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농장

조지 오웰









우크라이나판 서문


나는 『동물농장』의 우크라이나판에 서문을 써달라는부탁을 받았다. 나는 내가 알지 못하는 독자들을 위해 글을 쓰지만, 어쩌면 독자들 또한 나에 대해 알 기회가 전혀없었으리라고 생각한다.
독자들은 내가 이 서문에서 『동물농장』을 어떻게 쓰게되었는지에 대해 몇 마디 하기를 기대할 테지만, 우선은내 개인적인 이야기와 나의 정치적 견해를 형성시켜 준경험에 대해 말하고싶다.
나는 1903년에 인도에서 태어났다. 나의 아버지는 그곳에서 영국 행정부 소속 공무원이었으며, 나의 가정은 군인,
성직자, 공무원, 교사, 법률가, 의사 등의 가정처럼 평범한중산층에 속했다. 나는 영국 사립학교들 가운데 학비가 가 - P7

장 비싸고 속물적인 이튼 스쿨에 다녔다. 그리고 거기서장학금을 받아 그런대로 편안히 학창 시절을 보낼 수 있었다. 내가 장학금을 받지 못했더라면 아버지는 이런 학교에나를 보낼 엄두도 내지 못했을것이다.
이튼 스쿨을 졸업한 직후(졸업할 당시 나는 완전히 스무살이 되지 않았다) 나는 버마로가 <인도 제국주의 경찰이 되었다. 당시 <인도 제국주의 경찰>은 스페인의 경찰대나 프랑스의 기동 헌병대와 흡사한 일종의 헌병대인 무장경찰이었다. 나는 5년 동안 그런 일을 했다. 비록 그 당시버마에는 민족주의 감정이 뚜렷이 일고 있지도 않고 영국인들과 버마인들 사이의 관계도 특별히 나쁘지 않았지만,
그 직업은 나에게 맞지 않았고나로 하여금 제국주의를 증오하게 만들었다.  - P8

그리하여 나는 1927년에 휴가를 얻어영국으로 건너와서 미련 없이 경찰직을 그만두고 성공할보장도 없는 작가가 되기로 마음먹었다. 그리고 1928년과1929년 사이에 파리에 살면서 단편 이야기와 소설들을 썼지만 아무도 그것들을 출판해 주려 하지 않았다(그때 쓴원고는 몽땅 불살라버렸다). 그다음 여러 해 동안 나는 입에 풀칠만 할 정도로 가난에 허덕였다. 1934년에 이르러서야 겨우 글을 써서 먹고살 수 있었다. 그 시절 나는 여러달씩 빈민가에서 하층민들이나 범죄자 비슷한 사람들과어울려 지냈고, 거리로 나가 남의 물건을 훔치고 구걸하며 - P8

생활하기도 했다. 당시 나는 돈이 없어서 그들과 어울려생활했지만, 나중에는 그들의 생활 방식 자체에 깊은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그리하여 영국의 북부 지방에 몇 개월씩 머물며 광부들의 생활 환경을 조사하기도 했다.
1930년까지만 해도 나는 대체로 나 자신을 사회주의자로는 여기지 않았다. 사실 그때까지 나는 정치적 입장을 아직 뚜렷이 정하지 못한 상태였다. 내가 친(親)사회주의자가 된 것은 이론적으로 계획 사회에 찬동해서가 아니라 가난한 산업 노동자들이 억압받고 무시당하는 것이 싫었기때문이다.
나는 1936년에 결혼을 했다. 결혼한 그 주에 스페인에서 전쟁이 터졌다. 아내와 나는 스페인으로 가서 스페인정부를 위해 싸우고 싶었다. 6개월 후, 내가 쓰고 있던 책이 마무리되자마자 우리는 스페인으로 갈 준비를 했다. 스페인의 아라곤 전선에서 6개월을 보내고 있을 무렵, 나는어느 파시스트 저격병이 쏜 총에 맞아 목에 심한 관통상을입었다. - P9

전쟁 초반에 외국인들은 대체로 스페인 정부군을 지지하는 다양한 정치 집단들 사이에 내부 갈등이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나는 이런저런 이유 때문에 대부분 외국인들로 구성된 국제 여단에 소속하지 않고스페인 트로츠키주의자들이 만든 마르크스주의 통일노동자당Partido Obrero de Unificación Marxista에 가입하여 - P9

활동하고 있었다.
그리하여 1937년 중반 공산주의자들이 스페인 정부를(정치적으로) 조종해 트로츠키주의자들을 색출하기 시작했을 때 아내와 나도 당국에 체포되어 희생되리라는 사실을 직감했다. 다행히 우리는 붙잡히지 않고 스페인을 무사히 탈출할 수 있었다. 당시 많은 친구들이 사살되었고 오랫동안 감옥에 감금되거나 소리 없이 사라졌다.
스페인에서의 이러한 인간사냥은 소련에서의 대숙청‘
과 거의 같은 시기에 자행되었고 그것의 연장선이었다.
시아와 스페인에서 자행된 그러한 고발들(죄목은 프랑코일당과의 공모였다)은 같았지만 그곳(스페인)에서만큼은분명히 불법이었다. 이러한 모든 경험들은 나에게 실로 값진 현장 교육이었다. 나는 이 값진 체험들을 통해 <전체주의 선전이 민주주의 국가에 살고 있는 문명인들의 의견을얼마나 손쉽게 통제할 수 있는지를 깨닫게 되었다. - P10

아내와 나는 죄 없는 사람들이 단지 신조가 다르고 의심스럽다는 이유로 투옥되는 광경을 지켜보았다. 그러나 영국으로 돌아올 무렵 우리는 의식 있고 나름대로는 정확한소식을 접한다고 생각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모스크바 재판‘에 대해 언론이 보도하는 공모, 반역, 사보타주와 같은 - P10

터무니없는 이야기를 액면 그대로 믿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래서 나는 소련의 신화가 서구사회주의 운동에 미치는 부정적인 영향을 과거 어느 때보다 더 분명히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이제 소련 정권에 대한 나의 태도를 밝히겠다.
나는 소련을 방문해 본적도 없고 소련에 대한 나의 지식도기껏해야 책과 신문을 통해 얻은 것이 고작이다. 설령 내게 힘이 있다 해도 나는 소련의 국내 문제에 간섭하지도,
야만적이고 비민주적 행위를 했다고 해서 스탈린과 그의추종자들을 비난하지도 않을 것이다. 아무리 좋은 의도를가지고 있더라도 그들은 그곳을 지배하는 여러 가지 상황에서 분명 달리 행동할 수 없었을 것이다. - P11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서유럽 사람들은 소비에트 정권의 실체를 있는 그대로 직시해야 한다. 1930년 이후 나는소련이 진정한 사회주의라고 부를 만한 쪽으로 발전하고있다는 증거는 하나도 발견하지 못했다. 오히려 지배자들이 어떤 권력층보다도 더 확고한 권력을 행사할 수 있는 계급사회로 변모하는 분명한 조짐을 보았다. 더구나 영국과같은 나라의 노동자와 지식인 계급은 오늘날 소련이1917년의 상황과 너무나 다르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다.
그 이유는 부분적으로 그들이 소련의 실체를 알고 싶어 하 - P11

지 않는데도 있고(그들은 어딘가에 진정한 사회주의 국가가 실제로 존재한다고 막연히 믿고 싶어 한다), 또 부분적으로는 공적 생활에서 상대적인 자유와 편안함에 익숙해져 있어 <전체주의>가 무엇인지 완전히 이해할 수 없다는데 있기도 하다.
그러나 영국이란 나라도 완전히 민주적이지 않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영국은 또한 커다란 계급적 차별이있고 (모든 사람들을 평등하게 만드는 경향이 있는, 전쟁이 끝난 오늘날조차도) 부의 분배가 잘 이루어지지 않는자본주의 국가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국은 수백 년 동안내전이 없었고, 법률이 상대적으로 공정하고 공식적으로 발표되는 소식들과 통계 자료들이 믿을만하고, 사람들이 소수 의견을 내거나 그것을 지지해도 치명적 위험에 처하지 않는 국가이다.  - P12

그런 분위기 속에서 대중들은 포로수용소, 강제 추방, 재판없는 투옥, 언론검열 등을 진정으로이해하지 못한다. 소련과 같은 국가에 대해 대중이 읽을수 있는 모든 것들은 자동적으로 영국의 관점으로 해석되어 그들은 <전체주의> 선전의 거짓말을 순진하게 다 받아들인다. 1939년까지 대다수의 영국 사람들은 독일 나치정권의 실체를 제대로 평가할 수 없었고 오늘날의 소비에트 정권에 대해서도 여전히 과거와 똑같은 환상에 사로잡혀 있다.
이것은 영국 사회주의운동에 커다란 악영향을 끼치며 - P12

영국의 해외 정책에도 심각한 결과를 초래하고 있다. 내가생각하기에 사실, 러시아는 사회주의 국가이며 지도자들의 모든 행동은 우리가 그것을 모방하지만 않는다면 용서될 수 있다는 믿음만큼 사회주의의 근본 이념을 타락시키는 것도 없다.
그래서 나는 과거 10년 동안, 만약 우리가 사회주의운동의 부활을 원한다면 소비에트 신화는 반드시 파괴해야한다고 확신해 왔다.
스페인에서 돌아온 나는 모든 사람들이 쉽게 이해할 수있고 다른 언어로도 쉽게 번역될 수 있는 이야기로 소비에트 신화를 한번 폭로해 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 P13

하지만 구체적인 내용은 상당기간동안 머릿속에 떠오르지 않았다.
그런데 어느 날 (당시 나는 조그만 시골 마을에 살고 있었다) 나는 열 살 정도 되어 보이는 어느 꼬마가 커다란 달구지 말을 몰고 좁은 골목길을 빠져나가는 것을 보았다. 꼬마는 굽은 길을 돌 때마다 말에게 채찍질을 하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고, 만약 저런 동물들이 자기들의 힘을 인식한다면 우리 인간들은 저들을 마음대로 부려먹을 수 없을것이며, 또한 인간들이 동물들을 부려먹는 것은 부자들이노동자 계급을 착취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
나는 마르크스의 이론을 동물들의 관점에서 분석하기시작했다. 인간들은 동물들을 착취할 필요가 있을 때마다 - P13

단결하기 때문에 인간들 사이의 계급투쟁의 개념은 분명히 동물들에게는 전적으로 환상에 불과했다. 이러한 출발점에서 동물 이야기를 풀어 나간다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당시 나는 다른 작품을 쓰고 있었기 때문에 시간적 여유가없어 1943년까지는 이 동물 소설을 마무리할 수 없었다.
결국 나는 동물 소설을 쓰던 중에 일어난 테헤란 회담‘과같은 일련의 사건들을 소설에 집어넣어야 했다. 그래서 동물 소설의 윤곽은 내가 본격적으로 쓰기 전까지 6년 동안내 머릿속에만들어 있었다. - P14

이 소설에 대해서는 언급하고 싶지 않다. 만약 소설 자체로 말할 수 없다면 이것은 실패한 작품이다. 그러나 여기서 두 가지만은 분명히 해야겠다. 첫째, 비록 다양한 에피소드들이 러시아 혁명의 실제 역사에서 따온 것이지만,
이 소설에서는 도식적으로 다루어져 있으며 연대순도 바뀌어 있다. 이야기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서는 불가피한 것이었다. 둘째, 내가 충분히 강조하지 않아서 대부분의 비평가들이 간과하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많은 독자들은 이소설이 돼지들과 인간들이 서로 완벽한 화해를 하는 것으로 끝난다는 인상을 받을 수도 있다. 이것은 나의 의도가아니다. 오히려 나는 돼지들과 인간들이 서로 의견이 맞지 - P14

않아 언성을 높이며 입씨름하는 것으로 이 소설의 결말을계획했다. 모든사람들이 테헤란 회담이 소련과 서구 세계사이의 최선의 관계를 이끌어 냈다고 생각하던 직후에 이소설을 썼기 때문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소련과 서구 세계사이에서 좋은 관계가 오래 지속되리라고는 믿지 않았다.
그리고 여러 사건들이 증명해 보여 주듯이 내 생각은 크게틀리지 않았다. - P15

매너‘ 농장의 존스 씨는 그날 저녁 닭장 문은 자물쇠로채웠지만 너무술에 취한 탓에 작은 구멍 닫는 것은 잊어버렸다. 그는 마당을 가로질러 비틀비틀 걸어갔는데 손에 들린 등불의 둥그런 불빛도 그의 비틀거리는 발걸음에 따라이리저리 춤을 추었다. 그는 집 뒷문으로 들어가 장화를휙 벗어던지고 주방으로 가더니 술통에서 맥주를 따라 마지막으로 한잔 쭉 들이켠 다음 2층 침실로 올라갔다. 존스부인은 벌써 코를 골며 자고 있었다.
침실의 불이 꺼지자마자 농장 건물 전체에서 웅성거리는 소리, 날개 퍼덕거리는 소리가 나기 시작했다. 미들 화이트 상을 받은 수퇘지 메이저 영감이 간밤에 이상한 꿈을꾸었는데, 그 꿈 이야기를 다른 동물들에게 들려주고 싶다는 전언이 그날 낮에 돌았기 때문이다.  - P17

하지만 이것이 단지 자연의 섭리일까요? 아니면 우리나라가 너무 가난해 이 나라에 살고 있는사람들에게 여유로운 생활을 제공할 수 없기 때문일까요? 아닙니다, 동지 여러분,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영국은 땅이 기름지고 기후가 온화해 현재 영국에 살고 있는 동물들보다 훨씬 많은수의 동물들을 배불리 먹이고도 남습니다. 우리 농장의 경우에도 열두 마리의 말과 스무마리의 암소와 수백 마리의 양을 먹여 살릴 수 있으며, 현재 우리 모두가 상상할 수 없을정도로 안락하고 품위 있는 생활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왜 우리는 이처럼 비참한 상태를 여전히 면치 못하고 있습니까? 그것은 우리의 노동으로 생산한 거의 모든 것들을 인간들이 다 빼앗아가기 때문입니다. 동지 여러분, 우리가 안고 있는 모든 문제에 대한 해답이 있습니다. 그것은 단 한마디로 요약될 수 있습니다. 바로 인간입니다. 인간은 우리의 유일한 적입니다. 인간을 여기서 몰아냅시다.
그러면 배고픔과 과로의 근원이 영원히 사라질 것입니다. - P21

인간은 생산은 하지 않고 소비만 하는 유일한 동물입니다. 그들은 젖도 만들지 못하고 알도 낳지 못합니다. 그들은 몸이 너무 약해 쟁기도 못 끌고, 토끼를 잡을 만큼 빨리달리지도 못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모든 동물의 왕입니다.
그들은 동물들을 부려먹고 겨우 굶어 죽지 않을 정도의 식량만 동물들에게 돌려줍니다. 그리고 나머지는 몽땅 자기들이 차지합니다. 우리는 힘겹게 땅을 갈고 분뇨로 땅을비옥하게 하지만 정작 우리에게는 벌거벗은 가죽을 빼고남아 있는 것이라고는 하나도 없습니다. 내 앞에 계신 암소 여러분, 여러분이 이번 1년 동안 생산한 우유가 도대체몇천 리터입니까? 그런데 송아지를 튼튼하게 기르는 데쓰여야 할 그 우유가 다 어디로 갔습니까? 한방울도 남기지 않고 모조리 우리 적들의 목구멍으로 들어갔습니다.  - P22

그리고 우리는 이 비참한 생활이라도 누리며 천수(天壽)를 다할 수 없습니다. 내 경우를 말하면, 나는 대체로 운이 좋아 불만은 없습니다. 나는 열두 살이고 자식들도 4백마리가 넘습니다. 이것이 돼지의 본래 삶입니다. 그러나어떤 동물도 결국에 가서는 잔인한 칼을 피할 수 없습니다.
내 앞에 앉아 있는 젊은 식용 돼지 여러분, 여러분도 모두1년 안에 도살대에서 비명을 지르며 목숨을 잃을 것입니다. 우리 모두 그런 끔찍한 최후를 맞이할 것입니다. 암소와 돼지와 암탉과 양 모두가 말입니다. 말이나 개라고 해서 더 나은 운명을 가진 것은 아닙니다. 복서, 당신도 그 엄청난 근육이 힘을 잃게 되는 순간, 존스가 폐마 도축업자에게 팔아넘길 것이고, 그는 당신의 목을 잘라 삶아서 사냥개의 먹이로 쓸 것입니다. 개도 나이가 들어 이빨이 빠지면 존스가 목에 벽돌을 매달아 가까운 연못에 빠뜨려 죽일 것입니다. - P23

다만 다시 한번 말하건대, 인간과 인간의 모든 방식에 적개심을 갖는 게 여러분의 의무라는 사실을 항상 기억하십시오. 두 다리로 걷는 자는 모두 적이고, 네 다리나 날개를 가진 자는 모두 친구입니다.
그리고 인간과 싸울 때 그들을 닮아서는 안된다는사실을또한 명심하기 바랍니다. 여러분이 인간을 정복할 때에도그들의 악습을 배워서는 안 됩니다.어떤 동물도 집에서살거나 침대에서 자거나 옷을 입거나 술을 마시거나 담배를 피우거나 돈을 만지거나 장사를 해서는 안 됩니다. 인간의 습관은 모두 나쁜 것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어떤동물이든 서로를 탄압해서는 절대 안됩니다. 약하든강하든, 현명하든 우둔하든 우리는 모두 형제들입니다. 어떤동물도 다른 동물을 죽여서는 안 됩니다. 모든 동물은 평등합니다. - P25

그것은 3월 초순의 일이었다. 그 뒤 3개월 동안 많은 활동들이 비밀리에 진행되었다. 메이저의 연설은 농장에서똑똑한 동물들에게 완전히 새로운 삶의 가치관을 심어 주었다. 그들은 메이저가 예언한 반란이 언제 일어날지 몰랐고, 또 자신들이 살아 있는 동안에 일어날 것이라고는 생각조차 못했다. 그러나 그것을 준비하는 것이 자신들의 의무라는 사실만은 분명히 알고 있었다. 다른 동물들을 가르치고 조직하는 일은 당연히 농장에서 가장 총명하다고 알려진 돼지들의 임무가 되어 버렸다. 돼지들 중에서도 존스씨가 팔아먹기 위해 기르고 있던 두 마리의 어린 수퇘지 스노볼과 나폴레옹이 가장 탁월했다. - P30

그들은 건초용 풀을 거둬들이기 위해 얼마나 많은 땀을흘리며 일했던가! 하지만 수확은 기대보다 훨씬 큰 성공을거두었고 그들의 노력은 헛되지 않았다.
때로 일이 힘들기도 했다. 농기구들은 인간들을 위해 만들어진 것이지 동물들을 위한 것은 아니었다. 뒷다리에 얹도록 되어 있는 농기구는 하나도 사용할 수 없다는 것이 큰문제였다. 그러나 돼지들은 영리해서 모든 어려움을 극복하는 방법을 생각해 낼 수 있었다. 말들은 풀밭을 샅샅이알고 있었고, 사실 풀을 베어 거두어들이는 일에 대해서는존스와 그의 일꾼들보다 훨씬 잘 파악하고 있었다. 돼지들은 실제로 일은 하지 않고 다른 동물들을 지휘하고 감독하기만 했다. 그들은 훌륭한 지식을 갖고 있기 때문에 감독을 하는 것이 당연했다.  - P42

그해 여름 내내 농장의 일은 별 어려움 없이 돌아갔다.
동물들은 상상할 수 있는 것 이상으로 행복했다. 인색한주인이 그들에게 나누어 준 먹이가 아니라 동물들 자신이직접 수확한 식량이었으므로, 그것을 한입 먹을 때마다 그들은 벅차오르는 기쁨을 만끽했다. 아무짝에도 쓸모없는기생충 같은 인간이 없어지자 각자가 먹을 음식은 더 많아졌다. 아직 실제로 즐겨본 적은 없지만 여가시간도 많이생겼다. 하지만 어려운 문제에 부딪치기도 했다. 예를 들어 그해가 저물 무렵 곡식을 거둬들일 때 농장에 탈곡기가없어서 옛날 방식으로 발로 밟아 곡식을 털어 내고 입으로불어 겨를 날려 보내야 했다. 그러나 돼지들은 머리를 쓰고 복서는 엄청난 힘을 발휘해 항상 그런 고난을 극복했다. 복서는 모든 동물들로부터칭찬을 받았다. - P43

이제 동물들이 절대적으로 확신하는 한가지 사실이 있다면, 그것은 아무도 존스가 돌아오기를 바라지 않는다는점이었다. 스컬러가 이런 식으로 설명하자 그들은 더 이상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돼지들의 건강을 지키는 일의 중요성은 너무나 명백해 보였다. 그래서 우유와 떨어진 사과(그리고 다 익었을 때 수확한 사과는 물론이고)를 돼지들을 위해 보관해야 한다는 것은 더 이상 이러쿵저러쿵따지는 일 없이 통과되었다. - P51

개들이 다시 그의 뒤까지따라붙었다. 그중 한마리가 스노볼의 꼬리를 날카로운 이빨로 거의 물어뜯을 뻔했지만 스노볼은 꼬리를 홱 흔들어위험을 가까스로 모면했다. 그는 이제 마지막 있는 힘을다해 뛰었고 개들과 불과 간발의 차이를 두고 울타리 구멍을 빠져나가자취를 감추었다.
겁에 질려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동물들은 창고로 다시들어왔다. 개들도 재빨리 뛰어들었다. 처음엔이 개들이어디서 왔는지 아무도 몰랐지만 의문은 곧 풀렸다. 그들은새끼 때 나폴레옹이 어미로부터 떼내 개인적으로 길러 왔던 바로 그 강아지들이었다. 그들은 아직 완전히 자라진않았지만 거대한 덩치에 늑대처럼 사나운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그들은 나폴레옹 옆에 바싹 붙어 다른 개들이 존스씨에게 했던 것과 똑같이 그를 향해 꼬리를 흔들었다. - P68

동물들은 스노볼이 추방된 데서 받은 충격에도 불구하고 나폴레옹의 발표를 듣고 당황했다. 정당한 이의라도 생각났더라면 몇몇 동물들은 항의를 했을 것이다. 복서조차도 막연히 걱정이 되었다. 그는 귀를 뒤로 젖히고 몇 번이나 앞머리를 흔들며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려고 애를 썼다.
그러나 결국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러나 몇몇 돼지들은 나름대로 자신들의 뚜렷한 생각을 말했다. 앞줄에 앉아있던 어린 식용 돼지 네 마리가 찬성할 수 없다며 날카로운소리를 꽥 지르더니 재빨리 벌떡 일어나 말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갑자기 나폴레옹을 둘러싸고 있던 개들이 위협적으로 낮게 으르렁거렸고, 돼지들은 아무 말도 못하고 다시그 자리에 앉아 버렸다.  - P69

그는나폴레옹이 풍차 계획에 반대하는 척한 것은 동물들에게나쁜 영향을 끼치고 있던 위험 인물인 스노볼을 제거하기위한 술책의 일환이었다고 말했다. 이제 스노볼이 사라졌기 때문에 그 계획은 그의 방해 없이 진행될 것이라고 했다. 그는 그게 이른바 전술이라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즐거운 웃음을 지으며 깡충깡충 뛰기도 하고 꼬리를 털기도 하면서 <전술입니다, 동지들, 전술입니다!>라고 여러번 반복해서 말했다. 동물들은 그 말이 무슨 뜻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그러나 스컬러가 워낙 설득력 있게 설명했고, 또 함께 있던 세 마리의 개가 위협적으로 으르렁거렸기 때문에 동물들은 더 이상 아무 질문도 못하고 그의설명을 그대로 받아들여야 했다. - P73

그해에 동물들은 줄곧 노예처럼 일했다. 그러나 그들은일을 즐겼다. 자신이 하는 일이 모두 자신과 후손들의 이익을 위한 것이지 빈둥빈둥 놀면서 도둑질이나 일삼는 인간들을 위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어떤 수고나 희생이 따르더라도 불만을 터뜨리지 않았다.
봄과 여름 내내 동물들은 1주일에 40시간씩 일을 했고,
8월이 되자 나폴레옹은 일요일 오후에도 일이 있을 것이라고 발표했다. 이 일은 전적으로 자발적인 것이었지만 참여하지 않는 동물은 누구든지 식량이 반으로 줄어들었다.
그렇게 일을 했는데도 어떤 일은 끝내 완수하지 못한 채 남겨두어야 했다. 수확은 지난해에 비해 다소 줄어들었고,
초여름에 근채류의 씨를 뿌렸어야 할 두 밭에는 쟁기질을제때에 못해 아직 씨도 뿌리지 못했다. 다가올 겨울이 고달프리라는 것은 쉽게 예상해 볼 수 있었다. - P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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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사물에서 얼마나 많은 측면을 벗겨내면 더 이상 그이름으로 불리던 것이 아니게 될까? 어떤 것이 더 이상 그 자체가아니라 다른 무엇이 되는 것은 언제일까? 의미가 해체되거나 정의가 계속 확장되다가 아예 거덜 나버리는 것은 언제일까? 장미농장 견학이 끝나갈 무렵 나는 한 기다란 방으로 안내되었다. 그곳에는 색색의 장미 꽃다발이 담긴 원통형 투명 용기 수백 개가긴 철제 탁자 위에 줄지어 놓여 있었다. 그것들은 얼마나 오래가는지 시험 중이었고, 각각의 이름이 꽃다발 앞쪽 표찰에 적혀 있었다. 마치 공식 만찬의 좌석 배정표와도 같았다.  - P285

그러나 놀라운 것은 그곳에 부재하는 어떤 것이었다. 그천장 낮은 방 안에 있는 수천 송이 장미꽃에서는 아무 냄새도 나지 않았다. 향기란 일종의 목소리, 꽃이 말하는 방식이다. 시인 라이너 마리아 릴케Rainer Maria Rilke는 그것을 "공중에 감도는 애무"
라고 했다. ‘꽃으로 마음을 전하라는데, 이 꽃들은 벙어리였다.
물론 온실에는 향기가 나는 노란 장미들이 심긴 줄도 있었지만,
이 꽃들 역시 겉모습과 지속성을 위해 가꾸어진 것이었고, 그 두가지야말로 그것들을 수익 상품이 되게 해주는 것이었다(종종 장미는 연약하다고 생각되지만, 다른 꽃들에 비해 오래가는 꽃이다. 다른 많은꽃들은 너무나 섬세하고 단명하여 대량 생산이나 해외 수출이 불가능하다).
향기는 일부러 교배되지도 않았지만, 굳이 찾는 이도 없었다. - P286

하지만 장미에 향기가 없다는 것은 그 견학이 불편했던이유들 중에 사소한 편에 속했다. 온실 다음에는 작업장을 둘러보았는데, 온실에서 들여온 장미들을 포장된 꽃다발로 만들어내보내는 드넓고 썰렁한 공간이었다. 어떤 꽃다발들에는 이미 바다 건너 멀리 있는 슈퍼마켓의 이름과 가격이 찍힌 라벨이 붙어있었다. 그것은 장미농장이라기보다, 장미라는 제품을 생산하는공장이었다. 바닥은 축축했고, 잎사귀와 가시 달린 줄기, 꽃잎들이 널려 있었다. 노동자들은 대부분 젊고 동작이 빨랐으며 고무장화를 신고 회색 작업용 점프슈트나 구호가 찍힌 작업용 셔츠를입고 있었다. 고무장갑을 착용한 이들도 있었다.
싸늘한 공기 속에서 150명쯤이 일하고 있었다. 나는 그들이 나날이 겪는 시련에 틈입자가 된 기분이었다. 그들의 상사와함께 있다는 것은 마치 내가 그 시스템을 용인하고 나 자신도 관리자들과 한편이 되어 위협적이고 억압적으로 보일 수 있는 방식으로 그들을 지켜보고 있음을 의미했기 때문이다. 너무 바삐 돌 - P287

장미는 흙에서 재배되었지만, 꽃다발은 여느 대량 생산제품과 마찬가지로 생산 라인 위에서 조립되었다. 남자들이 장미가 실린 큰 수레를 밀고 작업장 안을 돌아다녔고, 다른 남녀 노동자들이 직사각형 망사천에 싸인 장미들을 가져다가 색깔과 줄기의 길이 등 기준에 따라 분류한 후에 방의 길이만 한 괴물 빗처럼생긴 일종의 틀에 실었다. 장미들은 빗살 사이로 추려졌고, 반대편에서는 또 다른 노동자들이 장미를 한 번에 몇 송이씩 꺼내 다발로 모으고 특성과 유사성에 따라 추린 다음 모든 봉오리들―활짝 핀 것은 없고 늘 봉오리뿐이었다―이 나란하도록 묶고 줄기들을 같은 길이로 잘라냈다. 잎사귀들을 떼어내는 작업을 하는사람들도 있었고, 양동이에 물을 담아 완성된 꽃다발을 냉장실로 실어가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 방은 냉동 직전의 온도로, 그곳에서 선적을 위해 분류되는 것이었다. 어떤 꽃다발들은 실제로컨베이어벨트 포드 자동차 공장의 상징과도 같은 구조물에실리기도 했다. - P288

베아트리스가 지적한 또 다른 중요한 변화는 노동자들을연구하는 엔지니어들이 투입되었다는 것이었다. 그들은 작업 교대조 중 누가 화장실에 몇번 갔는지, 또 누가 꽃을 집어 드는 데얼마나 오래 걸리는지 등을 일일이 기록했다. 그 모든 정보는 노동자들에게 생산성을 높이고 행동의 자유를 최소화하도록 요구하는 새로운 규정을 만드는 데 활용되었다. 작업장은 우리가 선샤인부케에서 보았듯이 현대화되었고, 노동자들은 온종일 한 가지 일만 하게 되었다. 노동자들은 광대하고 끊임없이 돌아가는기계의 부속이 되었으며, 기계가 점점 빨라질수록 노동자 각자는30년 전에 하던 것의 몇 배나 되는 일을 해야만 했다. - P290

그들 뒤에서는 한 여자가-우리는 그녀를 ‘스케이터‘라 불렀는데 그 꽃들을 집어서 개수를 세고 꼬리표를 붙여 가져갔고요. 하지만 그건 한 사람이 온종일 자르고 자르고 자르고 자르기만 해야 한다는 거예요. 회사가 들어선 후 생겨난 문제들 중 또 한 가지가 그거였어요. 같은 기능의 반복으로 인한 직업병 말이에요. 꽃을 자를 때 가위를 써야했던 것처럼, 그 작업장의 여자들은 꽃을 추려야 했고, 활액낭염,
건염, 회전근개 증후군 등을 얻게 되었어요."
베아트리스 자신도 열두 해 동안이나 꽃을 자른 끝에 팔에 통증을 얻게 되었다. "일반 보건의에게 갔더니 몇 가지 질문을하고 검사를 하더군요. 결국, 꽃 일 때문에 수근골증후군과 건염이 생겼다는 진단이었어요."  - P291

문제는 단지 인간적인 것만이 아니었다. 네 여자는 화훼산업에 소비되는 물이 지하수를 고갈시키고 있다고 설명했다. "우리는 물 부족을 겪고 있어요. 꽃은 60퍼센트가 물이라는 걸 기억해야지요. 꽃 한송이를 사도 60퍼센트는 물이고 40퍼센트만 고체라는 말이에요. 그러니까 우리가 수출하는 건 엄청난 양의 물이지요. 게다가 사람들은 보고타의 사바나 지역은 공기가 맑다고 생각하는데, 그것도 거짓말이에요. 이 사바나 지역과 인근 지자체들의 공기는 고도로 오염되어 있어요. 60년 동안 누적된 화학물질과 살균제 때문이지요. 이 살균제 때문에 나비는 물론이고 다른 곤충들과 벌레들, 여기 살던 수많은 곤충들이 죽었어요.
다시 말해 화훼 산업의 문제는 사회 문제이자 노동 문제일 뿐 아니라 환경 문제이기도 하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화훼 산업에서는사회, 노동과 관련된 쟁점들이 중요하고 우리가 여기서 하는 일도 그와 관련된 거지만, 환경적인 측면도 끔찍해요. 그것은 물을고갈시키고, 동식물과 공기와 모든 것을 망쳐버렸어요." - P292

장미의 추악함은 그런 식으로 생산된다는 데 있을까, 아니면 우리가 그 점을 간과한다는 데 있을까? 장미는 어떤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다른 것이라는, 일종의 거짓말이 되었는가? 그것들은 이제 기만의 징표, 실제 생산 여건보다 외관상의 아름다움을표하는 일종의 기만이 아닌가? 오웰의 작품 상당 부분은 다양한 종류의 추악함에 대한 것이었지만, 그가 추악하다고 본 것은그가 아름답다고 본 것의 잘 드러나지 않는 이면이었다. - P293

오웰에게는 아름다움과 추함의 너무나 많은 것이 언어에있었다. 그는 모든 계약의 핵심이 되는 계약으로서의 언어에 열정적으로 투신했다. 말들은 그것들이 묘사하는 것―그것이 사물이든 사건이든 이념이든ㅡ과의 신뢰할 만한 관계 속에 존재해야했다. (양가성, 애매성, 혼동, 엇갈리는 시각, 믿을 만한 정보의 결여 등에 맞닥뜨린다 해도 그런 정황 자체에 대해 정직한 태도를 취함으로써, 주제가 명확하지 않을 때에도 명확할 수 있다. 가령 그가 카탈루냐 찬가』에서 자신은몇몇 상황의 진실을 알지 못하며 다른 사람들에게서 본 것을 보고할 수 있을 따름이라고 말할 때처럼 말이다.) 깨진 계약을 가리키는 다른 말은거짓말이다. - P295

거짓말은 앎과 연결의 능력을 잠식한다. 앎을 차단하거나왜곡함으로써, 또는 거짓을 유포함으로써 거짓말쟁이는 다른 사람들로부터 정보를 박탈한다. 정확한 정보는 공적이고 정치적인삶에 참여하기 위해, 위험을 피하기 위해, 자기 주위의 세계를 이해하기 위해, 원칙에 따라 행동하기 위해, 자신과 다른 사람들과상황을 알기 위해, 좋은 선택을 하기 위해, 그리고 궁극적으로는자유로워지기 위해 필수적인데 말이다. 거짓말쟁이는 자신이 아는 것과 거짓말의 희생자가 아는 것 사이에 쐐기를 박는다. 거짓말에 넘어가는 사람 내지 사람들은 전적으로 믿을 수도, 혼란에빠질 수도, 의심할 수도 있다. 심지어 그들은 자신이 기만당하고있음을 알 수도 있지만, 그런 경우에도 기만의 본질이나 그것이은폐하려 하는 바에 대해서는 알 수도 알지 못할 수도 있다. 권위주의자들은 종종 사람들로 하여금 뻔히 거짓말인 줄 아는 것에동조하게끔 종용하며, 또 다른 이들을 기만할 수도 있을 마지못한 공모자들로 만든다. 아는 것은 힘이니, 앎의 공평한 분배는 다른 여러 형태의 평등과 불가분이다. 사실을 알 공평한 권리가 없이는 의사결정에서 공평한 능력을 가질 수 없다. - P296

내 저작 중 상당 부분은 목소리의 불평등에, 즉 성과 젠더에 관한폭력이 인종차별과 마찬가지로 어떻게 일부 음성들을 침묵시킴으로써 자행되어왔던가에 관심을 촉구해왔다. 침묵을 강제하기위해 흔히 위협과 폭력이 동원되었을 뿐 아니라 체계적인 저평가도 행해져왔으니, 그런 음성들은 신뢰할 수 없고, 말할 자격도 귀담아 들을 가치도 없으며, 우리의 삶이 어떤 종류의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져야 하는가를 결정하는 장소들에는 들어올 가치조차없는 것으로 묘사되어왔다.
한 사회에서 일부 음성들을 평가 절하하는 것은 실제로용인되고 장려되는 어떤 것을 마치 존재하지도 않는 듯이 취급함으로써 사회가 그것에 공식적으로 반대할 수 있게 만든다.  - P297

오웰의 가장 의미심장한 맹점 중 하나는 젠더에 관해, 결혼과 가정이어떻게 권위주의 체제의 축소판이 될 수 있는지, 진실을 탄압하고 강자를 보호하는 거짓을 선포하기에 이르는지에 관한 것이다.
이런 관행은 일터와 학교(그는 학교에서 일어나는 권위주의에 대해서는명확히 인식하고 있었다)에서, 공적 생활에서, 그리고 사생활에서는법과 관습과 문화에 의해 강화되는 부분들에서 복제된다. 그는 그런 불평등을 드문 예를 제외하고는 전략적으로 망각했던 세대에속했다. 이후로 우리는 그런 불평등을 인식하기 위해 애써왔다.
적어도, 우리 중 일부는 그래왔다. 옛 질서와 그것이 포함하는 탄압 및 배척을 보존하기 위해 역시 힘써 투쟁해온 사람들도 있겠지만 말이다. - P297

그러나 기만은 행동뿐 아니라 신념에도 작용하므로 좀 더 미묘한 통제를 가져온다." "거짓말은 정보를 차단함으로써 거짓말쟁이에게 일종의 방패가 되며, 허위를 유포함으로써 검이 된다. 사람들이 거짓말을 믿는지 안 믿는지도 중요하지만, 권력을 가진 이들이 휘두르는 믿을 수 없는 거짓말은 그 자체로 파괴력을 갖는다. 강자들의 거짓말 속에서 살도록 강요되다 보면 서사에 대한 자신의 힘을 결여한 채 살게 되며, 종국에 가서는일체의 것에 대한 힘을 상실하게 된다. 권위주의자들은 진실과사실과 역사를 무찔러야 할 경쟁 체제로 본다. - P299

오웰의 작가로서의 삶은 위선과 회피에 대한 통상적인혐오와 함께 시작되었다. 스페인전쟁은 이를 첨예화하여 정치적 삶에서 거짓이 갖는 위력에 초점을 맞추게 했고, 이런 경향은1940년대의 에세이들과 동물농장」, 그리고 아마도 제도적 기만에 관한 20세기의 가장 의미심장한 책일 1984에서 점차 강해진다. 스페인전쟁에서 프로파간다의 세례를 받은 것이 가까이 있는 자들에게서, 적으로 추정되는 편뿐 아니라 자기편 안에서도부패를 알아보는 눈을 키워주었다.
그의 편이란 이른바 자유 세계 내의 좌익이요 인텔리겐치아였는데, 당시 그들은 스탈린의 소련이라는 극단적인 거짓말로이루어진 독재와 전 세계의 전초 기지들 및 지지자들을 묵인하고 있었다.  - P299

결국 전체주의하에서는 거짓말로 이루어진 체제가 그 치하에 사는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과 다른 사람들의 생각 및 언어에서 진실과 정확성을 찾기를 포기하게 함으로써 그들의 정신 상태를 파탄에 이르게 한다. 때로 이것은 지적 굴복, 믿기 편리한 모든 것을 기꺼이 믿으려는 주눅 든 순응성, 때로는 냉소주의, 아무것도 믿지 않으려는 태도, 모든 것이 다 똑같이 썩었다는 단언등의 형태를 취한다. 한나 아렌트의 다음과 같은 말이 유명하다.
"전체주의 지배의 이상적인 신민은 확신에 찬 나치나 확신에 찬공산주의자가 아니라, 사실과 허구 사이의 구분(즉 경험의 현실성),
진실과 허위 사이의 구분(즉 사유의 기준)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사람들이다." 그 구분을 찾아내어 기록하는 것이 오웰의 주된 과업중 하나였으니, 아렌트의 말을 뒤집어 전체주의의 강력한 적은 사실과 허구 사이, 진실과 허위 사이의 구분에 열정적이고 분 - P301

명한 자, 자신의 경험의 현실성과 그것을 증언하는 능력 위에 서있는 자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아렌트와 오웰은 각기 전체주의의 기원』과 1984에서비슷한 진단을 내렸다. 아렌트는 1951년에 출간된 이 책에서 전체주의가 낳는 외로움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인간은 자기 생각의파트너인 자신에 대한 신뢰와 도대체 경험이라는 것을 하기 위해필요한 세계에 대한 기본적인 신뢰를 잃어버린다. 자아와 세계,
생각과 경험의 능력이 동시에 상실되었다." 오웰은 1946년의 문학 예방」이라는 에세이에서 거짓말이란 "전체주의에 필수적인요소이며, 강제노동수용소와 비밀경찰이 더 이상 필요 없게 된다 해도 여전히 존속할 무엇"이라고 쓴다. "전체주의적 권력을 갖는다는 것은 진실과 사실과 역사에 대한 권력도 갖는 것이며 꿈과 생각과 감정을 무시하고 그것들에 권력을 행사한다는 것이다. - P302

그는 계속 말한다. "전체주의적 시각에서 보면 역사란 배우기보다 만들어내는 것이다. 전체주의 국가란 사실상 신정 국가이며, 그 지배계급은 자기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 결코 실수할 수 없다고 생각되어야만 한다. 이런저런 실수를 없었던 것으로, 이런저런 허구적인 승리를 실제로 일어났던 것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심심찮게 과거 사건들을 새로 짜 맞출 필요가 생긴다.. 전체주의는 사실상 과거를 계속 변조할 것을, 결국에 가서는 객관적 진
실의 존재 자체를 믿지 말 것을 요구하게 될 것이다."
전체주의는 거짓말 없이는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그것은 - P302

언어의 문제요 스토리텔링의 문제이며, 따라서 어느 정도 언어를가지고 싸워야 한다. 즉 체제가 조작할 수 없는 역사의 언어, 현상황을 폭로하는 독립된 언론, 진술의 근거를 요구하는 논리적이고 과학적인 방법,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의 개념과 원리를 발견하고 세상을 비판적으로 보게 하는 사상의 언어, 언어로써 만든계약에 대한 존중 등으로 말이다. 관계들을 떠받치고 외로움을몰아내는 사랑과 우정의 언어로, 경험의 미세한 음영과 뜻밖의배열을 포착하는 시의 언어로 말이다. 이 모든 것은 그것들을안전하게 행할 자유와 그런 일들이 위험할 때에도 감행할 용기를요구한다. - P303

오웰의 글은 이렇게 이어진다. "그러나 전체주의로 타락하기 위해 꼭 전체주의 국가에 살아야 하는 것은 아니다. 어떤 생각들이 우세한 것만으로도 일종의 독이 퍼져, 문학적 목적으로 쓸수 없는 주제들이 차례로 생겨난다. 강요된 정설때로는 두 가지 정설이 있는 곳에서는 좋은 글이 더 이상 나오지 못한다."5좋은 글은 자유, 특히 진실을 말할 자유에서 나온다. 최선의 상태에서 말은 사물을 드러내며 선명히 보여준다. 최악의 상태에서는그 반대가 된다. 오웰은 1946년의 또 다른 에세이 정치와 영어」에서 그 문제를 다루어 이렇게 쓴다. "과장된 문체는 그 자체로일종의 완곡어법이다. 다량의 라틴어 단어들은 사실 위에 부드러운 눈처럼 내려 윤곽을 희미하게 하고 세부들을 덮어버린다." - P303

「정치와 영어」는 너무 헐겁고, 엉성하고, 막연하고, 우회적이고, 회피적인 언어를 비판한다. 1984는 너무 옥죄는, 어휘도 함의도 너무 제한적인 언어, 어떤 단어들은 말살되고 또 어떤단어들에서는 풍부한 환기적 의미들이 소거된 언어를 묘사한다.
그 중간 어디쯤에, 명료하지만 환기력이 풍부한 언어의 가능성이있다. 그 언어 안에서 말하고 글 쓰는 이의 모색은 듣거나 읽는 이의 모색을 촉구할 것이며, 언어에는 다소 야생적인 무엇이 있어서그 야생적인 것과 자유로운 것이 겹쳐질 것이다. 그 전일성, 그 준수된 계약들, 연결하고 힘을 주고 해방하고 조명하는 말들의 사용을 통해 온전케 하려는 노력이야말로, 다른 사람들의 글에서나 그 자신의 작가로서의 노력에서나 그가 가장 신봉하고 또 가장 경하했던 아름다움이다. - P306

그런 아름다움은 아름다움이라는 말이 흔히 시사하는 시각적 미려함과 반드시 비슷할 필요가 없다. 1946년 에세이 나는왜 쓰는가는 그런 문제 전반을 다룬 글이다. 글을 쓰는 몇 가지동기 중 하나로 그는 다음과 같은 것들을 꼽았다. "외부 세계의 - P306

아름다움에 대한, 또는 그에 상응하는 단어들과 그 적절한 배열12이 갖는 아름다움에 대한 지각. 어떤 소리가 다른 소리에 미치는영향이나 훌륭한 산문의 견고함과 훌륭한 이야기의 리듬에서 발견하는 즐거움. 자신이 가치 있다고, 놓쳐서는 안 된다고 느끼는경험을 나누고자 하는 욕구." 그도 젊었을 때는 "결말이 불행하고, 자세한 묘사와 매혹적인 비유로 가득한, 그리고 어느 정도 소리를 위해 택한 단어들로 이루어진 화려한 구절이 가득한, 거창한 자연주의소설을 쓰고 싶었다"고 말한다. 물론 그런 화려함에대한 애정은 오래가지 않았다. "내 작업들을 돌이켜보면, 따분한책들을 쓰고 화려한 문구나 의미 없는 문장, 장식적인 형용사나허튼소리에 빠져 있었던 것은 어김없이 ‘정치적 목적이 결여되어있던 때였다." - P307

윤리적 목적이 심미적 수단을 첨예하게 한다는 점을 그는분명히 한다. 그를 무의미에서 구해낸 것은 정치였다. "평화로운시대였다면 나는 장식적이거나 그저 묘사적인 책들을 썼을지도,그리고 내 정치적 방향성에 대해서는 거의 의식하지 못했을지도모른다. 그런데 실제로는 일종의 시사 논설 작가가 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시사 논설을 쓰는 것도 나쁘지 않았고, 심미적 요구나 즐거움이 없는 일도 아니었다. "지난 10년을 통틀어 내가 가장 하고 싶었던 것은 정치적인 글쓰기를 예술로 만드는 일이었다.
내가 글을 쓰는 것은 폭로하고 싶은 어떤 거짓이나 주목하게하고 싶은 어떤 사실이 있기 때문이다. - P307

뒤이어 내 오랜 신조가 되어준 문장들이 나온다. "하지만나는 책을 쓰는 일도, 그저 좀 긴 잡지 기사를 쓰는 일도, 그것이또한 심미적인 경험이 아니었다면 해낼 수 없었을 것이다. 내 작품을 꼼꼼히 읽는 사람이라면, 노골적인 선전 글이라 해도 전업정치인의 눈에는 무관하게 보일 대목들이 많다는 걸 알 것이다.
나는 어린 시절에 갖게 된 세계관을 완전히 버릴 수도 없고 그러고 싶지도 않다. 살아서 정신이 멀쩡한 한, 나는 줄곧 산문 형식에애착을 가질 것이고, 이 땅의 표면을 사랑할 것이며, 구체적인 대상들과 쓸데없는 정보 조각들에서 즐거움을 맛볼 것이다.‘ 무관하게 보일 만한 것이란 일련의 즐거움들과 개인적인 열심들이다. 마치 ‘빵과 장미‘에서 장미처럼 말이다. (어린 시절에 갖게 된 세계관이란 많은 사물에 대한 폭넓고 길들여지지 않은 흥미, 특히 뒤이은 문장에 나오는 땅의 표면에 대한 사랑 같은 것일 터이다.) - P308

명징성, 정직성, 정확성, 진실성 등이 아름다운 것은 그런것들 가운데서 비로소 대상이 진실하게 재현될 수 있고, 앎이 민주화되고, 사람들이 힘을 얻고, 문들이 열리고, 정보가 자유롭게이동하고, 계약들이 준수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그런 글은 그자체로 아름다우며, 그 글에서 흘러나오는 것에서도 아름답다.
오웰의 작품에는 더 인습적인 종류의 아름다움 버마의 숲에서영국의 초원에 이르는 자연 경관, 그 모든 꽃들과 두꺼비의 황금빛 눈알에 이르기까지도 있다. 하지만 윤리와 심미성이 별개가아닌 이 아름다움, 진실과 전일성의 언어적 아름다움이야말로그가 자신의 글쓰기에서 도달하고자 노력했던 핵심적인 아름다움이다. 그런 아름다움은 언어와 그것이 묘사하는 것 사이, 한 사람과 다른 사람 사이, 한 공동체나 사회의 구성원들 사이에서 일종의 온전함이요 유대감으로 작용한다. - P309

1321936년, 한 젊은 작가가 장미를 심었다. 10년 후, 더 지치고더 현명해진 남자는 더 야심 찬 규모로 또 다른 정원 만들기에 착수했다. 잉글랜드 남부 웰링턴의 작은 정원과 스코틀랜드 서해안에 있는 주라섬의 작은 농장으로 발전한 정원 사이 10년 동안, 그의 인생은 여러 차례 달라졌고 작가로서는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성장했다.
그는 전쟁 기간 동안 많이 초췌해졌다.  - P313

BBC에서 그와 함께 일했던 존 모리스 John Morris는 그가
"샤르트르 대성당 전면의 인물상들을 닮았다"고 생각했다. "키가크고 여윈 그에게는 수척한 고딕적 분위기가 있었다. 그는 자주웃었지만, 가만있을 때 그의 주름진 얼굴에서는 돌에 새겨져 갖그에은 풍상을 겪은 중세 성인의 잿빛 금욕주의가 느껴졌다.
게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숱 많고 뻣센 머리칼과 특이한 눈빛이었다. 다정함과 열광이 뒤섞인 그 눈빛은 그가 보통 사람들보다더 많은 것을 보고 있음을 말해주는 듯했다(실제로 그랬다)." 그가쌕쌕거리며 숨 쉬던 것, 그리고 조금만 힘들어도 지쳐버리던 것을회고하는 이들도 있다. 그는 소진되어가고 있었다. 적어도, 그의육신은 그랬다. - P314

1946년의 오웰은 감탄할 만하다. 아일린의 죽음을 전후하여, 1943년 3월에는 이미 홀몸이던 어머니마저 세상을 떠났고,
1946년 5월에는 누나가 죽었다. 그 자신의 건강도 악화일로였고,
슬픔과 탈진에 빠져들 만도 했지만, 그는 오히려 많은 글을 썼고계획들을 잔뜩 갖고 있었다. 그중 하나가 당시 붙인 제목으로 유럽의 마지막 인간The Last Man in Europe」이라는 야심만만한 소설을쓰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브리튼의 섬들 중 가장 외진 헤브리디스 제도의 주라섬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것이었다. 그는1944년 여름에 잠깐 그 섬에 간 적이 있었다. 생계를 꾸리기 위해그는 "저널리즘에 깔려 죽을 것만 같다"고 불평을 하면서도 영웅 - P316

적인 속도로 에세이와 서평을 써냈고, 그해 겨울과 봄에는 때로일주일에 네 편을 쓰기도 했다.
그 무렵 쓴 글 중에 일상적인 안락함과 즐거움을 구가하는 몇 편의 에세이가 있다. 이것들은 1945년 말부터, 그가 저널리즘을 접고 장차 1984」라는 제목을 갖게 될 소설을 시작하기 위해 주라섬으로 이주한 1946년 5월 사이에 쓰인 글들이다. 이에세이들에 대해서는 실제적인 설명이 가능하다. 일에 치인 작가에게 그 가정적이고 목가적인 주제들은 그다지 자료를 읽거나 달리조사할 필요가 없는, 단순한 몽상이라고나 할 것들이었다. 그러므로 가볍게 취급될 수도 있겠지만, 그가 쓰게 될 묵직한 소설에도 그 가벼운 에세이들의 흔적이 남아 있다. - P317

오래전 내게 그토록 깊은 인상을 남겼던 이 패기 있는 에세이, 내가 웰링턴의 시골집을 찾아가 그곳에 피어 있는 장미를보고 이 책을 쓰는 계기가 되었던 그 글은 홀아비가 된 한 남자가결혼해 살던 곳을 정리하고 그 시절에 종지부를 찍기 위해 돌아갔던 여행의 결과물이다. 그는 이렇게 썼다. "최근에 나는 전에 살던 시골집에서 하루를 보냈다. 그리고 흐뭇한 놀라움으로 정확히 말하자면 미처 의식하지 못한 채 좋은 일을 했다는 느낌으로-내가 거의 10년 전에 심은 것이 어떻게 자랐는가를 보았다."
또 다른 편지에서 그는 그 방문이 예상했던 만큼 고통스럽지는않았다고 묵은 편지들을 발견했을 때 말고는썼다. 길을따라 거닐다가 "우리가 도롱뇽을 잡곤 하던, 폐기된 작은 저수지에 이르렀는데, 그곳에는 평소처럼 올챙이들이 생기고 있더군요."
또 한 문단 다음에서는, 주라섬에서의 삶을 기대하며 훨씬 더 웅장한 바다와 바다짐승을 묘사한다.  - P327

다시 시작한 가사 일기에는 런던과 누나 마조리의 장례식에 참석하러 갔던 노팅엄에서, 거기서 내처 스페인내전 시절의 친구 집에 들렀던 에든버러 근처에서, 그리고 돌아온 주라섬에서본 꽃들이 묘사되어 있다. 5월 22일 그는 주라섬으로 돌아가는 길에 뉴캐슬 근처에 있는 아일린의 무덤을 돌아보러 갔었다. "E의무덤 위 폴리앤서 장미들은 뿌리를 잘 내렸다. 꽃다지, 패랭이꽃,
바위취, 일종의 양골담초, 돌나물, 석죽, 그런 것들을 심었다. 모종들의 상태가 썩 좋지는 않았지만, 비가 오고 있었으니 잘 살아날것이다." 그것은 오웰의 생애에서 가장 마음 아픈 장면 중 하나였을 것이다. 홀아비가 되어 아는 사람도 별로 없는 곳에서, 흐리고 비 내리는 날, 젊은 아내의 무덤 앞에 쭈그리고서 땅을 파고 꽃을 심는 그의 모습이란. - P328

소설가이자 열정적인 나비수집가였던 블라디미르 나보코프Vladimir Nabokov는 회고록 말하라 기억이여』에서 "보통 사람들에게는 나비가 얼마나 눈에 안 뜨이는지 놀라울 정도다"라면서, 산길을 내려오는 한 도보 여행자에게 나비를 보았느냐고물었던 때를 회고한다. "그는 ‘아니요‘라고, 조금 전 우리가 나비떼 속에서 즐거워하던 길에서 내려오며 말했다." 사람은 보려는것만 보는 법이다. 오웰의 시골집에서 장미를 본 후 그의 다른 작품들을 뒤지다가, 나는 이미 여러 번 읽은 소설로 되돌아갔다.
뜻깊은 책을 다시 읽는 것은 옛 친구를 다시 방문하는 것과도 같다.  - P335

자신이 그렇게 달라졌기 때문에 보이는 것도 달라진다. 다시만나보면, 어떤 책들은 더 자라고 어떤 책들은 시들어버린다. 묻는 질문이 달라지기 때문에 돌아오는 대답도 달라지는 것이다. 이번에 내게 인상적이었던 것은 1984」에 얼마나 많은 싱싱함과 아름다움과 즐거움이 들어 있는가 하는 것이었다. 물론 그것들은위험에 처해 있고 스치듯 덧없고 오염되어 있지만 그래도 엄연히존재한다. 1984』는 주로 빅브라더, 사상경찰, 메모리 홀, 뉴스피크, 고문 등등 극도의 전체주의적 양상들로 기억되는 소설이다.
실제로 책이 나왔을 때 책에서 가장 새롭고 놀라운 점도 그런 것들이었고, 그런 것들은 오웰과 그의 주인공이 중요하게 여기는에 대한 위협으로 제시되었다. - P336

마거릿 애트우드 Margaret Atwood는 1984가 왜 흔히 생각하는 것 같은 디스토피아가 아닌가에 대해 또 다르게 설명한다.
2003년 《가디언》에 실은 글에서 그녀는 "오웰은 비관적이고 냉소적이라는 비난을 들어왔다. 개인은 가망이 없고 모든 것을 통제하는 당의 잔혹하고 전체주의적인 장화가 인간의 얼굴을 영원히짓밟는 미래를 그려 보였다는 것이다"라면서, 책의 마지막 부분,
즉 부록으로 실린 뉴스피크에 관한 역사적 기록을 근거로 삼아 - P344

16긍정적인 독해를 제시한다. "뉴스피크에 관한 에세이는 표준 영어로, 3인칭 과거시제로 쓰였다. 이는 체제가 무너졌고, 그 언어와인간의 독자성이 살아남았음을 의미할 수밖에 없다. 뉴스피크에관한 에세이를 누가 썼든 간에 1984의 세계는 끝난 것이다. 그러므로 오웰은 흔히 평가되는 것보다 훨씬 더 인간 정신의 회복탄력성에 대한 믿음을 갖고 있었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그녀는 자신의 소설 시녀 이야기 (1985)의 학술적인 말투의 후기에서도 이런 장치를 차용하여 그 세계의 체제 역시 붕괴할 것임을 시사한 바 있다.
공포는 영원하지 않아도 된다. 소련은 1991년에 붕괴했으니까. 하지만 그것은 수천만 명의 죽음과 그보다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의 고통과 파괴를 초래했고, 그 잔혹함의 일부는 현재의 러시아 정부에도 존속하고 있다. - P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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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6년, 한 영국 남자가 장미를 심었다. 그것은 정원 만들기의 일부였고, 정원은 문화가 자연을 다루는 한 방식이었다. 다시 말해 정원은 특정 문화를 통해 여과된 자연의 이상적 형태이다. 일본의 바위와 모래 정원이나 이슬람의 중앙에 분수가있는 파라다이스 정원처럼 일정한 양식을 갖춘 것이든, 아니면수많은 보통의 개인 정원처럼 제한된 공간, 시간, 예산, 계획에서생겨나 제각각인 것이든 말이다. 정원은 당신이 원하는(그리고 소유하고 관리할 수 있는) 무엇이고, 당신이 무엇을 원하는가는 곧 당신이 어떤 사람인가를 말해주며, 당신이 어떤 사람인가 하는 것은 항상 정치적이고 문화적인 질문이다.  - P203

스코틀랜드 화가이자 정원 디자이너인 이언 해밀턴 핀레o lan Hamilton Finlay가 이렇게 쓴 바 있다. "어떤 정원들은 후퇴로 묘사되지만, 실제로는 공격이다." 오웰의 정원에는 생각들과이상들이 씨 뿌려졌고, 계급과 인종과 국적과 그에 내포된 전제들로 울타리가 둘러졌으며, 허다한 공격들이 여전히 뒷마당을 서성이고 있다. 물론 정원들은 탈정치적인 공간으로 옹호되기도 했다. 유명한 예로 볼테르의 철학적 풍자소설 「캉디드』는 주인공이세상을 주유하다 돌아와 "자기 정원이나 가꾸기"로 하는 데서 끝난다. 이런 결말은 흔히 세상과 정치로부터의 물러남으로 해석되어왔다. 캉디드의 경우 그것은 최종적인 결심으로 보이는 것이,
그는 그저 싸움터로 돌아가기 위한 재충전을 하려는 것이 아니기때문이다. - P204

볼테르의 젊은 시절에 유럽 귀족의 정원은 기하학적으로배열된 자연과 원추형을 위시해 일정한 형태로 다듬어진 나무들로 가득했다. 말하자면 데카르트적 질서에 복종하는 자연이었다. 베르사유가 그 최고의 이상을 구현했으니, 그 정원은 제왕적인 권력의 중심으로부터 웅대한 대운하가 뻗어나가는 형태를 취하고 있었다. 궁전에서 보면 대운하는 거의 지평선까지 뻗어 있는듯이 보였고, 길고 곧은 대로들은 고전적인 석상들과 나무들로장식되었다. 정복된 자연이 거기 있었다. 본래 단정치 못한, 일관 - P204

성을 결여한 영역인 자연이 왕의 절대적 권위에 길들여져 엄격한질서를 부여받은 것이었다. 그것은 자연스럽지 않은, 바로 그 점을 내세우는 자연이었다.
18세기 후반 영국 귀족계급의 정원은 자연스러움의 미학을 추구했다. 세심한 설계와 조경 작업을 통해, 자연의 미학을 구가하면서도 감히 그것을 가다듬고 개선하려는 생각으로 공들여만들어낸 자연스러움이었다. 영국식 정원을 만드는 데는 베르사유 정원을 만드는 데 못지않은 토목공사와 옥외 배관 작업이 필요했겠지만, 그 목표는 구불구불한 개울과 구릉진 지형으로 그런것들을 만들어낸 인위적인 손길을 감추려는 것이었다. 자연이 최고이되, 영국식 취향과 돈이 그 주인이었다. 그렇다 하더라도 이새로운 정원 양식은 미학적 혁명이었다. 정원들이 점점 더 손질하지 않은 자연처럼 보인다면, 자연 자체가 점점 더 심미적 즐거움을 주는 장소로 감상될 수 있을 것이었다. 조경된 정원은 엘리트계급을 위한 것이었지만, 자연은 훨씬 더 많은 사람에게 개방된것이었다. - P205

인클로저를 옹호하는 논리는 효율성과 생산성이었을 터이다. 1804년 하트퍼드셔의 농업에 관한 아서 영Arthur Young의 보고서에는 웰링턴에서 몇 마일 떨어진 곳에 사는 한 지주에 대한이런 기록이 남아 있다. "로이스턴에 사는 포스터 씨는 농사일을아주 잘 아는 신사인데, 공동경작지의 불편을 개탄하면서 전반적 인클로저의 필요를 강경히 주장했다. 그는 교구의 양 떼 관리인으로부터 허락받지 않고는 무 씨앗을 뿌릴 수 없으며, 작물을먹지 않는 대가로 양치기에게 에이커당 1실링 6펜스를 내야 한다는 것이었다." "다시 말해 공동체가 결정권을 갖고 있었던 것이다.
인클로저는 그런 공동체의 힘을 약화함으로써 농촌 노동자들을가난하게 만들었고 지주들을 부유하게 만들었다. - P207

이런 사정에도 불구하고, 오웰의 시대에는 자연 세계가 흔히 사회적이고 정치적인 것의 바깥에 있는 듯이 상상되었다. 독일극작가 베르톨트 브레히트Bertolt Brecht가 1939년의 시 한 편에서이렇게 쓴 것은 유명하다.


아, 이 무슨 시대란 말인가
나무들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거의 범죄로구나
그토록 많은 불의에 대한 침묵을 담고 있으니


프랑스 사진작가 앙리 카르티에-브레송 Henri Cartier-Bresson도 1930년대에 그 비슷한 말을 했다. "세계가 결딴나고 있는데, 애덤스Ansel Adams나 웨스턴 같은 사람들은 바위 사진이나찍고 있다!"" 그는 분명 나무나 바위 같은 것들이 정치적 영역 바깥에 있다고, 인간의 영향력에 상처 입을 수 없다고 상상했던 것이 분명하다.  - P209

나는 라틴계 벽화가 후아나 알리시아 Juana Alicia로부터 그점을 배웠다. "그녀는 샌프란시스코 베이에어리어에서 전설적인인물로, 내가 일찍이 맡았던 최초의 강의를 수강했다. 당시 나는20대였고, 강의는 샌프란시스코 아트 인스티튜트에서 열렸던 풍경 및 재현에 관한 대학원 세미나였다. 후아나는 마침 나와 가까운 곳에 살고 있었고 가끔 집에 오는 길에 자기 차에 태워주곤 했는데, 강의가 중반에 접어들었을 무렵, 자신이 어린아이였을 때또 젊은 여성이었을 때 캘리포니아에서 농장 노동자였다는 사실을 말해주었다. 임신 중에 상추 따는 일을 할 때는 농약을 온몸에살포당했으며, 내가 보여주는 모든 농촌 풍경이 그때 일을 생각나게 한다고 말이다. 그것은 가장 친절하면서도 가장 효과적인 비판이었다.
- P212

낮아지기를 원하기 위해서는 안전하게 높다고 느낄 수 있어야 하며, 시골을 원하려면 도회적이어야 하고, 거칠기를 원하려면 부드러워야 하고, 이런 식의 진정성을 추구하기 위해서는 인위성에 대해 불안해야 한다는 것 말이다. 전원을 휴식의 장소로 본다면, 당신은 아마도 농장 노동자가아닐 것이다.
19세기와 20세기에 이르면, 자연의 완상은 대개 세련과 미덕의 표지였다. 물론 스탈린도자기 별장들에 만들어놓은 정원과온실을 사랑했고, 나치는 인종적 순수성과 자연보호, 특히 숲의보호라는 관념을 융합시켰다. 그리고 미국의 초기 환경보호 단체들 중에도 우생학적 관점을 지지한 곳이 적지 않았다. 자연을 사랑하는 덕스러운 방식들이 있겠지만, 자연에 대한 사랑이 미덕을보장해주지는 않는다. - P213

심지어 오웰의 시대에도, 브레히트의 시나 카르티에-브레송의 코멘트가 시사하듯, 풍경은 정치 바깥의 공간처럼, 정치로부터의 도피처처럼 간주되었다. 하지만 지난 몇십 년 사이에 마치담장에 균열이라도 생긴 듯이 정치가 밀려들어왔다. 아니, 그보다는 학자들이 그림과 소설과 정원과 공원과 영지 바깥에 있었던것들에 대해, 그 바깥에 있던 것들이 안에 있던 것들에 항시 어떻게 의미를 부여해왔던가에 대해 말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로런스웨슐러의 보스니아의 페르메이르」와는 거의 정반대되는 논지이다. 웨슐러의 글에서는 페르메이르 그림의 평온함이 전범재판소의 판사에게 가해자들과 희생자들의 잔혹한 이야기를 들어야 했던 오랜 나날을 견뎌낼 힘을 주었다고 한다. 그 경우에 그림이라는 피난처는 잔인함과 불의와 고통이라는 현실과 싸우러 나갈 힘을 얻게 해준다. 반면 이 경우에는 정원과 컨트리하우스가 불편한 현실을, 그리고 자신들도 그에 공모하고 있음을 직면하지 않으려는 사람들의 도피처가 된다. 정원은 후퇴[피난처]인 동시에 공격이다. - P222

오웰은 남의 땅과 노동을 착취하여 살아가는 제국의 하수인 및 식민자들의 후손이었다. 그의 모친 아이더 메이블 리무쟁블레어는 버마에서 자랐는데, 그녀의 프랑스인 아버지는 티크 상인이자 조선업자였다. 해안 인근의 티크 숲, 섬의 사탕수수밭, 대륙 중앙의 양귀비밭, 그런 것이 전 세계로 펼쳐져나간 노동과 착취의 풍경이었지만, 멀리 떨어져서 그 혜택을 보는 이들에게는 그런 풍경이 좀처럼 보이지 않았다. 나는 조상의 죄가 후대로 세습된다고는 믿지 않지만, 유산은 분명히 세습된다. 오웰은 제국주의 사업과 국내의 계급 사회에서 혜택을 누렸던, 그리고 때로 실제 권력을 지녔던 사람들의 후손이었다. 아마도 내게 가장 인상적이었던 점은 그의 선조들을 여러 대까지 추적하기가 얼마나 쉬웠던가 하는 것이다. 추적하기 쉽다는 것 자체가 그들이 기록에 남아 있다는 뜻이고, 그들의 존재가 공식적으로 인정되었다는 뜻이다. 그들은 그림 속에 있다. - P229

장미는 완벽하다. 뿌리도 없고 계절도 없고 시간도 없이,
연보라색이나 연록색이나 황갈색의 들판을 떠다니며 영원히 피어난다. 꽃잎들은 딱 그렇게 한 꽃잎의 그림자가 그 아래 꽃잎 위에 선명하고, 가시도 흙도 민달팽이도 진딧물도 없는, 죽음도 부패도 없는 영역에 고고하게 떠받쳐져 있다. 중력에도 매이지 않으며, 천상의 현상처럼 무리 지어 피어나 장미 성운, 장미 은하, 장미 초신성을 이루며, 때로는 리본을 두른 다발로, 때로는 더 잗다란 꽃가지들 사이로 솟아난다. - P231

장미는 장미 이상의 것을 약속했다. 살아 있는 장미보다더 탐낼 만했던 것이, 그 장미들은 시들지 않을 터였다. 꽃의 아름다움은 그 덧없음에도 있는 것이지만 말이다. 내 욕망을 불러일으킨 꽃의 이미지는 그것만이 아니었다. 젊은 시절에 나는 중국산 골동품 피아노 덮개가 갖고 싶었는데, 거기에는 모란꽃이꽃잎 하나하나 완벽한 비단 자수로 수놓아져 있었다. 또 우타가와 히로시게 유명한 매화꽃, 미국의 오래된 씨앗 봉지에그려진 그림들, 시골풍 옷이나 퀼트로 재활용된 한때 밀가루 포대였던 소박한 꽃무늬 무명천에도 나는 매혹되었다. 하지만1984년에 나타난 장미들은 분명한 연상들로 퍼져나갔다. - P232

영국ㅡ오늘날의 현실적인 갈등이 아니라 지난날 제국의잔광에 잠겨 있는 신화적인 장소―은 캘리포니아에서 자란 나를 포함한 우리 모두가 너무나 많은 교육을 받은 장소이자 무수한 다른 곳의 조각들로 이어 붙여진 장소인 것만 같았다. 영국은마치 주목해야 할, 모두가 아는 어떤 사람, 무엇이 중요하고 일이어떻게 되어가야 하는지 결정하는 사람과도 같았다. 내가 더 나이가 들고 계급이니 제국주의니 내 외조부모가 떠나온 영국 식민지 시절의 아일랜드 등에 대해 더 많은 것을 알게 되었을 때도, 나는 그 영국 취향을 완전히 벗어버리지는 못했다. 다만 그것을 상쇄할 일말의 반영 감정을 갖게 되었을 뿐이다.  - P240

꽃을사랑한다고 할 때 사람들은 무엇을 사랑하는 것일까?
꽃은 물론 에로틱하고 로맨틱하고 예식적이고 영적인 것을 의미하기 위해 쓰인다. 제단의 꽃다발이라든가, 승리한 경주마의 목에 둘러주는 화환 등도 그 좋은 예이다. 하지만 꽃은 다른 무엇인가를 위해, 인간적인 상황들을 기리기 위해 사용되기 이전에그 자체로서도 눈길을 끈다. 우리는 꽃이 아름답다고 말하지만,우리가 꽃의 아름다움이라는 말로 의미하는 것은 단순한 외관이상의 것이다. 생화가 조화보다 훨씬 더 아름다운 것도 그 때문이다(아마도 꽃 그림들은 실제 꽃을 환기하며, 그래서 조화가 갖지 못하는그 모든 감동을 지니는 것 같다). 그 아름다움은 부분적으로는 그것이 나타내고 연상시키는 것, 즉 생명과 성장의 구현이 뒤따를결실의 예고에 있다. 꽃이란 상호 연결과 재생이라는 식물적 시스템의 연결망 위의 한 교점이다. - P255

윈스턴 스미스는 한 고물상에서 발견한 문진을 아름다운것이라 부르며, 그것은 이야기 속에서 의미심장한 물건이 된다.
우리는 이런 말을 듣게 된다. "당원이 자기 소유로 갖기에는 기묘한, 어쩌면 위험할 수도 있는 물건이었다. 무엇이든 오래된 것, 말하자면 아름다운 것은 항상 어딘가 수상쩍은 것이었다."" 수상쩍다는 것은 그것이 당에서 근절하고자 하는 의식과 향락의 표지이기 때문이다. 오웰이 사자와 일각수」에서 취미를 전체주의가 굶겨 죽이려 하는 사적인 활동으로 정의하면서 칭송했던 경험처럼 말이다. 이 에세이는 다음과 같은 유명한 문장으로 시작한다. "내가 이 글을 쓰는 지금, 고도로 문명화된 인간들이 나를 죽이려고 내 머리 위를 날아다니고 있다." 마치 탐조등과도 같이, 이런 맥락은 그의 관심사들에 극적인 빛을 비추며 그림자를 드리운다. 그 맥락은 그의 작품 속에 항상 존재한다. 문진은 사상경찰이라는 맥락 속에 존재하며, 취미와 아름다움에 관한 문제들은독일군 공습이라는 맥락 속에 존재한다. - P257

아름다움이라는 말은 지나치게 품이 넉넉한 말 중 하나로, 가장자리가 닳아지고, 너무 친숙한 나머지 무시되며, 순전히시각적인 아름다움을 뜻하는 데 사용될 때가 많다. 하지만 스퍼드 영어 사전』이 열거하는 아름다움의 종류에는 시각적이지않은 것도 많다. 가령 "사람이나 사물이 아주 마음에 들거나 만족스러운 성질, 도덕적이거나 지적인 탁월성", 감탄할 만한 사람, 어떤 사물의 인상적인 또는 예외적으로 훌륭한 본보기 같은 것들이다. - P258

"보거나 들은 것을 바꾸고자 하는 아무 바람 없이 그저 보거나 듣는 것." 아마도 오웰의 가사 일기는 그런 기록일 것이다. 노동과 재배와 사소한 사건들의 짤막한 기술에는 사물이 있는 그대로와 다르게 어떠했으면 하는 바람이 별로 들어 있지 않다. 서사-허구, 신화, 동화, 저널리즘ㅡ는 무엇인가가 잘못되어갈 때일어나는 일에 대한 것이기 쉽다. 가령 정치가가 부패하고, 강이오염되고, 노동자가 착취당하며, 사랑하는 이는 사라졌다는 식으로 말이다. 가장 안정적인 아동용 책들도 나름대로의 상실 위기를 담고 있으며, 없는 연결을 찾고자 한다. "바꾸고자 하는 아무 바람 없이 존재하는 것이란 정태적이다. 그것은 이야기가 시작되기 전, 은혜로부터 실추되기 전, 또는 재결합, 시정, 그 밖에다른 형태의 복구가 이루어진 다음이다. 그러나 잘못된 것에 대한 모든 이야기에는 만일 사태가 제대로 굴러갔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하는 것이 적어도 암암리에는, 가치이자 목표로서 들어 있다. 서사는 종종 옳은 것, 아름다운 것, 선한 것을 옹호하고 복구하려는 욕망에 내몰린다. - P259

그러므로 아름다움이란 바꾸기를 원치 않는 무엇인 동시에 가고자 하는 곳, 나침반 또는 북극성일 수있다. 레너드는 그 상호 교환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알다시피 우리는 아름다움을 느끼기에는 다들 너무 바빴어요. 아름다움을알아보기에는 너무 성이 나 있었지요. 아름다움을 즐기기에는 너무 상심해 있었어요. 나는 이 구름 사진들을 보면서 스스로 머저리처럼 느껴졌어요. 하지만 데이비드가 옳았어요. 이 모든 싸움을 거쳐야 하는 건 싸우고 싶어서가 아니라 모두 함께 어딘가에도달하고 싶기 때문이지요. 둘러앉아서 구름에 대해 생각할 수있는, 그런 세상을 창조하는 데 도움이 되고 싶은 거예요. 그건 우리가 인간으로서 갖는 권리가 되어야 해요. 만일 우리가 둘러앉아 구름에 대해 생각하지 못한 채 너무 오랜 시간을 보내게 된다면 그렇게 하는 법도 그래야 하는 이유도 잊어버릴지 모른다. 길에서 너무나 헤매느라 더는 목적지에 도착할 수 없을지도 모르는것이다. - P260

오웰이 장미 이야기나 한다고 비난하는 글을 쓴 여성은바뀔 필요가 없는 것에 주의를 기울이는 것은 게으름이 낭비요 허튼수작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불의를 비롯해 생각하면할수록 바꾸고 싶어지는 일들에 초점을 맞추는 이들은 우리가굳이 바꾸고 싶지 않은 것을 바라보는 일을 의무 태만이라든가바꾸고 싶은 것에 대한 인식을 기피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나는 그것이 파괴에 맞서는 에너지의 재충전이라는 식으로 이야기해왔지만, 스캐리는 그것이 바람직한 것과 선한 것의기본 틀에 대한 연구로서도 중요하리라고 시사한다. 사회적 변화나 정치적 참여의 목표는 무엇인가? 어떤 선이 이미 존재하며 존재해왔는가를 연구하는 것도 그 작업의 일부가 될 수 있지 않을까? 모든 것이 오염되거나 부패해 있으므로 언제까지나 상처에서 출발한다는 음울하고 널리 퍼져 있는 입장과, 선이란 일종의씨앗처럼 존재하며 그것을 좀 더 힘써 돌보고 널리 퍼뜨려야 한다는 입장 사이에는 물론 유의미한 차이가 있을 것이다. - P261

형식의 우아함은 언제든 그것이 전달하는 의미에 의해 변질될 수있다. "우리가 담장에 요구하는 것은 무엇보다도 서 있으라는 것이다"라고 오웰은 화가 살바도르 달리 Salvador Dalí에 대한 비평문에 썼다. 2"만일 제대로 서 있다면 좋은 담장이고, 그것이 어떤 목적을 수행하느냐 하는 문제는 별도의 것이다. 하지만 세상에서가장 좋은 담장이라 해도 집단수용소를 둘러싸고 있다면 허물어버리는 것이 마땅하다." 형식은 기능과 분리되지 않는다. 아름다움 또는 추악함이란 그저 외관보다는 그 의미, 영향, 함의 등에 있는 것이다. - P277

1989년 6월 5일 베이징 톈안먼 광장에서 길게 줄지은 탱크들이 봉기한 학생들을 짓밟지 못하도록 단신으로 막아선 사람은 흰 셔츠에 검은 바지를 입고 손에 시장 봉지를 축 처지게 들고 있는 홀쭉하고 이름 없는 누군가였다. 탱크들을 향해 그는 한쪽 팔을 뻣뻣하고 어색하게 휘두르며맨앞탱크의 전방에 남으려고 종종걸음 쳤다. 하지만 훨씬 더 우월한 권력과의 이 위태로운 대결은 이른바 아름다운 몸짓이라는 것이 어떤 것인지 보여준다. 그는 분명 어떤 이상을, 이상주의자들의 그룹을 위해 모든 것을 걸 용의가 있어 보였다. 전일성integrity이란 도덕적 일관성과 헌신을 의미하지만, 동시에 온전하고 부서지지 않은, 다치지 않은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그것은 많은 아름다운 것들에서 발견되는특질이다. 내가 싫어했던 그 책은 신의를 저버리고 동지애를 깨뜨리는 것이었다. - P277

장미의 경우에는 모순들이 특히 두드러진다. 장미는 사랑과 로맨스의 표징이요 애정이나 찬사를 전달하는 선물로 간주되며, 흔히 가벼움을, 즐거움과 기쁨을, 꽃밭이 전달하는 것 같은 여유와 풍요로움을 전달한다. "꽃으로 말해요"라는 것은 꽃가게에서 널리 사용하는 문구이며, 꽃은 다정한 것들을 말하리라 여겨진다. 버지니아 울프의 「댈러웨이 부인」에서 댈러웨이 씨는 아내에게 "사랑하오"라는 입 밖에 내기 어려운 말을 하는 수단으로붉은 장미와 흰 장미로 된 커다란 꽃다발을 산다. - P283

우리는 서로에게 꽃을 선물할 때 그저 열두 송이 장미를건네는 것이 아니라 꽃과 함께 연상되는 것들을 함께 건넨다. 꽃의 역사적 의미와 현재의 실태가 공공연한 갈등 관계에 있다면,
우리는 서로 무엇을 건네는 것일까? 장미 공장의 한 노동자가 네이트에게 말한 적이 있다. "오늘날은 꽃이 다정함이 아니라 눈물로 키워져요. 우리 생산품은 전 세계에서 아름다운 느낌을 표현하는 데 쓰이지만, 우리는 아주 형편없는 대접을 받지요." 나는슈퍼마켓과 꽃가게에서 파는 장미 절화를 생산하는 여건들이 불편한 진실이라는 것을 어떻게 알게 되었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그런 여건들이 이 장미를 만들었으니, 장미는 겉으로 보이는 것과노동 및 산업의 생산품으로서 의미하는 것 사이의 긴장이 유독강한 아이템이다. - P2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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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디슨은 인생을 어떻게 표현했을까? 개 두 마리가 뒷다리로 서서 춤을 추며 다가왔다. 램"은인생을 어떻게 묘사했을까? 왜냐하면 니컬러스 경과 그의 친구들의 글을 읽으면서(그녀는 주위를 돌아보며 간간이 읽었는데 왠지 어떤 인상을 받게 되었는데 ㅡ 이 부분에서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 서성였다ㅡ 그들이 우리로 하여금 느끼게 하는 것은 그것은 대단히 불편한 느낌이었는데 - 결코, 절대로, 자신이 생각하는 바를 말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그녀는 서펀타인 연못의 둑 위에 섰다. 청동색 물이 흘렀다. 거미처럼 가느다란 보트들이 한쪽 둑에서 다른 쪽으로스치듯 지나갔다). 그들은 사람이 늘 언제나 다른 사람들처럼 써야 한다고 느끼게 만들었다고 그녀는 생각을 이어 갔다(그녀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그녀는 발가락으로 작은 보트를 밀면서 생각했다. 정말이지, 난 그렇게 할 수 없어. - P294

자, 실은 사람이 어떤 마음 상태(간호사들이 쓰는 표현으로)에 있을 때는 - 올랜도의 눈에는 아직도 눈물이 고여 있었다 그 사람이 바라보는 사물이 그 자체가 아니라 다른것이 되는데, 그것은 더 크고 더 중요하면서도 동일한 것으로 남는다. 이런 마음상태에서 서펀타인 연못을 바라보면그 물결은 곧 대서양의 파도만큼 커지고, 그 장난감 보트는원양 정기선과 분간할 수 없어진다. 그래서 올랜도는 작은보트를 자기 남편의 쌍돛대 범선으로 보았고, 자신이 발가락으로 만들어 낸 물결을 혼곳의 산더미 같은 파도로 보았다.
잔물결을 타고 오르는 장난감 보트를 지켜보면서 그녀는 유리벽을 오르고 또 오르는 본스롭의 배를 보았다. 배는 점점더 높이 올라갔고, 1천 개의 죽음을 품은 흰 물마루가 배위에 아치처럼 드리워졌다.  - P295

장난감 보트, 장난감 보트, 장난감 보트.」 그녀는 이렇게계속 되뇜으로써, 중요한 것은 존 던에 대한 닉 그린의 논문도 아니고, 여덟 시간 노동 법안이나 계약 조항이나 공장 법령도 아니라고 스스로에게 강력히 주장했다. 중요한 것은 쓸모없고, 갑작스럽고, 맹렬한 거야. 생명을 바치게 하는 것. 붉은색과 푸른색과 자주색, 정신, 화사한 빛. 저 히아신스(그녀는 아름다운 히아신스 화단을 지나고 있었다) 같은 것. 오염이나 종속, 인류의 오점이나 동족애에서 벗어난 것. 무모하고 우스꽝스러운 나의 히아신스, 즉 내 남편 본스롭 같은 것.
그게 바로 서펀타인 연못의 장난감 보트 황홀함이야. 중요한 건 황홀함이야. 이렇게 그녀는 소리내서 말하며 스태너프 게이트에서 마차를 기다렸다.  - P296

그러나 그 봄날 오후에는 교통이 혼잡해서, 그녀가 계속거기에 서서 황홀해, 황홀해, 혹은 서펀타인 연못의 장난감보트를 되뇌고 있을 때, 영국의 부유한 권력자들은 모자와외투를 단정하게 차려입고 사두마차와 2인승 사륜마차, 4인승 사륜 포장마차에 조각처럼 앉아 있었다. 마치 황금 강이응결되어, 굳어버린 황금 덩어리들이 파크 레인을 가로막고있는 것 같았다. 숙녀들은 손가락에 명함 통을 끼고 있었고,
신사들은 무릎 사이에 금손잡이가 달린 지팡이를 넘어지지않게 세워 놓았다. 거기 서서 바라보던 그녀는 경탄과 경외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다만 한가지 생각이 떠올라 그녀의 마음을 어지럽혔다. 그것은 커다란 코끼리나 믿을 수없이 거대한 고래를 본 사람들이라면 으레 떠올릴 만한 생각으로, 긴장감이나 변화, 활동을 틀림없이 혐오할 저 거대한짐승들이 어떻게 자기 종족 번식시킬까 하는 의문이었다. - P297

다음으로(1백 주년을 기념하는 정찬 초대장이 여섯 개 와 있었다) 문학이 이 모든 정찬을 먹은 후 매우 뚱뚱해졌음이 틀림없다는 것이었다. 다음으로(그녀는 이것이 저것에 미치는 영향에 관한 강연이라든가 고전주의의 부활, 낭만주의의 존속,
그리고 이와 비슷한 매력적인 제목이 붙은 수십 개의 강연에초대되었다)이 모든 강연을 들었으므로 문학은 매우 무미건조해졌으리라는 결론이었다. 그다음으로는(여기서 그녀는어떤 귀족 부인이 베푼환영만찬회에 참석했다) 문학이 이런 모피 목도리를 둘렀으므로 매우 점잔을 빼게 되었으리라는 것이었다. 다음으로(여기서 그녀는 첼시에 있는 칼라일의방음 장치가 된 방을 방문했다) 천재들이 이렇게 스스로를애지중지할 필요가 있었으니 문학은 매우 까다로워졌음이분명하다는 것이었다. 이렇게 해서 마침내 그녀는 최종 결론에 이르렀는데, 그것이 가장 중요한 결론이긴 하지만 우리가한도로 삼은 여섯 줄을 이미 많이 초과했으므로 생략해야겠다. - P300

그렇다면 행복이여, 오라. 그러나 행복이 가버린 후, 시골여관 응접실의 얼굴을 흐릿하게 만드는 얼룩진 거울처럼 선명한 이미지를 부풀리는 그런 꿈은 오지 마라. 우리가 자고있는 한밤중에 전체를 쪼개서 우리를 갈기갈기 찢고, 우리에게 상처를 주고, 우리를 분열시킬 꿈들은 오지 마라. 그런 꿈이 아니라 깊은 잠에, 모든 형체가 마모되어 무한히 부드러운 먼지나 헤아릴 수 없이 어둑한 강물이 되도록, 깊은 잠에빠지라. 거기서 미라처럼, 나방처럼 몸을 포개고 장막에 뒤덮인 채 잠의 밑바닥 모래 위에 엎드리자.
그러나 기다려라! 기다려라! 지금 우리는 눈먼 자들의 나라에 가지 않을 것이다. 안구의 가장 깊은 곳에서 그어진 성냥처럼 푸른빛을 내며 그 새는 날아가고, 타오르고, 잠의 봉인을 뜯어 버린다. 물총새. 그래서 생명의 붉고 진한 물줄기가 조수처럼 역류하며 거품을 일으키고, 방울방울 떨어지며흘러든다.  - P304

「아주 건강한 사내애예요, 마님.」 산파인 밴팅 부인이 올랜도의 첫아이를 품에안겨주며 말했다. 다시 말해서, 올랜도는 3월 20일 목요일 새벽 3시에 무사히 아들을 낳은 것이다.


올랜도는 또다시 창가에 섰다. 하지만 독자들은 용기를 내시기를 똑같은 일이 오늘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오늘은결코 똑같은 날이 아니기 때문이다. 아니, 우리가 지금 올랜도처럼 창밖을 내다본다면 파크 레인의 풍경이 꽤 달라졌음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아니, 지금 올랜도가 서 있듯이 10분남짓 서 있더라도 사륜 포장마차를 단 한 대도 보지 못할 것이다. 「저것 좀 봐!」 며칠 후 그녀는 말 한 마리도 달려 있지않고 터무니없이 짧아진 마차가 저절로 굴러가기 시작했을때 소리쳤다. 참, 나, 말이 없는 마차라니! 이렇게 말했을 때누군가에게 불려갔지만, 그녀는 잠시 후 돌아와서 창밖을다시 내다보았다. 요즘은 날씨가 요상했다.  - P305

이 시대는 명확하고 뚜렷한 분위기가 감돌았는데, 그 분위기는 소란스럽고 필사적인 면모를 제외하면 18세기를 연상시켰다- 이런 생각을 하는 동안, 그녀가 수백 년간 걸어온 듯한 기나긴 터널이 넓어졌다. 빛이 쏟아져 들어왔다. 마치 피아노 조율사가 그녀의 등에 열쇠를 꽂아 신경을 팽팽하게 당겨 놓은 듯, 그녀의 생각이 신기하게도 조여지고 긴장했다.
동시에 청각이 예리해졌다. 방 안에서 나는 온갖 속삭임과탁탁거리며 타는 장작 소리도 들을 수 있었다. 벽난로 위의시계가 째깍거리는 소리는 망치 소리처럼 울렸다. 이렇게 몇초간 빛이 점점 더 밝고 환해지면서 모든 사물이 점점 더 선명하게 보였고, 시계는 점점 더 크게 째깍거렸다. 마침내 그녀의 귓속에서 폭발이 일어났다. 올랜도는 머리를 난폭하게얻어맞은 듯 벌떡 일어섰다. 열 번이나 난타당했다. 실은 아침 10시였다. 10월 11일이었다. 1928년이었다. 바로 현재 순간이었다. - P307

이렇게 그녀는 마셜 앤드 스넬그로브 백화점 1층에 서서 여기저기를 둘러보고 이 냄새, 저냄새 들이마시며 몇 초를 낭비했다. 그러고는 문이 열려 있다는 그럴듯한 이유가 있었기에 엘리베이터 안으로 들어갔고, 부드럽게 위로 올라갔다. 엘리베이터가 올라가는 동안, 이제는 삶의 구조 자체가 마술이라고 그녀는 생각했다. 18세기에는 모든 일을 어떻게 하면 되는지 알고 있었다. 그런데 여기서 나는 공중으로 솟아오르고있다. 미국에서 말하는 누군가의 목소리도 들을 수 있다. 사람들이 날아가는 것을 본다. 그런데 그런 일들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호기심을 느낄 엄두도 내지 못한다. 그래서 마술에대한 내 믿음이 되살아난다. 이제 엘리베이터가 약간 흔들리면서 2층에서 멈췄다. 그녀는 익숙지 않은 독특한 냄새를 풍기는 산들바람에 색색의 천들이 무수히 나부끼는 환영을 보았다. 엘리베이터가 멈추고 문이 활짝 열릴 때마다 그 세계의다른 부분이 펼쳐졌고, 거기 딸린 냄새가 풍겨 왔다.  - P309

지금 눈물이 가득 고인 채 페르시아의 산을 떠올리면서 자동차에 타려는 그녀를 바라보는 독자는 올랜도가 현재 순간에서 너무 멀리 벗어났다는 느낌을 받을 것이다. 실로 삶의기술을 가장 성공적으로 다루는 사람들, 대개 무명의 존재인이들은, 보통 사람의 몸에서 일제히 울리는 60~70개의 서로다른 시간대를 어떻게든 동시에 이끌어 나간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다. 그래서 11시 종이 울릴 때, 나머지 시간대에서도일제히 울린다. 현재는 과거에서 난폭하게 찢겨 나오지도 않고 과거 속에서 완전히 잊히지도 않는다. 우리는 그들이 자기들의 묘비에 새겨진 대로 자신들에게 주어진 68년이나72년을 꼬박 살았다고 말해도 무방하다. 나머지 사람들 중일부는 우리들 사이를 걷고 있지만 죽은 사람이라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 P314

스스로 서른여섯 살이라고 말하지만 수백 살이 된 사람들도 있다. 인간의 삶이 진실로 얼마나 오래 지속되는가는, 영국 인명 사전에서 뭐라고 말하든 간에, 늘 논쟁거리이다. 그것은, 시간을 재는 것은,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어떤 예술이든 예술과 접촉하는 것만큼시간을 재빨리 교란시키는 것도 없다. 아마도 시를 사랑한탓에 올랜도는 구입 목록을 분실하고 정어리와 목욕 소금과구두도 없이 집으로 향하게 되었을 것이다. 이제 그녀가 차문에 손을 댔을 때, 현재가 다시 그녀의 머리를 강타했다. 열한 번이나 난폭한 공격을 받았다. - P315

그 무엇도 전체를 볼 수 없고 처음부터 끝까지 다 읽을 수도 없다. 시작이 두 친구가 거리를 가로질러 서로 만나러 가는 것처럼 - 보인 것은 끝이 결코 보이지 않는다. 20분이 지난 후 몸과 마음은 마대에서 찢겨 떨어져 나간 종잇조각 같았고, 재빨리 운전해서 런던을벗어나는 과정은 사실 무의식이나 죽음이 나서기도 전에 먼저 인간의 심신을 잘게 토막 내는 것과 같아서, 올랜도가 이순간 어떤 의미에서 존재한다고 말할 수 있는지는 도저히 알수 없는 문제였다. 실은 그녀를 완전히 해체된 인간으로 간주하고 포기해야 했을 테지만, 이때 마침내 녹색 칸막이가오른쪽에 쳐지고 거기에 작은 종잇조각들이 더 천천히 떨어졌고, 다음으로 왼쪽에 또 다른 칸막이가 쳐지면서 이제 공중에서 제각기 돌아가는 조각들만 볼 수 있었다.  - P316

인간의 영혼에는 이 시간대나 다른 시간대에 머물렀던 사람들이 - 우리에게 신의 가호가 있기를! - 수없이 존재하지 않을까? 누군가는 2,052명이 있다고 말한다. 그러므로 누군가 혼자 있을 때 <올랜도?>(그것이 그의 이름이라면)라고 부른다면 그것은 세상에 흔하디흔한 일이다. 그부름의 의미는 이런 것이다. 어서 오라, 어서 오라! 나는 이특정한 자아가 싫증 나서 죽을 지경이니까. 나는 다른 자아를 원해. 그런 연유로 우리는 친구들에게서 놀라운 변화를보게 된다. 그러나 그 자아의 출항이 전적으로 순탄한 일은아니다. 올랜도가 시골에 갔으므로 아마도 다른 자아가 필요했기에) 말했듯이 누군가 <올랜도?>라고 부르더라도, 그녀가 원하는 그 올랜도는 그래도 오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웨이터의 손에 쌓인 접시처럼 차곡차곡 쌓여 우리를 형성하는 그 자아들은 다른 곳에 애착과 공감을 느끼고 있고, 여러분이 그 자아들을 뭐라 부르든 간에 (이 자아들 중 많은 것들은 이름이 없다) 자기들 나름의 소소한 기질과 권리를 갖고있다.  - P317

그녀는 빵과 햄을 한 조각 잘라서 붙이고는 아무 생각 없이 큰 걸음으로 방을 활보하며 먹기 시작했고, 그러면서 사교계의 관습을 단번에 떨쳐버렸다. 대여섯 번 방안을 돌고 나서는 스페인산 적포도주를 한 잔 단숨에 들이켰고, 한 잔 더 따른 뒤 손에들고 긴 복도를 활보하면서 열두개의 응접실을 지났고, 그렇게 저택을 찬찬히 돌아보기 시작했다. 사슴 사냥개와 스패니얼이 그녀를 따라나섰다.
이것은 모두 일상적인 일과에 속하는 일이었다. 그녀가 돌아와서 집을 돌아보지 않는다면, 귀가한 뒤에 할머니에게 키스하지 않는 것과 같았다. 그녀는 자기가 들어설 때 방들이환해진다고, 자신이 없는 동안 잠을 자고 있었던 듯이 뒤척이며 눈을 뜬다고 상상했다. 또한 자신이 그 방들을 수백 번,
수천 번 보았지만 단 두 번도 똑같아 보인 적이 없었다고 생각했다. 그 방들의 기나긴 생애에 무수한 분위기가 축적되어있고, 여름과 겨울, 화창한 날씨와 칙칙한 날씨, 그녀 자신의운세와 그곳을 찾은 사람들의 성격에 따라 변하는 것 같았다. - P325

2백 명의 하인들이 침대를 데울 다리미나 큰 벽난로에 넣을 커다란 장작을 들고 복도를 뛰어다니며 소동을 벌이는 일도 결코 없을 것이다. 바의 작업장에서 에일 맥주를 제조하고, 양초를 만들고, 안장을 만들고, 돌의 모양을 다듬는 일도 결코 없을 것이다. 쇠망치와 나무망치 소리가 요즘은 들리지 않았다. 의자들과 침대들은 텅 비었다. 은과 금으로 만든 큰 술잔들은 유리 찬장안에 갇혀 있었다. 침묵이 거대한 날개를 퍼덕이며 텅 빈 저택을 휘저었다.
그래서 그녀는 회랑 끝에 있는 엘리자베스 여왕의 딱딱한안락의자에 앉았다. 개들이 웅크리며 주위를 둘러쌌다. 회랑은 멀리 뻗어 있었고, 그 끝에는 빛이 거의 사라져 어둠했다.
그것은 마치 과거 속으로 깊이 파들어간 굴 같았다.  - P328

양치식물이 무성한 오솔길은 굽이지고 구불구불하게 돌아가면서 더욱 높아졌고, 어느덧 꼭대기에 서 있는 참나무에이르렀다. 그 나무는 그녀가 1588년경에 처음 본 이래로 더장대하고 견고해졌으며 옹이도 많아졌지만, 아직도 한창때였다. 날카롭고 뾰족한 작은 나뭇잎들이 가지에 촘촘히 매달려 여전히 흔들리고 있었다. 그녀는 벌렁 드러누웠고, 등뼈에서 나온 갈비뼈처럼 이리저리 뻗어 나간 그 나무의 뿌리를자기 몸 밑에서 느꼈다. 자신이 세계의 등에 타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 좋았다. 자신을 뭔가 단단한 것에 밀착시키는 것이 좋았다. 그녀가 벌렁 누웠을 때, 가죽 재킷의 가슴팍에서붉은 천으로 제본된 작고 네모난 책이 떨어져 나왔다. 그녀의 시 참나무」였다.  - P334

그 아름답고 반짝이는 이름이 하늘에서 강청색 깃털처럼떨어졌다. 그녀는 깊은 허공을 아름답게 가르며 천천히 떨어지는 화살처럼 방향을 돌려 휘어지며 떨어지는 그것을 바라보았다. 그는 늘 그랬듯이 바람이 잠든 순간에 올 것이다. 파도가 잔물결을 찰랑이고, 얼룩덜룩한 나뭇잎이 가을 숲에서그녀의 발 위로 천천히 떨어질 때, 표범이 잠잠해질 때, 달이물 위에 떠 있고, 하늘과 바다 사이에 아무것도 움직이지 않을 때 그때 그가 왔다.
이제 사방이 고요했다. 자정이 가까웠다. 삼림 지대 위로달이 서서히 떠올랐다. 달빛이 땅 위에 유령의 성을 세웠다.
저기 솟은 거대한 저택의 창문은 모두 은빛에 휘감겨 있었다.
벽이나 단단한 물질은 전혀 없었다. 모든 것이 환영이었다.
모든 것이 고요했다. 죽은 여왕의 방문을 준비하려는 듯 집전체에 불이 밝혀져 있었다.  - P338

그녀는 근심스럽게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이제 하늘은 구름에 덮여 어둠침침했다. 바람이 그녀의 귀에서포효했다. 그러나 으르렁거리는 바람 소리 속에서 점점 더가까이 다가오는 비행기의 웅웅 소리가 들렸다.
「여기예요! ! 여기!」그녀는 진주알 목걸이가 거대한 달모양의 거미 알처럼 빛나도록 (이제 밝게 빛나는 달을 향해가슴을 드러냈다. 비행기가 구름을 뚫고 나와 그녀의 머리위에 와서 멈추었다. 그녀의 주위를 맴돌았다. 어둠 속에서그녀의 진주가 인성(光性)의 불꽃처럼 타올랐다.
이제 멋진 선장이 되었고 건강하고 혈색 좋고 민첩한 셀머다인이 땅에 뛰어내렸을 때, 그의 머리 위로 들새 한 마리가날아올랐다.
「기러기야!」 올랜도가 외쳤다. 「기러기...….
그리고 자정을 알리는 열두 번째 종소리가 울렸다. 1928년10월 11일, 목요일, 자정의 열두 번째 종소리였다. - P339

울프는 이 소설을 한때 연인이었고 그 후에도 가까운 벗으로 지낸 비타 색빌웨스트Vita Sackville-West(1892~1962)에게 헌정했고, 그녀를 모델로 삼아 올랜도를 그려 냈다. 울프 생전에는 울프보다 더 유명한 시인이자 소설가였던 귀족출신의 비타 색빌웨스트의 가족사나 친족 관계, 또 수백 년간 그 가문의 장원이었던 놀Knole은 이 소설의 소재로 곳곳에 녹아들어 있다. 비타가 여자이기 때문에 장원을 상속받지못해서 느꼈던 쓰라린 상실감을 달래 주기 위해 울프는 올랜도가 여자가 되고 나서도 장원을 상속받게 만들었다는 평도 있다. 비타 색빌웨스트의 아들이 이 작품을 <문학사에서가장 길고 가장 매혹적인 연애편지>라고 평한 것은 과장된면이 있지만, 울프가 이 작품을 구상하고 써나갈 때 비타와의 관계에서 얻은 기쁨이나 격려, 영감에 고무되었음은 분명하다고 짐작할 수 있다. - P346

더 나아가 올랜도는 남성성과 여성성이 확연히 분리된 것이 아니라 사람의 내면에 뒤섞여 있다고 말하기도 한다. <어느 인간에게서나 한성에서 다른 성으로의 전환이 일어나고,
남성의 모습이나 여성의 모습을 유지시켜 주는 것은 오로지의상>이며, 인간은 누구나 이렇게 일어나는 복잡하고 혼란스러운 문제를 경험해 왔다는 것이다. 결국 성정체성이란 확고부동한 것이 아니라 유동적이고, 하루에도 수십 번씩 변화할 수 있으며, 어느 시점에 어느 성이 우세한가에 따라 남성적이라든가 여성적이라고 판단할 수 있는 것이다. 이는 성정체성이 실은 사회적으로 규정된 개념이며, 인간의 내면은그런 인위적 규정을 넘어서는 복잡다단한 것임을 시사한다고 하겠다. - P349

울프는 자신의 유명한 에세이 현대소설Modern Fiction」에서 마음은 수많은 인상들, 사소하거나 환상적이거나 덧없거나 강철처럼 예리하게 각인된 인상을 받아들인다. 사방에서 인상들이 들어오고, 무수한 원자들이 소나기처럼 끊임없이 쏟아지면서 월요일이나 화요일의 삶을 형성한다고 썼다.
사실 그녀가 탐구하는 마음이나 의식은 현대에 들어와서도그 속성을 명확히 알지 못하는 영역에 속한다. 최근에 미국프린스턴대의 로버트 잔 교수는 <마음은 아주 미세한 입자로 되어 있으며, 이것이 물리적 입자와 동일하므로 입자로존재할 때는 일정한 공간에 한정되어 있지만 파동으로 그 성질이 변하면 시공간을 초월하여 이동할 수 있다>고 말한 바있다. 이 주장을 빌려 말하자면, 이 소설에서 울프는 소나기처럼 마음에 쏟아지는 수많은 인상들을 기록하는 것을 넘어서서 마음의 입자들이 시공간을 초월한 상태를 그려 낸 것이아닐까, 라고 생각할 수 있다. - P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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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일린 오쇼네시는 6월 9일, 화요일에 아일린 블레어가 되었다. 그녀의 새 집에서 그늘진 오솔길을 따라 타르로 검게 칠한 매너 농장과 작은 연못을 지나 조금 걸어 올라가면 나오는 교회에서 조촐한 예식이 거행되었다. 이 작은 교회는 12세기부터조금씩 지어진 것으로, 지역에서 나는 어두운 빛깔의 수석을제각각의 모양대로 시멘트를 사용해 이어 붙인 특이한 외관의 건물이었다. 그 돌멩이들은 마치 책의 한 쪽에 늘어놓은 상형 문자들처럼 보인다. 희게 칠한 내부는 밝고 휑하다. 목재 서까래에는오래전에 새겨놓은 천사들이 있고, 바닥은 흘림체로 비문을 새긴 18세기의 검은 묘석들로 포장되어 있다. - P62

오랜 전통, 산업화 이전 영국 시골 마을의 전통을 중시하는 전통주의자였다"라고 시인 스티븐 스펜더Stephen Spender는 말했다. "그는 이웃들이 서로 잘 아는 작은 공동체를 신봉했고, 그래서 무정그러므로 그가부주의자들과 상당한 공감을 지니고 있었다.
공산주의자가 아니었던 근본적인 이유는 공산주의자들이 공산주의자가 아니었고 오웰은 공산주의자였기 때문이라고 말할 수있을 것이다."윌리엄 모리스William Morris와 마찬가지로, 그도천국은 우리 앞에, 도시화되고 산업화된 미래에 있다기보다 우리의 등 뒤에, 구식의 삶에 유기적인 세계에 있다고 믿었다.
교회에서 결혼식을 올리기로 한 것도 아마 그런 예스러운방식이 좋아서였을 것이다. 물론 마을이나 가게를 떠날 필요가없는 장소를 선택한 것일 수도 있지만 말이다. 가게는 거의 연중무휴로 열려 있었다. 피로연은 신혼집 근처의 펍에서 열렸다.  - P63

아일린의 집에서는 그녀의 사랑하는 오빠 로런스 프레더릭 오쇼네시가 ‘에릭‘이라는 이름으로 불렸으므로, 그녀는 에릭 블레어와 결혼하여 블레어라는 이름을쓰게 된 후 남편을 ‘조지‘라고 불렀다. ‘조지 오웰‘이라는 이름은 갑자기 필명으로사용되기 시작했지만, 차츰 편지에서나 친구들 사이에서도 나타나게 되었고, 결국 그는 개인적으로 아는 사람들 중 다수에게 ‘조지 오웰‘로 알려지게 되었다. 그러니까 조지 오웰의 첫 아내는 ‘아일린 오웰‘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아일린 블레어‘였다. 그녀의 묘비에도 그의 묘비에도 ‘블레어‘라는 이름이 새겨졌고, 1944년그들이 입양한 아들은 ‘리처드 블레어‘가 되었다. 나는 아일린 오쇼네시 블레어를 ‘아일린‘이라고 불러야 하는 것이 유감이지만, 너무나 많은 기혼 여성의 경우가 그렇듯, 그녀가 평생 지녔던 자신만의 이름은 그것뿐이다. 반면 오웰이 죽기 두어 달 전에 결혼했던 소니아 브라우넬은 오웰이라는 성을 따랐다. 마치 그 사람보다는 전설과 결혼하기나 하는 것처럼. [원주] - P63

헨리 데이비드 소로 같은 작가라면 콩을 심고 은유와 잠언을 거두었을 법하지만, 이런 일지에서 오웰의 콩은 엄격하게 콩으로 자랐다. 즉 그는 그런 관찰이나 기록을 상상력의 도약판이나 공공연한 문학적 기초 공사로 삼지 않았다는 말이다. 그것은사적인 성격이 없는 일지로, 발표하려고 쓴 것도 아니고 그의 감정적·창조적·사회적·신체적 삶의 기록도 아니다. 단지 그의 노동과 작업 계획을 담고 있을 뿐이다. 때로는 무엇을 사고 무슨 일을해야겠다는 식의 목록도 있는데, 너무나 단순하고 가까운 미래의 계획이라 다른 많은 일들이 실현 불가능할 때에도 충분히 실현 가능한 것들이었다. 그가 왜 이런 자세한 기록을 남겼는지 이유는 분명치 않지만, 그는 그 일지에 워낙 열심이었으므로 그가부친의 임종을 지키기 위해 월링턴을 떠나야 했을 때는 아일린이기록을 계속했고,  - P66

1940년 그는 작가들을 대상으로 한 어느 설문 조사에서자신의 생활을 이렇게 묘사했다. "글 쓰는 본업 외에 내가 가장좋아하는 일은 정원 가꾸기, 특히 텃밭 가꾸기이다."‘그것이 그에게 얼마나 중요했던가는 1933년 처음 시민농장을 분양받았을 때부터 그 자신이 죽어가던 무렵 생명을 불어넣으려 애썼던마지막 정원에 이르기까지, 그가 그 일에 쏟은 정성과 노동을 보면 알 수 있다. 그 척도는 덜 계량적이지만 더 의미심장한 것, 즉그가 그 일에서 발견했던 기쁨과 의미에 있다. 그는 정원을 원했고, 정원에서 일하기를 원했다. 자기가 먹을 것과 좀 더 무형의 것들을 생산하기 원했다. 그는 꽃과 과일나무와 채소와 닭과 염소를 원했고, 새와 하늘과 계절의 변화를 지켜보기를 원했다. 그는1946년 「나는 왜 쓰는가」에서 밝혔던 소신대로 이 땅을 사랑했던것이 분명하다. 그는 수선화와 고슴도치와 민달팽이에 대해 궁금해했고, 동식물과 날씨를 관찰하는 데 많은 시간을 보냈다. - P67

작가로서, 당신은 세상으로부터 물러나 연을 끊지만, 그것은 좀 더 폭넓게 세상과 연결되기 위해, 즉 이 관조적인 상태에서 짜 맞추어진말들을 다른 곳에서 읽을 사람들과 연결되기 위해서이다. 글쓰기에서 생생한 것은 그것이 오감을 어떻게 자극하느냐가 아니라 상상력에 어떻게 호소하느냐이다. 전쟁터와 탄생과 진창길을, 또는냄새를 오웰은 그의 책들에 묘사된 악취로 유명해지게 된다묘사할 수는 있지만, 그래 봤자 그것은 진짜 피도, 진흙도, 삶은양배추도 아닌, 백지 위의 검은 글자들일 뿐이다. - P68

정원은 글쓰기의 육체 없는 불확실성과는 정반대인 것을제공한다. 그것은 모든 감각에 생생하게 와닿는 육체노동의 공간, 최상의 그리고 가장 문자 그대로의 방식으로 더러워질 공간이며, 즉각적이고 이론의 여지 없는 효과를 볼 기회이다. 땅을 판다면 하루의 끝에는 얼마나 팠는가가 닭들이 낳은 달걀의 개수만큼이나 분명하다. 문학 평론가 쿠니오신 Kunio Shin은 『1984』의 주인공 윈스턴 스미스에 대해 이렇게 썼다. "경험의 견실성뿐 아니라 외적 현실의 존재 자체가 당에 의해 암묵적으로 부인되는 세계에서, 윈스턴이 ‘돌은 단단하고 물은 축축하며 떠받치지 않은 물체는 지구 중심을 향해 떨어진다‘ 같은 뻔한 진리를 붙들려는 시도는 그 자체로 정치적 저항의 필사적인 몸짓이다."『1984』의 또 다른 곳에서 오웰은 이렇게 선언한다. "당은 당신에게 눈과 귀의 자명성을 거부하라고 명했소." - P68

이는물질적,감각적 세계에서의 직접적 관찰과 일차적 만남을 저항 행위로, 또는적어도 저항할 줄 아는 자아를 강화하는 행위로 만든다. 이런 직접적 경험으로 자주 시간을 보내는 것은 사태를 명확하게 하는방법이요, 단어의 소용돌이와 그것이 휘저어 올릴 수 있는 혼돈으로부터 벗어나는 한 방법이다. 거짓과 환상의 시대에 정원은 성장 과정과 시간의 흐름의 영역에, 물리학·기상학·수력학·생물학의 법칙의 영역에, 그리고 감각의 영역에 뿌리박는 한 방식이다. - P69

미국 시인이자 열성적인 정원사인 로스 게이Ross Gay는 한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내 인생에서 정원 일만큼 내게 느리게 사는 법을 훈련시킨 일은 없을 겁니다. 정원 일은 내게 아주 자세히 들여다보게 했어요. 내 정원이 주는 기쁨의 일부는 도대체어떤 일도 시작하기 전에 그 안에 빠져든다는 것입니다. 1년 중 몇차례는 뒷마당에 나가 채 30피트(9미터)도 가기 전에 20분씩이나걸음을 멈춥니다. 뜰보리수에 손질이 필요하기 때문이지요. 그러다 각다귀가 눈에 뜨이고, 라벤더와 그 바로 곁의 백리향 덤불에서 잡초를 뽑아주어야 한다는 걸 알게 되지요. 난 내 정원이 생산성의 논리를 떠나 아주 생산적이라는 게 좋아요. 거기서는 먹을수 있고 영양가 높은 것도 많이 나지만, 꼭 계량하려는 생각이 들지 않는 방식으로도 생산적이랍니다."3" 글쓰기의 대부분은 생각하기이지 자판 두드리기가 아니며, 생각하기는 때로 무엇인가 다른 것을 하고 있을 때 가장 잘 이루어진다.  - P69

생계를 위해 글을 쓸 때 돌아오는 것(영향력, 수입, 인정 같은것)은 뜬구름처럼 확실치 않을 수 있지만, 정원에 씨를 뿌린 것은날씨나 병충해로 망하지 않는 한 반드시 거두기 마련이다. 식용작물을 키우는 것은 단어 속에서 헤매다가 감각으로 또 자아 감각으로 돌아오는 한 방법이 시금석이 될 수 있다. 또 그것은 예측 불가능성으로 가득 찬 창조적 과정과의 만남이 될 수도 있으니, 그 과정에는 날씨나 다른 생물들, 미처 예상하지 못했던 온갖힘들이 끼어들기 마련이다. 정원 일은 종이(또는 컴퓨터 스크린) 위에서 일어나는 일과 달리 인간이 아닌 것들과의 협동 작업이다.
원고는 우박에 두들겨 맞을 일이 거의 없지만 말이다(오웰의 원고하나가 독일군의 폭탄에 산산조각이 나기는 했다). 1984」의 뉴스피크Newspeak(신어)가 뿌리 뽑으려 하는 은유적이고 이미지가 풍부하여 상상력을 자극하는 언어는 자연스럽고 전원적인 농경 세계에뿌리박고 있다.  - P70

그가 회상하는 한 사건, 아마도 웰링턴에서 일어났음직한 사건은 또 다른 전원적 비유를 쓰자면, 전원적인 것이 그에게서 얼마나 풍부한 열매를 맺었던가를 보여준다. "나는 한 어린 소년, 아마 열 살쯤 되었을 소년이 커다란 수레 말을 몰고 좁다란 길을 가면서 말이 돌아보려 할 때마다 채찍질하는 것을 보았다. 나는 문득 그런 동물들이 자신들의 힘을 알게 되기만 한다면 우리는 그들에게 아무 힘도 행사하지 못할 것이며 인간이 동물을 착취하는 방식은 부자가 프롤레타리아를 착취하는 방식과 같다는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해서 동물농장이 태어나게 된 것이다. 그는 전쟁 동안 런던에서 그것을 썼지만, 다양한 가축들의 기질을 익히 아는 것이 큰 도움이 되었다.
정원은 삶과 죽음의 불가분성이 무수한 방식으로 드러나는 장소이기도 하다. 1939년 10월 말에 오웰은 정원 일기에 된서리 때문에 "달리아들은 대번에 시커메졌고, 익으라고 두었던 호박들도 다 망가졌을 것"이라고 썼다." 그날 그는 뿌리 덮기를 하려고 낙엽을 쓸어 모으고 퇴비 더미에서 작업을 했는데, "H 영감이 전에 쌓아둔 뗏장이 잘 썩어서 훌륭한 부식토가 되었다.  - P71

오웰의 무정부주의자 친구 조지 우드콕George Woodcock은 이렇게 썼다. "그의 자기 재생 능력은 그가 평범한 것, 하루하루 살아가는 평범한 경험, 그리고 특히 자연과의 접촉에서 누리는 기쁨에 있었다. 그는 마치 안타이오스처럼 땅에서 양식을 취했다.43 행복과 기쁨의 차이는 중요하다. 행복은 마치 끝없는 햇살처럼 지속적인 상태로 상상되는 데 비해, 기쁨은 번개처럼 번득이는 것이다. 행복은 난관이나 불화를 피하는 질서 잡힌 삶을요구하는 듯한 데 비해, 기쁨은 어디서든 불현듯 나타날 수 있다.
칼라 버그먼earla bergman과닉 몽고메리Nick Montgomery는 함께 쓴 - P72

책 기쁜 분투Joyful Militancy에서 이렇게 구분 선을 그었다. "기쁨은 종속(즉굴종)시키는 힘들과의 싸움을 통해 사람들을 새롭게 만든다. 기쁨은 탈종속적 과정이요, 삶을 강렬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것은 생명이 확산되는 과정이다. 행복이 의존을 유도하는 마취제로 사용되는 반면, 기쁨은 사람들이 그 의존성에서 탈피하는방식으로 새로운 것을 행하고 느끼는 능력의 성장이다." - P73

오웰은 자신이 글로써 반대한 것들, 즉 권위주의와 전체주의 거짓말과 프로파간다(그리고 대충 넘어가기로 인한 언어와 정치의 타락, 정치적 자유의 근간인 프라이버시의 잠식 같은 주제들로 널리 알려졌다. 그런 힘들로부터, 그가 긍정적으로 추구한 것들이 무엇이었는지 알 수 있다. 평등과 민주주의, 언어의 명확성과 의도의 정직성, 사생활과 그 모든 즐거움과 기쁨, 정치적 자유와 어느 정도 그 기반이 되는, 감독과 침범을 받지 않는 프라이버시, 그리고 즉각적 경험의 즐거움 같은 것들 말이다. 하지만 그런긍정적인 것들을 굳이 반대되는 것들로부터 유추할 필요는 없다.
그는 긍정적인 것들에 대해서도 많이 썼다. 그런 에세이들이 그가 쓴 글에서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며, 그렇지 않은 다른 작품들곳곳에서도 그는 삶을 살아갈 만하게 하는 것들에 대해 썼다. 그의 가장 암울한 글에도 아름다움의 순간들이 있다. 그의 가장 서정적인 에세이들도 실제적인 문제들과 드잡이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 P73

그는 이 광업 및 제조업 지역에서 사람뿐 아니라 장소 자체도 면밀히 관찰했다. 석탄이 어디에나 있었다. 석탄은 일이었고먼지였고 연료였고 스모그였고 위험이자 질병이자 죽음이었으며거의 문자 그대로 모든 것의 밑에 깔린, 어디에나 있는 풍부한 재료였다. 그는 점차 그것에 다가갔다. 처음에 석탄은 풍경으로 눈에 들어왔다. "슬래그] 더미와 굴뚝들, 고철 무더기, 더러운 운하늘, 그리고 나막신 자국이 이리저리 나 있는 재투성이 진창길이라는 끔찍한 풍경. 모든 건물이 검댕으로 시커겠고, 눈조차도 검었으며, 검은 연기가 온 도시를 뒤덮고 있었다. 위건은 "식물이라고는 추방되어버린 세계"처럼 보였다. "연기와 셰일, 얼음,진창, 재, 더러운 물밖에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았다." 그는 갱도가 주저앉은 자리에 고인 물웅덩이들이 "로엄버 빛깔" 얼음에 덮인 것을 묘사했다. 또 다른 곳에는 슬래그 더미에 불이 붙어서 "어둠 속에서 보면 붉은 개울 같은 불길이 이리저리 구불대며흐르고, 유황에서 나오는 불길한 푸른 불길이 천천히 움직이는것도 보인다. 이 불빛은 항상 꺼질 듯하다가 또다시 피어오르곤한다" - P80

식물들이 세계를 만들었으니, 이는 바다에서 유래한 단세포 유기체가 지구 대기에 최초로 유의미한 양의 산소를 배출한 때로부터 계속되어온 일이다. 석탄림의 시대에 식물들은 대기에서 단열 효과를 갖는 이산화탄소를 너무나 많이 끌어냈기 때문에 결국 그 시대는 기후 급변climate crash에, 즉 빙하기에 봉착하고 말았다. 과학자들은 탄소 급변carbon crash이 ‘눈덩이 지구Snowball Earth‘, 즉 극에서 극까지 얼어붙은 행성을 만들어낼 뻔했다고 말한다. 2017년 포츠담 연구소의 기후과학자 게오르크 퓰너Georg Feulner는 추위 그 자체가 대기에서 탄소를 끌어내고 지구를 얼어붙게 하는 식물 생장의 주기를 늦추거나 정지시켰다는 이론을 제출했다. 그러면서 그는 우리가 그 과정을 역전시키고 있다고 지적했다. 석탄기의 6000만 년 동안 식물들이 하늘에서 빨아들인 이산화탄소를 지난 200년 동안 가공할 인간 기술이 내뿜음으로써 식물들이 그토록 오랜 세월 동안 해온 것을 무효화했다고 생각해보라. - P87

어슐러 K. 르 귄Ursula K. Le Guin의 「오멜라스를 떠나는 사람들 The Ones Who Walk Away from Omelas」이라는 단편소설이 있다.
한 도시국가에 대한 이야기인데, 이 번성하는 근사한 도시는 계몽되고 진보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그 모든 것의 기반은 한 아이를 학대하는 데 있다. 아이는 어두운 지하실에 홀로 감금된 채 보살핌을 받지 못하고 영양실조에 걸린 상태다. 그 아이의 비참은말하자면 형이상학적 목적에 기여하는 셈인데, 오웰의 시대로부터 그리 멀지 않은 과거에도 영국에는 실제로 그런 아이들이 많았고, 그들의 비참은 실제적인 목적에 기여했다.  - P91

세라 구더라는 여덟 살짜리 트래퍼는 검사관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불빛 없이 트랩을 지켜야 하기 때문에 무서워요.
잘 수도 없어요. 가끔 불빛이 있을 때는 노래도 하지만, 어둠 속에서는 안 해요. 겁이 나서 못해요."" 엥겔스도 그의 1845년 영국노동계급의 상황이라는 보고서에서 광부들의 실태에 대해 쓰면서, 그런 아이들 중 일부는 땅 위 세상으로 돌아가면 탈진한 나머지 집에 가는 도중에 잠들거나 집에 가자마자 곯아떨어져 부모들이 뭘 먹일 수도 없다는 사실을 언급했다. 그는 아이들이 일 때문에 흔히 발육 부진이고 기형이 되는 예까지 있다고, 탄광에서는누구나 자주 치명적인 폐 질환을 앓기 십상이라는 점도 지적했다. 석탄은 연소되어 여러 종류의 독소를 남기지만, 광부들이나주위 사람들이 들이마시는 탄진도 그에 못지않게 해롭다. - P93

오웰이 글에서 즐겁게 추억한 가정용 석탄난로 못지않게,그가 1930년대와 1940년대에 런던에 머무는 동안 들이마신 스모그도 그의 폐 질환을 악화시켜 이른 죽음을 가져오는 데 기여했음에 틀림없다.
화석연료의 채취는 너무나 수익성이 좋은 사업이었으므로, 전 세계적으로 전쟁을 촉발했고 외교 정책에 영향을 미쳤다.
동시에 그것은 너무나 해로운 일이기도 했으므로, 지구상 모든대륙의 광대한 땅을 파괴하고 물을 오염시켰으니, 남극 말고는그 피해를 면한 곳이 없다. 그것은 우리의 하늘을 바꿔놓았고, 이어 바다와 땅을 바꿔놓았다. 그것은 지구와 대기에 대해 벌인 전쟁이었다. 하지만 1936년을 돌아볼 때 가장 놀라운 것은 그 시기만 해도 생태학적으로 보면 얼마나 오래전이었던가 하는 점이다. - P100

초토화한 제2차 세계대전의 처참한 폐허 가운데서도, 한 걸음 물러나 인간의 삶과 그 구조에서 그 배경으로 시선을 돌리면 인간이외의 세계는 대체로, 또는 적어도 비교적 건재했음을 볼 수 있다. 대양들은 아직 산화되지도 온난화되지도 않았고, 극지방의얼음, 그린란드의 빙상**, 그리고 빙하와 기후 자체도 안정적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기후는 상당히 예측 가능했고, 온대 및 열대숲의 훨씬 더 많은 부분이 손상되지 않은 상태로 탄소격리 작용을 수행하고 있었다. 현재 위험에 처하거나 멸종한 상당수의 종이 번창하고 있었고, 화학물질과 플라스틱의 여러 종류가 아직사용되기 전이었다.
물론 그 당시에도 여러 가지 손상이 있기는 했다. 태즈메이니아의 에뮤, 아프리카의 블루벅(파란영양), 북대서양의 큰바다오리, 남태평양의 수수께끼찌르레기 등 다양한 장소의 다양한종이 멸종된 터였다. 지구는 전혀 새것이 아니었다.  - P101

1936년의 사람들이 갖고 있던 확고한 자신감은 마치 그들의 의식 내에 아직 발굴되지 않은 지층과도 같았다. 세상은 충분히 크고 우리가 무슨 해를 가하든 너끈히 회복하리라는 확신 말이다. 손상은 기껏해야 국지적인 것이며, 우리가 무슨 짓을 하든그 적은 부분이 전체에 영향을 미치지는 못하리라는 항상 더 많은 것이 있으리라는 확신 말이다. 인간들은 마치 자기가 무슨 짓을 하든 어머니는 절대로 죽지 않으리라 믿는 어린아이처럼 행동했다. 하지만 아이는 도구와 기계와 화학적 발명을 갖게 되자 인간의 한계 이상으로 거대하고 강력해졌으며, 시스템 자체를 훼손하고 변모시키는 타격을 가하게 되었다. 그것은 전쟁이었고, 우리가 정신이 들었을 때는 식물들이 이미 해놓은 일과 화해하는 것이 과업이 되었다. 그것은 때로는 삼림복구의 형태로 나타나 기존의 숲과 초지와 토양을 보호하는 일이 되었고, 또 다른 한편으로는 식물들의 편을 들어, 오래 묻혀 있던 탄소를 하늘로 뿜어 올리는 프로젝트에서 물러나는 일이 되었다. - P103

장미를 심고 정원을 가꾸는 행위는 수많은 것을 의미할수 있지만, 지금으로서는 그것이 식물 세계 및 식물이 하는 일과의 협동을 의미하도록 내버려두자. 얼마간 더 탄소를 격리하고 산소를 생산하는 유기체들을 심고 돌보는 것, 정착하여 농사를 짓고 싶다는 욕망, 장미와 유실수가 장차 여러 해 동안 꽃 피우고 유실수들은 수십 년 후, 어쩌면 한 세기 후까지도 열매 맺을 미래에투자하려는 욕망을 의미하도록 말이다. 정원을 가꾼다는 것은 이미 산산이 부서진 것을 다시금 온전하게 만드는 것이다. 생산자인 동시에 소비자가 되는 관계, 땅의 풍요로움을 직접 거두며 무엇인가가 어떻게 하여 존재하게 되는가를 온전히 이해하게 되는관계를 만드는 것이다. 그 일은 규모는 크지 않을 수도 있지만, 설령 고작 도시의 고층건물 창턱에 제라늄을 가꾸는 것이라 해도, - P104

의미에 있어서는 중요할 수 있다.
나무 심기를 대부분의 인간이 할 수 있는 가장 오래가는행위로 제안하면서, 그는 미래에 대해, 어떻게 하면 미래에 기여할지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다. 물론 1936년에는 아무도 탄소격리에 대해 생각하지 않았지만, 그런 의식 없이도 식물의 편에 서는편을 택할 수는 있었다. 브레이 본당신부를 위한 한마디」라는 글에 담긴 그 제안에서, 장미를 심은 남자는 그것이 또한 미래의 편에서는 일임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 P105

꽃의 아름다움은 시각적인 데 그치지 않는다. 그것은 형이상학적인 동시에 촉각과 후각에 속하는 아름다움이다. 꽃은향기를 맡을 수 있고 만져볼 수 있고 때로는 맛볼 수도 있다. 어떤꽃들은 열매나 씨앗, 그 밖에도 인간들이 귀하게 여기고 심지어의존하기까지 하는 선물을 가져다주며, 따라서 꽃은 약속이기도하다. 어느 한 단계에 있는 꽃을 보면, 이전에 지나간, 그리고 앞으로 다가올 단계들을 알 수 있다. 장미의 아름다움은 꽃봉오리에서부터 시들어 죽을 때까지 모든 단계가 매혹적이라는 데 있는지도 모른다. 장미는 그 천천히 시드는 모양조차도 우아하다. 만개한 동백은 장미 비슷한 모양이 되지만, 단단한 꽃봉오리에서 대번에 활짝 핀 꽃이 되며, 줄기에서 뚝 떨어져 땅바닥에서 갈색으로 지저분하게 썩어간다. 다른 많은 꽃들이 그런 식으로 시들어간다. "시든 백합은 잡초보다도 냄새가 고약하다."  - P112

토드는 《아메리칸 매거진》에 실은 글에서 장차 여성 참정권 운동과 노동 운동, 그리고 1970년대 및 이후의 급진파들을 위한 후렴구가 될 이 문구에 대한 생각을 개진했다. 여성의 투표는"집과 안식처와 안전이라는 인생의 빵과, 음악과 교육과 자연과책이라는 인생의 장미를 이 나라에서 태어나는 모든 아이가 누리게 될 때가 오도록 도울 것이다. 여성이 발언권을 갖는 정부에서는 그러할 것이다. ‘모두를 위한 빵과 장미‘가 있게 되는 날에는감옥도, 교수대도, 공장에서 일하는 아이들도, 빵을 벌기 위해 거리로 내몰리는 소녀들도 없을 것이다."
- P120

1911년에 시인 제임스 오펜하임 James Oppenheim은 토드가 기고했던 같은 잡지에 빵과 장미Bread and Roses]라는 제목의 시를 실었다(그래서 종종 그가 그 문구를 만들어낸 것으로 알려지기도 했다). 그 일부는 이렇다.


아름다운 대낮에 우리가 행진하고 행진하는 동안
무수히 많은 어두컴컴한 부엌들과 잿빛 공장 다락들이
갑자기 나타난 태양이 비추는 빛을 받는다.
"빵과 장미, 빵과 장미"라는 우리
노랫소리가 들리기 때문에
......
우리가 행진하고 행진하는 동안,
무수히 많은 죽은 여자들이
빵을 달라는 그네들의 해묵은 노래를
우리 노래를 통해 외친다.
고되게 일하는 그네들의 영혼도 예술과
사랑과 아름다움을 알았으니ㅡ
그렇다, 우리는 빵을 위해 싸운다―그러나
우리는 장미를 위해서도 싸운다. 


빵은 육신의 양식이지만, 장미는 좀 더 섬세한 무엇의 - P121

단순히 마음만이 아니라, 상상력과 정신과 감각과 정체성 같은것들의 양식이다. "빵과 장미라니 멋진 구호이지만, 거기에는생존과 신체적 복지 이상의 것이 필요하고 또 권리로서 요구된다는 맹렬한 주장이 들어 있다. 그것은 또한 인간 존재가 필요로 하는 모든 것이 계량 가능한 것, 눈에 보이고 만져지는 재화 및 여건으로 환원될 수 있다는 생각에 대한 강력한 반발도 담고 있다. 이런 선언들에서 장미란, 인간이라는 존재가 복잡하고 욕망들은환원 불가능하며 우리를 지탱하는 것은 종종 훨씬 더 섬세하고손에 잡히지 않는 무엇이라는 생각을 나타낸다. - P122

1912년 중반에는 뉴욕의 전설적인 노동 운동가 로즈 슈나이더먼 Rose Schneiderman이 그 문구를 채택해 여러 차례 사용했다(그래서 그 문구는 그녀에게서 나온 것으로도 여겨졌다). 그녀는 오하이오주 클리블랜드에서 이렇게 연설했다. "노동하는 여성이 원하는것은 단순한 생존이 아닌 삶에 대한 권리이다. 부유한 여성이 삶과 태양과 음악과 예술에 대한 권리를 가진 것과 마찬가지로, 삶 - P123

에 대한 권리 말이다. 당신이 가진 것이라면 가장 가난한 노동자라 해도 가질 권리가 있는 것이다. 노동자에게는 빵이 필요하지만, 장미도 필요하다. 도와달라, 특권층 여성들이여, 노동자 여성도 투쟁을 위한 한표를 얻을 수 있도록."
20세기 초 노동 운동을 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빵과 장미‘는 상투적인 문구가 되었다. 1912년 매사추세츠주 로렌스에서 일어난 공장 노동자들의 파업이 한 파업자가 든 팻말에 그 문구가 들어 있었던 것이 시를 촉발하는 계기가 되었다는 주장 때문에 ‘빵과 장미 파업‘이라 불리게 된 것은 훨씬 나중의 일이지만말이다. 오펜하임의 시가 발표된 것은 이 파업이 시작되기 전이기는 해도 헬렌 토드가 같은 잡지에 농장 여성들과 나눈 대화에 대해 쓴 다음이었고, 토드는 자신의 여러 연설에서 그 문구를 여러다른 형태로 말했던 터였다. - P124

장미는 즐거움과 여가와 자기결정권, 내적인 삶, 물량화할수 없는 것 등을 나타내지만, 장미를 위한 투쟁에는 때로 노동자를 압살하려는 고용주나 상사뿐 아니라 그런 것들의 필요성을 폄하하는 다른 좌익 분파들과의 싸움도 포함된다. 좌익에는 즐거움의 추구를 비판하는 사람들이 있기 마련이다. 다른 사람들이 고통당하는데, 그리고 어딘가에는 고통당하는 사람들이 항상 있기마련인데 자신의 즐거움을 추구한다는 것은 비정하고 비윤리적이라는 것이다. 이런 청교도적인 주장을 하는 이들은 자신의 엄격함이나 기쁨 없는 삶의 태도로 민중에게 감명을 줄 수는 있을지언정 그들의 해방에 실제적으로 기여하지는 못할 것이다. - P127

이 모든 것의 저변에는 즐거움과 아름다움을 반혁명적이고 부르주아적이요 퇴폐적이고 향락적이라 보며 그런 것들에 대한 욕망은 근절하고 경멸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실용주의적 이데올로기가 깔려 있다. 자칭혁명가들은 오직 물량화할 수 있는 것만이 중요하다고 주장하는 경향이 있다. 인간은 현실적으로 중요한 것보다 마땅히 중요하게 여겨야 할 것으로 만족해야 하고, 현실적으로 어떠한 것보다 마땅히 어떠해야 할 것에 맞추어가야 한다고 말이다. 하지만 ‘빵과 장미‘에서 장미란 단순히 더 많은 것이아니라 좀 더 손에 잡히지 않는 섬세한 무엇을, 로즈 슈나이더먼의 표현을 빌리자면 "그저 생존이 아니라 삶에 대한 권리를 요구하는 것이었다. 우리의 삶을 살 만하게 만들어주는 것은 어느 정도 측량 불가, 예측 불가하며 사람마다 다르다는 주장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장미는 또한 주관성과 자유와 자기결정권을 뜻한다. - P128

때로 그는 ‘빵과 장미‘에서 장미가 의미하는바, 손에 잡히지 않는 일상적인 즐거움과 지금 여기서 누릴 수 있는 기쁨을 경하하기도 했다. 1946년 봄에 쓴 에세이 두꺼비에 대한 몇 가지단상 Some Thoughts on the Common Toad」에서 그는 동면에서 깨어나비쩍 마르고 굶주린 모습으로 나타나는 두꺼비들을 봄의 전령으로 환영하며 그 금빛 눈알의 아름다움을, 봄과 즐거움 그 자체를찬양한다. 그는 이 글을 《트리뷴》에 실었는데, 《트리뷴》이 사회주의 잡지이다 보니 그의 글은 다분히 방어적인 어조를 띠고 있다. 그것은 오웰답게도, 두꺼비와 봄에 대한 글인 동시에 사회주의 정통 노선에 이의를 제기하며 원칙과 가치를 논하는 글이기도하다. - P129

하지만 그는 블런트가 말한 의미에서의 프로파간다, 즉 예술이나 예술가가 정당이나 국가의 의제에 기여해야 한다는 생각에는 반대했다. 또 다른 곳에서 그는 이렇게 쓰기도 했다.
"정말로 비정치적인 문학 같은 것은 없다."
페르메이르의 그림은 왜 고요함이 필요한지, 운하나 푸른빛깔이나 네덜란드 부르주아지의 가정생활의 가치를 바라보는것이, 또는 그저 그림을 자세히 들여다보는 것이 왜 필요한지를말해준다. 자세히 들여다보는 일 그 자체가 우리를 지탱해주는일종의 양식이 되어주는 것이다. 「나는 왜 쓰는가」에서 오웰은 이렇게 말했다. "내가 글을 쓰는 것은 폭로하고 싶은 어떤 거짓이나주목을 끌고 싶은 어떤 사실이 있기 때문이며, 따라서 나의 우선적인 관심사는 남들이 들어주는 것이다. 하지만 거기에 미학적인경험이 없다면, 나는 책은 물론이고 잡지의 기사를 쓰는 일도 할수 없을 것이다. 다시 말해, 의제는 빵이라 하더라도, 장미가 곁들여지게 마련인 것이다. - P134

그곳에 모인 물길들이 흘러나가 개울과 강이 되어 작물들과사람들을 먹인다. 또 그런 곳에는 농경 시스템의 일부인 야생동물들-작물의 수분을 가능케 하는 곤충들, 땅다람쥐의 개체수를 제한하는 코요테 같은―이 살기도 한다. 그것들은 정신의 황야요 미개간지로, 경작된 땅이 보존할 수 없는 다양성과 복잡성과 재생 체계를, 더 큰 전체를 보존한다. 오웰은 문자 그대로의 전원 녹지 공간과 자신이 그렇게 많은 시간을 보낸 정원을 옹호하는 만큼이나, 자유로운 사색과 감시당하지 않는 창조의 형이상학을 옹호했다. 그리고 이런 쟁점들에 대해 적들과 싸웠다.
두꺼비와 봄과 즐거움에 관한 그 에세이에서 그는 봄이나자연이나 전원을 즐기는 것에 대한 또 다른 표준적인 반대 입장을 이렇게 요약한다. "지금은 기계의 시대이며, 기계를 싫어하거나 기계의 지배를 제한하고자 하는 태도는 퇴영적이고 반동적이며 약간 우스꽝스럽다는 것이다." - P135

빵은 권위주의적 체제에 의해 관리될 수 있지만, 장미는 주어지기보다 개인들이 자유롭게 추구하고 발견하고가꾸어야 하는 무엇이다. "우리는 상상력이란 어떤 야생동물과도 같아서 갇힌 상태로는 번식하지 못하리라는 사실을 알 뿐이다"라고 오웰은 「문학 예방The Prevention of Literature」의 말미에 썼다. 
‘빵과 장미‘에서 장미란 프라이버시와 독립성을 가질 때 번성하는 일종의 자유를 의미한다.
그가 생각하는 사회주의에는 구속이 없다. 그는 계속하여쓴다. "사회주의의 진짜 목표는 행복이 아니다.
진짜 목표는 인류애다...
인간들이 서로 속이거나 죽이는 대신사랑하는 세계이다. 그리고 그들이 그런 세상을 원하는 것은 첫걸음으로서이다." 사랑을 부패시키고 약화하기는 쉽지만, 제대로 관리하기는 어렵다. 결론적으로 그는 유토피아라는 것을 이렇게 일축해버린다. "그들은 단지 일시적이기 때문에 소중했던 무엇인가를 끝없이 지속함으로써 완벽한 사회를 만들려 했다." 다시말해 그들은 욕망이나 기쁨처럼 본질상 유동적이고 통제 불가능한 무엇을 고정시키고 통제하려 했던 것이다. 그들은 장미를 빵으로 만들기를, 또는 빵을 획득하고 장미를 던져버리기를 원했다. - P140

오웰은 즉각적이고 특수한 것들에 대한 놀라움에 대해,
그것들이 얼마나 단정적인 사고를 약화하는지에 대해 여러 번 썼다. 1931년 에세이 「교수형」에서 그는 한 버마인 죄수가 사형대로걸어가면서 물웅덩이를 피하려고 옆으로 비키는 것을 보았다고썼다. 그 작은 몸짓이 그에게 강한 인상을 남겼다. "이상한 일이지만, 바로 그 순간까지 나는 건강하고 의식 있는 사람의 목숨을 끊어버린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전혀 알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다죄수가 웅덩이를 피하느라 몸을 비키는 것을 보는 순간, 한창 물이 오른 생명을 뚝 끊어버리는 일의 불가사의함을 말할 수 없는부당함을 알아본 것이었다." - P148

"그는반쯤 벗은 상태였고, 양손으로 바지를 추스르며 달리고 있었다.
나는 그를 쏘지 않기로 했다.
......
그 바지를 추스르는 광경 때문에도 총을 쏠 수가 없었다. 나는 ‘파시스트를 쏘러 거기에 간 것이었는데, 바지를 추스르는 남자는 ‘파시스트‘가 아니었다. 그는 나자신과 다를 바 없는 인간으로 보였고, 그래서 그를 쏘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그는 현실적인 것들을 위협하는 절대적이고 추상적이고 이론적인 것들을 믿지 않았다. (1938년, 그와 아일린은 그들이 키우는 개에게 ‘마르크스‘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 "우리가 실제로 마르크스를 읽어본 적이 없다는 사실을 기억하려고 말이야"라고 아일린은 한 친구에게 보내는 편지에 썼다. "이제 조금 읽어보았는데 그 사람이 너무 싫어져서 개를 똑바로 볼 수도 없어.")" 우드콕이 오웰을 대지에서 힘을 얻는 안타이오스에 비유한 것은 그가 구체적이고 손에 잡히는, 직접적인 경험에서 지적인 힘을 얻는다는 의미이기도 했을 것이다.
그런 이유로 그는 이데올로기들이 수많은 사람을 방황하게 했던시대와는 맞지 않았다. 특히 권위를 옹호하고 반대 의견과 독립성을 불법화하는 주의들과는 더욱 그랬다. - P149

오웰은 웰링턴으로 돌아간 후 전에는 그토록 소중히 여겼던 전원의 평온함에 불편함을 느꼈다. "이곳은 내가 어린 시절에알던 영국 그대로이다. 철로 때문에 파헤쳐진 곳에는 야생화들이 흐드러지고, 깊은 목초지에서는 윤이 자르르한 늠름한 말들이 풀을 뜯으며 생각에 잠겨 있다. 천천히 흐르는 냇가에는 버드나무들이 우거지고, 느릅나무들의 품이 푸르러지고, 시골집 정원들에서는 참제비고깔이 피어난다"라고 그는 스페인에 관한 책 말미에 썼다. "모두가 영국의 깊고 깊은 잠을 자고 있다. 나는 때로우리가 폭탄의 굉음 때문에 깜짝 놀라 깨기 전에는 결코 그 잠에서 깨어나지 못할 것 같다는 두려움에 사로잡힌다." 그리고 그도 다른 많은 사람들처럼 스페인에서 벌어진 갈등을 서막으로하는 세계대전과 함께 폭탄들이 다가오고 있음을 알고 있었다. - P160

그 앞의 팻말에는 "여기 심은 것이 현대 장미의 복잡한 선조라는사실을 20세기 초 유전학자 찰스 허스트Charles Hurst가 이곳에서 25년간의 교배를 통해 밝혀냈다"라고 적혀 있었다. 유전학이란 들뢰즈와 과타리가 지양하고자 했던 바로 그 나무 모양의 계보를 찾아내는 일이지만, 동시에 그것은 유전과 진화가 어떻게 작용하는지 이해하기 위한 핵심적인 모델을 찾아내는 일이기도 하다. 그래서 나는 케임브리지 대학 도서관에 가서 허스트의 서류상자들을 대출하여 뒤적이며 하루를 보냈다. 폴더들을 연이어 열어보며, 한 사람이 어떻게 살고 일했는가 하는 이야기와 만났다.
그는 내가 읽은 장미에 대한 문헌들 가운데서도 불쑥불쑥 나타나곤 했지만, 서류 상자 안에는 훨씬 더 복잡한 이야기가 들어 있었다. - P175

그 장미들의 이름은 온갖 가능성을 망라한다. 아일랜드의 불꽃, 아도니스,
레이디 리딩, 스노우퀸, 붉은 글자의 날, 골든 오필리어, 롤리타 아머, 인어, 로스앤젤레스, 그 밖에 특정인의 이름을 붙인 것도 수두룩하고, 그중에는 ‘미세스 아서 존슨‘처럼 결혼한 여성의 이름을기념하는 동시에 익명으로 만들어버리는 것도 있다.
책들과 오래된 문서들을 헤집는 것은 풍경 속을 쏘다니는것과 아주 비슷하다. 나는 대학의 장미정원에서 허스트와 마주치곤 했고, 오웰이 주라섬에서 보낸 말년에 관한 학술 논문에서는 그가 스탈린의 소련에서 벌어진 유전학 논쟁에 흥미를 보였다는 언급과도 마주쳤다. 그것은 내려가볼 만한 토끼굴이었으니, 그 - P177

논쟁은 오웰에게 진실과 사실, 거짓과 조종 및 그 결과라는 더 큰문제들을 고찰할 기회였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그것들은 어느정도 영감의 원천이 되었고, 특히 1984년』에 대해 그러했다.


영감이라는 말은 종종 긍정적이고 바람직한 것들에 대해쓰이며, 뮤즈의 감상적인 이미지는 작가의 열정의 대상인 어여쁜여성으로 그려지곤 한다. 정치적 작가에게 글쓰기를 위한 영감내지 적어도 불쏘시개는 종종 가장 역겹고 경악스러운 것이고,
반대가 자극제가 되곤 한다. 스탈린은 분명 오웰의 주된 뮤즈였으니, 한 개인으로서는 아니더라도 적어도 거짓말을 휘감은 무시무시한 권위주의의 핵심적인 인물로서 그러했다. - P178

그곳에서는 생존이 자원을 얻기 위한 개인주의적 경쟁이 아니라 자원은 풍부했으므로 거친 여건과 싸워나가기 위한 협동적 사업이었다. 크로포트킨은 그런 종내부의 협동을 상호부조라고 불렀고, 동물 및 인간의 삶에서 그역할들을 기록했으며, 진화와 협동은 상반된 것이 아니라 종종얽혀 있음을 강조했다. 하지만 그가 1902년에 낸 책 만물은 서로돕는다」는 당시의 논조에 큰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오늘날의 진화 과학은 크로포트킨의 시각에 좀 더 가까워졌다. 자연계는 점점 더 협동적이고 상호의존적이며, 점점 덜 경쟁적이고 개인주의적인 것으로 보이게 되었다. - P184

그러나 오웰의 시절에 진화론이란 곧 다윈주의였고 다윈주의란 대개 사회적 다윈주의로 해석되었다. 소련 정부는 생물학과 관련된 사실들이나 생물학을 옹호하고 발전시키려는 이들 모두에게 가혹한 처사를 했다. 서구 과학자들에게도 잘못이 있었다. 다윈의 진화론이 사회적 정태성을 확인해준다고, 즉 부자가빈자보다, 귀족이 평민보다, 백인이 유색인보다 우월하다고 믿는많은 사람들이 우생학자가 되었던 것이다. 이들은 우월한 또는열등한 인간 집단이 있다는 개념을 신봉했으며, 우월한 집단을양성하고 열등한 집단을 근절하기 위해 징벌적인 사회적 통제나노골적인 인종 말살 같은 방식들을 주창했다. 장미 연구가 허스트는 우생학자였고, 오웰로 하여금 소련의 사이비 과학에 관심을 갖게 했던 베이커도 우생학자였으며,  - P184

그 결과로 닥친 ‘기근 학살‘, 일명 홀로도모르 Holodomor로약 500만 명이 굶어 죽었으며, 그 대부분은 우크라이나에서였다.
굶주린 농부들이 음식 찌꺼기라도 얻으려고 도시로 몰려들었으며, 어떻게든 달아나려고 기차역으로 가거나 가다가 죽었다. 길가에는 그들의 피골이 상접한 시신이 널렸다. 굶주림으로 정신이이상해진 사람들은 식인 행위를 자행했으며, 심지어 제 자식을잡아먹기도 했다. 소련 정부는 수백만 명의 아사자와 공산주의의 성공이라는 이미지가 양립할 수 없다고 판단하여 그들의 운명을 은폐했으며, 그러기 위해 러시아에 있던 서방 기자들을 동원했다. 이들은 검열당했고 진실을 말할 경우 추방될 위협에 놓였지만, 대부분이 기꺼이 협력했다. - P187

야생식물의 종자를 채취하러 우크라이나에 갔다. 산기슭에서 견본을 찾고 있는데, 관리들이 검은 관용차를 끌고 올라와그를 데려갔다. 이후 11개월 동안 그는 400차례에 걸쳐 심문당했고 그 대부분은 심야에 이루어졌다―첩자요 반역자요 방해자요 기근의 주된 원인이라는 이유로 고발당했다. 거의열 시간 내리 계속된 심문 끝에 그는 자신이 우익 단체의 일원이라는 거짓자백을 했다. 항소 끝에 사형선고는 철회되었지만, 그는 강제수용소로 이송되었다. 거기서 날 밀가루와 언 양배추라는 식사 끝에,
인민의 굶주림을 해결하느라 그토록 많은 일을 했던 사람은 결국굶어 죽었다. 1943년 1월 26일이었다. - P192

하지만 이 권력도 밀로 하여금 사이비 과학에 복종하게하거나, 레몬나무로 하여금 추운 겨울을 견디고 살아남게 만들지는 못했다. 라마르크주의는 출현 당시에 이미 오류였고, 스탈린의 시대에는 거짓이었다. 밀에 대한 리센코의 약속들도 거짓이었다. 1930년대 초에 수백만 명이 굶어 죽은 대기근을 부인하는 것도 거짓이었다. 공개재판에서 사람들을 고문하여 인정하도록 강요했던 범죄들은 대부분 거짓이었다. 사람들은 살아남기 위해 거짓말을했고, 진실을 말했기 때문에 죽었으며, 아니면 어떤 식으로든 거짓말을 했고 죽음에 이르렀다. 다른 사람들은 무엇이 진실인지 아예 감을 잃어버렸다. 러시아혁명의 주동자들이 동료 혁명가들에 의해 처형될 때마다 역사는 매번 다시 쓰였다. - P198

처형자들이 처형당했고, 심문자들이 굴라크로 보내져 자신이 심문했던사람들과 같은 처지가 되었다. 책들이 금지되었고, 사실들이 금지되었으며, 시인들이 금지되었고, 사상들이 금지되었다. 그것은 거짓말의 제국이었다. 거짓말이라는 언어에 대한 공격은 다른 모든공격에 필요불가결한 기초이다.
오웰은 1944년에 이렇게 썼다. "전체주의가 진짜 무서운것은 그것이 ‘가혹 행위‘를 자행한다는 것이 아니라 객관적 진실이라는 개념을 공격한다는 것이다. 그것은 과거와 미래를 통제하려 한다." 이를 밑바탕으로 한 것이 빅브라더의 다음과 같은 유명한 말이다. "과거를 통제하는 자가 미래를 통제한다. 현재를 통 - P198

제하는 자가 과거를 통제한다."진실과 언어에 대한 공격은 가혹행위를 가능하게 한다. 만일 실제로 일어난 일을 지워버리고 증인들을 침묵시키고 사람들에게 거짓말을 지지하는 것이 유리하다고 납득시킬 수 있다면, 사람들에게 겁을 주어 침묵과 복종과 거짓을 강압한다면, 무엇이 진실인지 결정하는 것을 불가능하거나위험하게 만들어 아무도 감히 그러려고 하지 않게 된다면, 얼마든지 범죄를 영속시킬 수 있다. 전쟁에서 가장 먼저 희생되는 것은 진실이라는 옛말이 있다. 진실에 대한 상시적인 전쟁은 국내적으로나 전 지구적으로나 모든 권위주의의 기반이다. 따지고보면,
모든 권위주의는 우생학과 마찬가지로, 권력은 불평등하게 배분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전제로 하는 일종의 엘리트주의이다. - P199

러시아의 현재 권위주의적 지도자인 블라디미르 푸틴은 스탈린의 명성을 복권시켜왔다. 리센코의 명성도 이 복고주의에,후성유전학의 의의를 왜곡하는 일에 편승하는 듯하다. 반면 바빌로프의 업적은 그가 발견하고 수집하고 재배한 종자들, 그의제자들이 레닌그라드 포위전 동안에도 씨앗 은행에 보관했던 종자들을 통해 살아남았다. 내브한은 이렇게 썼다. "그가 죽은 후대략 사반세기가 지난 지금, 그가 수집한 씨앗들로부터 선택된400가지 새로운 작물들이 소련 인민의 큰 비중을 실제로 먹여 살렸으며, 기근의 빈도는 현저히 줄어들었다." "
스탈린의 레몬은 실패했고, 설령 한 그루 나무올리브나무이든 주목이든 세쿼이아나 인도보리수이든―가 1000년 또 - P199

는 그 이상을 살 수 있다 하더라도, 월링턴 주위의 밀밭들은 일년생 식물의 종자나 농업의 관행이 체제나 독재자나 한 무더기 거짓이나 과학에 대한 전쟁보다 더 오래 살아남을 수 있음을 상기시켜준다. 거짓말은 씨앗보다 더 자유롭게 돌연변이를 일으키며,
거짓말의 새로운 작물도 있다. - P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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