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СВЕТЛАНА АЛЕКСИЕВИЧ

벨라루스의 저널리스트, 1948년, 우크라이나에서 태어났다.
그는 소설가도, 시인도 아니다. 그러나 자기만의 독특한 문학 장르를 창시했다. 일명 ‘목소리 소설Novels of Voices‘, 작가 자신은 ‘소설-코러스‘라고 부르는 장르이다. 다년간 수백 명의사람들을 인터뷰해 모은 이야기를 Q&A가 아니라 일반 논픽션의 형식으로 쓰지만, 마치 소설처럼 읽히는 강렬한 매력이있는 다큐멘터리 산문, 영혼이 느껴지는 산문으로 평가된다.
1983년, 그는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의 집필을끝냈다. 이 책의 원고는 2년 동안 출판사에 있었으나 출간될수 없었다. 그는 영웅적인 소비에트 여성들에게 찬사를 돌리지 않고 그들의 아픔과 고뇌에 주목한다는 사실 때문에 비난받았다.
1985년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가 드디어 벨라루스와 러시아에서 동시에 출간됐다. 이 책은 전 세계적으로 200만부 이상이 팔렸다. 1992년, 신화화되고 영웅시되던 전쟁에 이의를 제기하는 그의 책들에 대한 재판이 열렸다. 그러나 민주적인 의식을 가진 시민들의 노력으로 재판은 종결되었다.
지은 책으로 마지막 증인들 아연 소년 체르노빌의 목소리 세컨드 핸드타임」 등이 있다.
그의 책은 미국, 독일, 영국, 스웨덴, 프랑스, 중국, 베트남, 불가리아 등에서 35개 언어로 번역 출간되었으며 전 세계에서 수백 편의 영화와 연극, 방송극을 위한 대본으로 사용되었다. 프리드리히 에베르트 재단의 최고정치서적상, 국제 헤르더 상, 에리히 마리아 레마르크 평화상, 전미 비평가협회상등 수많은 국제상을 수상했고 2015년 노벨문학상을 받았다.




- 인류 역사에서 여자가 군대에 처음 등장한 건 언제인가?
- 이미 기원전 4세기에 아테네와 스파르타의 그리스 군대에서 여자들이 싸웠다. 후일 그들은 마케도니아 알렉산더대왕의 원정에도 참가했다.
러시아 역사학자 니콜라이 카람진은 우리 선조들에 대해 이렇게썼다.
슬라브 여성들은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고, 전쟁터로 향하는 아버지와 남편을 따라나서곤 했다. 626년, 콘스탄티노플이 포위당했을 때 그리스인들은 전사한 슬라브인들 사이에서 다수의 여성 시신을 발견하기도 했다. 어머니들은 자녀들을 그저 양육만 한 게 아니라 전사들로 키워낸 것이다."
- 근대에 들어선 어땠는가?
―1560년부터 1650년 사이에 영국에서 최초로 여자병사들이 복무한 병원이 생겼다.
-그렇다면 20세기에는 무슨 일이 있었나?
―20세기 초…… 영국에서는 이미 제1차세계대전 때 왕립 공군

이 여자들을 받기 시작했고 왕립 보조군단과 여성 차량수송대도 조직되었다. 그 수가 10만 명에 이르렀다.
러시아, 독일, 프랑스에서도 많은 여성들이 군병원과 위생열차에서 복무하기 시작했다.
제2차세계대전중에 전 세계는 여성들의 능력을 똑똑히 지켜보았다. 영국군 22만 5천 명, 미국군 45만~50만명, 독일군 50만명등, 여자들은 이미 세계 여러 나라의 군대에서 병종을 가리지 않고활약하고 있었다.
소비에트 군대에서는 백만 명가량의 여성들이 참전해 싸웠다. 그들은 가장 ‘남성적‘인 군대 보직을 포함해 남자들과 똑같은 임무를수행했다. 그 때문에 언어 문제가 발생할 정도였다. ‘전차병‘ ‘보병‘ ‘자동소총병‘ 같은 보직은 여성을 지칭하는 용어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전까지 여자들이 맡아본 적이 없는 임무였기때문이다. 그곳, 전쟁터에서 비로소 여자를 가리키는 군대용어들이 생겨났다……
역사학자와의 대화 중에서

1978~1985년

나는 전쟁에 대한 책을 쓰고 있다…
내가 어렸을 때나 젊었을 때는 누구나 전쟁 이야기를 즐겨 읽었지만, 나는 전쟁 이야기를 좋아하지 않았다. 내 동갑내기들 역시 모두 전쟁 이야기를 좋아했다. 그건 그다지 놀랄 일이 아니었다. 우리는 승리의 아이들이었으니까. 승자의 아이들. 전쟁 하면 맨 먼저 머리에 떠오르는 기억은 무엇일까? 그건 알아들을 수도 없는 무서운 말들 속에서 보낸, 우울했던 나의 어린 시절이다. 사람들은 늘 전쟁을 회상했다. 학교에서도 집에서도, 결혼식에서도 세례식에서도, 기념일에도 추도식에서도 언제나전쟁을 얘기했다. 심지어 아이들의 대화에서조차 어느 날 이웃집 남자애가 나에게 물었다. "사람들은 땅 밑에서 뭐하는 걸까? 땅 밑에서 어떻 - P13

게 살지?" 우리는 전쟁의 비밀이 무엇인지 알아내고 싶었다.
그때 나는 ‘죽음이란 무엇일까‘ 생각하기 시작했다…… 죽음에 대한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고 어느새 죽음은 나에게 삶의 중요한 비밀이 되었다.
우리에게는 그 두렵고 비밀스러운 세계가 모든 것의 출발점이었다.
우크라이나 출신인 외할아버지는 전쟁터에서 전사해 헝가리 땅 어딘가에 묻혔고, 친할머니는 빨치산으로 활동하다가 티푸스로 돌아가셨다. 할머니의 두 아들은 군대에서 복무하다가 전쟁이 발발한 지 한 달 만에 행방불명이 되었다. 할머니의 세 아들 중 한 명만 살아 돌아왔다. 바로 우리 아버지이다. 먼 일가친척들 중에서 열한 명이나 되는 친척들이 아이들과 함께 산 채로 독일군에게 불태워졌다. 누구는 자기 오두막에서, 또 누구는 시골 교회에서 집집마다 그런 사연 하나쯤은 있었다. 어느집이나. 시골의 사내아이들은 오랫동안 ‘독일인‘이나 ‘러시아인‘ 흉내를내며 놀았다. 아이들은 ‘헨데 흐흐! ‘추뤼크! ‘히틀러 카푸트! 라는독일어를 크게 외치곤 했다.
우리는 전쟁이 없는 세상을 알지 못했다. 전쟁의 세상이 우리가 아는유일한 세상이었고, 전쟁의 사람들이 우리가 아는 유일한 사람들이었다. 나는 지금도 다른 세상이나 다른 세상의 사람들을 알지 못한다. 그런데 다른 세상, 다른 세상 사람들은 정말 존재하기나 했던 걸까? - P14

전쟁이 끝난 뒤 내 어릴 적 시골마을은 여자들의 세상이었다. 여자들의 마을, 남자 목소리를 나는 기억하지 못한다. 그때의 풍경은, 마을 여자들이 전쟁을 이야기하고 흐느껴 울고, 흐느끼듯 노래하던 모습으로내 기억 속에 남아 있다.
학교 도서관의 책은 절반이 전쟁에 관한 것이었다. 마을 도서관도, 아버지가 책을 빌리러 자주 들르곤 하셨던 구청 도서관도 마찬가지였다. 이제 나는 그 이유를 안다. 정말 우연일까? 우리는 끊임없이 전쟁을 하거나 전쟁을 준비했다. 다들 어떻게 전쟁을 치러냈는지 이야기했다. 우리는 한 번도 다른 삶을 살아본 적이 없었고, 어쩌면 다르게 사는 법을몰랐던 것인지도 모른다. 다른 세상, 다른 방식의 삶을 상상조차 할수 없는 우리는, 언젠가 다르게 사는 법을 오랫동안 배워야 할지도 모르겠다. - P15

학교는 우리에게 죽음을 사랑하도록 가르쳤다. 우리는 의 이름으로 명예로운 죽음을 맞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지에 대해 글을 썼고그것을 꿈꿨다.
하지만 학교 밖의 세상은 다른 이야기를 했고, 나는 그 다른 이야기에마음을 더 빼앗겼다.
나는 오랫동안 현실에 눈이 어두운 사람이었다. 현실은 나를 놀라게했고 또 내 마음을 뒤흔들었다. 삶에 대해 무지했기 때문에 겁도 없었다. 이제와 생각해본다. ‘만약 내가 좀더 현실적인 사람이었다면, 이처럼 밑도 끝도 없는 깊은 나락으로 달려들 수 있었을까?‘ 어쩌다 이렇게 되었을까? 무지 때문에? 아니면 이 길을 갈 것만 같은 예감 때문에?  - P15

사실 그런 예감은 있었다......
오랫동안 찾아 헤맸다…… 어떤 말을 써야 내 귀에 들려오는 이야기들을 제대로 전달할 수 있을까? 내가 느끼는 세상을, 내 눈이 보고, 내귀가 듣는 이 세상을 표현해낼 수 있는 장르를 나는 애타게 찾았다.
어느 날 우연히 ‘나는 화염에 휩싸인 마을에서 왔다』라는 책을 읽게되었다. 아다모비치, 브릴, 콜레스니크의 소설. 그런 충격은 우연히 도스토옙스키의 작품을 읽으며 충격받았던 날 이후로 처음이었다. 소설의 형식은 놀라웠다. 소설은 삶 그 자체의 목소리를 담고 있었다. 소설은 내가 어렸을 때 들었던 이야기, 지금도 거리와 집과 카페와 전차에서 들려오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쓰고 있었다. 바로 이거야! 세상은 다시 돌아가기 시작했다. 그토록 찾아 헤매던 것을 찾은 것이다. 사실 찾을 줄알고 있었다.
알레시 아다모비치는 나의 스승이 되었다…… - P16

2년 동안 나는 생각했던 만큼 자주 사람들을 만나지도 글을 쓰지도못했다. 읽기만 했다. 내 책은 무엇을 이야기하게 될까? 글쎄, 전쟁에 대한 또 한 권의 책이라…… 무엇 때문에? 전쟁은 사실, 크고 작은 전쟁 - P16

들에서부터 널리 알려지거나 알려지지 않은 전쟁들까지, 이미 수천 번도 더 넘게 있지 않았던가. 그리고 전쟁에 대한 이야기는 그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쓰지 않았던가. 하지만………… 그건 모두 남자들이 남자들의목소리를 들려준 것이다. 그건 분명한 사실이다. 우리는 전쟁에 대한 모든 것을 ‘남자의 목소리‘를 통해 알았다. 우리는 모두 ‘남자‘가 이해하는전쟁, ‘남자‘가 느끼는 전쟁에 사로잡혀 있다. ‘남자‘들의 언어로 쓰인 전쟁. 여자들은 침묵한다. 나를 제외한 그 누구도 할머니의 이야기를 묻지않았다. 나의 엄마 이야기도 심지어 전쟁터에 나갔던 여자들조차 알려들지 않았다. 우연히 전쟁 이야기가 시작되더라도, 그건 ‘남자‘들의 전쟁 이야기이지, ‘여자들의 전쟁은 아니다. 이들의 행동은 서로 약속이라도 한 듯 매번 똑같다. 집에서나 전쟁을 같이 치른 여자들의 모임에서만 잠깐 눈물을 보인 뒤, 비로소 자신들의 전쟁, 나는 알지 못하는 전쟁에 대해서 입을 연다.  - P17

나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 알지 못하는 여자들의전쟁, 취재여행을 다니면서 나는 여러 차례 생각지 못한 새로운 이야기들의 목격자가 되고 유일한 청취자가 되었다. 그리고 어렸을 때처럼 큰충격을 받았다. 그들의 이야기 속에는 치가 떨리도록 극악하고 참혹한진실이 숨어 있었다…… 여자들이 이야기할 때, 그들의 이야기에는 우리가 읽거나 들어서 익숙한 내용, 그러니까 어떤 이들이 얼마나 영웅적으로 다른 사람들을 죽이고 승리를 거뒀는지, 아니면 어떻게 패배했는지, 어떤 기술들이 사용됐고 어떤 장군이 활약했는지 따위의 내용은 아예 없거나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여자들의 이야기는 전혀 다른 것이고, 또 여자들은 다른 것을 이야기한다. ‘여자‘의 전쟁에는 여자만의 색깔과냄새, 여자만의 해석과 여자만이 느끼는 공간이 있다. 그리고 여자만의언어가 있다. 그곳엔 영웅도, 허무맹랑한 무용담도 없으며, 다만 사람들, - P17

때론 비인간적인 짓을 저지르고 때론 지극히 인간적인 사람들만이 있다. 그리고 그곳에서는 사람들만이 아니라 땅도 새도 나무도 고통을 당한다. 이 땅에서 우리와 함께 살아가는 모든 존재가 고통스러워한다. 이들은 말도 없이 더 큰 고통을 겪는다.
하지만 왜? 나는 여러 번 자신에게 물었다. 절대적인 남자들의 세계에서 당당히 자신의 자리를 차지해놓고 왜 여자들은 자신의 역사를 끝까지 지켜내지 못했을까? 자신들의 언어와 감정들을 지키지 못했을까?
여자들은 자신을 믿지 못했다. 하나의 또다른 세상이 통째로 자취를 감춰버렸다. 여자들의 전쟁은 이름도 없이 사라져버렸다……
나는 바로 이 전쟁의 역사를 쓰고자 한다. 여자들의 역사를. - P18

고결한 곳으로 향하는 길과 비열한 곳으로 향하는 길, 천사로부터 짐승에 이르는 길 회상이란 지금은사라져버린 옛 현실에 대한 열정적인, 혹은 심드렁한 서술이 아니다. 그것은 시간을 거슬러올라간, 과거의 새로운 탄생이다. 무엇보다 새로운창작물이다. 사람들은 살아온 이야기를 하며 자신의 삶을 새로 만들어내고 또 새로 써내려간다. 있는 이야기에 다른 이야기를 ‘보태고‘, 있는이야기를 뜯어고친다‘. 바로 이 순간을 조심해야 한다. 경계해야 한다.
동시에 고통은 어떠한 거짓도 녹여내고 없애버린다. 고통은 너무나도뜨겁기에! 확신컨대, 간호사나 요리사, 세탁부 같은 평범한 사람들은 자신의 행동을 꾸미지 않는다…… 더 정확히 말해 이들은 신문이나 책따위에서 이야기를 끌어오지 않는다. 타인으로부터 영향을 받은 이야기가 아니라 바로 자기 자신의 삶에서 뽑아낸 진짜 고통과 아픔을 들려준다. 많이 배운 사람들의 감정과 언어는 그다지 이상한 일도 아니지만,
시간에 의해 다듬어지기 쉽다.  - P19

이를테면, "우리는 너무 어린 나이에 전쟁터로 갔어. 얼마나 어렸으면 전쟁중에 키가 다자랐을까" 같은 말. 이미 수십 미터에 달하는 녹음테이프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말 역시 꼼꼼하게 수첩에 적는다. 녹음테이프만 벌써 네다섯 개다……
무엇이 나를 돕는 걸까? 그건 바로 우리가 함께 사는 데 익숙하다는사실이다. 더불어 사는 사람들. 우리가 사는 이 세상에는 행복도 있고눈물도 있다. 우리는 고통스러워할 줄도 고통에 대해 이야기할 줄도 안다. 고통은 남루하고 힘겨운 우리네 삶에 의미와 가치를 부여한다. 아픔, 그건 우리에게 하나의 예술이다. 우리 여자들이 바로 이 아픔과 고통의 길을 향해 용감하고 당당하게 나아갔음을 나는 밝혀야만 한다…… - P20

이제 누구를 속일 이유도 누군가에게 속아줄 이유도 없다. 죽음에 대한 사유 없이 사람이라는 존재를 이해하기란 불가능하다는 사실은 이미 분명해졌다. 죽음의 비밀은 그 어떤 것보다 우위에 있다.
전쟁은 지나치게 내밀한 체험이다. 우리네 인생살이만큼이나 그 끝을 알 수가 없다......
한 여인(비행기 조종사였다)은 나와 만나기를 거부했다. 그녀는 전화로 거절 사유를 설명했다. "옛날 일을 떠올릴 수가 없어요. 생각조차 하기 싫어요…… 3년이나 전쟁터에 있었어요. 그 3년 동안 나는 여자가아니었죠. 여자로서 내 몸은 죽어버렸어요. 생리도 끊기고 여성으로서의 욕구도 거의 없었으니까. 나는 꽤 예뻤어요…… 우리 남편이 나에게 청혼했는데…… 베를린의 국회의사당 앞에서 그이가 청혼하면서 그러더군요. 전쟁은 끝났고, 우리는 살아남았다고. 우리는 억세게......
운이 좋았다고 자기랑 결혼하자고. 나는 엉엉 울고 싶었어요.  - P22

사람이 전쟁보다 귀하다…...
사람이 전쟁보다 귀하게 여겨지는 곳. 그곳에선 역사보다 더 강력한무언가가 사람을 다스린다. 내 글의 폭을 넓혀야겠다. 전쟁에 대한 진실만이 아니라 삶과 죽음에 대한 진실을 담은 책을 써야 한다. 도스토옙스키가 던진 물음. 사람은 자신 안에 또다른 자신을 몇 명이나 가지고 있을까? 그리고 그 다른 자신을 어떻게 지켜낼까?‘ 이 물음을 이제 나스스로에게 던져야 한다. 악은 분명 매혹적이다. 그리고 선보다 솜씨가 뛰어나다. 마음을 더 잡아끈다. 내가 전쟁이라는 밑도 끝도 없는 세계에점점 더 깊이 빨려들어가는 사이, 다른 것들은 모두 빛을 잃고 흐릿해지며 시들해졌다. 거대하고 무자비한 세계다. - P23

나는 전쟁이 아니라 전쟁터의 사람들을 이야기한다. 전쟁의 역사가아니라 감정의 역사를 쓴다. 나는 사람의 마음을 살피는 역사가다. 한편으로는 구체적인 시간 속에 살고 구체적인 사건을 겪는 구체적인 사람을 연구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영원한 인간을 들여다보아야만 한다. 영원의 떨림을 사람의 내면에 항상 존재하는 그것을.
사람들은 나에게 회상은 역사도 문학도 아니라고 말한다.  - P25

다시 한번 똑같은 이야기…... 나는 우리를 둘러싼 외부의 현실만이아니라 우리 내면의 현실에도 관심이 있다. 사건 그 자체보다 사건 속감정이 더 흥미롭다. 이렇게 말해두자. 사건의 영혼이라고. 감정이야말로 나에겐 현실이다.
그렇다면 역사는? 역사는 거리에 있다. 군중 속에 나는 우리 한 사람한 사람이 역사의 조각들을 가지고 있다고 믿는다. 어떤 사람은 반 페이지만큼의 역사를, 또 어떤 사람은 두세 페이지만큼의 역사를 우리는 함께 시간의 책을 써내려간다. 저마다 자신의 진실을 소리 높여 외친다. 하지만 뉘앙스의 함정. 그래서 이 모든 진실의 외침을 명확히 들어야만한다. 이 모든 것 안에 녹아들고 이 모든 것과 하나가 되어야 한다.  - P26

하지만 동시에 자신을 잃어버려선 안 된다. 거리의 언어와 문학의 언어를 하나로 잘 버무려내야 한다. 어려운 점 한가지 더. 그건 우리가 지금 현재의 언어로 과거를 이야기한다는 사실이다. 과연 그네들은 지난날의 감정을 제대로 전할 수 있을까? - P27

여자들이 전쟁에 대해 아무리 이러니저러니 떠들어도 기본적으로여자들의 머릿속에는 ‘전쟁은 살인행위‘라는 생각이 또렷이 박혀 있다. 그리고 여자들에게 전쟁은 ‘힘겨운 일‘이자 ‘평범한 보통의 삶‘이기도하다. 그래서 그네들은 전쟁터에서도 노래를 하고, 사랑에 빠지고, 머리를 매만졌다……
여자들의 마음 깊은 곳에는 죽음에 대한 참을 수 없는 혐오와 두려움이 감춰져 있다. 하지만 여자들이 그보다 더 견딜 수 없는, 원치 않는 일은 사람을 죽이는 일이다. 여자는 생명을 주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생명을 선물하는 존재. 여자는 오랫동안 자신 안에 생명을 품고, 또 생명을낳아 기른다. 나는 여자에게는 죽는 것보다 생명을 죽이는 일이 훨씬 더가혹한 일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 P29

그들의 울음과 비명을 극화해서는 안 된다는 걸 잘 안다. 그러지않으면 그들의 울음과 비명이 아닌, 극화 자체가 더 중요해질 테니까. 삶 대신 문학이 그 자리를 차지해버릴 테니까. 이 일이 워낙 그렇다. 그렇게 적당한 온도를 유지해야 한다. 늘 아슬아슬하게 경계를 넘나든다. 사람은 전쟁터에서 가장 잘 보이고 잘 드러난다. 내면의 깊은 곳까지, 저 깊숙한 피하조직까지 모습을 드러낸다. 어쩌면 사랑할 때도 그럴지 모르겠다. 죽음의 얼굴 앞에서는 모든 사상과 이념이 그 의미를 잃는다. 누구도 미리 대비할 수 없고 이해할 수도 없는 그런 영원의 세계가 열린다 - P31

고통에 귀를 기울인다…… 고통은 지난한 삶의 증거이다. 다른 증거따윈 없다. 다른 증거 같은 건, 나는 믿지 않는다. 사람의 말이 얼마나 우리를 진실에서 멀어지게 했던가.
나는 비밀에 직접 잇닿는, 비밀에 대한 최상의 정보인 고통에 대해 생각한다. 삶의 비밀을 간직한 고통을 모든 러시아문학은 고통에 대해 말한다. 사랑보다 고통에 더 많은 페이지를 할애한다.
그리고 사람들도 내게 고통에 대해 더 많은 이야기를 한다…… - P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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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반 강간 반 결혼지참금 캠페인을 통해 인도에서 여성운동은 새로운 전환점을 맞게 되었다는 점은 강조할 만하다. 이 캠페인을 통해 페미니즘은 서구에서 수입된 이데올로기일 뿐 아니라 인도 여성이 가부장적이고 여성차별적인 남녀관계에 맞서는 투쟁을 전개하는 것에도 관련된 것이라는 점이 분명해졌다. 이 캠페인 과정에서 분명해진 또 하나의 어두운 사실은 여성에대한 폭력이 중산층 여성도 위협하고 있다는 점이다. 따라서 여성에대한 강간과 잔혹행위들은 봉건적 혹은/그리고 자본주의적 계급관계의 일부일 뿐이라는 인도 좌파의 표준적인 설명은 더 이상 견지될 수없게 되었다. 토지를 소유하고 있지 않은 노동자나 가난한 집안의 여성만이 강간 피해자인 것은 아니었다. 존경받고 교육받은 중산층 여성도 마야 티아기Maya Tyagi사건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피해자가 되었다. - P330

부유한 농가 출신의 23세 여성인 마야는 남편과 함께 자동차를타고 조카 결혼식장에 가는 길이었다. 마야는 임신 중이었다. 길 위에서 타이어가 펑크가 나자, 그들은 바그파트에 있는 경찰서 부근에 차를 세웠다. 사복차림의 한 경찰이 자동차로 와서 티아기를 성희롱하기시작했고, 그러자 티아기의 남편이 그 경찰을 때렸다. 경찰은 경찰서로가서 경찰 부대를 모두 동원해 데리고 왔고, 이들에게 불을 질렀다. 이들은 경찰들로부터 도망가고 싶었지만, 차 안에 두 사람이 있었다. 그녀의 남편은 총을 맞고 숨졌고, 다른 남성도 곧 총을 맞고 숨졌다. 이후마야는 차 밖으로 끌려나와 구타를 당하고, 장식품을 모두 강탈당했으며, 옷이 벗겨진 채로 시장을 끌려다녔다. 경찰서로 끌려간 마야는 7명의 경찰에게 강간을 당하고 구속되었다. 그들은 그녀에게 자신들의 오줌을 마시게 했다. - P331

경찰은 보고서에서 이는 강간 사건이 아니며, 사망한 남자들은도둑이고, 마야는 두 남자 중 한 명의 ‘정부‘라고 했다(Economic andPolitical Weekly, 26 July 1980; Manushi, August 1980).
다른 어떤 사건보다 이 사건은 많은 대중적 저항과 의회의 항의와여러 여성 조직의 집회, 그리고 엄벌에 대한 요구를 낳았다. 그러나 정부는 경찰에 대해 엄격한 태도를 취하려고 하지 않았다. 이것이 자신의 정통성을 위협하고 ‘법과 질서‘를 지킨다고 여기는 집단의 세력이약해질 것을 우려했다. 가정주부 장관이 마야를 만났고, 진상조사위원회에게 마야가 수상인 인디라 간디를 만날 수 있도록 해주라고 조언했다. 다음은 진상조사위원회가 서술한 내용이다.

한 여성이 야만적인 대우를 받은 사건에 대해 정의를 실현시킬 수 있 - P331

기 위해서라도 그녀(인디라 간디)의 인정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고,
우리는 수상과 일정을 약속하고 그녀와 함께 갔다. 수상은 우리의 말을 듣고 나서 영어로 다음과 같이 간단히 말했다. ‘글쎄요. 거기에는견해 차이가 있는 것 같네요. 수상은 마야에게 직접 말하겠다고 했다.
우리는 나중에 그녀가 마야에게 딱 두 개의 질문만 했다는 것을 전해들었다. 첫째는, 당시 그녀가 금붙이를 얼마나 지니고 있었으며, 그날했던 장신구 목록은 있는가 하는 것이었다. 둘째는, 누구의 조언 아래 델리까지 오게 되었냐는 것이었다(Economic and Political Weekly,
26 July 1980). - P332

인도 정부의 이런 대응을 길게 인용한 것은, 이런 무시무시한 사건도 여성 수상을 비롯한 정치가에게는 정치적 필요를 위한 것으로 밖에는 여겨지지 않는다는 점을 여실히 보여주기 때문이다. 야당도 이사건을 인디라 간디의 정부가 인도에서 여성을 ‘보호‘하고 ‘존중할 수없다는 점을 보여주는 것에 이용했다.
이런 사건이 알려지면서, 언론에서 여성에 대한 강간과 다른 잔혹행위 기사가 더욱 더 넘쳐나게 되었다. 경찰관에 의한 집단 강간이 늘어나기는 했지만, 어쨌든 경찰관만 여성을 강간한 것이 아니라 일반남성 사이에서도 강간범이 나왔다. 그중에는 신부, 승려, 우편배달부,
시집형제, 10대 소년, 여성의 고용자, 노동자, 지주 등이 있었다. 집단강간은 전국적으로 유행중인 것처럼 보였다. 게다가 강간사건은 힌두, 무슬림, 기독교 등 모든 공동체에서 발생했다. ‘다른‘ 공동체의 여성만이아니라 같은 공동체에 있는 여성도 강간을 했다. 앞서 비의 경우도 무슬림 경찰들에 의해 강간을 당했다.  - P332

여성운동만이 아니라 언론, 정치인, 그리고 몇몇 학자도 ‘여성에 대한 잔혹행위‘가 증가하는 것에 대해 그 이유를 묻기 시작했다. 인도의 인구학자는 인도에서 여성 인구가 감소하고 있는 것을 우려한다. 그러나 이를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는 알지 못한다. 인도가 간디가 꿈꾸었던 평화로운 사회와는 거리가 멀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은교육받은 중산층에게는 일종의 쇼크이다. 결혼지참금 살해와 강간을막는 운동을 전개하면서, 여성조직과 언론, 그리고 마침내 몇몇 학자도 인도에서 여성이 왜 점점 더 남성 폭력의 희생자가 되고 있는지, 왜여성은 점점 더 원치 않는 존재가 되어가고 있는지를 숙고하게 되었다.
고전적인 좌파적 설명에 따르면 자본주의 국가들에서 여성은 남성과경제적으로 평등하지 않고, 따라서 남성 폭력에 굴복하게 된다는 것이다. 혹은 법들이 통과되지만 제대로 집행되지는 않고 있으며, 따라서 정부가 법과 질서가 무너지고 있는 상황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는주장이다(Gita Mukherjee, 1980).  - P334

여성을 ‘비생산적이고 의존적인 가정주부로 보는 생각이 자리하고 있다. 지참금 살해, 여아낙태, 강간, 어린 여아에 대한 방치 등 여성에 대한 모든 폭력이 결국은 여성이 경제적으로 ‘비생산적인‘ 존재이기 때문이 여성은 부담이자 짐이기 때문이라는 이론적 전제로 귀결된다. 이 이론에 따르면 반여성적 경향은 엥겔스의 유명한 말처럼 여성이 사회적 생산으로 다시 진입하게 되면, 즉 여성이 ‘돈 버는 취업을 하게 되면 치유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이 논리는 인도만이 아니라 세계 어디나 존재하는 현실을 충분히 설명하지 못한다. 최소한 여성의 40%가 집 밖에서 사회적으로 생산적인 노동에 종사하고 있는 서구에서 여성에 대한 폭력이 증가하고 있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아내 구타와 여성에 대한 폭력은 모든 계급에서 나타나고 있으며, 취업을 해서 돈을 버는 여성뿐아니라 ‘한낱‘ 가정주부에게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여성에 대한 폭력은 소련에도(Women in Russia, Almanac, 1981 참조), 중국에도(Croll,1983), 짐바브웨(성매매가 금지된 곳이다), 유고슬라비아 등과 같은 사회주의 국가들에도 있다.
- P339

‘적자생존‘ 즉 강한 남성이 살아남는다는 것은 정복자, 승리자가 항상 옳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이 바로 강간 법과 강간 신화의 뒤에 자리한 이데올로기이다. 이런 종류의 과학을 수용하는 이들은 파시즘이나 제국주의도 수용할 것이라는 점을 우리가 알지 못하겠는가?
심리분석학파의 창시자이자 잠재의식의 발견자인 프로이트 SigmundFreud조차도 이런 신화와 진화주의자에 의해 정당화된 ‘과학적‘ 주장의 영향을 받았다. 그는 문화가 이런 폭력적인 남성의 성적 욕구를 억압하고 승화시킨 것에 기초한 것이라고 믿기도 했다. 그의 오이디푸스콤플렉스 이론은 기본적으로 어머니라는 하나의 성적 대상을 놓고아버지들과 아들들이 벌이는 남성의 성 경쟁 이론이다. 또한 그는 남성 섹슈얼리티가 능동적이고 공격적이며, 신경증적 형태로, 가끔은 가학적이라는 이론을 수용한다. 그리고 여성 섹슈얼리티는 수동적이고 심디어 피학적이라고 여긴다. - P350

프로이트에 따르면 여성은 자신의 ‘타고난‘ 여성적 역할을 받아들이는 것을 통해서만, 즉 그녀의 ‘미숙한 음핵(클리토리스) 섹슈얼리티를 포기하고 남성의 성욕을 만족시켜주는 데필수적인 질의 섹슈얼리티로 옮겨가는 것을 통해서만 완전히 성숙한섹슈얼리티에 이를 수 있다. 프로이트와 같은 권위 있는 학자가 질의 오르가즘이 여성 섹슈얼리티의 ‘성숙한 형태라는 이론을 강화시켰다고 하는 것은 놀랍다. 프로이트는 질에는 신경말단이 없기 때문에 오르가즘을 생산하지 않는다는 것을 분명히 알고 있었음에도 그런 이론을 주장했다. 그는 음핵이 여성의 적극적인 성기이며, 따라서 여성은질을 통한 삽입 없이도 오르가즘을 생산할 수 있음을 알았다. 그러나남성 섹슈얼리티에 몰두했던 프로이트는 여성을 불완전하거나 거세당한 남성이고, 음핵은 작은 남근이며, 사회에서 종속적인 역할을 바꾸려는 여성의 시도는 남근선망의 결과라고 규정했다. - P351

학자들은 이런 이론들을 자신들의 이론적 틀에 적용하기 전에 아주 비판적으로 검토해야 할 것이다. 이 이론들은 남성과 여성 섹슈얼리티가 생물학적으로만 결정된다는 함의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이이론들은 남성과 여성 몸의 일정한 부분이 왜 역사적으로 특정한 시기에 주목을 받는지, 다른 부분은 왜 주목을 받지 않는지를 설명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음핵을 독립적인 여성 성기로 재발견하게 된 것은 서구의 페미니스트운동 때문이었다. 아프리카의 여러 지역에서는9~12세 사이의 소녀가 할례를 통해 음핵을 제거 당한다. 그러나 유럽을 비롯한 다른 세계의 여성도, 그들이 자신의 몸에 대해, 오르가즘이무엇인지에 대해 알지 못하도록, 심리적으로는 할례를 당해왔다.
여성에 대해 말하지 않고는 남성에 대해서도 말할 수 없다.  - P351

위에서 비판한 강간과 남성의 섹슈얼리티에 대한 이데올로기는 여성의 자기개념 속에 보완적 내용들을 갖고 있다. 이는 전 세계적 현상이다.
공격자들은 종속된 이들이 상황을 자연이 부여한 것으로, 혹은같은 의미지만, 신이 부여한 것으로 받아들이도록 만들지 않으면, 자신이 정복하고 종속시킨 이들에 대한 통제를 영구적으로 유지할 수가없다. 남성에 대한 가부장적 이데올로기의 창안자들은 여성에 대해서도 그에 어울리는 이데올로기를 창안해 왔다. 이는 영원한 희생자의이데올로기, 자기희생의 이데올로기 (근대 서구적 버전으로는 여성 피학성의 이데올로기)이다. 힌두교와 민간 신앙은 어머니와 빠띠브라따Pativata  역할을 해내는 자기희생적인 여성을 이상화한다. 여성은 고유의 정체성을 갖지 않으며, 다른 이들에게, 주로 남편과 아들에게 봉사하기 위해 태어났다. 여성은 자신의 생명, 자신의 몸, 자신의 섹슈얼리티에 대해 자율성을 갖고 있지 않다. 그녀는 수단이며 대상이지, 주체가 아니다. - P352

그러나 여성은 어떤 부르주아적 의미에서도 자유로운 역사적 주체로 규정된 적이 없다. 생산수단을 소유한 계급의 여성이나 프롤레타리아 계급의 여성도 스스로를 소유한 존재가 아니다. 그들 자신, 자신의총체적인 인격, 자신의 노동력, 자신의 감정, 자신의 자녀, 자신의 몸, 자신의 섹슈얼리티는 자신의 것이 아니라 남편의 것이다. 그들은 재산이었다. 따라서 자본주의의 공식 논리에 따라 그들은 재산의 소유자가될 수 없었다. 남성 프롤레타리아는 자신의 노동력을 소유하고 있다는 의미에서 재산소유자의 범주에 들지만, 여성은 재산소유자의 범주에 공식적으로 포함되지 않기 때문에, 이들은 ‘자유‘ 시민 혹은 역사적주체도 될 수 없다. 이는 부르주아 혁명의 시민적 자유가 여성에게는아무 의미가 없음을 의미한다. 이것이 여성이 그렇게 늦게 투표권을부여받게 된 깊은 이유이며, 결혼 관계 내에서의 강간이 범죄로 여겨지지 않는 이유라고 생각한다. - P361

여성은 재산 소유자가 아니라 스스로가 재산인 존재이다. 그렇기때문에, 부르주아 논리를 따르면, 여성은 자유로운 주체가 될 수 없다. 따라서, 여성은 계약관계를 맺는 것도 가능하지 않다. 이에 비해, 최소한 공식적으로는 자신의 노동력을 소유하고 있어 원하는 사람에게는팔 수 있는 ‘자유‘ 프롤레타리아는 계약관계를 형성할 수 있다. 자본가와 프롤레타리아 사이의 노동계약은 두 자유로운 주체가 등가교환의 관계로 들어간다는전제에 기초해 있다. - P361

여성을 남성과 자본축적과정 아래 폭력적으로 종속시키는 일이대대적으로 수행된 것은 유럽의 마녀 사냥이 그 시작이었다. 이 일을기반으로 해서 이른바 자본주의적 생산관계가 수립되었다. 말하자면노동력을 소유한 이들과 생산수단을 소유한 이들 사이의 계약 관계가 수립된 것이다. 큰 의미에서 자유롭지 않은, 강제로 종속된 여성이나 식민지 노동력의 이런 기반이 없었다면, 자유 프롤레타리아의 강제적이지 않은 계약 노동관계의 수립은 가능하지 않았을 것이다. 여성과식민지인은 재산과 자연으로 규정되었다. 이들은 자유로운 주체로 간주되지 않았기 때문에 계약의 세계로 진입하지 못했다. 둘 다 무력과직접적인 폭력을 통해 종속되었다.
민중이 여전히 생산수단을 이용할 권리를 어느 정도 갖고 있을 경우, 경제적 차원에서 이런 폭력은 항상 따르게 마련이다. 예를 들어, 농민은 자발적으로는 외부 시장을 위한 상품 생산을 시작하지 않는다.
그들은 우선 자신들이 소비하지 않는 물품을 생산하라는 압력을 받게 된다. 그렇지 않으면, 자신들의 밭에서 쫓겨나게 되거나, 부족 차원에서 강제로 영토에서 쫓겨나 전략 마을들에 재정착하게 된다. - P362

인도 헌법에서 시민권이 잘 보장되고 있다고 해서 상당한 정도의 폭력과 강압에 기초한실제의 생산 관계가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남성이 사유재산을 소유한 ‘자유로운 주체로 구성된 형제단에 들어가고자 한다면, 계속되는자본의 원시적 축적‘에 내재한 요소인 여성에 대한 폭력이 가장 빠르고 가장 ‘생산적인 방법이 된다는 것을 우리는 살펴보았다.
여성에 대한 폭력과 강압적인 노동관계를 통해 여성 노동을 갈취하는 것은, 따라서, 자본주의의 본질적인 부분인 셈이다. 폭력은 자본주의적 축적 과정에 필수적인 것이지, 주변적인 것이 아니다. 자본주의는 그 축적 모델을 유지하기 위해 가부장적 남녀관계를 이용하고, 강화시키고, 심지어 발명해내야 했다. 세계 모든 여성이 ‘자유로운‘ 임금노동자, ‘자유로운 주체가 된다면, 이윤을 착복하는 것이 상당히 어렵게 될 것이다. 이것이 제3세계에서부터 제1세계까지 가정주부, 노동자, 농민, 창녀 등 모든 여성이 공유하는 점이다. - P363

제3세계여성은, 민족해방투쟁 혹은 그런 투쟁 이후의 국가건설과정에 관여한 경우, 서구페미니스트의 이런 도덕적 딜레마를 사치스럽다고 생각하고, 자신들은 그런 고민할 시간이 없다고 여길 수도 있다. 그러나 그들 역시 일부러 현실에 눈감으려 하지 않는다면, 결국그 문제를 피할 수가 없다. 지난 해 경찰의 반성매매 검거로 잡힌 짐바브웨 여성처럼, 이것이 그녀의 형제들이 죽어가며 만들어낸 국가인가하는 것을 물어야 하는 순간이 올 것이다(Sunday Mail, Harare, 27November 1983) - P369

이 여성이 구속되었을 때 그녀는 다음과 같이 썼다. 나는 치비에서 곡물을 키우며 아버지의 가축을 돌보고 있다. 나는 15세이며, 경찰이든 경찰이 아니든, 나에게 명령할 남성이 필요하지 않다. 이것이 나의 어린 두 남동생이 숲속에서 사망하고, 오빠가 엉덩이 아래 오른쪽 다리를 모두 잃어가며 성취한 독립이고 자유인가?
왜 성매매가 있냐고 질문하며 시간을 허비하는 위원회는 필요없다. 우리 모두 이유를 안다. 교육받지 못한 소녀에게는 일자리가 없다. 그러나 가뭄에 가족을 먹이기 위해서는 식량을 살 돈이 필요하다.
공무원에게 더 지불하는 것은 국가의 시간과 돈을 낭비하는 것이다. 이 소녀들에게 일자리를 주라. 낯선 이에게 몸을 팔고 싶어 하는 여성은 없다(Patricai A. C. Chamisa,
Sunday Mail, Harare, 27 November 1983). - P369

맑스-레닌주의자는 남녀갈등을 둘러싸고 여성이 독자적으로 조직하고 모이는 것을억압받는 이들의 단결을 해치는 것으로, 통일전선을 와해시키는 것으로, 따라서 태생적으로 반혁명적인 것으로 여겼다. 그들의 혁명 개념속에서, ‘여성문제‘는 부차적 모순이며, 제국주의와 계급관계의 주요모순이 해결된 이후 이데올로기적으로 다룰 문제라고 여겼다.
이런 이유 때문에, 중국의 딩링 Ding Ling이나 소련의 콜론타이Alexander Kollontai처럼 가부장제에 대한 투쟁을 다른 ‘일반적 투쟁 속에복속시키려고 하지 않았던 페미니스트들이 고립되고 ‘망각‘되었다. 그러나 중국에서 반여성적 경향의 경험이나 베트남 여성연합이 토로한결코 사라지지 않는 남성의 봉건적 태도에 대한 불만은 인민의 의식이 문화혁명이나 이데올로기적 투쟁만으로는 변화할 수 없다는 것을보여주는 증거이다. 이런 문화혁명은 다른 어느 곳보다 강하게 중국에서 시도되었던 바 있다. - P408

이 과정은 강조점이 민족에서 국가로 이동하는 것에도 반영된다.
해방투쟁 동안 전체 민족은 심리적 역사적 동일성으로 표현되던 것에비해, 해방 이후 국가와 그 기관들은 공공선을 대표한다고 주장한다.
근대경제를 구축하는 것과 강한국가를 세우는 것이 대개 같은 것이된다. 앞서 언급했던 혁명 포스터에서처럼, 민족에 대한 여성적 이미지가, 이 단계에서는 건국의 아버지 이미지로 대치된다. 몇 명만 꼽아 보면 맑스, 엥겔스, 레닌, 스탈리, 마오, 호치민, 카스트로, 무가베 등이다.
일반적으로, 이런 사회주의적 가부장의 갤러리 속에 여성은 없다. 이들은 정말 사회주의 국민이 아니라, 국가의 아버지들이다. 다른 가부장제와 마찬가지로 국가형성의 전체 과정에서 여성의 역할은 사회주의 국가에서 건국의 아버지들을 이상화하는 과정에서 은폐되었다.  - P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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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적 토지소유의 확대와 부계거주의 결혼, 그리고 가족 유형의 지속과 국가의 한 자녀 정책 사이의 모순에서 나온 불가피한 결과이다. 노년에 자녀에게 의존해야 하는 대다수 농민은 아들을 원한다. 아들이가계를 잇고, 계속 마을에 남기 때문이다. 딸은 다른 마을에 사는 다른 가족과 결혼하는데, 이는 인도도 마찬가지이다. 따라서 딸을 원하지 않게 된다. 이런 상황은 한 자녀 규범을 따르는 이들에게 정부가 보상을 하는 정책에 의해 더욱 강화되었다. 농민이라면, 사적 소유의 토지를 더 갖기를, 도시인이라면 더 많은 방, 더 많은 학교와 보건 시설,
더 근대적인 시설을 원하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토지를 많이 갖게 되면 일할 노동력은 적어진다. 정부의 강압적 정책과 결합된 이런 모순, 정당의 완전한 통제 아래에 있는장려책과 벌칙의 상호작용, 더욱 강화되는 신가부장적 태도와 관계등이 모든 면에서 여성에게 압박을 가하고 있고, 이는 여아낙태가 무섭게 증가하는 결과로 나타난다. - P272

‘그들의 여성과 ‘우리‘ 여성에 대해 이렇게 모순되게 가치를 적용하는 배경에 자리한 논리는 우리가 식민지 초기 단계에서 보았던 것과동일하다. 자본은 식민지에서 여성을 가장 값싼 노동력으로 사용해야하기 때문에, 식민지 여성은 ‘자유노동자‘로 규정될 수가 없다. 그러나이렇게 생산된 상품을 시장에 판매하기 위해서는 소비가 전문인 중심지 여성이 필요하다. 소비 혹은 상품의 구매 없이는 자본이 실현될 수없기 때문이다! 산업화된 국가에서는 여성이 소비자로서 자신의 의무를 충실히 수행하도록 하는 것이 자본의 주된 전략의 하나가 된다. 소비노동‘(Bridges and Weinbaum, 1978)은 따라서 부유한 국가에서 크게 커지고 있다. 또한 ‘소비노동‘은 임금노동과 비임금노동 여성의 자유 시간을 더욱 더 많이 차지하고 있다.  - P273

컴퓨터와 로봇이인간 노동력을 대규모로 대신하면서, 이 소비노동은 앞으로 더욱 확대될 것이다. 몇 년 전만해도, 가정주부는 상품을 고르고, 가격을 비교하고 계산대에서 돈을 지불하고, 상품을 집으로 옮기고, 모두 풀어보고, 보관하고, 포장재를 처분하는 일을 했다. 그러나 이제 여성은 카운터에서 돈을 지불할 수 있기 전에 상품을 직접 바구니에 넣고, 무게를 달고, 컴퓨터에 가격을 입력하고, 가격표를 그녀의 상품에 부착해야 한다. 계산대에서 소비자에게 돈을 받는 일을 제외한 나머지 필수적인 작업을소비자가 직접 한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신용카드로만 구매하거나 가정 컴퓨터를 통해서 구매를 할 경우에는 이 일마저 없어질 수 있다. - P274

가정주부는 저개발국가에서도 과개발 국가에서도, ‘자유 프롤레타리아‘가 아니라, 이런 과도기에 있는 자본에게 적합한 노동력이다(v.
Werlhof, 1983). 서구의 소비자 가정주부가 자본의 실현 비용을 낮추기 위해 무보수 노동을 더 많이 해야 한다면, 식민지의 생산자 가정주부는 생산비를 낮추기 위해 무보수 노동을 더 많이 해야 한다. 두 범주의 여성은 ‘근대‘ 여성, 즉 ‘좋은‘ 여성 이데올로기의 조종을 더욱 크게 받을 뿐 아니라, 제3세계의 출산통제에서 이미 잘 볼 수 있었던 것처럼, 직접적인 강제수단의 지배도 더욱 크게 받고 있다. - P275

자본을 위한 여성의 생산노동을 잘 보이지 않게 만드는 새로운 전략은 노동유연성의 슬로건 아래 더욱 확대되고 있다. 얼마 전 인도여성이 경험한 것처럼, 여성은 이제 공식부문에서 밀려날 뿐 아니라, 비공식적이고 조직화되지 않고, 보호받지 못하는 생산관계를 통해 자본주의 발전 과정과 다시 통합되고 있다. 그 형식은 파트타임 일자리에서부터 계약제 노동, 재택근무, 무보수의 이웃 노동까지 다양하다. 제3세계 노동을 분해했던 이중모델이 산업화된 국가에도 점점 더 많이재도입되고 있다. 따라서 우리는, 오늘날 제3세계 여성을 자본주의적발전에 통합시키고 있는 방식은 자본주의 중심부에서 노동을 재조직하는 모델이 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 P275

두 여성징단 사이의 실재적이고 구조적인 유사성은 이데올로기적으로 은폐되고 있다.
서구 소비자가정주부에게는 더 많이 소비하고 더 많은 백인을 낳으라고 하고, 식민지 생산자가정주부‘에게는 더 값싼 상품을 더 많이생산하고 더 많은 흑인을 낳는 것은 멈추라고 한다. 오늘날 서구에서부는 인종주의의 새로운 바람은 이런 모순에, 그리고 부유한 국가의주변인이 결국은 모두 제3세계 국가의 여성처럼 소모되고 말 것이라는 두려움에 깊이 뿌리를 두고 있다. - P276

페미니스트가 자본축적을 위한 가내노동의 기능을 발견하고 연구하기 시작하면서, 우리 중 일부는 일찍이 1978년에 서구 가정주부의생산 관계와 아시아, 아프리카, 라틴아메리카의 가난한 농민 생산자의생산관계가 구조적으로 유사하다는 점을 지적했다(v. Werlhof, 1978;Bennholdt-Thomsen, 1981; Mies, 1980).
양쪽의 생산관계는 보통은 제대로 된 자본주의의 ‘외곽에 있다고여겨진다. 이를 정통 맑스주의자들은 ‘전자본주의‘, ‘반*봉건제‘, ‘소부르주아‘라고 규정하기도 했다. 그러나 우리는 이들을 자급 생산자라고 부른다. 이들을 자세히 분석해 보면, 이들은 자본의 확대재생산을 위한 기초, 보이지도 않고 임금도 받지 않는 기초를 구성하고 있다. - P277

농업생산 과정의 일부는, 가난한 지역에서도, 환금작물과 시장 생산에 맞추어져 있고, 일정한 정도의 근대화가 진행되었기 때문에, 전통적 쿨리-계급의 여성은 뒤처지고 궁핍해졌다. 전동 펌프를 비롯한여러 기계가 도입되면서 쿨리-계급의 남성은 일자리를 잃었다. 많은이들이 마을을 떠났고, 남은 이들은 그저 빈둥거렸다. 여성이 나서서가족이 살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야 하는 경우가 많았다. 게다가 마을의 전통적인 장인인 카스트도 공산품이 도입되면서 직업을 잃어, 그들의 여성 또한 농업노동자가 되어 얼마 안 되는 일자리를 놓고 전통적인 쿨리 여성과 경쟁을 하게 되었고, 임금은 더욱 낮아졌다. - P280

토지없고 가난한 인도 여성의 노동과 우유가 빨려 나가가는 이런과정, 오웰식의 신어 전통에서 흥건하게 되는 것은 도시이고, 진액이빨려나가는 것은 촌락과 여성이다) 우유홍수작전‘이라고 불리는 과정에 대한 분석은 인도에서 자본주의 우유 생산에 연루되어 있는 가난한 여성에 대한 극도의 착취와 유럽 공공시장에서 우유의 과대생산이 어떻게 연관되어 있는지를 짧게라도 살펴보아야 온전한 분석이 될수 있을 것이다. 수백 가지의 치즈, 요구르트, 우유제품, 크림 등을 선택할 수 있는 영국, 네덜란드, 독일, 혹은 프랑스 가정주부가 아바마와 같은 여성과 어떤 관계가 있는가? 일반적인 서구 소비자가정주부는 ‘우유홍수작전‘ 이전에는 인도의 마을에서 생산된 우유가 그 마을에서도 소비되었다는 것을 거의 알지 못했다. 이제 인도산 우유가 도시로 수출된다. 서구의 소비자 가정주부는 아바마에 대한 착취가 유럽 공공시장에서 바다처럼 널려 있는 우유와 산처럼 쌓여 있는 버터와 관련이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할 것이다. 이것이 ‘우유홍수작전‘이 시작된 이유이다. - P285

전자산업의 아시아 여성은 미국의 실리콘벨리에서 동남아시아까지 이어져있는 세계적 조립라인에 위치해 있다. 이 조립라인 위에서 아시아 여성은 가장 단조롭고, 시간이 많이 걸리고, 스트레스가 쌓이고, 건강에 해로운 일을 한다. 이들은 현미경을 통해 작은 칩을 갖고 있는머리카락처럼 가는 와이어들을 들여다보면서 일일이 용접하여 하나의 통합된 회로로 만들어야 한다. 이 전자부품들은 새로운 컴퓨터와자동장치에게 지시를 내리는 실제 ‘두뇌‘들이다. 미국과 일본의 기업은심리적 조정 방식과 직접적인 강제 방식을 결합하여 노동력을 교묘하게 통제하는 시스템을 만들어냈다. 이 공장들에서 노동조합 활동이금지된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말레이시아에서, 여성이 노동조합에가입한 것이 알려지면, 해고된다. - P293

 ‘비물질 상품‘ 생산의 새로운 트렌드, 우리 시장은 물질 상품으로 이미 넘쳐나고있기 때문에 생겨난 새로운 트렌드를 고려해보면, 제3세계 여성의 몸을 산업화된 국가로 수출하는 무역은 계속 증가할 것이라고 전망할수 있다. 이와 함께 이 시장에서 성차별적이고 인종주의적이고 가학적인 경향도 더 커질 것이다. 인종주의는 초기 식민주의시대부터 지금까지 언제나 이 산업의 부분으로 한 몫을 해왔다. ‘흑인‘ 혹은 ‘황인‘ 여성이 점점 더 선호되었던 것은 이국적인 성적 매력 때문만은 아니었다.
이들은 사디즘과 폭력의 대상으로 쉽게 바꿀 수 있기 때문이었다. 비디오 산업은 여성에 대한 폭력으로 번성하는데, 그 여성 중 다수는 유색인 여성이다. 여성에 대한 고문과 폭력에 대한 금기는 유색여성과 관련해서 제일 먼저 무너지기 시작했다. 이제 백인 여성도 백인 남성의 성적 학대에 대한 누를 수 없는 욕망을 만족시켜주기 위해 점점 더 자유를 포기하고 있다. - P303

여성의 관점에서, 여성해방의 관점에서 국제노동분업을 바라보려며 항상 동전의 양면을 보는 것이 꼭 필요하다. 지구 양쪽의 여성은세계 시장에 의해, 그리고 국내자본과 국제자본에 의해, 구분되어 있으면서 또 실제로는 연결되어 있다. 이 구분에서는 여성을 한 편에서는 제3세계의 보이지 않는 생산자로, 다른 한 편에서는 개별화되어있고 잘 보이는, 그러나 의존적인 소비자(가정주부)로 교묘하게 조작하는 것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 전체적인 전략은 여성에 대한 가부장적이고 성차별적이고 인종주의적인 이데올로기, 즉 여성을 기본적으로가정주부이자 성적인 대상으로 규정하는 것에 기초해 있다. 여성을 계급과 식민주의에 따라 구조적으로 구분하는 것과 결합된 이런 이데올로기적 조작이 없다면, 이런 전략은 자본에 그리 이득이 되지 않을 것이다. 또한 여성이 산업화된 국가에서 시장의 확대를 위해 점점 더 성 - P305

적 대상으로 이용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렇지 않았다면 이 시장들은 정체를 면치 못했을 것이다. 이런 전략에서 남성은 ‘자본의 에이전트‘로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Mies, 1982). 그러나 이런 역할은 국제노동분업에서 지역과 인종뿐 아니라 계급에 따라서도 구분되어야 한다. 백인 남성 유력자 혹은 자본가만이 아니라 백인 남성 약자 혹은 노동자도 자신의 여성과 제3세계의 여성을 착취하는 것을 통해 이득을 본다.
황인 혹은 흑인 남성 유력자만이 아니라 흑인 혹은 황인 남성 약자도
‘자신의‘ 여성에 대한 착취를 통해 이득을 본다. 백인여성 유력자와 약자 또한 식민지의 브라운 흑인 남성과 여성 약자에 대한 착취를 통해이득을 공유한다. 발전의 상징인 진짜 서구 가정주부의 지위를 갈망하는, 그리고 제3세계 자본주의의 추동자로 보이는 식민지의 브라운혹은 흑인 여성 유력자 또한 마찬가지이다. - P306

그러나 남성과 대조적으로, 여성은, 백인이든 흑인이든 간에, 점점 더 자신의 인간적 존엄과 삶을 지키기보다는 창녀가 되거나 가정주부가 되는 ‘영광‘을 택하도록 만들어지고 있다. 나는, 제3세계의 가난한 여성(영세농이나 주변화된 도시여성)을 밑바닥에 놓은 신국제질서라고 불리는 이 통합된 착취체제를 유지하는 것이 부유한 국가의 여성에게 객관적으로 전혀 이득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이 제3세계의 가난한 여성은 산업화된 국가의 여성에게도 ‘미래의 이미지‘(
Werlhof, 1983)이기 때문이다. 이런 미래는 제3세계 자매에게 적용되었던 것과 같은 방식과 방법으로, 즉 새로운 비공식 부문에서 ‘보이지 않게 노동하고, 생계를 위해 다양한 방식으로 몸을 팔면서 발전 속으로통합된 미국과 유럽의 많은 여성 사이에서도 이미 시작되었다. - P306

여성이 ‘개발로 통합되는‘ 혹은 전지구적 차원의 자본축적 과정아래 종속되는 다양한 생산관계들 사이의 차이가 무엇이건 간에, 한가지는 분명하다. 이런 통합은 그들이 ‘자유‘ 임금노동자 혹은 프롤레타리아가 되었음을 의미하지 않는다. 개발기구들이 남발하는 미사여구처럼, ‘자유‘ 기업가가 된 것도 아니다. ‘진짜‘ 가정주부도 아니다. 앞에서 묘사한 모든 생산관계, 노동관계의 공통된 특징은 여성이 착취 혹은 극한의 착취를 당하는 과정에서 구조적인 혹은 직접적인 폭력과 강제가사용된다는 점이다.
비정기적으로 농업노동을 하는 인도 여성은 자본주의적 농장 때문에 자신에게 일과 소득을 보장해주었던 전통적인 마을의 규범이 깨져나가는 것을 목도했다. 여성이 법적인 최저임금을 요구할 경우 그들은 더욱 더 직접적인 폭력에 노출되었다. - P308

토지개혁을 통해 합법적으로 할당받은 토지를 개간하려하면 약자였던 농민 여성은 강간을 당하고, 그들의 오두막이 불탔다. 그녀의 남편은 구타를 당했다. 남성은 ‘자유로운‘ 프롤레타리아가 되기보다는 점점 더 부채가 많은 노동자가 되어갔다. 앞에서 본 것처럼, 인도의 축산업에서 가난한 농촌 여성은 우유 생산과 관련한 모든 노동을 억지로해야 했다. 그러나 축산업으로 생긴 소득에는 가까이 가지도 못했다.
우유에서 나온 소득의 50%는 융자해 준 은행으로 자동 입금되었다.
이들 여성의 노동력은 이미 은행과 국가 소유의 축산업개발회사에게담보로 잡혀 있는 셈이어서, 이 여성들은 자신이 번 돈을 제대로 보지도 못한다. 우유 소득의 나머지는 남편이 전유한다. 자본을 축적하는기구들이 거의 비용을 들이지 않고 편하게 여성 노동력을 부릴 수 있게 된 것이다. - P309

제3세계와 제1세계 성산업에서 일하는 여성에 대한 폭력과 잔혹행위에 대해서는 특별히 강조할 필요도 없다. 이들은 이런 생산관계가만연한 환경을 구성하고 있다. 이는 가장 잔인하고 비인간적인 형태의 노예노동이다.
폭력과 억압에 기초한 이런 모든 생산관계에서 우리는 남성(아버지, 형제, 남편, 포주, 아들), 가부장적 가족, 국가, 자본가 기업 사이의상호작용을 볼 수 있다.
모든 여성노동관계에 만연한 이런 사례와 폭력과 억압의 현실을바라보면 이것이 이렇게 필수적인 것인지, 혹은 이런 폭력을 다른, 좀더 우연적 원인을 통해 설명해야 하는 것인지 의문을 품게 된다. 이 질 - P310

에 달하기에 앞서 나는 최근 제3세계의 패스트에 의해 알려지게 된 여성에 대한 몇 가지 폭력의 사례를 소개하고자 한다. 주로 인도의 상황에 대해 집중하려고 한다. 인도에서는 1970년대 말 이래 베이버스트 단체가 여성에 대한 공공연하고 특별한 폭력에 대해 반대하는운동을 시작했다. 특히 결혼지참금에 대한 과도한 요구 지불금을 충분히 가져오지 않은 신부에 대한 살해, 성별감식을 통한 내내 여아 살해 등과 증가하는 강간, 성폭력, 성적 잔혹행위 등에 반대하는 운동이시작되었다. - P311

그러나 1978-1980년 사이 상황은 변화했다. 봄베이, 델리, 하이네라바드 등 대도시에서 신여성운동의 영향을 받은 작은 여성단체들이 결혼지참금을 충분히 가지오지 않은 신부에 대한 살해와 강간에반대하는 캠페인을 시작했다. 비슷한 시기, 여성에 대한 폭력이 멀리있는 시골에서만이 아니라 대도시에서도 크게 자리하고 있다는 점이분명하게 드러났다. 게다가, 교육받은 중산층 여성 역시 갈수록 커지는 지참금에 대한 요구 때문에 강간, 성희롱, 특히 성적 학대와 그런과정에서 결국 발생하게 되는 살해의 잠재적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것을 이제는 깨달아야 했다. - P312

여아낙태는 일찍이 1974년부터 인도인구정책기관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파이 박사가 옹호하기 시작했다(Balasubrahmanyan, 1982:1725). 그러나 인도 ‘인구문제를 해결하는 가장 좋은 방법으로 여아낙태를 주장한 것이 남성 의사나 과학자만은 아니다. 자본주의의 수요와 공급의 법칙을 사회에서 여성의 가치에 적용하는 쿠마르DharmaKumar와 같은 여성도 있다. 경제학자 바르단은 다른 많은 사람과 마찬가지로, 인도에서 여성에게 적대적이게 된 것은 농업에서 여성의 경제참여가 변화하면서 나타난 직접적인 결과라고 주장했는데(Bardhan,1983), 이런 주장에 대해 쿠마르는 이렇게 썼다. - P323

그러나 왜 이런 경제 논리를 더 철저하게 적용하지 않는가? 임신계획에서 성감별은 여성의 공급을 줄일 것이다. 그들은 좀 더 가치 있는존재로 여겨질 것이고, 더 많은 관심을 받게 될 것이며, 더 오래 살게될 것이다. 우리는 여아의 수요와 공급의 균형을 맞추고, 인도 전역에서 그 값을 평준화시킬 수 있는 좋은 수단을 갖고 있다. 카스트, 지역,
종교 등 다양한 장벽이 여성의 이동을 가로막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시간이 지나면 북부지역에서 결혼지참금이 하락할 것이라고 기대할 수 있다(Kumar, 1983:63). - P323

그녀는 양수천자와 여아낙태가 여아 신생아에 대한 살해보다 훨씬 인도적인 방법이라고 옹호했다. ‘여아 신생아를 살해하거나 여아를 학대하는 것보다는 여아낙태가 나은 것 아닌가? 여성에 대한 대우를 개선할 만한 어떤 대안이 있는가?(Kumar, 1983:64).
나는 가부장적 자본주의 사회에서 가장 암울한 여성혐오적인 표현은 여성 스스로가 체화시켜 이를 다른 여성에게 적대적으로 표현한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쿠마르가 위에서 한 조언 같은 암울한 표현은 다시없을 거라고 생각한다. 가부장적이고 성차별적인 사회관계는 언급도 되지 않았고, 이를 극복하기 위한 변화노력을 옹호한것도 없다. 여성 스스로 절명하게 하는 것만이 해결책으로 제시되어있다. 이는 우리에게 빈민을 섬멸함으로서 빈곤을 퇴치하는 것을 제안한 인구통제기구의 논리를 상기시킨다. 그러나 이는 그보다 더 끔찍하다. 여성이 여성 살해를 최종 해결책으로 제안하고 있기 때문이다.
- P324

이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마투라의 사건은 한 사례일 뿐이다. 이 한 사건을 끄집어내는것은 모든 강간사건의 판결에 의문을 제기하는 것이다. 강간법을 문제 삼는 것이다. 왜유죄판결이 그렇게도 드문지에 대해 의문을 품기 시작하는 것이다. 인도 형법 아래에서는 강간을 증명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닫는 것이다. 우리가 너무나 오랫동안 현실에 없는 것인 양 눈감아왔던 것에 관심을 두는 것이다. 지금이 강간 문제를본격적으로 대면해야 할 때가 아닌가?
강간은 항상, 어느 곳에서나 발생한다는 것을 우리가 받아들여야 할 때가 아닌가? 모든 여성은, 노소에 관계없이, 매력이 있든 없든, ‘멋지든‘ ‘멋지지 않든, 부자든 가난하든,
잠재적 피해자라는 것을 아는가? 당신이 마투라가 아니고, 문맹의 농장 노동자가 아니고, 강간을 당하지 않으면 괜찮은 것인가. 이 국가의 마투라들은 이중으로 억압을 당하고 있다. 그들은 여성이며, 정의가 소수의 특권인 국가에서 억압받는 부문에 이미 속해있다. 여성은 개인으로가 아니라, 하나의 범주로 강간 테러의 위협에 직면해 있다. 집단강간은 힘을 과시하는 하나의 무기로 자주 사용된다. 사례를 찾기 위해 멀리 볼 필요도 없다. ‘1974년 철도파업 철도노동자 아내들에게 일어난 일을 잊었는가? 찬디가르, 보즈푸르, 아그라의 달리트 여성들에게 벌어졌던 일은? 혹은 알리가르의 잠세드푸르의무슬림 여성에게, 그리고 거의 모든 지역 반란에서 일어났던 일은? 인도군대가 미조와네팔리 여성들에게 저지른 일은?
- P329

당신 앞에 있는 현실을 깨닫기 위해 강간을 당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당신은 이미 알고 모든 여성이 아는 거 아닌가? 영화를 보면 생생한 강간 장면과 관객의 야유와 휘파람을 부르는 장면들이 당신을 불쾌하게 한다. 길을 걸을 때, 버스와 기차를 타고 갈 때끝 조롱하고 비웃는 소리를 무시하고 있을 때, 누군가의 손이 당신의 몸을 더돕는다. 당신이 부탁한 것인가? 당신이 유혹한 것인가?
만약 내일 강간을 당한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만약 당신은 남성이고, 당신의 자매, 딸혹은 어머니가 강간을 당했다면, 당신은 어떻게 할 것인가? 당신 주변에 흩어져있는 이야기들을 꼼꼼히 살펴보면, 강간은 여성이 부탁하지 않은 상태에서 일어난다고 하는점을 알게 된다. 봄베이에서 한 해 보고되는 8백 건의 사건 중 하나가 되어 내가 강간당했다고말할 것인가 왜냐고 말할 것인가? 아니면 다른 문어는 8천 건의 사건 중 하나가 될 것인가 신고되는사진보다 묻히는 사건이 10 12배에 달한다.
그렇다. 참여자 숫자에 안전이 있고, 그것이 힘이다. 이제 바꾸어 나가자 참여하라 강간이 만연한 현실을 직면하고, 다음과 같은 것을 요구하자 :) 사건에 대한 재심을 즉각 시작하라. 2) 강간법을 개정하라.
우리가 시작하면, 상황은 바뀔 수 있다. - P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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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어머니 없이는, 어머니 대지 없이는 어떤 가부장제도 존재할 수 없다(Ehrenreich/English, 1979:7~8). 자본주의가 대규모의 정복과 식민지 강탈에 기초하여 세계체제로 발전하고, 세계시장이 등장하면서(Wallerstein, 1974), 새로운 가부장은 착취하고싶은 대상을 외부화하거나 혹은 외부로 축출할 수 있게 되었다. 식민지는 더 이상 경제나 사회의 일부로 여겨지지 않았다. 식민지는 ‘문명화된 사회의 밖에 놓여 있는 것이었다. 유럽 정복자와 침략자가 ‘침투한 그 ‘처녀지‘와 같이, 이들 토지와 주민도 ‘자연으로 여겨졌다. 이들은 야생의 야만적인 자연으로, 남성 문명인의 착취와 이용을 기다리는 존재로 규정되었다. - P176

가부장과 자연 사이의, 남성과 여성 사이의 이원성, 혹은 양극화를 통해 마침내 철저하고 영구적으로 파괴적인 힘을 발전시킬 수 있게되었다. 이제 과학과 기술은 남성이 자신을 여성에게서 만이 아니라자연으로부터도 ‘해방될 수 있도록 해준 중요한 ‘생산력이 되었다.
머천트는 유기체로서의 자연을 파괴한 것 - 그리고 근대과학과기술이 발전하면서, 남성 과학자가 새로운 고위 성직자로 성장한 것은 약 4세기 동안 유럽 전역에서 전개되었던 마녀사냥 기간 동안 여성에 대한 폭력적 공격과 밀접한 관계를 갖고 나란히 진행되었음을 보여준다. - P177

근대 유럽 가부장은 처음에는 아메리카, 후에는 아시아와 아프리카를 정복하고, 볼리비아, 멕시코, 페루의 광산에서 금과 은을, 다른영토에서 ‘원자재‘와 사치품을 추출해내면서 유럽 어머니 대지로부터자신을 독립시켰다. 한편 이들은 마녀와 함께 여성의 피임과 출산통제에 대한 지식을 박탈해가면서, 노동력 생산 면에서 유럽여성에게 의존했던 것에서부터 스스로를 ‘해방시켰다. 또한 아프리카의 남성과 여성을 노예제 아래로 종속시켜서 아메리카와 카리브의 대농장에서 필요로 하는 노동력을 얻을 수 있었다. - P177

이런 ‘발전‘의 법칙은 언제나 모순적인 것이지, 점진적인 것이 아니다. 일부의 발전은 다른 쪽의 퇴보를 의미한다. 일부의 ‘진화‘는 다른 이들에게 ‘퇴화‘를 의미한다. 일부의 ‘인간화는 다른 이들의 ‘비인간화‘를 의미한다. 일부의 생산력 발전은 다른이들의 저발전과 퇴보를 의미한다. 일부의 발전은 다른 이들의 추락을의미한다. 일부의 부는 다른 이들의 빈곤을 의미한다. 한 방향으로의발전이 될 수 없는 이유는, 앞서 말한 것처럼, 약탈적이고 가부장적인생산양식은 상호적이지 않고 착취적인 관계를 형성하기 때문이다. 이런 관계에서는 모두를 위한 전반적인 진보, ‘통화침투(낙수효과)‘를 통한 발전, 모두를 위한 발전은 가능하지 않다.
엥겔스는 진보와 퇴보 사이의 이런 대립적인 관계를 사유재산의등장과 한 계급의 다른 계급에 대한 착취 때문이라고 했다.  - P178

"지배계급에게 좋은 것이, 지배계급이 자신과 동일시하는 사회 전체에게도 좋은 것이 되어야한다"(Engels, 1976:333).
그러나 이것이 바로 이 전략의 논리적 결함이다. 모순적이고 착취적인 관계에서, 착취자의 특권이 모두의 특권이 될 수는 없다. 중심부의 부가 식민지 착취에 기초한 것이라면, 식민지는 자신도 식민지를 갖지 않는 이상 부를 획득할 수 없다. 남성의 해방이 여성의 종속에 기초한 것이라면, 여성은 남성과 ‘평등한 권리‘를 획득할 수 없다. 여기에는타인을 착취할 권리가 필수적으로 포함되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해방을 위한 페미니스트의 전략은 이런 퇴보적 진보의 관계들을 완전히 폐지하는 것을 목표로 하지 않을 수 없다. 이는 남성의여성에 대한 착취, 남성의 자연에 대한 착취, 식민주의자의 식민지 주민에 대한 착취, 한 계급의 다른 계급에 대한 착취를 모두 끝내는 것을 목표로 해야 함을 의미한다. 이런 착취가 일부 사람들의 전진(발전,
진화, 진보, 인간화 등)을 위한 조건으로 남아있는 한, 페미니스트는해방 혹은 ‘사회주의‘를 말할 수 없다. - P179

마녀사냥이 전반적으로 활발하게 진행되었던 것은 단순히 새로운자본주의 세력에 직면하면서 쇠퇴한 구질서가 낳은 것이거나 시대를초월한 남성 가학성의 표현이라기보다는, 여성의 반란에 대해 새로운남성 지배 계급이 내놓은 반응으로 보인다. ‘쫓겨난‘ 가난한 여성, 즉, 생계수단과 기술을 박탈당한 이들은, 박탈한 이들에게 맞서 싸웠다.
마녀는 ‘마녀의 안식일에 주기적으로 만나는 조직된 분파였으며, 그곳에서 가난한 이들이 모여 주인과 농노가 없는 새로운 자유로운 사회를 이미 연습하고 있었다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다. 한 여성이 마녀임을 부인하면서 다른 모든 혐의를 부인해도, 그녀는 고문을 받고 결국은 말뚝에 묶여 화형을 당했다. 결과에 상관없이, 마녀재판은 꼼꼼하고 용의주도한 법적 과정을 따랐다. 개신교 국가들에는 교회 밖에 마녀재판을 전담하는 위원회와 판무관이 있었다. 사제는 법정과 계속협력했고, 판사에게 영향을 미쳤다. - P188

산파를 마녀로 기소하고 화형에 처하는 것은 근대 과학의 등장과직접 연관되어 있었다. 의술이 전문직이 되었고, 의학이 ‘자연과학‘으로발전했으며, 과학과 근대 경제가 발달했다. 마녀사냥꾼의 고문실은 실험실이었다. 이곳에서 인간의 몸, 주로 여성 몸의 조직, 구조, 내성 등을 탐구했다. 근대 의학과 다양한 분야에서의 남성 헤게모니는 부서지고, 망가지고, 찢기고, 훼손되다가 마침내 화형을 당한 수백만 여성의몸 위에 세워진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교회와 국가는 계획적인 분업을 통해 조직적인 마녀 대학살과 테러를 진행했다. 교회에서 파견된 이들은 마녀를 식별해내고, 신학적논리를 제공하면서 심문을 주도했다. 국가의 ‘세속 부대‘는 고문을 수행하고 마지막으로 마녀를 장작더미 위에서 처형하는 일을 했다.
마녀의 처형은 근대 사회의 발전을 보여주는 것이지, 통념대로, 비합리적인 ‘어두운‘ 중세의 유물 때문은 아니었다.  - P192

여성과 자연에 대한 이 새로운 과학적이고 가부장적인 지배를 통해 이득을 본 계급은 발전하고 있던 개신교, 상인 자본가 계급, 광업기업가, 의류업계 자본가 등 이었다. 이 계급에게 꼭 필요한 것은 여성이 자신의 섹슈얼리티와 재생산 능력에 대해 갖고 있던 자율성을 와해시키고 여성들이 더 많은 노동자를 낳도록 강제하는 것이었다. 비슷하게 자연도 이 계급이 착취하여 이윤을 창출할 수 있는 물질적 자원의 거대한 저장소로 바꾸어 버렸다.
따라서 교회, 국가, 신흥 자본가 계급, 근대 과학자는 협력하여 여성과 자연을 폭력적으로 종속시켰다. 19세기의 연약한 빅토리아 여성은 이 계급이 자신의 이익을 위해 주조해낸 여성적 자연상을 따라 폭력적 수단을 통해 만들어낸 산물이다(Ehrenreich, English, 1979). - P202

이들 대농장주의 동력은 카리브제도에서 프랑스인 혹은 영국인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이득을 올리는 것이다. 스톨러는 여성에 대한네덜란드 식민지 정책의 변동을 설명해주는 것은 바로 이동력이라고말한다. 식민지 기록에 따르면, ‘결혼 관계, 질병, 성매매, 노동 분규 등의 문제는 수익과 연관되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20세기 첫 10년 동안기혼 노동자에게 들어가는 비용이 너무 큰 것으로 여겨졌고, 이에 따라 결혼 관계를 취득하는 것도 어렵게 되었다‘(Stoler, 1982:97).
확실히, 여성을 창녀로 만드는 것이 값싼 방법이었다. 그러나 결국북부 수마트라 여성 노동자의 거의 절반이 성병에 걸려 회사 비용으로 입원 치료를 받아야 하게 되자, 농장 노동자들 사이에서 결혼을 장려하는 것이 더 이득이 되었다. 이것이 1920년대와 30년대에 일어난 일이다. 첫 단계에서 이주 여성은 대농장에서 모든 힘든 일들을 충분히해냈다. 그러나 이들이 가정주부가 되어감에 따라 여성 주민은 농장의 임금노동에서 배제되기 시작했다.  - P218

네덜란드 식민주의자의 경우, 이윤을 창출한다는 철저한 목적의식이 있었다. 자신의 고국에 있는 ‘문명화된 여성과 수마트라의
‘야만적‘ 여성에 대한 모순적인 가치관과 정책이 이윤을 보장해주는최고의 메커니즘을 이루었다. 두 집단의 여성에게 정 반대로 대조되는두 가지 가치관을 적용했지만, 이것을 통해 양심의 가책을 느끼는 일은 없었다. 성매매는 여성을 창녀로 모집하는 것이 더 이상 이득이 되지 않을 때에만 공론화되었다. 여기서 우리는 다시 한 번 네덜란드 가정주부의 등장을 주목해야 한다. ‘고국에서 가족과 가정을 이루는 것을 강조한 것은 네덜란드 식민지의 농장 노동자 사이에서 가족과 가정을 파괴한 것과 그저 일시적으로 겹쳤던 것이 아니라, 인과 관계로연결되어 있었다. - P219

많은 경우, 농장 경영자는 스스로 법을 정하여 완고하게 저항하는 여성을 잔인하게 벌주었다. 헤레로 여성의 입장에서 보면, 카리브제도 여성과 마찬가지로, 아프리카 여성은 식민화 과정에서 무력한 희생자만은 아니었다. 이들은 식민지 생산관계 내에서 자신의 상대적인 힘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었고, 그 힘을 자신의 입장에서 사용한 것이다. 그런데, 위에서 인용한 독일 농장 경영자의 말에서 주목할 점은 출산파업을 한 것은 헤레로 여성인데, 농장 경영자는 헤레로인(남성)만을 언급한다. 그들의 보고서에서도 식민지의 백인 남성은 종속민 여성이 매우 주체적이고 주도적이라는 것을 부인하고 있다. 모든 ‘원주민‘은 ‘야만인‘이고 야생의 자연이었다. 그러나 그중 가장 야만적인 것은 ‘원주민‘ 여성이었다. - P225

가정성과 개인화 경향은 19세기와 20세기 자본주의중심부에서 좋은 여성, 즉 어머니와 가정주부로서의 여성이라는 새로운 이미지가 형성되는 데 확실히 큰 영향을 미쳤다. 가정이 여성의 영역, 소비와 ‘사랑‘의 사적인 영역이 되면서, 남성이 지배하는 생산과 축적의 영역에서 배제된 은신처가 되었다. 다음에는, ‘사랑‘과 소비에 주로 관심이 있고, 남성 ‘부양자에게 의존적이고 가정화되고 개인적 소유가 된 여성을 이상적으로 여기는 것이 어떻게 보편화되었는지를 알아보려고 한다. 이런 여성을 이상화하는 태도는 처음에는 제대로 된부르주아 사이에서, 이후에는 이른바 소부르주아로, 그리고 마침내 노동계급 혹은 프롤레타리아까지 점차로 확대되었다. - P232

모두 알다시피, 여성과 어린이가 초기 산업 프롤레타리아의 상당규모를 구성하고 있었다. 그들은 값싸고 가장 다루기 쉬운 노동력이었다. 어떤 노동자도 그토록 착취당하지는 않았다. 자본가는 아이가 있는 여성이 생존하기 위해서라면 어떤 임금도 마다않고 일할 것임을 잘알았다. 자본가에게 여성은 남성보다 문제가 덜 되었다. 직인 협회나길드부터 내려온 조직화의 전통을 가진 기술직 남성과는 달리, 여성은아직 조직화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에 여성 노동력은 저렴했다. 노동조직에서 여성은 일찍이 내쳐졌고, 아직 새로운 조직도 없었기 때문에 이들은 협상력도 갖지 못했다. 자본가에게는 여성을 고용하는 것이 더이득이 되고 또 덜 위험했다. (1830년 무렵) 산업자본주의가 발전하고상업 자본주의가 쇠퇴하면서, 여성과 아동 노동에 대한 지나친 착취가 문제가 되었다. 과로와 경악할만한 노동 조건 때문에 건강을 해친여성은 건강한 자녀를 생산할 수 없었기에, 강한 노동자와 군인을 키워낼 수도 없었다. 19세기 동안 몇 차례의 전쟁을 겪고나서야 인류는이런 사태를 깨닫게 되었다. - P235

자본축적과정에서 가사노동의 기능은 페미니스트가 최근 광범하게 논의해왔다. 여기서 이 부분은 생략하겠다. 그러나 가정주부는자본가가 감당해야 할 비용을 외부화, 혹은 외부영역화한 것이라는점을 강조하고 싶다. 이는 여성 노동이 자연자원처럼, 공기나 물처럼공짜로 이용할 수 있는 자연자원처럼 여겨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동시에 가정주부는 이 숨은 노동자의 완전한 원자화와 파괴를의미한다. 이는 여성의 정치력이 부족하기 때문만이 아니라, 여성의 협상력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가정주부와 임금노동 부양자의 관계는 자유롭지 않은 노동자가 ‘자유‘ 프롤레타리아에게 연결되어 있는 것이다.
프롤레타리아가 자신의 노동력을 팔 ‘자유‘는 가정주부의 자유롭지않음에 기초해 있다. 남성의 프롤레타리아화는 여성의 가정주부화에기초해 있다. - P245

따라서 힘이 약한 백인 남성도 자신의 식민지‘, 즉 가족과 가정에길들여진 가정주부를 갖게 되었다. 무산계급인 프롤레타리아가 마침내 ‘문명화된 시민의 지위에 오르고, ‘문화국가의 온전한 구성원이 된것이 그 표식이었다. 그러나 그런 성장에는 같은 계급 여성의 종속과가정주부라는 희생이 필요했다. 부르주아 법이 노동계급까지 확대되는 것은 무산자 가정에서도 남성이 지배자이자 주인이 된다는 것을의미했다.
식민화와 가정주부의 두 과정이 밀접하게 인과관계로 연결되어있다고 하는 것이 나의 논지이다. 외부 식민지에 대한 지속적인 착취,
전에는 직접 식민지를 통해, 현재는 새로운 국제노동분업을 통한 착취가 없이는 남성 부양자가 부양하는 핵가족과 여성이라는 ‘내부 식민지‘가 수립되지 못했을 것이다. - P245

구 국제분업은 식민지 혹은 식민지에서 원료를 생산하고, 이원료가 유럽과 미국, 나중에는 일본 등 산업화된 국가로 수송되고, 공산품으로 바뀌어 산업화된 국가들 자체에서 판매되거나 수출되는 것을의미했다. 이 국제분업 초기에 기계를 통해 생산된 상품, 특히 모두 기계로 제작한 직물이 강제로 식민지 시장에 던져지기도 했다. 그럴 경우, 공산품 직물이 더 저렴하기 때문에 지역 고유의 직물업이 몰락하게 되었다. 인도 직물산업이 영국의 공산품 의류가 들어오면서 파괴된것은 이 과정을 잘 보여주는 유명한 예이다(Dutt, 1970). - P248

그러나 1970년대에 유럽, 미국, 일본의 대기업과 다국적기업의 경영자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이어진 경기호황의 시기가 끝나고 있음을알게 되었다. 그동안 계속되는 경제 성장은 산업화된 국가의 국민에게 하나의 도그마로 홍보되었고, 국민은 이를 당연시했는데, 이제 그런 시대가 끝나게 된 것이다. 경영자들은 만약 이 경기 후퇴가 일시적위기라기보다는 자본주의 세계경제 시대 전반이 끝나는 것을 의미한다는 것이 분명해지면 사회적 혼란이 일어나지 않을까 두려워했다. 이에 따라, 세계경제체제, 혹은 국제노동분업을 바꾸어 지속적인 성장이자본주의 국가로 되돌아올 수 있도록 만들 필요가 절박했다.  - P249

이 새로운 모델은 노동집약적인, 즉 노동비가 주로 많이 드는 생산과정은 식민지로, 이른바 개발도상국, 혹은 제3세계 등으로 수출하는 것이다. 공장 전체를이 국가들로 옮겨서 임금이 낮은 제3세계의 노동자가 서구의 대중을위한 공산품 소비재를 생산하도록 하는 것이다. 동시에 개발도상국의농업에 신기술을 도입하여 근대화하고, 이를 통해 부유한 국가로 수출될 수 있는 농산물을 생산하도록 했다(Fröbel et al, 1980).
제3세계 국가의 이런 부분적 산업화로 자유무역지대이거나 자유생산지대 혹은 세계시장공장들에 세워진 산업에 대해 제3세계 국가가 큰통제력을 갖게 된 것은 아니었다. 필리핀, 말레이시아, 한국, 싱가포르,
멕시코, 스리랑카, 태국 등에 자리한 공장은 대개 미국, 독일, 일본의 다국적 기업이었다. 특히 옮겨간 산업의 생산과정은 여전히 노동집약적이어서, 아직 높은 수준으로 합리화되지 않은 분야였다.  - P249

말레이시아에 있는 미국 반도체 회사인 인텔의 인사담당관은 이렇게말한다. ‘우리가 소녀들을 고용하는 것은 이들이 에너지가 좀 덜 들고,
좀 더 규율이 있으며, 다루기 쉽기 때문이다‘(Grossman, 1979; 2). 제3세계투자의 아이티 지부는 독일 투자자를 유인하기 위해 아름다운아이티 여성을 보여주는 홍보물을 만들면서 다음과 같은 글을 써 넣었다. ‘당신의 독일 마르크를 불려줄 더 많은 노동력이 여기 있다. 미화1달러만 있으면, 여성은 당신을 위해 8시간 동안 즐겁게 일할 것이다.
그녀의 수백 명의 친구도 그렇게 일할 준비가 되어 있다‘(Fröbel et al,
1977:528, 영어번역은 저자).
이 광고에는 성차별주의가 분명하게 깔려 있다. 정부가 포주처럼젊은 여성을 외국 투자자에게 제공한다는 인상을 주기도 한다. 사실,
성매매는 관광산업의 일부일 뿐 아니라, 제3세계 국가에서 기업운영계획의 일부이기도 하다. - P257

여성을 개발에 포함시키는 것은 대부분의 경우 여성을 이른바 소득을유발하는 활동, 즉 시장지향적인 생산으로 진입하게 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여성이 자신의 자급 생산을 확대하는 것, 토지에 대해 더 많은권한을 갖도록 노력하고, 좀 더 많은 음식, 더 많은 옷 등 자신의 소비를 위해 좀 더 많이 생산하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개발 전략에서 소득은 현금 소득을 의미한다. 현금 소득은 여성이 시장에 팔 수 있는 것을 생산할 때에만 발생할 수 있다. 제3세계 가난한 여성 사이에서 구매력이 낮기 때문에, 그들은 구매력이 있는 사람을 위해 무언가를 생산해야 한다. 구매력 있는 이들은 자국의 도시나 서구에서 산다. 여성노동을 개발에 포함시키는 전략은 수출 혹은 시장지향적 생산으로 향하게하는 것을 의미한다. 가난한 제3세계 여성은 자신이 필요한 것을 생산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이들이 구매할 수 있는 것을 생산하게 된다. - P259

이 전략의 또 다른 특징은 제3세계 여성을 노동자가 아니라 가정주부로 규정한다는 것이다. 그들이 하는 것은 노동이 아니라 ‘활동‘으로 규정된다. 가정주부 이데올로기와 핵가족 모델이 진보의 표식으로 보편화되면서 여성이 하는 모든 노동, 그것이 공식 부문이든 비공식부문이든 간에, 여성의 모든 노동을 보조적 일, 여성의 소득을 이른바 주된 부양자‘ 남편의 소득을 보조하는 소득으로 규정할 수 있게 되었다. 이런 가정주부의 경제 논리를 통해 노동력 비용이 크게 줄었다. 이것이 국제자본과 그 대변인이 오늘날 여성에게 관심을 갖는 이유 중 하나이다.
이 전략은, 앞서 본 것처럼, 유럽과 미국에서 19세기와 20세기에 처 - P259

음 만들어졌다. 그곳에서 가정주부는 ‘자유로운‘ 프롤레타리아를만들어 내기 위한 필수적인 보완제였다. 유럽과 미국의 많은 노동자가
‘일하지 않는‘ 가정주부를 식민지에서의 착취를 통해) 감당할 수 있었던 반면에, 제3세계 남성 다수는 가정주부가 ‘일하지 않고 집에 머무를 수 있게 해줄 만한 지위를 절대 가질 수 없었다. 여성을 위해 소득을 유발하는 전략을 쓴다는 것은 제3세계 여성 대다수의 경험에 기초한 것이 아니라 여성에 대한 이미지에 기초한 발상이다. 카리브제도에서는 남성 부양자 가장이 없는 가구가 전체의 3분의 1 이상이다(Reddock, 1984 참조). 최근 연구에 따르면 아시아, 아프리카, 라틴 아메리카의 특히 시골 지역에서 여성 가장의 가구, 여성이 경제를 책임지는 가구의 수가 증가하고 있다(Youssef/Hetler, 1984). 그 이유로 수출을 위한 환금작물 생산으로의 변화, 농업의 기계화, 가난한 사람 중토지 상실한 사람이 증가하면서 생긴 토지보유시스템의 변화 등을 들수 있다.  - P260

생산자로서의 여성과 어머니이자 소비자로서의 여성을 분리하는것은 또 다른 면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는 신국제분업에서 꽤 중요한 부분이다. 부유한 산업화된 국가에서 여성은 점점 더 ‘공식적 분야‘에서 쫓겨나면서, 주로 가족을 연상시키는 존재가 된다. 여성이 남편과 자녀를 위한 ‘재생산‘ 노동을 하고 소비하는 것이 그들의 ‘타고난‘
운명이 된다. 이에 반해 제3세계 여성의 소비자와 출산자로서의 역할은 바람직하지 않거나 심지어는 소모적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1960년대 말부터 서구의 정부들, 특히 미국과 유엔조직들, 그리고 비정부기구들까지 내놓은 선언문을 살펴보면, 제3세계 여성을 잠재적인 ‘번식자‘ 와 소비자로 보는 것은 전 세계에 대한 가장 심각한 위협이라고 여기는 것을 알 수 있다. - P2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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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도 어김없이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을 읽는다. 매번 새롭고 다양해서 해마다 기대하고 기다리게 된다. 벌써 14회라니 그 무섭다는 중2의 나이가 되었네.

이번에는 개인적으로 ‘정선임작가의 요카타‘가 좋았다. 무엇보다 잘 읽혔고, (읽기 어려운 소설들이 많아지고 있다.) 무겁게 끌고 가지 않으면서 여운이 깊다.

흑점의 배경이 검붉은 빛에서 노을빛으로, 그리고 복숭앗빛으로 점차 옅어진다.
외출복을 입은 채 이부자리도 없이 누워 있다. 두 시간 전 일어나 집에서 십 분 거리에 있는 성당에 다녀왔다. 미사를 빼놓지 않고, 기도를 오래 드리는 내가 다들 신심이 깊다고 생각하겠지만엘리사벳 수녀의 끈질긴 권유에도 세례는 받지 않았다. 깨어 있어도 눈을 감을 수 있는 곳이어서 성당을 좋아한다. 이렇게 눈꺼풀 안쪽을 들여다보다 설핏 잠이 들기도 한다. 낱말 공부를 하다가도 앉은 채 눈을 감고 있으면 진이 나를 흔들어 깨우곤 한다. 눈꺼풀 안쪽의 색은 모든 사람이 다 똑같을까. 궁금하지만 물어본적은 없다. 아버지, 순덕이와 정순이, 남편들, 그리고 진에게도, 동이 완전히 트자 흑점은 더 선명해진다.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으면 점에서 시작되어 길게 늘어진 검은 실처럼 움직인다. 마치붉게 물든 하늘을 향해 걸어가는 누군가의 그림자 같다. - P205

고개를 돌리다 진이 벽에 오려붙여놓은 신문기사를 본다. 모르는 글자를 건너뛰어 ‘서연화‘ 이름 석 자를 찾는다. 이름 옆 괄호안 ‘100‘이라는 숫자를 쳐다본다. 나는 엄지손가락을 추켜올리며웃고 있다. 방안에 거울을 두지 않은 지 오래다. 내 모습을 볼 기회가 없어서인지 사진은 볼 때마다 낯설다. 작은 사진인데도 눈가와입가에 주름이 선명하다. 바닷바람을 맞아 까맣게 탄 얼굴은 검버섯으로 뒤덮였다. 하얗게 센 머리, 허리를 꼿꼿하게 세웠다고 생각했는데 굽은 등. 정말 영락없이 백 살의 노파다.
백 살이나 아흔여섯 살이나 그게 그거지. - P208

"바다는 똑같겠지. 바다는 변하질 않으니까. 그죠?"
이 말에도 굳이 대꾸하지 않는다. 라면을 다 먹고 고말순이 돌아간 뒤 다시 목욕탕 의자에 앉아 미역 줄기를 찢는다. 난센스 퀴즈 코너가 끝나면 진행자는 상식이나 역사 문제를 내곤 한다.
"3월 8일 여성의 날을 맞이해 준비한 퀴즈입니다. 대표적인 신여성이죠. 나혜석거리는 어디에 있을까요? 1번 수원, 2번 부산,
3번 인천, 4번 밀양 정답을 아시는 분은 지금 문자를 보내주세요."
본래는 별 관심 없이 흘려듣지만 인천과 여성이라는 말에 귀를기울인다. 정답은 1번 수원이었다. 진행자는 답에 대한 설명과 함께 나혜석의 생애를 들려준다. 나보다 먼저 태어난 나혜석은 행려병자로 죽었지만 파리며 독일이며 세계 곳곳을 자유롭게 다녔다.
후지타의 서재 한쪽 벽면에 붙어 있던, 다다미 넉장 반 정도크기의 커다란 세계지도가 떠오른다. 후지타는 자신의 고향 나가사키의 위치를 알려주며 붉은 동그라미를 그렸다. 그뒤로 나는서재에 들어갈 때면 한반도와 나가사키 사이에 놓인 한 뼘 정도의 바다를 바라보곤 했다. 그리고 그 바다 너머의 끝도 없는 바다들을. - P213

과거의 기억은 짙은 해무가 낀 것처럼 부옇다. 머릿속에서는인화가 제대로 되지 않은 사진처럼 윤곽만이 희미하게 떠오르지만 촉감으로, 냄새로, 통증 같은 것으로 몸이 선명하게 기억하는순간이 있다. 아버지에게 어떻게 도시락을 건네줬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부른 배를 안고 집으로 돌아가던 길, 발갛게 달아올라있던 볼의 열기만은 또렷이 기억난다. 낮이었고 주위가 너무 환해 빨리 땅거미가 져 어두워졌으면 했던 마음도 갑자기 뺨이 불타듯 뜨거워져 손을 대본다. 다듬지 않은 미역처럼 거칠고 해삼처럼 흐물흐물하다. - P224

이상하다
이렇게 살아 있는 것


석 줄짜리 시였다. 가운데 부분이 기억나질 않았다. 유독 손때가 묻어 반질반질 닳아 있는 책 한 권을 찾아내 펼쳤다. 후지타가 자주 읽던 시집이었다. 종이 위 검은 점과 선의 행렬로만 보이는 그것들의 의미를 끝내 알지 못했다. 몰래 성경을 숨겨놨던 후지타는 전쟁이 길어질 무렵, 걱정스러운 얼굴로 자주 기도했다. 후지타가 재산을 처분하고 있다는 소문이 이미 동네에 퍼져 있었다. 그의 기도가 어떤 내용인지 모르면서 그를 따라 눈을 감았다.
그날은 조금이었고, 마침 낙지를 잡기에 좋은 물때였다. 서재를 엉망으로 만들어놓고 양동이를 들고 개펄로 나갔다. 개펄을마구 헤집으며 바지락을 했고, 낙지와 게와 같이 살아 있는 것들로 양동이를 가득 채웠다. 그러다 모두 쏟아버리고, 꿈틀거리는 낙지와 도망가는 게들을 지켜봤다. - P228

이상했다. 살아서 자꾸만 움직이는 것이.
양동이를 던지고 개펄에 털썩 주저앉아 기도하듯 눈을 감았다. 노을빛을 닮은 눈꺼풀 안을 들여다보면서 흑점의 뒤를 쫓았다. 그러다 눈을 떠보니 어느새 물이 들어오고 있었다. 서둘러 개펄에서 걸어나오다 뒤를 돌아보니 푹푹 빠지며 걸어왔던 발자국도, 흉하게 파헤쳐진 자리와 들쑤셔진 자국도 사라져 있었다. 밀물이 밀려와 모든 것을 원래대로 되돌려놓았다. 죽은 것들도, 살아 있는 것들도 바다는 휩쓸어갔다. - P228

서재에 있던 책들은 남김없이 내다팔았고, 그후로는 뒤를 돌아보지 않고 살았다. 바다가 데려간 것은 잊었고 내어준 것을 팔아 살았다. 가끔 이름이 불릴 때마다 구멍에 숨어 있다 잡혀 나온 게들처럼 당황했다. 하지만 또다시 구멍 속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아무도 나를 궁금해하지 않았으니까.
다행이었지. 요카타, 요카타.
만조다. 물이 들어오고 있다. 보행로 위에서 관광객 하나가 새우깡 봉지를 뜯어 마구 뿌리자 갈매기떼가 몰려온다. 새우깡은바닷물로 낙하하기 전에 갈매기 입안으로 들어갈 것이다. 가벼운 습자지 한 장 같은 오늘을 서둘러 뜯어내고 아침을 기다리고 싶다. 내일이면 오이소박이는 좀더 익어 맛있을 것이다. 해가 지기전에, 푸르스름한 어둠이 찾아오기 전에, 다시 눈을 감고 그림자를 쫓기 전에 집으로 돌아가야 하는데. 나는 지금 어디로 가야 하는지 모른다. - P229

나는 혼자 떠나는 여행을 좋아한다. 익숙한 장소에서도 방향을헷갈릴 때가 많은데 혼자 여행을 간다는 건 당연히 길을 잃겠다는 전제에서 시작된다. 이야기를 시작할 때도 마찬가지다. 앞으로 또 어떤 소설을 쓰게 될지는 모르겠다. 우왕좌왕하다가 목적지가 아니었던 곳에 도착할 테니. 다만 알고 있는 것은 다음에도기꺼이 길을 잃고 싶다는 거다. 쓰지 말걸 후회도 하다가 결국에는 소설을 써서 다행이야, 라고 중얼거리면서. - P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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