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은 인생 여정에서 내가 찾아낼 수 있는 최상의 장비다." 프랑스 철학자 미셸 몽테뉴의 말입니다. 인터넷에서 발견하고메모해두었는데요, 여러분은 이 표현 어떠세요? 저는 접하자마자 고개를 끄덕였어요. 온몸, 온 삶으로 동의합니다. 몸에 물이 필요하듯 삶에 책이 필요했어요. 매일매일 일상은 비슷한데 왜 매일매일 새삼스럽게 힘이 들까요. 이제 좀 살 만하다 싶으면 왜 또 발목을 잡는 문제들이 불쑥 등장하는지. 한 번씩 알수 없는 허무감에 시달리는데, 환절기 감기처럼 찾아오는 번뇌를 풀어가거나 잠시 도망치려고 할 때 책에 크게 의지했습니다. 제게 책은 생각의 갈피를 잡아주고 마음을 잠잠하게 해주는, 현명하고 너그러운 존재죠. 멋진 책을 읽으면 몸에 통째로 저장해두고 싶은 마음이 드는데, 책을 빨리 떠나보내지 않고 더 잘 사랑하는 방법이 저에겐 글쓰기입니다. - P225
당신을 보려고 애쓸수록 내 두 눈이 혼란스러워진다 지금 이 순간에조차 굶주린 아이처럼 당신 자리를 손가락으로 더듬으며 그들이 찾는 것은 당신 얼굴이 아니니까 내가 만들고 싶은 건 시가 아니다 내가 원하는 건 당신을 나 자신의 일부에 가깝게 만드는 것.
미국 시인 오드리 로드의 <치료Therapy>라는 시입니다. - P230
떤 느낌이 들었나요? 저는 "내가 만들고 싶은 건 / 시가 아니다/ 내가 원하는 건 / 당신을 나 자신의 일부에 가깝게 만드는 것."에서 가슴이 쿵 했거든요. 황지우 시인의 <나는 너다>라는 연작시도 생각이 났고요. 당신을 나 자신의 일부로 만드는게 아니라 일부에 가깝게 만든다는 표현이 시적이어서 울림이컸어요. 완전한 합일이 아니라 하나됨을 위해 애쓰는 조심스러움이 느껴져서요. 저 시구에서 "시"와 "당신"의 자리에 ‘글‘을넣어도 될 것 같아요.
내가 만들고 싶은 건 글이 아니다 내가 원하는 건 글을 나 자신의 일부에 가깝게 만드는 것. - P231
그렇습니다. 은유의 글쓰기 상담소》를 읽는 시간도 글쓰기에 대한 나의 생각, 느낌, 의견을 최대한 나에 가깝게 만드는방법을 모색하는 시간입니다.
"글을 잘 쓰고 싶은데 시를 읽는 게 도움이 되나요?" 이렇게묻는 분을 종종 만납니다. 아마 제가 쓴 책에 시가 많이 나와서 그런 듯해요. - P231
제 글쓰기는 시에서 매우 영향을 받았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몸에 좋은 영양제를 챙겨 먹듯이 글 쓰는 데 도움받으려고 시를 의도적으로 골라 읽은 건 아니고, 단지 좋아해서읽다보니 시가 글에 스민 것 같아요. 그래서 시가 글쓰기에 미친 영향을 일목요연하게 증명하며 답하긴 어렵습니다만, 시에서 얻어온 것들을 하나씩 짚어볼게요. 시를 허겁지겁 폭식하듯 읽은 시기는 인생이 가장 괴로웠을 때였어요. 정신이 탁해지고 마음이 울렁이면 출구가 필요했고, 그때마다 시집을 폈어요. 시에는 어지러운 것들, 하찮은것들, 삐뚤어진 것들, 버려진 것들, 다친 것들의 이야기가 늘나와요. 읽노라면 내 안의 어둠이 환하게 드러났어요. 특히 저는 최승자 시인을 가장 좋아해요. 고통의 발산과 응축으로 단련된 그의 단단한 시어를 보며 고통도 아름다움이 될 수 있음을 배웠습니다. - P232
나는 흘러가지 않았다. 열망과 허망을 버무려 나는 하루를 생산했고 일년을 생산했고 죽음의 월부금을 꼬박꼬박 지불했다.
"나는 흘러가지 않았다." 다음에 "생산했고/생산했고" 라는 식으로 생산했고"라는 시어가 3 행, 4행에 반복되죠. 생산했고/ ~생산했으며 "로 조사 한 개만 바꿔도 시의 느낌이 달라져요. 언어적 긴장이 덜해집니다. 여운이 덜 고여요. 조사 하나 바꾸는 게 뭐 대수냐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글에서는 조사하나의 무게가 문장 하나의 무게와 다르지 않습니다. 피아노를칠 때 음 하나하나가 중요한 것처럼 글에서도 그런 것 같아요. 조사가 만든 작은 뉘앙스 차이가 모여서 문장을 이루고 단락이되고 글이 되면서 자기만의 문체를 형성합니다. 문체의 최소 단위인 조사 하나, 단어 하나가 굉장히 낯설어지고 소중해지는 경 - P235
험을 시를 읽으며 할 수 있습니다. 저는 시에서 언어를 경제적으로 사용하는 방법 그리고 어둠을 직시하는 방법을 익혔습니다. 그래서 여러분에게도 권해드리고 싶어요. 시를 읽어보시라고요. 글 쓰는 사람은 문자와 단어에 민감할 때 더 정확한 단어, 속 깊은 단어를 쓸 수 있습니다.
그런데 시 읽기가 녹록지 않죠. 시를 어떻게 읽어야 하느냐는 질문도 자주 받아요. 읽어도 그 뜻을 도통 모르겠다면서 말이죠. 최승자 시인의 시는 비교적 이해하기 나은 편이에요. 이번 글 도입부에 소개한 오드리 로드의 시집 <블랙 유니콘》도 글쓰기 수업 교재로 썼는데, 게시판에 질문이 올라왔어요. 도저히안 읽힌다고요. "시 근육이 없는 사람은 시를 어떻게 읽어야 할까요?" "수능 시험 끝나고 시 한 편도 안 읽어봤어요." "당최 무슨 말인지 모르겠고요. 느낌도 안 와요." 이런 항의성 질문은 시수업마다 반복됩니다. 그래서 시 읽는 방법을 친절하게 답변해드렸어요. 그 답변을 공개합니다. 별건 아닙니다만. - P236
시 읽는 법 1번. 도통 무슨 말인지 모르는 시는 읽고서 넘어간다. 2번 ‘이러다가 한 편도 이해하지 못하는 거 아닌가?‘ 싶어도 넘어간다. 3번. 어쩌다 하나 얻어걸리는 시구가 있으면 밑줄을 긋는다. 4번. 맨 끝까지 인내심을 갖고 일독한 후 해제까지 읽는다. 5번. 다시 시집 한 앞으로 가서 그나마 읽을 만했던 시 위주로 골라서 소리 내어 읽는다. 6번. 세상에는 원래 이해 안 되는 말이 많다는 것, 내가 모르는 게않다는 엄정한 사실을 받아들인다. 7번. 또다시 시집을 편다. 8번. 1~7번을 체력과 시간이 허락할 때까지 반복한다. - P236
저도 시가 여전히 어렵습니다. 한 번 읽고 나면 이게 무슨말인가 싶어서 어리둥절하죠. 그런데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시를 읽는 것 같아요. 글자는 알아도 맥락을 모르는 문장이 세상에 많다는 사실에 대한 환기이죠. ‘왜내말을 못알아들어!‘라고 서로 아우성치는 인간 세상에 대한 축소판이 시집입니다. 시를 읽으면 언어에 대한 유희와 긴장과 겸손을 잃지 않게 되더라고요. 마음에 들어오는 시 한 편 얻기가 얼마나 어렵게요. 그렇지만 운명처럼 마주한 시 한 구절은 한 사람이 한 시절을 버티게도 해줍니다. 여러분도 어서 삶에 시를 들여서 언어의 섬세함과 아름다움을 탐닉하시길 바랍니다. - P237
문체는 한 작가의 고유함, 즉 글 안에 들어 있는 세계관, 정서, 문제의식, 표현력 등이 어우러져 만들어집니다. 그러니까 글쓴이의 이름을 가리고 글을 읽었는데 누가 썼는지 알겠으면그 작가는 고유한 문체를 지녔다고 말할 수 있겠죠. 저에겐 소설가 박완서 선생님 글이 그래요. 아무런 정보 없이 읽어도 선생님 글인 걸 바로 알겠더라고요. 시대의 풍속화와 삶의 세목을 그려내는 대가죠. 박완서 선생님이 쓴 글은 소설이든 산문이든 흉내 낼 수 없는 단단함과 날카로움이 있어요. 전개 속도가 빠르면서, 생활과 체험의 무게가 실린 튼튼한 문장을 쓰는 ‘사실주의 문체‘의 소유자입니다. - P238
제 글에 대한 피드백을 종합해보면 문장의 밀도와 온도에관한 이야기 같아요. 그래서 생각한 저의 문체는, ‘두부체? 몰랑몰랑하고 맛있고 단백질 함량이 높고 몸에도 좋잖아요. 그런 글을 쓰고 싶었고 그렇게 되도록 노력했습니다. 문체를 갖겠다고 의식하지 않았는데, 글을 쓰면서 ‘정확하되 아름답게쓰자‘ ‘현실을 날카롭게 짚더라도 글에 칼날을 넣지 말자‘라는신조를 갖게 되었습니다. 누군가를 저격하는 글이나 과격하고신랄한 글을 읽으면 마음이 힘들어요. 독자로서도 그런 글을잘 읽지 못하기에 쓰지도 못하는 것 같아요. 저는 사회의 불편한 진실을 글로 담아내요. 일하다가 죽는노동자의 문제를 파헤치고, 헌신과 희생을 요구당하고 자기몫의 삶을 빼앗긴 여성의 존재, 시민권을 얻지 못하는 존재, 고생 끝에 낙이 온 사람들이 아니라 같은 자리에서 계속 패배하 - P239
다른 작가의 문체도 살펴볼게요. 《계속해보겠습니다》를 쓴 황정은 작가도 고유한 문체를 가진 대표적인 소설가입니다. <백의 그림자>라는 소설은 작가만의 문체를 비롯해 주제 표현등 참고할 만한 내용이 많아서 글쓰기 수업 교재로 썼었고요. <계속해보겠습니다》는 읽었을 때, 이건 정말 황정은 작가만쓸 수 있는 소설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좋았던 구절이 여러군데 있지만 한 단락만 여러분께 공유해볼게요. - P241
목숨이란 하찮게 중단되게 마련이고 죽고 나면 사람의 일생이란그뿐이라고 그녀는 말하고 나나는 대체로 동의합니다. 인간이란덧없고 하찮습니다. 하지만 그 때문에 사랑스럽다고 나나는 생각합니다. 그 하찮음으로 어떻게든 살아가고 있으니까. 즐거워하거나 슬퍼하거나 하며, 버텨가고 있으니까.
문장이 덤덤한데 기저에는 삶에 대한 뜨거움이 있어요. 문장에 쉼표를 많이 쓰고 행도 자주 바뀌어서 장시 같고요. 소설전반에 ‘간장 한 방울‘과 같이 굉장히 사소한 것들과 무의미에가까운 덧없는 존재들을 이야기하는 것 같은데, 읽다보면 가 - P241
슴에 점점 파문이 인다고 할까요. "그래서 소중하지 않은 걸까, 생각해보면 도무지 그렇지는 않은 것입니다." 라고 쓴 문장때문입니다. 사람이란 존재가 애틋하게 느껴지고, 생에 대한사유를 자극합니다.
여러분도 고유한 문체를 갖고 싶다면 이렇게 해보세요. 자신의 글이 어땠으면 좋겠는지 고민해보는 거예요. ‘웃기면 좋겠다.‘ ‘담백한 문장을 쓰고 싶다.‘ ‘서늘하면 좋겠다.‘ ‘독자가얻어갈 게 글에 꼭 있어야 한다.‘ 이런 지향점을 두고 글을 쓰다보면 자기만의 세계관과 정서, 읽는 호흡에 따라 고유한 문체가 생기지 않을까요. 문체는 남들이 가진, 좋아 보이는 걸 가져오는 게 아니라 내 안의 가장 고유한 본질에서 형성되는 것이기에, 글쓰기는 자기 탐구라는 결론에 이르게 됩니다. - P242
글쓰기는 기본적으로 나의 좋음을 나누는 일입니다. 자기 생각이나 경험, 지혜를 글로 엮으면서 내 것과 의미의 파장이 맞는 다른 이의 표현을 넣기도 합니다. 이렇게 다른 사람이 쓴 문장을 곁들이는 일이 ‘인용‘이죠. 저는 인용구를 즐겨 씁니다. 인용구로 이루어진 책 《쓰기의 말들》도 냈고요. 인용구를 쓸 때 주의할 점은 ‘애매하면 뺀다‘입니다. 모자를떠올려보세요. 기껏 옷 잘 입고 안 어울리는 모자를 쓰면 스타일이 망가지잖아요. 글도 마찬가지죠. 글 전반에 맞춤한 인용구를 고르는 게 관건입니다. - P244
극단 작품개발팀 작가들을 대상으로 하는 인터뷰 강의 의뢰가오기도 했죠. 이처럼 인터뷰는 소통의 도구이자 타인의 삶의맥락을 이해하는 방법으로 쓰입니다.
우선 마음가짐이 중요합니다. 인터뷰가 상대의 마음을 여는 일이고, 마음은 마음으로만 얻을 수 있어요. 제가 인터뷰어로서 인터뷰를 진행하기도 하지만 작가로서 인터뷰이로 인터뷰에 응하기도 하는데요, 상대의 태도에 따라 제 자세도 달라져요. 상대가 최선을 다하면 저도 허리를 곧추세우고 진지하게 임하게 되더라고요. 안 하려던 이야기도 막 하고요. 또 제가인터뷰어로서 ‘이 인터뷰, 특별히 잘하고 싶다‘라는 간절한 마음으로 준비하고 임하면 처음엔 덤덤하던 인터뷰이의 눈빛도같이 깊어지는 걸 느끼기도 합니다. - P250
좋아하는 영화 《캐롤》에 이런 대사가 있어요. "궁금한 것들이 있는데 당신에게 물어봐도 될지……" 테레즈 (루니 마라)가캐롤(케이트 블란쳇)에게 말해요. 캐롤이 답하죠. "뭐든 물어봐줘요, 제발." 아, 저는 이 장면을 이 영화에서 가장 아름다운 장면으로 꼽아요. 당신을 알고 싶다고 말하는 바로 그 장면이요. 캐롤은 중산층으로 가족이나 지인과의 관계가 피상적인 인물이에요. 주변엔 그를 전시하려고만 할 뿐, 그의 내면까지 깊게 알고 싶어 하는 사람이 없었어요. 그러니 테레즈가 자기의 존재를 궁금해하면서 말을 걸어올 때 캐롤이 얼마나 벅찼을까요. - P250
인터뷰도 ‘나는 너를 알고 싶어‘라는 프러포즈입니다. 존재와 존재가 만나는 일, 인터뷰할 때 저는 두 가지를 상기해요. 첫 번째, 그냥 사는 사람은 없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 이야기가 있다는 점입니다. "나 같은 사람을 뭐하러 인터뷰해요"라고말하는 인터뷰이가 더러 있는데 ‘나 같은 사람은 세상에 둘도없어요. 사람은 존재 자체로 귀합니다. 역사적으로 미천한 존재, 고귀한 존재를 나누는 신분 제도가 사회에 관습처럼 남아있을 뿐이죠. 지금도 권력이 있거나 업적을 이룬 인물의 서사만 주목하죠. 그런 무의식의 지배를 받아서 우리도 사회적 성취나 쓸모에 따라 자신을 평가해요. 그런데 ‘그냥 사는 사람‘은없어요. 평범해 보이는 사람들도 다들 엄청난 자기 서사를 품고 있어요. 평범하게 살기 위해선 평범하지 않은 노력이 필요하기 때문이죠. 지금까지 살아왔다는 것은 대단한 일이고요. 인터뷰해보면 ‘한 사람이 저마다 우주‘라는 말을 수긍하게 됩니다. 그러니 어떤 사람이든 존경하는 마음으로 만나보세요. - P251
두 번째로 상기하고 내려놓지 않는 점은 ‘그렇게 훌륭한 인물‘은 세상에 없다는 것입니다. <이진순의 열림>이라는 인터뷰 기사를 연재했던 이진순 선생님은 6년 동안 122명을 만났습니다. 그랬더니 사람들이 많이 물어본대요. 지금까지 만난사람 중에 누가 제일 훌륭하냐고요. 이진순 선생님은 이렇게답합니다. "누구의 인생도 완벽하게 아름답지만은 않다. 그러나 누구에게나 한 방은 있다." 인터뷰하는 사람은 그 한 방과 - P251
누추함이 버무려진 이야기를 발견하고 끌어내는 거예요. 사람은 누구나 모자란 구석과 빛나는 구석이 있는 복합적 존재라는 것, ‘그냥 사는 사람‘은 없지만 ‘그렇게 훌륭한 사람도 없다는 것. 이러한 모순을 통합해내는 게 지성입니다.
인터뷰에서 가장 중요한 것, 바로 질문이죠. 질문은 인터뷰의 꽃입니다. 사전 준비를 잘하는 건 기본인데요, 준비한 내용에만 의존한 채 이미 아는 사실을 확인만 하고 오는 인터뷰는 좋은 인터뷰가 아니라고 생각해요. 저에게 좋은 인터뷰란, 그사람을 만나기 전에는 몰랐던 것을 알게 되는 인터뷰입니다. 틀에 박힌 이야기가 아니라 새로운 진실을 발견하는 시간이고, 그러려면 ‘열린 질문‘이 필요합니다. - P252
인터뷰에 대해 말하려면 책 한 권으로 풀어도 모자랄 것 같은데요. 제게 인터뷰란 ‘나를 흔들어놓는 대화‘입니다. 독서와경험으로 형성된 인식의 지반이 있는데, 인터뷰를 하면서 들은 타인의 말이 틈을 만들어내요. 균열과 혼란에서 다른 사유로 넘어가고, 시야가 넓어지고, 생각이 깊어지는 계기가 생깁니다. 그래서 인터뷰가 ‘인생 수업 심화반‘ 같다는 생각을 자주하죠. 인생 수업, 일대일 과외 같기도 하고요. "우리는 경험을 가진 개인들이 아니라 경험을 통해 구성된주체들 20이라고 미국의 페미니즘 역사학자 조앤 스콧은 말했죠. 인터뷰이는 자기 경험과 생각을 말하는 과정에서 다시 한번 자기 자신이 됩니다. 인터뷰어도 타인의 삶을 경유하고 나면 이전과는 다른 사람이 되겠지요. 사람에 대한 사랑과 삶의신비를 배우는 ‘인생 수업 심화반‘에 여러분도 등록하시길 바랍니다. - P256
제 하루는 글쓰기를 중심으로 굴러가요. 아이들이 학령기일 땐 아침 먹이고 학교 보내고 나서 바로 책상 앞에 앉았어요. 서너 시간 쓰다가 집중력도 떨어지고 허리도 아프고, 그러면그때부터 다른 일을 처리했습니다. 청소도 하고, 빨래도 하고, 장도 보고, 이메일 답장도 하고요. 여러분도 글을 쓰고자 한다면 ‘글쓰기와 기타 등등‘으로 하루 또는 일주일 계획을 짜보세요. 초고를 쓰기 위해 통으로 최소한 네다섯 시간을 비워두는거죠. 퇴고는 자투리 시간이 날 때마다 써도 되거든요. 저의 경우, 빈 문서 상태에서 뭐라도 써야 하는 초고 작업에 가장 많은에너지가 들지, 써놓은 글을 고치는 퇴고는 상대적으로 부담이 덜해요. 물론 퇴고하다가 미궁에 빠지는 경우도 많지만요. 글을 붙들고 있다보면 시간이 뭉텅이로 흘러가잖아요. - P258
들지현대인은 시간의 빈자이죠. 돈에 쪼들리듯 시간에 쪼들려요. 프랑스 시인 샤를 보들레르는 "시간의 학대받는 노예"라는표현을 쓰기도 했습니다. "지금은 취할 시간! 시간의 학대받는노예가 되지 않으려면, 취하라, 끊임없이 취하라!" 22 이런 사회 구조에서 어떻게 마시는 사람이 아니라 쓰는 사람이 될 것인가. 앨리스 매티슨은 말합니다. "나는 운이 좋았지만 노력도열심히 했다. 이기적이었다. 나는 글 쓰는 시간을 사수하는 법을 배웠다. "23 여러분도 글쓰기를 우선으로 하여 이렇게도 해보고 저렇게도 해보며 일상을 재편해보세요. 그렇게 써나갈때 시간의 학대받는 노예로 살지 않고, 내 삶의 주인이 되는 방법을 글쓰기가 알려줄 것입니다. - P261
그래서 매일 ‘무슨 일이 있어도‘ 글 쓰는 시간이나 ‘무슨 일이 있어도‘ 책 읽는 시간을 확보하진 않았습니다. ‘무슨 일‘이쓰는 일보다 시급한 경우가 있으니까요. 대신 글 쓰는 날을 정했어요. 칼럼 마감일이 정해지면 일주일 전에 하루를 비워놓고, 귀엽고 도도한 방해꾼 고양이 무지를 피해서 아침부터 카페에 가서 글쓰기 활동에 진입합니다. 한 1, 2년 전부터는 주로 신체 배터리가 제일 짱짱한 아침에 쓰기 시작했어요. 밤이되면 하루치 피로가 몰려오고 눈이 침침해서 글쓰기에 집중할수 없더라고요. 30대에는 취재하고 와서 새벽 한두 시까지도거뜬히 글을 썼어요. 전생의 일처럼 아득하지만 과거의 저는그랬고, 지금의 저는 아침에 초고를 씁니다. 제게 글이 잘 써지는 시간대는 배고프지 않고, 체력이 비축되어 있고, 마감을 일주일 앞둔 아침이라고 말씀드릴 수 있겠네요. - P263
언제부턴가 이렇게 생각해요. 글 한 편을 잘 쓰는 것이 아니라 하루를 잘 보내는 일이 중요하다고요. 글 한 편을 잘쓰더라도 글 쓴답시고 하루가 엉망이 되면, 그게 또 마음이 편치 않더라고요. 무엇을 위한 글인가, 회의가 들고요. 잘 살려고쓰는 건데 쓰다가 잘 살지 못한다는 느낌이 들면 안 되잖아요. 저한테 ‘잘 사는 일‘은 하루를 잘 보내는 일입니다. ‘인생‘을잘 사는 건 어려운데 ‘하루‘를 잘 보내는 건 해볼 만하죠. 아침에 일어나서 밥 먹고 <은유의 글쓰기 상담소》 한 편을 초고라도 완성하고, 아이들 먹을 닭볶음탕이라도 한 냄비 가득 만들어놓고, 카페 가서 거품 곱게 내려진 카푸치노를 마시면서 책두어 시간 읽다가 산책하고, 저녁에 친구 만나서 생맥주 한잔하면서 수다 떨고, 잠들기 전 한 시간이라도 책상 앞에 앉아 오전에 쓴 원고를 퇴고한 날. 이런 날이 제가 생각하는 최고의 하루에요. - P264
공감합니다. 저도 노는 것을 좋아하지만, 마냥 놀기만 하면불안해요. 써야 할 글이 있으면 편히 놀지 못하고, 글을 쓴 뒤놀아야 개운해요. 주말이나 연휴의 무질서가 싫고요. 하지만올리버 색스가 저렇게 일 중독으로 살아갈 수 있었던 데는 집안의 누군가가 재생산 노동을 해주지 않았을까 짐작해보아요. 제 손으로 밥상을 차리고 옷을 빨아 입고 타인을 돌보면서 글을 쓰는 사람의 이야기가 많아지면 좋겠습니다. 사는 일에 쓰는 일이 자연스럽게 녹아들어서, 당장만 쓰는사람이 아니라 오래 쓰는 사람으로 살아가도록 에너지를 안배하고 시간을 조율하는 지혜를 각자 삶에서 발휘하시길 바랍니다. - P266
앞서 리베카 솔닛,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 최승자 등 수많은 작가를 언급했는데요. 저는 한두 명이 아니라 여러 작가를멘토로 삼아요. 그들의 말과 글에 영향을 받았고 닮고 싶어서몸살을 앓았죠. 그렇게 쓰다가 글이 쌓이니까, 언제부턴가 다른 작가가 아니라 과거의 나한테 부끄럽지 않은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첫 마음, 그야말로 ‘글쓰기의 최전선‘에있다는 긴박함과 절실함으로 다졌던 다부진 각오, 무모한 결의, 순정한 마음을 여전히 잘 간직하는지 스스로 묻게 됩니다. 일전에 어느 분이 《쓰기의 말들>에서 "글쓰기에는 충분한시간이 아니라 정해진 시간이 필요하다"라는 구절이 인상깊어서 필사했다고 말했어요. 사실 뜨끔했어요. 저야말로 시간을 안배해놓지도 않고서 글 쓸 시간이 부족하다며 글 못 쓰는 핑계를 댈 때가 있거든요. 젊었을 때 한 말에만 책임지고 살아도 훌륭한 인간이 되겠구나 싶었죠. 특히 글에는 온갖 사려깊은 말과 훌륭한 생각을 쏟아내니까요. 이렇게 말해도 될까요. "내가 어떻게 써야 할지는 내 글에게 물어라." - P272
대작가들은 햇살이고 물이고 바람이에요. 이 햇살과 물과바람은 자기 삶에 뿌리내린 사람에게만 지속적인 양분이 되는 것 같아요. 대작가의 말과 글을 자기만의 관점으로 해석하고 녹여내지 않으면 고유한 글을 써내기 어렵죠. 멘토로 삼은작가를 모방하는 글로 글쓰기를 시작할 수는 있어도 언제까지흉내만 낼 수는 없어요. 한그루 나무처럼 자기만의 중심이 있어야 하니까 글쓰기에서 궁극의 멘토는 나 자신이 아닐까 싶습니다. - P273
제가 정의 내린 작가란 ‘쓰는 사람‘입니다. 나만 보는 글을쓰는 사람이 아니라 전체 공개로 어디에서든 누구나 볼 수 있는 글을 쓰는 사람. 그래서 이번 글 도입부에 소개한 칼럼에 이런 표현을 썼습니다.
작가를 꿈꾸는 학생에게 말했다. 쓰고 싶으면 빨리 쓰세요. 작가는 쓰는 사람이지 쓰기 위해 준비하는 사람이 아니에요."
작가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냐는 질문을 이렇게 바꿔볼수 있겠죠. ‘쓰는 사람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저는 독자를 대상으로 글을 쓰라고 답하겠습니다. 작가는 독자와의관계에서 태어나는 존재입니다. 독자가 당장 내 눈앞에 있든, 내가 죽은 뒤 미래에 존재하든, 내 글을 읽어주는 사람이 있어야 쓰는 행위에 비로소 의미가 발생하고 작가라는 이름에 피가 도는 것 같습니다. - P275
내가 내려는 책과 유사한 도서를 찾아 참고해보는 것도 좋습니다. 끝까지 긴장을 내려놓지 않고 모든 수단을 동원하여 할 수 있는 것을 해보는 집념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결국 쓰는 일은 체력 문제이고요.
미국 해양생물학자 레이첼 카슨은 《침묵의 봄》이란 작품으로 잘 알려진 작가인데요.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는 희귀한 기적을 제외하고, 책을 쓰는 것은 경제적으로 승산 없는 도박과도 같다" 고 말합니다. 맞아요. 고역이죠. 그런데 왜 썼을까요? 자신의 첫 에세이 《바닷바람을 맞으며》에서 "바다의 생명에 대해 알아야 한다는 깊은 확신에서 우러나 이 책을 썼다" 라고 고백합니다. 여러분의 확신은 무엇인가요? 그에 대한 답변이 첫 책의 주제로 담길 것입니다. - P279
능감이 저를 글쓰기 앞으로 자꾸 데려다놓는 것 같습니다. 이재밌는 글쓰기를 저만 할 수 없어서 《은유의 글쓰기 상담소》라는 책으로 여러분과 글쓰기 이야기를 열심히 나눠봅니다. 어서 이 혼란과 재미의 세계로 건너오세요. 마중 나가 있겠습니다. - P295
세월호 1주기 즈음인 2015년 4월에 글쓰기의 최전선》이 출간되었다. 책을 본격적으로 집필하는 1년 내내 슬픔을 등짐 지고썼던 기억이 난다. 《은유의 글쓰기 상담소》를 마감하는 중에 이태원에서 젊은 목숨 158명이 무참히 스러져갔다. 이번에도살릴 수 있었는데 살리지 못했다. "아이들은 놀러 갔다가 죽은게 아니고, 노느라 정신이 팔린 자들 때문에 죽은 것"이라던 세월호 유가족의 말이 이태원에서 일어난 참사에도 그대로 적용된다는 게 이 시대의 절망이고 비극이다. 대참사와 대참사 사이에서 책을 내자니 고개가 숙여진다. 글쓰기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나는 왜 쓰는가, 거듭 되묻게되는 시절. 그런데 글쓰기가 아니면 또 어떻게 슬픔에 닿을 수있을지 아직은 잘 모르겠다. 사회적 약속을 지키지 않는 사람들, 사회 구성원이 맡은 바 자기 일을 하지 않을 때 어떤 참사가 발생하는지 두 눈으로 보았으므로 나는 정신 차리고 슬픔에 집중하는 것으로써 쓰는 사람의 본분을 다하고 싶다. 고인의 명복을 빈다. - P2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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