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어머니 없이는, 어머니 대지 없이는 어떤 가부장제도 존재할 수 없다(Ehrenreich/English, 1979:7~8). 자본주의가 대규모의 정복과 식민지 강탈에 기초하여 세계체제로 발전하고, 세계시장이 등장하면서(Wallerstein, 1974), 새로운 가부장은 착취하고싶은 대상을 외부화하거나 혹은 외부로 축출할 수 있게 되었다. 식민지는 더 이상 경제나 사회의 일부로 여겨지지 않았다. 식민지는 ‘문명화된 사회의 밖에 놓여 있는 것이었다. 유럽 정복자와 침략자가 ‘침투한 그 ‘처녀지‘와 같이, 이들 토지와 주민도 ‘자연으로 여겨졌다. 이들은 야생의 야만적인 자연으로, 남성 문명인의 착취와 이용을 기다리는 존재로 규정되었다. - P176
가부장과 자연 사이의, 남성과 여성 사이의 이원성, 혹은 양극화를 통해 마침내 철저하고 영구적으로 파괴적인 힘을 발전시킬 수 있게되었다. 이제 과학과 기술은 남성이 자신을 여성에게서 만이 아니라자연으로부터도 ‘해방될 수 있도록 해준 중요한 ‘생산력이 되었다. 머천트는 유기체로서의 자연을 파괴한 것 - 그리고 근대과학과기술이 발전하면서, 남성 과학자가 새로운 고위 성직자로 성장한 것은 약 4세기 동안 유럽 전역에서 전개되었던 마녀사냥 기간 동안 여성에 대한 폭력적 공격과 밀접한 관계를 갖고 나란히 진행되었음을 보여준다. - P177
근대 유럽 가부장은 처음에는 아메리카, 후에는 아시아와 아프리카를 정복하고, 볼리비아, 멕시코, 페루의 광산에서 금과 은을, 다른영토에서 ‘원자재‘와 사치품을 추출해내면서 유럽 어머니 대지로부터자신을 독립시켰다. 한편 이들은 마녀와 함께 여성의 피임과 출산통제에 대한 지식을 박탈해가면서, 노동력 생산 면에서 유럽여성에게 의존했던 것에서부터 스스로를 ‘해방시켰다. 또한 아프리카의 남성과 여성을 노예제 아래로 종속시켜서 아메리카와 카리브의 대농장에서 필요로 하는 노동력을 얻을 수 있었다. - P177
이런 ‘발전‘의 법칙은 언제나 모순적인 것이지, 점진적인 것이 아니다. 일부의 발전은 다른 쪽의 퇴보를 의미한다. 일부의 ‘진화‘는 다른 이들에게 ‘퇴화‘를 의미한다. 일부의 ‘인간화는 다른 이들의 ‘비인간화‘를 의미한다. 일부의 생산력 발전은 다른이들의 저발전과 퇴보를 의미한다. 일부의 발전은 다른 이들의 추락을의미한다. 일부의 부는 다른 이들의 빈곤을 의미한다. 한 방향으로의발전이 될 수 없는 이유는, 앞서 말한 것처럼, 약탈적이고 가부장적인생산양식은 상호적이지 않고 착취적인 관계를 형성하기 때문이다. 이런 관계에서는 모두를 위한 전반적인 진보, ‘통화침투(낙수효과)‘를 통한 발전, 모두를 위한 발전은 가능하지 않다. 엥겔스는 진보와 퇴보 사이의 이런 대립적인 관계를 사유재산의등장과 한 계급의 다른 계급에 대한 착취 때문이라고 했다. - P178
"지배계급에게 좋은 것이, 지배계급이 자신과 동일시하는 사회 전체에게도 좋은 것이 되어야한다"(Engels, 1976:333). 그러나 이것이 바로 이 전략의 논리적 결함이다. 모순적이고 착취적인 관계에서, 착취자의 특권이 모두의 특권이 될 수는 없다. 중심부의 부가 식민지 착취에 기초한 것이라면, 식민지는 자신도 식민지를 갖지 않는 이상 부를 획득할 수 없다. 남성의 해방이 여성의 종속에 기초한 것이라면, 여성은 남성과 ‘평등한 권리‘를 획득할 수 없다. 여기에는타인을 착취할 권리가 필수적으로 포함되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해방을 위한 페미니스트의 전략은 이런 퇴보적 진보의 관계들을 완전히 폐지하는 것을 목표로 하지 않을 수 없다. 이는 남성의여성에 대한 착취, 남성의 자연에 대한 착취, 식민주의자의 식민지 주민에 대한 착취, 한 계급의 다른 계급에 대한 착취를 모두 끝내는 것을 목표로 해야 함을 의미한다. 이런 착취가 일부 사람들의 전진(발전, 진화, 진보, 인간화 등)을 위한 조건으로 남아있는 한, 페미니스트는해방 혹은 ‘사회주의‘를 말할 수 없다. - P179
마녀사냥이 전반적으로 활발하게 진행되었던 것은 단순히 새로운자본주의 세력에 직면하면서 쇠퇴한 구질서가 낳은 것이거나 시대를초월한 남성 가학성의 표현이라기보다는, 여성의 반란에 대해 새로운남성 지배 계급이 내놓은 반응으로 보인다. ‘쫓겨난‘ 가난한 여성, 즉, 생계수단과 기술을 박탈당한 이들은, 박탈한 이들에게 맞서 싸웠다. 마녀는 ‘마녀의 안식일에 주기적으로 만나는 조직된 분파였으며, 그곳에서 가난한 이들이 모여 주인과 농노가 없는 새로운 자유로운 사회를 이미 연습하고 있었다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다. 한 여성이 마녀임을 부인하면서 다른 모든 혐의를 부인해도, 그녀는 고문을 받고 결국은 말뚝에 묶여 화형을 당했다. 결과에 상관없이, 마녀재판은 꼼꼼하고 용의주도한 법적 과정을 따랐다. 개신교 국가들에는 교회 밖에 마녀재판을 전담하는 위원회와 판무관이 있었다. 사제는 법정과 계속협력했고, 판사에게 영향을 미쳤다. - P188
산파를 마녀로 기소하고 화형에 처하는 것은 근대 과학의 등장과직접 연관되어 있었다. 의술이 전문직이 되었고, 의학이 ‘자연과학‘으로발전했으며, 과학과 근대 경제가 발달했다. 마녀사냥꾼의 고문실은 실험실이었다. 이곳에서 인간의 몸, 주로 여성 몸의 조직, 구조, 내성 등을 탐구했다. 근대 의학과 다양한 분야에서의 남성 헤게모니는 부서지고, 망가지고, 찢기고, 훼손되다가 마침내 화형을 당한 수백만 여성의몸 위에 세워진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교회와 국가는 계획적인 분업을 통해 조직적인 마녀 대학살과 테러를 진행했다. 교회에서 파견된 이들은 마녀를 식별해내고, 신학적논리를 제공하면서 심문을 주도했다. 국가의 ‘세속 부대‘는 고문을 수행하고 마지막으로 마녀를 장작더미 위에서 처형하는 일을 했다. 마녀의 처형은 근대 사회의 발전을 보여주는 것이지, 통념대로, 비합리적인 ‘어두운‘ 중세의 유물 때문은 아니었다. - P192
여성과 자연에 대한 이 새로운 과학적이고 가부장적인 지배를 통해 이득을 본 계급은 발전하고 있던 개신교, 상인 자본가 계급, 광업기업가, 의류업계 자본가 등 이었다. 이 계급에게 꼭 필요한 것은 여성이 자신의 섹슈얼리티와 재생산 능력에 대해 갖고 있던 자율성을 와해시키고 여성들이 더 많은 노동자를 낳도록 강제하는 것이었다. 비슷하게 자연도 이 계급이 착취하여 이윤을 창출할 수 있는 물질적 자원의 거대한 저장소로 바꾸어 버렸다. 따라서 교회, 국가, 신흥 자본가 계급, 근대 과학자는 협력하여 여성과 자연을 폭력적으로 종속시켰다. 19세기의 연약한 빅토리아 여성은 이 계급이 자신의 이익을 위해 주조해낸 여성적 자연상을 따라 폭력적 수단을 통해 만들어낸 산물이다(Ehrenreich, English, 1979). - P202
이들 대농장주의 동력은 카리브제도에서 프랑스인 혹은 영국인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이득을 올리는 것이다. 스톨러는 여성에 대한네덜란드 식민지 정책의 변동을 설명해주는 것은 바로 이동력이라고말한다. 식민지 기록에 따르면, ‘결혼 관계, 질병, 성매매, 노동 분규 등의 문제는 수익과 연관되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20세기 첫 10년 동안기혼 노동자에게 들어가는 비용이 너무 큰 것으로 여겨졌고, 이에 따라 결혼 관계를 취득하는 것도 어렵게 되었다‘(Stoler, 1982:97). 확실히, 여성을 창녀로 만드는 것이 값싼 방법이었다. 그러나 결국북부 수마트라 여성 노동자의 거의 절반이 성병에 걸려 회사 비용으로 입원 치료를 받아야 하게 되자, 농장 노동자들 사이에서 결혼을 장려하는 것이 더 이득이 되었다. 이것이 1920년대와 30년대에 일어난 일이다. 첫 단계에서 이주 여성은 대농장에서 모든 힘든 일들을 충분히해냈다. 그러나 이들이 가정주부가 되어감에 따라 여성 주민은 농장의 임금노동에서 배제되기 시작했다. - P218
네덜란드 식민주의자의 경우, 이윤을 창출한다는 철저한 목적의식이 있었다. 자신의 고국에 있는 ‘문명화된 여성과 수마트라의 ‘야만적‘ 여성에 대한 모순적인 가치관과 정책이 이윤을 보장해주는최고의 메커니즘을 이루었다. 두 집단의 여성에게 정 반대로 대조되는두 가지 가치관을 적용했지만, 이것을 통해 양심의 가책을 느끼는 일은 없었다. 성매매는 여성을 창녀로 모집하는 것이 더 이상 이득이 되지 않을 때에만 공론화되었다. 여기서 우리는 다시 한 번 네덜란드 가정주부의 등장을 주목해야 한다. ‘고국에서 가족과 가정을 이루는 것을 강조한 것은 네덜란드 식민지의 농장 노동자 사이에서 가족과 가정을 파괴한 것과 그저 일시적으로 겹쳤던 것이 아니라, 인과 관계로연결되어 있었다. - P219
많은 경우, 농장 경영자는 스스로 법을 정하여 완고하게 저항하는 여성을 잔인하게 벌주었다. 헤레로 여성의 입장에서 보면, 카리브제도 여성과 마찬가지로, 아프리카 여성은 식민화 과정에서 무력한 희생자만은 아니었다. 이들은 식민지 생산관계 내에서 자신의 상대적인 힘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었고, 그 힘을 자신의 입장에서 사용한 것이다. 그런데, 위에서 인용한 독일 농장 경영자의 말에서 주목할 점은 출산파업을 한 것은 헤레로 여성인데, 농장 경영자는 헤레로인(남성)만을 언급한다. 그들의 보고서에서도 식민지의 백인 남성은 종속민 여성이 매우 주체적이고 주도적이라는 것을 부인하고 있다. 모든 ‘원주민‘은 ‘야만인‘이고 야생의 자연이었다. 그러나 그중 가장 야만적인 것은 ‘원주민‘ 여성이었다. - P225
가정성과 개인화 경향은 19세기와 20세기 자본주의중심부에서 좋은 여성, 즉 어머니와 가정주부로서의 여성이라는 새로운 이미지가 형성되는 데 확실히 큰 영향을 미쳤다. 가정이 여성의 영역, 소비와 ‘사랑‘의 사적인 영역이 되면서, 남성이 지배하는 생산과 축적의 영역에서 배제된 은신처가 되었다. 다음에는, ‘사랑‘과 소비에 주로 관심이 있고, 남성 ‘부양자에게 의존적이고 가정화되고 개인적 소유가 된 여성을 이상적으로 여기는 것이 어떻게 보편화되었는지를 알아보려고 한다. 이런 여성을 이상화하는 태도는 처음에는 제대로 된부르주아 사이에서, 이후에는 이른바 소부르주아로, 그리고 마침내 노동계급 혹은 프롤레타리아까지 점차로 확대되었다. - P232
모두 알다시피, 여성과 어린이가 초기 산업 프롤레타리아의 상당규모를 구성하고 있었다. 그들은 값싸고 가장 다루기 쉬운 노동력이었다. 어떤 노동자도 그토록 착취당하지는 않았다. 자본가는 아이가 있는 여성이 생존하기 위해서라면 어떤 임금도 마다않고 일할 것임을 잘알았다. 자본가에게 여성은 남성보다 문제가 덜 되었다. 직인 협회나길드부터 내려온 조직화의 전통을 가진 기술직 남성과는 달리, 여성은아직 조직화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에 여성 노동력은 저렴했다. 노동조직에서 여성은 일찍이 내쳐졌고, 아직 새로운 조직도 없었기 때문에 이들은 협상력도 갖지 못했다. 자본가에게는 여성을 고용하는 것이 더이득이 되고 또 덜 위험했다. (1830년 무렵) 산업자본주의가 발전하고상업 자본주의가 쇠퇴하면서, 여성과 아동 노동에 대한 지나친 착취가 문제가 되었다. 과로와 경악할만한 노동 조건 때문에 건강을 해친여성은 건강한 자녀를 생산할 수 없었기에, 강한 노동자와 군인을 키워낼 수도 없었다. 19세기 동안 몇 차례의 전쟁을 겪고나서야 인류는이런 사태를 깨닫게 되었다. - P235
자본축적과정에서 가사노동의 기능은 페미니스트가 최근 광범하게 논의해왔다. 여기서 이 부분은 생략하겠다. 그러나 가정주부는자본가가 감당해야 할 비용을 외부화, 혹은 외부영역화한 것이라는점을 강조하고 싶다. 이는 여성 노동이 자연자원처럼, 공기나 물처럼공짜로 이용할 수 있는 자연자원처럼 여겨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동시에 가정주부는 이 숨은 노동자의 완전한 원자화와 파괴를의미한다. 이는 여성의 정치력이 부족하기 때문만이 아니라, 여성의 협상력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가정주부와 임금노동 부양자의 관계는 자유롭지 않은 노동자가 ‘자유‘ 프롤레타리아에게 연결되어 있는 것이다. 프롤레타리아가 자신의 노동력을 팔 ‘자유‘는 가정주부의 자유롭지않음에 기초해 있다. 남성의 프롤레타리아화는 여성의 가정주부화에기초해 있다. - P245
따라서 힘이 약한 백인 남성도 자신의 식민지‘, 즉 가족과 가정에길들여진 가정주부를 갖게 되었다. 무산계급인 프롤레타리아가 마침내 ‘문명화된 시민의 지위에 오르고, ‘문화국가의 온전한 구성원이 된것이 그 표식이었다. 그러나 그런 성장에는 같은 계급 여성의 종속과가정주부라는 희생이 필요했다. 부르주아 법이 노동계급까지 확대되는 것은 무산자 가정에서도 남성이 지배자이자 주인이 된다는 것을의미했다. 식민화와 가정주부의 두 과정이 밀접하게 인과관계로 연결되어있다고 하는 것이 나의 논지이다. 외부 식민지에 대한 지속적인 착취, 전에는 직접 식민지를 통해, 현재는 새로운 국제노동분업을 통한 착취가 없이는 남성 부양자가 부양하는 핵가족과 여성이라는 ‘내부 식민지‘가 수립되지 못했을 것이다. - P245
구 국제분업은 식민지 혹은 식민지에서 원료를 생산하고, 이원료가 유럽과 미국, 나중에는 일본 등 산업화된 국가로 수송되고, 공산품으로 바뀌어 산업화된 국가들 자체에서 판매되거나 수출되는 것을의미했다. 이 국제분업 초기에 기계를 통해 생산된 상품, 특히 모두 기계로 제작한 직물이 강제로 식민지 시장에 던져지기도 했다. 그럴 경우, 공산품 직물이 더 저렴하기 때문에 지역 고유의 직물업이 몰락하게 되었다. 인도 직물산업이 영국의 공산품 의류가 들어오면서 파괴된것은 이 과정을 잘 보여주는 유명한 예이다(Dutt, 1970). - P248
그러나 1970년대에 유럽, 미국, 일본의 대기업과 다국적기업의 경영자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이어진 경기호황의 시기가 끝나고 있음을알게 되었다. 그동안 계속되는 경제 성장은 산업화된 국가의 국민에게 하나의 도그마로 홍보되었고, 국민은 이를 당연시했는데, 이제 그런 시대가 끝나게 된 것이다. 경영자들은 만약 이 경기 후퇴가 일시적위기라기보다는 자본주의 세계경제 시대 전반이 끝나는 것을 의미한다는 것이 분명해지면 사회적 혼란이 일어나지 않을까 두려워했다. 이에 따라, 세계경제체제, 혹은 국제노동분업을 바꾸어 지속적인 성장이자본주의 국가로 되돌아올 수 있도록 만들 필요가 절박했다. - P249
이 새로운 모델은 노동집약적인, 즉 노동비가 주로 많이 드는 생산과정은 식민지로, 이른바 개발도상국, 혹은 제3세계 등으로 수출하는 것이다. 공장 전체를이 국가들로 옮겨서 임금이 낮은 제3세계의 노동자가 서구의 대중을위한 공산품 소비재를 생산하도록 하는 것이다. 동시에 개발도상국의농업에 신기술을 도입하여 근대화하고, 이를 통해 부유한 국가로 수출될 수 있는 농산물을 생산하도록 했다(Fröbel et al, 1980). 제3세계 국가의 이런 부분적 산업화로 자유무역지대이거나 자유생산지대 혹은 세계시장공장들에 세워진 산업에 대해 제3세계 국가가 큰통제력을 갖게 된 것은 아니었다. 필리핀, 말레이시아, 한국, 싱가포르, 멕시코, 스리랑카, 태국 등에 자리한 공장은 대개 미국, 독일, 일본의 다국적 기업이었다. 특히 옮겨간 산업의 생산과정은 여전히 노동집약적이어서, 아직 높은 수준으로 합리화되지 않은 분야였다. - P249
말레이시아에 있는 미국 반도체 회사인 인텔의 인사담당관은 이렇게말한다. ‘우리가 소녀들을 고용하는 것은 이들이 에너지가 좀 덜 들고, 좀 더 규율이 있으며, 다루기 쉽기 때문이다‘(Grossman, 1979; 2). 제3세계투자의 아이티 지부는 독일 투자자를 유인하기 위해 아름다운아이티 여성을 보여주는 홍보물을 만들면서 다음과 같은 글을 써 넣었다. ‘당신의 독일 마르크를 불려줄 더 많은 노동력이 여기 있다. 미화1달러만 있으면, 여성은 당신을 위해 8시간 동안 즐겁게 일할 것이다. 그녀의 수백 명의 친구도 그렇게 일할 준비가 되어 있다‘(Fröbel et al, 1977:528, 영어번역은 저자). 이 광고에는 성차별주의가 분명하게 깔려 있다. 정부가 포주처럼젊은 여성을 외국 투자자에게 제공한다는 인상을 주기도 한다. 사실, 성매매는 관광산업의 일부일 뿐 아니라, 제3세계 국가에서 기업운영계획의 일부이기도 하다. - P257
여성을 개발에 포함시키는 것은 대부분의 경우 여성을 이른바 소득을유발하는 활동, 즉 시장지향적인 생산으로 진입하게 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여성이 자신의 자급 생산을 확대하는 것, 토지에 대해 더 많은권한을 갖도록 노력하고, 좀 더 많은 음식, 더 많은 옷 등 자신의 소비를 위해 좀 더 많이 생산하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개발 전략에서 소득은 현금 소득을 의미한다. 현금 소득은 여성이 시장에 팔 수 있는 것을 생산할 때에만 발생할 수 있다. 제3세계 가난한 여성 사이에서 구매력이 낮기 때문에, 그들은 구매력이 있는 사람을 위해 무언가를 생산해야 한다. 구매력 있는 이들은 자국의 도시나 서구에서 산다. 여성노동을 개발에 포함시키는 전략은 수출 혹은 시장지향적 생산으로 향하게하는 것을 의미한다. 가난한 제3세계 여성은 자신이 필요한 것을 생산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이들이 구매할 수 있는 것을 생산하게 된다. - P259
이 전략의 또 다른 특징은 제3세계 여성을 노동자가 아니라 가정주부로 규정한다는 것이다. 그들이 하는 것은 노동이 아니라 ‘활동‘으로 규정된다. 가정주부 이데올로기와 핵가족 모델이 진보의 표식으로 보편화되면서 여성이 하는 모든 노동, 그것이 공식 부문이든 비공식부문이든 간에, 여성의 모든 노동을 보조적 일, 여성의 소득을 이른바 주된 부양자‘ 남편의 소득을 보조하는 소득으로 규정할 수 있게 되었다. 이런 가정주부의 경제 논리를 통해 노동력 비용이 크게 줄었다. 이것이 국제자본과 그 대변인이 오늘날 여성에게 관심을 갖는 이유 중 하나이다. 이 전략은, 앞서 본 것처럼, 유럽과 미국에서 19세기와 20세기에 처 - P259
음 만들어졌다. 그곳에서 가정주부는 ‘자유로운‘ 프롤레타리아를만들어 내기 위한 필수적인 보완제였다. 유럽과 미국의 많은 노동자가 ‘일하지 않는‘ 가정주부를 식민지에서의 착취를 통해) 감당할 수 있었던 반면에, 제3세계 남성 다수는 가정주부가 ‘일하지 않고 집에 머무를 수 있게 해줄 만한 지위를 절대 가질 수 없었다. 여성을 위해 소득을 유발하는 전략을 쓴다는 것은 제3세계 여성 대다수의 경험에 기초한 것이 아니라 여성에 대한 이미지에 기초한 발상이다. 카리브제도에서는 남성 부양자 가장이 없는 가구가 전체의 3분의 1 이상이다(Reddock, 1984 참조). 최근 연구에 따르면 아시아, 아프리카, 라틴 아메리카의 특히 시골 지역에서 여성 가장의 가구, 여성이 경제를 책임지는 가구의 수가 증가하고 있다(Youssef/Hetler, 1984). 그 이유로 수출을 위한 환금작물 생산으로의 변화, 농업의 기계화, 가난한 사람 중토지 상실한 사람이 증가하면서 생긴 토지보유시스템의 변화 등을 들수 있다. - P260
생산자로서의 여성과 어머니이자 소비자로서의 여성을 분리하는것은 또 다른 면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는 신국제분업에서 꽤 중요한 부분이다. 부유한 산업화된 국가에서 여성은 점점 더 ‘공식적 분야‘에서 쫓겨나면서, 주로 가족을 연상시키는 존재가 된다. 여성이 남편과 자녀를 위한 ‘재생산‘ 노동을 하고 소비하는 것이 그들의 ‘타고난‘ 운명이 된다. 이에 반해 제3세계 여성의 소비자와 출산자로서의 역할은 바람직하지 않거나 심지어는 소모적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1960년대 말부터 서구의 정부들, 특히 미국과 유엔조직들, 그리고 비정부기구들까지 내놓은 선언문을 살펴보면, 제3세계 여성을 잠재적인 ‘번식자‘ 와 소비자로 보는 것은 전 세계에 대한 가장 심각한 위협이라고 여기는 것을 알 수 있다. - P2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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