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사 안전하고 합법적이라 해도 낙태를 좋아할 사람은 없다. 어떤 여자가 불타는 토요일 밤을 보내자고 낙태를 무릅쓰겠는가. 여자들이 불법 시술을 받다가 욕실 바닥에서 피 흘리며 죽어가는 것을 좋아할 사람도 없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문제에 대한 접근 방식을 바꾸기 위해 질문을 바꿔보자. 당신은 어떤 나라에 살고 싶은가? 개개인이 자신의 건강과 신체에 대해 자유로운 결정권을 가지는 나라? 아니면 인구의 절반만 자유롭고 다른 절반은 노예인 나라? 아기를 낳을지 말지 스스로 결정할 수 없는 여성은 노예나 다름없다. 국가가 여성의 신체에 대한 소유권을 주장하고, 여성 신체의 용도를 지시할 권한을 행사하면 그렇게 된다. 남성이 처할 수 있는 유일하게 비슷한 상황은 군대에 징집되는 경우다. - P550
그리고 국가가 아기들은 그렇게 중히 여기면서 어째서 아기를 많이낳은 여성들은 공경하지 않는 걸까? 마땅히 그들을 존중하고, 가난에서 구제해야 하지 않나? 여성들이 자기의지에 반하면서까지 국가에필요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면, 그들은 마땅히 노고에 대한 보상을받아야 한다. 국가가 원하는 것이 더 많은 아기인가? 그렇다면 적절한보상이 따를 경우 거기에 자발적으로 참여할 여성들도 많을 것으로 믿는다. 출산의 보상이 보장되지 않을 때 여성은 자연법을 따르는 쪽으로 기운다. 즉, 태반이 있는 포유동물은 자원 결핍에 직면하면 유산하는 경향이 있다. - P551
하지만 국가는 필요한 자원을 제공하면서까지 노력할 의사는 없어보인다. 대신 항상 쓰던 비열한 수법을 강화할 생각만 한다. 그 수법은여자들에게 아기 낳기를 강요하고 그 비용까지 여자들에게 떠넘기는것이다. 여자들은 지불하고, 지불하고, 또 지불한다. 아까 말했듯 노예처럼 착취당한다. 아기를 낳기로 선택하는 경우는 당연히 별개의 문제다. 아기는 생명자체가 주는 선물이다. 하지만 선물은 자유롭게 주고 자유롭게 받는것이어야 한다. 또한 선물은 거부할 수 있어야 선물이다. 거부할 수 없는 선물은 억압의 징후일 뿐이다. - P551
그렇다면 호모사피엔스사피엔스는? 우리 좋은 자신을 발생시켰고자신을 부양해온 생물학적 시스템을 계속 파괴할까? 그래서 흔적도없이 사라지는 절멸을 향한 고속 행진을 지속할까? 아니면 여기서 멈추고, 그간의 무모한 행태를 반성하고, 잘못을 되돌릴 수 있을까? 인간은 자신의 발명들이 파놓은 궁지에서 빠져나올 방법을 발명할 수 있을까? 이미 인간은 인공 슈퍼바이러스 같은 생명공학적 자멸 수단을 개발했고, 인간 게놈을 조작하는 방법도 알아냈다. 이를 통해 인간이 스스로를 더 착하고, 덜 탐욕스러운 버전으로 대체해버릴 작심을 한다면? 만약 세계 개선에 열중한 박애주의자 또는 어느 정신착란자가 다른 버전의 인류를 설계한다면? 우리 중에 재설정 버튼을 누를 채비를하는 선지자 및/또는 미친 과학자가 숨어 있다면? - P555
소설은 답을 제공하지 않는다. 답을 제공하는 것은 지침서들의 몫이다. 대신 소설은 질문을 던진다. 오릭스와 크레이크』가 던지는 첫 번째 질문은 아마도 이것이다. "우리 자신에게 우리를 맡길 수 있을까?" 기술 수준이 몰라보게 높아졌다 해도 호모사피엔스사피엔스는 본질적으로 수만 년 동안 변하지않았다. 같은 감정, 같은 집착, 같은 선악미추 개념이 우리를 지배한다. 우리 인간은 영원한 오합지중이다. 그런데 만약 우리의 악함과 추함을 삭제하는 게 가능하다면? 그럼우리는 무엇을 삭제하게 될까? 그 결과물은 여전히 인간일까? 만약 그결과물이 조너선 스위프트의 『걸리버 여행기」에 등장하는 덕성스러운 말 휴이넘(Houyhnhnm)처럼 공격성과 승부근성이 없는 생물이라면그들은 빠르게 멸종해버리지 않을까? - P560
북미 원주민 부족들이 16세기와17세기에 유럽인과 조우한 후 줄줄이 사라져간 것처럼? 우리 중 일부는 걸리버 자신처럼, 그리고 오릭스와 크레이크』의 지미처럼 꽤 착하고 상당히 점잖은 사람들이다. 그걸로 충분할까? 지미에게는 ‘착한 마음‘이 있다. 우리를 구하는 데 우리의 착한 마음이면 충분할까, 아니면또 다른 무언가가 요구될까? 우리가 현재의 우리보다 더 아름답고 더 윤리적인 새로운 버전의 우리를 창조할 역량을 갖출 날이 머지않았다. 이런 생각이 들 것이다. 우리가 그 버전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그리고 지금의 우리가 급속히 파 - P560
괴 중인 생물권을 보존하기 위해서는 현재의 인간 모델을 폐기해버려야 하지 않을까? 크레이크도 그렇게 생각한다. 그리고 그것을 실행에 옮긴다. - P561
세계인권선언은 "인류의 모든 구성원에 내재하는 존엄성이 자유, 정의, 그리고 세계 평화의 토대"라는 인식에서 출발한다. 본 선언은 인권은 보편적인 것임을, 즉 어디 사는 누구인지에 상관없이 모든 사람들이 향유해야 할 권리임을 선포한다. 세계인권선언은 생명, 자유, 표현의 자유, 사생활에 대한 권리 같은 시민적·정치적 권리들을 포함한다. 또한 사회보장, 건강, 교육에 대한권리 같은 경제적·사회적·문화적 권리들을 포함한다. - P573
하지만 지구인 여러분, 경고할 말이 있습니다. 첫째, 지금까지의 선언과 협약은 모두 이상에 불과합니다. 거기에 서명한 국가들에서조차 평등은 온전히 구현된 적이 없습니다. 이 약속들이 단지 말에 그치지 않으려면 더 많이 노력해야 합니다. 명심하세요. 불평등이 많은 곳에 학대도 많습니다. 둘째, 권리는 하늘에서 저절로 떨어지지 않습니다. 권리는 신이 내리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들이 권리를 위해 수 세기 동안 싸웠고, 또 반격당했습니다. 줄다리기는 계속됩니다. 끝난 적이 없습니다. 카인은계속 돌을 집어 들고, 아벨은 계속 살해당합니다. 탐욕, 질시, 권력 싸 - P574
움∙∙∙∙∙…. 호모사피엔스사피엔스가 이것 없이 살았던 때가 있던가요? 안정된 사회란 적어도 이런 성향에 대처할 수단을 가진 사회입니다. 불안정한 사회는 내면의 악마들을 마개 없이 풀어놓는 사회입니다. 셋째, 오늘날 조직력과 재원을 갖춘 여러 세력이 이런 취약한 인권마저 잡아먹으려 공세를 펼치고 있습니다. 여러분 가운데는 준(準)민주주의 정부들의 밋밋함을 따분해하며 20세기 전체주의의 부활을 바라는 이들이 있습니다. 이에 대해 저는 이렇게 말하고 싶습니다. 조심하세요. 처음에는 호쾌한 발상 같아 보일 수 있습니다. 처음에는 행진과 코스튬플레이에 눈이 즐겁고, 이전 지도자들과 달리 화끈한 입담을자랑하는 무적의 리더를 섬긴다는 느낌이 짜릿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것들의 끝이 좋았던 적은 없습니다. 특히 시민 입장에서 좋게끝난 적이 없어요. - P575
전체주의 정권들은 어떤 이름을 달고 있는 같은 행동을 합니다. 그들의 목표는 전면적이며 도전받지 않는 힘입니다. 그들의 수단은 거짓말을 포함합니다. 그 거짓말은 클수록 좋습니다. 그들은 독립 언론의입을 틀어막습니다. 그러기 위해 예컨대 언론인의 목을 죄고 손발을자릅니다. 또한 그들은 체제에 동조하지 않는 예술가와 작가를 투옥하거나 살해하고, 독립 사법부를 없애고 법 집행 기관을 그저 정권의 산하기관으로 만들어 전체주의 정부가 고안한 부당한 법들을 행사합니다. 그들은 암살 같은 초법적 억압 수단을 사용합니다. 폭도를 선동해특정 집단들에게 폭력적 공격을 가하고, 경쟁 세력 파괴와 자기 세력결집과 대국민 공포 분위기 조성을 위한 규탄과 적발의 판을 깝니다. 이 성토 기계는 일단 전속력으로 올라가면 가공할 추진력을 발합니다. - P575
왜 이런 정권들이 나오는 걸까요? 그들은 어떻게 권력을 잡을까요? 전체주의 정권은 주로 혼란의 시기에, 대개는 경제위기에, 국민 전체나 상당수가 느끼는 부당한 현실에 대한 반감을 딛고 떠오릅니다. 이런 시기에는 무정부주의가 득세하기 좋습니다. 한동안 그렇게 집단+폭력 · 린치 ·인민재판이 판치다가 사람들이 더는 그런 혼돈을 참아내지 못할 지경이 됐을 때 전형적으로 군벌과 독재자가 부상합니다. 그들은 대중의 분노를 특정 표적 집단에게 돌리는 방법으로 추종자를 규합합니다. 표적 집단은 나환자, 마녀, 투트시족, 에이즈 환자, 멕시코인, 난민 등 다양합니다. - P576
여러분은 적어도 지금은, 또는 아직은 전체주의 독재 체제하에 살고 있지 않습니다. 제발 피하세요. 지구인이여, 여러분은 구태여 의심과 혐오의 분리주의 경로를 따를필요가 없습니다. 대신 서로가 같은 인간임을 인식하고, 인류에게 닥친 공동의 문제들을 함께 이해하고 마주하기를 바랍니다. 사실 해결할 대형 문제들이 한둘이 아니에요! 우선, 지구의 온도와화학적 구성을 조절하지 않으면 머지않아 여러분 모두 플라스틱 똥이되고 말 겁니다. 바다가 죽고 여러분은 숨을 쉴 수 없게 되겠죠. 그러면호모사피엔스사피엔스와는 영원한 안녕입니다. 우리도 여러분의 멸종이 마음 아파요. 여러분에게도 좋은 점이 있거든요. 모차르트는 정말우리 취향이었어요. 물론 우리야 악보를 저장해서 직접 연주하면 그만이지만요. 꼭 망할 필요는 없잖아요. 선택은 여러분의 것입니다. - P578
이곳은 토론 클럽입니다. 말이 이어지는 곳입니다. 말 다음에 말 다음에 말이 오면 힘이 됩니다. 발언이 힘입니다. 그렇게 희망합니다. 복잡한 문법을 가진 언어들, 우리가 태어나기 전의 먼 과거들과 우리가 죽은 후에 존재할 미래들에 대해 말할 수 있게 해주는 언어들이야말로아마도 최초의 진정한 휴먼 테크놀로지입니다. 우리는 인간 조상들로 - P594
부터 언어를 받았습니다. 언어의 기원은 우리가 알지 못할 먼먼 과거로 뻗어 올라갑니다. 이 언어를 진실하게 사용하세요. 공정하게 사용하세요. 그렇게 하면 말이 권력이 됩니다. 물론 가장 좋은 의미의 권력이요. 우리의 말은 이제 여러분 손에 달려 있습니다 - P595
악몽에는 두 가지가 있다. 첫 번째 악몽은 반복적으로 꾸는 흉몽이다. 몹시 익숙하면서도 불길한 장소에 와 있는 나를 발견한다. 으스스한지하실, 살기 어린 호텔, 컴컴한 숲속. 하지만 전에도 겪어본 악몽이기에 생각의 초점은 놀라울 만큼 예리하다. 지난번에 저 뾰족한 막대기가 괴물에게 주효했으니 이번에도 시도해보자. 두 번째 종류의 악몽에서는 익숙해야 할 모든 것들이 낯설다. 나는길을 잃었고, 방향을 알 만한 것은 어디에도 없고 무엇을 해야 할지 아득하다. 지금 우리는 이 두 가지 악몽을 한꺼번에 겪고 있는 듯하다. 다만 어느 것을 더 우세하게 겪는지는 악몽을 꾸는 사람의 연령대에 달려 있다. 이런 팬데믹 상황을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젊은 세대에게는 지금의 상황이 두 번째 악몽에 가깝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이야? - P598
하지만 장기적으로 봤을 때 전염병은 인류 역사에서 반복되는 요소였다. 박테리아와 바이러스는 전쟁보다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을 죽였다. 중세 유럽을 휩쓴 흑사병의 치사율은 50퍼센트로 추정된다. 대항해시대에 아메리카 대륙 원주민이 유럽인에게 묻어 온 병원균에 감염됐고, 거기에 대한 면역이 전혀 없었던 원주민의 사망률은 80~90퍼센트에 육박했다. 20세기 초에는 수천만 명이 스페인독감으로 죽었다. 바이러스나 박테리아의 눈에 우리는 소중한 인생사를 가진 애틋한 개인들이 아니다. 그저 미생물이 더 많은 미생물을 만드는 배양접시에불과하다. 팬데믹과 팬데믹 사이에 우리는 모든 것을 극복했다고 생각하기 쉽다. 전염병학자들은 그렇게 생각한 적이 없다. 그들은 언제나 다음번팬데믹을 기다린다. - P603
군에 둘러싸였다. 적들은 사방에 도사리고 있다. 다만 이번 적들은 뿔난 꼬마 도깨비처럼 그려놓은 세균이 아니라, 색색의 털 방울 모양의바이러스라는 것이 다를 뿐이다. 하지만 SF 영화에서 처음에는 귀엽다가 나중에는 인체를 장악하는 미지의 존재들처럼, 이 털 방울도 사람을 죽인다. 어떻게 해야 할까? 나는 2008년에 출간한 『돈을 다시 생각한다』에서 과거 흑사병이 퍼질 때 사람들이 보인 여섯 가지 반응을 언급했다.
1. 자기 보호. 2. 자포자기 난동. 여기에는 취태와 도둑질도 포함된다. 3. 남들을 돕기. 4. 남 탓. (주로 나환자, 집시, 마녀, 유대인이 전염병 전파자로 매도당했다.)5. 증인이 되어 기록하기. 6. 일상 유지.
이것은 택일의 문제가 아니다. 물론 2번이나 4번은 추천하지 않는다. 포기와 남 탓은 도움이 되지 않는다. 하지만 일단 자신을 보호하고, 그다음에 남을 돕거나, 일기를 쓰며 시대의 증인이 되거나, 온라인 시 - P605
스템을 활용해 일상을 최대한 회복하는 것은 가능하다. 14세기에는 가능하지 않았던 일들이 지금은 상당 부분 가능하다. 그러니 문에 가상의 격리 표시를 붙이고, 낯선 이들을 안에 들이지말고, 자신을 잠재적 전염병 매개체로 여기고, 영화 <외계의 침입자>나<제7의 봉인>을 (다시) 보자. 그리고 아날로그는 디지털이든 가위와 풀이나 펜과 종이를 꺼내자 감염은 됐지만 발병하지 않았다면 팬데믹이여러분에게 선물을 준 셈이다! 그 선물은 시간이다. 한 번쯤 소설을 써보거나 나막신 춤을 배우고 싶었는가? 지금이 바로 기회다. 그리고 용기를 내자! 인류가 전에도 겪었던 일이다. 결국에는 터널끝에 이르게 돼 있다. 우리는 그저 이번 터널을, 전과 후 사이를 잘 통과하면 된다. 소설가들은 이미 알겠지만 중간부분이 가장 생각해내기어렵다. 하지만 해낼 수 있다. - P606
제2세대 페미니즘의 대모 시몬 드 보부아르의 미출간 소설이 있었다니! 이 얼마나 흥분되는 일인가! 이 소설의 프랑스어 제목은 『갈라놓을 수 없는(Les Inséparables)』이며, 『레 리브레르(Les Libraires)』지에 따르면 "반항적인 두 젊은 여성의 열정적 우정을 감동적이고 명료하게 풀어낸 이야기라고 한다. 당연히 읽고 싶던 차에 영역판의 서문을 써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나의 최초 반응은 패닉이었다. 과거로 내던져진 기분이었다. 젊은시절의 내게 시몬 드 보부아르는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 P614
프랑스 실존주의자들은 거의 신으로 숭배됐다. 카뮈,얼마나 추앙받았던가! 우리는 그의 암울한 소설들을 열광적으로 읽었다! 베케트는 또 얼마나 각광받았나! 그의 희곡들, 특히 ‘고도를 기다리며』는 대학 연극반의 단골 공연작이었다. 이오네스코의 부조리극은또 얼마나 난해했던가! 하지만 그의 희곡들 역시 우리의 무대에 빈번히 올랐다. (그중 파시즘의 득세를 은유한 『코뿔소」 같은 작품은 오늘날까지 시대를 관통하는 상징성을 발한다.)사르트르 역시, 비록 귀엽지는 않았지만, 당황스럽게 똑똑했다. 당시에 타인은 지옥이다"를 인용하지 않은 사람이 있었을까? 그럼 그때의 우리는 ‘타인은 지옥‘의 필연적 귀결이 ‘고독은 천국‘이라는 것도 깨달았나? 아니, 그건 아니었다. 우리는 그가 오랫동안 스탈린주의에 아첨한 것을 용서했는가? 용서했다. 다는 아니어도 대략 용서했다. - P615
그가1956년 소련의 헝가리 침공을 비난했고, 알제리독립전쟁 당시 프랑스군의 손에 잔혹하게 고문당한 언론인 앙리 알레그(Henri Alleg)의 수기인『고문(La Question)』(1958)에 격렬한 서문을 썼기 때문이다. 고문』은프랑스 내에서는 금서로 지정됐지만 우리 같은 촌구석 사람들은 구할수 있었고, 나도 1961년에 읽었다. 그런데 이렇게 위협적인 실존주의 명사들 가운데 여성은 딱 한 명이었다. 시몬 드 보부아르 나는 생각했다. 강철처럼 예리하게 빛나는 초특급 지성들이 모인 파리의 올림포스산에서 한자리를 차지한 여성. 그녀는 얼마나 겁나게 억센 사람일까! 사회가 할당한 성역할(gender role)이상을 열망하는 여자라면 스스로 마초맨처럼 행동해야 한다고 여기던 시대였다. 뭐라도 되려면 냉철해야 했다. - P615
시몬 드 보부아르가 왜 그렇게 두려웠나요? 여러분은 쉽게 물을 수있다. 여러분에게는 거리감이 주는 이점이 있다. 죽은 사람은 산 사람보다 본질적으로 덜 무섭다. 특히 후대의 전기 작가들이 애초에 미화됐던 면들을 깎아 원래 크기로 줄여놓고 심지어 결함까지 꺼내놓았다면 별로 무섭지 않다. 하지만 내게 보부아르는 거대한 동시대인이었다. 한편에는 토론토라는 변방에 살면서 언젠가 파리로 달아나 낮에는웨이트리스로 일하고 밤에는 다락방에서 걸작을 쓰겠다는 꿈을 꾸던스무 살의 내가 있었고, 다른 먼 한편에는 몽파르나스의 돔 카페(Café leDôme)에서 인문 철학의 궁정을 열고 『레탕 모데른(Les Temps Modernes)』지에 글을 쓰며 나 같은 촌뜨기들을 비웃는 실존주의자들이 있었다. 그들의 말이 들리는 듯했다. 그들은 지탄 담배의 재를 떨며 이렇게 운을 뗐을 것이다. "부르주아." 더 심한 욕은 캐나다인이었다. - P616
그러다 나이가 좀 들었을 때 나는 드디어 파리에 갔다. 나는 실존주의자들에게 거부당하지 않았다. 사실 실존주의자들을 보지도 못했다. 파리의 카페에서 음식을 사 먹을 여유도 없었다. 파리행 직후에 밴쿠버에 갔고, 거기서 마침내 ‘제2의 성』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었다. 남들의 눈에 띌까봐 화장실에서 읽었다. (그때는 1964년이었고, 제2세대 페미니즘이 아직 북미의 오지까지 도달하기 전이었다.)이 시점에서 내 두려움의 일부는 연민으로 대체됐다. 어린 시몬은극도로 엄격한 훈육을 감내해야 했다. 일거수일투족 감시를 받는 몸과프릴이 가득한 원피스와 단호히 규정된 규범 속에서 얼마나 갑갑한 기분이었을까? 캐나다 벽촌의 여자애였던 것이 결국 나쁜 것만은 아니었다. 내게는 사사건건 비판적인 수녀들도, 고압적인 상류계급 친척도없었다. 나는 바지 차림으로 사방팔방 뛰어다닐 수 있었다. 모기를 막는 데는 치마보다 바지가 유리했다. - P617
그러던 차에 우리에게 원전(原典)이라 할 책이 주어졌다. 그것은 지금껏 출간된 적 없었던 보부아르의 자전적 소설 갈라놓을 수 없는이다. 이 책은 그녀에게 아마도 가장 큰 영향을 미쳤을 경험을 담고 있다. 그 경험은 평생의 친구였던 자자(Zaza)와의 관계다. (소설에서 자자는 앙드레라는 소녀로 등장한다. 두 소녀의 우정은 자자가 비극적이고 이른 죽음을 맞이할 때까지 다층적이고 강렬하게 이어진다. 보부아르는 ‘제2의 성』을 출간한 지 5년 후인 1954년에 이 책을 썼고, 이것을 사르트르에게 보여주는 실수를 저질렀다. 그는 대부분의작품을 정치적 기준으로 판단하는 사람이었고, 이 작품의 의미를 파악하지 못했다. 그가 유물론자이자 마르크주의자였다는 것을 생각할 때아이러니한 일이긴 하다. 어쨌거나 이 책은 두 젊은 여성이 처한 물리적·사회적 여건을 치열하게 묘사한 책이 아니던가. 당시 진지하게 여겨지던 생산수단은 공장 노동과 농업이 유일했다. 여성의 저평가된 무보수 노동은 거기 해당되지 않았다. - P620
흠, 독자여, 사르트르 씨가 틀렸다. 적어도 이 독자의 시각에서는 그렇다. 인류의 완성이나 정의와 평등 같은 추상적 관념에 몰두하는 사람은 원래 소설을 좋아하지 않는다. 모든 소설은 개인들과 그들이 처한 상황에 대한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그런 사람은 자기 연인이 쓴 소설을 좋아하지 않는다. 특히 자기가 연인의 삶에 등장하기 전의 일을다루고, 자기가 아닌 남이 중요하고 재능 있고 사랑받는 인물로 등장하고, 더욱이 그 인물이 여성인 소설을 좋아하지 않는다. 유산계급 소녀들의 내적 삶? 너무 사소해. 이런 소소한 감정 유희는 여기까지만해, 시몬, 너의 그 명석한 두뇌를 보다 진지한 문제들에 쓰는 게 어때? - P621
그런데 사르트르 씨, 21세기에서 답변드리자면, 이것이야말로 진지한 문제거든요. 만약 자자가 없었다면, 자자와 보부아르의 열정적이고 헌신적인 관계가 없었다면, 보부아르의 지적 야망에 대한 자자의응원과 시대의 관습에서 벗어나려는 보부아르의 욕망이 없었다면, 가족과 사회가 자자에게 그녀가 여성이란 이유로 가했던 치명적인 기대-보부아르가 보기에는 자자의 총명과 기운, 기지와 의지에도 불구하고 자자의 생명력을 그야말로 고갈시켜버린 기대에 대한 보부아르의 견해가 없었다면, 『제2의 성』이 있을 수 있었을까? 또한 이 중추적인 책이 없었다면, 이후에 일어난 일이 과연 일어난 만큼 일어날 수있었을까? - P621
더욱이 지금의 세계에도 얼마나 많은 버전의 자자들이 살고 있는가? 아직도 얼마나 많은 명석하고, 재능 있고, 유능한 여성들이 일부는국법에 의해, 다른 일부는 나름대로 젠더 평등을 이뤘다는 나라에 살면서도 내부의 빈곤과 차별로 인해 억압받고 있는가? 물론 갈라놓을수 없는 모든 소설이 그렇듯 특정한 시간적·공간적 배경을 가진다. 하지만 동시에 특정한 시간과 장소를 초월한다. 친애하는 독자여, 이 책을 읽고 울기를 바란다. 작가 자신도 처음에는 눈물을 흘린다. 그렇다. 이 이야기는 눈물로 시작한다. 살벌한 외관과 달리 보부아르는 자자의 죽음을 두고 평생 눈물을 멈추지 않았다. 그녀가 우리가 아는 보부아르가 되기 위해 그토록 열심히 노력한 것은어쩌면 일종의 추모였는지도 모른다. 보부아르는 전력을 다해 세상에자신을 개진해야 했다. 자자가 하지 못했던 몫까지 최대한. - P622
1921년의 에세이 나는 두렵다(I Am Afraid)」에서 자마틴은 이렇게말했다. "진정한 문학이란, 문학이 착실하고 듬직한 공무원들이 아니라 광인·은둔자·이단자·몽상가·저항자 · 회의론자에 의해 창작될 때에만 존재한다." 이런 점에서 그는 낭만주의 운동의 산물이었다. 그건혁명 자체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레닌-스탈린주의의 바람이 어느방향으로 부는지 확인한 "착실하고 듬직한 공무원들이 이미 검열에착수했다. 그들은 바람직한 주제와 작품에 대한 포고령을 내리고, 변칙과 비정통의 잡초를 뽑느라 바빴다. 전체주의체제에서는 이 일에도늘 위험이 따른다. 독재자의 눈짓 한 번에 잡초와 꽃이 뒤바뀔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우리들을 얼마간 유토피아로 볼 수도 있다. 작중 ‘단일제국‘은 보편적 행복을 목표하면서, 사람은 행복과 자유를 동시에 누릴 수 없기때문에 자유를 포기해야 한다는 논리를 내세운다. 그러면서 19세기에떠들썩하게 논쟁의 대상이 됐으며 지금도 여전히 뜨거운 논쟁거리인 ‘민권‘은 얼토당토않은 것으로 무시한다. 즉 ‘단일제국‘이 모든 것을 잘통제하고 있고, 모두의 최대 행복을 위해 움직이는데 민권이 왜 필요하냐는 것이다. - P625
모든 것은 일명 율법에 따라 이루어진다. 섹스 기회는 모두에게 할당되지만 자녀를 낳는 것은 특정 신체 조건을 충족하는 여성들에게만허용된다. 당시는 우생학이 ‘진보‘로 간주되던 시기였다. 잭 런던(Jack London)의 1908년 소설 『강철군화와 오웰의 『1984럼, 『우리들』에서도 반체제 인사들은 여성이다. 남자 주인공 D-503은처음에는 ‘단일제국‘의 헌신적 일원으로 등장한다. 그는 ‘단일제국‘이완벽한 행복의 비법을 미지의 세계와 공유하겠다는 구실로 건설하는우주선에서 기술자로 일한다. 디스토피아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일기를 쓰는 경향이 있는데, D-503이 쓰는 일기는 우주에 전하기 위한 단일제국 찬가다. 하지만 얼마 안 가 플롯이 빡빡해지며 D-503의 글도걸쭉해진다. 그는 끔찍한 순간들에 에드거 앨런 포에 빙의한 걸까? 아니면 독일 고딕 낭만주의에? 아니면 보들레르에? 가능성 있다. 빙의한것은 D-503 인가, 아니면 저자인가? - P627
『우리들』이 쓰인 시기는 역사의 특정한 순간, 즉 공산주의가 약속했던 유토피아가 디스토피아로 퇴색하기 시작한 순간이었다. 그렇지만 당시는 모두의 행복을 위한다는 미명하에 이교도들이 사상범이 되고, 독재 반대자가 혁명 반동분자로 몰리고, 여론 조작용 공개재판이확산되고, 숙청이 일상이 되기 전이었다. 자마틴은 어떻게 미래를 이리도 분명히 내다봤을까? 하지만 그가 본 것은 미래가 아니었다. 그는현재를 보았다. 그리고 현재의 그림자 속에 이미 도사리고 있던 것을보았다. 크리스마스 캐럴』의 스크루지가 말했다. "사람의 행로는 특정한 결말을 예고한다. 그 행로에 계속 붙어 가면 그 결말에 이르고 말지만, 행로에서 벗어나면 결말도 바뀐다." 우리들』은 당시의 장소와 시대에 던지는 경고였다. 하지만 이 경고는 들리지 못했기에 주의를 끌지도 못했다. "착실하고 듬직한 공무원들이 자마틴에 대한 검열에 착수했기때문이다. 사람들은 행로에서 벗어나지 않았고, 그 결과 수백만 명이죽었다. 『우리들』이 현재를 사는 우리에게 던지는 경고일 수도 있을까? 만약그렇다면 어떤 종류의 경고인가? 우리는 듣고 있는가? - P630
벨 판 주일렌은 프랑스 귀족은 프랑스혁명에서 아무것도 배우지 못했다고 평했습니다. 하지만 그녀가 스위스에서 만난 귀족 망명자들은적어도 한 가지는 배웠습니다. 만약 귀족의 목이 날아가는 시국이고, 만약 당신이 귀족이라면, 도망쳐라! 최대한 빨리! 설사 내세울 만한 공적이 있다 해도 당신의 선의나 선행이 당신을 구해주지 못할 테니까. 그런 때에 내게 유리하게 또는 불리하게 작용하는 것은 내가 생각하는내 개인적 정체나 내가 했다고 믿는 선행이 아닙니다. 남들이, 연출과단두대 밧줄을 잡고 있는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가 내 운명을 좌우합니다. 더구나 이때는 "선고 먼저, 판결 나중입니다. 『이상한나라의 앨리스』에 나오는 피에 굶주린 독재자 하트 여왕이 한 말입니다. 종류를 불문하고 도덕적 공황이 지배하는 곳에서는 고발당하면 바로 유죄이고, 유죄면 바로 처형입니다. 사실관계는 더 이상 중요하지않고, 설사 존속한다 해도 사법절차는 요식행위로 전락합니다. 이는역사를 통해 수없이 반복돼온 패턴입니다. 진짜든 상상이든 위기의 시기에는 누군가는 범인이 되어 색출당하고 제거당해야 합니다. - P634
미래의 어느 시점에 우리 시대가 학술 심포지엄의 주제가 될 수도있어요. 그렇게만 된다면 최악의 결과는 아니겠네요. 어쨌든 미래에도여전히 사람들이 있고, 그들에게 여전히 역사 재해석에 기울일 관심이남아 있으며, 표현의 자유와 지적 활동의 자유가 어떤 형태로든 여전히 존재한다는 뜻이니까요. 이는 하찮은 희망이 아닙니다. 우리가 로봇이나 지구 과열이나 치사율 100퍼센트의 통제불능 바이러스로 인해 멸망당하지 않을 거란 희망은 결코 작은 희망이 아니에요. 저는 일어날 가능성이 다분한 불쾌한 미래에 대한 책들을 씁니다. 우리가 그런 미래를 현실에 허용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요. 주어진 상황에서 우리는, 또는 우리 중 일부는, 그런대로 잘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목격하는 권위주의 정치의 물결이 물러가고, 우리의 공동 상황이 더 이상 악화되지 않기를 바랄 뿐입니다. 공포와 희망이 공존합니다. 두 가지는 분리돼 있지 않습니다. 어떤 상황에서 살고 싶은가? 아마 이것이 우리가 자문해야 할 진짜질문일 겁니다. 네, 늑대의 배 속은 어둡습니다. 하지만 늑대 밖은 밝습니다. 그럼, 어떻게 나갈 수 있을까요? - P644
그레임은 삶의 마지막까지 새를 보는 즐거움을 놓지 않았다. 생애마지막 해까지도, 비록 혈관성 치매가 진행되어 더는 읽지도 쓰지도못했지만, 그는 계속해서 새들의 활기찬 삶을 지켜보았다. 우리 뒤뜰의 모이통과 물통에 날아드는 새라고는 참새와 울새, 찌르레기뿐이었고 간간이 비둘기가 찾아올 따름이었지만 그는 개의치 않았다. 모든새가 주목받을 가치가 있었다. "이제는 저 새들 이름이 생각나지 않아." 어느 날 그가 우리의 친구에게 말했다. "하지만 뭐, 새들도 내 이름을모르니까." - P648
필사에 대한 지식으로부터 보호하는 방책이 된다. 과거에서는 주위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이 죽든 적어도 우리 자신은 늘 살아 있기 때문이다. 반면 현재에 산다는 것은 불가피한 죽음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하지만 현재까지 살지 않고 삶을 온전히 산다고 할 수 있을까? 죽음이라는 신사는 우리 모두를 기다린다. 우리 밖에서가 아니라 우리 안에서. 그는 우리의 비밀공유자이자 어떤 면에서는 우리의 친구다. 우리가영원히 살 수밖에 없는 운명이라면 삶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드디어보는구나, 말로만 듣던 저 유명한 것을." 헨리 제임스가 임종 시에 한말이라고 한다. 그레임도 익히 알던 인용구다. 물론 로버트 프레이저가 완전히 그레임은 아니다. 다만 내가 그레임을 처음 만났을 때 그에게 말했던 것처럼, 그의 창의적 삶과 그의 실제 삶은 하나였다. - P657
시가 해야 할 일(신을 찬양하고, 사랑하는 이의 매력을 찬미하고, 전쟁 영웅을 기리고, 공작과 공작 부인을 칭송하고, 파워엘리트를 비방하고, 자연과 동식물을 묵상하고, 민중의 봉기를 촉구하고, 대약진운동을 선전하고, 전남편 및/또는가부장제를 욕하는 일)에 대한 믿음은 매우 다양하다. 임무 수행을 위해시가 취할 방식(한껏 고무된 언어, 기악을 곁들인 노래, 운을 맞춘 2행연구시, 자유시, 소네트 워드호드에서 뽑아낸 비유, 적절히 선택된 방언, 속어와 욕설, 시경연 대회의 즉흥시 등)도 못지않게 다양하며, 유행에도 좌우된다. 시가 목표하는 청중도 여러 부류다. 같은 여신을 섬기는 사제들부터 - P662
당대의 왕과 궁정, 지식노동자들의 자기비판 그룹, 동료 음유시인들, 상류사회, 비트족, 문예창작 입문교실, 온라인 팬, 또는 에밀리 디킨슨이 말한 동료 무명인(無名人)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때로 시인은 때와 장소에서 격하게 벗어난 말 때문에 추방되고 총에 맞고 검열당한다. 특히 독재 체제에서 찌푸린 얼굴의 시인이 편히 쉴 자리란 없다. 엉뚱한 곳에서 엉뚱한 말을 하면 곤욕을 치를수 있다. 모든 시가 다 그렇다. 시는 때와 장소에 내장돼 있다. 시는 그 뿌리와절연할 수 없다. 다만 운이 좋으면 시공을 초월할 수 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훗날의 독자들이 그 시를 읽을 수는 있어도 그 시가 애초에의도된 대로 읽히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메소포타미아의 위대하고 무시무시한 여신 이난나에게 바치는 찬가는 적어도 내게는 여전히 매혹적이다. 하지만 고대 청중에게 일으켰을 골수가 녹아내리는 경외심을지금은 일으키지 못한다. 나도 이난나 여신이 느닷없이 현신해 산을납작하게 밀어버릴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물론 내 생각은 언제든지 빗나갈 수 있다. - P663
낭만파가 불후의 명성과 저작에 대해 부단히 부르짖었지만, 사실 그런 문제들에 있어서 ‘영원한 것은 없다. 명성과 작품은 흥망을 거듭하고, 책은 배척당하고, 불타고, 나중에 출토되고, 재활용된다. 오늘날의불멸의 시가 내일모레는 불쏘시개로 전락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내일모레의 불쏘시개가 불길에서 구출돼 격찬을 받고 주추에 새겨질 수도있다. 타로카드 중 ‘운명의 수레바퀴‘가 바퀴인 데는 다 이유가 있다. 세상사는 돌고 돈다. 적어도 때로는 그렇다. 운명 카드는 ‘운명의 필연적 직선 도로‘라고 불리지 않는다. 그런 건 없다. - P663
사전 경고는 이쯤 하고, 이제 영화 <일포스티노(Il Postino)>에서 우편배달부가 한 말을 인용하려 한다. 영화 속 우편배달부는 좋아하는 여자의 마음을 얻기 위해 시인 네루다의 시들을 훔친다. "시는 쓰는 사람의 것이 아니다." 그는 말한다. "시는 그것을 필요로 하는 사람의 것이다."시가 작자의 손을 떠난 후에는, 그리고 작자가 시공을 떠나 원자로떠다니게 되면, 과연 그 시는 누구에게 속할까?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는가? 그대를 위해서다. 친애하는 독자여. 이 시는 누구를 위한 것인가? 역시 그대를 위한 것이다. - P664
살다 보면 내가 그때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정확히 기억하는 순간들이 있다. 그런 순간들은 사람마다 다르다. 내 경우 그런 순간들 중 일부는 역사적 비극이 일어나던 순간이다. 케네디가 암살됐을 때 나는 토론토 시내의 어느 시장조사 회사에서 일하고 있었고, 9·11 테러가 일어났을 때는 토론토 공항에서 뉴욕행 비행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또 다른 일부는 날씨와 상관있다. 허리케인을 목격했을 때, 빙설 폭풍에 잡혔을 때 등. 또 다른 일부는 음악과 관계있다. 라디오로 처음 <메어지도츠>를 들었을 때 나는 네 살이었고, 수세인트마리에 있었고, 안락의자에 앉아 곰 인형을 인형 옷에 서툴게 꿰매고 있었다. - P670
내가 자연주의 작가 배리 로페즈(Barry Lopez)를 처음 만난 것은 수십 년전 알래스카 여행에서였다. 사람들이 말했다. "여자가 남자이고, 남자가 동물인 땅, 알래스카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농담이었지만 뼈 있는 농담이었다. 그리고 내게는 다소 익숙한 뼈였다. 나는 북부에서 자랐고, 알래스카는 북부다. 강인한 여자들이 있는 곳. 하지만 동물이 될 거라면 어떤 동물인지가 중요하다. 족제비가 되는것과 늑대가 되는 것은 다르다. 사람들이 늑대를 고른다면 그건 배리의 영향일 가능성이 크다. 무리에 충실하고, 똑똑하고, 지략 있고, 생존지향적이고, 잘생기기까지 한 동물. 좋아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그런데 그 늑대들이 헬리콥터를 탄 수렵꾼들에게 살육당하고 있다. 족제비에게는 일어나지 않는 일이다. - P675
배리와의 만남은 자연 세계와 우리를 불가분하게 이어주던 언어, 그러나 지금은 사라져버린 언어가 아직 사용되는영역으로 들어서는 기분을 안겨주었다. 그곳에 그 언어를 재개하는 화자가 있었다. 배리는 황야의 예언자였다. 하지만 배리는 그곳을 황야로 부르지 않았을 것이다. 그럼 고독한 화자라고 해두자. 그는 수없이궁금했을 테니까. 진정으로 듣고 있는 사람이 있긴 있을까? 그는 이제지극히 중요한 화자가 됐다. 1970년대와 1980년대에는 그의 동시대인들 대다수가 그가 전하는 메시지의 긴급성을 대체로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오늘날 멸종저항(Extinction Rebellion, XR) 같은 세계적 운동에 참여하는 젊은 활동가들은 그 메시지를 절감한다. 우리가 들이마시는 숨은 자연에서 온다. 자연을 죽이는 것은 우리 자신을 죽이는 것이다. 대양은 지구의 허파다. 특히 북방 대양은 까마득한 옛날부터 지구를 골디락스 행성으로 유지해온 거대 시스템의 열쇠다. - P676
기후변화로 북극이 녹아내리고 있다. 인간이 야기하는 대멸종, 이른바 여섯 번째 대멸종이 임박했다. 이런 때 배리의 저작이 가지는 의미는 자명하다. 우리는 우리를 지탱하는 기반과의 연을 놓치고 파멸의위기를 야기했다. 그 위기는 우리의 예상보다 빠르게 다가오고 있다. 배리 로페즈가 우리가 사랑했지만 잃어버린 것들을 미리 노래한 것이아니기를 희망하자. 사랑하는 푸른 지구, 사랑하는 야생이 돌이킬 수 - P676
없게 상실되면 우리도 상실된다. 배리의 작품을 읽는 것, 또는 다시 읽는 것은 그 상실이 얼마나 엄청나고 얼마나 끝없이 어리석은 것이 될지 스스로 상기하는 일이다. 고마워요, 배리 - P677
바다는 우리 행성의 살아 있는 심장이자 허파다. 바다는 대기 중 산소의 대부분을 생산하고, 해류 순환을 통해 기후를 통제한다. 건강한 해양이 없다면 우리처럼 육지에 살면서 공기로 호흡하는 중형 영장류는죽을 수밖에 없다. 해양생물학자 레이철 카슨의 최초 저작 세 권, 『바닷바람을 맞으며』『우리를 둘러싼 바다』 『바다의 가장자리가 재출간됐다. 이는 위의 사실에 대한 대중의 각성과 인식 확산을 시사한다. 레이철 카슨이 이 책들을 집필하던 1930년대 후반과 1940년대와 1950년대는 지금은 우리 세계의 현실이 된 많은 일들이 아직 일어나기 전이었다. 경고 신호는 있었지만 아직 희미하게 깜박일 때였다. 그때는 우리가 여섯 번째대멸종 시대에 접어들었다는 것을 눈치챈 사람이 별로 없었다. 기후위기의 초기 징후들이 있었지만 대중의 의식에 영향을 주지는 못했다. - P678
대규모 산업형 어업은 막 시작 단계였다. 뉴펀들랜드 그랜드뱅크스 해역의 대구 어장이 남획으로 황폐해지기 전이었고, 다른 어종들도 무분별한 혼획으로 개체가 급감하기 전이었다. 저인망어선들이 대륙붕 생물계의 회생력을 파괴하기 전이었고, 산호초에 심각한 백화현상이 일어나기 전이었다. 아직은 비닐 끈이 만든 ‘유령 그물들‘이 해양을 떠다니며 물고기와 돌고래와 고래들을 얽어매 죽이고 있지 않았다. 해양보호구역을 설정한 국가도 없었다. 그런 게 왜 필요한지도 모르던 때였다. 바다는 원래 끝없이 샘솟는 밑천이잖아? 인류가 마음껏 퍼가도마르지 않는 화수분 아닌가? 해양생태계에는 신경을 쓸 필요가 없었다. 신경을 왜 써? 그때는 이렇게 생각했다. 바다는 언제나 자신을 알아서 챙겼다. 바다는 약해지기에는 너무 거대했다. - P679
레이철 카슨은 20세기를 변화시킨 인물중 하나다. 카슨이 없었다면, 지구가 인간을 포함한 지구 생명체의 생존이 가능한 곳으로 남을수 있는지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지금처럼 높지 않았을 것이다. 또한위정자들이 그녀의 말을 듣고 그녀의 통찰에 따랐다면 현재 환경오염과 기후 위기, 그에 따른 기근, 화재, 홍수, 자원전쟁으로 고통받는 사람들도 지금처럼 많지 않았을 것이다. 카슨이 ‘20세기를 변화시켰다‘고 말한 것은 카슨의 1962년 역작 『침묵의 봄』을 계기로 사람들의 사고방식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카슨은자신의 입장을 고수했고, 자신의 증거 기반 결론을 견지했다. 현재 우리는 과학을 부정하고 사실 직시를 거부하는 신기한 시대에 살고 있다. 이 시대는 살충제와 제초제가 온난화와 생물권 파괴에 미치는 영향만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백신 접종과 선거 개표처럼 우리 생활에보다 밀접한 것들조차 부정하려 든다. 이런 상황이니 카슨의 발견에대한 적대적인 모르쇠 반응은 놀라운 일도 아니다. - P680
『침묵의 봄』은 카슨의 네 번째 책이었다. 첫번째 책 『바닷바람을 맞으며』는 1941년에 출판됐다. 제2차세계대전이 한창이고 미국이 직접 참전하기 직전이었다. 당시의 정치상황 외에 다른 주제의 책을 내기에좋은 해는 아니었다. 이 책은 『시튼동물기』의 어니스트 톰프슨 시튼과「수달타카의 일생』과 『연어 살라의 이야기 (Salar the Salmon)』의 헨리 월리엄슨(Henry Williamson)이 개척한 동물 중심 자연주의 저술의 계보를잇는 서정적이고 매력적인 책이다. 지금 같았으면 아동문학이나 청소년문학으로 분류됐겠지만, 카슨이 애초에 의도한 독자층은 이보다 훨씬 넓었다. - P680
카슨의 두 번째 책인 우리를 둘러싼 바다는 전후 시대 긴축정책이드디어 끝난 1951년에 나왔고,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다. 이번 책은 허구화한 설명이 아니라 사실을 담은 설명이었다. 역사와 선사, 지질학과 생물학을 결합한 해양에 바치는 현세적이자 기념적인 찬가였다. 많 - P681
은 이들이 저자를 따라 파도 아래로, 짙푸른 바닷속으로 들어가기를열망했다. 쥘 베른의 고전 사이언스 픽션 『해저2만리』의 네모 선장을기억하는가? 지금은 몰라도 1951년에는 많은 독자들이 네모 선장을기억했다. 바닷속은 모험과 불가사의의 영역이었다. 그토록 박식하고열정적인 가이드와 함께 떠나는 여행은 얼마나 짜릿했던가! 인어는 없었지만 반면에 경이로움은 훨씬 컸다. 이 책은 레이철 카슨을 국제적인 작가의 반열에 올렸다. - P6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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