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을 키우다보면 질문이 생기고, 질문은 생각을 촉발하죠. 앞선 글 〈상식과 관습을 뒤집어서 사고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와 맞닿는 내용이겠네요. 일상에서 상식과 통념에 따라 ‘생각한다‘는 자각도 없이 익숙한 대로 느끼고 판단하며 살잖아요. 이렇게 시스템화된 사고의 회로에 중단이 일어날 때, 진짜 나의 생각이 시작됩니다. 그러려면 부단히 자각해야 하는것 같아요. 마치 그냥 앉아 있으면 허리랑 어깨가 굽기 쉬운데, 일상에서 ‘허리 펴기‘를 의식해서 자세를 잡아야 체형을 바로잡을 수 있듯이요. ‘생각 펴기‘ ‘생각 키우기‘를 의식적으로 해야 질문하는 몸을 만들 수 있겠죠.


제가 아는 질문하는 힘을 기르는 방법은 ‘낯선 환경에 놓여보기‘ 그리고 ‘이방인 되기‘예요. 일상에서 생각하고 질문하기가 어려운 이유는 자신을 둘러싼 환경에 익숙하기 때문이죠. 다르게 생각할 계기가 잘 없어요. 저는 일 때문에 낯선 환경에 종종 놓입니다. - P178

강연이나 취재 제안이 왔을 때 익숙한 일, 쉽게 할 수 있는일만 골라서 하면 편하겠지만 안주하기보다 낯설고도 의미 있는 주제를 다뤄보려고 의도적으로 노력해요. 학생들의 금연교육에 강연자로 와달라는 요청을 받았을 때도 처음에는 자신이없었지만 용기를 내어 가봤고요. 있지만 없는 아이들의 집필 제안이 왔을 때 한번 해보자고 결심한 이유도 ‘미등록 이주아동‘의 존재가 저한테 가장 먼 이웃이었기 때문입니다. 역시나 인터뷰를 위해 만난 이주아동, 이주노동자, 이주활동가의말을 들으면서 편견이 깨지고, 이주아동에 대한 제 생각을 만들어갈 수 있었죠. 책에 나온 미등록 이주노동자로 한국에서25년을 산 인화 씨도 이렇게 말했어요. 사람은 불편해야 생각한다고요. - P182

저는 ‘현장‘이라는 말을 참 좋아하는데요. 삶이 발생하는 자리, 생생한 현실을 일깨우는 삶의 진실이 현장에 있습니다. 일상에 매몰되지 않고 낯선 이웃이나 현장을 찾아나설 때, 기존의 앎에 혼란스러움을 느끼고 그 혼돈의 토양에서 생각의 씨앗이 발아합니다. 여러분도 각자 찾아보세요. ‘나의 현장은 어 - P182

디인가‘ ‘내가 이방인이 되는 자리가 어디인가‘ ‘나의 가장 먼이웃은 누구인가‘ 하는 것들을요. 하지 않던 상상을 하고 현장을 기웃거리고 새로운 시도를 하는 것 자체가 일상에서 생각을 키우는 시작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꼭 어딜 가야만 하는 건 아닙니다. 같은 장소도 얼마든지 낯선 곳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아이 키우는 여성이 글쓰기에 좋은 환경에 놓여 있다고 생각해요. 아이를 낳으면 익숙하던 일상이 날마다 한없이 낯설어지거든요. 나는 그대로인거 같은데 엄마가 되면 기존의 내가 사라지는 느낌도 드니까요. 한번은 유자녀 여성 학인이 이런 글을 썼어요. 엄마를 ‘워킹맘‘과 ‘전업맘‘으로 구분하는 이분법에 반대한다고요.  - P183

집에서 아이 키우는 엄마도 가사노동을 하기에 워킹맘이고, 회사에 다니는 워킹맘도 집안일을 상당 부분 한다는 거죠. 또한 자신은 아이를 키우면서 본의아니게 직장을 관뒀는데, 전업맘이 되니 ‘집에서 노니까 좋겠다‘라는 말을 듣는대요. 전업맘과워킹맘은 엄마라는 존재를 소득이 있느냐 없느냐를 기준으로나눈, 즉 경제적 지표에 따른 구분입니다. 세상이 말하는 ‘쓸모있는 존재는 소득이 있는 경제활동인구를 뜻하고요. ‘사람을나누는 기준이 왜 돈벌이가 됐는가‘ 하는 중요한 질문을 던지는 글이었습니다. 일상에서 찾은 좋은 글감이죠.


저는 의문이 들면 그 생각을 말로 많이 해보는 편이에요.  - P183

입 밖으로 꺼내 이야기한 자기 고민을 누군가가 받아주고 그 생각에 살을 붙여주고 뒤집어서 안 보이는 면을 보여주기도 하죠. 질문이 만들어지고 발상의전환이 일어납니다.
모든 멋진 것은 협업의 산물이죠.
‘훌륭하게 생각하기‘라고 하면 부담스러운데 ‘다르게 생각하기‘라고 표현하면 해볼 만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방인이되는 자리에 들어가보고, 마음에 걸리는 말을 붙잡아보고, 자기 생각을 말해보는 과정에서 다른 생각을 만날 수 있을 것입니다. - P185

추상적이고 관념적이라는 평을 듣는 글을 고칠 방법이 없나요?"라는 질문에 저는 방법이 있다고 답합니다. 방법이 없는일은 없는 거 같아요. 시간이 부족한 일은 있어도요.
처음으로 마음에 새긴 글쓰기 팁이 ‘멋진 글보다 쉬운 글을쓰라는 말이었어요. 처음에는 이 조언이 못마땅했죠. 쉬운 글은 시시하고 밋밋한데 왜 쉬운 글을 쓰라는 건지, 멋진 글을 지향해서 써야 하는 거 아닌가 싶어서요. 무조건 멋지게 써야 한다는 생각이 강했거든요. 그런데 쓰다보니까 쉬운 글을 쓰라는 말이 맞더라고요. 멋진 글을 쓰려고 하면 나도 모르게 글이 추상적으로 써져요. 괜히 아는 척도 좀 해야 할 것 같으니까 철학 용어도 쓰고, 현실의 구질구질함을 담지 않은 개념어도 골라 쓰고요. 물론 개념어나 관념어도 때론 필요하지만 과하면 글에 메시지가 아니라 허세만 남기도 해요. 쉬운 글을 쓰라는 건, 내가 어떻게 보일지만 생각하며 자아도취 하지 말고 독자 중심으로 독자가 알아듣도록 쓰라는 뜻입니다. "산문에서 모호하게 글을 쓰는 자는 대개 허세를 부리고 자기중심적인 자다. - P186

열린 마음과 공감하는 태도로 자기만의 목적을 넘어서 더 큰 목적을 달성하려고 글을 쓰는 자는 글이 명료할 수밖에 없다."
언어학자이자 작가인 F. L. 루카스가 한 말입니다. - P187

동시에 글 쓰는 사람은 자기 경험을 객관적으로 재구성하고 재해석하여 구체적으로 써야 해요. 쉬운 듯 어려워요. 어떤상황을 세세하게 쓰려면 기억을 복기해 찬찬히 상황을 되짚어보고 무슨 사건을 쓸지 고민하고, 왜 좋고 나빴는지 감정을 깊이 들여다봐야 하는데 이 과정에 상당한 노동이 들거든요. 힘도 들고 시간도 듭니다. 또 낱낱이 쓰려니 무언가 부끄럽고 주저하게 됩니다. 그러니까 뭉뚱그려서 추상적인 글을 쓰는 거예요. 어떤 사람의 글이 관념적이고 모호한 이유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게으름‘도 한몫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정리하자면 글이 모호하고 추상적이라는 지적을 받는다는 건 노동하지 않았다, 자기한테 집중하지 않았다, 감추고 싶은 게 많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모호하고 추상적인 글쓰기에서 벗어나는 방법으로 저는 늘 자기 경험의 특정 상황에서 글쓰기의 발상을 시작하라고 권합니다. 삶의 한 장면이요.  - P188

추상적인 글쓰기를 피하는 방법 두 번째는 글을 쓸 때 내 글을 읽었으면 하는 독자 한 명을 상정해보는 겁니다. 친구한테드라마의 한 장면을 말해주듯이 글 속 인물의 행동과 감정의동선을 따라서 생생하게 써보세요.
세 번째는 글을 다 쓰고 나서 개념어, 관념어에 동그라미 쳐보세요. 그런 단어를 지우고 생활 언어로, 구체적인 동사로 바꿔보는 것도 방법입니다. 가령 ‘나는 글 쓰는 걸 좋아하지만 가끔쓴다. 어떤 일을 계획할 때나 다짐이 필요한 순간에만 쓰는편이다‘라는 문장을 보겠습니다. "가끔" "일" "계획" "다짐" 이런 단어가 모호해요. 계획하고 다짐한 일의 구체적 사실을 문장에 채워 넣어야죠. ‘나는 한 달 동안 글을 두 편 썼다. 필라테스 강사 자격 시험에 대비해 공부 계획을 짤 때랑 나에게 상처주는 친구를 더 이상 만나지 말자는 다짐을 할 때였다.‘ 이렇게고치면 자기 상태를 더 명확하게 진단할 수 있습니다. 글을 쓰고 싶다고 생각만 했지 쓰지 않았다는 것, 언제 내가 글쓰기 앞에 서게 되는지를 인식하면 다음 문장도 찾아지겠죠. - P189

‘정확하게 쓰자‘ ‘간결하게 쓰자‘ ‘쉽게 쓰자‘ 세 가지 표현은 맥락이 비슷한 듯 다릅니다. "간결하고 쉬운 글이 좋은 글인가요?" 이 질문을 뒤집어보면 "복잡하고 어려운 글이 나쁜 글인가요?"라고 표현할 수도 있겠지요.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간단하고 쉬운 글이라고 다 좋은 글이 아니고, 복잡하고 어렵다고 다 나쁜 글도 아니다, 저는 이렇게 말씀드리고 싶어요.
이분법 구도에서는 좋은 질문이 안 나와요. 대답도 단순해져요. 세상일을 선악으로 명확히 구분할 수 없듯이 글쓰기도 그렇습니다. 우선 ‘쉽다‘ ‘어렵다‘라는 기준도 사람마다 다르겠죠.
쉽거나 어려운 글보단 내용이 빈약한 쉬운 글 혹은 얻어갈 내용 없이 어렵기만 한 글, 이런 글이 문제가 되는 것 같습니다. - P191

저도 간결한 문장을 선호해서가끔 써요. 그런데 과하면 역효과가 생깁니다. 한문 투와 번역투 그 자체가 문제라기보다 적절하지 못해서 문제가 되는 것같습니다. 독자와 소통하려는 마음보다 어휘력이나 지식을 과시하려는 마음이 더 크게 느껴지는 글은 좋은 글이라고 보기어렵습니다. 쓰는 사람의 안중에 읽는 사람이 있는지 없는지독자는 다 느끼잖아요. 나쁜 글의 예를 들지는 않고 좋은 글의예를 들게요. 아서 프랭크가 《몸의 증언》에 쓴 글입니다. 

질병 그 자체는 예측가능성의 상실이다. 그리고 그것은 그 이상의상실을 이야기한다. 요실금, 숨가쁨 혹은 건망증, 떨림과 발작, 그리고 아픈 몸으로 인한 다른 모든 "실패들."(…) 질병은 통제를 상실한 채로 살아가는 것을 배우는 것이다.  - P192

토목만이 아니라 농사든 가사노동이든 자신이 몸담은 분야에 관해 쓰면 좀 더 간결하고 쉬우면서 아름다운 글로 표현할수 있는 것 같아요.
글쓰기 책에서 말하는 ‘간단하고 쉽게 쓰라‘는 의미는 지식만 전시하는 글, 자아만 비대하고 독자의 자리가 없는 자아도취형 글을 쓰지 말라는 뜻으로 저는 해석합니다. 승객도 안 태우고 자기만 앞서가면 곤란합니다. 좋은 작가는 숙련된 기관사처럼 독자를 정확하고 안전하게 자신이 본 세계로 데려다줍니다. - P195

긴 글을 쓰고 싶다면 무르익지 않은 생각이라도 표현을 자제하기보단 SNS를 활용하는 것도 좋습니다. 발상을 저장해두는용도로요. 글을 완성하면 블로그나 브런치같이 타인의 반응이비교적 즉각적이지 않은, 고요하고 안정적인 느낌의 플랫폼에공간을 마련해 쓰는 겁니다. 우선 얼마나 쓸지 분량을 정해보세요. ‘긴 글‘의 기준은 저마다 다르니까요. 저한테 긴 글은 A4용지에 서체 크기 10포인트를 기준으로 네 장 넘는 글이거든요.
한 장이 200자 원고지 기준으로 대략 10매이니, 원고지 30~50매 정도 분량으로 청탁이 오면 살짝 긴장하죠. 여러분도 길다고느끼는 글의 분량이 어느정도인지 헤아려보세요. - P197

처음에는 SNS에 쓰던 글의 두 배 분량을 써보겠다고 목표를세우고 그렇게 약 열 편, 스무 편 정도 글을 써보세요. 그 정도분량을 쓰는 일이 수월해지면 A4용지 한 장 반으로 분량을 또늘려보고요. 그 정도 분량이 200자 원고지를 기준으로 15매 정도 됩니다. 제가 글쓰기 수업에서 내는 과제의 분량이죠. 처음글쓰기를 배우는 분에게 A4용지 한 장은 무언가를 온전히 말하기에 좀 짧고, 두 장은 길게 느껴져서 좀 부담되는 분량인 듯합니다. 한 장 반에서 두 장 사이 분량이 자기 생각 한 가지를잘 정돈해 표현해내기엔 무리가 없는 것 같아요. 그렇게 쓰다보면 두 장 정도는 어느새 어려움 없이 쓰는 자신을 발견할 수있습니다. 그렇게 쓰다보면 자연스럽게 페이지가 넘어가고 점차 써내는 분량이 늘겠죠. - P198

글의 길이와 질이 비례하는 건 아닙니다. 다만, 여러분도 자기 한계를 조금씩 늘려가는 느낌으로 평소 쓰던 글보다 사고의 호흡이 깊은 글쓰기에 도전해보시라는 겁니다. 오늘 주제와 관련된 좋은 글이 있어서 나누며 마무리하겠습니다. 발터벤야민의 <사유이미지>에 나오는 글이에요.


훌륭한 작가는 자기가 생각하는 것 이상을 말하지 않는다. 그리고이 점은 대단히 중요하다. 말한다는 것은 생각하기의 표현인 것만이 아니라 생각하기의 실현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걸어간다는 것이 어떤 목표에 도달하고자 하는 소망의 표현인 것만이 아니라 그소망의 실현인 것과 마찬가지다. 하지만 그 실현이 어떤 종류의 것인지, 즉 그 실현이 목표에 정확하게 합당한 실현이 되는지, 아니 - P199

면 탐욕스럽고 흐리멍덩하게 소망에 자신을 탕진하는지 길을 가고 있는 자의 훈련 여부에 달려 있다. 그가 자신을 절제하면서 불필요하거나 장황하거나 어슬렁거리는 동작들을 피하면 피할수록, 모든 신체의 자세는 자신에게 그만큼 더 족하게 되고, 그 신체를더욱더 적절하게 운용하게 된다. 열악한 작가는 착상이 많이 떠올라 그 착상들 속에서 기력을 탕진해버린다. 이것은 제대로 훈련받지 못한 열악한 달리기 선수가 사지를 맥 빠지게 움직이거나 지나치게 활발하게 움직이느라 기력을 탕진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그 열악한 작가는 자기가 생각하는 바를 냉철하게 말할 줄 모른다. 재기발랄하게 훈련받은 신체가 펼치는 연기를자신의 스타일에 맞게 사유에 부여하는 것이 바로 훌륭한 작가의재능이다. 훌륭한 작가는 결코 자신이 생각했던 것 이상을 말하지않는다. 그래서 그가 쓰는 글은 그 자신에게 도움을 주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그가 말하고자 하는 것에만 도움을 준다.  - P200

"글을 쓰다만 채로 두지 말고 한 편을 끝까지 완성해보세요."
글쓰기 수업에서 자주 하는 조언 중 하나입니다. 격식을 갖춘글 한 편 쓰기를 완수하는 체험을 통해 성취감을 느끼고 자기글의 현 상태와 능력치를 파악하는 거죠. ‘아, 내가 이 정도 쓰는구나‘ 하고요. 그런데 오래 붙들고 있어도 완성하지 못하는글이 있죠. 가까스로 마무리를 지었는데 분량만 채웠을 뿐 내용은 엉성하기 짝이 없고요. 아무리 시간과 공을 들여도 완성되지 않는 글도 있습니다.
글을 완성하지 못하는 이유는 글감에 대한 생각이 설익었기 때문입니다. 멸치 육수를 내는데 멸치가 서른 마리 있는 육수랑 세 마리 있는 육수를 비교해보면 농도가 다르겠죠. 세 마리밖에 없으면 오래 끓여도 육수가 밍밍합니다. 멸치가 서른마리 있으면 잠깐 끓여도 육수가 진하게 우러나고요. 진한 글을 쓰고 싶으면 생각의 멸치를 모아야 합니다.  - P201

2년 동안 나는 생각했던 만큼 자주 사람들을 만나지도 글을 쓰지도 못했다. 읽기만 했다. 내 책은 무엇을 이야기하게 될까? 글쎄,
전쟁에 대한 또 한 권의 책이라……. 무엇 때문에? 전쟁은 사실, 크고 작은 전쟁들에서부터 널리 알려지거나 알려지지 않은 전쟁들까지, 이미 수천 번도 더 넘게 있지 않았던가. 하지만・・・・・…. 그건 모두 남자들이 남자들의 목소리를 들려준 것이다. 그건 분명한 사실이다. 우리는 전쟁에 대한 모든 것을 ‘남자의 목소리‘를 통해 알았다. 우리는 모두 ‘남자‘가 이해하는 전쟁, ‘남자‘가 느끼는 전쟁에 사로잡혀 있다. ‘남자‘들의 언어로 쓰인 전쟁. 여자들은 침묵한다. 나를 제외한 그 누구도 할머니의 이야기를 묻지 않았다. 나의 엄마이야기도, 심지어 전쟁터에 나갔던 여자들조차 알려들지 않았다.
우연히 전쟁 이야기가 시작되더라도, 그건 ‘남자‘들의 전쟁 이야기이지, ‘여자‘들의 전쟁은 아니다. - P202

전쟁에 대한 또 다른 책을 왜 내야 하는지 자기 정리가 필요했다는 겁니다. 저 고민의 시간, 저 읽기의 시간을 통과했고 저 생각들을 차곡차곡 쌓아 발효했기 때문에 이렇게 묵직한 좋은책이 나왔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글 한 편을 완성하는 노하우나 훈련법도 다르지 않을 것 같아요. 일단 목표한 분량을 채워 써보는 것. 완성한 글에 세상사람들과 나눌 만한 ‘알맹이‘가 있는지 점검하는 것. 알맹이가부족하다고 판단했다면 보완하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 책을 더 읽을지, 자료를 더 찾을지, 취재를 해볼지 생각해보고 실행하는 것. 다시 써볼 것. 이 과정을 반복하는 거죠. - P203

한 편의 글을 완성하는 일은 ‘이게 최선이다‘라는 완성도에대한 자기 기준을 세우고 감각을 기르는 일입니다. 글쓰기 경력이 쌓인다고 해서 저절로 생기지도 않는 것 같아요.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도 고민하잖아요. 일전에 아는 시인 선배랑통화를 했는데, 그도 요즘 너무 괴롭다는 거예요. 왜 그러냐고물었더니, 3년 동안 쓴 시를 엮어 시집을 내기로 했는데 스스로 만족스럽지 않아서 계속 붙들고 있었대요. 고치고 다듬으며 계속 글을 매만진 거죠. 그런데 너무 고치고 다듬었는지 점점 이상해지는 것 같대요. 소설과 다르게 시는 퇴고를 많이 하면 안 좋은데, 알면서도 이대로는 마음에 안 들고. 이 가을에너무 절망스럽다고 하소연을 했어요. 선배의 이야기가 이상하 - P203

게 위로가 되더라고요. 글 한 편이든, 책 한 권이든 ‘완전한 상태‘라고 느끼는 건 어쩌면 영원히 불가능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란 ‘글 완성‘이란 임무에서 너무 빨리 떠나지도 말고, 너무 늦도록 매달려 있지도 말아야 하는 것.
이게 전부 아닐까요.
《올드걸의 시집》은 2008년부터 블로그에 쓴 글들을 엮은책입니다. 블로그에 올리기 전에도, 올리고 나서도, 수정 버튼을 눌러서 거슬리는 단어나 문장을 고치기는 했지만 저 혼자만 보는 글이라고 생각해서 현재 지면에 연재하는 글의 수준으로 공력을 들이지는 않았거든요. 그래서인지 어설퍼도 자유로운 활력과 검열 없는 감성이 글에 담겨 있어요. 분량 제한도없어서 훨씬 가벼운 마음으로 썼죠. 퇴고를 많이 안 했다고 해서 열 번 퇴고한 글보다 완성도가 무조건 떨어지는 것 같지도않아요. 그래서 헷갈려요. - P204

글쓰기는 이제 끝내야 하나 계속 써야 하나 영원히 헤매는일 같습니다. 저는 주로 기권하는 심정으로 글을 마쳐요. 이만하면 됐다는 확신보다는 더는 못 하겠다는 몸의 신호를 따르죠. 오래 앉아 있어 허리가 너무 아프거나, 똑같은 글을 너무여러 번 봐서 토가 나올 것 같을 때 "더는 못 고쳐."하면서 그냥 누워버립니다. 하하. 다른 일도 해야 하니까 더 이상 붙들고있을 수 없고요. 이렇게 물리적 한계 상황까지 끈질기게 내 글을 붙들어보는 것. 과연 완성한 것인지, 내가 질문하고 내가 대 - P204

답하는 이 외롭고 불확실한 과정을 견디는 것. 이것이 글 한 편을 완성하는 노하우가 아닐까 싶습니다. 영화 <블랙스완>에이런 대사가 나옵니다. "완벽함은 집착만으로 안 돼. 놓을 줄도알아야 돼. 너를 가로막는 건 너 자신밖에 없어."
누군가의 표현대로 완벽함은 안 주시고 완벽주의만 주신 신을 원망하며 끝나지 않는 글쓰기를 잘 마무리하시길 바랍니다. - P205

자기 검열, 남들의 시선과 평가로 자신을 옭아매는 상태죠. 아마 글쓰기 최강의 방해물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쭉쭉 써내려가도 글을 완성하는 일이 만만치 않은데, 자기 검열을 하면 망설임과 주저함이 더해지니까요. 특히 상실을 다루거나 자신의 취약함을 내보이는 글을 쓸 때 내 안의 검열관이 더 엄격하게 활동해요. 이 글을 읽은 사람들은 나를 어떻게볼까?‘ 하는 생각이 먼저 들죠. 때로는 어떤 시선이나 평가가그릇된 사회 통념인 걸 알아도 자꾸 위축되고, 제아무리 내가옳다고 생각하는 걸 쓰더라도 세상 사람들이 어떻게 받아들일지 걱정하며 써내길 망설이는 건 자연스러운 자기 보호라고생각해요. 그래도 자기 검열에 너무 오래 결박되어 있으면 생각이 시들고 글이 되지 못하겠죠. - P206

보통 성폭력 피해를 다루는 기사에서 피해자에게 씻을 수없는 상처가 남았다‘라는 표현을 관용구처럼 쓰잖아요. 그런데 성폭력 피해로 생긴 상처를 정말 씻을 수 없을까요? ‘씻을수 없는 상처‘라는 말 자체가 순결주의에 따른 낙인이죠. 사라져야 할 말입니다. 제가 《아버지의 사과 편지》의 해제를 썼는데요. 쓰면서도 그 부분을 강조했습니다. "아버지의 사과 편지》는 씻을 수 없는 상처의 기록이라서가 아니라 ‘기록할 수없는 상처는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탁월하다. 이 책은 자신의 목소리를 잃은 여성들, 혹은 자신이 목소리를 가졌다는 사실조차 모르는 여성들에게 용기가 될 것이다."
우리에게도 그런 책이 있습니다. 한국 조직 문화의 고질적인 위계 폭력을 드러낸 안희정 성폭력 사건의 생존자 김지은씨가 쓴 《김지은입니다》가 그렇죠. 자기 검열이라는 두터운벽을 뚫고 힘 있게 써낸 ‘진실 말하기parrhesia‘의 좋은 교본이라고 생각합니다. - P208

사람은 변합니다. 노력하면 느리게라도 달라져요. 당장은자기 안에 있는 검열관의 눈치를 보느라 쓰지 못하지만 쓰고싶은 글이 있다면 그것에 대해 쓴 글로 주변을 채우세요. 젊은여성이 청소노동자로 일한 경험을 기록한 김예지 작가의 책 - P208

<저 청소일 하는데요?>가 있어요. 청소노동을 낮추어 보는 사회적 통념으로 인해 직업을 부끄럽게 느낄 수도 있는데 자기검열을 덤덤하게 넘어선 작품이에요. 결혼은 했지만 아이를낳고 싶지 않다면 최지은 작가의 <엄마는 되지 않기로 했습니다 같은 책도 좋고요. 결혼을 안 했지만 아이를 원해서 아이둘을 입양한 백지선 작가가 쓴 <비혼이고 아이를 키웁니다>라는 책도 있어요. 그런 비출산 경험자들의 글에서 언어를 수집하면 됩니다.
소위 ‘정상적인 삶‘에 대한 환영을 지운 자리에 저마다 자기삶의 지도를 그리도록 용기와 지침을 주는 책은 찾아보면 반드시 있습니다. 긴 시간에 걸쳐 이런 책을 꾸준히 읽어나간다면 자기 검열로 고민하던 여러분도 ‘아, 그냥 쓰면 되는구나‘
‘써도 별일 안 일어나는구나‘ ‘쓴 사람이 이상해 보이는 게 아니라 당당하고 멋있어 보이는구나‘라고 느낄 거예요. 서서히그런 언어에 물들 때 자기 안에 있는 검열관의 목소리가 힘을잃을 것입니다. - P209

독서 행위를 강제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책에 손이 갈까요? 제 경우, 지금 제가 품고 있는 화두와 관련 있는 책에 끌리거나 믿을 만한 사람이 쓴 책에 관심이 가요. ‘무슨 책이냐‘보다 ‘누가 쓴 책이냐‘ 혹은 ‘누가 추천하는 책이냐‘를 더 중시해요. 책은 자기 주관과직관에 따라 집었을 때 실패 확률이 적을 것 같아요. 버지니아울프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독서에 관해 한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줄 수 있는 유일한 조언은아무 조언도 따르지 말고 자신의 본능에 따라, 자신의 이성을 사용하여, 자신의 결론에 이르라는 것뿐이다. - P214

제가 도달한 결론은 이렇습니다. ‘좋은 책이란 읽는 사람을다른 생각, 다른 세계로 안내하는 책이다.‘ 몰랐던 사실을 알게해주고, 모호했던 감정을 선명하게 만들고, 도망가고 싶은 현실을 직시하게 하는 책. 이해 안 되는 사람을 이해하는 단초를제공하는 책. 무력감이 들 때 하고 싶은 일을 안겨주는 책, 그래서 읽다보면 자세를 고쳐 앉게 하는 책. 베껴 쓰고 싶은 문장이 많아서 다급하게 노트와 펜을 찾게 하는 책. 궁극적으로 읽고 나면 나도 세상도 조금 더 나은 방향으로 바뀌도록 돕는 책.
이런 책이 저한테는 좋은 책입니다.
읽을 당시에 하는 고민에 따라 좋다고 느끼는 책도 달라지 - P214

는데요. 30대였던 제게 좋은 책은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예요. 요즘도 인생 책이 뭐냐는 질문을 받으면 표지가 나달나달해진 저 책이 먼저 떠오릅니다. 문장이 아름답고 명쾌하고 통찰력 있는 표현으로 일깨움을 줍니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힘든 노동을 좋아하고, 신속하고 새롭고 낯선 것을 좋아하는 너희들 모두는 너희 자신을 제대로 감당하지 못하고 있다. 너희들의 근면이란 것도 자신을 잊고자 하는 도피책이자 의지에 불과하다.  - P215

처음 이 문장 읽고 굉장히 놀랐어요. 꾀부리지 않고 묵묵히일하는 ‘근면·성실‘이 좋은 덕목인 줄 알았는데 ‘열심히 일하는 건 너 자신을 잊기 위해서‘라는 일갈이 너무 맞는 말인 거예요. 일하느라 지쳐서 생각할 겨를이 없잖아요. 퇴근 후엔 맥주한 캔 따서 넷플릭스 보다가 자고 싶지, 내 문제만 해도 머리아픈데 남 일이나 사회문제에 신경 쓰고 싶지 않고요. 니체가이런 우리의 현실을 들여다보는 듯이 말해요. 니체의 또 다른책 《아침놀》에는 이런 대목이 나옵니다.


왜냐하면 노동은 극히 많은 신경의 힘을 소모하고, 성찰, 고민, 몽상, 걱정, 애정, 증오를 위해 쓰일 힘을 앗아가기 때문이다. 그것은항상 작은 목표를 겨냥하면서 수월하고 규칙적인 만족을 가져다 - P215

준다. 따라서 고된 노동이 끊임없이 행해지는 사회는 보다 안전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이 안전이 현재는 최고의 신성으로서 숭배되고 있다. 


고대 노동자와 달리 근대 노동자는 노동에 대한 ‘독특한 자기 위안‘이 있다고 니체가 말합니다. 노동이 자아실현의 수단이기도 하지만 자아붕괴를 초래하고 건강을 해치기도 해요. 김밥집에서 일하는 중년 여성이 온종일 김밥을 말다보니 손목관절이 망가져서 다른 일을 못 한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글 쓰는 노동도 허리와 손가락 관절을 망가뜨립니다.  - P216

니체가 물음을 제기합니다. ‘신체와 영혼을 변질시키는 활동으로써 노동이어떻게 가치를 획득하게 되었을까?‘ 니체에 따르면, 기독교 윤리학이 성행하자 사회에선 근면·성실한 모습을 찬양하게 되었고 개개인의 충동을 효과적으로 길들이고 노예화하였다는겁니다. 아침부터 늦은 밤까지 행해지는 고된 노동을 비판하며 이렇게 단언하죠. ‘노동은 경찰이다.‘
니체를 ‘망치의 철학자‘라고 부릅니다. 낡은 관념을 깨부수고 새로운 사상을 세운다는 의미에서요. 그 말이 딱 맞는 거예요. 니체는 ‘나‘와 세상을 둘러싼 장막을 걷어내고 현실을 직시하게 하는 언어를 구사했죠. 자기 자신에 대한 의도적 무지와세상에 대한 무관심을 일깨워주었고, 내가 행하는 노동이 누구의 이익에 복무하는가를 정신 차리고 따져보게 했거든요. - P216

소설가 박완서 선생님은 책 쓰는 이유를 이렇게 밝혔어요.
"나는 이웃들의 삶 속에 존재의 혁명을 일으키고 싶기 때문입니다." 책은 충분히 그런 역할이 가능한 매체라고 생각합니다.
대상과 사물과 현상에 대한 인식 체계는 언어로 이루어져 있으니까요. 다르게 생각할 수 있다면 다르게 살 수도 있습니다.
솔직히 저도 책 쓰는 사람으로서 존재 해방에 기여하는 책을 쓰는 데 욕심이 나거든요. 대단한 프로젝트라기보단, 그저나를 해방시킨 언어들을 타인의 삶에 이식하려는 노동이 제게는 글쓰기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제 책을 읽고 삶이 달라졌다거나 사회문제에 관심을 갖게 됐다는 리뷰를 볼 때 보람을 느낍니다.
《글쓰기의 최전선》 추천사에 홍세화 선생님이 이런 표현을 - P218

썼어요. "독서는 사람을 풍요롭게 하고 글쓰기는 사람을 정교하게 한다." 좋은 책을 읽거들랑 내게 들어온 가장 좋은 것들을세상에 풀어놓는다는 보시의 마음으로, 글로 써서 널리 나누시길 바랍니다. - P219

주변에 글 쓰는 사람을 보면 대부분 다독가예요.
읽기가 쓰기에 곧바로 영향을 준다기보다는, 독서 행위로인해 생각할 시간을 확보하고 좋은 문장을 통과하게 된다는점에서 장기적으로 글쓰기에 도움을 주는 것 같습니다. 내 생각이 발아했을 때, 이미 사유의 줄기가 튼튼히 뿌리내리고 열매가 열린 책을 읽으면 힘을 얻기도 하죠. 나의 직관이나 느낌이 영 엉터리는 아니었음을 확인하면 안도감이 들어요. 반대로 나의 어떤 생각이 무지에 근거한 편견이었음을 알아채기도하고요. 이렇게 책은 생각의 토양에 햇살과 바람과 물을 공급해줍니다. 장대비와 천둥, 번개를 동반한 자극도 주죠. 글쓰기에 필요한 양분을 제공해주는 책에 본능적으로 손이 가는 것 같습니다. - P220

그랬더니 도수 맞는 안경을 낀 것처럼 세상이 더 선명해졌어요.
내가 놓여 있는 사회의 구조와 모순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고, 그걸 어서 사람들과 나누고 싶어서 글을 썼습니다. 읽기가쓰기를 재촉한 거죠.
글을 잘 쓰려면 책을 많이 읽어야 하냐는 질문에 이렇게 답할 수도 있겠어요. 어떤 읽기는 읽는 사람을 쓰지 않을 수 없게만든다고요. 제 경험을 근거로 말씀드리면 ‘좋은 엄마란 뭘까‘
‘인간답게 산다는 건 뭘까‘ 이렇게 자기 삶의 문제에 대한 답을찾는 수험생의 마음으로 한 독서는 쓰기에 큰 도움이 됩니다. - P222

단, 이 책 저 책 여러 권을 읽기보다 같은 책을 여러 번 읽어보세요. 생각을 펼치고 다지는 읽기를 지나서 나만의 언어를고르고 만드는 읽기로 도약하기 위해서요. 물론 지적 쾌락을위한 독서는 끌리는 대로 폭넓게 읽어도 되지만 쓰는 사람으로서 관찰력, 사고력, 표현력을 기르고 싶다면 꼼꼼하게 읽어야 책을 내 것으로 만들겠죠. 저는 처음 집어든 책은 일단 그냥읽어요. 그러다보면 개중에 느낌이 강렬한 책이 있어요. ‘이 책좋다‘라는 생각이 들면 다시 첫 장으로 가요. 인상적인 단어나문장을 베껴 쓰면서 한 번 더 읽어봅니다. 그리고 필사한 내용만 따로 추려서 또 보고요. 그렇게 책 내용을 충분히 소화해내내 살과 피로 저장해둡니다. 좋아하는 것을 곁에 계속 붙잡아두고 싶은 마음으로요. - P222

제게도 재독 삼독하는 일이 말처럼 쉽지 않아요. 다시 읽고정리하려면 귀찮고 번거롭죠. 책은 매일 쏟아집니다. 날 봐달라는 신간 도서의 유혹도 물리쳐야 해요. 이미 읽은 책에 머물기보다 어서 새 책으로 달아나고 싶잖아요. 그럴 때면 저에게준엄하게 묻습니다. ‘내가 왜 이렇게 책을 빨리, 많이 읽으려고안달이란 말인가.‘ 장안의 화제인 그 책을 나도 읽었다고 말하거나 1년에 100권 읽었다는 식으로 어디 가서 권수를 내세운들 순간의 기분에 그칠 뿐이죠. 과시하기엔 좋을지 몰라도 실속이 없어요. 고백하자면 저도 분명히 읽었는데 내용이 전혀기억 안 나는 책도 있고, 이미 산 책을 안 본 줄 알고 또 산 적도 있어요. 그런 어이없는 일을 하던 중에 아래 글귀를 만났습니다. - P223

속성을 바라기 때문에 옛것을 익힐 겨를이 없으며, 읽고 있는 글또한 세심히 살피고 익숙하게 할 겨를이 없습니다. 마음은 바쁘고언제나 급박하게 쫓기는 것과 같아서, 본디는 여러 가지 글을 널리읽고자 하되 소홀히 하고 잊어버려 나중에 가서는 한 번도 글을 읽지 않은 사람과 다름이 없게 될 것입니다.


요즘은 한 권 읽고 나면 한 권 정리하는 수고로운 절차를 지키려고 노력합니다. 훈련이 힘들면 실전이 쉽다는 말이 있죠.
의미 없는 헛수고처럼 느껴지더라도 조급함을 내려놓고 거듭 - P223

Tv TORT blog읽고 정리하며 머릿속에 들어온 것들은 나만의 언어로 무르익는 것 같습니다. 생각을 펼치고 지식과 지혜를 얻는 읽기에서나아가 자기 언어를 고르고 만드는 읽기 활동을 해보세요. 그런 뒤 나만의 독서 노트에 잘 정리해두는 거죠. 좋은 책이 주는언어와 사유를 한 단어도 흘리지 말고 살뜰히 챙기시길 바랍니다. - P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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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쓰자면 마음에 걸리는 지점이 있죠. 잘 쓸 수 있을까 하는생각이 먼저 올라와요. 근원적인 자기 의심이죠. 특히 내 글에남의 이야기를 비중 있게 다룰 때 잘 쓰고 싶은 마음이 좀 더간절해집니다. 무척 조심스럽죠. 쓰기 전이나 쓰는 중에는 남의 이야기를 어디까지 써도 될지, 쓴 뒤에는 잘 표현했는지 그리고 지금은 괜찮아도 혹여 나중에 문제가 되는 건 아닌지 걱정이 꼬리에 꼬리를 뭅니다.
저도 타인이 등장하는 글을 늘 쓰기에 이런 고민의 과정을거칩니다. 특히 가족 이야기를 선뜻 쓰기 어려워요. 서로 이꼴저꼴, 밝은 면과 어두운 면을 속속들이 봐온 사이라서겠지요.
너무 모르는 것만큼 너무 아는 것도 쓰기의 걸림돌이 됩니다. - P157

분명 아빠가 원망스럽고 아빠를 돌봐야 하는 현실이 싫었지만 원망과 억울에 그친 글을 쓰면 아빠가 사회적으로 쓸모없고 짐짝 같은 존재로 사물화되잖아요. 이런 우려를 조기현작가는 이렇게 정리해요. "이 글을 통해 나만 통통해지지 않기를 바랐다." 이 책을 보면서 나를 가장 힘들게 하는 인물에 관한 글쓰기가 한 사람을 크게 성장하게 하고 그 과정에서 글쓰기도 성숙한다고 믿게 됐습니다. 여러분에게도 좋은 힌트가되면 좋겠어요.
타인의 이야기를 ‘함부로 쓰면 안 되니까 안 쓴다‘가 아니라
‘함부로 쓰면 안 되니까 조심스럽게 쓴다‘로 방향을 잡으시고요. 심판자가 아닌 관찰자가 되어 인간 이해에 도움이 되는 인물을 그려내시길 바랍니다. - P162

글쓰기는 나쁜 언어를 좋은 언어로 바꾸어내는 일입니다.
끊임없이 배워야만 가능한 일이고요. 저는 글 쓰는 사람으로살면서 배우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게 됐습니다. 어떤 단어를쓸 때 타자에 대한 존중이 깃들어 있는지, 배제나 차별의 시선은 없는지, 살펴보고 쓸지 말지 판단해요. 좋은 언어는 적어도타인을 마음 상하게 하거나 재단하지 않는 언어라고 생각해요. ‘먼지 차별‘이라고 불릴 정도로 일상에 스민 차별과 혐오의언어를 골라내기는 어렵지만 하나씩 배우면 되고, 헷갈리면책을 찾아보거나 주변에 물어봐서 지혜를 구하면 됩니다. 누구나 실수하고 그렇게 실수하면서 배웁니다. 그러니까 올바르지 못한 표현을 쓴 사람에게 정색하지 말고 상대가 무안하지않게 생각과 의견을 전달하고, 자신의 말이나 글에 그런 표현 - P167

이 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는 반성하고 고쳐나가면 됩니다.
이것이 성숙한 시민의 모습 아닐까요. 우리가 이런 불편함과부끄러움을 터놓고 수용하는 대화가 가능할 때라야 타인을 존중하는 법을 배울 수 있을 것입니다. - P168

비유를 잘하는 법을 말씀드리고 있는데요. 사실 글에서는서툰 비유보다 잘못된 비유가 문제입니다. 전자는 필자에게만 영향을 미친다면, 후자는 타인에게 폭력이 되기도 하거든요. 비유는 글쓴이의 인권 의식을 드러냅니다. 정치적 올바름과 관련이 있어요. 어떤 공무원분이 업무차 전화를 많이 걸었던 일화를 이야기하면서 "우리가 콜센터 직원 같다는 자괴감이 들었다"라고 썼어요. 애초에 비하하려는 의도는 아니었을텐데요, 맥락상 콜센터 업무를 단순노동으로 폄하하는 뉘앙스 - P170

가 있어요. 어떤 노동도 단순하지도 쉽지도 않습니다. 무엇보다 콜센터에서 일하는 분이 들으면 불쾌할 수 있는 문장이죠.
또 제가 본 어떤 책에서는 화가 나서 거칠게 행동하는 사람의모습을 "중2처럼 굴었다"라는 비유로 표현하기도 했어요. 특정 집단을 타자화하고 낙인찍는 표현이죠. 중2도 여느 나이대처럼 난폭함도, 의젓함도, 발랄함도 있을 텐데요. 다른 비유를찾아 쓰거나 적절한 비유가 생각이 안 나면 안 써도 되죠. 그저
‘전화 거는 업무를 단순 반복하느라 지쳤다‘ ‘제멋대로 거칠게굴었다‘라고 사실만 명시해도 충분합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조직에 해를 입힌 사람에게 ‘암적인 존재‘라는 표현을 막 썼단 말이에요. 이런 식의 표현에 대해 미국의 비평가 수전 손택은 일찍이 1978년에 낸 책 《은유로서의 질병》에서 질병을 앓는 사실을 "뭔가 추한 것으로 변모시키는 은유의 함정""이 있다고 지적했죠. 특정 질병과 질병을 앓는 환자에 낙인찍는 은유에 반대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질병은 징벌이 아니라 질병일 뿐이라는 것, 치료의 대상이지 비난의 대상이 아님을 인지한다면 질병 관련 비유를 함부로 쓰지 않게되겠지요. - P171

처음엔 후루룩 초고를 쓰시고 퇴고할 때 검토해보세요. ‘다른 존재를 폄하하거나 무시하는 단어나 비유가 있진 않은가?‘
성공적인 비유는 명철한 지성을 발휘해 "앎의 전달"에 기여한다고 아리스토텔레스는 말했습니다. 비유가 자기 감정을 자연물에 대입하여 표현하는 한낱 낭만적인 문학적 장식물이 아니라는 겁니다. 글 쓰는 사람은 단어 하나, 문장 한 줄을 아름답게 만드는 게 일이니까요. 마음을 다잡고 고유하고 매력적인나만의 비유를 찾아보시길 바랍니다. - P172

‘관습적 사고에 저항하라.‘ ‘뒤집어서 생각하라.‘ 많은 글쓰기책에서 강조하는 내용이기도 한데요. 상식과 관습을 뒤집어서사고하는 힘이 창의력이고 상상력이죠. 저는 이런 표현이 막막하게 느껴졌어요. 무얼 어디서부터 어떻게 해야 하는지 감이 잡히지 않았죠. 그런데 책을 읽다가 밑줄을 긋고 열렬히 공감하는 부분을 보면 관습이나 상식을 다른 관점에서 본 문장이더라고요. 자연스레 터득해갔죠. ‘아, 상식과 관습을 뒤집으라는 게 이런 거구나.‘ 손원평작가의 소설 《아몬드》에도 좋은사례가 나와요. - P173

계절은 어느덧 5월의 초입에 들어서고 있었다. 5월 정도면 많은게 익숙해진다. 신학기의 낯섦도 사라진다. 사람들은 계절의 여왕이 5월이라고 말하지만 내 생각은 좀 다르다. 어려운 건 겨울이 봄으로 바뀌는 거다. 언 땅이 녹고 움이 트고 죽어 있는 가지마다 총천연색 꽃이 피어나는 것. 힘겨운 건 그런 거다. 여름은 그저 봄의동력을 받아 앞으로 몇 걸음 옮기기만 하면 온다. - P173

그래서 나는 5월이 한 해 중 가장 나태한 달이라고 생각했다. 한것에 비해 너무 값지다고 평가받는 달. 세상과 내가 가장 다르다고생각되는 달이 5월이기도 했다. 세상 모든 게 움직이고 빛난다. 나와 누워 있는 엄마만이 영원한 1월처럼 딱딱하고 잿빛이었다.


어떠세요? "5월이 한 해 중 가장 나태한 달"이라는 표현이눈에 들어옵니다. ‘5월은 계절의 여왕‘이라는 통념과는 다른해석이죠. 이런 생각을 작가는 왜, 언제 하고 어떻게 문장으로풀어냈을지 참 궁금해요. 혼자 추측해봅니다. 아마 최초의 계기가 있었겠죠. ‘5월은 계절의 여왕‘이라는 말은 관용적 표현이니까 평소라면 흘려들었을 텐데 그날따라 유독 그 말이 이물스럽고 자기 몸에 붙는 듯한 느낌이 들었을 거예요.  - P174

‘나는 왜 이 말이 거슬렸지?‘ 최초의 느낌을 붙잡고 의심하는 거죠. 5월에 대해서 남들이 정해놓은 대로가 아니라 직접본 것, 관찰한 것, 느낀 것을 종합해서 정확하게 써나가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상식과 관습을 뒤집어보는 일은 스치는 말이나 현상을 붙들고 곰곰이 바라보고 기존 상식에 의문이 풀릴때까지 저항하며 생각하는 것이겠죠.
이 밖에 계절에 관한 낡고 오래된 비유가 많습니다. ‘가을은독서의 달이다‘처럼요. 그런데 이 표현을 현실에 대입해봅시다.
하늘 높고 바람 좋고 단풍으로 운치 있는 가을날, 가만히 앉아서 책을 읽나요? 가을은 산으로 공원으로 연일 최다 관광객이 - P174

몰리는 계절로 야외 활동에 최적이죠. 저는 가을이 되면 책이아니라 창밖에 눈길을 빼앗겨요. 자꾸 나가서 나그네처럼 거닐고 싶어서 엉덩이가 들썩이죠. 차라리 겨울이 독서에 맞춤한 계절 같아요. 밤도 길고, 한 해를 마무리하고 시작하는 시기라서상념도 많아지니까요. 저마다 ‘독서의 달‘은 다릅니다.
성탄절이면 흔히들 카드에 ‘메리 크리스마스‘라고 쓰고 인사말도 건네잖아요. 그런데 정말 ‘메리 크리스마스‘인가 생각해보면요, 저한테 성탄절은 ‘새드 크리스마스‘로 각인돼 있어요. 사춘기 무렵에 아버지가 직장을 자주 옮겨서 집안 경제가불안정했어요. 연말이면 아버지가 그러셨죠. "올해 크리스마스는 새드 크리스마스다." 그 말이 그렇게 처량했어요. 남들은성탄절에 다 행복한데 나만 불행한 것 같고, 아버지가 무능한거 같아서 싫고 부끄러웠던 기억이 나요. 평생을 돌이켜보면화려하고 행복한 성탄절보다 평범하거나 쓸쓸한 성탄절을 더많이 보낸 것 같아요. 성탄절뿐만 아니라 명절도 행복해야 한다는 강박 때문에 더 불행한 날이 되곤 하잖아요.  - P1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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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퇴고하는 과정을 예로 들어볼게요. 경향신문에 연재하는 칼럼 <은유의 책편지>는 200자 원고지 12매 분량입니다.
이번 칼럼에서는 어떤 소재를 다룰지 오며 가며 앉으나 서나자나깨나 글감 구상하는 시간을 다 빼고, 온전히 노트북 앞에앉아 원고 한 편을 완성하는 시간만 총 열 시간 정도 걸린다고가정해보겠습니다. 초고를 쓰는 데 한 서너 시간 걸리고, 퇴고하는 데 한 예닐곱 시간 걸리는 것 같아요. 초고와 퇴고의 비율이 4대 6 정도이죠. 처음엔 초고 작성에 시간을 더 들였어요.
그런데 글은 쓰기만 한다고 글이 아니라는 것, 글은 자꾸 고쳐야 글다워진다는 걸 인지하고는 퇴고하는 데 시간을 더 많이할애하게 되었습니다. - P142

《반사회적 가족》이라는 책으로 칼럼을 쓴 적이 있습니다.
제목에서 알 수 있다시피 가족의 폐단을 짚는 책이죠. 가족의문제로 크게 세 가지를 짚어냅니다. 계급 재생산이 가족 단위로 이루어지는 점, 사적 영역이란 명분으로 개성과 인권을 억압한다는 점, 여성이 구조적으로 가사노동과 육아에 속박된다는 점. 저는 완전히 ‘밑줄 파티‘를 하면서 읽었거든요. 글쓰기수업을 하고 르포 작가로 일하면서 사람들의 삶을 가까이 들여다볼 일이 많다보니 ‘가족이 모든 상처의 근원이구나‘ 하는생각을 많이 했어요. 이 책을 보니까 가족에 대해 하고 싶은 말이 마구 떠올랐고요. 저도 지금까지 부모와 자식으로 구성된이성애 가족 안에서 50여 년을 생활했지만 문득 가족 밖에서 - P142

가족을 보고 싶다는 생각에 독립 (자취)을 계획하던 중이기도했습니다.
그래서 이 책으로 원고를 썼습니다. 노트북 앞에 딱 앉아서파일명을 ‘반사회적 가족‘이라고 저장한 문서 파일에 첫 문장을 썼죠. 글쓰기에서는 결핍만큼 과잉도 문제입니다. 하고 싶은 말이 없는 것도 문제지만 많은 것도 문제거든요. 당시 제가그랬죠. 아니나 다를까, 쓰고 나서 읽어보니 글이 어수선한 거예요. 글의 메시지가 중구난방이었죠. 핵심 문장에 밑줄을 그어보았습니다. 한 줄만 잘 그으면 합격, 여러 군데 그으면 불합격이라고 생각하면서요. 냉정하게 읽어보니 가족제도를 비판하는 글인지 가사노동의 부당함에 대한 글인지, 논점이 모호한 거예요.  - P143

가부장제에서 여성이 가사노동과 돌봄노동을 도맡고 또 가족이 여성의 억압을 구조화한다는 점에서 두 논점이맞물려 있지만, 엄연히 다른 주제거든요. 글이 가족제도의 반사회성에 대한 이야기로 흘러가야 하는데, 가사노동의 힘겨움이라는 옆길로 이야기가 빠져나가고 있었어요. 그래서 가사노동에 대해 쓴 부분을 덜어냈죠.
퇴고에서 제일 중요한 부분입니다. 앞서 <곁길로 새지 않고한 가지 주제로 글을 쓰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에서도 이야기했다시피 글을 쓰면서 ‘나는 이 글을 통해 무얼 말하고 싶은가?‘라는 질문을 놓치면 곤란합니다. 수시로 자문하며 하나의 주제로 논의를 수렴해나가야죠. 목동이 양몰이를 하듯이 - P143

글의 내용을 하나의 메시지로 모으는 게 좋습니다.


퇴고에서 두 번째로 챙길 것은 독자의 눈으로 글을 읽어보며 적절한 정보와 정확한 정보를 제공했는지 확인하는 거예요. 자기 이야기를 쓸 때 경험의 맥락, 상황, 역사 같은 배경 정보를 본인은 알기 때문에 상세히 쓰지 않거나 아예 안 쓰기도하는데요. 나를 모르는 사람이 이 글을 읽는다고 생각해보세요. 가령 제가 양육에 대한 글을 쓴다고 해볼게요. 저는 제 아이들의 나이를 알아요. 그런데 독자는 써주지 않으면 모른단말이에요(두 살, 열 살, 열일곱 살 양육에는 각각 다른 문제가 있습니다). 그러니 ‘다 큰 아이들‘이라고 표현하면 안 돼요. 구체적인나이가 꼭 필요한 글에선 나이를 숫자로 표기해주고 아니면
‘두 아이 모두 성인이 됐다‘ 정도라도 써주고요. 어떤 표현이더 적절한지 계속 따져보고 판단하는 것이지, 정답은 없습니다. 항상 제3자 입장에서 자기 글을 보는 것, 자기 객관화가 퇴고 단계에서 매우 중요합니다. - P144

정리하자면 저의 퇴고 과정에서 첫 번째로 주제 벼리기, 두번째로 적절한 정보 넣기를 한다면 마지막 단계는 제가 ‘실밥뜯기‘라고 명명한 과정을 거칩니다. 글을 말끔하게 만드는 거죠. 글의 틀이 어느 정도 잡혔다 싶으면 이제 소리 내어 읽어봐요. 문장이 길어서 늘어진다 싶으면 단문으로 끊어줍니다. 문 - P144

장이 길게 이어지면 내용 파악이 안 되고 글을 계속 읽게 만드는 리듬이 안 생기거든요. 긴 문장이 있으면 좀 짧은 문장도 넣어주고요. 특정 단어가 너무 중복된다 싶으면 다른 단어로 바꿔주고요. 자기도 모르게 습관적으로 쓰는 부사가 다들 있죠.
그것도 적절히 덜어내고요. 부사 없이도 문장을 이해하는 데문제가 없다면 부사를 적절히 빼주시면 됩니다. 그런데 이렇게 다 했는데도 글이 어째 재미가 없고 늘어진다 싶으면 단락을 뒤집어서 구성을 바꿔보기도 해요. 한 편의 글이 꼭 시간순일 필요는 없거든요. - P145

이렇게 글을 정성스레 매만지고 고치고 다듬고 하다보면얄궂게도 글이 더 이상해지기도 해요. ‘퇴고의 함정‘인데요. 고칠수록 글이 더 이상해질 때 ‘퇴고 지옥‘에 갇혔다고 느낍니다.
글에서 물러날 때가 언제인지를 알아야겠죠.퇴고의 끝은 정하기 나름이에요. 물론 어렵습니다. 이때, 오늘 쓴 글을 오늘바로 다 퇴고하기보다는 며칠 묵혔다가 다시 보는 것이 방법이에요. 밤에 쓴 편지를 다음날 아침에 보면 낯간지럽듯이, 시간이 흐른 다음에 보면 글의 문제가 더 선명하게 보이기도 하거든요.
‘아무리 하루, 이틀 묵혀놨다가 봐도 내 눈에는 글의 문제가안 보이네.‘ ‘큰 문제는 없는 것 같은데 마음에 안 들어……‘ 이럴 때가 있잖아요. 그러면 저는 친구한테 제 글을 보여줍니다.
피드백을 받고 나서 글을 한 번 더 고치죠. - P145

퇴고의 중요성, 퇴고의 방법에 대해 말씀을 드렸어요. 정답은 없고, 최선을 다하는지의 문제 같아요. 저는 수단과 방법을동원해서 체력이 닿는 데까지 써봐야 못 쓴 글 같아도 덜 부끄럽더라고요. 대충 쓴 게 아니라 내 딴에는 하는 데까지 해봤다는 것. 이것이 또 다음에 글 쓸 용기를 주는 것 같습니다. 퇴고에 정진해보시길 바랍니다. 글쓰기가 내 최상의 것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최선의 것을 보여주는 일이라는 것을 기억하시면서요. - P146

제목을 잘 짓는 비결로 ‘조금 더 시간 들여서 조금 더 들여다보기‘를 말씀드릴게요. 글을 잘 쓰는 방법과 같아요. 학인들이 글쓰기 수업의 후기 제목을 <7차시 후기 > 정도로 많이들 씁니다. 글 쓰는 사람이니까 제목 짓는 작업에 좀 더 욕심을 내면 좋겠다고 학인들에게 말해요. 아무리 짧은 후기여도 다 쓰고 이 글의 핵심이 뭐지?‘ ‘무엇에 대한 내용이지?‘라는 식으로 내용을 파악하는 훈련을 한 뒤에 효과적인 제목을 붙이는뒷심이 필요한 거예요. <7차시 후기>보다는 <합평의 중요성을배운 시간〉이라고 제목을 붙여봐도 좋고, 그날 수업에서 들은인상적인 말 "글쓰기는 용기다"를 직접 인용으로 활용해 제목을 뽑아봐도 좋고요. - P151

게시글을 열어보고 싶지 않을까요? 글에 담긴 내용을 말하면서 다는 말하지 않는 제목이 좋은 제목이 될 가능성이 큽니다.
제목이 소박하고 담백한 표현인 건 좋지만 무성의하면 안돼요. 장황한 것보다는 간결해야 좋고요. 호기심을 유발해야하지만 격을 잃지 않아야죠.
제목을 짓는 것은 글에서 내가 쓰고자 하는 메시지가 무엇인지 요리조리 점검하는 절차이면서 언어유희를 즐기고 언어의조탁 능력을 배우는 시간이라고 생각해요. 글 쓰느라고 지쳐서제목 지을 힘이 없는 경우가 많은데 10퍼센트의 에너지를 남겨서 좋은 제목을 짓는 데까지 꼭 도전해보시길 바랍니다. - P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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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문장은 중요합니다. 아니, 글쓰기에서는 모든 문장이 중요해요. 제가 생각하는 잘 쓴 글은 뺄 문장이 하나도 없는 글이거든요. 그러니 첫 문장도 중요하죠. 특히 첫 문장에는 글의 방향이나 주제에 대한 힌트가 있어야 합니다. 그 글을 읽고 싶게만드는 막중한 임무를 지닌 문장이기 때문에 글을 쓰고 나서나중에 고치며 더 낫게 만들면 됩니다.
이렇게 말해볼까요. "첫 문장은 신의 선물인 게 아니라, 나의선택이다." 내가 쓴 첫 문장을 나중에 수정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 부담을 좀 덜 수 있죠. 실제로 저도 글을 다 쓴 뒤 어색하거나빈약하게 느껴지는 첫 문장을 바꿉니다. 그러니 빈 문서 앞에서겁먹지 마시고요. 인용하기, 상황을 묘사하기, 주제를 함축하기등 첫 문장 쓰는 방법을 하나씩 적용해보세요. 그렇게 어서 첫문장을 타고 글쓰기의 세계로 들어가시길 바랍니다. - P109

이번에는 시점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글쓰기에서 화자의 시점을 일인칭과 삼인칭으로 설정할 경우 각각의 장단점을 말해보고자 하는데요. 쉽게 말해 일인칭은 ‘나는…….‘ 이라며 화자의시점에서 서술하는 방식이고, 삼인칭은 ‘그는...... ‘김여름 씨는……‘ 이렇게 나와 너, 우리가 아닌 제3자 타인의 시점에서문장을 쓰는 방식이죠. 저는 소설에서 삼인칭을 주로 쓰고 산문에서 일인칭을 주로 쓴다고 생각할 정도로 시점 설정에 무심했어요. 언젠가 "삼인칭 단편소설을 써봐야 정말 소설가가되는 거다"라는 말을 들었던 기억도 나요. 글쓰기를 통해 나를벗어나서 타인이 되어보는 게 그만큼 고난도 작업이란 뜻으로이해했습니다.
그래서 산문을 쓸 때는 주로 일인칭으로 쓰고, 르포를 쓸 때는 주로 삼인칭으로 썼죠. 비문학에서 일인칭은 자기 이야기니까 필자가 편안하게 쓰고, 독자도 편안하게 읽는다는 장점이 있어요. 독자가 필자에게 감정을 동일시하기가 비교적 쉽기 때문입니다. 삼인칭의 장점은 필자가 거리를 두고 상황을 - P110

쓸 수 있다는 점이예요. 문장의 주어를 ‘나는‘이라고 쓰기보다
‘김은유는 이런 식으로 쓴다면 자신의 이야기라도 다른 인물의 일을 묘사하듯 조금 더 객관적으로 상황을 쓰게 되죠. 각 시점의 장점이 다른 시점의 단점이 되기도 하고요.
그런데 문학, 비문학 등 장르를 불문하고 다양한 책을 읽다보니, 삼인칭이라고 꼭 객관적이고 일인칭이라고 반드시 주관적이지는 않더라고요. 다시 말해 글쓰기에선 몇 인칭으로 시점을 썼는지가 중요한 게 아니라, 개인이 아닌 보편의 이야기로 얼마나 힘 있게 사회문화적 관점으로 풀어냈는지가 더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나‘로 시작하지만 혹은 ‘김순자‘로 시작하지만, 글을 다 읽은 독자의 머릿속에 특정 인물만이 아니라 메시지가 남아야 좋은 글이라고 생각합니다. - P111

개인의 이야기가 아닌 보편의 이야기로 읽히는 글을 어떻게 쓸까요? 방법은 주어를 반복적으로 쓰지 않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볼게요. 제가 글쓰기의 최전선> 서문에 <나는 왜 쓰는가>라는 글을 썼어요. 조지 오웰의 산문 제목에서 제목을 차용했고, 왜 글을 쓰게 됐는지를 짚은 산문이에요.

일과 사랑은 동시에 왔다. 결혼을 하고 노동조합 활동에서 지점 업무로 돌아갔다. 맞벌이가 시작되었다. 가사노동의 최종 책임자는자연스레 내가 되었다. ‘돕는 위치‘에 자리한 남편에게 편지를 써서 불만을 토로하고 출퇴근 길 차에서 여성주의 책을 읽어주면서 - P111

소통을 도모했다. 아이를 낳고 기르는 일은 행복했으나 뭔가 좌우발목에 족쇄가 채워진 것 같았다. 나의 행복과 가족의 행복은 시시때때 충돌했다. 아이를 집에 두고 내가 강의를 듣거나 영화를 보는게 못할 짓 같았으니 ‘나답게‘ 살기 위한 선택에는 묘한 죄의식이따랐다. 이 감정의 정체가 뭘까."


일인칭 시점으로 쓴 글인데요. "가사노동의 최종 책임자는자연스레 내가 되었다"라는 문장에만 ‘나‘라는 주어가 있어요.
글을 읽은 사람의 머릿속에는 사람만 남는 게 아니라 특정 상황이 그려져요. 그 장면에 독자는 자신을 대입하며 글을 읽습니다. ‘이거 내 이야기다‘ 하며 감응하게 되죠. - P112

2015년 노벨문학상을 받은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의《체르노빌의 목소리》라는 작품이 있습니다. 단지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에 가까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국가적 재난을 당한 벨라루스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려주죠. 저자는 이 책을 쓰기 위해 무려 10여 년에 걸쳐 100여 명을 인터뷰했습니다. 인터뷰이의 목소리를 일인칭으로 표현했어요. 작가가 개입하지않아요. 다 읽고 나면 굉장한 느낌에 압도됩니다. 이 책을 읽고일인칭, 삼인칭 시점에 관한 편견이 사라졌어요. ‘만약 이 책을삼인칭으로 썼으면 어땠을까? 상황을 객관적으로 이해하기보다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만 인상에 남았을지도 모르겠다‘ 라는 생각이 들었죠. 글에서 저자가 뒤로 사라지고 사건 당사 - P112

자의 목소리가 일인칭으로 나오니까 책에 나오는 인물과 독자인 저 사이에 정서적 밀착감이 컸습니다.
그래서 저도 《알지 못하는 아이의 죽음》을 쓸 때 그동안의르포 작업과 다르게 일인칭 시점으로 시도해봤어요. 처음엔확신이 없고 불안하니까 삼인칭 시점으로도 써보고요. 원고한 편을 일인칭, 삼인칭 두 가지 버전으로 써서 편집자랑 의논했죠. 뭐가 더 나을지 고민했고 인터뷰이의 목소리만 오롯하게 담아낼 때 메시지의 진실도가 더 높아진다는 판단이 들어서 일인칭으로 쓰자고 정했습니다. 책이 나온 뒤, 몰입해서 읽었다는 독자의 반응이 많았어요. 메시지 전달력이라는 측면에서 더 효과적이었다고 자체 평가하고 있습니다. - P113

그렇다고 일인칭이 진리라며 안주하는 게 아니라 나중에 다른 르포를 쓸기회가 생기면 삼인칭으로 써보고 싶어요. 어떤 시점으로 쓰는게 적절한지는 글마다, 주제마다 다르니까요.
모든 법칙과 상식을 의심해봐야 합니다. 그러니 일인칭과삼인칭 각각의 장단점에 얽매이기보다 각각 써보고 어떤 시점이 이번 글에 맞을지 판단해보세요. 우리는 무엇을 쓸 수 있고무엇을 쓸 수 없는지 모르니까요. 한 편씩 새로운 시도를 해보고 진리를 찾아내고 그렇게 발견한 진리를 또 과감히 버리는용기로 글쓰기에 임한다면, 혹여 남들이 보기엔 망했어도 최선을 다했기에 덜 부끄러운 글을 써내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 P113

김포의 꿈틀책방에 갔다가 책을 한 권 사왔어요. 《황현산의 사소한 부탁이란 책입니다. 지금은 고인이 되신 황현산 선생님은 문학평론가이며 불어불문학과 교수였고 많은 문인과 독자의 존경을 한 몸에 받았습니다.
저는 사유를 밀고 나가는 힘이 어휘의 적절성에 있다는 걸황현산 선생님의 글에서 배웠어요. 어휘가 화려하지 않은데쓰임이 적절하고, 문장이 담백하며 흐름이 유려해요. 한 줄 한줄 읽다보면 끝까지 읽게 됩니다. 비결이 뭘까 싶어서 글을 이리 보고 저리 보면서 연구해보기도 했는데요, 잘 모르겠지만글쓰기에서 테크닉이나 화려한 수사가 중요하지 않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황현산 선생님의 글을 보여드릴게요. - P114

인터넷 문화를 진심으로 바로잡고 싶다면 질이 좋은 콘텐츠를 그것도 대량으로 제공하는 길밖에 다른 방책이 없다. 물론 비용이 드는 일이다. 그러나 무엇을 위한 것인지도 아리송한 저 거창한 토목공사에 비하면 사실 과자값에 불과하다. 높은 자리에 있는 한 사람 - P114

이 그 일이 중요하다고 생각만 하면 될 일이다. 그런데 이렇게 말하고 보니 역시 어려운 일이다.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이 왜 갑자기 그런 생각을 하겠는가.


특별한 어휘가 있진 않죠. 외려 "아리송한 "과자값" 같은단어들은 소박하죠. 주장이 강하지 않아서 더 잘 스며요. 저였다면 어떻게 썼을까요. ‘무엇을 위한 것인지도 모르는 저 쓸모없는 토목 공사‘ 정도로 표현하지 않았을까요. ‘쓸모없다‘는 글쓴이의 부정적인 판단이 드러나죠. 독자의 생각을 막는, 닫힌표현입니다. 한편 황현산 선생님이 쓴 "아리송한"이라는 표현이 독자 입장에서 부드럽게 느껴져요. 저는 "아리송한" 같은평이한 단어가 문체를 만든다고봐요. 독자는 그렇게 한 단어한 단어 스미듯이 글을 따라가다가 마지막 문장에 허를 찔리죠.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이 왜 갑자기 그런 생각을 하겠는가"라는 표현은 사유의 전복을 일으킵니다. - P115

책만 그런 게 아니다. 자본주의 사회의 세포 격인 상품을 우린 거의 모르고 사용한다. 농사짓는 과정을 경험하지 못하고 쌀을 얻어밥을 먹고, 옷 만드는 사람의 처지와 얼굴을 모르고 옷을 사서 입는다. 결과물만 쏙쏙 취하니까 슬쩍 버리기도 쉽다. 그렇게 편리를누릴수록 능력은 잃어간다. 물건을 귀히 여기는 능력, 타인의 노동을 존중하는 능력, 관계 속에서 자신을 보는 능력. 


이 글에서 눈에 띄는 어휘는 "자본주의 사회의 세포" 정도같아요. 이 표현은 마르크스의 글에서 얻어왔습니다. 마르크스가 상품을 ‘자본주의의 세포‘라고 하거든요. 옷 만드는 사람이 누군지 모르고‘라고 썼다가 무엇을 모른다고 하는지 뜻하는 바가 모호해 보여서 "처지와 얼굴을 모르고"라고 바꿨어요.
글쓰기에서 어휘를 다채롭게 사용하는 것도 좋지만 무엇보다사실과 현상을 정확하게 견인하는 게 훨씬 중요합니다. - P116

글을 쓰며 어휘력이나 문체의 빈약함이 문제라고 느낄 수도 있지만, 일상어로도 충분히 깊이 있는 글쓰기가 가능합니다. 어휘가 화려한데 남는 게 없는 외화내빈 글을 더욱 경계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이를 문학적으로 표현한 글이 있어요. 이영광 시인이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글입니다.


‘당신은 연인이라는 인연이었으나 당신은 인연이라는 연인이 되어……‘
- P118

새벽에 꿈에서 깨어 이런 문장을 떠올려봤다. 내가 내 머리로 생각한 문장이지만, 책임질 수는 없는 문장이라는 생각이 든다. 길에서주운 돈 가방을 파출소에 가져다줘야 하는 때처럼, 내려놔야 하는문장 같다. 그럴싸한 생각들이 다 내 것이 될 수는 없다. 주중에 샀다가 주말 저녁에 구겨버리는 로또 복권 같은 것들. 이 문장을 내인생이 소화시키지 못한다.


글 쓰는 사람은 어휘력을 키워야 합니다. 그러나 영단어 1만개를 외우듯이 우리말 단어를 외운들, 적절한 쓰임을 찾아 쓰지 못한다면 소용이 없겠지요. ‘아리송하다‘ ‘처지‘ ‘세포‘라는단어를 우리가 몰라서 못 쓰진 않아요. 글을 쓸 때 마침 떠올라서 단어를 배합하고 언어를 조탁해야 하는데, 그러려면 평소말할 때도 이 단어, 저 단어를 사용하는 데 익숙해지는 연습이필요합니다. 이미 아는 단어를 ‘나는 모른다‘는 생각으로 사전을 찾아보고 일상에서 써보기를 반복하다보면 글을 쓰다가 적절한 단어가 불현듯 떠오를 것입니다. - P119

할 때 불필요한 단어와 표현을 넣진 않았는지 의심하면서 골라내요. 그러다보면 가장 먼저 지우는 것이 습관적으로 쓴 형용사나 부사예요. ‘따뜻한 국밥‘의 "따뜻한"이나 ‘빠르게 내달렸다‘의 "빠르게"와 같이 동어반복이거나 불필요한 수식이요.


부사나 형용사를 적절히 빼야 글이 좋아지는 이유가 있습니다. 형용사는 명사를, 부사는 동사를 꾸미잖아요. ‘휘영청 밝은 달.‘ ‘빠르게 뛰었다.‘ 이런 식으로요. 자칫동어반복이거나상투적 표현이 되기 쉽죠. 전달해야 할 정보를 생략하기도 합니다. ‘나는 물을 많이 마신다‘보다 ‘나는 하루에 1.5리터를 마신다‘가 더 정확하게 표현한 문장이죠. ‘많다‘의 기준은 저마다다릅니다. 형용사가 정보의 자리를 대신하면 상황의 고유성을드러내지 못한 예입니다. 문학평론가 황현산 선생님도 부사의일종인 첩어를 과하게 쓰는 문제를 이렇게 지적합니다. - P121

글에 의성어와 의태어를 많이 쓰게 되면 글 쓴 사람의 사고가 너무 단순하거나 게으른 것은 아닌지 의심이 들 수 있다. 이런 말들은 글에 현실감을 주는 듯하면서도 실제로는 구체성을 없애는 경우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숲에 바람이 살랑살랑 분다‘고 말할 때
‘살랑살랑‘은 바람의 세기와 성질을 어느 정도 전달하지만 그 바람을 개별화해주지는 않는다. ‘살랑살랑‘을 쓸 수 있는 바람은 많지만 글 쓴 사람이 표현하려고 하는 바람, 그 시간 그 숲에 불었던 바 - P121

람은 유일한 바람이다. 똑같은 바람이 두 번 다시 불지는 않는다."


저는 이 글을 읽었을 때 "똑같은 바람이 두 번 다시 불지는않는다"라는 문장이 몸에 감겨서 한 번 더 소리 내어 발음해보았네요. ‘같은 강물에 두 번 발 담글 수 없다‘는 그리스 철학자 헤라클레이토스의 말도 떠오르고요. 자연과 만물은 변한다는 뜻입니다. 글 쓰는 일이 존재를 선명하게 드러내는 일인데,
제각기 고유한 것들을 수많은 ‘살랑살랑‘ 속에 묻지 않아야겠지요. - P122

특히 접속 부사, 즉 접속사는 어떨까요? 글에 논리를 부여하는 과정에서 ‘그래서‘ ‘그리고‘ ‘그런데‘ ‘그러므로‘와 같은 접속사를 쓰게 되는데요. 논리로만 글을 끌고 가기보다 리듬을만들어야 글맛이 살아난다고 생각합니다. 접속사가 많은 글을읽다보면 독자의 생각이 글의 흐름을 따라 자연스럽게 흘러가지 못하고 접속사에서 탁탁 걸리고 끊어지거든요. 그렇다고처음부터 접속사 없이 쓰려면 의식되고 부담스러워서 아예 글을 쓰지 못하게 되니, 저는 일단 초고는 경계심 없이 쓰고 퇴고할 때 내용을 이해하는 데 무리가 없다면 접속사를 빼는 식으로 씁니다. 물론 과도한 사용을 자제할 뿐, 문장과 문장의 연결이 어색할 땐 접속사를 써야죠.
여기까지 설명하고 나니 접속사를 비롯한 부사 그리고 형 - P122

용사를 여름철 모기를 대하듯 잡아 없애자고 말한 것 같은데요. 잘 쓴 부사와 접속사가 얼마나 글맛을 살려주는지도 말씀드리겠습니다. 글 잘 쓰는 작가들은 형용사와 부사를 능숙하게 부려요. 《시와 산책》을 쓴 한정원 작가도 그런 분이죠. 한구절을 보여드릴게요.
몸을 단번에 일으키고 커튼을 걷으면 아, 눈이 거기 있다. 창을 내내 올려 보다가 내 얼굴이 뜨자마자 환하게 웃으며 손바닥을 힘차게 흔드는 애인처럼.
눈을 그렇게 발견하는 날은, 사랑을 발견한 듯 벅차다.  - P123

"단번에" "환하게" "힘차게"와 같이 부사와 형용사가 거듭나오지만 거슬리기보다 말의 운율이 느껴지고 영화의 한 장면이 눈앞에 환하게 그려지는 듯했어요. 글의 흐름을 타고 읽어내려갔습니다. 그러니 부사와 형용사를 빼더라도 무엇을 위해빼고 있는지, 간결한 게 아니라 앙상한 글을 만드는 건 아닌지한 번 더 살펴보세요. ‘글에서 부사와 형용사, 접속사 빼라‘라는 주장 뒤에 감춰진 속뜻은, 단순하고 모호하며 표준화된 글을 만들기도 하는 부사와 형용사, 글의 흐름을 이어주는 게 아니라 흐름을 끊어버리는 접속사를 남용하지 않게 주의하라는 뜻입니다. - P123

글쓰기에 몰입하다보면 정작 메시지를 놓치고 다른 이야기를 쓰는 데 열중하는 모습을 뒤늦게 발견하기도 합니다. 이 책의 원고도 쓰다가 막히면 서두로 돌아가서 질문이 뭐였는지 되짚어봤어요. 한 번씩 글의 메시지를 스스로 환기하는 거죠. 다시 말해 글을 쓰다가 막힐 때 돌파구를 찾는 방법은 ‘글에서 하려는 말이 무엇인지 떠올려보라‘는 것입니다. 글쓰기의 주제와 방향을 확인하고 나면 필요한 자료를 찾는다든가, 자기 의견과 생각의 근거를 들여다본다든가, 비슷한 주제로 다른 사람이 쓴 글을 읽어본다든가 하는 식으로 품을 들이는 겁니다. - P124

그런데 아무리 노력해도 쓰다가 막힌 부분이 안 풀릴 때가있어요. 이럴 때 저는 글을 묵혀둡니다. ‘방치한다‘가 아니라
‘묵혀둔다‘입니다. 한글 파일은 닫아도 생각은 열어둬야죠. 제가 애용하는 방법이기도 해요. - P125

타인의 일을 쉽게 말하는 모습에서 일상 언어의 폭력성을착안했고, 아무런 상관이 없어 보이는 붕어빵과 성착취 이슈를 연관 지어 글을 완성했습니다. 이렇게 막힌 글을 내려놓고삶을 살다보면, 삶이 글의 길을 터주기도 합니다.


앞선 두 방법을 다 시도해봤는데 그래도 글을 쓰다가 막힌 - P127

다면 ‘포기‘라는 방법을 써보세요. 네? 어떻게 쓴 글인데 포기하냐고요? 아까워도 써볼 만합니다. 저도 컴퓨터 폴더에 미완성 원고 파일이 많아요. 쓰다가 막힌다는 것, 글의 결론을 내리지 못하는 이유는 아직 생각이 무르익지 않았기 때문일 가능성이 높죠. 익지 않은 땡감은 따도 먹지 못해요. 떫은 글이 됩니다. 글이란 ‘내가 무엇을 썼느냐‘가 아니라 ‘무엇을 남기느냐‘의 문제라고 생각해요. 버리는 것도 실력입니다.
일단 뭐든 써보세요. 글을 쓰다 막히면 상기하거나 묵혀두거나 포기한다는 세 가지 방법을 시도해보세요. 쓴 사람만이덜 익은 글도, 만숙의 열매처럼 뚝 떨어지는 잘 익은 글도 거둘수 있을 테니까요. - P128

저는 글을 쓰고 나서 처음부터끝까지 읽으며 주제라고 생각하는 핵심 문장에 밑줄을 그어요. 글 한 편에 밑줄을 여러 개긋기도 해요. ‘아, 이것도 중요하고 저것도 중요해.‘ 이럴 땐 글의 메시지가 한 가지가 아닌 거예요. 한 번에 다 말하려고 하면 한 가지도 제대로 전달하지 못합니다. 주제별로 글을 독립시켜주세요. "곁길로 새지 않고 한 가지 주제로 글을 쓰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라는 물음에 답변이 됐을까요? ‘하나의 글에는 하나의 주제만 쓰자‘ 즉 ‘한 편의 글에는 하나의 메시지만담자‘로 정리할 수 있겠습니다. 잘 기억하시고요. - P131

저도 글을 쓰다보면 이야기가 곁길로 새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인생사가 그렇듯이 글쓰기에서도 하지 말아야 할 일들이 꼭 나쁘기만 한 건 아닙니다. 우리가 여행하다가 잘못 들어선 길에서 색다른 풍경을 보게 되듯이, 한 편의 글이 옆길로 새서 다른 지점에 도달한다는 건 그 글을 쓰지 않았으면 몰랐을 자신의 생각을 만난다는 의미이니까요. 그래서 저는 글이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가고 말았다는 사실에 좌절도 하지만
‘아, 나한테 이런 생각도 있었구나‘ 하는 발견의 기쁨도 느낍니다. 원래 글 하나, 곁가지 글 하나. 이렇게 글감을 자꾸자꾸 만들어둡니다. 이러다보면 글 부자가 되겠지요.
작가에게 쓸거리가 많은 건 바람직한 일입니다. 그러니 용기를 잃지 마시고요, 곁길로 새면 다시 돌아오면 된다는 여행자의 마음으로 오늘도 글 한 편 쓰시길 바랍니다. - P133

글쓰기는 시작도 어렵지만 마무리도 만만치 않게 어려워요.
무언가 한가득 써놓았는데 그 이야기가 점점 가지를 치고 양도 늘어나서 감당이 안 된 경험이 다들 있으실 거예요. ‘이 글을 왜 쓰려고 했지?‘ ‘그래서 뭐 어쨌다는 거지?‘ 글이 애초의의도에서 멀어지고 수습이 안 돼서 당황했던 적이 저도 많습니다. 이럴 때 끈기를 갖고 ‘생각을 생각하기‘라는 방법을 써봅니다. 왜 그런 생각이 드는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생각의 근원을 파헤치는 거죠.
글을 마무리하는 방법은 사실 글의 구조나 개요 짜기와 관련이 깊죠. 사람에 따라서는 글의 구조와 개요를 짜놓고 정해둔 결론을 설득하는 방식으로 글을 쓰기도 해요. 한편 저는 ‘이글이 어떻게 끝날지 알지 못한다‘라는 입장을 지닌 채 결론을열어놓고 쓰죠. 결론을 모른다는 점에서 막막하지만, 그렇기에 글을 쓰면서 나도 몰랐던 생각과 의외의 문장을 만나는 짜릿함을 느끼기도 합니다. 저에게 글쓰기의 기쁨이란 곧 발견의 기쁨입니다. - P134

가령, 《다가오는 말들》에 <울더라도 정확하게 말하기>라는글이 있습니다. 제가 강연장에 선 몇몇 경험을 토대로 쓴 글이에요. 한번은 서울에 있는 한 작은 마을공동체에 초대받아 강연을 하러 갔는데요. 강연 중 한 남성 청중이 제게 한 어떤 말에 모욕감이 들어서 저도 모르게 눈물을 흘렸습니다. 제가 원래도 잘 울어요. 잘 우는 사람에 대해서 우리 사회엔 안 좋은편견이 있죠. ‘감정적인 사람이다‘ ‘이성적이지 못하다‘와 같이요. 세상은 특히 공적인 자리에서 눈물을 보이지 않고 단호한사람을 높이 쳐주죠. 저도 그런 잣대로 저를 판단했고, 우는 저자신을 미성숙하다며 부끄러워했었어요. 강연하다가 분에 못이겨 또 울고 마는 제 자신이 창피했는데 가만히 생각해보니까 이상한 거예요. ‘눈물이 왜? 잘 우는 게 왜 안 좋지? 말이 되지 못해 흐르는 게 눈물인데, 눈물도 언어 아닌가?‘ - P135

잘 우는 사람은 눈물로 타인을 억압하진 않잖아요. 못 울고안 우는 사람들, 피도 눈물도 없는 사람들이 역사적으로 보면나쁜 일도 많이 저지르더라고요. 감정적인 게 나쁘고 이성적인 게 좋다고 이분법으로 생각하지만, 꼭 그렇지도 않은 거 같았어요. 이럴 때 생각의 희열을 느끼죠. 상식을 뒤집어보면 꼭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아요. 내 삶으로 반론을 제기하는 거죠.
강연장에서 눈물을 흘리고 혼란스러워하면서 ‘눈물이란 무엇일까?‘라는 문제의식을 떠올렸을 때 마침 리베카 솔닛의 책《여자들은 자꾸 같은 질문을 받는다》를 읽었어요. 책에도 솔 - P135

닛이 여성이기 때문에 강연장에서 겪은 무례한 일이 사례로나와요. 읽고 굉장히 놀랐어요. ‘리베카 솔닛도 이런 일을 당하는구나‘ ‘이건 젠더의 문제구나‘ ‘나만 겪는 일이 아니구나‘ 싶어서 그때의 이야기를 글에 빌려왔고 이런 결론에 이르렀습니다. "내 나약함을 혐오하지 않기 위해 목표를 바꾼다. 울지 않고 말하는 게 아니라 울더라도 정확하게 말하는 것." 이렇게 쓰고요. 마지막엔 솔닛의 문장으로 한 번 더 제 생각을 다지며 마무리했습니다. "내 내면에 대한 권한을 스스로 가짐으로써 다가오는 침입자에 맞서서 훌륭한 문지기가 되는 것, 최소한
‘왜 그런 걸 묻죠?‘라고 재깍 되물을 줄 아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 P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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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정은

살며 사랑하며 이야기의 힘을 믿고
오늘도 글을 쓰는 사람.
2012년 삶의향기 동서문학상 소설 부문 은상을 수상했다.
하고 싶은 대로 살아도 괜찮아, 사실은 이 말이듣고 싶었어」, 「여행이거나 사랑이거나 등 여러 책을 썼다. 네이버 오디오클립
‘윤정은의 책길을 걷다‘를 진행하고 있다.

봄이 지나면 가을이 오고, 가을이 지나면 다시 봄이오는 마을이 있다. 축구공만한 지구본을 돌리고돌리다 보면먼지처럼 작은 마을 하나가 눈앞에 떠오른다. 이곳은 지구에 있지만 아무나 그 존재를 알 수는 없다. 신비로운 꽃과나무가 가득하고, 상상할 수 없는 힘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산다. 날개는 없지만 요정처럼 아름다운 사람들이.
이곳은 언제나 꽃 같은 날들이 이어진다. 하늘은 시리게푸르고 날씨는 덥지도 춥지도 않다. 먹을 것이 풍족하고 웃음이 끊이지 않는다. 눈빛과 마음이 선한 이들이 모여 살기에, 그들은 ‘미움‘이나 ‘아픔‘ 혹은 ‘슬픔‘이라는 감정을 모른다. 날이 선 말을 하는 사람이 하나도 없어 늘 평화롭다. - P9

이 마을에서는 세상에 빛이 되는 아름다운 능력을 가진이들이 사람들이 사는 곳마다 온기를 불어 넣으며 달이 뜨면 은은한 달빛 아래 춤을 추고, 해가 뜨면 따뜻하고 눈부신 웃음으로 하루를 살아간다. 살을 에는 몸의 추위도, 어깨가 움츠러드는 마음의 추위도 없다.
그러던 어느 날, 마을에 사는 한 남자의 마음에 뜨거운여름이 찾아왔다. 예고도 없이. - P10

그동안 여자를 닮아 능력이 없는 줄 알았던 딸에게 뒤늦게 보이는 징후들이 걱정스러웠다. 사실 예전부터 눈치채고 있었지만, 단순히 공감 능력이 좋거나 실천력이 강한 것일 거라 넘기곤 했다. 그런데 선한 마법을 쓸 줄 알도록 선택받았기에, 세상에 빛이 되는 능력을 가진 이들이 꼭 넘어야만 하는 시련이 찾아오고 만 것이다.
시련을 극복하지 못하면 능력을 제대로 활용할 수 없고, 마음의 상처를 스스로 치유하는 방법을 오래도록 찾아 헤매야 한다. 그렇지만 시련을 극복하면 능력을 완전하게 갖추고 빛이 되는 존재로 살아갈 수 있다. 그 삶은 존경받는아름다운 삶이지만 외롭고 고통스럽기도 하다. 빛이 밝으면 어둠도 깊은 법이니까. 달의 이면처럼.
자신이 살던 도시에서 회복할 수 없는 상처를 받아 도망치듯 뛰다 정신을 잃고 이 마을에 들어선 여자였다.  - P14

감았던 눈을 떴지만 꿈이 아니다. 현실이다. 말 그대로 폐허다. 사랑하는 이들이 나 때문에 휩쓸려간 자리에 홀로 남겨져 있다.


후회되는 순간을 되돌릴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렇다면 나는 다른 선택을 할 수 있을까. 정말 그럴 수 있을까.
아니, 나쁜 일을 미리 알고 막을 수 있는 능력을 가졌다면 얼마나 좋을까. 어쩌면 내가 할 수 있지 않을까?
이럴 수는 없다. 이렇게 허무하게 한순간에 모든 것이 사라질 순 없다. 눈을 감았다 뜬 것 뿐인데, 빛나던 세상이 암흑으로 가득하다.


이건 꿈이다.
분명 꿈이야. - P19

사람이 궁지에 몰렸을 때 자신도 모르는 초인적인 힘이 나오는 것처럼, 소녀 역시 절박함과 깊은 슬픔에 특별한 능력을 발휘할 수 있었다. 본인의 능력을 발견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순간의 힘을 빌려, 백만 번을 다시 태어나 세기를넘나들도록 스스로를 봉인했다. 위험에 빠질 수 있다는 경고 따윈 무시했다. 사랑하는 이들을 잃은 지금보다 더 큰위험이 어디 있단 말인가. 선한 일에 능력을 사용해야 한다는 경고도 무시한 채 온 세기에 걸쳐 가족을 찾아다녔다.
빨갛게 생기 가득한 양 볼에 늘 사랑스러운 미소를 띠던 소녀는 수도 없이 다시 태어나고 세기와 세계를 넘나들며 웃음을 잃어갔다. 그래도 괜찮았다. 가족을 찾을 수만 있다.
면. 소녀는 계속해서 다시 태어나 셀 수도없이 많은 일을하며 세상을 헤맸다. - P22

그러나 반복해서 다시 태어날수록 소녀의 검고 깊은 눈에는 슬픔만이 가득했고, 소녀는 울지도 웃지도 않는 무표정한 사람이 되어갔다. 지독하게 쓸쓸하고 공허한 눈빛으로 제대로 먹지도, 잠을 자지도 않아 앙상하게 말라갔다.
헤어질 때의 외모를 그대로 간직해야 가족들이 자신을알아볼 수 있을 것 같아 얼굴이 변하지 않는 나이까지만 늙도록 했다. 어느 세기의 소녀는 이십 대였고, 어느 세기의소녀는 삼십 대였다. 몇 번은 사십 대로 산 적도 있었지만그 이상은 나이 들지 않았다. 사랑하는 이들이 자신을 알아보지 못할까봐, 아니 사실은 기억이 희미해져 자신이 그들을 알아보지 못할까봐 불안했다. 지치고 또 지치는 여정이었다. 야속한 시간이 마음보다 빠르게 흘러갔다. - P23

항상 슬프기만 한 건 아니었다. 소녀가 좋아하는 행위도있었다. 소녀는 곁에 있는 이들의 이야기를 가만히 들어주는 것을 좋아했다. 그들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소녀의 탁월한 공감 능력으로 감정이 전이돼 마음이 아팠고, 감정이 진정될 즈음 차를 내어주면 말하는 이가 천천히 미소를 짓곤했다.
그렇게 서로 편안해지는 순간의 공기가 좋았다. 슬프고우울하고 짜증나는 이야기를 듣는 일이 소녀에겐 힘들지않았다. 사람들보다 오랜 시간을 살아오며 기쁨의 순간들보다 힘든 순간들이 생에 널려 있음을 자연스레 알게 되었고, 그들이 털어놓는 속내가 소녀에게는 음악 소리와 같은
‘말소리‘로 들렸다. - P25

바다를 등지고 선 소녀 앞으로 바람이분다. 그리고 해가 진다. 왼쪽으로 고개를 돌리자 숨이 멎을 것 같다. 온 힘을 다해 하늘을 붉게 물들이며 해가 지고 있다. 타오를 듯한 해가 아주 천천히 바다로 들어가고 있다. 지는 해가 이토록 아름다웠던가.
산 아래 꼭대기 마을의 두 면은 바다를 품고 두 면은 도시를 품고 있다. 눈을 감고 숨을 아주 크게 들이쉰다. 물 냄새가 난다. 도시와 바다와 마을이 어우러지는 풍경을 바라보며 소녀는 쓸쓸해진다. 문득 뜨거운 눈물이 흐른다.
"뭐야, 해 지는 거 왜 이렇게 예뻐. 세상에 예쁜 게 아직남아 있네"
보는 이라도 있는 양 황급히 눈물을 닦으며 소녀는 해지는 풍경을 물끄러미 응시한다. 바람이 분다. 꽃 냄새가코끝을 스치고 지나간다. 바람에 흩날리는 머리카락을 쓸어 넘기며 소녀의 눈동자에도 노을이 물든다. - P28

해가 지자마자 어둠이 시작되는 것이 아니다. 해는 천천히 빛을 내며 지고 있었고, 보이지 않아도 남은 빛이 지속되고 있었다. 그렇다. 빛과 어둠은 양면이 아닌 한 면으로이어져 있다. 소녀는 찬찬히 어둠이 드리우는 광경을 바라본다. 깊은 어둠이라 해도 빛이 들어오는 부분이 있다. 완전한 어둠 속에 있다고 생각돼도 눈치챌 수 없을 정도로 희미하게 빛이 비춘다.
그리고 밤이 서서히 내려앉는다. 깊은 어둠 속에서도 해가 지듯 천천히 어둠은 밝음으로 이어져 달과 해가 같은 하늘에 공존한다. 낮의 달을 보지 못하는 건 낮의 해를 보려고만 하기 때문이 아닐까. 소녀는 가만히 무릎을 안고 웅크려 앉아 밤을 꼬박 샌다. 새벽이 오고 아침이 온다. 어둠이영원할 것 같아도 아침은 다시 온다. 살아 있는 한 노력하지 않아도 얻을 수 있는 건, 이 아침을 맞이하는 날들 아닐까. - P29

소멸되기 직전, 소녀가 주먹을 꽉 움켜쥔다. 그 순간, 깨진컵 조각들이 하얀 꽃잎이 되어 창문 밖 하늘로 날아간다. 구름 틈에 자리 잡은 꽃잎들이 소녀의 창문에 해가 환하게 비치도록 구름을 지운다. 새파란 하늘에 쨍한 햇살이내리쬐고 소녀가 입고 있던 옷은 빨간 동백이 새겨진 검은새틴 드레스로 삽시간에 바뀐다.
소녀가 눈을 뜨자, 가지런히 묶여 있던 머리가 스르르 풀린다. 오늘은 그런 날이다. 거세게 몰아치는 폭풍이온 것만같은, 고요하고 스산한 폭풍전야. - P31

지난 시절에 누군가의 슬픔을 듣고 위로를 건넨 날이면지은은 집으로 돌아와 그들의 이야기를 떠올리며 빨래를했다. 조물조물, 세제를 넣고 빨래를 주무르고 하얀 거품을바라봤다. 빨래를 물에 헹궈낼수록 거품과 함께 옷에 묻은먼지와 때들도 물에 흘러 내려갔다. 빨래가 끝나면 그들의슬픔과 아픔도 깨끗이 지워지길 바라며 빨랫감을 탈탈 털어 널었다. 빨래를 걸어두고 물이 뚝뚝 떨어지는 장면을 멍하니 보고 있으면, 세상의 모든 감정의 찌꺼기들도 같이 말라가는 기분이 들었다. 지은이 간절한 마음으로 빨래를 한다음 날이면, 어두웠던 이들의 표정은 말끔하게 펴 있었다.
구름이 걷힌 말끔한 하늘처럼. - P41

고요한 밤이다. 문을 열고 불을 켜자, 생각했던 대로 실내는 조명의 노란 빛으로 따뜻함이 감돈다. 나무 냄새를 맡으며 숨을 쉬자 서서히 마음의 귀가 열린다. 어떤 이들의말소리가 가까이 있다. 마음이 들려주는 이야기에 집중하던 지은이 바 테이블의 주방 안쪽으로 움직인다.
한동안 만들지 않았지만 오랜만에 정성껏 위로 차를 우려내야겠다. 이 차를 마시면 사람들의 마음속작은 주름이펴지고 잠시나마 편안해진다. 오늘처럼 깊은 밤에 누군가는 따뜻한 차 한 잔의 위로가 절실히 필요할 것이다.


아니, 어쩌면 오늘은 나 자신에게 더 필요할지도. - P42

눈을 감고 있는 재하를 보며 지은은 소리 나지 않게 나와 옥상 계단을 향해 올라가 남은 하루의 시간을 짐작한다.
시계를 보지 않는 지은은 빛과 하늘을 보며 시간을 가늠한다. 달은 가장 오래된 시계니까.
"종일 밝게 웃는 사람들 보면 왠지 마음이 짠해 욱신거려. 종일 웃을 수 있는 사람이 어딨어. 웃음 뒤에 슬픔을 감추어야만 살 수 있으니까 웃는 거지. 마음에 얼룩으로 남은아픔을 지워야만 숨 쉴 수 있는 사람도 있어."
마냥 웃던 재하를 떠올리며 혼잣말을 하던 지은은 팔짱을 끼고 서서 재하처럼 두 눈을 감는다. 숨을 크게 들이쉬며 양팔을 벌려 날갯짓을 하듯 길게 뻗는다. 등에서 진짜날개가 돋아 금방이라도 날아가버릴 것처럼.
그런 지은의 뒷모습을 어둠 속에서 누군가 물끄러미 지켜보고 있다. - P57

"사랑의 얼룩을 지우고 싶어요."
지은이 나타나길 기다리던 연희가 떨리는 손으로 읽던책을 덮으며 지은을 보자마자 말한다. 백화점 1층 화장품코너에서 일하는 연희는 사람을 많이 상대하다 보니 얼굴을 보자마자 느껴지는 인상으로 성격을 유추하고 관찰하는습관이 있다. 종일 사방이 막힌 답답한 공간에서 손님이 오길 기다리며 생긴 습관이다.
의심 많은 재하가 지은을 따라 올라간 뒤 마음 세탁소안의 공기는 점점 순해졌다. 공간의 공기를 채우는 건 물건이 아닌 사람의 기운이라고 생각하는 연희는 아까보다 한결 편안해진 공기에 왠지 모르게 지은이 단단한 사람 같다고 생각한다. 최소한 거짓말을 할 사람은 아닌 것 같다. 처음엔 이상한 말로 현혹시켜 물건을 파는 다단계회사인가싶었는데, 아무리 살펴봐도 팔 만한 물건은 없어 보인다.
어쩌면 마음의 얼룩을 지워준다는 게 진실일지도 모른다.
아니, 진실이 아닐지라도 지금 이 순간은 진실이라고 믿고싶다. - P73

가뜩이나 큰 눈을 더 동그랗게 뜨는 은별을 보며 지은은평소보다 더욱 친절하게 자신을 소개한다.
마음을 치유하고 싶다며 스스로를 열어 보이는 이들은꽤나 용감한 사람들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속이 곪아 있다. 곪아 있는지도, 아픈지도 인지하지 못하고 살아가는 이들이 대부분이다. 가장 아픈 상처 한두 개쯤은 치유해주어야 살 만해진다는 것도 모르면서 살아간다. 지은이 억겁의세월 동안 사람들에게 위로 차를 건네고 이야기를 들어주며 마음을 어루만져준 것만으로도 그들은 한결 편안하게자신의 아픔을 데리고 살아갔다. 그리고 지금 눈앞에 잔뜩떨고 있는 저 아이도 치유가 필요한 순간임이 느껴진다. - P110

"정말요? 와∙∙∙ 잘됐네요."
수줍게 웃으며 은별은 신호등을 힘차게 건넌다. 인생은초록불인 것 같아도 노란불도 들어오고 빨간불도 들어온다. 가끔 빨간불에만 정체되어 있는 듯해도 어김없이 초록불이 된다. 초록불 다음엔 다시 빨간불. 우리가 할 수 있는건, 그저 길을 걷고 신호등이 나오면 불빛에 따라 움직이는일이다. 지금 내게 맞는 신호가 없다면 기다리고, 언젠가신호가 올 때 또 다시 걷는 일이 아닐까.
"그래서 말인데, 지금 프리랜서 MD들 정규직 채용 전환 공고가 다음 달에 날 거야. 팀장 추천제가 있어서, 우리팀은 은별 씨 추천하려고 하는데 어때?"
"저야 너무 좋죠. 추천 감사합니다. 팀장님. 열심히 해볼게요" - P122

혼자 자란 해인에게 언어는 음악이다. 쳇 베이커, 듀크웰링턴, 빌 에반스, 폴 데스몬드를 좋아한다. 그들이 연주하는 음악을 듣고 있으면 해인은 자유로워진다. 대학에서미술사를 전공한 뒤 독립전시기획자로 일하며 사진을 찍고,
음악을 듣고, 말소리를 들으며 살아간다. 해인은 자신의 삶에대체로 만족한다. 좋아하는 일을 하고, 음악을 듣고, 책을 읽을 수 있는 여유가 있는 삶이 때론 사치스럽게 느껴지기도하지만. - P127

살아 있길 잘했다. 태어났으니, 살아 있으니, 살아지고숨을 쉬었다. 죽지 못해 살았다. 하지만 이제 살아 있으니살고 싶어지고 살고 싶어지니 사는 게 행복하다. 행복한 삶을 만드는 건 타인이 아닌 나의 마음가짐이라는 걸 연자는오랜 시간을 지나 와서야 깨닫는다. 행복도 연습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으려고 그토록 긴 불행의 터널을 지나왔는지도 모른다.
살아 있는 한 모든 얼룩이 아름답다. 좋은 생각만 하기에도 인생이 짧음을 아는 오늘을 살고 있음이 좋다. 연자는문득 생각에서 빠져나와 주름진 옷을 정성스레 다리는 지은의 뒷모습을 보며 ‘정순 언니가 딸을 낳았으면 딱 저렇게예쁠 텐데…. 하고 생각한다. - P173

마음으로부터 불행이 지속되기도 한다. 마음은어쩌면 모든 끝과 시작의 열쇠인 것일까.
마음에 대해 생각하며 지은은 세탁소 문을 잠그고 택배박스를 들고 우리 분식으로 걷는다. 그러고 보니, 마음에대해 이렇게 생각해본 적이 있었다. 백만 번이나 태어나면서도 마음을 들여다보지도, 생각하지도 않고 살았다.
마음은 꽃과 비슷하다. 보살펴주고 햇빛을 쐬어주면지기도 하고 피기도 하고 짓무르기도 하고 냄새도 나고 벌레도 생기고, 그러다 잎도 다시 피어나고 다시 꽃도 피는존재.
아름답기도 슬프기도 한 양가적 이면이 마음인 걸까. 아름답기만 한 마음은 존재하지 않는 걸까? 아니, 과연 아름답다는 것은 무엇일까. 슬픔과 아픔은 아름답지 않은 것이고 기쁨과 환희가 아름다운 것이라는 말은 어쩌면 반대일지도 모른다. 슬픔과 아픔이 아름답고 기쁨과 환희가 아름답지 않은 것이라는 사실을 알면 무너질까 봐, 숨기고 있는진실일지도 모른다. 모르겠다. 이리 오래 살아도 모르는 것투성이라니. - P178

행복은 내면의 빛이다. 손에 닿을 수 없는 높은 하늘이아니라 마음의 하늘에서 빛나고 있다. 행복은 이미 우리 마음 안에 있다. 행복은 바로 지금 여기, 이곳에 있다. 과거는 돌이킬 수 없고 살아갈 미래는 아직 오지 않았으니 지금살고 있는 오늘에 집중해야 한다. 한 걸음만 오른쪽으로 걸어도 이미 과거다. 한 걸음 앞으로 걸어도 미래가 아닌 현재다.
지나간 과거를 후회하느라 살아갈 미래에 눈이 멀어 미처 오늘을 보지 못했다. 사랑하는 가족을 잃은 과거의 슬픔과 후회를 안고 살아가느라 그리 오랜 시간을 다시 태어나며 살아왔어도 정작 오늘 행복한 적이 없었다. 아니, 행복할 거 같으면 겁이 나서 도망쳤다. 행복하면 안될 것 같았다. 하지만 사랑하는 엄마 아빠가 원하는 게 정말 지은이과거에 얽매여 이토록 행복을 두려워하며 사는 것이었을까? - P225

어떤 어둠은 투명함보다 더 투명하다. 어떤 어둠은 밝음보다 맑다. 어깨를 들썩이며 울고 있는 지은의 슬픔을 애도하기 위해 오늘은 달도 얼굴을 가리고, 쏟아질 듯 빛나는별도 잠시 빛나기를 멈춘다. 구름 한 점 없이 쨍하게 맑은밤이다.
어떤 밤의 이야기는 어떤 낮의 이야기보다 길다. 어떤이의 슬픔은 어떤 이의 배려로 어둠에 덮인다. 마음껏 슬퍼한 뒤 해가 뜨면 울음을 지운 웃음으로 살아가라고 밤이 깊은 것인지도 모른다. 다시 해가 뜨면 어떤 일이 일어날지모르지만 일단 지금은 조용히 닫힌 밤의 한가운데를 가르며 지나고 있다. 밤은 깊고, 서로를 염려하는 다정한 배려는더 깊다. - P228

평범한 삶의 행복을 느낄 때쯤이면 생을 끝냈다. 아직은행복할 수 없었다. 시공간을 넘나들어서라도 온 세상을 뒤져 사랑하는 이들을 찾으면 모든 괴로움을 끝내고 그들과함께 행복하고 싶었다. 그마음 하나로 살았다. 외로움이외로움인지도 모를만큼 익숙한 쓸쓸함으로 살아왔다. 아니, 익숙하다고 믿었다. 어쩌면 외로움이나 고독이 밀려와도 당연히 받아야 할 형벌이라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이토록 오랜 시간이 지나도 사랑하는 이들을 찾지 못할 줄은 몰랐다. 산다는 일 자체가 농담 같다. 인생은 풀리지 않는 의문투성이다. 이제 그만 포기하고 자신에 대한마법을 풀고 죽기로 결심한 뒤로, 전보다 자주 웃고 사람들과 어울리며 밥을 먹었고, 바람의 숨결과 냄새를 느끼며 살았다. - P229

그렇다. 빨래도 햇살과 바람이 함께 불어야 바싹 마르는데, 마음에도 온기와 찬기가 그리고 기쁨과 슬픔이 함께 오는 게 당연한 일 아닌가. 일어난 일은 받아들여야 한다. 돌릴 수 있다면 돌리고, 돌릴 수 없는 일은 어쩔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오랜 시간 도망치듯 살았던 삶에 이제 발붙일 테다. 가끔은 빨랫줄에 널려 있는 저 빨래들처럼 흔들림에 몸을 맡겨볼 테다. 비가 오면 비를 맞고 바람이 불면 바람을 맞고햇살이 맑으면 따뜻함을 즐길 테다. 바람이 불면 이리저리흔들리는 나를 바라볼 테다. 부족하고 실수하고 방황하고흔들리는 나를 있는 그대로 사랑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마음의 얼룩을 제대로 흘려보내는 비법이 아닐까? - P243

어쩌면 꿈꾸는 일을 현실로 만드는 능력은 굳이 마법을쓰지 않아도 우리 모두의 삶에서 가능한 능력일지도 모른다. 삶을 원하는 대로 만들어가는 힘은 실수하고 얼룩지더라도 자신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는 사람에게 주어지는 용기와 특권 같은 게 아닐까. 그렇다면 이 마법은 선택받은특별한 이에게만 허락된 것이 아니라 당신도 나도 가질 수있는 능력이다. 모두에게 이 비밀을 알려주려고 지은이 세상에 온 것일까. - P2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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