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이미 동기 없는 살인에 관해 언급했어요. 우리에게 친숙한 치정이나 사리사욕 같은 범행 동기가 없는 살인에 관해서요……. 또는 강한 신념 없이 범죄를 저지른 가해자-중간적 인물이 있죠. "나도 어쩔 도리가 없었어요!" 하고 말하는인물들 말이에요. 이런 의미에서 우리가 물려받은 개념들은우리에게 이 문제를 다룰 방안을 전혀 주지 않아요. 책상에앉아서 또는 대중 속에서 저지르는 이런 살인에 관해 말하라면.…… 그건 물론 일반적인 살인자와는 비교가 안 될 만큼 무시무시한 인간형이에요. 자신에게 당하는 피해자하고는 아무런 관계도 없는 사람이잖아요. 정말로 파리 잡듯 사람들을 죽이는 거죠. - P101
나는 내가 누군가의 정당한 ㅡ정당하다라는 말을 강조해주세요!―이해관계를 훼손했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하지만 어쨌든 이게 논쟁적인 이슈고 내가 실제로 그것들을 훼손했다고가정해봐요. 내가 그래야만 옳았을까요? 글쎄요. 나는 그건사학자들이 할 일이라고, 그리고 그 시절을 살았고 그 시절에독립적인 처지에 있던 사람들-그런 사람들이 있는데, 그들은 사실적 진리 factual truth의 수호자가 될 필요가 있어요-이할 일이라고 생각해요. 사회가 이 수호자들을 내쫓았을 때, 또는 국가가 그들을 구석으로 몰거나 담벼락에 밀쳤을 때 일어나는 일을 우리는 역사를 집필하는 과정에서 봐왔어요. - P106
러시아를 예로 들어보죠. 러시아에서는 5년마다 새 역사책이 나와요. 국가나 사회는 자기들의 정당한 이해관계가 진실과 갈등하는 상황이 됐을 때도 여전히 이런 사실적 진리의 수호자들과 원칙적으로 이해관계를 가질까요? 이 사례에서 나는 그렇다고 말하겠어요. 그런 후에 일어나는 일이라면 물론, 이 책에서는 별로 중요하지 않은 두세 가지 진실을 은폐하려고 구구절절한 변명서를 작성해서 시장에 내놓는 거고요. 그런 책략은 성공하지 못할 거예요. 역사적으로 그런 종류의 책략들은 결코 성공하지 못했어요. 그런데 또 다른 문제가 있어요. 정당한 감정이 무엇이냐 하는 거죠. 거기에는 의문의 여지가 없어요. 나는 일부 사람들에게 상처를 줬어요. 내 입장에서는, 내가 사람들에게 상처를 - P106
줬을 때가 어쩐지 단체들이나 그들의 이해관계에 방해가 됐을 때보다 더 마음이 불편해요. 난 이걸 심각하게 받아들여요. 하지만 그보단 이해관계의 문제가 원칙과 더욱 관련된 문제라고 할 수 있겠죠. 자, 나는 이런 정당한 이해관계에 본질적으로는 내 스타일을 통해서 그런 것인데 그에 대해 더 많은 얘기는 못하겠네요―상처를 줘왔어요. 그러니까 여기서가져야 할 정당한 감정은 슬픔이라는 게 내 생각이에요. 그게유일한 감정이죠! 자기만족의 감정이 아니고요! 그런데 이걸이해하는 사람이 무척 드물어요. 내가 이 문제와 관련해서 할수 있는 일은 하나도 없어요. 사실 나는 사람들이 이런 일에대해 얘기할 때 감정적인 어조를 취하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그건 스스로를 비하하는 거니까요. 그런데 그 모든 것에 나는…… 우리가 웃을 수도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건 주권sovereignty의 한 형태니까요. 그리고 나는 내가 사용하는 반어법에 대한 모든 비판이, 정말이지 취향이라는 측면에서 볼 때대단히 불쾌해요. 그건 순전히 개인적인 문제거든요. - P108
글쎄요, 유대인 단체들은 괴상한 불안감을 느끼는 게 분명해요. 그들은 사람들이 내 주장을 악용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해요. 그들은 반유대주의자들이 "바로 이거야" 하고 쾌재를 부르면서 "비난받을 사람은 유대인들 자신"이라고 말할 거라고생각해요. 반유대주의자들이 그러기는 하죠. 하지만 내 책을읽으면 알겠지만 그 안에 반유대주의자들이 이용해먹을 건없어요. 그리고 많은 사람이 독일인들은 아직 분별력을 갖고있지 않다고 생각해요. 글쎄요, 독일인들이 아직 분별력을갖추지 못했다면, 우리는 아마 최후의 심판 때까지 기다려야겠죠. - P109
논하고 싶지 않아요. 국가 간 차이를 무시한다면, 물론 그 차이는 대단히 크지만요, 그리고 이게 글로벌한 운동-이런 형태로는 결코 존재한적이 없었던 운동―이라는 점만 고려한다면, 또 (운동의 목표와 견해, 독트린은 별개로 하고) 모든 나라의 현 세대를 이전 세대들과 정말로 차별화해서 고려한다면, 처음으로 나한테 강한 인상을 준 그들의 특징은 정치적으로 활동하려는 투지, 정치적인 활동을 벌이면서 느끼는 기쁨, 그들 자신의 노력으로상황을 바꿔놓을 수 있다는 확신이에요. 물론 이 특징은 각국의 다양한 정치 상황과 역사적 전통에 따라 나라마다 굉장히상이한 형태로 표현돼요. 나라별로 학생들의 정치적 재능이대단히 상이하기 때문에 다르게 표현된다는 뜻이죠. 이 문제는 나중에 다시 논했으면 해요. - P112
대학들을 상대로 한 활동이 시작된 것은 나중의 일로, 순전히 정치적 활동을 통해서만 달성할 수 있었던 것을 그들이 실제로 달성한 뒤의 일일 뿐이에요. 버클리에서 자유언론운동Free Speech Movement으로 시작해 반전운동으로 지속됐죠. 그런데 다시금 그 결과는 꽤나 비범해졌어요. 이런 발단에서, 특히 이렇게 거둔 성공들에서 비롯한 모든 것이 그때부터 세계전역으로 퍼져 나갔어요. 마음에 들지 않는 상황은 변화시킬 수 있다는 이 새로운 자신감은, 미국에서는 특히 소소한 문제들에서 눈에 잘 띄어요. - P113
대학의 서비스직 직원들이 기준임금을 받고 있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된 학생들은 파업을 해서성공을 거뒀어요. 기본적으로 이건 대학의 운영 정책에 맞서 ‘자신들‘의 대학과 연대하는 행위였어요. 다른 예로는 1970년에 대학생들이 선거 캠페인에 참여하겠다면서 휴강을 요구한게 있어요. 많은 수의 대규모 대학이 학생들에게 이런 자유시간을 허용했어요. 이건 대학 당국이 학생들이 시민이기도하다는 사실을 인식해야 가능한, 대학 바깥의 정치적 활동이에요. 나는 두 사례를 분명 긍정적으로 간주해요. 하지만 그보다는 훨씬 덜 긍정적으로 간주하는 다른 사례들도 있어요. 그에 대해서는 나중에 얘기할게요. - P114
근본적인 질문은 ‘정말로 일어났던 일은 무엇인가‘예요. 내가보듯, 단순히 프로파간다만 진행되는 수준에 머무는 게 아닌자발적인 정치적 운동이, 활동만 정치적인 게 아니라 거의 전적으로 도덕적인 동기에서 시작된 정치적 운동이 대단히 오래간만에 처음으로 일어났어요. 일반적으로 단순한 힘겨루기나이해관계에서 비롯한 행위로 보이는 운동에는 꽤나 드문 이런 도덕적 요인과 더불어, 우리 시대에는 생소해 보이는 또다른 경험이 정치 게임에 등장했어요. 정치적 행위가 재미있다는 것이 밝혀진 거예요. 이 세대는 18세기가 "공적 행복public happiness"이라고 불렀던 것을 발견했어요. 공적 행복이란, 사람은 공적인 생활public life에 참여했을 때, 그러지 않았다면 그에게 닫힌 채로 남았을 인간적 체험의 차원을 혼자 힘으로 열어젖힌다는 것을, 그리고 그것이 여러 면에서 완전한 - P114
‘행복‘의 일부를 구성한다는 것을 뜻해요. 이런 모든 면에서 나는 학생운동을 대단히 긍정적으로 평가해요. 하지만 학생운동의 추후 발전은 다른 문제예요. 이른바긍정적 요인들이 우수한 상태를 얼마나 오래 유지할 수 있겠는가 하는 것을, 그리고 그들이 이미 해체되는 과정에 들어선것은 아닌지 여부를, 한편으로는 범죄와 맞닿아 있고 다른 편으로는 권태와 맞닿아 있는 광신과 이데올로기와 파괴적 성향이 그들을 잠식하지 않았는지 여부를 그 누가 알겠어요? 역사를 보면 선한 상황은 지속 기간이 대단히 짧은게 보통이지만 이후로 장시간 실제로 일어나는 사건들에 결정적인영향력을 발휘해요. 그리스의 진정한 고전적 시기classical period가 얼마나 짧았는지 생각해봐요. 그런데 그 시기는 사실상 오늘날에도 여전히 우리에게 영양분을 공급하고 있어요.
"혁명가는 길거리에 권력이 떨어져 있는 것이언제인지를 알고, 그걸 집어 들 때가언제인지를 아는 사람이에요" - P115
에른스트 블로흐가 ‘자연법‘이라고 부른 내용은, 학생운동이도덕적으로 우월하게끔 착색coloration 된 것에 대해 내가 말하면서 거론한 내용이에요. 하지만 혁명가라면 누구나 이와 유사한 점을 보여준다는 말도 덧붙여야겠네요. 그리고 그 지점에서 나는 블로흐하고 생각이 다르다는 점도요. 혁명사를 자세히 살펴보면, 탄압받고 멸시받던 사람들이 스스로 혁명의길을 이끈 적은 결코 없었고, 탄압도 멸시도 받지 않았지만남들이 그런 처지에 놓인 것을 도저히 참지 못한 사람들이 혁명을 이끌었다는 걸 알게 될 거예요. 다만 그들은 자신들의도덕적 동기를 인정하는 게 부끄러워서 그런 사실을 대놓고드러내지 않았을 뿐이에요. 이런 수치심은 대단히 유서가 깊은데, 여기서 그 역사를 세세히 설명하고 싶지는 않아요. 혁명의 역사에도 대단히 흥미로운 측면이 있기는 하지만요. - P116
에른스트 블로흐는 "도래할 혁명"을 믿는데, 나는 혁명이 도래할지, 도래한다면 어떤 구조를 갖게 될지 모르겠어요. 아무튼 그 문제에 대해서는 이렇게 말하고 싶어요. 우리 경험(매우 오래전으로 거슬러 올라갈 것도 없이 프랑스혁명과 미국독립혁명까지만 거슬러 올라가면 돼요. 그 이전에는 반란과 쿠데타가 있었을 뿐 혁명은 존재하지 않았어요)으로 볼 때, 혁명이 일어나려면일련의 현상들이 혁명의 전제 조건- 정부 조직이 와해될 거라는 위협, 정부의 존재 기반 약화, 정부에 대한 국민들의 불신, 공공 서비스의 실패, 이 밖에 다양한 다른 것들―으로서발생해야 한다고 말할 수 있어요. 모든 열강이 권력과 권위를 상실한 상황을 확연히 볼 수 있어요. 열강 정부들의 손에 폭력을 행사할 도구가 엄청나게 축적되는 일이 동반 진행되지만, 무기가 늘었다는 사실이 상실된 권력을 보상해줄 수는 없어요. 그럼에도 이런 상황이 반드시 혁명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에요. - P117
지금 당장을 보면, 도래할 혁명을 위한 전제 조건 하나가 ‘진정한 혁명가 집단‘이라는 조건이 결여돼 있어요. 좌익 학생들이 가장 되고 싶어 하는 존재ㅡ혁명가는 그들의 현재 모습하고는 다른 존재라고 할 수 있어요. 그들은 혁명가로서 조직돼 있지도 않아요. 그들은 권력이 의미하는 바를 짐작도 못해요. 권력이 길거리에 떨어져 있고 거기에 그게 있다는 것을안다고 해도 그들은 허리를 굽혀 그걸 집어 들 준비가 가장 덜된 사람들인 게 분명해요. 그런데 정확히 그게 혁명가들이하는 일이에요. 혁명가는 혁명을 만들어내지 않아요! 혁명가는 길거리에 권력이 떨어져 있는 것이 언제인지를 알고, 그걸집어 들 때가 언제인지를 아는 사람이에요. 무장봉기가 그대로 혁명으로 이어진 적은 역사상 단 한 번도 없었어요. 그럼에도, 혁명을 준비한다는 의미에서, 혁명으로 이어지는길을 포장해주는 것은 앞선 시대들에 제대로 행해지고는했던 현 상황에 대한 제대로 된 분석이에요. - P118
우리, 학생의 자유라는 게 사실상 무엇인지 생각해봐요. 대학은 젊은 사람들이 다년간 모든사회집단과 의무에서 벗어나는 것을, 진정으로 자유로워지는 것을 가능하게 해줘요. 학생들이 대학을 파괴한다면 그런 상황을 가능하게 해주는 조직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겠죠. 결과적으로 사회에 맞선 저항도 존재하지 않을 거고요. 그들은 일부국가에서, 그리고 여러 시기에 걸쳐 자신들이 걸터앉은 나뭇가지를 톱으로 잘라내는 작업을 거의 마쳤어요. 그런 작업이결국에는 난동을 벌이는 것으로 이어져요. 이런 식으로 학생저항운동은 그들의 활동을 요구하는 세력을 얻는 데 사실상 실패할뿐더러 완전히 박살날 수도 있었죠. - P123
결국에는 철저하게 신망을 잃은 옛 슬로건-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 보다 훨씬 더 정신나간 표어예요. 나는 우리가 역사로부터 대단히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고는 확신하지 않아요. 역사는 늘 새로운 내용으로 꾸준히 우리와 대면하니까요. 하지만 마땅히 학습할 수 있어야 할 사소한 것은 몇가지 있어요. 나는 이 세대에 속한 사람들 중에서 그런 식으로 현실을 인식하는 사람을, 그런 현실에 대해 심사숙고하는수고를 감당하려는 사람을 어느 곳에서도 보지 못했다는 사실 때문에 그런 의혹들을 가득 품게 됐어요 - P126
정부는 언제라도 그들에게서 그것들을 앗아 갈 수 있어요. 거부빚기라도 하면 하룻밤 사이에 취업할 권리조차 없는거지로 전락할 수 있어요.(최근 소련 사람들이 진실을 말하기 시작한소련의 문학작품은 얼핏만 보아도 모든 경제이론과 정치이론보다더 강렬한 방식으로 끔찍한 현실을 증언한다는 걸 알게 될 거예요.)우리가 한-이론과 이데올로기하고는 구별되는 경험으로서의 모든 경험은 자본주의의 발흥과 함께 시작된 수탈과정이 생산수단을 수탈하는 데 그치지 않았다는 것을 알려줘요. 경제 세력들과 그들이 장악한 장치들로부터 독립한 법적·정치적 제도들이 수탈 과정에 본질적으로 내재한 극악한 가능성들을 통제하고 저지할 수 있어요. - P128
그런 정치적 통제는, 자신을 사회주의자로 부르건 자본주의자로 부르건 이른바 복지국가에서 가장 잘 기능하는 듯 보여요. 자유를 수호해주는 것은 정치권력과 경제권력 사이의 분열이고, 또는 마르크스주의 표현을 쓰자면, 국가와 그 구성 세력이 상부구조superstructure가 아니라는 사실이에요. 이른바 서구 자본주의국가들에서 우리를 보호해주는 것은 자본주의가 아니라, 직원들의 사적 영역private sphere을 무단으로침범하려는 대기업 관리진의 몽상이 현실이 되지 않게 막아주는 사법 시스템이에요. 그런데 이런 몽상은 정부 자체가 직원들의 고용주가 되는 곳이면 어느 곳에서건 실현돼요. 미국정부를 위해 일하는 공무원들의 취업을 승인하는 시스템이 사생활을 존중하지 않는다는 것은 비밀도 아니죠. - P128
마르크스주의 관점에서 이런 발전들을 판단해야 한다면 나는 이렇게 말하겠어요. 수탈은 정말이지 현대적 생산의 본질이고 사회주의는, 마르크스가 믿었듯, 자본주의에 의해 시작됐을 때처럼 산업화한 사회가 불가피하게 귀결하는 결과물일 뿐이라고. 그랬을 때 제기되는 의문은, 이 과정이 동구에서 전락한 것 같은 극악한 체제로 전락하지 않도록 통제권 아래 두고 그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가 하는 거예요. 이른바 특정 공산주의국가들에서 예를들어 유고슬라비아연방 공화국으로 존재하다 1991년에 크로아티아와 슬로베니아,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마케도니아, 몬테네그로, 세르비아로 해체된 나라에서, 심지어는 동독에서- 경제 관련 규제를 풀고 분권화하려는 시도들이 이뤄지고 있고, 수탈 과정에서 나오는 지독히끔찍한 결과들을 예방하려고 대단히 중요한 양보들이 행해지고 있어요. 무척 다행스럽게도, 중앙집권화와 노동자들의 노예화가 특정 수준에 도달하면 생산자 입장에서는 대단히 불만족스러운 결과가 나온다는 것이 증명됐어요. - P129
이 실험들 중 어느 것도 합법적 재산을 만족스러운 방식으로재정의하지 않아요. 하지만 그 실험들은 그 방향으로 걸음을떼었어요. 동독의 협동조합들은 사유재산을 생산과 분배 수단으로서의 공유재산joint property에 대한 욕구와 결합하는 방향으로, 노동자평의회는 사유재산을 보장하는 대신에 고용을보장하는 방향으로 걸음을 떼었죠. 두 사례 모두에서 개별 노동자들은 더 이상 원자화돼 있지 않고, 새로운 집단과 계급에소속된 데 대한 일종의 보상으로서 협동조합이나 공장평의회에 속해요. 당신은 실험과 개혁에 대해서도 물었죠. 그건 경제 시스템하고는 아무 관계도 없어요. 경제 시스템이 사람들에게서 자유를 앗아 가는 데 사용돼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제외하면요. - P133
이런 우려는 사회주의하고는 아무런 관계가 없어요. 그건 과거에도 항상 그래왔던 것처럼 순전히 권력정치power politics의이슈죠. 나는 소련이 연방 내부의 반대를 염려하지 않는다면, 지식인들의 반대뿐 아니라 연방에 속한 민족들의 잠재적인 반대까지 염려하지 않는다면 체코슬로바키아에 행군해 들어갔던 것처럼 연방에 속한 나라들로 행군해 들어갈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체코 정부가 분명 러시아인들의 영향력아래서 최근에야 취소된 상당한 정도의 양보를 ‘프라하의 봄‘ 동안 슬로바키아인들에게 허용했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돼요. 권력을 분권화하려는 이 모든 시도는 모스크바의 두려움을 자극해요. 새 모델은, 러시아 입장에서는, 경제적이거나지적인 문제들을 인도적으로 처리하는 수준에 머물지 않고러시아제국을 해체하려 든다는 위협을 뜻하기도 해요. - P139
그런데 세상에 그런 건 없어요. ‘부르주아‘ 정부의 법으로 보장되는 자유도 자유고 ‘공산주의‘ 국가의 법으로 보장되는 자유도 자유예요. 오늘날 공산주의 정부들이 민권을 존중하지않고 표현과 결사의 자유를 보장하지 않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런 권리와 자유가 ‘부르주아적‘이라는 결론이 자연스레 도출되는 것은 아니에요. ‘부르주아적 자유‘를어떤 사람이 실제로 필요한 것보다 더 많은 돈을 벌 자유하고 동일시하는 경우가 꽤나 빈번해요. 사실 이것은 누군가 극도로 부유해질 수 있는 곳인 동구에서도 유일하게 존중하는 ‘자유‘니까요. 소득의 관점에서ㅡ 전문적인 용어가 아니라 알아듣기 쉬운 용어로 얘기한다면ㅡ부자와 가난뱅이의 차이는다른 어떤 나라들보다 동구에서 더 커요. - P141
자유라는 용어는 항상 ‘반대할 자유‘를 의미해요. 스탈린과 히틀러 이전의 어떤 통치자도 "예" 하고 말할 자유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어요. 히틀러는 유대인과 집시를그의 의견에 동의할 권리로부터 차단했고, 스탈린은 누가 됐건 "예" 하고 말하는 사람은 "아니요" 하고 말할 수도 있다고판단했기 때문에 자기를 열렬히 추종하는 지지자들의 머리조차 자른 유일한 독재자예요. 그들 이전에는 어떤 폭군도 그지경까지 나아가지는 않았고, 그렇게 성공하지도 못했어요. 이 시스템들 중 어느 것도, 심지어 소련의 시스템도ㅡ내가중국을 판단할 위치에 있지 않다는 사실은 인정해야겠네요―여전히 진정한 전체주의 시스템은 아니에요. 현재 그쪽 체제에서 배제당한 유일한 사람들은 체제와 뜻을 달리하면서 반대하는 사람들뿐이에요. 그런데 이게 어떤 식으로건 그곳에자유가 있다는 걸 의미하지는 않아요. 반대 세력들이르게관심을 갖는 것은 정치적 자유와 기본적 권리의 보장이거든요. - P142
열강들 입장에서 권력을 상실하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에 대해 앞에서 말했어요. 구체적으로 생각할 때 그건 무슨 뜻일까요? 대의정부representative government를 가진 모든 공화국에서권력은 국민에게 있어요. 그건 국민이 특정 개인들에게 자신들을 대표해달라며, 자신들의 이름으로 활동해달라며 권한을이양했다는 뜻이에요. 우리가 권력 상실에 대해 이야기할 때그건 사람들이 그들을 대표하는 자들이 하는 일에 대한, 선거를 통해 권력을 이양받은 관리들이 하는 일에 대한 동의를 철회했다는 뜻이에요. 권력을 이양받은 사람들은 당연히 힘이 넘친다고 느껴요. 국민들이 그 권력의 토대를 철회했을 때조차 권력을 가졌다는느낌은 여전히 남아 있어요. 그게 미국이 처한 상황이에요. 미국만 그런 건 아니지만요. - P144
라이프 당신의 저작 『폭력론』으로 돌아가죠. 책에(즉, 그 책의 독일어버전에) 당신은 이렇게 썼습니다. "민족의 독립, 외세 통치로부터의 해방, 국가의 자주독립, 국제 정세 속에서 제약받지않는 힘을 무제한 주장하는 일이 눈에 띄는 한 그리고 그어떤 혁명도 이런 국가 개념을 흔들 수 없는 한―‘인류의 미래‘보다는 ‘인류에게 미래가 있느냐 없느냐‘ 하는 데 매달리는 전쟁 문제의 이론적 해법은 상상 가능하지 않을뿐더러, 지구 상의 평화 보장은 동그라미를 네모나게 만드는 것만큼이나 유토피아적이다." 당신이 염두에 두고 있는 국가의 다른개념은 무엇인가요? - P153
내가 염두에 두는 것은 상이한 국가 개념이라기보다 이 개념을 변화시킬 필요성이에요. 우리가 ‘국가‘라고 부르는 것은기껏해야 15, 16세기에 생긴 개념이에요. 자주독립이라는 개념도 마찬가지고요. 자주독립이란 무엇보다도, 국제적인 성격의 갈등이 최종적으로는 전쟁으로만 해결될 수 있다는 걸뜻해요. 전쟁 말고 다른 최후 방책은 없어요. 하지만 오늘날강대국들끼리의 전쟁은 모든 평화주의적인 고려와는 사뭇별개로 폭력의 수단이 무시무시하게 발전한 덕에 불가능한일이 돼버렸어요. 따라서 이런 의문이 제기되죠. ‘이 최후 방책의 자리를 무엇이 대신하는가?‘ - P154
전쟁은 소국들만 치를 수 있는 사치품이 됐고, 그런 그들도강대국들의 영향권에 끌려들어가지 않고 자체적으로 핵무기를 보유하지 않았을 때만 전쟁을 할 수 있어요. 강대국들은이런 전쟁에 개입해요. 부분적으로는 그들이 의존국client을방어해야 할 의무가 있기 때문이고, 부분적으로는 그것이 오늘날 세계 평화가 의지하는 상호 억제mutual deterrence 전략의중요한 일부가 돼버렸기 때문이에요. 독립국들 사이에는 전쟁 말고 최후 방책이 있을 수 없어요. 전쟁이 더 이상 그 목적에 봉사하지 못한다면, 그렇다는 사실만으로도 우리가 새로운 국가 개념을 가져야만 한다는 것을입증하죠. 이 새 국가 개념은 확실히, 헤이그에 있는 국제사법재판소보다 더 잘 작동할 새 국제사법재판소를 창설하거나새로운 국제연맹League of Nations. UN의 전신을 창설하는 데서 비롯하지는 않을 거예요. 자주적인, 혹은 겉으로만 자주적인 정 - P154
부들 사이의 동일한 갈등이 거기서도 다시금 발생하게 될 테니까요-담론 수준에서 그럴 텐데, 담론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것보다 더 중요해요. 내가 보는 새로운 국가 개념의 기초 원리는 연방 시스템에서찾아볼 수 있어요. 연방 시스템의 이점은 권력이 이동하는 방향이 상향도 하향도 아니라 수평이라는 거예요. 그래서 연방에 참여한 기구들은 각자의 권력을 상호 억제하고 통제해요. 이런 사안들을 사유할 때의 진정한 난점은 최종 방안이 초국가적super-national 시스템이 아니라 국가 간inter-national 시스템이어야 한다는 거예요. 초국가적 정권은 비효율적이거나, 어떤식으로건 가장 강력한 힘을 가진 나라에 의해 독점될 거고, 그러면서-최종적으로 와해될 때까지는-글로벌한 경찰력을 피해서 도망칠 곳이 없는, 상상할 수 있는 가장 무서운 전제 정권으로 변하기 쉬운 세계정부로 이어질 거예요 - P155
오늘날 쉽게 생길지도 모를 오해를 막기 위해, 히피와 기성체제 거부자들이 이룬 코민들은 이 시스템하고 아무 관련도없다는 말을 반드시 해야겠네요. 그들의 밑바탕에는 그와는반대로 공적인 삶을, 전반적으로 정치적인 삶을 완전히 포기하는 태도가 놓여 있어요. 그런 공동체는 정치적 조난 사고에시달려온 사람들을 위한 도피처고, 그들은 개인적인 기반 위에서 철저히 옹호되고 있어요. 나는 독일뿐 아니라 미국에서도 이런 코뮌 형태를 대단히 그로테스크하다고 생각하지만, 그들을 이해할 뿐 아니라 그들에 대한 반감도 전혀 없어요. 그들은 정치적인 면에서는 무의미한 존재예요. 평의회는정반대의 것을 욕망해요. 그들이 지역 평의회, 전문직 평의회, 공장 내 평의회, 아파트 단지 평의회 등―대단히 작은 규모로 시작하더라도 말이에요. 정말이지 결코 노동자평의회에만 국한되지 않는 무척이나 다양한 종류의 평의회가 있어요. 노동자평의회는 이 분야에서는 특별한 사례일 뿐이에요. - P157
한 나라의 모든 주민이 반드시 그런 평의회의 멤버가 될 필요는 없어요. 모든 사람이 공적인 사안에 관심을 기울이고 싶어 하지도 않고, 그래야만 하는 것도 아니에요. 한 나라의 진정한 정치 엘리트들을 한데로 끌어모으는 자기 선출 과정 self-selective process 이 이런 방식으로 가능해져요. 공적인 일에 관심이 없는 사람은 나서서 개입하는 일 없이 그런 사람들이 선출됐다는 사실에 만족해야 할 거예요. 하지만 기회만큼은 각자에게 공평하게 주어져야 해요. 나는 새로운 국가 개념을 형성할 가능성을 이 방향에서 봐요. 자주독립의 원칙이 전혀 들어맞지 않을 이런 종류의 평의회국가council-state는, 매우 다양한 종류의 연방에 더없이 적합할거예요. 특히 그런 국가에서는 권력이 수직이 아니라 수평적으로 구성될테니까요. - P158
하지만 그런 국가가 실현될 가망이 있느냐고 지금 나한테 묻는다면 이렇게 말해야겠네요. 있기야하겠지만 매우 희소하다고요. 하지만 결국에는 다음 혁명의결과로 생겨날지 모르죠. - P159
자, 이 나라는 민족국가nation-state가 아니에요. 미국은 민족국가가 아닌데, 유럽인들은 이 단순한 사실을 이해하는 데 굉장히 오랜 시간이 걸려요. 결국에는 그 사실을 이론적으로는 인식하게 되죠. 그러니까 이 나라를 통합하는 요소는 유산도 아니고 기억도, 국토도, 언어도, 동일한 혈통도 아니에요…… 이 나라에는 토박이가 없어요. 인디언들이 토박이였죠. 그 외의 사람들은 모두 시민이고, 이 시민들은 딱 한 가지 것으로통합돼 있어요. 즉, 당신은 헌법에 동의한다는 의사를 표명하는 단순한 절차만 따르면 미합중국 시민이 돼요. 프랑스뿐 아니라 독일의 보편적인 여론에 따르자면 헌법은 그저 종이 쪼가리일 뿐이고 우리는 그걸 바꿀 수도 있어요. 그런데 이 나라에서 헌법은 성스러운 문서로, 건국이라는 성스러운 행위를 항구적으로 기억하게 해주는 기념품이에요. 헌법이라는토대는 완전히 이질적인 소수민족들ethnic minorities과 지역들을하나의 연방으로 묶어내고, 그러면서도 여전히 (a) 연합을 유지하면서 (1) 각각의 차이점을 완전히 흡수하거나 차이의 강 - P165
도를 줄여 평준화해요. 외국인 입장에서 이 모든 상황을 이해하는 건 무척 어려운 일이에요. 외국인으로서는 절대로 이해하지 못할 일이죠. 미국 정부는 인간에 의한 정부가 아니라법에 의한 정부라고 말할 수 있어요. 그 말이 진실인 한, 그리고 국가의 안녕을 위해 진실일 필요가 있는 한…… 국가의 안녕을 위해, 미합중국을 위해, 공화국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말은 정말이지……
"우리가 이 나라에서민주주의를 갖고 있다고 믿는다면그건 엄청난 실수예요" - P166
에레라 펜타곤 문서에 관한 에세이 정치에서의 거짓말Lying in Politics: Re-flections on the Pentagon Papers」, <뉴욕리뷰오브북스>, 1971. 11. 18, 30~39쪽-원주 뒤에 "공화국의 위기에 수록되었다에서 당신은 당신이 "전문적인 해결사들professional problem-solvers"이라고 부르는 사람들의심리를, 당시 미국 정부의 고문이었던 사람들의 심리를 묘사합니다. "그들은 해결사라는 점에서 탁월하다. 그들은 단순히지능이 좋다는 데서 그치지 않고 자신들이 ‘합리적‘이라는 사실을 자랑스러워하기 때문에 ‘감상성sentimentality‘을 상당히 무서울 정도로 웃돌고 ‘이론‘과, 순수한 정신 활동의 세계와 사랑에 빠져 있다……." - P171
아렌트 끼어들어도 될까요? 나는 그것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해요. 이 과학적 사고방식을 보여주는 대단히 좋은 사례가, 정확히펜타곤 문서들에서 가져온 사례가 있어요. 그 사례는 다른 모든 통찰을 모조리 압도해요. 당신도 ‘도미노이론‘에 대해 알거예요. 1950년부터 펜타곤 문서가 공개된 직후인 1969년까지 냉전을 관통한 공식 이론이었죠. 중요한 사실은 펜타곤 문서들을 작성한 대단히 수준 높은 지식인들 중에 그 이론을 믿은 사람은 극히 적었다는 거예요. 내 생각에 행정부 고위층에있는 사람들 중에서는 두세 명뿐이었는데, 정확히 말해 그들은 유달리 지적인 사람들은 아니었어요. - P171
이 전체적인 사안과 관련한 골칫거리는, 이건 정말로 미해결된 안건인데, 다음과 같아요. 우리는 미래를 몰라요. 세상 사람은 누구나 미래를 감안하면서 행위를 하지만 어느 누구도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이 무엇인지 몰라요. 미래는 현재 만들어지는 중이니까요. 행위는 ‘우리‘가 하는 것이지 ‘나‘만 하는 게 아니에요. 내가 유일한 사람인 곳이 있다면, 나 혼자만 있다면, 내가 하고 있는일을 바탕으로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날지 예언할 수 있겠지만요. 이런 점이 실제로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전적으로불확정한 것처럼 보이게 만들어요. 우발성은 정말로 모든 역사를 결정하는 가장 큰 요인 중 하나에요. - P173
미래는 어마어마하게 많은 변수들에, 달리 말해 단순한 hasard(우연에 지나치게 많이 의존한다는 간단한 이유 때문에, 앞으로 무슨 일이일어날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요. 한편 당신이 역사를 회고적인 시선으로 돌아본다면, 당신은 이 모든 일이 우연한것이었다고 해도―사람들에게 앞뒤가 척척 맞아떨어지는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어요. 그건 어떻게 가능할까요? 모든 역사철학 입장에서는 바로 그것이 진정한 문제예요. 과거를 돌아보면 역사가 항상 다른 식으로는 결코 일어날 수 없었다는식으로 보이는 건 어째서일까요? 모든 변수가 자취를 감췄고현실이 우리에게 그토록 압도적인 충격을 가하기 때문에 우리가 무한히 다양한 가능성을 가진 것들에 신경을 쓸 수 없는 거죠. - P173
에레라 그런데 요즘 커다란 위협은 정치가 추구하는 목표들에는 한계가 없다는 생각 아닌가요? 자유주의 liberalism는 결국 정치적목표들에는 한계가 있다는 생각을 전제로 합니다. 요즘 가장큰 위협은 스스로를 한계 없는 목표로 설정하는 사람 및 운동의 발흥에서 비롯하지 않나요?
아렌트 나 자신이 내가 자유주의자라는 걸 전혀 확신하지 못하겠다고 말할 때 당신이 충격을 받지 않았으면 좋겠네요. 있잖아 - P177
요, 나는 결코 자유주의자가 아니에요. 그리고 나는 이런 의미에서는 어떤 신조도 갖고 있지 않아요. 나는 하나의 주의ism라고 부를 수 있는 명확한 정치철학이 없어요.
에레라 당연히 그렇겠죠. 하지만 당신의 철학적인 심사숙고는 자유주의 사상의 토대 안에서, 그것이 고대로부터 차용한 사상들과 함께 이뤄집니다. - P178
아렌트 몽테스키외가 자유주의자인가요? 내가 고려하는 모든 사람을 당신은 그리 가치가 없는 사람이라고 말할 건가요……. 내 말은 "moi je me sers où je peux(나는 할 수 있는 일을 마음대로 할 거예요)". 나는 내가 취할 수 있고 나한테 적합한 것은 무엇이건 취해요. 우리 시대의 커다란 이점 중 하나는 르네 샤르René Char, 1907~1988. 20세기 중반의 프랑스 시인가 말하기도 했죠. "Notre héritage n‘est garanti par aucun testament. (우리가물려받은 유산을 보장하는 유언장은 존재하지 않는다.)"샤르의 올바른인용문은 "Notre héritage n‘est précédé d‘aucun testament"으로 『히프노스의 장Feuillets d‘Hypnos』(갈리마르, 1946)에 있는 문장이다. 아렌트는 이 인용문을 『과거와 미래 사이』를 여는 문장으로 사용하는데, 이 책에서 그녀는 이 문장을 "우리가 물려받은 유산은 유언장 없이 우리에게 남겨졌다"로 옮겼다원주 - P178
아렌트 이건 어느 곳에서건 우리가 과거 경험과 사유를 나름껏 취하는 데 전적으로 자유롭다는 뜻이에요.
에레라 그런데 이런 극단적인 자유는 몇몇 기성 이론, 기성 이데올로기를 찾아내 적용하길 좋아하는 많은 동시대 사람에게 경고신호가 되지 않을까요?
아렌트 Certainement, Aucun doute. Aucun doute.(분명히 그렇죠. 의심할 여지가 없어요. 정말 그래요.)
"자유한다는 말은 항상 비판적으로 생각한다는 뜻이고, 비판적으로 사유하는 것은늘 적대적인 태도를 취하는 거예요" - P179
에레라 이런 자유가 소수 사람들, 그러니까 새로운 사고방식을 고안해낼 만큼 충분히 강인한 사람들의 자유를 위험에 빠뜨리지는 않을까요?
아렌트 Non. Non.(아뇨, 아니에요.) 그건 오로지 모든 인간은 사유하는 존재고 나처럼 심사숙고할 수 있는 존재라는, 그래서 원할때는 스스로 판단할 수 있는 존재라는 확신에만 의지해요. 그의 내면에서 이런 소망을 이끌어내는 법은 나도 몰라요. 내생각에 우리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유일한 것은 réfléchir(심사숙고)하는 거예요. 그리고 사유한다는 말은 항상 비판적으 - P179
로 생각한다는 뜻이고, 비판적으로 사유하는 것은 늘 적대적인 태도를 취하는 거예요. 실제로 모든 사유는 엄격한 법칙, 일반적인 확신 등으로 존재하는 것은 무엇이건 기반을 약화시켜요. 사유하다가 일어나는 모든 일은, 거기에 존재하는 것은 무엇이건 비판적으로 검토할 대상이 돼요. 즉, 사유 자체가 그토록 위험한 일이라는 단순한 이유 때문에, 위험천만한사유란 존재하지 않아요. 이걸 어떻게 확신하느냐면……… 나는 아무 생각도 하지 않는 편이 훨씬 더 위험하다고 생각하거든요. 사유가 위험하다는 것을 부인하지는 않아요. 하지만 나는 사유하지 않는 것이, ne pas réfléchir c‘est plus dangereuxencore(사유하지 않는 것이 훨씬 더 위험하다)고 말할래요. - P180
‘모든 것을 바꿔놓았다고 생각해요. 오늘날 유대인들은 이스라엘 뒤에서 정말로 단결돼 있어요. 이 발언은 당시 일어난 사건들을 배경으로 이해해야 마땅하다. 1973년 10월 6일, 이집트와 시리아가 이스라엘을 공격하면서 욤키푸르 전쟁이 촉발됐다원주. 유대인들은 아일랜드인, 영국인, 프랑스인처럼 자신들에게도 국가가 있다고, 자신들을 정치적으로 대표하는 조직이 있다고 느껴요. 그들은 고국이 있고, 더불어 민족국가를 이루고 있어요. 아랍인들을 향한 그들전체의 태도는 당연히 이런 인식에 크게 의존해요. 중부 유럽출신의 유대인들은 거의 본능적으로, 무조건적으로 이런 인식을, 즉 국가는 모름지기 민족국가여야만 한다는 인식을 갖고 있어요. 자, 이스라엘 또는 예전에 팔레스타인이었던 지역과 디아스포라의 관계는 전체적으로 변했어요. 예전에 폴란드는 시오니스트들이 폴란드의 가난한 유대인들을 위해 부유한 유대 - P183
인들에게서 돈을 얻으려고 애쓰던 곳이었는데 요즘 이스라엘은 더 이상 폴란드의 그런 약자를 위한 피난처가 아니니까요. 오늘날 이스라엘은 실제로 세계 전역에 있는 유대인을 대표하는, 유대인의 대리인이에요. 우리가 그걸 좋아하느냐 싫어하느냐 여부는 별개의 문제예요. 하지만…… 이런 말을 한다고 해서 디아스포라 유대교의 생각이 이스라엘 정부의 의견과 항상 일치해야 한다는 뜻은 아니에요. 그건 정부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의 문제예요. 그리고 국가가 존재하는한, 이 국가는 당연한 말이지만 세계인들의 눈앞에서 우리를 대표해요. - P184
"국적을 바꿀 수 있고 다른 문화를 흡수할 수 있는지식인들이 느끼는 감정은 통일체로서의한민족의 감정과 일치하지 않아요"
에레라 10년 전, 프랑스 작가 조르주 프리드만Georges Friedmann, 1902~1977은 『유대 민족의 종말?Fin du peuple juif?』 (갈리마르, 1965)이라는 책을 썼습니다. 이 책에서 그는 미래에 한편에는신생국 이스라엘이 있을 것이고, 다른 편에는 디아스포라로살다가 거주하던 나라에 동화돼 차츰 고유한 특징을 잃어갈유대인들이 있을 것이라고 결론 내렸습니다.
아렌트 Cette hypothèse(이 가정은) 무척 그럴듯하게 들리지만 내 생각에는 꽤나 틀렸어요. 고대에, 유대인의 국가가 여전히 존재 - P184
하는 동안에도 이미 엄청난 수의 유대인 디아스포라가 있었어요. 많은 상이한 형태의 정부와 국가가 있었던 여러 세기를거치면서, 수천 년의 세월을 견디며 살아남은 유일한 고대 민족인 유대인은 결코 동화되지 않았어요……. 유대인이 동화될 수 있는 사람들이었다면 이미 오래전에 동화되고도 남았을 거예요. 스페인 지배기에도 그럴 기회가 있었고, 로마 지배기에도 그럴 기회가 있었어요. 18세기와 19세기에도 당연히 그럴 기회가 있었고요. 자, 민족은, 집단은 스스로 목숨을끊지는 않아요. 미스터 프리드만은 틀렸어요. 그는 지식인들의 감정을 이해하지 못하니까요. 국적을 바꿀 수 있고 다른문화를 흡수할 수 있는 지식인들이 느끼는 감정은 통일체로서의 한 민족의 감정과 일치하지 않아요. 우리 모두가 알고있는 그런 법률들로 구성된 국가의 국민들 감정하고는 특히더일치하지 않아요. - P185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을 집필한 의도 중 하나는 악惡이 위 - P190
대하다는 통설을, 악마 같은 세력이 위대하다는 통설을 깨뜨리고, 사람들이 리처드 3세 같은 엄청난 악인들에게 품고 있는 존경심을 사람들에게서 걷어내는 것이었어요. 브레히트에게서 이런 문장을 찾아냈어요. 이 인용문은 작품집: 베를린과 프랑크푸르트 판본에 대한 견해 Werke: Große kommentierte Berliner und Frankfurter Ausgabe』(주어캄프, 1988, 24:315~19)에 실린 희곡 「아르투로 우이의 저지 가능한 출세Deraufhaltsame Aufstieg des Arturo Ui」에 단 브레히트의 주에서 가져왔다 원주.
"거물정치범들은 사람들 앞에, 특히 폭소 앞에 노출시켜야 한다. 그들은 거물 정치범들이 아니라 거대한 정치적 범죄를 저지른 사람들로, 이 둘은 완전히 다른 것이다. 히틀러가 벌인 일들이 실패했다는 게 그가 멍청이였음을 보여주지 않는다" - P192
자, 히틀러가 멍청이라는 것은 물론 모든 사람이 가진-히틀러의 정권 장악 이전에 히틀러를 반대했던 모든 사람이 가진-편견이에요. 따라서 대단히 많은 책이 히틀러를 옹호하면서 그를 위대한 인물로 만들려고 애썼어요. 그래서 브레히트는 이렇게 말했죠. "히틀러가 실패했다는 게 그가 멍청이였다는 것을 보여주지도 않았고, 그가 벌인 일의 규모가 그를 위대한 인물로 만들어주지도 않았다." 즉, 멍청이도 위대한 인물도 아니란 얘기죠. 이 모든 범주의 위대함에는 마땅히 적용할 대상이 없어요. 브레히트는 말하죠. "조무래기 사기꾼이위대한 사기꾼이 되는 걸 지배계급이 허용한다면, 그는 우리의 역사적 관점에서 볼 때 특권적 위치에 설자격이 없다. 즉, 그가 위대한 사기꾼이 됐다는 사실과 그가 한 일이 엄청난 결과를 낳았다는 사실이 그의 위상에 덧붙지는 않는다." 그(브 - P192
레히트)는 그러고는 다음과 같은 갑작스러운 말을 했어요. "비극은 인류가 겪는 고통을 희극이 그러는 것보다 덜 진지한 방식으로 다룬다고 할 수 있다." 이건 물론 충격적인 발언이에요. 동시에 나는 전적으로 맞는말이라고 생각해요. 정말로 필요한 것은 당신이 이러한 상황에서도 진실성을 유지하고 싶다면―그러한 상황들을 살피던 오랜 방식들을 기억해내고 이렇게 말할 수 있어야 한다는거예요. 무슨 일을 하건, 설령 그가 1000만 명을 죽였더라도그는 여전히 어릿광대다.
"당시 내 폭소는 이를테면 순진무구한 폭소였고, 되새겨볼 것 없는 폭소였죠. 내가 목격한 것은 어릿광대였거든요" - P1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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