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달 만에 릴라와 나는 좀 더 가까워졌다. 우리는 언젠가부터 함께 장을 보기 시작했다. 일요일에는 큰길을 따라 허구한 날 똑같은 노점 사이를 돌아다니는 대신 나폴리 시내로 가자고 했다. 우리는 엔초와 함께 딸들을 데리고 따스한 햇볕 아래 바닷바람을 쐬러갔다. 우리는 카라치올로 가나 빌라 코무날레 공원을 산책했다. 그럴 때면 엔초는 티나를 목마 태우고 다녔다. 엔초는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티나를 애지중지했다. 그렇다고 내 딸들을 소홀히 대하는 법도없었다. 엔초는 아이들에게 공과 달콤한 과자를 사주고 함께 놀아주었다. 그럴 때면 나와 릴라는 일부러 뒤처져 걸었다. 우리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하지만 사춘기 시절과는 달랐다. 그 시절은 - P372
이제 다시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릴라는 자기가 텔레비전에서 들은내용에 대해 물었고 나는 릴라의 질문에 유창한 답변을 늘어놓았다. 나는 릴라에게 포스트모더니즘이라든지 출판계의 문제라든지 페미니즘계의 새 소식 등에 대해 머릿속에 떠오르는 대로 들려주었다. 그러면릴라는 살짝 장난기 어린 눈빛으로 내 말에 주의 깊게 귀기울였다. 질문할 때 빼고는 끼어들거나 자기 의견을 말하지 않았다. 나는 그런 식으로 릴라와 대화하는 것이 좋았다. 릴라가 감탄하는표정으로 나를 바라볼 때도 좋았고 내게 "너는 정말 아는 것도 많고생각도 많구나"라고 말할 때도 좋았다. 가끔 나를 놀리는 것 같기도했지만 그마저도 괜찮았다. 내가 릴라의 의견을 듣고 싶다고 부추길때마다 릴라는 괜히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하게 만들지 말고 너나계속 이야기하라며 몸을 사렸다. 릴라는 종종 유명 인사들의 이름을 대면서 내가 그들과 개인적인친분이 있는지 묻곤 했다. 내가 아니라고 하면 실망하는 눈치였다. 하지만 솔직히 말해 내가 나와 친분이 있는 유명 인사들을 보통 사람들과 같은 수준으로 끌어 내릴 때도 그에 못지않게 실망하는 눈치였다. - P373
내가 대답했다. 나는 릴라가 나를 상류사회의 일원이기는 하되 그들과는 다른 존재로 생각해주기를 바랐다. 릴라 자신도 내가 그런사람이 되기를 바라는 것 같았다. 릴라는 내가 내 동료들에 대해 비아냥거리는 말을 들으며 재미있어 했지만 그러면서도 그들이 계속내 동료로 남기를 바랐다. 가끔 릴라가 내가 정말로 대중에게 현실을 가르쳐주고 어떤 방식으로 생각해야 하는지 알려주는 부류의 사람들 가운데 한 명이라는 사실을 확인하려고 나에게 집착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릴라는 내가 책을 쓰고, 잡지와 신문에 기고하고 가끔텔레비전에 모습을 드러내는 사람이어야만 내가 고향에 남기로 한결정이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내게 그런 후광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 릴라의 친구이자 릴라와 이웃으로 지낼 수 있는 전제 조건인 것 같았다. - P374
전북릴라는 때때로 나와 아이들을 저녁식사에 초대했고 그런 릴라보다 내가 더 자주 릴라와 엔초를 저녁식사에 초대했다. 릴라 커플은우리 집에 올 때마다 당연히 티나를 데려왔지만 젠나로는 데려오지않았다. 아무리 애를 써도 젠나로는 우리 집에 오지 않았다. 젠나로는 하루 종일 밖에 있다가 늦은 밤이 되어서야 집으로 돌아왔다. 나는 얼마 지나지 않아 엔초가 젠나로 때문에 걱정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반면에 릴라는 ‘이제 다 컸는걸. 하고 싶은 대로 하라지‘라는 주의였다. 하지만 나는 릴라가 그렇게 말하는 것은 불안해하는 엔초의 마음을 누그러뜨리기 위해서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럴 때 릴라의 말투는 나와 이야기할 때 쓰던 말투와 똑같았다. 엔초가 고개를 끄덕이면 강장제 같은 무엇인가가 릴라에게서 엔초에게로 옮겨갔다. - P376
길을 가다가도 비슷한 일이 일어났다. 나는 릴라와 함께 장을 보러 나갈 때마다 깜짝 놀라곤 했다. 릴라는 우리 동네의 중요 인사로등극했고 사람들은 너도나도 릴라를 불러 세웠다. 그들은 릴라를 한쪽으로 데려가 존경을 담아 자신들의 비밀을 털어놓았다. 그들이 릴라의 귀에 대고 뭔가를 속삭이면 릴라는 특별한 반응 없이 그들의말에 귀를 기울였다. 릴라가 새로운 사업에서 성공해서 사람들이 릴라를 그렇게 대하는 걸까.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사람처럼 보여서일까. 아니면 마흔을 목전에 둔 지금 릴라가 발산하는 특유의 기운이무르익어 사람들의 눈에 릴라가 때로는 매혹적이고 때로는 두려운마법사처럼 보이는 것은 아닐까. 나도 잘 모르겠다. 물론 사람들이 나보다 릴라를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기는 했다. 나는 유명한 작가인 데다 새책의 출간을 앞두고 출판사에서 신문지면에 내 이름을 최대한 많이초가 고개를 끄덕게로 옮겨갔다. - P376
거론하려고 한창 힘쓰고 있을 때였으니까. 『레푸블리카』지는 신간도서를 소개하는 짧은 기사를 게재하면서 내 사진을 꽤나 크게 실었다. 기사에는 "특히 엘레나 그레코의 신작에 대한 기대가 높다. 엘레나 그레코의 이번 소설은 사람들에게 알려지지 않은, 유혈이 낭자한나폴리를 배경으로 한다‘라는 내용이 쓰여 있었다. 그런데도 우리가 태어난 고향에서 릴라 곁에 서면 나는 장식품에 지나지 않았다. 릴라의 공적을 목격한 증인에 지나지 않았다. 태어날 때부터 우리를알아온 사람들은 고향에서 길을 가다 나처럼 존경받는 유명 인사를직접 볼 수 있는 것도 다 릴라와 릴라의 매력 덕분이라고 생각했다. - P377
안토니오는 릴라를 위해 그런 일을 해주고 있었던 것이다. 돈 때문이 아니었다. 릴라와의 우정과 릴라에 대한 존경심 때문이었다. 아니면 릴라가 안토니오의 고용주인 미켈레에게서 그를 빌려온 것일 수도 있었다. 릴라가 요구하는 것은 뭐든 허락하는 미켈레라면릴라가 그렇게 하도록 내버려두었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미켈레가 정말로 릴라의 요구를 다 들어주고 있는 걸까. 내가 고향으로 이사 오기 전까지는 확실히 그랬던 것 같지만 아직도그런 관계가 유지되고 있는지는 명확하지 않았다. 나는 먼저 예전과는 다른 몇 가지 징조를 느꼈다. 우선 릴라가 미켈레 이름을 언급할때 예전처럼 흡족해하지 않았다. 오히려 불편해하거나 걱정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무엇보다도 미켈레가 베이직 사이트에 나타나는수가 눈에 띄게 줄었다. - P382
그 기사를 쓴 사람은 고향 동네의 역사에 대해 말했다. 심지어는돈 아킬레 카라치와 마누엘라 솔라라의 살해사건까지 언급했다. 특히 마누엘라 솔라라 살해사건에 대해 두 가지 가설을 세우며 이를자세히 다뤘다. 그는 마누엘라 솔라라의 죽음을 두고 카모라 집안간의 세력 다툼이 가시화된 사건이거나 아니면 이곳에서 태어나 성장한 벽돌공이자 동네 공산당 의회의 전직 서기관인 ‘악명 높은 테131212러리스트 파스콸레 펠루소‘의 작품일 거라고 했다. 하지만 나는 파스콸레에 대해서는 한 줄도 쓴 적이 없었다. 돈 아킬레나 마누엘라 솔라라에 대해서 언급한 적도 없었다. 카라치도 솔라라도 나에게는 희미한 윤곽일 뿐이었다. 사투리 억양과 몸짓과 때로는 공격적인 말투로 순수한 상상의 산물인 소설 속 인물들을 풍요롭게 해주는 희미한 윤곽과 목소리에 지나지 않았다. 나는 그들의사업에 참견하려던 것이 아니었다. ‘솔라라 형제의 영지‘가 대체 나와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나는 소설을 썼을 뿐이다! - P396
릴라는결국 나는 그러기로 했다. 릴리는 나를 진정시키려 했다. 자기가또다시 내 책에 대해 안 좋게 말했다는 것도 잊게 하려고 했다. 릴라는 처음에는 사투리로 말하다가 나중에는 중요한 순간에만 나오는표준어 실력을 발휘했다. 나는 릴라가 그런 식으로 말할 때마다 깜짝 놀라곤 했다. 릴라는 지진 이야기를 꺼냈다. 지난 2년 동안 릴라는 지진 때문에동네가 더 안 좋아졌다고 불평할 때 빼고는 그날 겪은 일에 대해 말하는 것을 피해왔다. 릴리는 그 사건 이후로 자기는 인간이 복잡한존재라는 것을 잊지 않기 위해 노력한다고 했다. 인간이란 물리학, 천체물리학, 종교, 영혼, 부르주아, 프롤레타리아, 자본, 노동, 이윤, 정치, 수많은 조화로운 문장과 그렇지 않은 문장, 내적인 혼란과 외적인 혼란으로 가득 찬 존재라는 사실을 잊지 않으려고 노력한다고 했다. - P399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이 순간에도 평생 내가 누린 행운을 생각하면 부끄러운 마음이 든다. 내 책은 큰 반향을 일으켰다. 가독성이뛰어나다는 점을 강조하는 사람도 있었고 주인공 캐릭터를 완성한내 능력에 찬사를 보내는 사람도 있었다. 내 작품을 두고 비정한 현실주의라고 표현한 사람도 있었고 바로크적인 상상력을 강조했다는 사람도 있었다. 부드럽고 편안한 여성적인 서술방식을 높게 평가한 사람도 있었다. 긍정적인 평이 쏟아졌지만 각기 다른 부분을 강조했고 종종 서로 모순적이었다. 마치 비평가들이 서점에 있는 내책을 읽은 것이 아니라 각자의 선입견이 만들어낸 가상의 책을 소환하는 것 같았다. 파노라마지 기사가 나온 뒤 한 가지 사실에 대해서는 모든 이가 동의했다. 사람들은 하나같이 내 소설이 나폴리라는 도시를 서술하는 일반적인 방식과 전혀 다르게 나폴리에 대해 서술하고 있다고했다. - P402
병원 복도에서 릴라를 바라보니 나보다 더 지쳐보였다. 내가 없는동안 릴라는 한결같이 엄마 곁에서 자신의 다정하고 따뜻한 온기를불어넣어주고 있었던 것이다. 릴라는 며칠동안 집에도 가지 않고잠도 거의 못 잔 탓에 너무 피곤해서 시선이 흐릿해보였다. 나도 릴라와 마찬가지로 피곤한 상태였지만 그런 릴라와는 달리 내면에서환한 광채가 뿜어져 나오는 것 같았다. 겉으로 보기에도 그랬을 것이다. 내 딸이 아팠다는 사실을 알고 나서도 지금 내 모습에 대한 만족감을 지울 수 없었다. 전국 방방곡곡을 돌아다니면서 맛본 자유를잊을 수 없었다. 스스로를 모든 것을 새로 시작하는 과거가 없는 사람처럼 규정하며 맛본 희열감을 떨쳐내기 힘들었다 - P410
임마가 퇴원하자 나는 릴라에게 이런 내 감정을 털어놓았다. 나는죄책감과 자부심이 뒤섞인 혼란스러운 마음을 정리하고 싶었다. 릴라에게 고맙다는 말을 하고 나 대신 임마에게 무엇을 해줬는지 세세히 듣고 싶었다. 하지만 릴라는 내게 짜증스럽게 쏘아붙였다. "그만둬, 레누. 이미 다 지나간 일인걸. 임마는 다 나았잖아. 이것보다 훨씬 심각한 문제가 있어" 처음에 나는 릴라 회사에 문제가 있는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내문제였다. 릴라는 엄마가 병에 걸리기 직전에 내 앞으로 소송장이 - P410
날아올거라는 것을 알게 됐다고 했다. 다름 아닌 카르멘이 나를 고소한 것이었다.
나는 깜짝 놀랐다. 마음이 아팠다. 카르멘이, 다른 사람도 아닌 카르멘이 내게 그런 짓을 했다니. 성공에서 오는 희열은 그 순간 끝났다. 엄마를 제대로 돌보지 않고 내버려두었다는 죄책감에 소송을 당해 돈과 명예와 기쁨을 비롯한 모든 것을 빼앗길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더해졌다. 갑자기 나자신이, 나의 일장춘몽이 부끄럽게 느껴졌다. 나는 릴라에게 지금당장 카르멘과 이야기하고 싶다고 했지만 릴라는 그러지 말라고 했다. 릴라는 내게 말해준 것보다 더 많은 걸 알고 있는 것 같아서 나는릴라의 충고를 듣지 않고 카르멘을 만나러 갔다. - P411
나는 전보다 더 불안에 떨면서 신문 가판대에 갔다. 신문에는 티나와 함께 찍은 내 사진이 실려 있었다. 이번에는 흑백사진이었다. 제목부터 소송을 언급하고 있었다. 기사는 이번 소송을 보기 드물게용기 있는 소설가의 입에 재갈을 물리려는 시도로 평했다. 고향 동네 이름이나 솔라라 형제 이름을 직접적으로 거론하지는 않았다. 기사는 상당히 숙련된 솜씨로 이번 사건을 나라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이탈리아의 현대화를 막는 중세적 잔재와 드디어 이탈리아 남부 지역에서도 나타나기 시작한 거스를 수 없는 정치적·문화적 개혁의 흐름 간의 충돌 현상‘의 일환으로 해석했다. 짧은 글이었지만 - P416
문학의 권리를 ‘암울한 지역 분쟁‘과 분리하면서 특히 결론 부분에서 이런 주장을 효과적으로 변론했다. 나는 안정을 되찾았다. 보호받고 있는 느낌이었다. 나는 편집장에게 전화를 걸어 기사를 극찬한 다음 릴라에게 신문을 보여주러 갔다. 나는 릴라가 기뻐할 거라고 생각했다. 사실 릴라가 내게 기대했던 것도 이런 게 아니었던가. 그간 릴라가 내게 부여한 힘이 실제로발휘된 것이다. 그런 내 기대와는 달리 릴라의 반응은 냉랭했다. "왜 이 사람에게 기사를 쓰게 한거야?" "뭐가문제야? 출판사가 내 편을 들어줬잖아. 이 소동을 잠재워주겠다는 거잖아. 나는 좋은 일인 것 같은데?" "다 쓸데없는 소리야, 레누. 이 작자는 책 판매에만 관심이 있을뿐이야." "그럼 안돼?" "물론 그래도 돼. 하지만 기사는 네가 썼어야지." - P417
며칠 동안 나는 대참사가 일어나기를 기다렸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기사가 일으킨 파장은 꽤나 컸다. 나폴리 지역 신문들은 『코리에레 델라 세라지의 기사를 언급하면서 내용을 좀 더 심도있게 다뤘다. 나는 나를 지지하는 사람들에게서 응원의 전화와 편지를 받았다. 몇 주가 지나자 소송당했다는 사실에 익숙해졌다. 작가 중에서 나와 같은 일을 겪거나 나보다 더 큰 위험에 노출된 사람이 많다는 사실도 알게 됐다. 그 후 일상이 모든 것을 잠식했다. 나는 얼마동안 릴라를 피했다. 잘못된 행동에 휩쓸리지 않으려고 특히 주의를 기울였다. 책은 꾸준히 잘 팔렸다. 8월이 되자 나는 산타마리아 디 카스텔라바테로 휴가를 떠났다. - P422
베이직 사이트를 찾아갈 때마다 릴라는 알폰소와 뭔가를 모의하고 있었다. 내가 가까이 가려 하면 릴라는 무심한 동작으로 내게 잠시 기다려달라는 신호를 보냈다. 동네로 돌아온 카르멘과 알 수 없는 이유로 출발을 무기한 연기한 안토니오와 이야기할 때도 릴라는내게 그런 식으로 행동했다. 릴라의 주변 상황이 안 좋아지고 있는 것이 분명했지만 릴라는 나를 자기 일에 끌어들이려고 하지 않았다. 나도 그 편이 좋았다. 그러다 두 가지 끔찍한 사건이 연달아 일어났다. 릴라는 우연히 젠나로팔에 가득한 주사 자국을 보게 됐다. 릴라가 그렇게 소리를 지르는것은 처음이었다. 릴라는 엔초를 부추겨 젠나로를 죽도록 두들겨 패게 했다. 건장한 두 사내는 서로 처절하게 치고받았다. - P423
알폰소는 어느새 살이 쪄서 무거워진 자기 몸에서 계속해서 도망치려 했다. 며칠 동안 자취를 감출 때도 있었다. 다시 나타날 때면 언제나 얻어맞은 흔적이 있었다. 다시 일을 시작하기는 했지만 그마저도 마지못해서였다. 어느 날 알폰소가 완전히 사라졌다. 릴라와 엔초가 사방으로 찾아다녔지만 결국 찾지 못했다. 며칠 후 코롤리오 해변에서 알폰소의시신이 발견되었다. 어디선가 맞아죽은 다음 바다에 버려진 것이었다. 처음 소식을 들었을 때 나는 그 사실을 믿을 수 없었다. 모든 것이 잔혹한 현실이라는 것을 깨달았을 때는 고통에서 헤어 나올 수없었다. 나는 고등학교 시절의 알폰소를 떠올렸다. 친절하고 세심한성격의 알폰소 마리사의 사랑을 담뿍 받고 약국집 아들 지노에게는괴롭힘을 당하던 알폰소를 말이다. 가끔 알폰소가 여름방학 동안에억지로 식료품점 진열대 뒤에서 일하던 모습을 애써 떠올려보려고도 했다. 하지만 그 이후의 그의 삶은 생각나지 않았다. - P425
알폰소가 사망했다는 소식을 들은 지몇 시간이 지난 후였다. 릴라는 알폰소가 죽었다는 것을 알면서도며칠 전부터 그에 대한 분노에서 벗어나지 못해 그는 믿지 못할 놈이라는 말만 우악스럽게 반복하고 있었다. 한참을 그렇게 난리를 치던 릴라는 고통을 이기지 못하고 우리 집 바닥에 쓰러지고 말았다. 그때 나는 릴라가 나나 마리사보다 알폰소를 더 많이 사랑했다는 사실을 알았다. 알폰소 스스로 자주 말했듯이 릴라야말로 어느 누구보다 알폰소에게 많은 도움을 주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 후 몇시간동안릴라는 모든 의욕을 잃고 하던 일을 멈췄다. 젠나로에 대한 관심도 잃고 티나도 내게 맡겼다. 릴라와 알폰소의 관계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복합적이었던 것 같다고 나는 생각했다. 릴라는 알폰소를 거울처럼 마주보고 알폰소에게서 자기의모습을 보았던 것이다. 그의 몸에서 자신의 일부를 끌어내고 싶었던 것이다. 내가 두 번째 책에 쓴 내용과 정확하게 반대되는 현상이라고 나는 불편한 마음으로 생각했다. 알폰소는 그런 릴라의 노력이좋았던 것이다. 그는 릴라에게 자기 자신을 살아 있는 재료로 제공했고 릴라는 그런 알폰소에게 형태를 만들어준 것이다. - P426
이런 식으로 생각하다보니 내 자신이 미켈레에게 잔혹하게 복수하는 모습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나는 그를 때리고 손톱으로 할퀴고물어뜯었다. 심장이 강하게 뛰었다. 그러다 내 파괴 본능은 차츰 사그라들었다. 나는 생각했다. ‘릴라 말이 맞아. 글은 그저 쓰기 위해 쓰는 게 아니야. 정말 상처주고 싶은 자에게 고통을 주기 위해 쓰는 거야.‘ 말의 힘으로 주먹과 발길질과 치명적인 무기에 맞서는 것이다. 대단치는 않겠지만 그 정도면 충분하다. 물론 릴라는 유년 시절 우리가꿨던 꿈을 아직도 머릿속에 간직하고 있었다. 릴라는 누군가가 - P431
글을 써서 명성과 돈과 권력을 얻었다면 그 사람의 글은 천둥번개처럼 강력하다고 믿었다. 하지만 나는 이미 오래전부터 실제 글의 힘이란 릴라가 상상하는 것만 못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책이나기사로 시끄럽게 떠들어댈 수는 있었다. 그런 시끄러운 소리라면 고대전사들이 전투에 나가기 전에도 내지 않았던가. 진짜 힘과 가공할 만한 폭력을 동반하지 않는다면 그건 모두 연극일 뿐이었다. 그런데도 나는 실수를 만회하고 싶었다. 시끄러운 소리로도 그들을 조금은 아프게 할 수 있다. 어느 날 아침 나는 아래층으로 내려가릴라에게 물었다. "솔라라 형제가 두려워하는 게 뭐야? 뭘 알고 있는 거야?" 릴라는 의아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내키지 않은 듯 말을돌리다가 릴라가 대답했다. "미켈레 회사에서 일할 때 나는 많은 서류를 봤어. 나는 그 서류들을 꼼꼼히 살폈지. 어떤 것은 미켈레가 직접 내게 주기도 했고." 릴라의 얼굴에는 아직 멍이 들어 있었다. 릴라는 괴로운 듯 인상을 찡그리면서 거친 사투리로 덧붙였다. - P432
티나와 임마가 바닥에 앉아 인형과 장난감 마차와 말을 가지고 놀면서 낮은 목소리로 소곤거리는 동안 우리는 부엌 식탁에 자리를 잡았다. 릴리는 가방에서 많은 서류와 자기가 메모해 놓은 종이와 여기저기 얼룩이 묻은 붉은색 표지의 공책 두권을 꺼냈다. 나는 호기심에 붉은색 표지의 공책 두 권부터 먼저 펼쳐보았다. 먼 옛날 초등학교에서 가르치던 글씨체로 모눈종이에 쓴 회계장부였다. 문법이엉망인 문장으로 주석이 세세하게 달려 있었고 페이지마다 M.S.라는 이니셜로 서명되어 있었다. 나는 그것이 동네 사람들이 이른바 마누엘레 솔라라 부인의 붉은장부라고 부르던 것의 일부라는 사실을 알았다. 유년 시절과 사춘기시절 ‘붉은 장부‘라는 표현은 위협적이지만 너무나 매혹적이었다. - P433
아니 위협적이기 때문에 매력적이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명칭이나 (예컨대 그냥 평범하게 회계장부라고 불렀더라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색상에 상관없이 우리는 마누엘라 부인의 공책이 유혈이 낭자한 모험의 중심에 있는 비밀문서라고 생각하면서 흥분하곤 했다. 그 장부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정확히 모두 몇 권인지는 알 수 없지만 마누엘라 부인의 붉은 장부는 내 눈앞에 있는 두 권의 공책처럼 학생들이 흔히 쓰는 공책 묶음이었다. 낡아서 오른쪽가장자리 아래가 파도처럼 일어난 흔하디흔한 공책 말이다. 나는 문득 기억 자체가 이미 문학작품이며 릴라 말이 옳았을지도모른다고 생각했다. 크게 성공했을지라도 내 책은 정말 형편없을지도 모른다. 너무나 일목요연하게 잘 정리된 글이기 때문이다. 거의집착 수준으로 세심하게 다듬은 글이기 때문이다. 일관성 없고 미학과는 거리가 먼 데다가 비논리적이고 뚜렷한 형태가 없는 지극히 평범한 현실을 있는 그대로 그려내지 못한 글이기 때문이다. - P434
보이지 않는 움직임에 따라 문장이 사라지거나 아니면 어느새 다른 곳에 가 있었다. 펜도 연필도 필요 없었다. 종이를 바꾸거나 타자기 롤러에 종이를새로 끼울 필요도 없었다. 화면 자체가 종이였다. 수정한 흔적을 남기지 않고 항상 똑같아 보이는 유일한 종이였다. 화면에 쓰인 글은절대로 더럽힐 수 없을 것처럼 보였다. 줄의 배열도 완벽했다. 솔라라 형제의 추잡한 짓거리와 캄파니아 지역의 비리를 규탄하는 내용을 담고 있는데도 정갈한 기운을 발산했다. 우리는 며칠 동안 함께 작업했다. 글은 인쇄기의 소음을 통해 하늘에서 땅으로 내려와 종이 위에 찍힌 까만색 점들로 구체화되었다. 릴라가 만족하지 못해 우리는 다시 펜을 들었다. 우리는 글을 힘겹게 고쳐 썼다. 릴라는 걸핏하면 화를 냈다. 나에 대한 기대치가 너무높았다. 릴라는 내가 모든 질문에 대답해주기를 바랐다. - P436
릴라는 내가 지식의 샘인 줄 알았는데 막상 지역 지리도 잘 모르고 관료 체계의 세밀한 부분에 대해서도 무지한 데다 시의회의 기능이나 은행의 위계, 범죄와 형벌에 대해 잘 몰라 문장마다 막히자나에게 화를 냈다. 하지만 모순적이게도 나는 정말 오랜만에 릴라가나와 우리의 우정을 자랑스러워하는 것을 느꼈다. "그 자식들을 파멸시켜야 해, 레누. 이렇게 해도 안 되면 내가 그자식들을 죽여버리겠어." 우리의 머리는 오랫동안 서로 충돌하다 결국 하나가 되었다. 지금생각해보면 그런 경험은 그때가 마지막이었다. 끝으로 우리는 모든것이 끝났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만 했다. 할 것은 다했다는 마음으로 기다릴 수밖에 없는 지루한 시기가 시작되었다. 릴라는 우리의글을 다시 인쇄했고 나는 그것을 봉투에 넣어 출판사에 보냈다. - P436
일주일이 지나고 이주일이 지났다. 어느 날 아침 편집장은 내게전화를 걸어 나에 대한 과찬을 늘어놓았다. 지금이 자네 재능의 황금기인가보네." 편집장이 말했다. "제 친구랑 같이 쓴 글이에요." "최고의 실력을 발휘했어. 정말 멋진 글일세. 부탁이 있네. 이 글을사라토레 교수에게 좀 보여줘. 그가 이 글을 읽고 어떻게 해야 뭐든열정적인 글로 바꿀 수 있는지 배우게 말이야." "니노와는 헤어졌어요." "그래서 자네 컨디션이 그렇게 좋아진 게로군." 나는 웃지 않았다. 변호사들이 뭐라고 했는지 빨리 듣고 싶었다. 편집장의 대답은 실망스러웠다. "이걸로는 부족해." 편집장이 말했다. "개인적으로 만족하는 정도라면 모를까 단 하루도 그들을 감옥에보낼 수 없어. 이 정도로 솔라라 형제를 감옥에 넣기는 힘들어. 특히 "자네가 쓴 것처럼 그들이 지역 정치세력과 결탁한 데다 뭐든 살 수있을 정도로 돈이 많다면 더 힘들어." - P437
순간 식은땀이 흘렀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아무렇지 않은척했다. ‘에스프레소지에 글을 보낸 것이 릴라라는 걸 깨닫는 데는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나는 항의를 하려고릴라에게 달려갔다. 나는 정말 화가 났는데 릴라는 평소보다 다정한 데다 기분이 좋아보이기까지 했다. "네가 결정을 못 하기에 너 대신 내가 결정했어." "나는 출간하지 않기로 이미 결정을 내렸어." "나는 아니야." "그러면 네 이름으로 출간하도록 해." "무슨 말이야? 작가는 너잖아." 릴라에게 내 불만과 불안한 마음을 이해시키기는 불가능했다. 내가 비판적인 말을 할 때마다 릴라는 태평한 태도로 맞섰다. 여섯 장의 페이지를 빡빡하게 채운 기사는 비중 있게 다루어졌고 예상했던대로 서명란에는 단 하나의 이름, 그러니까 내 이름만 있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후 나는 릴라와 싸웠다. 나는 잔뜩 화가나서 릴라에게 말했다. - P440
‘너는 숨어 있고 싶어서 네 이름을 뺀 거야. 돌만 던지고 숨는 게편하니까. 네 계략에 이젠 넌덜머리가 나." 내 말에 릴라는 웃음을 터뜨렸다.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런 식으로 생각하지 마." 릴라가 말했다. 릴라는 샐쭉해져서 에스프레소지에 내 이름만넣은 것은 자기는 아무도 아니기 때문이라고 했다. 공부를 제대로하고 유명한 사람은 나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나라면 그 누구라도두려움 없이 비판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릴라의 말에 나는 릴라가 순진하게도 내 지위를 과대평가한다고 내 생각을 말했다. 하지만 릴라는 짜증을 내면서 나야말로 내 자신을 너무 과소평가한다고했다. 릴라는 내가 더 열심히 노력해 주변 사람들에게 더 많이 지지받길 원한다고 했다. 자기는 오직 내 가치가 더 인정받기를 바랄 뿐이라고 했다. 릴라가 외쳤다. 솔라라 자식들이 무슨 일을 당할지 지켜봐." 나는 전보다 더 기운이 빠져 집으로 돌아왔다. - P441
실제로는 내 이름으로 기사를 게재함으로써 나는 한 단계 더 성장하게 되었다. 기사 덕분에 그동안 흩어져 있던 나에 대한 파편적인 정보들이 꿰맞춰졌다. 내가 소설가라는 직업적 소명만 따르는 것이 아니라 지난날 노동운동에 참여하고 여성이 처한 현실을 비판하는 데 힘썼듯이 지금은 내 고향을 타락시키는 세력과도 맞서고 있다는 사실을 증명한 것이었다. 이렇게 해서 1960년대 말에 형성됐던소수의 독자층에 어느 정도 기복을 겪으면서 70년대에 형성된 독자층이 합해졌고 여기에 그보다 더 많은 새로운 독자층이 유입되었다. 이러한 현상은 첫 두 작품에 영향을 미쳐 두 책 모두 다시 출간되었고 세 번째 책이 꾸준하게 팔리는 데도 도움이 되었다. 마지막 작품을 영화화하려는 계획도 점점 구체화되고 있었다. - P433
그 모든 것이 내 일의 일환이었고 나는 날마다 내 일을 더 잘하는 법을 배워가고 있는 중이었다. 법률적인 부분에서 도움을 주는 출판사 측과 나를 지지해주는 진보언론사, 날이 갈수록 많은 사람이 참석하는 독자와의 만남과 내가옳은 일을 하고 있다는 신념에 보호받는 느낌이었다. 솔직히 말하면 단지 이런 이유만으로 내가 안정을 되찾을 수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내가 완전히 안심하게 된 것은 솔라라 형제가 결코나를 해치지 못할 거라는 확신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내가 대중들 앞에 모습을 나타내면 나타낼수록 그들은 최대한 모습을 드러내지 않으려 했다. 마르첼로와 미켈레는 새로운 소송을 걸지 않았을뿐 아니라 이후 모든 일에 침묵으로 일관했다. 법률 집행관 앞에서마주칠 때에도 차갑지만 정중하게 인사를 건넬 뿐이었다. 상황은 이렇게 진정됐다. 실질적으로 일어난 일은 솔라라 형제에대한 몇몇 수사가 시작되고 그에 대한 수사 파일이 만들어진 정도였다. 하지만 출판사 법무팀이 예견했던 것처럼 수사는 곧바로 난항을겪었고 파일은 다른 수백 개의 파일 아래 파묻혔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됐을 거라고 상상했다. 결과적으로 솔라라 형제는 여전히 활개를 치고 돌아다녔다. - P443
릴라 품에는 엄마가 안겨 있었다. 임마는 평소에 내가 자기한테신경을 써주지 않을 때 내 귀를 잡아당겼던 것처럼 릴라 귀를 잡아당기고 있었다. 릴라는 엄마가 자기 귀를 지지든 볶든 신경 쓰지 않고 니노에게 푹 빠져 있었다. 니노는 유쾌한 태도로 미소를 띤 채 기다란 팔과 손을 움직이면서 릴라와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나는 화가 치밀어 올랐다. 저러느라 니노가 돌아오지 않은 것이다. 저런 식으로 자기 딸을 돌보다니. 나는 니노를 불렀지만 그는 내목소리를 듣지 못했다. 내 목소리에 뒤를 돌아본 것은 데데였다. 데데는 엘사와 함께 내 목소리가 너무 얇다고 비웃었다. 아이들은 내가 고함을 지를 때면 항상 그랬다. 나는 다시 한번 니노를 불렀다. 나는 당장 니노가 릴라에게 작별 인사를 하고 혼자서 내 딸들만 데리고 집으로 돌아왔으면 했다. 하지만 땅콩장수의 휘파람소리 때문에귀청이 터질 것 같은 데다 마침 부품 하나하나가 다 덜컹거리는 것같은 엄청난 소음과 먼지를 일으키면서 트럭이 지나갔다. - P463
"티나는 어디 있어?" "데데와 엘사랑 있겠지." 2011 (6릴라는 아직도 방금 전까지 니노와 수다를 떨면서 지었던 상냥한표정 그대로 말했다. 내가 대답했다. "없던데." 나는 엄마 아빠가 시간을 내준 유일한 날에 릴라가 내 딸과 임마아빠 사이에 끼어들지 말고 엔초와 함께 자기 딸이나 돌보기를 바랐다. 하지만 엔초가 티나의 이름을 소리쳐 부르면서 주변을 살피는동안 릴라는 여전히 니노와 이야기를 계속했다. 릴라는 그에게 예전에 젠나로가 사라졌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릴라는 웃으면서 말했다. "어느 날 아침 젠나로가 사라졌지 뭐야. 아이들이 모두 학교에서나왔는데 젠나로만 없었어. 나는 정말 놀랐어.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는데 알고 보니 공원에 얌전히 앉아 있었어." 그 이야기를 하면서 릴라의 안색이 순간 변했다. 눈빛이 공허해지더니 바뀐 목소리로 엔초에게 물었다. "티나 찾았어? 어디에 있어?" - P464
나는 1995년에 나폴리를 완전히 떠났다. 모두들 나폴리의 부활을 떠들어대던 시절이었다. 나는 부활을 믿지 않았다. 세월이 흐르는 동안 나는 새 역사가 완성되는 것을 보았다. 노바라 가에 개성 없이 밋밋해보이는 고층 빌딩이 들어서는 모습과 스캄피아 지역에 새건물들이 우뚝우뚝 들어서는 모습을 보았다. 아레나차와 타데오가, 세사와 나치오날레 광장의 잿빛 바위 위로 화려한 고층 건물들이 우후죽순으로 솟아나는 모습을 보았다. 프랑스와 일본에서 설계한 그 건축물들은 예측된 시행착오와 공사 지연 끝에 폰티첼리와 포지오레알레 사이에 위용을 드러냈다. 하지만 그 후 빠르게 광채를 잃어가더니 결국 빈민들의 소굴로 전락하고 말았다. 부활은 무슨 부활이란 말인가. 그 모든 것은 부패한 이도시의 얼굴을 가리기 위해 아무렇게나 분칠해놓은 현대화라는 이름의 화장품일 뿐이었다. - P469
마흔 살 이후 시간은 쏜살같이 흘렀다. 빠르게 흐르는 시간을 뒤쫓기가 버거웠다. 달력의 날짜는 마감일자로 대체되었고 햇수는 책출간을 기준으로 흘렀다. 나나 아이들과 관련된 일이 언제 일어났는지 정확한 날짜를 말하기가 힘들어졌다. 나는 이 모든 것을 글로 남기려 했지만 갈수록 시간이 오래 걸렸다. 이 일은 언제 일어났고 그일은 언제 일어났더라? 나는 반사적으로 모든 사건을 출간일 기준으로 기억했다. 그새 책도 많이 냈다. 덕분에 어느 정도 권위와 명성을 얻었고 풍족한 삶을 누릴 수 있었다. 세월이 흐를수록 아이들에 대한 부담감도 줄어들었다. 데데와 엘사는 피에트로의 권유에 따라 차례대로 보스턴으로 유학을 떠났다. 피에트로는 7,8년 전부터 하버드에서 정교수로 재직하고 있었다. 아이들은 제 아빠와 지내는 것을 편하게생각했다. 우울한 날씨와 거만한 보스턴 사람들에 대한 불만으로 가득한 편지를 빼면 아이들은 자기들의 삶에 만족했다. - P470
아이들은 지난날 내가 강요했던 선택에서 빠져나온 것에 만족스러워했다. 데데와 엘사를 떠나보낸 데다 임마까지 언니들처럼 유학에 집착하자 내게는 고향에 남아 있을 이유가 없었다. 한때는 마음만 먹으면 다른 곳에서 살 수 있는데도 고향의 현실을 글 쓰는 자양분으로 삼기 위해서 위험한 고향 동네의 외곽 지대에 남기로 한 결정이 작가의 이미지에 도움이 되었다. 지금은 그런 지식인이 너무많다. PW그동안 내 작품세계는 방향이 달라졌다. 고향이라는 소재는 뒤로밀려났다. 어느 정도의 명성과 온갖 혜택을 누리고 있는데도 스스로 - P470
의 틀에서 벗어나지 않고 한 장소에만 머무르는 것이야말로 오히려위선적인 태도가 아닐까. 그곳에 머물러 봤자 내 형제자매와 친구들, 그들의 자식과 손자손녀의 삶이 기울어가는 모습을 불편한 마음으로 지켜볼 수밖에 없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 말이다. 자칫하면 내막내딸도 그 대상에 포함될 수 있었다. 그때 임마는 14세였다. 나는 엄마에게 남부럽지 않게 생활할 수있게 해주었고 임마도 열심히 공부했다. 하지만 임마는 상황에 따라사투리를 심하게 썼고 임마의 학교 친구들도 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저녁식사 후 임마가 외출할 때마다 내가 너무 불안해하니 임마는 스스로 외출을 포기하고 집에 머무르곤 했다. - P471
내 삶도 제한적이었다. 나폴리 상류층 친구들을 만나기도 했고 남자들에게 구애도 받고 관계를 맺기도 했지만 항상 얼마가지 못했다. 처음에 똑똑하게 보이던 사람들도 결국 자기 불운에 실망해 화가 나있는 사내들일 뿐이었다. 유머 감각이 있었지만 사악한 면도 있는사람들이었다. 내게 자기 원고를 보여주거나 방송계나 영화계에 대한 정보를 캐내기 위해 나를 원하는 것 같은 느낌을 받기도 했다. 돈을 빌려가서 갚지 않기도 했다. 나는 그런 상황에서도 분발했다. 사회적으로나 감정적으로나 만족스러운 삶을 살기 위해 애썼다. 하지만 나는 세련되게 차려입고저녁에 외출하는 것이 즐겁지 않았다. 불안해지기만 할 뿐이었다. 어느 날 저녁 나는 미처 현관문을 닫을 틈도 없이 집 앞에서 13세도 안 된 것 같은 두 소년에게 얻어맞고 물건을 강탈당했다. 두 걸음도 채 떨어져 있지 않은 곳에서 나를 기다리던 택시 운전기사는 창문 밖으로 얼굴도 내밀지 않았다. 그때 나는 떠나기로 결심했다. 1995년 여름, 나는 엄마와 함께 나폴리를 떠났다. - P471
처음 몇 달 동안은 나는 내가 내 생애 최고의 작품을 썼다고 생각했다. 나는 다시 한번 작가로서 뛰어난 명성을 떨쳤다. 주변 사람들에게서 그렇게나 많은 호응을 얻은 것은 정말 오랜만이었다. 2007년 말 크리스마스 분위기가 한창일 무렵 어떤 우정을 소개하기 위해 마르티리 광장에 있는 펠트리넬리 서점에 갔을 때 갑작스러운 수치심이 나를 엄습했다. 청중 가운데서 릴라를 발견할까봐 두려웠다. 릴라가 맨 앞에 앉아 있다가 내가 말하는 도중에 끼어들어나를 곤란하게 할 것 같았다. 그런 내 걱정과는 달리 그날 행사는 성공적으로 끝났다. 사람들은 내 작품에 열광했다. 호텔에 돌아가 자신감을 조금 되찾은 뒤 나는 릴라에게 전화를 걸어보았다. 처음에는 집전화로 그다음에는 휴대전화로 전화를 걸었다가 다시 집전화로 전화를 했다. 릴라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그 후 다시는 내 전화를 받지 않았다. - P475
어떻게 해야 릴라의 슬픔을 글로 옮길 수 있을지 모르겠다. 아마도 릴라는 원래 그런 운명이었는지도 모른다. 병이나 사고나 폭행이아닌 갑작스러운 증발로 딸을 잃을 운명이 삶속에 숨어서 릴라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릴라의 슬픔은 응고될 수 없었다. 생명이 떠나간 육체를 절망하면서 부둥켜 안을 수도 없었고 장례식도 치를 수 없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걷고 달리고 말을 하고릴라를 껴안았지만, 이제는 망가져버린 티나의 유해를 앞에 두고 잠시나마 시간을 보낼 수도 없었다. 아마도 릴라는 방금 전까지 자기 몸의 일부분이었던 팔다리가 미처 - P475
고통을 느낄 틈도 없이 그 형태와 실체가 통째로 사라진 것처럼 느꼈을 것이다. 이 일로 릴라가 얼마나 큰 고통을 받았는지 나는 잘 모른다. 그런 고통을 상상할 수도 없다. 티나가 실종되고 나서 10년 동안 나는 릴라와 같은 건물에 살면서 매일 릴라와 마주쳤지만 한 번도 릴라가 울거나 절망하는 모습을본 적이 없었다. 처음 얼마간 티나를 찾아 밤낮을 가리지 않고 온 동네를 헤맸지만 아무런 성과가 없자 릴라는 너무 지쳐버린 것처럼 더는 티나를 찾지 않았다. 릴라는 부엌 창가에 자리를 잡고 앉아 오랫동안 움직이지 않았다. 보이는 거라고는 철길의 일부와 약간의 하늘밖에 없었는데도 그랬다. 그러더니 자리에서 일어나 일상으로 돌아갔다. 그렇다고 포기한것은 절대 아니었다. 모진 세월이 릴라를 휩쓸고 지나가면서 원래부터 좋은 편이 아니었던 릴라의 성격은 점점 더 거칠어졌다. 릴라는주변에 불편함과 두려움을 퍼뜨리고 다녔다. 고함을 지르고 다투면서 늙어갔다. - P476
그것은 릴라가 슬픔을 치유하는 데 효과적인 방법이었을 것이다. 실제로 그 시절 릴라는 생기를 되찾았고 티나에 대해서도 같은 방법을 택했다. 릴라는 이제 티나가 당장 돌아올 것처럼 행동하지 않았다. 릴라는 자신의 내면과 집 안의 공허한 공간을 컴퓨터 프로그램으로 만든 것 같은 빛나는 작은 형상으로 채우려 했다. 그렇게 해서티나는 존재하기도 하고 존재하지 않기도 하는 일종의 홀로그램이되었다. 이제 릴라는 티나에 대한 기억을 떠올리기보다는 티나를 자기 삶속으로 다시 불러들였다. 릴라는 내게 티나가 제일 예쁘게 나온 사진들을 보여주거나 티나가 한 살, 두 살, 세 살일 때 엔초가 녹음해두었던 테이프로 티나의 작은 목소리를 들려주었다. 티나의 기발한 질문과 놀라운 대답을 들려주기도 했다. 그럴 때면 릴라는 항상 현재형으로 티나는 가지고 있고 티나는 그렇게 하고 티나는 그렇게 말한다고 했다. - P504
나는 이게 언어 문제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릴라는 표준어의장벽 뒤로 몸을 숨겼고 나는 그런 릴라에게 사투리를 쓰도록 유도했다. 우리끼리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할 때는 사투리를 썼으니까. 릴라가 사투리로 생각한 것을 표준어로 번역했다면 시간이 갈수록 나는표준어로 생각한 것을 사투리로 번역해야 했다. 결국 우리는 거짓된언어로 대화를 나눌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릴라는 감정을 드러내야했다. 스스로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말을 쏟아내야 했다. 나는 릴라가 유년시절의 언어로 진심을 담아 이렇게 말하기를 바랐다. ‘레누, 대체 내게 원하는 게 뭐야? 내가 이렇게 된 것은 딸을 잃었기 때문이야. 티나가 살아 있다고 생각해도 죽었다고 생각해도 힘든건 마찬가지야. 티나가 살아 있다면 살아 있는데도 내게서 멀리 떨어져 있다는 생각에 힘들어. 끔찍한 일이 벌어지는 곳에 있을 것 같아서 힘들어. 그런 장면이 눈에 보이는 것 같아. 그것도 아주 선명하게. 밤낮으로 내 눈앞에서 티나가 끔찍한 일을 당하는 모습이 보여. 하지만 티나가 죽었다면 내 마음도 죽은 거야. 그건 진짜 죽음보다도 견디기 힘든 죽음이야. 진짜로 죽으면 아무런 감정도 느낄 수 - P508
없게 되지만 마음이 죽으면 매일 모든 것을 느낄 수밖에 없으니까. 아침에 일어나서 세수하고 옷을 입고 먹고 마시고 일을 해야 해. 도대체 나를 이해하지 못하는 건지 이해하고 싶지 않은 건지 알수없는 너와도 이야기를 해야 해. 이렇게 예쁘게 차려 입고 미용실을 막다녀온 것처럼 머리를 하고 공부도 잘하고 뭐든 완벽하게 해내는 딸이 있는 너와 말이야. 쓰레기 같은 우리 동네 환경도 네 딸들을 망쳐 놓지 못하는 것 같아. 아니, 오히려 아이들에게 더 좋은 영향을 미치는 것 같아. 이런곳에서 살면서 네 딸들은 더 자신감이 넘치게 되고 거만해지고 뭐든다 누릴 수 있는 권리가 있다고 확신하게 된 것 같아. 그런 딸들이 있는 너를 보면 화가나서 피가 거꾸로 솟을 것 같아. 그러니 가. 제발 가버려. 나를 가만히 내버려둬. 티나는 너희들 중누구보다 뛰어나게 될 운명이었는데 그런 티나를 데려가버렸어. 더는 견딜 수 없어‘ - P509
나는 릴라가 술에 취한 듯 혼란스러운 상태에서 나에게 이런 말을털어놓게 하고 싶었다. 나는 릴라가 마음만 먹는다면 헝클어진 머릿속에서 그런 말을 꺼내놓을 거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돌이켜보면 그 시절 릴라는나와의 관계에서는 오히려 다른 때보다 덜 공격적이었다. 내가 릴라에게서 듣고 싶었던 말은 실은 내 감정의 산물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오히려 내가 상황을 명확하게 파악하지 못했을 수도 있다. 릴라의 마음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것일 수도 있다. 때로는 나로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입에 담지 못할 무엇인가가 릴라의 머릿속에 들어 있는 것이 아닌지 의심이 들기도 했다. - P509
나는 릴라가 삼천포로 빠져서 투덜거리면서 한 이야기를 치밀하고 세련되게 정리했다. 나는 내 엉덩이의 통증과 어머니에 대해 썼다. 주변에서 인정받을수록 내가 릴라와 나눈 대화에서 영감을 받아연관성 없어 보이는 사물이나 사건들 사이에 존재하는 연결점을 찾게 된다는 사실을 아무런 거리낌 없이 인정할 수 있었다. 릴라와 위아래 한 층을 두고 가까이 사는 동안 그런 일이 자주 있었다. 릴라가 나를 조금만 자극해도 텅 빈 머리가 영감으로 차오르면서 빠르게 돌아갔다. 나는 릴라에게 선견지명이 있다고 생각했다. 나는 앞으로도 항상그런 릴라의 능력을 인정할 것이다. 그렇게 하지 않을 이유가 없지않은가. 나는 이제 내가 정말 성인이 되었기 때문에 내게 릴라가 주는 자극이 필요하다는 것을 인정하게 된 것이라고 생각했다. 예전에는 릴라가 내게 영감을 준다는 사실을 나 자신에게조차 숨기려 했지만 지금은 당당하게 말할 수 있었다. 한번은 이런 사실을 글로 쓰기까지 했다. ‘나는 나였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내 마음속에 릴라를위한 자리를 마련해놓고 그런 릴라의 모습에 견고한 형태를 부여할 - P520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릴라는 릴라가 되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릴라는 나처럼 하지 못하는 것이다. 티나의 비극과허약해진 릴라의 신체와 불안한 머리 역시 릴라가 처한 위기를 구성하는 일부 요인이었다. 하지만 릴라가 ‘경계의 해체‘라고 부르는 병의 근본적인 원인은 릴라가 릴라이기를 원치 않는 데 있었다. 그날밤나는 새벽 3시에 잠자리에 들어 다음날 아침 9시에 일어났다. 그새 데데는 열이 내렸지만 엄마가 기침을 시작했다. 나는 집 청소를 하고 릴라가 어떤지 보러 내려갔다. 오랫동안 문을 두드렸지만릴라는 문을 열어주지 않았다. 나는 발을 질질 끌면서 오는 발소리와 사투리로 욕을 하며 투덜거리는 소리가 들릴 때까지 한참동안손가락을 초인종에서 떼지 않았다. 릴라는 땋은 머리가 반쯤 풀린데다 얼굴에 화장이 번져서 전날보다 더 비탄에 잠긴 가면처럼 보였다. - P521
살다보면 삶의 주변부에 자리를 잡아 평생 변치 않을 배경으로 남을 것 같았던 것이 예기치 않게, 그것도 한창 바쁜 일에 쫓기고 있는순간에 무너져 내릴 때가 있다. 제국, 정당, 신념, 기념비 아니면 일상의 일부였던 주변 사람도 그렇게 될 수 있다. 그때가 바로 그랬다. 하루 걸러 하나씩 몇 달 동안 힘든 일이 잇달아 일어났고 전율에 전율이 뒤를 이었다. 소설이나 그림을 보면 암초나 뱃머리에 서서 영원히 휩쓸리지도 스쳐가지도 않을 폭풍을 마주하고 서 있는 인물들이 있는데 나는 한동안 내가 딱 그런 인물이된 것 같았다. 우리 집 전화가 쉴새 없이 울렸다. 솔라라 형제의 영역 안에 살고있다는 이유로 나는 엄청난 양의 글과 말을 쏟아내야 했다. - P523
엔초는 처음으로 릴라에 대해 냉정하게 말했다. "리나는 평생 분별력 있게 산 적이 없어." 그렇지 않았다. 마음만 먹으면 릴라는 침착하고 사려 깊게 행동할 수 있었다. 신경이 극도로 예민했던 그 시기에도 마찬가지였다. 가끔 기분 좋은 날이면 릴라는 평온하고 다정했다. 나와 내 딸들에게 관심을 기울였고 내 출장 일정은 어떻게 되고 지금 어떤 글을 쓰고 있으며 어떤 사람을 만나고 있는지 나에게 물었다. 데데와 엘사, 임마가 들려주는 비합리적인 교육 제도와 정신나간 선생들 이야기. 아이들끼리 다툰 이야기와 연애 이야기를 재미있게 들으면서 가끔분개하기도 했다. 게다가 릴라는 관대했다. 어느 날 오후 릴라는 젠나로의 도움을 받아 오래된 컴퓨터를 우리 집에 가지고 와서 내게사용법을 가르쳐준 다음 통보했다. "선물이야." 나는 다음 날부터 컴퓨터를 사용해 작업하기 시작했다. 정전이 돼서 몇 시간 동안 들인 노고가 수포로 돌아갈까 두렵기는 했다. 그런 두려움을 제외하면 나는 컴퓨터에 열광했다. - P533
‘매일 아버지 노릇을 할 필요가 없어지니 정말 좋은 아버지가 되었네. 임마도 피에트로를 정말 좋아하고. 남자들은 다 똑같은가봐. 잠깐 같이 살다 아이를 낳으면 떠나보내야 하나봐. 니노처럼 경솔한 사람이면 아무런 책임감 없이 떠나는 거고 피에트로처럼 진지한 사람이면 아버지로서의 의무를 다하고 필요할 때 최선을 다하는거야.‘ 확실한 것은 정절과 믿음을 바탕으로 한 동거의 시대는 남녀를 불문하고 끝났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나는 리노라 불리는 불쌍한젠나로를 위험하게 생각하는 걸까. 데데는 자신의 열정을 다 불태워버리고 난 다음 자기 길을 갈 것이다. 그러다 가끔 서로 만나기도 하고 다정한 말을 주고받을 수도 있다. 어차피 이런 순서를 밟을 텐데왜 나는 내 딸에게 딸이 원하는 것과는 다른 것을 요구하는 걸까. - P550
그렇게 오랜 세월이 지났는데 니노는 틈만 나면 릴라 이름을 들먹여 멀리서나마 자신이 릴라를 염려하고 있음을 드러냈다. 그때도 마찬가지였다. 니노의 눈앞에는 내가 있었다. 나는 지난날 그를 사랑했던 여자이자 지금 니노 곁에서 초콜릿 아이스크림을 핥아 먹고 있는 그의 딸의 엄마가 아닌가. 하지만 니노에게 나는 고등학교 책상에서부터 국회 의석에 앉기까지 자기가 걸어온 놀라운 행적에 대해자랑을 늘어놓을 수 있는 젊은 시절의 친구에 지나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니노와 만났을 때 그가 내게 해준 가장 큰 칭찬은 나를 자기와 수준이 같은 사람으로 취급해준 일이었다. 무슨 말을 하려다 내게 그런 말을 한 것인지는 잘 기억나지 않지만 니노가 내게 말했다. - P5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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