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닛의 글쓰기를 훔치고 싶었다. 현장에서 길어 올린 용감한 언어, 오래들여다본 자의 통찰, 성실함으로 쌓아올린 단단한 지성, 행간마다 일몰처럼 번지는 수려한 감성으로 빚어낸 글에 나는 매번 압도당했다. 걷기의 인문학』을 읽고 나니, 그 비결이 조금은 짐작된다. "몸을 통해 세계를인식하고 세계를 통해 몸을 인식"하는 걷기가 그 동력이 아니었을까 싶다. 오직 몸으로 밀고 나가는, 걷기라는 곡진한 행위는 어떤 사람을 환경운동가로, 철학자로, 페미니스트로, 예술가로, 명상가로 만들어줄 수 있음을 이 팽창하는 텍스트는 증명한다. 그것을 증명하면서 솔닛은 그 모든 존재가 된다. 이 책은 때로 척척하고 울퉁불퉁한 길로 이끈다. 친절하거나 익숙하지 않다. 이대로 걷다 보면 어디가 나올지 힌트를 주지 않고 그렇기에‘우연한 발견‘이라는 기쁨을 선사한다. 이 얼마나 고마운가. 자신을 ‘다른자리‘에 데려다놓는 사람을 만나야 좋은 글을 쓸 수 있음을 알기에, 나는 솔닛의 지적 여정에, "일하는 것과 일하지 않는 것, 그저 존재하는 것과 뭔가를 해내는 것 사이의 미묘한 균형을 잡는 걷기에 기꺼이 함께할작정이다." -은유(작가)
"더 높이, 그리고 더 멀리 바라볼 때가 있다. 봉우리나 지평선과 같은 곳을 바로 내가 걷고 있을 때다. 아무리 높고 멀리 있다 해도 걸어가는 한,바라볼 수밖에 없다. 덕분에 걷는 일은 더 높이, 그리고 더 멀리 바라보는 일이기도 하다. 그간 많은 사람들이 영적으로, 정치적으로, 문학적으로 걸어왔다. 그들의 걸음 덕분에 이 세계는 더 높이, 그리고 더 멀리 오게 됐다. 리베카 솔닛이 말하는 걷기란 바로 그처럼 이 세계를 좀 더 높고, 먼 곳으로 보내는 일, 즉 ‘진보‘를 뜻한다. 이 책에서 소개한 걷기의 달인들, 그러니까 장 자크 루소, 워즈워스 남매, 헨리 데이비드 소로,개리 스나이더, 존 무어, 발터 베냐민 등은, 바로 그런 의미에서 모두, 진보주의자들이다. 그리고 그들이 걸어간 길의 끝에서 인류는 다시 걸음을내딛는다. 세계 도처에서 사람들은 인종과 남녀의 차별을 메우기 위해걷고 있다. 걷기의 역사를 말하는 리베카 솔닛의 목소리에서 희망의역사를 듣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김연수(소설가)
"요리를 예찬하는 사람들은 ‘당신이 무엇을 먹었는지 말해보라. 그럼 당신이 누군지 말해주겠다‘는 문장을 믿지만, 걷기를 예찬하는 리베카 솔닛은 아마도 ‘당신이 어디를 걸었는지 말해보라. 그럼 당신이 누군지 조금은 알 수 있을 것이다.‘라고 말할 것 같다. 이 책을 통해 나는 나에게 누구도 빼앗을 수 없는 멋진 무기가 있음을 깨닫는다. 걸으면서 생각하고, 걸으면서 나 아닌 다른 것과의 소통을 꿈꾸는 나, 걸으면서 새로운 아이디어를 얻고, 걸음으로써 걷기 전과는 분명 달라진 나. 리베카 솔닛은 이책을 통해 눈부시게 증언한다. 더 많이, 더 오래, 더 깊이 생각하며 걸을때마다 조금씩 다른 존재가 되어가는 인간의 힘을." -정여울(작가)
한국의 독자들에게
가장 위대하고 아름다운 힘의 경험
지난해 한국사람들이 부정한 정권에 맞서 뭉치는 모습은 감동적이고 경이로웠습니다. 하지만 지구 반대편에서 우리의 역사를 알고 있는 사람들은 놀라지 않았습니다. 공적 공간으로 걸어 나오는 비무장 시민들이 엄청난 힘이라는 것, 때로 자치의 힘이기도 하고 때로 압제 정권, 불량정권을 막아내는 힘이기도 하다는 것은 이 책의 주제 중 하나입니다. 혁명을생각할 때 흔히 폭력, 군대 등을 떠올리지만, 많은 중요한 일을 해내는 것은 사실 폭력이 아니라, 군대나 군인이 아니라, 평범한 사람들입니다. 평범한 사람들이 모인 시민사회입니다. 사람들의 의지에는 엄청난 힘이 있습니다. 그 힘은 공적으로 가시화될 때, 우리가 함께 모일 때 발휘됩니다. 의지에 내재된 힘을 발휘하는 데는 일상의 경험을 통한 연습이 필요합니다. 길을 걸으면서 자기 몸의 힘을 느끼는 경험, 집 밖에서 집처럼 편하게느끼는 경험, 스스로를 사회의 한 구성원이라고 느끼는 경험, 낯선 사람들과 공존하는 경험입니다. 21세기 들어 우리는 이 힘이 세상을 바로잡기 위해 떨쳐 일어나는 - P9
모습을 여러 번 목격했습니다. 네팔, 튀니지, 이집트, 폴란드, 아이슬란드, 아르헨티나, 볼리비아에서 비무장의 시민들이 하나로 뭉쳐 정권에 맞섰습니다. 우리는 민주주의를 추상적으로 이야기할 때가 많습니다. 그저투표를 통해 달성할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할 때도 많습니다. 하지만 민주주의란 종종 일종의 경험입니다. 공적 공간에서 육체적으로 한데 모이는 경험, 눈으로 확인하는 경험, 뒤로 물러서지 않는 경험, 목표에 도달할때까지 걸어가는 경험입니다. 사람이 사는 세상에서 가장 위대하고 가장아름다운 힘의 경험입니다. 정의와 자유를 지키고자 하는 시민들의 힘이반세계화 운동에서 최근 사건들에 이르기까지 여러 가지 방식으로 펼쳐지는 나라에서 이 책이 출간된다는 사실을 저자로서 영광스럽게 생각합니다. - P10
내가 이 책을 쓴 것은 거의 20년 전입니다. 이 책이 담고있는 보행의 여러 가지 기쁨과 성과와 의미에 관한 이야기는 지금도 거의 그대로통할 듯합니다. 평범한 사람들이 도시와 시골의 모든 열린 공간에서 자유롭게 걸을 가능성, 그 가능성을 위협하는 요소들은 더 많아지고 있습니다. 점점 사적 공간에 틀어박히고, 점점 몸을 망각하고, 실리콘밸리가만들어낸 컴퓨터, 스마트폰, 온라인 기반의 여가 활동에 점점 더 많은 시간을 쏟게 됩니다. 나는 이 책에서 이런 현상이 지나치게 과도해질 때 잃어버릴 수밖에 없는 삶의 기쁨, 삶의 역동, 그리고 그 밖의 삶의 중요한 것들에 대해이야기하고자 했습니다. 정신과 육체, 내면의 성찰과 사회의 결성, 사적인 것과 공적인 것, 도시와 시골, 개인과 집단. 이 양쪽은 대립하는 것 같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대립하는 듯한 두 항이 이 책에서는 보행을 통해하나로 연결됩니다. 걸어가는 사람이 바늘이고 걸어가는 길이 실이라면, - P10
걷는 일은 찢어진 곳을 꿰매는 바느질입니다. 보행은 찢어짐에 맞서는 저항입니다.
2017년 8월 리베카 솔닛 - P11
어디에서 시작할까? 근육이 긴장한다. 한쪽 다리가 기둥처럼 땅과 하늘사이에서 몸을 지탱한다. 다른 쪽 다리가 뒤에서 휙 옮겨 온다. 발바닥이바닥에 닿는다. 몸무게가 앞쪽 발볼로 쏠린다. 엄지발가락이 바닥을 밀어내면, 몸무게는 또 한 번 미묘한 균형을 찾아간다. 두 다리가 위치를 바꾼다. 그렇게 한 걸음, 또 한 걸음, 그리고 또 한 걸음이 이어지면서, 탁, 탁,탁, 탁, 보행의 리듬이 생긴다. 더없이 자명하면서도 더없이 모호한 이 보행이라는 주제는 어느새 슬며시 종교, 철학, 풍경, 도시 정책, 해부학, 알레고리, 그리고 애통함 속으로 걸어 들어간다. 보행의 역사는 글로 쓰이지 않은 은밀한 역사다. 노래의 작은 패시지, 노상의 작은 패시지, 인생사의 작은 패시지, 그리고 책 속의 작은 패시지에서 그 역사의 편린들을 발견할 수 있을 뿐이다. 육체적 보행의 역사는 직립보행과 인체 해부의 역사다. 대부분 보행은 이곳에서 저곳으로 가는 데 필요한 대수롭지 않은 이동 수단으로서의 실용적 행동일 뿐이다. - P17
걸었기에 골목과 도로와 무역로가 뚫린 것이고, 걸었기에 현지의 공간 감각과 대륙 횡단의 공간 감각이 생겨난 것이고, 걸었기에 도시들, 공원들이 만들어진 것이고, 걸었기에 지도와 여행안내서와 여행 장비가 생긴 것이다. 멀리까지 걸어갔으니 걷는 이야기책들과 시들이 쓰인 것이며, 순례와 등산과 배회와 소풍을 기록한 방대한 분량의 책들이 쓰인 것이다. 역사의 풍경에는 이야기가 깃들어 있다. 우리를 역사의 현장으로 돌려보내주는 것은 바로 그 이야기다. 걷기가 아마추어적 행동이듯 걷기의 역사는 아마추어적 역사다. 걸음의 비유를 쓰자면, 걷기의 역사는 허락 없이 남의 땅(해부학, 인류학,건축, 조경, 지리, 정치사와 문화사, 문학, 섹슈얼리티, 종교 연구)에 걸어 들어가지만 그중 어느 땅에도 머물지 않고 계속 먼 길을 걸어간다. 전문 영역이라는 땅을 진짜 땅(기름지게 경작되어 특정 농작물을 산출하는 반듯한 사각형의 농지)에 비유하면, 걷기라는 주제는 경계가 따로 없다는 점에서 진짜 걷기와 비슷하다. 걷기의 역사는 모든 땅의 일부이자 모두의 경험의 일부라는 점에서 무한한 역사다. - P18
걷기의 역사는 모두의 역사이며, 누가 쓰든 자기가 잘 다니는 길에 관해 쓸 수밖에 없다. 내가 따라가는 길이 유일한 길은 아니라는 뜻이다.
어느 봄날이었다. 나는 자리에 앉아서 걷기에 대한 글을 쓰려다가 말고다시 일어섰다. 책상 앞에서는 큰 생각을 할 수 없으니까 밖으로 나간 나는 골짜기 언덕을 올라 능선을 따라 걷다가 태평양 쪽으로 내려갔다. 버려진 군사기지가 드문드문 박혀 있는 골든게이트 북쪽 곳이었다. 유난히 습했던 겨울이 지나고 봄이 와 있었다. 언덕에는 내가 매년 잊었다가매년 다시 마주치는 기세등등한 풀빛이 가득했다. 비를 맞고 황금색에서흐린 회색으로 탈색된 작년의 풀들이 그 신록 사이로 고개를 내밀고 있었다. 활기찬 새 봄에 어울리는 색은 아니었다. 소로(Henry David Thoreau)는 이 대륙의 반대편에서 나보다 훨씬 더 활기차게 걸으면서 그곳 길에대해 썼다. "완전히 새로운 전망을 발견하는 것은 큰 행복이다. 지금도 나는 이 행복을 언제라도 맛볼 수 있다. 두세 시간의 오후 산책은 언제나 나를 낯선 나라로, 내가 평생 가볼 수 있는 그 어느 나라 못지않게 낯선 나라로 데려다준다. 처음 가본 외딴 농가 하나가 다호메이 왕국의 모든 영지를 합한 만큼이나 좋을 때가 있다. 반경 10마일, 즉 오후 산책 한 번의거리 안에 있는 풍경이 보여줄 수 있는 것들과 70년이라는 사람의 한평 - P19
생 사이에는 실은 공통점이 하나 있다. 좀처럼 익숙해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내가 걷는 길도 도로와 샛길을 합쳐서 구불구불 얼추 10킬로미터가 된다. 나는 힘들었던 10년 전 이 길을 걷기 시작했다. 걸으면 불안이떨쳐질까 해서였다. 그 후로도 나는 자꾸 이 길로 돌아왔다. 일을 쉬기 위해서일 때도 있었고 일을 하기 위해서일 때도 있었다. 생산 지향적 문화에서는 대개 생각하는 일을 아무 일도 안 하는 것으로 간주하는데, 아무일도 안 하기란 쉽지 않다. 아무 일도 안 하는 제일 좋은 방법은 무슨 일을 하는 척하는 것이고, 아무 일도 안 하는 것에 가장 가까운 일은 걷는것이다. 인간의 의도적 행위 중에 육체의 무의지적 리듬(숨을 쉬는 것, 심장이 뛰는 것)에 가장 가까운 것이 보행이다. 보행은 일하는 것과 일하지 않는 것, 그저 존재하는 것과 뭔가를 해내는 것 사이의 미묘한 균형이다. - P20
내 주위로 검은 나비들이 날아다니고 있었다. 바람에 날리기도 하고, 날개를 파닥거리기도 했다. 검은 나비들을 보니 또 옛날 어느 때가 떠올랐다. 장소를 넘나들다 보면, 시간을 넘나드는 일이 더 쉬워지는 것 같다. 계획에서 추억으로 넘어가고, 거기서 또 관찰로 넘어가고. 보행의 리듬은 생각의 리듬을 낳는다. 풍경 속을 지나가는 일은 생각 속을 지나가는 일의 메아리이면서 자극제이다. 마음의 보행과 두 발의 보행이 묘하게 어우러진다고 할까. 마음은 풍경이고, 보행은 마음의풍경을 지나는 방법이라고 할까. 마음에 떠오른 생각은 마음이 지나는풍경의 한 부분인지도 모르겠다. 생각하는 일은 뭔가를 만들어내는 일이라기보다는 어딘가를 지나가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보행의 역사가 생각의 역사를 구체화한 것이라고 할 수 있는 것도 그 때문이다. 마음의 움직임을 따라가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두 발의 움직임을 따라가는 것은가능하잖은가 말이다. 걷는 일은 곧 보는 일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 P21
보면서 동시에 본 것에 대해서 생각할 수 있고, 새로운 것을 이미 알고 있는것 속으로 흡수할 수 있다는 점에서 느긋한 관광이라고도 할 수 있다. 사색하는 사람에게 걷는 일이 특별히 유용한 이유도 그 때문일것이다. 여행의 경이와 해방과 정화를 얻자면, 세계를 한 바퀴 돌아도 좋겠지만 한블록을 걸어갔다 와도 좋다. 걷는다면 먼 여행도 좋고 가까운 여행도 좋다. 아니, 여행이 아니라 몸의 움직임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제자리를 건는 것도 가능하고, 좌석벨트에 묶인 채 전 세계를 도는 것도 가능하겠지만, 보행의 욕구를 만족시키자면 자동차나 배, 비행기의 움직임으로는부족하다. 몸 자체의 움직임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마음속에서 일이 일어나려면 몸의 움직임과 눈의 볼거리가 필요하다. 걷는 일이 모호한 일이면서 동시에 무한히 풍부한 일인 것은 그 때문이다. 보행은 수단인 동시에 목적이며, 여행인 동시에 목적지다. - P21
걷는 사람에게는 모든 곳이 연결돼 있다. 걷는 사람이 실내와실내 사이의 공간을 점하는 방식은 실내에 있는 사람이 실내를 점하는방식과 같다. 사람이 살아가는 곳은 세계의 침입을 막기 위해 만들어진이런저런 실내가 아니라, 그런 실내들을 모두 포함하는 세계 그 자체다. 샛길은 오르막으로 휘면서 끝났고, 거기서부터는 유도미사일 발사장으로 올라가는 군용도로였다. 샛길을 벗어나 도로를 밟으면 드넓게 펼쳐진 바다가 보인다. 일본까지 이어지는 바다. 이렇게 샛길과 도로의 경계를 넘어서 바다를 마주할 때마다 기쁨의 충격이 나를 엄습한다. 아주맑은 날은 은박지처럼 빛나고, 흐린 날은 녹색이 되고, 비가 많이 오는 겨울에는 강의 상류에서 흘러내려오는 흙탕물 때문에 갈색이 되고, 비가갠 날은 유백색이 섞인 청색이 되는 바다. 다만 안개가 자욱한 날은 바다가 보이지 않는다. 그런 날 바다의 변화를 알려주는 것은 대기에 배어 있는 소금 냄새뿐이다. 그날의 바다는 온통 청색이었고, 흐린 수평선의은 안개가 푸른 바다와 구름 없는 하늘의 경계를 지우고 있었다. - P27
바로 그때 뱀이 나타났다. 검은색 몸통에 노란색 줄무늬가 있는 가터뱀이었다. 작은 뱀은 구불구불 물결 모양으로 길을 가로질러 길가 풀숲으로 사라졌다. 넋을 잃고 바라보던 나는 소스라쳤다기보다는 퍼뜩 정신을 차렸고, 겨우 생각에서 빠져나와 나를 둘러싼 것들에게로 관심을돌렸다. 버드나무에는 꼬리꽃차례가 달려 있었고, 바다에는 남실남실하는 파도가 있었고, 길 위에는 어른거리는 잎 그림자가 있었다. 그리고 길을 걷는 내가 있었다. 수 킬로미터를 걸은 후에 비로소 생겨난 리듬을 따라서 팔다리는 느슨한 대각선으로 움직이고 몸통은 길게 뻗어나가는 느낌, 유연한 한 마리 뱀이 된 느낌이었다. 곶 산책이 끝날 참이었고, 나는무엇을 써야 하고 어떻게 써야 하는지를 깨달았다. 대략 10킬로미터를 - P31
4걷기 전에는 없었던 깨달음, 순간적 에피파니가 아닌 점진적 확신이었다. 공간이 파악되듯이 의미가 파악되었다. 한 장소를 파악한다는 것은 그장소에 기억과 연상이라는 보이지 않는 씨앗을 심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 장소로 돌아가면 그 씨앗의 열매가 기다리고 있다. 새로운 장소는 새로운 생각, 새로운 가능성이다. 세상을 두루 살피는 일은 마음을 두루 살피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세상을 두루 살피려면 걸어 다녀야 하듯, 마음을 두루 살피려면 걸어 다녀야 한다. - P32
"나는 걸을 때만 사색할 수 있다. 내 걸음이 멈추면 내 생각도 멈춘다. 내두 발이 움직여야 내 머리가 움직인다." 루소(Jean-Jacques Rousseau)의 『고백록』에 나오는 말이다. 보행의 역사는 인간의 역사보다도 길다. 하지만보행을 단순히 수단으로 보는 대신 모종의 의식적 문화 행위로 본다면, 보행의 역사는 불과 몇 세기 전에 유럽에서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그 기원에 루소가 있다. 그 역사는 18세기 다양한 사람들의 발로 만들어졌지만, 그중에서도 좀 더 학예적인 사람들은 보행의 기원을 고대그리스에서 찾음으로써 보행의 위대한 전통을 만들고자 했다. 그리스의습속들을 기쁜 마음으로 숭배하고 왜곡하던 시대였다. 영국의 혁명가겸 작가 텔월(John Thelwall)은 소요자(The Peripatetic)』라는 두껍고 따분한책을 쓰기도 한 별난 인물인데, 바로 이 책에서 텔월은 그 가짜 전통(보행의 기원이 고대 그리스에 있다는 생각과 루소적 낭만주의를 결합했다. - P33
고대인들이 사유하기 위해 걸었다는 것은 건축과 언어의 우연한 일치에서 비롯된 믿음이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아테네에 학당을 세우겠다고 하자, 아테네 시에서 작은 땅을 내주었다. 그라이에프(Felix Grayeff)는아리스토텔레스학파의 역사를 쓰면서 아리스토텔레스가 세운 그 학당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이곳에는 아폴로 신전과 뮤즈 신전이 있었다. 다른 작은 건물들도 있었을 것이다. [……] 기둥이 늘어선 지붕 덮인 통로가아폴로 신전까지 이어져 있었고, 아폴로 신전에서 뮤즈 신전까지 이어지는 길이었을 수도 있다. 원래 있었던 길인지 아니면 학당을 지을 때 새로세워진 길인지는 알 수 없다. 이 열주 회랑(peripatos)이 바로 이 학파의 이름이 되었다. 적어도 학당 설립 초기에는 학생들과 선생들이 이 길을 이리저리 왔다 갔다 하며 배우고 가르쳤던 것 같다. 훗날 아리스토텔레스가 걸어 다니면서 가르쳤다는 말이 나온 것은 바로 그런 까닭이다." - P34
아리스토텔레스와 소요학파 철학자들이 항상 걸어 다니면서 철학을 이야기했는지를 이제 와서 밝히기란 불가능하지만, 고대 그리스에서사색과 보행이 만나는 경우가 많았던 것도 사실이고, 고대 그리스 건축양식이 사교 및 대화와 직결된 행동으로서의 보행에 적합했던 것도 사실이다. 소요학파라는 명칭이 아테네 학당의 열주 회랑에서 왔듯, 스토아학파(Stoics)라는 명칭 또한 아테네의 스토아(stoa), 즉 스토아학파 철학자들이 이야기를 나누면서 걸었다고 하는, 금욕과는 거리가 먼 색깔로 칠해진 열주 통로에서 왔다. 그 후 오랫동안 걷는 일과 사색하는 일 사이의연상이 널리 확산되면서, 나중에는 중부 유럽에서 그 연상을 반영하는지명들이 생기기에 이르렀다. 하이델베르크에는 헤겔이 걸었던 것으로유명한 ‘철학자의 길(Philosophenweg)‘이 있고, 쾨니히스베르크에는 칸트가 날마다 산책한 (지금은 기차역이 들어선) 철학자의 길(Philosophen-damm)‘ 이 있다. 키르케고르(Sören Kierkegaard)는 코펜하겐에서 ‘철학자의 길‘을걸었다.‘ - P36
몸이 허약했던 칸트는 날마다 식후 산책으로 (그저 운동삼아) 쾨니히스베르크 외곽을 걸었다. 칸트에게 사색의 시간은 걸을 때가 아니라 난롯가에 앉아 창밖으로 교회 탑을 바라볼 때였다. 청년 니체는 "나에게 세 가지 오락이 있으니, 첫째는 나의 쇼펜하우어, 둘째는 슈만의 음악, 마지막은 혼자만의 산책"이라고 했다. 더할 나위 없이평범한 말이다. 20세기에는 러셀(Bertrand Russell)이 친구 비트겐슈타인(Ludwig Wittgenstein)이 어떻게 걸었는지를 이야기한다. "그는 한밤중에내 거처로 찾아오곤 했고, 안으로 들어오자마자 이제 돌아가면 바로 자살하겠다고 선언하곤 했다. 그러고는 우리에 갇힌 호랑이처럼 몇 시간씩왔다 갔다 하곤 했다. 그랬으니 나는 졸음이 쏟아지기는 해도 그를 돌려보낼 마음이 들지는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한두 시간의 완벽한 침묵 끝에 그에게 물었다. ‘비트겐슈타인, 자네는 논리에 대해서 생각하고있나, 아니면 자네의 죄에 대해서 생각하고 있나?‘ 그는 ‘둘다‘라고 대답하더니 다시 침묵 속에 빠졌다. 많은 철학자들이 걸었다. 하지만 걷는일을 사유한 철학자는 드물었다. - P37
독창적으로 사유했다기보다는 대담하게 사유했던 루소는 기존의갈등을 가장 과감한 언어로 폭로하고, 새로 출현하는 감성을 가장 열렬한 언어로 찬양한 논객이었다. 신과 군주와 자연이 모두 같은 편이라는주장이 점점 근거를 잃어가는 시대였다. 중하층 계급의 원한, 왕과 가톨릭교에 대한 스위스 칼뱅주의자로서의 의심, 세상에 충격을 주고 싶은욕망, 흔들리지 않는 자신감의 소유자였던 루소는 멀리서 들려오는 불화를 특정 정치 사안으로 만들기에 적합한 인물이었다. 「학문과 예술에 대하여」라는 제목의 논문에서 루소는 학문과 예술은 물론이고 심지어 인쇄술 그 자체가 개인과 문화를 타락시켰다고 외쳤다. "고금을 통틀어 사치와 방탕, 예속은 영원한 지혜가 우리에게 내준 행복한 무지를 벗어나겠다는 오만한 노력에 가해진 형벌이었잖은가." 학문과 예술은 행복이나자기 인식으로 가는 길이기는커녕 혼란과 타락으로 가는 길일 뿐이라는것이 루소의 주장이었다. - P38
루소는 수시로 자신을 보행자로 그리면서 이상적인 선사시대 보행자의 후예를 자처했고, 실제로 평생에 걸쳐 여기저기를 걸어 다녔는데,그 유랑 인생은 어느 일요일에 시골 산책을 마치고 제네바 성문 앞에 도착했을 때 시작되었다. 이미 굳게 닫혀 있는 성문 앞에서 순간의 충동에휩쓸린 열다섯 살의 루소는 고향을 떠나자, 견습직을 그만두자, 종교를버리자고 결심했다. 그렇게 제네바를 뒤로하고 스위스를 떠나 이탈리아와 프랑스에서 여러 직업과 후원자와 친구들을 전전하면서 정처없이부유하던 그의 젊은 날은 《메르퀴르 드 프랑스》에서 자기의 사명을 발견한 그날로 끝났다. 하지만 젊은 날의 태평한 유랑생활을 되살리려는 그의 노력은 그 후로도 계속되었던 것 같다. - P40
하지만 루소가 걸을기회를 놓치는 법은 없었다. "그 정도로 사색하고 그 정도로 존재하고 그정도로 경험하고 그 정도로 나다워지는 때는 혼자서 걸어서 여행할 때밖에 없었던 것 같다. 두 발로 걷는 일은 내 머리에 활기와 활력을 불어넣어준다. 한곳에 머물러 있으면 머리가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다고 할까, 몸이 움직여야 마음도 움직인다고 할까. 시골 풍경, 계속 이어지는 기분 좋은 전망, 신선한 공기, 왕성한 식욕, 걷는 덕에 좋아지는 건강, 선술집의 허물없는 분위기, 내 예속된 상태와 열악한 상황을 생각하게 하는 것들의부재. 바로 이런 모든 것이 내 영혼을 속박에서 풀어주고, 사유에 더 많은용기를 불어넣어주고, 나를 존재들의 광활한 바다에 빠지게 해준다. 그덕분에 나는 그 존재들을 아무 불편함이나 두려움 없이 마음껏 결합하고 선택하고 이용할 수 있다.13 여기에서 루소가 그려 보이는 보행은 물론 이상적인 보행, 즉 건강한 사람이 쾌적하고 안전한 길에서 자발적으로선택한 보행이다. 나중에 루소의 무수한 상속자들이 행복, 자연과의 조화, 자유, 미덕의 표현이라고 여기게 되는 보행도 바로 이런 보행이다. - P41
홀로 걷는 사람은 세상 속에 있으면서도 세상과 동떨어져 있다. 홀로 걷는 사람의 존재 방식은 노동자나 거주자나 한 집단 구성원의 유대감보다는 여행자의 무심함에 가깝다. 걷는 동안 루소는 사유와 몽상 속에 살며 자족할 수 있었고, 자기를 배반한 것 같은 세상을 이길 수 있었고, 그런 이유에서 걷는 것을 아예 자신의 존재 방식으로 선택했다. 루소는 걸음으로써 그야말로 발화의 형식을 얻었다. 논문 같은 엄격한 형식,또는 전기문이나 역사서 같은 연대기적 형식과는 달리, 여행기는 탈선과 연상을 장려한다. 루소가 세상을 떠나고 거의 한 세기반 후, 마음의작동 방식을 그려내고자 한 제임스 조이스(James Joyce)와 버지니아 울프(Virginia Woolf)는 의식의 흐름이라는 문체를 발전시킨다. 조이스의 소설『율리시스』와 울프의 소설 『댈러웨이 부인」에서 주인공들의 머릿속에뒤죽박죽 뭉쳐 있는 생각들, 기억들은 그들이 길을 걸을 때 가장 잘 풀려나온다. 바꾸어 말하면, 보행이라는 비분석적, 즉흥적 행위와 가장 잘 어울리는 사유는 이런 비체계적, 연상적 유형의 사유다. 루소의 고독한 산책자의 몽상』은 바로 사유와 보행의 이러한 관계를 그려 보여주는 최초의 그림 중 하나다. - P44
루소의 글이 철학적 보행을 다루는 문헌의 효시라면, 그것은 루소가 자기의 사색이 어떤 정황 속에 행해지는지를 상세히 기록할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 최초의 저술가 중 한 명이기 때문이다. 루소가 과격파였다면, 루소의 가장 과격한 행동은 (보행, 고독, 자연 등을 기반으로 조성되는) 개인적, 사적 경험의 가치를 재평가한 일이었다. 루소가 다양한 혁명, 이를테면 정치조직의 혁명뿐 아니라 상상의 혁명과 문화의 혁명을 고취했다고도 할 수 있겠지만, 루소에게 혁명이 필요했던 이유는 그런 사적 경험의방해물을 제거하기 위해서일 뿐이었다. 루소가 자신의 지성을 십분 발휘해 가장 강력한 주장을 펼칠 때는 고독한 산책자의 몽상에서 드높이고있는 정신 상태와 생활 방식을 회복하고 유지하는 것을 목적으로 할 때였다. - P45
루소가 일흔다섯 살에 「열 번째 산책을 미완성으로 남기고 세상을 떠났을 때, 에름농빌 영지의 소유주였던 지라르댕 후작(marquis de Girardin)은 포플러 나무가 무성한 영지 내의 작은 섬에 루소의 무덤을 만들면서 감상적인 루소신도들을 위한 순례 코스도 함께 만들었다. 덕분에 루소의 무덤을 찾아온 사람은 무덤까지 어떤 길로 가야 하는지뿐 아니라 그 길로 가면서 어떤 감정을 느껴야 하는지도 배울 수 있었다. 루소의 사적 저항이 후대의공적 문화로 자리 잡는 과정이었다.
키르케고르도 보행과 사유에 대해서 많은 이야기를 하는 철학자 중 한명이다. 키르케고르의 경우에는 걸으면서 인간을 연구할 장소로 도시, - P46
정확히 말하면 코펜하겐이라는 한 도시를 선택했다. 다만 그는 도시를걸으면서 인간을 연구하는 일을 시골에서 식물을 채집하는 일에 비유했다. 그렇게 보면, 그가 마주치는 사람들은 그가 수집하는 식물표본이었다. 키르케고르가 태어난 때는 루소가 태어나고 100년 후였고, 키르케고르가 태어난 곳은 루소가 태어난 곳과 마찬가지로 프로테스탄트의 도시였다. 하지만 키르케고르의 삶은 몇 가지 면에서 루소의 삶과는 완전히달랐다. 루소가 방종한 생활을 한 것과 달리 키르케고르는 스스로 부과한 엄격한 금욕적 기준을 따랐고, 루소가 유랑 생활을 한 것과는 달리 키르케고르는 평생 고향과 가족, 자기 종교를 떠나지 않았다.(물론 다툼은 항상 있었다.) 하지만 이 두 철학자 사이에는 대단히 흡사한 면도 있다. 사회적으로 고립된 삶을 살았다는 것, (문학적이기도 하고 철학적이기도 한) 무수한 저작들을 쏟아냈다는 것, 자의식에 시달렸다는 것도 공통점이다. 부유하면서도 무서울 정도로 경건한 상인의 아들로 태어난 키르케고르는거의 평생 동안 물려받은 유산으로 살면서 아버지의 손에 휘둘렸다. - P47
키르케고르는 저술 활동 초기인 1837년의 한 일기에서 이미 소음이 사유를 돕는다는 말을 했다. "이상하게 들릴지도 모르지만, 내가 가장 창의적이 되는 때는 사람들이 많이 모인 곳에 혼자 앉아 있을 때, 머릿속에 떠오른 것들을 잃지 않기 위해 혼란과 소음에 맞설 때다. 그렇게 적당한 환경을 찾지 못할 경우, 내 사유는 막연한 사념을 붙잡아보려는 피로한 노력 끝에 죽음을 맞는다." 그로부터 10년 이상 지난 후의 한 일기에서는 길거리에서 그런 소음을 찾을 수 있다는 말도 했다. "정신에 긴장이 심한 나 같은 사람은 이완이 필요하다. 길거리에서 우연히 사람을 만나는 일은 이완에 도움이 된다. 몇몇 사람과 따로 만나는 일은 이완에는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20 주위가 소란스러울 때 생각이 잘 되고, 주변이 조용할 때보다는 주변 소음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애쓸 때 집중이더 잘 된다고 키르케고르는 주장한다. 어느 일기에서는 도시생활의 시끌벅적함이 실은 즐겁다고 말하기도 했다. "지금 이 순간, 거리의 악사가 손풍금을 연주하면서 노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려온다. 멋지다. 삶에서 중요한 것은 우연하고 사소한 것들이다." - P49
루지는 않지만, 보행을 철학의 주제로 다루는 방법과 관련해서 한 가지 힌트를 주고 있다. 길을 걷는 몸은 상처 입고 아파하고 부서질수 있는 본래적 한계로 되돌아가지만, 길을 걷는 일 그 자체는 마치 몸을연장하는 도구처럼 세계로 열린다. 길은 걷는 일의 확장이고, 걷기 위해만든 공간들은 걷는 일의 기념비들이며, 길을 걷는 일은 세계속에 존재 - P56
하면서 세계를 생산하는 일이다. 길을 걷는 몸은 그렇게 만들어진 공간들에 흔적을 남긴다. 거리와 공원과 보도는 길을 걷는 상상, 길을 걷고 싶은 욕망의 흔적들이다. 지팡이와 신발, 지도, 물통, 배낭은 그 욕망의 물질적 산물들이다. 몸을 통해 세계를 인식하고 세계를 통해 몸을 인식한다는 것, 그것이 보행과 생산적 노동의 공통점이다. - P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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