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내 또래인 사람이 H. G. 웰스를 흠잡는다는 건 일종의 존속살인과도 같은 일이 아닌가? 이번 세기가 시작될 무렵 태어난 지적인 사람이라면 어떤 면에서 웰스의 작품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일개 작가가, 특히 작품에 대한 반응이 당장 나타나는 ‘대중적인 작가 한 사람이얼마나 많은 영향을 끼칠 수 있는지는 의문이지만, 내가 보기에 1900년부터 1920년까지 영어로 책을 쓴 사람 중에 그만큼 어린 세대에게 큰영향을 끼친 이는 없는 것 같다. 웰스라는 사람이 존재하지 않았다면, "우리 모두의 정신과 그에 따른 물리적 세계는 지금과는 확연히 달랐을것이다. 웰스를 지금과 같은 피상적이고 부적절한 사상가로 만든 것은사고방식의 획일성, 즉 그를 ‘에드워드 시대(1901~1910)‘의 탁월한 선지자인 듯 보이게 한, 그 편향적 상상력이었다. 웰스가 젊었을 때는 과학과 반동의 대립이 틀린 게 아니었다. - P130
당시 세계는 현학자와 성직자, 골프 치는 사람의 세상이었고, 미래의 고용주는 성공 아니면 실패‘ 라고 훈계하고, 부모는 자식 ‘성적인 발달을 체계적으로 왜곡하고, 아둔한 교사들은 상투적인 라틴어 인용구를 들이대며 바보스럽게 히죽거리던 세상이었다. 그런 시대에 다른 행성과 바다 밑에 사는 존재들에 대해 이야기해줄 수 있었던, 미래가 훌륭한 양반들이 상상하는 것과는 다르리란 걸 알았던 놀라운사람이 있었던 것이다. 비행기라는 게 기술적으로 실현 가능한 것이 되기 10년도 전에, 웰스는 얼마 안 돼 인류가 날아다닐 수 있으리란 걸 알았다. 그것은 그 자신이 날 수 있기를 바랐기 때문이며, 그래서 연구가그 방향으로 진행되리라 확신했던 것이다. 그런데 내가 어렸을 때는 라이트 형제가 실제로 그들의 기계를 지면 위로 59초 동안이나 들어올렸는데도, 하느님이 우리를 날게 해줄 작정이었으면 처음부터 날개를 달아줬을 것이라는 생각이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던 시절이었다. 그러던때라 웰스는 1914년까지만 해도 대체로 진정한 선지자였다. 신세계에대한 그의 비전은 물리적으로 상세한 부분에서도 놀라울 정도로 많이실현되었다. - P131
그는 전에도 그랬듯이 지금도, 민족주의와 편협한 신앙과 봉건적 충성이 그가 온건하다고 말하려는 것보다 훨씬 더 강력한 힘이라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그들이 암흑시대에서 현재로 당당히 걸어 들어온 유령 같은 존재라면, 그들을 달래 과거로 돌려보내기 위해서는 적어도 강력한 마법이 필요하다. 파시즘을 가장 잘 이해한 것으로 보이는 사람들은 그 치하에서 고초를 겪었거나, 자기 안에 파시스트적 기질이 있는 이들이다. 강철군화는 투박하긴 하지만, 거의 30년 전에 씌어졌어도 멋진 신세계나 다가올 것들의 양상보다 미래를 더 제대로 예견하고 있다. 윌스 당대의 사람 중에 그를 바로잡을 수 있을 만한 작가를 하나 꼽아야한다면, 키플링을 들 수 있을 것이다. 그는 완력과 군사적 ‘영광‘의 사악한 목소리에 귀를 막지 않았다. 키플링이라면 히틀러에 대한 자신의태도가 어떻든 간에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그의 힘을 이해했을 것이며, 아마 스탈린에 대해서도 그랬을 것이다. 웰스는 현대 세계를 이해10하기에는 너무 온건하다. 그의 가장 큰 업적인 일련의 하위 중산층 소설들은 이전의 전쟁 때(1차대전) 갑자기 끊어져버렸다. 그리고 1920년 이후로 그는 종이 죽이기에 재능을 허비하고 말았다. 하기야 허비할재능이 있다는 것만 해도 어딘가. - P132
스페인내전을 돌이켜본다
무엇보다 먼저 떠오르는 기억은 소리, 냄새, 그리고 사물의 표면 같은물리적인 것들이다. 스페인내전에 대하여 내 기억에 가장 생생히 되살아나는 게 전선으로파견되기 전 일주일 동안 받았던 이른바 훈련인 것은 묘한 일이다. 바르셀로나에 있는 거대한 기병대 병영에는 찬바람이 술술 들어오는 미구간과 자갈 마당, 세면장의 얼음처럼 차가운 펌프, 형편없지만 금속 산에따라주는 와인 덕분에 참아줄 만한 식사, 바지 차림으로 장작을 패는 민병대 여성, 그리고 아침 점호가 있었다. 영국인인 나의 무미건조한 이름은 울림이 있는 스페인 이름들 사이에서 일종의 코믹한 간주곡 같았다. 마누엘 곤살레스, 페드로 아길라르, 라몬 페네요사, 로케 바야스테르, - P133
하이메 도메네츠, 세바스티안 빌트론, 라몬 누보 보시. 내가 유독 이 이름들을 언급하는 건 하나같이 얼굴이 기억나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인간쓰레기일 뿐이었지만 지금은 의심할 여지 없이 훌륭한 팔랑해‘ 당원이 되어 있을 두 사람 외에는, 아마 모두 죽었을 것이다. 둘은 확실히죽은 것으로 알고 있다. 제일 나이 많은 이가 25세쯤이었고, 제일 어린사람은 16세였다. 전쟁 체험 중에 빠질 수 없는 것 하나는 사람한테서 풍겨나오는 지독한 냄새를 결코 피할 수 없다는 점이다. 변소는 전쟁문학에서 지나칠 정도로 써먹은 소재이긴 하지만, 우리 병영의 간이 변소는 스페인내전에대한 내 나름의 환상을 깨는 역할을 했기에 간단히 언급하기로 한다. 쪼그려 앉아 볼 일을 봐야 하는 이 남유럽식 변소는 상태가 아무리 좋다해도 역겨웠지만, 매끈매끈한 돌로 만든 것이라 아주 미끄러워서, 미끄러져 넘어지는 일이 없도록 조심하는 데만 집중하다보면 일을 볼 수 있던 것이 장점이었다. - P134
어떤 성격의 전쟁에서 싸우게 되었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 아니다. 예를 들어 군기 같은 것은 어떤 군대든궁극적으로는 마찬가지다. 명령은 복종해야 하고 필요하면 처벌로써 강요되며, 장교와 사병의 관계는 상급자와 하급자의 관계일 수밖에 없다. 서부전선 이상 없다』 같은 책들에 나오는 전쟁 묘사는 대체로 정확하다. 총탄은 맞으면 아프고, 시체는 썩어 악취를 풍기고, 총격전이 벌어지면 너무 무서워 바지를 적시기도 한다. 어떤 군대가 만들어지게 된 사회적 배경이 그 군대의 훈련과 전술과 전반적인 능력에 영향을 끼치며, 정의의 편이라는 의식이 사기를 북돋우는 것도 사실이다. 물론 그런 의식은 참전 군인들보다는 민간인들에게 더 큰 영향을 미치긴 한다. (사람들은 전선 가까이 있는 군인들이 대개는 너무 배고프거나 두렵거나 추워서, 혹은무엇보다도 너무 피곤해서 전쟁의 정치적 기원 따위는 개의치 않게 된다는 것을 잊어버린다. 하지만 자연의 법칙이 적군이라고 해서 유보되지 않는 것은백군의 경우와 마찬가지다. 이는 이고 폭탄은 폭탄이다. 전쟁의 대의명분이 어쩌다 옳은 것이라 해도 말이다. - P135
하지만 스페인 공화군 장병의 전쟁 체험은 아무튼 품위가 떨어지는 게 아니라고 생각했다. 웬일인지 이 전쟁의 변소는 악취가 덜 나고, 군기는 덜 짜증스럽다고 본 것이다. 그들이 정말 그렇게 믿었는지는 <뉴스테이츠먼>을슬쩍 들여다보기만해도 알 수 있다. 그리고 그것과 쏙 빼닮은 허튼소리가 작금의 붉은 군대에 대해 쓰이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너무 문명화되어 명백한 사실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 진실은 아주 단순한것이기 때문이다. 살아남으려면 종종 싸워야만 하고, 싸우자면 자신을더럽혀야 한다. 전쟁은 악이며, 차악인 경우도 흔히 있다. 칼을 드는 자는 칼로 망하며, 칼을 들지 않는 자는 악취 진동하는 병으로 망하는 것이다. 이런 케케묵은 소리를 굳이 쓸 필요가 있다는 사실 자체가그간 임대소득이나 이자로 먹고사는 이들의 자본주의가 우릴 어떻게 만들었는지 알 수 있게 해준다. - P137
스페인내전에서의 잔학행위에 대하여 내가 가진 직접적인 증거는 별로 없다. 내가 아는 것은 공화파가 저지른 잔학행위가 좀 있는가 하면, 파시스트가 저지른 건(또 지금도 저지르고 있는 건 훨씬 많다는 점이다. 그런데 당시에도 그랬고, 그 이후로도 줄곧 인상적이었던 것은, 잔학행위를 믿고 안 믿고 하는 것이 순전히 정치적인 편향에 따라 좌우된다는사실이다. 모두가 증거 조사에는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적의 잔학행위는믿으면서 자기편의 것은 믿지 않는 것이다. 최근에 나는 1918년부터 지금까지 있었던 잔학행위를 표로 만들어본 적이 있다. 결과는 잔학행위가 어디에서도 발생하지 않은 해가 없고, 같은 얘기를 좌파와 우파가 일제히 믿은 경우도 거의 없다는 것이었다. 게다가 더 이상한건, 정치적풍경이 바뀌기만 하면 상황이 언제든 갑자기 역전될 수 있으며 어제 확실한 사실로 입증된 만행이 오늘은 터무니없는 거짓말이 되어버릴 수있다는 점이었다. - P138
우리가 계속해서 그 200야드 거리를 내달릴 기회를 노리던 차에, 갑자기 파시스트참호 쪽에서 소란이 일더니 호각 소리가 울렸다. 아군 비행기 몇 대가 다가오고 있었던 것이다. 그 순간 장교에게 보고를 하려는 듯한 병사 하나가 참호에서 뛰쳐나와 자신을 완전히 노출시키며 방어벽 위를 내달리기 시작했다. 그는 반쯤 벗은 상태였고, 양손으로 바지를 추스르며 달리고 있었다. 나는 그를 쏘지 않기로 했다. 내 사격술이 변변찮아 100야드밖에서 달리는 사람을 맞힐 수 있을 것 같지 않았고, 파시스트들이 비행기에 정신이 팔려 있는 사이 우리 참호 쪽으로 돌아갈 생각만 주로 한것도 사실이었다. 그렇긴 하되 바지춤을 추스르는 광경 때문에 총을 쏠수 없었던 것도 있었다. 나는 ‘파시스트‘를 쏘러 거기까지 갔던 것이다. 바지를 추스르며 내딛는 병사는 파시스트‘가 아니었다. 그는 나 자신과 다를바 없는 같은 인간으로 보였으니, 그런 사람을 쏘고 싶지는 않았던 것이다. - P141
이 사건이 말해주는 바는 무엇일까? 어떤 전쟁에서든 늘 일어나는 유의 일이니 별다를 것도 없다고 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또 하나의 기억은 다르다. 이 이야기로 읽는 분들을 감동시킬 수 있을 것 같지는 않다. 하지만 특정 시점의 도덕적인 분위기를 전형적으로 나타내주는 사건이었고, 내게는 감동적이었다는 점만은 믿어도 좋을 것이다. 내가 병영에 있을 때 입대한 신병들 중에 바르셀로나 뒷골목 출신으로 거칠어 보이는 소년이 하나 있었다. 그는 남루한 차림에 맨발이었다. 또 피부색이 대단히 짙었고(아랍 혈통이라고 장담할 수 있다) 유럽인들에게서 잘 볼 수 없는 제스처를 자주 썼다. 일례로 팔을 쭉 뻗고 손바닥은 수식으로 세우는 몸짓을 자주 했는데, 인도인들에게서 흔히 볼 수 있는 동작이었다. 하루는 그 무렵에도 아주 헐값으로 살 수 있었던 시가 한 묶 - P141
음이 내 침상에서 사라졌다. 나는 꽤 어리석게도 그 사실을 장교에게 알렸고, 앞서 언급했던 망나니 두 녀석 중 하나가 당장 앞으로 나서더니자기 침상에서 25페세타가 없어졌다는 못 믿을 소리를 했다. 장교는 무슨 이유에선지 당장 피부색 짙은 그 소년을 도둑으로 지목했다. 민병대는 절도에 대해 상당히 엄했으며, 원칙상으로 총살도 가능했다. 불쌍한소년은 순순히 위병실로 따라가더니 몸수색에 응했다. 내게 가장 충격적이었던 건 그가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려는 시도 자체를 거의 하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그런 상황을 숙명적으로 받아들이는 그의 태도에서. 나는 그가 얼마나 지독한 가난 속에 살아왔는지를 알 수 있었다. 장교는그에게 옷을 다 벗으라고 명령했다. 그러자 그는 보는 내가 굴욕을 느낄정도로 순순히 자기 옷을 다 벗더니 뒤지라고 내주었다. 물론 시가도 돈도 발견되지 않았다. 그가 훔친 게 아니었던 것이다. 무엇보다도 괴로웠던건 그가 결백이 입증되었음에도 여전히 부끄러워하는 모습이었다. - P142
이 사건이 왜 나를 애틋하게 할까? 정상적인 상황이라면 이 소년과나 사이에 좋은 감정이 다시 생긴다는 게 불가능했을 터이기 때문이다. 내가 만회를 해보려고 했다 해도, 아무튼 나 때문에 도둑으로 몰려 당한. 모욕감이 풀리기는커녕 더 사무쳤을 것이다. 안전하고 문명화된 생활의결과 중 하나는 원초적이고 중요한 감정들을 역겨운 것으로 만들어버리는 지나친 민감함이다. 그래서 아량이 비열함처럼 불쾌하게 느껴지고, 감사가 배은망덕처럼 혐오스럽게 느껴지는 게 가능한 것이다. 그러나1936년 스페인에서 우리는 평범한 시간을 보내고 있지 않았다. 너그러운 감정과 제스처가 평소보다 쉬운 때였던 것이다. 비슷한 경우를 여남은 가지는 낼 수 있는데, 남들이 딱히 이해할 수 있는 것이라기보다는내 마음속에 있는 무엇, 즉 당시의 특별한 분위기, 남루한 옷과 빛깔 화 - P143
사한 혁명 포스터, 누구한테나 쓸 수 있는 ‘동지‘ 라는 단어, 얇은 종이에 찍어 푼돈에 팔던 반파시스트 가요, 무지한 사람들이 중요한 말이겠거니 해서 딱할 정도로 자주 쓰던 ‘프롤레타리아의 국제적 연대‘ 같은말과 긴밀히 어우러져 있는 일들이다. 당신이라면 누구 물건을 훔쳤다는 의심을 받아 그 사람이 보는 앞에서 수치스럽게 몸수색을 당하고서도, 그 사람에게 친근감을 느끼고 언쟁이 벌어졌을 때 그 사람 편을 들수 있겠는가? 그럴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둘 다 도량이 커지는 체험을한다면 가능할지도 모른다. 그것은 혁명의 한 부산물이었다. 단, 이 경우에 혁명은 시작일 뿐이었고, 결국 실패할 게 뻔하긴 했지만. - P144
이런 것들이 나로서는 대단히 두렵다. 이 세상에서 객관적인 진실이라는 개념 자체가 사라져간다는 느낌이 들곤 하기 때문이다. 결국엔 그런 거짓들이 아니면 그 비슷한 거짓들이 역사가 되어버릴 개연성이 다분한 것이다. 스페인내전의 역사는 어떤 식으로 기록될까? 프랑코가죄를 계속 유지한다면 그가 지목한 이들이 역사책을 쓸 것이고, 위에서언급한 대로) 있지도 않았던 러시아 군대가 역사적 사실이 될 것이며, 학생들은 앞으로 그렇게 배우게 될 것이다. 반대로 파시즘이 결국 패배하여꽤 가까운 미래에 스페인에서 모종의 민주 정부가 회복된다면, 그때는 전쟁의 역사가 어떻게 기록될까? 프랑코에 대해서는 어떤 기록이 남게 될까? 공화국 정부 쪽에서 가지고 있는 기록들까지 복구된다 하더라도, 전쟁에 관한 참된 역사가 씌어질 수 있을까? 이미 지적한 바와 같이공화국 정부 역시 상당한 거짓을 선전했다. 반파시스트의 시각으로 전쟁에 관하여 큰 틀에서 진실한 역사를 쓸 수는 있겠지만, 세세한 부분에선 신빙성이 떨어지는 편파적인 역사가 될 것이다. 아무튼 결국엔 ‘모종의 역사가 기록될 터인데, 전쟁을 실제로 기억하는 사람들이 다 죽고 나면 그 역사가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질 것이다. - P147
기록된 역사 대부분은 어떤 식이든 거짓이라는 말이 유행인 건 나도안다. 나는 역사가 대체로 부정확하고 편향된 것이라는 말을 기꺼이 믿는 쪽이다. 한데 우리 시대에 와서 특이한 점은, 역사가 진실하게 기록될 수도 있다는 개념 자체를 포기한다는 것이다. 과거에는 사람들이의도적으로 거짓말을 하거나, 자기 글을 무의식적으로 윤색하거나, 실수가 많을 수밖에 없다는 걸 잘 알면서도 진실을 애써 추구했다. 단, 어느쪽이든 ‘사실‘은 존재하며 어느 정도 밝혀낼 수 있다는 믿음을 갖고있었다. 그리고 실제로도 거의 모든 사람들이 동의할 수 있을만한 사실이 늘 상당 부분 있었다. 예컨대 지난 전쟁의 역사를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에서 찾아보면 많은 자료의 출처가 독일임을 알 수 있다. 영국과독일의 역사학자들은 많은 문제들에 대해, 심지어 기본적인 것들에 대해서도 의견이 크게 다르겠지만, 그래도 어느 쪽도 상대에게 이의를 제기하기 어려운, 말하자면 중립적인 사실도 상당량일 것이다. 그런데 모든 인류가 하나의 종임을 암시하고 있는 이 합의된 공통의 기반, 바로이것을 전체주의가 없애려고 하는 것이다. 나치의 이론은 ‘진실‘이란게 존재한다는 걸 명시적으로 부인하고 있다. - P148
하지만 전체주의의 미래에 대한 전망 때문에 너무 두려워하는 건 어쩌면 유치하거나 병적인 태도가 아닐까? 그렇다면 전체주의의 세계를실현될 수 없는 악몽으로 무시해버리기 전에, 1925년에는 지금의 세상이 실현될 수 없는 악몽 같았으리란 점을 기억해볼 일이다. 검은색이 내일은 흰색이 될 수 있고 어제의 날씨가 명령에 따라 바뀔 수도 있는 변화무쌍한 세상에 대비할 안전장치는 사실상 두 가지밖에 없다. 하나는우리가 아무리 진실을 부인한다 하더라도, 진실은 우리 배후에 엄연히존재하듯 살아있어서, 우리가 그 진실을 모독한다 해도 군사력이 약화되는 경우는 발생하지 않게 되는 것이다. 또 하나는 지구상의 일부가정복되지 않고 남아 있는 한, 자유주의적 전통이 명맥을 유지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파시즘 또는 여러 파시즘의 연합체가 온 세상을 정복할경우, 이 두 가지 조건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게 된다. - P149
우리의 전통과 과거의안전으로 인해, 결국엔 모든 게 잘될 것이며, 가장 두려워하는 일은 절대 실제로 일어나지 않는다는 감상적인 믿음을 갖게 된 까닭이다. 수백년 동안 결국 정의가 반드시 승리하고 마는 문학에서 자양분을 얻어온우리는, 악은 언제나 결국 저절로 망한다는 본능에 가까운 신념을 가지고 있다. 예를 들어, 평화주의는 대체로 이런 확신에 기반을 두고 있다. 악에 저항하지 말라. 아무튼 절로 망할 테니, 하는 믿음이 있는 것이다. 하지만 어째서 그렇다는 것인가? 그렇게 된다는 증거라도 있는가? 근대 산업국가 중에 외세의 군사력에 정복당한 경우 말고 스스로 무너진사례가 하나라도 있는가? 노예제의 부활에 대해 한번 생각해보자. 노예제가 유럽에서 되살아나 - P149
리라는 상상을 20년 전의 누가 할 수 있었겠는가? 노예제는 우리 턱밑까지 복원된 게 사실이다. 유럽과 북아프리카 전역의 강제노동 수용소에서 폴란드인과 러시아인, 유대인, 그리고 온갖 인종의 정치범이 도로건설이나 습지 배수시설 현장에서 중노동을 하고 있다. 죽지 않을 정도의 식량만 배급하며 강요하는 이 노역은 다름 아닌 노예노동이다. 그나마 나은 점이 있다 해봐야 노예를 개별적으로 사고파는 건 아직 허용되지 않는다는 정도다. 그리고 다른 면에서는(예컨대 가족의 파탄 같은 것)아메리카 면화농장의 경우보다 조건이 열악하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어떤 전체주의적 지배가 계속되는 동안은 이런 상황이 변하리라고 생각할 근거가 없다. 우리는 신비롭게도 노예제를 기반으로 하는 체제는‘반드시‘ 붕괴하고 만다는 생각을 갖고 있기 때문에, 이런 상황이 미치는 영향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한다. 그렇다면 고대 노예 제국들의 존속기간과 근대국가의 수명을 비교해볼 일이다. 노예제를 기반으로 한 문명들은 자그마치 4000년이라는 세월 동안 지속되었다. - P150
노동계급의 투쟁은 식물의 생장과도 같다. 식물은 맹목적이고 어리석을지라도 빛을 향해 계속해서 위로 뻗어나가는 것만큼은 알며, 끝없는 좌절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밀고 나간다. 그러면 노동자들은 무엇을 위해 투쟁하는가? 그야말로 인간다운 삶을 위해서며, 이제 그들은그런 삶이 기술적으로 가능하다는 것을 안다. 그런 목표에 대한 의식은조수*처럼 빠져나가기도 하고 밀려들기도 한다. 스페인 사람들은 한동안 의식 있게 행동했고, 자신들의 목표를 향해 나아갔으며, 그곳에 도달할 수 있다고 믿기도 했다. 그래서 전쟁 초기 몇 달 동안 공화국 정부아래에서의 삶이 묘한 활력을 띠었던 것이다. 서민들은 공화파가 자신들의 동지이며 프랑코는 적이라는 것을 직감으로 알았다. - P152
스페인내전을 바로 보려면 그런 점을 명심해야 한다. 전쟁의 잔혹함과 더러움과 헛됨을(이 전쟁에선 음모와 박해와 거짓과 오해를 생각하다보면 꼭 발설하고픈 유혹을 느끼게 되는 말이 한마디 있다. 이쪽도 저쪽도 나쁘다. 나는 중립이다." 하지만 실제 상황에서 사람은 중립일 수 없으며, 누가 이기든 상관없는 전쟁 같은 건 없다고 봐도 좋을 것이다. 거의 항상 한쪽은 다소 진보적인 쪽에 서고, 다른 쪽은 다소 반동적인 쪽에서는 법이다. 스페인 공화파가 백만장자와 공작, 추기경, 한량 블럼프 등등에게 불러일으킨 혐오는 그 자체로 형세가 어떠했는지 보여주기에 충분할 것이다. 본질적으로 이 전쟁은 계급 전쟁이었다. 이 전쟁에서이겼다면 서민들의 대의는 어디서나 한층 강화됐을 것이다. 하지만기 때문에 세계 각지의 불로소득자들은 만족스럽게 양손을 비빌 수 있었다. 그게 핵심이며, 나머지는 전부 그 위에 뜬 거품에 불과하다. - P153
다른 여러 나라 좌파들 모두가 의심의 여지 없이 그랬던 것처럼, 이길수 없는 상황에서도 계속 싸우도록 스페인 사람들을 격려한 게 옳았는지에 대해서는 답하기 어렵다. 내 경우에는 생존 차원으로만 보더라도싸우지 않고 항복하는 것보다는 싸우다 정복당하는 게 낫다고 생각한다. 파시즘에 맞선 그들의 투쟁이 보다 큰 전략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평가하기는 아직 이르다. 공화국의 남루하고 무기 없는 군대는 2년 반을 버텼고, 이는 적들이 예상한 것보다 확실히 긴 기간이었다. 그러나그 때문에 파시스트들의 계획에 차질이 생겼는지, 아니면 오히려 더 큰전쟁을 미룸으로써 나치에게 군수품을 정비할 말미를 제공했는지는 아직 확실치 않다. - P156
과연 그들은 끝까지 싸웠다. 전쟁 막바지 18개월 동안 공화군은 담배도 거의 없이, 최소한의 음식만으로 싸울 수밖에 없었다. 내가 스페인을떠난 1937년 중반만 해도 고기와 빵은 부족했고, 담배는 드물었으며, 커피와 설탕은 거의 구할 수 없었다. 또 하나는 내가 민병대에 입대한 날 위병소에서 내 손을 잡아준 이탈리아 민병대원이다. 그에 대해서는 스페인내전을 다룬 내 책 첫머리에묘사한 바 있기 때문에 여기서 되풀이하고 싶지는 않다. 그의 남루한 제복과 강인하면서 우수어린 순박한 얼굴이 떠오르면(아 얼마나 생생한지!)전쟁의 복잡하고 부차적인 문제들은 다 사라지는 듯하고, 아무튼 누가옳았는지를 분명히 알 수 있게 된다. 힘을 앞세운 국제정치와 언론의 거짓에도 불구하고, 이 전쟁의 핵심 이슈는 이런 사람들이 자신의 타고난권리인 줄 알았던 인간다운 삶을 쟁취하고자 한 시도였다는 사실이다. 이 사람의 최후가 어떠했을지 생각하면 이런저런 비감에 젖지 않을수 없다. 내가 그를 만난 곳은 ‘레닌 병영‘ 이었으니 그는 아마도 트로츠키주의자나 무정부주의자였을 텐데, 우리 시대의 특수한 여건에서 그런종류의 사람은 게슈타포한테 살해당하지 않으면 대개 GPU(소련 국가정치보안부)한테 죽게 되어 있는 것이다. - P157
시와 마이크
1년 전쯤 나는 여러 사람과 함께 문학 방송 프로그램을 인도로 내보내는 일을 했다. 주로 당대와 당대에 가까운 영국 작가들의 시를 많이방송했는데, 그런 작가들이란 예를 들면 엘리엇, 허버트 리드, 오든, 스펜더, 딜런 토머스, 헨리 트리스, 알렉스 컴포트, 로버트 브리지스, 에드먼드 블런든, D. H. 로렌스 같은 이들이었다. 우리는 가능한 경우라면언제나 시를 쓴 사람이 직접 나와 방송하는 것을 원칙으로 삼았다. 딱히왜 이런 특정 프로그램을 시작했는지 (사소하고 동떨어지긴 해도 전파 전쟁에서 허를 찌르는 하나의 작전이긴 했다) 여기서 설명할 필요는 없겠지만, 우리가 인도의 특정 청취자들을 대상으로 방송을 했다는 사실이, 방송을구성하는 테크닉에 어느 정도 영향을 주었다는 점은 덧붙이고 싶다. 본질적으로 우리의 문학 방송은 인도의 대학생들을 겨냥한 것이었는데, - P163
소규모의 적대적인 그 청취자들은 영국의 선전운동이라 할 만한 다른무엇으로도 접근할 수 없는 대상이었다. 우리가 기껏해야 수천 명 이상의 청취자를 기대할 수 없다는 건 진작부터 알려진 바였고, 그것이 일반적으로 방송에서 가능한 것보다 고상‘ 해도 되는 핑계가 되어주었던 것이다. 해당 언어를 알되 문화적 배경은 다른 사람들에게 시를 방송할 경우, 어느 정도의 논평과 설명은 불가피한데, 우리가 대개 따랐던 방식은 월간 문학잡지를 가장한 형태의 방송을 하는 것이었다. 우리는 편집진이회의실에 앉아 다음 호엔 뭘 살을까를 의논하는 시늉을 했다. 누가 어떤시를 제안하면 다른 누구는 다른 시를 제안했고, 잠시 의논을 하다 시가정해지면 다른 목소리가 시를 읽었고, 목소리의 주인공이 그 시의 작가라면 더 좋았다. - P164
이 시는 자연스레 다른 시를 불러냈고, 프로그램은 그런 식으로 진행됐는데, 대개 두 편의 시 사이에 최소한 30초의 의논이있었다. 30분 분량의 프로그램에서 목소리는 여섯 정도가 제일 알맞은것 같았다. 이런 유의 프로그램은 짜임새가 엉성할 수밖에 없었으나, 하나의 테마를 중심으로 돌아가게 하면 어느 정도 통일성이 있어 보였다. 이를테면 우리가 상상으로 만드는 잡지의 한 호는 전쟁이란 주제를 다뤘다. 여기서 우리는 에드먼드 블런든의 시 두 편, 오든의 「1941년 9월」, G. S. 프레이저의 장시(「앤 리들러에게 보내는 편지」) 일부, 바이런의「그리스의 섬들」, 그리고 T. E. 로렌스의 ‘사막의 반란‘ 일부를 소개했1다. 이 여섯 꼭지와 그 앞뒤의 논의는 전쟁에 대하여 어떤 태도들이 있을 수 있는지를 그런대로 잘 보여주었다. 시와 산문 발췌는 20분 정도, - P164
논의는 8분 정도면 되었다. 이런 구성은 좀 우스꽝스럽고 약간 생색내는 듯하기도 하지만, 비공식적 토론의 모양새를 띠면, 심각하기도 하고 때로는 ‘어렵기도 한 운문을 방송할 때 면하기 어려운 밋밋하고 교과서적인 소개의 분위기가크게 완화되는 장점이 있다. 여러 발언자들은 서로에게 말하는 듯한 형식으로 실은 청취자에게 하고 싶은 말을 할 수 있다. 또한 그런 식으로접근하면 적어도 그 시가 나오게 된 맥락을 설명해줄 수 있는데, 그런맥락이야말로 일반인들이 시를 대할 때 결핍을 느끼는 부분인 것이다. - P165
물론 다른 방법도 있다. 우리가 흔히 써먹은 방법 하나는 음악 속에 시를앉히는 것이었다. 먼저 잠시 후에 이런저런 시를 방송할 것이라고 예고해준다. 이어서 음악을 1분 정도 틀어준 다음 페이드아웃하면서, 제목이든 뭐든 시에 대한 언급을 전혀 하지 않은 채 시를 낭독한다. 그리고 음악을 다시 페이드인해서 1~2분 정도 계속 틀어준다. 이렇게 해서 5분 정도에 시 한 편을 음악과 함께 소개하는 것이다. 어울리는 음악을 고르는게 중요하지만, 여기서 음악을 이용하는 진정한 목적은 말할 것도 없이프로그램의 다른 부분들로부터 시를 단절시키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하면 셰익스피어의 소네트 한 편을 3분 분량의 뉴스 속보 속에 끼워넣으면서도 어쨌든 내 귀에는 크게 어색하지 않도록 할 수 있는 것이다. - P166
하지만 굳이 언급을 한 것은, 그러한 시도들이 시를 대중화하는수단으로 라디오를 이용할 수 있을지, 그 가능성과 관련하여 나 자신과여러 사람에게 이런저런 아이디어를 가져다줬기 때문이다. 나는 시를쓴 사람이 직접 방송을 하는게 그저 청취자들에게만 어떤 효과를 내는것이 아니라, 시인 자신에게도 변화를 일으킨다는 사실을 일찌감치 발견하고서 매료되었다. 시를 방송하는 방법에 관한 한 영국에선 별달리시도된 바가 거의 없으며, 시를 쓰는 많은 사람들이 시를 크게 소리내어읽는다는 생각 자체를 해본 적이 없다는 점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마이크 앞에 앉음으로써(특히 그럴 일이 정기적으로 있을 때) 시인은 우리의 시대와 나라에서는 달리 접할 수 없는 새로운 관계를 자기 작품과 맺게 된다. 근대에 와서(지난 200년 동안이라고 하자) 시가 음악이나 어갖는 연관성은 점점 더 사라져가고 있다. 시는 존재라도 하기 위해 종이를 필요로 하게 되었고, 시인이란 사람에게 노래나 낭송을 기대한다는 - P166
건 건축가에게 천장에 회반죽 바르는 기술을 기대하는 것보다 곤란한일이 되어버렸다. 서정적이거나 수사적인 시를 쓰는 사람은 거의 없어졌고, 누구나 글을 읽을 수 있는 나라라면 어디서나 일반인들이 시에 거부감을 갖는 게 당연시되고 말았다. 그리고 그런 간극이 존재하는 곳에서는 그 틈이 계속해서 벌어져가고만 있으니, 시는 주로 인쇄된 형태로소수만이 이해할 수 있는 무엇이라는 관념이 모호함과 교묘함을 더자극하기 때문이다. 단번에 뜻이 통하는 시에 대해 어딘가 분명히 잘못된 거라고 반본능적으로 느끼지 않을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 다시시를 크게 소리내어 읽게 되지 않는 한 그런 경향은 저지되지 않을 것같은데, 라디오를 수단으로 활용하지 않고서는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을 것 같지 않다. 그런가 하면 라디오의 특별한 장점, 즉 적절한 청취자를 고를 수 있고 무대공포증과 당혹감을 피할 수 있다는 점을 여기서 언급할 필요가 있다. - P167
방송에서 청취자는 어차피 어림짐작이지만 ‘단 한 사람 같은 존재다. 수백만이 듣고 있을 수도 있지만, 각자 혼자 듣고 있거나 작은 그룹의 일원으로 듣고 있으며, 그 각자는 방송이 자기에게만 개인적으로 얘기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혹은 받아야 한다). 뿐만 아니라 방송하는입장에선 청취자들이 공감하거나 최소한 관심을 갖고 있다고 여겨도 무리가 아니다. 왜냐하면 따분한 사람은 언제든 채널을 다른 데로 돌려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청취자들은 공감은 할지언정 방송하는 사람에게 영향력을 행사할 수는 없다. 방송이 연설이나 강연과 다른 게 바로 이 점이다. 대중 연설에 익숙한 사람이라면 다 알듯이, 연단 위에서는 청중의 반응에 따라 어조가 달라지지 않는다는 게 거의 불가능하다. 청중이 무엇에 반응하고 안 할지는 항상 몇 분 안에 분명해지며, 실제로 - P167
연사는 청중 가운데 제일 모자란다 싶은 사람을 염두에 두고 발언하지않을 수 없고, 그것도 ‘개성‘이라고 알려져 있는 소란을 떨어가며 환심을 사야 한다. 안 그러면 결과는 언제나 냉랭하고 당혹스런 분위기로 나타난다. 청중 앞에서 하는 ‘시 낭송‘이 끔찍한 건, 청중 가운데 따분해하거나 거의 노골적으로 거부감을 보이면서도 단순히 채널을 돌림으로써 다른 데로 가버릴 수 없는 사람들이 항상 존재할 것이기 때문이다. 영국에서 셰익스피어 공연을 제대로 한다는 게 불가능한 것도 본질적으로 같은 어려움 때문이다. 극장의 관객은 선별된 사람들이 아닌 것이다. 그런데 방송에선 그런 상황이 존재하지 않는다. 방송에서 시인은 시가무엇인지 어느 정도 아는 사람들에게 말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아울러 방송에 익숙해진 시인들이 마이크에 대고 시를 읽으며 청중이보이는 데서라면 발휘할 수 없는 기량을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 P168
여기서 가장하는 요소가 개입된다는 건 별 문제가 아니다. 중요한 것은 현재로서 쓸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을 통해, 시를 크게 소리내어 읽는다는 게 당혹스럽지 않고 자연스러운 일처럼, 사람 대 사람의 정상적인 교류처럼느껴지는 상황을 시인에게 만들어줄 수 있으며, 그 자신의 작품을 종이위의 패턴보다는 ‘소리‘로 여기도록 할 수 있다는 점이다. 그럼으로써시와 일반인 간의 화해가 더 가까워지게 된다. 그런 화해는 전파를 수신하는 쪽에서는 어떤지 몰라도 발신하는 시인의 입장에서는 이미 이루어지고 있다. 그렇다고 상대편 쪽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을 무시할 순 없는 노릇이다. 지금까지 나는 마치 시라는 것 자체가 외설적이다 싶을 정도로 당혹스러운 무엇이며, 마치 시를 대중화하는 게 본질적으로 어린아이한테약을 삼키게 하거나 박해받는 종파에 대한 관용을 세간으로부터 얻어내 - P168
는 일과 같은 전략적 술책이라는 인상을 심어줬는지도 모른다. 그런데유감스럽게도 그런 부분이 있는 게 사실이다. 우리 문명에서 시는 단연코 가장 불신받는 예술, 다시 말해 일반인들이 ‘어떤‘ 가치도 찾아내려하지 않는 유일한 예술임이 분명하다. 아놀드 베넷‘이 영어권 나라에서소방 호스보다 군중을 더 빨리 흩어버릴 수 있는 게 ‘시‘ 라는 단어라고한 건 과장이 아니었다. 그리고 앞에서도 지적했듯, 이런 유의 간극은존재한다는 이유만으로 더욱 벌어지는 경향이 있다. 일반인들은 점점더 시에 반감을 갖게 되고, 시인은 점점 더 거만하고 난해한 존재가 되어, 결국엔 시와 대중문화 사이의 단절이 일종의 자연법칙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이다. 실은 우리 시대에만, 그것도 지구에서 상대적으로 적은일부 지역에만 있는 문제인데도 말이다. 우리는 고도로 문명화된 나라들의 평균적인 인간이 가장 미개한 야만인보다 미적으로 열등한 시대에살고 있다. - P169
이러한 양상은 ‘의식적인 행동으로는 대체로 치유하기 어려워 보이는데, 다른 한편으로 사회가 좀더 반듯해지면 금방 저절로 나아질 것으로 예상되기도 한다. 약간씩 차이가 있겠지만 마르크스주의자도, 무정부주의자도, 종교를 믿는 사람도 모두 같은 얘기를 할 텐데, 크게 보면 틀림없는 사실이다. 우리의 삶이 볼품없는 데는 정신적으로나경제적으로나 원인이 있으며, 어느 순간부터 전통이 실종됐다는 것만으로는 설명이 되지 않는다. 하지만 그렇다고 지금의 틀 속에서 개선이 불가능한 건 아니며, 미적인 개선이 사회 전반을 구원하는 데 불필요한 부분인 것도 아니다. 그러니, 지금이라도 가장 미움받는 예술이라는 특별한 처지로부터 시를 구제하여 사람들이 음악에 베푸는 만큼의 관용만이라도 받도록 하는 게 가능하지는 않을지 곰곰이 생각해볼 만하다. 단, - P169
그러자면 시가 어떤 식으로, 어느 정도로 인기가 없는지를 질문하는 데서부터 출발해야 한다. 우선 표면적으로 볼 때 시가 인기 없다는 건 더없이 완벽한 사실이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면, 이 말은 좀 특수하게 한정해서 해야 한다. 먼저 보편적으로 알려져 있고 인용되며 모든 이의 마음속에 한 바탕을 이루고 있는 민속 시가(동요 등)가 아직도 상당히 많이 남아 있다. 사람들의 호감을 잃어본 적이 없는 옛날 노래도 제법 남아 있다. 게다가 대체로 애국적이고 감상적인 유의 ‘좋으면서 나쁜 시가 인기를 누리거나최소한 용인되고 있는 것이다. 이 말은 좋으면서 나쁜‘ 시가, 일반인으로 하여금 진정한 시를 싫어하게 만드는 듯한 요소를 전부 갖추고 있는게 아니라면, 엉뚱한 소리로 들릴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런 시 역시 운문으로서 운행을 사용하고 고상한 정서와 특이한 언어를 구사하며, 더구나 현저할 정도로 그러는 게 사실이다. 나쁜 시가 좋은 시보다 더 시적‘ 이란 건 거의 자명한 일인 것이다. - P170
그런데도 그런 시는 특별한 사랑을 받는 건 아니더라도 최소한 용인되고 있는 것이다. 일례로 나는 이글을 쓰기 직전, BBC 9시 뉴스 바로 전에 늘 하는 두 코미디언의 방송을 듣고 있었다. 마지막 3분을 남겨두고 한 코미디언이 갑자기 "잠시 좀심각해지고 싶다"더니 국왕 폐하를 찬양하는 멋쟁이 영국 신사」란 말도 안 되는 애국시를 읊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느닷없이 최악의 영웅시를 듣게 된 청취자들의 반응은 어떨까? 심하게 부정적인 반응은 결코아닐 것이다. 아니면 BBC에 그런 짓을 즉각 중단하라는 분노의 편지들이 꽤 날아들 테니 말이다. 그러니 다수 대중이 ‘시‘에는 거부감을 갖고있을지언정 ‘운문‘에는 큰 거부감을 갖고 있지 않다는 결론을 내릴 필요가 있다. 아무튼 사람들이 운율이라는 것 자체를 싫어했다면 어떤 노 - P170
래나 익살 5행시 limerick도 유행하지 못했을 것이다. 사람들이 시를 싫어하는 것은 시가 불가해성, 지적 허세, 그리고 남들 바쁜데 혼자만 한가로운 소리를 한다는 느낌과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시라는 단어 자체가 ‘하느님‘ 이나 목사의 개목걸이 (빳빳이 세운 칼라) 같은 말처럼 나쁜 인상부터 심어주는 것이다. 시를 대중화한다는 것은 어느 정도는 후천적인 억제를 완화시켜주는 일이다. 그것은 사람들이 기계적인 야유를 내뱉는 대신에 듣도록 해주는 문제다. 내가 방금 들었다는 애국시 나부랭이가 아마 그랬을 것처럼, 진정한 시를 다수 대중에게 ‘정상‘으로 보이도록 소개할 수 있다면, 그것에 대한 편견을 어느 정도 극복할 수 있을지 모른다. - P171
시를 다시 대중화하는 일이 대중의 취향을 육성하려는 의도적인 노력없이 가능하다고 믿긴 어려울 것이다. 그러자면 전략이 필요할 것이고, 속임수까지 써야 할지도 모른다. T. S. 엘리엇은 시가, 특히 극시가 뮤직홀이라는 수단을 통해 일반인들의 의식 속에 되살아날 수도 있다는발언을 한 적이 있다. 그는 아직까지 그 엄청난 가능성을 한 번도 철저히 시험해본 적이 없는 판토마임이라는 수단도 추가하고 싶었는지 모른다.) 투사 스위나는 아마 그런 의도에서 씌었을 것이고, 실제로 뮤직홀의 한 꼭지나풍자 음악극의 한 장으로 받아들여도 좋을 것이다. 지금까지 나는 라디오를 보다 희망적인 매체로서 제시했고, 라디오의 기술적인 장점을특히 시인의 입장에서 짚어보았다. 하지만 이런 얘기는 처음엔 부질없이 들릴 텐데, 그건 라디오가 헛소리 이외의 것을 퍼뜨리는 데 이용된다는 상상을 할 수 있는 사람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온 세상 곳 - P171
곳에 있는 확성기에서 그야말로 줄줄 흘러내리는 헛소리들을 듣고 있으며, 그래서 라디오를 딴 게 아니라 바로 그런 걸 들으라고 존재하는 것으로 단정 짓는다. 그래서인지 ‘라디오‘ 라는 단어 자체가 고함지르는독재자나 아군 비행기 세 대가 귀환하지 못했음을 알리는 점잖고 묵직한 음성을 떠올리게 한다. 그러니 전파를 타고 들려오는 시는 줄무늬 바지 입은 뮤즈 여신들 같다. 하지만 그렇다고 한 매체의 가능성과 그것의실제 쓰임을 혼동해서는 안 된다. 방송이 그 모양인 건 마이크와 송신기라는 장치 자체가 본래부터 저속하거나 시시하거나 부정직해서가 아니다. 그보다는 지금 전파를 타는 전 세계의 모든 방송이, 현상을 유지하고자 하며 그래서 일반인들이 너무 똑똑해지는 걸 막으려 하는 정부와거대 독점기업의 통제하에 있기 때문이다. 영화에도 그 비슷한 일이 있었다. 영화 역시 독점 자본 형성기에 처음 나왔고, 제작부터 소비 단계까지 돈이 너무 많이 들어가는 장르이다. 그런데 이런 경향은 모든 예술이 다 마찬가지다. - P172
예술 작품이 만들어지는 경로가 점점 더 관료의 통제하에 들어가고 있는데, 관료의 목표란 결국 예술가를 망가뜨리는 것, 혹은 최소한 거세라도 해버리는 것이다. 현실이 이렇기만 하다면 전망은암울할 것이다. 그런데 지금 진행 중이며 앞으로도 진행될 게 분명한 전체주의회는 불과 5년 전만 하더라도 예견하기 어렵던 새로운 변화 덕분에 완화되고 있다. 아무튼 우리 모두가 속해 있는 거대한 관료 체제라는 기계장치는 너무 비대하면서도 계속 몸집을 불려야만 하기 때문에 삐걱거리며 돌아가기 시작할 것이다. 현대 국가는 지식인의 자유를 말살하려는 경향을 보이지만, 동시에 모든 국가가(전쟁의 압박을 받을 때는 특히 더) 갈수록 국가의 홍보를 맡아줄 지식인들을 필요로 하게 된다. 현대 국가는 이를테면 - P172
팜플렛 작가, 포스터 화가, 삽화가, 방송인 강연자, 영화제작자, 배우, 작곡가, 심지어 화가와 조각가까지 필요로 한다. 심리학자, 사회학자생화학자, 수학자 등은 말할 것도 없다. 영국 정부는 이번 전쟁에 돌입할 때 문단의 지식인들을 배제할 의사를 거의 공공연하게 밝힌 바 있다. 그러나 3년이 지난 시점엔 거의 모든 작가를(정치적 이력이나 견해가 아무리 마음에 들지 않는다 해도) 정부 각 부처나 BBC로 끌어들였다. 심지어입대를 한 작가들조차도 얼마 뒤면 선전홍보 업무 아니면 본질적으로문필업인 일을 하게 된다. 정부가 내키지 않으면서도 그런 사람들을 흡수한 것은, 그들 없이는 지탱이 불가능하다는 걸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관리들의 입장에서 이상적인 건 모든 홍보를 A. P. 허버트나 이언 헤이‘ 같은 ‘안전한 사람들 손에 맡기는 것일 터였다. - P173
그러나 그런 사람들이충분하지 않았기에 기존의 지식인들을 활용해야 했고, 그에 따라 정부홍보물의 어조와 심지어 내용까지 어느 정도 바뀔 수밖에 없었다. 지난2년 동안 피점령국들에 내보낸 정부 팜플렛에, 육군 정훈공보실의 강연에, 다큐멘터리 영화와 방송에 정통한 사람들 중, 우리의 지배자들이 안그럴 수 있는데도 그런 식의 변화를 묵인해준 것이라고 생각하는 이는아무도 없다. 정부라는 거대 기계는 커지면 커질수록 왜 있는지도 잘 모르거나 거의 잊혀져버리는 자리가 늘어나게 마련이다. 이러한 사실은대단하진 않지만 무시할순 없는 위안이 될 수 있다. 그것은 자유주의적인 전통이 강하던 나라에서는 관료 체제의 폭압이 완벽해지는 것이 어쩌면 불가능할 수도 있다는 뜻이 되기 때문이다. 줄무늬 바지 차림인 자들이 지배를 하되, 그들이 지식인들을 쓰지 않을 수 없는 이상, 지식인들은 어느 정도의 자율성을 발휘할 것이다. 예컨대 정부는 다큐멘터리 - P173
영화가 필요하면 영화제작 전문가들을 써야 하며, 그들에게 필요한 최소한의 자유를 허용해야 한다. 그래서 관료의 입장에서 보면 완전히 잘못된 영화가 나올 가능성이 언제나 존재하는 것이다. 그것은 복잡한 현대국가가 필요로 하는 그림, 사진, 대본, 르포, 강연, 또 그밖의 모든 예술과 유사 예술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물론 이런 경향은 라디오에도 뚜렷하다. 지금 현재 확성기는 창의적인 작가의 적이지만, 방송의 양과 범위가 늘어날수록 꼭 그렇지만은 않을 수도 있다. 지금으로서는 BBC가 동시대 문학에 미미하나마 관심을계속 보이고 있긴 하지만, 시 한 편을 방송할 전파 5분을 확보하는 게거짓 선전이나 녹음된 음악, 상투적인 농담, 가짜 ‘토론‘ 같은 것들을퍼뜨리기 위해 12시간을 확보하는 것보다 어렵다. 하지만 양상은 지금까지 내가 지적한 바와 같은 방향으로 바뀔 수 있다. - P174
그런 때가 오면 지금은 이런저런 적대적 외압 때문에 엄두도 못 내는, 운문을 방송하는 것과 관련한 진지한 실험들이 가능해질 것이다. 그런 실험들이 아주 대단한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주장하는 건 아니다. 라디오는 발전 초기부터 관료화되는 바람에 방송과 문학의 관계가 제대로 검토된 적이 없다. 마이크가 시를 일반인들에게 다시 돌려줄 수단이 될 수 있을지는 확실치 않으며, 시가 글보다 말에 가까워짐으로써 유익할 것인지조차도 확실치 않다. 하지만 나는 그런 가능성들이 존재한다고, 문학을 아끼는 사람들이 너무 무시당하고 있는 매체에 더 관심을 가질지도 모른다고 강력히 주장하고 싶다. 조드 교수와 괴벨스 박사‘의 음성 때문에 선한 도구로 쓰일 수 있는 가능성이 흐려져버렸는지 모를 이 매체에 말이다. - P1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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