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그런 건 다 차치하고, 지금 나는 노인이 되었다. 이 글을 쓸 때 나는 예순 살이었다. 예이츠의 말처럼 "예순 살의 미소 짓는 공인". 하기야 예이츠는 남자였다. 이제 나는일흔 살이 넘었다. 이건 모두 내 잘못이다. 사람들이 여자를만들어내기 전에 태어나 수십 년 동안 훌륭한 남자가 되려고열심히 노력한 탓에 젊음을 유지하는 법을 몽땅 잊어버렸다. 그래서 나는 젊음을 유지하지 못했다. 나의 시제가 뒤죽박죽이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젊다가 갑자기 예순 살이 되고 어쩌면 여든 살이 될지도 모른다. 그다음은? 별것 없다. 진짜 남자라면 틀림없이 어떻게든 할 수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자꾸 든다. 좋은 아니더라도, 화장품보다는 더 효과적인 어떤 것. 하지만 나는 실패했다.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젊음을 유지하는 데 완전히 실패했다. 내가 열심히 노력했던 것을 모두 되돌아본다. 나는 정말로 노력했다. - P20
가끔은 모든 걸 그냥 포기하는 게 낫겠다 싶기도 하다. 가끔은 나의 선택권을 행사해서 게이트 앞에 우뚝걸음을 멈추고 나치주의자를 머리부터떨어지게 하는 편이 낫겠다 싶다. 내가 남자인척하는 데에도젊음을 유지하는 데에도 재주가 없다면, 그냥 늙은 여자인 척하는 편이 나을지도 모른다. 누가 늙은 여자를 만들어낸 적이있는지는 아직 잘 모르겠다. 하지만 한번 시도해볼 가치는 있을 것 같다. - P21
몸을 밧줄로 묶는 사람들과 거대하고 무거운 것들은 그렇게 잘 변형돼서 불확실한 바닥에 화를 낼지도 모른다. 마음이 불안해지기 때문이다. 어쩌면 그들은 진흙 안으로 빨려 들어갈까 봐 두려워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빨아들이는 데에 관심이 없고 배가 고프지도 않다. 나는 그냥 진흙일 뿐이다. 상대에게 자리를 비워준다. 친절하게 대하려고 노력한다. 그래서 사람들과 그 거대하고 무거운 것들은 전혀 변하지 않은 모습으로 그 자리를 떠난다. 그냥 발에 진흙이 묻었을 뿐이다. 하지만 나는 달라져 있다. 여전히 이 자리에 있고 여전히 진흙이지만, 발자국과 깊고 깊은 구멍과 걸어간 자국과 흔적과 변화가 사방에 가득하다. 나는 달라졌다. 당신이 - P24
나를 변화시킨다. 나를 화강암으로 취급하지 말라. - P25
부족 안에서든 가정 안에서든 몹시 안전한 환경에서 자란 아이들은 사랑을 잘 인식하지 못한다. 물고기가 물을 의식하지 못하는 것과 비슷한 것 같다. 원래 그래야 하는것이기도 하다. 사랑은 공기 같고, 사랑은 인간적인 요소이니까. 하지만 이제는 후안이 고향에서 쫓겨나 가난하게 살아가던 온화하고 지적인 사람이었음을 알겠다. 사람들의 편협함이 그를 불한당들의 먹잇감으로 만들었다. 1940년대의 세상은 그런 사람들 천지였다. 지금도 그런 사람들 천지다. 그때내가 눈치 있게 그의 손을 잡아주었으면 좋았을걸. - P38
그때인지 그 전인지, 하여튼 후안과 로버트가 모종의 경인 것이 분명하다. 내 바위가 네 것보다 크네 마네 하는 경쟁이었다. 로버트는 우리에게 멋들어진 야외 벽난로를만들어주었다. 기술적으로도 실제로도 신성한 장소다. 유록의상의 집처럼 지어졌기 때문이다. 지을 때의 의도도 그러했다. 그러나 명상하는 사람이 앉아야 할 자리에서 불이 타올랐기 때문에, 로버트는 사람들이 불가에 둘러앉을 수 있게납작한 돌들을 반원형으로 놓아 명상의 반원을 완성했다. 우리 식구들은 70년 동안 그 자리에 앉아 식사도 하고, 서로에게 이야기도 들려주고, 여름밤의 별들도 구경하는 중이다. 아버지와 로버트를 찍은 사진에서 한 사람은 열심히 듣고 있고 다른 한 사람은 이야기를 하고 있다. 한 손을 들어 올리고 먼 곳을 바라보는 듯한 표정을 짓고 있다. 두 사람이 앉 - P42
아 있는 곳이 바로 벽난로의 그 납작한 돌이다. 로버트와 앨프리드는 이야기를 나눌 때 영어도 쓰고 유족의 말도 썼다. 뉴욕 출신 독일 이민 1세대의 딸인 내가 유록어를 말하는 아버지의 목소리를 들은 것은 아마도 이례적인 일이었을 텐데그때는 그것을 몰랐다. 아무것도 몰랐다. 모두 유록어를 쓰는줄 알았다. 그래도 세상의 중심이 어디인지는 알고 있었다. - P43
도서관은 공동체의 초점, 신성한 장소입니다. 누구나 접할수있다는 점, 공개된 장소라는 점에서 신성합니다. 모두회 장소지요. 제가 저의 도서관이라고 생생하고 즐겁게 기억하는 곳이 몇 군데 있습니다. 제 인생 최고의 요소들입니다. 제가 처음으로 친해진 도서관은 캘리포니아주 세인트헬레나에 있었습니다. 당시에는 주로 이탈리아 사람들이 사는평화로운 소도시였죠. 작은 카네기 도서관이었습니다. 하얀치장 벽토, 서늘한 공기, 어머니가 오빠와 저를 그곳에 남겨두고 장을 보러 가시던 뜨거운 8월 오후에는 졸린 곳이기도했습니다. 칼 오빠와 저는 단어를 찾아다니는 미사일처럼 어린이 방을 돌아다녔습니다. - P44
제 생애 두 번째 도서관은 가필드 중학교 근처에 있는 버도서관 분원입니다. 그곳에서 제 친구 셜리가 저를 ‘N‘ 서가로 데려가서 "여기 E. 네스빗이라는 작가가 있는데, 모래요정과 다섯 아이들』이라는 책을 너도 꼭 읽어봐야 돼"라고 말하던 소중한 추억이 있습니다. 세상에, 셜리의 말은 정짤 울았습니다. 8학년 무렵 저는 어른 방으로 슬그머니 스며들어 갔습니다. 사서들은 모른 척해주었고요. 하지만 제가 로드 던세이니‘의 두꺼운 전기를 성물처럼 들고 어른 대출 창구로 갔을 때 사서의 표정이 지금도 기억납니다. 나중에 세월이흐른 뒤 시애틀에서 세관 관리가 제 여행 가방을 열었다가 스틸턴 치즈"를 발견하고 지은 표정과 아주 흡사했습니다. - P46
그다음 도서관은 바로 버클리 공립도서관 본관입니다. 버클리 공립고등학교에서 겨우 한두 블록 거리에 그 도서관이 있는 것이 축복이었죠. 저는 학교를 싫어하는 만큼 도서관을 좋아했습니다. 학교에서 저는 10대들의 습속이라는 시베리아 벌판으로 추방당한 사람이었지만, 도서관에서는 고향에 온 것처럼 자유로웠습니다. 도서관이 없었다면 저는 고등학교 시절을 이겨내지 못했을 겁니다. 적어도 제정신으로는하기야 10대 아이들은 모두 제정신이 아니죠. 저는 외서가 있는 3층 쪽으로는 아무도 가지 않는다는사실을 알아차리고, 그곳으로 이동했습니다. 거미줄처럼 생긴 창가에서 ‘시라노 드 베르주라크』 프랑스어판을 들고 웅크린 채 살다시피했습니다. 아직 그 책을 읽을 수 있을 만큼프랑스어를 익히지 못했는데도 그런 건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사랑이 크면 알지 못하는 언어도 읽을 수 있게 된다는걸 그때 배웠죠. 사랑이 크면 못 할 일이 없습니다. - P47
그러고는 또 울었죠. 아, 울기에 좋은 때있습니다. 도서관은 울기에 좋은 장소고요. 조용히 울기에그다음 도서관은 래드클리프 대학의 작고 사랑스러운 도서관입니다. 그다음은...... 하버드의 와이드너 도서관이었조 제가 아직 1학년생이었는데, 그것도 여자였는데, 그 도서관 출입을 허락받았을 때의 이야기입니다. 자유에 대한 저의 개인적인 정의를 알려드리겠습니다. 자유는 와이드너 도서관의 서가에서 누리는 특권입니다. 믿을 수 없을 만큼 무한히 늘어선 그 서가들에서 처음 밖으로 나왔을 때의 기분을 지금도 기억합니다. 저는 그때 약 스물다섯 권이나 되는 책을 들고 있어서 걷기도 힘든 지경이었지만 날아갈 것 같은 기분이었습니다. - P48
저는 뒤로 돌아서서도서관 건물의 널찍한 계단을 올려다보았습니다. 저게 바로천국이지. 나의 천국이야.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세상의모든 글이 저기에 있고, 난 그 글을 읽을 수 있어. 자유입니다, 드디어, 주님, 드디어 자유예요!" 제가 이 위대한 구절을 가벼운 마음으로 인용한 것이 아님을 알아주시기 바랍니다. 여기에는 저의 진심이 있습니다. 지식이 우리를 자유롭게 합니다. 예술이 우리를 자유롭게 합 - P48
니다. 훌륭한 도서관은 자유입니다. 그다음으로 파리에서 국립도서관과 짧지만 격렬했던 사랑을 나눈 뒤 저는 포틀랜드에 도착했습니다. 이곳에서 보낸처음 몇 년 동안 저는 아이 둘을 낳고 키우느라 집에 있었습니다. 제게 기쁨을 안겨준 일, 제가 원하던 휴일, 제가 일주일이나 한 달 내내 고대하며 기다리던 일은 바로 보모를 구해아이들을 맡긴 뒤 찰스와 함께 시내 도서관으로 가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밤에 갔지요. 낮에는 불가능했으니까요. 도서관이 문을 닫는 9시까지 두어 시간이 남아 있었습니다. 언어의바다에 풍덩 뛰어들고, 넓은 정신의 벌판을 거닐고, 상상력이라는 산을 올랐습니다. 카네기 도서관의 그 아이가, 와이드너의 학생이 그랬던 것처럼. 그것이 바로 저의 자유고 저의 기쁨이었습니다. 지금도 그렇습니다. - P49
는 그 기쁨은 절대 상품이 될 수 없습니다. 그 기쁨을 또 하나의 배타적인 특권으로 만들면 안 됩니다. 공립도서관은 공공의 것입니다. 그 자유에 누가 손을 대도 안 됩니다. 반드시 필요한 사람 누구나 그 자유를 누릴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 모두가 필요할 때, 그러니까 항상 누릴 수 있어야 합니다. - P49
그래서 그다음에 떠올린 곳은 내가 내 머릿속에서 찾아낸 섬, 어스시라고 불리는 섬이었다. 이 군도에는 마법사, 주부, 그리고 환상적인 사람들이 산다. 나는 이 섬들을 잘 알고 있다. 내가 이 섬들에 관한 책을 썼으니까. 그 섬들에 곤트와 로크와 해브너, 셀리더와 오스킬과 더핸즈라는 멋진 이름도 지어주었다. 어스시를 현실 세계에서 보게 될 거라고는 한번도 예상하지 못했는데, 그런 일이 일어났다. 한 번. 당시 나는 영국제도를 끼고 돌면서 오크니 제도와 헤브리디스제도를 지나고, 루이스해리스섬에 갔다가 스카이섬에 들른 뒤 서해안을 따라 스코틀랜드와 웨일스를 지나는 배에 타고 있었다. ...... 그때 거기 내 섬이 있었다. 황금빛 바다에 흩어진 그섬들은 이 세상의 것이 아닌 듯 환상적이었으며 틀림없이 용들이 가득했다. 실리제도. 이 이름도 아름다웠다. 왜 웃는가? 내가 실리제도를 봤다니까! - P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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