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족들과 함께 어깨를 걸고 진실을 요구하는 싸움을 하는 동안 시민들은 고결하고 당당한 인간으로 서 있을 수 있었다. 죽은 세월호 희생자들이 살아 돌아올 수 없다면, 살아남은 자가할 수 있는 단 한 가지는 그 죽음의 진실을 밝히는 것, 그리고그 죽음을 사주한 자들을 벌하는 것이다. 돈이 아니라 ‘진실‘을요구한다는 사실이 간혹 어떤 사람들을 놀라게 했던 것 같다. 정권과 국회와 언론이 모두 작당하여 공격할 때 맞서 싸울 수있는 시민들이 있다는 것도 몇몇 사람들을 불편하게 한 것 같다. 그러나 그 기적 같은 강력한 저항을 통해 우린 부패한 권력과 그 속에서 함께 썩어간 시대정신을 다시 일으켜 세울 수 있었다. - P138
그럼에도 여전히 가난한 시민이 가진 가장 값진 무기는 그의생명이라는 듯 김영오 씨는 자신의 생명을 잘게 조각내어 이 질긴 투쟁의 제단에 바쳤다. 우리가 빠진 수렁은 생각보다 깊고어둠은 생각보다도 완강하며, 악취는 생각보다 독하다. 진실을알고자 하는 욕구를 죄악시하는 이 사회는 부대낌 없이 이곳을살아내고 싶거든 노예의 정신을 갖추라고 우리에게 요구한다. 유족들의 싸움은 결국 노예가 되는 것을 거부하는 싸움이다. 이것은, 2014년 남한사회에서 ‘좌빨‘의 징표가 되어버린 "진실을요구하는 인간들의 싸움"이며, 민주주의라는 거적을 둘러쓴집단을 향해 그 실체를 요구하는 싸움이다. - P139
울어라. 우리 모두 함께 울자. 눈물은 아름다운 것이다. 진실함이고, 솔직함이다. 이토록 큰 슬픔 앞에서 우리 함께 목 놓아울고, 그리고 진실을 역사 속에 남기기 위해 다시 싸우자. 우리위에 내려앉은 이 거대한 슬픔은, 진실을 덮고 쌓아 올린 거짓의 산더미에 올라앉아 더 큰 거짓의 성을 쌓아야만 숨 쉴 수 있는 자들이 벌인 일이다. 그리고 그들은 이미 합당한 벌을 받고있다. 단 한순간도 진실을 살지 못하는 그 벌을 우린 지금 울고 있지만, 결코 패자가 아니란다. 우린 함께 진실의 편에 서 있기 때문이다. 정의의 편에 선다는 것은 삶에 드리울 수 있는 거대한 축복이며, 인생을 아름답게 가꿀 수 있는 강렬한 휘장이다. 우린 그걸 갖고 있다. - P143
가부장제가 부여한 과도한 남성 권력이 가족과 사회를 병들게 하는데도 스스로 궤도 수정을 할 줄 모르는 이 땅에서, 불굴의 의지로 잔혹한 현실을 세상 밖으로 끌어내 마침내 승리하는여성들을 보노라면 환희와 절망이 교차한다. 자신이 겪은 고통을 세상 밖으로 드러내고 가해자를 단죄하는 것만이 스스로 지속에서 해방되는 방법임을 알지라도, 그 수많은 장애물을 건너면서 그들은 얼마나 지치고 다치고 다시 좌절하게 될 것인가. 그러나 용기를내어 자신의 고통을 끄집어내는 순간, 그것은 이제 개인이 아닌 사회의 문제가 된다. 그리고 피해자는 이러한경험을 공유하고 사회에 가해자 처벌을 요구함으로써 자기 자신뿐 아니라 동료 여성들을 비추고 끌어안게 된다. 당신들이 저지른 국가적 범죄를 인정하라는 자신의 온 생애와 존엄을 건싸움을 통해 일본군 위안부 피해 여성들이 세상의 모든 군 위안부 피해자를 위해 싸우는 운동가로 거듭났던 것처럼. - P166
식민통치의 시대는 종식되었지만, 그 시절 빚어진 비극에서기인한 트라우마는 하나도 해소되지 않았고, 여전히 한국사회를 피멍들게 한다. 거기서 헤어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과거를 똑바로 바라보고, 명확히 기록하고 인정하며, 반성과 사과로매듭짓는 것이다. 한사코 과거를 덮으려는 나라에서 위안부 피해 여성들은 그 위대한 일을 시작한 사람들이고, 우리는 그들이모두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역사에 명확히 이 일을 기록하고 청산해야 한다. 그 끔찍한 역사를 올바르게 청산해야만 비틀린 현재의 우리를 수정할, 반복되는 트라우마로부터 탈출할 길이 열릴 것이다. - P171
선생의 집은 라스코 동굴벽화 인근에 자리 잡고 있다. 라스코동굴 벽화가 처음 발견된 후 관람객에 의해 심각하게 손상되기시작하자, 프랑스 당국은 그 옆에 라스코 동굴벽화를 섬세하게재현한 제2의 라스코 동굴을 만들었다. 선생은 7년에 걸친 벽화작업에 참여한 6인의 화가 중 한사람이었다. 작업이 끝난 후 받은 사례비로 근처에 집을 마련했고, 은퇴 후 거기서 살았다. 그런 선생이 지금 병상에 누워 계신다. 83세. 숲 속에 자리 잡은요양원에서 선생은 세상과 단절된 채 인생의 마지막 순간을 보내고 계신다. 국회 안에서 벌어지고 있는 필리버스터 투쟁의 놀라운 장면들에 대해 말씀드리고, 특히 전태일의 동생 전순옥의원의 발언을 전해드렸더니 감격하셨다. 영국에서 유학하던 전순옥씨와 잘 아는 사이라면서. - P183
선생은 말씀하셨다. 정의로운 길을 택하는 것. 그 자체가 인생의 승리라고 그 길에 서 있어야만 기쁘고 당당하게 인생을누릴 수 있다고, 그리고 단 한 사람이라도 그 길을 함께할 수 있는 동지를 찾으라고 한사람이면 족하다고. - P184
세상의 모든 문명에는 어둠과 빛이 공존한다. 그리고 그 어 "*둠과 빛을 조율해내는 방식이 그 문명이 축적해온 문화적 역량일 터이다. "도망간 노예를 잡아들이는 이 시절, 자본과 국가의 무모한 불장난으로 집을 잃고, 더는 잃을 것 없이 탈진하고분노한 피난민들이 대거 몰려드는 이 황망한 사태, 앞으로 어느집 지붕 위로 불이 옮겨붙을지 아무도 모르는 상황에서, 유럽인들은 수렁에 빠진 바퀴들을 하나둘 끌어올려야 한다. 너무 낙심하거나 지치지 않고, 그 어떤 광기에도 현혹되지 않은 채. - P198
그런데 전 세계의 많은 사람은 유독 파리의 테러를 아파했고, 파리를 위해 기도했다. 페이스북이 ‘Pray for Paris‘를 외치는 전 세계 유적지들의 사진으로 뒤덮였다. 파리라는 도시가 세계인들에게 갖는 그 각별한 의미와 애정을 드러낸 에피소드였다. "당신을 위해 기도하겠다"라는 말은 당신과 나 사이에 신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상호 간에 믿어 의심치 않을 때만 축복의 의미를 갖는다. 신의 존재를 수긍하지 않는 사람에게 그 말은 허무맹랑하고 강압적으로 들린다. 많은 파리지앵은 무신론자이며, 신앙을 지니고 있더라도 굳이 대외적으로 드러내지 않는 것이현명하다고 생각한다. 그러한 사회적 약속과 판단이 통용되는곳이 바로 이 혁명의 도시 파리다. 유일신을 섬기는 종교들의피를 보고야 마는 배타적 속성을 수세기 동안 겪어왔기 때문이다. 더구나 이 테러가 대체 어떤 연유로 일어났는지를 잠시만이라도 생각한다면, 당신들을 파괴한 그들을 벌해달라고 나의 신에게 기도하겠다는 말이 과연 축복으로만 들릴지 가늠할 수 있을 것이다. - P201
테러 직후 파리에서 갑자기 베스트셀러가 되었던 책이 있다. 가난한 문학청년 헤밍웨이가 소설 하나 써보려고 애쓰며 돌아다니던 파리 시절의 기록, 파리는 날마다 축제A Moreable Feast」다. 사람들은 기도하는 대신 테라스에 앞다퉈 앉으며 여전히 포도주를 마셨고, 가난한 문청시절 헤밍웨이가 파리에서 누렸던 축제의 날들을 되찾고자 그의 책을 사 갔다. 기도 대신 파리라는 축제를 계속 즐기는 것. 그것이 파리를 사랑하는 가장 멋진 방법이다. - P202
세계 곳곳에서 많은 사람이 테러에 희생당한 파리사람들을 위해Pray for Paris‘라는 배너를 내걸었습니다. 그런데 프랑스는 국교를 가지지 않은 세속국가이며, 모든 국민이 자신이 원하는 신앙을 가질, 혹은 가지지 않을 자유를 가지며, 특히 공공장소에서 자신의 신앙을 드러내는 것을 금합니다. 그것은 프랑스 공화국이 가진 중요한 가치 중 하나인 ‘정교분리의 원칙aicité ‘이지요. 미국에서와 달리 프랑스 대통령은 취임할 때 성경에 손을 올리고 맹세하지 않습니다. 우리를 위해 정말로 뭔가를 기원하고 싶다면, 차라리 - P202
Peace for Paris‘ 라든가 혹은 헤밍웨이가 말한 것처럼 ‘파리는 언제나 축제‘라고 기원해주세요. 시네아스트 조안 스파르Joann Star가말한 것처럼 "우리에게 더 이상의 종교는 필요 없습니다. 우리는음악을 믿고, 포옹을 믿으며, 삶을 믿고, 샴페인과 기쁨을 믿습니다". 그러니 자, 우리를 위해 기도를 하기보다 근본주의자들을 향해 잔을 듭시다. 어둠을 지향하는 자들을 향해 우린 축제의 폭죽을 터뜨립시다. - P203
프랑스가 인류에게 기여한 가장 큰 한가지가 있다면, 그것은두말할것도 없이 ‘혁명‘이다. 자유와 평등과 박애가 넘치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필요하다면 감옥을 부수고 왕의 목을 칠 수있다는 사실을 그들은 보여주었고, 그것이 신호탄이 되어 세상은 드디어 왕을 없애기 시작했다. 에어프랑스 노동자들의 행동은 프랑스의 대외적 이미지를 훼손하는 것이 아니라, 다시 한번 혁명의 화산이 분출했던 순간을 환기하고 혁명으로 대표되는 프랑스의 대외 이미지를 고양하는 것이었다. 물론 그 장면이지배계층의 간담을 서늘하게 했으리란 것은 충분히 짐작할 수있다. 그 지배계급의 대변자인 미디어는 그 장면을 이용해 역풍을 만들어보려 무진 애를 썼다. - P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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