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
아무리 슬픈 사연도 말하고 나면 고통이 줄어들어요. 아무리 고된 노동이라도 노래에 실리면 힘든 줄을 몰라요.
리듬 때문이지요. 그건 일의 리듬이고 몸의 리듬이에요.
계단 잘 내려가다가도 ‘조심해야지‘ 하면 걸음이 엉켜 비틀거려요. 몸 하는 일에 머리가 개입해서 생기는 혼란이지요. 시 쓸 때도 머리보다 몸에 맡기도록 하세요.

48
머리로 쓰는 글은 세수 안 하고 분 바르는 것과 같아요. 글 쓸 때는 아무 생각 없이 밀고 들어가세요. 생각은 나중에 와야 해요. ‘기다리면 늦어지고, 생각하면 어긋난다‘
는 경구는 어느 수행에서보다 글쓰기에 필요해요. - P27

77
시는 감정도 비유도 아니고, 패턴이에요. 패턴은 소급적인 동시에 예시적이에요. 은유적 의미를 띠지 않는 패턴은없어요. 패턴 자체가 은유에서 나오고, 은유를 가능하게해요.

78
시를 쓸 때는 말의 꼬임새로 패턴을 만들어야 해요. 꼬임은 서너 번 정도면 족해요. 그 이상이면 우리 머리가 따라가지 못해요. ‘그 사람은 착한 것이 아닌 것이 아닌 것이 아니다‘ 하면 벌써 착한 건지, 아닌 건지 분간이 안 되잖아요. - P37

121
글을 쓸 때 잡생각을 받아 적어보세요. 일상에서 잡생각은 시에서 진실이고, 일상에서 진실은 시에서 잡생각이에요. 우리가 쓸데없다고 버리는 것 안에 우리 자신이 가장많이 들어 있어요.

122
잡생각은 가장 그 사람다운 생각이고, 진짜 인생이에요.
그 안에는 꿈과 사랑, 욕망과 희망이 다 들어 있어요. 잡생각의 채널에 접속하고 나면 나도 없고, 너도 없고, 잡생각이라는 것조차 없어요. - P54

172
다시 정리해볼게요. 행갈이를 하든 안 하든 시는 시예요. 말과 말 사이 점착성을 의식하고, 되도록 쉽게 쓰세요. 중학교 이학년 이상의 말은 필요 없어요. 담장 너머있는 사람에게 하듯 보이게 얘기하세요. 할머니가 손자 데리고 계단 올라가는 것처럼 말하세요. 아기 한 발, 나 한 발그렇게 해야지, 안그러면 가랑이 다 찢어져요.

173
보여준다고 해서, 다 보여주는 건 아니에요. 이야기가밖으로 드러나면 힘이 없어요. 포르노는 두 번 다시 안 보잖아요. 윤리나 이념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것도 포르노예요. 그것들을 얘기할 때는 에로티시즘으로 하세요.

174
시 쓰기는 봉오리가 피어나거나, 풍선이 부풀어 오르는것과 같아요. 처음에는 어떤 모양이 나올지 짐작하기 어려워요. 또 시는 재즈 연주와 비슷해요. 과정이 목표이고, 멈추는 곳이 끝나는 곳이에요. - P71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1
시는 말할 수 없는 것이에요. 말할 수 없는 것을 말해버리면 그 전제前提를 무시하는 거예요.

2
시는 진실과의 우연한 만남이에요. 시를 쓸 때 우리는무슨 말을 하려는지 몰라요. 우리가 이름 붙일 수 없는 것만이 우리를 행복하게 할 수 있어요. 시는 무지가 주는기쁨의 약속이에요.

3
언어는 때 묻고 상스러운 것이지만, 언어를 통하지 않고는 아무것도 보고 들을 수 없어요. 언어는 어떤 대상이나목적에 이르는 수단이 아니에요. 언어 자체가 대상이고 목적이에요. 언어를 수단으로 사용하면 언제나 결핍감을 느껴요. 글쓰기는 언어 자신의 탈주이며 모험이에요. - P12

17
시에 힘이 실리지 않는 건 언어에 대한 소홀한 대접 때문이에요. 언어는 시의 처음이고 끝이에요. 하지만 언어가유일한 낙처處라 해서, 반드시 시의 형식을 가질 필요는없어요.

18
우리의 세계는 언어로 된 세계예요. ‘언어 너머‘ 또한 언어이고, 지금 이 말조차 언어예요. 시인은 알몸으로 언어와 접촉하는 사람이에요. - P17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때마침 라투르 신부는 그의 호주머니에 성모마리아상이새겨진 작은 은빛 메달이 들어 있다는 생각이 났다. 그는 그녀에게 그 메달을 주며 이는 거룩한 성부께서 축복해 주신것이라고 말했다. 이제 그녀는 숨겨 두고 잘 보호하며 그녀를 감시하는 사람들이 잘 때 숭배해야 할 보물을 갖게 된 것이다. 아, 글을 읽을 수 없거나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사람에게형상 같은, 사랑을 상징하는 물질적인 형태 같은 게 필요하구나! 하고 주교는 생각했다.
그는 커다란 열쇠를 자물쇠에 넣고 나무로 된 문지방 위에서 천천히 되돌렸다. 문밖의 평화와 그 자신의 영혼 속에 있는 평화가 모두 하나 되는 것 같았다. 눈이 그치고, 아치형의하늘을 뒤덮은 희뿌연 구름이 이제는 모두 상그레 데 크리스토 산 너머로 부드러운 하얀 안개가 되어 가라앉아 있었다.
보름달이 파란 둥근 천장에서 높이, 그리고 외로이 인자하게빛나고 있었다. 주교는 성당 문가에 서서 그의 방문객이 질척한 눈 속에 남기고 간, 한 줄로 늘어선 검은 발자국 띠를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 P244

바일랑 신부가 그곳으로 가버린 이후 주교의 부담은 점점더 커져 왔다. 오베르뉴에서 새로 데리고온 사제들은 모두좋은 사람들이어서 주교가 소망하는 것을 실현시키는 데 충실했고 지칠 줄 몰랐다. 하지만 그들은 아직도 이 지방에 낯설어서 결정을 하는 데 소심해 모든 어려운 문제를 주교에게맡겼다. 라투르 신부는 그의 주교 대리가 필요했다. 그는 원주민들과 아주 잘 어울리는 재주가 있었고, 그들의 단점에도아주 쉽게 동정심을 베풀었다. 그들이 함께 있을 때면 주교는 바일랑 신부의 낙관적인 경솔함을 늘억제하지만, 혼자있게 되면 바일랑 신부의 그런 자질을 몹시도 그리워했다.
게다가 그는 바일랑 신부의 동료애가 그리웠다. 이것을 시인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 P249

지금까지 25년간 요셉 신부와 함께 일해 왔지만, 주교는요셉 신부의 모순된 천성에 동조하는 데는 실패하고 말았다.
다만 그 모순된 성질 그대로를 받아들일 뿐이었다. 그리고요셉이 오래도록 멀리 가 있는 사이에 자신이 그 모순된 성질들을 모두 사랑했음을 깨달았다. 주교 대리는 그가 알고있는, 가장 진실 되게 영적인 사람들 중 하나였다. 비록 그가너무나 열정적으로 이 세상의 많은 물질에 집착하는 경향이있긴 하지만....... 먹고 마시는 것을 아주 좋아하지만 그는 가톨릭교회의 모든 금식을 잘 준수할 뿐 아니라, 기나긴 선교여행에서 힘겨움과 먹을 것이 없음을 견뎌내야 하는 데 대해서도 결코 불평하지 않았다. 요셉 신부가 좋은 포도주에대해 남달리 탐을 내는 취향은 다른 사람에게는 결점으로 보일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늘 몸이 허약한 그에게 포도주는그의 목적과 상상을 단숨에 실행시키도록 지원해 주는 약효빠른 육체의 자극제 같은 것이어서 그는 그것을 필요로 하는듯했다. 훌륭한 만찬이나 클라레 적포도주 한 병이 그의 눈밑에 영적인 에너지를 가져다주는 것을 주교는 여러 차례 봐 - P252

바일랑 선교사가 의전 수행관의 안내로 면회실 안으로 들어왔는데, 그는 축복을 받아야 할 물건들로 가득 찬 두 개의커다란 검은 가방을 가지고 왔다. 관습대로라면 가방 하나만가지고 와야 하는데 두 개씩이나 가져왔던 것이다. 교황을접견하고서 요셉 신부는 그의 선교와 다른 선교사들에 대해너무나 생생하게 설명을 하는 바람에 교황과 비서는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듣다가 다음으로 예정되어 있던 면회를 세 번이나 뒤로 미루어야 했다. 교황 그레고리 16세는 귀족적이고전제적인 성직자로서 유럽의 정치 파동에 대해 지고 있는 편을 지지해 주고 있었고, 일관성 있게 자유 이탈리아의적에게 편을 들어주고 있었으며, 앞서 수행한 어떤 교황보다도세상의 먼 곳에 믿음을 전파하는 선교 수행을 적극적으로 지지해 주고 있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여기서 그 자신의 마음에 맞는 선교사를 만나게 된 것이었다. 바일랑 신부는 그 자신과 그의 동료 사제들, 그의 선교, 그의 주교를 위해 축복을빌어 주십사고 청했다. 그는 행상인 보따리처럼, 십자가와묵주와 기도서와 메달과 성무일과서로 가득 차 있는 커다란가방들을 열더니 그것들에 평소보다 더 많은 축복을 주십사 - P255

고 청했다. 시간이 너무 많이 걸리는 데 놀란 의전 수행관이여러 번 드나들었고, 마츄치도 교황에게 다른 면회객들이 기다리고 있다고 귀띔을 했다. 의전 수행관이 그곳에 없었으므로 바일랑 신부는 직접 두 개의 가방을 들고 힘겹게 뒷걸음질 쳐 나가고 있었는데, 이때 교황이 의자에서 일어나더니손을 들어 올렸다. 축복을 해주려던 게 아니라, 교황이 아닌한 인간으로서 선교를 위해 떠나는 또 다른 인간에게 인사를하려던 것이었다. 「잘 가요, 미국인!」 - P256

라투르 주교는 나바호족의 집이 숙고를 하며 머물거나 과거를 회상하며 미래를 계획하기에 아주 좋은 곳이라는 것을알게 되었다. 그는 프랑스에 있는 그의 형과 옛 친구들에게기나긴 편지를 썼다. 그 인디언 집은 대양 위에 있는 배의 선실처럼 고립되어 있어 집 주변에서 센 바람이 웅얼대고 있었다. 문 말고는 밖으로 열린 곳이 하나도 없었는데 문은 늘 열려 있었고, 밖의 공기는 모래 폭풍으로 인해 몽롱하고 누런빛을 띠고 있었다. 하루 종일 모래가 벽의 틈 사이로 들어와흙바닥에 약간 언덕을 형성할 정도로 쌓였다. 이 집은 아주허름한 주거지라서, 마치 거기 있는 사람이 먼지가 많은 땅과 움직이는 공기로 이루어진 세상의 중심에 앉아 있는 것같아 보였다. - P256

네 시쯤 그들은 리오그란데 계곡 위로 높이 솟은 산등성이로 나왔다. 이 지점에서 오솔길은 기나긴 내리막길이 되어약 60마일 떨어져 있는 앨버커키로 진입하는 샌디아 산맥의발치쯤에서 구불구불 구비치고 있었다. 이 산등성이는 원추형으로 된 바위 언덕으로 뒤덮여 있었으며 소나무들로 얇게옷을 입고 있었는데, 바위는 신기할 정도로 바다 빛 푸른색과 올리브 빛 푸른색 사이의 푸른빛 음영을 띠고 있었다. 단지 풍화 작용으로 인해 바위가 부서져 이루어진, 얇게 울퉁불퉁 덮인 흙도 이와 마찬가지로 푸른빛을 띠고 있었다. 라투르 신부는 산등성이의 서쪽 가장자리 위로 뾰족하게 내민한적한 언덕 위로 노새를 타고 가고 있었는데, 뾰족하게 내민 그 지점부터는 내리막길이었다. 이 언덕은 홀로 떨어져높이 솟아 있었고, 대담하게도 지는 해와 파란 빛깔의 샌디아 산맥을 마주하고 있었다. 그들이 언덕을 향해 다가갔을때, 바일랑 신부는 서쪽 정면으로 흙이 푹 파진 곳에 울퉁불통한 바위벽들이 드러나 있는 것을 보았다. 그 바위벽은 주변 언덕처럼 푸른빛이 아니라 누런빛이었는데 그것도 아주짙은 금빛에 가까운 것으로, 이제는 그 위로 내리비치고 있는 태양빛의 금빛과 매우 흡사했다. 그곳에는 곡괭이와 쇠지렛대가 놓여 있었고 갓 캐낸 돌조각들이 있었다. - P267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시가 뜻대로 풀리지 않을 때는
네 가지 요소를 살펴봐야 해요.
작자, 언어, 대상, 독자

모든 허물은 나에게 있다 하지요.

언어, 대상, 독자에 대한
나의 생각과 태도를 바로잡지 않는다면,
러닝 소매에 머리를 집어넣으려는 아이나
매연을 뿜으며 내달리는 트럭과 뭐 다르겠어요.

어디 시 쓰는 일에서만 그러할까요.
‘안 좋은 시인의 사랑을 받는
남(여)자는 얼마나 안 행복할까.‘
(『네 고통은 나뭇잎 하나 푸르게 하지 못한다』) - P7

시 쓰는 공부는 가파른 길이에요.
자기 자신을 내거는 것이기 때문이지요.
결국 삶은 사라지고 시만 남겠지요.

예술과 삶은 거의 같이 나가는 것 같아요.
예술 가지고 장난치거나 멋 부리면 안 돼요.
무엇보다 정성이 있어야 해요.

공자의 스승 주공은 머리를 감다가도손님이 오면 그대로 나가 맞이했다 하지요.
‘구이경지‘라는 말처럼,
시는 끝까지 공경하는 마음을 잃지 않는 거예요. - P8

가려운 데를 박박 긁으면 쾌감이 있지요.
그러나 긁고 싶은 대로 다 긁고 나면
온통 피투성이가 되지요.

시 쓸 때 들어가는 문은 가려움,
나가는 문은 따가움,
들어가는 문은 부질없음,
나가는 문은 속절없음이에요.

언제나 가까운 데서 찾고,
다른 데서 가져오려 하지 마세요.
무엇보다 자기에게 절실해야 해요.
쓰고 나서 많이 아파야 해요. - P15

당연하게 받아들이면
피상적인 사고밖에 안 나와요.
예술은 불화에서 나와요.
불화는 젊음의 특성이지요.

나이 들어 좋은 글을 쓰는 건
정신이 젊다는 증거예요.
젊지 않으면 쓰나 마나 한글,
써서는 안 되는 글을 쓰게 돼요.

우리가 할 일은
자기와 불화하고, 세상과 불화하고
오직 시하고만 화해하는 거예요.
그것이 우리를 헐벗게 하고
무시무시한 아름다움을 안겨다줄 거예요. - P20

진정성을 가지고 뒤집으면, 모든 게 뒤집어져요.
이제까지 알고 있던 진실도, 거룩함도 다 뒤집어져요.
시가 안 되면, 나에게 뒤집음이 있는지 살펴보세요.

말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것을 이야기하세요.
간절하게 묻고, 가까운 데서 찾아보세요切問近思.
난간끝으로, 뜨거운 물속으로 자기를 밀어 넣어야 해요. - P21

시 쓰는 건 자기 정화예요.
화장실에 볼일보러 가듯이,
밥 먹은 다음 양치질하듯이
하루도 거르지 않고 할 일이에요.
우리는 그러지 않으면
금세 지저분해지는 존재예요. - P25

시 쓰는 사람은 고정관념으로부터
자유로워야 해요.
‘자기‘라는 것도 관념일 뿐이에요.

습관과 무감각은 우리를 살게 해주지만
우리를 삶과 절연시키는 것이기도 해요.
시가 고통스러운 것은 고정관념을 벗기기 때문이에요.
그것은 우리 자신을 파괴하는 거예요. - P31

시를 쓸 때는 멀리 가되
반드시 돌아와야 하고,
자기 땅을 확보해야 하고,
멀면서도 가까워야 하고,
보일 듯이 보일 듯이, 보이지 않아야 해요.
그래서 부정확한 게 가장 정확한 게 돼요. - P54

산문은 ‘……임에 틀림없다‘는 확신을 주지만,
시는 ‘...... 일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을 주지요.
시는 삶 앞에 마주서게 하고 눈뜨게 해요.

정상적인 언어의 흐름을 교란시킴으로써
삶의 치부를 ‘순간적으로 보여주는 것.

그건 카메라 조리개가 찰칵! 하고 열리면서
동시에 닫히는 것과 같아요.
또 어둠 속에서 성냥불을 밝혀 잠깐 환해졌다가
어두워지는 것과 같아요. - P61

시는 전적으로 말의 일렁임,
술렁임, 속삭임이에요.
시는 뭔지 모르는 거예요.

‘오직 모를 뿐只不知!‘

시를 쓰고 나서, 읽고 나서
그게 무슨 뜻인지 몰라야
밥에 뜸이 들고, 물이 끓는 거예요.

시를 임신하고 싶으면
‘모르는 것‘과 섹스하세요. - P83

모든 예술이 그렇듯이
시는 일차산업이고 철저히 수공업이에요.
시 쓰는 사람은 말을 꼬기만 할 뿐,
시가 어느 방향으로 나아갈지는
말이 알아서 할 거예요. - P93

언제나 말할 수 없는 것에
닿으려고 해야 해요.

쓰다가 막히면
위에서부터 다시 시작하세요.

등산할 때, 길 잃으면
출발한 데로 되돌아가듯이……

소주 두 잔의 상태를 유지하면서,
다음에 써 오실 구절은
‘다시 울 일이 없다.‘ - P108

시는 물수제비뜨는 거예요.
언어라는 수면 앞에 한껏 몸을 낮추는 거지요.

시는 절대적으로 듣는 방식이에요.
대상이 하려는 말에 귀를 기울여야 해요.

내 얘기를 하지 말고, 대상의 얘기를 하세요.
의미는 숨기고, 말의 감촉을 느끼도록 하세요.

언어에서 언어로 건너뛰다 보면
내가 할 일이 별로 없어요.

동질적인 재료로 동질적인 판을 짜세요.
만두피처럼 단단히 붙여야 해요. - P134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가도 가고 싶은얼마 전 신문에서, 안나푸르나 등반에서 조난당한 젊은대원의 일기를 보았어요. 그분은 삼십대초반의 나이였던것 같고, 사고 당하기 전날 밤 쓴 글이라 해요. 일부러 고심해 다듬은 글이 아닌데, 어떻게 칼바람이 부는 텐트 안에서군더더기 하나 없는 글을 쓸 수 있었는지, 감탄과 존경의마음을 이길 수 없었어요. "입이 벌어질 정도로 어마어마한 남벽 아래서 긴 호흡 한 번 내쉬고, 우리는 없는 길을 가야 한다. 길은 오로지 우리 몸속에 있다는 것을 깨달 - P35

으며, 밀고 나가야 한다. 어떤 행운도 어떤 요행도 없고, 위로도 아래로도 나 있지 않은 길을 살아서 돌아와야 한다."
이 글은 글쓰기의 완벽한 은유로서, 글 쓰는 사람이 가야 할 길을 준엄하게 예시하고 있어요. 글을 쓴다는 것은생이라는 깎아지른 절벽 앞에 마주 서는 거예요. 그 앞에서는 온갖 지식과 경험이 쓸데없는 일이 돼요. 글쓰기에앞서 우리가 내쉬는 긴 호흡은 어떤 도저한 각오이면서 비장한 결단일 거예요. - P36

글쓰기를 통해 우리가 나아가는 길은 세상 어디에도 없는 길이에요. 이 길은 오직 우리 자신이 만들어내야 하므로, 우리 몸속에 숨겨져 있다고 할 수 있어요. 가령거미같은 곤충을 보세요. 자기 몸속에서 토해낸 실을 밟고 공중에서 옮아가잖아요. 그처럼 이 길은 오직 우리자신 속에서만 만들어질 수 있어요.
이 길은 김수영과 나쓰메 소세키처럼 ‘온몸으로‘ ‘소처럼‘ 밀고 나아가는 길이에요. 그리고 마지막에는 어떤 요행도, 행운도 없는 그 길에서 살아 돌아와야 해요. 그렇지않다면 목숨을 건 여정이 무슨 의미가 있겠어요. 그처럼삶은 의무이며 희망이에요. - P36

벤야민이 역설하는 것은 의미 전달이 끝나자
마자 효과가 소멸하는 ‘정보‘와 달리, ‘이야기‘는 그 의미를 최종적으로 유보하기 때문에 계속 살아남는다는 거예요. 이 같은 ‘이야기‘의 소생 능력을 벤야민은 피라미드에서 발견한 ‘밀알‘에 비유해요. 수천 년 버려져 있던 씨알에 물을 주면 싹이 튼다는 거지요. 최근 시베리아 동토(凍土에서 발견한 씨앗에서 만이천 년 전 패랭이꽃이 피어났고,
미국의 암염 광산에서 채취한 소금물에서 일억 년 전 박테리아가 헤엄쳐 나왔다고 해요.
그처럼 ‘아는 것‘이 정보의 생명이라면 ‘모르는 것‘은이야기의 생명이에요. ‘모르는 것‘이 남아 있어 ‘아는 것‘
을 부추기기 때문에, 이야기는 계속 살아 있을 수 있어요.
반지름과 원의 넓이처럼, ‘아는 것‘이 많아질수록 ‘모르는것‘은 곱절로 많아진다잖아요. ‘아는 것‘이 무엇이냐는 안회의 물음에, 공자는 이렇게 대답해요. "아는 것을 안다 하고,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하는 것이 아는 것이다." - P53

현실경계 안에 있는 ‘동일성‘과 ‘차별성‘을 가로축과 세로축으로 보자면, ‘무경계‘는 그 위로 나 있는 높이축에 해당된다고요. 또 십여 년 전 어느 자리에서 제가 문학에 대해 말한게 있는데, 이 또한 세 가지 좌표축으로 이해될 수 있어요.
"문학이란 그것을 말하지 않으면 모든 게 허위가 되고, 그것을 말하면 모든 게 스캔들이 되는 것입니다(가로축). 또문학이란 그것을 말하기 전에는 모든 게 ‘이놈‘ ‘저놈‘으로있다가, 그것을 말함으로써 ‘이분‘ ‘저분‘의 상태로 드높여지는 것을 말합니다(세로축). 마지막으로 문학은, 등을 긁을 때 오른손으로도 왼손으로도, 위로도 아래로도 닿지 않는 것처럼, 말할 수 없는 것을 말하려다 실패하는 것입니다(높이)." - P55

사물이나 사건이 제 본모습을 드러내는 그 순간은 반드시 와요. 그걸 믿어야 해요. 그러나 끝까지 지켜봤는데도그 순간이 안 올 수도 있어요. 그건 내잘못이 아니에요. 그래도 어떻든 그렇게 믿고 하는 수밖에 없어요. 왜? 보들레르 식으로 말하면, 글쓰기란 내가 지금 여기 존재해 있다는 것을 알게 해주고, 내가 누군지 알게 해주는 것이기 때문이지요. 글 쓰는 사람이 그 일을 제대로 할 때, 읽는 사람도 자기가 누군지 알게 되고, 자기가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돼요.
사실 우리가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게 훨씬 더 중요해요.
당연히 안다고 생각하고, 그래서 한 번도 의심해보지 않기 - P107

때문에 사고가 나는 거지요. 그런 의미에서 ‘오직 모를 뿐只不知!‘이라는 경구는 참 소중해요. 가령 탐정소설 작가도범인이 누구인지 모르고 써야 끝까지 긴장감이 유지된다고 해요. 만약 범인을 미리 정해 두고 쓰면 독자가 벌써 김새를 차린다는 거예요. 자기도 몰라야 끝판에 가서 자기도 알게 되는 거지요 - P108

시 쓰기는 언어로 하는 거예요. 시의 본령은 자신의 체험을 보고하거나 외부 현실을 기록하는 게 아니에요. 이런건 언어로 안 해도 사진이나 동영상으로 얼마든지 잘 할수 있어요. 시는 언어를 춤추게 하는 거예요. 너무 진지하면 춤이 안 돼요. 언어에 기대려면 차라리 술 한잔하는 게나아요. 그때 나오는 혀 꼬부라진 말, 더듬거리는 말, 실성한 말이 시에 가까워요. 어떻든 시 쓰는 사람이 시 속으로들어와 자기 얘기를 해서는 안 된다는 거예요.
인형극을 보면 인형이 움직이고 말하는 것 같지만, 막뒤에서 조종하는 사람이 있잖아요. 대부분의 실패한 시는인형 조작하는 사람이 밖에 나와 관중하고 직접 말하는 것과 같아요. 시인은 끝까지 시 뒤에 숨어 있어야지, 독자 앞에 나오면 바로 죽어버려요. 햇빛을 죈 드라큘라처럼 말이에요. 그렇게 되면 시는 고장 난 변기의 레버를 내리거나,
체인 벗겨진 자전거 페달을 밟는 것과 같아요. 뭔가 저항하는 느낌이 안 나잖아요. 그 느낌이 없으면 시가 아니에요. - P110

바위투성이인 그 산은 깎아지른 절벽과 눈썹을 닮은 봉우리가 인상적이었어요. 그러나정말 아름다웠던 것은 거기서 내다보이는 다른 산들의 아스라한 모습이었어요. 액자처럼 드리운 가까운 산의 능선위로 드러나는 먼 산들의 정경은 무어라 말할 수가 없었어요. 그때 이런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어떤 산이 아름다운것은 제 스스로의 모습 때문이 아니라, 거기서 바라보이는다른 산들의 아름다움 때문이라고.
어쩌면 한 존재의 아름다움은 그것이 다른 존재들의 아름다움을 드러내는 자리이기 때문일 거예요. 한 존재의 올바름과 진실함 또한 다른 존재들의 진실함과 올바름을 드러내는 자리가 되기 때문일 거예요. 그 자리는 영원하지만, 그곳에 머물다 가는 존재들은 덧없습니다. 그 사실을인정할 수 없거나, 자신을 그 자리와 동일시할 때 그 자리는 숨어버리지요. 잊혀진 그 자리를 계속해서 기억하고 환기시키는 것이 시와 시인의 역할 아닐까, 잠시 생각해보았습니다. - P111

ㅁ아름다움의 종교가 고통으로부터 완전히 해방된 거라고 생각할 수는 없어요. 우리가 이 세상에 와서 먹은 것만큼은 토해내야 해요. 최소한의 고통까지도 안 받으려 하면, 도둑놈 심보예요. 깨달은 사람은 치매 걸리는지 안 걸리는지, 깨달은 사람한테 가서 한번 물어보세요. 다만 수레의 테두리와 중심축 사이 바퀴살 위에서, 지금 내 의식이 어느 지점에 서 있는지 돌아보세요. 테두리 가까이 있으면 고통스럽고 중심축 가까이 가면 힘이 덜어져요. 하지만 테두리나 중심축이나 다 같은 바퀴살 위의 두 지점임을일지 막아야 해요. - P119

정말 좋은 문장은 눈물을 나게 하는 게 아니라, 눈물이깊은 속으로 내려가게 만드는 거예요. 저는 문장을 어떻게써야 할지 막막할 때마다 카프카를 읽어요. 아무 페이지나펼쳐놓고 말이에요. 카프카의 문장은 전부가 시예요. 시적인 문장은 산문으로서는 약점이라 하지만, 카프카 문장은그렇지 않아요. 거기에는 아무런 비유나 장식이 없지만,
본질에 닿아 있어요. 저는 그의 문장들 몇 개를 지금도 외우고 있어요. 그러면 저도 언젠가 그렇게 쓸 수 있을 것 같아서요. 시를 쓰려면 시 가지고 말장난하는 것보다, 좋은시 읽는 것이 더 중요해요. 또 좋은 작가가 되기보다 좋은 - P130

독자가 되려는 게 글쓰기의 지름길이에요.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자기 안의 스승을 찾는 거지요.


김수영, 카프카, 벤야민, 뭐 그런 이름들을 들 수 있겠지요. 어떤 작가를 스승으로 택한다는 건 배우자를 택하는 것 이상으로 중요해요. 스승이 없으면 헤매게 돼요. 아까도 말했지만 시 쓰는 사람은 시가 씌어지는 자리를 자꾸 돌아봐야 해요. 삼사십 년 썼다고 어느 날 좋은 시가 나오는 게 아니잖아요. 중학생은 바로 돼도 예순 살 먹은 문학박사는 잘 안 되는 게 이 세계예요. 바른 길을 찾아가지않으면 백 년 천 년이 가도 헛방이에요. 평생 서울 간다면서 부산 가놓고, 남대문이 왜 안 보이느냐고 떼를 쓰면 뭐라 하겠어요. 글쓰기에서 ‘서울가는 것‘은 자기 고통을 뚫어지게 응시하는 거예요. 글을 쓰려면 내가 먼저 아파야해요. 그래야 남을 아프게 할 수 있지요. 나도 안 아프면서어떻게 남을 아프게 할 수 있겠어요. 결국 자기를 위한 공부를 해야 하는 거지요. 글쓰기를 통해 자기 속으로깊이 들어가면 자연히 알게 돼요. 시가 뭔지, 시가 어디 있 - P140

는지 말이에요. 시는 시인에게 있는 것도 아니고, 대상에게 있는 것도 아니에요. 각각의 시 속에서 이야기하는 사람, 즉 ‘화자‘에게 있어요. 그 자리에 제대로 서면 모든 게시가 돼요. 좋은 시는 언제나 독자를 그 자리에 서게 만들어요. - P141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