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일린 오쇼네시는 6월 9일, 화요일에 아일린 블레어가 되었다. 그녀의 새 집에서 그늘진 오솔길을 따라 타르로 검게 칠한 매너 농장과 작은 연못을 지나 조금 걸어 올라가면 나오는 교회에서 조촐한 예식이 거행되었다. 이 작은 교회는 12세기부터조금씩 지어진 것으로, 지역에서 나는 어두운 빛깔의 수석을제각각의 모양대로 시멘트를 사용해 이어 붙인 특이한 외관의 건물이었다. 그 돌멩이들은 마치 책의 한 쪽에 늘어놓은 상형 문자들처럼 보인다. 희게 칠한 내부는 밝고 휑하다. 목재 서까래에는오래전에 새겨놓은 천사들이 있고, 바닥은 흘림체로 비문을 새긴 18세기의 검은 묘석들로 포장되어 있다. - P62
오랜 전통, 산업화 이전 영국 시골 마을의 전통을 중시하는 전통주의자였다"라고 시인 스티븐 스펜더Stephen Spender는 말했다. "그는 이웃들이 서로 잘 아는 작은 공동체를 신봉했고, 그래서 무정그러므로 그가부주의자들과 상당한 공감을 지니고 있었다. 공산주의자가 아니었던 근본적인 이유는 공산주의자들이 공산주의자가 아니었고 오웰은 공산주의자였기 때문이라고 말할 수있을 것이다."윌리엄 모리스William Morris와 마찬가지로, 그도천국은 우리 앞에, 도시화되고 산업화된 미래에 있다기보다 우리의 등 뒤에, 구식의 삶에 유기적인 세계에 있다고 믿었다. 교회에서 결혼식을 올리기로 한 것도 아마 그런 예스러운방식이 좋아서였을 것이다. 물론 마을이나 가게를 떠날 필요가없는 장소를 선택한 것일 수도 있지만 말이다. 가게는 거의 연중무휴로 열려 있었다. 피로연은 신혼집 근처의 펍에서 열렸다. - P63
아일린의 집에서는 그녀의 사랑하는 오빠 로런스 프레더릭 오쇼네시가 ‘에릭‘이라는 이름으로 불렸으므로, 그녀는 에릭 블레어와 결혼하여 블레어라는 이름을쓰게 된 후 남편을 ‘조지‘라고 불렀다. ‘조지 오웰‘이라는 이름은 갑자기 필명으로사용되기 시작했지만, 차츰 편지에서나 친구들 사이에서도 나타나게 되었고, 결국 그는 개인적으로 아는 사람들 중 다수에게 ‘조지 오웰‘로 알려지게 되었다. 그러니까 조지 오웰의 첫 아내는 ‘아일린 오웰‘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아일린 블레어‘였다. 그녀의 묘비에도 그의 묘비에도 ‘블레어‘라는 이름이 새겨졌고, 1944년그들이 입양한 아들은 ‘리처드 블레어‘가 되었다. 나는 아일린 오쇼네시 블레어를 ‘아일린‘이라고 불러야 하는 것이 유감이지만, 너무나 많은 기혼 여성의 경우가 그렇듯, 그녀가 평생 지녔던 자신만의 이름은 그것뿐이다. 반면 오웰이 죽기 두어 달 전에 결혼했던 소니아 브라우넬은 오웰이라는 성을 따랐다. 마치 그 사람보다는 전설과 결혼하기나 하는 것처럼. [원주] - P63
헨리 데이비드 소로 같은 작가라면 콩을 심고 은유와 잠언을 거두었을 법하지만, 이런 일지에서 오웰의 콩은 엄격하게 콩으로 자랐다. 즉 그는 그런 관찰이나 기록을 상상력의 도약판이나 공공연한 문학적 기초 공사로 삼지 않았다는 말이다. 그것은사적인 성격이 없는 일지로, 발표하려고 쓴 것도 아니고 그의 감정적·창조적·사회적·신체적 삶의 기록도 아니다. 단지 그의 노동과 작업 계획을 담고 있을 뿐이다. 때로는 무엇을 사고 무슨 일을해야겠다는 식의 목록도 있는데, 너무나 단순하고 가까운 미래의 계획이라 다른 많은 일들이 실현 불가능할 때에도 충분히 실현 가능한 것들이었다. 그가 왜 이런 자세한 기록을 남겼는지 이유는 분명치 않지만, 그는 그 일지에 워낙 열심이었으므로 그가부친의 임종을 지키기 위해 월링턴을 떠나야 했을 때는 아일린이기록을 계속했고, - P66
1940년 그는 작가들을 대상으로 한 어느 설문 조사에서자신의 생활을 이렇게 묘사했다. "글 쓰는 본업 외에 내가 가장좋아하는 일은 정원 가꾸기, 특히 텃밭 가꾸기이다."‘그것이 그에게 얼마나 중요했던가는 1933년 처음 시민농장을 분양받았을 때부터 그 자신이 죽어가던 무렵 생명을 불어넣으려 애썼던마지막 정원에 이르기까지, 그가 그 일에 쏟은 정성과 노동을 보면 알 수 있다. 그 척도는 덜 계량적이지만 더 의미심장한 것, 즉그가 그 일에서 발견했던 기쁨과 의미에 있다. 그는 정원을 원했고, 정원에서 일하기를 원했다. 자기가 먹을 것과 좀 더 무형의 것들을 생산하기 원했다. 그는 꽃과 과일나무와 채소와 닭과 염소를 원했고, 새와 하늘과 계절의 변화를 지켜보기를 원했다. 그는1946년 「나는 왜 쓰는가」에서 밝혔던 소신대로 이 땅을 사랑했던것이 분명하다. 그는 수선화와 고슴도치와 민달팽이에 대해 궁금해했고, 동식물과 날씨를 관찰하는 데 많은 시간을 보냈다. - P67
작가로서, 당신은 세상으로부터 물러나 연을 끊지만, 그것은 좀 더 폭넓게 세상과 연결되기 위해, 즉 이 관조적인 상태에서 짜 맞추어진말들을 다른 곳에서 읽을 사람들과 연결되기 위해서이다. 글쓰기에서 생생한 것은 그것이 오감을 어떻게 자극하느냐가 아니라 상상력에 어떻게 호소하느냐이다. 전쟁터와 탄생과 진창길을, 또는냄새를 오웰은 그의 책들에 묘사된 악취로 유명해지게 된다묘사할 수는 있지만, 그래 봤자 그것은 진짜 피도, 진흙도, 삶은양배추도 아닌, 백지 위의 검은 글자들일 뿐이다. - P68
정원은 글쓰기의 육체 없는 불확실성과는 정반대인 것을제공한다. 그것은 모든 감각에 생생하게 와닿는 육체노동의 공간, 최상의 그리고 가장 문자 그대로의 방식으로 더러워질 공간이며, 즉각적이고 이론의 여지 없는 효과를 볼 기회이다. 땅을 판다면 하루의 끝에는 얼마나 팠는가가 닭들이 낳은 달걀의 개수만큼이나 분명하다. 문학 평론가 쿠니오신 Kunio Shin은 『1984』의 주인공 윈스턴 스미스에 대해 이렇게 썼다. "경험의 견실성뿐 아니라 외적 현실의 존재 자체가 당에 의해 암묵적으로 부인되는 세계에서, 윈스턴이 ‘돌은 단단하고 물은 축축하며 떠받치지 않은 물체는 지구 중심을 향해 떨어진다‘ 같은 뻔한 진리를 붙들려는 시도는 그 자체로 정치적 저항의 필사적인 몸짓이다."『1984』의 또 다른 곳에서 오웰은 이렇게 선언한다. "당은 당신에게 눈과 귀의 자명성을 거부하라고 명했소." - P68
이는물질적,감각적 세계에서의 직접적 관찰과 일차적 만남을 저항 행위로, 또는적어도 저항할 줄 아는 자아를 강화하는 행위로 만든다. 이런 직접적 경험으로 자주 시간을 보내는 것은 사태를 명확하게 하는방법이요, 단어의 소용돌이와 그것이 휘저어 올릴 수 있는 혼돈으로부터 벗어나는 한 방법이다. 거짓과 환상의 시대에 정원은 성장 과정과 시간의 흐름의 영역에, 물리학·기상학·수력학·생물학의 법칙의 영역에, 그리고 감각의 영역에 뿌리박는 한 방식이다. - P69
미국 시인이자 열성적인 정원사인 로스 게이Ross Gay는 한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내 인생에서 정원 일만큼 내게 느리게 사는 법을 훈련시킨 일은 없을 겁니다. 정원 일은 내게 아주 자세히 들여다보게 했어요. 내 정원이 주는 기쁨의 일부는 도대체어떤 일도 시작하기 전에 그 안에 빠져든다는 것입니다. 1년 중 몇차례는 뒷마당에 나가 채 30피트(9미터)도 가기 전에 20분씩이나걸음을 멈춥니다. 뜰보리수에 손질이 필요하기 때문이지요. 그러다 각다귀가 눈에 뜨이고, 라벤더와 그 바로 곁의 백리향 덤불에서 잡초를 뽑아주어야 한다는 걸 알게 되지요. 난 내 정원이 생산성의 논리를 떠나 아주 생산적이라는 게 좋아요. 거기서는 먹을수 있고 영양가 높은 것도 많이 나지만, 꼭 계량하려는 생각이 들지 않는 방식으로도 생산적이랍니다."3" 글쓰기의 대부분은 생각하기이지 자판 두드리기가 아니며, 생각하기는 때로 무엇인가 다른 것을 하고 있을 때 가장 잘 이루어진다. - P69
생계를 위해 글을 쓸 때 돌아오는 것(영향력, 수입, 인정 같은것)은 뜬구름처럼 확실치 않을 수 있지만, 정원에 씨를 뿌린 것은날씨나 병충해로 망하지 않는 한 반드시 거두기 마련이다. 식용작물을 키우는 것은 단어 속에서 헤매다가 감각으로 또 자아 감각으로 돌아오는 한 방법이 시금석이 될 수 있다. 또 그것은 예측 불가능성으로 가득 찬 창조적 과정과의 만남이 될 수도 있으니, 그 과정에는 날씨나 다른 생물들, 미처 예상하지 못했던 온갖힘들이 끼어들기 마련이다. 정원 일은 종이(또는 컴퓨터 스크린) 위에서 일어나는 일과 달리 인간이 아닌 것들과의 협동 작업이다. 원고는 우박에 두들겨 맞을 일이 거의 없지만 말이다(오웰의 원고하나가 독일군의 폭탄에 산산조각이 나기는 했다). 1984」의 뉴스피크Newspeak(신어)가 뿌리 뽑으려 하는 은유적이고 이미지가 풍부하여 상상력을 자극하는 언어는 자연스럽고 전원적인 농경 세계에뿌리박고 있다. - P70
그가 회상하는 한 사건, 아마도 웰링턴에서 일어났음직한 사건은 또 다른 전원적 비유를 쓰자면, 전원적인 것이 그에게서 얼마나 풍부한 열매를 맺었던가를 보여준다. "나는 한 어린 소년, 아마 열 살쯤 되었을 소년이 커다란 수레 말을 몰고 좁다란 길을 가면서 말이 돌아보려 할 때마다 채찍질하는 것을 보았다. 나는 문득 그런 동물들이 자신들의 힘을 알게 되기만 한다면 우리는 그들에게 아무 힘도 행사하지 못할 것이며 인간이 동물을 착취하는 방식은 부자가 프롤레타리아를 착취하는 방식과 같다는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해서 동물농장이 태어나게 된 것이다. 그는 전쟁 동안 런던에서 그것을 썼지만, 다양한 가축들의 기질을 익히 아는 것이 큰 도움이 되었다. 정원은 삶과 죽음의 불가분성이 무수한 방식으로 드러나는 장소이기도 하다. 1939년 10월 말에 오웰은 정원 일기에 된서리 때문에 "달리아들은 대번에 시커메졌고, 익으라고 두었던 호박들도 다 망가졌을 것"이라고 썼다." 그날 그는 뿌리 덮기를 하려고 낙엽을 쓸어 모으고 퇴비 더미에서 작업을 했는데, "H 영감이 전에 쌓아둔 뗏장이 잘 썩어서 훌륭한 부식토가 되었다. - P71
오웰의 무정부주의자 친구 조지 우드콕George Woodcock은 이렇게 썼다. "그의 자기 재생 능력은 그가 평범한 것, 하루하루 살아가는 평범한 경험, 그리고 특히 자연과의 접촉에서 누리는 기쁨에 있었다. 그는 마치 안타이오스처럼 땅에서 양식을 취했다.43 행복과 기쁨의 차이는 중요하다. 행복은 마치 끝없는 햇살처럼 지속적인 상태로 상상되는 데 비해, 기쁨은 번개처럼 번득이는 것이다. 행복은 난관이나 불화를 피하는 질서 잡힌 삶을요구하는 듯한 데 비해, 기쁨은 어디서든 불현듯 나타날 수 있다. 칼라 버그먼earla bergman과닉 몽고메리Nick Montgomery는 함께 쓴 - P72
책 기쁜 분투Joyful Militancy에서 이렇게 구분 선을 그었다. "기쁨은 종속(즉굴종)시키는 힘들과의 싸움을 통해 사람들을 새롭게 만든다. 기쁨은 탈종속적 과정이요, 삶을 강렬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것은 생명이 확산되는 과정이다. 행복이 의존을 유도하는 마취제로 사용되는 반면, 기쁨은 사람들이 그 의존성에서 탈피하는방식으로 새로운 것을 행하고 느끼는 능력의 성장이다." - P73
오웰은 자신이 글로써 반대한 것들, 즉 권위주의와 전체주의 거짓말과 프로파간다(그리고 대충 넘어가기로 인한 언어와 정치의 타락, 정치적 자유의 근간인 프라이버시의 잠식 같은 주제들로 널리 알려졌다. 그런 힘들로부터, 그가 긍정적으로 추구한 것들이 무엇이었는지 알 수 있다. 평등과 민주주의, 언어의 명확성과 의도의 정직성, 사생활과 그 모든 즐거움과 기쁨, 정치적 자유와 어느 정도 그 기반이 되는, 감독과 침범을 받지 않는 프라이버시, 그리고 즉각적 경험의 즐거움 같은 것들 말이다. 하지만 그런긍정적인 것들을 굳이 반대되는 것들로부터 유추할 필요는 없다. 그는 긍정적인 것들에 대해서도 많이 썼다. 그런 에세이들이 그가 쓴 글에서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며, 그렇지 않은 다른 작품들곳곳에서도 그는 삶을 살아갈 만하게 하는 것들에 대해 썼다. 그의 가장 암울한 글에도 아름다움의 순간들이 있다. 그의 가장 서정적인 에세이들도 실제적인 문제들과 드잡이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 P73
그는 이 광업 및 제조업 지역에서 사람뿐 아니라 장소 자체도 면밀히 관찰했다. 석탄이 어디에나 있었다. 석탄은 일이었고먼지였고 연료였고 스모그였고 위험이자 질병이자 죽음이었으며거의 문자 그대로 모든 것의 밑에 깔린, 어디에나 있는 풍부한 재료였다. 그는 점차 그것에 다가갔다. 처음에 석탄은 풍경으로 눈에 들어왔다. "슬래그] 더미와 굴뚝들, 고철 무더기, 더러운 운하늘, 그리고 나막신 자국이 이리저리 나 있는 재투성이 진창길이라는 끔찍한 풍경. 모든 건물이 검댕으로 시커겠고, 눈조차도 검었으며, 검은 연기가 온 도시를 뒤덮고 있었다. 위건은 "식물이라고는 추방되어버린 세계"처럼 보였다. "연기와 셰일, 얼음,진창, 재, 더러운 물밖에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았다." 그는 갱도가 주저앉은 자리에 고인 물웅덩이들이 "로엄버 빛깔" 얼음에 덮인 것을 묘사했다. 또 다른 곳에는 슬래그 더미에 불이 붙어서 "어둠 속에서 보면 붉은 개울 같은 불길이 이리저리 구불대며흐르고, 유황에서 나오는 불길한 푸른 불길이 천천히 움직이는것도 보인다. 이 불빛은 항상 꺼질 듯하다가 또다시 피어오르곤한다" - P80
식물들이 세계를 만들었으니, 이는 바다에서 유래한 단세포 유기체가 지구 대기에 최초로 유의미한 양의 산소를 배출한 때로부터 계속되어온 일이다. 석탄림의 시대에 식물들은 대기에서 단열 효과를 갖는 이산화탄소를 너무나 많이 끌어냈기 때문에 결국 그 시대는 기후 급변climate crash에, 즉 빙하기에 봉착하고 말았다. 과학자들은 탄소 급변carbon crash이 ‘눈덩이 지구Snowball Earth‘, 즉 극에서 극까지 얼어붙은 행성을 만들어낼 뻔했다고 말한다. 2017년 포츠담 연구소의 기후과학자 게오르크 퓰너Georg Feulner는 추위 그 자체가 대기에서 탄소를 끌어내고 지구를 얼어붙게 하는 식물 생장의 주기를 늦추거나 정지시켰다는 이론을 제출했다. 그러면서 그는 우리가 그 과정을 역전시키고 있다고 지적했다. 석탄기의 6000만 년 동안 식물들이 하늘에서 빨아들인 이산화탄소를 지난 200년 동안 가공할 인간 기술이 내뿜음으로써 식물들이 그토록 오랜 세월 동안 해온 것을 무효화했다고 생각해보라. - P87
어슐러 K. 르 귄Ursula K. Le Guin의 「오멜라스를 떠나는 사람들 The Ones Who Walk Away from Omelas」이라는 단편소설이 있다. 한 도시국가에 대한 이야기인데, 이 번성하는 근사한 도시는 계몽되고 진보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그 모든 것의 기반은 한 아이를 학대하는 데 있다. 아이는 어두운 지하실에 홀로 감금된 채 보살핌을 받지 못하고 영양실조에 걸린 상태다. 그 아이의 비참은말하자면 형이상학적 목적에 기여하는 셈인데, 오웰의 시대로부터 그리 멀지 않은 과거에도 영국에는 실제로 그런 아이들이 많았고, 그들의 비참은 실제적인 목적에 기여했다. - P91
세라 구더라는 여덟 살짜리 트래퍼는 검사관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불빛 없이 트랩을 지켜야 하기 때문에 무서워요. 잘 수도 없어요. 가끔 불빛이 있을 때는 노래도 하지만, 어둠 속에서는 안 해요. 겁이 나서 못해요."" 엥겔스도 그의 1845년 영국노동계급의 상황이라는 보고서에서 광부들의 실태에 대해 쓰면서, 그런 아이들 중 일부는 땅 위 세상으로 돌아가면 탈진한 나머지 집에 가는 도중에 잠들거나 집에 가자마자 곯아떨어져 부모들이 뭘 먹일 수도 없다는 사실을 언급했다. 그는 아이들이 일 때문에 흔히 발육 부진이고 기형이 되는 예까지 있다고, 탄광에서는누구나 자주 치명적인 폐 질환을 앓기 십상이라는 점도 지적했다. 석탄은 연소되어 여러 종류의 독소를 남기지만, 광부들이나주위 사람들이 들이마시는 탄진도 그에 못지않게 해롭다. - P93
오웰이 글에서 즐겁게 추억한 가정용 석탄난로 못지않게,그가 1930년대와 1940년대에 런던에 머무는 동안 들이마신 스모그도 그의 폐 질환을 악화시켜 이른 죽음을 가져오는 데 기여했음에 틀림없다. 화석연료의 채취는 너무나 수익성이 좋은 사업이었으므로, 전 세계적으로 전쟁을 촉발했고 외교 정책에 영향을 미쳤다. 동시에 그것은 너무나 해로운 일이기도 했으므로, 지구상 모든대륙의 광대한 땅을 파괴하고 물을 오염시켰으니, 남극 말고는그 피해를 면한 곳이 없다. 그것은 우리의 하늘을 바꿔놓았고, 이어 바다와 땅을 바꿔놓았다. 그것은 지구와 대기에 대해 벌인 전쟁이었다. 하지만 1936년을 돌아볼 때 가장 놀라운 것은 그 시기만 해도 생태학적으로 보면 얼마나 오래전이었던가 하는 점이다. - P100
초토화한 제2차 세계대전의 처참한 폐허 가운데서도, 한 걸음 물러나 인간의 삶과 그 구조에서 그 배경으로 시선을 돌리면 인간이외의 세계는 대체로, 또는 적어도 비교적 건재했음을 볼 수 있다. 대양들은 아직 산화되지도 온난화되지도 않았고, 극지방의얼음, 그린란드의 빙상**, 그리고 빙하와 기후 자체도 안정적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기후는 상당히 예측 가능했고, 온대 및 열대숲의 훨씬 더 많은 부분이 손상되지 않은 상태로 탄소격리 작용을 수행하고 있었다. 현재 위험에 처하거나 멸종한 상당수의 종이 번창하고 있었고, 화학물질과 플라스틱의 여러 종류가 아직사용되기 전이었다. 물론 그 당시에도 여러 가지 손상이 있기는 했다. 태즈메이니아의 에뮤, 아프리카의 블루벅(파란영양), 북대서양의 큰바다오리, 남태평양의 수수께끼찌르레기 등 다양한 장소의 다양한종이 멸종된 터였다. 지구는 전혀 새것이 아니었다. - P101
1936년의 사람들이 갖고 있던 확고한 자신감은 마치 그들의 의식 내에 아직 발굴되지 않은 지층과도 같았다. 세상은 충분히 크고 우리가 무슨 해를 가하든 너끈히 회복하리라는 확신 말이다. 손상은 기껏해야 국지적인 것이며, 우리가 무슨 짓을 하든그 적은 부분이 전체에 영향을 미치지는 못하리라는 항상 더 많은 것이 있으리라는 확신 말이다. 인간들은 마치 자기가 무슨 짓을 하든 어머니는 절대로 죽지 않으리라 믿는 어린아이처럼 행동했다. 하지만 아이는 도구와 기계와 화학적 발명을 갖게 되자 인간의 한계 이상으로 거대하고 강력해졌으며, 시스템 자체를 훼손하고 변모시키는 타격을 가하게 되었다. 그것은 전쟁이었고, 우리가 정신이 들었을 때는 식물들이 이미 해놓은 일과 화해하는 것이 과업이 되었다. 그것은 때로는 삼림복구의 형태로 나타나 기존의 숲과 초지와 토양을 보호하는 일이 되었고, 또 다른 한편으로는 식물들의 편을 들어, 오래 묻혀 있던 탄소를 하늘로 뿜어 올리는 프로젝트에서 물러나는 일이 되었다. - P103
장미를 심고 정원을 가꾸는 행위는 수많은 것을 의미할수 있지만, 지금으로서는 그것이 식물 세계 및 식물이 하는 일과의 협동을 의미하도록 내버려두자. 얼마간 더 탄소를 격리하고 산소를 생산하는 유기체들을 심고 돌보는 것, 정착하여 농사를 짓고 싶다는 욕망, 장미와 유실수가 장차 여러 해 동안 꽃 피우고 유실수들은 수십 년 후, 어쩌면 한 세기 후까지도 열매 맺을 미래에투자하려는 욕망을 의미하도록 말이다. 정원을 가꾼다는 것은 이미 산산이 부서진 것을 다시금 온전하게 만드는 것이다. 생산자인 동시에 소비자가 되는 관계, 땅의 풍요로움을 직접 거두며 무엇인가가 어떻게 하여 존재하게 되는가를 온전히 이해하게 되는관계를 만드는 것이다. 그 일은 규모는 크지 않을 수도 있지만, 설령 고작 도시의 고층건물 창턱에 제라늄을 가꾸는 것이라 해도, - P104
의미에 있어서는 중요할 수 있다. 나무 심기를 대부분의 인간이 할 수 있는 가장 오래가는행위로 제안하면서, 그는 미래에 대해, 어떻게 하면 미래에 기여할지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다. 물론 1936년에는 아무도 탄소격리에 대해 생각하지 않았지만, 그런 의식 없이도 식물의 편에 서는편을 택할 수는 있었다. 브레이 본당신부를 위한 한마디」라는 글에 담긴 그 제안에서, 장미를 심은 남자는 그것이 또한 미래의 편에서는 일임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 P105
꽃의 아름다움은 시각적인 데 그치지 않는다. 그것은 형이상학적인 동시에 촉각과 후각에 속하는 아름다움이다. 꽃은향기를 맡을 수 있고 만져볼 수 있고 때로는 맛볼 수도 있다. 어떤꽃들은 열매나 씨앗, 그 밖에도 인간들이 귀하게 여기고 심지어의존하기까지 하는 선물을 가져다주며, 따라서 꽃은 약속이기도하다. 어느 한 단계에 있는 꽃을 보면, 이전에 지나간, 그리고 앞으로 다가올 단계들을 알 수 있다. 장미의 아름다움은 꽃봉오리에서부터 시들어 죽을 때까지 모든 단계가 매혹적이라는 데 있는지도 모른다. 장미는 그 천천히 시드는 모양조차도 우아하다. 만개한 동백은 장미 비슷한 모양이 되지만, 단단한 꽃봉오리에서 대번에 활짝 핀 꽃이 되며, 줄기에서 뚝 떨어져 땅바닥에서 갈색으로 지저분하게 썩어간다. 다른 많은 꽃들이 그런 식으로 시들어간다. "시든 백합은 잡초보다도 냄새가 고약하다." - P112
토드는 《아메리칸 매거진》에 실은 글에서 장차 여성 참정권 운동과 노동 운동, 그리고 1970년대 및 이후의 급진파들을 위한 후렴구가 될 이 문구에 대한 생각을 개진했다. 여성의 투표는"집과 안식처와 안전이라는 인생의 빵과, 음악과 교육과 자연과책이라는 인생의 장미를 이 나라에서 태어나는 모든 아이가 누리게 될 때가 오도록 도울 것이다. 여성이 발언권을 갖는 정부에서는 그러할 것이다. ‘모두를 위한 빵과 장미‘가 있게 되는 날에는감옥도, 교수대도, 공장에서 일하는 아이들도, 빵을 벌기 위해 거리로 내몰리는 소녀들도 없을 것이다." - P120
1911년에 시인 제임스 오펜하임 James Oppenheim은 토드가 기고했던 같은 잡지에 빵과 장미Bread and Roses]라는 제목의 시를 실었다(그래서 종종 그가 그 문구를 만들어낸 것으로 알려지기도 했다). 그 일부는 이렇다.
아름다운 대낮에 우리가 행진하고 행진하는 동안 무수히 많은 어두컴컴한 부엌들과 잿빛 공장 다락들이 갑자기 나타난 태양이 비추는 빛을 받는다. "빵과 장미, 빵과 장미"라는 우리 노랫소리가 들리기 때문에 ...... 우리가 행진하고 행진하는 동안, 무수히 많은 죽은 여자들이 빵을 달라는 그네들의 해묵은 노래를 우리 노래를 통해 외친다. 고되게 일하는 그네들의 영혼도 예술과 사랑과 아름다움을 알았으니ㅡ 그렇다, 우리는 빵을 위해 싸운다―그러나 우리는 장미를 위해서도 싸운다.
빵은 육신의 양식이지만, 장미는 좀 더 섬세한 무엇의 - P121
단순히 마음만이 아니라, 상상력과 정신과 감각과 정체성 같은것들의 양식이다. "빵과 장미라니 멋진 구호이지만, 거기에는생존과 신체적 복지 이상의 것이 필요하고 또 권리로서 요구된다는 맹렬한 주장이 들어 있다. 그것은 또한 인간 존재가 필요로 하는 모든 것이 계량 가능한 것, 눈에 보이고 만져지는 재화 및 여건으로 환원될 수 있다는 생각에 대한 강력한 반발도 담고 있다. 이런 선언들에서 장미란, 인간이라는 존재가 복잡하고 욕망들은환원 불가능하며 우리를 지탱하는 것은 종종 훨씬 더 섬세하고손에 잡히지 않는 무엇이라는 생각을 나타낸다. - P122
1912년 중반에는 뉴욕의 전설적인 노동 운동가 로즈 슈나이더먼 Rose Schneiderman이 그 문구를 채택해 여러 차례 사용했다(그래서 그 문구는 그녀에게서 나온 것으로도 여겨졌다). 그녀는 오하이오주 클리블랜드에서 이렇게 연설했다. "노동하는 여성이 원하는것은 단순한 생존이 아닌 삶에 대한 권리이다. 부유한 여성이 삶과 태양과 음악과 예술에 대한 권리를 가진 것과 마찬가지로, 삶 - P123
에 대한 권리 말이다. 당신이 가진 것이라면 가장 가난한 노동자라 해도 가질 권리가 있는 것이다. 노동자에게는 빵이 필요하지만, 장미도 필요하다. 도와달라, 특권층 여성들이여, 노동자 여성도 투쟁을 위한 한표를 얻을 수 있도록." 20세기 초 노동 운동을 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빵과 장미‘는 상투적인 문구가 되었다. 1912년 매사추세츠주 로렌스에서 일어난 공장 노동자들의 파업이 한 파업자가 든 팻말에 그 문구가 들어 있었던 것이 시를 촉발하는 계기가 되었다는 주장 때문에 ‘빵과 장미 파업‘이라 불리게 된 것은 훨씬 나중의 일이지만말이다. 오펜하임의 시가 발표된 것은 이 파업이 시작되기 전이기는 해도 헬렌 토드가 같은 잡지에 농장 여성들과 나눈 대화에 대해 쓴 다음이었고, 토드는 자신의 여러 연설에서 그 문구를 여러다른 형태로 말했던 터였다. - P124
장미는 즐거움과 여가와 자기결정권, 내적인 삶, 물량화할수 없는 것 등을 나타내지만, 장미를 위한 투쟁에는 때로 노동자를 압살하려는 고용주나 상사뿐 아니라 그런 것들의 필요성을 폄하하는 다른 좌익 분파들과의 싸움도 포함된다. 좌익에는 즐거움의 추구를 비판하는 사람들이 있기 마련이다. 다른 사람들이 고통당하는데, 그리고 어딘가에는 고통당하는 사람들이 항상 있기마련인데 자신의 즐거움을 추구한다는 것은 비정하고 비윤리적이라는 것이다. 이런 청교도적인 주장을 하는 이들은 자신의 엄격함이나 기쁨 없는 삶의 태도로 민중에게 감명을 줄 수는 있을지언정 그들의 해방에 실제적으로 기여하지는 못할 것이다. - P127
이 모든 것의 저변에는 즐거움과 아름다움을 반혁명적이고 부르주아적이요 퇴폐적이고 향락적이라 보며 그런 것들에 대한 욕망은 근절하고 경멸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실용주의적 이데올로기가 깔려 있다. 자칭혁명가들은 오직 물량화할 수 있는 것만이 중요하다고 주장하는 경향이 있다. 인간은 현실적으로 중요한 것보다 마땅히 중요하게 여겨야 할 것으로 만족해야 하고, 현실적으로 어떠한 것보다 마땅히 어떠해야 할 것에 맞추어가야 한다고 말이다. 하지만 ‘빵과 장미‘에서 장미란 단순히 더 많은 것이아니라 좀 더 손에 잡히지 않는 섬세한 무엇을, 로즈 슈나이더먼의 표현을 빌리자면 "그저 생존이 아니라 삶에 대한 권리를 요구하는 것이었다. 우리의 삶을 살 만하게 만들어주는 것은 어느 정도 측량 불가, 예측 불가하며 사람마다 다르다는 주장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장미는 또한 주관성과 자유와 자기결정권을 뜻한다. - P128
때로 그는 ‘빵과 장미‘에서 장미가 의미하는바, 손에 잡히지 않는 일상적인 즐거움과 지금 여기서 누릴 수 있는 기쁨을 경하하기도 했다. 1946년 봄에 쓴 에세이 두꺼비에 대한 몇 가지단상 Some Thoughts on the Common Toad」에서 그는 동면에서 깨어나비쩍 마르고 굶주린 모습으로 나타나는 두꺼비들을 봄의 전령으로 환영하며 그 금빛 눈알의 아름다움을, 봄과 즐거움 그 자체를찬양한다. 그는 이 글을 《트리뷴》에 실었는데, 《트리뷴》이 사회주의 잡지이다 보니 그의 글은 다분히 방어적인 어조를 띠고 있다. 그것은 오웰답게도, 두꺼비와 봄에 대한 글인 동시에 사회주의 정통 노선에 이의를 제기하며 원칙과 가치를 논하는 글이기도하다. - P129
하지만 그는 블런트가 말한 의미에서의 프로파간다, 즉 예술이나 예술가가 정당이나 국가의 의제에 기여해야 한다는 생각에는 반대했다. 또 다른 곳에서 그는 이렇게 쓰기도 했다. "정말로 비정치적인 문학 같은 것은 없다." 페르메이르의 그림은 왜 고요함이 필요한지, 운하나 푸른빛깔이나 네덜란드 부르주아지의 가정생활의 가치를 바라보는것이, 또는 그저 그림을 자세히 들여다보는 것이 왜 필요한지를말해준다. 자세히 들여다보는 일 그 자체가 우리를 지탱해주는일종의 양식이 되어주는 것이다. 「나는 왜 쓰는가」에서 오웰은 이렇게 말했다. "내가 글을 쓰는 것은 폭로하고 싶은 어떤 거짓이나주목을 끌고 싶은 어떤 사실이 있기 때문이며, 따라서 나의 우선적인 관심사는 남들이 들어주는 것이다. 하지만 거기에 미학적인경험이 없다면, 나는 책은 물론이고 잡지의 기사를 쓰는 일도 할수 없을 것이다. 다시 말해, 의제는 빵이라 하더라도, 장미가 곁들여지게 마련인 것이다. - P134
그곳에 모인 물길들이 흘러나가 개울과 강이 되어 작물들과사람들을 먹인다. 또 그런 곳에는 농경 시스템의 일부인 야생동물들-작물의 수분을 가능케 하는 곤충들, 땅다람쥐의 개체수를 제한하는 코요테 같은―이 살기도 한다. 그것들은 정신의 황야요 미개간지로, 경작된 땅이 보존할 수 없는 다양성과 복잡성과 재생 체계를, 더 큰 전체를 보존한다. 오웰은 문자 그대로의 전원 녹지 공간과 자신이 그렇게 많은 시간을 보낸 정원을 옹호하는 만큼이나, 자유로운 사색과 감시당하지 않는 창조의 형이상학을 옹호했다. 그리고 이런 쟁점들에 대해 적들과 싸웠다. 두꺼비와 봄과 즐거움에 관한 그 에세이에서 그는 봄이나자연이나 전원을 즐기는 것에 대한 또 다른 표준적인 반대 입장을 이렇게 요약한다. "지금은 기계의 시대이며, 기계를 싫어하거나 기계의 지배를 제한하고자 하는 태도는 퇴영적이고 반동적이며 약간 우스꽝스럽다는 것이다." - P135
빵은 권위주의적 체제에 의해 관리될 수 있지만, 장미는 주어지기보다 개인들이 자유롭게 추구하고 발견하고가꾸어야 하는 무엇이다. "우리는 상상력이란 어떤 야생동물과도 같아서 갇힌 상태로는 번식하지 못하리라는 사실을 알 뿐이다"라고 오웰은 「문학 예방The Prevention of Literature」의 말미에 썼다. ‘빵과 장미‘에서 장미란 프라이버시와 독립성을 가질 때 번성하는 일종의 자유를 의미한다. 그가 생각하는 사회주의에는 구속이 없다. 그는 계속하여쓴다. "사회주의의 진짜 목표는 행복이 아니다. 진짜 목표는 인류애다... 인간들이 서로 속이거나 죽이는 대신사랑하는 세계이다. 그리고 그들이 그런 세상을 원하는 것은 첫걸음으로서이다." 사랑을 부패시키고 약화하기는 쉽지만, 제대로 관리하기는 어렵다. 결론적으로 그는 유토피아라는 것을 이렇게 일축해버린다. "그들은 단지 일시적이기 때문에 소중했던 무엇인가를 끝없이 지속함으로써 완벽한 사회를 만들려 했다." 다시말해 그들은 욕망이나 기쁨처럼 본질상 유동적이고 통제 불가능한 무엇을 고정시키고 통제하려 했던 것이다. 그들은 장미를 빵으로 만들기를, 또는 빵을 획득하고 장미를 던져버리기를 원했다. - P140
오웰은 즉각적이고 특수한 것들에 대한 놀라움에 대해, 그것들이 얼마나 단정적인 사고를 약화하는지에 대해 여러 번 썼다. 1931년 에세이 「교수형」에서 그는 한 버마인 죄수가 사형대로걸어가면서 물웅덩이를 피하려고 옆으로 비키는 것을 보았다고썼다. 그 작은 몸짓이 그에게 강한 인상을 남겼다. "이상한 일이지만, 바로 그 순간까지 나는 건강하고 의식 있는 사람의 목숨을 끊어버린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전혀 알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다죄수가 웅덩이를 피하느라 몸을 비키는 것을 보는 순간, 한창 물이 오른 생명을 뚝 끊어버리는 일의 불가사의함을 말할 수 없는부당함을 알아본 것이었다." - P148
"그는반쯤 벗은 상태였고, 양손으로 바지를 추스르며 달리고 있었다. 나는 그를 쏘지 않기로 했다. ...... 그 바지를 추스르는 광경 때문에도 총을 쏠 수가 없었다. 나는 ‘파시스트를 쏘러 거기에 간 것이었는데, 바지를 추스르는 남자는 ‘파시스트‘가 아니었다. 그는 나자신과 다를 바 없는 인간으로 보였고, 그래서 그를 쏘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그는 현실적인 것들을 위협하는 절대적이고 추상적이고 이론적인 것들을 믿지 않았다. (1938년, 그와 아일린은 그들이 키우는 개에게 ‘마르크스‘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 "우리가 실제로 마르크스를 읽어본 적이 없다는 사실을 기억하려고 말이야"라고 아일린은 한 친구에게 보내는 편지에 썼다. "이제 조금 읽어보았는데 그 사람이 너무 싫어져서 개를 똑바로 볼 수도 없어.")" 우드콕이 오웰을 대지에서 힘을 얻는 안타이오스에 비유한 것은 그가 구체적이고 손에 잡히는, 직접적인 경험에서 지적인 힘을 얻는다는 의미이기도 했을 것이다. 그런 이유로 그는 이데올로기들이 수많은 사람을 방황하게 했던시대와는 맞지 않았다. 특히 권위를 옹호하고 반대 의견과 독립성을 불법화하는 주의들과는 더욱 그랬다. - P149
오웰은 웰링턴으로 돌아간 후 전에는 그토록 소중히 여겼던 전원의 평온함에 불편함을 느꼈다. "이곳은 내가 어린 시절에알던 영국 그대로이다. 철로 때문에 파헤쳐진 곳에는 야생화들이 흐드러지고, 깊은 목초지에서는 윤이 자르르한 늠름한 말들이 풀을 뜯으며 생각에 잠겨 있다. 천천히 흐르는 냇가에는 버드나무들이 우거지고, 느릅나무들의 품이 푸르러지고, 시골집 정원들에서는 참제비고깔이 피어난다"라고 그는 스페인에 관한 책 말미에 썼다. "모두가 영국의 깊고 깊은 잠을 자고 있다. 나는 때로우리가 폭탄의 굉음 때문에 깜짝 놀라 깨기 전에는 결코 그 잠에서 깨어나지 못할 것 같다는 두려움에 사로잡힌다." 그리고 그도 다른 많은 사람들처럼 스페인에서 벌어진 갈등을 서막으로하는 세계대전과 함께 폭탄들이 다가오고 있음을 알고 있었다. - P160
그 앞의 팻말에는 "여기 심은 것이 현대 장미의 복잡한 선조라는사실을 20세기 초 유전학자 찰스 허스트Charles Hurst가 이곳에서 25년간의 교배를 통해 밝혀냈다"라고 적혀 있었다. 유전학이란 들뢰즈와 과타리가 지양하고자 했던 바로 그 나무 모양의 계보를 찾아내는 일이지만, 동시에 그것은 유전과 진화가 어떻게 작용하는지 이해하기 위한 핵심적인 모델을 찾아내는 일이기도 하다. 그래서 나는 케임브리지 대학 도서관에 가서 허스트의 서류상자들을 대출하여 뒤적이며 하루를 보냈다. 폴더들을 연이어 열어보며, 한 사람이 어떻게 살고 일했는가 하는 이야기와 만났다. 그는 내가 읽은 장미에 대한 문헌들 가운데서도 불쑥불쑥 나타나곤 했지만, 서류 상자 안에는 훨씬 더 복잡한 이야기가 들어 있었다. - P175
그 장미들의 이름은 온갖 가능성을 망라한다. 아일랜드의 불꽃, 아도니스, 레이디 리딩, 스노우퀸, 붉은 글자의 날, 골든 오필리어, 롤리타 아머, 인어, 로스앤젤레스, 그 밖에 특정인의 이름을 붙인 것도 수두룩하고, 그중에는 ‘미세스 아서 존슨‘처럼 결혼한 여성의 이름을기념하는 동시에 익명으로 만들어버리는 것도 있다. 책들과 오래된 문서들을 헤집는 것은 풍경 속을 쏘다니는것과 아주 비슷하다. 나는 대학의 장미정원에서 허스트와 마주치곤 했고, 오웰이 주라섬에서 보낸 말년에 관한 학술 논문에서는 그가 스탈린의 소련에서 벌어진 유전학 논쟁에 흥미를 보였다는 언급과도 마주쳤다. 그것은 내려가볼 만한 토끼굴이었으니, 그 - P177
논쟁은 오웰에게 진실과 사실, 거짓과 조종 및 그 결과라는 더 큰문제들을 고찰할 기회였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그것들은 어느정도 영감의 원천이 되었고, 특히 1984년』에 대해 그러했다.
영감이라는 말은 종종 긍정적이고 바람직한 것들에 대해쓰이며, 뮤즈의 감상적인 이미지는 작가의 열정의 대상인 어여쁜여성으로 그려지곤 한다. 정치적 작가에게 글쓰기를 위한 영감내지 적어도 불쏘시개는 종종 가장 역겹고 경악스러운 것이고, 반대가 자극제가 되곤 한다. 스탈린은 분명 오웰의 주된 뮤즈였으니, 한 개인으로서는 아니더라도 적어도 거짓말을 휘감은 무시무시한 권위주의의 핵심적인 인물로서 그러했다. - P178
그곳에서는 생존이 자원을 얻기 위한 개인주의적 경쟁이 아니라 자원은 풍부했으므로 거친 여건과 싸워나가기 위한 협동적 사업이었다. 크로포트킨은 그런 종내부의 협동을 상호부조라고 불렀고, 동물 및 인간의 삶에서 그역할들을 기록했으며, 진화와 협동은 상반된 것이 아니라 종종얽혀 있음을 강조했다. 하지만 그가 1902년에 낸 책 만물은 서로돕는다」는 당시의 논조에 큰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오늘날의 진화 과학은 크로포트킨의 시각에 좀 더 가까워졌다. 자연계는 점점 더 협동적이고 상호의존적이며, 점점 덜 경쟁적이고 개인주의적인 것으로 보이게 되었다. - P184
그러나 오웰의 시절에 진화론이란 곧 다윈주의였고 다윈주의란 대개 사회적 다윈주의로 해석되었다. 소련 정부는 생물학과 관련된 사실들이나 생물학을 옹호하고 발전시키려는 이들 모두에게 가혹한 처사를 했다. 서구 과학자들에게도 잘못이 있었다. 다윈의 진화론이 사회적 정태성을 확인해준다고, 즉 부자가빈자보다, 귀족이 평민보다, 백인이 유색인보다 우월하다고 믿는많은 사람들이 우생학자가 되었던 것이다. 이들은 우월한 또는열등한 인간 집단이 있다는 개념을 신봉했으며, 우월한 집단을양성하고 열등한 집단을 근절하기 위해 징벌적인 사회적 통제나노골적인 인종 말살 같은 방식들을 주창했다. 장미 연구가 허스트는 우생학자였고, 오웰로 하여금 소련의 사이비 과학에 관심을 갖게 했던 베이커도 우생학자였으며, - P184
그 결과로 닥친 ‘기근 학살‘, 일명 홀로도모르 Holodomor로약 500만 명이 굶어 죽었으며, 그 대부분은 우크라이나에서였다. 굶주린 농부들이 음식 찌꺼기라도 얻으려고 도시로 몰려들었으며, 어떻게든 달아나려고 기차역으로 가거나 가다가 죽었다. 길가에는 그들의 피골이 상접한 시신이 널렸다. 굶주림으로 정신이이상해진 사람들은 식인 행위를 자행했으며, 심지어 제 자식을잡아먹기도 했다. 소련 정부는 수백만 명의 아사자와 공산주의의 성공이라는 이미지가 양립할 수 없다고 판단하여 그들의 운명을 은폐했으며, 그러기 위해 러시아에 있던 서방 기자들을 동원했다. 이들은 검열당했고 진실을 말할 경우 추방될 위협에 놓였지만, 대부분이 기꺼이 협력했다. - P187
야생식물의 종자를 채취하러 우크라이나에 갔다. 산기슭에서 견본을 찾고 있는데, 관리들이 검은 관용차를 끌고 올라와그를 데려갔다. 이후 11개월 동안 그는 400차례에 걸쳐 심문당했고 그 대부분은 심야에 이루어졌다―첩자요 반역자요 방해자요 기근의 주된 원인이라는 이유로 고발당했다. 거의열 시간 내리 계속된 심문 끝에 그는 자신이 우익 단체의 일원이라는 거짓자백을 했다. 항소 끝에 사형선고는 철회되었지만, 그는 강제수용소로 이송되었다. 거기서 날 밀가루와 언 양배추라는 식사 끝에, 인민의 굶주림을 해결하느라 그토록 많은 일을 했던 사람은 결국굶어 죽었다. 1943년 1월 26일이었다. - P192
하지만 이 권력도 밀로 하여금 사이비 과학에 복종하게하거나, 레몬나무로 하여금 추운 겨울을 견디고 살아남게 만들지는 못했다. 라마르크주의는 출현 당시에 이미 오류였고, 스탈린의 시대에는 거짓이었다. 밀에 대한 리센코의 약속들도 거짓이었다. 1930년대 초에 수백만 명이 굶어 죽은 대기근을 부인하는 것도 거짓이었다. 공개재판에서 사람들을 고문하여 인정하도록 강요했던 범죄들은 대부분 거짓이었다. 사람들은 살아남기 위해 거짓말을했고, 진실을 말했기 때문에 죽었으며, 아니면 어떤 식으로든 거짓말을 했고 죽음에 이르렀다. 다른 사람들은 무엇이 진실인지 아예 감을 잃어버렸다. 러시아혁명의 주동자들이 동료 혁명가들에 의해 처형될 때마다 역사는 매번 다시 쓰였다. - P198
처형자들이 처형당했고, 심문자들이 굴라크로 보내져 자신이 심문했던사람들과 같은 처지가 되었다. 책들이 금지되었고, 사실들이 금지되었으며, 시인들이 금지되었고, 사상들이 금지되었다. 그것은 거짓말의 제국이었다. 거짓말이라는 언어에 대한 공격은 다른 모든공격에 필요불가결한 기초이다. 오웰은 1944년에 이렇게 썼다. "전체주의가 진짜 무서운것은 그것이 ‘가혹 행위‘를 자행한다는 것이 아니라 객관적 진실이라는 개념을 공격한다는 것이다. 그것은 과거와 미래를 통제하려 한다." 이를 밑바탕으로 한 것이 빅브라더의 다음과 같은 유명한 말이다. "과거를 통제하는 자가 미래를 통제한다. 현재를 통 - P198
제하는 자가 과거를 통제한다."진실과 언어에 대한 공격은 가혹행위를 가능하게 한다. 만일 실제로 일어난 일을 지워버리고 증인들을 침묵시키고 사람들에게 거짓말을 지지하는 것이 유리하다고 납득시킬 수 있다면, 사람들에게 겁을 주어 침묵과 복종과 거짓을 강압한다면, 무엇이 진실인지 결정하는 것을 불가능하거나위험하게 만들어 아무도 감히 그러려고 하지 않게 된다면, 얼마든지 범죄를 영속시킬 수 있다. 전쟁에서 가장 먼저 희생되는 것은 진실이라는 옛말이 있다. 진실에 대한 상시적인 전쟁은 국내적으로나 전 지구적으로나 모든 권위주의의 기반이다. 따지고보면, 모든 권위주의는 우생학과 마찬가지로, 권력은 불평등하게 배분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전제로 하는 일종의 엘리트주의이다. - P199
러시아의 현재 권위주의적 지도자인 블라디미르 푸틴은 스탈린의 명성을 복권시켜왔다. 리센코의 명성도 이 복고주의에,후성유전학의 의의를 왜곡하는 일에 편승하는 듯하다. 반면 바빌로프의 업적은 그가 발견하고 수집하고 재배한 종자들, 그의제자들이 레닌그라드 포위전 동안에도 씨앗 은행에 보관했던 종자들을 통해 살아남았다. 내브한은 이렇게 썼다. "그가 죽은 후대략 사반세기가 지난 지금, 그가 수집한 씨앗들로부터 선택된400가지 새로운 작물들이 소련 인민의 큰 비중을 실제로 먹여 살렸으며, 기근의 빈도는 현저히 줄어들었다." " 스탈린의 레몬은 실패했고, 설령 한 그루 나무올리브나무이든 주목이든 세쿼이아나 인도보리수이든―가 1000년 또 - P199
는 그 이상을 살 수 있다 하더라도, 월링턴 주위의 밀밭들은 일년생 식물의 종자나 농업의 관행이 체제나 독재자나 한 무더기 거짓이나 과학에 대한 전쟁보다 더 오래 살아남을 수 있음을 상기시켜준다. 거짓말은 씨앗보다 더 자유롭게 돌연변이를 일으키며, 거짓말의 새로운 작물도 있다. - P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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