. 이는 생물학자 린 마굴리스Lynn Margulis가 말하는 공생발생symbiogenesis의 분명한 사례다. DNA 검사를 해보면 우리 둘 사이에 감염이 이루어졌다는 유력한 증거가 나올 것이라고 장담한다. 카옌의 침에는 당연히 바이러스 벡터가 있었을 것이다.
카옌이 거침없이 들이미는 혓바닥은 거부할 수 없을 만큼 달콤했다. 우리가 함께 속하는 자리는 척추동물이라는 문門, phylum에머물 뿐 다른 속屬, genera 및 분화된 과자/가족 families, 심지어 아예다른 목目/질서 orders 속에서 살아가지만 말이다.
우리를 어떻게 분류할 수 있을까? 갯과/사람과, 애완동물/교수, 암캐/여성, 동물/인간, 선수/훈련사. 우리 둘 중 하나는 목덜미에 마이크로칩을 이식했고, 다른 하나는 증명사진이 박힌캘리포니아 운전면허증을 지녔다. 우리 중 하나는 20대를 거 - P115

슬러 올라가는 혈통서가 있고 다른 하나는 증조부모의 이름조차 모른다. 우리 중 하나는 유전자가 폭넓게 혼합된 결과물인데
"순종"이라 부르고 다른 하나는 그 못지않은 잡종인데도 "백인"
이라 부른다. 이런 각각의 이름은 인종 담론을 표시하며 우리둘 모두는 우리의 육신으로 그 결과를 물려받았다.
우리 중 하나는 젊음과 생기가 타오르는 정점에 있고 다른하나는 열정적이지만 변곡점을 넘어섰다. 그리고 우리는 카옌의 조상이 메리노 양을 치던 곳, 선주민족에게서 몰수한 땅에서어질리티(민첩성) agility"라는 이름의 팀 경기를 즐긴다. 식민화가 완료된 상태의 오스트레일리아에서 목축 경제의 구성원으로살던 메리노 양들은, 19세기의 캘리포니아 골드러시 California GoldRush 49ers 붐을 타고 몰려든 사람들에게 먹을 것을 마련해주기 위해 캘리포니아로 수입되었다. 역사의 층위, 생물학의 층위, 자연문화 natureculture의 층위에서 우리가 즐기는 게임의 이름은 복잡성이다. 자유에 목마른 우리, 정복의 후예이자 백인 정착민 식민지의 산물인 우리 둘은, 운동장에서 장애물을 뛰어넘고 터널을 기어 통과한다.
우리의 유전체는 이론적으로 예측할 수 있는 것보다 훨씬 - P116

더 닮았을 것이 분명하다. 우리 중 하나는 나이가 많아서, 다른하나는 수술을 받아서 생식하지 않는 여성/암컷fcmale이지만, 우리 둘의 접촉은 분자로 기록된 생명의 암호가 되어 이 세계에자취를 남길 것이다. 카옌은 붉고 얼룩덜룩한 오스트레일리아셰퍼드의 축축한 혓바닥으로 내 혀의 조직은 물론 그 속에 있는열망하는 면역계 수용체를 날름날름 핥았다. 누가 알겠는가? 나를 남과 구분하며 신체 내부와 외부를 묶는 화학 수용체chemicalreceptor가 카옌의 유전 메시지를 내게 옮겼거나, 카옌이 나의세포계에서 무언가를 가져갔을지도 모른다.
우리는 금지된 대화를 나눠왔다. 우리는 입으로 정을 통해왔다. 우리는 사실로만 이루어진 이야기로 또 다른 이야기를 들려주는 이야기로 묶여 있다. 우리는 불통에 가까운 대화로 서로를 훈련하는 중이다. 우리는 구성적으로 본바탕이 반려종compan-ion species이다. 우리는 서로를 살fesh 속에 만들어 넣는다. 서로 너무 다르면서도 그렇기에 소중한 우리는, 사랑이라는 이름의 지저분한 발달성 감염을 살로 표현한다. 이 사랑은 역사적 일탈이자 자연문화의 유산이다. - P117

<반려종 선언>은 개인적인 기록이고, 반밖에 알려지지 않은 수많은 영토를 급습하는 학문적 시도이며, 전 지구적 전쟁이임박한 세계에서 희망을 찾으려는 정치적 행위이자, 원칙적으로 끝없이 계속되는 작업이다. 나는 개가 잘근잘근 씹어놓은 근거와 훈련되다 만 논의를 내놓아서, 내가 속한 시공간에서 학자및 개인으로 아주 관심이 많은 이야기를 다시 써보려 한다. 이글은 대부분 개와 관련된 이야기를 한다. 내가 적극적으로 가담한 문제인 만큼, 이 이야기가 독자들을 삶을 위한 개집으로 불러들일 수 있으면 좋겠다. 하지만 심지어 개를 싫어하거나 고결하고 숭고한 문제에 몰두하느라 바쁜 사람이라도, 우리가 살게될지도 모를 세계에서 중요한 주장이나 이야기를 이 글에서 찾아낼 수 있길 바란다. 개 세계의 실천 양식과 행위자들은 인간과 비인간을 불문하고 기술과학 연구에서 관심의 초점이 되어야 한다. 조금 더 솔직한 심정을 말하면, 나는 독자들이 개에 대 - P118

한 글쓰기가 왜 페미니즘 이론의 한 갈래가 되며 또 그 반대 방향의 경우도 마찬가지인지 알게 되었으면 한다.
이 글은 내가 처음 쓴 선언문은 아니다. 1985년에 발표한<사이보그 선언>에서 나는 기술과학 속 현대의 삶이 내파implo-sions" 하는 현상을 페미니즘을 통해 이해하려 했다. "인공두뇌유기체인 사이보그는 정책 및 연구 프로젝트에 침투해 있던 기술 인본주의의 제국주의적 상상, 우주 개발 경쟁, 냉전으로 점철된 1960년에 생긴 이름이다. 나는 축복도 저주도 하지 않는대신 우주 전사는 꿈도 꾸지 못할 목표를 아이러니하게 전유하려는 정신, 곧 비판적 정신을 통해 사이보그의 모습으로 살아가려고 노력했다.
동거와 공진화 coevolution 그리고 종의 경계를 넘어 구현된 사회성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주는 지금의 선언문은 적당히꿰맞춘 두 형상 사이보그와 반려종-중 어느 쪽이 현대의 생활 세계를 살아가는 데 도움이 될 정치와 존재론에 더 생산적으로 관여하는지 묻는다. 사이보그와 반려종 각각의 형상은 서로정반대라고 할 수 없다. 둘 다 인간과 비인간, 유기체적인 것과 - P119

기술적인 것, 탄소와 실리콘, 자유와 구조, 역사와 신화, 부자와빈자, 국가와 주체, 다양성과 고갈, 근대와 근대 이후, 자연과 문화를 예기치 못한 방식으로 함께 묶어준다. 게다가 사이보그나반려동물은 종의 경계를 더 잘 관리하면서 범주 이탈자의 번식을 막는, 순수성을 지향하는 사람들에게는 거슬리기 짝이 없을것이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가장 정치적으로 올바른 사이보그와 평범한 개의 차이는 중요하다.
나는 1980년대 중반 레이건의 스타워즈 시대에 페미니즘작업을 하기 위해 사이보그를 전유했다. 지난 천년이 끝날 무렵, 사이보그는 비판적 탐사에 필요한 실마리를 엮어내는 일을 웬만한 양치기 개보다 잘해낼 수 없는 형편이 되었다. 그래서 나는, 좀 더 살 만한 자연문화의 느린 성장을 추구하는 대신,
물 없이 불가능한 지구 살림을 탄소에 기반을 둔 예산으로 통치하겠다고 두 번째 부시 정권이 위협하는 지금, 과학학 및 페미니즘의 이론적 도구를 제작하는 일을 거들 마음으로, 기분 좋게개에게 다가가서 개집의 탄생을 탐사할 생각이다. "지구에서 살아남으려면 사이보그가 되자 Cyburgs for earthly survival!" 라는 주홍글씨를 충분히 오래 달고 살아왔으니, 이제는 개 스포츠를 즐기는슈츠훈트 Schutzhund 여성이 아니면 절대 떠올릴 수 없는 구호를 - P120

내 로고로 만들 생각이다. "빨리 뛰어! 꽉 물어!"
이 이야기는 기술과학 못지않게 생명권력biopower 및 생명 사회성 biosociality과 결부된다. 훌륭한 다윈주의자가 으레 그렇듯, 나도 진화를 이야기하고자 한다. (핵) 천년왕국주의 (nucleic) acidic -millennialism의 양태로 분자적 차이를 논하는 나의 이야기는, 신식민주의적 "아프리카 탈출을 감행한 미토콘드리아 이브 Mitochon-drial Eve의 설화보다 (남성) 인간이 "역사상 가장 위대한 이야기"로 스스로를 다시 창조하려는 찰나에 난입한 최초의 미토콘드리아 암캐 설화에 뿌리를 두고 있다. 이 암캐들은 반려종의 역사를, 그러니까 오해 · 성취 ·범죄 그리고 재생 가능한 희망이 한가득 들어 있는, 아주 세속적이며 끝없이 계속되는 이야기를 끈질기게 물고 늘어진다. 내 이야기는 말 그대로 개에게 홀딱 빠진과학자 겸 페미니스트가 들려주는 이야기다. 여기서 개들은 예사적 복잡성을 통해 중요해진다. 개들은 무슨 주제를 뒷받침하는 근거가 아니다. 개들은 기술과학 속에 물리-기호적 육체로 현 - P121

전한다. 개들은 이론의 대리물도 아니고 사유의 대상이 되려고있는 것도 아니다. 개들은 함께 살기 위해 있다. 인간 진화의 공범자인 개들은 태초부터 에덴에 있었고 코요테만큼 영악하다. - P122

내가 화이트헤드를 사랑하게 된 건 생물학을 통해서였지만내가 경험한 페미니즘 이론의 실천에서는 그의 철학이 훨씬 중요했다. 이 페미니즘 이론은 유형학적 사고, 이항적 이원론, 다양한 취향의 상대주의와 보편주의 모두를 거부하며 창발, 과정,
역사성, 차이, 구체성, 동거, 공共구성co-constitution 및 우연을 다루는 방법들을 풍부하게 제공한다. 상당수의 페미니스트 저자들이 상대주의와 보편주의 모두를 거부해왔다. 주체, 객체, 종류,
인종, 종, 장르, 젠더 모두는 관계의 산물이다. 이 글은 다정하고선한 "여성적인"-세계를 찾지도 않고 권력의 생산성과 유린에서 자유롭지도 않다. 페미니즘의 탐구는 오히려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고 누가 행위를 하고 있으며 무엇이 가능할지, 어떻게세속의 행위자들이 서로를 책임감 있게 대하면서 덜 폭력적인방식으로 함께 살아갈 수 있을지를 이해하는 문제와 결부된다. - P124

스트래선은 "부분적 연결", 즉 참여자들이 전체도아니고 부분도아닌 패턴을 이룬다는 관점에서 생각한다. 나는 이것을 소중한타자성의 관계라고 부른다. 내가 볼 때 스트래선은 자연문화의민족지학자로서, 종의 경계를 넘나드는 대화가 이루어지는 개집에 초대해도 불편해하지 않을 사람이라는 직감이 든다.
페미니즘 이론에서는 세계에 있는 것이 누구이며 그것이무엇인지가 중요한 문제가 된다. 이는 두 층위의 시간, 즉 화학적으로 세포마다 DNA 속에 새겨진 심층의 시간, 그리고 좀 더냄새나는 흔적을 남기는 최근의 행위들로 이루어진 시간 속에서 반려종을 이해하도록 우리를 훈련시키는 데 아주 효과적으로 보이는 일종의 철학적 미끼다. 구식 용어로 표현하면 <반려종 선언>은 무수한 실제 사건들이 이룬 포착의 합생에 의해 가능해진, 친족관계에 대한 주장이다. 반려종은 우연적 기초 위에 놓여 있다. - P126

나는 <사이보그 선언>에서 대리모 계약서를 하나 쓰려고 했다.
사이보그는 불가피하게 살아가야만 하는 핵이후 세계 속에서, 영구적인 전쟁 장치 apparatus와 그로부터 생긴 초월적이고 현실적인 거짓말들에 대한 감각을 잃지 않으면서도, 현대의 기술과학 기법과 실천 양식을 존중하고 그 내부에서 살아갈 수 있게해주는 비유 내지 형상이었다. 사이보그는 모순 속에서 살아가고, 평범한 활동이 이루는 자연문화에 주의를 기울이며, 자기가자기 자신을 낳는다는 험악한 신화에 반대한다. 또한 존재의 필멸성을 삶의 조건으로 포용하면서, 그 모든 우연적 규모에서 세계를 실제로 채우고 있는 창발적이고 역사적인 잡종체들의 존재에 민감하다.
하지만 사이보그적 재형상화는 기술과학의 존재론적 안무에 필요한 수사학적 작업을 전부 해낸다고 보기는 힘들다. 나는 - P128

사이보그를 더 크고 이반적인queer 반려종 가족에 속한 동생으로여기게 되었다. 이 가족에게 재생산 생명공학정치는 의외의 일로, 심지어 좋은 사건이 되기도 한다. 개와 어질리티 경주를 즐기는 미국의 백인 중년 여성 한 명은 철학 연감이나 자연문화민족지의 항목을 뽑는 경쟁에서 전자동화된 전사나 테러리스트및 그들의 형질변환 친족transgenic kin과 맞수가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모르는 바는 아니다. 그 밖에도 (1) 자기 형상화는 내가 할일이 아니고, (2) 형질변환체는 적이 아닐뿐더러, (3) 길들인 갯과 동물을 털북숭이 아이로 만드는 위험하고 비윤리적인 서구세계의 투사와는 반대로, 개는 인간 자신의 모습을 비추는 거울이 아니다. 바로 이 점에 개의 매력이 있다. 개들은 투사 대상도,
의도를 구현한 물체도, 다른 무언가의 텔로스도 아니다. 개는개다. 즉, 인간과 의무적이고 구성적이며 역사적이고 변화무쌍한 관계를 맺는 종이다. 이 관계는 다른 관계들보다 특별히 나을 것은 없다. 기쁨·발명·노동·지성·놀이로 가득한 만큼, 낭비·잔인함·무관심·무지함 · 상실로 가득하기 때문이다. 나는 이 공동-역사의 이야기를 잘 들려줄 방법과 자연문화적 공진화의 결과를 물려받을 방법을 배웠으면 한다. - P129

"반려종"은 반려동물보다 크고 이질적인 범주다. 인간의 삶을지금과 같은 모습으로 만들고 반대로 인간의 삶을 통해 구성되기도 한, 쌀이나 꿀벌, 튤립 및 장내세균총같은 유기체적 존재자들을 다 포함하는 범주가 되어야 하기 때문만은 아니다. 여기에 나는 반려종의 키워드를 적어서, 이 용어를 발음할 수 있게해주는 언어적·역사적 발성 기관에서 동시에 공명하는 네 개의음조를 강조하고 싶다. 첫째, 다윈의 딸로 도리를 다하기 위해나는 진화생물학의 역사와 그 범주인 개체군, 유전자 흐름의 속도, 변이, 선택, 생물학적 종에서 비롯된 음조를 강조한다. "종"
이라는 범주가 생물학적 실체를 뜻하는지 아니면 편의상 만든분류학적 상자를 나타낼 뿐인지를 둘러싼 지난 150년간의 논쟁이 음조의 상음과 저음을 이룬다.  - P133

그래서 나는 <반려종 선언〉에서 소중한 타자의 관계 맺음이 어떤 것인지 이야기해보고 싶다. 짝을 이루는 이들은 이 관계를 통해 육체와 기호 모두에서 지금과 같은 모습이 된다. 뒤에 나오는 진화, 사랑, 훈련, 종류 및 품종과 관련된 이야기는 인간이 이 행성에 자신과 함께 출현한 무수히 많은 종과 더불어 - P146

시간, 신체, 공간의 그 모든 척도 속에서 잘 살아간다는 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생각해볼 때 도움이 된다. 내가 제시하는 설명은체계적인 형태로 되어 있지는 않다. 그 대신 색다르고 시사적이며 신중하기보다는 과격하고, 명석판명한 가정보다는 우연한근거를 따른다. 여기서 개는 반려종이 이루는 거대한 세계에서는 하나의 행위자에 불과하다. 이 선언이나 자연문화의 삶에서는 부분들이 모여 전체를 이루는 일은 생기지 않는다. 그 대신나는, 마릴린 스트래선이 말한 "부분적 연결"을 찾고 있다. 이와같은 연결 속에서는 자기 확실성이라는 신의 속임수나 영원한합일 communion을 택할 수 없고 반직관적인 기하학 및 부적합한번역이 필요하다. - P147

은유적으로라도 개를 털투성이 아이로 간주하게 되면 개와아이 모두 품위가 떨어지며, 아이들은 물리고 개들은 죽임을 당하게 된다. 2001년에 와이저는 개 열한 마리와 고양이 다섯 마리를 데리고 살았다. 그녀는 성인이 된 이래 늘 개들을 소유하고 번식시키면서 대회에도 출전시켜왔다. 이와 함께 인간 아이를 셋 길렀으며 시민으로서 정치적인 삶의 전부를 좌파적 경향의 페미니스트로 살아왔다. 와이저의말에 따르면 자신의 아이들, 친구들, 동지들과 인간 언어로 나누는 대화는 대체할 수 없다. "(내 생각에) 개들이 나를 사랑하는 건 사실이지만 그 친구들과 정치에 관련된 이야기를 재미있게 나눠본 적은 없다. 반면내 아이들은 말은 할 수 있지만 진정한 "동물"의 느낌은 없으므로 나와 그토록 다른 종의 "존재", 나를 감동하게 만드는 감격스러운 현실을 단 한 순간도 만지게 해줄 수가 없다." (그레이트 피레니즈 토론 리스트, 2001년 11월 14일) - P1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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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내 관점이 나 자신이 처한 역사적 위치탓에 별종에가깝다는 사실을 의식하고 있다. 스푸트니크호의 발사가 미국의 국가 과학 교육 정책에 미친 영향 덕분에 나같은 아일랜드계 천주교 신자 여성이 생물학 박사가 될 수 있었다. 나의 몸과마음은 페미니즘 운동뿐 아니라 2차 대전 이후의 군비 경쟁과냉전에 의해서 역시 구성되었다. 현재의 패배보다 정치가 발휘하는 모순적 효과에 주목하면 희망을 품을 이유가 더 많아진다.
체제를 옹호하는 미국 기술관료technocrats를 생산하기 위해 설계한 정책이 반체제자를 양산해내기도 한 것이다. - P68

20세기 후반의 정치적 상상력에 영향을 줄, 정체성 및 경계에관련된 신화 하나를 제시하며 글을 마무리하고 싶다. 나의 논의는 조안나 러스Joanna Russ, 새뮤얼 R. 들레이니 Samuel R. Delany, 존발리John Varley, 제임스 팁트리 주니어 James Tiptree Jr., 옥타비아 버틀러Octavia Butler, 모니크 위티그Monique Wittig, 본다 매킨타이어 Vonda Mc-Intyre 같은 작가들에 신세를 지고 있다. 우리의 이야기꾼인 이들은 하이테크 세계에 체현된다embodied는 것의 의미를 탐사한다. 이들은 사이보그를 위한 이론가다. 몸의 경계에 관련된 개념들과 사회 질서를 탐구한 인류학자 메리 더글러스 Mary Douglas(1966, 1970)는 몸의 이미지가 세계관과 정치 언어에 얼마나근본적인 영향을 주고 있는지 깨닫게 해준 사람이다. - P69

뤼스 이리가레 Luce Irigaray 및 모니크 위티그와 같은 프랑스페미니스트들은 서로 간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모두 몸에 관해쓰는 to write the body 방법을 알고 있으며 체현의 이미지, 그리고 특히 위티그의 경우에는 몸의 파편화와 재구성의 이미지로부터에로티시즘과 우주론, 정치를 직조해내는 방법을 안다. 수전그리핀Susan Griffin, 오드리 로드Audre Lorde, 에이드리엔리치AdrienneRich 같은 미국 래디컬 페미니스트들은 우리의 정치적 상상력에깊은 영향을 주었다. 한편으로는 이들의 영향 때문에 우리가 친근한 신체적·정치적 언어로 허용할 수 있는 언어의 범위가 지나치게 제한된 것 같기도 하다. 이들은 유기체적인 것을 옹호하면서 기술적인 것과 대립시킨다. 하지만 그들의 상징체계 및 그와 연관된 생태여성주의 및 페미니스트 이교 신앙 paganism 속에넘쳐나는 유기체주의는, 20세기 후반에 적합한 ‘대립 이념‘이라는 샌도벌의 용어를 통해서만 이해될 수 있다. 그들은 기계나후기 자본주의 의식에 사로잡히지 않은 사람들을 어리둥절하게만들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그들은 사이보그 세계의 일부다. - P70

미국 국경 안에서 시스터 아웃사이더는 같은 산업에서 분열과 경쟁을 유도하고 착취하기 위해 조작당하는 여성들의 인종적·민족적 정체성의 한복판에 놓인 잠재력이다. 유색인 여성은 과학 기반 산업에서 선호되는 노동력이며 전 세계의 성 시장, 노동 시장, 재생산 정치의 만화경을 일상으로 도입하는 현실의 여성들이다. 성산업과 전자제품 조립 공장에 고용된 젊은 한국 여성들은 고등학교에서 모집되고 집적회로를 만드는 교육을 받는다. 읽고 쓰는 능력, 특히 영어 능력은 다국적 기업에 이처럼 "값싼" 여성 - P71

노동을 매우 매력적인 것으로 만든다.
"구술적 원시성" 같은 오리엔탈리즘적 전형과는 반대로,
유색인 여성에게 읽고 쓰는 능력은 특별한 징표이며, 미국에서는 흑인 여성과 남성들이 읽고 쓰기를 배우기 위해 목숨을 걸어온 역사를 통해 습득한 능력이다. 글쓰기는 식민화된 집단 모두에게 각별한 의미가 있다. 글쓰기는 구술 문화와 문자 문화, 원시적 사고방식과 문명화된 사고방식을 구분하는 서구 신화에서결정적인 위치를 차지해왔고, 더 최근에는 일신론적·남근적·권위주의적·단독적인 작업, 즉 유일하고 완벽한 이름을 경배하는서구의 남근 로고스 중심주의phallogocentrism 를 공격한 "포스트모더니즘" 이론을 거쳐, 문제의 이분법들이 붕괴되는 데도 결정적인 역할을 담당했다. - P72

글쓰기의 의미가 걸린 씨름은 현대 정치투쟁의 주요 형식 중 하나다. 글쓰기 놀이의 해방은 더없이 진지한 문제다. 미국 유색인 여성의 시와 이야기들은 글쓰기, 곧의미화의 권력을 쟁취하는 문제와 반복적으로 관련되지만 이때의 권력은 남근적이거나 순수해서는 안 된다. 사이보그 글쓰기는 에덴으로부터의 추방, 곧 언어 이전, 글쓰기 이전, (남성)인간의 등장 이전, 옛날 옛적의 총체성을 상상하지 말아야 한다.
사이보그 글쓰기는 본원적 순수함이라는 기반 없이, 그들을 타자로 낙인찍은 세계에 낙인을 찍는 도구를 움켜줌으로써 획득하는 생존의 힘과 결부된다. - P72

적이 아닌 모습의 사이보그 이미지를 진지하게 받아들이면여러 결과가 생겨난다. 우리의 몸들, 즉 우리 자신인 몸들은 권력과 정체성의 지도다. 사이보그도 예외는 아니다. 사이보그 신체는 순수하지 않다. 에덴에서 태어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이보그 신체는 통합적 정체성을 추구하지 않기에 종말 없는 또는 세계가 끝날 때까지) 적대적 이원론들을 발생시키며, 아이러니를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하나는 너무 적고, 둘은 오직 하나의 가능성에 불과하다. 기계를 다루는 기술에서 느끼는 강한쾌감은 더 이상 죄가 아니고, 체현의 한 양상이 될 뿐이다. 기계는 생명을 불어넣거나 숭배하거나 지배할 대상 it이 아니다. 기계는 우리이고, 우리의 작동 방식, 체현의 한 양상이다. 우리는 기계를 책임감 있게 대할 수 있다. 그들은 우리를 지배하거나 협박하지 않는다. 우리는 경계에 책임이 있다. 우리는 그들이다. 현재까지(옛날 옛적에), 여성적 체현은 주어진 것, 유기체적인 것, - P83

필연적인 것으로 보였고 어머니의 역할과 그것이 은유적으로확장된 활동 영역에서 발휘할 수 있는 솜씨를 뜻하는 것처럼 보였다. 우리는 배정받은 자리를 벗어날 때만 기계에서 강력한 쾌감을 느낄 수 있었고, 이 또한 따지고 보면 여성에게 적합한 유기체적 활동이었다는 핑계를 대야만 했다. 사이보그는 부분성,
유동성, 때로는 성과 성적 체현의 측면을 좀 더 진지하게 받아들일지도 모른다. 젠더는 심오한 역사적 폭과 깊이를 지녔어도,
결국에는 보편적인 정체성이 아닐 수도 있다.
무엇이 일상의 활동과 경험으로 간주될 수 있는지 묻는 이데올로기적 질문에는 사이보그 이미지를 통해 접근해볼 수 있다. 페미니스트들은 최근, 일상의 삶에 묻혀서 어떤 이유에서든그 생활을 유지하는 쪽이 여성이기 때문에 여성이 남성보다 잠재적으로 우월한 인식론적 위치에 있다고 주장했다.  - P84

어느 정도는 솔깃한 주장이다. 가치를 인정받지 못한 여성의 활동을 드러내며 이것이야말로 삶의 기반이라고 말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삶의 유일한 the 기반이라고? 여성들의 무지, 지식과기술로부터의 배제와 실패는 어떻게 봐야 할까? 남성들의 일상적 능력, 물건을 만들거나 분해하며 다룰 수 있는 지식은 어떻게 봐야 할까? 다른 방식의 체현은 어떻게 다뤄야할까? 사이보그 젠더는 전면적 복수를 행하는 부분적 가능성이다. 인종·젠더· 자본은 전체와 부분에 대한 사이보그 이론을 요청한다. 사이보그에게는 총체적 이론을 생산해내려는 충동이 없지만, 경계 및20 - P84

경계의 구성과 해체에 대한 친숙한 경험은 있다. 파급력 있는행위를 위해, 과학기술에 대한 한 관점과 지배의 정보과학에 도전하는 방법을 하나 제시할 정치적 언어가 되기를 기다리는 신화 체계가 있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 이미지를 덧붙이면, 유기체와 유기체적인 것, 전체론적 정치는 부활의 은유에 의존하며 재생산을 위한 성이라는 자원을 반드시 소환한다. 나는 사이보그가 재생과관계가 더 깊고, 출산과 재생산의 기반 대부분을 의심한다고 말하고 싶다. 도롱뇽의 경우 다리를 잃는 것과 같은 상처를 입은뒤 재생하는 과정에서 신체 구조가 재생되고 기능이 복원되는데, 이때 다쳤던 부위에 다리가 두 개 돋아나는 등, 기묘한 해부학적 구조가 생겨날 가능성이 늘 있다. 다시 자란 다리는 괴물같고 덧나 있으며 강력할 수 있다. - P85

우리는 모두 깊은 상처를 입었다. 우리는 부활이 아닌 재생을 요구하며, 우리를 재구성하는가능성에는 젠더 없는 괴물 같은 세계를 바라는 유토피아적 꿈이 포함된다.
이 글에서 사이보그 이미지는 두 개의 핵심 주장을 표현하는 데 도움이 된다. 첫째, 보편적이고 총체화하는 이론을 고안하면, 아마도 언제나, 지금은 확실히, 현실 전반을 놓치는 큰 실수를 저지르게 된다. 둘째, 과학기술의 사회관계에 대한 책임은, 반과학적 형이상학과 기술의 악마학을 거부함으로써, 타자와 부분적으로 연결되고 우리를 이루는 부분 모두와 소통하면 - P85

서 일상의 경계를 능숙하게 재구성하는 작업을 해내야 한다는것을 뜻한다. 과학기술은 인간을 만족시킬 수단이나 복합적 지배의 기반만 되는 것이 아니다. 사이보그 이미지는 우리 자신에게 우리의 몸과 도구를 설명해왔던 이원론의 미로에서 탈출하는 길을 보여줄 수 있다. 이것은 공통 언어를 향한 꿈이 아니라,
불신앙을 통한 강력한 이종언어heteroglossia 를 향한 꿈이다. 이것은 신우파의 초구세주 회로에 두려움을 심는, 페미니스트 방언의 상상력이다. 이것은 기계, 정체성, 범주, 관계, 우주 설화를 구축하는 동시에 파괴하는 언어이다. 나선의 춤에 갇혀 있다는 점에서는 마찬가지이지만, 나는 여신보다는 사이보그가 되겠다. - P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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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 : 여성 가장 가구, 연속적인 일부일처, 남성의 도주, 독거하는 노년 여성, 가사 노동의 테크놀로지, 가사 노동의임노동화, 가정 노역장의 재출현, 가정 기반 사업과 재택근무, 전자화된 가내 공업, 도시의 홈리스, 이주, 모듈화된건축, 강화된 (시뮬레이트된) 핵가족, 강도 높은 가정 폭력.

시장: 신기술로 제작된 신상품이 범람하는 가운데 새로 마케팅 대상이 된 여성들의 지속적 소비 노동(특히, 산업화된국가들과 산업화 중인 국가들이 대량 실업의 위험을 모면하려 경쟁하게 되면서, 딱히 왜 필요한지 알 수 없는 상품을 판매할 시장을 넓히려 애를 쓸 수밖에 없다); 기존의 대중 시장을 무시한 채 부유층을 노린 광고 전략과 짝을 이루는, 양극화된 구매력 부유층 하이테크 시장 구조에 대응하는 비공식 노동 및 상품 시장의 중요성 확대 전자금융을통한 감시체제: 경험의 시장적 추상화(상품화)의 강화, 그로부터 등장한 실효성 없는 유토피아적 공동체 이론이나 - P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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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나 해러웨이Donna J. Haraway

세계적인 생물학자, 페미니즘 이론가, 문화비평가, 과학 및 테크놀로지 역사가다. 1944년생으로 미국콜로라도대학교에서 동물학, 철학, 문학을 전공하고예일대학교에서 생물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캘리포니아대학교 산타크루스캠퍼스University ofCalifornia, Santa Cruz(UCSC) 의식사학과 명예교수다.
인류학, 환경학, 페미니즘, 영상·디지털미디어학등과 연계해 다학제 연구를 진행해오면서인문학과 기술의 접점을 모색하고자 했다. 
저서로<영장류의 시각 Primate Visions》, 《유인원, 사이보그,
그리고 여자》, 《겸손한 목격자@제2의 천년여성인간 앙코마우스™를_만나다》, 《한 장의잎사귀처럼》 등이 있다.



어려울 것이란 선입견으로 시작했는데... 서문에서부터 마음에 확~ 들어온다.
‘홀딱 반해버린 레코드판을 맨 처음 들었던 순간을 떠올리는 것과 더 비슷하다.‘ 니...



서문

캐리 울프

나로서는 30년 넘게 비판이론과 문화이론에 관한 문헌을 읽어왔지만, <사이보그 선언>에 견줄 만한 걸작은 아직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그 글을 처음 읽었을 때가 어렴풋이 기억난다(논문은 복사해서 모서리를 접어놓은 모양을 하고 있었는데, 당시 대학원생들이 늘 쓰던 방법이다). 그 글을 읽고 나와 같은 경험을한 사람들을 수없이 만났다. 이 경험을 떠올리는 것은 9/11이발생했을 때 있었던 장소를 떠올리는 것보다는, 홀딱 반해버린 레코드판을 맨 처음 들었던 순간을 떠올리는 것과 더 비슷하다. - P7

철학, 사회주의 페미니즘 정치, 이론을 뒤섞는 글쓰기 스타일에 얼마간 익숙해진 상태였다. 하지만 나는 나뿐 아니라 다른 많은 사람 역시 마찬가지였을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그 글의 파격적인 문체와 화법, 스웨거 swagger라고 불러도 괜찮을 스타일을받아들일 수 있을 정도까지는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여기서 나는 선언문 자체의 정신에 충실하게, 일부러 이단자가되려는 중이다). 글을 "사이보그의 ‘섹스‘는 양치식물과 무척추동물의 매혹적인 복제 패턴(이성애주의 예방에 효과적인 천연약품)을 일부 복원한다"는 관찰에서 시작한 다음 "나선의 춤에갇혀 있다는 점에서는 마찬가지이지만, 나는 여신보다는 사이보그가 되겠다"라는 문장으로 끝내는 사람이 대체 또 어디에 있겠는가? - P8

수사학적 퍼포먼스가 너무나 인상적이라는 이유로, 이 글이 백과사전을 만들고도 남을 만큼 박식한 내용을 대단히 넉넉하게 담고 있다는 사실을 깜빡하기 쉽다. 이런 글을 쓰겠다는엄두라도 내려면 대체 얼마나 많은 내용을 알고 있어야 하는 걸까? 게다가 이미 학계 스타 시스템이 단단히 자리 잡았던 당시에 이만큼 인용을 후하게 하는 글이 또 어디에 있을까? (나와 해러웨이가 나눈 대화를 읽는 독자는 알게 되겠지만, 해러웨이는 인용 문제를 매우 진지하게 취급한다.) 글에서 언급되는고유명사 목록을 만들어보면 알 수 있는 사실이다. 이러한 (그리고 물론 그 이상의) 이유로 <사이보그 선언>은 수많은 독자에게 더없는 해방감을 느끼게 했다. "하고 싶은 대로 다 할 자유" - P9

물론 생물학적인 것과 기술적인 것은 해러웨이의 전기와후기를 아우르는 글에서 늘 완전히 뒤얽혀 있었다. 첫 번째 선언문을 마감하는 "나선의 춤" 안에 함께 둘둘 감겨 있는 것이다. 하지만 <반려종 선언>은 생명/기술 문제의 반대편 극점인 육신the tiesh 을 향해 뻗어나가며, 심지어 열망한다. (다만 두 번째 선언문의 서두에서 주의를 주는 것처럼 "이들 형상은 정반대와는 거리가 멀다"는 점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해러웨이가 두 번째 선언문에 적은 것처럼 "사이보그나 반려동물은 종의 경계를 더잘 관리하면서 범주 이탈자의 번식을 막는 순수성을 지향하는사람들에게는 영 못마땅할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육신과 대지를 다루는 두 번째 선언의 느낌은 사뭇 다르다. 육신과 대지는 회로나 칩 또는 알고리즘보다 촘촘히 짜인 존재론적 윤리적·정치적인 복잡성의 장소라고 밝혀진다는 정도의 이야기를하는 것이 아니다. 또 이 선언문은 기술과학에 관한 것이면서도 "생명권력과 생명사회성"의 이야기에 더 가까워서, 어떻게 "자연문화에서 역사가 중요한지 알려준다. - P11

생명정치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며 세속주의, 개신교, 자본주의 그리고 현대미국사에서 국가의 형식이 이루는 특정한 배치 및 헤게모니적기반에 맞서는 중요한 대항 논리를 제공하기도 한다. 해러웨이는 스스로 밝히듯 천주교 신자로 자라났기 때문에 이와 같은 수사에 이끌리게 된다. 하지만 그녀 자신의 실체변화 transubstantiation는 천주교인으로 성장했다는 내력뿐 아니라 스푸트니크 Sputnik와 우주 경쟁의 시대에 교육을 받고 성년이 된 천주교인 여성이라는 사실에 영향을 받기도 했다. 그렇다면 <사이보그 선언>의도입부로 돌아가서, 해러웨이가 사용하는 어구 "육신이 말씀이되다"는 어쩌면 "신성모독"일 수도 있지만, 바로 그 덕분에 훨씬더 진지하고 충실할 수 있다. 따지고 보면 해러웨이 자신이 분명하게 밝히며 상기시키듯 "신성모독은 믿음을 배반하는 것과는 다르기 때문이다. - P14

이 글은 페미니즘, 사회주의, 유물론에 충실하면서 아이러니한정치 신화를 세우려고 시도한다. 나의 화법은 엄숙한 경배나 동일시identification 보다 오히려 더 충실한 신성모독blasphemy에 가까울 것이다. 신성모독은 언제나 진지함을 요구하는 일처럼 보인다. 내가 아는 한, 사회주의 페미니즘socialist-feminism을 포함하여,
세속화된 종교와 복음주의가 깊이 스며든 미국 정치의 전통에서 채택하기에 신성모독보다 나은 입장은 없다. 신성모독은 공동체의 필요성을 주장하면서도 그 내부의 도덕적 다수파 moralmajority로부터 보호받게 해준다. 신성모독은 믿음을 배반하는것과는 다르다. 아이러니는 변증법을 통하더라도 더 큰 전체로통합할 수 없는 모순에 관한 것이며 양립할 수 없는 것들이 모두 필연적이고 참되기 때문에 그대로 감당할 때 발생하는 긴장과 관계가 깊다. 아이러니는 유머이며 진지한 놀이다. 일종의수사학적 전략이자 정치의 방편인 아이러니는 사회주의 페미니즘에서 더 존중받을 필요가 있다. 나의 아이러니한 믿음, 신성모독의 한복판에 사이보그의 이미지가 있다. - P17

사이보그는 포스트젠더postgender 세계의 피조물이다. 사이보그는 양성성bisexuality, 오이디푸스 이전의 공생 symbiosis, 소외되지않은 노동을 비롯하여 부분들을 상위에서 통합해 그 전체의 권력을 최종적으로 전유하여 얻어지는 유기적 총체성을 향한 유혹과 거래하지 않는다. 사이보그는 어떤 면에서 서구적 의미의기원 설화가 없다. 이것이 사이보그 "최후의 아이러니다. 사이보그는 추상적 개체화로 지배력을 확장한다는 "서구의 끔찍한종말론적 목표telos, 마침내 모든 의존에서 벗어난 궁극적 자아, 다시 말해 우주인a man in space 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서구의" 인본주의적 의미의 기원 설화는 본원적 일체original unity, 충만함, 은총과 공포의 신화에 의존하며, 이는 남근적 어머니로 표상된다. - P20

강력한 쌍둥이 신화는 특히정신분석학과 마르크스주의를 통해 우리에게 강하게 각인되어있다. 힐러리 클라인Hilary Klein은, 마르크스주의와 정신분석학 모두 노동과 개체화 및 젠더형성의 개념을 다룰 때 본원적 일체라는 서사 장치에 기대는데, 이는 본원적 일체로부터 차이가 생산된 뒤 여성/자연에 대한 지배력을 넓혀가는 드라마에 편입되어야 한다고 했다. 사이보그는 이와 같은 본원적 일체, 서구적 의미의 자연과의 동일시 단계를 건너뛴다. 이것이야말로 사이보그가 자신을 탄생시킨 목적 teleology 인스타워즈 Star Wars" 의전복으로 이끌 수 있는 사이보그의 불법적 약속이다. - P21

스타워즈

조지 루커스George Lucas가 제작한 영화 시리즈를 의미할 뿐 아니라 레이건 시대 대륙간 탄도 미사일 방어 프로젝트인 전략 방위 구상StrategicDefense Initiative, SDI을 뜻하기도 한다. 냉전 시대에는 대륙 간 탄도탄을 비롯한 공격 기술들을 막기 위한 군사 전략이 여럿 고안되었는데, 전략 방위 구상은 미사일 공격이 발생할 경우 우주 공간에 있는 군사용 장비로해당 미사일을 격추하여 목표지점에 명중되는 것을 막는다는 계획이다.
이는 기존의 냉전 패러다임인 "상호 확증 파괴Mutual Assured Destruction", 즉전쟁이 발발할 경우 전멸이 초래될 수 있다는 점을 확증함으로써 역으로전쟁 발발을 막을 수 있다는 개념에 대한 대안으로 제시되었으나 실효성이 없다는 판단으로 클린턴 정부 시절 철회되었다. SDI는 1983년 로널드레이건의 1차 대국민 보고 이후 비판자들에 의해 당시 유행하던 영화 <스타워즈>에 빗댄 이름을 달게 되었고 계획의 비현실성 및 군비 확장과 관련된 숱한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 P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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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4
우리가 시를 쓰는 건 잊지 않기 위해서예요. 돌아가시기 전날 아버지 눈빛이 어떠했는지… 꽃매미 날개를 지갑 속에 넣고 다니는 것도 내 삶이 너무 허망하기 때문이에요. 시는 이제는 기억도 못 하는 숱한 상처들의 기록이에요. 그 속에는 내가 받은 상처뿐 아니라, 내가 준 상처도 포함돼 있어요. 길바닥의 개미를 보고 피하려고 조심하지만,
이미 내 구둣발 밑에 으깨어진 개미는 보이지도 않았을 테니…… -P147

202
글을 쓰나 안 쓰나 우리는 망하게 되어 있어요. 글로써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세상에서 위로받을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는 걸 확인하는 것뿐이에요.

203
시는 기도예요. 하느님한테 뭐 해달라고 조르는 기도가아니라, 어쩌든지 당신 뜻대로 살겠다는 약속이지요. 시는번제예요. 희생제물을 까맣게 태워 아무도 못 먹게 만드는 거예요. 더 잃을 것이 없기 때문에, 시는 비로소 안심이 되는 자리예요.

204
『주역의 수뢰 준‘ 괘는 물 밑에서 우레가 솟는 형상인데, 창조와 신생의 간난을 의미해요. 특히 이라는 글자는 어린 싹이 땅속에서 뒤틀리며 어렵게 올라오는 모습을 하고 있어요. 출구 없는 상황에서 어떤 식으로든 살아 나가기 위해 몸부림치는 것. 시도 그렇지 않을까해요. - P83

205
인간의 한계와 삶의 한계는 같은 것이고, 그것이 곧 시의 한계예요. 시는 그것 없이는 살 수 없는 어떤 것에 대한탐구와 모색이에요. 그것을 제외한 모든 것에 대한 부정같은 시가 할 수 있는 긍정적인 일이에요.

206
문학은 외줄 타는 광대의 막대기와 같아요. 막대기는 흔해빠진 것이지만, 줄타기하는 사람에게는 생명이에요.

207
문학은 허기로서 가 닿아야 해요. 허기진 얘기는 골백번들어도 늘 새로워요. 이 허기는 하느님도 못 건드려요. - P84

210
시는 고통스러운 거예요. 대상에 상처를 내고 그 맨얼굴을 드러내기 때문이지요. 좋은 시는 실성한 사람의 헛소리에 가까워요. 여러 번 읽어도 잘 모르지만, 한번 읽고 나면두고두고 잊히지 않아요. - P85

230
시는 언제나 ‘젊은 시‘예요. 시의 깊이는 불화에서생기고, 시의 감동은 열정에서 나와요. 시가 만약 재능이라면, 우리가 무슨 수로 나비나 공작새를 따라갈 수 있겠어요.

231
파카 볼펜의 화살표시 아시지요. 쉽게 들어가지만 나올때는 도무지 안 빠지는 화살촉 같은 시를 써야 해요. - P92

239
시는 말하는 게 아니라, 말을 숨기는 거예요. 혹은 숨김으로써 말하는 거예요. 슬픔을 감추는 것이 슬픔이에요.
슬픔에게 복수하려면, 슬픔이 왔을 때 태연히 시치미를 떼야 해요. 그것이 시예요.

240
시인은 입을 닫고 보여주기만 할 뿐이에요. 입을 열더라도 헛소리만 할 뿐, 계속 딴전을 피워야 해요. 독자가 이해하는 순간, 시는 죽어버려요. - P95

276
모든 사연을 지워버리고 ‘그리고‘로 시작해보세요. 우리 안의 내밀한 상처, 미처 돌보지 않은 거친 것들이 올라올 거예요. 우리의 참 모습은 ‘그리고‘ 이후예요.

277
야단맞은 아이들 자면서도 훌쩍거리던 모습, 잊히지 않아요. 그렇게 풀어주지 못하고 떠나온 것들 참 많지요. 이번 가을 오고 또 가고, 내년에 다시 올 것 같지만 영영 안올 수도 있어요. 사랑을 못 받아도, 못 주어도 응어리가 남아요. 그 응어리를 뒤늦게 풀어주려는 게 시예요.

278
다친 새끼발가락, 이것이 시예요. - P108

280
우리의 일상은 얼다 녹다가 하는 일의 반복이에요. 이지루한 아름다움! 우리가 결정하고 통제할 수 있는 것은얼마 되지 않아요, 오직 견디는 것뿐. 위로 안 받기 위해,
좀더 강해지기 위해 우리는 시를 쓰는 거예요.

281
겨울에 오줌 누고 나면 몸을 살짝 떨게 돼요. 체온이 떨어졌기 때문이라 하지요. 시 읽고 나서도 잠깐 떨게 돼요.
사시나무 떨 듯 하는 건 아니고… 시도 오줌도 늘 되풀이되는 일상에서 나오기 때문이겠지요. - P109

286
시는 틈새 만들기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에요. 우리는시가 만든 틈새만큼 숨 쉴 수 있어요. 그 틈새만큼이 인간의 자리예요.

287
삶을 바꾸는 대신, 삶을 바라보는 시선을 바꾸려는 게글쓰기예요. 경상북도 속으로 대한민국이 쑥 빨려 들어가는 일은 글쓰기를 통해 언제나 가능해요. - P111

303
시는 나를 통과해 씌어지는 거예요. 생각이 뻗어나가도록 가만히 두세요. 시를 통해 이전의 관념에서 벗어나는순간, 이전의 ‘나‘는 사라져요. 한 편의 시를 쓸 때마다 내가 잘 죽어야 해요.

304
글을 쓸 때는 내가 글의 품 안에 들어 있다고 생각하세요. 글은 내가 맺어주지 않아도 스스로 맺어지게 돼 있어요. 글쓰기는 머리가 아니라, 말이 하는 거예요. 써나가다헛소리가 튀어나올까 봐 겁내지마세요. 너무 튀면 나중에 잘라주면 되니까요.
OR - P119

342
자기 생각을 끝까지 밀고 나가는게 중요해요. 자신이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는 가봐야 알아요. 스스로 통제할 수없는 데까지 나아가면, 비로소 고요하게 돼요. 그와는 달리, 뭔가 깨달았다는 생각이 들면 자기에게 속는 거예요.

343
시는 살아내려는 의지 이상도 이하도 아니에요. 이 구멍저 구멍 기웃거리면 죽도 밥도 안 돼요. 재료를 최소한으로 쓰는 대신, 꺾임을 확실하게 하세요. 자기 몸에 붙여 쓰되, 들어가는 문과 나오는 문이 달라야 해요. - P133

399
아름다움은 아름답게 하는 것이고, 더럽게 하는 것이더러운 거예요. 되도록 세상에 짐이 되지 않도록 하세요.
우리는 아무것도 할 수 없지만, 스쳐 지나가는 건 할 수있어요.

400
먹고 싶을 때 먹고, 싸고 싶을 때 싸면서 아름다울 수 있겠어요. 소중한 건 언제나 어렵게 얻어져요. 쉽게 만들고쉽게 보여주면, 쉽게 버림받아요. 물 안 줘도 시들지 않는꽃은 가짜 꽃이에요. 글쓰기는 한 번 할 때마다 한 번씩 죽는 거예요.

401
시의 아름다움은 말 자체가 아니라, 말하는 방식에 있어요. 시는 자세예요. 어떤 자세든 정신과 결부되지 않은 자세는 없어요. 세상에서 인간이 가질 수 있는 건 아름다운자세밖에 없어요. - P154

414
테니스 칠 때 공을 앞에서 맞추라 하지요. 뒤에서 맞은공에는 힘이 실리지 않아요. 시 쓸 때도 전향적 사고를 해야 해요. 가령 아버지가 아들을 낳은 게 아니라, 아들이 아버지를 낳았다고 해보세요. 안 될 게 없잖아요. 삶이바뀌는 결정적인 순간은 사소한 생각의 전환에서 와요.

415
삶을 바꾸려면 생각을 바꾸어야 하고, 생각을 바꾸려면은유를 바꾸어야 해요. 믿을 수 없고 수긍할 수도 없지만,
글쓰기 외에 다른 천국이 없어요. - P159

418
시는 욕망의 꿈틀거림이고, 불화의 부르짖음이에요.
생피를 보려면 딱지 않은 것을 벗겨내야 해요. 예술은 생을 알몸으로 사는 일이에요. - P160

433
우리가 사는 세계는 세계가 아니라, 세계라는 관념이에요. 얼마든지 다른 관념으로 재구성할 수 있다는 이야기지요. 관념을 세계라고 믿으면 자기 오줌을 마시고, 자기가만든 귀신에 홀리는 것과 같아요. 그렇다고 관념을 무시해서는 안 돼요. 문화가 없다면 자연이 있을 수 없듯이, 관념이 없다면 세계를 재구성할 수도 없으니까요. - P166

435
글도 마음도 자주 살피지 않으면 나와 다른 사람을 해치게 돼요. 다른 사람 눈치를 보는 도덕과 달리, 윤리는 스스로 책임을 지는 거예요. 자신에 대한 무한 책임! 자기가 얼마나 피상적인지 아는 것이 윤리의 시작이에요. 피상적인사람은 아무것도 안 하는 사람보다 더 악질이에요.

436
삶과 글은 일치해요. 바르게 써야 바르게 살 수 있어요.
평생 할 일은 이 공부밖에 없어요. 공부할수록 괴로움은 커지지만, 공부 안 하면 내 다리인지 남의 다리인지 구분할수 없어요. 젠체 안 하고 남 무시 안 하려면 계속 공부해야해요. 늘 문제되는 것은 재주와 능력이 아니라, 태도와 방향이에요. - P167

445
이 세상은 인연으로 이루어져 있어요. 인연으로 생기지않은 의미는 없어요. 살면서 우리는 인연에서 한 발자국도벗어날 수 없어요. ‘인연‘을 은유라는 말로 바꾸어도마찬가지예요. - P170

448
우리는 우리가 아는 것의 주인이고, 모르는 것의 하인이라 하지요. 어떤 것을 이해하는 순간, 그것이 우리를 놓아줘요. 삶과 죽음을 함께 보고, 부분에서 전체를 보도록해야 해요. - P171

467
깨달음의 순간이 있기는 할까요? 문제는 깨닫고 나서도몸과 마음이 옛날방식 그대로 움직인다는 거예요. 깨달음에 목 매지 마세요. 어리석음을 그냥 두고 바라보세요. ‘절해고도絶海孤島의 섬처럼, 파도 많이 치는 밤에는 섬도 보이지 않는 절해絶처럼……‘ (‘달의 이마에는 물결무늬 자국) - P182

468
우리는 망망대해의 물거품 하나에도 못 미쳐요. 문학이란건 허망한 존재가 자기 허망함을 알고 딴짓하지 않겠다는 약속이에요. 비참하게 깨져도 한심하게 무너지지는 않겠다는 것. 모든 것이 허망하다 해도, 허망하지 않은 게 꼭하나 있어요. 일체가 허망하다고 말하는 이것! 이 공부를오래 해야 독하게 벼려져요. - P182

469
축구 경기에서 끝까지 무승부가 되면, 양팀 선수들이승부차기를 해요. 그때 한 선수가 골대를 향해 가면, 다른선수들은 스크럼을 짜고 격려를 하지요. 기독교 박해 시대때 형장으로 들어서는 순교자를 다른 교우들이 격려할때도 그러지 않았을까요. 우리가 시를 쓰는 건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생사 앞에서, 우리와 다른 사람을 위해 스크럼을 짜는 게 아닐까 해요. - P183

470
‘당랑거철‘이라는 말이 있지요. 사마귀가 겁 없이수레 앞에 버티고 서서 한번 해보자고 덤비는 것이지요. 참말도 안 되는 한심한 짓이지만, 시도 그런 것 아닐까 해요.
아름드리 나무기둥을 뽑겠다고 부둥켜안고 용써보는 것.
실패할 수밖에 없는 싸움에 실패 안 할 수밖에 없다는 듯이 ‘올인‘하는 것. 그거라도 안 하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뭐겠어요 - P1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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