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첫 남편 윌리엄에 대해 몇 가지 말하고 싶다.


윌리엄은 최근에 몹시 슬픈 일을 몇 차례 겪었고ㅡ많은 사람이그런 일을 겪었다-나는 그 이야기를 하고 싶은데, 그래야 한다고 거의 강박적으로 느끼기 때문이다. 그는 지금 일흔한 살이다.
두번째 남편 데이비드는 작년에 죽었는데, 그의 죽음을 슬퍼하는 과정에서 나는 윌리엄에 대해서도 슬픔을 느꼈다. 슬픔이란 정말로-오, 그건 정말로 고독한 일이다. 그것이 슬픔이 무서운 이유라고. 나는 생각한다. 슬픔은 당신이 유리로 된 아주 높은 건물의 긴 외벽을 미끄러져 내려오는데 당신을 보는 사람이아무도 없는 것과 같다. - P9

하지만 내가 여기서 말하고 싶은 사람은 윌리엄이다.

*

그의 이름은 윌리엄 게르하르트, 당시 유행과는 맞지 않았지만, 나는 그와 결혼하면서 내 이름에 그의 성을 붙였다. 그때 내대학교 룸메이트는 말했다. "루시, 그의 성을 쓰겠다고? 난 네가페미니스트인 줄 알았는데." 그래서 나는 페미니스트가 되는 것에는 관심이 없다고 말해주었다. 나는 더이상 내가 되고 싶지 않을 뿐이라고. 당시 나는 내가 나인 것에 지쳐 있었고, 이미 내 인생 전체를 나로 살고 싶지 않다는 소망에 바쳤던 터라ㅡ그때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그의 성을 따랐고 십일 년 동안 루시 게르하르트가 되었지만, 한 번도 그 이름이 내게 맞는다고 느낀 적이없었다.  - P10

그래서 윌리엄의 어머니가 돌아가시자마자 운전면허증에 다시 내 원래 이름을 넣으려고 차량관리국을 찾아갔는데, 예상했던 것보다 절차가 훨씬 번거로워서, 다시 법원에 가서 무슨서류를 준비해 와야 했다. 하지만 그렇게 했다. 오그리고 나는 다시 루시 바턴이 되었다.
우리는 결혼해서 거의 이십 년을 같이 살았고, 그런 뒤에 내가그를 떠났고, 우리에겐 딸이 둘 있다. 우리는 지금까지 오랜 세 - P10

월 친하게 지내왔다ㅡ어떻게 그럴 수 있었는지, 그건 정확히 모르겠다. 이혼에 대해서라면 끔찍한 이야기가 많지만, 헤어짐 자체를 제외하면 우리 이혼은 그렇지 않았다. 이따금 나는 헤어짐의 고통과 그것이 내 딸들에게 일으킨 고통 때문에 죽을 것 같다고 생각했지만 나는 죽지 않았고, 지금 여기 살아 있으며, 윌리엄도 그렇다.


나는 소설가라서 이 이야기를 거의 소설처럼 써야 하지만, 이건 진실이다ㅡ내가 써낼 수 있는 최대한의 진실이다. 그리고 나는 말하고 싶다ㅡ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알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내가 윌리엄에 대해 뭔가를 이야기한다면, 그가 내게 말해줬거나 내 눈으로 직접 봤기 때문에 말하는 것이다. - P11

나는 윌리엄이 아인슈타인처럼 생겼다고는 전혀 생각하지않지만, 그 젊은 여자가 말하는 게 뭔지는 알 것 같다. 윌리엄의콧수염은 회색이 섞인 흰색으로 풍성하지만 잘 손질되어 있고,머리칼도 숱이 많고 흰색이다. 커트를 했는데, 일부 머리칼은 삐죽삐죽 뻗쳤다. 그는 키가 크고 옷을 아주 잘 입는다. 그리고 내가 보기에 아인슈타인은 묘하게 광적인 인상을 풍기지만 윌리엄은 그렇지 않다. 윌리엄의 얼굴에는 보통 유쾌한 표정이 고집스럽고 폐쇄적으로 떠올라 있지만, 아주 드물게 한 번씩은 고개를뒤로 젖히고 진짜로 껄껄 웃는다. 나는 그런 모습을 오랫동안 보지 못했다. 그의 눈은 갈색이고 한결같이 크다. 모든 사람이 나이를 먹은 뒤에도 큰 눈을 유지하지는 않지만, 윌리엄은 그렇다. - P12

한 가지 더. 이것은 죽음과 관련이 있었다. 그리고 떠나는 느낌과 관련이 있어서, 자신이 거의 세상을 떠나고 있다고 느꼈지만, 그는 어떤 사후 세계도 믿지 않았기에, 어떤 밤에는 그로 인해 내면에 일종의 공포가 차올랐다. 이런 때는 대체로 계속 침대에 누워 있을 수 있었지만, 가끔은 일어나 거실로 가서 창가의커다란 적갈색 의자에 앉아 다시 잠들 수 있을 것 같을 때까지책ㅡ그는 전기를 좋아했다—을 읽었다. - P20

그 시기에 윌리엄은 자신의 실험실로 출근해서 연구를 했다.
그는 기생충학자였고, 뉴욕대학교에서 오랫동안 미생물학을 가르쳤다. 학교에서는 그가 계속 연구실을 쓸 수 있게 해주었고,조교도 한 명 붙여주었다. 수업은 더이상 하지 않는다. 학생들을가르치지 않는다는 것에 대해, 그는 자신이 그 일을 아쉬워하지않는다는 사실에 놀랐고ㅡ최근에 내게 해준 이야기다ㅡ생각해보니 자신은 학생들 앞에 설 때마다 두려움을 느꼈는데, 가르치기를 그만둔 뒤에야 자신이 정말로 그랬다는 걸 깨달았다.
나는 왜 이 말에 마음이 움직이는가? 그건 내가 결코 몰랐기때문일 테고, 윌리엄 역시 전혀 몰랐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그는 이제 매일 아침 열시에 학교로 가서 오후 네시까지 근무하면서, 논문을 쓰거나 연구를 하거나 실험실에서 일하는 조교를 지도했다. 이따금ㅡ일 년에 두 번이었을 것이다ㅡ학술 대회에 참가했고, 같은 분야의 다른 과학자들 앞에서 논문을발표했다. - P24

그러자 사람들이 박수를 보냈고, 나는 베카를 끌어안았다. 크리시가 다가왔고, 딸들은ㅡ내 생각에ㅡ거의 늘 그렇듯 서로를 다정하게 대했다. 두 아이는 항상ㅡ내가보기엔ㅡ거의 부자연스러울 만큼 가깝게 지냈다. 그애들은브루클린에서 서로 두 블록 떨어진 곳에 산다. 나는 그애들의 남편들과 잠시 더 이야기를 나누었다. 크리시의 남편은 금융계에서 일하는데, 윌리엄과 내게는 조금 생소하게 느껴지는 분야이지만, 그건 단지 윌리엄은 과학자고 나는 작가라 우리가 그쪽 세계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모르기 때문이다. 그가 영민한 사람이라는 건 눈빛을 보면 알 수 있다. 한편 베카의 남편은 시인인데,
오 맙소사 가여운 사람, 내 생각에 그는 자기중심적이다. 그 순간윌리엄이 다가왔고, 우리는 누군가가 그를 부르기 전까지 한동안 편안하게 이야기를 나누었다. 자리를 뜨기 전에 그가 허리를숙이고 말했다. "와줘서 고마워, 루시. 당신이 와줘서 좋았어." - P36

유쾌한 거리감과 온화한 표정을 지닌 그는, 가슴속에 묵직한두려움 덩어리를 지닌 내가 다가갈 수 없는 사람 같았다. 하지만실상은 그보다 더 나빴다. 그의 고양된 유쾌함 이면에는 청소년이나 할 법한 불평불만이 깔려 있었고, 영혼에는 못마땅한 기색이 번뜩였다. 아랫입술을 쑥 내밀고 이 사람 저 사람을 탓하는ㅡ그는 나를 탓했고, 나는 종종 그것을 느꼈다―퉁퉁한 소년같았다. 우리의 현재 삶과 아무런 관련이 없는 뭔가로 나를 비난했고, 나를 "여보"라고 부르면서 커피를 내려ㅡ당시에 그는 커피를 전혀 마시지 않았음에도 매일 아침 나를 위해 한 잔을 만들었다ㅡ내 앞에 순교자처럼 내려놓으면서도 나를 비난했다.
그 바보 같은 커피는 그만 됐어, 나는 이따금 외치고 싶었다.
내 커피는 내가 만들어 마실 테니. 하지만 나는 윌리엄이 내민커피를 받고 그의 손을 만지면서 "고마워, 여보" 하고 말했다.
그리고 우리는 또 하루를 시작했다. - P37

불빛을 보고 대학 입학 첫날에 나를 태워다준 진로 상담 교사,내시 선생님을 떠올렸다ㅡ오 나는 그녀를 정말로 사랑했다! 그날 선생님은 나를 태우고 달리다가 갑자기 고속도로에서 차를돌려 쇼핑몰로 들어가더니 내 팔을 톡톡 치며 "내려, 내리자" 하고 말했다. 우리는 차에서 내려 쇼핑몰로 들어갔고, 그녀는 한손을 내 어깨에 올리고 내 눈을 들여다보며 말했다. "십 년 뒤에갚으면 돼, 루시, 알겠지?" 그러고는 내게 옷을 몇 벌 사주었다.
긴소매 티셔츠를 색깔별로 여러 벌 사주고 스커트 두 벌, 블라우스 두 벌을 사주었는데, 그중 한 벌은 예쁜 페전트블라우스였다.
하지만 기억에 가장 많이 남은 것은 선생님이 사준 옷이었고,그것이 그녀를 사랑하게 된 가장 큰 이유였다.  - P40

내가 그때까지 본것 중 가장 예쁜 작은 속옷 뭉치. 그리고 선생님은 내 몸에 맞는청바지도 사주었다. 그리고 여행용 가방도 사주었다! 베이지색바탕에 붉은색 테두리가 둘린 것이었는데, 차로 돌아갔을 때 그녀가 말했다. "좋은 생각이 있어. 여기 안에 전부 담자." 그러더니 차 트렁크 안에 가방을 넣고 연 다음, 옷의 가격표를 하나하나 조심스럽고 부드럽게, 나는 난생처음 보는 아주 작은 가위 -나중에 그게 손톱 손질용 가위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로 잘라냈다. 그리고 우리는 여행 가방 안에 내 물건을 전부 담았다. 그녀가 그렇게 해준 것이다. 내시 선생님이 선생님은 그로부터 십 - P40

년이 안 돼 돌아가셨다. 자동차 사고가 죽음의 원인이었고, 그래서 나는 은혜를 갚을 기회를 잃었으며, 그뒤로 한 번도 그녀를잊은 적이 없다. (캐서린과 함께 쇼핑하러 갈 때마다 나는 내시선생님과의 그날을 생각했다.) 그날 우리가 대학에 도착했을 때,
나는 내시 선생님에게 농담처럼 "선생님이 제 엄마인 것처럼 해도 돼요?" 하고 물었다. 그러자 그녀는 놀란 표정을 짓더니 이내말했다. "그럼, 그래도 되지, 루시!" 내가 선생님을 엄마라고 부르진 않았지만, 그녀가 나와 함께 기숙사로 들어갔을 때 사람들에게 친절히 대해주었으니, 사람들은 선생님이 내 엄마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나는 늘-오, 늘! - 나는 늘 그 여인을 사랑할 것이다. - P41

우리는 캐서린을 사랑했다. 오, 우리는 그녀를 사랑했다. 그녀는 우리 결혼생활의 중심을 차지하고 있는 듯했다. 캐서린은 활기가 넘쳤다. 얼굴은 종종 빛으로 가득했다. 내 대학 친구는 그녀를 처음 만난 뒤 내게 말했다. "캐서린은 내가 만나본 사람 중에서 가장 빨리 호감을 느꼈던 사람이야."
나는 그녀의 집이 놀랄 만큼 멋지다고 생각했다. 그 집은 매사추세츠주 뉴턴의, 나무가 줄지어 심긴 거리에 있었고 근처에는다른 집들도 있었다. 내가 그곳에 처음 갔을 때 햇빛이 부엌 창문을 통해 쏟아져 들어오고 있었고, 하얀 식탁이 놓인 커다란 부엌은 반짝반짝 윤이 나고 깨끗했다.  - P53

조리대는 하얀색이고, 큰 아프리카제비꽃 한송이가 개수대 위쪽 창가 선반에 놓여 있었다.
개수대 위에 아치형으로 돌출된 수도꼭지는 은빛으로 반짝거렸다. 나는 천국에 들어온줄알았다. 캐서린의 집 전체가 깨끗했다. 거실의 나무 바닥은 광채가 흐르는 벌꿀색이었고, 침실에 달린 흰색 커튼은 풀을 먹인 듯했다. 나는 그렇게 살 수 있다는 생각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다. 그런 생각은 아예 떠오르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는 그렇게 살고 있었다! 나는 정말로 그걸 잊을수가 없었다. - P53

그러니 캐서린은 가난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녀를 만나러 갔을때 나는 그 집의 우아한 분위기에 깜짝 놀랐다. 나는 그녀가 사회 계급에서 제법 높은 위치까지 올라갔다고 생각한다. 하지만나는 미국에서의 계급이라는 문제에 대해 한 번도 완전히 이해한 적이 없었다. 그건 내가 밑바닥 출신이고, 그렇게 태어나면그 사실은 절대 당신을 진정으로 떠나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건내가 정말로 그것을, 내 출신을, 가난을 결코 극복하지 못했다는뜻이다. 그게 내가 하려는 말 같다. - P54

예전에 한번은 캐서린이ㅡ윌리엄과 내가 아직 결혼하지 않았을 때였다ㅡ내게 우리 가족에 대해 물어보았고, 나는 입을 열자마자 눈물을 흘렸다. 내가 "말을 못하겠어요" 하고 말하자 그녀가 앉아 있던 의자에서 일어나 다가오더니 귤색 카우치의 내 옆자리에 앉아 두 팔로 나를 안으며 말했다. "오루시." 캐서린은내 팔과 등을 어루만지며 계속 그 말만 했고, 내 얼굴을 자기 목에 갖다댔다. "오 루시." 그날 캐서린은 내게 말했다. "나도 우울해질 때가 있어." 그래서 나는 놀랐다. 내가 아는 누구도, 어떤 어른도 그런 말을 해준적이 없었고 게다가 그녀는 그걸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캐서린은 나를 다시 안아주었다. 나는 늘 그 순간을 기억하고 있다. 그녀의 가슴속에는 그런 다정함이 있었다.
- P59

"나는 크리시의 눈물에 대해 생각했다. 그리고 베카의 눈물에대해서도내가 아이였을 때 부모님은 오빠나 언니나 내가 울면 무조건몹시 화를 냈다. 부모님, 특히 어머니는 우리가 울지 않을 때도자주 화를 냈고, 우리 중 하나가 울면 두 분 다 우리에게 거의 미친 사람처럼 화를 냈다. 전에도 이 이야기를 썼지만 여기서 다시언급하는 건 몇 년 전 내가 아는 한 여자가 해준 이야기 때문이다. 그녀는 어느 수녀가 자기에게 ‘눈물을 흘리는 재능‘이 있다고 말해주었다고 했다. 그런데 그건 베카도 가진 재능이다. 심지어 크리시도 필요할 때는 그 재능을 보인다. 내게 운다는 건 대체로 어려운 일이었다. 내가 하려는 말은, 나도 울지만 울면서아주 많이 두려워한다는 것이다. 윌리엄은 그걸 잘 받아주었다.
내가 정말로 서럽게 울면, 데이비드라면 겁을 먹었겠지만 윌리엄은 그러지 않았다. 하지만 데이비드와 살 때는 한 번도 첫 결혼에서처럼 그렇게 울지는 않았다. 아이처럼 서럽게 흐느끼지는않았다.  - P64

그해에 윌리엄이 내게 책을 읽어주던 게 기억난다. 어린이용책이었지만, 어느 정도 나이를 먹은 아이들을 위한 책이었고, 그가 어렸을 때 좋아하던 책이었다 스스로 자기 삶을 개척한 소년에 대한 내용이었다. 매일 밤 우리가 침대에 누워 있는 동안그가 몇 페이지씩 읽어주었지만, 그러는 동안에도 나는 다른 무엇보다 윌리엄에 대한 욕망에 사로잡혀 있었다. 그가 불을 끄고내 몸에 손을 뻗지 않으면-대부분의 밤에 손을 뻗었다-공포와 상실감을 느꼈다. 나는 그 정도로 그를 원했다. - P72

우리는 윌리엄의 어머니가 회원인 어느 컨트리클럽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우리의 대학 친구 몇 명과 그의 어머니의 친구들이참석한 아주 작은 결혼식이었고, 결혼식이 시작되기 한 시간쯤전에 클럽 위층 어느 방에서 드레스를 입던 중에ㅡ내 부모님과언니 오빠는 참석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결혼한다는 소식을 전한 뒤로 내게 무언가를 보내지도 편지를 쓰지도 않았다ㅡ나는좀 야릇한 기분을 느끼기 시작했다. 설명하기 아주 까다로운데,
이 모든 상황이 완전히 현실 같지는 않다는 그런 느낌과 비슷했고, 아래층으로 내려가 윌리엄 옆에 서서 치안판사를 앞에 두고결혼 서약을 할 때는 거의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윌리엄은 내가결혼식을 무사히 마칠 수 있게 도와주려는 듯 큰 사랑과 다정함 - P72

을 담은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하지만 그 느낌은 사라지지않았다.
결혼식이 끝나고 뒤돌아섰을 때 나는 그의 어머니가 몹시 기뻐하며 손뼉을 치는 것을 보았고, 아마ㅡ확실하지는 않지만ㅡ그 순간 내 어머니가 몹시 보고 싶었던 것 같다. 어쩌면 줄곧 어머니를 보고 싶어했을 수도 있지만, 잘 모르겠다. 하지만 내가방금 묘사한 느낌은 사라지지 않았고, 결혼식이 끝나고 열린 조촐한 피로연에서도 내가 정말로 거기 존재한다는 느낌은 들지않았다. 내가 그 자리로부터 제거된 것처럼, 모든 것이 조금 멀리 있는 듯 느껴졌다. 그게 내가 하려는 말이다. 그리고 그날 밤호텔에서는 평소처럼 남편에게 나를 자유롭게 맡길 수 없었다.
그 느낌이 여전히 내게 머물러 있었다. - P73

진실은 이것이다. 그 느낌은 영영 사라지지 않았다.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았다. 그와의 결혼생활 내내 나는 그것을 느꼈고밀물과 썰물처럼 오갔다―그 느낌은 정말 끔찍했다. 윌리엄에게, 심지어 나 자신에게도 설명할 수 없었지만, 그것은 내 옆에 종종 머물러 있는 은밀하고 조용한 공포였고, 밤에그와 함께 침대에 있을 때도 나는 예전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었다. 나는 윌리엄이 그걸 알지 못하게 하려고 애썼지만 그는 당연히 알았고, 결혼하기 전 그가 내게 손을 뻗지 않은 밤에 느꼈던 - P73

절망감을 생각해보면, 우리가 결혼해서 살 때 그가 어떤 기분이었을지 짐작할 수 있다. 수치스럽고 어리둥절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 문제에 대해 어떻게 해볼 방법도 없어 보였다. 그래서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내가 그것에 대해 말할 수 없었기 때문이고, 윌리엄이 행복을 덜 느끼게 되고 작은 일에서 마음의 문을닫아버렸기 때문이다. 내 눈앞에서 그 일이 일어나는 것이 보였다. 그리고 우리는 그 사실은 덮어둔 채 우리의 삶을 살았다. - P74

어린 시절 나는 언니든 오빠는 거짓말을 하면, 심지어 하지 않았더라도 부모님이 우리가 거짓말을 했다고 생각하면, 우리는입안을 비누로 씻어야 했다. 그것이 그 집에서 우리에게 일어난최악의 일은 아니었고, 그래서 지금 여기서 그 이야기를 하려고한다. 우리는 작은 거실의 바닥에 등을 대고 누웠고, 거짓말을한 사람이 누구건 간에 예를 들어 언니 비키가 거짓말을 했다고 치면-나머지 두 아이, 오빠와 나 중 하나는 언니의 팔을 잡아 누르고 나머지 하나는 언니의 다리를 잡아 눌러야 했다. 그러고 나면 어머니는 부엌에서 접시 닦는 행주를 가져다가, 욕실로가서 그것에 비누를 묻힌 다음 비키가 혀를 내밀면 입안에 행주를 쑤셔넣은 뒤 구역질을 할 때까지 계속 문질렀다.
나이를 먹고 생각하니, 부모님이 이 행위에 나머지 아이들을개입시킨 것은 무의식적으로 머리를 아주 잘 쓴 것 같다. 그 집에서 일어난 모든 일이 그랬듯, 그게 우리를 갈라놓았다. - P81

이걸 한번 이해하려고 해보라.
대형 코르크판이 있고 그 판에 지금껏 살아온 모든 사람의 핀이 꽂혀 있다면, 거기 내 편은 없을 거라고 나는 늘 생각했다.
나는 내가 투명인간이라고 느낀다. 그게 내가 하려는 말이다.
하지만 가장 깊은 수준에서 그렇다는 것이다. 설명하기가 아주어렵다. 그리고 설명하려고 해도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오,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진정으로, 나는 존재하지 않는것 같다. 이렇게 말하는 게 내가 하려는 말에 가장 가까울 것이다. 그러니까 나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건 내가자랄 때 우리집에는 욕실 세면대 위에 높이 걸려 있던 아주 작은거울 말고는 거울이 하나도 없었다는 말처럼 단순한 이야기일수 있다. 나도 내가 무슨 말을 하려는 건지 모르겠다. 아주적인 수준에서 나를 투명인간으로 느낀다는 말 외에는. - P82

그러고도 조앤에 대해서는 그뒤로 석 달 동안 입을 열지 않았다. 그리고 그가 조앤에 대해 말했을 때, 나는 내가죽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다른 여자들에 대해 들을 때도죽을 것 같다는 생각은 이미 했었다. 하지만 이 조앤이라는 여자는 수도 없이 우리집에 찾아왔고, 어느 여름 내가 아파서 병원에입원했을 때 내 딸들을 병실로 데려오기도 했으며, 예전부터 남편의 친구이자 내 친구였다.


내 안에서 튤립 줄기가 툭 꺾였다. 나는 그렇게 느꼈다.
튤립은 꺾인 채로 내 안에 남았고, 결코 다시 자라지 않았다.


나는 그후로 좀더 진실한 글을 쓰기 시작했다. - P98

데이비드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겠다고 했지만, 이 이야기를읽는 당신도 이 사실은 알아야 할 것 같아 말하려 한다.
윌리엄 말고는 내게 집이 없었다고 말할 때 그건 사실이다. 데이비드는 이 얘기는 이미 했지만 하시드파 유대인이었고,
시카고 근교에서 가난하게 자랐다. 하지만 그는 열아홉살 때 그공동체를 떠났고 추방된 채 살았으며, 거의 사십 년 뒤 누이가연락해올 때까지 가족과 아무런 접촉이 없었다. 당신이 알아야할 것은, 그와 나 사이에 존재하는 공통점이 그것이었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우리 둘다 자라면서 바깥세상의 문화를 접하지못했다. 우리 둘 다 자랄 때 집에 텔레비전이 없었다. 베트남전쟁에 대해서도 모호하게만 알다가 나중에 스스로 깨우쳤다. 우리가 성장한 시기에 유행한 노래를 알았던 적도 없었고ㅡ들어 - P100

본 적이 없었으므로ㅡ더 자랄 때까지는 영화를 본 적도 없었으며, 일반적으로 쓰이는 관용구를 알았던 적도 없었다. 그렇게 바깥세상으로부터 고립된 채 자란다는 게 어떤 것인지 말로 설명하기는 어렵다. 그래서 우리는 서로에게 집이 되었다. 하지만 우리는ㅡ둘 다 그렇게 느꼈다ㅡ스스로가 뉴욕시티의 전화선 위에 내려앉은 새들 같다고 느꼈다.
이 남자에 대해 한 가지만 더 말하겠다!
데이비드는 키가 작았고, 어린 시절 사고로 한쪽 골반이 반대쪽보다 더 올라가 있어서 심하게 절뚝거렸고 아주 천천히 걸었다. 그리고 그는ㅡ키가 크지 않았기에ㅡ약간 과체중이었다. 내가 말하고 싶은 건 그가 윌리엄과는 ㅡ거의ㅡ이보다 더 다를 수는 없다 싶을 만큼 딴판으로 생겼다는 것이다. 그리고 윌리엄과결혼했을 때 내게 일어난 반응이 데이비드와는 전혀 일어나지않았다. 내가 하려는 말은 데이비드의 몸이 늘 내게 엄청난 위로가 되어주었다는 말이다. 맙소사, 그 남자는 내게 위로의 존재였다. - P101

내 어머니와 관련된 이런 이야기가 있다.

어머니에 대한 글은 이미 썼고, 어머니에 대해서라면 정말로뭐든 더는 쓰고 싶지 않다. 하지만 이 이야기를 읽으려면 몇 가지 알 필요가 있을 것 같다. 몇 가지란 이것이다. 어머니가 자식들에게 폭력 이외의 방식으로 접촉한 기억은 전혀 없다. 어머니가 사랑한다. 루시, 하고 말한 것을 들은 기억도 없다.  - P105

내 생일이 얼마 남지 않았을 때 캐서린은 내게 뭘 갖고 싶은지물었다. 나는 서점 상품권을 갖고 싶다고 말했다. 서점으로 가서책을 몇 권 산다고 생각하면 이루 말할 수 없이 마음이 들떴다.
내 생일에 그녀는 나를 바깥 차고로 데려가 골프채가 들어 있는가방을 보여주었다. 그녀의 얼굴이 환하게 빛났다. "생일 축하한다." 그녀가 두 손을 마주치며 말했다. "네 골프 세트야." - P109

그때 이후로 나는 내 일 때문에 세상을 돌아다녔고ㅡ책이 출간되자 외국 출판사들이 나를 초대했고 세상 곳곳에서 페스티벌이열렸다 그러니까 그때 이후 아주 많은 곳을 돌아다녔고, 비행기일등석에 탔는데, 그 자리에 앉으면 칫솔과 치약과 안대가 들어있는 작은 키트를 준다. 지금은 그 모든 것을 숱하게 경험했다.
삶이란 얼마나 신기한가. - P117

우리 사회에는 이럴 때 엄마들이 강하게 밀어붙이면서 의사누구? 엄마가 같이 갈까? 정확히 문제가 뭔데? 하고 말하는 문화가 있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내 문화에선 그렇지 않다. 나는청교도 가정에서 자랐고, 부모님 두분 다 청교도 집안 출신이며ㅡ그분들은 그걸 자랑스러워했다ㅡ우리는 서로 그런 식으로대화하지 않았다. 내가 어린 시절에 살던 집에서는 대화 자체가많지 않았다.
하지만 헤어질 때 나는 늘 그러듯 딸들에게 키스했고, 아이들과 헤어질 때는 매번 정말 마음이 아프다. 이번에는 심장이 약간더 많이 아팠다.
행운을 빌어요! 행운을 빌어요!" 아이들이 길 건너 계단을 내려가 지하철역 안으로 들어가면서 내게 소리쳤다. "연락 주세요.
소식 알려주세요! 안녕, 엄마! 안녕, 엄마!" - P119

나는 윌리엄과 라과디아공항에서 만났는데, 멀리서부터 그를알아보았고, 그의 카키 바지가 너무 짧다고 생각했다. 그 사실에마음이 조금 아팠다. 그는 로퍼를 신었고, 양말은 파란색으로진청도 아니고 연청도 아니었는데, 바지 밑단 아래로 몇 인치가드러나 보였다. 오 윌리엄, 나는 생각했다. 오윌리엄!
그는 몹시 지쳐 보였다. 눈 주위에 다크서클이 드리워 있었다.
그가 말했다. "안녕, 버튼." 그러더니 내옆에 앉았다. 바퀴 달린작은 여행용 가방을 가지고 왔는데, 두 가지 색조의 짙은 갈색이었다. 내가 알기로 비싼 것이었다. 그는 나의 바퀴 달린 강렬한보라색 가방을 쳐다보았고, 이어 말했다. "정말로 이런 걸?"
"오 그만." 내가 말했다. "이건 결코 잃어버릴 일이 없어." - P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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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내 침대 발치에 앉은 지 사흘째가 되던 날, 나는 엄마의 얼굴에서 피곤한 기색을 읽을 수 있었다. 나는 엄마가 가지않기를 바랐지만, 엄마는 간이침대를 가져다주겠다는 간호사들의 제안을 받아들일 수 없는 것 같았고, 나는 엄마가 곧 떠날 거란 예감이 들었다. 종종 그러듯 나는 미리부터 그 순간을 두려워하기 시작했다. 내 기억에 미리부터 두려움을 느낀 첫번째 사건은 어린 시절 치과에 갔던 일과 관련이 있었다. 우리는 어렸을 때 치과 치료를 거의 받지 못했고, 우리의 치아는 유전적으로
‘충치가 잘 생기는 이‘로 여겨져, 당연하게도 치과에 가는 것은두려움 가득한 일이 되었다. 치과의사는 무료로 치료해주었지만 시간이나 태도 면에서 다 인색했고 우리라는 존재자체를 싫 - P89

어하는 것 같아서, 나는 치과에 가야 한다는 말을 듣는 그 순간부터 내내 걱정에서 헤어나오지 못했다. 내가 치과에 자주 간 건아니었다. 하지만 나는 일찌감치 이 사실을 깨달았다. 고통을 두배로 겪는 건 시간 낭비라는 것. 내가 이 이야기를 꺼낸 건 오로지, 마음은 원해도 의지로 할 수 없는 일이 얼마나 많은지 보여주기 위해서다. - P90

나는 애써 울음을 참느라 한동안 간호사실 쪽에 있는 의자에앉아 있어야 했다. 치통이 옆에서 나를 감싸안아주었고, 그렇게해준 그녀를 나는 지금도 사랑한다. 가끔 나는 테네시 윌리엄스가 블랑시 뒤부아의 이런 대사를 썼다는 사실에 슬퍼진다. "나는늘 낯선 사람들의 친절에 의지하며 살았어요." 많은 사람들이 낯선 사람들의 친절을 통해 여러 번 구원을 받지만, 시간이 지나면그것도 범퍼스티커처럼 진부해진다. 나는 그 사실이 슬프다. 아름답고 진실한 표현도 너무 자주 쓰면 범퍼스티커처럼 피상적으로 들린다는 사실이. - P98

나는 이런 사실을 깨달았다. 사람은 지치게 마련이라는 것을. 마음, 영혼, 혹은 몸이 아닌 뭔가에 우리가 어떤 다른 이름을 붙이건 그것은 지치게 마련이다. 그리고 나-는 이렇게 결론지었다. 그것이야말로 대체로, 일반적으로ㅡ자연이 우리를 도와주는 것이라고. 나는 지쳐가고 있었다. 내생각에 잘은 모르지만 그 또한 지쳐가고 있었다. - P100

뉴욕의 피프스 애비뉴에는 많은 계단과 함께 큼직하게 자리잡은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이 있고, 그 1층에는 조각공원이라고 부르는 공간이 있는데, 나는 이곳에 설치된 이 특별한 조각상을 남편과 함께, 그리고 아이들이 커가면서는 아이들과 함께 숱하게지나쳤을 것이다. 나는 오로지 아이들에게 뭘 먹지만 생각했고, 볼거리가 이렇게 많은 이런 성격의 미술관에서 다른 사람은뭘 하는지에 대해서는 정말이지 한 번도 제대로 생각해보지 않았다. 내가 조각상을 본 것은 한창 이런 필요와 걱정에 빠져 지내던 동안이었다. 그러니 내가 걸음을 멈추고 그 조각상을 쳐다보며 오, 하는 소리를 내뱉은 것은 최근-지난 몇 년 동안-그조각상에 찬란한 빛의 조명이 쏟아졌을 때였다. - P102

그 조각상은 대리석으로 만들어졌는데, 한 남자 주변에 그의아이들이 있었고, 그의 얼굴에는 절박한 표정이 떠올라 있었다.
아이들은 그의 발치에서 그를 붙잡고 애원하는 것 같았고, 그는두 손으로 자신의 입을 양옆으로 잡아당기며 고뇌의 표정을 지은 채 세상을 응시하고 있었지만, 그의 아이들은 그만 쳐다보고있었다. 드디어 이 조각상이 눈에 들어온 순간 나는 오, 하고 속으로 외쳤다.
설명을 읽으니, 그는 감옥에서 굶어 죽어가고 있고, 아이들은아버지에게 자기들을 먹어달라고 애원하고 있는 것이었다. 이아이들이 바라는 것은 오직 하나, 아버지의 고통이 사라지는 것뿐이었다. 아이들은 그에게ㅡ오, 행복하게, 행복하게 자기들을 먹으라고 내주고 있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생각했다. 그렇다면 그도 알고 있겠구나, 하고.
그 조각가 말이다. 그는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그 조각상이 표현한 것을 글로 쓴 그 시인도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 또한 알고 있었던 것이다. - P103

불쌍한 인간.
그 말은 나중에야, 안내원이 그 조각상이 위층에 있다고 말해주었을 때 내 반응이 어떠했는지를 생각해보았을 때에야 떠올랐다. 불쌍한 인간. 나는 생각했다. 우리는 원래 그렇게 작게 태어난 존재가 아니다. 불쌍한 인간-그 말이 머릿속에서 자꾸만 맴돌았다ㅡ우린 모두 불쌍한 인간이다. - P104

앞에서도 한 말이지만, 우리가 다른 사람 혹은 다른 집단보다스스로를 더 우월하게 느끼기 위해 어떤방법을 찾아내는지가내게는 흥미롭다. 그런 일은 어디에서나 언제나 일어난다. 그것을 뭐라고 부르건, 나는 그것이 내리누를 다른 누군가를 찾아야하는 이런 필요성이 우리 인간을 구성하는 가장 저속한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 P111

우리는 언덕 꼭대기에 있는 오래된 건물에서 수업을 들었는데, 날씨는 따뜻했고 창문은 열려 있었다. 세라 페인은 거의 시작하자마자 바로 지치는 것 같았다. 피로한 기색이 얼굴에 고스란히 드러났다. 한 시간쯤 지났을 때 그녀의 얼굴은 공기가 충분히 차갑지 않아 모양이 망가진 흰색 점토처럼 허물어져 보였다.
그녀의 얼굴은 피로 때문에 이상한 모양으로 일그러졌고, 세 시간이 다 끝나갈 즈음에는 더욱 심해져 하얀 점토 얼굴은 거의 파르르 떨리는 듯 보였다. 그 강의가 그녀의 진을 완전히 빼놓은것 같았다는 게, 내가 하려는 이야기다. 그녀의 얼굴이 피로로유린되었다. 날마다 그녀는 조금 반짝거리는 얼굴로 수업을 시작했지만 몇 분 지나지 않아 피로가 그녀를 엄습했다. 나는 그전에도, 그 이후에도 피곤한 기색이 그토록 역력히 드러난 얼굴은본 적이 없는 것 같다. - P121

그리고 그런 순간이 내가 또 한번 그때는 왜 엄마한테 말하지못했지? 하고 생각하게 이걸 기록하면서 되는 순간이다. 엄마. 내가 배워야 할 단어는 우리가 집이라고 불렀던 바로 그거지 같은 차고에서 다 배웠어요. 왜 나는 그렇게 말하지 못했던 걸까? 그때 내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던 건, 그게 내가 평생 해왔던방식이었기 때문인 것 같다. 누군가가 그 자신은 인식하지 못한채 스스로 망신거리가 되었을 때 그 사람의 실수를 덮어주는 것.
내가 그렇게 하는 이유는, 내 생각에, 많은 순간에 그런 사람이나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 지금도 나 스스로 망신거리가되었음이 희미하게 인식되는 순간이면 어김없이 어린 시절의 그느낌이 되살아난다. 다른 것으로는 결코 대체될 수 없는, 이 세상에 대한 앎을 구성하는 엄청나게 큰 조각들이 빠져 있는 느낌.
하지만 어쨌거나ㅡ나는 다른 사람들에게 그렇게 해주고, 심지어 다른 사람들이 내게 그렇게 해준다고 느낄 때에도 그렇게 한다. 그러니 그날 엄마에 대해서도 그렇게 했다고 생각할 뿐이다.
다른 사람들이었다면 일어나 앉아, 엄마, 정말 기억 안 나요? 하고 말하지 않았을까? - P129

고양이 때문에 깜짝 놀란 세라 페인에게 비열한 말을한 그 여자 같은 몰인정한 사람들 말고. 그들의 대답은 사려 깊고, 거의 항상 똑같았다. 당신의 어머니가 어떤 기억을 가지고있는지는 저도 모르겠네요. 나는 이런 전문가들이 좋다. 그들은예의를 아는 사람들이고, 나도 이제는 진실한 말을 들으면 그렇다는 것을 알 것 같기 때문이다. 그들은 우리 엄마가 어떤 기억을 지니고 있었는지 모른다.
나도 엄마가 어떤 기억을 지니고 있었는지 모른다. - P130

세라 페인이 우리에게 평가 없이 빈 종이와 마주하라고 말했던 그날, 그녀는 우리에게 다음과 같은 사실을 일깨워주었다. 다른 사람을 완전히 이해한다는 것, 그것이 어떤 것인지 우리는 절대 알지 못하며, 앞으로도 절대 알 수 없을 것임을 단순한 생각같지만, 나는 나이를 먹을수록 그녀가 그 말을 할 수밖에 없었던것을 점점 더 잘 이해하게 되었다. 우리는 생각한다. 늘 생각한다. 우리가 누군가를 얕보게 되는 것은 무엇 때문인지, 우리 자신을 그 사람보다 우월하다고 느끼는 것은 무엇 때문인지를. 그날 밤 방금 서술한 내용보다 이 부분이 더 잘 기억난다-어둠속에서 아빠가 오빠 옆에 누워 오빠를 아기 안듯 안아주었다고,
오빠를 무릎에 올리고 가만가만 흔들어주었다고 나는 말하려 한 - P138

다. 나는 어느 눈물이 누구의 것이고 어느 중얼거림이 누구의 것이었는지 분간할 수 없었다. - P139

세라 페인이 말했다. 자신의 글에 약점이 보이면 독자가 알아내기 전에 정면으로 맞서서 결연히 고쳐야 해요. 자신의 권위가서는 게 그 지점이에요. 가르친다는 행위에서 오는 피로가 얼굴에 가득 내려앉았던 그 강의시간 중 하나에서 그녀가 말했다.
사람들은 우리 엄마가 사랑한다는 말을 절대 할 수 없을 거라는사실을 이해하지 못할 것 같다.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하겠지만,
그래도 괜찮았다. - P157

그때 이런 일이 있었다. 내 침대가 세워진 곳에서 복도 건너편 병실이바라보였는데, 조금 열린 문에 그 끔찍한 노란 스티커가 붙어 있었던 것이다. 검은 눈동자, 검은 머리칼의 한 남자가 침대에 누워 있는 것이 보였고, 내 느낌에 그는 내게서 한시도 눈을 떼지않는 것 같았다. 나는 그가 죽어간다는 사실이 끔찍하게 느껴졌고, 그렇게 죽어가는 건 끔찍한 죽음임을 알고 있었다. 나는 죽는 게 두려웠지만, 나는 그가 걸린 병에 걸리지 않았고, 그 사실은 그도 알았을 것이다 내가 그 병에 걸린 환자였다면 병원에서 나를 그렇게 오래 복도에 방치해두었을 리가 없었기 때문이다. 나는 그 남자의 시선에서 내게 뭔가를 간절히 부탁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나는 시선을 돌려서 그의 프라이버시를 지켜주려했지만 내가 힐끔 쳐다볼 때마다 그는 여전히 나를 응시하고 있었다. 나는 아직도 가끔 침대에 누워 있던 그 얼굴의 검은 눈동자를 생각한다. 내 기억에는 그 눈동자가 절망의 눈빛으로 뭔가 - P162

를 간청하며 나를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그때 이후로 내게도 임종을 앞둔 사람들의 곁을 지킨 순간들이 있었고-나이가 들면 자연스러운 일이다-나는 육신의 최후의 빛이 꺼져갈 때 눈동자가 불붙듯 타오른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어떤 의미에서는그 남자가 그날 내게 도움을 주었다. 그의 눈동자가 말했다. 나는 시선을 돌리지 않을 거야. 나는 그가 죽음이, 엄마가 나를 떠나는 것이 두려웠다. 하지만 그는 절대 시선을 돌리지 않았다. - P163

그는 우리가 이렇게 같이 있는 게 참 좋아 보인다는 그 비슷한 말을 했고, 이유는 몰랐지만 나는 그 말이 내 머릿속에서팅 소리를 내며 튕겨나가는 느낌이 들었던 게 기억난다. 어느 누구도 시간이 더 지나기 전까지는 그 이유를 알지 못한다.
남편이 그날 말고도 나를 보러 왔었다는 건 나도 안다. 하지만내가 기억하는 건 그날이라 내가 쓰는 것도 그날에 대해서다. 이건 내 결혼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그 이야기는 할 수가 없다.
우리를 지나쳤던 숱한지와풀밭과 신선한 공기와 눅눅한 공기. 나는 그런 순간들을 쥐고 있을 수도 없지만 다른 사람들 보라고 펼쳐 보일 수도 없다. 하지만 이 말은 할 수 있다. 엄마가 옳았다. 내 결혼에 문제가 생겼다. 내 딸들이 각각 열아홉, 스무 살이 되었을 때 나는 아이들의 아버지를 떠났고, 우리는 둘 다 재혼했다. 우리가 결혼해서 같이 살 때보다 내가 그를 더 사랑한다. - P171

어쩌나, 제러미 얘길 들었군요. 그녀는 그것이 남자들에게 일어나는 아주 나쁘고 끔찍한 일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여자들에게도요, 하고 덧붙였다. 그녀는 내가 우는 동안 내 옆에 앉아 있었다.
나는 병원에서 본 그 남자에 대해 자주ㅡ정말로 자주ㅡ생각한다. 엄마가 집으로 돌아간 그날, 내가 누운 침대가 그 남자의 병실 밖 복도에 세워져 있던 그날, 문에 노란 스티커가 붙은 병실에 누워 있던 그 남자. 그가 애원하듯, 절망의 눈빛으로, 갈망하는 검은 눈동자로 나를 쳐다보던 것을. 내 시선을 돌리지 못하게 하면서. 그 남자가 제러미였을 수도 있었다. 나는 여러 번 생각했다. 찾아볼 거라고. 공식 기록 어딘가에 틀림없이 남아 있을거라고, 그가 죽은 날짜와 죽은 장소가. 하지만 정말로 찾아본적은 없었다. - P178

세라 페인이 신의 마음처럼 활짝 열린 마음으로 빈 종이와 마주하는 것에 대해 말한 건 아마 그다음날이었을 것이다.

나중에, 내 첫 책이 출판된 뒤에 나는 어느 의사를 찾아갔는데, 그녀는 내가 만나본 의사 중에서 가장 자애로운 사람이었다.
나는 종이에 그때 그 수강생이 뉴햄프셔 출신의 재니 탬플턴이라는 사람에 대해 말했던 것을 썼다. 그리고 내가 어렸을 때 우리집에서 일어났던 일을 썼다. 내 결혼생활에서 알게 된 것을 썼다. 내가 말로는 할 수 없었던 것을 썼다. 그녀는 그걸 전부 읽은뒤 말했다. 고마워요, 루시. 괜찮을 거예요. - P187

내 책은 좋은 평가를 받았고, 나는 갑자기 돌아다닐 일이 많아졌다. 사람들이 말했다. 얼마나 굉장한 일이에요-자고 일어났더니 유명해진 거잖아요! 나는 전국방송 아침 뉴스에도 나왔다.
내 홍보 담당자가 말했다. 행복한 사람처럼 행동해요. 당신은 출근하려고 옷을 차려입어야 하는 여자들이 되고 싶어하는 그런사람이니 그 프로그램에 나가면 행복한 사람처럼 행동해요. 나는 그 홍보 담당자가 처음부터 마음에 들었다. 그녀에게는 권위가 있었다. 그 뉴스는 뉴욕에서 촬영했고, 나는 사람들이 내가그럴 거라고 예상했던 것만큼 겁을 먹지 않았다. 두려움이란 건참 재미있는 것이다. 나는 옷깃에 마이크를 달고 의자에 앉아 창밖을 내다보았다. 노란 택시가 보였고, 그래서 생각했다. 나는지금 뉴욕에 있어, 나는 뉴욕을 사랑해, 여긴 내 집이야. 하지만나는 다른 도시들에도 가야 했는데, 그때는 거의 항상 겁을 먹었다. 호텔방은 외로운 장소다. 오, 제길, 거긴 외로운 장소다. - P195

남편과 헤어지고 여러 해가 지났을 때, 나는 72번가를 걸어 이스트 강까지 산책을 하러 다녔다. 그 길을 따라가면 이스트 강이 바로 나오는데, 나는 거기서 그 강을 바라보며 오래전에 우리가 함께 구경하러 간 야구 경기를 떠올렸고, 내 결혼생활의 다른기억들에서는 느껴지지 않는 종류의 행복감에 젖어들었다. 그런 행복한 기억들이 내 마음을 아프게 한다는 것, 그게 내가 하고 싶은 말이다. 하지만 양키스 경기에 대한 기억은 그렇지 않았다. 그 기억을 떠올리면 나는 전남편과 뉴욕에 대한 사랑으로 가슴이 부푼다. 나는 지금도 양키스의 팬이지만, 내가 야구장에 다시 갈 일은 없다는 걸 알고 있다. 그것은 다른 삶이었다. - P203

나는 작가가 되려면 냉혹해야 한다는 제러미의 말에 대해 생각한다. 또한 내가 늘 글을 쓰고 있고 시간이 충분하지 않다며오빠나 언니, 부모님을 만나러 가지 않았던 것에 대해서도 생각한다. (하지만 가고 싶지 않아 안 간 것이기도 했다.) 시간은 늘충분하지 않았고, 나중에는 내가 결혼생활에 안주하면 또다른책, 내가 정말로 쓰고 싶은 책은 쓸 수 없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그렇게 한 데에는 그런 이유도 있었다. 하지만 나는 진정, 냉혹함은 나 자신을 붙잡고 놓지 않는 것에서, 그리고 이렇게 말하는 것에서 나온다고 생각한다. 이게 나야, 나는 내가 견딜 수 없는 곳-일리노이 주 앰개시에는 가지 않을 거고, 내가 원하지않는 결혼생활은 하지 않을 거고, 나 자신을 움켜잡고 인생을 헤 - P204

치며 앞으로, 눈먼 박쥐처럼 그렇게 계속 나아갈 거야! 라고. 이것이 그 냉혹함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엄마는 그날 병원에서 내가 오빠나 언니와는 다르다고 말했다. "지금 네 인생을 봐. 너는 묵묵히 네 길을 가서………… 원하는걸 이뤘잖아." 그 말은 아마 내가 이미 냉혹했다는 의미였을 것이다. 그 말은 아마 진심이었겠지만, 엄마가 진짜 무슨 뜻으로한 말인지는 지금도 알지 못한다. - P205

아무도 너희를 돌봐주지 않는다는 사실에 내 가슴은 찢어질 듯 아팠어! 하지만 나는 그 말을 하지 않는다. 해서도 안 된다. 내가 아이들의 아버지를 떠난 사람이기 때문이다. 물론 그당시에는 남편만 떠나는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건 어리석은 생각이었다. 아이들을 떠난 것이기도 했고, 집을 떠난 것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내 생각은 내 것이 되었다. 혹은 남편이 아닌다른 사람들과 나누는 것이 되었다. 나는 마음이 움직일 수 있는사람이었고, 움직였다. - P211

그 시절에 내 딸들이 느꼈을 분노란! 잊으려고 애쓰는 순간도있지만, 나는 결코 잊지 못할 것이다. 아이들이 결코 잊지 못할그것이 무엇인지가 걱정된다. - P212

그 시절에 마음이 더 여린 딸 베카가 내게 말했다. "엄마, 엄마가 소설을 쓸 때는 그 내용을 다시 쓸 수도 있겠지만, 누군가와이십 년을 살았다면, 그리고 그것도 소설이라면, 그 소설은 다른사람과 절대 다시 쓸 수 없어요!"
그애는 그걸 어떻게 알았을까, 내 소중하고 사랑스러운 아이는? 그토록 어린 나이였음에도 그애는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베카가 그 말을 했을 때 나는 그애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말했다. "네 말이 맞아." - P213

또 가끔 생각하는 건, 내가 세라 페인을 옷가게에서 만났을 때그녀가 자기 이름을 제대로 말하지 못했던 사실이다. 그녀가 아직 뉴욕에 사는지 나는 전혀 알지 못한다. 그뒤로 그녀는 새 책을 내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그녀가 가르치는 일을 하면서 몹시지쳐가던 것을 생각한다. 그리고 우리 모두에게 이야기는 하나뿐이라던 그녀의 말을 생각하지만, 나는 아직 그녀의 이야기가무엇이었는지 혹은 무엇인지 모른다고 생각한다. 나는 그녀가쓴 책들을 좋아한다. 하지만 그녀가 뭔가를 피해 비켜서 있다는느낌을 떨칠 수가 없다. - P215

나는 요즘 혼자 집에 있을 때, 자주는 아니지만 이따금 조용히소리 내어 말해본다. "엄마!" 그게 뭔지 나는 모른다 내가 내엄마를 부르는 것인지, 아니면 그날 두번째 비행기가 두번째 빌딩을 들이받는 것을 본 베카가 나를 부르는 소리를 듣고 있는 것인지. 내 생각엔 둘 다인 것 같다.
하지만 이건 내 이야기이다.
그럼에도 이건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몰라의 이야기이자 내 대학 룸메이트의 이야기이고, 어쩌면 프리티 나이슬리 걸즈의 이야기일 수도 있다. 엄마. 엄마!
하지만 이 이야기는 내 것이다. 이 이야기만큼은 그리고 내이름은 루시 바턴이다. - P216

얼마 전에 크리시가 내 지금의 남편에 대해 말했다. "아저씨가좋아요, 엄마. 하지만 아저씨가 잠을 자다 죽고 새엄마도 죽어서엄마와 아빠가 다시 합치면 좋겠어요." 나는 아이의 정수리에 키스한 뒤 생각했다. 내가 내 아이에게 이런 짓을 했구나.
내가 내 아이들이 느끼는 상처를 아느냐고? 나는 안다고 생각하지만, 아이들은 그렇지 않다고 주장할지 모른다. 하지만 나는우리가 아이였을 때 품게 되는 아픔에 대해, 그 아픔이 우리를평생 따라다니며 너무 커서 울음조차 나오지 않는 그런 갈망을남겨놓는다는 사실에 대해 내가 아주 잘 안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그것을 꼭 끌어안는다. 펄떡거리는 심장이 한 번씩 발작을 일으킬 때마다 끌어안는다. 이건 내 거야, 이건 내 거야, 이건 내 거야. - P217

요즘 나는 가을에 우리의 작은 집을 둘러싼 농장에서 해가 지던 장면을 이따금 떠올린다. 어디를 봐도 지평선이 보여, 내가한 바퀴 빙 돌면 지평선도 한 바퀴 원을 그렸다. 해는 등뒤에서지고, 눈앞에 펼쳐진 하늘은 그 아름다운 변신을 멈출 수 없다는듯 은은한 분홍빛을 자아내다 슬며시 푸른 기운을 띤다. 이윽고지는 해에 가장 가까운 땅이 한 줄 오렌지색 선을 그리는 지평선을 배경으로 어두워지다 거의 컴컴해진다. 하지만 돌아서면 땅은 여전히 부드러운 형체를 희미하게 드러내며 몇 그루 나무와,
흙을 갈아엎고 간작 식물을 심은 고요한 들판을 보여주고, 하늘 - P218

은 머뭇거리다, 머뭇거리다 마침내 완전히 어두워진다. 그런 순간에는 영혼도 조용히 지켜볼 것만 같다.
모든 생은 내게 감동을 준다. - P219

기억의 자리들, 공백의 자리들

옮긴이의 말


기억은 자유의지를 가졌다. 순서를 바꾸고 덧칠을 한다. 가끔견딜 수 없는 것은 망각 속으로 보내버린다. 일부러인 듯 흐릿하게 만들어버려 확신할 수 없게 만든다. 하나의 상황을 놓고도 나와 당신의 기억은 다르다. 완성하지 않고 결론 내지 않아 영원히미완의 미결의 상태로 남겨버린다.
기억은 고집스럽다. 사건 자체는 희미해져도, 그 사건들이 남긴 감정은 고집스럽다. 예컨대 어머니가 실제로 내 이마에 키스를 해주었는지 해주지 않았는지 모르지만, 나를 줄곧 붙들고 있는 감정은 ‘어머니가 한 번도 키스해주지 않은 것‘에서 비롯한그 결핍의 감정이다.
기억은 성장한다. 기억은 시간의 세례를 거친 나의 눈으로 시 - P223

간의 변화를 겪은 당사자들을 더 넓은 시야에서 바라보게 해준다. 그때 그런 것은 아, 그래서 그랬겠구나. 하지만 그 성장은 거의 혼자 크는 성장이라, ‘그랬겠다는 것은 나의 관점이지 우리의, 혹은 그들의 관점은 아니다.
그래서 기억은 매혹적이면서도 참 이기적이다. 개인적인 고백을 하자면, 나는 그러저러한 이유로 ‘기억‘이라는 단어에 천착하는 편이고 ‘기억‘에 바탕을 둔 문학작품이나 영화들에 늘 끌렸다.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의 『내 이름은 루시 바턴』 번역을 맡으면서 더 마음이 갔던 것도 이 소설이 기억에 바탕을 두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제는 꽤 지난 일이 되었지만, 내가 구 주 가까이 병원에 입원해야 했던 때가 있었다."  - P224

첫 문장부터 이 이야기는 ‘기억‘의 조각들을 모은 것임을 선언한다. 이어지는 닷새 동안 어머니와 딸의 대화는 그 기억에서도 더 지난 과거의 기억들을 끄집어낸다.
하긴 우리의 현재는 찰나의 순간에 과거가 되어버리니 우리의삶은 기억 안에 기억, 그 기억 안에 또다른 기억, 그 또다른 기억안에 또다른 기억을 품고 있는 것이 아니던가. 그런 기억, 그런불확실한 과거는 과거와 현재의 경계를 짓기 어려운 우리의 시간 안에 도사린 채 우리를 끊임없이 흔든다.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의 이 다섯번째 소설은 전작들과는 달 - P224

리 일인칭 시점의 글이다. 문학작품들을 읽다보면 어떤 작가들은 삼인칭으로 출발한 뒤에야 일인칭으로 옮겨갈 수 있게 되는것 같고, 어떤 작가들(예컨대 무라카미 하루키)은 일인칭으로 출발한 뒤에야 삼인칭으로 옮겨갈 수 있게 되는 것 같은데,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는 삼인칭 시점에서 출발한 작가다. 
<가디언>과의 인터뷰에서 그녀는 이 작품을 쓸 때 자기 마음을 "너는 지금일인칭으로 쓰고 있어. 그것도 작가로 만들어서"라고 표현했다.
‘기억‘을 가장 섬세하고 유려하게 다루는 방법, 기억에 의한 우리의 흔들림을 가장 잘 담아내는 방법은 어쩌면 일인칭 시점, 그리고 작가가 주인공일 때가 아닐까 싶기도 하다.
- P225

그 기억의 파편들을 모으면 뭐가 될까. ‘부분의 합은 전체보다크다‘는 이론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우리는 기억의 합이 기억 그자체보다 얼마나 더 큰 것이 될 수 있는지를 안다. 그것은 한 개인의 삶이 되고, 한세대, 여러 세대의 삶이 되고, 한 사회의 역사가 된다.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는 그 기억의 조각들을 모아 수증기를 모은 듯 마르지 않았으면서 흠뻑 젖지도 않은, 감정이 부각되지 않아 더더욱 아련한 느낌의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이 짧은 분량의 소설에서 다루는 이야기 전체는 그 기억들뿐 아니라,
우리의 상상력이 개입되는 공백의 자리들을 포함하여, 그리고그 각각을 잇는 선들을 아울러서 참으로 큰 것이 된다. 덧붙이면 - P225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가 그려내는 선들이 굉장히 섬세해서 언뜻 개인적인 이야기로 읽히기 쉽지만, 그 섬세한 선들에는 역사와 변화하는 사회와 그 사회 속에서의 관계들이 무수히 잇닿아있어 찬찬히 들여다보면 우리가 보게 되는 풍경 역시 무한히 넓어진다.
이 작품에서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가 그려낸 선들 중 그 출발점이자 가장 자세히 들춰지는 관계는 엄마와 딸의 관계인 것같다. 하지만 그야말로 출발점이지 전체는 아니다. 루시 바턴의 선은 아버지에게도, 거의 연락을 끊고 지냈지만 마지막 순간에 오히려 조금은 더 가까워진 오빠와 언니에게도 닿아 있다.  - P226

그렇게 한 가족의 이야기가 된다. 입원한 딸에게 안부를 전했을지조차 알 수 없는, 자신의 불안함을 끊임없이 가족들에게 풀어냈을 것으로 짐작되는 독자들이 그 마지막 임종의 순간까지 지켜보게 되는 아버지의 비중이 지면상으로는 그리 크지 않지만 더없이 무겁다. 어려서나 나이들어서나 결코 가깝다 말할 수 없는언니와 오빠의 무게 또한 마찬가지로 무겁다. 루시 바턴은 그들의 존재, 그들과 함께 보낸 과거의 시간들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우리 다섯 식구가 정말로 건강하지 않은 가족으로 살아왔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고, 그러다 어느 순간 나는 우리의 뿌리가 서로의 가슴을 얼마나 끈질기게 칭칭 감고 있는지 알 - P226

게 되었다. 남편이 말했다. 하지만 당신은 가족들을 좋아하지도않았잖아.‘ 그뒤로 나는 더더욱 두려워졌다."
한편 작가로 성공한 루시는 이렇게 생각한다. "나는 뉴욕을 사랑해, 여긴 내 집이야. 하지만 나는 다른 도시들에도 가야 했는데, 그때는 거의 항상 겁을 먹었다. 호텔방은 외로운 장소다. 오,
제길, 거긴 외로운 장소다." 그러니 가족은 절대적으로 필요하지만, 절대적으로 부담스러운 것이다. 절대적으로 떠나고 싶은 것이지만, 절대적으로 그리운 것이다. 루시 바턴은 책과 숙제를통해 이뤄낸 성과들을 통해) 떠날 수 있었기에 떠났지만, 떠남은달아남이 되기도 버려짐이 되기도 한다. - P227

이런 양가적인 상태. 그런 상태가 만들어내는 양가의 감정들.
떠나 있지만 떠나 있지 않은 상태(루시는 가족을 머리 위에 떠있는 구조물로 느꼈다. 속마음을 솔직히 말할 수도 말하지 않을수도 없는 상태("엄마, 내가 단편 두 편을 발표했어요‘에 이어지는 모녀의 대화). 내 욕구를, 내 감정을 드러낼 수도 드러내지 않을 수도 없는 상태(입원한 엄마에게서 이제 그만 돌아가달라는부탁을 받았을 때 보인 루시의 반응). 물어보지 않아 서운해하면서도 물어보지 않은 것을 친절하게 느끼는 상태(이건 때로 나조정말 그렇지 않은가. 개방하고 싶지 않지만 할 수밖에 없는상태(모든 자기 노출의 글 이면에는 이런 마음이 있지 않을까). - P227

심지어 내가 나 자신에 대해 이런지 저런지 잘 모르는 상태("엄마!"는 나의 외침이었을까 딸의 외침이었을까. 이런 마음의 상태들은 없어지지 않고 우리의 기억이 된다. 그리고 그런 기억의방문을 받을 때 우리는, 이를테면 옷가게에 들어가 옷을 입어보고 낯선 사람에게 말을 붙인다.
한편 우리가 누군가를 바라보며 그에 대한 어떤 평가 혹은 판단을 내리는 것, 그것도 결국은 미완의 것, 미결의 과제라고 볼수 있다. 영원한 미완, 미결의 기억들. 제러미에 대해 우리는 루시의 세 가지 기억을 바탕으로 추리할 수 있을 뿐이며, 루시와어머니는 그런 잡지를 읽는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지 않았고,  - P228

세라 페인(아마도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은 "다른 사람을 완전히이해한다는 것, 그것이 어떤 것인지 우리는 절대 알지 못하며,
앞으로도 절대 알 수 없을 것임을" 이야기한다. 그러니 우리가누군가를 평가한다면, 더욱이 그것이 누군가를 얕잡아보는 평가라면, 단편적인 것들에 매달리는 것이 얼마나 무책임한 일이 될것인가. 이 소설에서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는 그것에 대해 "우리 인간을 구성하는 가장 저속한 부분"이라고 말했다. 그래서 외국의 서평들에는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의 작품들을 ‘사회적 계급‘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글이 더러 있다.
기억이 미완의 것이고, 우리가 늘 양가적인 상태에 있고, 우리 - P228

삶이 늘 흔들린다 하더라도 내가 발 디딜 자리는 있다. "하지만이 이야기는 내 것이다. 이 이야기만큼은 그리고 내 이름은 루시바턴이다." 이것이 어쩌면 우리에게 분명한 한가지일 것이다.
작가가 ‘내 이름은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다‘라고 선언하는모습을 잠시 상상해본다(내 이름을 넣어 나도 한번 해보았는데,
생각만 했을 때와 소리 내어 말하는 것은 그 울림의 파급력이 상당히 다르다).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는 열여섯 살 때부터 문예지에 단편을 써 보내기 시작해 스물여섯 살에 첫 단편이 실렸고,
그 이후로 글쓰기를 중단한 적이 없다. 하지만 1956년생인 그녀가 1998년에야 어렵사리 데뷔 소설 『에이미와 이저벨』을 발표할수 있었으니 작가로서 이름을 알리고 작품으로 자신을 단단히다지기까지는 시간이 꽤 많이 걸린 셈이다.  - P229

그녀도 루시 바턴처럼 도서관에서 책을 읽으며, 특히 소설책이 꽂혀 있는 서가 근처를 서성이며 어린 시절을 보냈고, 여름에는 바깥에 나가 놀았지만 혼자 놀았던 적이 더 많았다고 한다. "사람들이 외로움에 사무치는 일이 없도록 나도 글을 쓰겠다!" 작가는 <가디언과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글쓰기를 사람들을 돕기 위한 노력으로 생각했어요. (…) 누군가의 시야를 잠시조금이라도 더 열어주려고 애쓰는 것. 물론 ‘그건 어리석은 일이야 하고 생각할 때도 더러 있지만 이 일이 세상을 도우려는 다 - P229

른 노력보다 더 어리석은 것 같지는 않아요." 작가가 만들어내는등장인물들에는 어쨌거나 작가 자신의 조각들이 조금씩 스며들게 마련인 것 같다. 어쩌면 작가가 된 루시 바턴에게도, 루시 바턴에게 ‘냉혹하라‘는 조언을 해주는 작가 세라 페인에게도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의 조각들이 들어 있었을 것이다.
루시의 이야기가 이러했다면, 루시는 다른 사람들에게 어떤기억으로 남았을까? 루시가 어린 시절을 보낸 앰개시에 남아 있었던 사람들은 루시를 어떻게 기억하고, 실제로 그들은 어떻게그 시간들을 보냈을까?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의 다음 책이 그에 관한 것이라고 하니 내 이름은 루시 바턴을 쉽게 마음에서떠나보내서는 안 될 것 같다. 기억처럼, 삶처럼, 모든 문학작품도 우리 안에 살아 있는 한 영원히 미완인지 모르겠다.

정연희 - P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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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
ELIZABETH STROUT


1956년 미국 메인 주 포틀랜드에서 태어나, 메인 주와 뉴햄프셔주의 작은 마을에서 자랐다. 베이츠 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한뒤 영국으로 건너가 일 년 동안 바에서 일하면서 글을 쓰고, 그후다시 미국으로 돌아와 끊임없이 소설을 썼지만 원고는 거절당하일쑤였다. 작가가 되지 못하리라는 두려움에 그녀는 시러큐스대학교에서 법학을 전공하고 잠시 법률회사에서 일했지만, 얼마지나지 않아 일을 그만두고 뉴욕으로 돌아와 글쓰기에 매진한다.
문학잡지 등에 단편소설을 발표하던 스트라우트는 1998년 첫 장편소설 ‘에이미와 이저벨」을 발표하며 작품성과 대중성을 동시에 인정받는다. 이 작품은 오렌지상, 펜/포크너 상 등 주요 문학상 후보에 올랐고, ‘로스앤젤레스 타임스 아트 세덴바움 상‘과 ‘시카고 트리뷴 하트랜드 상‘을 수상했다. 2008년 발표한 세번째 소설 『올리브 키터리지로 언론과 독자들의 호평을 받으며 2009년퓰리처상을 수상했고, 이 작품은 HBO에서 미니시리즈로도 제작되었다. 이후 『버지스 형제』『내 이름은 루시 바턴』 『무엇이든가능하다』와 같은 소설을 꾸준히 발표하며 많은 사랑을 받았다.
2019년 『올리브 키터리지의 후속작인 『다시, 올리브』를 펴냈다.
주인공 올리브 키터리지의 말년을 절절하면서도 아름답고 우아하게 그려낸 이 소설은 뉴욕 타임스 베스트셀러에 올랐으며 오프라 북클럽 추천 도서로 선정되었다.




이제는 꽤 지난 일이 되었지만, 내가 구주 가까이 병원에 입원해야 했던 때가 있었다. 뉴욕의 병원이었는데, 내 침대에서는밤이면 환한 불빛이 기하학적으로 밝혀지는 크라이슬러 빌딩의풍경이 바로 보였다. 낮에는 그 빌딩도 아름다움을 잃고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서서히 여느 건물과 다름없는 그저 덩치 큰 건물이 되어갔고, 도시의 모든 건물들은 멀찍이 떨어져 침묵을 지키는 듯 보였다. 5월이 지나고 6월이 되었다. 창가에 서서 저 아래보도를 내려다보며 봄옷을 입은 젊은 여자들-내 또래-이점심시간에 돌아다니는 모습을 지켜보던 것이 기억난다. 대화를나누는 그들의 머리가 움직이는 것이 그들의 블라우스가 산들바람에 잔물결을 이루는 것이 보였다. 나는 퇴원하면 보도를 걸 - P9

을 때 나도 그렇게 걷는 사람 중 한 명이라는 사실에 감사하는마음을 절대 잊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고, 여러 해 동안 정말로잊지 않았다ㅡ병실 창문에서 내려다보았던 풍경을 떠올리며 내가 그 보도를 걷고 있음을 다행으로 여겼다.
먼저 말해두지만, 이것은 단순한 이야기이다. 내가 병원에 입원한 것은 맹장수술을 받기 위해서였다. 이틀 뒤 병원에서 음식을 주었지만 넘어가지가 않았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열이나기 시작했다. 어느 누구도 어떤 박테리아 때문에 그러는지려내지 못했고 뭐가 잘못됐는지 알아내지 못했다. 어느 누구도못했다. 나는 한 튜브로는 수액을, 다른 하나로는 항생제를 맞았다. 튜브 두 개 모두 바퀴가 달달거리는 금속 링거대에 달려 있어 링거대를 밀면서 돌아다닐 수 있었지만 나는 대법에 지쳤다. - P10

나를 꼼짝 못하게 했던 그 문제는, 그게 뭐였든 간에 7월을 앞두고 사라졌다. 하지만 그때까지 내 상태는 매우 이상해서 말 그대로 열의 대기 상태ㅡ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집에 남편과 어린 두 딸이 있었다. 나는 딸들이 몹시 그리웠고, 그애들을얼마나 걱정했는지 그러다가 병이 더 심해지는 건 아닌지 겁이날 정도였다. 그러자 내 담당 의사ㅡ나는 그에게 깊은 애착을 느꼈다. 그는 군턱이 진 유대인으로 어깨에는 아련한 슬픔이 감돌았다. 그가 간호사에게 말하는 걸 들어보니 조부모와 친척 아주 - P10

머니 셋이 수용소에서 학살을 당했고, 뉴욕에 아내와 장성한 네아이가 있었다가, 이 사랑스러운 남자가 나를 안쓰럽게 여겼-는지, 내 딸들 각각 다섯 살, 여섯 살이 앓고 있는 병이 없다면 나를 보러 올 수 있도록 조치해주었다. 그래서 우리 가족의친구가 아이들을 병실로 데려와주었는데, 그 조그만 얼굴과 머리카락이 어찌나 지저분하던지 나는 링거대를 밀며 아이들을 샤워실로 데리고 갔다. 아이들이 나를 보고 외쳤다. "엄마, 완전 말랐어요!" 아이들은 정말로 겁을 먹은 것 같았다. 아이들은 내가수건으로 머리를 닦아주는 동안 나와 함께 침대 위에 앉아 있었고, 이어 그림을 그렸지만 조심스러운 태도를 보였다.  - P11

다시 말해, 그림을 그리다 말고 시도 때도 없이 "엄마, 엄마, 이거 좋아요? 엄마, 내가 동화 속 공주를 그렸는데, 이 드레스 좀 보세요!"
하고 말을 붙이는 일이 없었다는 뜻이다. 아이들은 거의 말이 없었는데, 특히 둘째가 말이 나오지 않는 것 같았다. 내가 둘째의어깨를 감싸안자 아이의 아랫입술이 삐죽 튀어나오면서 아래턱이 파르르 떨렸다. 그 작은 꼬맹이가 용감해지려고 무진 애를 쓰고 있었다. 그들이 떠날 때 나는 아이들이 우리 가족의 친구, 내아이들을 데려와주었고 자기 자식은 없는 친구와 함께 걸어가는모습을 창밖으로 내다보는 행동은 하지 않았다.
당연한 일이지만 남편은 집안일로 바쁘고 직장일로 바빠서 나 - P11

를 보러 올 시간을 잘 내지 못했다. 우리가 연애하던 시절에 그는 병원이 싫다고 말했었는데ㅡ그가 열네 살 때 아버지가 병원에서 돌아가셨다ㅡ나는 그제야 그 말이 진심이었음을 깨달았다. 내가 처음에 들어갔던 병실에는 죽음을 앞둔 노파가 있었다.
내 옆쪽 침대에 누워 있던 노파는 끊임없이 도움을 요청했다ㅡ죽는다고 고래고래 악을 쓰는데도 간호사들이 신경쓰지 않아 나는 깜짝 놀랐다. 남편은 견딜 수 없어했고ㅡ 그 병실로 나를 찾아오는 걸 견딜 수 없어했다는 말이다ㅡ나를 1인실로 옮겼다. 우리가 가입한 건강보험으로는 이런 호사까지 보장받을 수 없어서, 모아둔 돈이 하루하루 빠져나갔다. 그 가엾은 노파가 질러대는 소리를 듣지 않게 된 건 고마운 일이었지만, 그때 내가 느낀외로움의 크기를 누군가가 알아차렸다면 나는 창피함을 느꼈을것이다. 간호사가 체온을 재러 올 때마다 나는 조금이라도 그녀를 더 붙잡아두려 했지만, 간호사란 워낙에 바쁜 사람들이어서 한담을 나누고 있을 시간이 없었다. - P12

우리는 그러니까 우리 가족은 일리노이 주 앰개시라는 작은시골 마을에서도 별종이었다. 그곳의 집들은 허물어지기 직전인데다 페인트칠을 새로 한 집도 없고 덧창이나 정원도 없어 눈길을 줄 만한 아름다움이라곤 찾아볼 수 없었다. 이런 집들이 한데모여 마을을 이루었지만, 우리집은 그런 집들과도 떨어져 있었다. 아이들은 자신의 환경을 일반적인 것으로 받아들인다고 하지만, 비키 언니와 나는 우리가 다르다는 걸 알고 있었다. 운동장에서 다른 아이들이 우리에게 "너희 식구들한테서는 냄새가나" 하고 말하고는 손가락으로 코를 잡으며 달아났기 때문이다.
언니는 2학년 때-교실에서 아이들 앞에 서서-담임교사에게가난이 귀 뒤의 때에 대한 핑계가 될 수 없으며 비누를 살 수 없 - P18

을 만큼 가난한 사람은 없다는 훈계를 들었다. 아빠는 농기계 수리 일을 했는데, 사장과의 불화로 종종 해고를 당했지만 다시 고용되곤 했다. 그건 아빠가 일을 잘했기 때문에 다시 필요해져서였을 것이다. 엄마는 바느질 일을 했다. 우리집에서 도로까지 이어진 긴 진입로와 도로가 만나는 지점에 페인트로 바느질과 수선,
이라고 쓴 손글씨 간판이 있었다. 아빠는 밤에 우리와 기도를 올릴 때 우리에게 충분한 양식을 주심에 감사를 드리게 했다. 하지만 사실 나는 종종 배가 고파 죽을 지경이었고, 당밀을 바른 빵으로 저녁을 때운 것도 여러 번이었다. 거짓말을 하거나 음식을낭비하면 늘 벌이 뒤따랐다. 이따금 예고 없이, 부모님이 충동적으로 사정없이 우리를 때리기도 했는데 때리는 사람은 대체로엄마였고, 대체로 아빠가 보는 데서였다―지금 생각해보면 우리의 푸르죽죽한 피부와 침울한 태도를 보고 그 사실을 눈치챈사람도 있었을 것 같다.
그리고 우리는 고립되어 있었다. - P19

무 한 그루가 서 있었는데, 그 적막한 느낌이 이를 데 없었다. 오랫동안 나는 그 나무를 내 친구로 여겼다. 나무는 내 친구였다.
우리집은 아주 긴 흙길을 걸어가야 나왔고, 록 강에서 멀지 않았으며, 근처에는 바람으로부터 옥수수밭을 보호해주는 나무들이 있었다. 그러니 우리집 근처에 이웃이 있을리 없었다. 우리집에는 텔레비전도 없었고, 신문이나 잡지, 책도 없었다. 엄마는결혼한 첫해에 그 지역 도서관에서 근무했는데, 그걸 보면 책을좋아했던 게 분명했다―오빠가 나중에 이렇게 말해주었다. 그러던 어느 날 도서관에서 엄마에게 규정이 바뀌어 적절한 교육을 받은 사람만 고용될 수 있다고 통보했다. 엄마는 결코 그 말을 믿지 않았다. 엄마는 더는 책을 읽지 않았다. 엄마가 다른 지역의 도서관에 가서 다시 책을 빌려온 것은 한참이 지난 뒤였다. - P20

내가 이 이야기를 꺼낸 건, 아이들이 세상이 어떤 곳인지를 어떻게 인식하고 그 세상에서 어떻게 행동하는지에 대한 문제 때문이다.
예컨대, 어느 부부에게 자식이 없는 이유를 묻는 것이 무례하다는 건 어떻게 배우는가? 테이블 세팅을 하는 법은? 알려주는사람이 아무도 없는데 본인이 입을 벌리고 음식물을 씹는다는걸 어떻게 알겠는가? 집에 있는 거울이 부엌 개수대저위의 작은 거울 하나뿐인데, 혹은 어느 누구한테서도 예쁘다는 말을 들 - P20

어본 적이 없는데, 그런 말을 듣기는커녕 가슴이 커지자 친엄마한테서 피더슨 씨네 헛간의 젖소 같아지기 시작한다는 말을 듣는데, 자기 모습이 정말로 어떤지 어떻게 알겠는가?
비키 언니는 그걸 어떻게 알게 되었는지, 나는 지금까지도 모른다. 사람들은 언니와 나의 사이가 가까울 거라고 예상하겠지만, 그렇지는 않았다. 우리 둘 다 친구가 없었고, 우리 둘 다 멸시를 당했다. 그리고 우리는 세상의 나머지 사람들을 쳐다볼 때 그랬던 것처럼 의심의 눈초리로 서로를 보았다. 지금은 내 인생도완전히 달라졌기에, 어린 시절을 돌이켜보며 이런 생각을 하게될 때가 있다. 그렇게 나쁘지는 않았다고. 어쩌면 그렇게 나쁘지는 않았을 거라고.  - P21

하지만 햇살이 내리쬐는 보도를 걷거나 바람에 휘는 나무 우듬지를 볼 때, 또는 이스트 강 위로 나지막이 걸린 11월의 하늘을 바라볼 때, 내 마음이 갑자기 어둠에 대한 앎1으로 가득차는 순간들이 예기치 않게 찾아오기도 한다. 그삶이 너무 깊어 나도 모르게 소리가 터져나올 것 같고, 그러면나는 가장 가까운 옷가게로 들어가 낯선 사람과 새로 들어온 스웨터에 대해 대화를 나눈다. 아마 대부분의 다른 사람들도 이렇듯 반쯤은 알게 반쯤은 모르게, 사실일 리 없는 기억의 방문을받으면서 세상을 이런 식으로 어찌어찌 통과해나갈 것이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이 공포라는 감정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롭다는 - P21

듯 자신만만하게 보도를 걸어가는 모습을 보면서, 나는 내가 다른 사람들이 어떤 마음인지 알지 못한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삶은 아주 많은 부분이 추측으로 이루어진 듯하다. - P22

종조부가 돌아가시자 우리는 그 집에 들어가 살았다. 더운물과 수세식 변기를 쓸 수 있었지만, 겨울에는 여전히 지독하게 추웠다. 나는 추위라면 늘 질색했다. 우리가 어떤 길을 택할 때 그길을 결정하는 요소는 분명히 존재하겠지만, 그 요소를 찾아내거나 정확히 짚어내는 일은 좀처럼 쉽지 않다. 이따금 나는 어째서 내가 학교에 늦게까지 남아 있으려고 했는지를 생각해본다. 학교는 따뜻했고, 나는 그저 따뜻하게 있고 싶었다. 수위 아저씨는 늘 온화한 표정으로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라디에이터가 쉭쉭거리는 교실로 나를 들여보내주었다. 나는 거기서 숙제를 했다. 종종 체육관에서 치어리더들이 연습하는 소리나 농구공 튕기는 소리가 희미하게 들렸을 테고, 음악실에서는 밴드부가. 연습을 하고 있었겠지만, 나는 따뜻하게 교실에 혼자 있었다.
숙제란하기만 하면 끝나는 거라는 사실을 깨달은 것도 그때였다. 숙제가 어떤 원리로 주어지는지도 그때 깨달았는데, 집에서했더라면 깨닫지 못했을 것이다. 숙제를 마치면 나는 어쩔 수없이 교실에서 나와야 할 때까지ㅡ책을 읽었다. - P32

우리가 다닌 초등학교는 도서실을 갖추고 있을 만큼 크지는않았지만, 교실에 책이 좀 있어서 집으로 가져가 읽을 수 있었다.
3학년 때 어떤 책을 읽은 뒤로 나는 책이 쓰고 싶어졌다. 그 책은두 자매에 관한 내용이었는데, 그애들은 좋은 엄마를 두었고, 여름에는 다른 타운에 가서 지내는 행복한 아이들이었다. 처음 간그 타운에 틸리 - 틸리 ! - 라는 이름의 여자애가 살고 있었는데,
지저분하고 가난해서 이상해 보이고 매력적이지도 않았다. 자매는 틸리에게 잘해주지 않았지만, 그애들의 좋은 엄마가 잘해주라고 했다. 이것이 내가 그 책 『틸리』에서 기억하는 내용이다.
담임선생님은 내가 독서를 좋아한다는 사실을 알고 내게 책을주었는데, 그중에는 어른들이 읽는 책도 있었다. 나는 그 책들을읽었다. 고등학생이 된 뒤에도 나는 여전히 따뜻한 학교에서 숙제를 했고, 숙제를 마치면 책을 읽었다. 그 책들 덕에 몇 가지 얻 - P33

은 것이 있다. 이것이 내 말의 요점이다. 책이 내외로움을 덜어주었다. 이것이 내 말의 요점이다. 그래서 생각했다. 나도 사람들이 외로움에 사무치는 일이 없도록 글을 쓰겠다고! (하지만 그건 나만의 비밀이었다. 남편과 만나면서도 그 얘기를 바로 털어놓지는 않았다. 나는 나 자신을 진지하게 여길 수 없었다. 하지만 진지했다고 말하는 것이 진실이고, 나는 나 자신에 대해 혼자 남몰래-아주 진지하게 생각했다! 나는 내가 작가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 길이 얼마나 험난할지는 몰랐다. 하지만 그건 어느 누구도 모른다. 그러니 그건 중요하지 않다.) - P34

따뜻한 교실에서 보낸 시간 덕에, 그 시절의 독서 덕에, 숙제를 하나도 빼놓지 않고 충실히 하는 게 의미가 있다는 걸 깨달은덕에 이런 것들 덕에 내 성적은 점점 완벽해졌다. 고등학교졸업반 때 진로 상담 선생님이 나를 상담실로 불러, 시카고 외곽의 어느 대학에서 모든 비용을 다 대주는 조건으로 입학을 제의했다는 말을 전해주었다. 부모님은 이 이야기를 듣고도 별다른말을 하지 않았는데, 아마 성적이 완벽하지 않고 심지어 특별히좋지도 않았던 오빠와 언니가 속상해할까봐 그랬을 것이다. 오빠와 언니는 모두 대학에 가지 않았다.
찌는 듯 무더운 날에 나를 그 대학까지 차로 데려간 사람은 진로 상담 선생님이었다. 오, 말은 하지 않았지만 나는 보자마자 - P34

숨도 쉴 수 없을 만큼 그곳이 좋았다. 학교는 어마어마하게 커보였고, 어디를 쳐다보건 건물이 있었다-내 눈에는 호수가 굉장히 커 보였다. 사람들이 강의실을 들락거리며 한가로이 돌아다니고 있었다. 나는 더럭 겁이 났지만, 흥분되는 심정에 비길수는 없었다. 금세 나는 사람들을 따라 하는 법을 습득했고, 대중문화에 대한 지식이 부족하다는 것을 들키지 않으려고 애썼다. 하지만 그 부분만큼은 쉽지 않았다.
기억나는 일이 있다. 추수감사절이라 집에 돌아온 날 밤, 나는잠을 이루지 못했다. 대학생활이 꿈일까봐 두려웠고, 눈을 뜨면다시 이 집에서 영원히 머물게 될까봐 두려웠다. 그렇게 되면 견딜 수 없을 것 같았다. 나는 생각했다. 안 돼. 그 생각을 한참 하다 나는 겨우 잠이 들었다. - P35

누구는 늘 원했던 아이를 포기할 마음을 먹고, 자신의 과거나 옷에 대한 발언도 참아보려 하는데, 그 순간 그런 작은 말 한마디에 영혼의 부피가 줄어들며 이런 말이 튀어나오는 것이다. 오그뒤로 나는 많은 남자와 여자와 친구가 되었지만 그들도 그비슷한 말을 했다. 늘 무심결에 진실을 드러내는 그런 한마디를하는 것이다. 내가 말하려는 것은, 이것이 단지 한 여자의 이야기는 아니라는 것이다. 그런 일은 많은 사람들에게 일어난다. 우리가 그런 한마디를 듣고 그 한마디에 주의를 기울일 만큼 운이좋다면 말이다.
돌이켜보면 그 시절의 나는 아주 이상했고 말할 때의 목소리는너무 컸던 것 같다. 대중문화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면 입을 다물었을 것이다. 내가 잘 모르는 평범한 유머에는 어색하게 반응했을 것이다. 나는 반어라는 개념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던 것 같고, 사람들은 그 사실에 어리둥절해했다.  - P38

아파트는 깨끗했고 가구가 많지 않았다. 자주색 아이리스 한 송이가 유리병에 꽂혀 하얀 벽 앞에 놓여 있었고, 벽은 예술작품으로 꾸며져 있었다. 그걸 본 순간 나는 그와 나 사이의 거리가 얼마나 먼지 알 수 있었다. 내가 이렇게 말하는 이유는 내가 그 예술작품을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짙은 색의 길쭉한 형체들이 그려져 있었는데, 추상에 가깝지만 완전히 추상이라고는 할 수 없는 구성들로, 나로서는 절대 이해할 수 없는 현학적인 세계의 징후라는 것만 알 수있었다. 우리 가족이 자신의 공간에 있는 것을 제러미가 불편해한다는 게 감지되었다. 하지만 그는 더할 나위 없는 신사였고,
이것이 내가 그를 그토록 좋아했던 이유였다. - P50

"이런 말을 하면 정말 안 되는 줄은 알지만, 나는 저들이 거의 부러울 지경이에요. 저 두 사람은 서로를 가졌고, 진정한 공동체로결속되어 있으니까요." 그러자 그가 나를 바라보았고, 그의 얼굴에는 진심 어린 다정함이 떠올라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는내가 그렇지 않다는 것을, 내 겉은 풍족해 보여도 속은 외롭다는것을 알아차렸던 것 같다. 외로움은 내가 맛본 인생의 첫맛이었고, 늘 그 자리에, 내 입안의 틈 속에 숨어 있다가 자신의 존재를일깨워주었다. 그날 그는 그 사실을 알아차렸을 것이다. 그리고그는 친절했다. "그러네요." 그는 그렇게만 말했다. 쉽게 이렇게말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제정신이에요? 저 사람들은 죽어가고 있다고요!" 하지만 그는 그렇게 말하지 않았다. 나를 에워싼 - P53

외로움을 이해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고싶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 P54

에 뉴욕을 사랑했다. 나는 그녀 안의 슬픔도 보았던 것 같다. 내가 집으로 돌아온 뒤 그녀의 얼굴을 떠올렸을 때 그런 느낌이 들었다. 그녀가 아주 많이 웃었고, 그래서 그녀의 얼굴이 환하게빛났기 때문에, 그때는 그 슬픔을 보고도 몰랐을 것이다. 그녀는남자들이 보면 여전히 사랑에 빠질 법한 그런 여자의 표정을 하고 있었다. - P57

그럼에도 나는 그녀의 책이 좋았다.
나는 진실한 뭔가를 말하려고 하는 작가를 좋아한다. 내가 그녀를 좋아한 또다른 이유는, 그녀가 뉴햄프셔 주 작은 타운의 쇠락한 사과 과수원에서 자라 뉴햄프셔 주 시골 지역에 대한 글, 열심히 일하고 힘들게 살아가지만 좋은 일이 생기기도 하는 사람들에 대한 글을 썼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순간 나는 그녀가 자신의 책에서조차 진정한 진실은 말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그녀는늘 뭔가에서 멀찍이 비켜나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녀는자기 이름조차 제대로 말할 수 없지 않았나! 하지만 나는 그 점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 P59

그다음날 아침 병원에서 이제는 꽤 지난 일이 되었다 내가 엄마에게 엄마가 잠을 자지 않아 걱정이라고 말하자, 엄마는자기가 잠을 자지 않는다고 내가 걱정할 건 없다고, 평생 쪽잠을자는 버릇이 들어 그렇다고 말했다. 그 순간 또다시 엄마의 말이조금 쏟아지는 듯하더니 엄마 안에 억눌려 있던 감정이 밀고 올라오기 시작했다. 그날 아침 엄마는 갑자기 자신의 어린 시절에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어린 시절 내내 쪽잠을 잤었다는 이야기를. "안전하다고 느끼지 않으면 그런 버릇이 생겨." 엄마가말했다. "쪽잠은 언제든 앉은 채로 잘 수 있으니까."
나는 엄마의 어린 시절에 대해 아는 게 거의 없었다.  - P60

이상한 일은 아닌 것 같다. 구체적으로 아는 것 말이다. 요즘은 조상에 대한 관심이 크지만, 그 관심은 이름과 장소와 사진과 법원기록을 의미한다. 하지만 삶의 날실과 씨실이 어떻게 엮여갔는지는 어떻게 알아낼 수 있는가? 우리가 그런 문제에 관심을 갖는순간이 올 때 말이다. 청교도였던 우리 조상은, 내가 아는 다른문화와는 다르게, 대화를 즐거움의 원천으로 삼지 않았다. 하지만 그날 아침 병원에서 엄마는 농장에 가서 지낸 여름에 대해 이야기할 만큼 기분이 좋은 것 같았다. - P61

트럭. 이따금 그 트럭이 깜짝 놀랄 만큼 선명하게 떠오른다.
흙먼지로 줄무늬가 그려진 차창, 비스듬한 앞유리, 계기판에 낀땟자국, 디젤 냄새와 썩어가는 사과 냄새, 그리고 개들 냄새. 내가 트럭에 갇힌 게 몇 번이었는지 그 횟수는 나도 모른다. 처음이 언제였는지, 마지막이 언제였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가 아주 어렸을 때였고, 마지막으로 갇혔을 때도 아마 다섯 살이 되지않았을 것이다. 그게 아니라면 나는 하루종일 학교에 있었을 테니까. 내가 그 안에서 시간을 보내야 했던 건 오빠와 언니는 학교에 갔고-지금 생각해보면 그렇다-엄마 아빠 둘 다 일을 했기 때문이었다. 그런 이유에서가 아니라면 별로 갇혔을 것이다. - P72

소리를 지르면서 차창 유리를 탕탕 두드렸던 것도 기억난다. 죽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던것 같지는 않다. 그때 내가 무슨 생각을 했던 것 같지는 않다. 오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걸 깨닫고, 하늘이 점점 어두워지는 걸지켜보고, 추위가 살을 파고드는 걸 느끼던 그때 내게 들었던 감정은 그저 공포였다. 나는 언제나 소리를 지르고 또 질렀다. 숨쉬기가 힘들어질 때까지 울었다. 이 뉴욕이라는 도시에서 나는지쳐서 우는 아이들을, 가끔은 그저 심술이 나서 우는 아이들을본다. 전자도 진짜고, 후자도 진짜다. 하지만 이따금은 절박하기이를 데 없는 소리로 우는 아이들을 보기도 하는데, 나는 그것이 아이가 낼 수 있는 가장 진실한 소리의 하나일 거라고 생각한다.  - P73

그런 순간에는 내 안에서 심장이 부서지는 소리가 들리는 것같다. 탁 트인 내 유년의 들판에서-조건이 정확히 맞아떨어질때 - 옥수수가 자라는 소리가 들리는 것처럼. 많은 사람들이 심지어 중서부 출신들조차 옥수수 자라는 소리는 들리지 않는다고내게 말했지만, 그들이 잘못 안 것이다. 내 심장이 부서지는 소리를 들을 수는 없고, 그게 사실인 것은 나도 알지만, 내게 옥수수가 자라는 소리와 내 심장이 부서지는 소리는 분리할 수 없는것이다. 나는 아이의 절박한 울음소리를 듣지 않으려고 타고 있던 지하철 칸을 옮긴 적도 있다. - P73

내가 트럭 안에 갇혀 있었을 때 내 마음은 매우 이상한 곳으로 가곤 했다. 어떤 때는 한 남자가 다가오는 것을, 또 어떤 때는괴물을 본 것 같았고, 또 한번은 언니를 본 것 같기도 했다. 그러면 나 자신을 달래면서 소리 내어 혼잣말을 했다. "괜찮아, 아가야. 곧 마음씨 고운 아줌마가 올 거야. 너는 정말로, 정말로 착한아이고, 그 아줌마는 엄마의 친척인데 혼자 사는 게 외로워 같이살 착하고 귀여운 여자애를 찾고 있어서, 너를 데려가 같이 살고싶어할 거야." 나는 이런 상상을 하곤 했고, 그 상상이 내게는 정말로 진짜처럼 느껴져 그 덕에 마음을 진정시킬 수 있었다. 나는춥지 않은 곳을, 깨끗한 시트와 깨끗한 수건을, 고장이 안 난 변기를, 볕이 잘 드는 부엌을 꿈꿨다. 나는 이런 방법으로 천국에들어갔다. 슬슬 추워지고 해가 저물면 나는 또다시 울기 시작했는데, 처음에는 훌쩍거리던 울음이 점점 걷잡을 수 없어졌다.
러면 아빠가 나타나 잠긴 문을 열어주었고, 가끔은 나를 안아서데려갔다. "울 일이 뭐가 있어." 이따금 아빠가 말했다. 아빠의따스한 손이 내 머리 뒤쪽에 닿았던 것이 지금도 기억난다. - P74

나는 말하고 싶었다오, 이렇게 말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한번은 그 안에 저하고 아주아주 긴 갈색 뱀하고 같이 있었는데 그것도 기억 안 나요? 나는 묻고 싶었지만 그 단어를 도저히 입 밖에 낼 수가 없었다. 지금도 차마 말할 수 없기에 내가 긴갈색의 그것과 함께 트럭 속에 갇힌 것을 알았을 때 얼마나 무서웠는지도 말할 수 없다 게다가 그건 정말로 잽싸게 움직였다.
정말로 잽싸게. - P82

캐럴은친구들도 한편으로 만들려고 아이들을 쳐다보며 그 동작을 하고 있었다. 헤일리 선생님의 얼굴이 붉어졌고, 선생님이 이렇게 말한것이 기억난다. 너희가 다른 누구보다 더 잘났다는 생각은 절대하지 마라. 내 교실에서는 용납할 수 없는 일이다. 이곳에서 다른 사람보다 더 잘난 사람은 아무도 없다. 방금 몇 명의 얼굴에서 다른 누구보다 더 잘났다고 생각하는 표정을 읽었는데, 내 교실에서는 절대 절대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캐럴 다를 흘끔 쳐다보았다. 내 기억에 그애는 잘못을 지적받아 속상한 듯했다.
나는 조용히, 완전히, 단박에 이 남자를 사랑하게 되었다. 지금 그가 어디에 사는지, 아직 살아 있는지조차 모르지만, 나는여전히 이 남자를 사랑한다. - P84

헤일리 선생님은 그해 말에 떠났다. 내 기억으로는 입대를 했는데, 시절을 감안하면 틀림없이 베트남에 갔을 것이다. 나중에워싱턴 D.C.의 참전용사기념비에서 그의 이름을 찾아봤지만 없었다. 내가 그에 관해 더 아는 건 없지만, 내 기억에 캐럴 다는 그뒤부터 그의 수업 시간에는 내게 못되게 굴지 않았다. 무슨말인가 하면, 우리 모두 그를 좋아했다는 것이다. 우리 모두 그를 존경했다. 이것은 열두 살짜리들의 학급에서 한 남자가 이루어내기에 절대 작은 업적이 아니다. 그는 이루어냈다. - P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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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때문에 이게 뭐야!" 그는 부러진 채찍을 집어들며 화를 냈다. 총나는 가늘게 훌쩍이며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내 소년 시절을 통틀어 매질을 당해 눈물까지 흘리고 만 건 그때뿐이었던 것 같은데, 이상하지만 그때도 나는 아파서 운 게 아니었다. 두 번째 매질 역시 별로 아프지 않았던 것이다. 공포감과 수치심이 마취 효과를 낸 것인지도 모른다.
내가 운 건 그게 상대가 기대하는 바라는 느낌이 들어서이기도 했고 정말뉘우치는 마음이 있어서이기도 했는데, 그게 다는 아니었다. 어린 시절에만 느끼는 것이라 전달하기 쉽지 않은, 보다 깊은 슬픔이 있었던 것이다. 그건 적대적인 세상에 갇혀버렸다는, 지배가 너무 완강해서 나로서는 어찌할 도리가 없는 선악의 세상에 감금돼버렸다는 처량한 고독감과 무력감이었다. - P378

대개 어느 시기에 대한 사람의 기억은 당시로부터 멀어질수록 약해지기 마련이다. 사람은 끊임없이 새로운 사실을 알아가기에 지난 일들새로운 사실에 자리를 내주기 위해 잊혀져야만 한다. 스무 살 때였더라면 지금으로선 가히 불가능하리만큼 정확하게 내 학창 시절의 역사를쓸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시간이 한참 흐른 후에 기억이 더 날카로워지는 경우도 있다. 오랜 시간이 지나면 과거를 새로운 눈으로 볼수 있으며, 전에는 다른 것들과 무차별적으로 뒤섞여 있던 것을 따로 떼어놓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사건의 경우엔 내가 한편으로 기억하고는 있었지만 최근까지 별로 이상하거나 흥미롭게 느끼지는 않았던 점이두 가지 있다. 하나는 두 번째 매질을 내가 정당하고 합리적인 처벌인듯 받아들였다는 점이다. 한 번 매질을 당한 것, 그리고 어리석게도 그게 안 아팠다고 자랑을 하다 그보다 훨씬 심하게 또 매질을 당한 것ㅡ모두 내게는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 P379

세인트 시프리언스는 학비가 비싸고 속물근성이 넘쳐나는 학교였는데, 시간이 흐를수록 (내가 알기론) 더 그런 곳이 되어가고 있었다. 특별히 연고가 있는 사립학교는 해로우 Harrow 였지만, 내가 다니던 동안에는 이름으로 진학하는 아이들이 점점 늘어가고 있었다. 그런 아이들 대부분은 부모가 부자였다. 단, 그 부모들은 대체로 귀족 혈통은 아닌 부자로, 본머스나 리치몬트에 있는 숲이 우거진 대저택에서 자동차도리고 집사도 두고 살지만 시골에 부동산은 없는 유의 사람들이었다.
학생들 중에는 얼마 안 되긴 해도 외국에서 온 아이들도 있었다. 남미에서 온 아이들도 있고, 아르헨티나 부호의 아들들도 있고, 러시아 아이도 한둘 있고, 삶(태국) 왕자도 있고, 다른 어디 왕자라고 하는 아이도있었던 것이다. - P380

세인트 시프리언스의 경우에는 솔직히 모든 게 일종의 신용사기를 위한 준비 과정이었다. 우리의 임무는 실제로 아는 것보다 더많이 안다는 인상을 심사위원에게 심어줄 것들만 배우고, 뇌에 부담이되는 것들은 가능한 한 피하는 것이었다. 시험을 잘 안 보는 지리학 같은 과목은 거의 무시됐고, ‘문과classical‘ 인 경우에는 수학도 무시됐다.
과학은 어떤 식으로도 가르치지 않았고(자연사에 조금만 관심을 보여도 머쓱해질 만큼 멸시하는 분위기였다) 여가 시간에 읽으라는 책들도 ‘국어 시험‘에 나올 만한 것들뿐이었다. 라틴어와 그리스어는 장학생 선발의 주요 과목이어서 중요한데도 의도적으로 겉만 번지르르하고 부실하게 가르쳤다. 이를테면 우리는 그리스어나 라틴어 저자의 책은 단 한권도 통독을 해본 적이 없었다. 번역 문제로 나올 만해서 골라놓은 짧은 구절들만을 읽을 뿐이었던 것이다. 장학생 선발 시험을 보기 전 1년 남짓 동안, 우리는 대부분의 시간을 기출문제를 달달 외는 데 바쳤다.  - P384

이 가난한 것들은 사격이나 목공 같은 ‘특활‘은 단념해야했고, 옷이나 소지품 때문에 수치를 맛보아야 했다. 이를테면 나는 나만의 크리켓 배트를 결국 마련하지 못하고 말았는데, "네 부모는 그럴 형편이 못 될걸"이란 말 때문이었다. 이 말은 학창 시절 내내 날 따라다니며 괴롭혔다. 우리는 집에서 가져온 돈을 학교에서 사적으로 보관할 수가 없었다. 대신에 매 학기 첫날 돈을 내놔야 했고, 지도를 받아가며이따금 쓰는 것만 허용되었다. 나를 비롯해 비슷한 처지의 아이들은 맡겨둔 돈이 충분한데도 모형 비행기 같은 비싼 장난감을 사려고 하면 언제나 제지당하고 말았다. 특히 플립은 가난한 집 아이들에게 보잘것없는 처지를 각인시켜주려고 작정을 한 듯했다. "그게 너 같은 애가 사도되는 물건이라고 생각하니?" 그녀가 어떤 애한테, 그것도 모두가 보는앞에서 이런 말을 했던 것도 기억난다.  - P388

나는 사립학교 장학금을 타지 못하는 한 그럴싸한 앞날을 누릴 가망이 없다는 인상을 아주 일찌감치 받았다. 장학금을 타거나, 아니면 열네살에 학교를 졸업한 뒤 삼보가 즐겨 하던 말대로 "연봉 40파운드인 사무실 사환 아이"가 되거나 둘 중 하나였다. 내 여건에서는 그런 말을 믿는게 당연했다. 세인트 시프리언스에서는 누구나 ‘좋은‘ 사립학교(거기에 해당하는 학교는 15개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에 진학하지 못하면 인생을망치는 줄로만 알았던 것이다. 모든 걸 결정해버리는 끔찍한 전투 같은시험이 다가옴에 따라(열한 살, 열두 살 열세 살 그리고 마침내 운명의 나이!)아이가 느끼는 중압감과 불안감은 어른에게 전달하기는 쉽지 않다. 약2년이라는 기간 동안, ‘시험‘ 이란 것은 깨어있는 동안의 내 의식을 단하루도 떠난 적이 없었던 것 같다. 시험은 가장 중요한 기도거리였다. - P389

나는 삼보와 플립을 증오했다. 어느 정도 부끄러움과 양심의 가책을느끼면서도 그랬다. 하지만 그들의 판단을 의심하는 법은 없었다. 그들이 내게 사립학교 장학금을 타든지 아니면 열네 살에 사환이 되든지 둘중 하나라는 말을 했을 때, 나는 그것들이 내 앞에 놓인 피할 수 없는 두갈래 갈림길인줄로만 알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나는 삼보와 플립이 자 - P393

신들은 내 은인이라고 한 말을 믿었다. 물론 지금은 삼보 입장에서 볼때 내가 좋은 투기감이었다는 사실을 안다. 그는 나한테 묻어둔 돈이 있었고, 그걸 명성의 형태로 되찾고자 했던 것이다. 만일 내가 장래성 있던 아이들이 이따금 그랬듯 "맛이 가버렸다"면, 그는 나를 지체 없이 내쳤을 것이다. 결국 나는 때가 되어 장학금 두 개를 따냈으니, 그는 학교안내서에 나를 충분히 활용했을 게 뻔하다. 하지만 학교란 게 우선적으로 장사라는 걸 어린아이가 깨닫기는 어렵다. 아이는 학교라는 게 교육을 위해 존재하며, 교장이 훈육을 하는 것은 아이를 위해서가 아니라면남 괴롭히는 걸 좋아해서라고 생각한다. 플립과 삼보는 내 친구가 되어주기로 했고, 그들의 우정은 매질과 나무람과 창피주기를 아우르는 것이었으며, 그 덕분에 나는 사부터 시작하는 사무실 붙박이 인생을 면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게 그들의 설명이었고, 나는 그 말을 그대로 믿었다. 따라서 나는 그들에게 엄청난 신세를 진 것이었다.  - P394

누구든 자신의 학창 시절을 돌이켜보면서 그 시절이 불행하기만 했다고 진심으로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내 경우에도 세인트 시프리언스에서의 수많은 나쁜 기억들 사이사이좋은 추억이 있다. 여름날 오후면 가끔 다운스Downs라는 낮은 산맥을넘어 벌링갭Birling Gap이나 비취헤드 Beachy Head 같은 마을로 소풍을가는 신나는 때도 있었다. 우리는 석회암투성이인 그곳 바닷가에서 험하게 물놀이를 하고서 몸 여기저기 생채기가 난 채로 돌아오곤 했다. 그보다 더 신났던 건 한여름 밤에 평소처럼 잠자리로 몰아넣지 않고, 긴황혼 녘 동안 운동장에서 마음대로 노닐다가 마무리로 9시쯤 수영장에뛰어들게 해주는 특별한 경우였다. 여름날 아침엔 일찍 일어나, 모두가잠든 햇빛 쏟아지는 기숙사 방에서 1시간 동안 아무 방해 없이 책을 읽는 즐거움도 있었다. - P395

자기 어린 시절에 대한 글을 쓰는 사람이라면 모름지기 과장과 자기연민을 경계해야 한다. 나는 내가 순교자였거나 세인트 시프리언스가‘두더보이즈 홀‘같은 곳이었다고 주장하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당시의 기억이 대체로 혐오스러운 것이었다고 적지 않는다면, 내 기억을 조작하는 일일 것이다. 바글바글한 곳에서 충분히 못 먹고 잘 씻지 못했던우리의 생활은, 내가 기억하는 한 ‘분명‘ 혐오스러운 것이었다. 눈을 감고 "학교"라고 말할 때 나에게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은 물론 물리적 환경이다. 크리켓 경기장이 있는 납작한 운동장과 소총 사격장 옆에 있는작은 헛간, 외풍이 심한 기숙사, 먼지투성이에 꺼끌꺼끌한 복도, 체육관 - P400

앞의 아스팔트 광장, 뒤뜰에 있는 멋없는 목조 예배당. 그리고 이것들대부분의 경우 불결한 무언가가 동시에 떠오른다. 일례로 우리에게 죽을 담아주던 백랍 그릇 가장자리에는 돌출된 부분이 있었는데, 그 밑부분에는 상한 죽이 켜켜이 쌓여 있었고, 긁어내면 기다란 띠처럼 벗겨질정도였다. 죽 자체에도 누가 일부러 넣지 않은 이상 가능할까 싶을 정도로 많은 덩어리와 머리카락, 그리고 정체불명의 거무튀튀한 것들이 섞여 있었다. 그러니 먼저 검사를 해보지 않고 죽을 먹는다는 건 결코 안전하지 못한 일이었다. 목욕탕 물은 끈적끈적했고(탕은 길이가 12피트 혹은 15피트 정도였는데 아침마다 온 학생들이 다 들어가게 되어 있었지만 물을 자주 갈기는 하는지 모를 일이었다) 언제나 축축한 타월에서는 치즈 냄새가났다. 겨울이면 가끔 가던 근처 수영장은 더러운 바닷물을 바로 끌어왔는데, 한번은 사람 똥이 떠다니는 것을 보기도 했다. 땀 냄새 진동하는탈의실의 세면대는 언제나 기름기투성이였고, 바로 옆에 줄지어 있는불결하고 낡은 변소는 문에 잠금장치 같은 게 아예 없어 변기에 앉아 있을 때마다 누가 불쑥 밀고 들어오곤 했다.  - P401

아이 입장에서 진정으로 독자적인 태도를 보인다는 게 얼마나 어려웠는지는 플립에 대한 우리의 행동을 보면 알 수 있다. 나는 학생들 모두가 그녀를 미워하면서 두려워했다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니리라 생각한다. 하지만 우리 모두 더없이 비굴하게 그녀에게 아양을 떨었고, 그런감정의 표층을 형성한 건 죄책감에 사로잡힌 충성심 같은 것이었다. 플립은 삼보보다 학교의 규율을 좌지우지하는 영향력이 컸음에도 엄한 법으로 다스리는 척을 하는 일이 거의 없었다. 그녀는 노골적으로 변덕을부렸다. 어떤 날엔 매 맞을 만한 일을 다음날엔 소년다운 장난으로 웃어넘기고, 심지어 "배짱이 있다"며 칭찬해주기도 했다. 그녀가 움푹한 눈으로 추궁하듯 바라보면 모두가 몸을 움츠리는 날이 있는가 하면, 그녀가 연인 같은 신하들에게 둘러싸여 웃고 농담하고, 아낌없이 돈을 뿌리거나 그럴 것을 약속하며 추파를 던지는 여왕처럼 행세하는 날이 있었다("너 이번에 해로우 역사상을 타면 내가 카메라 케이스를 사주지!").  - P404

나는 사람이 자기 의지와 어긋나게 잘못을 저지를 수 있음을 일찌감치 알게 되었으며, 머지않아 사람이 자기가 무엇을 했는지도 그게 왜 잘못됐는지도 모르면서 잘못을 저지를 수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너무미묘해서 설명할 수 없는 죄란 게 있었으며, 너무 끔찍해서 딱히 뭐라할 수 없는 죄도 있었다. 이를테면 언제나 표층 바로 밑에 억눌려 있다가 내 나이 열두 살 무렵 느닷없이 폭발해버려 엄청난 소란을 불러일으킨 성性이란게 있었다.
동성애 문제가 없는 예비학교도 있겠지만, 내 생각에 세인트 시리언스가 ‘악평‘을 얻게 된 건 대개 영국 소년들보다 한두 해 더 빨리 성숙해지는 남미 소년들 덕분이었다. 당시 나는 관심도 없었고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딱히 알지도 못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그건 집단 자위행위였다. - P406

나는 육신과 영혼을 망쳐버린 혼이 행복하고건강해 보인다는 사실에서 다른 추론을 할 수 없었다. 나는 여전히 삼보와 플립이 가르쳐준성에 관한 신화를 믿고 있었던 것이다. 신비롭고 끔찍한 위험은 여전히 도사리고 있었다. 아침에 눈언저리가 까만 날이면자기 역시 구제 불능의 영혼임을 알 수 있었던 까닭이다. 더 이상 그게큰 문제가 아닌 듯 여겨진다는 것만 다를 뿐이었다. 아이의 마음속에 그런 모순이 쉽게 공존할 수 있는 건, 그만큼 아이에게 생명력이 있기 때문이다. 아이는 어른이 하는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받아들이되 안 그럴 방법이 있는가?) 아이의 생기 있는 신체와 물질세계의 달콤함은 아이에게다른 얘기를 해준다. 지옥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열네 살 무렵까지 공식적으로는 지옥을 믿었다. 지옥은 거의 확실히 존재하는 것이었으며, 생생한 설교에 몸이 떨릴 정도로 공포스러울 때도 있었다.  - P412

세인트 시프리언스에서 내놓는 여러 규범들(종교적, 도덕적, 사회적 지적 규범들은 그것들이 암시하는 바를 따져보면 서로 모순되기 십상이었다. 그것은 본질적으로 19세기의 금욕주의 전통과 1914년 이전 시대의사치 및 속물근성 사이의 충돌이었다. 한편에는 교회파 성서 기독교 성적인 청교도주의, 근면에 대한 강조, 학문적 능력에 대한 존중,
방종에 대한 반감이 있었다. 그리고 다른 한편에는 ‘똑똑함‘에 대한 경멸과 운동경기에 대한 숭배, 외국인과 노동계급에 대한 멸시, 가난에 대한 신경증적 공포, 그리고 무엇보다, 돈과 특권은 중요한 것이며 그것을자기 힘으로 이루는 것보다 물려받는 게 낫다는 사고방식이 있었던 것이다. 대체로 말해서 그것은 기독교인인 동시에 사회적으로 성공을 하라는, 불가능한 명령이었다. 나는 우리에게 제시된 여러 이상들이 서로 상쇄되어 무효가 된다는 것을 당시에는 간파하지 못했다. 내가 알았던 건 그것들이 모두(또는 거의 다) 나로서는 얻을 수 없는 것들이라는 사실뿐이었다. 모든 게 내가 무엇을 하느냐뿐만 아니라 내가 어떤신분이냐에도 달려 있었던 것이다. - P413

그래서 제일 중요한 건 축구였는데, 나로서는 젬병이었다. 나는 축구를 아주 싫어했다. 그러니 축구에서 무슨 재미나 가치를 발견할 수 없었고, 축구를 하며 나의 담력을 보여준다는 건대단히 어려운 일이었다. 내가 보기에 축구는 딱히 공 차는 재미 때문에하는 게 아니라 일종의 싸움박질이었다. 축구를 좋아하는 아이들은 자기보다 조금이라도 작은 아이들을 때려눕히고 짓밟는 데 능한 크고, 난폭하고, 속임수에 능한 아이들이었다. 학교생활 돌아가는 게 그런 식이었다. 언제나 강자가 약자에게 승리를 거두었던 것이다. 미덕은 이기는데 있었다. 즉, 미덕이란 남들보다 더 크고, 강하고, 잘생기고, 부유하고, 인기 좋고, 세련되고, 거리낌 없는 데 있었다. 달리 말해 남을 지배하고, 괴롭히고, 고통스럽게 하고, 바보 같아 보이게 하며, 모든 면에서남보다 앞서는 데 있었던 것이다. 삶이란 본래 위아래가 있어서 무슨 일이 벌어지든 그 자체가 옳은 일이었다. 강자가 있어 그들은 이겨 마땅하고 언제나 이겼으며, 약자가 있어 그들은 져 마땅하고 언제나, 끝없이지기만 했다.
- P419

나는 돈도 없고, 약하고, 못생기고, 인기 없고,
기침을 달고 다니고, 겁 많고, 냄새나는 아이였던 것이다. 이런 면모가내 공상만은 아니었다는 점을 덧붙여 말할 필요가 있다. 나는 매력 없는소년이었다. 설령 그 전에는 아니었다 하더라도 세인트 시프리언스는금세 나를 그렇게 만들었다. 하지만 아이가 자기 결점에 대해 갖는 믿음은 실제 사실에 크게 영향받는 게 아니다. 예컨대 나는 내가 ‘냄새난다‘
고 믿었는데, 순전히 개연성만을 근거로 한 판단이었다. 비위에 거슬리는 사람은 냄새가 난다고 하기 십상이었기에, 나 역시 지레짐작으로 그렇게 단정지어버린 것이다. 또한 나는 그 학교를 영영 떠난 뒤로도 내가초자연적으로 못생겼다는 믿음을 버리지 못했다. 그건 내 학우들이 한말이었고, 나로서는 참고할 만한 다른 근거가 없었던 것이다. 내가 성공한다는 건 ‘가능하지 않은 일이라는 확신은 어른이 된 지 한참이 지나서까지 내 행동에 아주 깊은 영향을 끼쳤다. 나는 서른 살 무렵까지 내인생 설계를 할 때면 언제나 큰일을 맡다간 반드시 실패할 수밖에 없을뿐만 아니라 앞으로 몇 년밖에 더 살지 못한다는 가정을 따랐다. - P422

한편으로 그런 자괴감과 반드시 실패한다는 예감을 상쇄하는 것이있었으니, 생존 본능이란 것이었다. 약하고, 못생기고, 겁 많고, 냄새나고, 그럴싸한 데라곤 없는 존재일지라도 살고 싶으며 나름대로 행복하고 싶은 욕구가 있는 것이다. 나는 기존의 가치 체계를 뒤집거나 성공하는 존재로 변모할 수는 없었지만, 내 실패를 받아들이고 나름대로최선을 다할 수는 있었다. 그리고 내 처지를 감수하여 분에 맞게 살아남으려고 노력할 수 있었다.
살아남는다는 것, 또는 적어도 나름의 독자성을 유지하는 것은 범죄나 마찬가지였다. - P422

적어도 그게 그녀의 표정에서 내가 읽을 수 있는 것이었다. 그럼에도그 겨울날 아침 기차가 나를 싣고 떠날 때 나는 얼마나 행복했던가. 빛나는(내 기억이 맞다면 짙은 녹색에 밝은 파랑에 검정이었다) 새 실크 넥타이를 목에 감고서! 마치 잿빛 하늘에 파란 균열이 난 것처럼, 세상이 내 앞에 아주 조금이나마 열리고 있었다. 사립학교는 근본적으론 마찬가지로나와는 이질적인 곳일 테지만, 세인트 시프리언스보다는 재미가 있을것이었다. 가장 필수적인 것이 돈, 작위 가진 친척, 운동 실력, 재단사가만든 옷, 단정히 다듬은 머리, 매력적인 미소인 세계에서 나는 변변찮은존재였다. 그곳에서 내가 확보한 것이라곤 숨 쉴 만한 공간뿐이었다. 약간의 정적, 약간의 방종, 벼락공부로부터의 약간의 유예-그리고 그다음은, 몰락, 어떤 종류의 몰락일지는 나도 몰랐다. 식민지나 사무실 걸상, 아니면 감옥이나 요절일지도 몰랐다. 아무튼 처음 한두 해는 느긋하게 지내면서 파우스트 박사처럼 죄의 단맛을 보는 게 가능할 것이었다. - P427

나는 내 운명이 궂으리라 믿으면서도 너무나 행복했다. 순간을 즐기며살 뿐만 아니라 그 사실을 충분히 의식하면서 그럴 수 있다는 것, 장래를 예상하되 걱정은 안 할 수 있다는 것은, 열세 살 나이의 장점이다. 다음 학기에 나는 웰링턴에 가게 되어 있었다. 이튼 장학금도 탔지만 결원이 날지 확실치 않아 웰링턴에 먼저 가야 했다. 이튼에는 자기 방이 따로 있었고, 방에 벽난로가 있는 경우도 있었다. 웰링턴에도 작지만 자기방이 있었는데, 저녁이면 손수 코코아도 타먹을 수 있었다. 그런 사생활과 어른 대접이란! 도서관에 가서 어정거려도 되고, 여름날 오후 운동경기를 피해 교장의 인솔 같은 것 없이 혼자 전원으로 나가 빈둥거려도될 터였다. 게다가 당장은 방학이었다.  - P427

이 모든 게 30년도 더 지난 일이다. 그렇다면 한가지 질문 지금 학교에 다니는 아이들도 같은 식의 경험을 할까?
정직한 답은 ‘우리는 확실히 모른다‘ 뿐일 것이다. 물론 교육을 대하는 오늘의 ‘태도‘ 야 과거에 비한다면 엄청나게 더 인간적이고 분별 있는 게 분명하다. 내가 받은 교육의 핵심이었던 속물근성은 지금은 거의 생각하기도 힘들 정도다. 그런 것을 조장하던 사회 자체가 죽어버렸기 때문이다. 세인트 시프리언스를 떠나기 1년 전쯤에 했던 대화가떠오른다. 크고 금발이며 나보다 한 살 많았던 러시아 아이 하나가 내게 물었다. - P429

더 낫게 느껴지라고 내가 짐작한 액수에 몇백 파운드를 더해서 말했다. 단정한 걸 좋아하던 러시아 소년은 연필과 수첩을 꺼내더니 계산을하기 시작했다.
"우리 아버진 너네 아버지보다 200배 이상을 버는구나." 그는 제법깔보듯 흐뭇해하며 그렇게 말했다.
그게 1915년의 일이었다. 몇 해 뒤에 그 돈이 다 어떻게 됐을지 자못 궁금하다. 그보다 더 궁금한 건 과연 그런 식의 대화를 요즘 예비학교에서도 하는가 하는 점이다.
확실히 세계관이 많이 변했고, 사람들의 ‘계몽‘ 수준이 별 생각 없이 - P429

사는 일반 중산층의 경우에도 전반적으로 높아졌다. 이를테면 종교적인신념도 다른 종류의 난센스들과 함께 대부분 사라졌다. 요즘은 아이한테 자위를 하면 정신병원에 끌려갈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은 아주 적을것이다. 매질도 신뢰성이 크게 떨어져서, 많은 학교에서 아예 하질 않고있다. 충분히 먹이지 않는 것도 더는 정상적이며 칭찬할 만한 행동으로간주되지 않는다. 이제는 공공연히 학생들한테 되도록이면 음식을 적게주려고 하는 사람이 없을 것이며, 식사는 앉을 때만큼 배고픈 채 일어날정도로 하는 게 건강에 좋다는 말을 하는 사람도 없을 것이다. 아이들의지위는 전반적으로 향상됐는데, 부분적으론 아이들 수가 상대적으로 줄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약간의 심리학 지식이 전파됨에 따라 부모와 교사가 훈육이란 이름으로 자신의 일탈에 탐닉하는 게 더 힘들어졌다.  - P430

두려움과 수줍음이 더해져 이루어진 베일에 의해 차단된 기분이었다.
사람들은 아이가 어른에게서 ‘신체적인 위축감을 느낀다는 사실을 너무 쉽게 망각하는 경향이 있다. 성인의 거대한 몸집, 볼품없고 뻣뻣한신체, 거칠고 주름진 피부, 축 처진 눈꺼풀, 누런 치아, 그리고 움직일때마다 풍기는 퀴퀴한 옷과 맥주와 땀과 담배의 냄새! 아이에게 어른이못나 보이는 이유 중 하나는, 아이는 대개 밑에서 위로 올려다보며, 그렇게 봤을 때 최상인 얼굴은 거의 없다는 점이다. 게다가 아이는 자기자신이 모든 면에서 생기 넘치고 깨끗하기 때문에 피부나 치아나 혈색에 대하여 지극히 높은 기준을 갖고 있다. 그런가 하면 무엇보다 가장큰 장벽은 아이가 나이에 대해 갖는 착각이다. 아이는 서른 이후의 삶을잘 상상하지 못하며, 사람의 나이를 판단할 때 엄청난 실수를 범한다.
이를테면 스물다섯인 사람을 마흔으로 보고, 마흔인 사람을 예순다섯으로 보는 식이다.  - P432

그리고 아이는 나이 먹는 일을 거의 가당찮은 재앙처럼 여긴다. 무슨 신비로운 이유 때문에 자기한테는 절대 일어나지 않을일로 보는 것이다. 때문에 아이가 보기에, 서른이 넘은 사람은 누구나조금도 중요하지 않은 일에 대해 끊임없이 떠들어대고, 살아가는 이유도 없이 그냥 살아 있는 즐거움이라곤 없는 괴상한 존재인 것이다. 아이가 보기엔 아이의 삶만이 진짜 삶이다. 학동들의 사랑과 신뢰를 받고있다고 생각하는 학교장이 있을지 모르겠는데, 실제로는 아이들이 등뒤에서 그를 흉내내며 웃고 있다. 위험해 보이지 않는 어른은 거의 항상우스워 보이는 것이다. - P432

자신의 어린 시절을 돌이켜보고, 자신이 믿던 난센스와 자신을괜히 괴롭히던 사소한 문제에 대해 생각해보자. 물론 내 사례는 나름의변주가 있는 경험이겠지만, 본질적으로 무수한 다른 아이들의 그것이기도 하다. 아이들의 약점은 백지 상태에서 출발한다는 것이다. 아이는 자신이 사는 사회를 이해하지도 못하고 의문시하지도 않는다. 아이는 그렇게 잘 믿기 때문에 어른한테 영향받기 쉬우며, 그만큼 열등감에 물들거나 불가사의하고 끔찍한 법을 어기는 데 대한 공포감에 휘둘리기 쉽다. 세인트 시프리언스에서 나에게 일어났던 모든 일은 가장 ‘계몽‘ 된학교에서도(보다 미묘한 방식일진 몰라도)  - P434

작가와 리바이어던


국가 통제의 시대에 사는 작가의 위치는 이미 꽤 많은 논의가 있었던주제다. 관련이 있을 만한 대부분의 증거를 아직 입수할 수 없는 형편이지만 말이다. 그런 상황에서 나는 국가가 예술을 후원하는 것에 대한 찬반 의견을 표명하고 싶지는 않으며, 다만 국가가 국민에 대하여 행사하는 ‘어떤 유형‘의 통제는 지배적인 지적 분위기에 어느 정도 의존할 수밖에 없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을 뿐이다. 달리 말해 여기서는 어느 정도작가와 예술가 자신들의 태도에, 그리고 그들이 자유주의 정신을 기꺼이 지켜나가겠다는 자세 같은 것에 달려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은 것이다. 앞으로 10년 뒤에 우리가 즈다노프 같은 이 앞에서 굽실거리고있다면, 그건 아마도 그런 현실을 자초한 우리 자신의 책임일 것이다. - P437

영국 문단의 지식인들 사이에선 이미 전체주의로 가는 유력한 경향이선명하게 드러나고 있다. 단, 여기서 나는 공산주의처럼 조직화되고 의식화된 운동에는 관심이 없다. 정치적인 사고가 선의를 가진 사람들에게 끼치는 영향, 그리고 정치적으로 어느 편을 들어야 할지에 대한 필요성에 관심이 있을 뿐이다.
지금은 정치적인 시대다. 전쟁, 파시즘, 집단수용소, 경찰, 원자탄등등은 우리가 매일같이 생각하는 주제이며, 그래서 대놓고 거론하지는않더라도 상당 부분 우리가 쓰는 글의 주제가 되었다. 이는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만일 우리가 가라앉는 배에 있다면 우리의 생각은 가라앉는배에 관한 것이 될 터이다. 그런데 지금 우리의 주제는 협소해졌을 뿐만아니라, 문학에 대한 우리의 태도 역시 우리가 적어도 이따금은 비문학적이라고 자각하는 충심에 완전히 물들어 있다. 나는 시절이 아무리 좋을 때라도 문학평론은 사기라는 느낌을 종종 받곤 했다.  - P438

물론 정치가 문학을 침범하는 현상은 벌어질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그것은 전체주의라는 특별한 문제가 생기지 않았어도 분명히 발생했을것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우리의 조부모들은 느끼지 않았던 일종의 양심의 가책을 세상의 엄청난 불의와 비참에 대한 자각을, 그런 세상을어떻게 해야 한다는 죄책감을 키우게 되었으며, 그런 죄책감 때문에 삶에 대해 순전히 미학적인 태도를 취하는 게 불가능해졌기 때문이다. 이제는 누구도 조이스나 헨리 제임스 같이 오로지 문학에만 전념할 수는없게 되었다.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이제는 정치적 책임을 받아들인다는게 정통성이나 ‘당 노선에 자신을 내어준다는 뜻이 되어버렸으며, 아울러 온갖 소심함과 불성실이 수반된다는 뜻이 되어버렸다. 빅토리아시대의 작가들과 비교해볼 때, 우리는 정치 이데올로기들이 확연히 구분되며, 얼핏 보기만 해도 어떤 생각이 이단인지를 대략 알 수 있는 시대에 산다는 불리함을 안고 있다. - P439

그보다 내가 강조하고 싶은 바는, 이런 문제를 좌파 이데올로기에 충실한 사람들과는 허심탄회하게 논의할 수 없다는 점이다.
임금을 낮추고 노동시간을 늘리는 일은 생래적으로 반사회주의적인 조치라 생각되기 때문에, 경제 상황이야 어떻든 아예 논의 대상에서 제외돼야 할 문제다. 그런 조치가 불가피하다는 주장을 하는 사람은 우리 모두가 두려워하는 딱지들이 붙을 각오를 해야 한다. 그러니 이런 문제는일단 비켜가고 기존의 국민소득 재분배함으로써 모든 걸 바로잡을 수있는 척하는 게 훨씬 안전한 것이다.
정통성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언제나 해결되지 않은 모순을 이어받는 일이다. 이를테면 민감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산업주의와 그 산물에반감을 느끼면서도, 빈곤을 타파하고 노동계급을 해방하기 위해서는산업화가 덜 필요한 게 아니라 더욱더 필요하다는 것을 안다는 사실을생각해보자.  - P443

물론 나는 양심적 불성실이 사회주의자들과 좌파 세력 일반에게 특수하거나 아주 흔한 속성이라는 주장을 하는 게 아니다. ‘어떤 정치 이념을 받아들이면 문학적 성실성을 지키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을 뿐이다. 이는 일반적인 정치투쟁의 영역 밖에 있다는 주장들을 하는 평화주의나 개인주의 같은 운동에도 똑같이 적용된다. 사실무슨 주의ism로 끝나는 말은 소리만 들어도 선전의 냄새가 나는 것 같다. 집단에 대한 충심은 필요하긴 하지만, 문학이 개인의 창작물인 한에서는 문학에 독이 된다. 그런 충심이 창조적인 글쓰기에 어떤 영향을,
심지어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게 된다면, 창의성이 왜곡될 뿐만 아니라사실상 고사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정치와 거리는 두는 게 모든 작가의본분이라는 결론을 내려야 하는가? 결코 그렇지 않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지금 같은 시대에는 생각이 있는 사람치고 진정으로 정치와 거리를둘 수 있거나 실제로 그러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 P444

다른 어느 누구와도 마찬가지로, 그는 찬바람 새는 회관에서 연설을 하고, 길바닥에 분필로 글을 쓰고, 투표를 호소하고, 전단을 나눠주고, 심지어 필요하다 싶으면 내전에 참가할 각오도 되어 있어야 한다. 단, 자기 당에 대한 봉사로 다른 건 무엇이든 해도 좋지만 당을 위해 글을 쓰는 것만큼은 하지 말아야 한다. 그는 자신의 글이당과는 무관한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해야 한다. 그리고 원한다면 당의공식 이데올로기를 철저히 거부하면서도 당에 협력할 수 있어야 한다.
자신의 생각이 이단에 다다를지라도 그런 사고의 과정에 등을 돌려서는안 되며, 자신의 비정통성이 남들에게 감지되더라도 너무 개의치 말아야 한다. 오늘날엔 작가가 반동적인 성향이 있다는 의심을 사지 않을 경우, 좋은 작가는 아니라는 증표가 될 수도 있다. 20년 전에는 공산주의에 동정적이라는 의심을 사지 않으면 좋은 작가가 아니라는 증표였듯말이다. - P445

창의성 있는 작가가 격동기에 자기 삶을 두 영역으로 나눠야겠다는뜻을 내비친다면, 패배주의자 아니면 어리석은 자로 보일 것이다. 하지만 나는 실제로 그가 달리 무엇을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스스로를 상아탑에 가두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며 바람직하지도 않다. 당의 기구는물론이고 집단 이데올로기에도 자발적으로 굴복한다는 것은 작가로서의 자신을 죽이는 일이다. 우리는 이런 딜레마가 고통스러운 것임을 안다. 정치에 관여할 필요성을 느끼되 그게 얼마나 지저분하고 품위 없는일인지를 알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들 대부분은 모든 선택이, 그리고모든 정치적인 선택 역시 선과 악의 문제이며, 필요한 일은 옳은 일이기도 하다는 오래 이어져온 신념을 아직도 갖고 있다. 나는 우리가 탁아소에나 어울리는 그런 신념을 버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정치에선 둘 중어느 쪽이 덜 악한지를 판단하는 것 이상은 결코 있을 수 없으며, 악마나미치광이처럼 행동해야만 가까스로 탈출할 수 있는 상황들이 있다.  - P446

이를테면 전쟁은 필요할 수도 있지만 옳거나 온전한 일이 분명코 아닌 것이다. 심지어 총선도 딱히 유쾌하거나 그리 바람직한 일이 아니다. 따라서 그런 일들에 관여하게 된다면(나는 노년이나 우둔함이나 위선의 갑옷을입은 게 아닌 한 마땅히 그래야 한다고 생각한다) 자신의 일부는 불가침 영역으로 남겨두어야 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겐, 생활이 이미 분리되어 있기 때문에 같은 형태의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다. 그들은 여가시간에만진정으로 살아 있으며, 그들의 일과 정치 활동 사이에는 아무 정서적 연결고리가 없다. 또한 그들은 노동자로서 정치적 충심이라는 이름으로스스로의 품위를 떨어뜨리도록 요구받는 일이 없는 게 보통이다. 그에비해 예술가는, 특히 작가는 바로 그런 요구를 받는다. 사실 그것은 정 - P446

치인들이 그에게 유일하게 요구하는 바다. 그런 요구를 거부한다고 해서 아무것도 못하게 되는 건 아니다. 어떤 의미에서 그의 전부이기도 한- 그의 절반은 다른 누구 못지않게 단호하게 필요하면 누구보다 맹렬하게 활동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의 글은 어떤 가치를 갖는 한 언제나 보다 온전한 자신에게서 나오는 것이다. 가담하지 않은 채 사태를기록하고 사태의 필요성을 인정하되 속아서 사태의 본질을 잘못 보게되기를 거부하는 절반의 자신 말이다. - P447

간디에 대한 소견


성인이라면 모름지기 결백이 입증될 때까지는 유죄 판결을 받아마땅할 것이다. 단, 성인이 거쳐야 할 시험은 물론 모든 경우에 똑같지는 않다. 간디의 경우 던져봤으면 싶은 질문은 이런 것들이다. 간디는얼마만큼이나 허영 (즉 자신을 기도방석에 앉아 영적인 힘으로만 제국들을 떨게 만드는 수수하고 벌거벗은 노인으로 의식하는 것)에 이끌려 행동했을까?
그리고 본질적으로 강제 및 사기와 불가분의 관계인 정치에 입문함으로써 자신의 원칙과 얼마만큼 타협했을까? 정답을 얻으려면 간디의 행적과 글을 아주 꼼꼼히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그의 온 삶은 행동 하나하나가 의미심장한 일종의 순례였기 때문이다. 1920년대로 끝나기에 부 - P449

분적이라 할 그의 자서전‘은 그의 편이 되어주는 강력한 증거인데, 그가그의 삶에서 거듭나지 못한 부분이라 말할 면모를 가려주고, 성인으로서의 면모 속에 그가 원하기만 했다면 변호사나 행정가나 심지어 사업가로서 눈부신 성공을 거두었을지도 모를 대단한 수완과 능력도 있었다는 점을 상기시켜주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자서전이 처음 신문에 연재될 무렵, 나는 인쇄 상태가 엉망인 어느 인도 신문에서 첫 몇 장을 읽은 기억이 난다. 그 글들은 나에게 좋은 인상을 남겼는데, 그때도 간디 자체에 대한 인상은 좋은 게 아니었다. 간디 하면 연상되는 것(손수 짜는 천, ‘영혼의 힘‘, 채식주의)은 매력적인 게 아니었고, 그의 중세 찬미적 강령은 굶주리고 인구 과밀인 후진국에서는확실히 실현 가능한 게 아니었다. - P450

선을 추구하는 사람은 그 누구의 절친한 친구가 되어서도,
독점적인 연인이 되어서도 안 된다는 것이다.
간디는 절친한 친구가 위험한 것은 "친구끼리는 서로에게 반응하기"
때문이며, 친구에게 충실하다보면 잘못을 저지르게 마련이라고 말한다.
이는 의심할 바 없이 맞는 말이다. 게다가 하느님이나 인류를 사랑하려면, 특정 개인을 선호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이 역시 맞는 말인데, 이지점에서부터 인본주의적 태도와 종교적 태도가 더 이상 조화를 이룰수 없게 된다. 보통의 인간에게 사랑이란 것은 남들보다 어떤 누구를 더좋아하는 게 아니라면 아무 의미도 없는 것이다.  - P454

그런데 간디의 평화주의는 그의 다른 가르침과 어느 정도 분리될 수있다. 그것의 동기는 종교적이었지만, 그는 그것이 바라는 정치적 결과를 얻어낼 수 있는 분명한 테크닉 또는 방안이라 주장하기도 했다. 간디의 태도는 서구 평화주의자 대부분의 그것과는 달랐다. 그가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처음으로 발전시킨 사티아그라하‘ 정신은 일종의 비폭력 전투행위였다. 달리 말해 자기도 다치지 않고 증오를 느끼거나 불러일으키지도 않으면서 적을 무찌르는 방법이었던 것이다. 그것은 시민불복종이나 파업, 기찻길 앞에 드러눕기, 경찰의 돌격에 달아나지도 받아치지도 않고서 버티기 등과 같은 행위를 수반했다. 간디는 사티아그라하‘를 ‘수동적 저항‘이라 번역하는 데 반대했다. - P456

누군가가 단추를 눌러 로켓들이 마구 날아다니게 되기 전, 우리에게 남은 몇 년 안에 말이다. 문명이 또 한 번의 대전을 버텨낼 수 있을지는 의문스러우며, 적어도 출구는 비폭력이라는 생각을 해볼 만하다. 간디는 위에서 내가 제기한 것과 같은 식의 질문에 정직하게 고민해볼 준비가 되어 있었을 것이고, 그게 간디의 장점이다. 실제로 그는 그가 쓴 수많은 신문 사설들 어디에서인가 그런 질문들을 다루었을지 모른다. 우리는 그가 이해하지 못한 것이 많긴 했지만 그가 말하거나 생각하기를 두려워한 것은 하나도 없었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나는 간디를별로 좋아할 수는 없었지만, 정치사상가로서의 그가 대체로 부적절했다고 확신할 수는 없으며, 그의 삶이 실패였다고 생각지도 않는다. 그가암살당했을 때, 그를 흠모한 많은 사람들이 그가 자신의 인생 역작이 망가지는 모습을 보게 될 정도만큼만 오래 살았다며 비탄했다는 건 좀 이상하다. 왜냐하면 인도가 내전에 빠져든 것은 권력 이양의 부산물로서언제나 예견되었던 바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간디가 인생을 바쳐 한일은 힌두교도와 이슬람교도의 대결을 진정시키는 게 아니었다. 그의 주된 정치적 목표는 영국의 지배를 평화롭게 종식시키는 것이었으며, 그것은 결국 성취되었다. - P459

다른 한편으로, 이 사건을 주도한건 노동당 정부인데, 보수당 정권 특히 처칠이 수반인 정부였다면 크게달라졌을 게 분명한 일이었다. 그렇다면 1945년에 영국에서 인도의 독립에 동정적인 여론이 크게 일었다고 할 경우, 간디 개인의 영향력은 어느 정도였을까? 그리고, 만일 인도와 영국이 결국 점잖고 우호적인 관계를 맺게 된다면(그럴 만한 일이다), 끝까지 증오 없이 집요한 투쟁을 전개함으로써 정치의 공기를 소독한 간디가 기여한 바는 얼마만큼일까?
이런 질문들을 생각해볼 수 있다는 자체가 간디의 위상이 어느 정도인지를 말해준다. 내가 그랬듯이 우리는 간디를 미학적으로 싫어할 수 있고, 그를 성인으로 추대하자는 주장을 거부할 수도 있다(간디 자신은 그런주장을 한 적이 없다). 성인됨이라는 것 자체를 이상으로 받아들이기를 거부하고, 그때문에 간디가 기본적으로 추구한 바를 반인간적이고 반동적인 것으로 여길 수도 있다. 그러나 그를 정치인으로만 볼 때, 그리고 우리 시대의 다른 유력 정치인들과 비교해볼 때, 그가 남긴 향기는 얼마나 맑은가! - P460

역자 후기


언어의 타락과 오늘의 글쓰기


"우리 시대에 정치적인 말과 글은 주로 변호할 수 없는 것을 변호하는 데 쓰인다"
- 「정치와 영어」


"예술은 정치와 무관해야 한다는 의견 자체가 정치적 태도인 것이다."
- 「나는 왜 쓰는가」


1950년 이전에 활동한 작가 중에 오늘날 조지 오웰(1903~1950)만큼널리 읽히는 이는 많지 않다. 오웰이란 작가를 아는사람들 대부분은 그의 이름을 들으면 우선 『동물농장』과 『1984』부터 떠올리게 된다. 그럴만도 한 게, 이 두 소설은 10년 전쯤의 추정에 따르자면 공식 영어판만4000만 부 이상이 팔렸다고 할 정도로 엄청난 인기를 누린, 그의 대표작인 것이다. 그런데 이 두 소설은 작가이자 저널리스트로서 생계를 꾸리기 위해 그가 쓴 어마어마한 양의 저술 중에서 그야말로 빙산의 일각이라 해도 좋을 만큼 적은 일부에 불과하다. 그는 생전에 11권(소설 6권,
르포 3권, 에세이집 2권의 책을 낸 것 말고도 수백 편의 길고 짧은 에세이 - P474

를 썼는데(서평과 칼럼 등을 포함해서다) 그의 에세이는 미국의 한 평론가가 그를 18세기 영국 문단 최고의 문사였던 사무엘 존슨 이후 최고의에세이스트로 꼽을 만큼 탁월하다.
생전에 책으로 다 묶이지 못했던 그의 에세이들은 사후에 다종다양한에세이집으로 계속해서 묶여 나오고 있다. 본 에세이집은 지금 우리에게 보다 큰 의미를 줄 수 있다 싶은 오웰의 에세이들을 양적으로 다소무리가 따르더라도 한 권의 책으로 묶어보자는 시도의 결과물이다. 오웰의 그 많은 에세이들을 일일이 꼼꼼히 읽어보고 선별한다는 것은 나에게 허락된 시간과 능력으로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하지만 오웰의 산문 중 생전에 단행본으로 출간된 소설과 르포 이외의 중요한 글들을 모은 저작집"에서 오늘의 우리에게도 울림이 클 만한 에세이를 골라 번역것은 어렵긴 해도 보람 있는 작업이었다. 오웰의 글이 매력적인 것은 문체 자체가 간결하고 명쾌할 뿐만 아니라 예리한 통찰, 특유의 유머와 독설이 빛나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그런 글을 쓰기 위해서는 그만큼 독특한 개성과 경험이 있어야 했을 텐데, 여기서 그의 별난 이력과면모를 간단히 소개할 필요가 있겠다. - P475

"자유라는 게 무슨 의미가 있다면, 남들이 듣기 싫어하는 소리를 그들에게 할 권리일 것이다." 오웰의 전기‘를 쓴 피터 루이스는 『동물농장』의 미발표 서문에 나온다는 이 말이 오웰의 개성을 단적으로 잘 드러내준다고 말한다. 오웰은 "고약한 양심의 가책‘ 때문에 자신이 누리던 특권을 내팽개친 사람이다. 그는 사립 명문 이튼 졸업생으로선 유일하게대학을 포기하고 식민지 경찰이 되었고, 안정된 경찰 간부직을 포기하 - P475

고서 부랑자나 접시닦이가 되었다. 2차대전 전에는 런던에서 문단 사람들과 어울리기보다는 시골 마을에서 작은 가게를 하며 텃밭을 일구는생활을 했고, 전쟁 후 명사가 되었을 때는 한적한 섬에서 은거하는 쪽을택했다. 그런 그를 동시대 소설가 V. S. 프리체트Pritchett는 "자국 내에서 원주민이 되어버린 사람이라고 했다. 오웰은 자기 이력을 통해 패턴과 인습을 거부한 작가였던 것이다. 또한 그는 인간의 모순적이고 역설적이고 비이성적인 면에 주목한 작가이기도 했는데, 그 점은 본 에세이집의 어느 글을 보아도 뚜렷이 드러나는 그의 개성이지 싶다.
책의 제목을 ‘나는 왜 쓰는가‘로 한 것은, 같은 제목의 에세이가 그의문학론과 정치적 입장을 단적으로 가장 잘 대변해주며, 작가로서의 자신에 대한 짤막한 자서전으로 봐도 좋을 상징적이고 대표적인 작품이기때문이다.  - P476

그는 또 이 에세이에서 정치와 문학은 별개가 아니며, 어떤글쓰기도 정치적 편향으로부터 진정으로 자유로울 수는 없다는 입장을피력한다. 그렇다고 오웰을 정치적이기만 한 작가로 본다면 큰 오산이다. 작가로서의 그에겐 "정치적인 글쓰기를 예술로 만드는 일"이 가장큰 관심사였던 것이다. 그는 또 작가가 정치적인 활동은 하되 일반 시민으로서 개입해야지 작가로서 어떤 정치 노선에 따라 글을 쓰는 것만큼은 거부할 줄 알아야 한다고 경고한다.(작가와 리바이어던) 정치적 충심에 따라 행동하는 자신과 작가적 예술가적 양심에 따라 글을 쓰는 자신을 구분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조금 다른 얘기일지 모르지만 나는개인적으로 오웰의 에세이들 중에 평론적인 글보다는 소설가적 면모가드러나는 경험적인 글이 더 좋았다. 물론 어느 한쪽만이 부각된 오웰은작가 오웰의 온전한 모습이 아닐 테지만 말이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가 작가 오웰에게서 구할 수 있는 미덕은 무엇일 - P476

까? 언어에 민감한 사람이라면, 심지어 업으로든 아니든 글쓰기를 하는사람이라면, 오웰이 주목한 언어의 타락(정치와 영어」)에 대하여 오늘우리의 현실을 외면할 수 없을 것이다. 어머니의 젖줄에 비유되는 강을파헤치고 댐을 쌓아 물을 가두는 일을 강 ‘살리기‘ 라 부르고 ‘녹색‘뉴딜이라 일컫는다. 오웰은 말한다. 생각이 언어를 타락시킬 수 있다면 언어도 생각을 타락시킬 수 있다고 죽이면서 살린다고 하고, 나무와 습지를 파내면서 ‘녹색‘ 이라고 하는 것은 1984』의 전체주의 사회에서 선전을 담당하는 기관이 "전쟁은 평화/자유는 예속/무지는 힘"이라는 슬로건을 내거는 것과 다를 바가 전혀 없다(더구나 이 기관의 이름은 "진실"부다). 이대로 간다면 우리는 전쟁이 나도 평화인 줄 알고, 노예가 되어도자유로운 줄 알고, 모르는 게 자랑인 줄 알며 살게 될 것이다. 하물며 비판은 못할지언정 "변호할 수 없는 것을 변호하는 일에, 그런 타락에 곡학아세하며 동조해서야 되겠는가? - P477

마지막으로 이 에세이집의 구성에 대해 간략한 소개를 하고자 한다.
여기에 실린 29편의 에세이들은 오웰이 글을 써서 발표한 시기에 맞춰순차적으로 배열을 했다. 그리고 각 작품이 발표된 시기의 정황에 대한이해를 돕도록 각주를 달았고, 책의 맨 뒤에는 상세한 오웰 연보를 붙여두었다. 더구나 자전적인 소설처럼 읽히는 작품들이 있는가 하면, 시대상을 반영하는 논평 같은 글들도 있으니 이 한 권의 에세이집은 오웰의자서전 같은 역할을 할 수도 있으리라 본다. 오웰은 생전에 자신의 전기를 쓰지 말라는 부탁을 했고, 그래봤자 물론 사후에 많은 전기들이 쏟아져 나오고 말았는데, 실은 그의 작품들 곳곳에 자전적인 서술이 있으며그것은 에세이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인 것이다. 아울러 각주를 300개 이상단 것은, 오웰의 글이 60여 년 세월이 흐른 지금도 오늘의 어떤 영미 - P477

계 작가보다도 잘 읽히는 명쾌한 문체로 씌어졌지만, 시간적으로나 지리적으로나 문화적으로나 오늘의 우리와 거리감이 있는 부분도 있기에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불가피한 일이었다. 그리고 기술 진보의 아이러니라고 할까, 각주의 대부분을 ‘위키피디아‘ 라는 인터넷 백과사전에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어렵고 기나긴 작업을 무사히 마칠 수 있었던 데에는 걸으면서 마음을 달랠 수 있게 해준 동네 뒷산의 도움이 무엇보다컸다.  - P4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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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꺼비 단상


제비보다 먼저, 수선화보다 먼저, 아네모네보다 조금 늦게, 두꺼비는봄이 다시 찾아온 것에 대해 나름의 경의를 표한다. 지난가을부터 들어가 누워 있던 땅속 구멍에서 나와 가장 가까이 있는 적당한 물웅덩이 쪽으로 최대한 빨리 기어가는 것이다. 무언가가(땅속의 어떤 떨림인지 아니면그냥 온도가 몇 도 올라서인지 잘은 모르지만) 두꺼비에게 깨어날 때가 되었다고 말해준 것이다. 그런가 하면 몇 마리는 내내 잠만 자다 한 해를 아예 빼먹기도 하는 것 같다. 한여름에 땅을 파다가 멀쩡한 모습으로 잠들어 있는 두꺼비를 몇 번이고 본 적이 있으니 말이다.
이 무렵 두꺼비는 오래 굶주린 뒤라 대단히 영적인 모습인 것이 흡사사순절 막바지에 다다른 엄격한 가톨릭 신자 같다. 동작은 늘어진 듯하면서도 목표가 뚜렷해 보이며, 몸이 오그라들어 눈은 유난히 커 보인다.
때문에 우리는 다른 때엔 느낄 수 없을지 모르지만, 두꺼비가 다른 어떤동물보다도 아름다운 눈을 가졌다는 것을 알게 된다.  - P277

물에 들어간 뒤 며칠 동안 두꺼비는 작은 벌레들을 잡아먹으며 원기를 회복한다. 그러면서 곧 본래의 몸집도 되찾게 되며, 이윽고 강렬한성생활 단계를 거치게 된다. 그가 아는 것이란(아무튼 수컷이라고 할 때)무언가를 얼싸안고 싶다는 것뿐이다. 그래서 녀석에게 막대기나 손가락이라도 내밀어보면, 높은 놀라운 힘으로 그것에 단단히 들러붙어 그것이 암컷 두꺼비라도 되는지 한참을 살펴본다. 두꺼비 열 마리 스무 마리가 물에서 한 덩어리로 아무렇게나 뒤엉켜 있는, 그것도 성별 구분 없이아무하고나 붙어 있는 모습도 흔히 볼 수 있다. 그러다 그것들은 점차서로를 가려내어 이성과 하나씩 짝을 지으며, 결국 수컷이 암컷의 등에맞춤하게 올라탄다. 그때부터 보는 사람은 암수를 구분할 수 있게 된다.
수컷이 더 작고 짙으며, 암컷의 목에 팔을 단단히 휘감고서 올라타 있기때문이다. 하루나 이틀 뒤면 암컷은 기다란 줄 모양으로 알을 낳으며,
그것은 갈대 안팎으로 감겨들어 이내 자취를 감춰버린다. 그러고서 몇주가 더 지나면, 물에 조그만 올챙이들이 와글와글해진다.  - P278

봄에 관해서라면 영국은행 주변의 좁고 음침한 길들도 빼놓을 수 없다. 봄은 어디나 스며들어 찾아오는 것이다. 어떠한 필터라도 통과할 수있는 신형 독가스처럼 말이다. 봄을 흔히들 ‘기적‘이라 부르곤 하는데,
이 닳고 닳은 비유는 지난 5~6년 동안 새 생명을 얻을 수 있게 되었다.
최근에 우리가 견뎌야만 했던 겨울들 때문에 봄이 다시 기적처럼 여겨지게 되었던 것이다. 그런 겨울을 몇 해 동안 보내면서 우리는 봄이 다시 찾아올 거라고 믿기가 점점 더 힘들어지게 되었다. 1940년부터 나는2월이면 항상 이번엔 겨울이 영영 끝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되었다. 하지만 하계의 여왕인 페르세포네는 두꺼비처럼 거의 같은때만 되면 죽은 것들 가운데서 일어난다. 그리하여 3월 말쯤이면 느닷없이 기적이 벌어지며, 내가 사는 형편없는 빈민가도 변모한다.  - P279

권투 시합을 벌이는 광경을 보고 서 있으면서, 할 수만 있다면 그런 나의 즐거움을 막고자 할 중요한 사람들 생각을 얼마나 많이 해보았던가.
하지만 그들은 그럴 수가 없다. 우리가 딱히 아프거나, 배고프거나, 공포에 떨고 있거나, 감옥 또는 행락지에 갇혀 있지 않은 한, 봄은 여전히봄인 것이다. 공장엔 원자탄이 쌓여가고, 도시엔 경찰이 어슬렁거리고,
확성기엔 거짓말이 넘쳐흐른다 해도, 지구는 여전히 태양 주변을 돌고있다. 그리고 그런 사실이 아무리 못마땅한들, 독재자도 관료도 그것을막을 수는 없다. - P282

어느 서평자의 고백


추우면서도 공기는 탁한 침실 겸 거실. 담배꽁초와 반쯤 비운 찻잔이여기저기 흩어져 있다. 좀먹은 가운을 입은 남자가 쓰러질 듯한 탁자 앞이 앉아 먼지 쌓인 종이 더미 속에서 타자기 놓을 자리를 찾아내려고 한다. 그렇다고 종이들을 버릴 수는 없다. 쓰레기통이 벌써 넘쳐날뿐더러,
답장 못한 편지들과 아직 못낸 공과금 고지서들 사이에 현금으로 바꾸지 못한 게 거의 확실한 기니짜리 수표가 끼어 있을지 모르기 때문이다. 주소록에 주소를 옮겨 적어야 하는 편지들도 있다. 하지만 그는주소록을 잃어버렸고, 그걸 찾을 생각을 하면 그뿐 아니라 무엇이든 찾을생각을 하면 극심한 자살 충동에 시달리게 된다. - P283

이 사람은 말할 것도 없이 작가다. 그는 시인일 수도, 소설가일 수도,
시나리오 작가일 수도, 라디오 방송작가일 수도 있다. 글 써서 먹고사는사람들이 대개 다 비슷하니 말이다. 하지만 여기선 서평자라고 하자. 종이 더미 속에는 묵직한 소포 꾸러미가 반쯤 감춰져 있고, 그 안에는 편집자의 쪽지 왈, ‘일맥상통‘ 할 거라는 다섯 권의 책이 들어 있다. 그게도착한 것은 나흘 전이었지만, 서평자는 48시간 동안 도덕성이 마비되었던 탓에 소포를 열어볼 수 없었다. 그리고 어제서야 굳게 마음먹은 일순간, 소포 끈을 확 풀어버리고 다섯 권의 책을 확인한 것이었다. 교차로의 팔레스타인』, 『과학적인 낙농업』, 『유럽 민주주의의 짧은 역사』(이책은 680 페이지에 무게가 4파운드였다), 포르투갈령 동아프리카의 부족 관습, 그리고 아마 실수로 포함됐을 드러눕는 게 더 좋아』라는 소설이었다. 그의 서평 (800단어 분량이었다)은 다음 날 정오까지 입고 되어야만 했다. - P284

나는 왜 쓰는가


아주 어릴 때부터, 아마도 대여섯 살 때부터 나는 내가 커서 작가가되리란 걸 알고 있었다. 열일곱살 때부터 스물네 살 때까지는 그 생각을 포기하려고 했지만, 그러는 동안에도 그게 내 본성을 거스르는 일이며 조만간 차분히 앉아 책 쓰는 일을 해야 하리란 의식을 갖고 있었다.
나는 삼남매의 둘째였고 아래위로 다섯 살씩 차이가 났으며, 아버지는 여덟 살이 될 때까지 거의 본 적이 없었다. 이런저런 이유로 난 좀 외로웠고, 이내 남들이 싫어할 만한 버릇을 들이는 바람에 학창 시절 내내인기가 없었다. 나는 외로운 아이들이 흔히 그렇듯 이야기를 지어내고상상 속의 인물들과 대화를 나누는 습관을 갖게 됐는데, 애초부터 나의문학적 야심은 고립됐고 과소평가됐다는 느낌이 뒤섞여 있었다고 생각한다. 나는 나에게 낱말을 다루는 재주와 불쾌한 사실을 직시하는 능력이 있다는 걸 알았고, 그것이 나날이 겪는 실패를 앙갚음할 수 있게 해 - P289

주는 나만의 세상을 만들어준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내가 어린 시절과 소년 시절을 통틀어 써낸 심각한(즉 심각한 의도로 쓴글은 대여섯 페이지밖에 되지 않았다. 나는 네댓 살 때 처음으로 시를썼는데, 내가 하는 말을 어머니가 기록한 것이었다. 지금으로선 그게 호랑이에 대한 시였고, 그 호랑이가 ‘의자 같은 이빨을 가졌다는 것 말고는 기억나는 게 없다(꽤 훌륭한 표현 같지만 아마 블레이크의 시 호랑이, 호랑이」를 표절한 것이지 싶다). 1914~1918년 전쟁이 터진 열한 살 때에는 애국시를 써서 지역신문에 실리게 되었고, 2년 뒤 키치너‘의 죽음에 부쳐다른 애국시를 써서 역시 신문에 실렸다. 좀더 나이가 들어서는 서투르고 대개는 완성하지 못한 조지 시대 풍‘의 ‘자연시‘를 이따금 쓰곤 했다. 두 번쯤은 단편소설을 시도했다가 엄청난 실패를 맛보기도 했다. 그시절을 통틀어 내가 심각한 의도를 갖고서 실제로 종이에다 쓴 작품은그 정도가 전부였다. - P290

지금은 별로 대단해 보이지도 않지만 당시엔 내 등골을 서늘하게 만들었던 구절이고, "he" 대신 "hee"를 쓴 것도 즐거움을 더해주었다. 묘사의 필요성에 대해서라면 나는 이미 모든 걸 알고 있었다. 그러니 만일그 시절 내가 책을 쓰고 싶어 했다고 말할 수 있다면, 그게 어떤 유의 책이었는지는 분명하다. 나는 결말이 불행하고, 섬세한 묘사와 빼어난 비유가 가득하며, 어느 정도 소리 위주로 단어를 구사한 현란한 구절 또한가득한 아주 묵직한 자연주의 소설을 쓰고 싶었던 것이다. 그리고 내가처음으로 완성한 소설로, 서른 살 때 썼지만 훨씬 전부터 구상했었던
‘버마 시절이 실은 다소 그런 유형의 책이다. - P292

‘내가 이런 배경 설명을 일일이 하는 것은, 어릴 때 어떤 식으로 성장했는지를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한 작가의 동기를 헤아리는 건 불가능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글의 주제는 그가 사는 시대에 따라 결정되겠지만(적어도 우리 시대처럼 격동적이고 혁명적인 시대에는 그렇다) 그는 작가 생활을 시작하기도 전부터 이미 나름의 정서적 태도를 갖게 되며, 그것은 그가 완전히 벗어날 수 없는 무엇이다. 물론 그는 마땅히 자신의기질을 다스려야 하고, 미성숙한 단계에 고착되거나 비뚤어진 심기에매몰되는 경우를 피해야 한다. 하지만 일찍이 받은 영향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나버린다면, 글을 쓰고자 하는 충동 자체가 없어져버릴 것이다.
나는 생계 때문인 경우를 제외한다면, 글을 쓰는 동기는 크게 네 가지라 - P292

고 생각한다(적어도 산문을 쓰는 데 있어서는 말이다). 이 동기들은 작가들다 다른 정도로 존재하며, 한 작가의 경우에도 시기별로나 시대 분위기별로나 그 정도가 다를 것이다. 설명하자면 다음과 같다.

1. 순전한 이기심. 똑똑해 보이고 싶은 사람들의 이야깃거리가 되고싶은, 사후에 기억되고 싶은, 어린 시절 자신을 푸대접한 어른들에게 앙갚음을 하고 싶은 등등의 욕구를 말한다. 이게 동기가 아닌 척, 그것도강력한 동기가 아닌 척하는 건 허위다. 작가의 이런 특성은 과학자, 예술가, 정치인, 법조인, 군인, 성공한 사업가 등, 요컨대 최상층에 있는모든 인간에게 공통되는 특성이다. 사람들 절대다수는 그다지 이기적이지 않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나이 서른 남짓이 되면 개인적인 야심을 버리고(많은 경우 자신이 한 개인이라는 자각조차 거의 버리는 게 보통이다) 주로남을 위해 살거나 고역에 시달리며 겨우겨우 살 뿐이다. 그런가하면 소수지만 끝까지 자기 삶을 살아보겠다는 재능 있고 고집 있는 사람들도있으니, 작가는 이 부류에 속한다. 나는 진지한 작가들이 대체로 언론인에 비해 돈에는 관심이 적어도 더 허영심이 많고 자기중심적이라고 생각한다. - P293

2. 미학적 열정. 외부 세계의 아름다움에 대한, 또는 낱말과 그것의적절한 배열이 갖는 묘미에 대한 인식을 말한다. 어떤 소리가 다른 소리에 끼치는 영향, 훌륭한 산문의 견고함, 훌륭한 이야기의 리듬에서 찾는기쁨이기도 하다. 자신이 체감한 바를 나누고자 하는 욕구는 소중하여차마 놓치고 싶지가 않다. 미학적인 동기가 상당히 약한 작가들도 많긴하지만, 팜플렛이나 교과서를 쓰는 저자라 해도 비실용적이지만 매력과애정을 느끼는 낱말들과 문구들이 있을 것이다. 그게 아니어도 글꼴이 - P293

나 여백 같은 것들에 상당한 매력을 느끼는 수가 있다. 철도 안내책자수준을 넘어선다면, 어떤 책도 미학적인 고려로부터 딱히 자유롭지 않은 것이다.
3. 역사적 충동.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보고, 진실을 알아내고, 그것을후세를 위해 보존해두려는 욕구를 말한다.
4. 정치적 목적. 여기서 정치적‘ 이라는 말은 가장 광범위한 의미로사용되었다. 이 동기는 세상을 특정 방향으로 밀고 가려는, 어떤 사회를지향하며 분투해야 하는지에 대한 남들의 생각을 바꾸려는 욕구를 말한다. 다시 말하지만, 어떤 책이든 정치적 편향으로부터 진정으로 자유로울 수 없다. 예술은 정치와 무관해야 한다는 의견 자체가 정치적 태도인것이다. - P294

이런 충동들이 서로 얼마나 충돌할지, 사람과 때에 따라 얼마나 오락가락할지는 알 만한 일이다. 나는 천성적으로(여기서 말하는 ‘천성‘ 이란 막어른이 되었을 때의 성격이라고 하자) 앞의 세 가지 동기가 네 번째 동기를능가하는 사람이다. 평화로운 시대 같았으면 나는 화려하거나 묘사에치중하는 책을 썼을지 모르며, 내 정치적 성향에 대해서는 거의 모르고서 지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실제로는 일종의 팜플렛 저자가 될 수밖에 없었다. 먼저 나는 안 맞는 직업을 택하여 5년을 지냈고(버마에서 ‘인도 제국경찰 노릇을 했다) 그뒤로 빈곤과 좌절을 겪었다. 그로 인해 권위에 대한 나의 타고난 반감이 커져갔고, 처음으로 노동계급의 존재를 충분히 인식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버마에서 일해본 덕분에 제국주의본질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그런 경험들만으로는정확한 정치적 지향을 갖기에 부족했다. 그러다 히틀러가 등장하고, 스페인내전이 발발하는 등등의 사태가 벌어졌다.  - P294

스페인내전과 1936~1937년에 있었던 그 밖의 사건들은 저울을 한쪽으로 기울게 했고, 그뒤부터 나는 내가 어디 서 있는지 알게 되었다.
1936년부터 내가 쓴 심각한 작품은 어느 한 줄이든 직간접적으로 전체주의에 맞서고 내가 아는 민주적 사회주의를 지지하는‘ 것들이다.
우리 시대 같은 때에 그런 주제를 피해 글을 쓸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내가 보기엔 난센스다. 누구든 어떤 식으로든 그런 주제에 대해 쓰고있는 것이다. 그저 어느 쪽을 편들고 어떤 접근법을 따르느냐의 문제일 뿐이다. 그리고 자신의 정치적 편향을 의식하면 할수록, 자신의 미학적·지적 진정성을 희생하지 않으면서 정치적으로 행동할 기회가 많아지게 된다. - P297

지난 10년을 통틀어 내가 가장 하고 싶었던 것은 정치적인 글쓰기를예술로 만드는 일이었다. 나의 출발점은 언제나 당파성을, 곧 불의를 감지하는 데서부터다. 나는 앉아서 책을 쓸 때 스스로에게 예술 작품을만들어내겠다‘고 말하지 않는다. 내가 쓰는 건 폭로하고 싶은 어떤 거짓이나 주목을 끌어내고 싶은 어떤 사실이 있기 때문이며, 따라서 나의우선적인 관심사는 남들이 들어주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미학적인 경험과 무관한 글쓰기라면, 책을 쓰는 작업도 잡지에 긴 글을 쓰는 일도할 수 없을 것이다. 내 작품을 꼼꼼히 읽어보는 사람이라면, 노골적인선전 글이라 해도 전업 정치인이 보면 엉뚱하다 싶은 부분이 꽤 많다는걸 알 것이다. 나는 어린 시절에 갖게 된 세계관을 완전히 버릴 수도 없고, 그러고 싶지도 않은 것이다. 계속 살아 있는 한, 그리고 정신이 멀쩡 - P297

한 한, 나는 계속해서 산문 형식에 애착을 가질 것이고, 이 지상地上을사랑할 것이며, 구체적인 대상과 쓸모없는 정보 조각에서 즐거움을 맛볼것이다. 나 자신의 그러한 면모를 억누르려고 해봤자 소용없다. 내가할 일은 내 안의 뿌리 깊은 호오, 이 시대가 우리 모두에게 강요하는 본질적으로 공적이고 비개인적인 활동을 화해시키는 작업이다.
그런데 그게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자면 문장의 구성과 표현에 있어서의 문제가 발생하며, 충실성의 문제가 새롭게 개입된다. 보다 투박한유형의 어려움이 있는 예를 하나 들어보자. 내가 스페인내전에 대해 쓴카탈로니아 찬가』는 물론 노골적으로 정치적인 책이다. 하지만 대체로어느 정도 초연한 마음으로 형식을 고려하며 쓴 작품이다. 나는 이 책에서 나의 문학적인 본능을 거스르지 않으면서 모든 진실을 말하기 위해상당히 애를 썼다.  - P299

그런데 다른 무엇보다 이 책엔 프랑코와 내통한다는혐의를 받는 트로츠키주의자들을 변호하는 신문 인용문 따위가 가득한긴장이 있다. 이와 같은 장은 1~2년 뒤면 일반 독자의 관심에서 멀어질, 말하자면 책을 망칠 게 뻔한 부분이었다. 내가 존경하는 한 평론가는 그 부분에 대해 내게 훈계를 했다. "그런 걸 뭐하러 다 집어넣어요? 좋은 책이 될 만한 걸 보도물로 만들어버렸잖아요." 그의 말은 옳았다. 하지만 다른 방법이 없었다. 나는 영국에선 극소수의 사람들만 알수 있었던, 무고한 사람들이 억울한 혐의를 뒤집어쓰고 있다는 사실을어쩌다 알게 되었다. 그 사실에 분노하지 않았다면 나는 책을 쓸 생각조차 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런 문제는 어떤 식으로든 다시 제기된다. 표현의 문제는 더 미묘한것이라 거론하자면 너무 길어질 것이다. 일단 내가 근년에는 기발하게쓰기보다는 정확하게 쓰려고 노력해왔다는 점만 밝히기로 하자. 아무튼 - P299

내가 보기엔 어떤 스타일을 완성하고 나면 언제나 그 스타일을 벗어나게 되는 것 같다. ‘동물농장』은 내가 무얼 하고 있는지 십분 자각하면서) 정치적 목적과 예술적 목적을 하나로 융합해보려고 한 최초의 책이었다.
나는 7년 동안 소설을 쓰지 않았는데, 이제는 조만간 또 하나의 소설을쓰고 싶다. 그것은 실패작이 될 게 뻔하고, 사실 모든 책은 실패작이다.
단, 나는 내가 어떤 종류의 책을 쓰고 싶어 하는지 꽤 분명히 알고 있다.
마지막 한두 페이지를 돌이켜보니 내가 글을 쓰는 동기가 오로지 공공의식의 발현이라는 인상을 심어준 듯하다. 나는 그것이 마지막 인상이 되기를 바라지 않는다. 모든 작가는 허영심이 많고 이기적이고 게으르며, 글 쓰는 동기의 맨 밑바닥은 미스테리로 남아 있다.  - P300

책을 쓴다는건 고통스러운 병을 오래 앓는 것처럼 끔찍하고 힘겨운 싸움이다. 거역할 수도 이해할 수도 없는 어떤 귀신에게 끌려다니지 않는 한 절대 할수 없는 작업이다. 아마 그 귀신은 아기가 관심을 가져달라고 마구 울어대는 것과 다를바 없는 본능일 것이다. 그런가 하면 자기만의 개별성을지우려는 노력을 부단히 하지 않는다면 읽을만한 글을 절대 쓸 수 없다는 것도 사실이다. 좋은 산문은 유리창과 같다. 나는 내가 글을 쓰는 동기들 중에 어떤 게 가장 강한 것이라고 확실히 말할 수 없다. 하지만 어떤 게 가장 따를 만한 것인지는 안다. 내 작업들을 돌이켜보건대 내가맥없는 책들을 쓰고, 현란한 구절이나 의미 없는 문장이나 장식적인 형용사나 허튼소리에 현혹되었을 때는 어김없이 ‘정치적 목적이 결여되어 있던 때였다. - P300

정치 대 문학: 『걸리버여행기』에 대하여


걸리버 여행기」에서 인간은 적어도 세 가지 각도에서 공격 또는 비판을 당하는데, 그 과정에서 어쩔 수 없이 걸리버의 성격 자체가 조금씩변한다. 1부에서 그는 전형적인 18세기 항해자로서, 대담하고 실용적이며 비낭만적이다. 그의 수수한 면모는 교묘하게 독자들의 인상에 남는데, 그 장치는 도입부의 자세한 전기적 설명, 그의 나이(모험을 떠날 무렵마흔의 나이에 두 자녀를 두었다), 그의 주머니에 든 이런저런 물건들 특히여러 차례 등장하는 안경이다. 2부에서는 대체로 비슷한 성격을 보이나, 이야기가 요구하는 바에 따라 순간순간 ‘예술과 군사력의 여왕이자프랑스의 재앙인 고귀한 우리 조국‘이니 뭐니 하는 자랑을 늘어놓는 동시에 자신이 사랑한다고 공언한 조국에 관한 온갖 수치스러운 사실을누설하는 백치 같은 성향을 보이기도 한다. 3부에서는 1부에서와 상당 - P301

스위프트가 이상으로 삼는 존재인 휴이넘인은 기계적인 감각에서도9뒤떨어져 있었다. 그들은 아직 금속의 존재를 모르고, 배라는 것이 있다는걸 들어본 적이 없고, 딱히 농사를 짓는다고도 할 수 없으며 그들의 주식인 귀리가 절로 자란다"는 말이 나온다), 아직 수레바퀴를 발명하지 못한것으로 보인다. 그들에겐 문자가 없으며, 물리적인 세계에 대하여 아무래도 별 호기심이 없는 듯하다. 그들은 자기네 말고는 사람이 사는 나라가 존재한다는 생각을 하지 못하며, 해와 달의 운행과 일식·월식의 본질을 이해하긴 하지만, "그게 그들이 가진 천문학의 최고 수준"일 뿐이다. 그에 반해 날아다니는 섬 라퓨타의 학자들은 언제나 수학적인 사색에 골몰해 있어서 그들에게 말을 걸려면 풍선으로 귀를 찰싹 때려줘야만 주목을 끌 수 있다. 그들은 1만 개의 항성을 분류했고, 93개 혜성의 주기를 산출했으며, 화성에 2개의 위성이 있다는 것을 유럽의 천문 - P309

학자들보다 먼저 알아냈다. 그런데 이 모든 정보를 스위프트는 우스꽝스럽고 무익하고 시시한 것으로 여기는 게 분명하다. 예상할 수 있는 바와 같이, 그는 과학자의 본분은(본분이라는 게 있기는 하다면) 실험실에 있는 것이며 과학 지식은 정치 문제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고 생각하는것이다.


내가 ……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은, 그들이 뉴스와 정치에 대해 비상한 관심을 갖는다는 점이었다. 그들은 쉴 새 없이 사회문제에 대해 알려고 하고, 나랏일에 대해 왈가왈부하며, 정당의 견해에 대해 조목조목 논쟁을 하는것이었다. 나는 내가 아는 ‘유럽의 수학자들 대부분에게서도 같은 성향을관찰한 바 있다. 나로서는 두 분야 사이에서 아무런 유사성도 발견할 수 없었는데도 말이다. 그것은 그들이 아무리 작은 원도 아주 큰 원과 각도가 같다는점에서, 세계를 단속하고 관리하는 일이 지구의를 만지고 돌리는 것보다 더한 능력을 요하는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 P310

우리는 그가 걸리버 여행기』의 3부를 쓰지 않았다 하더라도, 책의 나머지 부분에서 그가 톨스토이나 블레이크처럼 자연의 이런저런 작용을 연구한다는 생각 자체를 혐오한다는 추론을 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가 휴이넘인의 속성으로서 그토록‘찬미하는 ‘이성‘의 우선적인 뜻은 관찰되는 사실로부터 논리적 추론을 이끌어내는 힘이 아니다. 그보다는 딱히 말은 안 해도, 대부분의 문맥에서 상식(즉 명백한 것은 받아들이고 억지나 추상을 경멸하는 것)을, 또는걱정이나 미신이 없는 것을 뜻한다. 대체로 그의 견해는, 우리는 알아야할 것들을 이미 다 알고 있으며 우리의 지식을 오용하고 있을 뿐이라는것이다. 이를테면 의학이 무용한 학문인 것은, 우리가 보다 자연적인 생활을 하면 병이 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스위프트는 생활을간소하게 하자거나 ‘고결한 야만인‘이 되자고 하는 게 아니다. 그는 문명에도, 그 산물인 온갖 기술에도 찬성한다. 그는 훌륭한 예의범절과 대화법의 가치를, 심지어 문학이나 역사 같은 공부의 가치를 인정할 뿐만아니라, 농업이나 항해나 건축을 연구할 필요가 있으며 유리하게 발전시킬 수 있다는 점도 알고 있다. - P311

먼저, 스위프트는 건설적‘ 이면서 ‘진보적‘ 이기까지 한 면모를 이따금 보이기도 한다. 그런데 유토피아 문학에서 종종 일관적이지 않은 모습을 보이는 것은 활력이 있다는 증거라고 해도 좋으며, 스위프트는 풍자적이기만 해야 할 부분에 때때로 찬사를 끼워넣곤 한다. 그래서 아동교육에 관한 그의 견해는 릴리푸트인의 그것과 같으며, 릴리푸트인은그 문제에 관해 휴이넘인과 같은 견해를 갖고 있는 것이다. 또한 릴리푸트인은 스위프트가 자기 조국에도 보급되길 바라는 다양한 사회제도와법률제도를 갖추고 있다(이를테면 노령연금 제도가 있으며, 법을 어기면 벌을받는 것과 마찬가지로 지키면 보상을 받는 제도가 있다). 스위프트는 이 구절한가운데서 자신의 풍자적 의도를 기억하고는 이렇게 덧붙이기도 한다.
"이상과 이하의 각종 법률들에 관하여, 내가 말하는 건 본래의 제도이지 인간의 퇴폐적 본성 때문에 이 사람들이 빠져든 더없이 추악한 부패상을 가리키는 건 아니라고 해야 말뜻이 이해될 것이다."  - P313

스위프트는 톨스토이, 즉 행복의 가능성을 불신했던 또 한 사람과 상당히 비슷하다(지금까지 알려진 것보다 더 그렇다고 나는 생각한다). 우선 두 사람 다 무정부주의적 관점을 지녔고, 그것은 권위주의적 기질을 감추는 노릇을 했다. 또한 과학에 적대감을 느끼고, 반대자의 견해를 참지 못하며, 자신이 흥미를 못 느끼는 문제의중요성을 인식하지 못한다는 점에서도 같다. 그리고 톨스토이의 경우엔더 늦게 다른 경로로 찾아왔지만, 둘 다 인생살이 자체에 일종의 혐오감을 느꼈다. 두 사람의 성적인 불행은 같은 종류의 문제가 아니었으나,
둘다 혐오의 본질이 병적인 집착과 뒤섞여 있다는 점에서는 같았다. 톨스토이는 개심한 방탕자로서 만년엔 완전한 성적 금욕 생활을 설교했으나, 자신은 고령이 되도록 계속해서 정반대의 생활을 했다. 스위프트는성불구였던 것으로 보이며, 사람 똥을 지나치게 혐오했는데, 그러면서도 그의 작품들 도처에 분명히 드러나듯 끊임없이 똥 생각을 했다.  - P319

그런가 하면 시에 대한 취미가 그들의 자질 중에 두드러지는 것은, 시가 스위프트의 관점에서 가장 무익한 추구인 과학에 대립되는 것으로 보였기 때문일 수 있다. 3부에서 그는 라퓨타의수학자들에게 전적으로 결여된 바람직한 능력으로 "상상, 공상, 창의"
를 지목한다(그들은 음악을 아주 좋아하긴 한다). 여기서 우리는 스위프트가해학시의 명수이긴 해도 그가 가치 있다고 생각한 시는 아마도 교훈시에 더 가까웠으리란 점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그는 휴이넘의 시에 대해다음과 같이 말한다.


시에 관해서라면 다른 어떤 존재보다 뛰어나다고 해야 할 것이다. 비유의적절함, 묘사의 정확함과 세밀함은 도무지 흉내낼 수 없을 정도다. 그들의 시는 이 두 가지 점에서 아주 뛰어나며, 대개 우정과 박애의 관념을 고양하거나경주 등 운동의 우승자를 찬미하는 내용이다. - P322

지적으로 공평무사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자신과 입장이 전혀 다른작가의 장점을 알아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즐기는 건 다른 문제다. 좋거나 나쁜 예술이란 게 있다고 한다면, 좋거나 나쁜 속성이 예술작품 자체에 (그것도 보는 사람보다는 보는 사람의 기분과 전혀 무관하게 존재해야 한다. 때문에 어느 시에 대해 월요일에는 좋고 화요일에는 나쁘다고 평한다면, 어떤 의미에서 옳을 리 없는 말이다. 그러나 그 시가 불러일으키는 감상感想에 따라 판단한다면, 그 말은 분명 옳을 수 있다. 왜냐하면 감상이나 향유는 주관적인 상태이며, 남이 강요할 수 있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아무리 교양있는 사람이라도 깨어 있는 시간의 상당 부 - P324

분을 아무런 미적 감정 없이 보내며, 감정을 느끼는 능력은 너무나 간단히 훼손될 수 있다. 공포나 허기에 시달리거나 치통이나 뱃멀미를 앓을때, ‘리어왕』은 『피터 팬보다 하등 나을 게 없을 수 있다. 지적으로는더 낫다는 걸 알 수 있을지 몰라도, 그야 기억하는 사실일 뿐이다. 『리어왕의 장점을 ‘느끼게 되려면 정상 상태가 되어야만 하는 것이다. 미적인 판단은 정치적이거나 도덕적인 의견 차이 때문에 마찬가지로 극심하게(이 경우 원인을 알아차리기가 더 어려우므로 더 심할 수 있다) 뒤바뀔 수 있다. 어떤 책 때문에 노하거나 마음의 상처를 받거나 놀랄 경우, 책의 장점이 무엇이든 즐기지 못할 수 있다. 책이 자신에게 대단히 해롭거나 남들에게 바람직하지 않은 방식으로 영향을 끼칠 것 같아 보인다면, 그 책에 아무런 장점도 없다는 걸 보여주기 위한 미학 이론을 세울 수도 있다. 오늘날의 문예비평이란 주로 그런 두 가지 기준 사이를 교묘히 오가는 식이다. 그런가 하면 정반대의 경우도 발생한다.  - P325

우리 마음의 일부는(정상인의 경우 가장 우세한 부분이다) 인간이 고귀한 동물이며 삶은 살 만한 것이라는 믿음을 갖고 있다. 그에 비해적어도 이따금씩은 존재의 끔찍스러움에 아연실색하는 일종의 내적 자아 같은 게 있는 것이다. 참으로 묘하게도, 쾌락과 혐오는 서로 연결되어 있다. 인간의 신체는 아름답다. 그런가 하면 인체는 역겹고 우스꽝스럽기도 한데, 이는 아무 수영장에나 가보면 확실히 검증할 수 있는 사실이다. 인간의 성기는 갈망의 대상이기도 하고 혐오의 대상이기도 한데,
예컨대 다는 아니어도 많은 언어에서 성기의 명칭 자체가 욕설로 쓰인다. 고기는 맛있지만 푸줏간에 가면 속이 메스꺼워진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먹는 모든 음식은 궁극적으론 다른 무엇보다 우리가 끔찍스러워하는 똥과 시체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어린아이는 유아기를 지나도 세상을 여전히 새로운 눈으로 보며, 경이로움 못지않게 혐오스러움에도 마음이 움직인다. 이를테면 코딱지와 침, 인도에 싸놓은 개똥, 구더기가가득한 채로 죽어가는 두꺼비, 어른의 땀 냄새, 대머리에 주먹코인 노인의 흉한 몰골이 주는 혐오감에도 크게 끌리는 것이다.  - P327

흔히들 어떤 책이 명백히 그릇된 인생관을 표방한다면 ‘좋은 책이라할 수 없다는 주장을 하곤 한다(적어도 주제의 중요성을 인정하는 사람들은그렇게 주장한다). 예컨대 우리는 우리 시대에 진정한 문학적 장점을 지닌책은 어느 정도 ‘진보적‘ 성향을 보인다는 말을 듣곤 한다. 그런데 이는사실을 무시하는 말이다. 역사를 통틀어 지금과 같은 진보 대 반동의 투쟁은 언제나 있어왔으며, 어느 시대든 최고의 양서들은 항상 다양한 관점을(다른 것들에 비해 명백히 잘못된 관점들까지도) 반영해왔던 것이다. 어느 작가가 선전원 노릇을 하는 한, 우리가 그에게 요구할 수 있는 최선은 그가 자신이 하는 말을 진정으로 믿을 것, 그리고 심하게 어리석은말은 하지 않을 것 정도다. 오늘날에는 이를테면 가톨릭 신자나 공산주의자, 파시스트, 평화주의자, 무정부주의자, 또는 옛날 스타일의 자유주 - P328

14의자나 일반 보수주의자가 좋은 책을 쓸 거라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심령술사나 부크먼 추종자, KKK 단원이 좋은 책을 쓸 거라는 생각은할 수 없을 것이다. 작가의 관점은 정신건강 차원의 온전함, 그리고 자기 생각을 밀어붙이는 힘과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그 이상으로 우리가요구할 수 있는 게 있다면 재능일 것이며, 그것은 확신의 다른 이름이라할 수 있을 것이다. 스위프트는 정상적인 의미의 지혜를 가진 사람은 아니었다. 하지만 무서울 정도로 강렬한 비전은 확실히 갖고 있었으며, 그것은 숨겨진 진실 하나를 골라내어 확대하고 비틀어서 볼 줄 아는 능력이기도 했다. ‘걸리버 여행기』가 오랜 생명력을 유지하는 것을 보면, 작가의 세계관이 온전함이라는 기준을 겨우 만족시키는 수준일지라도, 작가의 확신이 뒷받침해준다면 위대한 예술 작품을 충분히 낳을 수 있음을 알게 된다. - P329

가난한자들은 어떻게 죽는가


1929년, 나는 파리 15구에 있는 병원‘ ‘에서 몇 주를 보낸 적이 있다. 병원 창구 직원들은 접수처에서 내게 통상적인 고문 코스를 거치게했다. 한 20분 내내 질문에 답하게 만들고 나서야 나를 받아주었던 것이다. 라틴계 국가에서 서식을 작성해본 사람이라면 내가 말하는 질문이란 게 어떤 것인지 알 것이다. 그때까지 며칠 동안 나는 열씨를 화씨로 환산할 줄 몰랐지만 내 체온은 화씨 103도 정도였고, 면담이 끝날무렵에는 내 발로 서 있기가 힘들 정도였다. 내 뒤로는 체념한 환자들무리가 색색의 보따리를 들고서 질문 받을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질문 다음은 목욕이었다. 감옥이나 구빈원의 경우처럼 새로 온 사람이면 누구나 거쳐야 하는 과정인 듯했다. 옷을 다 벗어서 내놓은 다음,
나는 깊이가 5인치밖에 안 되는 미지근한 온탕에 앉아 몇 분을 덜덜 떨다가 리넨 잠옷과 짧은 파란색 플란넬 가운을 지급받은 뒤(슬리퍼는 내 - P331

그것은 운 좋은 사람들, 즉 늙을 때까지 사는 사람들이 맞이하는 죽음이었다. 사람은 물론 살고 싶어 하며,죽음에 대한 두려움 덕분에 계속 살아가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그때이후로 나는 험하게, 그리고 너무 늙지 않았을 때 죽는 게 낫다는 생각을하게 되었다. 사람들은 전쟁의 참상에 대해 얘기하곤 하는데, 인간이 만들어낸 무기치고 서민이 병으로 죽어가는 참혹함에 근접이라도 하는 게있을까? ‘자연사 란 정의상 더디고 냄새나고 고통스러운 무엇이어야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자연사를 하더라도 공공시설이 아니라자기 집에서 죽음을 맞을 수 있다면 질적으로 다른 일이다. 거의 다타버린 초처럼 깜빡깜빡하다 꺼져버린 그 가련한 노인은 임종하는 사람하나 없을 정도로 하찮았다. 그는 숫자 하나에 불과했으며, 의대생들의해부 ‘교재 일 뿐이었다. 그리고 그런 장소에서, 아무나 다 보는 데서죽어가는 비참함이란!  - P338

나는 옷을 되찾고 걸어다닐 정도가 되자마자, 때가 되어 정식으로 퇴원을 하기 전에 X병원을 탈출해버렸다. 그곳이 내가 탈출한 유일한 병원인 건 아니었다. 하지만 그 음침함과 삭막함, 불쾌한 냄새,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 병원 특유의 묘한 정서적 분위기는 내 기억 속에 예외적인것으로 남아 있다. 내가 그 병원에 간 것은 그곳이 내가 거주하는 지구에 있었기 때문이며, 나는 입원한 뒤에야 그곳 평판이 좋지 않다는 걸알 수 있었다. 내가 나오고서 1~2년쯤 뒤에는 저명한 사기꾼인 아노Hanaud 부인이 수감 중에 병이 들어 X병원으로 실려갔다가, 며칠 뒤 간수들을 용케 따돌리고 택시를 타고서 교도소로 돌아가서는 감옥이 더편하다는 말을 했다고 한다. X병원은 그 시절에도 프랑스에서 꽤 별난병원이었던 게 분명하다. 거의 대부분이 노동자인 그곳 환자들은 놀라울 정도로 체념적이었다. 그들 중 일부는 그만하면 지낼 만하다고까지여기는 것 같았다. 적어도 두 사람은 겨울을 나기 좋겠다는 생각으로 입원한 가난한 꾀병 환자였던 것이다. 간호사들은 알면서도 모르는 체했는데, 꾀병 환자들이 허드렛일을 자청함으로써 도움이 되었던 까닭이다. - P340

하지만 대다수의 태도는 이런 것이었다. 물론 여긴 형편없는 곳이다. 하지만 더 이상 뭘 기대하겠는가?‘ 그들에게는 새벽 5시에 깨워져3시간을 기다린 후에 멀건 수프를 먹는 것으로 일과를 시작해야 하는것도 아무도 곁에 있어주지 않는 가운데 사람이 죽어야 하는 것도, 심지어 치료받을 기회조차 의사가 지나칠 때 얼마나 눈길을 잘 끄느냐에달려 있다는 것도 별난 일이 아니었다. 그들이 살아온 바에 따르면 병원이란 으레 그런 곳이었다. 심각하게 아프면 그리고 자기 집에서 치료를받을 만한 형편이 못 되면 병원에 가야 하는 것이고, 일단 병원에 가면군대에 간 기분으로 거칠고 불편한 환경을 감수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무엇보다 흥미로웠던 건, 지금 영국인의 기억에선 거의 사라져버린 옛이야기들, 이를테면 순전히 호기심 때문에 메스를 들이대거나 마땅한 권한을 위임받기도 전에 수술부터 해버리는 걸 즐겁게 여기는 의사에 대한 이야기들 - P341

극빈자들 사이에선 아직도 남아 있을 터이며,
일반인들의 경우에도 최근에 와서야 사라졌다. 그것은 우리 의식의 표피 속으로 조금만 들어가면 발견되는 어두운 일면이다. 앞에서 나는 X병원의 병동에 들어가면서 묘한 익숙함을 의식했다는 말을 했다. 그 풍경에서 내가 떠올린 것은 물론 악취가 진동하고 고통이 가득한 19세기의병원이었고, 그것은 내가 한 번도 본 적은 없지만 사람들 사이에 전해내려오는 이야기로 알게 된 것이었다. 그리고 무언가가, 아마도 너저분한 검은 가방을 든 검은 옷 차림의 의사가 아니면 단지 그 지독한 악취가 내 기억 속에서 20년 동안 잠들어 있었던 테니스의 시 「아동병원」을들추어내는 요술을 부린 것인지도 모른다. 나는 어릴 때 간호사에게 그시를 소리내어 읽어달라고 한 적이 있었는데, 그 간호사는 테니슨이 그시를 쓴 당시에도 간호사 노릇을 했을지 모를 정도로 나이가 많았다. 그녀에겐 그 옛날 병원의 공포와 고통이 생생한 기억으로 남아 있었다. 우리는 그 시를 함께 읽고 들으며 몸서리쳤고, 그뒤로 나는 그 시를 잊고살았다. 시 제목을 들었다 해도 아무 기억도 떠올리지 못했을 것이다. - P345

리어, 톨스토이 그리고 어릿광대


톨스토이의 팜플렛 글들은 그의 작품 가운데 가장 덜 알려져 있으며,
그중에 셰익스피어에 대한 공격‘은 적어도 영어 번역본으로는 구하기조차 쉽지 않은 문헌이다. 그러니 이 팜플렛에 대해 이야기하기 전에 먼저그 내용을 요약해보는 게 도움이 될 것이다.
톨스토이는 셰익스피어가 자신에게 평생 "어찌할 수 없는 반감과 따분함"을 불러일으켰다는 말부터 시작한다. 문명 세계의 평가가 자신에게 불리하다는 걸 의식한 그는 셰익스피어의 작품들을 러시아어와 영어와 독일어로 읽고 또 읽기를 거듭했으나 "매번 같은 느낌을 받았다"고말한다. 그것은 "반감과 지루함과 당혹감‘이었다. 그러던 그는 75세가된 마당에 셰익스피어의 전작을 역사극까지 포함하여 전부 다시 읽어보고는 이렇게 소감을 밝히고 있다.
- P347

셰익스피어의 명성이 ‘시작‘ 된 정황에 대하여, 톨스토이는 18세기 말독일 교수들의 "자극"이 있었다는 설명을 단다. 그의 명성은 "독일에서발원한 다음 영국으로 전이됐다"는 것이다. 톨스토이의 말로는 독일인들이 셰익스피어를 띄우기로 한 것은 이렇다 할 독일 드라마는 없고 프랑스 고전문학은 딱딱하고 인공적인 느낌을 주기 시작하던 무렵, 셰익스피어의 "기발한 장면 전개에 사로잡히고 그에게서 자신들의 인생관이 표현되고 있음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괴테가 셰익스피어를 위대한시인이라 칭송하자, 다른 모든 비평가들이 앵무새 군단처럼 떼를 지어그를 따랐고, 그뒤로 다같이 셰익스피어에게 홀리는 현상이 지속됐다는것이다. 그 결과 드라마는 질이 더욱 떨어졌고(톨스토이는 당대의 연극판을힐난하면서 자신의 희곡들도 포함시키는 세심함을 발휘한다) 보편화된 도덕관은 더욱 타락하게 되었다고 그는 말한다. 이어서 톨스토이는 "셰익스피어에 대한 그릇된 찬미" 가 그 자신이 싸울 의무를 느끼는 중요한 해악이라고 말한다. - P352

톨스토이의 팜플렛을 읽은 영어권 독자의 눈에 제일 먼저 띄는 점 하나는 글이 셰익스피어를 시인으로 다루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이 책자에서 셰익스피어는 극작가로 다뤄지며, 그의 인기가 위조된 게 아니라면 그 인기의 비결은 영리한 배우들에게 좋은 기회를 주는 연출에 있다는게 톨스토이의 주장이다. 그런데 적어도 영어권 나라들만 놓고 볼 때그런 주장은 사실이 아니다. 셰익스피어 애호가들이 가장 높이 사는 희곡들(이를테면 ‘아테네의 타이먼)은 좀처럼 또는 아예 상연되지 않으며,
반면에 제일 공연하기 좋은 한여름 밤의 꿈』같은 작품은 제일 추앙을덜 받는 까닭이다. 셰익스피어를 제일 좋아하는 사람들이 으뜸으로 꼽는 그의 장점은 언어 구사력이다. 이는 또 한 명의 혹독한 비판자인 버나드 쇼 같은 사람도 "저항할 수 없는" "언어 음악으로 인정하는 바이다. 하지만 톨스토이는 그런 사실을 인정하지 않으며, 시가 해당 언어를구사하는 사람들에게 특별한 가치가 있을 수 있다는 점을 모르는 듯하다. 그런가 하면 톨스토이의 입장이 되어 셰익스피어를 외국 시인으로생각하려 해도 톨스토이가 빠뜨린 무언가가 있는 게 분명해 보인다.  - P355

톨스토이는 성인은 아니었지만 성인이 되기 위해 몹시 노력했으며, 그가 문학에 적용한 기준은 탈속적인 것이었다. 성인과 범인의 차이는 정도가 아닌 부류의 차이라는 점을 이해하는 게 중요하다. 달리 말해범인을 성인의 불완전한 형태로 봐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아무튼 톨스토이가 생각하는 유의 성인은 속세의 삶을 개선하려고 하지 않는다. 그는 그런 삶을 끝내고 그 대신에 다른 걸 갖다놓으려고 한다. 그런 태도를 확실히 표현해주는 것이 결혼보다는 금욕적 독신 생활이 더
‘고매‘ 하다는 주장이다. 톨스토이는 사실상 우리가 번식과 싸움과 투쟁과 향유를 그만둘 수만 있다면, 우리의 죄뿐만 아니라 우리를 지상에 묶어두는 다른 모든 것들(한 인간을 다른 인간보다 편애한다는 일반적인 의미에서의 사랑을 포함해서)을 제거할 수만 있다면, 모든 고통스러운 과정끝나버리고 하늘나라가 이루어질 것이라고 말한다.  - P364

톨스토이가 팜플렛에서 말한 대로라면, 톨스토이는 셰익스피어에게선 아무 장점도 발견할 수 없었으며, 동료 작가인 투르게네프나 페트‘등과 같은 이들의 생각이 자신과 다른 것을 보고 언제나 몹시 놀라곤 했다. 우리는 거듭나지 않았던 시절의 톨스토이였다면 이런 결론을 내렸으리라 확신해도 좋을 것이다. "당신은 셰익스피어를 좋아하고, 나는안 좋아할 뿐. 그쯤만 해두자." 그러다 나중에 세상엔 온갖 일이 다 있기마련이라는 인식이 그를 떠나버리자, 그는 셰익스피어의 글이 자신에게위험한 무엇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사람들은 셰익스피어에게서 더많은 즐거움을 발견할수록 톨스토이의 말은 들으려 하지 않았다. 그러니 술을 마시거나 담배를 피우는 걸 누구에게도 허용해선 안 되듯이, 셰익스피어를 즐기는 걸 누구에게도 허용해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물론톨스토이는 강제로 막으려 하지는 않았다. 그는 경찰이 셰익스피어의책들을 전부 압수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대신에 그는 할 수만 있다면 셰익스피어에 대해 심술을 부리려고 한다. 그는 모든 셰익스피어 애호가의 마음속에 들어가 생각할 수 있는 온갖 수법(그의 팜플렛을요약하며 언급한 바와 같이 자기모순적이거나 정직성이 의심되는 주장들을 포함한다)을 동원해 그들의 기쁨을 말살하려 한다. - P370

그런 시험이 타당하다면,나는 셰익스피어 건에 대한 판결은 ‘무죄‘ 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다른 모든 작가들처럼, 셰익스피어 역시 조만간 잊혀질 것이다. 그러나 그에 대해서는 더 호된 고발이 나올 수 있을 것 같지가 않다. 톨스토이는아마도 당대에 가장 존경받은 문인이었을 것이며, 팜플렛 작가로서의실력도 떨어지는 편이 아니었다. 그런 그가 셰익스피어를 향해 전함의모든 포문을 한꺼번에 열듯이 온 힘을 다해 비난을 퍼부었다. 결과는 어찌 됐는가? 40년이 지난 지금, 셰익스피어는 아무 영향도 받지 않은 채여전히 그 자리에 있다. 그리고 그를 쓰러뜨리려는 시도는, 누렇게 바랜팜플렛 종잇장들 외에 아무것도 남은 게 없다. 거의 아무도 읽지 않는,
만약 톨스토이가 전쟁과 평화』와 『안나 카레니나』의 작가마저도 아니었다면, 완전히 잊혀졌을 팜플렛 말이다. - P3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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